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정상 셰프들, 영주에서 ‘한국의 맛’에 빠지다

6일 영주국제조리고등학교에서 열린 정관스님의 사찰음식전에서 정관스님이 사찰음식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6일 영주국제조리고등학교에서 열린 정관스님의 사찰음식전에서 정관스님이 사찰음식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6일 영주국제조리고등학교에서 열린 정관스님의 사찰음식전에 참여한 미슐랭 셰프들이 강연을 하고 있다.수행자가 깨달음을 이루기 위해 먹는 사찰음식! 이 한국 사찰음식의 맛에 미슐랭 톱스타 셰프들이 매료됐다. 뉴욕타임스가 극찬한 사찰음식 대가 ‘정관 스님의 사찰음식전’이 40여 년 선영여고의 전통을 뒤로하고, 올해 새롭게 문을 연 영주 국제조리고등학교에서 6일 열렸다. 사찰음식점은 1일부터 8일까지 열리는 아시아 최고 요리 축제인 서울 푸드 페스티벌과 연계된 것으로 푸드 페스티벌은 서울 전역 특급호텔과 제주에서 세계의 음식을 선보이고 있다. 이날 열린 사찰음식전에는 이철우 경북도지사, 임종식 경북도교육감, 최교일 국회의원, 장욱현 영주시장 등이 함께했다. 일정 중 유일하게 영주에서 한국 전통의 맛이 세계에 소개된다.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제철 식재료의 맛과 향을 살려내는 완벽주의자 셰프 야곱 쟝 보어마, 이탈리아 특유의 지중해 요리의 대가 파올로 카사그란데, 프랑스 고전 요리로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올리비에 벨린 등 미슐랭 스타 셰프와 음식 평론가, 외신기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정관스님의 사찰음식 시연과 톱클래스 요리사들의 강연을 들을 수 있는 ‘셰프 서밋’으로 진행됐다. 서양에서 각광받고 있는 사찰음식은 화학조미료 없이 제철에 나는 신선한 채소로 담백한 맛을 내어 참가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으며, 정성이 듬뿍 담긴 정관 스님의 요리가 테이블에 차례차례 올라올 때마다 정갈한 모습과 소박한 맛에 연신 탄성을 자아냈다. 특히 미슐랭 셰프들은 낯선 음식 재료와 조리법을 자세히 살피는가 하면, 음식을 음미하면서 단순히 먹는 차원을 떠나 한국의 문화를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정관스님은 “사찰음식은 수행하는 스님들이 절에서 먹는 일상 음식이자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행음식’, 자연에서 나는 재료를 그대로 활용하는 ‘자연음식’, ‘계절음식’ 이라고도 불린다”며 “음식 재료에 대한 감사와 소통의 뜻을 담은 사찰 음식을 통해 몸이 건강해지고 마음이 정갈해지는 식사가 되었길 바란다”고 전했다. 영주 출신인 정관스님은 뉴욕타임스가 극찬한 사찰음식의 대가로 정해진 레시피 없이 손이 움직이는 대로 맛을 창조해 ‘천재스님’, ‘철학자 셰프’로 불리고 있다. 스님이 나고 자란 영주에 새롭게 문을 연 조리고등학교의 후배들을 하루라도 빨리 만나길 원했고, 미래에 대한 희망과 음식에 대한 생각을 전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이번 행사에 앞서 지난달 25일에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현지 문화계 주요 인사들을 대상으로 사찰음식 시식회를 개최해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참가자들은 행사가 끝난 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부석사를 방문해 사찰음식이 탄생한 배경과 한국 승려들의 일상, 한국의 불교가 태국 등 다른 아시아 지역과 다른 점이 무엇인지를 질문하는 등 한국의 불교 문화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보였다. 장욱현 영주시장은 “영주시는 사람을 살리는 산이라 불리는 소백산의 자연과 청정 자연에서 자란 재료를 활용한 식치(食治)음식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며 “앞으로 국립산림치유원 다스림과 건립 추진 중인 한국 명상수련원 등과 치유프로그램을 연계하는 힐링 프로그램을 개발해 나가겠다”고 전했다.김주은 기자 juwuery@idaegu.com

특별기고, 가면유희…부처님 오신날의 소고

가면유희…부처님 오신날에 부쳐 태관 스님거조사 주지 겨울 끝자락에서 주춤거리던 봄이 발끝에 채이는 아침 이슬을 달고 여린 풀잎으로 왔습니다.아직 코끝에 남아있는 첫 꽃향기 추억에 이끌려 행여나 하고 매화꽃 보러 갔더니 분분히 매화꽃 진자리에 노오란 민들레 하늘도 푸르게 피어 저절로 탄식과 함께 무릎을 꿇게 만듭니다.짜고 맵듯 언제나 강렬한 것에만 길들여져있는 단세포적인 나의 기억, 따지고 보면 허망은 늘 낮고 하찮은 것을 간과하는 데에 있었습니다. 궁금한 세상 속으로 한걸음 더 들어가는 유일한 통로는 언론매체입니다. 언제부터인가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상식은 이를 초월하지 못하고 있습니다.온갖 망상이 현실이 되는 요술 상자. 그 속에서 보여지는 환경은 요지경입니다.가면을 쓴 자와 그 가면을 벗기려는 자가 대립하고 때로는 역할이 바뀌어 서로에게 총을 겨눕니다.누가 더 났다고 할 수 없는 도긴개긴 그리하여 승자도 패자도 없는 진흙탕싸움으로 요술 상자는 하루 종일 뜨겁습니다.진한 선글라스 하나만으로도 섣부른 흑심을 품는 데에는 한 결 마음이 편하듯 부끄러운 낯짝을 가리는 데에 가면이란 얼마나 편리한 도구인지요.온갖 화려 찬란한 스펙을 가면으로 무장한 사람들.현란한 기교를 다 동원하며 재물을 모으고 정의란 가면을 쓰고 비굴하게 권력을 쫓고 온갖 사회적 명망이란 가면을 쓰고 추악한 이성 관계를 탐하는 사람들 그들의 굿판에는 거룩한 목숨을 가진 자로서의 도리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소승이 몸담고 있는 집안 사정도 무도(無道)하기로는 더 말할나위 없는 처지, 반들거리는 머리 우렁찬 염불소리에도 가면과 가식이었던 적이 있었으니 누가 누굴 탓하겠습니까!부끄러운 눈물로 눈자위가 짓물렀습니다. 세상구원은 커녕 조롱과 멸시의 대상이된 최근의 종교는 철저하게 죽어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너와나 도리는 없고 무한 욕심만을 앞세워 물리적인 유형의 대가를 쌓는 것이 삶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되겠지요.남을 생각하지 않고 나만 위한 삶을 거룩하게 볼수는 없지 않겠습니까.나란 독립된 계체가 아니라 그물처럼 연결되어 있는 전체지요, 그 전체 속에 내가 있음으로 나와 남은 전체 속에서 하나입니다.여기에 있는 나와 저 아프리카 그 누구와는 한통속에서 연대합니다.여기서 그물코를 잡아당기면 저 아프리카 그물코 한 자락이 딸려오는 것이지요.그리하여 내가 아프면 그도 아플 것이고 그가 아프면 나 또한 아픈것이지요.이러한 대동적인 삶의 방향이 우리의 지향점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아무리 쌓아둔 재물이 많아도 불행은 있고 하늘을 치솟는 권력이 있어도 불안과 공포는 있습니다.어려운 현실을 탓하며 어쩌다 절망하는 이도 있을것입니다만 평화로운 세상은 재물이 많고 적음, 권력의 높고 낮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희생과 배려, 자비로움의 충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런지요.만약 당신께서 진정한 행복을 꿈꾸신다면 사랑과 연민 기뻐하는 마음과 절대 평등의 정신에서 그 길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내가 믿고 따르는 현자께서 가라사대 “진정한 너의 평화를 위하여 삼업을 청정케하라. 항상 몸뚱이를 단정하게하고 항상 마음을 단정케하고 항상 입을 단정케하라. 그러면 너의 평화가 이루어질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만약 당신의 마음이 삿되려 할 때 만약 당신의 마음이 음탕하여 할 때 만약 당신의 마음이 사악해지려 할 때 만약 당신의 마음이 부귀해지려 할 때 그때에 이르러 그 마음을 따르지 마시기를 부탁드립니다.마음이 모든 세상사를 주재합니다.마음이 사람을 그릇되게 만들며 마음이 몸뚱이를 그르치게도하고 마음이 아라한도 되고마음이 하늘도 되며 마음이 축생도 되고 마음이 지옥도 되며 마음이 아귀도 됩니다.세상만사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지요.마음이 번거로우면 세상이 번거롭고 마음이 깨끗하면 중생계 또한 맑고 깨끗하다고 하였습니다.짧다면 짧은 인생 1막으로 가면유희를 끝낼 때가 되었습니다.당신의 등불을 켜고 세상이치를 밝혀 본래 모습으로 환귀본처 할 때입니다.

한국불교대학 大관음사 우학 큰스님 무일선교법장 출간

대한불교조계종 한국불교대학 大관음사는 불기 2563년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회주 우학 큰스님의 어록집 ‘무일선교법장(無一禪敎法藏)’을 출간했다.우학 큰스님은 27년 전 전세금 3천만 원의 포교법당으로 시작해 오늘의 한국불교대학 大관음사를 이뤘다. 불교 강의를 위해 직접 교재를 만든 것은 물론, 수필과 소설, 시 등 당시 불교계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글들을 남겼다.큰스님은 1992년 창건과 함께 재가 불자들이 불교를 쉽게 공부할 수 있독록 많은 편찬 작업을 했다. 지금의 ‘무일불교의범’의 초석이 된 ‘불자수행지침서’ 편찬을 시작으로 ‘새로운 불교공부’, ‘사경 및 공부 시리즈(총 16종 22권)’를 출간했다.큰스님은 사경집과 경전조사어록 편찬에 멈추지 않고 1996년 ‘저거는 맨날 고기 묵고’라는 수필집을 출판했다. 당시 스님의 수필집은 대중들로부터 많은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경전 해설집 또는 강론집이 대다수였던 불교출판의 영역을 일반 문학으로 확대하는 계기가 됐다.이번에 출판한 어록집 무일선교법장은 자료 수집, 자료 정리, 교정교열 등 책이 나오기까지 3년 여 시간이 소요됐다. 이 책에는 그동안 출판된 300여 권에 달하는 저서들의 핵심과 법문, 강의 내용은 물론, 수행과 기도를 통해 정리해온 사상 등을 총체적으로 담았다.무일선교법장은 크게 ‘특별론’과 ‘일반론’으로 구분돼 있다. 특별론에는 스님의 사상을 위주로 담겨 있고 일반론에는 법문 또는 저서에서 발췌한 내용이 11바라밀(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반야, 방편, 원, 역, 지, 10바라밀에 포교를 더함)로 세분화돼 수록됐다.대관음사 관계자는 “무일선교법장은 '무일 우학'이라는 스님의 말씀이긴 하나 결국 부처님의 말씀이다. 수행을 전문으로 하지 않는 재가 불자들이 접근, 이해하기 힘든 부처님의 말씀을 이 책을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부처님의 말씀대로, 부처님의 법대로 살게 하는 선지식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한편 이 책은 불기 2563년 부처님 오신 날 연등불사에 동참하는 불자에게 무료로 법보시 된다.김혜성 기자 hyesung@idaegu.com

삼국유사 기행 2 -보각국사 일연

“즐겁던 한 시절 자취 없이 가버리고/ 시름에 묻힌 몸이 덧없이 늙었에라/ 한 끼 밥 짓는 동안 더 기다려 무엇 하리/ 인간사 꿈결인 줄 내 인제 알았노라.” 군위군청 뜨락에 세워진 일연 시비에 새겨진 글이다.일연선사가 22세부터 22년간 머물면서 수도했던 곳으로 전해지는 달성군 비슬산에는 일연선사의 흔적을 찾으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일연선사가 머물렀던 곳으로 전해지는 보당암의 터로 전해지는 대견사의 전경. 삼국유사가 일연 스님의 작품이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고 있다. ‘삼국유사’가 허황한 잡학 서적이라는 비난을 받은 시기가 있었던 것처럼, 일연 스님 또한 인각사의 비문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한 시기가 있었다.경산 삼성현역사문화관에 세워진 일연선사의 모습. 지금은 일반적으로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와 함께 고대사를 서술한 역사서의 양대산맥’으로 평가되고 있다. 주보돈 박사는 삼국유사에 대해 “삼국유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삼국사기를 함께 다루어야 하는 빛과 그림자 같은 성격을 가진 신라사의 기본사서”라며 “서로를 대비해야 비로소 그 성격들이 제대로 드러난다”고 평가했다. 일연 스님은 13세기 말 고려시대 국사로 책봉돼 나라의 길을 제시하는 가장 큰 스님이었다. 몽고의 침입으로 나라가 어지러울 때 팔만대장경을 제작하는 일에 직접 참여했으며, 삼국유사와 중편조동오위와 같은 100여 편의 저술을 펴냈다. 아쉽게도 지금까지 남은 저술은 삼국유사, 중편조동오위가 유일하다. 군위 인각사에 남은 일연선사비의 모습. 임진왜란 당시 크게 훼손돼 남은 글자가 거의 없어 안타깝다. 일연스님의 행적은 ‘인각사 보각국사비’의 비문 전체가 실려 있는 탁본이 발견되면서 제대로 알려지기 시작했다.보각국사비는 일연 스님을 기념하여 세운 것으로 탑과 함께 군위 인각사에 있다. 일연의 비문은 전면의 본문은 민지(閔漬)가 짓고, 후면의 음기는 산립(山立)이 지었다. 서성이라 불리는 왕희지의 글씨를 집자하여 세웠다. ◆일연의 행적일연은 고려 희종 2년 1206년 경주의 속현이었던 장산군, 현재의 경산에서 태어났다. 그의 속성은 김씨, 이름은 견명이다. 경산시는 삼성현역사문화관을 설립해 일연선사의 흔적을 더듬어볼 수 있게 하고 있다.일연선사가 태어난 곳은 경산이다. 경산시가 일연선사를 비롯해 3분의 성현을 만나볼 수 있게 조성한 삼성현역사문화관 정문 모습. 일연은 9세에 지금의 광주로 알려진 해양 무량사에서 불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어떤 학자들은 해양이 지금의 영해와 포항지역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광주에도 일연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다. 14세에 설악산 진전사에서 머리를 깎고, 대웅장로에게 구족계를 받아 본격적인 승려의 길을 걸었다. 이어 강석과 선림을 편력하면서 수행해 동료들로부터 구산사선의 으뜸으로 평가받았다. 일연선사가 36여년간 머물렀던 달성 비슬산. 유가사에 세워진 일연선사의 시비. 일연은 22세에 승과 선불장에서 상상과에 합격하고, 현재 달성 비슬산인 포산 보당암에 주석하며 수행했다. 그는 22년간 포산의 여러 사찰에 머물면서 특정 신앙이나 종파에 매이지 않고 신앙과 사상 공부에 매진했다. 비슬산에 그의 흔적을 쫓아 대견사, 유가사 등의 사찰과 함께 일연 시비와 동상이 세워져 있다.일연선사가 14세에 머리를 깎고 본격적인 불법을 공부하기 시작한 설악산 진전사의 삼층석탑. 44세에 정안이 설립한 남해 정림사에 초청되어 주법이 되었다. 고종 46년, 54세에 일연은 대선사가 되었다. 2년 뒤 56세에 왕명을 받아 강화 선월사에서 활동하게 되었다.달성군 비슬산 자락에 세워진 일연선사 동상. 원종 5년 1264년에는 영일 운제산 오어사 주법으로 있다가, 다시 포산 인홍사(仁弘寺)로 옮겼다. 1274년 인홍사를 중수해 사액을 받아 인흥사(仁興寺)로 개명했다.또 포산 동쪽에 있는 용천사를 중수해 불일사로 절 이름을 바꾸고 수행을 이어갔다. 일연선사가 머물면서 삼국유사를 집필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청도 운문사. 충렬왕 3년, 72세에 왕명을 받아 운문사에 주석하면서 선풍을 높였다. 특히 운문사에서 삼국유사를 썼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지만, 운문사에는 그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충렬왕 8년에는 개경의 광명사에서 주석하기도 했다. 그다음 해 일연은 원경충조(圓徑冲照)라는 호를 받으면서 국존으로 책봉됐다. 국사가 아닌 국존으로 책봉한 것은 원나라가 쓰는 국사 칭호를 쓰지 못하도록 간섭했기 때문이다.군위 인각사에 남은 일연선사부도비. 일연은 1283년 78세에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군위 인각사로 내려왔다. 일연은 인각사에서도 2회에 걸쳐 구산문도회를 개최했다. 이는 가지산문을 중심으로 불교계의 교권을 확보하고자 하는 의미가 깊은 것으로 해석된다.군위 인각사 국사전에 안치된 일연선사의 진영. 일연은 충렬왕 15년, 1289년 7월 84세의 일기로 인각사에서 입적했다. 인각사에 머무른 지 6년 만의 일이다. 보각국사 일연선사의 진영을 안치하고 있는 인각사의 국사전. 삼국유사는 일연의 사후 보각국사로 추증되면서 청분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청분은 삼국유사에 무극으로 등장하는 일연의 제자로 전해지고 있다. 무극은 일연의 사후에 행장을 지어 충렬왕에게 바치는 등 일연을 추종하면서 일연이 입적한 해에 운문사 주지직을 맡은 인물이다. ◆보각국사비일연이 입적하고 6년이 지난 1295년, 그가 입적한 인각사에 ‘보각국사비’가 건립됐다. 일연의 제자 혼구, 무극, 청분으로 불리는 스님의 행장으로 민지가 짓고 왕희지의 글씨를 집자해 비명을 새겼다. 비의 뒷면에 진정대선사 청분(무극)이 세운 경위를 적고, 문도와 단월들의 이름을 열거한 음기를 새겼다. 비문에는 일연의 저술로 ‘어록’ 2권, ‘게송잡저’ 3권, ‘중편조동어위’ 2권, ‘조파도’ 2권, ‘제승법수’ 7권, ‘대장수지록’ 3권, ‘선문염송사원’ 30권, ‘중편조정사원’ 30권 등 100여 권이 기록되어 있다.일연선사비의 탁본이 발견되면서 전체 글자를 알게 됐다. 비가 발견되었던 곳에 복원해 세운 인각사의 일연선사비. 이 가운데 ‘중편조동오위’가 일본에서 발견돼 삼국유사와 함께 유일하게 현존하는 일연의 저술로 남아있다. 비문의 말미에 “스님은 사람됨이 성품을 꾸미지 않았으며 진정으로 사물을 대하였다. 무리 가운데 있으면서도 홀로 있는 듯하였고, 존귀함과 비천함을 같이 생각하였다. 불도를 닦는 여가에 대장경을 열람하고 여러 전문가의 주석을 깊이 연구하였다. 겉으로 유가의 책을 섭렵하고 겸하여 백가를 꿰뚫었으니, 처방에 따라 사물을 이롭게 하고 신묘한 쓰임이 종횡무진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보각국사비는 보물 제428호로 지정돼 현재 군위 인각사에 보존되고 있지만, 많이 훼손된 상태여서 일부 비문을 겨우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왕희지 글씨가 희귀하여 너도나도 탁본하면서 훼손이 크게 진행되었다. 임진왜란 때 왜병들이 파손을 자행했다는 기록도 전한다. 다행히 탁본이 발견되면서 비문의 전문을 새긴 ‘보각국사비’를 복원해 처음 발견되었던 곳에 세워 후인들이 기념할 수 있게 했다. ◆비슬산과 설악산 진전사일연선사 수행의 길은 비슬산과 진전사에서 찾아야 한다. 9세에 무량사에서 공부를 시작했지만, 본격적인 수행은 14세에 머리를 깎고 설악산 진전사에서 대웅장로로부터 구족계를 받아 본격적인 승려의 길을 걸었으며, 비슬산에서 22년간이나 수도 정진했기 때문이다. 설악산 진전사는 통일신라 헌덕왕 821년 도의국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신라말에서 고려 초에 선종의 종찰이자 당대의 선승 염거화상, 보조국사 등이 득도한 곳이다. 일연선사가 체발득도한 선종의 대본찰로 기록되고 있다. 1467년까지 존속되었던 것으로 전해지지만, 일제강점기에 둔전사로 불리어 오다 발굴조사에서 진전사라는 기와편이 발굴되면서 현재 터가 재확인되었다. 국보 제122호인 진전사지 삼층석탑과 보물 제439호 도의국사의 부도탑이 남아있다.일연선사가 가장 오래 머물렀던 비슬산. 그 계곡에 마치 예술작품 같은 얼음이 얼어 장관이다. 일연은 22세에 승과에 합격한 이후 비슬산에서 22년간 머물며 보당암, 무주암 등에서 깨우침을 얻고, 4개소의 암자와 절에서 수행을 이어갔다. 지금 비슬산에는 대견사가 있다. ‘크게 보고’, ‘크게 느끼고’, ‘크게 깨우친다’는 뜻이다. 신라 헌덕왕 때 810년 보당암으로 창건했는데, 조선 세종 때 대견사로 개칭되었다. 일연선사가 22세에 주지로 주석했던 곳이라 전한다. 대견사는 일제강점기 1917년 일본의 기를 꺾는다는 속설에 따라 강제 폐사되었다. 100여년 동안 폐사지로 방치되어 오다가, 2012년 동화사와 달성군 협약으로 정식사찰로 재등록해 호국사찰로 복원되었다. ◆운문사운문사는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운문산 기슭에 있다. 청도군에서 동으로 약 40㎞ 지점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9교구 말사이다. 청도군에 속해 있으나 교통 편의상 대구와 생활권이 밀접해 있고, 경주와 울산 등지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일연선사가 머물면서 삼국유사를 집필했다는 청도 운문사 입구의 소나무 숲길. 신라 진흥왕 21년인 560년에 한 신승에 의해 창건돼 원광국사, 보양국사, 원응국사 등에 의한 제8차 중창과 비구니 대학장인 명성스님의 제9차 중창불사에 의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경내에는 천연기념물 180호인 처진 소나무와 금당 앞 석등을 비롯한 보물 7점을 소장하고 있는 유서깊은 고찰이다. 사찰 주위에는 사리암, 내원암, 북대암, 청신암 등 4개의 암자와 울창한 소나무, 전나무 숲이 있어 이곳의 경관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특히 운문사는 신라 삼국통일의 원동력인 ‘세속오계’를 전한 원광국사와 일연 선사가 오랫동안 머물면서 삼국유사를 지었다는 내력으로 더욱 유명하다. 지금은 260여 명의 학승이 4년간 경학을 공부하는 우리나라 최대의 비구니 교육기관이 자리한 사찰이다. 높이 1천188m 고지로 태백산맥의 가장 남쪽에 있는 운문산은 동으로 가지산, 남으로 재약산, 영축산 등과 이어져 있어, 산악인 사이에 ‘영남의 알프스’라 불리고 있다. 운문산은 산세가 웅장하며 나무들이 울창하여 등산객이 많이 찾는다. 이곳에는 운문사를 비롯한 크고 작은 절과 암자가 있고, 주변 경관이 매우 아름답다. 일연선사가 운문사에 주석하면서 삼국유사를 집필했다는 연구보고서들이 나오고 있지만, 운문사에는 이렇다 할 일연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 ◆인각사인각사는 군위군 고로면 화북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절터로 전해지면서 사적 제374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인각사의 옛터는 남북이 좁고 동서는 넓은 평지를 이루는 곳에 있었는데, 현재의 사찰 경내는 좁고 좌·우측에 있는 넓은 평지는 밭으로 경작되고 있다. 인각사는 신라시대 선덕여왕 12년인 643년에 원효(元曉)가 창건했다. 절의 입구에 깎아지른 듯한 바위가 있는데, ‘기린이 뿔을 이 바위에 얹었다’고 하여 절 이름을 ‘인각사’라 하였다고 전한다. 1307년(충렬왕 33년)에 일연이 중창하고, 이곳에서 삼국유사를 저술했다고 일부 학자들과 군위군은 주장하고 있다. 당시 이 절은 크고 높은 본당을 중심으로 그 앞에 탑, 좌측에는 회랑, 우측에는 이선당(以善堂), 본당 뒤에 무무당(無無堂)이 있었다고 한다. 일연은 이곳에서 총림법회 등 대규모의 불교행사를 개최했다. 조선 중기까지 총림법회를 자주 열고, 승속(僧俗)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하나 그 뒤의 역사는 전하지 않는다. 지금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의 말사로 등록되어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법당과 2동의 요사채뿐이다. 중요문화재로는 보물 제428호로 지정된 인각사보각국사탑과 비가 있다. 일연선사비는 임진왜란의 병화 등으로 글자의 훼손이 심해 알아보기 어렵다. 법당 앞에는 신라시대 삼층석탑이 있다. 탁본이 발견되면서 비문의 전문을 알게 돼 절의 동남쪽에 일연선사비를 복원해 세워두고 있다. -------------------------------------------------------------------------------------------*작가 일연의 생애(표 작성)-1206년(고려 희종 2년) 경산에서 태어났다.아버지는 지방토호 김언필, 어머니 이씨-1214년 9세에 광주(또는 영일, 영해지역) 무량사에 들어가 학업 시작,-1219년 14세 설악산 진전사의 대웅장로부터 구족계 받음.-1227년 22세에 승과에 합격, 현풍 비슬산 보당암-1237년 32세 포산(비슬산) 무주암에서 ‘생계불감 불계불증’을 화두로 깨달음을 얻었다.-1249년 44세 남해 정림사 주법나라에서 삼중대사, 선사(41),-1256년 54세 대선사가 됨-1261년 56세 강화 선월사 주지로 부임-1264년 59세 운제산 오어사, 포산 인흥사, 불일사(용천사), 인흥사에 주석-1277년 72세 운문사 주지 취임, 1277년 삼국유사 저술 시작 1281년 1차 완성.-1283년 78세 인각사 선도 정진하며 후학의 교육-1289년 84세 입적(인각사)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자은스님 사진전 열려

칠곡군 동명면 법성사 주지 자은 스님이 직접 촬영한 새 사진 작품 40여 점이 29일까지 칠곡군청 1층 홍보관갤러리에서 전시된다. 이임철 기자 im72@idaegu.com

김천 직지사와 자비명상 연수 업무협약 체결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 김천 직지사(주지 법보스님)와 자비명상(이사장 마가스님)이 지난달 26일 직지사종무소에서 업무협약을 맺고 직지사의 포교 활성화에 들어갔다.양 기관은 업무협약을 통해 △직지사의 템플스테이 프로그램 개발 및 운영 △연수 강사 활용 및 소양 교육 △홍보 확대 등을 상호 협력하기로 약속했다. 자비명상은 1천6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직지사의 특징을 살린 스토리텔링을 개발하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직지사는 이날 가수 겸 방송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최진규씨를 포교 홍보대사로 임명했다. 법보 스님은 “새로운 시대상에 걸맞은 포교도량과 포교의 중심 교구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법보 스님은 마곡사의 템플스테이를 성공적으로 이끌었고, 이후 ‘자비명상’이라는 자신만의 트렌드를 확립한 마가 스님을 직지사연수원장으로 임명했다. 문의는 자비명상 사무실(02-2682-0260). 김천 직지사 주지 법보 스님(왼쪽 두 번째)과 자비명상 이사장 마가 스님(오른쪽)이 업무협약을 맺었다.안희용 기자 ahyon@idaegu.com

정법 스님 유산과 자신의 몸까지 후학을 위해 기부

“공수래공수거라는 말의 의미를 배웁니다.”비구승 정법 스님이 최근 세상을 떠나면서 모든 유산을 기부하고 자신의 몸까지 동국대 경주캠퍼스에 기증한 사실이 알려져 감동을 주고 있다.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에서 2016년 진행된 후원의 밤 행사에 참석하고 있는 정법 스님. 전남 영암 지장사 주지를 지낸 정법 스님은 지난 17일 병환으로 입적했다.정법 스님은 지난 2014년 “불교의 발전은 인재 불사에 있다”며 “동국대 경주캠퍼스가 훌륭한 불교 인재를 양성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며 사후 시신을 기증하고, 전 재산을 학교에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다.스님의 약속에 따라 입적 후 유산 1억4천만 원을 동국대 경주캠퍼스에 기증하고 본인의 시신 또한 동국대학교 의과대학에 교육용으로 기증하게 됐다. 스님은 앞서 2012년부터 6천300여만 원을 동국대 경주캠퍼스에 기부한 바 있다. 지난 24일 오전 7시 경남 하동군 봉화사에서 스님의 49재 초재가 열렸다. 일생을 불교 발전과 인재 불사를 위해 노력하고 삶의 마지막까지 보시행을 실천한 스님에게 신도들과 동국대 경주캠퍼스 관계자들은 감사와 애도를 표했다.이대원 동국대 경주캠퍼스 총장은 “가시는 길에 모든 것을 동국대 경주캠퍼스에 맡기신 스님의 메시지는 오직 참사람 인재를 키워 달라는 것”이라며 “정법 스님을 비롯한 기부자님들의 뜻을 받들어 학생들을 훌륭한 인재로 육성할 것”이라 말했다.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청송 천혜사 쌀 100포 기탁

청송군 현서면 천혜사 주지 선종 스님(왼쪽)은 28일 청송군을 방문해 어려운 이웃들에게 전달할 쌀 1천kg(10kg 100포대)을 기탁했다. 천혜사는 매년 설에 쌀 1천kg을 전달하고 있다. 청송 천혜사 선종스님이 어려운 이웃에게 전해 달라며 윤경희 군수에게 쌀 1천kg을 기탁하고 있다.임경성 기자 ds5ykc@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