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할머니가 평생 처음으로 은행에서 자신의 이름을 썼다고 기뻐하시길래 할머니를 안고 펑펑 울었습니다.” 15일 스승의 날을 맞아 평균 연령 85세인 칠곡할매글꼴의 주인공을 가르친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 선생님들의 헌신이 알려지면서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주인공은 일제강점기와 가난으로 한글을 깨치지 못한 칠곡군 할머니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성인문해교육 선생님이다. 칠곡군은 지난 2006년부터 성인문해교육 ‘찾아가는 늘배움학교’를 운영해 왔다. 2개 마을에서 시작한 늘배움학교는 지금은 23개 마을, 220명의 할머니들이 참여하고 있다.늘배움학교 선생들은 칠곡군이 운영하는 평생학습대학에서 ‘외국어로서의 한국어학과’와 ‘성인문해 양성과정’을 전공한 40대 여성 23명이다. 이들은 할머니들이 사는 마을회관으로 직접 찾아가 한글을 가르치며 말동무가 되고, 때론 대도시에 있는 며느리와 딸의 역할을 대신하기도 한다. 또 이들은 1년에 10개월 동안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오후에 수업을 하다보니 안정적인 직장은 구하기 어려운 형편에 직면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를 극복하고 길게는 15년, 짧게는 3년 동안 열정적으로 할머니들을 가르치며 배움의 한을 풀어 드리고 있다. 여느 학교와 마찬가지로 이들 선생은 숙제를 내고 매년 10월이면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학예회를 열어 할머니들을 무대의 주인공으로 만든다. 이러한 선생들의 열정에 할머니들은 밭일을 하다 급한 마음에 연필 대신 호미를 들고 수업에 참여하는 웃지 못할 모습도 연출된다. 할머니들은 밤늦은 시간 남편의 숙면에 방해가 될까 봐 휴대전화기 조명으로 한글 공부를 하기도 하고, 신문 등에 여백만 보이면 글쓰기 연습을 한다.할머니들의 글씨체 ‘칠곡할매글꼴’은 윤석열 대통령의 연하장 글씨체로 전국적으로 알려지기도 했다.김재욱 칠곡군수는 스승의 날을 맞아 늘배움학교 선생 모임 회장인 장혜원 씨에게 할머니들이 마련한 카네이션과 꽃바구니를 지난 11일 전달했다. 조임선(왜관8리 달오학당) 할머니는 “기억력이 나쁘고 변덕이 심한 할매들의 선생이 되려면 오장육부가 다 녹아내려야 한다”며 “멀리 있는 자식보다 꼬박꼬박 찾아오는 선생님이 더 좋다”며 주름진 이마에 환한 미소가 피었다. 조준달 성인문해 선생은 “선생님들은 할머니를 가르치는 것이 보람 있고 행복해 많은 것을 포기하고 살고 있다”며 “할머니들의 마지막 항해를 밝게 비추는 등대가 된다는 사명감으로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이임철 기자 im72@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