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태 단상

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 이사장코로나19로 청승맞게 자주 과거를 떠올린다. 초등학교 시절 우리 동네는 부촌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늘 배가 고팠다. 길에서 동네 어른들을 만나면 끼니때마다 인사가 달랐다. 아침에는 “아침 잡수셨습니까?”라고 인사했다. ‘조반석죽(아침에 밥 먹고 저녁에 죽)’이면 그런대로 괜찮게 사는 집이라고 했다. 모두가 서로의 형편을 잘 알다 보니 이웃 사람들은 굶는 집이 없는지를 눈여겨 살폈다. 저녁때인데도 옆집 굴뚝에 연기가 나지 않으면 이웃 아낙은 “철수야 왜 밥 안 하나 양식 떨어졌나?”라고 물으며 쌀 반 양푼을 담 너머로 넘겨주곤 했다. 동네 어른들은 남의 집 제삿날을 다 기억하고 있었다. 제사를 지내는 집과 담을 같이 하고 있으면 자정이 넘어도 자지 않고 기다렸다. 밥과 나물, 생선, 떡 등의 음식이 넘어오기 때문이다. 파젯날 아침에는 동네 어른 모두를 초대해 음식을 대접했다.초등학교 시절 학교 앞에는 꼬마들을 상대로 하는 장사꾼이 많았다. 연필과 지우개 같은 문구류, 멍게와 해삼, 스크루가 돌면서 분수처럼 흩어지는 유해 색소가 든 오렌지 주스, 엿과 사탕 등 종류가 다양했다. 이런 일도 있었다. 세 녀석이 계란만 한 눈깔사탕을 한 개 샀다. 돌아가면서 입에 넣고 양볼 좌우로 열 번씩 왔다 갔다 하며 빨고는 사탕을 꺼내 다른 친구에게 넘겼다. 세 명이 돌아가며 그렇게 빨아먹었다. 어떤 녀석은 논두렁 옆 수로에 사탕을 헹구고 입에 넣기도 했다. 크기가 아주 작아졌을 때 어느 녀석이 남은 사탕을 씹어 먹어버리면 나머지 둘은 그 녀석의 등짝을 때리며 깨 먹은 것을 원망했다. 요즘 아이들은 상상도 이해도 안 되는 이야기다. 그 시절에는 ‘콩 하나도 열 조각으로 나눠 먹는’ 것이 미덕이었다. 대부분 사람은 그 말을 실천하며 살았다. 친구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새벽에 일하러 나가시는 아버지는 보리쌀이 훨씬 높은 비율을 차지하지만 그래도 밥을 드시고, 자신은 죽을 먹고 학교에 온다고 했다. 아버지가 밥 드시는 모습을 이불속에서 눈을 반쯤 뜨고 바라보면 너무 부럽다고 했다. 우리 아버지에게 친구 이야기를 했을 때, 아버지가 해주신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모든 것을 공평하게 나누는 게 다 좋은 일만은 아니다. 때론 똑같이 나누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 아닐 수도 있다. 여기에 두부 한 모가 있는데 친구 네 명이 4분의1 씩 나눠 먹는다고 가정해 봐라. 음식이 입에 들어가는 순간은 잠시 기분이 좋겠지만 돌아서면 여전히 배가 고플 것이다. 그러나 4명 가운데 가장 힘이 센 한 친구에게 한 모를 다 먹인 후, 지게를 지고 산으로 보낸다고 생각해 봐라. 그 친구가 갈비(떨어진 마른 솔잎)를 한 짐 해서 시장에 내다 팔면 두부 여덟 모는 사 올 수 있다. 한나절 배고픈 것 참고 저녁에 두 모씩 나눠 가지는 게 낫지 않겠는가. 아버지가 밥을 먹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지 짐작할 수 있겠느냐.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아이들은 죽을 먹는데 자신은 밥을 먹으니 얼마나 괴롭겠느냐. 밥맛이 제대로 나겠느냐. 그 아비는 조금이라도 더 열심히 일해서 아이들에게 밥을 먹여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겠느냐.”초등학생이었지만 아버지의 설명은 분명하게 이해가 됐다. 경제 이론에 문외한인 나는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 문제가 쟁점이 될 때마다 아버지의 말씀을 떠올리곤 한다.만 13세 이상 전 국민에게 통신비 2만 원씩 지급하는 문제를 두고 논란이 크다. 한 여론 조사 기관은 국민의 6할 정도가 이에 부정적인 견해를 보인다고 발표했다. 국민의힘 원내 대표는 “국가 채무가 한 해에만 106조 원 급등한 상황에서 4차 추경 7조8천억 원 중 1조 원에 가까운 돈을 통신비 2만 원 보조에 쓴다는 게, 제대로 된 생각을 갖고 하는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정의당 원내 대표조차도 “정부·여당이 추진 중인 통신비 2만 원 지급이야말로 별 효과도 없는 포퓰리즘에 불과하다”라고 비판하지 않는가. 여야 정치권과 정부는 힘을 모아 정말 생계가 어려운 국민을 찾아내어 그들이 더 깊은 절망의 수렁에 빠지지 않도록 지원하라. 여야는 당리당략을 떠나 좀 멀리 바라보고 지게를 지고 산에 나무하러 갈 수 있는 사람을 찾아내 집중적으로 지원해주는 대책도 동시에 마련하라.

히포가 말씀하시길/ 이근자

~의창에 비친 가족의 모습~…아버지는 점포 서른여섯 개에서 월세를 받아 생활하는 전형적인 한량이다. 히포는 그의 별명이고 하마 ‘히포포타무스’의 약칭이다. 하마는 온순한 듯 보이지만 변덕스럽고 공격적이다. 어머니 하 여사는 소비를 취미이자 업으로 살아가는 세 아이의 엄마다. 큰누나는 향락과 소비에 중독된 독신녀이고, 작은누나는 세달 전 평범한 샐러리맨과 결혼한 초보 주부다. 벌써 생활에 쫓기는지 하 여사에게 손을 벌리는 처지다. 나는 막내아들로 ‘무위’를 즐기는 대학생이다. 하지 않을 것을 선택한 것이 인생목표다. 어느 날, 히포가 급성 신부전증으로 쓰러져 입원했다. 신장기능이 망가져 혈액의 노폐물을 소변으로 배출하지 못해 쇼크가 온 것이다. 혈액투석을 하고 있으나 신장이식이 화급하다. 제각기 자기 방식으로 살아가던 가족들이 히포의 입원으로 인해 널찍한 병원 특실에 함께 모였다. 외부인인 자형으로 인해 다섯 식구가 제법 예를 갖추고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였다. 다섯 사람은 히포에게 간을 제공하기위해 정밀검사를 받기로 했다. 작은누나는 신혼으로 임신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명단에서 뺐다. 검사과정에서 임신 중인 것으로 드러난 큰누나도 자동으로 제외되었다. 큰누나는 그런 명분을 지키고자 결혼을 서두르는 액션을 취했다. 그 남친이 느닷없이 병실에 나타나 예비 사위행세를 했다. 결국 하 여사, 자형 그리고 나까지 세 명만 남았다. 직계혈통인 내가 선택될 가능성이 크다. 그건 내 생활신조인 무위에 맞지 않다. 군대라도 가고 싶었다. 하 여사가 간이식 이후 후유증이 있을 수 있다는 이유로 다른 선택지를 강구했다. 앞날이 창창한 사람에게 희생을 강요할 수 없다고 히포를 설득했다. 히포는 내 신장을 원했다. 하 여사는 싱가포르에서 기증할 사람을 구해와 국내에서 시술하는 방법을 밀어붙였다. 하 여사만 믿을 뿐이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여친이 병실로 찾아와 살가운 정을 보여주었다. 젊지도 예쁘지도 않은 어떤 여자가 병원 지하주차장의 아버지 차안에서 장시간에 걸쳐 열정적으로 울고 있었다. 병실 안에선 뜻밖에도 히포가 서럽게 울었다. 처음 보는 광경이다. 내 신장 따윈 필요 없다고 고함을 질렀다. 하 여사가 다 알아서 처리한다고 했다.… 뚱뚱하고 욕심 많은 데다 변덕스럽고 독단적인 아버지의 캐릭터가 히포라는 별명 속에 은근히 녹아있다. 부부관계의 불만과 스트레스를 외도와 소비로 벌충하는 어머니는 자식에 대한 보호본능만은 살아있다. 첫째 딸은 어머니의 불행을 본능적으로 알아채고 독신으로 뻗대지만 결핍에 대한 공허함을 향락으로 달랜다. 둘째 딸은 정상적인 삶을 추구하지만 서민들의 삶에 대한 이해와 적응이 부족하다. 그래서 평범한 봉급쟁이와 살아가는 삶이 사상누각처럼 위태하다. 나는 하기 싫은 것은 하지 않는 ‘무위’의 삶을 추구한다. 돈으로 연결된 취약성은 한 가족이라고 하더라도 위기에 처하면 쉽게 부서진다.역경에 처한 뒤에라야 각자의 참모습을 볼 수 있다. 아버지가 입원하고 신장이식이란 위기상황에 처하자 나머지 가족들의 의식은 느긋한 가운데 바쁘게 돌아간다. 돌발적인 비상사태가 어떻게 진행되고 그에 따라 각자 어떠한 영향을 받게 될 지가 관건이다. 엄청난 재산과 급성 신부전증이 다양한 미래변수로 작용하여 복잡한 고차방정식을 만들어낸다. 히포의 태도, 병의 경과, 신장이식의 성공여부와 히포의 생사 등이 예측하기 힘든 미래변수다. 가족과 그 주변인들 사이의 긴박한 숨결이 행간에서 흘러나온다. 날카로운 의식의 분주한 흐름이 숨 가쁘다. 오철환(문인)

빈집1/ 공영구

아직도 고향에는 등기된 집 한 채 있다/ 아버지가 애써 일군 집/ 어머니가 금비녀처럼 가꾸신 집/ 오남매 꿈이 영글어 피어난 외딴집// 썩어가는 기둥에 녹슨 못/ 거미줄이 애써 감싸고/ 몸통 드러낸 주춧돌/ 잡초에 매달린 채 힘겨워하며/ 찢어진 양철지붕 빗물 막으려/ 용쓰다 뒤집혀 바람 겁나 떨고 있다/ 그을린 정지문 붙잡고 의지하는/ 뒤뜰 가죽나무의 무성한 잎사귀/ 주인 없이 지켜온 텅 빈 마음/ 십 년 상처 다독이고 있다// 점점 넓혀가는/ 타성바지 틈에 끼어, 그래도/ 가끔이면 가보고 싶은 집「대구문협대표작선집1」 (대구문인협회, 2013)의식주는 인간에게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꼽힌다. 그 순서에 대해서 이견이 있지만 큰 틀에서 보면 인간생활의 엑기스를 잘 뽑아낸 말이다. 의복은 인간을 추위로부터 지켜주는 도구이고 개성을 표현하는 주요 수단이다. 음식은 생존에 절대적인 존재로 생명유지의 기초적인 전제조건이다. 주거는 비바람과 상위포식자 또는 해충으로부터 비켜나 편히 쉴 수 있는 안락한 공간을 제공해줄 뿐만 아니라 씨족의 삶을 영위하게 해주는 생활공간이다. 의복과 음식은 개인적이고 본능적인 욕구에 그치지만 주거는 개인을 넘어 가족의 안락한 공간이란 범주로 그 중요성이 확장된다는 점에 방점이 찍힌다. 주거는 발을 디디고 있는 땅과 불가분의 관계라는 점도 부담스럽다. 주거공간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고 많은 희생이 따른다는 함의다.안락하고 안정된 삶은 주거안정 없이는 기대난망이다. 만족스런 주거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욕망이 끈질긴 이유다. 집값 폭등이 사회적 정치적 이슈로 떠오르는 현상이 생뚱맞은 일은 아닌 셈이다. 먹고 입는 것은 생존의 기초조건이긴 하지만 그 필요성이 반복적 소모적이어서 그 대가가 시계열적으로 잘게 분산되는데 비해 주거는 그 성격이 배타적 영구적이어서 그 희생이 집중적이고 덩어리가 크다. 더구나 주거공간은 각자의 생활근거지에서 근접할 필요가 있는 까닭에 땅이 갖는 고정성, 부동성과 부증성의 고유한 특성 때문에 극심한 경쟁과 갈등이 불가피하다.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가족의 안락한 쉼터이자 생활공간인 집으로 나타난 것은 자연스럽다. 아직도 남아있는 고향의 집이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오남매까지 그리움의 광장으로 불러낸다. 아버지가 힘들게 마련하고 어머니가 정성껏 가꾼 보금자리에서 오남매가 숨결을 함께 나누며 꿈을 키웠다. 그 가족의 둥지가 아직도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가슴이 설렌다. 남들이 침범할 수 없는 방어기제가 마련돼 있기 때문에 비록 빈집이지만 든든하다.기둥은 썩고 못은 녹슬었다. 함께 숨을 탔던 거미마저 안쓰러운 듯 거미줄로 가려보려고 애를 쓰지만 세월의 시샘을 막을 수 없다. 무성한 잡초에 가린 주춧돌은 외롭게 자리를 지키고 비바람에 찢어진 양철지붕은 서럽게 떨고 있다. 연기에 그을린 부엌문에서 어머니가 웃으며 뛰어나올 것만 같다. 뒤뜰에 선 가죽나무엔 가죽 잎이 무성하다. 양념장에 곰삭힌 가죽 잎을 좋아했던 아버지가 흐뭇해 할 것 같다. 타성바지에 둘러싸여 주인도 없는 곳을 홀로 지키고 있는 그 정성이 갸륵하다. 십년 세월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모진 세월을 버텨낸 그 의지가 기특하다. 옛 사람은 떠나고 새 사람이 늘어나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고향은 고향일 뿐이다. 세상사가 무상해지고 지난 삶을 되돌아 볼만한 때가 되니 수구초심은 인지상정이다. 고향 집이 아련히 생각나고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다. 오철환(문인)

반복/ 신평

이제 막 날개 짓 하려는 아들에게/ 넥타이 매는 법을 가르쳐 준다/ 그 옛날 아버지가 텁텁한 냄새의 입김으로/ 나에게 가르쳐 주었던 똑같은 방법/ 아버지와 달리 몇 번이나 실패를 거듭한다// 구부려 올려다보는 아들의 어깨 너머/ 그가 겪어나갈 신산의 세월이 겹겹이 둘러섰다//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 훨씬 더/ 세상은 차갑고 무섭단다// 내 힘 한 점 소용없을 때까지/ 네 기력을 돋울 군불이 되고 싶건만// 이미 달빛이 된 아버지/ 나도 곧 달빛으로 오른다/ 아들은 그 아들에게 넥타이 매는 법 가르치며/ 그 옛날 자신의 숨결과 닿았던 내 숨결을 기억하리/ 생의 반복은/ 엄숙하고 슬픈 되새김이다「대구문협대표작선집Ⅱ」 (대구문인협회, 2013)딸 키우는 재미가 아기자기하고 좋다. 그러나 아버지에겐 아들 키우는 즐거움도 전혀 없진 않다. 목욕탕의 등 밀기가 그것이다. 이는 딸 가진 아버지가 부러워하는 것 가운데 하나로 흔히 꼽히곤 한다. 물론 공짜로 거기까지 가는 건 결코 아니다. 팔에 힘이 제법 붙는 날까지 부지런히 씻기고 닦아줘야 한다. 몰캉몰캉한 젖살이 빠지고 팔뚝이 제법 탱글탱글해지면 상큼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등의 때가 밀리는 순간 그동안 보살펴 준 수고가 봄눈 녹듯 스르르 녹아내린다. 아들딸에게 필요한 거의 모든 서비스를 엄마가 독점하기 때문에 아버지가 필요한 경우는 드물다. 그렇지만 넥타이 매는법은 아버지의 전매특허다. 사회로 첫발을 내디디려는 아들에게 아버지가 소환된다. 아들을 졸졸 따라다니던 엄마가 갑자기 당황해하며 남편을 찾고 아들이 굵은 목소리로 아버지에게 긴급구조를 요청한다. 새 양복을 차려입고 넥타이를 든 아들이 아버지 앞에 불쑥 다가선다. 별 것 아닌데 괜스레 기분이 좋다. 아들의 등밀이 서비스를 처음 받은 때처럼 마음이 달뜬다. 시인이 첫 출근하던 날, 그 아버지가 넥타이 매는법을 가르쳐주었다. 방향이 좌우로 바뀌는 지라 헷갈릴 만도 했지만 능숙하게 가르쳐줬던 기억이 생생하다. 막상 넥타이를 아들의 목에 걸고 보니 매일 매다시피 한 것이지만 한번 만에 매어지지 않는다. 자기 목에 매어 본 후 다시 아들 목에 건다. 가르쳐주는 아버지가 헷갈리니 배우는 아들도 헷갈린다. 구경하는 엄마는 한심하다며 핀잔을 준다. 그렇지만 아버지도 웃고 아들도 웃는다.앞으로 닥쳐올 험난한 세파가 아들의 어깨 너머로 넘실거린다. 극복해야 할 도전이 산 넘어 산이고 겪어야 할 시련이 가혹하고 매서우리라. 거친 바다로 항해를 내보내는 부모마음은 안쓰럽다. 교과서에서 익힌 대로 했다가 낭패 볼 일도 있으리라. 세상은 학교에서 배운 것과 많이 다르단다. 비록 세상사가 한심하고 추악하게 보이더라도 결코 실망하거나 얕잡아 봐선 안 된다. 엎어지고 자빠지더라도 좌절하지 말아야 한다. 희망을 잃지 않고 꾸준히 정진하다 보면 험한 세상이 어느덧 살맛나는 세상으로 다가온단다.부모는 아들딸의 성공적인 삶을 위해 온몸을 다 바치는 법이다. 부모는 아들딸을 위해 항상 군불 땔 준비가 되어있다. 아들이 혼자 힘으로 험한 세상 잘 헤쳐 나갈 때까지 아버지는 온힘을 다해 뒷바라지 할 터다. 아버지의 힘이 필요하면 언제든 긴급구조를 요청해도 좋다. 아버지는 비록 세상을 떠나가지만 텁텁한 숨결을 통해 그 아들에게 넥타이 매는법을 물려준다. 인연으로 맺어지는 생의 전승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엄숙한 반복은 벗어날 수 없는 윤회의 슬픈 고리다. 오철환(문인)

쉬/문인수

그의 상가엘 다녀왔습니다./ 환갑을 지난 그가 아흔이 넘은 그의 아버지를 안고 오줌을 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生의 여러 요긴한 동작들이 노구를 떠났으므로, 하지만 정신이 아직 초롱 같았으므로, 노인께서 참 난감해하실까 봐 “아버지, 쉬, 쉬이, 어이쿠, 어이쿠, 시원하시겄다아” 농하듯 어리광부리듯 그렇게 오줌을 뉘였다고 합니다.// 온몸, 온몸으로 사무쳐 들어가듯 아, 몸 갚아드리듯 그렇게 그가 아버지를 안고 있을 때, 노인은 또 얼마나 더 작게, 더 가볍게 몸 움츠리려 애썼을까요.// 툭, 툭, 끊기는 오줌발, 그러나 그 길고 긴 뜨신 끈, 아들은 자꾸 안타까이 땅에 붙들어 매려했을 것이고, 아버지는 이제 힘겹게 마저 풀고 있었겠지요. 쉬━/ 쉬! 우주가 참 조용하였겠습니다. 「쉬」 (문학동네, 2006)효는 근본적인 인과관계다. 원초적이긴 하나 소홀히 하기 쉽다. 부모의 자식사랑은 본능이기 때문에 굳이 강령이나 교리로 가르칠 필요가 없다. 내리사랑이라는 말도 같은 뜻이다. 자식사랑은 오히려 제어해야할 정도로 넘치기 십상이다. 반면 그 반대 방향인 효는 실천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효를 윤리의 기본개념으로 삼고 그 실천을 강조한다. 효를 아무리 강조해도 잘 실천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현실은 역설적으로 효를 강조해야 되는 이유다. 갓난애는 기초대사에서 의식주에 이르기까지 전부 부모의 손에 달려 있다.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분가해 홀로서기 할 때까지도 부모가 죄다 뒷바라지 한다. 독립했다고 영 떠나가는 건 아니다. 부모는 자식이 장성해도 세 살 난 아이 물가에 놓은 것 같은 마음으로 지켜본다. 부모의 자식 사랑은 획득형질이 아니라 타고난 특성이다. 자식이 필요할 때 부모는 기댈 언덕이지만 부모가 필요할 때 자식은 돌아앉는다. 늙으면 어린아이가 된다. 모든 신체적 정신적 기능이 유아상태로 떨어진다. 대소변을 받아내야 할 정도가 되기도 한다. 어찌 보면 자식이 그 은혜를 되갚아야 할 기회다. 부모는 되갚음을 기대하지도 않고 헌신한다. 하지만 자식은 먼저 받은 시혜마저 잊어버리고 귀찮아한다. 효는 인위적이다. 해난사고로 사망한 남의 집 자식들이나 교통사고로 죽은 생면부지의 애들에 대한 애도는 지극 정성인데 제 부모상은 호상이라며 웃음을 흘리며 성가신 일을 처리한 듯 홀가분해한다. 부모는 개나 고양이만도 못한 신세다. 애완동물을 반려라 하면서 먹이고 씻기고 뉘이고 닦인다. 병들면 기백만 원의 거금을 들여 병원에 데려간다. 그 반면에 부모에게 드는 돈은 기십만 원을 두고 벌벌 떨면서 자식 간 신경전을 벌인다. 사후 유산 다툼으로 머리 터지게 싸우는 모습은 논외다. 부모를 개나 고양이 정도만 취급해줘도 다행이랄까. 우울하고 비참한 세태다. 노래자 일화가 떠오른다. 노래자는 고희에도 부모 스스로 늙었다는 사실을 잊게 해주려고 색동옷을 입고 재롱을 떨었다. 때로는 일부러 엎어져 마루에 뒹굴면서 애처럼 울기도 했다. 부모는 자식이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애로 보인다는 사실을 깨닫고 부모를 즐겁게 해 준 것이다. 그렇게까지 바랄 수야 없겠지만 그 효심의 반만이라도 가져준다면 행복하지 않을까. 환갑지난 아들이 아흔 넘은 아버지를 안고 오줌을 뉘면서 어리광부리듯 애정을 보이는 모습이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사랑으로 키워낸 아들이 이제 늙은 아버지를 안고 쉬를 뉜다. 아들은 더 오래 붙들어 두고 싶고, 어버지는 안쓰러워 그만 명줄을 놓아버리고 싶다. 우주도 감동한 듯 숨을 죽인다. 오철환(문인)

그날은 언제일까

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산삼이 돋아났다. 마른 솔 잎 사이를 뚫고 올라온 연초록 잎이 참 신기하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수백 명씩 발생하던 때, 소나무가 우거진 앞마당을 묵혀두는 것을 안타까워하던 지인이 어디서 산삼 씨를 구해 듬뿍 묻어두고 간 모양이다. 언젠가는 돋아날 것이라며 잔뜩 희망을 주더니 정말 기적이 자라기 시작이다. 날이 가고 해가 지나면 그것도 잘 자라서 언젠가는 5엽을 자랑하는 성숙한 산삼으로 당당히 커갈 것 같아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뿌듯하다. 코로나19 사태가 지역에서는 일단 진정세로 들어선 모양새지만 수도권의 하루 확진자 숫자가 날마다 등락을 반복한다.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 아무리 자가 격리 수칙을 준수하고 생활형 거리 두기를 잘한다고 하더라도 일상의 작은 접촉마저 완전히 차단할 수는 없기에 언제 어디서 다시 바이러스가 활동을 재개할지 모르니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될 것이다.하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아무리 위기에 닥치더라도 언제까지나 거기에 함몰돼 살 수는 없지 않겠는가. 5월 들어서부터 청첩장이 간간이 오기 시작이더니 6월이 되자 그간 미뤄둔 결혼식이 정말 봇물이 터지는 것 같다. 주말이 되자 이곳저곳 가지 않으면 안 될 자리가 많아진다. 더러는 양해를 구하고 축의금만 보내지만, 우리 아이의 결혼식을 찾아와 축하해주었던 이의 혼사에는 찾아가 보는 것이 예의일 것 같아 잠시라도 얼굴을 내밀기로 했다. 아무리 코로나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당사자로서는 결혼식이라면 대개 일생에 한 번 있는 일일 것이기에 참으로 의미심장한 일이지 않겠는가. 모처럼 붓 펜으로 정성 들여 쓴 축의금 봉투를 들고 결혼식장을 찾았다. 코로나19로 결혼식장은 여느 때 보다 절차가 하나 더 생겼다. 비접촉 체온 측정 후 방명록을 작성하고 손 소독을 하고 들어간다. 식장으로 들어서니 그동안 만남이 없었던 오래된 옛 동료들도 간간이 눈에 뜨인다. 반가워서 얼싸안다가도 ‘거리 두기’를 외치며 화들짝 놀라 멀찍이 떨어진다. 코로나 걱정으로 한산하리라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많은 참석 인원에 의외라는 기분이었다. 참석자들은 마스크를 쓰고서 가능한 대화를 줄이고 테이블에 조용히 그러면서 될 수 있는 한 멀찍이 앉아서 결혼식이 시작되기를 기다린다. 추세에 따라 주례 없는 결혼식으로 진행되는 모양이다. 신랑 아버지가 단상에 올랐다. ‘신랑 ooo 군과 신부 ooo 양은 일가친척과 친지를 모신 자리에서 평생 고락을 함께 하는 부부가 되기를 굳게 맹세하였습니다. 이에 신랑의 아버지는 이 혼인이 원만하게 이루어진 것을 여러분 앞에 엄숙하게 선언합니다. 성혼 선언문 낭독이었다. 참석자들은 박수로 화답하였다.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신랑 아버지가 머뭇대며 이야기를 잇는다. 자식 결혼식을 처음 하다 보니 혼인 서약을 먼저 받아야 하는데 그것도 받지 않고 성혼 선언문을 먼저 낭독했다는 것이 아닌가. 웃음이 터져 나오며 박수가 이어졌다.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신랑과 신부에게 혼인 서약에 대한 맹세를 듣고서 재차 성혼 선언문을 낭독하였다. 자칫 밋밋할 수도 있는 결혼식에서 작은 실수가 어쩌면 잊지 못할 에피소드로 남아 그 결혼식을 더 기억하게 만들 수도 있을 것 같다 웃음이 난다. 며칠 전 책에서 본 한평생 시계만을 만들어 온 사람의 이야기가 떠오른다.어느 시계공 아버지가 자신의 일생에 마지막 작업으로 온 정성을 기울여 시계 하나를 만들었다. 완성된 시계를 아들에게 주었다. 초침은 금으로, 분침은 은으로, 시침은 구리로 되어 있었다. “아버지, 초침보다 시침이 금으로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라는 아들의 질문에 아버지는 대답했다. “초침이 없는 시간이 어디에 있겠느냐? 작은 것이 바로 되어 있어야 큰 것이 바로 가지 않겠느냐? 초침의 길이야말로 황금의 길이란다.” 그 아버지는 아들의 손목에 시계를 걸어주면서 말했다. “1초 1초를 아껴 살아야 1초가 세상을 변화시킨단다.” 언젠가는 우리도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다시 찾은 일상은 코로나 이전의 그것과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작은 것을 소중히 하는 습관도 들여야 할 것 같다. 작은 것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큰길로 가는 길을 놓치고 말 수도 있을 터이다. 단 1초의 순간, 그 선택이 어쩌면 세상을 변화시킬 수도 있지 않겠는가.

헌시

헌시 성국희 당신은 궁서체로 새겨진 책입니다/ 밥상머리 하신 말씀 밑줄 붉게 그어놓고/ 아직도 못다 읽은 책, 아버지란 책입니다당신은 뿌리 깊은 한 그루 나무입니다/ 바람 잘 날없었어도 꿋꿋하게 버텨내신/ 당신은 밑동이 굵은 아버지란 나무입니다당신은 어디서든 길이 되는 지도입니다/ 길 잃은 자식들 앞에 이정표가 되어주신/ 당신의 깊은 주름살, 아버지란 지도입니다당신은 지지 않는 저 하늘의 태양입니다/ 사남매 삶 속에서 늘 밝은 빛이 되신/ 당신은 가장 뜨거운, 아버지란 태양입니다글이 되고 그늘이 되고 길이 되고 빛이 되신/ 아버지, 그 이름 앞에 큰절을 올립니다/ 갚아도 못 다 갚을 사랑, 당신께 바칩니다-『미쳐야 꽃이 핀다』(목언예원, 2020).....................................................................................................................성국희는 경북 김천 출생으로 2011년 서울신문과 농민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조집 『꽃의 문장』『미쳐야 꽃이 핀다』가 있다. ‘헌시’는 아버지 고희에 부쳐라는 부제가 있는 사부곡이다. 간절한 마음이 전편을 관주하고 있다. 딸에게 아버지는 특별한 분이다. 아버지 또한 마찬가지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는 딸을 어여삐 여기고 세상의 모든 딸은 아버지를 극진히 생각한다. 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딸은 훌륭하게 자라서 훗날 좋은 어머니가 된다. 사실 아버지는 아들이나 딸에게는 큰 나무다. 어머니의 사랑은 말할 것도 없지만, 아버지로부터 사랑을 넉넉히 받은 자녀는 비뚤게 자랄 수가 없다. 그래서 화자는 당신은 궁서체로 새겨진 책이라고 말한다. 밥상머리에서 하신 말씀을 밑줄 붉게 그어놓고 아직도 못다 읽은 책이 아버지라는 책이라고 힘주어 이야기 한다. 칠순이라면 적잖은 연륜이다.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회갑을 맞지 못하고 세상을 하직한 아버지가 많았다. 요즘 70세는 아직도 청년이다. 건강을 잘 유지한 분들은 활기가 넘친다. 화자는 또 당신은 뿌리 깊은 한 그루 나무로서 바람 잘 날 없었어도 꿋꿋하게 버텨내신 밑동이 굵은 아버지라는 나무라고 노래한다. 어디서든 길이 되는 지도여서 길 잃은 자식들 앞에 이정표가 되어주신 깊은 주름살은 아버지라는 지도인 것이다. 더 나아가서 당신은 지지 않는 저 하늘의 태양이기에 사남매 삶 속에서 늘 밝은 빛이 되신, 가장 뜨거운 아버지라는 태양이라고 형용한다. 하여 글이 되고 그늘이 되고 길이 되고 빛이 되신 아버지, 그 이름 앞에 큰절을 올리면서 고희를 경하 드린다. 갚아도 못 다 갚을 사랑을 당신께 바친다. ‘헌시’는 다소 직설적이기는 하지만 그 밑바탕에 깔린 정서가 진중하고 절절하여서 아버지께 바치는 헌시로서 소중한 의미를 가진다. 흔히 돌아가시고 나서 기리는 마음을 노래하는 경우가 많은데 건강한 가운데 고희를 맞은 아버지를 위해 시인으로서 이러한 사부곡을 써서 직접 육성으로 읽어드리게 되니 얼마나 뜻깊은 일인가. 아버지가 감동의 눈물을 흘렸을 법하다. 그 어떤 효도보다 더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릴 수 있기에 복된 일이다. 그는 젊은 시인으로서 시조라는 시의 한 갈래를 선택하여 창작자의 길을 걷고 있는데 글을 쓰면서 나름대로 고뇌할 때가 많을 것이다. 그래서 신작 시조집 곳곳에 자신만의 시조론을 개진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탐색하고 궁구하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그렇게 노력하는 모습이 귀해 보인다. 이정환(시조 시인)

노태우 전 대통령 장남 5.18 민주화 운동과 관련, 1천번이고 사과할 수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노재헌 동아시아문화센터 원장이 23일 5·18 민주화 운동과 관련, "치유와 화해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100번이고 1천 번이고 사과를 해야 하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노 원장은 지난해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했으며, 5·18 민주화운동 유공자들에게 직접 사죄의 말을 전한 바 있다.노 원장은 23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금 직접 오지 못하는 아버지의 뜻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뜻을 담아 사죄와 참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노 원장은 "아버지는 역사에 대해서 무한 책임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을 하시는 분"이라며 "5.18 (민주화 운동과) 관련해 어떤 역할을 했든 간에 본인의 책임을 회피하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이어 "(노 전 대통령은) 5·18 얘기가 나올 때마다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난 부분에 대해 마음 아파했다"며 "아버지의 뜻을 이해하고 어떻게든 풀어드려야 한다는 생각과 가슴 아파해왔던 세대로서 나 자신의 책무도 있었다"고 말했다.그러면서 "대한민국 국민이 우리 현충원에 가서 6.25 전사자에 참배하듯이 우리 광주도 국립묘지고 민주 묘역인데 당연히 참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노 전 대통령의 건강 상태에 대해서는 "병상에 누우신 지 10년이 넘었다. 말씀과 거동을 전혀 못 하신 지도 꽤 오래됐다"며 "아무것도 못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창재 기자 lcj@idaegu.com

아버지의 말

아버지의 말 백점례틀니를 걷어내자 우물이 드러났다/ 뉘 하나 빠질 듯이 깊숙이 파인 채로고인 말 퍼내고 싶어/ 움찔거리는 파장으로거친 껍질 부수고 깬 굴곡의 팔십 평생/ 모 닳다 모지라져 뿌리까지 뽑힌 자리끝내 다 못 전한 말을/ 우물우물 삼킨다-『나뭇잎 물음표』(고요아침, 2018)...................................................................................................................백점례는 충남 부여 출신으로 2011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으로 등단했고, 시조집『버선 한 척』『나뭇잎 물음표』가 있다. 그만의 길, 그만의 시조 쓰기에 전념한 결과물이 유달리 빛나기 때문에 시조문단의 주목 대상이다. 그의 몇몇 작품은 시조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한다. 시조의 존재 가치를 잘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아버지의 말’은 무겁다. 어찌할 수 없는 아픔이 곡진하게 배어 있기 때문이다. 틀니를 걷어내자 우물이 드러났다, 라는 첫 구절은 아픔의 요약이다. 틀니가 빠져나온 자리를 두고 우물이라고 규정한 것은 놀라운 의미 부여다. 하늘이 준 영감에서 비롯된 표현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겠다. 실제로 어떤 이가 신이 내린 구절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일이 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미칠 수 없기 때문이다. 흔히 신의 한 수라는 말을 하는데 창작자인 시인은 명작을 쓰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역량으로는 부족하다. 어느 지점에서 하늘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만큼 간절할 때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눈이 번쩍 뜨이는 섭리가 개입하리라는 생각이 든다.그곳은 뉘 하나 빠질 듯이 깊숙이 파인 채로 고인 말 퍼내고 싶어 움찔거리는 파장으로 우물이 드러났다는 사실을 명징하게 환기하고 있다. 그것은 곧 거친 껍질을 부수고 깬 굴곡의 팔십 평생이어서 모 닳다 모지라져 뿌리까지 뽑힌 자리이기도 하다. 그래서 끝내 다 못 전한 말을 우물우물 삼킨다. 여기서 다시 우물이 우물우물과 수미상관처럼 유기적 체계로 미묘하게 결합되어서 이 작품의 밀도를 한층 높이고 있다.그는 또 ‘경칩 무렵’이라는 시에서 생명의 환희와 약동으로 충만한 세계를 보여준다. 비 그치고 밟는 흙이 밥처럼 부드럽다, 에서 흙을 밥으로 본다. 사람과 자연에 대한 애정 어린 눈길이 포착한 구절이다. 진정 자연을 사랑하고 인간을 존중하는 이만이 이러한 사유가 가능할 것이다. 시적 인간이 곧 생태적 인간인 사실이 이 대목에서 여실히 느껴진다. 그래서 속이 환히 보이는 가난한 터전으로 햇살이 벌써 밭고랑을 치고 있는 정경이 눈에 밝게 들어온다. 지난날 엉킨 덤불도 풀씨의 울이 되고 바람과 살얼음도 깍지 풀어 넘는 길이기에 떡잎이 기지개를 켜고 발바닥이 간지러워진다. 미세한 시각과 치밀한 시선이 아름다운 시를 빚은 것이다.가끔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할 때가 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립다. 효심이 깊어서가 아니라 세월 탓이다. 진자리 마른자리 다 갈아 뉘시며 자녀를 위해 헌신하신 부모님의 고마움을 무슨 말로 형용할 수 있을까. 살아계실 때 함께 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틀니를 걷어내자 우물이 드러난 것을 발견한 것도 아버지를 잘 모시고 살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아버지 역시 딸에게 모든 것을 다 말씀하시지는 않는다. 혹여 힘들어할까봐 당신의 어려움에 대해 일일이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다. 발견한 그 우물은 웅숭깊어 뉘 하나 빠질 듯이 깊숙이 파인 곳이어서 인생의 깊이를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이러한 진정성 있는 관조는 시조를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될 것이다. ‘아버지의 말’을 나직이 음미하며 마음을 가다듬는 아침이다. 이정환(시조 시인)

자전거 도둑

자전거 도둑 박완서~돈 욕심에 양심을 팔순 없다~ …수남은 시골에서 올라온 열여섯 살 소년이다. 청계천 세운상가 전기용품 도매상에서 일한다. 주인은 전기용품으로 잔뼈가 굵은 할아버지뻘 되는 장사꾼이다. 수남은 주위 사람들에게 칭찬을 듣는 재미로 더 부지런히 일한다. 세 사람이 할 일을 어린 수남이 몇 푼 받지 않고 혼자 감당하고 있다. 주인 영감은 공부를 시켜준다고 자랑삼아 말하지만 실질적 배려나 도움은 전혀 없다. 입시철이 지났지만 빈말도 없다. 수남은 밤늦도록 공부하며 또 봄을 맞는다. 바람이 세게 불던 어느 봄날, 이웃 가게의 간판이 떨어져 길 가던 아가씨가 다쳤다. 병원까지 갔다 온 가게 주인은 손해가 막심하다고 울상이다. 재수가 없는 날 같다. 그 와중에 단골소매점에서 배달 전화가 왔다. 수남은 인근 단골집에 자전거로 형광램프를 배달한다. 돈을 두고서 외상 하려고 하지만 끈질기게 기다린 끝에 겨우 돈을 받아낸다. 장사꾼의 나쁜 습성에 진저리가 난다. 자전거를 세워둔 곳으로 돌아온 수남은 뜻하지 않은 상황에 깜짝 놀란다. 세찬 바람으로 자전거가 넘어지면서 옆에 주차해둔 고급 승용차를 긁어놓은 것이다. 차주에게 사과를 하고 용서를 빌었지만 어림도 없다. 차주는 당장 배상하지 않으면 자전거를 담보로 잡아두겠다고 한다. 자전거 바퀴에 자물쇠를 채우곤 사무실로 들어갔다. 수남은 바퀴가 잠긴 자전거를 번쩍 들어 옆구리에 붙이고 부리나케 도망친다. 도망치는 중에 수남은 묘한 쾌감을 느낀다. 주인 영감은 자기에게 손해가 미치지 않은 게 다행인 듯 운이 텄다며 수남을 두둔한다. 주인 영감은 자전거의 자물쇠를 절단하며 똥색 양심을 드러낸다. 시간이 지날수록 수남은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수남의 형은 절도죄로 지금 감옥에 있다. 돈 벌러 집을 떠나 올 때, 수남의 아버지는 도둑질만은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 했다. 수남은 자전거를 훔치듯 들고 도망쳐 온 일을 후회했다. 돈만 밝히는 주인 영감의 정체가 백일하에 드러난 사건이다. 도덕적으로 자신을 견제해줄 아버지가 그립다. 마침내 수남은 양심을 일깨워 줄 아버지가 있는 고향으로 돌아간다.… 산업화시기에 시골의 잉여인력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도시의 공장과 가게로 몰렸다. 세운상가도 무작정 상경한 촌놈들로 넘쳤다. 수남은 전기용품 유통을 익혀 독립하는 꿈을 안고 점원으로 일한다. 주인은 산전수전 다 겪은 늙은 여우다. 자잘한 입발림말로 수남을 현혹한다. 공부를 시켜 줄듯이 말하면서 그 여건을 만들어 주지 않는다. 소중한 고생 경험을 그 뒤를 밟고 있는 수남에게 물려주기는커녕 호의를 베푸는 척 교묘히 꼬드기고 착취한다. 돈이 있으면서도 외상을 놓으려는 장사꾼의 습성을 알고 그에 대응하는 방법을 익힌 수남이 안쓰럽다. 비록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승용차를 자전거로 긁었다면 그 손해를 의당 배상하여야 한다. 배상하는 사람도 조금 억울하겠지만 긁힌 상대방은 더 억울하다. 바람한테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자전거 주인이 책임지는 것이 상식적인 판단이다. 어린 소년이라면 그 보호자나 후견인이 책임질 일이다. 자전거를 들고 도망가라고 종용하는 행태는 어른답지 못하다. 주인 영감이 사고의 책임을 지고 그 손해를 배상해주어야 마땅하다. 돈 몇 푼 아까워 양심을 외면한 주인 영감은 어린 수남에게 결코 귀감이 될 수 없다. 소년에게 필요한 건 도덕성을 견제해줄 참된 어른이다. 갈등하던 수남은 결국 그의 양심을 지켜 줄 아버지에게 돌아간다.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옳은 판단을 내릴 때까지 소년은 아버지의 보호가 필요하다. 오철환(문인)

겨울의 환(幻)

겨울의 환(幻)김채원~밥상을 차리는 여인~…나는 마흔세 살의 이혼녀다. 연인의 권유로 ‘나이 들어가는 여자의 떨림’에 대한 글을 쓴다. 한 번도 여자로 느끼지 못한 주제에 ‘나이 들어가는 여자의 떨림’에 대한 글을 쓴다는 일이 어색하지만 조금 흥분된다.산불이 발발하여 헬기로 불을 끄는 장면이 뉴스에 나온다. 집안 아저씨와 내가 오늘 외할머니 묘소에서 낸 산불이다. 한편 뜨거운 불기운이 망자의 응어리를 녹여줄 것 같다. 나는 어머니와 손모양이 닮았다. 어머니는 손이 달아서 반찬이 맛있다고 자랑하곤 한다. 김치는 수긍하지만 된장은 동의하기 어렵다. 어머니는 교직생활을 오래 하셨으나 아버지에게 소박당한 후로 화투로 세월을 보내기도 했다. 아버지는 작은어머니를 얻어 가족을 버렸다. 객지에서 병사했다. 어린 시절 기억에 아버지는 없다. 나는 서른둘에 결혼했다. 신혼여행 중 바닷가 횟집에서 인격적으로 서로 존중하며 살고 싶다고 말했다. 남편의 샐쭉한 표정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시아버지의 장례 때, 새까맣게 떨어져 내리던 눈의 아우성을 잊을 수 없다. 나는 결혼 육 년 만에 친정으로 돌아왔다. 아이가 없는 것도 큰 이유겠지만 직접적인 원인은 결혼예물 때문이었다. 그 후 쭉 어머니와 살고 있다. 어느 날, 길을 찾는 어떤 남자를 만났다. 어릴 때 같은 동네에 살던 남자였다. 그 부름에 잠시 멈추는 그 순간, 사랑이 갑자기 찾아왔다. 그렇게 시작된 만남이 어느새 3년이다.외할머니는 북에서 온 피난민이다. 외할아버지가 첩을 얻어 나가는 바람에 외할머니는 홑몸으로 외삼촌과 딸 셋을 키웠다. 기댈 곳 없는 낯선 곳에서 고생을 달고 살았다. 외삼촌은 6·25때 월북했다. 우리는 뒤늦게 피난을 갔지만 외할머니는 집에 남았다. 공산당이라도 늙은이는 해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월북한 아들을 만나보려던 의도도 작용했다. 어머니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할머니는 이모 댁으로 옮겨갔다. 그 후, 양치 중에 쓰러져 며칠 동안 의식 없이 자리 보존하다가 운명했다.어머니는 할머니와 다투곤 했다. 내림인지 나도 어머니와 끈질기게 싸웠다. 그래선지 어머니도 마침내 쓰러졌다. 다행히 회생되긴 했지만 다리에 힘이 빠져 병상에 누웠다. 이젠 어머니와 화해할 때가 되었다. 어머니와의 화해는 연인과의 결별이라는 또 다른 선택을 내포할 수 있다. 어머니와 연인은 서로 엇갈리는 운명인지 모른다. 어머니와 화해한다 해도 함께 산다는 것은 속박이다. 소멸해 가는 어머니를 맡은 것은 운명이다. 어머니가 몸이 아파 할머니를 이모 댁에 인계한 일이 아프게 다가온다. 우린 실향민이다. 산불은 아베크족의 실화로 밝혀진다.…환(幻)은 변화하는 둥근 원이고 윤회를 상징한다. 외할머니의 운명이 어머니로 이어지고 어머니의 팔자가 또 그 딸에게 전해진다. 외할머니, 어머니, 딸로 이어지는 여성 3대가 모두 다 남편에게 버림받는다. 그 디테일이 조금 변형되기는 하지만 크게 보아 유사한 순환이 반복되는 셈이다. 작가는 ‘나이 들어가는 여자의 떨림’에 대한 본질을 밝히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밀도 있게 그려내고 있다. 주인공 나는 여자의 운명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자세로 자기자리를 찾아간다. 기다리는 사랑이 아닌 적극적으로 베푸는 사랑이 요체다. 밥상을 기다리는 여자에서 따뜻한 밥상을 차리는 여자로 거듭난다. 사랑은 또한 삶의 쓸쓸함을 벗어나는 묘약이다. 따뜻한 밥상과 연인에 대한 그리움도 사랑이란 마음으로 이어진다. 여성의 일상과 의식의 흐름 속에서 삶의 허망함을 담담하게 풀어낸 수작이다. 오철환(문인)

문향만리…가정

가정 박목월지상에는/ 아홉 켤레의 신발./ 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깐에는/ 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 알전등이 켜질 무렵을/ 문수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내 신발은/ 십구 문 반./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육 문 삼 코가 납작한/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얼음과 눈으로 벽을 짜 올린/ 여기는 / 지상./ 연민한 삶의 길이어./ 내 신발은 십구 문 반.//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십구 문 반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청담』 (일조각, 1964)....................................................................................................................... 천상이 아닌 지상, 원죄를 진 인간은 지상에서 고된 삶을 꾸린다. 백열등이 켜질 무렵, 고단한 하루 일과를 접고 집으로 돌아간다. 60년대 초반, 시골과 달리 도회지는 전기가 들어와 백열등을 밝혔다. 정원과 현관이 있는 반양옥을 지나면 들깐이 딸린 부엌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다세대판잣집이 나타난다. 서민들의 인생살이가 그 안에서 복닥거린다. 된장국 냄새가 구수하다. 마침내 밖으로 바로 방문이 드러난 단칸 오두막집 앞에 선다. 가난한 시인의 삶은 고달프다. 문수가 다른 아홉 켤레 신발이 문밖 지상에 나란히 놓여있다. 지상은 땅 위라는 본래적 의미와 더불어 아내가 천상으로 갔음을 암시한다. 아홉 마리 강아지는 자식들이다. 금슬이 좋았다. 아버지는 오십대 홑몸이다. 신발 크기는 ‘십구 문 반’, 신발 크기를 문수로 표기했다. 1문이 24㎜면 ‘십구 문 반’은 468㎜다. 요즘 성인 남자 255㎜, 성인 여자 230㎜ 정도가 보통이다. 제대로 먹지 못한 60년대 초, 성인 남자 248㎜, 성인 여자 220㎜ 정도가 일반적이었다. 아버지는 어머니 몫까지 합해서 ‘십구 문 반’이다. ‘지상’과 ‘십구 문 반’은 천상의 아내를 그리워하는 절절한 심정을 녹여낸 상징이다. ‘육 문 삼’은 151㎜. 막내는 겨우 대여섯 살 남짓,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염둥이다. 아홉 켤레 고무신이 나란히 놓여있는 모습은 아랫목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아버지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대유다. 크고 작은 아홉 켤레 신발을 보면 피로가 가시고 미소가 절로 인다. 세상살이에 지친 심신의 고달픔이 한순간에 날아간다. 코가 납작한 조그마한 신발이 눈에 들면 마음이 급해진다. 커다란 신발을 나란히 벗어두고 방문을 연다. 아이들이 일어나 아버지를 반긴다. 막내가 다리에 매달리고 아이들의 따스한 눈길이 쏟아진다. 막내는 식은 풀빵 한 봉지를 받아들고 춤을 춘다. 첫째만 온 걸 먹고 나머진 반씩 나눠 먹는다. 아내가 없는 고달픈 세상에 아버지는 혼자 자식들을 돌본다. 냉엄한 지상에 남겨진 원죄를 홀로 감당한다. 그래서 십구 문 반을 신는다. 온갖 굴욕을 참고 굶주림과 추위를 견디며 험한 세상을 헤쳐 간다. 책임져야 할 자식들이 있어 포기하거나 굴복할 수 없다. 아무리 삶이 고되고 힘들더라도 꿋꿋이 버텨내는 원동력이다. 사랑하는 아내가 지상에 맡긴 자식들에게 절망하는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 사랑스러운 강아지들이 실망하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어설퍼 보이지만 아이들 앞에선 듬직하다. 아버지의 미소는 자식들에게 자신감과 편안함을 준다. 사랑과 용기를 충전해주는 자식들이 있기에 아버지는 결코 외롭거나 불행하지 않다. 아버지는 슈퍼맨이다. 오철환(문인)

‘영남 인동초’… 아들이 쓴 야당 정치인 아버지 일대기

야당 불모지 영남에서 독립운동 하듯 험난한 야당 정치인의 길을 고집하며 묵묵히 걸어온 이육만 더불어민주당 경북도당 상임고문의 일생을 조명한 책, ‘영남 인동초(忍冬草)’가 출간됐다.이육만 고문은 1971년 대통령 선거 때 신문사 기자로 활동하며 취재를 통해 만난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40여년 가까이 이어가면서 이른바 ‘DJ 정당’으로 자신이 낙선한 3번의 선거를 포함해 야당으로 무려 10번의 선거를 치르며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 평생을 바쳐온, 영남 지역 야당 역사의 산 증인이다.책의 저자는 이육만 고문의 장남인 이성훈 대구MBC 전 보도국장이다. 저자는 기자로서 날카로운 시각과 간결한 필체로 아버지의 일생을 재평가하고 시대의 귀감이 될 그의 삶을 조망하고 있다.저자는 이 책에서 아버지의 일생을 전쟁 고아들과 함께 한 청소년기, 불의에 맞서 정론직필을 위해 뛰어다니던 언론사 기자 시절, 교사로서 인성교육을 강조하던 교단생활, 질곡의 야당 정치인 시절,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가는 황혼기 등 5개 범주로 나누고 시기별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일대기를 서술했다.에피소드 가운데는 어둡던 야만의 시절, 인혁당 당수로 사형을 당한 도예종과의 인연과 영남 원외지구당 위원장으로 동병상련을 나누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인연 등이 포함돼 있어 눈길을 끈다.저자는 경제적으로 무능한 아버지를 둔 탓에 20번 이상 이사를 다녀야 했던 자신을 포함한 가족들의 애환과 야당 정치인으로서의 무기력함에 눈물을 흘리며 고뇌하는 아버지의 내면세계 등을 잔잔한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이 책의 장르는 독특하다. 저자는 이 책의 장르를 자서전(自敍傳)의 스스로 자(自)를 아들 자(子)로 바꾼 ‘자서전(子敍傳)’이라 이름 짓고 평전 분야 새로운 장르로 선언한다.저자는 “자식이 부모의 일생을 기록하는 ‘자(子)서전’을 가풍으로 이어가려고 그 프로젝트 1탄으로 세상에 책을 냈다”고 설명했다.이성훈 지음, 한국정보인쇄 펴냄, 가격 1만8천 원.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김천에서 12일만에 23번째 코로나 19 확진자 발생

김천에서 12일 만에 ‘코로나19’ 23번째 확진자가 발생했다.김천시는 미국 유학생 A(22·여)씨가 확진자로 판명됐다고 30일 밝혔다.A씨는 이날 오전 3시께 인천공항으로 입국했다. 인천검역소에서 검체 후 아버지와 함께 김천 자택에서 대기 중 이날 오후 확진 판정 통보를 받았다. 치료 병상을 배정받은 후 입원예정이다.A씨 아버지는 자가격리 중이다.김천시는 A씨는 입국 후 바로 자택에서 대기 중이어서 접촉자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설명했다.호주국적의 유학생 B(33)씨도 인천공항에서 검체 후 양성으로 판명나 즉시 격리조치됐다.B씨의 부모는 김천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안희용 기자 ahyon@idaegu.com

문향만리…수난 이대

수난 이대“…정치 좀 똑바로 하라고…” 하근찬 박만도는 전쟁에서 돌아오는 아들 진수를 마중하러 아침 일찍 집을 나선다. 급한 마음에서 평소보다 빨리 읍내에 도착했다. 장터에서 고등어 한 손을 사들고 기차역으로 갔다. 대합실에 앉아 잘려나간 왼팔을 보며 지난 일을 회상한다. 일제 때, 그는 강제 징용되어 남양의 섬으로 갔다. 그 섬에서 산을 깎아 비행장 만드는 일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연합군의 공습이 있었다. 격납고를 파던 굴로 피신했으나 다이너마이트가 터지는 바람에 왼팔을 잃었다. 불길한 기억이다. 이윽고 기차가 도착하고 아들을 만난다. 진수는 외다리로 목발을 짚고 나타난다. 만도는 극도로 속이 상했다. 주막에서 한잔 걸치고 국수를 사 먹이며 평정심을 되찾아간다. 만도가 소변볼 때, 진수가 고등어를 들어준다. 오른손 밖에 없는 만도에게 양손이 다 있는 진수의 도움이 요긴하다. 외나무다리를 만난다. 외다리 진수가 목발을 짚고 건너기는 무리다. 만도는 진수에게 등에 업히라고 한다. 아버지는 아들을 업고 아들은 아버지의 고등어를 들고 외나무다리를 건넌다. 우뚝 솟은 용머리재가 이 광경을 지켜본다…. 아버지는 태평양전쟁으로 한쪽 팔을 잃었고, 아들은 한국전쟁으로 한쪽 다리를 잃었다. 전쟁으로 인해 2대가 소중한 몸을 손상당하는 기구한 운명에 기가 막힌다. 왜 죄 없는 사람이 그런 억울한 일을 당해야 하는지, 왜 하필 그들 부자에게 연속적으로 그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는 지, 그 답을 알 수가 없다. 뭔가 잘못되었다. 책임 있는 대상을 찾아내어 복수할 생각을 한들 그걸 탓할 수 없다. 복수까진 아니더라도 배상 정도는 주장할 수 있을 터다. 물러터진 사람이라면 실의에 빠진 채 퍼질러 앉아 팔자 탓만 할 만하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여 삶을 포기하는 경우도 간혹 본다. 아버지는 징용으로 끌려가 왼팔을 잃었지만 낙담하지 않고 굳세게 살아왔다. 나라를 빼앗긴 조선의 양반을 욕하지 않았다. 전쟁을 일으킨 일제 탓을 하지도 않았다. 섬을 공습한 미군을 원망하지도 않았다. 그저 최선을 다해 주어진 삶을 살아왔다. 유사한 비극적 운명을 이어받은 아들을 보면 참담한 기분이 든다. 아무나 잡고 실컷 두들겨 패고 싶다. 하지만 그는 평정심을 되찾고 비극적인 현실을 받아들인다. 목숨만 붙어 있으면 살아갈 수 있다고 아들을 위로하며 삶의 의지를 일깨워준다. 난관을 극복하려 혼자 몸부림치지 않는다. 각자의 장점을 활용하여 상부상조하면 장애를 거뜬히 극복할 수 있다는 걸 안다. 서로에게 팔과 다리가 되자고 한다. 팔 없이 꿋꿋이 살아온 아버지를 지켜본 아들이기에 그 말이 허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소변을 보면서 느꼈고, 외나무다리를 건너면서 깨달았다. 아버지는 돌아다니는 일, 아들은 집에서 하는 일을 하면 된다. 서로의 결손을 채워주는 삶이다. 아버지의 분노와 절망감이 애정과 희망으로 바뀌고, 아들의 상실감과 두려움이 자신감과 용기로 전환된다. 역사적 비극도 신뢰와 배려로써 협력하고 화합한다면 너끈히 극복할 수 있다는 긍정적 휴머니즘이 물씬 풍긴다. 한편,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 만신창이가 된 채 삶의 현장을 묵묵히 지키고 있는 민초들이 단단히 마음먹고 지도층에게 일갈하고 있다. 민초의 거친 삶을 보고서, 양심이 있으면, 제발 정치 좀 똑바로 해서 사람답게 살게 해달라고, 잔잔하게 꾸짖는다. 죽창 들고 나서는 사람보다 인내하고 삭이는 사람이 실상 더 고수다. 잘못된 것을 긍정과 관용으로 받아치는 작가의 노련함이 행간에 숨어있다. 오철환(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