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장, 중국 등 23개 도시에 대구 코로나 방역 노하우 공유한다

권영진 대구시장이 15일 중국 청두시가 주최하는 국제자매도시 온라인 교류회에 참석해 대구의 코로나19 방역정책과 경험을 공유한다.이날 교류회에는 전 세계 23개 도시 단체장들이 참여한다.이들은 코로나19 대응과 경험, 도시공공서비스, 생태도시 건설 등 다양한 주제로 의견을 나눈다.권 시장은 청두시의 요청으로 ‘대구시의 코로나19 선진 방역대책’에 대해 발표한다.권 시장은 “전대미문의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전 세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국제사회에 대구시를 알리고 다양한 도시들과 교류할 수 있는 자리에서 대구의 선진 방역 시스템을 알릴 수 있게 됐다”며 “자매우호협력도시 정상들과도 화상으로나마 만남을 이어가면서 코로나19 이후를 미리 준비하고 국제사회에서 대구의 역할을 찾아 나가겠다”고 말했다.권 시장은 이날 청두국제자매도시 교류회에 앞서 왕펑차오 청두시장과 화상으로 만난다. 왕펑차오 시장의 신임 축하 인사와 함께 대구-청두 간 교류협력 사항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청두시는 중국 쓰촨성의 성도이자 일대일로의 관문도시다. 대구시와는 2015년 자매결연을 체결한 후 의료, 물 분야에서 교류하고 있다.이주형 기자 leejh@idaegu.com

구미시 중국통상협력사무소, 중국 현지서 2021년 사업설명회 개최

구미시 중국통상협력사무소가 지난 1일 중국 호남성 장사시에서 사업설명회를 갖고 양국 내륙 첨단산업도시 간 활발한 경제교류를 위한 물꼬를 텄다.이번 설명회에는 장사시 정부 관계자와 30여 개 주요 기업체, 주우한 한국총영사관, 코트라(KOTRA) 장사무역관, 호남성 한인회, 해외협회 관계자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이날 구미 중국통상협력사무소는 설명회를 통해 구미시와 구미산업단지, 구미시 R&D인프라, 올해 신규사업을 소개하고 질의응답하는 시간을 가졌다.설명회에 참석한 장사고신구 당공작위원회 최효 부주임은 “구미는 장사와 왕래가 가장 빈번하고 친밀한 국제우호도시”라며 “장사고신구와 구미산업단지는 산업의 연관성이 높아 향후 구미시 중국사무소를 통해 다양한 협력기회가 창출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강조했다.구미시 중국통상협력사무소 관계자는 “사무소는 구미지역 기업의 대중국 수출 핫라인 기능을 위해 지난해 설립했다”며 “올해 신규사업으로 현지 투자유치설명회와 기업매칭 프로그램 운영, 개소식과 경제교류회 개최, 글로벌 B2C 온라인 플랫폼 입점지원, 첨단과학기술 협업 프로젝트 발굴, 글로벌 청년일자리 교류사업의 5개 프로젝트를 추진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신승남 기자 intel887@idaegu.com

삼국유사 기행<108>선도성모

경주 선도산 성모설화가 삼국유사 제7편에 10가지 설화와 함께 편집 소개되고 있다. 성모설화는 신라 최초의 왕 박혁거세의 어머니가 중국 황제의 딸이라 기록하고 있어 이채롭다. 삼국유사 기이편에서는 육부촌장들이 나정 우물가에 흰 말이 무릎을 꿇고 절을 하고 있었는데 그 앞에 알이 있어 쪼개 보니 단정한 사내아이가 나와 박혁거세라 이름 짓고, 그를 키워 왕으로 추대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삼국유사는 이렇게 박혁거세의 탄생을 두 가지 설화로 각각 다르게 소개하고 있다. 성모설화에서의 박혁거세 탄생에 대한 기록은 사람들이 잘 알지도 못할 정도로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를 기념하는 행위들은 이어지고 있다. 감통편에 등장하는 안흥사는 선도산 마애삼존입상이 있는 곳이라고 추정된다.마애불상 앞에 성모사당이 있고 서북쪽 200m 지점에 성모유허비가 복원돼 울타리 안에 보관되고 있다. 유허비에서 앞을 바라보면 경주 시가지, 신라 서라벌땅이 훤하게 조망되고 박혁거세가 태어났다는 나정과 그의 주검이 있는 오릉도 가물가물하게 보인다. ◆삼국유사: 선도성모가 불사를 좋아하다진평왕 대에 지혜라는 이름의 여승이 있었는데 어진 행실이 많았다.안흥사에 머무르며 불전을 새로이 수리하고자 하였으나 힘이 모자랐다. 꿈에 비취옥으로 머리를 장식한 예쁜 모습의 선녀가 와서 “나는 선도산 신모이다. 네가 불전을 수리하려는 것이 기뻐서 금 열 근을 시주하여 돕고자 하니 그대가 앉아 있는 자리 밑에서 금을 찾아다가 주존 부처님 세 분을 장식하고 벽 위에는 53명의 부처와 6류성중 및 여러 천신과 오악의 신들을 그려라. 해마다 봄 가을에 열흘 동안 남녀 신도들을 많이 모아 널리 일체중생을 위하여 점찰법회를 베푸는 것을 변하지 않는 규칙으로 삼아라”고 말했다. 지혜가 놀라 꿈에서 깨어 여러 사람들을 데리고 신을 모시는 사당으로 가 좌석 밑을 파서 황금 160냥을 찾아 불전 수리를 이뤘으니 이러한 공적은 모두 신모가 일러주는 대로 따랐기 때문이다.그 사적만은 아직도 남아 있지만 불법의 행사는 없어져 버렸다. 신모는 본래 중국 황실의 딸로 이름은 사소였다. 일찍이 신선의 술법을 배워 신라에 와서 오랫동안 머물면서 돌아가지 않으니 그의 아버지인 황제가 솔개 발에 편지를 매달아 보내 말하기를 “솔개를 따라가다가 멈추는 곳에 집을 지어라”고 말했다. 사소가 편지를 받고 솔개를 날려보내자 이 선도산으로 날아와 멈추므로 마침내 여기에 와서 집을 짓고 지선이 됐다.그래서 산 이름을 서연산이라고 했다.신모가 오랫동안 이 산에 머무르며 나라가 평안토록 도우니 신령스럽고 신이한 일들이 매우 많았다.나라가 세워진 이래로 삼사 중의 하나로 삼았으며 등급으로는 여러 명산대천 제사의 윗자리를 차지했다. 신라 제54대 경명왕이 매를 이용한 사냥을 좋아했는데 어느 때 이 산에 올라가 매를 놓았다가 잃어버리고 신모에게 기도하여 말하기를 “만약에 매를 찾게 되면 꼭 작위를 봉해 드리겠습니다”라고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매가 날아와 책상 위에 앉으므로 신모를 대왕의 작위에 봉했다. 신모가 처음 진한에 와서 신성한 아들을 낳아 신라의 처음 임금이 됐으니 아마 혁거세와 알영의 두 성인이 태어난 근본이었을 것이다.그러므로 계룡, 계림, 백마 등으로 일컬으니 닭은 서쪽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신모가 일찍이 하늘나라의 여러 선녀들에게 비단을 짜게 해서 붉은 물감을 들여 관복을 만들어 그의 남편에게 줬다. 이로 인해 나라 사람들이 비로소 그의 신비스런 영험을 알게 됐다. 또 국사에서 김부식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김부식이 정화 연간(1111~1117년) 어느 때에 사신의 임무를 받들어 송나라에 들어가 우신관에 갔더니 한 사당에 여자 신선의 상이 모셔져 있었다.접대임무를 맡은 학사 왕보가 말하기를 “이분은 귀국의 신인데 공은 아시는지요?”라고 물었다. 이어서 “옛날에 중국 황실의 딸이 바다를 건너 진한으로 가서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해동의 시조가 됐습니다. 황실의 딸은 땅의 신선이 돼 선도산에 있었는데 이것이 그분의 상입니다”고 이야기했다. 또 송나라 사신 왕양이 우리나라에 와서 동신성모에게 제사를 지냈는데, 그 제문에 어진 사람을 낳아 처음으로 나라를 세웠다는 구절이 있었다. ‘지금 신모가 금을 시주해 부처를 받들게 하고 중생을 위하여 불법을 열어 부처의 가르침에 이르는 길을 열었으니 어찌 한갓 오래 사는 술법만 배워 몽롱한 것에만 얽매일 것이랴!’ 다음과 같이 찬미한다.‘서연산에 와 있은 지 몇십 년 되었던가/ 선녀들 불러다 신선의 옷 짜게 했네/ 오래 사는 신선술도 오묘함이 없지 않으나/ 부처님 찾아뵙고 옥황상제 됐다네.’ ◆새로 쓰는 삼국유사: 선도산 성모와 박혁거세선도산에는 오래 전부터 산신 성모가 거처하고 있었다.서라벌을 발 아래로 굽어보며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며 즐기고 있었다. 그러다 성모는 직접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삶을 체험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그들을 이끌어갈 지도자를 보내 아름다운 세상을 꾸려보기로 했다. 성모는 진한 여섯 부락의 촌장들이 하나의 나라를 구성해 튼튼한 울타리를 형성하고, 가족들의 평온한 삶을 영위하려는 뜻을 헤아렸다.또 육부촌장들이 회합을 가지는 날을 택해 백마가 되어 나정에 알을 낳고 기다렸다. 육부촌장들이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니 남산 나정쪽에서 신비스럽게 휘황찬란한 빛무리가 하늘로 오르며 퍼지는 모습을 보고 모두가 달려갔다. 나정에 도착해 보니 백마가 알을 두고 길게 울더니 하늘로 날아가버렸다. 촌장들이 알을 깨뜨리자 훤칠하게 잘생긴 아이가 나왔다. 육부촌장들은 저마다 훌륭한 지도자를 기다려 오던 터라 하늘에서 큰 인물을 점지해준 것으로 해석하고 아이를 키워 지도자로 삼기로 했다. 아이는 일곱 살이 되면서 벌써 어른의 신체로 늠름하게 성장했다.머리도 뛰어나게 총명했다.어른들이 10년 이상 공부해야 할 내용들을 다섯 살이 된 이후 1년에 모두 이해할 정도로 뛰어났다. 이는 성모가 현몽을 통해 아이가 잠들었을 때 지혜를 불어넣어 주었기 때문이다. 육부촌장은 아이를 박혁거세라고 이름 지었다.혁거세는 일곱 살이 되면서 육부촌을 돌면서 촌마다 가지고 있는 특유의 무술과 비학을 익혔다.육부촌이 지역적인 특성을 감안해 부락별로 비축한 창술, 궁술, 도법과 검법, 약제술, 기문둔갑술, 전쟁의 전술과 전략을 집대성한 비법까지 모두 익혔다. 성모는 혁거세가 공부하고, 체력을 단련하는 일을 직간접적으로 적극 나서서 도왔다.약제 공부를 할 때는 산삼과 기이한 약초를 먹을 수 있도록 하고, 체력을 키우는 훈련을 할 때는 신비스런 힘을 가진 영물을 먹을 수 있게 하는 등의 기연을 만들어 줬다. 혁거세가 여섯 부락을 순회하면서 무술과 학문을 익혀 13세가 됐을 때는 칠척 장신에 근엄한 모습의 지혜로운 장군이 돼 있었다.그의 무술 실력은 육부촌에서 솜씨가 뛰어나기로 소문이 난 열 명의 장정이 한꺼번에 달려들어도 그의 옷자락 하나 찢을 수 없을 정도로 신출귀몰한 대장군이었다. 그의 지혜 또한 놀라울 정도로 뛰어났다.마을마다 논쟁이 되는 일들은 혁거세가 논리적인 해석으로 서로 이해하게 하며 깔끔하게 오해를 풀어주는 등으로 육부촌에서는 이미 척척박사로 떠받들었다. 성모는 혁거세의 일을 거들어 줄 현명한 여인을 알영정 계룡에게서 태어나게 해 부부의 연을 맺게 했다. 혁거세는 뛰어난 자질에다 덕을 쌓아 신라 왕이 되고부터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게 선정을 베풀었다. 혁거세는 신라 왕위에 오른 이듬해 꿈을 통해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경위를 이해하고, 모후가 선도산의 성모라는 것을 알았다. 혁거세는 선도산에 사당을 지어 매월 초하루에 직접 제를 올리며 모후의 덕에 감사를 드렸다. 성모사에 제를 올리는 일은 혁거세가 죽은 이후에도 신라 궁중에서 행하는 가장 중요한 행사 중의 하나로 빠지지 않고 이행했다. *새로 쓰는 삼국유사는 문화콘텐츠 개발을 위해 픽션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역사적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구미국가산단 첨단기술 기업, 잇달아 중국 자본에 매각…기술유출 우려

구미국가산업단지에 입주한 첨단 기업들이 잇따라 중국 자본에 팔리면서 기술유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최근 구미국가산단 제2단지 입주기업인 매그나칩반도체는 중국계 컨소시엄인 와이즈로드 캐피탈과 매각절차를 진행 중이며 현재 산업통상자원부의 승인 절차를 남겨 둔 상태다.국가기간산업인 반도체산업은 국가 핵심기술을 취급하는 만큼 해당 기업의 매각을 위해서는 정부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 매그나칩반도체는 세계 1위의 OLED디스플레이 구동 칩을 생산해 삼성디스플레이 등 패널 제조사에 공급하고 있다.특히 매그나칩반도체가 보유한 전력 반도체 등의 기술특허는 3천 건이 넘고 TV와 스마트폰의 OLED 패널을 작동시키는 핵심 기술도 보유하고 있다.지난해 1조 원에 가까운 매출액을 기록한 매그나칩반도체는 현재 디스플레이 구동 집적회로(DDI) 생산 부문에서 삼성전자에 이어 세계 2위에 올라 있다.따라서 매각이 성사될 경우 인수 기업의 기술력이 급격히 향상될 것으로 보인다.이보다 앞서 지난해에는 구미국가산업단지 제3단지 입주업체인 삼성코닝어드밴스드글라스가 중국계 기업인 바이탈 머티리얼즈에 팔렸다.디스플레이와 태양전지 패널 등에 얇은 코팅을 입혀 투명성과 전도성을 확보하는 타킷 생산 업체인 이 회사는 매각 이후 사명을 ‘케이브이머티리얼즈’로 변경했다. 케이브이머티리얼즈는 전 세계 타깃 공급량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삼성디스플레이 등 세계 여러 디스플레이 업체에게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중국계 자본의 첨단기업 인수가 이어지면서 국가 핵심기술이 해외로 유출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구자근(구미갑) 의원 등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3월31일 성명서를 내고 매각 승인 심사에 신중을 기해줄 것을 정부에 촉구했다.구 의원은 “최근 6년간 해외로 유출된 국내 산업기술이 121건에 달하며 이 중 29건은 국가 핵심기술에 해당하는 것”이라며 “국가핵심기술 보호를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그는 “매그나칩반도체 중국계 컨소시엄 매각 심사 시 기술 보호 대상 여부를 철저히 심사해야 한다”며 “핵심기술을 보유한 기업이 매각될 때 보호해야 할 기술범위를 대폭 확대하는 것은 물론 우선적으로 국내 기업들에게 매각될 수 있도록 보호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승남 기자 intel887@idaegu.com

경북도, 중국 랴오닝성과 교류 활발해 진다

4천만 명 이상의 인구로 한국의 1.5배 면적을 지닌 중국 랴오닝(遼寧)성이 경북도가 주도해 창설한 동북아시아지역자치단체연합(NEAR)에 가입한다.랴오닝성은 북한과 국경을 마주해 있다. 중국 동북 3성의 중심지로 성도(省都)인 선양(瀋陽)시에는 한국총영사관, 코트라(KOTRA), 관광공사 지사와 1천여 개의 국내 기업이 진출해 있는 지역이다.29일 경북도에 따르면 중국 랴오닝성은 최근 NEAR 사무국에 회원단체 가입 신청서를 제출했다.올 가을에 개최 예정인 제13차 NEAR 총회에서 승인되면 78개 광역지방자치단체가 참가하고 있는 회원단체 숫자는 총 79개로 늘어나게 된다.현재 동북아 국가별 회원 지자체는 한국 16개, 중국 11개, 일본 11개, 몽골 22개, 러시아 16개, 북한 2개 등으로 6개국 광역지방자치단체(150개)의 절반 이상이 가입하고 있다.NEAR은 1996년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4개국 29개 광역자치단체장이 참석한 가운데 경북도가 주도해 창설한 국제기구이다.이곳에서는 동북아시아지역 광역자치단체 간 행정·경제·문화·관광 등 다양한 분야에 교류와 협력을 통해 지역의 공동발전과 번영의 실현을 목적으로 활동하고 있다.이번에 가입신청서를 낸 랴오닝성은 2019년 기준 인구 4천351만 명, 면적 14.86만㎢로 전자기기 등 제조업과 원자재 공업이 발달해 있다.2019년 12월 경북도의회 대표단이 선양시를 방문해 랴오닝성 인민대표회의와 교류협력의향서를 체결하는 등 의회 차원에서 교류가 시작된 바 있다.NEAR 김옥채 사무총장은 “이번 NEAR 회원 가입으로 앞으로 경북도와 랴오닝성 간에 경제·문화·관광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교류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삼국유사 기행<106>혜통이 용을 항복시키다

혜통은 신라 신문왕 시대에 널리 이름을 떨치기 시작해 효소왕 시대에 국사까지 지낸 고승으로 대단한 신통력을 가진 것으로 삼국유사는 소개한다. 혜통은 신라에 밀교를 뿌리 내리게 한 명랑법사와 같이 서남산 남간마을이 고향인 것으로 전해지지만 가족에 대한 내력은 자세하지 않다. 그는 당나라에 유학하며 무외삼장법사의 제자로 많은 공부를 하고 신라로 돌아와 금광사에서 기거한 것으로 나타나지만 지금까지 남은 그의 흔적이 담긴 유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경주 서남산 자락의 남간마을은 남간사라는 절이 있었다 해 마을이름을 그렇게 부른다. 남간마을에는 보물로 지정된 남간사지 당간지주가 논 가운데 우뚝 서있고, 마을안길에 신라시대의 돌우물이 깨끗한 상태로 보존되고 있다. 남간마을에는 지금도 집집마다 석탑이나 석등, 주춧돌 등의 신라시대 절이나 건축물에 사용됐을 석재들을 곳곳에 쌓아두고, 집의 주춧돌이나 부뚜막의 기초석 등으로 활용하고 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삼국유사: 혜통이 용을 항복시키다승려 혜통은 그의 가족 내력을 자세히 알 수 없다.속인으로 있을 때 집은 남산의 서쪽 기슭 은천동 어귀(지금의 남간사 동쪽 마을이다)에 있었다. 하루는 집의 동쪽 시냇가에서 놀다가 수달 한 마리를 잡아 죽이고 뼈를 동산 안에 버렸다. 이튿날 새벽에 그 뼈가 없어져 핏자국을 따라 가보니 뼈는 옛날에 살던 굴속으로 돌아가 다섯 마리의 새끼를 끌어안은 채 웅크리고 있었다. 그는 이것을 바라보고 놀라 한참이나 이상히 여기며 감탄하고 망설이다가 느낀바가 커 속세를 버리고 승려가 돼 이름을 혜통으로 바꿨다. 혜통은 당나라에 가서 무외삼장을 찾아 뵙고 배우기를 청하니 삼장이 말하기를 “신라 사람이 어찌 감히 불법을 닦을 그릇이 되겠느냐”고 하고는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이에 혜통이 알고 싶어 애가 타서 뜰에 서서 머리에 화로를 이고 있으니 조금 후에 이마가 터지면서 우레와 같은 소리가 났다.무외삼장이 이 소리를 듣고 와서 보고는 화로를 치우고 터진 곳을 손으로 어루만지면서 신비스런 주문을 외우자 상처가 아물어 전과 같이 됐으나 왕 자 무늬의 흉터가 생겼다. 이로 인해 왕화상으로 불렀다. 혜통의 재질이 뛰어나므로 삼장이 심법의 비결을 전해 줬다. 이때 당나라 황실의 공주가 병이 나서 고종이 무외삼장에게 치료를 청하니 삼장은 자기 대신 혜통을 천거했다.혜통이 고종의 명을 받고 별실에 거처하면서 흰콩 한 말을 은그릇에 담고 주문을 외우자 흰 갑옷을 입은 신병으로 변하여 병마를 쫓으려 했으나 이기지 못했다.또다시 검은콩 한 말을 금으로 된 그릇에 담고 주문을 외우자 검은 갑옷을 입은 신병으로 변했다.흰색과 검은색의 병사들이 힘을 합쳐 병마를 쫓으니 갑자기 교룡이 뛰쳐나오고 병이 나았다. 용은 혜통이 자기를 쫓아낸 것을 원망하여 신라의 문잉림으로 가서 매우 심하게 사람을 헤쳤다.이때에 정공이 사신으로 당나라에 갔다가 혜통을 보고 말하기를 “스님이 쫓아낸 독룡이 우리나라로 와서 심한 해를 끼치니 속히 가셔서 없애 주십시오”라고 했다. 이에 혜통은 정공과 함께 인덕 2년 을축(665)에 본국으로 돌아와 용을 내쫓았다.용이 또 정공을 원망해 이번에는 정씨의 문밖에 있는 버드나무에 의탁해 살고 있었으나 정공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다만 그 나무가 무성한 것만 좋아해 매우 소중히 여겼다. 신문왕이 세상을 뜨니 효소왕이 즉위해 신문왕의 무덤을 만들고자 장사지낼 길을 내는데 정씨의 버드나무가 길을 막고 있으므로 관원이 그 나무를 베어버리려고 했다. 정공이 성을 내어 “차라리 내 목을 벨지언정 이 나무는 못벤다”고 하자 관원이 이를 왕에게 보고했다.왕이 크게 노해 법을 집행하는 관원에게 “정공이 왕화상의 신비스런 술법을 믿고 장차 불손한 일을 꾸미려고 왕명를 업신여겨 거역하며 제 목을 베라 하니 좋아하는 대로 해주어라”고 명령했다.이리해 그를 목 베어 죽이고 그의 집을 흙으로 묻어버렸다. 조정에서 의논하기를 왕화상이 정공과 매우 친하므로 필시 꺼리고 싫어함이 있을 것이니 마당히 그를 먼저 없애야 한다고 한 후 즉시 병사를 소집해 그를 찾아 잡게 했다. 혜통은 왕망사에 있다가 갑옷을 입은 병사들이 오는 것을 보고 지붕으로 올라가 사기병과 붉은색 먹을 묻힌 붓을 들고 병사들에게 “내가 하는 것을 보라”고 하며 병의 목에 한 획을 긋고 “너희들은 각자의 목을 보거라”라고 했다. 그들이 목을 보니 모두 붉은 획이 그어져 있으므로 서로 보고 깜짝 놀랐다.혜통이 또 “만약 병목을 자르면 응당 너희들의 목도 잘릴 것이다. 어떻게 하겠느냐?”고 호통쳤다. 병사들이 황망히 달아나 붉은 줄이 그어진 목을 한 채 왕 앞으로 달려 나아가자 왕이 “화상의 신통력을 어찌 사람의 힘으로 도모하 할 수 있겠느냐”하고 말 한 후 그대로 내버려뒀다. 왕녀가 갑자기 병이 나자 혜통을 불러 치료하게 했더니 병이 나았으므로 왕이 크게 기뻐했다. 그러자 혜통이 말하기를 “정공이 독룡의 해를 입어 나라의 형벌에 억울하게 당했습니다”고 했다.왕이 이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후회해 즉시 정공의 처자에게는 죄를 면하게 하고 혜통을 국사로 삼았다. 용은 정공에게 원한을 갚고 기장산으로 가서 곰신이 되어 해독을 심하게 끼치니 백성들이 매우 괴로워했다.혜통이 그 산속으로 들어가 용을 타이르고 살생하지 말라는 계율을 줬더니 곰신이 된 용의 해가 그제야 없어졌다. 신문왕이 등에 종기가 생겨 혜통에게 치료해 주기를 청했다.혜통이 와서 주문을 외니 그 자리에서 나았다.그러자 혜통이 “폐하께서는 전생에 재상의 지위에 있으면서 양민인 신충을 잘못 판결해 종으로 했으므로 신충이 원한을 품어 윤회환생할 때마다 보복을 하는 것이옵니다. 지금의 몹쓸 종기도 신충 탓입니다. 신충을 위해 절을 짓고 명복을 빌어 그의 원한을 풀어야 합니다”라고 하니 왕이 옳게 여겨 절을 세우고 이름을 신충봉성사라 했다. 절이 완성되자 공중에서 “임금께서 절을 세워 주셨기 때문에 괴로움에서 벗어나 하늘에 태어나게 됐으므로 원한은 이미 풀렸습니다”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또 외치는 소리가 났던 곳에는 절원당을 세웠다. 이보다 앞서 밀본법사의 뒤에 고승 명랑이 용궁에 들어가서 신인을 얻어 처음으로 신유림에 절(지금의 천왕사)을 세우고 여러 번 이웃나라의 침입을 기도로 막았다. 이후 명랑스님이 무외삼장법사의 핵심사상을 전하고 속세를 두루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구원하고 만물을 감화시켰다. ◆새로 쓰는 삼국유사: 혜통의 신통력혜통은 경주 서남산 기슭의 남간마을에서 태어났다.어릴 때 수달 한 마리를 죽여 개울 옆에 버렸다.다음날 그 수달이 없어져 핏자국을 따라 가보았더니 뼈만 남은 수달이 새끼를 끌어안고 있었다.그 이후 충격을 받아 삶에 대한 궁극적인 고뇌에 빠져 고민을 하다가 머리를 깎고 불도의 길로 접어들었다. 혜통은 가까운 곳에서부터 스승을 찾아 공부를 하다가 당나라 무외삼장법사의 신통력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무작정 배를 타고 당나라로 갔다. 혜통은 문전박대하는 무외삼장에게 화로를 머리에 이고 버티면서 자질을 인정받아 제자가 됐다. 혜통은 당 고종의 여식을 단지 주문으로만 치료하면서 중국에서도 유명한 스님으로 이름을 떨쳤다. 신문왕 때 다시 신라로 돌아온 혜통은 우연인 듯 필연인 듯 문제 있는 곳에 나타나 해결해주는 만통법사로 통했다. 특히 혜통은 살아 있는 것은 철저하게 그 목숨을 보호해 주기로 유명했다. 혜통과 마주 앉아 몇 마디만 주고받으면 스스로 용서하는 마음이 생겨 갈등은 저절로 풀렸다. 혜통이 기장 장안사에서 머무는 동안 소문을 듣고 민원을 해결하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줄을 이었다. 혜통이 늦은 시간 장안사로 돌아오는 길에 불광산의 호랑이가 토끼를 잡아먹으려는 것을 보고 나무토막을 던져 줬다.토끼는 도망가고 나무토막을 냉큼 받아 문 호랑이는 나무토막을 질겅질겅 씹어 삼켰다. 그 다음부터 호랑이는 장안사를 맴돌며 혜통이 던져주는 나무토막으로 연명하며 살생을 잊고, 장안사를 지키는 수호신이 됐다. *새로 쓰는 삼국유사는 문화콘텐츠 개발을 위해 픽션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역사적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쿼드, 또 다른 시련일까?

이부형현대경제연구원 이사대우지난 13일 미국, 일본, 인도, 호주 등 4개국으로 이뤄진 안보체제인 쿼드(The Quad; quadrilateral security dialogue) 정상회의가 열렸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쿼드는 ‘법치에 기반한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을 목표로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반 중국 연합 협력체적인 성격이 강하다. 그런 의미에서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은 시점에서 쿼드가 개최된 것을 보면 미국의 대 중국 견제에 동맹국을 적극 활용하겠다는 의지가 보이기도 한다.물론, 쿼드의 성공여부에 대해서는 장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트럼프 행정부 때부터 각을 세워 온 미국은 그렇다 손치더라도 정치·군사·외교는 물론 경제·사회적인 측면까지 고려하면 다른 참여국들의 입장은 서로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더욱이 현 상황에서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같은 다자안보기구로의 발전 가능성을 논할 정도도 되지 못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입장에서 보면 쿼드는 그냥 삼킬 수도 내뱉을 수도 없는 뜨거운 감자인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단순히 미국은 한국의 가입을 재촉하고, 중국은 비가입을 압박해서가 아니다. 지정학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쿼드는 거기에 참여하든 참여하지 않든 우리의 국익에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큰 의미가 있는 다자간 협의체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먼저 지정학적인 측면부터 살펴보자. 한미 동맹 유지와 안전보장 관련 이슈가 가장 크겠지만, 인도·태평양 지역 현안은 물론 미국의 대 중국 전략 변화에 관한 우리의 입장 반영 여부도 매우 중요한 이슈다. 더군다나 대 중국 관계에 있어서도 쿼드는 우리의 이익을 반영해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중국의 반발로 제2의 사드(THADDA)를 유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고, 북핵 문제 해결에도 중국이 걸림돌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한편, 경제적으로도 보면 쿼드는 미국과 중국과의 관계에서 우리의 국익을 최대화할 수 있는 전략적인 지렛대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중요성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굳이 다른 예를 들 필요도 없이 미국과 중국은 각각 우리의 1, 2위 수출 대상국이라는 점만 생각해봐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 쿼드는 미국과 중국의 과도한 경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역내 안보 불안과 이로 인해 파생될 수 있는 해상 운송 봉쇄 등과 같은 우리 수출 환경 악화 요인들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도구로도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쿼드가 신기술에 대한 대응과 미래 혁신을 지배할 규범과 표준 확립을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는 점 또한 중요한데, 이는 어떤 식으로 든 우리의 경제적 이익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하튼 우리 입장에서 보면 미국과 중국은 모두 중요한 나라로 어떻게 든 이들과의 관계에서 국익 최대화를 위한 전략적 관계를 구축하고 이어가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쿼드의 필요성과 중요성은 충분히 인정 되지만, 참여하든 하지 않든 쿼드 그 자체가 우리에게는 약이 될 수도 병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이렇게 볼 때 당장 쿼드 참여 여부를 결정할 수 없는 우리 입장에서는 어느 쪽을 선택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불이익을 회피하기 위해 지금까지 취해왔던 전략적 모호성(strategic ambiguity)과 침묵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미국 국무장관인 토니 블링컨(Tony Blinken)이 현재의 미중 관계를 ‘21세기 최대의 지정학적 시험’이라 규정하면서, 중국이 기존 국제질서에 도전할 수 있는 종합적인 국력을 가진 유일한 나라라고 하는 등 바이든 행정부의 행보를 볼 때 이제는 그것도 쉽지 않을 것 같아 우려가 되는 것만큼은 사실이다.이제 곧 쿼드 불참과 이로 인해 발생할 리스크에 사후 대응할 것인지, 아니면 쿼드 참여로 주요 의사결정에 외교력을 발휘해 적어도 우리 경제에 유리하도록 활용할 지 선택해야 할 시기가 다가올 것이다. 아무쪼록 그 때가 되면 현재는 물론 미래의 국익을 최대화할 수 있는 전략적 선택으로 이어지길 바랄 뿐이다.

증가하던 오존층 파괴물질 ‘프레온가스’, 중국 동부에서는 배출 감소한 것으로 밝혀져

중국 동부 지역에서 배출이 증가하던 오존층 파괴물질 ‘프레온가스’(CFC-11)가 2019년 배출량이 감소해 2013년 이전 수준으로 회복된 것으로 나타났다.경북대 지구시스템과학부 박선영 교수팀은 영국 브리스톨대 등과의 국제 공동연구를 통해 밝혀낸 이 연구 결과를 지난 11일(한국시간) 세계적인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를 통해 발표했다.오존층 파괴물질의 생산과 규제에 관한 국제협약인 ‘몬트리올 의정서’에 의해 프레온가스는 2010년부터 생산이 금지됐으나, 2018년 전 세계적으로 배출이 다시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 학계에 보고됐다.하지만 정확한 배출지역과 배출량은 규명되지 않았다.이와 관련해 박 교수팀은 국제 공동연구를 통해 2013년 이후 중국 동부 지역에서 연 7천t 이상 프레온가스 배출량이 증가했고, 이는 유엔환경계획(UNEP)과 오존 사무국(Ozone Secretariats)에 보고되지 않은 새로운 생산과 사용에 따른 결과임을 2019년 네이처에 발표한 바 있다.이번에 발표한 연구에서 박 교수팀은 제주도와 일본 하테루마섬의 대기 중 프레온가스 농도 관측자료를 대기·화학 모델을 통해 종합 분석했다.그 결과 2019년 중국 동부 지역 프레온가스 배출이 2013년 이전 수준으로 감소했음을 확인했다.이는 2019년에 나타난 전 지구 프레온가스 배출 감소량의 약 60%에 해당한다.또 박 교수팀은 중국 동부 지역에서 프레온가스 생산에 관여된 물질들의 2013년 이후 배출량이 유엔 등 기존 보고서에 근거한 예상배출량 보다 높은 수준인 것을 확인했다. 박 교수는 이번 논문과 관련해 “지구의 환경을 위협하는 프레온가스 배출량이 다시 감소하게 된 것은 매우 고무적”이라며 “프레온가스 배출이 증가하고 있다는 학계의 연이은 연구 발표 이후, 학계와 국제사회 및 중국 정부의 즉각적인 대응 덕분에 오존층 복구의 예상 시간이 늦춰지지 않고 몬트리올 의정서의 국제 규제 또한 다시 정상궤도를 찾을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이어 “지난 수년간 관측된 프레온가스 배출량은 실제 생산된 전체의 일부일 가능성이 크고, 프레온가스로 채워진 단열재를 사용한 건물과 장비에서 앞으로 수십 년간 지속적인 추가 배출이 진행될 수 있다”고 밝혔다.한편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한국연구재단이 추진하는 중견연구사업의 지원으로 진행됐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김치는 김치일 뿐

오철환객원논설위원중국의 전통적 채소절임요리인 파오차이가 한국으로 전파돼 김치가 됐기 때문에 중국이 김치의 종주국이라는 식으로 중국 최대 인터넷 백과사전에 등재돼 있다. 최근 중국은 파오차이를 국제표준화기구(ISO)에 채소절임음식으로 표준인증을 받은 상태다. 김치는 파오차이의 일종이며 중국에서 전해진 음식이기 때문에 중국 김치가 국제표준으로 등재돼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견강부회다.이런 움직임에 맞장구를 치듯 유엔주재중국대사가 직접 김치를 담그는 사진을 트위터에 올렸다. 앞치마를 입고 고무장갑을 낀 중국대사가 자기가 담근 김치를 들고 엄지를 척 치켜들었다. 구독자 1천400만 명을 가진 중국 유튜버는 배추를 소금에 절이고 양념을 발라 김치를 담그는 영상을 올리면서 중국음식(#Chinese Food), 중국요리(#Chinese Cuisine)라는 해시태그를 달았다. 김치가 중국음식이라는 뜻이다.이러한 동향에 대해 언제나 그러하듯 정부보다 우리나라 누리꾼이 먼저 들고일어났다. 김치는 한국의 고유음식이며 한국의 정체성과도 같은 음식이란 취지의 댓글들을 달았다. 우리 언론도 중국의 억지주장을 반박하는 보도에 나섰다. 이에 농식품부는 김치의 국제표준은 세계식품규격에 등록돼 있는 만큼 유일하다는 반응을 보였고, 세계김치연구소는 김치와 파오차이는 기술적으로 차이가 크다고 태무심이다. 참 한가하고 배부른 소리다.중국 공산당 중앙정법위원회는 김치 종주국 논란에 대해 ‘한국의 문화적 자신감 부족으로 생긴 피해망상’이라고 불쾌감을 표했다. 중국 유명 유튜버가 한국 누리꾼의 뭇매를 맞고 있다며 김치는 중국 문화의 구우일모에 지나지 않고 이를 최초로 만든 중국은 맞서 싸워야 한다고 대응하고 있다. 중국 누리꾼은 별거 아닌 일로 시비를 건다고 비아냥거렸다. 중국의 변방 속국이었던 작은 나라가 열등감에 사로잡혀 감히 대국에게 대들고 있다는 식이다.중국의 교묘한 김치 강탈 작전을 동북공정의 연장선상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로 이른바 김치공정이라고 보는 시각이 유력하다. 동북공정은 동북아의 역사를 중국사에 편입시키는 국책사업이다. 속지주의 관점에서 중국 변방의 역사와 문화를 중국화시키려는 야욕이다. 잠복하고 있는 소수민족 독립의 싹을 자르고 동북아의 실효지배력을 강화해 세계패권을 장악하려는 중국몽의 일환이다.김치를 앗아가려는 무도한 시도를 어처구니없다고 안이하게 대응했다간 큰 코 다친다. 김치가 한국의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이고 세계식품규격(CODEX)에 등록돼 있다고 안심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 중국이 몸집을 불려가면서 전 방위적으로 집요하게 압박할 건 뻔하다. 터무니없다든가 순 억지라든가 어불성설이라고 점잖게 반박한다 해 주저앉을 턱이 없다. 중국은 우공이산이란 고사가 상식처럼 수용되고 있는 나라다. 지치지 않고 꾸준히 치고 빠지길 반복할 것이다.영국 BBC가 우리 편을 들고 있다고 마음 놓지 말아야 한다. 파오차이 표준과 김치는 무관하다고 국제표준화기구(ISO)가 밝혔다고 안도하고 있을 처지가 아니다. 그 정도에서 물러설 것 같았으면 아예 처음부터 시작하지도 않았을 터다. 중국은 장기적으로 틈만 나면 계속 여기저기 찔러볼 것이다. 집적거리다가 빈틈만 보이면 치고 들어온다. 오랜 역사를 통해 늘 그렇게 해왔다. 중화사상이란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니 자기 마음대로 하겠다는 자기중심주의에 다름 아니다.국제관계는 힘으로 짜여 지는 질서 체계다.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부문이 힘 있는 나라를 중심으로 굴러간다. 힘 앞에 명분과 정의가 짓밟히는 현상을 지난 역사 속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를 위시한 대부분 우방이 UN에서 자유중국을 몰아내고 그 대신 중국을 선택했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선 무엇이든 한다는 비정함을 잘 보여준다. 잘못하면 김치 종주국 논란도 중국의 힘에 휘둘릴 수 있다.빼앗긴 후에 그 소중함을 안다면 이미 늦는다. 유비무환이고 공격이 최선의 방어다. 김치를 빼앗기기 전에 미리 대비를 잘 해둬야 한다. ISO 등 각종 세계기구에 빠짐없이 김치를 등록해두고 세계인을 상대로 ‘김치는 곧 대한민국’이란 홍보를 지속적으로 행하는 수밖에 뾰족한 방법이 없다. 김치를 파오차이라고 번역해주는 일은 정말 바보짓이다. 김치는 그냥 김치일 뿐이다.

대구·경북 수·출입 증가세…작년 12월 24억8천만 불 흑자

지난해 12월 대구·경북지역 수출입은 대 중국 무역의 회복세 등으로 크게 증가하며 호조를 보였다.대구본부세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대구·경북지역 수출은 44억 달러로 집계돼 작년 동기간 대비 13.1% 증가했다. 수입은 전년 동월 대비 19.5% 증가한 19억2천만 달러로, 24억8천만 달러의 흑자를 냈다.지난해 11월 수출액은 41억9천600만 달러, 수입은 15억6천800만 달러로 기록됐다.주요 수출 품목은 전기·전자제품(32%), 철강·금속제품(26%), 기계·정밀기기(14%), 화공품(8%), 수출 장비(6%) 순이었다.수송 장비 56.4%, 전기·전자제품 54.4%, 화공품(24.9%) 등이 각각 증가했다.수입은 광물 21%, 화공품 11%, 기계·정밀기기 10%, 철강·정밀기계 4.5%가 각각 늘었다.대구·경북의 주요 수출국은 중국(30%), 동남아(19%), 미국(15%), 유럽(11%), 일본(6%) 순이며, 중국 수출이 전년 동월보다 46.1%, 동남아 5.9%, 미국 0.2% 순으로 증가했다.수입은 중국(26%), 호주(16%), 일본(14%), 동남아(10%), 유럽(8%) 순이며, 중국 수입이 전년 동월보다 39.2%, 일본은 26%, 호주는 8.3% 각각 늘었다. 이승엽 기자 sylee@idaegu.com

삼국유사 기행<96>원광법사. 하

삼국유사는 원광법사편에서 당의 속고승전과 고본 수이전에서 소개한 내용들을 그대로 싣고, 삼국사기 열전의 기록도 옮겨 놓았다.어느 기록이 맞는지 알 수 없어 다 나열하니 독자가 판단하라고 주석을 달았다. 수이전에서 원광법사는 설씨이며 혼자 살면서 삼기산에서 조용히 불법을 배웠다.속고승전에는 박씨이며 중국에서 불교에 귀의한 것으로 드러난다.수이전은 또 원광법사의 도력을 나타내면서 여우가 신의 목소리로 원광에게 후세에 서로 계를 주기로 약속하는 장면을 그려 신비롭다. 법사의 글재주가 뛰어나 나라에서도 인정받았다는 내용은 같다.삼국사기 열전에서 귀산과 추항 두 화랑에게 평생의 지표를 삼을 세속오계를 내렸다는 내용을 소개해 지금까지 그 뜻이 전하고 있다. 속고승전의 99세 입적과 다르게 수이전은 84세에 입적한 것으로 기록하고, 삼국사기 열전은 80세쯤에 입적해 금곡사에 부도탑이 있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고 기록했다.지금 경주 금곡사의 부도탑을 원광법사의 흔적으로 이해하고 학자들도 학생들과 함께 답사하고 있다. 경주시는 석장동에 청소년수련시설 화랑마을을 건설했다.다양한 체험과 공부를 통해 나라의 동량으로 자라날 청소년 심신단련의 장을 마련하고, 전국의 청소년들이 이용할 수 있게 시설을 공개하고 있다. ◆삼국유사: 원광법사동경(경주)의 안일호장인 정효의 집에 있는 고본 수이전의 원광법사전에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법사의 속성은 설씨로 서울 사람이다.처음에 승려가 돼 불법을 배웠는데 30살이 되자 조용히 살면서 수도할 것을 생각하고 홀로 삼기산에 살았다.그 후 4년이 지나 어떤 비구가 와서 멀지 않은 곳에 따로 암자를 짓고 2년을 살았다.그의 사람됨이 모질고 사나웠으며 주술로 수련하는 것을 좋아했다. 원광법사가 밤에 홀로 앉아 불경을 외우는데 신의 목소리가 들렸다.“그대의 수행은 참으로 좋구나. 대체로 수행하는 자는 많으나 법대로 하는 사람은 드물다. 지금 이웃에 있는 비구는 주술을 닦고 있지만 시끄러운 소리가 다른 사람의 고요한 사념을 뒤흔들고, 그가 머무르고 있는 곳은 내가 다니는 길에 방해가 돼 미운 생각이 날 지경이다. 법사께서 나를 위하여 그 사람에게 말을 해 옮겨가게 해 주게나. 만일 오래 머문다면 어쩌면 내가 갑자기 죄 되는 일을 저지를 것 같다”고 했다. 이튿날 법사가 가서 “제가 어젯밤에 신의 말을 들었는데 스님은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큰 재앙이 있을 것입니다”고 말했다.그 비구가 “수행이 지극한 사람도 마귀에 현혹됩니까? 법사께서는 어찌하여 여우귀신의 말을 듣고 근심합니까?”라고 되물었다. 그날 밤 신이 다시 와서 “전에 내가 한 말에 대해 비구는 무어라고 대답하던가?”라 묻자 법사는 신이 크게 화를 낼까 두려워하여 “아직 말을 못했으나 만약 굳이 말을 하면 어찌 감히 듣지 않겠습니까”라고 대답했다. 신이 “내가 이미 다 들었는데 법사는 어째서 말을 보태는가? 그대는 단지 잠자코 내가 하는 것만 보게나”라고 말 한 후 가버렸다.밤중에 벼락 같은 소리가 났다.그 다음날 가서 보니 산이 무너져 비구가 거처하던 암자를 덮어버렸다. 그리고 신이 “법사가 이곳에만 있으면 자기는 이로운 수행을 할 수 있으나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는 공덕은 없을 것이네. 어찌하여 중국에서 불법을 취하여 이 나라의 갈 길을 못 찾는 무리를 인도하지 않는가?”라고 물었다. 법사가 “중국에 가서 도를 배우는 것이 저의 소원이나 바다와 육지가 멀고 험해서 스스로 가지 못할 뿐입니다”고 답하자 신이 중국으로 갈 계책을 자세히 가르쳐 줬다.법사가 그 말을 따라 중국에 가서 11년을 머무르면서 삼장에 널리 통달하고 겸하여 유학도 배웠다. 진평왕 22년(600) 경신에 법사가 신라로 돌아올 행장을 정리해 중국에 왔던 조빙사를 따라 본국으로 돌아왔다.법사가 신에게 감사를 드리기 위해 전에 살던 삼기산의 절로 갔다. 밤중에 신이 나타나 “바다와 육지의 길을 다녀옴이 어떠하던가?”라고 하니 법사가 “신의 크신 은혜를 입어 편안히 다녀왔습니다”고 대답했다.신이 “나 또한 법사에게 계율을 주겠네”라고 하면서 윤회하는 세상에서 서로 구해주자는 약속을 했다. 신이 “3천 년을 살아왔지만 덧없는 죽음을 면할 수 없다네. 그래서 나는 얼마 안 가서 그 고개에 이 몸을 버릴 것이니 법사는 와서 멀리 떠나는 내 영혼을 전송해 주시게나”라는 말을 남겼다.약속한 날을 기다려 법사가 가서 보니 옻칠한 것과 같은 검고 늙은 여우 한 마리가 헐떡거리며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다가 마침내 죽었다. 법사가 처음 중국에서 돌아왔을 때 신라 조정의 왕과 신하들이 그를 매우 존경해 스승으로 모시니 법사는 늘 대승경전을 강론했다.이때에 고구려와 백제가 늘 변방을 침략하므로 왕이 이것을 걱정하여 수나라에 군사를 청하고자 법사에게 구원병을 청하는 글을 짓게 했다.황제가 그 글을 보고 30만 명의 군사를 내어 친히 고구려를 정벌했다.이로부터 법사가 유술까지도 두루 통달했음이 알려졌다.나이 84세에 세상을 떠나니 명활성 서쪽에서 장사를 지냈다. 또 삼국사기 열전에 이렇게 기록돼 있다.귀산이라고 하는 현명한 분은 사량부 사람인데 같은 마을의 추항과 친구가 됐다.두 사람이 서로 “우리들이 먼저 마음을 바로잡아 처신하지 않는다면 필경 욕을 불러들일 것이다. 어진 분을 찾아가서 도를 물어보자”라고 했다. 이때 원광법사가 수나라에서 돌아와 가슬갑에 머물러 있다는 소문을 듣고 두 사람이 그의 처소에 나아가 “속된 사람들이라 어리석어서 아는 것이 없습니다. 바라옵건대 한 말씀 해주시면 평생의 지표로 삼겠습니다”라고 부탁했다. 이에 원광이 “세속에서 지켜야 할 다섯 가지 계가 있으니 첫째가 충성으로 임금을 섬기는 것이요. 둘째가 효도로써 부모를 섬기는 것이요. 셋째는 친구를 사귐에는 믿음이 있어야 하고, 넷째는 싸움에 임해서는 물러서지 않는 것이요. 다섯째는 살생을 가려서 해야 하니, 너희들은 이 일을 실행함에 소홀히 하지 마라”고 말했다. 귀산 등이 “지금부터 이 말씀을 받들어 행해 감히 어기지 않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그 후 두 사람이 싸움터에 나아가 모두 국가에 특출한 공을 세웠다. 또 건복 30년(613) 계유 가을에 수나라의 사신 왕세의가 와서 황룡사에 백좌도량을 열고 여러 고승을 청해서 불경을 강의했는데 원광이 가장 윗자리에 앉았다. 원광은 성품이 텅 비고 허정한 것을 좋아하였으며 말할 때는 항상 미소를 머금었고 성내는 기색이 없었다.그는 이미 나이가 많아져 수레를 타고 대궐 안까지 들어가니 당시 덕망과 인의를 갖춘 훌륭한 분이 많았지만 그보다 나은 사람은 없었다.그의 뛰어난 문장은 한 나라를 기울일 정도였다. 나이 80세께 정관 연간에 세상을 뜨니 부도는 삼기산 금곡사에 있다.당전에서는 황륭사에서 입적했다고 했으나 그 장소가 분명하지 못하다.아마도 황룡사가 잘못 전해진 듯하니 이는 마치 분황사를 왕분사로 한 예와 같다. 진나라와 수나라 시대에 우리나라 사람으로 바다를 건너 불도를 배운 자는 드물었고 설혹 있다 하더라고 크게 떨치지 못했다.원광 이후에는 중국으로 유학 가는 사람들이 계속하여 이어졌으니 이는 바로 원광이 길을 열었던 것이다. ◆새로 쓰는 삼국유사: 원광법사의 도력화랑 귀산과 추항이 힘들게 공부하고 수련에 매진했다.3년이 지난 어느 날 두 친구는 “이제 제법 실력을 갖췄는데 우리 스스로 노력으로는 한계에 부딪쳤다. 뛰어난 스승의 가르침을 얻어야 더 발전할 수 있다”라는 결론을 내렸다.이들은 원광법사에게 가르침을 받기로 하고 먼저 법사의 실력을 시험해보기로 했다. 두 화랑은 법사가 왕궁에서 황룡사로 돌아오는 길목에서 기다렸다가 급습했다.그러나 법사는 여덟 명의 법사로 나뉘어 귀산과 추항을 거꾸로 공격해 꼼짝하지 못하게 손발을 묶어 꿇어앉게 했다. 귀산과 추항이 그제야 엎드려 절하며 높은 경지에 이른 법사의 덕을 칭송하며 배우고 싶은 열망에 잘못을 저질렀다고 사죄하고, 자신들을 제자로 받아주기를 간곡하게 청했다. 법사는 다시 하나의 몸으로 돌아와 “부족한 솜씨로 스승을 시험하려는 것은 잘못된 예절”이라며 꾸짖고 반대로 그들을 시험했다.얼음을 깨고 물속에서 3일을 버티면 제자로 받아들이겠다고 했다.귀산과 추항은 이를 견뎌 원광법사에게 무술 가르침을 받은 최초의 제자가 됐다. 법사는 제자들에게 심신을 함께 수련하게 하며, 평생 갖춰야 할 덕목으로 세속오계를 일러줬다.귀산과 추항은 법사의 가르침을 평생의 계율로 삼아 다시 수련에 매진해 화랑의 우두머리가 된 것이다. *새로 쓰는 삼국유사는 문화콘텐츠 개발을 위해 픽션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역사적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청송군 중국 황강 다비에산 지질공원과 MOU

청송군은 최근 중국 황강시와 지질공원 간 국제협력 증진을 위해 업무협약을 체결했다.이번 업무협약을 통해 청송군과 중국 황강시는 양 지질공원의 지질유산 보호와 연구, 지속가능한 지질관광을 통한 지역사회 발전에 중요한 파트너임을 인식하고 상호협력과 정보교환을 강화한다.중국 후베이성 황강 다비에산 지질공원은 28억 년 전 선캄브리아 시대부터 6천500만 년 전 신생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암석이 존재한다.초기 지각형성의 증거를 찾아볼 수 있는 곳으로 2018년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됐다. 인구 750만의 도시로 명나라 말기 본초강목의 저자 이시진과 차 생산지로 유명하다.황강 다비에산 지질공원의 요청으로 시작된 상호교류는 지난해 9월 인도네시아 롬복에서 열린 제6차 아시아 태평양 지질공원 네트워크 심포지엄에서 양 도시 간 자매결연 의향서 체결로 이어졌다.이후 교류를 이어오다 국제적 협력을 강화하고자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으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청송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은 일본 아소 지질공원과의 업무협약에 이어 두 번째로 이번 업무협약을 통해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재인증을 준비하고 있다.윤경희 청송군수는 “국제협력 증진을 권장하는 유네스코의 기준에 맞는 지질공원 운영으로 청송 세계지질공원을 지속가능한 경제자산으로 활용할 계획이다”고 말했다.임경성 기자 ds5ykc@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