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사람이 말로만 말을 해? 말보다 더 크게 말하는 게 몸이잖아. 눈빛, 뒷모습, 옅게 내쉬는 한숨. 그런 거. 그런 게 다 말이잖아. 엄마는 모르는지 모르지만, 엄마는 입으로 말하는 대신 몸으로 더 자주 말했어. 엄마는 우리가 안다는 걸 모르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엄마가 몸으로 하는 말을 아주 많이 들으며 자랐어. 엄마는 자식이 늘 자랑스러워야 하잖아. 사람들이 부러워해야 하잖아. 그런데 그러지 않아서, 사람들 앞에 내세울 수 없어서 속상했잖아? 그 속상한 걸 표시하지 않으려니까 힘들었지? 엄마가 나온 대학 못 가고, 엄마 친구들의 자식들이 들어간 대기업 취직 못 하고, 나이는 먹을 만큼 먹었는데도 때 되면 남들 다 하는 결혼도 못 하고 집도 못 사고, 그런 게 싫었지? 싫은데 내색하지 않으려니까 힘들었지? 그런데 준호와 나는 엄마가 내색하지 않으려고 힘들어한다는 것까지 느꼈어.「목소리들」(2023, 문학과지성사) 〈브루스 올마이티〉는 7일간 신을 대신한 남자 이야기다. 어느 날, 재수 없는 일들만 반복된 탓에 화가 나 폭발하기 직전의 브루스는 자신의 불행은 신 탓이라며 하늘을 향해 삿대질한다. 이때 삐삐가 울리고 번호가 찍힌다. 신의 호출이다. 브루스의 원망에 응답해 모습을 나타낸 신은, 그에게 자신의 전지전능한 힘을 주면서 얼마나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지 보자고 한다. 이후의 이야기는 짐작대로다. 신도 감당 못 하는 일을 하물며 인간이…….이 영화는 사실 「목소리들」의 내용에 미루어 맞지 않는 사례다. 영화가 코믹한 서사에 해피엔딩인 반면, 소설은 가족 간의 갈등과 원망, 개인 파산, 자살 등의 심각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소설은 엄마와 아들이 서술자로 번갈아 등장한다. 인용한 대목은 서술자 중 아들의 목소리로, 동생인 ‘준호’가 자살하게 된 데는 엄마의 책임이 크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앞서 엄마는, 아들이 타고 간 차를 선물한 전남편과 더불어 서술자인 큰아들에 대한 원망을 털어놓는다. “그래서 그 사람한테 따졌다. 왜 그랬느냐고. 진짜로 그랬지. 전화를 걸어서 소리 질렀지. 왜 안 하던 짓을 해서, 그 고물차를 줘서 우리 애를 그렇게 만들었느냐고, (…)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그 일이 있기 직전에 그 애가 너에게 전화했었다며? 네 입으로 말한 거잖아. 그때 만나지 못한 게 한이 된다고. 기왕 말이 나왔으니 한번 들어보자.”이들의 내면을 할퀴고 물어뜯는 ‘목소리들’은 상대의 귀에 물리적으로는 가닿지 않는다. 그러나 둘은 심한 자책으로 이미 만신창이가 된 상태다. 자식이 늘 자랑스럽기를 바랐던 엄마는, 그 자랑스러움의 기준이 속되고 어리석다는 점에서 우리와 빼닮았다. 〈브루스 올마이티〉는 자기 자신을 구원하는 건 가족도 신도 아닌 자기 자신임을 알려준다. 그런 영화와 달리, 소설은 ‘나’의 잘못된 선택이 모두를 망쳐버린다. 신상조(문학평론가) 김광재 기자 kjk@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