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들의 소풍우경주달리의 시계들이 소풍을 나온다/ 평생 기대어 서 있느라 허리 휜 시계들/ 오늘은 가벼운 차림으로 푸른 하늘 머리에 이고/ 창으로만 내다보던 세상을 걸어 나온다/ 납작한 몸 반쯤 꺾어본 후/ 넓은 바다를 눈 속에 넣으며 모래 위를 달리고/ 파도를 걷어차 하얗게 구겨 놓기도 한다/ 잎새 떨군 나무에 겉옷이 되어주고/ 출생을 짐작할 수 없는 물체위에 앉아보면/ 탁자위에서 눈 녹듯 흘러내리고 싶어진다/ 흘러 흘러 바다 끝까지 갈 수 있을까/ 애초부터 말랑말랑한,/ 연체동물이었는지 모른다/ 사각의 벽에 갇혀 다른 이의 일상을/ 끌어당기며 밀고 가던 고된 삶/ 나는 저 시계의 성화에 눈 부비며 일어나/ 얼마나 많은 아침을 쪼였을까/ 너울에 감겨 소리 아득하게 들려도/ 고집스런 저 목소리가 밉지 않다/ 이제는 파도소리 자장가삼아 푹 쉬고 싶다고,/ 기약 할 수 없는 앞날을 향하여/ 마냥 달리기가 불안하다고,/ 시간 멈추어 놓고 월담한 시계들,/ 그래도 시간은 흘러간다/ 나뭇가지에 걸린 시간과 모서리에 접혔던 시간들이/ 고삐를 풀고 화폭 속에서 걸어나온다『시계들의 소풍』 (고요아침, 2015)......................................................................................................................시인은 초현실주의 대표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기억의 지속」이란 그림을 머릿속에서 불러낸다. 기억 속의 그림이 시어로 재탄생한다. 「기억의 지속」은 ‘늘어진 시계’ 또는 ‘녹아내리는 시계’로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바다와 해안선, 황금빛 절벽이 보인다. 달리의 고향 카탈루냐의 해안풍경이다. 죽은 올리브 나뭇가지에 시계가 널브러져 걸려있다. 관처럼 생긴 상자에 반쯤 걸터앉은 시계가 늘어져 졸고 죽은 갈매기 같은 희멀건 물체 위에 시계가 드러누워 흐물흐물 녹아내린다. 상자 위에 제법 형체를 갖춘 회중시계엔 개미가 바글바글하다. 파리 한 마리가 상자에 얹혀 늘어진 시계 위에 앉아 시간을 희롱한다.시계는 바다가 보이는 해변으로 소풍을 나왔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쉴 새 없이 늘 일만 해온 시계에게도 휴식이 필요하다. 파란 바다가 내다보이는 나뭇가지에 늘어지게 매달려 각박한 현실을 비웃는 놈. 상자위에 앉아 파리가 농락하는 줄도 모르고 시간을 벗어나 정신 줄을 놓고 있는 놈. 시간을 빼앗긴 작가의 몸뚱어리에 올라타 함께 녹아내리는 놈. 반듯하게 자리를 잡아 그나마 형체를 유지하고 있긴 하나 벌레에게 몸을 맡기고 앓아누운 놈. 빈 틈 없이 진행되는 일상에 지친 시계가 자기 방식대로 맘껏 힐링한다. 그대로 녹아내려 바다로 흘러들 것만 같다. 시간은 원래 흐물흐물한 연체동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원초적으로 유연한 존재임을 망각한 채 시간의 딱딱한 벽에 갇혀 이리저리 끌려 다닌 일상을 돌아본다. 고지식한 시간에 쫒기여 여유 없이 팍팍하게 살아온 나날이다. 시계소리가 파도에 아득하게 묻힌다. 시계도 파도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이 든다.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앞만 보고 달려왔지만 마냥 달린다고 될 일은 아니다. 마침내 시계도 일상을 일탈한다. 그래도 지구는 돌고 시간은 흘러간다. 담을 넘어 소풍 간 시간들이 다시 현실로 복귀한다.시간은 상대적이다. 늘어나기도 하고 휘기도 한다. 시간이 정지해도 중력은 시간에도 작용한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프로이드의 무의식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시심은 시간을 극복한다. 시인은 자유로운 영혼이고 영혼은 시공을 넘나드는 힘을 가진다. 시인의 심미안은 일상을 변형하여 낯설게 뵈는 초현실주의 작품에도 색다른 새 생명을 불어넣는 향기로운 시의 자궁이다. 오철환(문인)김창원 기자 kcw@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