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아이' 마약 논란 이전 아버지 김씨 24억 횡령 혐의로 구속… 부전자전

사진=비아이 SNS YG엔터테인먼트의 소속 가수 비아이(B.I·본명 김한빈)의 마약 의혹이 보도되면서 과거 비아이의 아버지인 김모씨의 횡령 사건 또한 재조명되고 있다.김씨는 비아이 데뷔 직전인 2014년 공범 1명과 지분 보유정보를 허위 공시, 투자금 181억 원을 모았고 회사자금 23억 9천만원을 나눠 쓴 혐의를 받았다. 당시 서울남부지검은 김씨를 자본시 장법 위반과 특정경제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당시 횡령 약 24억원과 투자금 180억원이 공중으로 날아가며 피해금액만 200억원 이상었으며 직원들은 월급을 받지 못하고 연체되고 있는 상황이었다.해당 사실이 알려지자 네티즌들은 '범죄가 부전자전이네', '훔친 수저로 잘먹고 잘살았었네', 'YG는 어떻게 저런 사람들만 모았지?'등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online@idaegu.com

대한민국 1% 엘리트 ‘홍정욱’ 누구길래… 아버지는 영화배우

사진=홍정욱 인스타그램 15일 헤럴드경제와 코리아헤럴드 지분 47.8%가 중흥건설그룹에 넘어간 것으로 알려지며 홍정욱 회장이 주목을 받고 있다.온라인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도 오른 홍정욱은 기업인이자 언론인으로 헤럴드·올카니카 회장이며 사단법인 올재의 이사장이다.홍 회장의 아버지는 유명한 영화배우 남궁원으로 알려져 더욱 화제가 되고 있다.1970년 서울 출생 후 중학교때 미국으로 유학길에 올라 하버드대학교 학사, 스탠퍼드대학교 로스쿨을 졸업한 엘리트인 홍 회장은 2001년 병역이행을 위해 귀국해 2002년 12월 경영난에 시달리던 헤럴드를 인수해 국내 최연소 언론사 CEO가 됐다.2008년 부터 2012년까지는 한나라당 소속으로 제 18대 국회의원으로도 활동한 바 있다.online@idaegu.com

박한별이 유인석 위해 쓴 탄원서 “어린 자녀의 아버지…” 네티즌 ‘황당’

사진=박한별 인스타그램 배우 박한별이 영장심사를 받는 남편 유리홀딩스 전 대표 유인석을 위해 직접 탄원서를 작성해 제출했다고 한다.박씨는 탄원서에 “제 남편은 이 상황을 회피하거나 도주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불구속 상태에서 계속해서 충실히 조사받을 것을 한 가정의 아내로서 약속드립니다”고 썼다.이 외에도 유씨가 10번이 넘는 경찰 조사에 성실히 출석했다는 사실과 어린 자녀의 아버지라는 점 등이 탄원서에 기재됐다. 박씨와 유씨 사이의 자녀는 지난달 첫돌을 지났다고 한다.박한별의 탄원서 내용을 들은 네티즌들은 "저런 일에 자식 핑계 대지마라", "어린 자녀 둔 아버지가 그런 짓을?"이라며 비난이 쇄도하고 있다.법조계에 따르면 14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신종열 영장전담 부장판사의 심리로 열린 승리와 유씨의 영장실질심사에서 박씨가 변호인을 통해 재판부에 제출한 탄원서는 A4용지 3장 분량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자필로 작성됐다고 전해졌다.해당 사실이 전해지자 박한별의 소속사 플라이업엔터테인먼트 측은 "자세한 사항은 배우의 개인적인 부분이라 우리도 상세한 내용은 알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입장을 밝혔다.online@idaegu.com

김천에서 40대 조현병 환자 80대 아버지 흉기로 찔러, 생명 지장 없어

조현병을 앓고 있는 40대 아들이 “약통을 흔들어 시끄럽다”며 80대 아버지를 흉기로 수차례 찌른 사건이 발생했다.9일 김천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8일 오후 11시께 김천시 평화동 주택에서 A(45)씨가 흉기로 아버지(82)의 얼굴과 목 등을 수차례 찔렀다.아버지는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고 있으나 생명에는 이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경찰은 A씨를 존속살해미수로 현행범 체포한 후 자세한 사건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A씨는 아버지가 알약이 든 통을 계속 흔들어 시끄럽게 한다는 이유로 흉기를 휘두른 것으로 알려졌다.또 아버지로부터 “아들이 김천지역의 한 정신병원에서 조현병 치료를 받은 적이 있는데 현재는 약을 먹지 않고 있다”는 진술을 확보해 A씨의 정신 병력을 파악하고 있다.경찰은 구체적인 범행동기 등을 조사한 뒤 어떤 혐의를 적용할지 판단할 방침이다.안희용 기자 ahyon@idaegu.com

권순진의 맛있게 읽는 시…아버지의 그늘

아버지의 그늘/ 신경림 툭하면 아버지는 오밤중에/ 취해서 널브러진 색시를 업고 들어왔다/ 어머니는 입을 꾹 다문 채 술국을 끓이고/ 할머니는 집안이 망했다고 종주먹질을 해댔지만,/ 며칠이고 집에서 빠져나가지 않는/ 값싼 향수내가 나는 싫었다/ (중략)// 아버지를 증오하면서 나는 자랐다/ 아버지가 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겠노라고/ 이것이 내 평생의 좌우명이 되었다/ (중략)그리고 이제 나도/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진 나이를 넘었지만,// 나는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한 일이 없다/ 일생을 아들의 반면교사로 산 아버지를/ 가엽다고 생각한 일도 없다, 그래서/ 나는 늘 당당하고 떳떳했는데 문득/ 거울을 쳐다보다가 놀란다, 나는 간 곳이 없고/ (중략)/ 그 거울속에는 인사동에서도 종로에서도/ 제대로 기 한번 못 펴고 큰 소리 한번 못 치는/ 늙고 초라한 아버지만이 있다.- 시집『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창비, 1998)........................................................... 카프카는 “나의 모든 글은 아버지를 상대로 씌어졌다. 글 속에서 나는 평소 직접 아버지의 가슴에다 대고 토로할 수 없는 것만을 토해냈다. 그건 오랫동안에 걸쳐 의도적으로 진행된 아버지와의 결별 과정이었다.”고 고백했다. 따라서 카프카 문학은 본질적으로 아버지로부터의 벗어남에 대한 욕구를 반영한다. 아버지란 존재 안에 도사린 상징성을 해독하지 않고는 무엇도 이해할 수 없는 하나의 수수께끼며 미궁이다. 법과 권위의 표상이며, 가족 내 모든 권력의 실체이며 몸통이었던 아버지는 성장하며 카프카를 억압한다. 그의 아버지는 카프카를 막대한 영향력으로 포획하고 일방적으로 가문의 DNA를 주입시키려 했다. 카프카는 이런 아버지의 권력에 저항하는데, 문학은 그 저항의 한 방편이며 응전이었다. 이런 아버지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는 가부장적 질서 아래 있었던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신경림 시인은 마치 카프카처럼 저항하며 문학의 방식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시인의 아버지는 그 시대 아버지의 전형인 동시에 내 아버지의 모습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때의 아버지는 당시 사회가 나에게 스며드는 하나의 방식이며, 내가 사회로 나가는 유일한 통로이기도 했다. ‘일생을 아들의 반면교사로 산 아버지’까지는 아니었으나, 나와 아버지의 관계도 늘 두려움과 적개심으로 가득한 불화였다. 세상 떠나신지 30년이지만 내게 심심하면 쏘아붙였던 ‘머저리’란 함경도 사투리가 귀에 쟁쟁하다. 그때 드리워졌던 그늘에서 여전히 기를 못 펴고 세상에 주눅 들곤 했던 성격도 아버지로부터의 억압에서 비롯되었는지 모르겠다. 아버지는 어린 시절 내 성격 형성에 별로 좋은 영향을 끼치진 못했다. 평생 하급공무원으로 살면서 너무나 거침없고 호방한 아버지였다. 한껏 취기가 오른 늦은 밤 귀가길, 골목어귀에서부터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무례와 똥배짱으로 동네 아이들에게 창피해 죽을 뻔한 일도 여러 번 있었다. 당신은 그 자식이 성에 차지 않았을 테지만 나도 그런 아버지가 싫었다. 고1때인가 헤밍웨이의 자서전 한 대목 ‘나는 아버지를 일찍 잃어버리는 행운을 얻었다’에서 눈이 번쩍 뜨여 나도 좀 더 이른 결별이 와주기를 기도한 적이 있다. 다행히 단발성 기도에 그쳤던 것은 순전히 어머니란 존재 때문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 서른셋

눈 깜짝할 사이 서른셋하유지 지음/다산책방/312쪽/1만3천800원이 책은 장편소설이다. 이 소설은 참고서 편집자 서른세 살 영오가 죽은 아버지 유품으로 남긴 수첩에 적힌 세 사람을 찾아 나서며 시작한다. ‘눈 깜짝할 사이’ 서른이 넘어버린, 타인과의 관계가 힘에 부치는 그녀 앞에 나타나는 왠지 모르게 절반쯤 부족한 사람들이 함께 나머지 절반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열일곱 살 미지가 사는 이야기도 담겨 있다. 서른세 살과 열일곱 살. 둘다 나름의 어려움이 있고 사는 모습 또한 그리 녹록하지 않다. 어딘가 절반쯤 비어 있는 것 같은 삶이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눈 깜짝할 사이에 너무 멀리 와 있고, 돌아갈 수는 없다.영오에게 죽은 아버지가 남긴 것은 월세 보증금과 밥솥 하나, 그 안에 담긴 수첩이 전부다. 어머니가 4년 전 폐암으로 죽은 뒤 겨우 6~7번 만난 아버지였다. 앞뒤 맥락도 없이 수첩에는 세 사람의 이름과 연락처만이 적혀 있다. 영오는 아버지가 경비원으로 일했던 학교의 교사인 홍강주를 만나게 되고, 그와 함께 나머지 두 명을 찾아 나선다. “200그램쯤의 무게만 겨우 버티는 작은 플라스틱 고리 같고 사는 게 너무 바빠, 숨과 숨 사이가 서울과 부산 사이보다 먼” 서른세 살 여성 오영오의 고단한 삶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미지는 영오가 편집한 ‘튼튼국어’를 풀다가 문제가 재밌다는 이유로 매일 전화를 거는 열일곱 소녀다. 홍강주가 교사로 일하는 새별중학교 학생이며 졸업을 앞두고 있다. 치킨 가게를 열어 큰 성공을 거둔 엄마는 고등학교 진학을 거부하는 미지와 12월31일 회사에서 기막히게 잘린 아빠를 귀양 보내듯 개나리아파트로 쫓아냈다. 옆집에는 성격이 괴팍한 할아버지 두출이 산다. 미지와 두출은 ‘버찌’라는 고양이를 통해 나이 차이를 뛰어넘는 우정을 쌓아간다.이 책은 시종일관 담백하게 또 유머러스하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열일곱도 좌충우돌이고 서른셋도 어김없이 서툴고 그러니까 마흔 너머의 삶도 어딘가 부족하지 않을까. 어딘가 심하게 부족한 사람들이 부족한 사람들을 만나 유쾌하게 삶을 채워가는 이야기다. 죽은 아버지가 남긴 수첩, 거기에 남긴 이름에서 시작한 작은 기적의 이야기 그리고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최선의 감동이 담겨있다.영오와 미지, 세상과의 관계가 서툴렀던 두 사람은 어김없이 관계가 서투른 사람들을 만나며 어쩔 수 없이 세상 밖으로 나선다.저자는 마지막에 “이야기의 마지막 페이지를 지나 여기 다다른 당신에게 말하고 싶어요. 이제 괜찮다고요. 곧 괜찮아질 거라고요. 당신은 영오이면서 미지니까요. 당신은 결국 우리니까요. 우리는 함께 나아갑니다. 벽을 뚷고 그 너머로 나아갑니다. 어떤 벽은 와르르 무너지고 어떤 벽은 스르르 사라져요. 포기하지 마세요. 우리는 괜찮습니다”고 위로의 말을 전한다. 김혜성 기자 hyesung@idaegu.com

부모 부양 부담, 아버지 살해한 20대 징역 17년

부모를 부양하는 데 부담을 느끼고 아버지를 살해한 20대에게 중형이 선고됐다.대구지법 서부지원 형사1부(안종열 부장판사)는 존속살해·존속살해미수 혐의로 기소된 A(21)씨에 대해 징역 17년을 선고했다고 21일 밝혔다.A씨는 지난해 11월19일 대구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아버지(당시 53세)를 흉기로 찌르고 목을 졸라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A씨는 아버지를 살해한 후 어머니에게도 흉기를 휘둘렀다. 당시 A씨가 어머니를 흉기로 여러 번 찔렀지만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제압돼 목숨은 건졌다.A씨는 아버지가 만성 신장병을, 어머니가 유방암을 앓아 본인이 가족을 부담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정신이 질환이 겹치자 부모를 살해하고 자신도 자살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으로 알려졌다.재판부는 “피고인이 어린 나이에 지병을 앓는 부모와 학생인 동생의 생계를 책임져 상당한 육체·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았고 중증도의 우울증을 겪고 있는 점, 어머니와 여동생이 선처를 탄원하는 점 등을 종합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연극 ‘행복한 家(가)’ 오는 21일까지 우전소극장 진행

연극 행복한 家(가)의 한 장면. 극단 뉴컴퍼니는 오는 21일까지 우전소극장에서 연극 ‘행복한 家(가)-아버지 사용법’를 선보인다.2015 거창국제연극제에서 국내 연극 부문 대상, 연출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안건우 작가의 대본이다. 뮤지컬 ‘만화방미숙이’, ‘미용명가’로 잘 알려진 이상원 연출가가 연출을 맡았다.가장인 아버지가 빚을 지고 죽음을 선택하려 한다. 남겨진 모녀는 슬픔을 느낄 틈도 없이 사채업자의 빚 독촉에 시달린다. 이에 모녀는 어쩔수 없이 막다른 선택을 한다. 아버지의 죽음을 사고로 위장하여 보험금을 타 내는 것이다. 이에 모녀는 그동안 쓸모없게 만 여겼던 아버지를 두고 '아버지 사용법'을 고민한다.빚을 지고 죽음을 선택하려 하는 아버지 역은 성석배 극단 처용 대표가, 현실의 고난을 이겨내고 가족을 지키려는 어머니 역은 최근 막을 내린 대구연극제에서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한 최영주가 맡았다. 딸 역에는 차세대 연기자 최시내, 사채업자 역은 안건우 극단 시소 대표, 장 교장 역은 대학 연극반 출신들이 주축이 된 극단 1972 소속 배우 장인규가 연기한다.문의: 010-3529-9166.김혜성 기자 hyesung@idaegu.com

-유족들 심리치료 등 지원해야

“사랑하는 우리 아들 철원아, 호연아, 영규야, 찬인아, 종식아. 오늘따라 너희들이 너무너무 보고 싶어 이렇게 불러본다.”개구리 소년 중 한 명인 철원(당시 13세)군의 아버지 우종우(71)씨는 소년들의 시신이 발견된 와룡산 중턱에서 이같이 외쳤다.그는 “매년 추모제를 지낼 때마다 이제 아이들을 보내주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아직 그럴 수 없다”며 “대체 누가 그런 짓을 한 것인지 밝혀진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라고 말을 삼켰다.영구미제로 남은 개구리소년 사건 추모제가 26일 오전 11시 유골발견 현장인 대구 달서구 와룡산 세방골에서 열렸다.개구리소년 사건은 1991년 3월26일 달서구에 살던 성서초등학교 어린이 5명이 와룡산으로 도롱뇽 알을 주우러 간다는 말을 남긴 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그 후 11년 만인 2002년 9월26일 와룡산 세방골 중턱에서 시신으로 발견됐지만 끝내 미제 사건으로 남았다.이날 추모제는 진상 규명 결과 발표, 추도사 낭독, 헌화 등 순으로 진행됐다.올해는 어느 때보다 슬프고 안타까웠다. 개구리 소년의 아버지 3명의 건강상태가 매우 안 좋은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나주봉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시민의모임(이하 전미찾모) 회장은 “호연(당시 12세)군 아버지 조남환(63)씨는 자식을 잃은 슬픔에 술과 함께 살다가 알코올성 치매가 있다”며 “영규(당시 11세)군 아버지 김현도(65)씨는 뇌경색으로 거동이 불편하고 찬인(당시 10세)군 아버지인 박건서(67)씨 역시 양다리 관절 수술로 거동이 불편한 상태”라고 말했다.종식(당시 9세)군의 아버지인 김철규씨는 2001년 간암으로 숨졌다.추모제 참가자들은 정부 차원의 ‘진상규명 위원회’ 설치와 재수사를 촉구하고자 문재인 대통령 면담을 공식 요청하기로 했다.또 개구리 소년 5명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추모비 건립도 추진한다.나주봉 전미찾모 회장은 “세월호 사태 등과 달리 개구리 소년의 유족들은 그 어떤 국가 지원도 받고 있지 못하다”며 “유족들의 정신적 건강을 위한 심리치료와 정부 차원의 진상규명위원회를 설치해 유족들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김현수 기자 khsoo@idaegu.com

걸그룹 아버지로부터 2억 7천만원대 채무 불이행 피해자… "걸그룹 누구?"

사진: KBS 방송화면 캡쳐 지난 6일 방송된 KBS JOY '코인법률방2'에서는 전 걸그룹 멤버의 아버지 A씨로부터 채무 불이행 피해를 당했다는 피해자가 나타나 눈길을 끌었다.이날 방송에서 피해자는 A씨와의 인연을 설명하며 약 23년 전 모 걸그룹 멤버의 회유로 수년에 걸쳐 2억 7천만원대의 재산을 빌려준 후 변제를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피해자에 따르면 피해액이 2억 1천400만원과 가계수표 1천만원, 대위변제금 2천 500만원, 신용카드 부정사용 691여만원, 항공권 명목으로 빌려간 500만원 등 총 2억 7천여만원에 이른다고 설명했다.심지어 A씨는 피해자의 돈을 사업 자금이 아닌 개인적인 일로 사용한 후 미국으로 떠난 사실이 알려져 더욱 안타까움을 자아냈다.이 같은 사실이 전파를 타자 실시간 급상승어에 '걸그룹 빚투'가 오르며 그 걸그룹이 누구인지를 찾으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한편 피해자는 온전히 넘겨받은 변제 부담으로 빚쟁이, 신용불량자가 됐으며 기초생활수급자로 전락한 것으로 전해졌다. online@idaegu.com

존속살해 무기수 김신혜 그날 사건의 정황은?… "나는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다"

사진: SBS 방송화면 캡쳐 친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김신혜(42) 씨의 재심 첫 재판이 비공개로 열린다.이 사건은 가정형편 때문에 어린 나이부터 돈을 벌며 어릴 적 이혼한 엄마 대신 아버지와 동생들을 보살핀 김씨가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무기수의 삶을 살게 된 것이다.2003년 3월 6일 밤 가족들을 만나러 귀향길에 오른 김씨는 자정에 넘어 고향에 도착했다. 이튿날 새벽 아버지가 도로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차에 치였다면 상처도 있을텐데 그런것이 보이지 않았으며 어릴때 앓았던 소아마비로 걸음이 불편했던 김씨의 아버지는 6km나 떨어진 도로에 쓰러져 있었다.여러 의심스러운 정황에서 유력한 살인 용의자로 체포된 사람이 큰딸 김씨였다.고인의 몸에서는 '독실아민'이라는 수면 유도제 성분이 검출됐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가 수면제 30알을 잘게 갈아 양주에 섞어 아버지에게 권했고 그것을 마신 아버지를 자신의 차로 길가에 버리고 온 것으로 조사 됐다.또한 숨진 아버지가 김신혜씨와 여동생을 성추행했다는 내용도 경찰 조서에 포함됐다.그런데 남동생에 따르면 자백을 했다는 그녀가 현장 검증을 하는 모습이 이상했다며 "누나가 멍하니 서있었어요. 누가 하라면 하라는대로 하고"라고 말했다.이후 검찰 조사와 법정에서 무죄를 주장한 김씨는 수감된 뒤에도 무죄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모두 경찰이 조작한 사건이라는 것이 김씨의 주장이었다.경찰이 김씨를 체포한 이유는 김씨 남매의 고모부 때문이라고 경찰은 주장했다.김씨의 고모부는 "아버지를 죽인 게 맞냐고 하니까 자백을 했어요 당시에" 라고 김씨가 자신이 살인을 저질렀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하지만 이어진 경찰 조사에서 김씨의 아버지의 건강을 걱정하는 듯한 메모와 송금 계획이 적혀있는 종이가 발견됐으며 고인의 몸에서 나온 약물 또한 조사 결과 처방 없이 구매할 수 있는 수면유도제가 고농도로 압축돼 검출됐다.전문가에 따르면 이정도의 양을 표시 안 나게 일반적인 술이라고 먹일 방법은 없다고 보인다는 것. 아버지가 마셨다는 양주병과 유리잔도 발견되지 않았다.그렇다면 처음 경찰 조사에서 자신이 살해했다고 밝힌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김씨는 "남동생이 아버지를 죽인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동생 대신 제가 징역살이를 하려고 제가 죽였다고 했다"고 말했다.김씨는 "장례식장에서 고모부가 나를 불러내더니 "간밤에 남동생이 아버지를 죽이고 찾아와 뒤처리를 도왔으니 집안 전체를 생각해 자수를 해라"라고 충고했다"며 믿을 수 없다고 남동생과 먼저 이야기를 하려했지만 고모부가 극구 말렸다고 주장했다.이어 "저한테 허위자백을 하라고 했다. 네가 희생이 되면 너도 살고 우리도 산다"고 말했다.남동생 준호 씨 또한 아버지가 누나와 여동생을 성추행했다는 진술도 고모부가 시킨 것이라고 주장했으며 "저렇게 말을 해야 누나가 나올 수 있다고 믿고 말한 거예요"라고 말했다.현재는 가족들과 연락을 끊고 고향을 떠나 지낸 막내 지혜씨 또한 아버지가 성추행 한 적이 있냐는 질문에 없다고 했으며 "고모부가 아빠한테 성추행 당한 적 없냐고 화를 내시면서, 왜 계속 강압적으로 당했으면서 거짓말 하냐고 자꾸 그랬다"며 "고모부가 그렇게 얘기를 하라고 시켜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했다"고 밝혔다.당시 장례식장에서 김씨와 고모부의 대화도 "언니는 아니라고 했고 고모부가 오빠를 보겠다는 언니를 강압적으로 밀어냈다"고 상황을 설명했다.김씨는 사건 당시 압수수색 영장 없이 집을 수색당했으며 담당 형사가 김씨의 집을 뒤질 때 경찰이 아닌 자신의 군대 동기를 데려갔다는 것도 사실로 확인됐다. 또한 잘못된 방법으로 얻어낸 수사 결과들과 경찰로부터 숱한 폭력을 당했다고 김씨는 주장했다.김씨의 이러한 억울함은 18년만에 수사 과정의 부당함이 인정돼 2015년 11월 복역 중인 무기수 중 처음으로 재심 대상자로 인정받았다. online@idaegu.com

(사건파일) 말다툼 도중 자신 무시한다고 아버지 흉기로 찌른 20대

늘 해오던 아버지와의 말다툼이었지만 무시당한다는 생각에 주체할 수 없는 화가 끓어 올랐다. 아버지를 향한 원망은 절정으로 치닫았고,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실행에 옮기고 말았다. 청년은 119에 직접 전화를 걸어 자신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가슴을 움켜쥔 아버지의 상태를 차분한 목소리로 전했다.그는 20대의 끝자락, 잘못 쏘아 올린 오발탄처럼 스스로 파멸의 길로 들어섰다.아버지를 향한 원망의 씨앗은 어린 시절 술에 취했다 하면 어머니와 자신에게 자행되는 폭행을 마주하면서 싹을 틔웠다. 외동으로 태어나 그 외로움과 두려움은 커져만 갔다.학창시절에는 사춘기까지 겹치면서 분노조절 장애와 우울증으로 약을 처방받아 복용하기도 했다.30년 가까이 함께 살았지만 사이가 좋았던 적이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버지와의 갈등의 골은 깊어만 갔다.삶의 지표를 잃고 방황하길 10여 년, 보안업체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기란 쉽지 않았고 구직에 대한 희망도, 구직해야 한다는 의지도 시들해져만 갔다.말다툼은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라는 아버지의 조언에서 시작됐다. 청년은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해 아버지에게 흉기를 휘두르고 말았다.대구 강북경찰서는 25일 말다툼 도중 아버지를 흉기로 찌른 혐의(존속살해미수)로 A(29)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A씨는 지난 23일 오후 8시49분께 북구 자신의 집에서 아버지 B(58)씨와 말다툼을 벌이던 중 흉기로 가슴 부위를 한 차례 찌른 혐의를 받고 있다.A씨는 범행 직후 직접 119에 신고했다. 아버지 B씨는 생명에는 지장이 없으나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A씨는 경찰에서 아버지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해 말다툼을 벌였다고 진술했다.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

권순진의 맛있게 읽는 시- 너 갈 데로 가거라 / 김규동

너 갈 데로 가거라 / 김규동 아들아이는 빈 책가방에 도시락만 달랑 넣고 집을 나섰습니다. 그가 어디로 가는 걸까요. 학교에 가도 수업시간에 알아들을 수 있는 건 없고 한 시간이 천년 같다고 했어요. 수학과 영어는 1학년 때부터 공부했어야 하는데 어느새 3학년 기초가 없으니 어느 과목도 다 모를 것뿐입니다. (중략) 막노동하는 아버지는 이런 사정도 모르고 아이의 장래를 생각하며 일만 열심히 했어요. 뒤늦게 이 일을 알게 된 아버지는 분통이 터져 당장 아이를 붙잡아 때려죽이려 했어요.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아이 어깨를 짚더니 조용히 이야기 했어요 참으로 조용히 말했어요. 용식아, 알았다. 그렇구나, 너 갈 데로 가거라 너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거라 이 애비도 그래서 일찍이 집을 뛰쳐나와 이렇게 평생을 살았단다. 용식아 알았느냐 그러면서 참았던 눈물을 쏟으며 아버지는 그만 통곡하고 말았어요 - 계간 『사람의 문학』 2006년 가을호.........................................................................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우리 모두 다 겪은 일이다. 근거 없는 불안과 의심으로 공부는 재미없고 먼 산을 자주 쳐다보았다. 공상을 하면서 세상은 왠지 다른 재미나는 일들로 수두룩하고 눈에 잘 띄지 않은 곳곳에 숨겨져 있을 것만 같았다. 연필을 손에서 놓고 교실 창밖 봄날의 아지랑이에 혼이 빠지고 가을날의 단풍에 넋을 잃었다. 노르스름하게 물들어가던 은행잎이 나를 잡아끌었을 때 칠판은 그야말로 깜깜한 흑판이었으며 아무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선생님을 주목하지 않은 대가로 꿀밤을 맞거나 몽당분필로 머리통을 타격 당하거나 어쩌면 화장실 청소를 두어 번 정도 했을지도 모르겠다.학습 부진은 일부 선천적인 중추신경계 이상으로 인한 학습 장애 말고는 거의 기초학력 부족으로 인한 흥미 상실 때문이다. 학교에서 먼 산이나 보고 예습복습을 하지 않으니 처질 수밖에 없다. 따라가지 못하는데 나중에 따라잡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집중력과 주의력이 떨어져 딴짓하기 일쑤고, 중2 신학기쯤 되면 회복은 더욱 어려워 밖으로만 나돌려고 한다. 옛날엔 그저 골목을 배회하거나 천장의 사방팔방 무늬만 쳐다보며 공상을 키울 뿐이었지만 요즘 아이들에겐 인터넷 게임 등의 환상적인 출구가 있다. 공부가 생각보다 재미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아이들 자존심을 배려한 맞춤식 학습 환경이 제공돼야 하는데 쉽지 않다.공부 못하는 아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부족하다. 시에서 “너 갈 데로 가거라” 눈물 쏟으며 진정어린 격려를 해주는 아버지의 태도는 그나마 다행스럽다. 대개는 낙인찍힌 채 내팽개쳐져 방치되는 게 현실이다. 문제는 ‘너 갈 데로 가서’ ‘너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라는 당부가 수용될 만큼 이 사회가 다원화된 교육 인프라나 사회안전망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머리가 늦게 트이는 아이들을 편견 없이 보듬어줄 재기 시스템이 거의 작동되지 않고 있다. 최근 ‘스카이캐슬’이나 ‘수저론’도 근본적인 교육개혁의 요구를 함의하고 있다. 빈부의 세습뿐 아니라 학력의 대물림으로 이 사회가 더 깊게 양극화되고 골이 패인 채 그냥 굴러간다면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공부를 잘 하나 못하나 학교 안이나 밖이나 청소년들은 우리의 미래임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권순진의 맛있는시- 아버지의 등을 밀며/ 손택수

아버지의 등을 밀며/ 손택수 아버지는 단 한번도 아들을 데리고 목욕탕엘 가지 않았다/ 여덟살 무렵까지 나는 할 수 없이/ 누이들과 함께 어머니 손을 잡고 여탕엘 들어가야 했다/ 누가 물으면 어머니가 미리 일러준 대로/ 다섯 살이라고 거짓말을 하곤 했는데/ 언젠가 한번은 입속에 준비해둔 다섯 살 대신/ 일곱 살이 튀어나와 곤욕을 치르기도 하였다/ 나이보다 실하게 여물었구나, 누가 고추를 만지기라도 하면/ 잔뜩 성이 나서 물속으로 텀벙 뛰어들던 목욕탕/ 어머니를 따라갈 수 없으리만치 커버린 뒤론/ 함께 와서 서로 등을 밀어주는 부자들을/ 은근히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곤 하였다/ (중략) 아버지/ 등짝에 살이 시커멓게 죽은 지게자국을 본 건/ 당신이 쓰러지고 난 뒤의 일이다/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까지 실려온 뒤의 일이다/ 그렇게 밀어드리고 싶었지만, 부끄러워서 차마/ 자식에게도 보여줄 수 없었던 등/ 해 지면 달 지고, 달 지면 해를 지고 걸어온 길 끝/ 적막하디적막한 등짝에 낙인처럼 찍혀 지워지지 않는 지게자국/ 아버지는 병원 욕실에 업혀 들어와서야 비로소/ 자식의 소원 하나를 들어주신 것이었다. - 시집「호랑이 발자국」(창비, 2003)................................................................... 누구나 어린 시절 공중목욕탕에 얽힌 추억 하나쯤은 간직하고 있으리라. 나도 초등 1학년 때까지 어머니 손을 잡고 여탕에 입장했던 아련한 향수가 있다. 아버지가 목욕탕 데려가는 걸 인색해 하는 데다 어머니 손이라야 구석구석 매매 씻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초등 2학년 때 같은 반의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여탕에서 마주쳤다는 민망한 소문을 들은 이후 어머니 손에 이끌려 여탕에 가는 일은 그만두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아버지와 함께 목욕탕에 갔다. 그때서야 남탕과 여탕을 가로막은 벽의 존재를 실감했다.당시 ‘가족탕’은 어떤 사람들이 이용할까? 남녀불문 온 가족이 오순도순 서로 등을 밀어주며 목욕하는 곳이 맞을까? 따위의 궁금함과 함께 막연한 부러움을 가졌다. 흥얼흥얼 늘어진 가락의 시조창이 들렸다. 물론 그때는 그게 시조인지 주술인지 그냥 넋두리인지 알지 못했다. ‘얼른 들어와!’ 아버지는 깊숙이 탕 속에 몸을 담군 채 나에게 손짓한다. 머리만 보이는 아버지와 나의 간격엔 수증기로 자욱했다. 나는 한쪽 발을 천천히 내밀어 보지만 이내 발을 뺀다. 아버지의 눈치를 살피며 스스로 사내답지 못하다는 생각을 했다. 몇 번의 힘겨운 시도 끝에 겨우 탕 속에 마련된 돌계단에 작은 엉덩이를 올려놓았다.그러나 ‘아버지, 뜨거워서 얼른 들어가지 못하겠어요’라고 말하지 않았다. 내 물건이 아버지의 그것을 압도할 때까지 아버지의 조바심과 나의 머뭇거림은 계속되었다. 물론 씨알이 굵어지고 구근이 토란만 해졌을 때는 아버지와 함께 목욕탕을 가진 않았다. 그 전까지 아버지 앞에서는 언제나 사내답지 못했으며, 따라서 아들답지 않았다. ‘아버지, 사실 그때 너무 뜨겁고 두려웠거든요.’ ‘그리고 영식이가 차 선생님 가슴에 안겨 들어가는 걸 봤는데 그게 많이 부러웠어요….’ 끝내 말하지 못했다. 물컹한 추억 속에서 다행인 것은 광활한 만주벌판 같은 아버지의 등을 최선을 다해 밀어드렸을 때 돌아서 씩 웃으시던 아버지를 본 기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