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 초등학생이 어머니 차 몰래 운전, 접촉사고 발생

초등학생이 어머니 차를 몰다 다른 차량을 들이박는 사고가 발생했다.대구 중부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17일 오후 6시45분께 중구 태평로 동인네거리 부근에서 A(7)군이 몰던 스포티지 차량이 익스플로러 차량 옆면 좌측을 들이박았다.경찰 조사 결과 A군은 어머니가 평소 타던 차 키를 몰래 훔쳐 동구 신천동 아파트 주차장에서부터 차량을 끌고 나와 약 1㎞가량을 운행하다 사고를 낸 것으로 드러났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경찰 관계자는 “A군은 미성년자(촉법소년) 신분이라 처벌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A군의 호기심으로 인해 벌어진 것으로 보인다”며 “차량 수리비는 A군의 부모가 모두 배상하기로 합의된 상태”라고 밝혔다.대구 중부경찰서 전경. 이동현 기자 leedh@idaegu.com

세상읽기…좋은 관계

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좋은 관계검은 먹구름을 따라 한차례 소나기가 쏟아지고 난 하늘은 원래의 색을 되찾은 듯 산뜻하게 맑고 밝은 푸른빛이다. 마음은 흰 구름처럼 두둥실 떠오르고 발길은 절로 텃밭으로 향한다. 텃밭의 아이들은 비에 젖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못내 궁금하여 신발도 제대로 끼우지 않은 데도 발길은 벌써 그쪽으로 향한다.얻어다 심은 목화는 벌써 한 뼘이나 자랐다.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던 뜨거운 여름날을 어찌 그 어린 것들이 견뎌 냈을까. 주말이 되어도 바쁜 일이 생기면 들르지 못하는 시골이라 얻어다 심기는 했지만 그들의 생사가 내내 걱정되었다. 목화 꽃을 제일 좋아한다는 한 아이 엄마가 가져다준 목화 모종, 그녀는 티끌 하나 없는 연한 아이보리색 옷을 입고서 목화 모종을 손에 들고 하염없이 웃고 서 있었다. 고마워서 가져왔다는 그녀의 모습이 정말로 순수해 보여서 거절하지 못하고 두 손을 마주 잡고 웃어 주었다. 목화가 잘 자라나면 어디선가 그녀의 아이들도 사랑스럽고 포근하게 잘 자라나겠지 하는 마음으로.한국어가 서툰 아이의 엄마는 정말이지 무엇이라도 자신이 일을 하면서 하나하나 배워나갔다. 아이가 성조숙증으로 치료받게 되었을 때, 그녀는 목화솜 같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네게 다가와 속삭였다. 무슨 검사든지 필요하면 모두해서 아이에게 큰일이 생기지 않게 해 달라고 말하였다. 그녀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목화 모종에서 들려오는 듯하다. 멀리 타국에서 우리나라로 시집온 아이어머니, 그녀가 의지하고 기댈 곳이라고는 자신이 만나는 우리들이 전부이지 않겠는가.아이가 너무 이른 나이에 성숙이 되기 시작하여 이런저런 검사를 여러 가지 하게 되었다. 골 연령 검사, 혈액검사. 성선자극호르몬 분비검사 등을 말이다. 그 검사 결과 성호르몬의 수치가 너무 높아 급기야 머릿속에 어떤 이상이 있는 지도 검사해 보아야 할 지경이었다. 아이의 어머니에게 사정 이야기를 하고 혹시라도 모를 뇌 이상 유무를 확인해야 마음 놓고 치료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흔쾌히 동의했다. 치료에 필요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다 할 것이라면서 MRI(자기공명영상) 촬영에 동의서를 작성해 내민다. 어떤 일이라도 늘 긍정적으로 여기며 항상 밝은 표정을 짓는 그녀의 일상에 아무런 먹구름이 끼지 않기를 바라며 작성한 동의서를 훑어보았다. 설명을 잘 알아듣고서 일일이 자필로 작성한 그녀의 글자를 보다가 한 곳에 눈길이 자동으로 멈추는 것이 아닌가.‘관계’라는 항목이었다. 작성한 사람이 검사받을 아이와 어떤 사이인지를 밝히는 곳이다. 아버지라면 통상 ‘부(父)’를 적고, 어머니라면 ‘모(母)’라고 쓴다. 한자를 배우지 않은 세대는 ‘아빠‘, 또는 ‘엄마‘라고 적고 외국에서 공부한 적이 있는 사람은 더러는 DADDY, MOMMY 하고 적는 칸이다. 그곳에 목화 같은 그녀가 적은 글자는 얌전하게 앉은 모습의 ’좋은‘이었다. 자기 아들과 그녀 사이가 나쁘지 않고 좋다는 뜻이리라. 그 글자가 나를 웃음 짓게 하기 보다는 묘하게 가슴 깊은 곳을 찌르르 울렸다. 아무리 우리나라에서 오래 살고 부지런히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문화에 적응해 가더라도 정말이지 쏙쏙 들이 완벽하게 따라잡기는 힘 드는가보다 싶어서.언젠가 길을 묻기에 외국인에게 지도를 다운 받아서 찾아서 가라고 한 적이 있었다. 그때 그녀가 하던 말이 불현듯 떠오른다. 맵다? 카라이(からい)? ‘맵(지도,map)을 다운(download)’ 받아서 가라고 한 것을 자기는 ‘음식의 맛이 맵다.’라고 알아들었나 보았다. 우리네 인생살이에서 어느 것 하나 어렵지 않고 술술 쉬운 것만 있겠는가? 삶이란 여러 가지 살아가면서 스스로 느끼고 시행착오를 거쳐야 크게 자랄 수 있지 않겠는가, 부딪히고 깨지면서 길이가 자라고 품이 넓어지고 또 마음이 깊어가는 것 아니랴.미국에 있는 트위터 본사에는 거꾸로 붙은 글귀가 있다. ‘내일은 더 멋진 실수를 하자(Let’s make better mistakes tomorrow). 이는 바로 색다른 도전을 하자는 말이 아니겠는가.나를 기댈 곳이라고 생각하여 들고 왔다는 그녀의 목화 모종이 자라서 다행이다. 올해엔 어느 때보다 더 튼실하고 풍성한 목화송이를 맺어서 그녀 가족뿐 아니라 우리 주변의 모든 어려운 이들에게 기쁘고 좋은 소식을 듬뿍 가져다주기를 희망한다. 누구든 새로운 도전을 하면서 만나는 뜻밖의 일들이 인생을 더욱 풍성하게 하는 자산이 될 것이니.

권순진의 맛있게 읽는 시…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 권정생세상의 어머니는 모두가 그렇게 살다 가시는 걸까/ 한평생/ 기다리시며/ 외로우시며/ 안타깝게.../ 배고프셨던 어머니/ 추우셨던 어머니/ 고되게 일만 하신 어머니/ (중략)/ 어머니는 누구랑 살까/ 이승에 있을 때/ 먼 나라로 먼저 갔다고/ 언제고 언제고 눈물지으시던/ 둘째 아들 목생이 형이랑 같이 살까/ 아침이면 무슨 밥 잡수실까/ (중략)/ 어머니 사시는 거기엔/ 전쟁이 없을까/ 무서운 포탄이 없을까/ 총칼을 든 군대들이 없을까/ 모든 걸 빼앗기만 하는 임금도 없을까/ 무서워서 하루도 한 시도/ 마음 못 놓는 날이 정말 없는 것일까/ 그래서 헤어지는 슬픔도 없는 것일까/ 정말 울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중략)/ 너무 많이 배고프지 않았으면/ 너무 많이 슬프지 않았으면/ 부자가 없어, 그래서 가난도 없었으면/ 사람이 사람을 죽이지 않았으면/ 으르지도 않고 겁주지도 않고/ 목을 조르고 주리를 틀지 않았으면/ 소한테 코뚜레도 없고 멍에도 없고/ 쥐덫도 없고 작살도 없었으면/ (중략)/ 그리고 이담에 함께 만나/ 함께 만나 오래 오래 살았으면/ 어머니랑 함께 외갓집도 가고/ 남사당놀이에 함께 구경도 가고/ 어머니 함께 그 나라에서 오래 오래 살았으면/ 오래 오래 살았으면……- 동시집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 (1988)................................................................ 언젠가 수십 광년의 거리인 태양계 밖에서 지구와 환경이 비슷한 행성이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접했다. 그때, 나는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을 넘어 지구별에서 저 세상으로 떠난 사람들끼리 따로 한 살림 오붓하게 차려 살고 있진 않을까란 공상을 했다. 권정생 선생과 그 어머니의 이승에서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든 시를 읽으면서 내 공상도 활기를 띄어 내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도 이랬으면 하고 바랬다. 그곳에 전입신고 마치고 “아이고, 이제 왔나, 고생 많았지” “보고 싶었어요, 어머니” 외할머니도 뵙고, 순영이 누나도 만나고, 그리운 사람 모두와 인사를 나눈 뒤 이제는 자리 잡고 지낼 만 하신지. 이승과 크게 다르지 않은 무늬로 오래오래 사시다가 훗날 우리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권정생 선생의 섬세한 애정이 구구절절 배어있어 이오덕 선생 말씀 마따나 '무조건 감동적'이다. 선생 자신도 12년 전 5월17일 ‘보리밥 먹어도 맛이 있고’ ‘나물 반찬 먹어도 배가 부른’ 그곳으로 떠나가서 ‘어머니랑 함께 외갓집도 가고’ ‘남사당놀이에 함께 구경도 가고’ 그러면서 오래오래 잘 살고 계실 것이다. 선생은 자발적 가난을 실천하며 인류를 진정으로 사랑하신 이 시대의 성자셨다. 그리고 줘도 받지 않으실지 모르겠으나 누구보다 노벨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한 평화주의자셨다. 선생은 다시 태어난다면 건강한 몸으로 태어나 스물다섯 살쯤에 스물 두세 살의 처녀와 벌벌 떨지 않고 예쁜 사랑을 하고 싶다고 고백했다. ‘그 나라’에서 오래오래 사시다가 행여 이 세상으로 다시 오신다면 꼭 그러시길 바란다. 내 어머니도 내 아버지보다 조금만 더 마음씨 착한 남자 만나서 하고 싶은 그림 그리며 속 하나도 안 썩이는 딸 아들 하나씩 다시 낳아 진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달성경찰서 녹색어머니 연합회 정기총회 개최

대구 달성경찰서는 지난 14일 비슬산 인근 카페에서 양시창 경찰서장, 경비교통과장, 녹색어머니 회장·회원 등 4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녹색어머니 연합회 정기총회’를 개최했다.김재호 기자 kjh35711@idaegu.com

대구일보 가정의 달 시리즈, 헌신과 희생의 이름으로 (5·끝) 42년간 장애인 아들 지킨 어머니, 김태선씨

“못 견디게 괴로워도 울지도 못하고, 그 누가 알아주나 기막힌 내 사랑을….”김태선(70·여)씨는 유행가 ‘울어라 열풍아’ 가사를 조용히 읊조렸다.42년간 뇌병변 장애(지체 장애 1급)를 가진 아들 허준호(42)씨를 돌본 그에게 이 노래는 슬퍼할 새도 없이 보낸 세월의 위로였다.아들의 뇌 손상 소식을 접하고 받아들이기까지의 시간을 떠올리면 좌절과 아픔의 연속이었다.김씨는 “아들을 낳고 뇌 손상에 대한 소식을 듣기 전까지는 세상의 모든 축복을 받은 것만 같았다”며 “준호는 태어난 지 6개월이 지나도 잠을 자지 않고 울기만 했다. 젖을 빨지 못해 뒤척이는 자식의 모습을 바라보는 어미의 마음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떠올렸다.아들만 셋을 둔 김씨는 강한 어머니였다. 오전 2시 준호씨가 잠자리에 든 후에야 겨우 네 시간 쪽잠을 청할 수 있었다. 20여 년간 몸이 불편한 아들을 지각 한번 없이 학교에 보낼 수 있었던 것도 강인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그는 “형편이 어려워 집까지 일감을 가져와 자식들이 잠이 드는 오후 10시부터 가내수공업을 시작했다”며 “첫째와 막내가 준호를 더 챙길 수밖에 없는 어미의 마음을 이해해줘 고마웠고 형제간의 우애도 깊어 수십 년을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하지만 지속하는 지독한 생활고를 감당하기란 쉽지 않았다. 며칠 밤잠을 설쳐 어린 준호씨를 데리고 대구의 한 장애인 보호시설로 향한 적도 있었다고 털어놨다.그는 “아들을 맡기자마자 주저앉고 1시간을 울었다. 준호가 너무 보고 싶었다”며 “‘죽어도 같이 죽고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키워내리라’ 다짐했다. 내 뱃속에서 나왔으니 평생 가슴에 대못을 박고 살겠다는 마음으로 아들을 다시 데려왔다”면서 당시를 회상하며 눈물을 흘렸다.이후 김씨는 더욱 강해졌다. 사회복지사가 꿈인 아들의 소원을 이뤄주고자 대학에 진학시켰다.세상 물정 모른다는 주위의 질타도 이어졌다. 하지만 단지 어머니로서 자식의 앞날을 열어주고 싶을 뿐이었다.그는 “준호는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98학번으로 입학했다. 내 평생 준호를 위해 살면서 가장 보람찬 일이다”며 “학비 걱정에 고생한 일은 한순간이었다. 학사모를 쓴 아들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고 자랑했다.김씨는 꿈은 아들보다 더 오래 사는 것이라고 했다.아들이 더 이상 아프지만 않는다면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 삶이라고 답했다.그는 “9년 전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아들이 크게 다쳐 몸이 더 안 좋아진 것 같아 가슴이 찢어진다”며 “내 옆에서 나를 바라봐 주는 것만으로도 든든하고 고마운 아들이다. 여생을 아들과 함께 이웃에게 베푸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했다.42년간 장애인 아들을 지킨 김태선씨와 아들 허준호씨.42년간 장애인 아들을 지킨 김태선씨와 아들 허준호씨.이동현 기자 leedh@idaegu.com

앤드루 왕자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차남 앤드루 왕자가 14일 안동 봉정사를 찾아 법고, 운판, 문어 등 전통 불전사물 시연을 감상하고 있다. 앤드루 왕자의 방문은 1999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안동을 다녀간 지 20년 만이다. 이날 앤드루 왕자는 어머니가 방문했던 발자취를 따라 안동 곳곳을 방문했다. 김진홍 기자 solmin@idaegu.com

(시리즈) 가정의 달, 헌신과 희생의 이름으로, (4) 111세 치매 어머니 모시는 정원복씨

“어머니의 치매 증상을 발견한 시점부터 제 삶을 새롭게 돌아보는 터닝포인트가 됐습니다.”정원복(57)씨는 13년 전 어머니 문대전(111)씨의 치매 발견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어머니 문씨는 대구 북구에서 최고령 선거투표자로 유명인사다. 2017년 5월 대통령 선거에서도 109세의 나이로 직접 투표를 해 화제가 됐다.문씨는 자신의 손발과 마찬가지인 아들 정씨와 함께 살고 있다.정씨는 어머니의 치매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주말마다 함께 산을 찾는다. 어제는 50m를 걷고 오늘은 100m, 내일 200m 등 조금씩 운동량을 늘려나갔고 2014년부터 치매 증상이 거의 호전된 상태다.30대에 이혼하고 그때부터 어머니와 함께 살기 시작한 정씨는 사업에만 관심 있는 아들이었다. 늘 아침 일찍 출근해 밤늦게 퇴근하는 날이 이어졌다.어머니가 98세 때다. 정씨가 어느 날 퇴근길에 집에 돌아와 인사를 했지만 아무런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조용히 방문을 열어보니 방안은 대소변으로 엉망이었고 어머니가 처음 보는 사람을 보듯 “누구세요?”라고 되물었다. 치매였다.정씨는 “치매 초기에서 중기로 넘어가는 시점에 처음 알게 됐고 바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며 “처음 어머니의 치매를 알게 됐을 때 너무나 충격이었다. 사업을 한다는 핑계로 연로한 어머니를 방치하다시피 했다”면서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이후 정씨는 모든 개인적인 삶을 버리고 오롯이 어머니 문씨만을 위한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가사일부터 치매 치료를 위한 통원까지 모든 일을 도맡아 했지만 돌봄 한 달 만에 한계에 부딪혔다.정씨는 “막상 가정 일을 해보니 육체적으로 힘들었고 어머니를 돌보는 것은 정신적으로도 지치기 시작했다”며 “요양원에 보낼 결심을 했는데 그 얘기를 들은 어머니가 나를 원망하는 듯한 눈빛을 보내는 것을 보고 결국 포기했다. 아직도 그 눈빛은 잊을 수가 없다”고 전했다.정씨가 어머니를 돌보면서 가장 즐거울 때는 목욕을 시켜드릴 때라고 했다.그는 “씻는 사람도 씻겨주는 사람도 몸과 마음이 모두 정갈해지는 느낌이라 목욕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며 “효도는 별 게 아니다. 그저 말동무가 되고 눈과 눈을 마주치면서 스킨십하는 게 최고의 효도다”고 말했다.정씨는 “부모는 자식의 효도를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얘기가 있는데 정말 맞는 말이다”며 “개인적으로 어머니가 10년 정도만 더 계셔서 충분히 효도할 기회를 줬으면 하는 욕심이 있다. 앞으로도 우리 어머니와 늘 행복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정원복(57)씨가 어버이날을 맞아 어머니 문대전(111)씨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주고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다.김종윤 기자 kjyun@idaegu.com

의성서, 녹색어머니연합회 위촉식 및 간담회

의성경찰서는 최근 경찰서에서 녹색어머니연합회원 40명이 참석한 가운데 등·하굣길 어린이 교통안전 보호활동을 위한 녹색어머니연합회 위촉식 및 간담회를 개최했다.김호운 기자 kimhw@idaegu.com

권순진의 맛있게 읽는 시…아버지의 그늘

아버지의 그늘/ 신경림 툭하면 아버지는 오밤중에/ 취해서 널브러진 색시를 업고 들어왔다/ 어머니는 입을 꾹 다문 채 술국을 끓이고/ 할머니는 집안이 망했다고 종주먹질을 해댔지만,/ 며칠이고 집에서 빠져나가지 않는/ 값싼 향수내가 나는 싫었다/ (중략)// 아버지를 증오하면서 나는 자랐다/ 아버지가 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겠노라고/ 이것이 내 평생의 좌우명이 되었다/ (중략)그리고 이제 나도/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진 나이를 넘었지만,// 나는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한 일이 없다/ 일생을 아들의 반면교사로 산 아버지를/ 가엽다고 생각한 일도 없다, 그래서/ 나는 늘 당당하고 떳떳했는데 문득/ 거울을 쳐다보다가 놀란다, 나는 간 곳이 없고/ (중략)/ 그 거울속에는 인사동에서도 종로에서도/ 제대로 기 한번 못 펴고 큰 소리 한번 못 치는/ 늙고 초라한 아버지만이 있다.- 시집『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창비, 1998)........................................................... 카프카는 “나의 모든 글은 아버지를 상대로 씌어졌다. 글 속에서 나는 평소 직접 아버지의 가슴에다 대고 토로할 수 없는 것만을 토해냈다. 그건 오랫동안에 걸쳐 의도적으로 진행된 아버지와의 결별 과정이었다.”고 고백했다. 따라서 카프카 문학은 본질적으로 아버지로부터의 벗어남에 대한 욕구를 반영한다. 아버지란 존재 안에 도사린 상징성을 해독하지 않고는 무엇도 이해할 수 없는 하나의 수수께끼며 미궁이다. 법과 권위의 표상이며, 가족 내 모든 권력의 실체이며 몸통이었던 아버지는 성장하며 카프카를 억압한다. 그의 아버지는 카프카를 막대한 영향력으로 포획하고 일방적으로 가문의 DNA를 주입시키려 했다. 카프카는 이런 아버지의 권력에 저항하는데, 문학은 그 저항의 한 방편이며 응전이었다. 이런 아버지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는 가부장적 질서 아래 있었던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신경림 시인은 마치 카프카처럼 저항하며 문학의 방식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시인의 아버지는 그 시대 아버지의 전형인 동시에 내 아버지의 모습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때의 아버지는 당시 사회가 나에게 스며드는 하나의 방식이며, 내가 사회로 나가는 유일한 통로이기도 했다. ‘일생을 아들의 반면교사로 산 아버지’까지는 아니었으나, 나와 아버지의 관계도 늘 두려움과 적개심으로 가득한 불화였다. 세상 떠나신지 30년이지만 내게 심심하면 쏘아붙였던 ‘머저리’란 함경도 사투리가 귀에 쟁쟁하다. 그때 드리워졌던 그늘에서 여전히 기를 못 펴고 세상에 주눅 들곤 했던 성격도 아버지로부터의 억압에서 비롯되었는지 모르겠다. 아버지는 어린 시절 내 성격 형성에 별로 좋은 영향을 끼치진 못했다. 평생 하급공무원으로 살면서 너무나 거침없고 호방한 아버지였다. 한껏 취기가 오른 늦은 밤 귀가길, 골목어귀에서부터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무례와 똥배짱으로 동네 아이들에게 창피해 죽을 뻔한 일도 여러 번 있었다. 당신은 그 자식이 성에 차지 않았을 테지만 나도 그런 아버지가 싫었다. 고1때인가 헤밍웨이의 자서전 한 대목 ‘나는 아버지를 일찍 잃어버리는 행운을 얻었다’에서 눈이 번쩍 뜨여 나도 좀 더 이른 결별이 와주기를 기도한 적이 있다. 다행히 단발성 기도에 그쳤던 것은 순전히 어머니란 존재 때문이었다.

권순진의 맛있게 읽는 시…옛날의 그 집

옛날의 그 집/ 박경리빗자루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 그루가/ 어느 날 일시에 죽어 자빠진 그 집/ 십오 년을 살았다// 빈 창고같이 휭덩그레한 큰 집에/ 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꾹새가 울었고/ 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 이른 봄/ 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다행히 뜰은 넓어서/ 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 심고/ 고양이들과 함께/ 정붙이고 살았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가운 밤에는/ 이세상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 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나를 지켜주는 것은/ 오로지 적막뿐이었다/ (중략)/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유고시집『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11년 전 어머니에게 이 시를 읽어드렸다. “엄마보다 5개월쯤 언니뻘인 유명한 소설가가 지난 어린이날 돌아가셨는데 죽기 전에 남긴 시라네” “그 왜 연속극 ‘토지’ 기억하지? 최참판댁 서희, 길상이! 몰라? 그거 처음 소설로 지은 분” 세 차례나 제작되면서 주인공 서희 역만도 한혜숙, 최수지, 김현주 세 명의 탤런트가 거쳐 간 드라마를 연속극 좋아하는 어머니가 모를 리 없다. 박경리 선생의 생전 사진도 보여드렸다. 담배를 손에 든 모습이었다. 어머니도 아버지 돌아가시고 한동안 숙모에게 배워서 뽀끔 담배를 피운 적이 있다.“소설가라 기품 있어 보이네” “난 버리고 자시고 할 게 있어야지, 내야말로 이대로 그냥 눈감고 가도 아까울 게 하나도 없으니” 어머니는 비주얼로는 얼핏 먹물깨나 먹은 분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실은 맹탕이다. 당연히 박경리 작가의 이름도 몰랐다. “그런데 그 할마시 와 혼자 살았디나?” “토지는 봐서 안다만 이야기는 다 이자뿟다.” 뼈에 사무친 원한을 품은 채 사대부 집안의 가계를 이어가면서 근현대사의 질곡에 온몸으로 맞선 서희가 어머니에겐 어떻게 비쳐졌을까. 어느 한 두어 부분쯤 감정이입이 된 적도 있지 않았을까.드라마를 통해 어머니가 느꼈을 생의 악다구니와 모성애는 어떤 것이었을까. 도라꾸에 치어죽은 어린 딸의 시신을 가슴에 쓸어안았던 그 참혹의 심경은 어떠했을까. 보통사람이라고 해서 가슴마다에 장강 같이 흐르는 사연들이 어찌 없으랴. 우리 시대 어머니는 누구나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그 같은 이야기를 가슴팍에 묻고 있어 박경리 선생처럼 글재주와 체계적 사유가 없어 그렇지 쓰려고 한다면야 왜 이야기꺼리가 안 되겠나. 우리 또한 기쁨보다는 근심이, 만남보다는 이별이 더 많은 어머니의 언덕길을 보고 듣고 기대며 자라지 않았던가.세상 모든 것은 빠르게 자꾸만 흘러 11년 세월도 엊그제 같다. 박경리 선생 가시고도 어머니는 8년이나 더 사셨지만 이제는 함께 흘러간 물이 되었고 나도 그러리라. 사마천이 궁형의 고통을 이겨내고 엉덩이 힘으로 ‘사기’를 썼던 것처럼 오직 앉은뱅이책상 위의 원고지와 한 자루의 펜, 그리고 ‘적막’으로 지탱한 삶을 생각한다. 그러니 얼마나 눈부시게 시리고 고독한 생이었을까. 그렇다고 여행을 자주 다녔던 것도 아니고 담배를 즐긴 것이 거의 유일한 기호였다. 폐암선고를 받고도 수술을 거부했다. 선생의 ‘홀가분’에서 우주의 생명력을 느낀다.

권순진의 맛있게 읽는 시…강보에 싸인 두 병정에게

강보에 싸인 두 병정에게/ 윤봉길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해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잔 술을 부어놓아라/ 그리고 너희들은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아라/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으니/ 어머니의 교양으로 성공자를/ 동서양 역사상 보건대/ 동양으로 문학가 맹가(孟軻)가 있고/ 서양으로 불란서 혁명가 나폴레옹이 있고/ 미국의 발명가 에디슨이 있다/ 바라건대 너희 어머니는 그의 어머니가 되고/ 너희들은 그 사람이 되어라.- 김학준 『매헌 윤봉길 평전』 (민음사, 1992)................................................... 내가 지금 잠시 거주하는 곳에서 전철을 타고 다섯 정거장만 가면 ‘양재시민의 숲’이 나온다. 걷기운동 삼아 산책하기 좋아 가끔 찾는 곳이다. 이곳을 ‘매헌’역이라고도 하는데 아는 사람만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른다. 매헌은 윤봉길 의사의 호를 이르며, 여기에는 윤봉길의사기념관이 있다. 올해가 1908년생인 윤 의사 탄신 111년 되는 해이고, 그저께 4월29일이 ‘훙커우 의거’ 87주년이었다. 윤봉길 의사는 그날의 쾌거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소생시킨 분이라는 점에서 임정수립 100주년을 맞은 올해 더욱 뜻이 깊다. 윤봉길은 고향인 충청도 예산에서 농촌계몽운동에 매진하던 중 조선이 독립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제대로 이룰 수 없음을 인식하고서 심사숙고 끝에 독립운동에 투신하기 위하여 23세에 “장부출가생부환(丈夫出家生不還)”(대장부가 집을 나가면 뜻을 이루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는다)이라는 글을 남겨놓고 중국으로 떠났다. 최종 목적지는 임시정부가 있는 상해였다. 조국과 겨레에 대한 가장 큰 사랑을 실현하기 위한 길에 나섰음을 천명하였다. 윤봉길은 의거에 앞서 혈서로 쓴 ‘선언문’을 낭독하고, 유언으로 남긴 이 시를 김구 주석에게 건넸다. 의거에 임하는 비장함이 어느 정도인지 단박에 알 수 있다. 25세의 아름다운 청년이 자신을 초개같이 내던지면서 아직 걸음마도 떼지 못하는 두 아들에게 시를 남긴 것이다. 이 시를 통해 큰 장부의 기개를 느끼고, 대한독립의 결연한 의지를 또렷이 본다. 윤 의사가 남긴 이 친필유서는 후에 보물 568호로 지정되었다. 안타깝게도 작은 아들은 두 살 때 사망하였으며, 장남 윤종(1929~1985)에게서 장손녀 윤주경과 장손자 윤주웅이 대를 잇고 있다. 그런데 할아버지 윤봉길 의사의 ‘그 사람이 되어라’는 당부대로 살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장손녀 윤주경씨는 18대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 인수위에 소속되어 활동하였으며, 독립기념관장을 역임하였다. 이는 많은 독립운동가 집안이 이승만 정권 아래서 찬밥대우를 받다가 5·16이후 박정희 정권에서야 서훈이 되고 대접을 받게 된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후 박정희 정부는 독립운동가의 후손을 대거 정치권에 입문시켰다. 이러한 이유 말고도 한국전쟁 이후 남한에 남아있던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은 대체로 반공, 민족주의 계열이었기 때문에 반공을 앞세운 박정희의 군부와 결을 달리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 인연으로 김구 선생의 아들 김신과 그 후손 역시 3공화국부터 보수우익계열에서 봉사했으며 지금도 활동 중이다. 윤 씨도 같은 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겠다. 어쨌든 다 좋은데 윤 의사의 의거일 국회에서 벌어진 난동은 도무지 ‘조국을 위한 용감한 투사’의 행동으로 봐줄 수가 없으니...

권순진의 맛있게 읽는 시…단축다이얼 4

단축다이얼 4/ 배옥주“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다시 확인하고……”/ 오늘은 49재/ 부재의 얼굴을 떠올리며 다이얼 4를 길게 누르면/ 나의 ‘여왕’은 여전히 출타 중이다// 엄마의 오솔길엔 찔레 향기 깊어지는데/ (둥략)// 은수저 저 혼자 달그락거리는 아침/ 단축다이얼 4를 누르면/ 내 귓바퀴 속으로 두런두런 걸어오는 음성, 돌아보면/ 물안개 너머로 아득해지는// 강 건너 저쪽으로 새 한 마리 날아오르고/ 하루에도 몇 번씩/ 도무지 닿을 수 없는 결번의 얼굴을 눌러 본다- 시집『오후의 지퍼들』(서정시학, 2012).............................................................단축다이얼의 순번으로 관계의 중요함이나 친밀도를 가늠하긴 어렵겠으나, 친정엄마의 휴대폰이 ‘단축다이얼 4’인 것은 출가한 딸에게 예상되는 순번이다. ‘넘버 3’도 아니고 ‘넘버 4’지만 일단 ‘넘버9’ 안에 들었으니 아주 후순위는 아니다. 그런데 나 같으면 네트워크 교류의 빈도와 상관없이 ‘넘버 1’으로 후하게 대접할 것도 같다. 하지만 불행히도 내 어머니는 생전에 휴대폰을 가져보지 못했으므로 아예 단축다이얼 순번이란 게 없다. 언젠가 효도폰이란 게 출시되어 한창 광고에 열을 올릴 때 넌지시 의향을 물었더니 손 사례를 치셨다. 그럼에도 늘 ‘넘버 1’ ‘여왕’으로 굳건히 집 전화를 지키셨다.어머니 가신지 지난 4월26일로 3년이 되었다. 옛날식으로 쳐도 이제 완전 탈상을 한 셈이다. 사람이 죽으면 다음 생을 받을 때까지 49일 동안 이승과 저승 경계에 영혼이 머무는데 이 기간을 넘겨야 비로소 다음 생을 받는다고 한다. 마치 사람으로 태어나기 전 태아 상태로 열 달 간 엄마의 자궁 속에서 배양되는 것과 같은 이치에서 49일간의 환생을 위한 과정인 것이다. 즉, 죽은 자로 하여금 내세에서 좋은 생을 받기를 바라는 뜻에서 명복을 비는 불교식 탈상이 49재이다. 특히 불교에서는 윤회를 믿기 때문에 종교가 없는 사람들도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49재를 올린다. 그런데 나는 49재와 상관없이 어머니를 온전히 떠나보내지 못했다.어머니를 가톨릭묘원에 모신 입장이기에 별도로 49재를 챙기지는 않았으나 수시로 두 달에 한번 정도는 잠깐씩 군위묘원에 다녀오곤 했다. 이제는 그렇게 자주 찾아뵙지는 못할 것 같다. 군위묘원 가는 길 삼거리 오른쪽 언덕에는 김수환 추기경 풀집 생가가 복원되어 있다. 그리고 3년 전에는 공사 중이었으나 지금은 기념관도 완공되었다. 완공 이후 한 번도 들리진 않았으나 이번에는 돌아오는 길에 둘째와 함께 이곳을 찾았다. 맨 처음 눈길을 끈 것은 동그마니 놓여있는 옹기들이었다. ‘옹기’는 김수환 추기경의 호이기도 하다. 또한 옹기는 한국 천주교회사에서 박해와 신앙의 상징으로 전해져온다.가톨릭 선조들을 박해를 피해 산으로 숨어들어 독을 짓고 옹기를 내다 팔며 생계를 이어갔다. 추기경의 아버지도 그렇게 신앙을 지킨 가난한 옹기 장수였다. 질박한 성품에 세상을 너그럽게 품었던 추기경의 삶은 옹기를 그대로 닮았다. 옹기는 음식뿐 아니라 무엇이든 담는다. “이 세상에는 옹기 같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생전 추기경께서 자주 하시던 말씀이다. 기념관 안으로 들어서자 등신대의 추기경 동상이 반긴다. 손을 잡으니 온기가 전해진다. 실제로 동상 내부에 열선을 설치해서 사람의 체온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나는 동상을 껴안으면서 어머니의 체온과 음성을 함께 느꼈다. “애비야,

수성서, 녹색어머니연합회 정기총회 개최

대구 수성경찰서는 지난 24일 대강당에서 수성경찰서 녹색어머니연합회 회원 33명이 참석한 가운데 정기총회를 개최했다. 이날 총회에서는 신임회원 위촉식 및 어린이교통사고예방 유공회원 2명에 대한 경찰서장 감사장 수여식이 진행됐다.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

부모 부양 부담, 아버지 살해한 20대 징역 17년

부모를 부양하는 데 부담을 느끼고 아버지를 살해한 20대에게 중형이 선고됐다.대구지법 서부지원 형사1부(안종열 부장판사)는 존속살해·존속살해미수 혐의로 기소된 A(21)씨에 대해 징역 17년을 선고했다고 21일 밝혔다.A씨는 지난해 11월19일 대구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아버지(당시 53세)를 흉기로 찌르고 목을 졸라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A씨는 아버지를 살해한 후 어머니에게도 흉기를 휘둘렀다. 당시 A씨가 어머니를 흉기로 여러 번 찔렀지만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제압돼 목숨은 건졌다.A씨는 아버지가 만성 신장병을, 어머니가 유방암을 앓아 본인이 가족을 부담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정신이 질환이 겹치자 부모를 살해하고 자신도 자살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으로 알려졌다.재판부는 “피고인이 어린 나이에 지병을 앓는 부모와 학생인 동생의 생계를 책임져 상당한 육체·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았고 중증도의 우울증을 겪고 있는 점, 어머니와 여동생이 선처를 탄원하는 점 등을 종합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