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향교 전교 이취임식

청도향교가 지난 1월27일 청도향교 유림문화회관에서 전교 이·취임식을 가졌다.이날 행사는 이승율 청도군수, 김수태 청도군의회 의장, 유림 등 50여 명이 참석했다.신임 곽경수 전교는 취임사에서 “부족하지만 맡은 바 소임을 다해 인의예지의 공자님 가르침을 근본으로 서로 존중하는 풍토를 조성하겠다”며 또 “지역 사회로부터 신뢰와 존경받는 향교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이 군수는 이날 2년6개월간 향교를 맡고 이임하는 민병원 전교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경북 유형문화재 제207호로 지정된 청도향교는 조선시대 선조에 개교해 영조에 현재 위치(청도군 화양읍 동교길 36)로 이전했다. 향교에서 전교란 책임자로서 현재의 중·고등학교 교장과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김산희 기자 sanhee@idaegu.com

대구교육박물관, ‘대구문화재 톺아보기’ 기획전시 열어

대구교육박물관이 대구 지역의 문화재를 주제로 한 기획전시 ‘대구문화재 톺아보기’를 오는 3월28일까지 진행한다.지역 문화유산을 주제로 하는 이번 전시는 지역의 지정문화재 및 이와 관련된 자료들에 대한 정보와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지역의 역사와 문화는 물론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다양한 디지털 기기를 활용해 체험해 볼 수 있는 자리다.3가지 공간으로 나눠 전시되는 이번 행사 첫 번째 공간은 ‘기록하다’이다.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읽는 데 반드시 필요한 자료인 ‘기록’과 관련된 문화재가 소개된다.대구시립중앙도서관 소장 ‘태을산분정아국주군분야도(대구광역시유형문화재 제66호)’ 등 조선시대 치국을 위한 천문 기록과 역사와 개인의 기록자료, 비문을 통해 지금은 사라진 대구읍성의 뒷이야기를 들려준다.두 번째 공간 ‘지키다’에서는 임진왜란 당시 활동한 의병과 승병 활동을 통해 지역을 지키는 것이 곧 나라를 지키는 것이라는 마음으로 스스로 군대를 일으켜 싸웠던 사람들에 대해 알아본다.세 번째 공간 ‘잇다’는 전승되고 있는 무형문화재에 대해 알아보는 공간으로 대구시무형문화재연합회의 협조로 구성됐다. 국가무형문화재 제35호 조각장 김용운 외 5명의 기능장의 작품을 전시하고, 연희와 관련된 무형문화재를 영상으로 보여준다. 문의: 053-231-1754.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경북대·전남대, 제6회 ‘영호남의 대화’ 공동학술대회 개최

경북대 영남문화연구원(원장 이영호)과 전남대 호남학연구원(원장 이성원)이 지난 17일 제6회 ‘영호남의 대화’ 공동학술대회를 개최했다.화상회의 방식으로 진행된 이번 학술대회는 ‘영남 속의 호남인, 호남 속의 영남인’을 주제로 열렸다.통일신라 말기 유학자 최치원, 동학 창시자 최제우, 신라시대 고승 진표, ‘축산별곡’의 저자 정식, 임진왜란 의병장 정경달 등 영·호남 지역에서 각각 활동한 인물에 대한 연구 내용이 이날 학술대회에서 다뤄졌다.학술대회는 이영호 경북대 영남문화연구원장의 기조발표를 시작으로, 제1부 ‘고중세의 영호남’, 제2부 ‘조선시대 및 근대의 영호남’, 제3부 종합토론으로 나눠 진행됐다.제1부에서는 박광연 동국대 교수가 ‘진표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김경호 전남대 교수가 ‘최치원, 광주에 스며들다’를 주제로 발표했다.이어지는 제2부에서는 박균섭 경북대 교수가 ‘선산부사-통제사 종사관 정경달의 임진왜란에 대한 기록과 기억’, 조태성 전남대 교수가 ‘영남에서의 강호 예찬, 정식의 ‘축산별곡’’, 김창규 전남대 교수가 ‘감성적 근대성으로서의 최제우의 지향과 전봉준의 실천’을 주제로 발표를 이어갔다.종합토론에는 백두현 경북대 교수가 좌장으로 나섰다.이영호 경북대 영남문화연구원장은 “영남인은 호남에 가서 어떠한 영향을 주었으며, 호남인은 영남에서 어떻게 활동하고 기여를 했는가를 학술적으로 살펴보고자하는 자리”라면서 “이번 학술대회를 통해 이들의 인간상과 학문, 가치관, 삶의 방식 등을 공유할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졌다”고 했다.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경북대, ‘한국의 유교책판’ 전시회 개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유교책판’을 볼 수 있는 전시회가 경북대에서 열린다.경북대 도서관은 오는 20일까지 중앙도서관 1층 로비에서 ‘한국의 유교책판’ 전시회를 개최한다.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저작물을 출간하기 위해 판각한 책판인 ‘유교책판’은 2015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세계가 인정한 우리의 기록유산인 한국의 유교책판의 의미와 가치를 공유하기 위해 마련된 이번 전시회는 한국국학진흥원과 경북대 도서관이 소장한 책판 21점, 현판 7점, 고서 6점 등 유물 34점이 전시된다.퇴계 이황의 ‘퇴계선생문집’, 중국으로 사행을 떠나는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 새긴 도경유의 ‘낙음선생문집’과 석봉 한호의 필첩글씨를 집자해 새긴 서판인 ‘석봉서판’ 등이 이번 전시를 통해 공개된다.또 세계 최고의 목판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의 복원판과 퇴계 이황의 친필 ‘도산서당’ 현판, 전서체 대가인 미수 허목의 ‘백운정’ 현판도 함께 전시된다.이와 함께 유교책판의 의미와 가치, 제작과정 등을 설명한 자료와 실제 책판을 만져볼 수 있는 체험코너 등도 마련됐다.경북대 정우락 도서관장은 “대학 구성원과 지역민 대상으로 열리는 이번 전시회는 코로나19 방역수칙 준수 아래 자유관람 방식으로 진행된다. 우리 선조들의 지식 생성 현장을 확인하고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고취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스토리로 만나는 경북의 문화재…영천 삼휴정

‘선비정신’을 국어사전으로 찾아보면 ‘인격적 완성을 위해 끊임없이 학문과 덕성을 키우며, 세속적 이익보다 대의와 의리를 위해 목숨까지도 버리는 정신’이다.조선 시대 이러한 선비정신을 꼿꼿이 지켜낸 삼휴(三休) 정호신 선생이 머물었던 정자가 영천에 있다.사라져 가는 선비 정신의 근원을 찾아 영천댐으로 향했다. 드넓게 펼쳐진 들판을 지났다고 느끼는 순간 깊게 가라앉은 영천호수는 들이치듯 불쑥 나타났다.영천호수를 어느새 발밑에 두고 길은 점점 높아져만 갔다. 굴곡진 채로 비스듬히 울창한 소나무 숲이 펼쳐진다. 겨울철 칼바람이 불어 왔지만, 창문을 내리고 영천호수의 정기와 소나무 숲의 향기를 마시고 싶어졌다.괜스레 차창 너머로 헛기침을 내뱉는다. 어느새 어깨를 짓누르는 선비들의 기운에 맞서려는 스스로의 몸부림이었을지도 모르겠다.길을 굽이굽이 돌다 보면 어느새 노송들이 멋지게 늘어선 곳을 맞닥뜨린다. 고즈넉한 한옥들도 눈에 띈다. 등 뒤로 기륭산을 두고 양옆으로는 보현산 줄기가 이어진다. 그리고 눈앞에는 말 없는 영천호수가 자비로운 미소를 짓고 있다. 풍수지리를 모르는 사람이 봐도 이곳이 ‘명당’ 자리라는 것을 눈치 챌 만하다.노송의 숲 좌측에는 물 마른 계곡을 사이에 두고 오래된 집들이 모여 있다. 영천댐 수몰지에 있었던 오천정씨(烏川鄭氏) 가문의 문화재 가옥들이다.영천지역의 영일정씨(迎日鄭氏)를 오천정씨라 하는데, 호수(湖수) 정세아(鄭世雅)의 조부인 선무랑(宣撫郞) 정차근(鄭次謹)의 후손들을 말한다.계곡을 따라 오르는 길 입구 둔덕에 ‘오천정씨하천세적지비’(烏川鄭氏夏泉世蹟之地)가 서 있다. 비에는 가문의 역사가 새겨져 있다. 비문에 따르면 정차근이 이곳에 들어온 이후 주자(朱子)의 서재인 자양서실(紫陽書室)의 이름을 따 학당을 자양이라 불렀고 그것이 현재 자양면의 유래가 되었다는 내용이다.강호정을 시작으로 여섯 건물이 형제처럼 나란히 늘어섰다. 강호정은 정호신의 할아버지이며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큰 공을 세운 정세아 선생이 세운 정자이다. 강호정만 남향이고, 나머지 건물은 모두 동향이다. 길 곳곳에 심겨 있는 향나무들이 근사하다. 삼휴정은 여섯 채 중 가장 깊숙한 곳에 있다.◆한밤의 절경을 바라보며 ‘삼휴’를 논하다삼휴정은 1975년 8월18일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75호로 지정됐다. 1635년(인조 13년)에 조선 시대 선비였던 정호신이 학업을 위해 지었다고 한다.정호신은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고,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과거에 응시해 여러 번 낙방하자 할아버지의 고향인 영천으로 돌아와 평생 독서에만 매진했다.정호신은 자양동에 정자를 지어 삼휴정이라 이름 짓고 시를 지으며 소요하고 자적했다.벼슬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오직 학문에만 전념해 날이 갈수록 가난해졌다. 결국 45세에 사망했다. 저서로는 ‘삼휴일고’가 전해진다.정호신은 달이 가득 찬 어느 날 정자에 올라 그 절경을 바라보며 ‘삼휴’라는 시를 지었다. 이에 ‘삼휴당’이라는 당호가 생겼다.‘좋은 봄날 꽃을 즐기다가 꽃이 지면 쉬고맑게 갠 밤 달을 마주 보다 달이 지면 쉬고한가한 달에 술을 얻어 마시다가 술이 떨어지면 쉬노라.’그는 글을 짓고 해석하기를 ‘꽃이 있으니 완상(즐겨 구경)하고 달이 있으니 즐긴다. 술이 있으니 마심은 한가한 가운데 움직임이요, 꽃이 지면 쉬고 달이 기울면 쉬고, 술이 떨어지면 쉼은 한가한 가운데 고요함이다. 움직임은 능히 언제나 움직이면서 고요하지 못하고, 고요함은 능히 고요하면서 움직이지 못함은, 그 움직임과 고요함이 서로를 길러 주는 공부를 마음속으로 깊이 납득하고 실체를 궁행(몸소 실행)하는 까닭이다’라 했다.겉은 궁핍했어도 마음은 항상 풍요롭던 조선 시대 선비들의 풍류를 능히 짐작할 만하다.삼휴정에는 가난했지만, 지조를 잃지 않았던 정호신의 마음가짐이 곳곳에 묻어 있다. 이 좁은 공간에서도 조선 시대 선비들의 삶의 정수를 느껴 볼 수 있다. 10평가량의 작은 마당은 아담하지만 초라하지 않다.건물은 팔작지붕으로 꾸며졌으며 정면 4칸, 측면 1칸 반의 규모이다. 다락집으로 건물의 전면에만 난간이 있으며, 기둥 가운데 다섯 개만 원주이고 나머지는 육축(기초가 되는 돌) 위에 초석을 놓고 평주(평 기둥)처럼 세워져 있다.평면은 중앙에 2칸이 대청으로 꾸며져 있고 좌우 2칸에 반 칸의 전퇴(집채의 앞쪽에 다른 기둥을 세워 만든 조그마한 칸살)를 두고 각각 1칸 반 크기의 방을 배치했다.삼휴정 정자에 올라서 정면을 바라보면 숲이 울창하고 계곡물이 흐르며 소나무 숲이 우거져 있어서 마을의 고즈넉한 정취를 느껴 볼 수 있다. 삼휴정 앞으로 울창하게 우겨져 있는 소나무 숲 사이로 하얀 석물들과 봉분들이 보인다. 아마 오천정씨 문중의 묘소이리라. 문중 묘소 앞에서 책을 읽어보는 것도 기묘한 경험일 것이다.4평 남짓한 누마루는 선비들이 삼삼오오 모여 마음 수양과 사교활동을 하던 공간이었을 것이다. 담소를 나누며 아름다운 바깥 풍광을 바라보면 절로 멋들어진 시 한 편이 완성되었으리라.현재 삼휴정은 산등성이 끝자락에 있어 주변의 풍광이 그다지 볼 것이 없지만, 과거에는 자리를 깔고 밤에 누웠더니 8시간 동안 달구경을 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위치에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그 옛 정취를 감상할 수 없어 아쉬울 따름이다.자연 속에서 자연을 즐기며, 명상에 잠기고, 또 수양하는 요체로 삼은 선현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삼가 옷깃을 여미지 않을 수 없었다.◆풍수지리 1번지, 잘되는 집안은 이유가 있다삼휴정에서 벗어나 드리워진 베일을 걷듯 소나무 숲을 헤치고 들어가면 저편에서는 감히 가늠치 못했던 푸른 땅이 펼쳐진다. 이곳은 과거 설학대사라는 노승이 정차근의 아들인 효자 정윤량에게 점지해 주었다는 명당으로 오천정씨 문중에서 대대로 묘소를 쓰는 곳이다.정차근과 정세아의 묘 등 80여 기의 묘소가 모여 있는 이곳을 하천묘역이라고 하며 후손들로 이루어진 하천종약회가 이 일대를 관리한다.이곳 어딘가에 정호신 선생의 묘도 있으리라. 주인도 알지 못하는 무덤 앞에서 나는 홀로 정호신 선생의 선비 정신을 기리며 잠시 묵념을 했다.이곳은 문중 묘역 자리로는 대한민국 1등 자리라는 소문이 장안에 자자하다. 풍수지리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이곳을 필수로 와야 한다는 말이 나돌 정도다. 지금도 오천정씨 후손들이 우리나라 정·재·학계에서 꽤 콧방귀를 뀔 수 있는 것은 묫자리 덕분일지도 모르겠다.조선 시대 오천정씨는 굵직한 실적은 없지만 모두 벼슬길을 놓지는 않았다. 큰 욕심 없이 학문에 전념하는 선비들의 참모습일지도 모른다. 대신 학계에서의 오천정씨의 존재감은 남다르다. 오천정씨 일가는 현재 영천의 학계를 주름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00년대 초반 영천 학문의 르네상스를 만들었다는 정석달 선생과, 정마양 선생, 정규양 선생 등이 모두 오천정씨의 자랑거리이다. 국회의원을 지냈던 정동윤씨와 ‘해상왕’이라고 불렸던 천일해운 정연통 전 회장도 모두 잘나신 조상의 공덕을 입었을 것이다.문중 묘역 외에도 이곳은 멋들어지게 펼쳐진 소나무 숲 덕분에 영천댐 인근 캠핑 명소로도 알려져 있다. 언택트 관광이 유행인 지금 겨울철을 제외한 봄·여름·가을에는 캠핑족들이 몰려든다고 한다.현대의 가치관은 조선 시대의 가치 덕목들을 하나같이 평가 절하한다.명분은 핑계로, 의리는 철없는 남자들의 아집으로, 선비의 기개를 뜻하는 사기(士氣)는 군대용어로 전락했다. 소비가 미덕이 되고 청빈(淸貧)은 낡아빠진 구시대의 덕목으로 조소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동기나 과정보다는 결과만 중요시하는 결과 만능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현대사회는 물질적인 풍요를 가져왔지만, 적잖은 부작용을 불러왔다. 자연과 전통이 파괴되고, 가족이 해체됐다. 그 결과 사람들은 만성적인 스트레스와 불안에 시달리고 있으며,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만, 정신적으로는 황폐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현대사회에서 조선 시대의 선비처럼 자연과 학문을 벗하며 유유자적 살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 정신만큼은 되새길 만하다. 자연을 사랑하며, 정신적 가치를 중요하게 여겼던 선비 정신 말이다.코로나19는 대다수 시민에게 큰 아픔을 줬다. 하루하루를 감염병 공포에 불안해하며 우울증을 호소한다.선비 정신의 현대적 부활은 시민들의 정신건강을 지킬 수 있는 또 다른 해결책이다. 코로나19를 극복하는 정신적 심리적인 치료제이자 백신이기도 하다.자연을 찾아 떠나자. 그리고 조상들의 지혜를 온몸으로 느껴 보자. 삼휴정에서 선비 정신을 곱씹으며 마치 선비가 된 양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자. 코로나19로 인한 불안과 공포도 어느새 멀찍이 달아나 있을 것이다.이승엽 기자 sylee@idaegu.com

대구일보 2020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입선-이윤재 ‘월영교의 약속’ 수상소감

안동의 월영교를 둘러보고 쓴 글을 뽑아줘서 고마운 마음이 든다.내가 돌아본 경북의 문화를 소개할 수 있어 기쁜 마음이다. 우리나라의 문화 중 경북만큼 다양한 문화는 없다고 생각한다. 불교와 유교 문화가 가장 발달했던 곳이 바로 경북이 아니던가? 또 조선시대 가장 유명한 유학자는 경북에서 나오지 않았던가?그런 경북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준 대구일보에 감사드린다.△1974년 공주교육대학 졸업 후 서산에 교사생활△1988년 대전으로 전입△2005년 대전에서 교장 승진△2013년 퇴직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국립대구박물관…2020년 특별전시 ‘선비의 멋, 갓’ 통해 다양한 갓 공개

인기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주인공 유진 초이의 미국인 동료 카일이 “조선인들이 거리에서 모두 하나씩 쓰고 다니길래 나도 하나 사서 써봤다”며 갓을 쓴 장면이 나온다. 유진이 조선에선 그것을 ‘갓’이라고 부른다고 하자 카일은 “조선인들은 신(GOD)’과 같이 다니는 군”이라고 한다.시대물에 흔하게 등장하는 갓은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멋진 모자’로 주목 받는다.이처럼 기품 있는 선비의 상징이면서 조선시대 대표적인 모자였던 갓의 다양한 세계를 소개하는 특별전이 국립대구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린다.오는 12월20일까지 진행하는 국립대구박물관 올해 하반기 특별전 ‘선비의 멋, 갓’은 한국 고유의 전통 모자인 ‘갓’을 소개하는 전시다. 광주 신창동 출토 고깔조각, 서애 류성룡 흑립, 김진 초상, 갓끈 등 갓 관련 자료 200여 점이 전시된다.부드러운 곡선을 이루는 갓의 차양, 은은하게 퍼지는 검은빛과 미색 도포의 조화에서 조선 선비의 우아하고 세련된 이미지를 느낄 수 있을 뿐 아니라 다양한 모양과 재료로 제작된 고대부터 20세기의 모자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특히 그동안 소개되지 않았던 서애 류성룡 종택의 갓, 의성김씨 학봉종택의 갓, 창녕조씨 종택의 붉은 색 갓인 주립, 경주 최부자댁 소장 갓 등 경상도 지역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던 희귀한 갓이 공개된다.이와 함께 서애 선생 종택이 보관해 온 갓끈과 갓의 끝 부분을 장식하는 장식품인 ‘정자’ 등도 함께 전시된다.이번 특별전 ‘선비의 멋, 갓’은 크게 세 가지 주제로 구성된다.1부 ‘갓 알아보기’에서는 갓의 기본구성에서부터 쓰는 방법과 제작 과정, 재료, 갓을 만드는 사람 등 갓에 대한 일반적인 정보를 소개하고, 2부 ‘갓, 선비의 멋을 더하다’에서는 선비가 도포를 입고, 갓을 쓰는 의미를 살펴본다. 이어지는 3부 ‘갓의 원형을 찾아서’에서는 다양한 모자 속에서 갓의 원형을 찾는다.흔히 ‘갓’이라고 하면 조선시대 남자들이 쓰던 검정색 갓을 떠올린다. 하지만 갓은 넓은 의미에서는 머리에 쓰는 부분인 모자와 차양이 있는 모든 종류의 모자를 말한다.갓과 함께 착용한 도포, 두루마기 등의 복식자료도 흥미를 끈다. 파계사에 봉헌된 영조의 도포를 비롯해 영친왕이 착용했던 두루마기 등 색과 형태가 잘 보존된 국가민속문화재도 오는 11월까지 함께 전시된다.이번 전시에서는 선비가 도포를 입고, 갓을 쓰는 의미도 살펴본다. 또 갓의 멋을 더해주는 갓끈과 정자도 함께 전시했다. 뿐만 아니라 갓의 원형을 찾아 소개하는 행사도 진행된다.갓은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도 보일 만큼 역사가 오래된 모자로 형태·재료·제작법은 시대별로 다양하게 바뀌어 왔고, 조선 시대는 갓의 아름다움을 가장 꽃피웠던 시기이며, 종류도 가장 많았다는 게 박물관의 설명이다.1900년대에 조선을 방문했던 외국인들의 기록에서 한국의 전통 갓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도 살펴볼 수 있는 이번 전시는 국립대구박물관 기획전시실 Ⅰ·Ⅱ전시실에서 계속된다.국립대구박물관 함순섭 관장은 “최근 방영된 드라마의 영향으로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들도 갓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우리가 놓치고 발견하지 못했던 갓의 아름다움을 다시한번 느낄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했다.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100년 전 대구의 모습이 궁금하다면…대구문화예술회관 특별사진전 개최

100년 전 대구와 대구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특별사진전이 열린다.다음달 29일까지 대구문화예술회관 미술관 13전시실에서 진행되는 ‘20C초 대구, 대구인의 삶’전은 대구의 자연, 도심 가로, 대구인의 배움과 성장, 생업과 일상을 소개하는 사진 150여 점이 선보이는 전시다.대구의 옛모습을 기록한 이번 전시회 출품 사진은 대부분 문화예술회관이 소장한 작품이며 국립중앙박물관, 국채보상기념관 등이 소장한 사진도 일부 포함됐다.원본 사진은 엽서 형태가 대부분으로 졸업앨범이나 유리원판, 대구와 관련된 옛 서적에서 추출한 사진들도 전시된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전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스토리가 전개되도록 구성했다.도심에서 먼 자연에서부터 도심 한복판으로, 조선시대 전통건축물에서 일제강점기 근대건축으로 또 행정사법기관, 군부대 등 통치기관에서 주민편의기관으로, 유년시절에서 중년의 어른으로 생업과 일상 등을 시대적 흐름에 따라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특히 전시실 중앙에는 경주 주상절리를 형상화 한 상징물을 설치해 일제에 저항하다 옥고를 치렀지만 정작 시민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애국자들을 사진으로 전시해 대구의 의지와 기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또 이번 전시에는 최근 새로 찾아낸 희귀 사진도 여러 장 전시했다.대구 도원동과 내당동, 진천동의 옛 모습과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 사람들, 지금의 대구종로초등학교인 희도학교 학생의 뱃놀이, 대구역에서 사과를 적재한 열차, 수성교와 신천교의 옛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장소는 같은 곳이지만 각자 다른 시기와 다른 각도에서 찍은 사진도 전시한다. 경상감영공원의 선화당, 망경루, 관풍루, 대구부청, 경북도청, 대구역, 종로, 북성로거리 등을 담은 사진이 대표적이다.대구문화예술회관 전시 관계자는 “무엇보다도 12년 만에 옛 사진에 관한 전시도록을 발간하게 된 것은 의미를 크다”며 “해상도가 낮거나 사진 크기가 작아 전시하기 어려운 것들은 이번에 전시는 되지 않았지만 전시 도록에 따로 수록해 전시의 이해도를 높이도록 했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대구문화예술회관은 당초 올해 진행 예정이었던 제8회 대구사진비엔날레를 내년으로 연기하는 대신 ‘현대사진 예술의 흐름’을 한자리에서 보여주는 특별전 ‘뷰파인더(ViewFindThe)’를 가진다.25일부터 다음달 30일까지 문화예술회관 1~5전시실에서 진행되는 특별사진전은 김현수, 김화경, 박승만, 이계영, 이동욱, 이병록, 이삭, 이영아, 전솔지, 하춘근 등 10명의 사진작가가 참여한다.전시를 기획한 박천씨는 “뷰파인더는 촬영자와 카메라간의 첫 번째 접촉 지점으로 카메라의 역할보다는 촬영자의 역할이 우선된다”며 “이러한 ‘촬영자의 역할’이라는 맥락을 통해 동시대 예술계에서 ‘사진’이라는 매체의 장르적 위치를 진단하고 고민하는 자리”라고 설명했다.이번 특별전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사전예약제 실시한다. 문의: 053-606-6480.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올해 안보고, 오~래 봐요” 경북도 비대면 추석 유튜브 캠페인 전개

경북도가 비대면 연휴 분위기 확산을 위해 #올해보다 오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캠페인을 펼친다.이번 캠페인은 코로나19 재확산의 중대고비가 될 추석 연휴기간 동안 이동 자제, 거리두기 등 비대면 추석보내기를 이끌고자 마련됐다.도는 이를 위해 ###올해보다 오래를 주제로 공익광고 형태의 영상을 제작, 22일 공식 유튜브인 보이소TV에 공개한 후 SNS를 통해 대대적인 홍보에 나선다.영상은 온라인 차례 지내기, 화상통화로 안부 묻기 등 코로나19로 바뀐 언택트 추석 및 연휴를 보내는 가족들의 일상을 담았다.또 캠페인 확산을 위해 다음달 4일까지 도 공식 SNS채널을 통한 #올해보다 오래 인증 이벤트를 개최, 추첨을 통해 소정의 경품을 제공한다.참여 방법은 본인 SNS에 ‘언택트 연휴를 보내자’는 메시지를 작성한 뒤(#올해보다 오래 반드시 포함) 도 공식 SNS(블로그,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이벤트 게시물의 댓글로 참여하면 된다.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조선시대에도 역병이 돌면 추석과 같은 명절 차례를 생략했다는 기록이 있다”며 “올해만큼은 도민 모두가 이동 자제 등 비대면 추석 보내기에 동참해 코로나19로부터 안전한 경북을 만들자”며 적극적인 참여와 협조를 당부했다.문정화 기자 moonjh@idaegu.com

이철우 지사 “조선시대 전염병 유행하면 명절차례 안 지냈다”

경북도가 추석 연휴기간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관련기사 8면이철우 도지사는 지난 18일 국무총리 주재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영상회의에서 전염병으로 인한 조선시대 명절 차례 중단 사례까지 소개하며 추석 고향방문 자제를 요청했다.이 도지사는 이날 초간일기, 계암일록, 청대일기 등 조선시대 일기자료를 소개하며 “유교 최대 덕목인 봉제사를 지내는 것이었던 조선시대에도 전염병이 유행할 때는 명절차례를 지내지 않았다”며 “전 국민이 이 사례를 나누어 명절 차례를 안 지낸다고 미안한 마음을 가지지 않길 바란다”고 했다.이날 소개된 일기자료는 54만 점의 민간기록유산을 보유 중인 한국국학진흥원(경북도 출연기관)이 문화체육관광부 지원을 받아 780점의 조선시대 선비일기 변역 등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나왔다.예천 초간 권문해의 1582년 2월15일 일기에는 “역병이 번지기 시작해 차례를 행하지 못하니 조상께 몹시 미안했다”고 적고 있다. 1609년 5월5일 안동 계암 김령은 “역병 때문에 차례(단오)를 중단했다”고, 1756년 1월1일 문경 청대 권상일은 ”마을이 전염병으로 매우 어수선해 설날 차례도 지내지 못하고 사당 참배도 할 수 없으니 마음이 아프고 서운하다”고 남겼다.이 밖에 1798년 8월14일 안동 수헌 류의목은 “마마(천연두)가 극성을 부려 마을에서 의논해 추석에 제사를 지내지 않기로 정했다”고, 1851년 3월5일 안동 낙애 김두흠은 “나라에 천년두가 창궐해 차례를 행하지 못했다”고 했다.이에 경북도는 출향인사들에게 추석 고향방문 자제를 요청하는 편지를 쓸 예정이다.정세균 국무총리는 “대구·경북에서 비대면 명절보내기 캠페인에 나서 주시길 바란다”며 응원했다.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문체부에서 지원하는 사업에서 좋은 사례를 발굴해 주신 것 같아 보람을 느낀다”며 정부 차원의 홍보 의지를 보였다.한편 경북도는 추선연휴 코로나19 확산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자 취약시설 집중관리 등 특별방역 10대 중점과제를 추진하기로 했다.아울러 전국에서 찾아오는 참배객의 밀접 접촉을 차단하고자 도내 묘지와 봉안시설 등 18개 시군 74개 시설 이용시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을 당부했다.20일 0시 현재 경북의 코로나19 누계 확진자는 1천464명으로 이 가운데 59명이 사망하고 1천364명이 퇴원했다. 현재 41명이 병원에 입원해 치료 중이며 2명은 생활치료센터에 입소했다.문정화 기자 moonjh@idaegu.com

집값도 수도 이전도 물 흐르듯

오용수한일문화관광연구소 대표수도 이전 문제가 핫이슈가 됐다. 현 정부 임기 절반이 지나도록 아무 말도 없다가 느닷없이 여당 원내대표가 발표한 정황으로 볼 때, 균형발전 확대라기보다 부동산 급등을 막기 위한 응급처방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 두 문제는 따로 볼 것이 아니라 같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조선시대에도 사람은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로 보내라고 했다. 지방의 인재는 서울로 보내 전국 각지에서 모인 수재들과 함께 공부하며 큰 인물로 육성시키려고 했다. 한편 국가균형발전계획에 따라 2012년부터 행정부처, 정부투자기관 등 공기관을 지방으로 옮겼다. 그곳에 근무하던 사람들도 지방으로 갔다. 이로 인해 서울 집중 현상이 일부나마 해소되기도 했다. 그런데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 보니 기대한 만큼 지방으로 가지 않았다. 초등학교 자녀를 둔 젊은 층은 근무지 인근으로 가족들과 함께 이사를 했다. 그러나 서울로 돌아갈 꿈을 버린 건 아니다. 반면 중고생 이상 자녀를 둔 중장년들은 대부분 주말에 서울로 돌아온다. 그런데 서울 집을 팔고 내려온 이들은 최근 집값 폭등으로 인해 사실상 서울 진입을 포기하게 됐고, 서울 집을 전세로 두고 지방에 전세를 사는 사람은 안심했다. 형편이 좀 나은 이는 서울 집을 두고, 근무지에 집을 마련했는데 다주택자가 돼 본의 아니게 정부시책에 불응하는 처지가 됐다.그밖에 부작용도 만만찮다. 세종 시에서 일해야 할 정부 부처 간부들이 서울을 오가느라 많은 시간을 빼앗기고 장차관들은 아예 서울에 사무실을 마련해 두고 있다. 또 금요일 오후에 세종시를 방문하면 눈치 없는 사람이라 핀잔을 받는다. 그래서 정부여당은 한목소리로 국회와 청와대 일부 또는 전부를 세종시로 옮기자고 주장한다. 설사 행정수도가 완전히 옮겨지더라도 사람은 서울로, 집값은 따로 놀지 않도록 근본 대책을 마련해야 된다.청년은 일자리가 있는 곳으로 간다. 그러나 지방에는 여전히 일자리가 마땅치 않다. 특히 대구는 1인당 지역 총생산(GRDP)이 가장 낮고, 대기업도 별로 없다. 부모들 입장에서 볼 때, 자녀가 서울에 있는 대학을 졸업하면 좋은 직장에 취업하기 쉬우리라 생각하고, 대학이나 심지어 고등학교 때부터 유학을 보내려고 한다. 형편이 되면 자녀들이 편하게 공부할 수 있도록 서울에 집도 마련한다. 자연 서울 집 수요가 늘고, 집값이 오르게 된다.결국 지방에 좋은 일자리를 마련해주면 모두 해결된다. 중앙정부는 기업이 투자를 늘리고 사업을 확장할 수 있도록 기업프랜들리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지방은 대기업이 지역으로 이전을 해오도록 각종 혜택을 제공하며 유치해야 한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쿠팡, 롯데케미컬, 현대로보스틱스 등 굴지의 회사가 대구에 사업장을 열었다. 그러나 아직 대구로 유입되는 청년보다 유출이 많다. 마침 관광산업은 제조업보다 고용유발효과가 1.7배나 높다. 그래서 각국은 관광산업 육성에 온 힘을 기울인다. 심지어 코로나 확산에도 불구하고 지방경제를 살리려고 일본과 이탈리아, 스페인은 방역과 관광산업 육성을 병행하고 있다. 한편 정부의 23번째 부동산 대책까지 나오게 만든 강남 아파트가 각종 규제에도 불구하고 계속 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첫째는 주거환경이 좋다. 대체로 한번 강남에 살다보면 다른 곳으로 이사 가기 싫다는 것이다. 둘째로 교육환경도 좋다. 명문 중·고교와 학원이 모여 있어 입시 준비에 최적이다. 이는 대구 수성구도 비슷하다. 그럼 강남 집값을 잡으려고 못 사고, 못 팔게 하려는 규제보다는 단기적으로 팔고 살 수 있도록 한시적 양도세 인하 등 퇴로를 마련해 주고, 장기적으로 강북 등 수도권의 주거 환경을 강남 수준으로 끌어올리자. 그리고 명문교와 학원도 기업 유치하듯 거점 별로 늘리도록 하자. 그래야 유독 강한 자녀 교육열을 해소시킬 수 있다. 누가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를 막을 수 있단 말인가!집값이나 수도 이전도 물 흐르듯 순리대로 풀어야 한다. 장마인데 댐을 틀어막고 못 흐르게 한다면 다른 곳이 침수된다. 오히려 댐과 보를 열어주고, 완급을 조절해 국민들을 안심시켜 주자. 대한민국의 미래가 걸린 일이 아닌가.

대구대 중앙박물관, 실시간 ‘랜선 문화교실’ 운영

대구대학교 중앙박물관(관장 구남진)이 코로나19로 위축된 문화예술 교육 활성화를 위해 ‘랜선 문화교실’을 운영하고 있다.‘DU-M(Daegu University-Museum) 랜선 문화교실’로 운영되는 프로그램은 대구·경북대학 박물관 중에서 처음으로 시도하는 실시간 온라인 문화교육이다.대구대 중앙박물관은 올해 초 선정된 한국박물관협회 주관 ‘2020 박물관 길 위의 인문학’ 사업의 지원(문화체육관광부 국비 사업)을 받아 ‘박물관 탈출-역사 암호를 풀어라’이란 문화교육 프로그램을 준비해 왔다.이는 기존 박물관 관람 방식에 청소년이 좋아하는 방 탈출 놀이를 접목한 것으로 박물관 전시실 곳곳에서 조별로 역사 문제를 풀고 미션을 수행하며 관람을 즐기는 새로운 방식의 문화교육 프로그램으로 기대를 모았다.하지만 대구대 중앙박물관은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대면 및 집합교육이 어려워지자 이 프로그램을 랜선을 통해 진행되는 언택트 맞춤형 교육으로 재탄생시켰다.DU-M 랜선 문화교실은 사전 개별 신청을 통해 미리 문화체험 키트를 배송받은 후 각 가정에서 화상회의 앱인 ‘줌(ZOOM)’을 통해 교육사 선생님과 화상으로 얼굴을 마주보고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역사와 문화를 배울 수 있다.학생들의 학습 흥미를 돋우는 역할을 하는 문화체험 키트에는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 유물을 함께 공부할 수 있는 학습지와 목가구 만들기 세트, 문화교실 안내 자료 등이 담겼다.문화교실을 진행 중인 김정헌 교육사는 “사전에 제공된 교구를 가지고 실시간으로 교육이 진행되기에 미리 제작된 영상을 제공하는 방식의 온라인 교육보다 학생들의 집중도와 호응이 높은 편이다”고 말했다.구남진 대구대 중앙박물관장은 “코로나19로 박물관 이용 및 문화교육 방식도 새로운 변화를 맞고 있다”면서 “‘찾아오기 힘들다면, 찾아가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언택트 중심의 새로운 문화교육 방식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가겠다”고 말했다.한편 DU-M 랜선 문화교실은 오는 7일까지, 17일~21일 매일 오전 10시와 오후 2시 하루 두 차례 진행된다.교육 신청은 대구대 중앙박물관 홈페이지를 통해 가능하며, 기타 자세한 사항은 대구대 중앙박물관(053-850-5624/27)으로 문의하면 된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반디의 책 ‘고발’

박헌경변호사수원지방법원에 재판이 있어 재판시간에 맞추느라 오랜만에 무궁화열차를 타고 수원으로 떠났다. 코로나 방역을 위해서 한 의자에는 되도록 한 사람만 앉을 수 있도록 코레일에서 좌석배치를 해주었다. 승객들은 답답하지만 모두 마스크를 벗지 않고 긴 시간 기차 속에 앉아 행선지에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오래된 무궁화열차라 그런지 기차가 자주 흔들리고 의자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계속 났다. 그래도 차창 밖으로 보이는 장마철의 시골풍경과 푸른 산빛으로 인해 눈은 시원했다.기차를 타고 가면서 조금 눈을 붙여 휴식을 취했다가 가지고 간 북한의 얼굴없는 작가 반디가 쓴 단편소설집 ‘고발’을 읽었다. 김일성·김정일 공산독재 치하의 암울한 북한에 살면서 자유를 갈망하며 북한의 비참한 상황을 고발해 쓴 책이다. 주인공을 달리하며 7편의 단편을 엮어 놓은 소설집이다. 계급없는 사회를 지향한다는 공산주의 개혁을 했다면서 북한은 전 근대적인 신분사회다. 신적인 존재인 어버이 수령이 군림하고 공산주의 귀족들이 신분을 세습하며 북한 상층부를 장악하고 나머지 일반 인민들은 동요계층 또는 적대계층으로 분류돼 자유를 잃고 농노 또는 노예와 비슷한 삶을 살고 있다. 그들의 신분은 조선시대와 별반 다르지 않게 자식, 손자로 이어지고 신분에서 벗어날 희망이 거의 없다. 거주 이전의 자유와 직업 선택의 자유가 없는 북한은 감시사회고 병영사회이며 정권에 길들여진 노예사회다. 북한 정권에 조금이라도 불만 섞인 소리를 했다가는 가족 전체가 한 밤중에 어디론가 모르게 끌려가야 한다. 북한에는 정치범으로 몰려 수용소에서 짐승같이 살고 있는 사람들도 수십만 명에 이른다. 아무리 똑똑하고 개인적으로 능력이 있어도 동요계층, 적대계층은 출세할 수 없는 사회다. ‘고발’에는 김일성이 가는 곳은 1호 행사로 불려 인민들은 부모가 죽어도 통행증이 없이는 고향에 갈 수가 없다. 반디가 쓴 또 한권의 책 ‘붉은 세월’이라는 시집에는 자유를 갈망하는 북한 주민들의 피맺힌 절규가 쓰여있다. 우리가 마시고 있는 자유의 공기는 우리가 당연한 것처럼 여기고 있으나 북한 주민들에게는 그 자유가 빵보다도 더 귀하고 어쩌면 목숨보다 더 귀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북한 주민들에게는 그 빵도 제대로 얻기 어려운 상황이다. 어버이 수령 한 사람만이 완전한 자유와 신과 같은 절대적 권력, 온갖 사치를 누리고 사는 사회! 쌀밥에 고깃국을 마음껏 먹게 해주겠다고 어버이 수령께서 그렇게 약속했지만 그로부터 70년이 지난 지금도 북한 주민들은 배고픔과 감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남북한 사이에 전쟁과 대립없는 평화의 공존도 중요하겠지만 노예상태에서 허덕이는 북한 주민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개선시키는 노력도 필요한 것 같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북한 동포들의 삶을 개선시키기 위해 남쪽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 차창 밖으로 보이는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풍경과 집들 그리고 자유가 너무도 소중해 보인다. 내부적으로 문제도 많고 상처도 많은 나라이지만 우리는 그래도 내가 태어나고 자란 조국이 선진화되고 민주화된 대한민국이라는 것에 감사해야 하지 않겠는가? 문재인 대통령도 남과 북의 체제경쟁은 이미 끝난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전쟁 당시 북한 인민군의 침략을 맞아 총칼로 맞서 싸워 대한민국을 지켜낸 이름없는 수많은 장병들에게 감사와 경의를 보낸다. 그들의 피흘림이 없었다면 남쪽의 5천만 국민들도 김씨 세습독재 치하에서 자유를 잃고 노예처럼 살아가는 신세가 됐을 것이다.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빈곤한 나라 대한민국을 70년만에 G11에 들만큼 선진국화되고 민주화된 나라로 만들어놓은 지도자들과 산업역군들 그리고 민주화에 힘쓴 분들에게 감사한다. 근대화에 힘쓴 분들과 민주화에 힘쓴 분들은 다같이 현재의 대한민국을 만든 두 주역이다. 앞으로도 두 주역은 서로 대립을 할 것이 아니라 나라의 발전을 위해 같이 경쟁하면서 나라다운 멋진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가는데 밑거름이 됐으면 좋겠다. 그것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상생하는 길이며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을 길이 지켜 보존해 후손에게 물려주는 길일 것이다.

우리역사 톺아보기

역사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흥미진진하다. 우리가 무심히 흘려보냈던 역사적 사실에서부터 사건의 한복판에 실존했던 인물들의 이야기까지 다양한 우리 역사와 관련한 재미난 사건과 인물들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다.◆우리 책과 한국사 이야기/부길만 지음/유아이북스/276쪽/1만2천 원‘왜 한국에서 금속활자가 처음 발명됐을까?’, ‘조선시대에도 책을 판매하는 사람이 있었을까?’ 이런 다양한 궁금증에 답을 주는 책 ‘우리 책과 한국사 이야기’가 출간됐다.출판학계를 대표하는 학자 중 한 명인 부길만 교수가 쓴 이 책은 청소년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 기록과 관련한 우리 역사를 정리했다. 중세시대 최첨단 정보기술이었던 금속활자 발명이 왜 한반도에서 이뤄졌는지를 살펴보면서 글을 쓰고 읽는 행위가 우리 역사에서 얼마나 특별한 일이었는지도 알 수 있다.15세기 중반 구텐베르크는 활판인쇄술을 유럽 최초로 발명해 전파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이전에 본 적이 없던 이상한 인쇄기술로 인해 사회적 권위가 흔들린다고 판단한 추기경은 “어느 야만인이 만든 것”이라며 가치를 낮춰 봤다. 책이란 형태로 정보가 널리 공유되자 정보를 독점했던 권력자들이 위협을 느낀 것이다.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달랐다. 권력자들 스스로 활자 주조에 앞장서서 출판 사업을 벌였다는 게 저자인 부길만 교수의 주장이다.금속활자로 많은 책을 발간한 바 있는 태종은 “책이 없다면 ‘수신제가치국평천하’도 없다”고 선언한 바 있다. 태종이 주조하게 한 활자는 무려 10만 자가 넘을 정도다. 한글을 창제하고 이를 전파하기 위해 애쓴 세종도 출판 활동을 활발히 벌였다.현대 자본주의 사회와는 달리 정부 주도로 이뤄진 관영 위주 사업이었음에도 책은 정치, 행정 등 모든 공적인 일에서도 따라야 할 실천의 근거이기도 했다.이런 중요한 책을 출간하는 데 있어 서양과는 달리 우리는 널리 읽히길 권장하는 문화다.대표적으로 성종은 “서적을 다량 인쇄해서 싼값으로 공급해야 한다”는 정책을 세우고 따로 이를 충당할 세금을 책정할 정도였다. 또 정조가 직접 편찬을 주도한 서적 분량만 해도 89종 2천490권이나 된다.저자는 “한민족은 위대한 민족”이라면서 “그 위대함은 전쟁에서의 승리나 영토의 확장을 통해서가 아니라 문화의 힘을 드러낸 데에서 나온 것”이라고 주장한다.◆조선의 2인자들/조민기 지음/책비/420쪽/1만9천800원‘왕조차 함부로 대할 수 없었던’ 서슬 퍼런 충신과 ‘왕의 총기를 어지럽혔던’ 흉악한 간신의 실체. 권력을 향한 뜨거운 욕망으로 역사를 뒤흔든 2인자들은 누구인가?조선 역사 속에서 1인자의 자리를 노렸던 2인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욕망이 어떻게 권력이 되었고, 역사 속에 어떻게 기록되었는지를 말하고 있는 책이다.저자 조민기는 ‘조선왕조실록’과 그 외 다양한 역사 서적들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공통점을 발견했다. 신하들은 지나치게 미화돼 있고 임금은 지나치게 비판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조선왕조 500년 동안 임금의 자리에 올랐던 인물은 모두 26명, 대한제국의 황제로 즉위한 순종을 포함하면 27명이다. 이 중 후세에 성군으로 인정받은 인물은 세종과 정조 정도밖에 없다. 반면 임금을 보좌했던 신하들에 대한 평가는 놀랍도록 후하다.이 책은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전제 왕조 국가였던 조선은 과연 임금을 제외하면 ‘왕조차 함부로 대할 수 없었던’ 서슬 퍼런 충신과 ‘왕의 총기를 어지럽히는’ 흉악한 간신, 이렇게 극단적인 두 종류의 세력밖에 없었을까?이 책 ‘조선의 2인자들’은 ‘건국’, ‘창업’, ‘욕망’, ‘권력’, ‘당쟁’이라는 5가지 테마에 걸맞은 총 10명의 인물에 관한 이야기를 담아냈다. 이성계, 정도전, 이방원, 하륜, 수양대군, 한명회, 임사홍, 김안로, 이준경, 송익필이 그들이다.이 책 안에 담긴 조선을 풍미했던 2인자들의 행적을 따라가다 보면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얽히고설킨 ‘인맥’과 뜻밖의 ‘관계’를 발견한다. 500년 조선 역사를 이끈 그들이 권력을 쟁취하고 충의를 지키기 위해 벌인 일련의 사건들과 그 안에서 발휘한 탁월한 기지와 다양한 처세술은 마치 추리소설을 읽어 내려가는 듯 한 흡인력을 발휘한다.권력을 추구하는 욕망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으며 그것은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가장 커다란 동력인 동시에 부패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국민혁명군 이상정의 북만주 기행/이상정 지음/이상규 주해/민속원/162쪽/9천500원일제 저항시인 이상화의 맏형인 국민혁명군 중장 이상정이 1931년 ‘혜성’ 10~11월호에 발표한 ‘남북만 일만 리 답사기’를 독자가 이해하기 쉽도록 풀어 쓴 책 ‘국민혁명군 이상정의 북만주 기행’이 출간됐다.이 책은 북만주 일대의 답사기이다. 이상정은 용진단 사건으로 일본경찰에 쫓기다가 1925년 중국으로 망명했다. 만주에서 독립운동가 유동열, 신영삼과 만나 하얼빈 자무시 인근 퉁허현에서 민족학교 교원으로 활동하다가 서북군벌의 펑위샹을 만나 서북벌에 종군해 베이징을 잠시 토벌했으나 만주군벌 장쭤린의 역습공격으로 내몽골로 쫓겨 퇴각하는 과정을 그렸다. 또 쑤이위안에서 권기옥을 만나 결혼해 바오터우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하는 내용 등 1925년 이후 파란만장한 중국내 군벌 간의 투쟁 상황을 사실적으로 기록하고 있다.개벽사에서 운영하던 ‘혜성’지에 이상정의 육필원고가 일부 일제의 검열에 걸려 삭제되고 나머지 원고만 출판됐으나, 이번 ‘국민혁명군 이상정의 북만주 기행’을 통해 이상규 교수가 상세한 해설을 곁들였다.이상정은 일제강점기 충칭육군 참모학교 교관, 신한민주혁명당 중앙위원, 군사부장 등을 역임한 대구 출신 독립운동가이며, 민족주의 시인 이상화 맏형이다. 1912년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 성성중학교, 미술,상업학교를 거쳐 코쿠카쿠인대에서 역사학을 전공했다.1925년 만주로 망명해 북만주에서 약 2년간 민족교육을 통한 항일 독립운동을 했다. 그 뒤 중국 펑위샹장군의 서북 국민부대의 장성 참모로 장개석 군대와 통합된 후에도 국민정규군 소장 참모로서 항일전선에 참전 후 독립지사들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또한 윤봉길 의사에게 폭약을 구해주는 등 독립운동에 전념했으며, 1932년 흥사단에 가입했다. 1947년 뇌일혈로 사망했고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부인인 권기옥 여사는 이상정과 결혼 후 1943년에 한국애국부인회를 재조직하고 사교 부장 등으로 활동하며, 한국 여성들을 규합해 독립운동 전열에 참가시키고 여성들의 독립사상을 높이는 데 노력했다. 이책의 주해는 경북대 이상규 교수가 맡았다.서충환 기자 seo@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