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경찰서, 국가유공자 명패 달아들이기 행사

영주경찰서가 8일 월남전 참전 국가유공자 김모(71)씨의 자택을 방문해 ‘국가유공자 명패 달아주기’ 행사를 진행했다.국가보훈처와 협업으로 추진되는 국가유공자 명패 달아드리기 행사는 국가유공자의 자긍심 제고 및 애국심 고취를 위해 공공기관장, 지방자치단체장 등이 직접 찾아가 명패를 달아주는 국가적 사업이다. 명패를 교부받은 국가유공자 김씨는 “경찰서장이 직접 찾아와 명패를 달아주고 예우를 갖춰주니 나라를 위해 헌신한 것이 뿌듯하고 더욱 자긍심이 생긴다”며 감사를 전했다. 김주은 기자 juwuery@idaegu.com

‘영남 인동초’… 아들이 쓴 야당 정치인 아버지 일대기

야당 불모지 영남에서 독립운동 하듯 험난한 야당 정치인의 길을 고집하며 묵묵히 걸어온 이육만 더불어민주당 경북도당 상임고문의 일생을 조명한 책, ‘영남 인동초(忍冬草)’가 출간됐다.이육만 고문은 1971년 대통령 선거 때 신문사 기자로 활동하며 취재를 통해 만난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40여년 가까이 이어가면서 이른바 ‘DJ 정당’으로 자신이 낙선한 3번의 선거를 포함해 야당으로 무려 10번의 선거를 치르며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 평생을 바쳐온, 영남 지역 야당 역사의 산 증인이다.책의 저자는 이육만 고문의 장남인 이성훈 대구MBC 전 보도국장이다. 저자는 기자로서 날카로운 시각과 간결한 필체로 아버지의 일생을 재평가하고 시대의 귀감이 될 그의 삶을 조망하고 있다.저자는 이 책에서 아버지의 일생을 전쟁 고아들과 함께 한 청소년기, 불의에 맞서 정론직필을 위해 뛰어다니던 언론사 기자 시절, 교사로서 인성교육을 강조하던 교단생활, 질곡의 야당 정치인 시절,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가는 황혼기 등 5개 범주로 나누고 시기별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일대기를 서술했다.에피소드 가운데는 어둡던 야만의 시절, 인혁당 당수로 사형을 당한 도예종과의 인연과 영남 원외지구당 위원장으로 동병상련을 나누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인연 등이 포함돼 있어 눈길을 끈다.저자는 경제적으로 무능한 아버지를 둔 탓에 20번 이상 이사를 다녀야 했던 자신을 포함한 가족들의 애환과 야당 정치인으로서의 무기력함에 눈물을 흘리며 고뇌하는 아버지의 내면세계 등을 잔잔한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이 책의 장르는 독특하다. 저자는 이 책의 장르를 자서전(自敍傳)의 스스로 자(自)를 아들 자(子)로 바꾼 ‘자서전(子敍傳)’이라 이름 짓고 평전 분야 새로운 장르로 선언한다.저자는 “자식이 부모의 일생을 기록하는 ‘자(子)서전’을 가풍으로 이어가려고 그 프로젝트 1탄으로 세상에 책을 냈다”고 설명했다.이성훈 지음, 한국정보인쇄 펴냄, 가격 1만8천 원.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문향만리…수난 이대

수난 이대“…정치 좀 똑바로 하라고…” 하근찬 박만도는 전쟁에서 돌아오는 아들 진수를 마중하러 아침 일찍 집을 나선다. 급한 마음에서 평소보다 빨리 읍내에 도착했다. 장터에서 고등어 한 손을 사들고 기차역으로 갔다. 대합실에 앉아 잘려나간 왼팔을 보며 지난 일을 회상한다. 일제 때, 그는 강제 징용되어 남양의 섬으로 갔다. 그 섬에서 산을 깎아 비행장 만드는 일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연합군의 공습이 있었다. 격납고를 파던 굴로 피신했으나 다이너마이트가 터지는 바람에 왼팔을 잃었다. 불길한 기억이다. 이윽고 기차가 도착하고 아들을 만난다. 진수는 외다리로 목발을 짚고 나타난다. 만도는 극도로 속이 상했다. 주막에서 한잔 걸치고 국수를 사 먹이며 평정심을 되찾아간다. 만도가 소변볼 때, 진수가 고등어를 들어준다. 오른손 밖에 없는 만도에게 양손이 다 있는 진수의 도움이 요긴하다. 외나무다리를 만난다. 외다리 진수가 목발을 짚고 건너기는 무리다. 만도는 진수에게 등에 업히라고 한다. 아버지는 아들을 업고 아들은 아버지의 고등어를 들고 외나무다리를 건넌다. 우뚝 솟은 용머리재가 이 광경을 지켜본다…. 아버지는 태평양전쟁으로 한쪽 팔을 잃었고, 아들은 한국전쟁으로 한쪽 다리를 잃었다. 전쟁으로 인해 2대가 소중한 몸을 손상당하는 기구한 운명에 기가 막힌다. 왜 죄 없는 사람이 그런 억울한 일을 당해야 하는지, 왜 하필 그들 부자에게 연속적으로 그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는 지, 그 답을 알 수가 없다. 뭔가 잘못되었다. 책임 있는 대상을 찾아내어 복수할 생각을 한들 그걸 탓할 수 없다. 복수까진 아니더라도 배상 정도는 주장할 수 있을 터다. 물러터진 사람이라면 실의에 빠진 채 퍼질러 앉아 팔자 탓만 할 만하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여 삶을 포기하는 경우도 간혹 본다. 아버지는 징용으로 끌려가 왼팔을 잃었지만 낙담하지 않고 굳세게 살아왔다. 나라를 빼앗긴 조선의 양반을 욕하지 않았다. 전쟁을 일으킨 일제 탓을 하지도 않았다. 섬을 공습한 미군을 원망하지도 않았다. 그저 최선을 다해 주어진 삶을 살아왔다. 유사한 비극적 운명을 이어받은 아들을 보면 참담한 기분이 든다. 아무나 잡고 실컷 두들겨 패고 싶다. 하지만 그는 평정심을 되찾고 비극적인 현실을 받아들인다. 목숨만 붙어 있으면 살아갈 수 있다고 아들을 위로하며 삶의 의지를 일깨워준다. 난관을 극복하려 혼자 몸부림치지 않는다. 각자의 장점을 활용하여 상부상조하면 장애를 거뜬히 극복할 수 있다는 걸 안다. 서로에게 팔과 다리가 되자고 한다. 팔 없이 꿋꿋이 살아온 아버지를 지켜본 아들이기에 그 말이 허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소변을 보면서 느꼈고, 외나무다리를 건너면서 깨달았다. 아버지는 돌아다니는 일, 아들은 집에서 하는 일을 하면 된다. 서로의 결손을 채워주는 삶이다. 아버지의 분노와 절망감이 애정과 희망으로 바뀌고, 아들의 상실감과 두려움이 자신감과 용기로 전환된다. 역사적 비극도 신뢰와 배려로써 협력하고 화합한다면 너끈히 극복할 수 있다는 긍정적 휴머니즘이 물씬 풍긴다. 한편,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 만신창이가 된 채 삶의 현장을 묵묵히 지키고 있는 민초들이 단단히 마음먹고 지도층에게 일갈하고 있다. 민초의 거친 삶을 보고서, 양심이 있으면, 제발 정치 좀 똑바로 해서 사람답게 살게 해달라고, 잔잔하게 꾸짖는다. 죽창 들고 나서는 사람보다 인내하고 삭이는 사람이 실상 더 고수다. 잘못된 것을 긍정과 관용으로 받아치는 작가의 노련함이 행간에 숨어있다. 오철환(문인)

시대상을 반영한 여류 소설가들의 작품

혼돈스런 일상에도 창틀에 스며드는 햇살은 따사롭기만 하다. 잠시 모든걸 잊고 재미있는 한 권의 소설에 빠져드는 것도 기분 좋은 힐링이다. 이번 주에는 우리가 살고있는 현재 사회상을 반영한 여류 소설가들의 최신 작품을 소개한다. ▲서울대 나라의 헬리콥터 맘 마순영 씨/김옥숙 지음/ 새움/380쪽/1만4천 원어릴 때부터 공부를 아주 잘했지만 지독한 가난으로 대학을 그만둬야 했던 마순영 씨. 가난하면 꿈조차 좌절되는 현실에 절망했던 그녀는 못다 이룬 꿈을 아들을 통해 실현하려 한다. 바로 아들을 서울대에 보내는 것!속물이라고 비웃어도 상관없다. 대대손손 ‘흙수저’인 부모로서, 아들이 명문대에 가서 돈도 많이 벌고 사회적으로 성공하기를 바라는 건 당연한 마음 아니겠는가? 그녀는 좋은 학벌을 가져야만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했고, 흙수저가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생존수단은 공부밖에 없다고 믿었다.금수저는 금수저대로 흙수저는 흙수저대로 하늘 높이 치솟으려는 염원을 담아 종교를 만들어냈으니 그것은 스카이교, 바로 서울대교이다. 대한민국 공식·비공식 종교에 등장하지 않지만, 서울대교라는 이상한 종교의 역사는 꽤나 오래된 편이다. 그리고 마순영 씨는 서울대교의 광신도를 자처한다.소설은 마순영 씨가 아들을 위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시간 순서대로 보여준다. ‘부산의 강남’이라 불리는 해운대구에서, 돈이 없어 학원을 한 군데도 못 보낸 아들은 전교 1등을 하고, 모의고사 만점을 받기도 한다. 아들이 어릴 때부터 24시간을 감시·관리하다시피 했던 마순영 씨는 자신이 아들에게 최적화된 입시 전문가라고 굳게 믿으며 ‘헬리콥터 맘’으로서 최선을 다한다.실제 아들을 서울대에 보낸 작가의 경험이 소설에 많이 녹아 있다. 작가는 “이 소설은 가장 자전적인 소설이다. 못나고 나쁜 엄마 이력서를 부끄럽지만 그대로 드러냈다. 욕심 많고 어리석은 헬리콥터 맘의 이력서, 길고 긴 엄마의 반성문이다”라고 고백한다. 입시전쟁 한가운데 뛰어들어 바라본 아이들과 학부모의 고통, 그리고 그 속에서 발견하는 희망이 생생하게 펼쳐진다.무한 경쟁 사회는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남을 짓밟고 올라서라고,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제 살길만 찾으라고, 느릿느릿 걷다가 굶어 죽고 싶냐고, 불안을 키우고 욕망을 부풀린다. 경쟁 사회가 만들어낸 욕심과 불안감이란 감옥에서 못 나오는 엄마들은 아이를 공부의 노예로 만들었다. 내 자식은 남들보다 앞서나가게 하고 싶다는 욕망이, 남들보다 뒤처지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헬리콥터 맘이란 괴물 엄마와 공부 기계가 된 괴물 아이들을 만들어냈다. ▲아직 멀었다는 말/권여선 지음/문학동네/284쪽/1만3천500원한국문학의 질적 성장을 이끈 대표적 작가 가운데 하나 라는 평에 걸맞게 발표하는 작품마다 비상한 관심을 모으며 한국문학의 품격과 깊이를 더하는 권여선의 여섯 번 째 소설집이다. 제목인 ‘아직 멀었다는 말’은 “문득 소희는 새처럼 목을 빼고 어디까지 왔나 확인하듯 창밖의 거리를 내려다본다. 할머니가 아흐 어하 소리를 내며 하품을 한다. 그건 아직 멀었다 소희야, 하는 말 같다”라는 문장에서 가져온 것이다.소희는 일하는 매장에서 박스를 들어올리다 박스 아래에 튀어나와 있던 굵은 고정쇠가 손톱을 뚫고 나와 손톱 절반이 뒤로 꺾이고 살이 찢긴다. 하지만 대출금과 옥탑방 월세 등을 생각하면 아득해지는 탓에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다. 갚아야 할 빚과 모아야 할 돈을 백 원 단위까지 끊임없이 계산하는 스물한 살의 소희. 그런 소희에게 유일한 사치는 아침 통근버스를 탈 때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이다.N도 소희와 사정이 비슷하다. 기간제교사로 두 달간 고등학교에서 일하게 된 N은 그 세계에서 은근히 비정규를 무시하는 교사들의 속내를 예민하게 간파한다. 그는 “치사하고 악질적인 쪼개기 계약과 계약 연장 꼼수”에 넌더리가 나 계약기간이 끝나면 학교를 깨끗이 그만둘 생각을 한다. 하지만 N은 요양병원에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소희가 일반 짬뽕보다 오백원 더 비싸다는 이유로 매운 짬뽕을 포기하는 것처럼, N은 계약기간을 연장함으로써 받게 되는 한 달 치 월급과 그 돈으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을 가늠 한다.이처럼 이번 소설집은 촘촘한 묘사와 생생한 캐릭터로 한국사회의 문제점을 에두르지 않고 짚어나가는 권여선만의 특기가 여전한 가운데, 한편으로는 ‘안녕 주정뱅이’ 이후 권여선 소설의 새로운 결을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또한 주목할 만하다.이 소설은 그간의 한국문학에서 드물었던 레즈비언 할머니의 모습을 그려냈다는 점에서도 특기할 만하지만, 레즈비언 커플을 향한 외부의 압력을 묘사하는 것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그들 사이에 해소되지 않고 남아 있는 어떤 감정을 집요하게 응시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유니폼/박영희 지음/도서출판 북인/220쪽/1만3천 원박영희 작가가 주목한 이번 장편소설의 주제는 ‘유니폼’이다. 정식직원과 계약직원의 유니폼이 다른 회사, 늘 푸대접받는 계약직원의 유니폼을 벗고 정식직원 유니폼을 입기 위해 갖은 고초를 견뎌야 하는 여자 주인공 정미정의 눈물겨운 사투가 소설 전편에 펼쳐진다.이를 위해 박영희 작가가 소재로 끌어들인 것은 1960년대에 일어난 미원과 미풍의 조미료전쟁의 후속편 격인 1980년대 대기업 ‘다시다’와 중소기업 ‘맛나’의 천연 조미료전쟁이다. 그 천연 조미료전쟁의 한복판에서 ‘맛나’의 계약직원으로 근무했던 주인공의 애환을 적나라하게 담고 있다.박영희 작가는 유니폼은 ‘내가 누구인지 깨우쳐주는 충고’였다고 고백한다. 아이들이 대학 졸업하면 괜찮겠지 하며 버틴 희망은 부모와 자식의 위치가 어느 계급에 속하는지를 알아차리게 하는 과정이었다고 한다.‘수습은 유전된다’는 말은 그냥 무심결에 나온 말이 아니었고 작가의 속에서 오래된 젓갈마냥 곰삭아서 나온 말이었다. 그러면서 작가는 자신이 겪었던 수습시절이 KTX 속도처럼 빠르게 다가왔다고 고백한다. 사회가 규정하는 정상적인 인간이 되기 위해, 그 힘센 권력을 갖기 위해 얼마나 애태웠던가. 계약직의 기억들이 30년이 훨씬 넘게 흐른 지금도 유효하다는 것이 씁쓸하다고 토로한다.박영희 작가는 자신이 취업했던 그 시절이나 자녀들이 취업할 지금이나 사회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고 단언한다. 박 작가는 ‘프롤로그’에서 “1990년대 생들은 현대사의 한 페이지에 참여한 세대이기도 하다. IMF시절 금모으기 운동에 자신의 돌반지도 기꺼이 바친 아이들이니깐 태어나자마자 나라를 위해 반강제(엄마들에 의해)로 힘을 실어준 세대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엄마들은 자신들의 결혼예물도 보탠 대단한 엄마들이기도 했다.10명이 넘는 아이들 중에 밥벌이하는 아이와 대기업에 취업을 한 녀석은 고작 두세 명 정도다. 나머지는 여러 항목에 해당하는 취준생들이다. 그래서 씁쓸했다. 그 씁쓸함이 내 아이들의 시대인 1990년대 생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 장편소설 ‘유니폼’을 쓰게 된 계기라고 말하고 있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삼국유사 기행 (52) 무왕

백제 30대 무왕은 탄생과 아버지, 왕비, 즉위 과정 등등 무성한 추측이 난무하고 있는 수수께끼의 왕이다. 아버지가 법왕이었다는 이야기와 몰락한 왕족, 위덕왕, 심지어 용이라는 이야기까지 여러 가지 설화 같은 이야기로 상상 속의 주인공이다.무왕이 즉위 당시 왕궁은 사비성, 지금의 부여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러나 무왕은 익산에 집착한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익산에 미륵사를 건립한 것과 그가 생전에 자신의 무덤을 익산에 마련한 것도 그중의 하나다.삼국유사에서 미륵사지는 무왕이 선화공주를 위해 지은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미륵사지 서탑 사리봉영기에서 무왕의 왕비는 당시 최고의 귀족 사씨 가문의 딸이라 기록하고 있다. 사택적덕의 딸인 백제 왕후가 미륵사 서원의 발원 주체라고 명시하고 있다.무왕은 41년간이나 왕위에 있었고, 미륵사 서탑은 무왕 39년에 세워졌다. 또 고구려가 왕비를 여러 명 두었던 것처럼 무왕도 왕비가 여럿이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오히려 설득력을 얻어 선화공주의 존재를 긍정하게 한다.무왕 시기에 백제는 신라와 13차례의 전쟁을 벌였다. 당시 접경지역의 백성들은 신랑과 각시처럼 평화적인 분위기를 희망해 서동 설화를 꾸몄을 가능성이 있다는 학자들의 주장도 있다.익산에서 발굴된 대왕묘는 무왕의 묘이고, 쌍릉으로 불리는 서쪽의 소왕묘는 당연히 선화공주의 무덤으로 전해졌다. 고려사에서 익산에 말통대왕과 왕비의 무덤이 있다고 뒷받침한다. 전주박물관의 익산 쌍릉발굴보고서에는 신라에서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토기와 20~40세 여성의 치아가 나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학자들은 이를 토대로 선화공주의 무덤일 것이라 주장하며 서동과 선화공주의 이야기가 단순한 설화가 아닌 역사라고 해설하기도 한다.◆삼국유사: 무왕백제 제30대 무왕의 이름은 장(璋) 이다. 어머니는 과부였는데, 서울의 남쪽 연못가에 집을 짓고 살다 그 못의 용과 정을 통해 그를 낳았다. 어려서 이름은 서동(薯童)인데 재주와 도량이 헤아리기 어려웠다. 늘 마를 캐서 팔아 생활했으므로 사람들이 이름을 그렇게 부른 것이다.신라 진평왕의 셋째 공주인 선화가 세상에서 둘도 없이 아름답다는 소문을 듣고, 서동은 머리를 깎고 신라의 서울로 갔다. 동네 아이들에게 마를 나눠주었더니, 아이들이 그에게 가까이 붙었다. 그래서 아이들을 꾀어 “선화공주님은/ 남모르게 짝지어 놓고/ 서동 서방을/ 밤에 알을 품고 간다”는 노래를 지어 부르게 했다.노래는 서울에 쫙 퍼지고 대궐까지 들리게 되었다. 신하들이 강력히 요청해 공주를 먼 곳으로 유배 보내게 되었다. 결국 공주가 떠나게 되자 왕후는 순금 한 말을 여비로 주었다.공주가 유배지에 도착할 즈음 서동이 나타나 절하고는 모시고 가려 했다. 공주는 그가 어디서 온 사람인지 몰랐지만 우연이라 믿고 기뻐했다. 그래서 서동이 공주를 따라가게 되고 몰래 정도 통하였다. 그런 후에야 공주는 서동이라는 이름을 알게 되고, 노래대로 이루어지는 기묘한 체험에 놀랐다.그들은 함께 백제로 갔다. 어머니가 준 금을 꺼내어 살아갈 길을 의논하려 하자 서동은 크게 웃으며 “이게 무슨 물건이오”라고 묻자 “이건 금인데 백년은 부자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고 했다.서동이 “내가 어려서부터 마를 캐던 곳에는 이런 것이 흙처럼 쌓여 있소”라 하자 공주는 그 말을 듣고 “이것은 세상에서 가장 큰 보물이랍니다. 그 보물을 우리 부모님이 계신 궁궐로 실어보내는 것이 어떨지요”라고 제의했다.서동은 그러자 했다. 그래서 그 금을 모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용화산의 사자사에 있는 지명법사에게 가서 금을 옮길 방법을 물었더니 “내가 신통력으로 보낼 수 있으니 금을 가져오시오”라고 했다.공주가 편지를 써서 금과 함께 사자사 앞에 가져다 놓았다. 법사는 신통력으로 하룻밤에 신라 궁궐로 금을 보냈다. 진평왕은 신통한 조화를 기이하게 여기고 높이 받들어 주면서 자주 편지를 보내 안부를 물었다. 서동이 이로 말미암아 인심을 얻어 왕위에 올랐다.하루는 왕이 부인과 함께 사자사로 거동하는 길에 용화산 밑의 큰 연못가에 이르렀을 때 미륵삼존이 나타나자 수레를 멈추고 절했다. 부인이 왕에게 “이곳에 큰 가람을 세우는 것이 제 소원입니다”고 말했다.왕이 허락하고 지명법사에게 못을 메울 일에 대해 묻자 신통력을 써서 하룻밤 사이에 산을 무너뜨려 못을 메우고 평지로 만들었다. 그리고 미륵상 셋과 전각, 탑 및 회랑을 각기 세 곳에 세운 다음 미륵사라 했다. 진평왕이 온갖 기술자들을 보내 도왔는데 지금도 그 절이 남아 있다.◆새로 쓰는 삼국유사: 무왕은 백제의 첩자무왕은 위덕왕의 아들이다. 위덕왕이 궁궐 남쪽 연못가에서 연회를 즐기다 만난 여인과의 사이에서 출생해 궁궐 밖에서 성장했다. 위덕왕은 당시 아버지 성왕으로부터 왕위를 계승해 국권을 안정시키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때문에 아들들의 불화를 우려해 궁궐 밖에서 무왕을 돌보면서 무예는 물론 왕족으로서 자질을 키울 수 있도록 많은 교육도 받도록 지원했다.무왕은 뛰어났던 성왕과 위덕왕의 자질을 타고 태어나 매우 현명했다. 신체적 조건 또한 늠름한 모습에다 무술을 연마하기에 최적의 상태를 갖추어 기마술, 창과 칼, 활 솜씨까지 빼어나게 뛰어났다.위덕왕은 무왕이 18세에 이르자 그를 신라에 첩자로 보냈다. 마를 캐는 서동으로 변장시켜 그의 어머니와 함께 신라에서 활동하며 궁궐 내부 사정까지 다양한 정보를 캐내어 보고하도록 했다.서동은 신라의 서울, 궁궐에까지 드나들면서 진평왕의 셋째딸 선화공주의 빼어난 미모를 흠모하여 사랑에 빠져버렸다. 서로 마음이 통하게 된 서동과 선화공주는 꾀를 내어 결혼에 골인하게 되었다. 선화공주가 남몰래 밤마다 남자를 만난다는 소문을 퍼뜨리고, 궁궐에서 쫓겨나는 공주를 서동이 백제로 데려와 결혼하게 되었다.서동은 어머니와 마를 캐면서 발견했던 금맥을 이용해 진평왕의 환심을 샀다. 이어 이복형 혜왕과 조카 법왕이 왕위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물러나자 왕족임을 내세워 30대 무왕으로 즉위했다. 무왕은 위덕왕의 뜻을 이어받아 사비성은 물론 익산을 전방기지로 삼아 군사력을 튼튼하게 키웠다.무왕의 선화공주에 대한 사랑은 끔찍할 정도로 대단했다. 그는 밤낮 왕비를 곁에서 떨어지지 못하게 했다. 집무실에서조차 옆에서 말동무 삼아 나랏일도 함께 의논했다. 선화공주 또한 지혜로워 무왕의 집무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무왕이 고구려와 한강 유역을 두고 전쟁을 하면서 신라와의 전쟁도 피할 수 없어 13차례나 공방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신라에 대한 공격은 선화공주, 왕비와 지혜를 모아 적절한 선에서 치고 물러나는 형식적인 전쟁으로 끌어갔다.신라 진평왕 또한 선화공주가 왕비로 즉위해 있는 동안 백제와의 전쟁은 그렇게 악착같은 마음으로 전개하지 않았다.무왕은 서동으로 신라에서 첩자 노릇을 하면서 지리와 기후, 풍습까지 깨알같이 파악하고 있어 마음만 먹으면 유리한 입장에서 전쟁을 치를 수 있었다. 그러나 선화공주와의 묵계로 신라와는 서로 피를 흘리는 소모적인 전쟁은 피하기로 했다.무왕은 600년에 즉위해 41년간 나라를 다스리면서 위덕왕의 패권정치에 유연함을 더해 안정적인 왕권을 유지하며 평화의 시대를 이끌었다. 백제의 멸망을 부른 31대 의자왕은 무왕의 자질을 이어받아 뛰어난 인물로 훌륭한 정치를 베풀었다. 그러나 하대에 이르러 주색에 빠져 나라가 멸망에 이르게 하는 주인공이 되어버렸다. *새로 쓰는 삼국유사는 문화콘텐츠 개발을 위해 픽션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역사적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대구의 아들 봉준호, 아카데미상 4관왕 쾌거…대구 찬사 물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을 거머쥔 봉준호 영화감독이 고향인 대구의 이름을 빛내고 있다. 영화 ‘기생충’을 연출한 봉준호 감독은 10일 한국 영화 최초로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열린 올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 작품상, 국제장편영화상, 감독상등 4관왕을 수상했다. 아시아계 감독이 각본상을 수상한 것은 92년 오스카 역사상 최초로, 감독상은 대만 출신 리안 감독 이후 두 번째다. 또 봉 감독은 지난해 5월 한국영화 역사상 최초로 제72회 칸 국제영화제 폐막식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봉준호 감독은 대구 남구 봉덕동에서 1969년 9월14일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유년시절을 대구 대명9동에서 보내며 남구 남도초등학교 3학년까지 다니다 서울로 상경했다.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했으며, 한국 영화아카데미 11기 출신이다. 그의 아버지 봉상균씨도 효성여대(현 대구가톨릭대)와 영남대 교수로 재직하는 등 대구와 인연이 깊다. 또 외할아버지인 박태원 씨는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등 한국 근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로 저명하다. 대구지역 영화칼럼리스트 겸 영화제작자 박길도(44)씨는 “영화관객이 많지만 유일하게 지역영상위원회 조차 없는 불모지인 대구에서 세계적인 감독이 나온 것 자체가 기적이다”며 “봉 감독을 계기로 앞으로는 영화 업계에 국가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이 이뤄져 세계적인 영화를 계속 만들어낼 수 있는 시작점이 되면 좋겠다”고 기뻐했다. 영화 ‘기생충’ 의 아카데미 시상식 4관왕 소식에 대구 시민들의 반응 역시 뜨겁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상에는 ‘대구가 낳은 세계적인 거장이다’, ‘대구 출신 봉 감독이 애국자다’ 등 감격적인 소감이 줄줄이 올라오고 있다. 또 기초지자체의 공식 홈페이지에도 ‘한국영화의 새 역사를 쓴 대구출신 봉 감독님, 대구가 봉 잡은 것 같습니다!’ 등 축하 메시지가 쏟아졌다. 남구 주민 김모(30·남구 대명동)씨는 “대구 남구가 낳은 아들 봉준호 감독이 전 세계적으로 영화계의 판도를 뒤집어 놓은 역사적인 날”이라며 “대구 중구에 김광석 거리처럼 남구에도 ‘봉준호 영화거리’를 추진해 세계인들이 찾는 관광지로 만들면 좋겠다”고 환호했다.구아영 기자 ayoungoo@idaegu.com

아들아…우한 폐렴 확산에 군부대 통제, 눈물의 입소식

“가족과 함께 막상 군부대 앞에 오니 아쉬움으로 가슴이 막막하네요. 한편으로는 입소를 하지 못 할까 걱정입니다.” 4일 오후 1시 대구 북구 제50보병사단. 신병으로 입소한 이성민(21)씨는 우한 폐렴(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인해 아쉬운 작별을 해야 했다. 우한 폐렴 확산 방지를 위한 50사단의 통제에 따라 이씨를 배웅하기 위해 나온 가족 모두 입소식을 참관하지 못한 채 군부대 입구에서 아쉬운 발길을 돌린 것. 올해 지역 첫 신병 입소식을 한 50사단의 앞은 우한 폐렴(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에도 입대하려는 237명의 장병들과 이들의 가족과 지인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특히 가족의 배웅 속에 부대 입구를 통과한 장병들은 50사단이 준비한 마스크를 착용한 채 체온검사 등의 건강검진을 받으며 입소했다. 이날 아들을 50사단에 입소시킨 김미숙(53·여)씨는 “이 시국에도 입대를 결정한 아들이 자랑스럽고 뿌듯하지만, 1분 1초라도 자식의 얼굴을 더 보지 못한 게 아쉽다”며 “부대에서도 우한 폐렴 등의 사고 없이 무사히 보내길 바란다”고 기원했다. 국방부가 우한 폐렴 확산을 막고자 각 군부대 신병 입소식의 가족 동반을 제한하면서 50사단도 4일 열린 신병 입소식에서 입영 장병들의 가족 등을 통제하고 나섰다. 50사단에 따르면 4일 입영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건강검진검사에서 우한 폐렴으로 의심되는 입소자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 50사단은 신병 입소식을 최소화시켜 부대 내 자체 행사로 대체했다. 신병 교육 중 발열 등의 증상이 나타나면 검진을 통해 격리 조치할 예정이다. 다음달 11일 열리는 신병 수료식도 국방부 지침에 따라 가족이 참가할 수 없다. 50사단은 2015년 메르스 사태에서도 가족 동반 신병 입소식과 수료식을 제한한 적이 있다. 한편 50사단은 국방부 지침에 따라 3월부터 예정된 동원 훈련과 지역 예비군 훈련도 4월로 연기한다. 지역 훈련 대상자에게는 훈련 연기를 별도 안내하고, 추후 소집일을 다시 통지한다. 50사단 관계자는 “최근 우한 폐렴 영향으로 인해 장병 가족들이 걱정을 많이 하는 것으로 안다”며 “신병들의 개인 건강을 지키기 위해 마스크 착용과 손 소독을 생활화하고, 바이러스 유입을 차단하기 위한 선제적인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혔다.이동현 기자 leedh@idaegu.com

화촉

▲임유호(전 고령군 운수면장)·김미영씨 아들 정민 군, 이종욱·김부길씨 딸 나검 양=12월 14일(토요일) 오전 11시30분 대구 수성구 만촌동 인터불고호텔 인터빌리지홀. 연락처 010-3815-5803. 김재호 기자 kjh35711@idaegu.com

실종자 가족 방문에 ‘눈물바다’ 된 독도해역

“여보 어디 있어? 애들 왔어. 너무 보고 싶어.” 지난 23일 독도 소방헬기 추락사고 실종자 가족들이 사고 장소인 독도해역을 방문했다. 사고 발생 24일 만이다. 중앙119구조본부 소속 김종필(46) 기장과 배혁(31) 구조대원 등 실종자 가족 9명과 독도소방헬기추락사고 범정부현장수습지원단 관계자, 공동취재단 등 모두 23명이 이날 오전 9시40분께 대구 공군기지(K2)에서 헬기를 타고 독도 해역으로 향했다. 독도를 향하던 도중 오전 11시7분께 울릉도에서 아들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배혁(31) 구조대원의 부친과 장인을 태웠다. 독도 상공을 도는 내내 실종자 가족들은 창밖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고 이를 안타깝게 바라보던 여성 소방대원은 내내 이들의 눈물을 닦아줬다. 대구에서 독도로 출발한 지 3시간15분여 만에 독도 선착장에 도착한 가족들은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지 못했다. 김종필 기장의 아내는 아들을 붙잡고는 “여보 애들 왔어. 여보! 어디 있어. 여기를 왜 왔어”라며 오열하자 아이들도 목 놓아 울음을 터트렸고 독도바다는 눈물바다로 변했다. 배 대원의 아내도 “나도 데려가지. 같이 가자 오빠야. 왜 내 말 안 듣는데, 못살겠다. 나도 살기 싫다”며 흐느끼자 곁에 있던 배 대원의 어머니도 아들을 이름을 애타게 부르며 눈물을 흘렸다. 이날 독도에는 실종자 가족들을 태우기 위해 해경고속단정이 대기하고 있었다.실종자 가족들에게 수색당국의 수색 작업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사고 직후부터 이날까지 울릉도에 머물며 아들을 기다려온 배 대원의 아버지는 “직접 눈으로 보니 수색대원들의 노고가 느껴진다”면서도 “실종자를 못 찾는 게 안타깝다”며 애타는 심경을 전했다. 광양함 구조반장 최철호 원사는 “동해는 서해와는 다르게 높은 너울성 파도와 같은 외력으로 인해 장비 오작동이 발생할 수 있어 수중에서 작업하는 잠수사에게는 압박감이 심한 곳”이라면서도 “마지막 한 분까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임무를 수행하겠다”며 가족들을 위로 했다.김현수 기자 khsoo@idaegu.com

아들 이름 나오자…아버지는 말문이 막혔다

“저는 독도 헬기 추락사고 배혁…구조대원 아빠입니다.” 독도에서 돌아오지 못하는 아들을 기다리며 담담하게 말을 이어가던 아버지는 아들의 이름이 나오자 순간 말을 잇지 못했고 실종자 대기실은 또다시 눈물바다가 됐다. 지난 16일 대구 강서소방서를 찾은 이낙연 국무총리와 통화한 독도에서 아들을 기다리는 배혁(31) 구조대원의 아버지는 한시라도 빨리 아들이 가족과 동료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해달라며 눈물로 호소했다. 이날 배 구조대원 아버지는 “제가 독도에 남아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하나도 없다. 하지만 아직 아들이 아직 저 차가운 바다에 있는데 아비가 돼서 뭐라도 해야 한다는 마음에 독도에 남아 있다”며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배 대원의 아버지는 이번 사고가 소방관을 꿈꾸는 대한민국의 많은 청년이 부모의 반대로 그 꿈을 접게 되는 불행한 선례가 되지 않게 해달라고 이 총리에게 부탁했다. 그는 “대통령께서 직접 나서서 이번 사고 진상규명위원회를 구성해서 사고 원인부터 낱낱이 조사해 다시는 이런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소방대원 모두가 가족들에게 자랑스러운 존재가 될 수 있도록 정부차원에서 그들의 안전을 보장하고 열악한 장비를 개선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이 총리도 “소방관의 지원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하겠다. 또 정부 차원에서 독도 헬기 추락사고의 원인과 초동 대처, 진실 규명까지 빠지지 않고 조사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실종자 가족들이 KBS 측에 요구한 대국민 사과에 대해서는 “KBS의 사과는 KBS의 도리이기도 하고 국민의 도리이기도 하다. KBS 측을 설득하겠다”고 말했다.김현수 기자 khsoo@idaegu.com

독도 헬기추락사고-아들 위해 안전한 소방헬기로 옮겨 탄 부기장, 2년 만에 시신으로 돌아와

“닥터헬기 위험하다고 튼튼한 소방헬기 타러 간다더니…이렇게 죽어서 돌아왔느냐.” 4일 대구 강서소방서 독도 헬기 사고 유가족 대기실에서 만난 고 이종후(39) 부기장의 아버지 이웅기(66)씨는 인터뷰 내내 가슴이 먹먹해 연신 마른침을 삼키며 눈물을 닦았다. 이 부기장이 중앙 119 구조본부 헬기 조종사로 근무하게 된 지는 2년 정도다. 대한항공에서 닥터헬기(위급한 환자나 부상자를 병원으로 실어 나르는 헬기)를 조종하던 그가 소방헬기를 타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 ‘안전하다’는 이유였다. 결혼 3년 만에 힘들게 얻은 보물 같은 아들을 두고 있어 가족을 생각해 기체가 작아 바람에 영향을 많이 받는 닥터헬기보다 규모가 큰 소방헬기가 더 안전하다는 생각에서 119 구조헬기로 옮겼다. 아들 생각이 나는지 대화 도중 잠시 허공을 바라보던 이씨는 주머니 속에서 휴대폰을 꺼내 바탕화면으로 설정된 사진을 보여줬다. 이 부기장과 아내, 그리고 그의 소중한 아들이 함께 환하게 웃는 행복한 가족사진이었다. 이씨는 “10월28일 손자 생일이라고 생일파티 사진을 찍어서 보내 주더라”며 “이왕 찍는 거 며느리랑 다 같이 나오게 다시 찍어서 보내달라고 해 받은 사진이다”며 휴대폰 속 활짝 웃고 있는 아들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소리 내 울었다. 이어 “아들 생일이 10월28일인데 아버지 제삿날이 10월31일이라는 게 말이 되느냐”며 “이제 곧 초등학생이 되는 아들을 두고 먼저 가면 어쩌느냐”고 한탄했다. 이날 만난 이씨는 소아마비 장애인으로 목발을 짚고 있었다.그는 “불편한 몸보다 가슴 한구석이 독도 바다 가장 깊숙한 곳에 떨어져 있는 것 같이 무겁다”고 말했다. 이씨는 “4년 전 막내아들이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며 “이제 큰아들까지 앞세웠는데, 내가 무슨 낯으로 살아가느냐”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며칠 전 며느리에게 들은 손자의 소식은 이씨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했다. 아버지의 사망소식을 접한 날. 8살 난 손자는 혼자 방으로 들어가 이 부기장의 사진을 만지며 “아빠는 다른 사람들 구해야 하잖아, 아빠 할 일도 많은데 왜 벌써 죽어”라고 소리쳤다고…. 이씨에게 이 부기장은 세상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아들이었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 별다른 경제적인 지원 없이 연세대를 졸업하고, 공군 학사장교로 입대해 소방청 헬기 조종사로 근무하며 부모님을 살뜰히 챙기던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키도 크고 잘생긴 아들이었는데, 죽고 싶은 마음 뿐이다”며 “아직도 아들이 내일 아침에 안부전화를 걸어올 것만 같다”고 말을 잇지 못했다.김현수 기자 khsoo@idaegu.com

아들 잃은 아버지...억눌러 참았던 슬픔, 결국 고개 떨군 채 오열.

4일 오후 독도 소방헬기 추락 사고 실종자 가족들이 모인 대구 강서소방서 3층 소회의실에서 실종자 가족들을 상대로 한 수색 브리핑이 열렸다. 이날 브리핑에서 수색작업에 별다른 진전이 없다는 소식을 접한 한 실종자 부친, 브리핑 중 연신 물을 마시며 애타는 슬픔을 억눌러 봤지만 결국 고개를 떨군 채 오열하고 있다. 김진홍 기자 solmin@idaegu.com

세살 아들 때려 뇌사상태 만든 20대 긴급체포

대구지방경찰청은 28일 세 살된 아들을 때려 뇌사상태에 빠지게 한 혐의로 A(29)씨를 긴급체포했다. 경찰은 수사가 끝나는 대로 A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지난 27일 오후 5시께 달성군 자신의 집에서 막내아들(3)의 머리를 벽에 부딪치게 해 뇌사 상태에 이르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아들은 대학병원으로 이송됐으나, 현재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동 학대를 의심한 병원 측이 경찰에 신고했으며, 경찰은 A씨로부터 범행 일체를 자백 받았다. A씨는 두 아들이 싸워서 혼내는 과정에 벌어진 일이라고 진술했다. 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곽상도, “아버지 찬스 없었다”는 문재인 아들에 “각종 의혹 살펴보겠다”

자유한국당 곽상도 의원(대구 중·남구)은 22일 문재인 대통령 아들 준용씨가 ‘아버지 찬스’ 없었다며 특혜의혹을 정면 반박한 것에 대해 ‘시아버지 찬스’ ‘유학시절 부모찬스’를 살펴보겠다고 나섰다.곽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문재인 대통령의 아들 문준용씨가 ‘(아버지) 찬스 없이 열심히 살고 있다’며 자신의 SNS에 글을 올렸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며 “문 대통령의 며느리 장 모씨의 ‘시아버지 찬스’가 없었는지 살펴보겠다”고 했다.곽 의원은 “장 씨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지 보름쯤 2017년 5월25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과학창의재단이 공동 추진한 ‘2017년 메이커운동 활성화 지원사업’에 지원 대상자로 선정된 적이 있다”며 “정말 우연히 정부 지원사업 대상자로 선정됐다고 믿고 싶다. 조국 아들딸처럼 마법에 가까운 특혜와 편법, 부정을 저질러 놓고 합법이고 우연이라고 말하는 날이 오질 않길 바란다”고 꼬집었다.이어 “장 씨는 이밖에 2017년에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에서 지원하는 ‘이화여대 여성공학인재 양성(WE-UP) 사업단’과 한국청년기업가정신재단의 ‘청소년 기업가 정신 교육 연구’, 고양어린이박물관 ‘소리의 발견’ 전시에도 참여했는데 이 과정을 살피겠다”고 했다.곽 의원은 준용씨에게도 “코딩교육 프로그램 융합교재 납품과 관련해 정말 전국의 수많은 학교에 납품했는지, 이 과정에서 아버지 찬스가 없었는지 살펴보겠다”며 “미국 유학 시절 아버지, 어머니 찬스가 없었는지도 살펴볼 예정”이라고 밝혔다.그러면서 “2007년 7월 김정숙 여사 절친인 손혜원 민주당 의원이 뉴욕 맨해튼 고급 아파트 제이드 콘도를 매입했으며 9개월 뒤인 2008년 3월 준용씨는 뉴욕 유학길에 올라 같은 해 9월 명문예술대학 ‘파슨스’ 대학원 과정에 입학했다”며 “준용씨가 아버지, 어머니 찬스를 쓰지 않았다면 미국 유학시절 뉴욕 맨해튼 주거비, 차량유지비, 학비 등부터 자신있게 해명해줄 거라고 믿는다”고 했다.이혜림 기자 lhl@idaegu.com

70대 노모, 만취한 아들이 운전하던 차에 치여 숨져

아들을 마중 나왔던 70대 노모가 술 취한 아들이 운전하던 차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8일 구미경찰서 등에 따르면, 지난 7일 오전 1시40분께 구미시 해평면 왕복 2차로 도로에서 1t 트럭을 운전하던 A씨가 자신의 어머니 B(74)씨를 치고 지나갔다. B씨는 늦게까지 귀가하지 않은 아들이 걱정돼 전동휠체어를 끌고 도로에 나왔다가 이 같은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당시 아들 A씨의 음주측정 결과는 0.151%로 만취 상태였다. A씨는 사고를 낸 뒤 피해자가 어머니인 것을 알고 119에 신고했지만, B씨는 병원으로 옮겨진 뒤 끝내 숨졌다. 경찰은 사고 경위를 파악한 뒤 A씨에게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류성욱 기자 1968plus@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