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사람은 지우개를 쓰지 않는다

프랑스 사람은 지우개를 쓰지 않는다이와모토 마나 지음/올댓북스/240쪽/1만4천 원이 책에는 알면 알수록 새로운 프랑스 사람들과 그들의 가치관이 담겨 있다.일본에서 태어나 의과대학을 졸업한 저자는 프랑스에서 수십 년 간 자녀를 키우며 활동해왔다. 이방인이기에 프랑스 사회와 문화 전반에 대해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고, 프랑스 사랑들의 교육, 가정생활과 육아, 애정관, 경제와 사회, 여성의 지휘 등 장단점을 모국 사회와 비교, 비판하는 눈도 갖게 됐다.이 책이 프랑스 탐구서이면서 사회비평서인 이유다. 동양적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힘든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나, 그들이 유럽의 강국일 뿐 아니라 문화선진국으로서 여전히 자리매김하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있다.이 책은 총 5장으로 구성돼 있다. 1장은 프랑스의 교육제도와 교육철학을, 2장에서는 경계와 역할이 분명한 학교와 가정의 모습을, 3장에서는 연애과 결혼관, 남녀고용기회평등을, 4장에서는 프랑스를 지탱하는 어른 문화와 센슈얼리티를, 5장에서는 여성의 출산과 양육 등을 다루고 있다. 성공적인 출산 정책과 육아와 교육, 교육제도 등도 꽤 상세히 다루고 있다.김혜성 기자 hyesung@idaegu.com

세상읽기…친일 청산 실패의 업보인가

친일 청산 실패의 업보인가홍덕률대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1970년 12월7일,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가 폴란드를 방문했다. 양국 관계의 정상화를 위해서였다. 하지만 폴란드인들은 서독 총리를 향해 적개심을 감추지 않았다. 나치 독일의 만행을 잊을 수 없어서였다. 2차 세계대전도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시작됐다. 악명높은 아우슈비츠 집단수용소도 폴란드 있었다.총리는 바르샤바의 한 위령탑을 찾았다. 주인공은 1943년 4월의 게토 영웅들이었다. 맨몸으로 나치에 맞섰다가 체포된 5만 6천여 명의 유대인들었다. 그 가운데 7천여 명이 수용소 가스실로 끌려가 죽었다. 브란트 총리는 위령탑 앞에 헌화했다.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마침 겨울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그 때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장면이 펼쳐졌다. 총리가 털썩 무릎을 꿇은 것이다. 사진은 전 세계로 전송됐다. 서독 총리의 진심어린 참회와 사죄에 세계가 환호했다. 폴란드 국민들도 서독 총리에 대한 반감을 거두기 시작했다. 치란키에비치 폴란드 수상은 브란트 수상에게 이렇게 말했다. “용서한다. 그러나 잊지 않겠다.”2015년 5월의 일이었다. 종전 7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유럽 전역에서 있었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가 최초의 강제 집단수용소를 찾았다. “생각과 신념 등이 나치와 다르다는 이유로 수많은 이들이 수용소에 갇히고 고문받고 죽임을 당했다.” “우리는 희생자들을 위해, 우리 자신과 미래 세대를 위해 이를 기억할 것이다”고 다짐했다.보여주기 이벤트가 아니었다. 독일은 자신들의 과오를 정직하게 후손들에게 가르쳤다. 전범 재판에 시효를 없앤 것은 물론이었다. 2018년 11월에도 나치수용소 경비병이었던 이를 기소했다. 95세의 남성이었다.다음은 프랑스로 눈을 돌려본다. 프랑스는 독일에 패하고 1940년 6월 휴전협정을 체결했다. 북부지방은 독일군이 점령했고 남부지방에는 비시정부가 들어섰다. 1차 세계대전의 영웅 필리프 페탱이 비시정부의 원수로 앉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독일에 적극 협력했다.전쟁이 끝나고 프랑스는 광범위한 청산을 추진했다. 비시정부의 고위인사를 비롯해 조국을 배반한 부역자들을 재판에 넘겼다. 특히 언론인과 작가, 지식인에 대해서는 더 엄하게 책임을 물었다. 100만여 명이 재판에 회부됐고 9만여 명이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 중 6천700여 명이 사형선고를 받았고 782명이 사형됐다. 페텡 원수에게도 사형이 선고됐다. 종신형으로 감형받았지만 1951년 7월23일 감옥에서 사망했다. 그러고 보니 꼭 68년 전 오늘이었다.드골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종기와 고름을 그대로 두고 새로운 프랑스를 건설할 수 없다.” 프랑스는 1998년에도 90세 노인을 체포해 구속했다. 2011년에는 인구 100명 정도 되는 시골마을에 페텡거리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 거리 이름을 바꿨다.일본은 독일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진정한 사과와 참회는 없었다. 후손들에게도 거짓 역사를 가르쳤다. 총리까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 세계의 비난을 사기도 했다. 고위 인사들까지 과거 역사를 부인하는 말을 서슴치 않았다.한국도 프랑스와는 천지차이였다. 반민특위도 중도에 해체됐다. 각계의 고위 인사들이 반대하고 협박까지 했다. 일제 때 친일·매국 인사들이 해방된 대한민국의 군, 경찰, 정치권, 언론계, 교육계 등으로 진출했다. 4성 장군, 대학총장, 언론사 사주들 가운데도 많았다. 심지어 대법관, 국무총리도 되고 대통령도 했다. 후손들도 승승장구했다. 친일 경력을 합리화하기 위해 일본은 한국의 은인이었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가난을 대물림하고 있는 것과는 너무 대조적이다.최근 일본이 또다시 경제침략을 감행했다. 무례와 모순으로 가득한 도발이었다. 심지어 문재인대통령 탄핵과 친일정권으로의 교체까지 대놓고 얘기한다. 한반도 평화 기류를 불편해 하는 속내도 감지된다.정작 문제는 우리 안이다. 이 와중에도 당리를 계산하며 힘빼는 정치인들을 본다. 일본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것이 원인이라며 대한민국 대법원과 정부를 비난하는 언론도 있다. 그것은 보수가 아니다. 친일일 뿐이다. 해방 후, 친일과 반역을 청산하지 못한 업보 치고는 너무 참담하다.이 주제만큼은 정쟁의 대상일 수 없다. 외환 앞에 하나되고 기업의 대일의존도를 줄이며 진실을 세계에 알리는 등, 할 일이 많다. 엄중한 국면이다.

권순진의 맛있게 읽는 시…오늘을 사랑하라

오늘을 사랑하라/ 토마스 칼라일어제는 이미 과거 속에 묻혀 있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날이라네/ 우리가 살고 있는 날은 바로 오늘/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날은 오늘/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날은 오늘뿐/ 오늘을 사랑하라/ 오늘에 정성을 쏟아라/ 오늘 만나는 사람을 따뜻하게 대하라/ 오늘은 영원 속의 오늘/ 오늘처럼 중요한 날도 없다/ 오늘처럼 소중한 시간도 없다/ 오늘을 사랑하라/ 어제의 미련을 버려라/ 오지도 않은 내일을 걱정하지 말라/ 우리의 삶은 오늘의 연속이다/ (하략)- 『Past and Present』(1843) ..................................................... 19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역사가이며 비평가이자 걸출한 지성인 칼 라일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하고 그에게 큰 명성을 안겨준 대표적 저서가 이다. 프랑스 혁명사는 칼라일이 1833년부터 1837년까지 4년 넘게 걸려 쓴 대작으로 알려졌는데 집필과정에 대한 유명한 일화가 전해진다. 칼 라일은 두문불출 오로지 집필에만 매달려 쓴 수천 장의 원고를 친구 존 스튜어드 밀에게 한번 읽어봐 달라며 주었다. 얼마 뒤 밀은 파랗게 질린 얼굴로 달려왔다. 하녀가 실수로 그 원고를 몽땅 태워버렸다는 것이다. 오늘 이 일화가 떠오른 것은 나도 최근 작업하던 한글파일들이 모두 깨져버린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칼 라일에게는 2년여의 노력이 그만 수포로 돌아간 순간이었다. 한동안 그 충격으로 무력증에 빠진 그가 다시금 마음을 다잡은 것은 어느 공사장 앞을 지나다가 우연히 한 노동자가 벽돌을 한 장씩 쌓는 것을 본 이후다. ‘오늘 한 페이지를 쓰자. 그리고 ‘날마다 한 페이지씩을 다시 쓰자’ 그렇게 해서 다시 2년의 세월을 통해 완성시킨 역작이 프랑스 혁명사이다. 그는 이 저서에서 프랑스 왕정의 실패를 낱낱이 밝혔고 또 혁명의 정당성을 확보했다. 칼 라일은 에서 혁명을 지배계급의 악한 정치에 대한 천벌이라며 지지하면서 영웅적 지도자의 필요성을 제창했다. 그는 지배계급의 가장 큰 잘못은 그들이 아무 잘못도 인식하지 못하는 데 있다고 진단했다. 한편 섹스피어를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는 말도 그의 ‘영웅숭배론’에 언급되었을 만큼 뛰어난 인물에 대한 열망이 대단했다. 그리고 인생은 ‘두 개의 영원 사이에서 번쩍 빛나는 한순간의 섬광’이라는 말도 남겼다. ‘인간은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고 살아간다. 인생은 잠시 왔다가 잠시 후에 사라지는 안개와 같다’라고 했다. 삶이란 ‘녹고 있는 얼음판’이고, 우리는 그걸 타고 지금도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다. 아래를 내려 보지 않아도 그것은 자꾸만 작아지고 있으며 언젠가는 가라앉을 것이다. 칼라일은 ‘우리는 시간을 느끼지만 누구도 그 실체를 본 사람은 없다. 시간은 우리가 딴 짓을 하는 동안 순식간에 저만치 도망쳐 버린다.’고 일찍이 시간을 각성케 했다. 어제의 미련을 버리고, 오지도 않은 내일을 걱정하지 말라면서 ‘오늘’을 사랑하라고 한다. 아무리 애써도 바꿀 수 없는 어제에 갇혀 허덕이거나 허황된 내일의 꿈만을 쫒는 사람에게 오늘을 살라며 권고하고 있지만 벅찬 선물로서의 오늘을 선뜻 받아들지 못할 때가 있다. 내일은 아직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이 아니다. 그러니 ‘오늘을 사랑’함은 지금에 감사하며 오늘의 삶에서 행복을 찾지 않으면 안 될 명백한 당위인 것이다. 결국 우리가 소유하고 사용할 수 있는 날은 오늘뿐이지 않은가. 늘 뒤뚱거리는 내게도 오늘을 다시 선물한다.

경운대학교, 프랑스 하이브리아 대학교와 교류 강화

경운대학교가 프랑스 하이브리아 대학과 교류를 강화한다. 지난 20일 프랑스 하이브리아 대학 방문단이 경운대를 찾아 항공특성화 인프라 등을 둘러봤다. 오는 2학기 재학생들의 항공특성화 분야 중장기 연수파견을 앞두고 경운대학교를 찾은 프랑스 하이브리아대학교 관계자들이 경운대학교의 항공교육 인프라를 둘러보고 있다. 이번 방문은 하이브리아대 학생들의 경운대 중장기 연수과정 파견을 앞두고 실사 목적으로 진행됐다. 하이브리아대는 오는 2학기에 학생 10여 명을 경운대에 파견해 3개월 간 항공분야 특성화 교육을 받는다. 경운대는 지난 3월 하이브리아대와 2019학년도 2학기 중장기 연수과정 학생 파견을 위한 학술교류 협약을 체결하고 세부 업무를 추진해왔다. 프랑스 하이브리아대 연수생들은 항공분야 특성화 교육은 물론, 한국문화와 한국어, 글로벌 기업가정신 등의 교육을 받게 되며 산업체 방문과 현장학습도 체험하게 된다. 프랑스 리용에 위치한 하이브리아대는 공학과 경영 특성화 대학으로 주요 전공분야는 항공우주, 자동차운송, 의학, IT에너지 등이며 리용 상공회의소에 의해 운영되는 프랑스 대표 산학협력대학이다. 문추연 경운대 대학혁신원장은 “프랑스 하이브리아 대학과의 교류를 통해 우리대학교의 항공산업 인력 육성 역량을 글로벌로 펼칠 수 있는 초석을 다지게 됐다”며 “양 대학이 손잡고 항공산업 분야 인재 배출을 위해 적극적으로 교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신승남 기자 intel887@idaegu.com

‘함께 사는 기적’의 지은이 프랑스 떼제 공동체 수도자, 신한열 수사

프랑스 떼제 공동체 수도자인 신한열 수사가 천주교대구대교구 성(聖)김대건성당에서 특강을 진행하고 있다.천주교대구대교구 성(聖)김대건성당에서 독서콘서트가 지난달 25일 열렸다. 이 자리에는 ‘함께 사는 기적’의 지은이로 프랑스 떼제 공동체의 수도자인 신한열 수사가 강연자로 나섰다.떼제는 1940년 스위스 개신교 집안 출신의 로제 수사가 시작한 초교파적 그리스도교 수행 공동체다. 개신교, 가톨릭, 정교회, 성공히 등 구분 없이 세계 30개국에서 온 80여명의 남성 수도자가 함께 산다.신 수사는 프랑스 떼제 공동체의 유일한 한국인이다. 그는 대구 촌놈이 프랑스에 가서 32년째 살고 있다는 말로 강연을 시작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떼제에 젊은 청년들이 모이는 이유와 떼제에서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최근 종교계에서는 떼제 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높다. 종교계에 젊은 청년들의 발길이 점점 줄어들면서 위기감이 고조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떼제 공동체에는 어린아이부터 장성한 청년까지 매년 수만 명의 사람들이 모인다.그는 “청년들이 떼제에 와서 고향같다는 이야기를 많이한다. 특별한 건물이 있는 것도 아니고 프로그램도 매력적이지 않다. 소박하게 기도하고 분위기가 자유롭고 편안하다”고 설명했다.그가 떼제에 발을 디딘 것은 1988년이었다. 대학(서강대)을 졸업하고 2년간 직장생활을 한 뒤였다. 고교시절 우연한 기회에 봤던 떼제에 관한 슬라이드 필름 속의 이미지를 마음 속에 담고 있었던 그는 대학에서 한국에 파견된 떼제 수사를 처음 만났다. 영문과 교수로 학생을 가르치던 안토니 수사(한국명 안선재)였다. 안토니 수사는 고은 시인의 작품을 영어권에 번역한 것으로도 유명하다.처음에 3개월간 머물 요량이었지만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며 종신서약을 했고 어느새 30년을 넘어섰다.떼제 생활의 핵심은 ‘단순 소박함’이다. 떼제에는 포크, 젓가락, 테이블도 없다. 단순 소박함이 생활조건이라고.그는 “기도도 마찬가지다. 현대인들의 생활이 너무 복잡하다. 전례복을 입고 서 있으면 청년들이 와서 말을 한다. 말만 통하면 이야기를 하고들어준다. 불필요한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 역시 단순 소박함이다”고 했다. 이어 “떼제 비결이 뭐냐고 물어보시는 분이 많다”며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신자들이 길을 찾는 사람이 되고 기도하는 사람이 되야 한다. 그런 마음들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경청’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을 찾기 어려워 한다는 것이다. 어떤 판단을 하지 않고 들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그는 “우리 공동체는 집에 돌아온 아들들을 끌어안아 준다. 각박한 세상에서 우리 그리스도인이 보여주지 않으면 누가 보여주나. 모든 공동체가 그런 삶을 살았으면 한다”고 고 강조했다.그는 마지막으로 “우리의 눈길이 손길이 발길이 어디에 있는지 누굴 바라보는 지 누구에게 손을 내미는 지가 우리 삶을 결정한다”며 “나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 적어도 한 사람에게는 빛이 되어줄 수 있다”고 했다.김혜성 기자 hyesung@idaegu.com

한일전 한국 승, 아르헨·프랑스 탈락… 8강 상대팀은?

사진=연합뉴스 오늘(5일) 폴란드 루블린의 루블린 경기장에서 열린 2019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 16강전에서 한국 대표팀이 일본을 1-0으로 이겼다.한일전에서 우승한 한국은 8강에 진출하며 일본은 패배해 8강 진출에 실패했다.이날 경기에서 '숙적' 일본을 맞아 오세훈(아산)은 헤딩 결승골로 승리를 이뤄냈으며, 다양한 대륙의 선수들과 상대하며 체격에서 밀리지 않는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전했다.이로써 한국은 9일 비엘스코-비아와 경기자에서 열리는 8강에서 역대전적 1무의 세네갈과 맞붙게 된다.세네갈을 이긴다면 4강에서 만날 수 있는 상대 가운데 난적으로 꼽히는 프랑스와 우루과이가 16강에서 탈락하면서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한 대진을 받아들었다.한편 콜롬비아-우크라이나전 승자는 이탈리아-말리전 승자와 준결승에서, 한국-세네갈전 승자는 미국-에콰도르 승자와 준결승에서 각각 맞붙는다.online@idaegu.com

균형위, ‘한국·일본·프랑스 균형발전 라운드테이블’ 개최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위원장 송재호)가 G20(주요20개국) 일본 개최에 맞춰 ‘한국·일본·프랑스 균형발전정책 라운드테이블’을 지난 28일 일본 도쿄에서 개최했다.3개국이 균형발전을 위한 목표를 가지고 본격적인 협력에 나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균형위는 문재인 정부 3년차를 맞아 균형발전 선진국인 일본과 프랑스의 우수 정책사례를 벤치마킹하는 것은 물론 G20의 관심인 사회적 불평등과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공동의 목표와 ‘불균형-불평등’의 과제에 대한 정책적 고민을 국제적 차원에서 추진했다.이날 라운드 테이블의 주요 의제로 ‘3국의 균형발전·지방창생·국토결속 정책’, ‘수도권 집중, 지방 고령화 및 인구감소 등 지역 간 불균형 이슈를 공유’, ‘3국의 지역 간 불균형 문제해결 방안 및 정책’ 등의 논의가 진행됐다.특히 이번 라운드 테이블은 프랑스 모르방 국토평등위원회 위원장의 5월 방한을 계기로 추진되어 한국 국가균형발전 정책, 프랑스 국토결속정책, 일본 지방창생정책의 책임자들이 정책교류 및 협력 활성화를 위한 실질적 협력과 향후 균형위 정책 반영에 있어 매우 긍정적 역할을 할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균형위 관계자는 “이번 3개국의 라운드 테이블을 기회로 구축된 국내외 협력체계를 바탕으로 문재인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인 ‘고르게 발전하는 지역’의 국정과제를 차질없이 수행할 수 있도록 국제 정책협력 방안을 모색하는 기회로 삼고 향후 베트남을 시작으로 신남방국가들과의 정책교류도 적극 추진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이상훈 기자 hksa707@idaegu.com

집에서 하는 몬테소리 놀이 150

집에서 하는 몬테소리 놀이 150실비데스클레브, 노에미 데스클레브 지음/유아이북스/280쪽/1만5천 원얼마 전 영국 조지 왕자가 일반인들이 다니는 동네 유치원에 입학해 다녔다는 뉴스가 나왔다. 특권층의 이색적인 모습이 부각되었지만, 특별한 요소는 더 있다. 그 유치원이 몬테소리 교육을 근간으로 한 시설이라는 것이다. 이밖에 몬테소리 교육을 받은 유명 인사들은 한둘이 아니다. 구글의 창업자들은 물론 아마존 CEO도 어렸을 적 몬테소리 계열 학교를 다녔다. 그들은 몬테소리 교육을 통해 자율성과 창의적인 생각을 바탕으로 한 유년 시절을 보낼 수 있었고, 창조적인 21세기 인재가 되었다.이 책은 프랑스에서 몬테소리 학교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는 저자들의 교육 경험과 몬테소리 교육 철학을 반영해 놀이법을 제시했다. 아이의 자신감과 집중력, 사회성을 키워줄 수 있는 150가지 놀이를 담고 있으며, 각 연령별로 아이의 발달 과정에 맞게 실행해 볼 수 있다. 이 책은 자녀에게 창의력과 바른 인성을 길러주고 싶은 부모가 아이와 함께 교감하면서 놀이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책에 등장하는 모든 놀이는 실제 프랑스 몬테소리 학교에서 실행되고 있으며, 연령별 발달과정에 맞춰 놀이를 해볼 수 있다. 김혜성 기자 hyesung@idaegu.com

상주 한방단지 지천옻칠아트센터 프랑스 파리 모나리자 갤러리 그룹전 참여

상주한방산업단지 내에 위치한 지천옻칠아트센터는 ‘봄-빛’을 주제로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모나리자 갤러리 그룹전’에 참여한다. 사진은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캘러리 그룹전 포스터. 상주한방산업단지 내에 위치한 지천 옻칠아트센터(대표 김은경)는 오는 20일까지 ‘봄-빛’을 주제로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모나리자 갤러리 그룹전’에 참여한다. 모나리자 갤러리는 파리 중심부에 있으며 1957년에 개관한 유서 깊은 화랑이며 옻칠 특유의 깊은 빛과 따뜻한 색감을 담은 김은경 대표의 작품에 매료돼 작품을 소개하게 됐다.이번 전시회에는 김은경 대표의 옻칠화 6점, 지태옻칠기 6점이 소개된다. 김은경 대표는 “프랑스는 유럽 대륙에서 일찍부터 옻칠 문화를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국가라며 옻칠 본연의 색과 질감을 중시한 한국의 옻칠 예술을 소개할 수 있게 되어 매우 기쁘다”고 했다.한편 지천옻칠아트센터는 2천3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한국의 옻 문화예술을 소개, 발전시키고자 국내 최초의 옻칠조형학 박사인 김은경 대표가 설립한 문화공간으로 2017년 7월 7일 개관했다. 김일기 기자 kimik@idaegu.com

한국 천주교, 노트르담파리 화재로 프랑스에 위로 메시지

한국 천주교가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발생한 대형화재와 관련 프랑스에 위로의 메시지를 보냈다.한국 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인 김희중 대주교는 16일 프랑스 파리대교구장 미셸 크리스티앙 알랭 오프티 대주교에 보내는 메시지에서 “노트르담 주교좌 성당에서 발생한 화재 소식에 한국의 가톨릭 신자들도 깊은 슬픔을 느끼고 있다. 한국의 모든 주교님들을 대신해 프랑스 국민들과 가톨릭 신자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고 했다.또 김 대주교는 “프랑스 가톨릭교회 심장이자 인류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노트르담 성당이 온전히 재건될 수 있기를 바라며 이러한 슬픔의 때에 형제적 친교와 연대를 약속한다”고 덧붙였다. 김혜성 기자 hyesung@idaegu.com

전국 지자체 국제관계관 대구서 정보교류한다

2019 지자체 국제관계관 연찬회가 14~15일 대구 인터불고호텔에서 열리고 있다.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가 마련한 이번 연찬회는 지자체 국제교류업무 담당관을 위한 업무 연찬 및 정보교류의 장이다.이번 연찬회에는 시도·시군구 교류담당자, 프랑스 지자체 대표단, 외교부, 한·아프리카재단, 한국국제교류재단 등 국제교류 유관기관 관계자, 협의회 6개 해외사무소(일본, 중국, 호주, 미국, 프랑스, 영국) 관계자 등 230여 명이 참석했다.15일에는 한·불 지자체 교류회의, 국제교류 특강(성공적인 지방외교 전략과 과제), 문화투어 프로그램 등이 진행된다.한-불 지자체 교류회의는 쥬느비에브 쎄브랑(Genevieve SEVRIN) 프랑스 자매도시연합 사무총장이 프랑스 지자체 국제교류 현황 및 최근 동향을 발표한다. 제롬 떼발디(Jerome TEBALDI) 뚜르시 부시장이 한국과 교류에 관심이 있는 프랑스 자치단체 모임인 그룹뻬이꼬레(Groupe pays Coree)의 회장으로서 활동계획과 뚜르시를 소개한다. 서울 구로구는 이씨레물리노와의 자매교류 연혁을 발표한다.국제교류 특강은 홍종경 동북아지역자치단체연합(NEAR) 사무총장이 성공적인 지방외교 전략과 과제를 주제로 발표한다. 그는 지방외교의 사례와 의의, NEAR의 설립배경과 북방경제협력, 국제교류업무 발전을 위한 담당자의 자세에 대해 이야기한다.이날 오후에는 대구시가 제공하는 문화투어로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를 방문해 생활안전체험과 위기대응체험을 실시한다.박원순 시도지사협의회장은 14일 개회사에서 “연찬회가 10년 째를 맞는 올해는 ‘한-불 지자체 교류회의’를 연계함으로써 ‘글로벌 소통의 장’으로 발전했다”며 “이번 연찬회가 국내 교류 관계자들이 협의회 해외사무소 뿐만 아니라 프랑스 지자체 교류대표단과도 소통하면서 교류 내용을 공유하고 바람직한 교류추진 전략을 공동으로 모색하는 귀중한 자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이주형 기자 leejh@idaegu.com

배움에 대한 갈증…플루트 하나 들고 맨땅에 헤딩

지난 5일 대구콘서트하우스에서 열린 귀국독주회 모습.‘타고난 음악가.’플루티스트 김영주(30)씨를 보면 드는 생각이다.경북예고 실기 1등, 계명대학교 음악공연예술대학교 관현악과 장학생, 프랑스 시립음악원 조기졸업, 생모 국립음악원 전문 연주자 과정(DEM complet)·최고연주자 과정 졸업, MBC 교향악단 플루트 수석주자 등 그의 이력만 보면 타고난 음악가 기질이 보였다. 하지만 이런 성과 뒤에는 그의 성실함과 노력이 있었다.◆우연히 시작하게 된 플루트그가 플루트를 시작한 건 어린시절 부모님의 권유였다. 악기를 하나쯤 다룰 수 있으면 좋지 않겠느냐는 부모님의 뜻에 따라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처음 플루트를 배웠다.부모님은 딸이 음악가의 길을 가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처음 재능을 보인 건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처음으로 나간 콩쿠르에서 1위를 한 것이다.그는 “나가는 대회마다 잇따라 수상을 하니깐 이게 내 길인가 했었다. 하지만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플루트를 그만뒀다”고 했다.하지만 운명이었을까. 그의 재능을 일찍이 눈치 챈 플루트 선생님이 다시 플루트를 하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를 해왔다.그는 “중학교 때 공부를 하면서도 계속 플루트를 다시 하면 안 되느냐고 졸랐었다. 하지만 마음처럼 쉽게 시작할 수 없었다. 선생님의 권유로 엄마가 다시 플루트를 배워보라고 하셨다. 그게 플루트를 다시 시작한 계기였다”고 말했다.그렇게 음악가의 길을 걷게 됐다. 경북예고 입한 후에는 학교에서 실기 1등을 놓치지 않았다. 대구예술영재원 플루트 수석단원으로 합격했고 대구시립교향악단 청소년 협주곡의 밤에도 대학생들을 이기고 플루티스트 중 유일하게 협연자로 선정됐다. 계명대학교 음악콩쿠르에서 1등을 하고 계명대학교 특기 장학생으로 입학했다.◆8년 유학, 시련 후 한 단계 더 성장프랑스 생모 국립음악원에서 필립 레즈구르 선생님과 듀오 연주 모습.말그대로 탄탄대로였다. 최고의 성적으로 대학교를 마쳤고 유학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을 때 마스터클래스 수업을 통해 프랑스 생모리스 시립음악원 교장선생님을 만났다. 그가 로익 풀랑 선생님이었다. 당시 그의 권유로 시험을 쳤고 대학교 졸업 전에 입학이 결정돼 프랑스 유학길에 오르게 됐다.입학 후 불과 4개월 만에 생모리스 시립음악원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최고 점수를 획득, 조기 졸업했다. 하지만 부족했다. 배움에 대한 갈증은 더욱 커졌다. 프랑스에 있는 국립음악원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교수에 대한 정보와 레슨, 입학을 위한 일정을 일일이 알아봤다.그는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렇게까지 무모했을까 싶다. 정말 맨땅의 헤딩이었다”며 “당시 프랑스대학교는 홈페이지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국립음악원을 일일이 찾아다녔다”고 했다.거절의 연속이었다. 개인정보 보호의 이유로 교수의 연락처를 알기는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었다. 교수 수업이 있는 날 문 앞에서 기다렸다. 두 달 동안 계속됐다.지난해 5월15일 프랑스 아뜰리에 뉘메릭 홀에서 열린 독주회 모습.그렇게 입학한 곳이 생모 국립음악원이었다. 전문연주자과정 입학 첫해 학년 말 시험에서 전체 학년 1등을 했다.그렇게 순탄할 것만 같았던 그의 유학생활에도 위기가 있었다. 전문연주자과정 졸업 시험 일주일을 앞두고 플루트가 고장이 난 것이다. 급하게 악기를 고치러 갔지만 악기상에서는 졸업 연주 전에 고쳐줄 수 없다고 했다. 결국 고장난 악기로 졸업 시험에 임했고 결국 유급이 됐다.첫 좌절이었다. 그는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어요. 플루트가 인생 전부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내 길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더라”며 “악기도 고쳐야 하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 한국에 왔다”고 했다.첫 좌절 이후 그의 인생도 달라졌다. 스스로를 시험하기 위해 각종 콩쿠르 대회에 출전했다. 레오폴드 벨랑 국제콩쿠르에서 3위, 르 빠르나스 콩쿠르 1위, 에피날 콩쿠르에서 1위없는 2위 등 출전하는 대회마다 잇따라 수상했다.또 본인이 겪었던 유학시절 어려움을 후배들이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멘토를 자처하기도 했다.그는 “앞만 보고 달려가느라 주위를 둘러볼 여력이 없었는데 유급으로 시간이 나면서 주변을 둘러보게 됐다”며 “후배들을 도와주면서 저 또한 한단계 더 성장했던 거 같다”고 했다.생모 국립음악원 전문 연주자 과정과 최고연주자 과정을 마친 후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음악에 대한 깊이 있고 체계적인 전문성을 쌓기 위해 베르사유 국립대학교에 진학해 음악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역시 쉽지 않은 길이었다. 실기가 주를 이뤘던 국립음악원과 달리 국립대학교는 언어에 대한 깊이 없이는 따라가기 어려웠기 때문이다.그는 “2년이라는 시간 역시 저를 시험하는 시간이었다”고 했다. 그의 석사학위 논문 ‘19세기 프랑스에서의 뵘 플루트의 영향’은 우수 논문에 선정되기도 했다.유학 생활만 약 8년. 그는 한국에서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다고 했다.그는 “이제 막 귀국독주회를 했고 너무 오랫동안 외국에서 공부하고 왔기 때문에 앞으로 저의 연주를 많은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다”며 “목관 5중주 팀을 만들 계획도 하고 있고, 후학 양성에 대한 욕심도 있다”고 했다. 이어 “열심히 공부하고 왔으니 저의 재능을 많은 사람들과 나눴으면 좋겠다. 좋은 자리에서 제 음악을 많이 들려 드리고 싶다”고 덧붙였다.김혜성 기자 hyesung@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