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만에 울릉도에 울음 터트린 아기천사 출생신고까지 마쳐

24년 만에 울릉도에 울음소리를 터트린 아기가 드디어 출생신고까지 마쳤다.울릉도에서도 시골인 평리마을(북면 현포2리)에서 지난 4월 중순 출생신고를 한 아기가 있어 마을 전체가 기뻐하며 축하했다.화제의 주인공은 보미다. 지난 3월19일 이상윤(38)·김혜민(30) 부부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들 부부는 경산에서 생활하다 이 마을에 2012년 이주했다.수십 년 만에 아기 울음소리를 듣게 된 평리 조명순(68) 이장은 마을의 경사라며 지난 14일 마을회관에서 보미의 출생신고 잔치를 크게 열었다.조 이장은 “24년 동안 이 마을에서 아기 울음소리를 듣지 못했다”며 “시골마을에서 아기가 태어나 마을에서 잔치를 열게 됐다”면서 마치 자신의 손주가 태어난 것처럼 기뻐했다.보미의 출생을 축하하기 위해 군수, 도의원, 새마을부녀회뿐만 아니라 마을주민 대부분이 참석했다.아빠 이상윤씨는 “보미가 낯을 가리지 않고 잘 웃는 편이어서 동네 어르신들이 특히 더 좋아해 주시는 것 같다”면서 “이번 잔치를 통해 보미가 마을의 마스코트가 된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울릉군은 첫째 아기 출산에 출산장려금 200만 원과 4년간 10만 원, 둘째는 20만 원 셋째는 50만 원을 지원한다.김병수 울릉군수는 “인구문제 해결과 주민 복지향상, 교육문제 해결을 위해 출산지원금 확대, 영유아 돌봄 시스템 확대, 초·중·고 명문학교 육성지원 등 다양한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한편 초미니 지자체인 울릉군 인구는 9월 말 현재 9천737명이다. 보미가 태어난 현포2리는 100여 명이 살고 있다. 이재훈 기자 ljh@idaegu.com

계명대 동산병원 천사(10월4일) 데이 봉사

계명대 동산병원(병원장 조치흠)은 지난 4일 ‘천사(1004)데이’를 맞아 ‘건강한 삶은 간호사와 함께, 건강을 지키는 손-올바른 손씻기’를 주제로 환우와 보호자에게 건강 상담과 이벤트를 마련했다. 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전국자원봉사연맹 천사해외봉사단 9기, 말레이시아 해외봉사

전국자원봉사연맹 천사해외봉사단 9기가 16일부터 4박5일 일정으로 말레이시아 해외봉사를 떠난다.봉사단은 말레이시아 빈민촌 지역을 방문해 고아원과 장애아동 센터를 대상으로 위생 교육 및 울타리 개선 공사, 체육, 미술 재능기부 등의 봉사를 펼칠 예정이다.또 말레이시아 역사문화탐방의 시간을 갖고 이곳의 역사와 문화를 느낄 수 있는 체험 일정도 진행한다.전국자원봉사연맹 관계자는 “말레이시아의 어려운 환경에 처한 아동과 주민을 위해 책임감을 가지고 봉사활동을 수행할 것”이라고 밝혔다.한편 전국자원봉사연맹은 노인·아동·장애인 등 도움이 필요한 취약계층을 위해 사랑의 도시락 배달 사업, 생활개선 사업, 자립 지원 사업 등을 펼치며 희망과 나눔을 전하고 있는 비영리법인단체다.이동현 기자 leedh@idaegu.com

11척 장대한 기골 천자의 행차에 섬돌이

진평왕은 신라 26대 왕으로 54년 간 왕위에 있었다. 박혁거세 이후 천 년 신라 역사 가운데 가장 오랜기간 왕좌에 있었다. 진평왕은 할아버지 진흥왕이 신라 최대의 영토를 넓힌 뒤를 이어, 이를 반석 위에 올려놓기 위해 끊임없는 전쟁을 치러야 했다. 진흥왕 사망으로 진지왕이 왕위에 올라 문란한 정치로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노리부 등의 귀족들이 진지왕을 몰아내고 진평왕을 옹립했다. 진평왕은 나라를 안정시키기 위해 국내외적으로 전쟁을 치르면서 제도를 정비해 왕권 강화에 나섰다. 불교와 샤머니즘적 신앙을 접목해 왕권을 신성시 하는 풍토를 조성하는데도 성공했다. 진평왕 옥대, 하늘로부터 내려받은 보물 ‘천사옥대’를 만들어 절대적인 왕권을 세우는 밑거름으로 삼았다. 지금까지 황룡사 9층목탑, 장육존상과 함께 신라 3대 보물로 전해지고 있다. 진평왕은 왕위에 오르는데도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지만, 아들이 없어 성골 귀족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데도 많은 고충을 겪어야 했다. 김춘추와 김유신과 같은 절대적인 지지세력을 확보한 이후에야 딸에게 왕위를 넘겨주었다. 진평왕이 나라의 살림을 안정적인 기반 위에 올려둔 덕분에 선덕여왕과 진덕여왕이 잇따라 여왕으로 나라를 다스릴 수 있었다. 진평왕은 특히 삼촌인 진지왕의 아들 용수를 사위로 맞아들이고, 나랏일을 돌보도록 벼슬을 주어 왕권다툼을 예방했다. 진평왕의 즉위 과정과 신라 최고의 영토를 지키기 위한 전쟁으로 삼국통일의 기반을 다지는 정치, 안정적으로 여왕에게 왕위를 넘겨주는 신라 중대 역사의 일면을 본다. ◆천사옥대 -하늘이 준 옥대[청태 4년(937) 5월 정승 김부가 금으로 새기고 옥으로 반듯하게 장식한 허리띠 하나를 바쳤다. 길이가 10뼘으로 새겨 붙인 장식이 62개였는데 이것을 진평왕의 천사옥대라고 했다. 고려의 태조가 이것을 받아 궁중의 창고에 보관했다.] 제26대 백정왕의 시호는 진평대왕이며 성은 김씨이다. 태건 11년 기해(579) 8월에 왕위에 올랐다. 키가 11자였다. 내제석궁(다른 이름은 천주사이다. 이 왕이 창건한 것이다)에 행차했을 때, 섬돌을 밟으니 돌 세 개가 한꺼번에 부러졌다. 왕이 주위의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이 돌을 치우지 말고 뒤에 오는 사람들이 보도록 하라”고 했다. 바로 이 돌이 성안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다섯 개의 돌 중 하나이다. 그가 왕위에 오른 첫 해에 천사가 궁전 뜰에 내려와 왕에게 “상황께서 내게 명하여 옥대를 전해주라고 했습니다”라 하니, 왕이 친히 무릎을 꿇고 그것을 받았다. 큰 제사나 종묘에서 제사를 지낼 때는 이 옥대를 사용하였다. 그 후 고구려왕이 신라를 치려고 모의하면서 “신라에는 세 가지 보물이 있어 침범할 수 없다고 하니 무엇을 두고 하는 말인가” 하였더니, 황룡사 장육존상이 첫째이고, 그 절에 있는 9층탑이 둘째며, 진평왕의 천사옥대가 셋째라 하여 왕은 곧 그 계획을 중지하였다. 다음과 같이 찬미한다.구름 위의 하늘이 옥대 내리어 두르시니/ 천자의 곤룡포에 아담하게 어울리네/ 이로부터 우리 임금 몸 더욱 중후하니/ 내일 아침 강철로 섬돌 만들까 하네. ◆진평왕진평왕은 신라 제26대 왕으로 열세 살에 왕위에 올라 54년을 재임했다. 박혁거세를 제외하고 신라 천 년 역사에서 가장 오래 왕위에 있었다. 진평왕대에 이르러 진흥왕으로부터 시작한 신라의 국운이 바야흐로 꽃을 피웠다. 그의 뒤를 이어 선덕과 진덕 두 여왕을 보필했던 태종무열왕 김춘추가 삼한 통일 위업의 기초를 다졌다. 삼한 통일의 모든 것이 진평왕으로부터 시작했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평이다. 진평왕은 놓칠 뻔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으며 열세살인 579년에 왕위에 올라, 할머니인 사도부인이 수렴청정을 했다. 진평왕은 할아버지 진흥왕의 뜻일 이어받아 전쟁을 치르면서도 왕권을 강화하고 왕실을 신성화하는 데 진력했다. 진평왕은 자신의 이름은 석가모니의 아버지 이름 백정, 부인은 석가모니 어머니의 이름 마야부인, 동생 둘은 석가모니 삼촌의 이름 백반과 국반으로 지었다. 가족 모두가 석가모니족으로 신성화 했다. 진평왕은 왕위에 오르자마자 동생 백반을 진정갈문왕, 국반을 진안갈문왕으로 임명해 왕실의 세력을 친정체제로 두텁게 했다. 동생 둘은 형의 좌우에서 형의 말을 충실히 듣는 심복으로 자라갔고, 자연스레 사도부인 같은 기존 세력을 견제하기도 했다. 진평왕은 재위 6년 째 되던 해에 수렴청정에서 벗어나면서 건복(建福)으로 연호를 바꾸었다. 할아버지 진흥왕이 그랬던 것처럼 신라만의 독자적인 역사 만들기에 나섰다. 13년에는 남산성을 쌓고, 이어서 명활성을 고쳐 쌓아 왕경의 주변 방어태세를 굳건하게 했다. 주변국과의 전쟁은 끊이지 않았다. 특히 백제와의 싸움은 갈수록 치열해지면서 그치질 않았다. 신라가 팽창해 가는 만큼, 주변의 대항 또한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고구려 등의 침공에 대응해 수나라에 이어 당나라까지 교류를 이어갔다. 원광법사와 담육 등을 중국에 보내 공부하게 하는 등 불교 진흥에도 크게 노력했다. 진평왕은 황룡사를 크게 중창했다. 동서 금당을 추가로 지어 1탑-3금당의 가람구조로 변화했다. 내부의 반란까지 일어났다. 재위 53년 칠숙과 석품의 반란이 대표적이다. 다행히 초기에 발각돼 칠숙을 잡아 처형시켰는데, 석품은 백제 국경으로 도망쳤지만, 끝내 붙잡아 처형했다. 진평왕은 사촌 동생 용춘을 사위로 삼았다. 이는 만약에 있을지 모르는 모반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목적으로 해석된다. 진평왕의 집념은 이루어졌다. 딸인 덕만으로 왕위를 이었다. 선덕여왕이다. ◆흔적△진평왕릉; 경주 진평왕릉은 경주시 보문동 608번지 남촌마을 앞 보문들과 연접해 고즈넉한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사적 제180호로 지정된 왕릉이다. 4만3천645㎡ 부지에 소나무, 느티나무, 버드나무 등의 고목과 초목이 계절별로 꽃을 피우며 평화로운 풍경을 연출해 힐링의 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왕릉의 동쪽에 명활성의 흔적, 남쪽 보문사터에는 보물로 지정된 당간지주와 석조 등의 역사유적들이 있다.서쪽에는 낭산이 나지막하게 솟아 신문왕릉, 선덕여왕릉과 황복사 삼층석탑 등의 유적들이 즐비하다. 북쪽으로 보면, 신라 천 년 왕궁터 월성과 황룡사지, 분황사, 첨성대 동부사적지 등의 역사를 생생하게 증언하는 문화유적들이 끝도 없이 펼쳐진다. 진평왕릉 꼭대기에라도 서면, 천 년의 화려한 역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마치 과거사가 살아 있는 현실로 부활해 눈앞을 지나간다. “역사를 되돌아보고 싶다면, 진평왕릉으로 오라고 선전하고 싶다”는 경주남산연구소 김구석 소장의 신명나는 문화해설이 너무 사실적으로 들린다. △남산신성과 남산신성비: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서 공통적으로 신라시대에 남산신성을 쌓았다는 기록을 하고 있다. 남산신성은 진평왕 13년 591년에 축조했다. 전체 둘레 5천137m 포곡식 산성이다. 산성터에서 동, 서, 남, 북, 동남, 서남문 등 6개소의 문지가 발견됐다. 동문지는 옥룡암으로 이어지는 통로상에 있지만, 대부분 파괴되어 구조를 파악하기 어렵다. 남문지는 해목령에서 전망대로 가는 순환도로와 연결되는 성벽에 위치하고 있다. 문의 폭이 5m 이고, 부근에 신라시대 기와조각이 발견되고 있어 문루가 시설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산성 내부에는 22개소의 망대가 확인된다. 망대는 동쪽과 남쪽에 18개소가 집중되어 있고, 일정한 간격으로 설치되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삼국사기에는 문무왕 19년에 남산신성의 성벽을 증개축했다는 기록이 있고, 길이 100m에 이르는 긴 창고를 비롯, 3개의 대규모 창고터가 발견되면서 지금도 검게 탄 쌀이 보인다. 남산신성터에서 비편이 발견되면서 남산신성은 진평왕 13년 신해년 591년에 쌓았다는 것을 정확하게 파악됐다. 10개의 비편이 발견되었는데, 발견된 순서대로 이름이 붙은 8비와 9비는 남산신성 안에서 발견됐다. 또 1비와 2, 3, 9비는 거의 원상태로 발견돼 산성 축조연대는 물론, 산성을 쌓는데 동원된 인원과 책임자의 직명과 출신지명, 관등명이 순서대로 기록되어 있다. 남산신성비가 발견된 자리와 규모 등을 비추어 20개에서 200개 정도가 설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신성비는 신라 중고기의 지방통치체제와 역역동원 등에 관련한 문제, 촌락구조 문제 등을 파악하는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가진다. ◆다시 쓰는 삼국유사: 진평왕진흥왕의 큰 아들 동륜이 보명궁의 담을 넘다 큰 개에게 물려 죽었다. 보명궁주는 진흥왕의 후궁이다. 태자 동륜의 죽음은 아버지의 여자를 사랑한 불륜의 끝이었다. 아버지를 잃었을 때 진평왕의 나이 겨우 다섯 살이었다. 아버지의 죽음은 진평왕에게 두 가지 큰 짐을 지웠다. 불명예스럽게 죽은 아비의 자식이라는 짐, 사고가 없었던들 순조롭게 이어졌을 왕위가 한 순간 물 건너 간 것처럼 바뀌었다는 것이다. 진평은 이 두 가지 역경을 헤치고 자신의 자리를 찾아간 왕이었다. 그것은 신라의 국운을 바로 돌린 일이기도 했다. 동륜의 죽음으로 왕이 된 그의 아우 진지왕은 행실이 밝지 못했다. 진평에게 삼촌이 되는 진지왕은 자리에 오른 지 4년 만에 폐위되고, 20대 후반의 아직 젊은 나이로 세상을 마쳤다. 진지왕에게도 당시 아들이 있었다. 용춘 또는 용수라 불렸다. 이 아들은 나중에 진평왕의 딸 천명공주와 결혼하여 김춘추를 낳았다. 그러나 왕위는 이 아들에게 이어지지 않고 진평왕에게 돌아왔다. 삼촌의 집안에 왕위를 빼앗기는가 싶더니, 사촌을 물리치고 무난히 왕위에 올랐다. 진흥왕 이후 박차를 가하는 신라의 발전 분위기로 보아 신라 귀족층, 노리부 등의 실세들은 보다 정치적이지 못한 진지왕을 그대로 둘 수 없었다. 음탕하다는 이유로 왕의 자리에서 끌어 내리고, 진흥왕과 여러모로 닮은 진평을 왕위에 올렸던 것이다. 진흥왕 말기에 진지왕을 지지하는 거칠부 세력과 진흥왕의 뜻과 같이하는 진평왕을 지지하는 세력으로 나뉘게 되었다. 당시 병권과 내정의 실세였던 거칠부가 진지왕을 추대해 진지왕이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거칠부가 사망하면서 진지왕을 지지하는 세력이 급격하게 약화되고, 진평왕을 지지하는 세력 노리부와 김후직, 진평왕의 동생 등이 진지왕을 폐위시키고 진평왕을 왕위에 올렸다. 노리부는 가야 출신으로 진흥왕이 전쟁으로 정복한 땅의 인재들을 중용하는 정책에 힘입어 진흥왕을 따르는 핵심인물로 성장했다. 노리부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후덕함과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해 김후직과 함께 진평왕을 옹립하고 초기에 상대등에 올라 정사를 주도했다. 귀족 중심의 신라 중기 정치는 진평왕이 54년간 장기집권을 하면서 꾸준히 제도를 정비하고 왕권을 강화해, 후반기로 접어들어 절대적인 왕권정치 체제의 기반을 마련했다.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구미 경구고, 도내 80번째 ‘천사학교’ 선정

구미 경구고등학교가 도내 80번째 적십자 ‘천사학교’가 됐다. 경구고는 최근 학교 도서관에서 대한적십자사 경북지사와 ‘희망나눔 천사학교’ 협약을 맺고 매달 적십자 정기후원에 참여하기로 했다. 적십자 ‘천사학교’는 학생들이 매달 조금씩 용돈을 모아 취약계층 학생들을 정기적으로 후원하는 나눔 프로그램이다. 대한적십자사 경북지사는 20명 이상의 학생들이 적십자 정기후원에 참여하는 학교와 ‘천사학교’ 협약을 맺고 있다. 경구고에선 23명의 적십자 정기후원을 참여했다. 학생들이 모은 기부금은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과 저소득 가정 아동 등을 돕기 위해 사용된다. 이종하 대한적십자사 경북지사 사무처장은 “경구고 학생들의 작은 정성을 모아 위기가정에 많은 희망을 전달하겠다”며 “앞으로도 나눔의 행복을 잊지 않는 인재로 성장하길 바란다”고 말했다.류성욱 기자 1968plus@idaegu.com

불우이웃돕기 무료공연 20년, 천사노래예술단

매월 첫째 주 일요일 오후 4시. 대구 동성로 대구백화점 앞 야외무대에서는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울려 퍼진다.불우이웃돕기 자선 공연을 펼치고 있는 천사노래예술단(단장 이태환) 단원들이 그 주인공이다.단원들은 통기타와 하모니카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른다. 공연은 통기타와 발라드, 팝송, 요들송, 트로트, 가곡 등 다양한 장르를 선보인다.노랫소리가 울려 퍼지자 길 가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공연을 감상한다. 귀에 익숙한 곡들이라 함께 따라부르기도 하고, 손뼉을 치며 호응을 하기도 한다. 단원들의 불우이웃돕기 자선공연 활동에 화답이라도 하듯 시민들은 무대 양쪽에 마련해 놓은 작은 모금함에 정성을 표한다.천사노래예술단의 공연은 20년째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3일엔 거리 모금공연 100회를 기록했다.황무지(54·경산시) 공동대표는 “예술단이 구성되기 전, 김진덕 공동대표와 같이한 거리공연까지 더하면 200회가 된다”고 밝혔다.천사노래예술단은 2009년 3월 ‘소키우는 농부가수 황무지’씨가 중심이 돼 뜻을 같이하는 회원들로 구성된 자선단체다.회원들은 농부를 비롯해 전문음악인, 간호사, 회사원, 자영업, 배달원 등 다양한 직업인이다. 뜻을 함께하는 이들이 예술단원으로 합류하면서 식구가 현재 20여 명으로 늘어났다.공연수익금은 전액 복지관과 청소년사랑방, 무료급식소 등 소외된 이웃에 물품(라면)으로 전달한다.황무지 공동대표는 “더 좋은 물품들을 드리고 싶지만, 모금액이 많지 않은 데다 여러 곳에 전달하다 보니 늘 아쉬움이 남는다”면서 “앞으로 더 열심히 활동해서 더 많은 이웃에게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홍섭 기자 hslee@idaegu.com

전국자원봉사연맹, 천사해외봉사단 9기 단원 모집

전국자원봉사연맹이 오는 31일까지 말레이시아에 희망을 전할 ‘천사해외봉사단 9기’ 단원 30명을 모집한다.9기는 다음달 발대식을 가진 뒤 오는 7월16~20일 말레이시아에서 빈민촌 현지 환경 정화 활동 및 위생 교육 봉사, 무료급식, 문화교류 봉사 활동을 펼친다.모집 대상은 해외 출국에 결격 사유가 없는 대학생(재·휴학생) 또는 재능기부가 가능한 일반인이다.지원 희망자는 전국자원봉사연맹 공식 홈페이지에서 신청서를 내려받아 이메일(1004ngo@naver.com)로 접수하면 된다. 문의: 080-527-1004. 이동현 기자 leedh@idaegu.com

[미주통신] 두 천사의 비상

성민희 / 재미 수필가 조카가 결혼을 한다. 30여 년 전, 임신 소식이 없어 초조해하던 올케가 어느 날 조금씩 불러오던 배를 가리키며 신기해하던 때가 눈에 선한데. 그 아기가 어느새 자라서 결혼을 한다. 훤칠한 키에 선한 눈빛의 청년이 우리의 기대치보다 훨씬 더 예쁘고 슬기로운 아가씨에게 오늘 웨딩드레스를 입혔다. 실감이 나지 않는다며 벙글대며 아들의 결혼 소식을 발표하던 동생도 오늘은 시아버지답게 근엄한 얼굴로 식장 앞에 섰다. 은은한 푸른빛 저고리의 신랑 어머니와 분홍빛 저고리의 신부 어머니가 나란히 걸어 들어와 촛대에 불을 밝히고, 이어 주례 목사님이 신랑과 들러리를 이끌고 들어온다. 오르간 소리가 웅장해지자 모두 일어선다. 아버지의 팔짱을 낀 신부가 발그레한 얼굴로 한 발 한 발 새 세상을 향하여 발을 내딛는다. 양팔에 걸려있던 딸의 무게를 이제는 누군가에게 옮겨주어야 하는 아버지. 아장아장 첫걸음을 떼던 아가. 팔랑팔랑 치마를 나부끼며 뛰어와 안기던 아가. 이제 나비처럼 포로롱 내 담장을 넘어 누군가에게로 날아가는구나. 부디 잘 살거라. 행복하거라. 아버지는 딸의 손을 건네받은 사위 어깨를 감싸 안는다. 온몸으로 다독인다. 안경 너머로 얼핏 물기가 보이는 것 같다.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둘이 한 몸이 되었은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주례사가 끝나고 반지 교환이 있고 부부로서의 언약이 끝나자 둘은 팔짱을 낀 채 활짝 웃으며 첫발을 내딛는다. 사랑의 끈으로 꽁꽁 서로를 묶은 두 사람. 이제 온전히 하나로 합쳐져서 비상하는 순간이다.언젠가 본 그림이 생각난다. 서로 껴안고 높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천사 그림이다. LA 한인 타운에서 10번 프리웨이를 타기 위해 놀만디 길로 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큰 교회 건물이 보인다. 상가처럼 밋밋한 디자인의 8층 높이 건물 전체에 벽화가 그려져 있다. 두 천사가 긴 옷을 펄럭이며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날아가는 그림이다. 자세히 보면 한 천사는 왼쪽에, 한 천사는 오른쪽에 날개가 하나씩만 달렸다. 날개가 없는 쪽 팔은 서로 껴안아 한 몸을 만들고 다른 쪽의 날개를 각각 펼쳐서 날아가는 중이다. ‘우리는 한 쪽 날개만 가진 천사입니다. 서로를 껴안을 때에만 비로소 하늘 높이 비상할 수 있지요. (We are each of us angeles with only one wing, and we can only fly embracing one another.)’ 이탈리아 작가이자 영화감독인 루치아노 드 크레센조 (Luciano De Crescenzo)의 글귀가 그림 위에 한 줄로 쓰여 있다. 무심코 스쳐 지나기만 했던 길이었는데 그 그림을 보게 된 후부터 나는 일부러 빨간 신호등에 걸리고 싶어 한다. 고개를 들어 두 천사를 올려다보면 마음이 따뜻해지기 때문이다.우리의 몸은 오른쪽 왼쪽의 균형이 너무나 완벽한 대칭의 구조물이다. 두 팔과 다리가 같은 무게로 몸에 붙어있기에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걷고 뛰고 앉을 수 있는 것이다. 팔 하나 혹은 다리 한쪽만 없어도 몸의 무게 중심을 잡기가 쉽지 않을 텐데 몸 크기만 한 날개 한 쪽이 없는 천사가 어찌 자기 몸의 균형을 잡을 수 있을까. 더구나 날아간다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그런데 이 그림은 함께 날아간다. 마치 한 몸인 듯 옷을 펄럭이며 가는 모습이 너무나 편안하다. 서로는 서로에게 얼마나 양보가 있을까. 배려가 있을까. 신뢰가 있을까. 그들은 하나, 둘, 한목소리로 구령을 하며 그에 맞추어 날개를 펼 것이고 서로 멀어질세라 힘껏 상대를 껴안을 것이다. 가는 방향도 함께 바라보며 속도도 맞추어 갈 것이다. 그들이 서로 주고받을 마음이 나를 감동시킨다.새로운 가정이 또 탄생했다. 두 개의 반쪽이 모여서 온전한 하나가 되었다. 두 천사의 비상이 눈부시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축복으로 그들을 축복해주고 싶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성경 말씀으로 조카의 새 가정에 울타리를 친다. 인디언이 결혼식에서 읊어주는 축시도 보낸다. 이제 두 사람은 비를 맞지 않으리라. 서로가 서로에게 지붕이 되어 줄 테니까. 이제 두 사람은 춥지 않으리라. 서로가 서로에게 따뜻함이 될 테니까. 이제 두 사람은 더 이상 외롭지 않으리라. 서로가 서로에게 동행이 될 테니까. 이제 두 사람은 두 개의 몸이지만 두 사람의 앞에는 오직 하나의 인생만이 있으리라. 이제 그대들의 집으로 들어가라. 함께 있는 날들 속으로 들어가라. 이 대지 위에서 그대들은 오랫동안 행복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