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기사가 선망의 직종이던 시절이 있었다. 택시회사를 운영한다고 하면 사회적으로 우러러 봤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옛말이 됐다.대구 택시업계가 화려했던 영광을 뒤로하고 본격적인 쇠퇴기를 맞고 있다. 노동자와 회사 모두 이대로는 못 견디겠다고 아우성이다.슬픈 사실은 대구 택시업계의 몰락이 어떤 특정 사유 혹은 사건에 한정된 게 아니라는 점이다.반세기 동안 대구시민과 함께 동고동락해 온 택시업계의 현 상황에 대한 현장 목소리와 나아갈 길을 들어 본다. 〈편집자 주〉“하루 14시간씩 일해도 일당(운송수익금) 채우기가 버겁습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택시 외에는 받아줄 곳도 없어요. 정말 그만둘 때가 된 것 같습니다.”30년차 베테랑 택시기사 김모(59·대구 달서구)씨는 올해 은퇴를 고민하고 있다. 식사 시간까지 줄여가며 하루 13~14시간씩 택시를 몰아도 수중에 들어오는 돈은 고작 월 130여만 원. 가장이라는 책임감이 오늘도 그를 운전대로 내몰지만, 이젠 슬슬 힘에 부친다.그는 “1996년 한 달에 약 300만 원을 벌었다. 당시 웬만한 회사원 월급이 100만 원 정도였으니, 중소기업 사장이 부럽지 않던 시절”이라며 “30년이 지난 지금은 편의점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만도 못한 수준이다. 자괴감이 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반 세기 가까이 ‘시민의 발’로 뛰어 온 대구 법인택시 기사들이 가파른 생계절벽으로 내몰리고 있다.코로나19 및 장기 불황으로 인한 수요 감소와 더불어 전액관리제, 부제 해제 등 현장과 동 떨어진 정책들이 업계의 몰락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지적이다.대구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지역 법인택시 기사 수는 3천731명이다. 2019년 5천276명에서 3년 만에 약 30%가 업계를 떠난 것이다.이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사라진 손님이다.끝없는 경기 불황으로 시민들이 가장 먼저 허리띠를 졸라맨 것은 교통비다. 2020년 대구지역 하루 평균 택시 이용객은 42만여 명으로 5년 전(2015년, 54만여 명)보다 약 23% 줄었다. 코로나19 사태는 이 같은 상황에 방점을 찍었다.2020년 기사들의 생활 안정을 위해 도입된 전액관리제에서 파생된 혼란도 계속되고 있다. 전액관리제는 택시기사가 운송수익금을 전액 회사에 납입한 후 기본급과 함께 초과운송수익금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받는 제도다. 노사는 지난해 기본급을 최저임금(월 191만여 원) 이상 지급키로 합의했다.하지만 현장에서는 일 운송수익금 금액을 낮추고, 기본급 역시 최저임금 이하로 받는 변칙 사납금 제도를 운영하는 회사가 상당수다. 일 운송수익금을 채우기 힘든 노동자와 최저임금을 줄 여력이 없는 회사가 합작한 비극이다.익명을 요구한 기사는 “예전 제도(사납금제)에서는 열심히 일한 만큼 기사가 벌 수 있는 구조였다. 지금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월 200만 원 이상 벌기 힘들어졌다”며 “대체 누구를 위한 제도인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이 같은 상황에서 지난해 11월부터 시행된 부제 해제는 기사들을 벼랑 끝까지 몰아갔다. 하루 4천~5천 대의 개인택시가 추가로 도심에 풀리면서 기사들은 일 운송수익금을 채우고자 하루 13~14시간의 과로에 시달리고 있다.꿈도 사라졌다. 퇴직금 개념이 없는 업계에서 법인택시 기사들의 유일한 꿈은 개인택시 면허 취득이다. 하지만 10여 년 전부터 과다 공급으로 인한 개인택시 면허 취득의 길이 막히면서 장기 근속 기사들의 꿈과 희망도 사라진 상태다.미래도 어둡기만 하다. 업계의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전체 기사(3천731명)의 과반(2천114명, 56.7%)이 60대 이상으로, 70대 이상도 9%(352명)에 달한다.영진운수 채일수 노조위원장은 “일하는 시간은 점점 늘고 수익은 반대로 줄고 있다. 갈수록 힘에 부친다”며 “업계의 미래가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악순환의 연속”이라고 하소연했다.이승엽 기자 sylee@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