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보수정당에 드리는 고언(苦言)

보수정당에 드리는 고언(苦言)홍덕률대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보수정당의 언행을 둘러싸고 말이 많다. 환호하는 고정 지지층도 있지만 우려하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몇마디 고언(苦言)을 내놓고자 한다. 보수가 제대로 서야 정치도 나라도 선진화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첫째는 지나친 막말들이다. 같은 뜻이라도 품위있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 경영을 꿈꾸는 정당과 정치 지도자라면 더욱 그렇다. 나라의 운명과 국격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보수정당 지도자들이 쏟아내는 말들을 보면 착잡하기 그지없다. 더 자극적인 막말과 더 저급한 비속어를 찾아내기 위해 경쟁하는 것처럼 보인다. 과연 정치 지도자의 말인지 귀를 의심하게 된다. 한때 홍준표대표가 던진 거친 말들이 아직도 생생한데, 최근에는 김무성 전 대표의 청와대 다이너마이트 폭파 발언, 한선교 사무총장의 막말들, 나경원 원내대표의 달창 발언, 김현아 원내부대표의 한센병 발언 등이 줄을 이었다. 한국의 보수와 정치에 절망하게 만든 막말 행진이었다. 이젠 멈춰야 한다. 다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다. 한국의 보수와 보수정당을 위해서다. 둘째는 말에 담긴 생각이나 이념과 관련해서다. 특별히 걱정되는 것은 보수정당이 세상을 보는 눈이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과거에 매여 있다는 것이다. 낡은 색깔론과 종북몰이가 대표적인 예다. 독재타도론도 매우 어색하고 뜬금없다. 당연히 감동도 없다. 더이상 낡은 이념에 발목잡혀 있어서는 안된다. 치열하게 미래를 연구해야 한다. 미래세대를 위해 지금 정당과 국회는 무슨 일을 준비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그러려면 당의 틀을 확 바꿔야 한다. 역동적이고 진취적인 보수정당으로 거듭나지 못하면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셋째는 이념과잉과 사실왜곡의 문제다. 여기서도 최근 보수정당을 보면 걱정이다. 사실 왜곡과 가짜 뉴스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것 같아서다. 5·18민주화운동, 세월호 참사, 해방 직후 반민특위 등에 대한 왜곡과 폄훼가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권력상실에 대한 분노를 소화하지 못해서일 수도 있고, 빨리 권력을 빼앗아 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조급증 때문일 수도 있다. 단기적으로는 지지층 결집의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중장기적으로는 독약이다. 사실왜곡과 가짜뉴스는 오래 갈 수 없다. 사실에 기초해서 사회를 분석·진단하고, 그 위에서 이념과 전략을 짜며, 그것으로 국민의 심판을 받는 것이 맞다. 실사구시와 정직이야말로 힘의 원천임을 믿어야 한다.넷째,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세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절차와 수단도 목표 못지않게 중요하다. 최근 국회에서의 감금, 회의 방해 등은 잘못된 것이었다. 정치선진화와 민생국회를 기대해 온 국민들에게 실망을 안겨줄 뿐이었다. 국회를 장기간 공전시키는 것도 민생 민주정당의 길이 아니다. 그런 방식으로는 국민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 민주주의와 민생에 대한 진정성과 국가경영의 실력으로 국민의 신뢰와 감동을 끌어내야 한다. 다섯째, 정치에 대한 관점과 관련해서다. 정치에는 크게 두 측면이 있다. 하나는 사회갈등을 조정하고 통합해 내는 역할이다. 특히 입법으로 사회문제들의 제도적 해법을 제시하는 것은 정당과 국회의 고유 권한이자 책임이다. 정치의 다른 측면은 국가권력을 둘러싼 경쟁이다. 정권획득은 정당의 궁극적인 목표이기도 하다. 어느 정당이든 정치가 갖는 두 측면과 역할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하지만 최근 보수정당의 경우는 지나치게 후자에 치중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회통합과 입법과 민생에 대한 고민은 제쳐놓고 권력탈환에만 올인하는 것 같다. 그것도 실력으로가 아닌 증오심의 결집을 통해서다. 그러는 사이 나라는 극단의 싸움터가 되고 말았다. 중장기적으로 보면 집권에도 도움이 안되는 하책이다. 국민은 요즘 착잡하다. 합리적인 보수의 재건을 기대해온 국민은 더욱 심란하다. 막말하는 보수, 시대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보수, 사실왜곡 위에 서있는 보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보수, 권력탈환에만 올인하는 보수를 보며 절망하기까지 한다. 국민은 청소년들도 본받을 수 있는 교육적이고 품격있는 보수를 원한다. 대화와 입법으로 국민통합과 민생과 민주주의에 기여하는 열린 보수를 보고 싶어 한다. 나라를 위해서기도 하지만 그 전에 보수를 위해 드리는 고언이다. 대구를 위해서이기도 하다.

세상읽기…잘 살아라

잘 살아라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눈부신 오월의 하루가 열렸다. 따가운 태양으로 후끈 달아오르던 대지가 축복처럼 내리는 비에 젖는 항구 부산에서 향긋한 땅의 내음을 코끝으로 들이켠다. 역 마당에 피어난 이름 모를 하얀 꽃들이 다소곳한 자태로 비에 젖는다. 빨간 장미가 우거진 모퉁이를 돌아 기차역으로 들어선다. 정시에 떠나는 기차를 놓치지 않아야 늦지 않게 식장에 도착할 터인데 싶어 조바심이 난다.눈부시게 아름다운 오월, 친한 후배의 딸이 결혼하는 날이다. 세월은 얼마나 빠르게 날아가는지, 내가 오월의 신부가 된 지도 벌써 30여 년 전이니 말이다. 우연한 인연으로 친동기처럼 아끼는 사이가 된 후배, 그녀가 불룩한 배로 인턴이라며 내게 왔다. 아픈 아이를 돌보는 의사의 입장만 생각하던 철없던 선배는 그녀에게 어린이날 기념으로 장식할 풍선을 불게 했다. 만삭의 배로 심호흡을 많이 하고 몸을 많이 움직여야 순산한다는 얼토당토않은 이론까지 들이대 가면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내린 지시에 그녀는 충실하게 따랐다. 잘 부풀어지지 않는 풍선을 빵빵하게 불어대느라 급기야 어지럼증까지 느껴 누워서 호흡을 가다듬어야 했다니 말이다. 그때 낳은 딸을 출가시키는 날이라니 어찌 안 가볼 수 있으랴. 이런저런 바쁜 일들을 모두 다 싹 밀쳐두고 고속열차에 몸을 실었다. 담장 넘어 넘실대는 꽃들이 내게 충고하는 것 같다. 무슨 일이든 미루지 말 것. 그때그때 고마운 것은 갚아가며 인생의 즐거움을 맛볼 것, 무엇보다 자주 웃을 것, 가까이 있는 소중한 이들에게 잘할 것….천사 같은 얼굴의 두 사람이 혼인하려고 환한 얼굴로 서 있다. 온 마음과 정성을 다 하여 사랑하는 부부가 되어 효를 다하는 자녀가 되고 만인에게 존경받는 부모가 되어 행복한 가정 이루길 기원한다. 아버지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오월의 신부에게 온 세상의 축복을 다 빌어주고 싶다. 신부의 반짝이는 드레스를 보면서 음과 양의 조화를 표현한 유명 다기에서 보고 감동했던 그 순결하고 고결해 보이던 드레스를 떠올려본다. 이따금 찾아올지도 모를 슬픔과 미움의 감정들은 아예 막아주고 싶을 만큼. 나는 행복에 겨워하는 커플을 바라보면서 네 글자를 떠올린다. ‘미용고사’를. “미안합니다.” “용서하세요.”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언제나 이런 단어들을 스스럼없이 사용하면서 맑고 밝게 살아가기를 빌어주고 싶다. 우리의 모든 고통은 과거의 기억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하지 않던가. 지우개로 지우듯 나쁜 감정이나 기억을 깨끗이 없앨 수만 있다면 우리 마음의 고통은 눈 녹듯이 사라지지 않을까. 향기로운 오월, 결혼식장에서 식이 끝날 때까지 꼿꼿이 서서 지켜보며 나는 그들에게 ‘미용고사’를 마음으로 건넨다. 그리고 나를 소중이라고 부르는 이의 진심을 담은 결혼 30주년 기념 편지를 나지막이 읊조려본다. 오늘 새로운 발걸음을 시작하는 부부가 언제나 변함없이 하루하루 즐겁고 행복하게 살면서 해마다 오월이면 꺼내어 읽어보기를 희망하면서.‘1주년 지혼식: 아직 초보자여 종이에 먹물도 마르지 않는 상태를 말하니 그저 좋기만 할거구먼./5주년 목혼식: 상대방을 보아도 나무토막 보는 것처럼 무감각하니, 어허! 나무가 잘 자라려면 물을 주어야지./10주년 석혼식: 결혼식 때 장만한 놋쇠 그릇에 녹이 났으니 합심하여 잘 닦아서 후일을 대비하게./20주년 도혼식: 투박한 질그릇이 오히려 더 친근하니 담긴 음식 맛도 좋아라. 깨져도 붙여 쓸 수 있지만, 금은 없어지지 아니하니 미연에 주의하게./25주년 은혼식: 하얗게 빛나는 은 쟁반에 서로의 얼굴을 비추니, 비친 얼굴에 풍상 세월 흔적은 남아도 거울 같은 은쟁반에 마음마저 비칠레라./30주년 진주혼식: 상처와 오점을 싸안고 진주 보석으로 승화시키니, 녹아든 이물질은 흔적조차 없고 아름다움만 그윽하네./50주년 금혼식: 반백 세월을 같이 하였으니 서로가 금과같이 귀한 사람이라, 금관은 못 씌워 줘도 멋진 금가락지 한 개씩은 장만해서 끼워 봄이 어떨지./60, 70주년 금강혼식: 날로 자라는 다이아몬드와 같아서 주위의 부러움을 한껏 받고도 고귀함에 고개 숙여지니, 존경과 찬사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어라.‘ 기쁘고 행복하던 때, 또는 상대가 내 마음 같지 않아 화나고 슬프던 순간 등, 다양한 감정이 섞이더라도 이를 통해 조금씩 성장해 가는 것이 사랑이 아니겠는가. 풋풋하고 설렘 가득한 기억만을 건져 담아 언제나 상대를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고 공감하고 서로 축복해주기를, 그런 바람으로 첫날밤에 하면 좋은 약속이라 여기는 ‘결혼기념일’ 글을 아름다운 부부에게 보내며 소망한다. “잘 살아라.~!

기안84, 이쯤되면 세상 모든 약자에 대한 혐오 담긴 웹툰

웹툰작가 '기안84(본명 김희민)'가 끝없는 논란으로 '사과도 지겨운 수준'이라며 비난받고 있다.최근 자신이 연재중인 웹툰 복학왕 248화(세미나 1)편에서 장애인을 비하했다는 지적으로 전국 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으로부터 공개 사과 요구를 받은지 며칠 되지 않아 또 다른 특정 직군 비하·인종차별 논란이 생긴 것이다.문제의 장면은 복학왕 249화(세미나 2)에 나온 것으로 회사 세미나 장소로 제공된 더러운 숙소를 보고 표정을 찌푸리는 한국인들과 달리 외국인 노동자들은 너무 좋다며 좋아하는 장면이다.해당 장면은 동남아 사람들에 대한 노골적인 인종차별은 물론이고 숙소를 보고 캅캅 거리며 좋아하는 모습, 서커스 단원 마냥 곡예를 부리는 모습 등으로 보는 이들을 매우 불편하게 만들었다.예전부터 기안84는 여러 논란으로 문제를 일으킬 때마다 사과했으나 개선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아 비판을 받고 있다.네티즌들은 "너 따위가 뭔데 대한민국 생산직 싸그리 잡아서 개무시를 하냐", "기안씨는 연예인이 아니라 만화작가입니다" 등 일침을 가하고 있다.online@idaegu.com

세상읽기…오월과 삶의 맛

오월과 삶의 맛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오월은 각종 행사와 기념일이 많다. 그 기념일마다 사람들의 생각과 견해는 서로 다르다. ‘근로자의 날’에는 일을 할 수 있어 감사하다는 내용보다는 열악한 근로 조건, 저임금, 실업률 등에 관한 이야기가 더 많다. 어린이날에는 “어린이에 대한 독재만큼 세계 전반에 걸친 큰 사회적 문젯거리는 없을 것이다. 어떤 노예나 노동자도 어린이만큼 무한한 순종을 요구당해 본 적이 없다. 이제 어린이들 편에서 생각할 때가 되었다.”라는 몬테소리의 지적이 뼈아프게 다가온다. ‘어버이 날’에는 고령화 사회와 노인 문제, 해묵은 ‘효’ 논쟁이 잠시 열기를 내뿜기도 한다. ‘부처님 오신 날’에는 과연 부처님의 자비가 온 누리에 가득한 지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스승의 날’에는 교권 침해가 일상사가 된 현실을 바라보며 차라리 이 날을 없애고 모든 교육주체가 참가하는 ‘교육의 날’을 제정하자고 주장한다. 기념일이 가지는 원래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더 나은 미래를 생각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나 자신과 가족, 내가 관계하는 다양한 집단 구성원들이 어떻게 하면 함께 행복할 수 있을까를 두고 보다 깊이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중용’에 나오는 ‘인막불음식 선능지미’는 ‘음식을 먹지 않는 사람은 없지만 음식의 진정한 맛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는 뜻이다. 음식만 맛이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접하는 모든 것에는 다양한 ‘맛’이 있다. 하루하루 전개되는 일상의 삶 속에서 우리는 인생살이의 참맛을 느끼도록 노력해야 한다. ‘중용’이 가르쳐 주는 ‘인생팔미’는 오늘의 관점에서 보아도 우리가 새겨듣고 실천해야 할 소중한 지혜로 다가온다. 그저 배를 채우기 위해 먹는 음식이 아닌, 맛을 느끼기 위해 먹는 ‘음식의 맛’,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닌,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일하는 ‘직업의 맛’, 남들이 노니까 노는 것이 아닌, 진정으로 즐길 줄 아는 ‘풍류의 맛’, 어쩔 수 없어서 누구를 만나는 것이 아닌, 만남의 기쁨을 얻기 위해 만나는 ‘관계의 맛’, 자기만을 위해 사는 인생이 아닌, 봉사함으로써 행복을 느끼는 ‘봉사의 맛’, 하루하루 때우며 사는 인생이 아닌, 늘 무언가를 배우며 자신이 성장해감을 느끼는 ‘배움의 맛’, 육체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정신과 육체의 균형을 느끼는 ‘건강의 맛’, 자신의 존재를 깨우치고 완성해나가는 기쁨을 만끽하는 ‘인간의 맛’ 등이 그것이다. 박재희 교수의 해설이다. 우리는 모든 일에서 즉각적인 반응과 결과를 기대한다. 무엇을 되씹고 곱씹으며 그것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맛을 제대로 음미하려는 노력을 별로 하지 않는다. 우리들 대부분은 얼핏 보고는 입에 넣은 다음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버리는 데 매우 익숙하다. 이 세상 많은 것들은 시간을 두고 꼭꼭 씹어야 속 맛을 알 수 있는 진액이 나온다. 이제 우리는 좀 여유를 가지고 주어진 상황을 즐길 줄도 알아야 한다. j. 호이징가는 인간을 ‘호모 루덴스(Homo Ludens, 놀이하는 인간)'로 정의 내렸다. 그는 놀이는 문화의 한 요소가 아니라 문화 그 자체가 놀이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모든 형태의 문화는 그 기원에서 놀이 요소가 발견되며, 인간의 공동생활 자체가 놀이 형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냥은 물론 전쟁조차도 놀이의 성격이 있다. 그는 문명은 놀이 속에서 놀이로서 생겨나 놀이를 떠나는 법이 전혀 없다고 말하며, 인간은 놀이를 통하여 그들의 인생관과 세계관을 표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현대에 가까워질수록 문화가 놀이의 성격을 벗고 있다고 개탄했다. 우리가 먹고 자고 일하고 공부하며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이유는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이다. 청소년의 달이자 가정의 달인 오월에 우리 모두는 삶의 진정한 의미와 참맛을 성찰하고 음미하는 여유를 가져볼 필요가 있다. 담장 밖과 먼 산만 바라보지 말고, 내 곁으로 눈길을 돌리면서 자신의 내부도 한 번씩 들여다보자. 그런 다음 내 가족과 가까이 있는 이웃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보자. 아카시아 향기를 머금은 오월이 무르익고 있다.

세상읽기…만사를 망치는 것은 인사다

만사를 망치는 것은 인사다오철환객원논설위원 흔히 ‘인사가 만사’라 한다. 사람을 잘 쓰면 모든 일이 잘 풀린다는 말이다. 이 말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즐겨 썼다. ‘머리는 빌릴 수 있으나 건강은 빌릴 수 없다’는 말과 짝을 이루어 인구에 회자되었다. 머리가 부족하면 인재를 잘 찾아 쓰는 것으로 해결이 되나 건강은 본인이 잘 챙기지 않으면 남에게 의지할 수 없다는 의미다. 기본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다양한 지식이 뒷받침되어야 급변하는 환경에서 현명한 지혜를 발휘할 수 있고, 그런 바탕에서 비로소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여서는 안 된다. 후자는 기본은 갖추고 있어야 성립한다. 어쨌거나 인사를 잘 하면 만사가 잘 된다는 말은 어느 정도 맞다. 거꾸로, 만사가 엉망이면 인사가 잘못됐을 가능성이 크다. 나랏일이 엉키고 시끄러운 원인은 정부의 인사가 잘못된 탓이다. 대통령이 전문적이고 복잡한 디테일을 잘 알 수 없고 미주알고주알 잘 알아야 할 필연성도 없지만 정부 각 부처의 장관과 참모진을 제대로 꾸려갈 수 있는 능력은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어야 한다. 각 부처에 적합한 장관과 유능한 참모진을 발탁하는 일을 1단계라 한다면, 정책을 평가하여 채택할 것인지 아니면 기각할 것인지 판단하는 일은 2단계다. 인재 발탁이 잘못 되면 다음 단계의 일이 제대로 될 리 없다. 관련 분야의 전문가 풀에서 최적임자를 골라내는 선구안은 리더의 필요조건이다. 선거 캠프에서 코드가 맞는 사람들만을 골라 쓰는 행태는 자신의 쪼잔한 스케일을 고백하는 징표다. 전문가 풀 중에서 코드에 맞는 사람을 골라 쓰는 사람은 그나마 조금 낫다. 무능한 사람들에게서 좋은 정책이 나올 수 없다. 좋은 정책이 제안된다고 해도 가부를 판단하기가 쉽지 않은데 애초 엉뚱한 정책이 입안되어 올라오고 참모진마저 제대로 보좌할 능력이 없는 상황은 거의 절망적이다. 인사가 기본이다. 대통령이 선거 공신들에게 애정과 부채 의식을 안 가질 수 없다. 취임 후 자리를 마련해 줌으로써 그 은혜에 보답하려고 하는 마음은 인지상정이다. 대통령이 되는 과정에서 정치적으로 빚을 졌던 단체나 사람들에게 개인적으로 빚을 갚는 행위를 나무랄 수 없다. 그렇다고 공직을 전리품으로 여기고 그러한 사람들에게 공직을 나누어주는 것은 자신의 정치적 부채를 국민의 세금으로 갚으려는 분별없는 처사다. 그러한 논공행상은 공과 사를 엄격히 구별한 현명한 태도라고 보기 힘들다. 일종의 매관매직이다. 빚을 갚는 손쉬운 방법은 충분한 보수를 지급하는 것이다. 정치를 영위하는 과정에서 사람을 쓰게 되면 자원봉사자를 쓰던지 아니면 본인의 부담으로 그때그때 보수를 청산해주어야 뒤끝이 없다. 정치자금을 인정하는 이유다. 당선 후 막강한 권력을 악용하여 자리를 주거나 그 권한을 넘은 보은 인사를 감행하는 행태는 지양돼야 마땅하다. 국민을 배신하고 나라를 망치는 빚잔치가 될 수 있다. 인사권을 주는 이유는 국민을 대신하여 현명한 판단으로 국익을 위한 적재적소 인사를 하도록 그 권한을 주는 뜻이고, 그 조직을 원활하게 지휘하기 위한 수단을 주는 뜻이다. 인사권을 준다는 것은 마음대로 전횡해도 좋다는 의미가 아니라 법규와 절차에 따라 인사권을 정당하게 행사하라는 의미다. 인사권엔 보통 재량이 있지만 그 재량도 비례원칙에 벗어나지 않아야 하는 한계를 갖는다. 공직을 당선인이 빚진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자리로 인식하게 되면 사람들은 전리품을 노려 유력한 쪽에 미리 줄을 서게 한다. 진영을 짠다. 지금 우리 시회가 그렇다. 대통령부터 시장·군수·구청장에 이르기까지 산하 공직을 전리품으로 여기고 자기사람들을 붙들어두는 방편으로 자리를 나눠먹고 있다. 민간단체 미관말직까지 내정인사로 채우는 현 상황은 나라다운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공직에 몸담은 사람, 공직에 뜻을 둔 사람, 모두 줄을 서도록 등 떠미는 분위기다. 대통령은 이러한 현상에 대한 최종책임자다. 솔선수범해야 할 사람이 편을 가르고 코드 인사를 하며 불법이나 편법으로 자기 사람을 박아 넣으니 모든 선출직 단체장들이 너도나도 이를 본받아 그대로 따라 하고 있다. 능력 위주로 해도 감당하기 힘든 글로벌 무한경쟁시대에 무능한 측근을 주요 공공기관에 꼽는 행태는 반드시 손봐야 할 적폐다. 만사가 엉망이다. 국민의 삶은 팍팍하고 국가의 명운은 암울하다. 인사쇄신이 당장 화급하다.

세상읽기…문재인정부 2년을 평가한다

문재인정부 2년을 평가한다홍덕률대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문재인정부가 출범하고 만 2년이 지났다. 평가가 여기저기 넘쳐난다. 자연스런 현상이다. 그런데 들어보면 대부분 당파적 평가들이다. 충성 평가거나 증오 평가로 극명하게 나뉜다. 진영간 극한싸움의 연장일 뿐이다. 정파적 이해관계를 떠나 몇 마디 고언(苦言)을 전하려 한다. 국민과 대한민국의 내일을 걱정하는 마음에서다. 잘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한 응원은 생략한다.첫째, 경제분야 과제들에 더 집중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성과가 적고 국민의 체감 평가도 박하다. 청년일자리와 자영업자의 고충이 특히 심각하다. 성장의 열매를 전 계층이 고루 향유할 수 있도록 하고 경제 패러다임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의 취지에 공감하더라도, 미시적 정책수단과 속도와 방법까지 옳다 할 수 없다. 특히 경제 영역에서 관념적 사고나 탁상 처방은 금물이다. 현장 사정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의도하지 않은 결과까지 예측해 정책의 설계와 집행에 담아내는 실력까지 갖춰야 하는 것이다.둘째, 특별히 미흡한 분야 하나를 더 들면 교육이다. 4차 산업혁명에 대처하기 위한 미래지향의 교육개혁 의지는 실종된 듯하다. 대학정책은 더 심하다. 지난 2년 동안 대학구조개혁 정책은 없었다 할 정도다. 대부분 대학들에서 교육환경이 추락하고 있지만 아무런 대책이 없다. 연구 진흥과 후속학문세대 육성 과제에서도 다르지 않다. 대선 공약이었던 공영형 사립대학 정책도 의지가 없어 보인다.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셋째, 지역균형발전 과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수도권 규제는 속속 해제되고 있고 비수도권 지역의 공동화에 대한 문제의식은 놀랄 정도로 취약하다. 그러는 사이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불균형을 넘어 ‘지역소멸’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문재인정부의 지역균형발전 정책은 뭔가 다를 것이라고 기대했던 비수도권 주민들의 상실감이 매우 크다.넷째, 의미있는 성과를 거뒀던 한반도 평화정착 과제에서도 최근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물론 애초부터 어려운 과제였다. 일희일비하지 말아야 한다.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를 향한 역사적 도전을 늦춰선 안 될 것이다. 오히려 정부가 좀 더 주체적인 관점과 자세를 갖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북한과 미국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한국은 중요한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수동적인 제3자여서도 안되고, 중재자로 역할을 제한해 놓고 접근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다섯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적폐청산과 관련해서다. 임기 3년차가 시작되는 시점이니 만큼, 더이상 적폐가 자리잡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개혁으로 이행할 때다. 사법개혁이 함께 진행되고 있는 만큼, 실정법 위반 사안들에 대해서는 일상의 사법 기능이 작동되도록 하면 되는 것이다. 이제는 나라의 미래를 세우는 일에 국력을 집중해야 한다.여섯째, 제도개혁의 대부분은 입법 절차를 통해 마무리될 수밖에 없다. 국회의 역할이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국회는 늘 당략이고 싸움이다. 여당 입장에서는 막무가내 야당 때문에 민생입법과 제도개혁이 어렵다고 토로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야당과의 대화와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제도개혁을 성사시켜야 한다. 그것이 집권여당과 대통령의 몫이고 책임이다. 마침 문재인정부 3년차를 시작하는 시점에 여당과 바른미래당의 원내 지도부가 새로 짜여졌다. 상생과 협치의 국회를 세우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할 것이다. 국민이 감동할 때까지다.일곱째, 이제는 지난 정부와 비교해 잘했다고 자족하거나 국민을 설득하려 해서는 안 된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과거 정부 탓을 해서도 안 된다. 전 대통령은 구속되어 있다. 실패한 정부였다. 문재인정부로 교체된 것도 그래서였다. 그리고 출범한 지 2년이 지났다. 정책결정의 투명성, 청렴도, 언론자유, 법 집행의 공정성, 국민 삶의 질 모두 지난 정부보다 나아야 한다. 당연한 이야기다. 지난 정부와 비교해 좀 낫다는 것이 자랑일 수 없는 것이다. 국민의 높은 기대치와 현실을 비교해 겸허하게 반성하고 더 분발하는 것이 맞다.물론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한 국가의 성공이 정부와 대통령의 노력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과제는 여당과 야당 모두가, 다른 과제는 기업과 노동단체가, 또 다른 과제는 언론과 교육계와 시민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할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대통령과 여당은 무한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다. 출범 3년차를 맞는 문재인정부에 몇 마디 쓴소리를 띄우는 이유이기도 하다.

권순진의 맛있게 읽는 시…누워있는 부처

누워있는 부처/ 김광규꼭 무엇이 되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다 그러나/ 종심(從心)의 나이에 이르러/ 아직도 되고 싶은 것 한 가지/ 있음을 깨달았다/ 한 팔로 머리를 받치고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있는 몸의부처/ 나무도 짐승도 사람도 죽으면/ 어차피 땅 위에 쓰러질 것을/ 정신의 온갖 질곡 벗어나/ 살과 뼈와 터럭과 욕망 모두/ 떨쳐버리고/ 아무런 자세도 없이 편안하게/ 땅 위에 누워있는/ 부드러운 모습/ 와불을 볼 때마다/ 아직도 부처처럼 되고 싶은/ 욕심을 버리지 못한/ 내 마음 부끄럽다- 시집 『오른손이 아픈 날』 (문학과지성사, 2016) ........................................................ 황석영 소설 ‘장길산’은 미륵의 힘으로 참된 민중의 세상을 펼쳐보려고 반역을 도모한다. 대규모 반란은 폭압 정권에 맞선 백성들의 삶에 대한 무의식적인 투쟁이고, 거기에는 불심이 추구하는 민중적 믿음의 근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장길산’에서 민중해방의 미륵 발원지이자 미완의 불가사의인 ‘천불천탑’ ‘누워있는 부처’가 있는 사찰이 전남 화순의 ‘운주사’이다. “우리가 세상의 밑바닥에 처박힌 것처럼 미륵님도 처박혀 있는 게야. 세상이 거꾸로 되었으니 상수하족(上首下足)은커녕 상족하수(上足下首)가 맞네. 그래야만 우리가 힘을 합쳐 바로 일으켜 세울 것이 아닌가. 이 미륵님만 일으켜 세워 드리면 세상이 바뀐다네.” 소설 장길산의 마지막 부분이다. 20세기가 다 저물어갈 무렵 ‘장길산’을 읽고서 ‘용화세상’에 대한 열망을 담고 누워 있는 와불의 모습이 문득 궁금해져서 그 일대를 여행하다가 작정하고 들렀던 적이 있다. 그 이후 몇 차례 단체로 목에 명찰을 걸고 우르르 찾아갔었다. 그러나 ‘와불이 일어서면 이 땅에 민중의 염원인 새로운 세상이 온다’는 그 누워계신 부처님의 메시아는 나 몰라라 하고 자연과 잘 조화된 고즈넉한 사찰과 일대의 경관만을 감상했던 것 같다. 이곳의 많은 석불들은 아무 땅에나 아무렇게 놓여 있다. 대체로 바위가 삐죽빼죽 나온 곳 아래 누워 있거나 기대어 있다. 머리만 있기도 하고 몸통만 있는 것도 있다. 가뜩이나 펑퍼짐한 평면적인 얼굴은 지워지고 부서져 불균형인 채 그대로다. 더욱이 누워있는 부처들은 전혀 근엄하거나 거룩하지 않다. 이웃의 얼굴인 듯도 하고, 그러고 보니 김제동이와 비슷한 것도 같아서 영락없는 우리 범인의 얼굴 형상이다. 소설에서는 탑과 불상이 999개라고 했지만 실제는 90개의 돌부처와 21기의 석탑이 남아 있는데, 그곳 주민의 말로는 5~60년대까지만 해도 집 지으면서 주춧돌로도 가져다 쓰고 이런저런 생활용 석물로 이곳에 나뒹굴던 부처의 몸을 마구 주워다 썼다고 한다. ‘장길산’에서는 10세기 경 후백제 유민들이 이곳으로 모여들어 하룻밤 만에 999개의 불상과 탑을 만들었다고 적고 있다. 원래는 첫닭이 울기 전 ‘천불천탑’을 세우려고 했으나 밤샘 노동에 힘겨운 한 사내가 거짓으로 새벽닭이 울었다고 소리친 까닭에 미완으로 그만 끝이 났다는 것이다. 지금의 와불은 그저 편안한 자세로 누워 눈 감고 손을 모으고 있다. 이들을 일으켜 세우려는 세상 사람들의 바람엔 아랑곳없이 누워 있는 포즈가 한없이 편안해 보인다. 구름을 내모는 바람결에 나직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세상읽기…후회 없이 사랑하세요

후회 없이 사랑하세요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 알록달록 오색의 연등 행렬이 거리 곳곳을 수놓고 있다. 푸르른 오월 하늘 아래 붉디붉은 장미 넝쿨은 담장을 온통 뒤덮고 새하얀 아카시아는 달콤한 내음으로 세상을 맑고 향기롭게 물들인다. 더없이 아름다운 계절이다. 마음껏 사랑하기 좋은 시절,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좋게 생각하고픈 순간이다.부처님 오신 날, 중생들은 몸을 정갈하게 하여 마음 수양에 무척이나 힘쓰는 듯하다. 조용한 산사를 찾아 템플스테이를 하는 지인은 죽기 전에 한 번은 꼭 체험해봐야 할 일이라면서 산사에서의 모습 사진을 찍어 보내면서 나에게도 동참할 것을 간곡히 권유한다. 새벽 예불에 동참해 마음의 때를 꼭 씻어보라고.부처님 말씀이라는 글도 정성껏 첨부하였다. ‘깨달음이란 우리 인생에서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가지 말아야 할 어떤 길을 갈 때도 있으며 혹은 하지 말아야 할 어떤 일을 할 때도 있다. 이때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스스로의 깨달음이다. 마음이 곧 부처이며 법이기 때문에 이 마음을 깨달으면 어떤 고난 앞에도 굴복하지 않으며, 강한 신념을 가지고 어떤 일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조금 있으니 더 좋은 말씀을 발견했단다. 입보리행론이 카톡으로 뜬다. ‘수천의 생을 반복한다 해도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은 아주 드물다. 그러니 지금 후회 없이 사랑하라. 사랑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그러고 보니 얼마 전 세상 떠나신 남편의 은사님 편지가 떠오른다. 그분은 지난 모임 때만 하여도 폭탄주를 스무 잔 가까이 드시면서 건장하셨다. 맛있는 술을 어찌 아끼느냐고 제자들에게 권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얼마 전 갑자기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서 병실을 찾으니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 계셨다. 그것이 마지막 모습이었다. 교수님은 정말 살면서 한 점 티끌도 남기지 않고 바르게 살고자 애쓰신 분이신 것을 가까운 이들은 다 아는 듯하다. 평생을 곧고 바른 자세로 사시느라 때로는 서운한 감정을 가지게 되는 분도 계셨을 터이다. 교수님은 임종 직전 조문객들을 위해 평소의 감정을 글로 적어 편지로 남기셨다. 갑자기 그분이 돌아가시자 유족은 고인의 평소 유지대로 부의금을 받지 않는 대신 장례식장에 조문 온 손님들에게 그 편지를 전달했다.‘저를 너그럽고 다정히 대해주시며 아껴주신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 올립니다. 원망과 오해가 있으셨던 분들에게는 제가 너무 미숙했음을 고백합니다. 부디 잊어 주십시오. 여러분들께서는 좀 더 따뜻하게 사시다가 운명의 뜻에 따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지금보다 더 사랑하며 살고 싶습니다. 별나고 거칠었던 저를 잘 감싸주셔서 큰 탈 없이 떠나게 되어 행복합니다.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고인의 마지막 편지를 보며 청렴하고 소탈했던 그분의 모습을 다시 떠올린다. 의과대학 시절 교수님의 첫 수업 시간이 기억난다. 줄이 반듯하게 선 하얀 바지를 차려입으시고 꼿꼿한 자세로 들어오셔서 교단을 이리저리 다니시며 학생들을 훑으셨다. “여러분, 내 이름 잘 알고 있지? 나는 상당히 예민하다. 나는 예민해 교수다.”라고 소개하셔서 우리는 와~하하 웃음보가 터졌다. 지루하기 쉬운 수업 시간을 간간한 농담을 섞어 재미있고 쉽게 이끌어 주시던 교수님. 간혹 농담에도 웃지 않는 선 머슴애들이 있으면 호통을 치시곤 하였다. “야!, 웃어야 할 때는 웃고 울어야 할 때는 울 줄 아는 의사가 되어야지!” 심지어는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는 무표정한 제자는 문밖으로 쫓겨난 적도 있을 정도로 전설 같은 교수님, 학장을 하면서도 원리 원칙대로 청렴해야 한다고 늘 강조하셨다. 편지 속의 너그러운 양해는 당신의 신념으로 인해 간혹 오해가 있었다면 그 부분에 대한 양해를 부탁하신 것 같다. 평소 선생님의 인품을 다시금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그 편지는 나의 손에서 오랫동안 머물 것 같다. 교수님은 사람들을 좋아하시고 책을 좋아하시고 이야기하기를 무척 즐기셨다. 술은 누구 따를 자가 없을 정도로 애주가셨기에 교수님을 떠올리면 언제나 막걸리 한잔이 떠오를 것 같다. 예술적인 맛으로 고기를 구워주시던 교수님, 늘 그리울 듯하다. 울긋불긋 꽃 대궐을 이루는 5월의 향기 속에서 선생님의 빙긋이 웃으시는 그 모습이 눈에 내내 어린다. 사모님을 ‘소중이‘라고 부르며 애지중지 대하시더니 어찌 미련 없이 훨훨 떠나셨는지. 제자인 남편도 스승을 닮아가는 지 어느새 그의 휴대폰에는 나의 이름대신 ‘소중이’로 저장해 두었다고 한다. 스승님의 유언대로 남은 생을 후회 없이 사랑하며 살다가 언젠가 다시 만나는 날, 반갑게 인사드리리라.

“세상은 하나, 서로 ‘배려’하는 마음만이 평화 이끌어”

팔공총림 동화사 주지 효광 스님은 배려할 때 어려운 위기를 극복하고 함께 잘 살 수 있다고 강조했다.오는 12일이 불기 2563년 ‘부처님 오신 날’이다. 대한불교조계종 부처님 오신 날 봉축위원회는 올해 봉축표어로 ‘마음愛 자비를! 세상愛 평화를!’을 선정했다.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다양한 갈등을 부처님의 자비정신으로 극복하고 한반도의 온전한 평화가 자리 잡기를 기원하는 의미다.팔공총림 동화사 주지 효광 스님은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진행된 인터뷰에서 ‘배려’를 강조했다. 어렵고 힘든 시기 나를 생각하는 이기심 대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질 때 우리 모두가 함께 잘 살게 된다는 것이다.-부처님 오신 날의 의미는?△부처님이 태어나실 때 하신 탄생게인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天上天下唯我獨尊 三界皆苦我當安之)라는 말이 부처님 오신 날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가장 잘 표현한 말이다.여기에서 유아(唯我)란 분리된 나가 아닌 전체와 연결된 나를 표현하는 것으로 좁은 의미에서 내가 아니라 우리 모든 생명체 개체가 존중받아야 할 귀한 존재라는 것을 자각하는데 있고 나, 또한 고통에서 벗어날 뿐 아니라, 괴롭고 힘들어하는 모든 이들을 마땅히 편하게 하리라는 대자비를 표현하는 것이다. 모든 존재와 함께 더불어 공동체의 공동선을 실천하고자 하는 것이 부처님 오신 날의 의미라 할 수 있다.-우리나라 갈등과 분열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특히 정치적 갈등은 최근 극에 달했다.△팔을 양쪽으로 펼쳐 보면 손은 양쪽으로, 극과 극으로 나뉘어 멀어지게 된다. 손만을 보면 서로 반대이지만 크게 보면 다 내 몸이다. 모든 세상이 하나로 되어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모르고 겉만 보니까 서로 반목의 대상이지 알고 보면 서로 사랑과 은혜의 대상이다.국가 사회가 평화롭고 잘산다면 누가 한들 어떠냐. 꼭 내가 해야 한다는데 서 반목과 갈등이 일어 나는 것이다. 자신에게는 철저해도 남에게는 관대할 때 좋은 세상으로 가는데, 자신에게는 관대하면서도 남에게는 철저하게 적용하면 다툼은 시작된다. 그것은 결국 공멸(共滅)이다. 대립과 반목, 갈등은 자기의 관점만을 고집하기 때문이다. 눈을 감고 어둡다 캄캄하다 안 보인다 하는 것처럼 눈만 뜨면 대명천지 밝은 세상이다. 아름다운 꽃 세상인데, 눈을 감고 보니 서로 반목하고 갈등하는 것이다. 그런 이치를 알면 다툼이 생길 이유가 없다.-경제상황이 많이 어렵다. 양극화도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어려운 시기 종교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한다.△더 가지려는 범부의 욕심과 욕망에서 양극화는 시작 되는 것이다. 예전에 운거도응 선사가 사람들에게 말했다. “우리 집에 솥이 하나 있는데 떡을 쪄서 세 사람이 먹으면 모자라는데, 천 명이 먹으면 남는다. 이것이 어떤 도리인가.” 모두가 묵묵부답이자 도응선사가 설명했다. “쟁즉부족(爭卽不足)이요, 양즉유여(讓卽有餘)라. 다투면 부족하지만 사양하면 남는 법이다.” 경전에 돈이나 명예나 권력이 히말라야 산처럼 많아도 한 사람의 욕망을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했다. 다투면 부족하다. 그러나 서로 사양하면 남는 법이다. 양보하는 것이 당장은 바보짓 같고 손해인 것 같겠지만 누구랄 것도 없이 서로서로 초심으로 돌아가서 사양하면 금세 모두가 잘 사는 사회가 되는데, 그 순간을 넘기지 못하는 것 같다. 양보하는 것이 나를 포함한 모두에게 이득이 된다는 걸 알았으면 한다. 누구랄 것도 없이 서로가 양보하는 자세로 살아야 한다.△대구·경북이 지금 많이 어렵다. 지역민들과 청년들에게 용기의 한마디를 한다면신라 수호산인 오악(五岳)중 중악(中岳)인 팔공산을 중심으로 한 세력이 삼국통일의 주체였고 동력이었다. 특히 대구경북은 그런 자존적 DNA가 아직도 남아 있는 것 같다.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우리 민족, 우리 역사에 대한 소명감을 느껴야 한다. 팔공산 주변 세력이 삼국통일의 동력이 되었듯이 한반도 통일 시대에도 큰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좀 더 대인(大人)이 되어야 한다. 길이 설령 다르더라도 화합하는 사람은 대인이고, 한 길 한 배를 타고 가면서도 화합하지 못하면 소인이다. 초목이 어지러이 있는 것 같아도 서로 다양성을 인정해 주며 어울려서야 숲을 이루는 법이다.요즘 젊은이들이 많이 힘든 것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힘들수록 호흡을 조절하고 여유를 가져야 한다. 그럴수록 칼을 갈 듯이 능력을 키워 가야 한다. 낭중지추(囊中之錐)라 했다. 칼을 갈아두면 반드시 쓰일 때가온다. 그러나 칼을 갈아 두지 않으면 써야 될 때 쓰지 못하니 천추의 한이 된다. 힘들다고 조급해하다 보면 판단을 그르치기 쉽다. 자세히 보면 새끼줄인 줄 알 수 있는데, 뱀으로 오인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마지막으로 지역민들에게 하실 말씀은?△불기자심(不欺自心)이라 했다. 남에게는 손톱만큼 속아도 분기(憤氣) 탱천(撑天)하면서, 자신에게는 태산만큼 속아도 속는 줄도 모르고 분노할 줄도 모른다. 자신에게 속지 않을 때 남에게도 속지 않고 모든 일에 패착(敗着)을 두지 않는다.상대를 서로 먼저 배려할 때 지금은 내가 손해보고 바보가 되는 것 같아도 결과적으로는 우리 모두가 함께 잘 살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극락과 지옥의 차이가 모든 조건은 똑같은데 긴 숟가락을 사용하는 단순한 용심(用心)에 따라 극락과 지옥이 갈라지는 우화(寓話)와 같다. 김혜성 기자 hyesung@idaegu.com

세상읽기…삭발을 감행하는 결기

삭발을 감행하는 결기오철환객원논설위원 영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아놀드 J 토인비’는 우리나라의 효 사상, 경로사상, 가족제도를 인류의 보존해야 할 위대한 유산이라고 격찬했다. 그는 노년을 우리나라에서 보내고 싶다는 덕담을 하기도 했다. 효는 예로부터 광범위하게 신봉해온 우리 민간신앙이라 할 만했다. 존속 살해 등 가족 간 흉악 범죄가 빈발하여 효 사상을 전통사상이라고 거론하기조차 민망하긴 하다. 그렇지만 아직은 우리사회에서 효가 인륜의 근본이라 해도 큰 무리는 없다. 효 사상의 기원은 흔히 유교에서 찾는다. 그렇지만 ‘효녀지은설화’나 ‘손순매아설화’가 삼국유사 등에 전하는 걸 보면 우리 사회의 효 사상은 그 근원이 더 원초적일 뿐더러 자생적인 면모도 다분하다.공자는 "효란 덕의 근본으로 가르침이 비롯되는 곳이다. 사람의 몸과 터럭과 살갗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이를 훼손시키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다(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 입신하여 도를 행하고 후세에 이름을 날림으로써 부모를 현창하는 것이 효의 마지막이다(立身行道 揚名於後世 以顯父母 孝之終也). 무릇 효는 부모를 섬기는 데서 시작하여 임금을 섬기는 과정을 거쳐 몸을 세우는 데서 끝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는 부모로부터 받은 몸을 함부로 훼손시키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라는 우리 전통 사상의 뿌리다. 우리 민족이 오랜 세월 온갖 불편을 감수하며 상투를 틀고 망건을 썼던 유래다.조선 말 개화파들은 근대화와 개혁의 일환으로 단발령을 단행했다. 위생적으로 불결하고 일할 때 불편하다는 이유였다. 많은 선비들이 “손발을 자를지언정 머리카락은 자를 수 없다.”고 했고, 면암 최익현은 “목을 자를지언정 머리카락은 자를 수 없다.”고 반발했다. 단발령에 항의하는 분노에 찬 목소리가 요원의 불길처럼 방방곡곡으로 번져갔다. 현재의 시각으로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당시에는 천인공노할 야만적 박해였다. 효를 숭상한 유교문화와 상투를 신주단지 모시듯 했던 풍습을 깡그리 무시하고, 근대화와 개혁이란 선의만 내세워 강압적으로 단칼에 상투를 잘라버리려 했던 것은 과유불급 우매한 실책이었다. 의병이 전국적으로 봉기하였다. 단발령을 주도한 김홍집 등은 피살되고 단발령은 결국 철회되었다.현금 우리사회는 신체발부에 대한 유교적 시각을 구시대의 원시적 유물 정도로 치부한다. 불효라는 이유로 머리카락을 깍지 않겠다는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다. 그렇지만 그 흔적은 아직 우리 주변에 남아있다. 삭발이 그것이다. 삭발은 흔히 투쟁 수단으로 사용된다. 노동자들이 그들의 결연한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자 머리를 박박 미는 모습을 심심찮게 목격한다. 몸뚱아리 외엔 가진 것이 별로 없는 사람들이 그들의 주장을 절실하게 보여주기 위해서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많지 않다. 테러를 감행하거나 자해를 시도하는 방법이 일반적이다. 테러는 논외로 하고 자해의 경우만 보면, 자살, 할복과 같은 극단적인 방법과 단지, 단식, 혈서, 삭발 등과 같은 온건한 방법이 있다. 삭발은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는 고유한 투쟁방법이고 신체발부에 대한 유교적 시각의 문화적 흔적이다. 삭발은 목을 자르는 절절한 심정으로 결행하는 지부복궐소의 현대판 버전이다. 자기의 주장을 들어달라는 절규이다. 강자들이 약자들의 목소리를 계속 귓등으로 흘려듣게 되면 더욱 강력한 선택지로 가는 빌미를 제공한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최근 선거법 등 패스트트랙 지정에 항의하여 다섯 명의 야당 의원들이 삭발을 감행하였다. 적지 않은 연세에 삭발을 감행하는 결기가 가슴에 와 닿는다. 불도저같이 밀어붙이는 여당에게 몸싸움과 자해 이외에는 뾰족한 투쟁방법을 찾지 못하는 야당이 안쓰럽다 못해 연민을 느낀다. 자해를 통해 상대방을 압박하고 상황의 절박함을 국민들에게 호소하겠다는 처절한 모습이 눈물겹다. 이를 두고 시대부적응자의 ‘죽기살기식’ 낡은 행태라거나 ‘보여주기식’ 찌질한 자기학대라며 비난하는 사람도 있는 듯하다. 이벤트성 퍼포먼스라 해도 좋다. 꼬랑지 내린 채 몸을 사리고 숨어있는 것보다 훨씬 낫다. 국민의 대표로서 나라를 위하여 국민을 대신하여 몸을 바쳐 희생하겠다는 자세는 적어도 긍정적으로 보고 싶다. 목을 자르는 절박한 심정으로 삭발한 분들께 경의를 표한다.

세상읽기…‘불신과 대결’의 늪에서 빠져나와야

‘불신과 대결’의 늪에서 빠져나와야홍덕률대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나라가 갈기갈기 쪼개져 있다. 온통 갈등이고 싸움이다. 그것도 보통 싸움이 아니다. 총만 안 들었지 마치 전쟁터 같다. 노사 간, 지역 간, 세대 간 불신은 이미 도를 넘었고, 최근에는 여당과 야당이 극한대결을 이어가고 있다.물론 어느 사회에서나 가치나 이해관계에 따라 다양한 집단들로 분화되고 그들이 서로 경쟁하며 갈등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문제는 그 갈등이 대화가 불가능한 상태를 넘어 극한대결로 치닫는다는 데 있다.갈등이 불신과 극한대결로 진전되는 이치는 간단하다. 집단들 사이에 몇 차례 관점과 이익의 차이를 경험하고 나면 만나서 대하는 것이 불편해진다. 이후 불신이 깊어지면 대화가 불가능한 집단처럼 갈라서게 된다. 그 과정에 우연한 오해가 작용할 수도 있고 누군가의 공작이 개입될 수도 있다. 그다음부터는 같은 집단이나 진영 안의 사람들끼리만 의기투합하며 박수치고 산다. 상대 진영은 대화의 상대가 아니라 타도해야 할 대상으로 여긴다. 남는 것은 극한대결이다.물론 그 과정이 자연스러운 것도, 필연적인 것도 아니다. 몇 가지 계기들이 작용하면서 불행한 결과로 몰고 가는 것이다. 첫째는 집단간 갈등을 합리적으로 관리하는 제도와 메커니즘이 취약하다는 사실이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장치인 법과 공권력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오랜 독재정권 하에서 법과 제도는 강자들 위주로 작동되었고 국민의 신뢰를 상실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란 말이 대표적이다. 법과 제도가 불공정하다고 사람들이 믿는 순간, 사회 전반에 대한 불신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갈등의 제도적 관리도 어려워지고, 국가는 설 땅을 잃게 되는 것이다. 2천500년 전 공자도 이를 간파했다. 그는 병사와 식량과 신뢰 중에 으뜸은 신뢰라고 했다. 신뢰가 무너지면 국가는 설 수 없다고도 했다. 법과 공권력의 도덕적 권위와 신뢰를 세워내는 것이 너무도 중요하다.둘째, 집단간 갈등을 중재하며 대화를 통해 해결하도록 이끄는 큰 지도자가 없는 것도 문제다. 사회가 둘로 쪼개져 있고 사람들이 대부분 두 진영 중 하나에 속해 있으면서, 자신 편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지도자로 인정하지도 않는다. 높은 안목의 큰 지도자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천박한 문화도 크게 한몫 했다.셋째, 상생과 공존의 문화도 취약하기 그지없다. 공동체의식과 문화도 상당 부분 붕괴되었다. 우리 모두의 대한민국은 없고 나의 대한민국, 내 진영의 대한민국들만 넘쳐난다. 그러니 우리 모두의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양보하고 타협하는 데는 관심없고, 싸워 이겨서 대한민국을 혼자 독차지하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다. 오랜 약육강식의 사회구조와 승자독식의 문화가 낳은 비극적 결과다.넷째, 집단이나 진영 내의 지배층 논리도 따져 볼 필요가 있다. 그들은 상대 진영까지 포괄하는 우리 사회 전체에 관심없는 것은 물론이고, 진영 내 구성원들의 복리에도 관심이 없다. 오로지 진영 내에서 누리는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는 데만 관심이 있다. 그들은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상대 진영에 대한 공격과 전투를 감행한다. 구성원들의 관심을 바깥 진영과의 싸움에로 돌리면 진영 내부의 문제와 모순도 은폐시킬 수 있다. 자신을 향한 진영 내의 도전도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다. 진영의 구성원들을 결집시켜 내는 손쉬운 전략이기도 하다. 필요하다면 가짜뉴스도 만들어 뿌린다. 정치권에 싸움을 위한 싸움, 반대를 위한 반대가 횡행하는 것도 상당 부분 이 때문이다.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불신사회’와 ‘대결사회’의 결과는 너무 처참하다. 사회적 비용은 계산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하다. 청년실업, 저출산 고령화, 미세먼지, 민생 등, 특정 진영의 과제가 아닌 국가적 과제들 앞에서도 손을 쓸 수 없게 된다. 한반도에 평화를 심는 일과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는 일 등, 정파적 과제일 수 없는 숙제들을 앞에 두고서도 속수무책이게 만든다.속히 우리 사회를 불신과 극한대결의 늪에서 건져내야 한다. 여기서도 정치권의 역할은 결정적이다. 하지만 지금의 정치권에는 기대난망이다. 정치권의 구태에 생각없이 끌려 다니거나 구경만 하고 있을 수 없는 이유다. 국민과 미래를 위해 일하는 상생의 정치로 바꿔내, 사회 전반에 뿌리내려 있는 불신과 극한대결의 문화를 걷어내야 할 것이다. 역시 깨어있는 시민의 몫일 수밖에 없다.

세상읽기…이 찬란한 오월에

이 찬란한 오월에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하늘 아래 모든 것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이다. “5월을 사랑하는 사람은 생명도 사랑한다. 절망하거나 체념하지 않는다. 권태로운 사랑 속에서도, 가난하고 담담한 살림 속에서도 우유와 같은 맑은 공기를 호흡하는 사람들은 희열을 맛본다.”라고 이어령은 쓰고 있다. 5월은 가만히 있어도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달이다. 다른 한편으로 오월은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고 정신을 차려야 하는 달이다. “산과 들은 차츰 그 호사스러운 꽃의 장막을 거두고 신선한 녹음을 펼치는 오월이 왔다. 감정에서 의지로, 낭만에서 실제로, 그리고 환영에서 뚜렷한 정체를 응시해도 좋은 오월이 왔다. 달콤한 꽃의 향기에 취하여 있기에는 녹음의 도전이 너무도 생생하다.” 김말봉의 ‘화려한 지옥’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렇다. 일장춘몽 같았던 화려한 벚꽃과 봄꽃의 축제는 지나갔다. 이제 만물은 치열한 여름과 가을의 결실을 대비하고 있다.우리 정치판을 바라본다. “오늘날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학식이 있거나 성품이 바른 자들이 아니다. 불학무식한 깡패들에게나 알맞은 직업이 정치다.”라고 일찍이 아리스토파네스는 정치가들을 혹평했다. 사시사철 당리당략과 당파적 이해관계만 따지는 우리 정치판을 본다면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짐작이 간다. 정치에 환멸을 느낀 사람들은 애써 정치에 무관심해지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사회적 동물인 우리가 아무리 눈을 감고 귀를 막아도 완전히 무관심해질 수 없는 것 또한 정치다. “정치는 불을 대하듯이 할 일이다. 화상을 입지 않기 위해서는 가까이 가선 안 되고, 동상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너무 멀리 가선 안 된다.”라고 한 안티스티네스의 말이 유난히 와 닿는 요즘이다.이기고 누르고 장악하여 내가 하나 더, 한 표라도 더 가지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곳에서는 모든 것은 제로섬의 관계로만 존재한다. 한국 정치는 도박이며 제로섬 게임이라고 한다. 도박은 얼핏 보면 제로섬 게임처럼 보이다. 도박이 끝난 뒤 딴 사람과 잃은 사람의 돈을 합치면 처음 시작할 때의 판돈과 같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런 식으로 간단하게 계산할 수 없다는 사실에 있다. 도박꾼이 자기들끼리는 치고받고 싸우면서 그 판을 즐기겠지만 그들의 가족이 겪는 고통이나 늘어나는 노름빚은 결국 한 가정을 파탄에 이르게 한다. 그러므로 도박은 제로섬이 아니고, 결국은 마이너스섬 게임이 된다. 한국 정치도 마찬가지다. 정치가 난맥상을 보이며 표류하면 국가 모든 것들이 흔들리며 좌표를 상실하게 된다. 국회 의석 수는 누가 더 가지든 변화가 없는 제로섬 게임이지만, 정치 혼란으로 인한 경제 불안과 생산성 저하는 국민 전체를 위한 판돈이 줄어들게 한다. 정치가 국민을, 기업을 신나게 해야 그 결과는 플러스섬 게임이 된다.문명사적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는 지금은 모든 영역에서 탈취와 지배, 승자독식의 원리를 공생의 원리로 바꾸는 게 대세다. 사람과 자연, 정치와 기업 등 모든 것들은 유기적인 순환구조 속에 연결되어 있고, 상호의존적인 망 속에서 공존한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삶이 타자의 삶과 분리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내가 누군가에게 칼을 들이대면 그 칼이 곧장 나의 목으로 되돌아온다는 순환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뺏고 빼앗기는 관계에서 벗어나 상호 부양하고 지원하는 관계로 행위 양식 자체를 전환시켜야 한다. 이 관계에서는 경쟁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을 제로섬이 아닌 포지티브섬의 방식으로 수행할 것을 요구한다. 우리 모두는 한반도 정세와 사회·경제적 위기를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동자승의 초롱초롱하고 해맑은 눈동자를 바라본다. 까까머리 동자승의 머리가 5월의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잎처럼 광채가 난다. 그들의 지순한 눈과 천진난만한 표정, 장난기 가득한 사심 없는 미소 속에서 불성과 온갖 가능성을 다 볼 수 있다. 저 순진무구한 아이들을 잠시만 바라봐도 탐욕에 찌든 사람들의 생각과 태도는 달라질 것이다. 정치권은 대오각성하여 국민을 분노하게 하고 지치게 하지 말아야 한다. 가정의 달 오월에 우리는 보다 나은 미래를 기대하며 좀 더 행복하고 싶다.

세상읽기…패스트트랙, 급할수록 돌아가라

패스트트랙, 급할수록 돌아가라오철환객원논설위원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국회의원 총수를 정당별 득표율에 따라 각 정당에 배분한 후, 그 배분된 수에서 지역 당선자 수를 뺀 나머지를 비례대표로 배정하는 제도다. 석패율제를 조금 가미한 점이 특이하다. 정당이 개인보다 중요하다는 전제를 암묵적으로 깔고 있다. 비례대표의 수를 확 늘려야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제 기능을 한다. 225 : 75는 무의미하다.다른 의도를 의심하게 하는 부분이다. 소속 정당의 선호도에 비해 경쟁력 있는 인재 풀이 많아 지역구 당선자가 많은 정당은 정당 선호도라는 제약에 발목 잡혀 비례대표 배정이 상대적으로 적어진다. 그 반면에 이상적인 정책을 내세우는 비현실적인 정당은 사이다 공약에 힘입어 지역구 당선자에 비해 비례대표 배정을 많이 받게 된다. 이 제도를 우리나라에 도입하게 되는 경우, 자유한국당이 제일 불리하고 정의당이 가장 유리하다.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비례대표 배정에서 손해를 볼 수도 있겠지만 성향과 지지층이 비슷한 우군, 정의당과 평화당이 이득을 보는 까닭에 총체적으로 이득을 본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다. 더불어민주당은 지역구에 주력하고 정의당 등은 정당 포퓰리즘을 통해 인기관리에 전력투구한다면 그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다. 좌파 성향의 정당들이 지역구 선거에서 전략적 제휴를 한다면 그 파괴력은 상상이상으로 클 수 있다.이런 점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각 정당에 중립적이지 않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해 자유한국당은 반대하고 나머지 정당들이 찬성하는 현 형국은 어쩌면 당연하다. 이런 상황에서 자유한국당이 찬성한다면 그게 비정상이다. 국민을 위한 정당이라면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국민의 선택을 왜곡할 수 있다는 점을 정직하게 알려야 한다. 제대로 된 정당이라면 국민의 뜻을 왜곡하는 선거법에 대해 입을 닫고 비굴하게 따라가서는 안 된다. 국민의 대표라면 부당한 위협이나 겁박에 굴하지 않고 국민의 주권을 지켜내야 한다. 싸울만한 가치 있는 일을 위해 물러서지 않고 싸우는 것은 주권자에 대한 의리이자 의무다.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법안도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연계해서 패스트트랙에 올라와 있다. 공수처 법안의 취지는 충분히 이해가 된다. 권력층의 부정부패와 비리를 막아보자는 것을 누가 반대할 것인가. 그렇지만 세상일이란 게 그 선의만으로 다 해결되지는 않는다. 선의만 가지고 섣불리 했다가 낭패를 본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공수처장의 임명권을 대통령이 가진다면 공수처는 대통령의 수족이 될 개연성이 매우 크다. 그렇게 되면 공수처는 대통령이 수사대상기관을 장악하는 도구로 전락한다. 판사, 검사, 경무관급 이상 경찰 등이 수사대상에 들어있다.대통령은 공수처를 통해 판사까지 손 볼 권한을 가진다. 대통령이 사법부마저 장악하는 상황이다.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삼권분립이 단숨에 무너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여당이 두 칼을 휘둘러 국회에서 과반수를 확보한다면 삼권을 틀어쥔 대통령은 무소불위가 된다. 장기집권과 독재로 가는 패스트트랙이다. 굳이 그 선의를 살리고 정치적 악용을 막으려면 좀 더 시간을 갖고 중지를 모아야 한다. 공수처장의 임명권을 제1야당에 주어 대통령의 검경 수사권 악용과 삼권장악을 견제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공수처의 수사대상에서 대통령 친인척과 고위직 공무원, 국회의원 등을 뺀 것도 문제다. 공수처 4당 합의안은 ‘반쪽짜리’ 수준으로 검토하고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다. 서둘러서 될 일이 아니다. 장기집권과 독재로 가려한다는 의혹만 살 뿐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공수처를 투톱으로 내세워 야당을 말살시키고 영구집권을 획책하려 한다는 주장이 황당한 기우라 하기엔 시나리오의 실현가능성이 너무 크다.검경수사권 조정법안도 더 큰 이슈에 치여 가려져 있으나 가볍게 묻어 처리할 정도로 안이한 사안이 아니다. 검경의 현실여건을 신중히 고려하여야 할 민감한 사항이다. 법안을 처리하고 난 후 그 후유증에 시달리느니 심의 단계에서 좀 더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는 편이 시행착오를 줄이는 현명한 방법이다.패스트트랙은 민생법안이 정쟁에 휘말려 장기간 표류하는 것을 방지하자는 취지다. 이 제도가 정치적 법안의 졸속 날치기용으로 악용돼서는 결코 안 된다. 연계할 성질이 아닌 법안들을 한 꾸러미로 묶어 이해관계정당끼리 상호 뒷거래하려는 것은 국민을 배신하는 야합이다. 그렇다고 극한대치는 그 해법이 아니다. 한걸음씩 물러서서 역지사지하는 자세로 실마리를 찾아가야 한다. 급할수록 돌아가는 길이 정도다.

세상읽기…아! 4월, 잔인한 4월

아! 4월, 잔인한 4월홍덕률대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4월의 마지막 날이다. 힘든 4월이었다. 한국 현대사의 슬픈 질곡들이 녹아 있는 4월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온갖 문제들이 좌충우돌하며 미래를 어둡게 색칠한 4월이었기 때문이다.먼저 4월3일이었다. 71년 전 제주도가 떠올랐다.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고 친일 경찰의 횡포를 규탄했다는 이유로 선량한 제주도민들까지 군·경에 의해 대량 학살된 사건이었다. 사실상 1947년 3월부터 시작되어 1954년까지 계속되었고, 목숨을 잃은 양민이 1만4천여 명에 달했다. 지금도 색깔론이 횡행하고 있으니 그때는 어땠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비극은 살상이 멈춘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살아남은 자들은 평생 그 한(恨)을 가슴에 묻고 살아야 했다. 빨갱이 자식, 빨갱이 아내라는 손가락질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2014년에야 국가기념일로 지정됐고 올해 4월3일에야 군과 경찰이 처음으로 공식 유감을 표명했다. 제주도민들도 처음 위로를 받았다. 다행이 아닐 수 없지만, 71년 묵은 슬픔과 한이 너무 컸다.4월11일이었다. 대통령이 워싱턴으로 날아가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다.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성과없이 끝나 다들 안타까워하던 중이었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를 향한 계기를 만들어 줄 것으로 기대했지만 별무 성과였다. 지금까지도 한반도는 짙은 안개 속이다. 판문점 선언 1주년이었던 4월27일도 싱겁게 지나갔다. 이러다가 얼마 전까지 우리를 짓눌렀던 전쟁 공포의 시대로 되돌아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커지고 있다.닷새 지나 4월16일. 세월호 참사 5주기였다. 이날만 되면 늘 먹먹하고 우울한데, 아직까지도 진상규명이 안됐다는 유가족들의 절규를 듣는 것은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더 힘든 일도 있었다. 몇몇 정치인이 유가족들에게 퍼부은 막말 때문이었다. 귀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막장정치의 끝은 과연 어디인지 절망하는 시간이기도 했다.4월 중순경이었다. 나라를 이끌 주요 인사들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이어졌다. 늘 그랬지만 이번에도 답답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살아온 삶을 적나라하게 들여다보는 것도 착잡한 일인데, 수준 이하의 정쟁은 더 가관이었다. 장외투쟁은 그렇다 쳐도 넘쳐난 색깔론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언제까지 색깔론에 기댈 것인가. 역사의 진전을 간절히 염원하는 국민들은 또 한번 탄식해야 했다.4월 내내 우리를 힘들게 한 뉴스가 또 하나 있다. 연예인들과 재벌가와 권력자들의 성 일탈과 마약 뉴스다. 정준영, 승리, 김학의, 윤중천, 강원도 별장, 버닝썬. 이제는 분노하기에도 지쳤다. 그동안 그들이 뿌려댄 더러운 돈과 벌거벗은 권력에 유린됐을 이들을 생각하면 참담함에 고개를 들 수가 없다. 대체 이토록 난잡한 뉴스는 언제까지 듣고 있어야 하는가.그 와중에서 맞은 4월19일은 절망 가운데서 한줄기 위안과 희망을 주는 날이었다. 59년 전, 부패와 독재의 한 복판에서 민주주의의 꽃을 피워낸 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역사는 2월28일, 자랑스러운 대구 학생들에 의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 날의 정신을 다시 생각함으로, 잔인한 4월을 버텨낼 수 있는 힘을 공급받게 된 것은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그리고 이틀 뒤 4월21일이었다. 부활절이었다. 2천년 전 예수의 고난과 부활을 묵상하며, 자신을 돌아보고 예수의 사랑을 다짐하는 날이었다. 그런데 비극은 그 날도 피해가지 않았다. 이번엔 나라 밖 스리랑카에서였다. IS가 교회와 호텔 등을 동시 테러했고, 25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비극과 슬픔은 국경을 넘어 지구촌에 넘쳐나고 있었던 것이다.4월은 끝까지 우리를 놓아주지 않았다. 25일부터였다. 국회가 아수라장이 된 것이다. 막말과 고함은 기본이고 감금과 폭력이 난무하는 상황까지 갔다. 마치 전쟁터 같았다. 저런 국회가 한반도 평화 시대를 준비할 수 있을까?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대한민국을 책임질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다 할 수 없었다. 국가와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최소한의 예의와 역사의식도 없는 국회는, 4월 내내 이어진 피로감을 절정으로 끌어올렸다.그 4월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힘든 4월이었다. 참으로 잔인한 4월이었다. 달이 바뀐다고 우리의 정치와 사회가 달라질리 있겠나마는, 그래도 5월에는 기쁜 소식과 미담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가정의 달 5월을 하루 앞둔 날의 간절한 바람이다.

세상읽기…진정한 사랑

진정한 사랑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온갖 꽃들이 다투어 피어나는 시절, 참 좋은 때임을 실감하는 날이다. 비에 씻긴 대지 위로 파란 하늘이 한결 더 평화롭게 펼쳐진다. 활짝 꽃잎이 벙근 영산홍은 담장 사이로 고개를 쏘옥 내밀어 인사를 건네고 앙증맞게 고운 분홍의 꽃 잔디들은 소복이 모여 앉아 길손의 발걸음을 붙든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봄날이 저물어 간다. 잠깐이라도 하염없이 거닐어 보고만 싶은 순간이다. 언젠가는 충남 태안의 천리포 수목원을 꼭 한 번만이라도 들러봐야지 하고 꿈꾸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기회가 닿지 않아 가보지는 못하였지만, 내게는 그곳 못지않은 행복감을 가져다주는 이곳 주말 주택이 있어 그나마 위안이 된다. 몇 주에 한 번 또는 몇 달에 한 번씩 정말 가끔 밖에 들러 길손처럼 왔다가 가는 곳이지만 어느새 마음 한구석엔 고향으로 자리 잡았다. 마당에 울창하게 드리워진 소나무 숲 그늘에 가려 목련은 아직 채 피지 않았지만, 햇살이 비켜 드는 길목에는 꽃 사과 하얀 꽃들이 셀 수도 없이 달려서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어머님 떠나실 때 가져다 심은 천리향도 어느새 피어나 은은한 향기를 풍기고, 오랫동안 환자로 다니던 아이가 가져다 심어 준 라일락은 보랏빛 꽃송이들을 하늘로 뻗어 올려 구름을 이루고 있다. 작은 나무에 얼마나 많은 가녀린 꽃들이 하늘 향해 뻗어있는지 그 모습을 보니 안간힘을 쓰며 나 좀 보아달라고 하는 것 같아 나의 눈길은 온통 그 아이를 본 듯 그 나무로 쏠린다. 지금 건강하게 자라나는 바로 그 아이, 그 나무!기적은 아주 사소하게, 일상 속에서 나타나지 않던가. 하나하나 깨달으며 조금 더 자신을 믿게 되고, 또 가족들의 도움으로 조금 더 삶에 충실하게 되고 주변사람들에게도 관심을 기울이면서 관계를 좋게 하다보면 차츰 더 나아지고 시간이 지나면 더 좋은 일이 생기지 않던가.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지치지 말고 꾸준히 끝까지 뚜벅뚜벅 걸어가는 사람이 끝내 승자가 되는 것일 터이니.향기를 머금은 상큼한 봄바람이 기분 좋아 길가에 서 있으려니 눈을 덮은 사자처럼 생긴 개 한 마리를 데리고 산책을 나온 분들이 내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고개를 들어보니 아는 분이 아닌가. 손을 맞잡으며 인사를 건네니, 날씨가 좋아 오랜만에 드라이브를 나왔다며 자신이 사는 전원주택과 비교도 해 볼 겸 봄볕을 즐기는 중이라는 것이 아닌가. 팔공산을 가운데 두고 빙 둘러서 이곳저곳에 전원주택들이 곳곳에 많이 들어서 있는 모양이다. 지인의 어머님은 구순이 넘었다는 데도 걸음걸이가 반듯하고 허리도 꼿꼿하여 젊은이 못지않은 자세로 걷는 속도가 남다르게 빠르셨다. 검은 개 차우차우가 이리저리 다니며 설쳐 대어도 그를 감당할 만큼 흐트러지지 않는 모습이 감동적이어서 놀라웠다. 강아지 운동에 발맞추어 그분은 더 운동이 되는 듯 즐겁게 따라다니시는 모습이 선수 못지않은 그분께 궁금하여 여쭈어보았다. 연세를 이기고 건강하게 지내시는 비결이 무엇이냐고. 그러자 그분은 스스럼없이 큰 소리로 대꾸하신다. “속 썩이는 자식 때문에! 내가 늙을 수가 있겠어“. 깜짝 놀랐다. 자식이 환갑 진갑 다 지났지만, 아직 결혼도 하지 않고 저렇게 혼자서 돌아다니며 살고 있다고 하시며 눈을 흘기신다. 그러기에 혼자 있는 자식이 걱정되어 빨리 결혼하는 모습을 보아야 하기에 늙어서도 안 되고 또 이 세상에서 없어져서도 안 된다는 굳은 의지로 살고 계신다고 하였다. 그러니 누구보다도 더 건강을 잘 챙기며 오래오래 이 세상에 머물러 있어야 할 이유가 있다고 강조하신다. 그러니 시간 날 때마다 더 많이 걷고 더 많이 챙겨 먹고 사람들과 자주 어울리고, 미혼인 자녀에게는 결혼하라고 다그치면서 어머니로 역할에 충실하면서 하루하루 살아가실 것이란 의미이리라.부모님 걱정 끼쳐 드리지 않고 잘해드리고 마음 편하게 해드리는 것이 진정한 효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늘 이분들처럼 알콩달콩 사랑을 담은 말다툼을 해가면서 맑은 하늘 아래, 향기로운 꽃향기 맡으며 따스한 봄볕을 등에 받으며 산천을 걸어 이야기꽃을 치우는 모습을 보면서 왠지 모를 부러움이 내 마음엔 가득 일었다. 살아가는 데 있어서의 강력한 동력은 어쩌면 두려움과 사랑일지 모르겠다. 두려움으로 가득하면 원망이 생기고 그에 따라 좋지 않은 결과가 따라 오게 되기도 한다. 그것을 사랑으로 바꿀 수만 있다면, 원망을 점점 제거하는 연습을 하고 사랑을 더 주려고 하니까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차츰 더 좋은 일이 생기게 되지 않을까 싶다.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일까, 또 진정한 효도란 무엇일까? 문득 생각해 보는 아름다운 봄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