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는 나의 힘 기형도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입속의 검은 잎』(문학과지성사,1991)...................................................................................................................... 과거 시점 어떤 상황에서의 생각과 언행을 지금 시점에서 냉정히 되살려보면 얼굴을 붉히거나 부끄러워 절로 얼굴을 가리게 마련이다. 입에선 황당한 변명과 탄식이 터져 나오기 일쑤다. 바보같이 그때 왜 그랬을까. 오랜 세월이 흐른 후, 미래의 자신이 지금 젊은 시절의 삶을 어떻게 회고하고 있을까. 과거의 삶이 현재 시점에서 자랑스럽거나 만족스럽지 못하듯이 현재의 삶 또한 미래 시점에서 그렇게 자신 있어 할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 시인도 다른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충분한 세월이 흘러 인생에 대해 알만한 나이가 되었을 때, 젊은 날에 쓴 글들을 읽어본다. 그 짧은 글들을 매개로 설익은 날의 상념들을 떠올려 보노라면 실망스럽고 부끄러워 책갈피를 찢어내는 자신의 모습이 눈에 선할 듯하다. 철없는 마음으로 공상에 젖어 신기루 같은 모래성을 쌓았다가 헐고, 꿈에 부풀어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 위에 앉아 천군만마를 호령하기도 하였다. 우연히 마주쳤던 아리따운 여인의 눈길이 머리 깊숙이 파고들어 가슴 속에 둥지를 틀고 앉았었지. 이름 모를 아가씨의 미소가 망막에 눌어붙어 잔상으로 아른거리곤 했다. 소중한 청춘을 그렇게 엉뚱하게 보낸 자신에게 화가 나기도 하고 한심한 나머지 눈물을 흘릴 지도 모른다. 통제받지 않은 상상이 머리를 가득 채웠으니 쓸 거리가 많았을 법하다. 기록한 글들은 때론 시가 되어 남아 있고, 때론 소설이 되어 남아 있을 터다. 하늘을 지붕 삼아 구름처럼 헛되이 개처럼 개념 없이 부단히 돌아다녔다. 그 당시론, 꼭 만날 사람이었고, 꼭 가야 할 곳이었지만. 샘처럼 솟아나는 정력이 새삼스럽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상상의 세계가 감탄을 넘어 한탄스럽기까지 하다. 지나온 날들을 가만히 성찰해본다. 가진 것도 딱히 없고 성취한 것 또한 제대로 없다. 생각할수록 회한과 탄식이 절로 난다. 청춘을 앞장세워 저녁마다 거리를 쏘다니며 방황했다. 쓰잘머리 없는 일로 시간을 허비했다. 미래에 대한 비전도 없이, 비전에 대한 준비도 없이, 날마다 비틀거렸던 철부지 행적이 책갈피에 새록새록 잠자고 있다. 자신의 잠재능력을 알아보고 그 성취를 두려워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희망과 노력의 존재는 단지 남에게 뒤지지 않으려는 몸부림의 결과였다. 희망의 내용이라는 것도 남들의 콘텐츠를 부러워한 나머지 살짝 베끼고 따라간 흔적에 지나지 않았다. 말하자면 젊은 시절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다. 그 시절의 청춘을 미래의 프리즘으로 보며 시라는 짧은 글로 남겨둔다. 지난 세월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다녔지만 한 번도 사랑을 얻을 수 없었다. 사랑은 스스로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찾아지는 샘물이기에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한 사람에겐 사랑은 허공을 헤매는 뜬구름이다. 청춘은 어설픈 추억이지만 질투는 지치지 않는 젊음의 힘이다. 오철환(문인)김창원 기자 kcw@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