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장수 패션 행사 중 하나인 ‘대구컬렉션’이 지난 13일 성황리에 마무리됐다.올해 34회째를 맞은 이번 행사에는 국내외 유명 디자이너들이 참여했다. 지역 디자이너 브랜드 6개사와 서울·경기 디자이너, 중국 대련과 일본 오사카 대표 디자이너 등이 2024시즌 패션 트렌드를 선보였다.행사에서 가장 눈길을 끈 건 대구지역 대표 디자이너인 최복호 디자이너의 패션쇼였다. 올해 데뷔 50주년을 맞은 최복호 디자이너는 이번 컬렉션에서 ‘50년의 여정, 그리고 다시 시작’이라는 콘셉트로 패션쇼를 진행했다.대구컬렉션은 1989년 최복호 디자이너가 기획해 개최한 대한민국 최초 패션위크다. 이에 그는 시대적 사명감으로 대구 패션 산업의 남다른 ‘성장사’를 써 내려간 인물로 꼽힌다.최복호 디자이너를 만나 그의 성공 철학과 패션 브랜드의 지속 가능성 등에 대해 들어봤다.다음은 일문일답.△최복호 디자이너의 ‘HISTORY’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듣고 싶다.-올해로 데뷔 50주년을 맞이했다. 1973년 조선호텔에서 발표했던 ’의처증 환자의 작품D’라는 작품을 통해 패션 디자이너로 데뷔했다. 이후 1980~2002년 패션아카데미 코리아 회장, 1989~1992년 대구패션협회 초대 회장, 2002~2003년 한국패션협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또 2003년 황금골무상, 2011년 섬유의 날 국무총리 표창, 2014년 제7회 코리아패션대상 대통령상 등을 수상했다. △최복호 디자이너의 패션 기조와 모티브는 무엇인지 궁금하다.-디자이너 데뷔 당시에는 ‘컬렉션’, ‘패션위크’라는 개념이 없었다. 이에 디자이너의 패션 철학을 지역사회에 투영하고자 노력했던 것 같다.첫 패션쇼인 ‘의처증 환자의 작품D’는 군종병의 자살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1997년에는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환경오염을 고발하는 ‘패션쇼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희생자를 기리는 ‘지워진 자를 위한 난장’이라는 제목의 진혼제 퍼포먼스가 무척이나 기억에 남는다. 이밖에 2007년 차이나 패션위크에서 발표했던 ‘대선주자 퍼포먼스’ 등도 사회적 메시지를 ‘패션’이라는 형식을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패션쇼다.해외 시장 개척에도 힘썼다. 1980년도 독일 뒤셀도르프 전시회를 시작으로 40여 년간 100여 회가 넘는 해외 컬렉션과 전시회에 참가했다. △이번 대구컬렉션의 콘셉트는 ‘50년의 여정, 그리고 다시 시작’이었다. 이에 대해 설명해준다면?-50주년 컬렉션을 준비하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마치 절벽 끝에서 낭떠러지를 바라보며 서 있는 ‘사람’ 같았다. 잘해야겠다는 압박감이 너무 컸다. ‘사람들이 나를 어떤 디자이너로 기억할까’에 집중했다. 사회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패션 디자이너로서 모든 역량을 보여줘야겠다는 결론이 섰다.패션쇼 주제는 ‘지속 가능성’과 ‘K패션의 미래’였다.‘지속 가능성’이라는 주제를 통해 폐PET병 소재를 한복에 접목한 의상을 선보였다. 친환경 소재가 갖는 부자연스러운 디테일을 없애는 데 집중하며 작업했다.‘K패션의 미래’에서 선보인 의상은 유명 셀럽과 협업해 만들었다. K팝 아이돌의 감성을 구현하고자 노력했다. △올해로 데뷔 50주년을 맞이했는데 감회가 새로울 것 같다. 현재 ‘패션’에만 집중하며 회사 경영은 자식들이 도맡고 있는데 향후 계획에 대해 들어보고 싶다.-디자이너는 창작을 하는 사람이다. 과거 1980~90년대에는 디자이너가 기업 경영과 대외 활동을 하면서 디자인까지 몰두했다. 현 시대는 아티스트와 매니지먼트가 분업화됐다. 디자이너가 창작에만 집중하는 매뉴얼이 시스템화된 것이다.1980년 실크로 만든 의상을 들고 독일 뒤셀도르프 전시회로 향했다. 세계 패션계를 주름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쳤다. 하지만 처절한 실패를 맛봤다. 비즈니스 성공은 좋은 제품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배우는 계기가 됐다.이에 해외 영업 활성화에 힘을 쏟았다. 자연스레 경제학을 전공한 2세가 회사 경영에 참여했다. 자식들의 도움으로 중동, 유럽, 중국, 미국, 호주 등 7개국에 회사 제품 의상을 수출할 수 있었다. 중동의 경우 화려한 프린트를 선호해 수출 실적이 가장 좋았고, 미국의 경우 데님을 중심으로 한 의상을 새롭게 디자인했다. 중국에서는 제품 단가가 맞지 않아, 디자인 자체를 수출하는 데 주력했다.‘내가 만든 옷이 이만큼 아름다우니, 바이어 당신들이 찾아와서 사가시길 바란다’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늘 바이어가 원하는 것들을 고민하면서 이를 맞추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패션에 관심 있는 지역민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패션 브랜드를 50년 동안 유지했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 단순히 디자인력과 자금력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50년 간 패션 마켓은 변화해 왔다. 맞춤복에서 기성복으로, 홈쇼핑에서 온라인 플랫폼 등으로 변화한 것이다. 디자인을 중심으로 경영 시스템을 고도화해 조화와 균형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늘 ‘최복호’라는 브랜드가 ‘한 팀’이라는 공감대를 갖고 함께 했기 때문에, 긴 시간을 생존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대구지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로서 최선을 다하겠다.이동현 기자 leedh@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