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은지심

측은지심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 해가 저물어간다. 언제나 따라붙는 수식어인 다사다난이라는 말이 의미 있게 다가든다. 신나고 들떠서 떠올랐던 해도 이제 얼마남지 않았다. 송년 모임으로 일행 여럿이 함께 바쁜 일과를 마치고 서울행 기차에 올랐다. 일행들이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몸은 노곤해도 가슴에는 무엇인가 그득한 표정이다.순조롭게 행사가 끝났기에 일행들에게 기념 촬영을 하자고 제안했다. 피곤 할 터인데도 사진을 남긴다는 제안에 저마다 한껏 자태를 뽐내며 역 표지판을 배경으로 배우처럼 늘어섰다. 돌아가며 사진을 찍기 위해 한사람씩 빠지게 되는 것에 아쉬움이 남았다. 일행 모두가 들어있는 사진이 있으면 더 역사적이지 않겠는가 하는 마음이 들어 지나는 행인에게 부탁하려고 시도해보았다. 그러나 몇몇은 의도를 간파한 듯 아예 눈길도 주지 않고 그냥 옆으로 비켜간다. 그만두어버릴까 싶은 마음이 드는 찰나, 착해 보이는 한 사람이 나와 눈이 딱 맞았다. 그의 앞에 바싹 다가서서 사진 한 장만 찍어 줄 수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순간 그의 얼굴에 측은한 표정이 이는듯하였다. 어쩌랴, 이왕 빼든 칼이니. 단호한 표정으로 찍어 달라고 하자 그가 얼른 이어폰을 빼서 호주머니에 넣는다. 그러더니 이런 표정, 저런 자세를 요구하며 사진을 자꾸만 찍어 댄다. 그러면서 점점 더 뒷걸음질 치면서 자기 가까이 더 다가오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닌가. 이왕 할 바에야 역작이라도 남기려는 듯 찬바람이 쌩쌩 부는 자정 가까운 역 광장에서 모델(?)들에게 자꾸만 다가오라고 요구하는 그를 보면서 왠지 수상쩍은 마음이 일었다. 자꾸 뒤로 물러나더니 드디어 앵글이 맞았는지 이제 그 자리에 한 번 서 보라고 한다. 손가방과 짐들은 우리의 등 뒤 저 멀리에 있고 휴대폰을 바라보고 눈을 맞추자니 곧 우리들의 소지품들이 없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자꾸만 드는 이상한 느낌에 사진에 집중하지 못하고 그가 얼른 셔터를 누르기만 빌었다. 그의 모습 뒤로 자정이 다 되어 가는 시각까지 군밤 화로를 두고 앉아서 손님을 기다리는 이의 실루엣이 비친다. 화려한 불빛아래 사진을 찍으려고 포즈를 취하고 서있는 사람, 찍으려고 뒷걸음질치며 포커스를 맞추는 사람, 덩그러니 남겨진 소지품들, 식기 전에 팔아야 오늘의 일을 마치고 따스한 아랫목이 있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지는 벙거지 쓴 연세드신 분. 크리스마스를 앞둔 세모의 역 광장의 군상들이 여러 가지 상념에 젖어들게 한다.사진을 다 찍고 휴대폰을 건네주는 그의 눈을 보니 아무런 사심이 없는 선함이 그대로 드러난다. 괜스레 짐 걱정을 해가면서 가슴 졸였던 순간이 부끄러워진다. 모두 믿고 살고 서로 돕고 살아야 하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내 마음을 다 드러내 보이지도 않고서 섣불리 부탁할 것을 미리 알아차리지 않는다고 차가운 사람으로 여기고, 잠깐 두는 짐조차 걱정할 정도로 세상을 의심에 찬 눈으로 본 것은 아닌가 싶어서다. 하지만 언젠가 지인이 역에서 어떤이가 길을 물어서 잠시 가르쳐 주느라고 이야기 하는 동안 옆에 둔 짐 가방이 온데 간데 없이 사라져버렸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는 혹시? 하는 마음이 일곤 했다.사람의 감정 가운데 가장 강한 것은 무엇일까. 사랑일까 미움일까 측은지심일까? 늘 몸이나 마음이 아픈 이를 대하며 치료자의 입장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측은지심이 가장 강한 감정이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다. 상대를 대할 때 불쌍한 마음이 든다면 어떤 경우에라도 이해하는 마음이 넓어지고 상대의 입장에서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 저 사람이 왜 저렇게 생각할까. 왜 그리 행동할 수 밖에 없을까. 나라도 그 상황에서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으랴 하는 그러한 마음이 들 수도 있지 않겠는가.갱년기에 접어든 후배가 어느 날 의논할 것이 있다고 찾아왔다. 남편이 왠지 모르게 하는 짓마다 미워서 못 견디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선배는 그렇지 않더냐? 묻는다. 나는 한참 그의 눈을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사랑하여 결혼하였고 아이 낳고 살면서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으니 이젠 나이 먹어서는 그런 감정보다는 서로에게 측은지심을 가지면 그것은 영원히 갈 것이니 상대를 불쌍히 여겨보라고 조언하였다.하느님도 측은지심으로 병자들을 돌보지 않았던가. 측은지심이 가득한 세모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아날로그로 살아가기

이동은리즈성형외과 원장얼마 전, 부주의로 스마트폰을 분실한 경험이 있다. 일을 마치고 귀가해서 차에서 내리는 순간, 호주머니가 허전해진 것을 깨달았다. 황급히 차 안을 뒤져 보았지만, 이미 차 안에서는 사라진 다음이었다. 황망한 마음으로 차를 되돌려 지나온 길과 장소를 샅샅이 뒤졌지만, 이미 온데간데 없었다.마침 휴일이라 속만 끓이다가 다음 날, 통신사를 찾아 위치추적도 해보고 혹시 휴대폰을 주운 사람과 통화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수도 없이 전화를 해 보았지만, 결국 찾을 수 없었다.며칠 동안 마음을 졸이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기다려보다가 결국 새로 구입할 수밖에 없었다.비싼 휴대폰을 잃어버린 것도 문제였지만, 정작 그 안에 담겨 있는 전화번호부, 사진, 메모 등 소중한 정보들을 어떻게 복구할 수 있을지 걱정이 태산 같았다. 다행히 과거에 사용하던 메모리칩을 보관하고 있던 것을 찾아 전화번호는 일부 복구할 수 있었지만, 결국 절반 정도는 다시 찾을 수 없게 되었다.다시 찾을 수 없는 것 중에 혹시 중요한 것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보관하고 있던 서류나 주소록을 찾아서 빠진 전화번호를 다시 채워 넣어야 했다.하지만 메시지나 SNS, 메모, 사진 같은 내용은 다시 찾을 수 없게 되었고, 휴대폰에 남겨져 있던 내 흔적마저도 없어진 것이 되었으니 안타깝고 허전한 마음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스마트폰이라는 도구가 이제 우리의 분신이 되다시피 한 것이라 없이 지내는 며칠 동안 생활이 한 세대 이전으로 되돌아간 것 같아서 어색해진 느낌이었다.단순히 무선 전화기로 여기고 지내던 소형 기계가 서서히 몸에 지니고 다니는 작은 컴퓨터가 된 지 몇 년의 시간이 지났다. 이제는 화면만 작다뿐이지 웬만한 컴퓨터보다 더 나은 기능을 가지게 된 지 오래다.여기에 고성능카메라가 달리고, 길을 찾는 네비게이션과 은행, 카드 등 프로그램들인 애플리케이션들이 여기에 함께 실리게 되면서 이제는 각자의 분신 같은 존재가 된 것이다.우리의 생활이 예전보다 편리해진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이 어떻게 변했는지는 한 번쯤은 생각해 볼 일이다. 출퇴근길에 혹은 길거리에서,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풍경을 외면하고 오로지 스마트폰의 화면에 집중하다가 다른 사람과 부딪치거나, 목적지를 지나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요즘 유행하는 스마트폰 좀비, ‘스몸비족’이다.가끔 이어폰을 끼고 통화하는 사람들을 보고, 마치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아 오해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것이 익숙해진 것을 보면 애교스럽기까지 하다.자동차를 운전하면서도 네비게이션에 의존하다 보니 편리한 점도 있지만, 정작 길에 대한 정보가 어두운 ‘길치’가 되어 가기도 한다.전화번호부에 익숙해지다 보니 정작 가족의 전화번호도 기억하지 못하는 웃지 못할 일도 생기곤 한다. 이렇게 우리에게 중요한 정보와 기능을 가진 수단들이 스마트폰에 통합이 된 것이다. 위치추적(GPS)기능까지 있어서 내가 언제 어디에 있었는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모두 저장되는 것이라 스마트폰이 주인이 한 일을 더 잘 알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스마트폰 없이는 자신의 일을 해결할 수 없는, 주인과 종이 서로 뒤바뀌는 현상이 생긴 것이다.그보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자신이 얻는 정보를 휴대폰에 게시되는 것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휴대폰을 통하지 않은 정보는 알 수 없게 되는 일이 생긴다는 뜻도 되는 것이다. 휴대폰에 설정한 자신의 검색 알고리즘에 따라 자신에게만 맞는 맞춤정보만 볼 수 있게 되면서 다양하고 균형 있는 정보를 볼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스마트폰의 역할이 크기 이전에 우리들은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스스로의 경험, 지인으로부터의 추천 등 오랫동안 믿을 만하다고 인정을 받아온 존재들 기억에 의존했었다. 그런 것에 대한 신뢰감이 바탕에 있었다는 뜻이다.병원을 찾는 환자들 역시 그렇다. 수술이나 진료를 받은 환자들로부터의 추천, 직접 병원을 찾아온 사람들과의 상담 등으로 비록 초면이기는 하지만 믿음을 가지고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단순히 의사와 환자 사이라기보다는 서로 염려해주고 기억해주는 동반자로서 함께 하는 관계였던 것이다.요즘은 스마트폰을 통한 SNS나 홈페이지에 게재된 정보에만 의지해서 검색되는 병원을 찾아 자신의 중요한 미래를 결정하는 경우가 흔하다. 하긴 요즘같이 정보가 넘쳐나는 사회에서는 이런 일들이 당연하다고 여길 수 있다.그러나 휴대폰에서 가르쳐 주는 정보들만 검색한 결과에 의존하여 자신의 신체에 손을 대는 결정을 하는 것이 과연 안전한 일인지,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스마트폰에 종속되어 손바닥 크기의 창으로만 세상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진정한 소통과 신뢰를 통해, 보다 폭 넓은 자신의 삶을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디지털 시대에도 자신을 잃지 않고 보다 인간적인 아날로그의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이 될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