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주 주택서 화재…70대 할머니 숨져

25일 오후 5시39분께 경북 영주시 안정면의 한 주택에서 불이 나 28분 만에 진화됐다.이 불로 집 주인 A(75·여)씨가 숨지고, 함께 있던 남편 B(86)씨가 연기를 마셔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다.소방당국은 피해 규모 등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 중이다.구아영 기자 ayoungoo@idaegu.com

달성군 여성단체협의회, 사랑의 이웃돕기성금 전달  

대구 달성군 여성단체협의회(회장 이호연)는 지난 17일 연말을 맞아 관내 저소득 2가구를 선정해 이웃돕기성금 100만 원을 전달했다.이호연 여성단체협의회장을 비롯해 회원 17명은 최근 가족과 단절되어 뇌경색으로 몸이 불편한 독거노인가구에 생활비를 전달하고 또 할머니와 정신장애 어머니, 손녀 등 3대가 거주하는 기초수급가구에 수시합격한 손녀의 학비 지원으로 각각 50만 원씩 전달했다.이호연 여성단체협의회장은 “한파에 힘든 겨울을 보낼 어려운 이웃들에게 따뜻한 힘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한편 달성군 여성단체협의회는 연말 어려운 이웃돕기 이외에도 관내 노인, 관내 장애인 시설인 미소마을, 대구시립희망원 등에 매월 정기적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김재호 기자 kjh35711@idaegu.com

길어지는 결혼생활, 늘어나는 황혼이혼

길어지는 결혼생활, 늘어나는 황혼이혼윤정대변호사과도한 단맛에는 쓴 맛이 존재한다. 단맛이 입안에서 사라질 때 쓴 맛이 남듯이 인생도 단맛과 쓴맛의 아이러니-모순으로 가득 차있다. 그 중의 하나가 이혼이다. 아담과 이브의 행복한 결혼의 결말이 이혼이라니! 누구나 결혼을 할 때는 이혼을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통계에 따르면 2018년 혼인건수는 25만7천 쌍인 반면 같은 해 이혼건수는 10만8천 쌍이다. 그해 결혼해서 그해 이혼하는 것은 아니므로 단순비교 하는 것은 무리지만 56만4천명이 결혼하고 21만6천명이 이혼하였으므로 결혼하는 3쌍 중 한 쌍이 이혼에 이른다고 보더라도 틀린 것은 아니다. 이혼은 결혼 초반에도 많이 하지만 20년 이상 혼인생활을 한 부부의 이혼율이 가장 높다. 오래 함께 산다고 해서 서로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쌓인 것이 아니라 부부가 함께 살아오면서 문 정부의 구호인 적폐처럼 불만이 오래 동안 누적돼 이혼에 이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제 이혼법정에서 황혼이혼 부부들을 보는 것은 흔한 일이다. 며칠 전 이혼법정에서 본 풍경이다. 젊은 여자 판사 앞에서 70대 부부가 서로를 비난하고 있었다. 원고석에 있는 할머니는 화장을 해서인지 모르겠지만 혈색이 좋고 통통하게 보였다. 반면에 피고석에 앉은 할아버지는 키는 크지만 구부정했다. 할머니의 이야기는 남편이 평생을 술을 마시고 바람을 피웠다는 것이고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아내의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고 자신은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어 가족들을 부양했다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뭔가 목소리가 기어 들어가고 수세에 몰려 있는 반면 할머니의 목소리는 더 크고 더 단호하고 확신과 자신감에 차 있었다. 법대 위의 판사는 여기는 싸우는 곳이 아니라 재판을 하는 곳이라고 말했지만 할머니의 할아버지에 대한 비난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대부분 변호사들은 이혼 사건을 맡아 가정법원에 드나든다. 이혼이 자주 벌어지는 일이고 협의이혼이 아니라 소송으로 이혼하는 경우가 전체 이혼 건수의 1/3 정도이기 때문이다. 흔히 사람들은 이혼사건을 많이 맡는 변호사라고 하면 부정적으로 본다. 멀쩡하게 잘 살고 있는 부부가 이혼하도록 부추기는 것으로 의심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혼을 원하는 의뢰인에게 이혼사유를 찾아주려는 변호사는 있지만 이혼하라고 권유하는 변호사는 없다. 이혼을 권유한다고 이혼하는 사람도 없다. 결혼 초반에 새로운 출발을 원하여 이혼을 원하거나 오랜 결혼에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이혼을 하는 것일 뿐이다. 이혼을 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협의이혼과 재판상 이혼이다. 협의이혼은 소송을 거치지 않고 부부가 합의하여 이혼하는 방법이다. 협의이혼을 하고자 하는 부부는 먼저 가정법원에 이혼의사확인신청을 하면 가정법원은 부부에게 미성년 자녀가 있는 경우는 3개월, 미성년 자녀가 없는 경우는 1개월의 숙려기간이 지난 후 이혼의사확인서를 발급해준다. 부부 중 한쪽이라도 이 이혼의사확인서를 첨부하여 관할 시, 구, 읍, 면사무소에 이혼신고를 하여야 법률적으로 이혼한 것이 된다. 그런데 가정법원으로부터 이혼의사확인서를 발급받더라도 이혼신고를 접수하기 전에 부부 중 한쪽이라도 시, 구, 읍, 면사무소에 미리 이혼의사를 철회하면 이혼의사확인서는 효력을 상실하여 원점으로 돌아간다. 재판상 이혼은 부부 중 한쪽 또는 쌍방이 이혼사유를 들어 소송을 제기하는 방법이다. 법원이 이혼청구를 인용하는 판결이나 이에 준하는 결정을 하면 판결이나 결정을 받은 때에 법률적으로 이혼한 것이 된다. 이혼신고는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하다. 도중에 이혼소송을 취하하거나 패소 당하지 않는 이상 원점으로 돌아가는 일은 없다. 이혼 재판을 마치고 범어동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선배 변호사와 같이 오게 됐다. 선배 변호사는 “원래 부부는 전생의 원수끼리 만난다는 말도 있다”면서 이야기를 덧붙였다. TV에서 노부부들이 나와 상대방이 설명을 듣고 단어를 맞추는 프로그램인데 아마 답이 백년해로였던 것 같았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당신과 나 사이”라고 설명하니 할머니가 “웬수”"라고 대답하여 당황한 진행자가 네 글자라고 알려 주었더니 할머니는 “평생웬수”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수명이 늘어나면서 결혼기간도 늘어나고 있다. 결혼기간이 늘어남에 따라 어쩌면 결혼생활이 지루한 일이 되고 불만이 더 많이 쌓여 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결혼생활이 길어질수록 배우자에 대해 더 관대하고 더 현명하게 대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한다.

달서구청, 수능 최고령 할머니 응원

이태훈 대구 달서구청장과 구청 직원 등이 12일 달서구 월성2동에 거주하는 2020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는 대구지역 최고령 응시자인 박선민 할머니(80)를 찾아 방문 격려했다.박 할머니는 지난해에도 대구의 최고령 응시자로 대학수학능력 시험을 봤다. 이후 수성대 사회복지과에 입학해 새내기 대학생활을 경험하고 있다.박 할머니가 올해 다시 수능에 응시한 이유에 대해 “다른 대학에 입학하는 것보다 과목당 50점씩 총점 200점을 획득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할머니의 응시과목은 영어와 국어, 과학, 한국사로 모두 4과목이다. 지난해 수능에도 과학(생물)과 한국사는 괜찮은 점수를 받았지만 국어에서 발목이 잡혔다. 그래서 올해 수능을 대비해 국어 특별 훈련을 했단다.이태훈 구청장은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배움의 길을 포기했던 어르신이 환갑이 넘어서 독학으로 초·중·고 검정고시를 통과하면서 어르신의 도전의식은 주변 이웃들에게 본보기가 되고 있다”며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학업에 손을 놓지 않은 어르신의 끈기와 열정에 경의를 표하며 생활에 불편함 없이 학업에 열중하실 수 있도록 항상 협조하겠다”고 말했다. 김현수 기자 khsoo@idaegu.com

현리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현리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권순진현리 황톳길 시간에 한 대씩 오는 버스를 기다렸다. 작은 평상이 놓인 주막에서 막걸리 한 사발을 시켰다. 몸빼바지에 허리 굽은 할멈 비녀 매무새 하나는 단정했다. 어느 도망자와 어느 추격자가, 때려치운 농사의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회로 내빼는 한 이농인이, 귀향하는 한 시무룩한 도시 파산자가 번갈아 입술의 침을 묻혔을 양은 잔에 가득 찰랑이는 막걸리. 술잔보다 더 큰 그릇에 수북이 담긴 정구지 김치가 안주 자격으로 나왔다// (중략)// 지나친 공기노출로 깊고 풍부한 맛이라 둘러대긴 힘들지만 고향의 흙내음 하나는 온전했다. 일회 일획의 정구지로 막걸리 잔을 다 비웠다. 멀리 버스의 기척이 들렸다. 서둘러 셈을 치르고 버스에 올라타자 부릉~ 불량한 가스를 내뿜으며 바퀴가 땅을 크게 핥았다. 황토 먼지가 내 앉았던 자리를 공평하게 도포했다. 버스의 뒤창을 통해본 할머니는 내가 쓴 젓가락으로 사발에 담긴 정구지 뭉텅이를 획 한판 크게 뒤집었다. 굽은 할머니의 등이 밉지 않았다............................................................. 80년 ‘서울의 봄’ 그해 가을이었으니 4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그때만 해도 난 현리가 강원도에 속해있는지 경기도 소재인지 몰랐다. 하여간 그 어디 기도원에 틀어박혀 몇 달째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친구 L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지금은 그 친구의 이름도 정확히 기억해내지 못한다. 학교 동창도 고향 친구도 직장 동료도 아니었다. 희뿌연 최루가스가 남대문의 내가 일하는 사무실까지 스멀스멀 흘러들었고 우당탕탕 쫒기고 있는 한 젊은이가 사무실로 느닷없이 난입해 들어왔던 것이다. 직원들이 그를 간신히 숨겨주었고 그날 젊은 직원 몇과 어울려 북창동에서 술을 마셨다. 그날 이후 사흘도리로 나를 찾아왔고 그때마다 술을 퍼마시고 떠들어댔다. 그는 나보다 두 살 아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주로 그의 말을 듣는 쪽이었고 간간히 고개를 끄덕였을 뿐 나는 당시 비겁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다만 당시 내가 다니던 직장에는 노조가 없었고 불허하였으므로 몇몇 직장 선배가 추진하는 노조 설립 운동에 미약한 힘을 보태고 있었다. 그때 L은 전태일 열사를 언급했고 나를 정신적으로 북돋우어주었다. 그러나 나의 습성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수입이 생기는 족족 소비하기에 바빴고 소비의 주요항목은 술이었으며 가끔 을지로나 종로의 조명이 볼그족족한 주점에도 드나들곤 했다. L과 함께 이차로 딱 한번 간 적이 있다. 조명 아래서 그의 표정이 나를 압도했다. 그러고서 몇 달 만나지 못했는데 현리의 한 기도원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그의 표정은 생각보다 밝았다. 그 기도원에 연줄이 있어서 좀 쉬고 싶어서 왔다고 했다. 그와의 만남은 그게 다였다. 그리고 이 ‘시’는 L과는 아무런 감정의 연결고리가 없으며 맥락도 없다. 이번 춘천여행에서 돌아오는 길 그를 잠시 떠올렸고 자연히 이 ‘시’가 생각났다. 찰찰 넘치는 막걸리 한잔이 내가 마신 어떤 술보다도 맛났다. 나는 나중에야 막걸리 한 잔과 정구지 한 올이 그토록 구수했던 이유를 알았다. 사람이든 사랑이든, 술이든 안주든 내게 가장 필요한 시기의 현안이었을 때, 그것에 집중함으로써 그 진가와 진면목이 발현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2019수필대전 ‘시할머니 노래’

장려상 이홍선 문패 밑에는 ‘유공자의 집’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시도 때도 없이 시할머니는 사립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먼산바라기를 하며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말리는 사람도 물어보는 사람도 없지만 늘 그렇게 앉아 있었다. 가늘게 들리는 그 소리는 염불 같기도, 때로는 구슬픈 노랫가락 같기도 했는데 가만히 들어보면 아들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칠곡호국평화기념관 중앙 홀의 큰 철모 조형물을 마주한다. 6월이면 전쟁의 상흔을 더듬는 이들이 줄을 잇는다. 총탄이 관통한 구멍이 숭숭 뚫려 있고 표면에는 치열했던 낙동강 전투의 격전지와 전쟁 지휘관의 이름이 적혀있다. 6·25전쟁 당시 최후의 방어선이었던 낙동강 전투에서 산화해간 용사들을 기리는 곳이다. 칠곡군청의 현직 때 내 업무와 연관된 일로 자주 찾곤 했는데 오늘은 문우들과 함께다.철모를 에워 돌며 55일간의 낙동강 전사를 읽는다. 낙동강 방어선, 55일, 시산혈하, 다부동 전투, 정일권 참모총장, 워커 중장, 유학산 전투, 왜관철교 폭파, 융단 폭격, 백선엽 준장, 자고산 전투, 워커 라인, 게이 소장, 인천상륙작전, 328고지 전투, 노무대, 볼링앨리, 수암산 전투, 맥아더 장군, 약목나루 전투의 20개의 이야기가 돋을새김으로 6월의 추모객들을 붙든다. 선생님을 따라나선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재잘거림이 무명용사를 흔들어 깨우는 초혼가처럼 울리고, 수많은 시할머니의 아픈 노랫가락이 환청처럼 따라붙는다.낙동강을 최후의 방어선으로 삼은 전투는 치열했다. 무수한 공방전 끝에 전세를 역전시키며 승기를 잡았고, 인천상륙작전으로 연결되어 풍전등화 같았던 나라의 운명을 되돌려 놓은 역사적 일이었다. 하지만 그 아픔은 오늘도 이어진다.시할머니의 21살 맏아들은 전쟁이 일어나자 군에 자원입대했다. 피난 갔다 돌아와 때늦은 모심기를 하는 들판으로 하얀 보자기에 싸인 조그만 상자를 들고 한 병사가 찾아왔다. 한 줌의 재로 돌아온 아들을 만난 시할머니는 혼절하고 말았다. 입대한 지 채 1개월도 되지 않아 포항전투에서 중상을 입고 23육군병원에서 치료받던 중 짧은 삶을 놓았다.19살이던 둘째도 피난길에 전쟁터로 붙들려 간 후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이따금 전쟁 때의 일을 녹음기처럼 들려주는 지금의 시아버지다. 길고 긴 그 이야기에는 늘 시할머니의 아픈 노랫가락 읊조림이 꼭지에 있었다.시아버지는 대구농림학교에서 7일간 군사훈련만 마치고 신령 갑령재에 배치되었다. 15일쯤 되었을 때 인민군의 공격 소식이 전해졌다. 산 위에서 보초 근무를 서는데 왜관 쪽에서 비행기가 하늘을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며 폭격 소리가 들리고 검은 연기가 솟아오르는 게 보였다고 한다. 낙동강 전투의 서막이었다.그 후 시아버지는 전쟁의 한가운데로 밀려들어 갔다. 인천상륙작전의 승전보가 전해오자 6사단 2,000여 명 장병의 한 사람으로 트럭을 타고 북진했다. 38선을 돌파하여 평양을 탈환하고 20일간 계속 파죽지세로 북진하여 10월 초순에 압록강변 초산에 도달했다. 강 건너 모래사장이 조용하고 평화스럽기까지 해 통일을 이루는 줄 알았지만 기쁨도 잠시였다.3일 만에 대규모 중공군의 기습공격으로 포위되었다. 총알이 쏟아지는, 겹겹이 싸인 포위망을 28일 만에 벗어났다. 살아남은 사람은 150명 중대원 중에 시아버지와 파편에 한쪽 팔이 떨어진, 남해가 고향인 병사 두 사람뿐이었다. 민간복으로 군번만 몸속에 숨긴 채 거지행세로 얻어먹으며 남쪽으로 내려왔다.전시관의 녹슨 무기와 전리품과 전쟁 기록영화가 아리다. 흑백 영상의 잔영 뒤로 시아버지의 얼굴이 겹쳐 흐르고, 문득 오늘 휴전선의 집총한 병사들이 떠오른다. 베트남 미북 회담 결렬 후에 혼미해진 남북 관계에 대한 의견이 좌우로 갈려 온통 시끄럽다. 정치는 밀려나고 거리에선 깃발과 삿대질로 상대를 몰아세기만 하는 풍경이 일상이 되었다. 이 강둑 언저리에서 사라진 무명용사의 의미는 무엇이며, 옆 문우들은 무엇을 말하려 하는 것인가.시아버지의 말을 또 찾아 쫓는다. 12월 초에 평양에서 다시 후퇴하다 인민군의 폭격으로 오른쪽 다리와 오른팔을 다쳤다. 걸을 수가 없으니 낙오병이 되었다. 피난민의 지게에 실려 대동강을 건넜고 서울 수도육군병원으로 옮겨졌다. 기차를 타고 오는 동안에도 수없는 군인들이 죽어 갔고 시체실 칸으로 던져졌다.절단해야 한다고 했던 다리는 대드는 시아버지의 발버둥으로 억지 수술 끝에 깁스하는 걸로 보전했다. 3개월 뒤 걸음도 못 걷는 상태로 복귀하여 부대를 전전했고, 제주도 자동차 학교에서 조교로 근무 중에 결혼했다. 그 전쟁의 와중에도 군수, 면장, 동장의 도장을 받아 시할아버지는 관보를 보내주었다. 둘째도 맏자식 같아질까 후손을 받아두려는 조바심이었고 내 남편이 세상에 나온 인연이었다. 결혼식 다음 날 바로 귀대하여 1955년 1월 제대할 때까지 3년 동안 집에 오지 못했다. 지금도 시아버지의 방에는 참전용사의 옷과 모자와 군번줄이 걸려있다. 마치 금방이라도 뛰어나갈 준비가 된 것처럼.기념관 전망대의 앞쪽으로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에 걸린 왜관철교가 바라보인다. 인민군의 진격을 저지하려 폭파하여 끊어버린 그 다리다. 오늘 전적지의 명소가 된 철교를 건너 오가는 사람들은 강물에 역사의 소리를 들으며 이곳 전시관으로 몰려든다. 6월 현충일을 앞둔 토요일, 망나니처럼 휘둘러대는 북의 도발에 나서지도 못하고, 되레 감싸려는 나랏일의 행방이 아연하다.제대하지 못한, 그때의 무명 병사가 남긴 군번 인식표가 불빛 아래 말없이 누웠다. 남북군사합의서는 정녕 평화의 길이 될 것인가. 자꾸 의뭉스럽다. 굴종과 족쇄의 길 끝에 다시 낙동강 언저리에 말 없는 군번줄을 묻을 날이 되면 어쩔까 싶어진다. 시할머니의 아픈 노래가 오늘 더 크게 울린다. 김혜성 기자 hyesung@idaegu.com

영어마을에 만학도 할머니들이 떳다

영진전문대가 칠곡에서 운영하는 대구경북영어마을에 60∼70대 할머니 3명이 입소해 눈길을 끌었다.주인공은 박순달(78), 배종임(77), 구익기(65) 할머니로 지리산 산골인 경남 산청군 금서초등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인 만학도들이다.금서초는 할머니 4명을 포함해 전교생이 20명에 불과한 소규모 학교다.할머니 3명을 포함한 2∼6학년 학생 12명이 여름방학을 마무리하면서 22일부터 1박2일 일정으로 영어마을의 ‘헬로우 영어 캠프’에 참가했다.할머니들은 어린 선후배들과 영어로 의사소통하면서 이틀 동안 비행기 탑승, 우체국과 식료품점 이용, 요리체험 등 영어마을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했다.서툰 영어 실력이지만 배움에 대한 열정만은 다른 학생들 못지않다는 것이 영어마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최고령 학생인 박순달 할머니는 “영어마을 입소 하루 전날 가슴이 너무 설레서 잠을 설쳤다”고 흥분했다.배종임 할머니는 “영어를 알아듣기는 어렵지만, 외국인을 만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기분이 좋다”고 했고 구익기 할머니도 “입소 전부터 이 나이에 영어를 배운다고 생각하니 기대가 컸다”고 소감을 밝혔다. 금서초는 경남교육청이 주관하는 초등학교 영어교육 내실화를 위한 영어캠프 운영 지원 사업에 선정돼 영어마을에 입소했다. 정미영 대구경북영어마을 교장은 “할머니들에게는 이번 영어 캠프가 평생 잊지 못할 아주 특별한 경험이 됐다”고 말했다. 이임철 기자 im72@idaegu.com

광복절 하루 앞둔 14일,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희생 잊지 말아야

“우리가 기억하는 한 진실은 사라지지 않습니다.”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열린 제7차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기념식에서 안이정선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대표는 일본의 진정한 반성과 사과를 요구했다.매년 8월14일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국내외에 알리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기 위해 제정된 국가기념일이다. 기념식은 ‘기억과 행동’이라는 주제로 대구 중구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에서 열렸다.이날 기념식에는 시민단체 관계자를 비롯한 70여 명의 시민 등이 참석해 위안부 피해자의 넋을 위로했다.‘기억과 행동을 위한 다짐의 글’ 낭독에 나선 청소년·대학생 동아리 ‘허스토리’는 28년간 불의에 맞서 싸워 온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의 용기와 노력을 기억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특히 시민들과 한 목소리로 △일본 정부의 전정 범죄 인정과 공식 사죄 및 법적 책임 이행 △한국 정부의 10억 엔 즉각 반환 △2015 한·일 합의 전면 무효화 및 피해자들의 요구 해결 등 다양한 위안부 문제 해결에 앞장서자고 강조했다.‘기념과 행동’이라는 슬로건이 붙은 기념 퍼포먼스와 퓨전국악밴드 ‘나릿’의 공연도 이어졌다. ‘나릿’은 ‘나를 잊으셨나요’를 열창하며 피해 할머니들의 슬픔을 공유했다.희움 역사관 2층에는 위안부 할머니를 재조명한 기획 전시 ‘우리가 기억하는 당신, 김순악’도 마련됐다. 전시는 1945년 해방 전·후 김순악 할머니의 삶과 그와 마음을 나누던 활동가들과의 기억을 담은 기록부 등으로 꾸며졌다. 2000년 11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된 김순악 할머니는 2010년 세상을 떠났다.이날 중구 오오극장에서는 김순악 할머니의 다큐멘터리 영화 상영회도 열렸다.안경욱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이사장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그 해결을 위한 실천이 필요하다”며 “매년 되풀이되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두고 마음이 횃불이 돼 가슴 속 분노와 먹먹함은 여전하다. 피해 할머니들의 아픔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한편 현재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가운데 생존자는 모두 20명이다. 대구에 2명, 경북 1명이 생존해 있다.이동현 기자 leedh@idaegu.com

폭염 속 밭일하던 80대 할머니(김천,고령) 2명 온열질환으로 숨져

낮 최고기온이 36℃에 달하는 살인적인 폭염이 기승하는 가운데 경북지역에서 노약자가 열사병 등으로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4일 경북도와 경찰 등에 따르면 폭염특보가 내려진 지난 3일 오후 5시께 고령군 우곡면 대곡리 밭에서 A(85·여)씨가 쓰러져 숨진 채 발견됐다.마을 주민은 A씨가 새벽에 밭일을 나간 후 연락이 되지 않자 찾아나섰고, 밭에 쓰러져 있던 A씨를 발견하고 119에 신고했다.소방당국은 병원에서 A씨가 열사병 의심 증상으로 숨진 것으로 진단했다고 설명했다.고령군의 이날 낮 최고 기온은 35.4℃를 기록했다.지난 2일 오후 7시45분께 김천의 한 대추밭에서도 밭일하던 B(86·여)씨가 쓰러진 채 발견됐다.사회복지사가 건강 확인차 B씨에게 전화했으나 받지 않자 가족에게 연락했고, 가족과 주민들이 마을 인근 밭에서 B씨를 발견해 119에 신고했다.119구급대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심정지 상태였다.경찰은 밭일하던 B씨가 폭염으로 숨진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김천의 당일 낮 최고 기온은 35.6℃로 폭염 특보가 내린 상태였다.한편 올 들어 경북지역에서 발생한 온열 질환자는 3일 오후 4시 기준 113명이고, 전국적으로는 751명에 이른다.안희용 기자 ahyon@idaegu.com김재호 기자 kjh35711@idaegu.com

농어촌공사 칠곡지사, 농촌 집 고쳐주기 행사

한국농어촌공사 칠곡지사(지사장 차운철)는 지난 8일 다솜둥지복지재단과 함께 독거노인인 왜관읍 김모(70)할머니의 노후된 주택 창문, 출입문, 도배, 장판 등을 교체하는 ‘농촌 집 고쳐주기’ 봉사활동을 펼쳤다.이임철 기자 im72@idaegu.com

눈부시게 아름다운 인생

기찻길 옆 모내기를 한 논에 하늘이 곱게 내려와 있다. 푸르름을 더해가는 여름 들판의 정경이 평화스럽게 다가온다. 신선한 바람이 부는 아침이라 기분이 상쾌하다. 한낮에는 대지가 또 이글거릴지라도 간간이 뿌리는 비가 있어 한결 살 만한 요즘이다. 일기예보를 보니 구름 사이로 빗방울 그림이 떠 있어 갑자기 소나기라도 내릴까 싶어 우산을 챙겨 넣는다. 언젠가는 저 우산이 활짝 펼쳐져 소임을 다하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기대하면서.며칠씩 이어질 심포지엄이라 호텔을 예약했다. 요즘엔 서울을 오르내리는 것이 아무리 편리해졌다고 해도 꼭두새벽에 나가서 늦은 밤에 내려오기를 반복하는 것은 힘에 부쳤다. 덜컥 병이라도 날까 봐 서울에 머무르며 연수를 받기로 했다. 그런데 갑자기 의외의 소식이 날아들었다. 멀리 타국에 있는 아들이 방학을 맞아 잠시 집에 오고 싶다는 것이 아닌가. 새벽 공항에 내리게 된다는 아이의 문자를 받고 세미나장에 앉아 있으려니 마음은 자꾸만 콩밭으로 내달린다. 산란한 마음을 겨우 다잡아 일정을 끝내자마자 역으로 달려갔다. 어떤 기차든 남아 있다면 타고 내려가서 아이 얼굴이라도 먼저 한번 살펴보고 다시 올라와야지 싶었다. 마침 막 출발하려는 기차가 2분을 남겨두고 있었다. 있는 힘을 다해 승강장으로 뛰어 내려가면서 손으로는 스마트폰으로 차표를 검색해 결재 버튼을 눌렀다. 간신히 기차에 발을 올렸다. 등줄기에 땀이 배어나고 다리가 휘청거린다. 하지만, 순간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파문이 가슴에 일었다. 엄마의 이런 마음을 설사 아이가 알아주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뻐근한 가슴 뿌듯함은 나의 기억에 내내 남아 있을 터이니.우리가 살아가는 것은 늘 순간이지 않던가. 보고 싶을 때 보고 만나고 싶을 때 만나고 또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그때그때 표현하면서 살아야 후회가 없지 않겠는가. 늘 기쁘고 즐겁게, 뒤돌아보면서 후회할 일은 될 수 있으면 만들지 말고, 만나는 상대에게 작은 감사라도 하면서 살아가야 하지 않으랴.최근 칠십 대 박 할머니가 화제다. 정말 믿을 수 없도록,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의 사회 관계망 팬들을 열광시키고 있다. 세상 사람을 두 부류로 나눈다면 이 할머니의 이야기를 알고 있는 사람과 그것을 모르는 사람으로 나누어야 한다는 이도 있으니 말이다.언젠가 읽은 아흔 살, 노마 할머니의 이야기가 겹쳐진다. 죽음을 마주한 순간 암 투병 대신 여행을 선택한 노마 할머니는 여행을 통해서 진정한 ‘미스 노마’로 거듭났듯이 박막례 할머니는 손녀의 도움으로 세계여행을 떠나면서 삶이 달라졌다. 노마 할머니는 인생에 밀려오는 불행에서도 행복을 만들어갈 수 있는 주체적인 의지, 소소한 일상을 즐겁게 만들어가는 지혜, 죽는 순간까지도 인생이 끝나지 않는다는 긍정적인 생각과 가치를 세계인에게 전하였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긍정적인 삶의 자세와 독립심을 견지하며 늘 침실로 갈 때 했던 의식처럼 춤과 노래로 평온히 눈을 감지 않았던가. 긍정적인 힘과 용기만 있다면 불행한 순간에도 자신의 의지대로 삶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지 않았던가.‘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라는 책 표지가 나의 눈길을 끈다. 나이 71세에 유튜브 크리에이터로 데뷔한 박막례 할머니 이야기였다.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고 ‘막례’라는 이름을 받은 박막례 할머니의 인생사와 유튜브를 시작한 이후 100만 명에 가까운 구독자를 모으고 유튜브와 구글 최고경영자(CEO)를 만난 이야기도 펼쳐져 있다. 책의 첫 장을 넘기는 순간부터 가슴 먹먹하여 울다가도 너무나 신나서 옆에 그들이 함께 있는 듯 손뼉 치며 웃기도 하다가 어느새 마지막 장에 이르게 되었다. 카메라 뒤에서 할머니의 매력을 있는 대로 발산하게 만든 재간둥이 손녀의 이야기는 양념이다.나날이 나이 먹고 한 해 한 해 주름살이 늘어가더라도 박 할머니처럼 신나게 살아간다면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석양을 만나게 되더라도 쓸쓸함 대신 만족감에 흐뭇한 표정을 지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낮의 길이가 가장 길었던 하지가 지났다. 한 해의 중반이 지나간다, 우리 삶도 나날이 익어간다. 우리네 인생살이, 최고의 마무리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무엇일까.‘Korean Grandma’ 박막례 할머니의 열렬한 팬이 되어 신나는 하루를 맞이하는 지금, 스스로 나이 들어가는 것을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기를, 주변에 있는 이들을 더욱 사랑하고 위해줄 수 있는 성숙한 인간이기를, 그리하여 한 번뿐인 인생의 하루를 거침없이 멋지고 신나게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대구 시내버스기사 곽재희씨, 폐지 실은 순수레 끄는 할머니 도와줘 SNS상에서 화제

“보행신호가 빨간불로 바뀐 뒤에도 미처 횡단보도를 건너지 못한 할머니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신호대기 중인 차량 운전자들의 도움으로 안전하게 건너편으로 모셔다 드려 다행입니다.”지난달 26일 오후 대구 북구 동천동에서 할머니 한 분이 보행신호가 빨간불인데도 불구, 폐지를 실은 손수레를 끌며 횡단보도를 힘겹게 건너는 모습을 본 한 시내버스 운전기사가 도움을 준 장면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훈훈한 화제가 됐다.해당 버스 운전기사는 우주교통 706번 3110호 곽재희(48)씨다.이날 곽 기사는 달서구 대곡 주공아파트 8단지에서 관음변전소 방향으로 시내버스를 운행하던 중 학남초 앞 신호등에서 좌회전하기 위해 정차해 있었다.이때 한 할머니가 미처 보행 신호를 확인하지 못한 채 폐지를 실은 손수레와 함께 횡단보도에 갇히고 말았다.곽 기사는 시내버스에 탑승 중인 승객들에게 양해를 구한 뒤 곧장 할머니에게 달려가 손수레를 함께 밀며 횡단보도를 건넜다.할머니를 안전하게 모신 뒤 버스에 오를 때 승객들이 손뼉을 치며 환영해 줘 머쓱했다고 전했다.곽 기사는 “이날 탑승한 승객은 학생 5명에 아주머니 2명 등 모두 7명이었다”며 “할머니를 모셔다드리고 버스에 오르자 한 학생은 ‘기사님이 너무 대단하다. 존경스럽다’고 격려를 해줬다”고 말했다.또 “버스 기사로서 승객의 이동권을 보장해야 하지만 승객들이 할머니를 돕도록 한마음으로 배려를 해줘 큰 힘이 됐다”고 덧붙였다.특히 이날은 곽 기사에게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하루였다.평소 행복 친절기사로 명성이 자자한 그지만 이날 어르신에게 선행을 베푼 지 1~2시간 후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전해 듣게 됐다.곽 기사는 “폐지를 실은 할머니를 도와준 장면을 SNS상에서 확인한 한 지인이 아무 걱정하지 말라며 ‘이렇게 좋은 일을 하고 다니니까 어머니께서 분명 좋은 곳으로 올라가셨을 거다’고 위로를 해줬다”고 말했다.이어 “승객들이 저를 기억해 주는 것만으로도 일이 편안하고 즐겁다”며 “어머니를 좋은 곳으로 보내드린 만큼 다음달 2일부터 706번 버스는 다시 달릴 것”이라고 했다.한편 곽재희씨는 지난해 대구 시민들이 직접 뽑는 친절한 시내버스 기사 1차 선정에서 베스트 드라이브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동현 기자 leedh@idaegu.com

위안부 할머니 돕는척하며 2억8000만 원 가로챈 70대男 ‘끔찍’

서울 용산경찰서와 서울서부지검에 따르면 김 모씨(76)는 2011년 중국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귀녀 할머니를 국내로 데려온 뒤 6년간 이 할머니에게 지원된 2억8000여만 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1996년부터 중국에 살고 있던 위안부 할머니들을 국내로 귀국시키는 일을 했던 김 씨는 이 할머니를 2011년 고국으로 데려온 뒤 김 씨의 집에서 지내게 했다.이후 이 할머니는 9개월 뒤 요양원으로 거처를 옮겼다.김씨는 2012년 6월 이 할머니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여성가족부에 등록시킨 후 6년간 할머니에게 지급되는 지원금을 가로챈 것으로 드러났다.이 할머니는 여성가족부로부터 특별지원금 4300만 원과 매월 140만 원 가량의 생활안정지원금을 받았으며 지방자치단체로부터도 지원금을 받았다.김씨는 이런 지원금과 일본 정부가 자금을 댄 화해치유재단의 지원금 1억도 가로챘다.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김씨는 수사가 시작된 이후 할머니의 아들에게 두 차례에 걸쳐 약 2000만 원을 송금했으며 이 금액은 서로 입을 맞춘 대가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전해졌다.online@idaegu.com

창원 마산서 18세男 74세 할머니 흉기로 찔러 살해… 충격

경남 창원에서 18살 남성이 같은 아파트에 사는 74살 할머니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오늘(24일) 마산중부경찰서와 창원시에 따르면 오전 9시 10분경 마산합포구 소재 한 아파트에서 흉기에 의한 사망사고가 발생했다고 전했다.경찰은 아파트 6층 복도에서 할머니 A(74)씨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으며 A씨는 인근 병원으로 후송했됐으나 여러 군데 찔려 과다출혈로 사망했다.현장에서 피의자로 붙잡힌 B(18)씨는 아파트 위층 거주 피해자를 6층 엘리베이트 옆에서 집에 있던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경찰은 B씨를 상대로 정확한 범행 경위 등을 수사하고 있다.마산중부경찰서 관계자는 "왜 그랬는지 아직 모르고 수사를 해봐야 한다"며 "정신 이상 여부도 알아봐야 한다"고 전했다.online@idaegu.com

경상북도의회 ‘위안부 피해 할머니 위한 성금 전달’

경북도의회는 22일 포항시 북구 죽장면에 거주하고 있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위해 성금을 전달했다. 이날 전달식에는 장경식 의장, 박영서 행정보건복지위원장, 임미애 행정보건복지위원회 부위원장이 참석했다.김형규 기자 kimmark@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