김천시 봉산면 소재 고 나화랑 선생의 생가 국가문화재 등록 예정

‘열아홉 순정’ ‘닐리리 맘보’ ‘무너진 사랑탑’ 등의 작곡가 나화랑 생가(김천시 봉산면)가 국가문화재로 등록될 예정이다.문화재청이 오는 28일까지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 예고 기간 중 의견을 수렴하고,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최종 등록한다.‘김천 나화랑 생가’는 광복 후 한국 대중음악계를 대표하는 고 나화랑(본명 조광환)이 태어나 자란 곳이다. 과거 모습을 비교적 잘 간직하고 있다. 동시대 활동했던 음악가의 생가가 대부분 사라진 상황에서 현존하는 생가라는 점에서 음악사적 및 지역사적 측면에서 보존가치를 인정받았다.작곡가 나화랑(1921~1983년)은 ‘열아홉 순정’, ‘무너진 사랑탑’, ‘닐리리 맘보’ 등 생애 500여 편의 가요를 남기고 수많은 음반을 양산해 한국 대중가요 보급과 발전에 공헌한 바가 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김충섭 김천시장은 “나화랑 생가가 국가등록문화재가 되는 것은 지역사적으로도 매우 가치가 있는 일이다”며 “인근의 ‘김천 신리 영천이씨 정려비(경북도 문화재 자료 제387호)’, ‘율수재(도 문화재 자료 제541호)’와 함께 또 하나의 문화관광 명소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안희용 기자 ahyon@idaegu.com

리영희

리영희 / 고은70년대 대학생에게는/ 리영희가 아버지였다/ 그래서 프랑스 신문 ‘르몽드’는/ 그를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사상의 은사’라고 썼다// 결코 원만하지 않았다/ 원만하지 않으므로 그 결핍이 아름다웠다/ 모진 세월이 아니었다면/ 그 저문 골짜기 찾아들 수 없었다// 몇 번이나 맹세하건대/ 다만 진실에서 시작하여/ 진실에서 끝나는 일이었다// 그의 역정은/ 냉전시대의 우상을 거부하는 동안/ 그는 감방 이불에다/ 어머니의 빈소를 마련하고/ 구매품 사과와 건빵 차려놓고/ 관식 받아 차려놓고/ 불효자는 웁니다/ 이렇게 세상 떠난 어머니 시신도 만져보지 못한 채/ 감방에서 울었다 소리죽여- 시집『만인보』(창작과비평사, 1986) .............................................. 12월5일은 넬슨 만델라의 6주기이자 현대사의 증인이라 할 리영희 선생이 타계한 지 9년째 되는 날이다. 통일과 민주주의, 인권을 주장하면 빨갱이로 매도되었던 시절에 자신의 생각을 주저 없이 글로써 진실과 정의를 알리려했던 선생이었다. 작가 이병주는 러시아 사상가 베르자예프의 말을 인용하면서 “세상에는 도스토옙스키의 영향 아래 인생을 사는 사람과 그와 무관하게 사는 사람으로 나뉠 수 있다”고 했다. 그렇듯 세상은 리영희에 빚진 사람과 그와 무관하게 사는 사람들로 구분될 수 있다. 나도 ‘사상의 아버지’란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으나 한때 ‘사상의 은사’였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양심이 있고 양식을 가진 모든 젊은이들에게 그는 행동하는 지식인의 귀감이었다. 좌절과 고난으로 점철된 1970년대, 냉전의 우상을 타파하고 시대를 통찰하는 지성인으로서 리영희 선생은 당시 실의에 빠진 청년학생들에게 영롱한 진주와 같은 존재였다. 그렇게 사상적 은혜를 베풀고 떠난 선생의 글을 책으로 처음 접한 건 ‘전환시대의 논리’지만, 그보다 ‘偶像과 理性’이 더 가슴을 파고들었다. “내가 글을 쓰는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되고 그것에서 그친다.” “진실은 한 사람의 소유물일 수 없고 이웃과 나눠져야 할 생명인 까닭에 그것을 알리기 위해 글을 써야 했다. 그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이성의 행위이다.” “도전에는 많은 난관이 있겠지만 그 괴로움 없이 인간의 해방과 발전, 사회의 진보는 있을 수 없다”라고 설파한 첫머리는 영원히 간직해야할 말씀으로 몇 번씩 꼭꼭 접어 안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그러나 세월이 가면서 주머니 밑창이 타개지고 말씀들은 야금야금 새나갔다. 선생께서도 훗날 책의 개정판을 내면서 “우리사회에서 하루속히, 읽힐 필요가 없는 ‘구문’이거나 ‘넋두리’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고 밝혔다. 하지만 선생의 바람과 내 망각에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 망각의 소이인 일상의 고단함에 굴복한 무뎌진 감각 탓도 있겠고 우리들 자신의 정신적인 나태도 원인이 되었으리라. 수많은 항쟁과 민주적 혁명의 세월을 통과하면서 선생의 가르침대로 양심을 가동했건만, 이성은 단단하지 않았고 논증은 철저하지 못했다.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고 용기마저 부족했는지도 모르겠다. 진실로 선생이 바라는 대로 ‘우상’이 판치지 못하는 세상을 소망하건만,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낯 두꺼운 권력의 유령들에 의해 국정이 망가져가는 어이없는 세상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정의와 진리가 보편타당해진 세상에서 선생의 저서들이 극복되는 날은 반드시 오리라 믿는다.

예천군, 정간공 약포 정탁선생 탄신 제493주년 기념식 개최 홍보

예천군이 12일 오후 2시 예천문화회관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예천출신의 충신 ‘정간공 약포 정탁 선생 탄신 493주년 기념식’을 개최한다.지난달 정식 출범한 약포정탁기념사업회에서 주최·주관하고 예천군이 후원하는 이번 행사는 예천의 대표적 충신 정탁선생을 기념하고 널리 알리기 위해 열린다.기념식에 앞서 오전 10시30분부터 공군 제16전투비행단 의장대, 육군 3사관학교 군악대, 해군 제1함대 군악대의 예천읍 시가지와 경북도청 신도시에서 거리퍼레이드가 진행된다.또 예천그린실버합주단의 식전공연을 시작으로 세미양악공연, 약포선생 일대기 마당극, 기념학술 강연도 펼쳐진다.김규탁 약포정탁기념사업 회장은 “지역의 충신 약포 정탁 선생을 널리 알리고 많은 젊은이가 그 뜻을 받들어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계기로 삼고자 이번 행사를 마련하게 됐다”고 말했다.권용갑 기자 kok9073@idaegu.com

경북 10월의 독립운동가 권준 ․ 민영숙 선생 강연회 열려

상주박물관은 29일 세미나동에서 ‘2019년 경북 10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상주의 권준 선생과 그의 며느리 민영숙 선생에 대한 강연회를 개최한다.상주시 이안면 여물리 출생인 권준(1895~1959) 선생과 서울 출생인 민영숙( 1920~1989) 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활약한 시아버지와 며느리이다.이날 한시준 전 단국대 사학과 교수가 권준·민영숙 선생의 삶과 독립운동에 대해 강연한다.이번 강연회는 권준 선생 출생지인 상주의 상주박물관과 경북도 독립운동기념관이 공동 주관하고, 경북도가 후원한다.김일기 기자 kimik@idaegu.com

구미시 독립운동가 왕산 허위선생 추모 향사 지내

구미시가 21일 왕산기념사업회 주관으로 경인사에서 왕산 허위선생 111주기 추모제를 진행했다.이날 추모제는 장세용 구미시장이 초헌관을, 김태근 구미시의회 의장이 아헌관, 윤창욱 도의원이 종헌관을 맡아 진행됐다. 왕산 선생의 손자 허경성 부부와 왕산가 후손 허벽 부부, 기관단체장, 기념사업회 임원, 주민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특히 이번 추모제(향사)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근조 화환을 보내 선생의 숭고한 나라 사랑 정신과 희생정신을 기리는 등 추모의 의미를 더했다.왕산 허위선생(1855년 4월2일~1908년10월21일)은 임은동 출신으로 평리원 재판장(대법원장), 비서원 승(대통령 비서실장), 의정부 참찬 등을 지냈다.일본에 의해 국권을 빼앗기자 의병을 모집해 13도 창의군을 창설하고 의병 총대장을 맡은 후 1907년 선발대 300명으로 일본의 심장부인 조선통감부를 공격하는 ‘서울진공작전’을 감행했다.서울진공작전이 실패한 후 1908년 일본헌병에 체포된 그는 그해 음력 9월27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일제에 의해 처형됐다.대한민국 정부는 재산과 높은 관직을 버리고 독립운동에 투신한 공로를 인정해 선생에게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민간인으로 대한민국장 수훈자는 왕산 허위 선생과 안중근 의사 등 28명뿐이다.왕산 선생 집안은 우당 이회영 선생 가문, 석주 이상룡 선생 가문 등과 함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집안으로 손꼽힌다.허훈, 허겸 등 선생의 형제가 모두 의병장을 지냈고 허학·허영·허준·허국 등 아들과 4촌 형제 등 14명도 의병투쟁에 적극 나서 독립운동기지 건설 참여, 군자금 모금, 독립운동세력 후원활동을 벌였다.장세용 구미시장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왕산 허위선생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기리고 나아가 나라를 위해 3대가 헌신한 왕산가의 모든 분들께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드린다”며 “향후 왕산기념관 일대를 확장해 지역 출신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선양사업을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신승남 기자 intel887@idaegu.com

구미, 임진왜란 의병 일으킨 인재 최현의 학술세계 밝히다

인재 최현 선생의 학술세계를 밝히는 학술대회가 구미에서 열렸다.인재 최현 선생 기념사업회는 지난 5일 구미시 해평농협에서 향토사학자와 시민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인재 최현 선생 탄신 456주년 기념 학술대회’를 개최했다.이날 학술대회는 최세훈 인재 최현 선생 기념사업회 회장의 개회사와 장세용 구미시장, 라태훈 구미문화원장 축사에 이어 기념촬영, 기조발표, 질의·토론 순으로 진행됐다.김기탁 전 국립상주대 총장과 김영숙 영남퇴계학 연구원 원장, 한충희 계명대 국사학과 명예교수, 윤재환 단국대 국문학과 교수 등이 기조발표와 질의·토론에 나서 최현 선생의 생애와 업적을 재조명했다.시장 취임 전부터 최현 선생의 업적에 관심을 보인 장세용 구미시장은 “뛰어난 업적에 비해 지금까지 널리 알려지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최현 선생에 대한 연구가 더욱 폭넓게 이뤄져 지역 사회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높이는 전환점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한편 인재 최현(1563~1640년)은 구미 해평 출신의 조선 중기 문신으로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큰 공을 세우고 형조참의와 강원도 관찰사, 예조판서 등을 지냈다.선산부사로 재임할 당시 구미(선산)의 역사를 기록한 ‘일선지’를 남겼으며 유교의 경전과 천문, 지리, 병학 등에 뛰어나 ‘인재집’, ‘조천일록’ 등 많은 작품과 저서를 남겼다.신승남 기자 intel887@idaegu.com

최계란 선생 대구아리랑축제 개최

제6회 최계란 선생 대구아리랑축제가 10월1일 동구 봉무공원 특설무대에서 개최된다.이번 행사는 1936년 일제강점기 대구아리랑을 발표해 지역정기와 정체성을 드높인 봉무동 출신 최계란 선생을 기리는 무대다. 불로봉무동 주민자치위원회 주최한다.올해는 3·1운동과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그 의미가 더욱 크다.식전 행사 및 개막식, 대구아리랑 배우기, 노래자랑 경연대회 등 대구아리랑을 테마로 다양한 볼거리와 국화 무료나눔 행사가 진행될 예정이다.김종윤 기자 kjyun@idaegu.com

성주군 심산 김창숙 선생 숭모제

성주청년유도회는 지난 21일 성주군청 대강당에서 기관단체장 및 유림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10회 심산 김창숙 선생 숭모제를 개최했다.백범 김구, 단재 신채호와 함께 대표적인 항일 독립운동가로 지조와 절개를 지켰던 조선의 마지막 선비 ‘심산 김창숙’ 선생의 숭모제는 선생의 업적과 정신을 오래도록 기리고자 전국 각지 유림 및 출향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치러졌다.이날 숭모제는 1부 숭모학술대회와 2부 숭모작헌례로 나눠 진행됐으며 숭모학술대회에서는 (전)독립기념관 김상웅 관장의 ‘심산 김창숙과 민족해방운동’, 성균관대 서중석 명예교수의 ‘심산 김창숙의 민주화 운동’ 을 주제로 한 강연을 통해 심산 김창숙 선생의 사적을 재조명하고 그의 애국애족 정신과 뜻을 현대에 어떻게 이어받을지 다시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숭모작헌례는 초헌관에 현승일 제6대 국민대 총장, 아헌관에 이성사 연해주아브로농장 회장, 종헌관에 이창환 제13대 대구청년유도회장이 맡았으며, 집례는 안기수 성주청년유도회 부회장, 집사는 성주청년유도회와 칠곡청년유도회 유림들이 봉무해 거행됐다.백철현 성주청년유도회장은 “숭모제 행사를 통해 심산선생의 숭고한 업적을 기리고 정신문화를 계승 및 발전시켜 애족정신을 고취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이병환 성주군수는 “성주가 낳은 위대한 스승인 심산 김창숙 선생의 숭모제를 통해 심산선생의 올곧은 사상과 뜻이 길이 전수되고 앞으로도 다양한 숭모사업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전했다.한편 성주군은 심산 김창숙 선생 선양사업의 일환으로 대가면 심산생가 일원에 심산문화테마파크 조성사업 총사업비 237억 원을 확보해 2022년 준공을 목표로 추진중에 있다. 김재호 기자 kjh35711@idaegu.com

장세용 구미시장 왕산 허위선생 장손 예우와 공단 50주년 홍보영상물 관련해 사과

장세용 구미시장이 시민과 왕산 허위선생 후손에 사과했다.장 시장은 22일 입장문을 통해 “왕산 허위선생 후손에 대한 예우와 구미공단 50주년 기념사업 홍보영상물의 박정희 대통령 누락 건에 대해 시장으로서 책임을 통감하며 심려를 드린 점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장 시장은 “지난 20일 독립유공자 왕산 허위선생의 장손자 허경성옹 내외와의 면담과정에서 예우를 다하지 못해 송구하게 생각한다”며 “구미시는 왕산허위 선생을 비롯한 지역독립운동사의 체계적인 재정립과 다양한 선양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해명했다.또 “이 같은 노력에도 허위 선생 장손자 내외분이 이를 왜곡하는 일각의 주장만을 듣고 시위에 나섰기에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이 앞서 예우를 다하지 못했다”며 “일부 언론에서 욕설했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장 시장은 “조금 더 사려 깊은 설명과 유족에 대한 세심한 배려를 해야 했으나 그렇지 못한 점 다시 한 번 진심 어린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강조했다.또 지난 18일 구미코에서 열린 구미공단 50주년 홍보 영상과 관련해 고의가 아닌 실수였다고 해명했다.장 시장은 “오늘날의 구미공단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결단과 삼성, LG, 코오롱 등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 이주민의 헌신과 노력의 결과라고 평소 강조해 왔다”며 “하지만 기념식 홍보 영상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의 사진을 빠트리는 실수를 범했다”고 설명했다.그는 “많은 시민으로부터 이의 제기가 있었고 일부에서는 정치적 의도가 있었다는 주장을 하지만 사실이 아니며 문제가 된 홍보영상물은 박 전 대통령의 영상을 추가 제작해 상영토록 하겠다”고 덧붙였다.한편 구미시는 지난 18일 구미코에서 열린 구미공단 50주년 기념식 홍보영상물에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을 등장시키면서 공단 건설의 주역인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빠트려 역사 지우기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또 장세용 구미시장은 지난 20일 구미 국가산업단지 배후단지 내 왕산공원을 구미시가 지역주민들의 말만 듣고 명칭을 변경하려 한다며 항의시위에 나선 독립운동가 왕산 허위선생 장손 내외와의 면담에서 고성을 질러 물의를 일으켰다.신승남 기자 intel887@idaegu.com

독립운동가 백산 우재룡 선생을 아시나요

대한광복회 우재룡이성우 지음/선인/415쪽/3만8천 원 독립운동가 백산 우재룡의 평전이 나왔다. 대구경북과 평생 깊은 인연을 맺은 그는 독립운동을 하다 두번의 무기징역 선고와 20년 가까운 감옥 생활을 하며 녹록지 않은 삶을 살았다. 이 책은 우재룡과 그의 동지, 가족들의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사실 우재룡은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독립운동가다. 한국근대사, 한국독립운동사를 전공한 이들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의 독립운동이 잘 알려지지 않은 탓이다. 그는 한말 의병전쟁, 1910·20년대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산남의진, 광복회, 주비단 활동이 그것이다.우재룡은 구한말 군인으로 입대해 18세 때 대구진위대에 편입됐다. 1907년 한국군 군대 해산 조치가 내려지자 곧장 영천 보현산을 본거지로 하는 산남의진에 참여해 의병으로 활약했으며, 이후 동지들과 함께 ‘광복회’를 조직한다. ‘광복회’는 1915년 대구 달성공원에서 결성된 무장독립 운동단체다.국내와 만주를 오가며 군자금을 모금했으며, 경주에서 일제의 세금 운송 마차를 공격하고 친일파를 처단하기도 한다. 그런 과정에서 일제에 여러 차례 체포돼 사형을 구형받기도 한다. 두번째 투옥에서 그는 무려 17년간 옥고를 치른다. 30대에 체포돼 50대에 풀려난 것이다. 우 지사는 출옥 후 광복회 재건사업과 독립운동으로 희생된 이들에 대한 선양사업 등을 하다 71세를 일기로 운명한다.책은 우재룡의 삶을 시간과 사건별로 나눠 기술하고 있다. 그는 국권을 침탈하고 있는 일제를 몰아내고, 대한제국을 ‘완전한 독립국’으로 만들고자 의병전쟁에 참여하게 되고, 이후 인생을 독립운동에 바친다. 책의 말미엔 우 지사가 옥고를 치를 동안, 또 서거 이후 그 가족들이 얼마나 가난하고 힘든 삶을 살았는지도 보여준다.또 1900년대 구한말 의병의 구국 항쟁에서부터 1955년 전쟁 직후까지의 정치상황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저자는 “우재룡은 겉으로 드러내기 보다는 묵묵히 자기에게 맡겨진 소임을 실천하는 독립운동가였다”며 “3·1운동 후 조직되는 주비단이나 광복 후 조직되는 재건광복회처럼, 자신이 실질적인 지도자 위치에 있던 경우에도 이러한 원칙에는 변함이 없었다”고 평가하고 있다.김혜성 기자 hyesung@idaegu.com

상해임시정부 초대 국무령 지낸 석주 이상룡선생 독립운동 일대기 무대에 오른다

상해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인 석주 이상룡 선생의 독립운동 일대기를 그린 창작오페라가 오는 10일과 15일 서울여의도 KBS홀에서 막을 올린다.로얄오페라단이 주최·주관하고 경북도가 후원하는 이번 공연은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석주 이상룡 선생의 조국독립에 대한 숭고한 삶과 정신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대본은 권오단, 각색 이상민, 작곡 이호준, 총감독 이영기가 맡았다. 이상룡 역은 테너 이광순, 김충희, 김유락(이상룡 부인) 역은 소프라노 조옥희, 김옥 등이 맡아 열연을 펼칠 예정이다.로얄오페라단은 그동안 경북의 인물을 모티브로 한 창작오페라‘심산 김창숙(2010년)’을 시작으로 서애 류성룡‘아!징비록(2012년)’, 여성독립 운동가‘김락(2015년)’등의 작품으로 대한민국 오페라대상(창작부문 우수상)을 수상했다. 또 ‘웅도 경북의 인물 무대에 서다’의 일환으로 작품을 기획․제작해 선보였다.석주 이상룡 선생은 1858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1896년 일제의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 공표에 항거하기 위해 의병에 참여하고 혁신유림적 인사들의 협동학교설립에 합류하면서 1897년경 50세 되는 나이에 계몽주의자로 혁신된 유림의 행보를 걸었다.1911년 해외 독립군운동의 구심체가 되는 독립군기지 개척을 시작으로 군사교육기관 신흥무관학교 설립하는 등 당시 만주지역 독립운동세력의 중추였던 선생은 상해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에 선출됐다.50여 년간 선생의 일관된 구국노력으로 의병, 계몽운동, 독립군 등 독립운동 활동에 힘을 쏟으며 1932년 5월12일 ‘외세 때문에 주저하지 말고 더욱 힘써 목적을 이뤄라’는 유언을 남기고 서거했다.공연은 전석 무료로 진행되며, 오후 3시, 7시 2회에 걸쳐 공연된다.한재성 경북도 문화예술과장은 “이번 공연을 통해 자랑스러운 항일․독립 운동가들을 재조명하고 호국 경북의 위상을 제고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며 “감동적인 스토리로 지역의 대표문화공연으로 거듭 나기를 기대한다”고 많은 관람을 당부했다.김형규 기자 kimmark@idaegu.com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 석주 이상룡선생 순국지 찾은 경북교육청

‘보배롭게 여겨 잘 간직한 산하 삼천리…(중략)…나라가 태평한 타일 다른날 복귀하여 전하리’ 경북도교육청 독립운동길 순례단이 25일 오전 힘주어 또박 또박 읽어 내려간 ‘거국음’(去國吟)이 중국 지란성 쑤란시 이도하향 소과촌에 울려퍼졌다. 굵은 비가 내리는 속에서도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선생이 안동 임청각을 떠나 나라의 주권을 되찾기 위해 독립운동에 헌신하다가 임종을 맞은 장소에 모인 학생들의 얼굴에는 비장함과 진지함이 묻어났다. 일제 강점기 자정순국의 길보다는 독립 희망의 길을 선택한 석주 이상룡 선생은 독립군을 양성, 독립하겠다는 의지로 유허현 삼원포에서 이곳까지 21년 간의 긴여정을 이어가다가 1932년 5월12일 이곳에서 독립운동가로서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았다. 임종식 교육감을 단장으로 한 순례단은 묵념을 하고 ‘백번을 넘어져도 좌절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조국을 떠나 중국을 떠돌면서도 독립의지를 불태우신 석주 이상룡선생의 마음을 되새겼다. 경북도교육청 독립운동길 순례단은 지난 21일 안동을 출발해 대련, 단둥, 통화, 장춘 등 중국 내 경북애국지사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24일 하얼빈에 도착했다. 중국 하얼빈시의 한 조선족중학교를 찾아 장학금을 전달하고 학생들 간 교류행사를 가졌다. 앞서 임종식 교육감은 24일 독립운동길 순례단에 동행한 학생기자단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며 소통했다. 이 자리에서 임 교육감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이번 순례길을 통해 학생들이 역사관은 물론 우리의 정체성을 지켜나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순례단은 26일 경북인의 마지막 정착지인 취원창 등을 방문한 후 27일 귀국할 예정이다 김형규 기자 kimmark@idaegu.com

토선생 거선생

토선생 거선생박정섭 지음/사계절/52쪽/1만3천 원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자신의 실력만 믿고 늦장 부리던 토끼는 결국 경주에서 패배하고 느리지만 꾸준한 거북이가 승리했다는 이야기다.저자는 누구나 아는 이 이야기에 뒷이야기를 더해 이책을 완성했다. 통한의 패배에 눈물 짓던 토선생(토끼)은 거선생(거북이)에게 다시 경주를 제안한다. 뜻밖에 거북이의 무거운 등딱지를 자신이 메겠다는 전제조건도 붙인다. 경주 중반, 아니나 다를까 제 버릇 개 못 준 토선생은 또 잠깐 쉬었다 가는 여유를 부리고 등딱지가 없는 거선생은 추위에 어찌할 바를 모른다. 등딱지를 돌려 달라는 거선생의 간청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앞서 가던 토선생은 그만 구덩이에 빠지고 만다. 천둥이 치고 비가 억수같이 퍼부어 구덩이에 점점 물이 차오르는 가운데, 거선생이 다시 나타난다.이 책은 동양화 같은 먹그림이 시원스레 펼쳐지며 마당극처럼 이야기가 흘러간다. 우리네 풍속화와 산수화를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김홍도의 퐁속화 주막, 우물가, 씨름, 빨래터 등을 찾아볼 수 있다. 또 겸재 정선의 시화상간도, 인왕제색도도 만나볼 수 있다. 김혜성 기자 hyesung@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