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레꽃 향기 속에

찔레꽃 향기 속에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향긋한 꽃내음에 발걸음이 절로 멈춘다. 새벽에 집을 나서 산소 찾아 올라가는 길, 짙은 안개가 볕에 걷히자 은은한 향내가 산길에 퍼져있다. 두리번두리번 사방을 살피니 하얗게 피어난 찔레꽃이 조상님 산소 앞 둑에 무리 지어 피어 있는 것이 아닌가. 어서 오라고 손짓하며 반기는 듯하다. 코로나19에 별일 없었느냐고 안부를 묻는 것 같다. 어머니를 만난 듯 반가운 마음에 가까이 다가가 코를 대고 한참을 들이켜 본다. 언제 그곳에 피어나 우리들이 찾아오길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던가. 찔레꽃의 꽃말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하더니. 우리를 “보고 싶다”. “그립다” 하는 이들이 계신다고 고하는 것 같다. 구정설이 지나 시작한 코로나19, 정신없이 번져가는 통에 벌초도 성묘도 제때 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꼼짝없는 불안에 떨기만 하였다. 그러다 보니 한식도 지나고 이제 오월도 중순이다. 내일모레면 막내아들의 개학이다. 미루고 미루었던 등교 일정이 고3이라 어쩔 수 없단다. 입시가 코앞이라 더 미룰 수 없다고 하니 두고 볼 수밖에 어쩔 수 없지 않은가. 해외에서 대학원 공부하던 아들은 그곳 상황이 너무 긴박하게 안 좋아져 귀국하였다. 공항에 내려 특별실이 마련된 기차를 타고 동대구역으로 왔다. 그곳 선별 진료소에서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전신 방호복을 입은 택시를 타고 혼자서 짐 가방을 끌고 비어 있는 외딴집으로 갔다. 가족들 얼굴도 마주하지 않은 채 격리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래저래 마음이 편하지 않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나날이다. 코로나19 잡힐 듯 잡힐 듯하다가도 또 어느 구석에 숨었다가 튀어 오르니, 마치 두더지 때려잡기 게임을 하는 느낌이다. 손으로 불안을 헤아리다가 마음의 위안이라도 받고자 산소로 향했다. 학생도 격리자도 모두 무리 없이 무사히 넘겨서 과정을 잘 마무리하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재난지원금만큼이나 나가는 비싼 예초기를 샀다고 자랑하는 동생네와 함께 초록의 들판을 지나 산소로 향했다. 산소로 오르는 길은 수풀로 뒤덮여 발 디딜 틈조차 없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입구부터 예초기를 이리저리 돌리며 길을 만들며 앞으로 나아간다. 사방에 피어난 이름 모를 색색의 꽃들도 반가운 듯 향긋함으로 답한다. 잘린 풀에서 배어 나오는 풀냄새가 오랜만에 생기를 돋운다. 산에 오르자 저 멀리 푸른 들판 너머 풍경은 평화롭게 다가든다.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집에서 은둔하며 격리 생활을 하고 있을 이들의 눈빛이 그 위에 어른어른 겹친다. 하얀 찔레꽃은 산소를 에워싸고 피어나 장미보다 더한 향기를 전한다. 꽃향기에 취하다 보니 땀내 젖은 어머니의 품이 못내 그립다. 문득 어느 시인의 찔레꽃이 들려오는 듯하다‘닮은 듯 닮은 얼굴 누군가 그려 보니/ 흰 수건 동여매고 밭 매던 내 어머니/ 살며시 그 품에 안겨 밤새도록 우누나/ 엄마 품 그리워서 턱 괴고 바라보니/ 천사의 웃음으로 한없이 웃어 주신/ 찔레꽃 향기로 오신 보고 싶은 어머니"향기로운 오월을 장식하는 꽃 중에 찔레꽃도 한 몫을 하는 요즈음이다. 산소를 찾아 오르는 자식들에게 그리움을 속삭이듯 하얗게 물들이고 있는 찔레꽃, 때 묻지 않은 수수함에 더 마음이 간다. 자리를 가리지도 않고 비탈진 언덕에 피어나 온화한 빛깔로 사랑을 전해주는 어머니의 꽃, 그 신중한 사랑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다. 엄마의 향기는 다시 찾을 길이 없지만 은은한 찔레 향기에 취해서 꿈속에서라도 엄마의 냄새를 더듬어 볼 수 있다면 지금 같은 언택트 시대에도 마음 속 위안이 되지 않겠는가.주말 오랜만에 나들이하러 다녀온 지인은 그곳은 코로나19와는 상관없는 동네인 것 같더라고 하였다. 재난지원금으로 부모님 모시고 외식하러 멀리 남쪽으로 갔더니 식당마다 예약대기표를 받을 정도로 사람이 붐비더라고, 아무리 그렇더라도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할 것들이 있다. 지금 확진자 숫자는 줄어들고 있지만, 잔불 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또다시 살아나 우리를 힘들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리라. 답답하고 불편하지만 마스크를 꼭 하고 다니고 무엇보다 손 씻기를 철저히 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접촉을 가능하면 덜하고 멀리하는 것이 나를 지키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언젠가는 일상으로 돌아갈 날이 찾아오겠지만 그때까지 서로서로 격려하면서 적당한 거리 유지로 버티기를 잘해야 하리라.붉은 황토 흙구덩이나 비탈진 언덕배기에서도 여유로운 자태로 의젓하게 버텨서 향기로운 꽃으로 그리움을 전하는 찔레꽃처럼.

계명대 동산병원, 카자흐스탄 사시 소녀에게 ‘제2의 눈’ 선물

사시로 고통 받던 카자흐스탄 소녀가 계명대 동산병원(병원장 조치흠)에서 수술을 받고 맑고 예쁜 눈을 되찾았다.동산병원을 찾은 환자는 자나토바 다나(15) 양으로 지난해 10월 계명대 동산병원과 동산의료선교복지회(회장 김진희)가 카자흐스탄 우슈토베 달라니바스톡에서 펼친 해외의료선교 봉사활동에서 인연을 맺었다. 다나 양은 선천적으로 사시를 갖고 태어났으며, 다나 양의 부모는 어려운 형편에도 어린 딸의 눈을 치료해주기 위해 백방으로 알아보고 도움을 구했다.하지만 카자흐스탄 어디에서도 다나 양을 치료할 수는 없었다.동산병원과 동산의료선교복지회는 봉사 현장에서 다나 양의 안타까운 사연을 접했고, 다나 양과 어머니를 한국으로 초청해 입국부터 진료와 수술 등의 전 과정을 무료로 지원하기로 했다.동산병원 안과 이세엽 교수는 지난 11일 자나토바 다나에게 사시 수술을 시행했고 수술은 성공적으로 진행됐다.다나 양은 13일 오전 퇴원해 15일 최종 진료를 받은 후 20일 카자흐스탄으로 돌아간다. 다나 양의 어머니 사리예바씨(42)는 “딸의 사시를 치료해주기 위해 13년간 노력했지만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다. 딸이 한국의 최첨단 병원에서 높은 의료기술로 무사히 수술 받게 된 것에 우리는 선택받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고 우리를 선택해주신 동산병원과 이세엽 교수님께 정말 감사하다”며 “13년간 딸의 치료만을 꿈꿔왔는데 오늘 그 꿈을 이룬 순간이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수술을 집도한 이세엽 교수는 “다나 양의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고 회복도 빨라 바로 정상생활을 하는데 무리가 없다”며 “그동안 불편한 몸과 마음고생으로 힘들었을 다나 양이 앞으로는 예쁘고 맑은 눈으로 세상에 나아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달성군 여성단체협의회, 사랑의 이웃돕기성금 전달  

대구 달성군 여성단체협의회(회장 이호연)는 지난 17일 연말을 맞아 관내 저소득 2가구를 선정해 이웃돕기성금 100만 원을 전달했다.이호연 여성단체협의회장을 비롯해 회원 17명은 최근 가족과 단절되어 뇌경색으로 몸이 불편한 독거노인가구에 생활비를 전달하고 또 할머니와 정신장애 어머니, 손녀 등 3대가 거주하는 기초수급가구에 수시합격한 손녀의 학비 지원으로 각각 50만 원씩 전달했다.이호연 여성단체협의회장은 “한파에 힘든 겨울을 보낼 어려운 이웃들에게 따뜻한 힘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한편 달성군 여성단체협의회는 연말 어려운 이웃돕기 이외에도 관내 노인, 관내 장애인 시설인 미소마을, 대구시립희망원 등에 매월 정기적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김재호 기자 kjh35711@idaegu.com

대구 남부서, 교통안전홍보 및 캠페인 개최

대구 남부경찰서는 4일 영대네거리에서 모범운전자회, 녹색어머니회 등 200여 명과 함께 교통질서 확립을 위한 사람이 먼저인 교통문화정착 및 어린이 사고예방을 위한 교통안전홍보 및 캠페인을 실시했다. 구아영 기자 ayoungoo@idaegu.com

어머니 욕한다며 지인 살해한 우즈베키스탄인 징역 20년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 욕한다는 이유로 지인을 살해한 우즈베키스탄 국적의 40대 남성에게 법원이 중형을 선고했다. 대구지법 형사12부(이진관 부장판사)는 살인 혐의로 기소된 A(46)씨에 대해 징역 20년을 선고했다고 2일 밝혔다. A씨는 지난 7월31일 경북의 한 원룸에서 같은 국적 동료 4명과 술을 마시던 중 B(40)씨가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 욕하자 이에 격분해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부는 “범행 수법이 잔혹하고 피해자 유족들이 엄벌을 탄원하고 있어 장기간 사회로부터 격리할 필요가 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슬픔에 대하여

슬픔에 대하여 / 복효근해가 산에서 마악 솟을 무렵/ 구름 한 자락 살짝 가리는 것 보았니?/ 깜깜한 방에 갑자기 불을 켤 때/ 엄마가 잠시 아이의 눈을 가렸다가 천천히 떼어주듯/ 잠에서 덜 깬 것들, 눈이 여린 것들/ 눈이 상할까봐/ 조금씩 조금씩 눈을 열어주는 구름 어머니의 따뜻한 손/ 그렇게는 또/ 내 눈을 살짝 가리는 구름처럼/ 이 슬픔은/ 어느 따스운 어머니의 손인가- 시집『마늘촛불』(애지,2009)......................................... 야간운전을 할 때 마주 오는 차의 전조등 불빛이 직접 눈에 닿으면 눈부심 때문에 순간적으로 시력을 잃는 경우가 있다. 가로등이 없는 지방 도로에서 이런 현상이 더 심하다. 요즘은 터널에 불을 환하게 밝혀 그런 일이 적지만 주간에 갑자기 어두운 터널로 들어설 때도 현혹현상이 일어난다. 마찬가지로 극장 같은 캄캄한 곳에 갑자기 들어서면 처음엔 주변이 하나도 뵈지 않는다. 한발 앞으로 떼기도 멈칫거려진다. 하지만 시간이 좀 지나면 차차 주위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해 편하게 움직일 수 있게 된다. 어두운 곳에 오래 있다가 갑자기 밝은 곳으로 나왔을 때에도 눈부심을 느끼는데 시간이 지나야 눈은 정상기능으로 복귀한다. 이런 현상들은 모두 외부의 자극에 감각이 익숙해지는 순응이다. 일시적으로 현혹된 눈이 원래대로 회복되기까지는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하다. 순응이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밝은 곳에서 어두운 곳으로 들어갔을 때와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으로 나왔을 때의 차이가 크다. 전자의 ‘암순응’이 완료되기까지는 40분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데 비해, 후자의 ‘명순응’ 즉 눈부심이 사라지기까지는 1~2분이면 족하다. 나도 어린 시절 엄마 손에 이끌려 가끔 영화관을 찾았다. 임권택 감독의 첫 작품인 ‘두만강아 잘 있거라’의 몇 장면은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다. 그때 깜깜한 극장에서 잠시 내 눈을 가렸다가 천천히 떼어주던 엄마의 다정한 손과 함께. 극장 밖을 나올 때도 ‘어머니의 따뜻한 손’이 내 눈을 잠깐 가렸었는데, 순간 엄마라는 완벽한 우산을 가슴으로 느끼면서 안도했다. 시인이 ‘해가 산에서 마악 솟을 무렵’ ‘구름 한 자락 살짝 가리는 것’을 보고선 어머니의 그 따뜻한 손을 환기해낸 것은 엄청난 시적 서정의 발견이다. 이미 그러한 동작은 폐기되었거나 후미진 추억의 곳간 속에나 처박혀있는 것이어서 좀처럼 인출되기 어려운 품목이기 때문이다. 순응이란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여 순순히 잘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비교적 건강하셨던, 혹은 그렇게 믿고 싶었던 어머니였는데 4년 전 갑자기 쓰러지시고 100일간 병원에 누워계시다가 저 암묵 속으로 들어가셨다. 그 백일간의 암흑천지는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이런 비유는 가당찮지만 암순응에 쉽사리 적응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나는 밥을 처먹고 똥을 싸고 이빨을 닦았다. 하지만 거울을 요리조리 들여다보면서 수염 깎는 일만은 차마 할 수 없어 100일 동안 수염은 그대로 방치했다. 내 죄책감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괴이하게도 어머니 가시고 명순응에 적응하기까지의 시간은 훨씬 더뎠다. 아니 지금도 완전히 적응했다고 할 수는 없다. ‘내 눈을 살짝 가리는 구름처럼’ 여전히 어머니의 손길이 그립다. 어쩌면 ‘눈이 상할까봐’ 더 큰 슬픔을 가리는 ‘어느 따스운 어머니의 손’이 작동중인지도 모르겠다. 슬픔은 또 다른 슬픔으로 덮는가. 세상의 모든 슬픔 앞에 어머니의 손이 있다.

고통을 이겨낸 상처

고통을 이겨낸 상처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배추 묶음이 놓인 들을 지난다. 바람은 차가움을 더하지만, 그래도 햇볕은 따스한 기온을 머금은 채 겨울나기 준비를 하라고 재촉하는 것 같다. 이제 집안을 정돈하고 본격적으로 월동 준비를 해야 할 때가 되었다. 부쩍 추워지는 날씨에 올해엔 얼마나 또 찬 바람이 몰아칠까. 서리 내린 뒤 붉은 피마자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익어서 벌어지기를 기다리던 목화송이마저 정지된 채 붙어있는 텃밭이 눈에 들어온다. 바스락거리는 국화꽃 잎의 마른 소리를 들으며 흙을 밟아본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며 아무 큰일만은 일어나지 않았기를 바란다. 그동안 잠깐 몰아닥친 추위에 모든 결실이 얼어붙었으면 어쩌랴.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다가가 보니 속이 꽉 찬 배추가 “나, 여기 있소~!” 소리 없는 아우성을 보내며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 막내 제부가 봄이 시작되었을 때 좋은 거름을 듬뿍 넣어서 모종해 주었던 덕분일까. 한여름의 땡볕에도 가을 찬바람에도 저렇게 꿋꿋하게 자라나고 속이 차서 겨울 식구들의 김장을 위해 손길을 기다리고 있나 보나.날씨 따뜻한 주말 어느 날, 식구들과 친척들 모여 하나씩 뽑고 씻고 절여서 갖은양념을 버무려 어머니의 손맛이 느껴지도록 김치를 담가 보리라. 나의 어머니와 동생들, 제부까지 다 모여 앉아서 시끌벅적하게 김장을 하던 때가 그립다. 어머니의 손맛은 아무리 닮으려 해도 흉내조차 낼 수 없으니, 그저 그때 그 맛, 그 분위기만을 떠올리며 마음으로 위안을 받을 수밖에 도리가 있겠는가. 김장을 마칠 즈음 돼지고기 수육을 삶아서 양념 갓 섞은 김장김치를 쭉쭉 찢어서 서로의 입에 넣어주던 그때가 정말 그리워진다. 입은 그때의 맛을 기억하고 있었던 듯 벌써 침이 고여 온다. 어머니가 안 계시는 지금에는 내가 그 자리에 대신 앉아서 그날의 분위기를 연출해야 하지 않으랴. 김장할 날을 뽑아보려고 휴대폰 일정을 열려는 순간, 전화벨이 울린다. 통화 버튼을 누르니 울먹이는 여동생의 목소리다. 놀라서 자초지종을 물으니 취미생활로 목공을 배우던 제부가 늦은 시간에 작품을 완성하려고 전기톱을 쓰는 순간, 칼날이 엄지손가락을 지나갔다는 것이 아닌가. 전화 목소리로도 상황이 심각함이 느껴져 얼른 병원으로 가자고 하였다. 신발도 끌다시피 하여 운전대에 앉아 응급실로 달려갔다. 몸무게가 100킬로가 넘는 거구에다 장신인 제부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있다. 무서웠던 그 찰나. 아픔에 못 이겨 어지럼증이 찾아와 한동안 바닥에 누워 있다가 차에 실려 왔다는 그,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아픔이 느껴져 온몸에 소름이 돋아왔다. 어쩌겠는가. 이미 벌어진 일이니 잘 치료되어 더는 후유증이 생기지 않도록 애쓰는 수밖에. 종합병원 응급 대기실에 앉아서 기다리다 보니 갖가지 사고로 혼비백산 찾아오는 이들이 밤을 새워 몰려든다. 수술하고 나서 운동을 하는 이들은 각자의 사연을 이야기하며 문병객을 맞는다. 벌초하러 형제가 함께 산소에 갔다가 시끄러운 예초기 소리 탓에 옆에 서 있는 형을 못 보고 예초기 날을 휘둘러 그만 다리에 깊은 상처를 입어 수술하였다는 분, 손목이 반쯤 깊이 밤새도록 연결 수술을 하고서 몇 달째 치료 중이라는 젊은이, 모두 피범벅이 되었던 이들이 이제는 옛날 추억을 되새기듯 담담한 어조로 그날의 사연을 지인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다친 제부도 얼른 수술이 잘되어 얼른 저렇게 지난 일을 웃음 띤 얼굴로 이야기 할 수 있기를 바랄 뿐, 도움을 주지 못하는 처지가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이다.응급 수술로 인해 밤엔 진통제로 버티면서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밤 동안 그야말로 뼛속까지 느껴질 그 고통을 어찌 감당할까. 영상 사진으로 본 엄지손가락 뼈는 세차게 돌아가는 전기 톱날에 깊이 파인 동굴처럼 되어 끝만 겨우 붙어 있고, 살은 휴지 조각처럼 찢어져 벌어져 있었으니 그 아픔이 어땠으랴. 혼절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 여겨야 할 정도의 상처라 밤을 뜬눈으로 지새웠다. 날이 밝아 수술하는 그를 수술실로 들여보내며 간절히 기도한다. 이 겨울을 무사히 잘 넘기게 해 달라고. 살아있는 모든 생명이 찬 기운에 얼지 않고 아픔으로 고통 받지 않고 상처도 말끔하게 잘 나아서 새살이 차올라 원래의 기능을 되찾게 해주기를. 이 한 소절의 글이 위로될까. “내가 한마음의 상처를 잊게 할 수 있다면//중략// 내가 한 생명의 고통을 덜게 하고 그 번뇌를 가라앉힐 수만 있다면/ 혹여 내가 죽어가는 한 마리의 물새를 다시 둥지로 돌아가 살 수 있게 한다면/ 내 삶은 실로 헛되지 않으리.” 에밀리 디킨슨처럼 만일 내가 한마음의 상처를 멈추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수험생 어머니같은 마음으로 지킨다

녹색어머니연합회, 교통관리는 물론 따뜻한 핫팩도 건네○…이른 아침부터 대구 달성고에 이영선(39·여)씨를 포함한 4명의 대구 서부 녹색어머니연합회 회원이 교통 통제에 나섰다.이들은 6년 째 수능 당일에 수험생의 안전을 책임져 왔던 교통 안전 베테랑이었다.남색과 녹색의 조화가 이뤄진 녹색어머니회 정복으로 말끔히 차려 입고 ‘이 구역은 내가 지킨다’는 사명으로 한 손에 교통 지시봉을 든 채 칼군무같은 교통 수신호를 하기 시작했다.또 정문으로 들어가는 수험생마다 따뜻한 핫팩을 건네는 센스도 잊지 않았다.특히 입실 종료가 임박한 가운데 홀로 수험장에 도착한 한 수험생을 본 이씨는 그의 손을 꼭 잡고 “날이 추우니 컨디션 유지에 신경써야해”라며 수험생 어머니와 같은 마음으로 안아주기도. 이동현 기자 leedh@idaegu.com

천재시인 이장희 그린 뮤지컬 ‘푸르고 푸른’

극단 구리거울은 고월 이장희 타계 90주년을 맞아 기획한 뮤지컬 ‘푸르고 푸른(부제 청춘에게 바치는 시)’을 14~17일 봉산문화회관 가온홀에서 선보인다.2018년에 이어 2019년 대구문화재단 우수기획지원사업에 선정된 이번 작품은 한국 근대 시단을 이끌었던 대구 출신 시인들의 이야기다. 이장희, 이상화, 백기만, 세 청년 시인의 우정과 그들의 예술세계를 기린 작품으로, 한국 모더니즘 시의 지평을 연 이장희와 민중 항일시를 쓴 이상화를 통해 1920년대 한국 시단을 살펴볼 수 있다. 다섯살에 어머니를 잃은 장희는 계모의 냉대에 시달리다 일본 교토중으로 유학을 떠난다. 교토에서 뮤즈 에이꼬를 만나 슬픔을 시로 풀어내는 문학청년 장희는 신학교 진학을 꿈꾼다. 그런데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인 아버지 이병학은 장희에게 귀국을 명해 자신의 친일사업을 도우라고 강요한다. 이를 거역한 탓에 집에서 쫓겨난 장희는 평생을 궁핍과 고독에 시달리며 시를 쓴다. 다행히 상화와 기만의 독려에 힘입어 동인지에 시를 발표하고 문단의 주목을 받는다. 하지만 아버지의 친일활동에 대한 죄의식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장희의 영혼은 사위어 가고, 속물로 가득 찬 이 세상을 벗어나고 싶은 유혹에 시달린다.이 작품은 친일파의 아들 장희와 우국지사의 자손 상화의 갈등과 우정, 에이꼬와의 애틋한 사랑, 어머니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 등 매력적인 스토리가 투명한 수채화처럼 펼쳐지는 것이 특징이다. 여기에 피아노 라이브로 진행돼 음악적 매력을 더한다. 1920년대 일제강점기를 견딘 엘리트 모던보이들의 고민과 갈등, 선택 그리고 근대 다방의 풍경을 엿보는 재미도 있다.대본·연출은 김미정, 작곡 및 음악감독은 편준원이 맡았으며, 정도원, 김은영, 윤식, 임준성이 출연한다. 특히 유명 크로스오버 그룹 유엔젤보이스의 리더보컬이었던 정도원이 장희로 돌아온다. 목·금요일 오후 7시30분, 토요일 3·7시, 일요일 오후 2시.전석 3만 원. 문의: 053-655-7139.김혜성 기자 hyesung@idaegu.com

수필이 윤활유가 돼 내 삶 풍성해져

수필이 나를 부르네사부작사부작 연필 긁는 소리사그락사그락 책장 넘기는 소리수필이 나를 이끄네.지난밤 꿈속에서 어머니를 만났습니다. 어머니가 지켜보는 앞에서 내가 몽땅 연필에 침을 발라가며 글을 쓰는 꿈이었습니다. 고향집 앞 느티나무에서 까치가 울었나 봅니다. 반가운 수상 소식이 왔습니다.내 안에 들어앉은 수필이 왠지 낯설지 않습니다. 수필이 어머니처럼 따스하게 다가오고, 오랜 친구같이 다정해 외롭지 않습니다. 한 자 한 자 적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 뼘씩 자라는 수필이 윤활유가 되어 내 삶이 풍성합니다.내가 사는 곳을, 내 살아온 길을 되새김질해주는 대구일보 경북문화체험전국수필대전에 감사드립니다. 행복이란 울타리로 나를 감싸주는 가족들,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걷는 문우들, 어설픈 내 글을 토닥여주시는 선생님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형산 수필, 포항수필연구회 회원님들 사랑합니다. △형산 수필, 포항수필 연구회 회원△형산 수필 대상 수상△KT&G 실버문학상 최우수상 수상 김혜성 기자 hyesung@idaegu.com

대상 - 박소현 ‘군불처럼 따스한 글로 감동 주는 작가 될 터’

몇 년 전 한 신문사와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팀과 함께 보부상 12령길을 답사한 적이 있습니다. ‘객주’의 작가 김주영 선생님과 동행한 길이었습니다. 그 길 초입에서 만난 내성행상불망비는 제 가슴을 찡하게 했습니다. 무거운 등짐을 지고 굽이굽이 열두 고개를 넘었던 보부상들의 처절한 삶이 젊은 날 저의 어머니 모습과 겹쳐졌기 때문입니다.접장 정한조와 반수 권재만이 목숨 걸고 보부상들을 보호했듯 저의 어머니는 무한한 헌신으로 가족들의 울타리가 되었습니다. 혹시나 딸들이 기 죽을 새라 늘 깨끗한 옷을 입히고 거친 보리밥도 먹이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늙어 92세가 된 어머니는 그 연세에도 여전히 재봉틀로 손수 파자마를 만들어 자식들과 지인들에게 선물을 합니다. 어머니의 공덕으로 저는 이제껏 평탄한 삶을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러기를 소망합니다. 수상의 영광을 자랑스런 제 어머니 장채란 여사님께 바칩니다.부족한 글을 선(選)해 주신 대구일보사와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의 마음 전합니다. 군불처럼 따스한 글로 이 상에 부끄럽지 않는 작가가 되겠습니다. 어설픈 제자를 문학의 길로 이끌어 주신 임헌영 선생님과 박상률 선생님, 이재무 선생님께 엎드려 절 올립니다. 수상 소식에 누구보다 더 기뻐해 준 가족들, 한국산문작가협회 문두들, 모두모두 사랑합니다. 태풍 뒤의 가을 하늘이 오늘따라 유난히 더 청명해 보입니다. △경남 남해 출생△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문예창작과 졸업△국제PEN, 한국문인협회, 한국산문작가협회 회원△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금 수혜(2008) 등 다수 수상 김혜성 기자 hyesung@idaegu.com

제 사람 귀한 줄 알았던 죽지랑, 화랑 137인 거느리고 ‘득오’ 찾아나서

효소왕은 신문왕의 아들로 6세에 즉위해 어머니 신목왕후의 섭정으로 나라를 다스렸다. 나이가 어려 섭정으로 정치가 진행되면서 효소왕의 에피소드가 여러 곳에서 일어나 전해진다.효소왕은 즉위해 11년 만에 죽어 이렇다 할 업적은 없다. 낭산 동쪽에 아버지 신문왕의 명복을 빌기 위한 황복사지 삼층석탑이 확인되고 있지만 어머니의 주문으로 세운 것으로 이해된다. 망덕사 법회에서 진신석가와의 이야기, 만파식적 보물 잃어버린 것과 죽지랑, 부례랑 등 화랑들의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효소왕의 죽음에 대한 의문은 아직 제대로 풀리지 않고 있고, 33대 왕으로 동생 성덕왕이 즉위해 35년간 집권한다.삼국유사 효소왕대 죽지랑 이야기의 요약과 새로 쓰는 삼국유사는 두 가지로 나누어 써본다.◆삼국유사: 효소왕대의 죽지랑제32대 효소왕 때에 죽지랑의 무리 가운데 득오 급간이 있었다. 이름을 화랑의 명부에 올리고 날마다 나오더니 열흘이 넘도록 보이지 않았다. 죽지랑이 그 어머니를 불러 아들의 행방을 물었다.득오의 어머니가 “당전 모량의 익선 아간이 제 아들을 부산성의 창고지기로 발령했습니다. 서둘러 가야 할 길이 급해 낭께 사직 인사를 드릴 겨를도 없었지요”라고 답했다.죽지랑은 떡 한 바구니와 술 한 병을 가지고, 아랫사람을 거느리고 득오를 위로하러 갔다. 낭도 137인이 또한 의식을 갖춰 따르며 부산성에 이르러 문지기에게 물었다.“득오가 어디 있느냐?”“익선의 밭에서 순서에 따라 일을 하고 있습니다.”죽지랑은 밭으로 가서 가지고 온 솔과 떡을 먹이려고 익선에게 시간을 달라 하면서 함께 돌아가려는 계획까지 세웠다. 그러나 익선은 완강하게 막으면서 내주지 않았다.마침 관원 간진이 퇴화군에서 세금 30석을 거두어 서울로 옮기다가 낭이 낭도를 귀중히 여기는 모습을 아름답게, 그리고 익선의 꽉 막힌 태도를 답답하게 여겨, 가지고 가던 30석을 익선에게 주고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들어주지 않았다. 사지 진절이 타고 가던 말에서 안장을 풀어주자 그때서야 허락을 했다.조정의 화주가 이 말을 듣고 사람을 시켜 익선을 잡아 그 더럽고 추악한 때를 씻어 주라 하니, 익선이 도망가 숨어버렸다. 그러자 겨울에 익선의 아들을 잡아 성안의 연못에서 목욕을 씻겨 얼어 죽게 했다.처음에 술종공이 삭주도독사가 되어 임지로 가는데 때마침 온 나라가 전쟁통이라 기병 3천 명으로 지켜주게 하였다. 죽지령에 이르자 한 거사가 그 고개의 길을 닦고 있었다. 공이 그것을 아름답게 여기고, 거사 또한 공의 떨치는 기세가 매우 엄중함을 좋게 여겼다. 서로 마음이 통했다.공이 삭주에 부임해 다스린 지 보름쯤 지나 꿈에 거사가 방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부인도 같은 꿈을 꾸어 더욱 놀라, 다음 날 사람을 시켜 그 거사가 어떻게 지내는지 알아보게 했더니 죽었다. 그 죽은 날이 꿈을 꾼 날과 같았다. 공이 “아마도 거사가 우리 집에 태어날 모양이다” 하고, 다시 아랫사람들을 보내 고개 위 북쪽 봉우리에 장례를 치르게 하고, 돌미륵 하나를 만들어 무덤 앞에 모셨다.아내는 꿈을 꾼 날로부터 태기가 있어 태어나자 죽지라 이름 지었다. 어른이 되어 공직에 나가 김유신과 함께 부수가 되어 삼국을 통일했다. 진덕여왕, 태종무열왕, 문무왕, 신문왕 4대에 걸쳐 재상을 지내며 나라를 발전시켰다.◆새로 쓰는 삼국유사: 죽지랑과 망덕사-망덕사 유감: 망덕사는 경주시가지와 불국사역을 잇는 7번 국도를 사이에 두고 사천왕사와 마주보고 있다. 사천왕사터에서 동남산의 화랑교육원으로 들어가다 보면 화랑교가 나오는데 다리 남쪽으로 펼쳐지는 논두렁 사이에 망덕사터가 있다.망덕사는 당나라 사신에게 사천왕사를 감추기 위해 갑자기 지은 호국사찰이다. 당나라 고종이 대군을 파견해 신라를 침공했으나 잇따라 실패하자 김인문과 함께 옥에 가두었던 박문준을 불러서 그 연유를 물었다. 박문준은 당나라에 입은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경주 낭산 남쪽에 새로 절을 지었다고 들었다고만 대답했다. 고종은 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사신을 신라에 보냈다. 당으로부터 사신이 온다는 말을 들은 신라에서는 사천왕사를 숨기기 위해 사천왕사 남쪽에 새로 절을 짓고 사신을 기다렸다.도착한 당의 사신을 새로 지은 절로 안내했더니 그 사신이 문밖에서 “이 절은 사천왕사가 아니고 망덕요산(望德遙山)의 절이다”하고 절로 들어서지도 않고 돌아섰다. 신라는 황금 천 냥을 주고 사신을 매수했다. 사신이 “신라에서는 과연 사천왕사를 지어 황수를 비옵디다”하고 거짓 보고했다. 새로 지은 절의 이름은 그 사신의 말대로 망덕사라했다.효소왕이 망덕사 법회에 참석했다. 허름한 차림의 스님이 왕에게 법회 참석을 부탁해 효소왕은 허락했다. 법회가 끝날 즈음 어렸던 효소왕이 스님에게 농담조로 “스님은 어느 절에서 오셨습니까”라고 묻자 스님은 “남산 비파암에 있습니다”고 답했다.“스님은 돌아가시면 왕이 친히 공양하는 음식을 받았다고 말하지 마십시오”라고 하자 “왕께서도 석가의 진신에게 정성을 바쳤다고 말하지 마십시오”라 말하고 스님은 몸을 날려 남산 쪽으로 날아가 버렸다.효소왕은 크게 놀라 부끄러워하며 남산쪽으로 절을 하고, 스님을 찾아오게 했다. 그러나 신하들은 스님을 찾지 못하고, 지팡이와 발우만 찾았다고 보고했다. 왕은 남산 비파암에 석가사를 세우고 스님의 자취가 사라진 곳에 불무사를 세워 지팡이와 발우를 나누어 모셨다.-모량 참사: 죽지랑은 아버지 술종공으로부터 가전 무술을 이어받아 훌륭한 전사로 자랐다. 때문에 화랑도로 전쟁에 참가해 많은 공을 세웠다. 죽지랑이 전쟁에서 공을 세우게 된 것은 법정과 함께 짝이 되어 김유신 장군의 전술에 따라 움직였기 때문이다.그러나 당나라를 몰아내는 매소성전투에서 죽지랑이 위험에 빠졌다. 이때 화랑 득오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했다. 이후 죽지는 득오를 끔찍하게 보살펴 주는 후원자가 되었다.삼국통일 이후 세력이 커진 모량의 익선이 화랑과 인재들을 포섭하면서 죽지랑의 군사였던 득오를 데려가 가둬 버렸다. 이에 격분한 죽지랑이 화랑들과 함께 모량으로 진격해 싸움을 벌였지만 큰 상처를 입었다. 죽지랑은 상처 입은 몸으로 성으로부터 화랑과 군사적 지원을 받아 다시 공격했다. 익선이 도망가면서 그의 세력은 와해되고, 득오를 구해냈다.득오는 자신을 구하기 위해 죽지랑이 상처를 입으면서 끝까지 싸움을 지휘한 데 감복해 더욱 충성했다. *새로 쓰는 삼국유사는 문화콘텐츠 개발을 위해 픽션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역사적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