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우리 사회에서 학맥, 인맥, 지맥, 혈맥, 금맥은 아직도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산업화 과정 초기에는 대부분 사람들이 비슷한 환경과 상황에 처해 있었다. 대개의 경우 각자도생과 각개약진으로 절대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압축 성장 시기에는 열심히 공부해서 어느 정도의 학벌만 갖추면 쉽게 계층이동을 할 수 있었다. 고도성장과 함께 여러 변수가 다양하게 얽히면서 학벌만으로는 쉽게 계층이동을 하기가 어려워졌다. 학맥에 인맥, 지맥 같은 한두 가지 다른 요소가 더 보태져야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었다. 지금은 혈맥과 금맥까지 보태야 보다 안전하고 확실하게 부와 명예, 권력을 획득할 수 있다.문단은 그 어느 분야보다 맥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곳이다. 장르에 관계없이 유력 매체를 가지고 있는 문단 권력은 무소불위의 영향력을 행사한다. 순수와 참여, 진보와 보수 어느 쪽이든 문단 권력은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작품이 좋아도 줄이 없으면 빛을 보기가 어려운 곳이 문단이다. 최근 시 독자의 감소는 인터넷과 스마트 폰 같은 시청각 위주의 즐길 거리가 폭발적으로 팽창한 환경 때문만은 아니다. 독자를 향한 문학 권력의 독선과 오만이 그들의 이탈을 가속화하고 있는 것이다.문인수, 그는 오직 시만으로 별이 된 시인이다. 학맥과 인맥 같은 그 어떤 맥도 그에게는 없다. 그는 자기 이익만 챙기며 위선적인 사람들에게 강한 거부감을 가졌다. 연민과 배려의 마음이 없는 냉혈적인 시인들을 특히 싫어했다. 그는 마흔에야 늦깎이로 등단했다. 예순이 넘어 시마(詩魔)에 사로잡혔다. 시인 천양희는 “시마는 병든 영혼을 치유하는 최고의 명약이다”라고 했다. 문인수에게 딱 적용되는 말이다. 그는 제대로 된 직장을 가진 적이 별로 없다. 9여 년 동안 지역 신문 교열부 기자로 일한 게 가장 안정된 직장생활이었다. 그는 다양한 낭인 생활을 통해 무수한 인간 군상을 만났다. 자신이 주류가 아니고, 주류로 살아본 적도 없기 때문에 그는 가난하고 외로운 노인, 장애인, 노숙자 같은 약자들을 남다른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는 가혹한 고난과 고통 속에서도 살아야 하는 이유와 희망을 노래했다.그의 시에는 항상 사람이 있고,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긴다. 그의 대표작 ‘이것이 날개다’ 한편만 읽어보면 모든 것을 바로 알게 된다. “뇌성마비 중증 지체·언어장애인 마흔 두 살 라정식 씨가 죽었다./자원봉사자 비장애인 그녀가 병원 영안실로 달려갔다./조문객이라곤 휠체어를 타고 온 망자의 남녀 친구들 여남은 명뿐이다./이들의 평균수명은 그 무슨 배려라도 해주는 것인 양 턱없이 짧다./마침, 같은 처지들끼리 감사의 기도를 끝내고/점심 식사 중이다./떠먹여 주는 사람 없으니 밥알이며 반찬, 국물이며 건더기가 온데 흩어지고 쏟아져 아수라장, 난장판이다.//그녀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이정은 씨가 그녀를 보고 한껏 반기며 물었다./#@%, 0%·$&*%ㅒ#@!$#*?(선생님, 저 죽을 때도 와주실 거죠?)/그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왈칵, 울음보를 터뜨렸다./$#·&@\·%,*&#…(정식이 오빤 좋겠다. 죽어서…)//입관돼 누운 정식 씨는 뭐랄까. 오랜 세월 그리 심하게 몸을 비틀고 구기고 흔들어 이제 비로소 빠져나왔다. 다 왔다, 싶은 모양이다. 이 고요한 얼굴,/일그러뜨리며 발버둥치며 가까스로 지금 막 펼친 안심, 창공이다.” 비장애인 자원봉사자가 정식씨와 그의 동료를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다. 마지막 가는 시인에 대한 예의인 것 같아 전문을 실었다. 저희들끼리 모여 키보드 상단 특수기호를 무작위로 두들긴 것 같은 저희들끼리의 언어와 몸짓으로 소통하고 조문하며 밥을 먹는 저 외롭고 쓸쓸한, 기막힌 난장판을 상상해 보라. 그들은 심하게 몸을 비틀고 구기고 흔들어야 겨우 움직이며 살 수 있다. 죽어야 비로소 ‘고요한 얼굴’로 영혼을 가둔 육체를 벗어나게 된다. 가슴이 먹먹해진다.장지에서 그의 시 ‘하관’을 다시 읊조려봤다. “이제, 다시는 그 무엇으로도 피어나지 마세요. 지금, 어머니를 심는 중…” 내 삶이 신산하기 때문일까. 한국 서정시의 새 지평을 연 대시인 문인수를 심는 모습을 지켜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형님, 이제, 이 몸서리나는 세상에 다시는 그 무엇으로도 피어나지 마세요.” 부디 아무 고통 없이 영면하소서.서충환 기자 seo@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