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희, 전 주핀란드대사/전 경북대 초빙교수
북한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북한은 지난 18일 동해상으로 초대형방사포(KN-25)로 추정되는 단거리탄도미사일(SRBM)을 발사했다. 지난 1월 고체연료를 기반으로 한 극초음속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발사 이후 올해 들어 두 번째 탄도미사일 발사다. 지난 7일에는 장사정포 등 자주포와 방사포를 동원해 서해상 표적을 대상으로 사격 훈련을 실시하기도 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최근 한국을 “적대적 교전국”으로 규정하고, ‘핵무력을 동원한 남조선 전 영토 평정 준비’를 지시한 이후의 도발이라는 점에서 더욱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6차에 걸쳐 핵실험을 하고, 지금은 핵탄두 소형화와 함께 다양한 형태의 미사일 개발 및 성능 개선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북한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개발에 성공하고, 고체연료 기반 극초음속 탄도미사일을 상용화하는 수준에 다다르면, 우리의 삼축 체계에 기초한 대북 억지력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북한이 소유한 핵탄두 숫자는 전문가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최소한 수십 개는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은 23년 5차에 걸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통하여 미 본토 타격 능력까지 거의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또한 23년 11월 정찰위성까지 발사했다. 위성의 성능에는 아직 의문이 있지만, 정찰위성을 실전 배치하는 단계까지 이르면 북한은 핵무기라는 주먹에 예리한 눈까지 갖게 되는 셈이다. 미국 국가정보국(DNI)은 또한 지난 3월 11일 공개한 연례위협평가(ATA)에서 “김정은은 핵 및 재래식 군사력을 계속 추구할 것”이며, “협상을 통한 핵 프로그램 폐기 의도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은 게 거의 확실”하다고 평가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폴 러캐머라 주한 미군 사령관은 최근 가진 언론 인터뷰에서 ‘대북 억제의 초점이 북한의 핵 능력 발전 저지에서 핵무기 사용 방지로 바뀌고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한편, 이달 초 서울에서 열린 ‘중앙일보-CSIS 포럼 2024’에서 미라 랩-후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선임보좌관은 “(한반도)비핵화를 위한 ‘중간 단계(interim steps)’도 고려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물론, 미국의 목표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전제를 달기는 하였지만, 북핵을 사실상 인정하는 듯한 발언으로 읽히기에 충분하다. 한편, 대선을 이틀 앞둔 지난 13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러시아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북한은 자체 ‘핵우산’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핵우산‘이란 핵무기를 갖지 않은 국가가 우방의 핵무기에 의지해 국가의 안전보장을 도모하는 것을 의미하는 만큼, 표현이 정확하지 않은 면이 있지만,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사실상 인정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북한의 핵 능력은 갈수록 고도화되고, NPT 체제를 만든 주역인 미국과 러시아가 북핵을 사실상 용인하는 국제정치 역학 구도하에서 한국이 취할 대응책은 과연 무엇인가. 윤석열 대통령은 2023년 4월 바이든 미 대통령과의 ’워싱톤선언‘을 통하여 미국의 확장억제를 강화하고, 이의 구체적 실행을 위하여 ’핵협의그룹(NCG)’을 신설하기로 합의하였다. 이후 한미 양국은 합동 군사훈련 강화 및 미 핵전력의 수시 한반도 전개를 통하여 북핵 억지력을 강화시켜 왔다. 그러나 오는 11월 실시 될 미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될 경우, 미국의 확장억제에 계속 의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60-70년대 냉전시기 미.소 양국의 핵무기는 상호확증파괴(MAD)라는 공포의 균형을 통하여 역설적으로 전쟁을 억제하는 기능을 하였다. 오늘날 MAD가 기능하는 곳이 인도-파키스탄 관계에서다. 핵무기가 인도- 파키스탄 간 국지분쟁이 전면전으로 발전하는 것을 막아주고 있다. 핵을 가진 북한을 상정할 시 우리도 핵을 갖는 것이 오히려 한반도의 ‘긴장된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이 독자적으로 핵무장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여기서 빅터 차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가 지난 18일 프랑스 파리 한국문화원에서 특파원단과 만난 자리에서 했다는 이야기가 관심을 끈다. “한국이 핵무장을 원한다면 트럼프는 신경 쓰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위기는 기회일 수 있다. 미국의 확장억제가 가동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한 준비를 철저히 하여야 할 시점이다.장동희전 주핀란드대사/전 경북대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