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80세를 넘긴 나이대를 한자로 ‘망구(望九)·구순(九旬)·망백(望百)’ 등으로 부르고 있다. 이 나이에 다다르면 대부분 황혼길,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인생이라고 생각해 서글픔이 앞선다.하지만 칠곡군에는 그 나이에 랩을 구사하며 제2의 청춘을 만끽하고 있는 할매들이 있다. 젊은 세대의 전유물로만 생각해 왔던 ‘랩’을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있는 할매들. 바로 ‘K-할매 콘텐츠’로 떠오르고 있는 칠곡군 지천면 신 4리의 평균 연령 85세 8인조 칠곡 할매힙합그룹 ‘수니와 칠공주’다.이들의 외침과 몸짓은 관객들에게 애처로움과 신기함이 공존하는 양가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이들이 모자를 빗겨 쓰고, 엇박자의 몸짓으로 들려주는 랩은 단순한 흉내 내기가 아니다. 그들의 랩에 담긴 사연을 따라가면 웃음과 슬픔을 주는 이야기가 있고, 놀라운 통찰력이 있어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지난 2월 마을 경로당에서 창단식을 갖고 본격 활동에 들어간 할매 래퍼 그룹 ‘수니와 칠공주’는 아흔이 넘은 최고령 정두이(92) 할머니부터 여든을 바라보는 최연소 장옥금(75) 할머니까지로 구성됐다. 세계 최고령 래퍼그룹인 것이다.초고령사회 진입을 눈앞에 둔 우리 사회에 칠곡 할매들의 외침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매 래퍼의 모습에서 가수 노사연이 부른 ‘만남’ 중 ‘나이는 먹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다’란 가사가 떠오른다. 그리고 ‘나이는 칠을 더할 때마다 빛을 더해가는 옻과 같다’는 말도 떠오른다.요즘 MZ 가수들처럼 키 크고, 잘생기고, 외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멋진 여성 아이돌이 아니다. 길에서 자주 마주치는 보통 할머니들인데 그들이 거침없이 내뱉는 랩을 한국을 넘어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제이지나 BTS도 아닌데 세계적인 통신사인 로이터(Reuters)와 중국의 CCTV, 일본의 NHK 등 외신의 취재가 이어지고 있다.할매 래퍼들이 알려지자 국내 유수 업체들로부터 다양한 제안도 들어오고 있다. 최근 대형 금융그룹과 광고촬영을 마쳤고, L사와 S사 등으로부터 광고와 다큐제작 등 제안이 들어오고, 익명의 기부자가 거액을 찬조했고, 팬클럽까지 생기는 등 인기가 고공 상승 중이다.칠곡군은 할매 래퍼들의 이런 인기가, 칠곡군이 추진해온 노인복지정책에 대한 좋은 인상을 심어주고, 지역 문화관광 활성화로 이어지기를 내심 기대하고 있다. 또 칠곡군이 고령화시대를 대비해 지난 10여 년 전부터 다양한 실버 문화 콘텐츠 개발에 앞장서 온 노력이 이러한 성과에 일조했다는 긍정적 여론도 일고 있다.할매들의 랩을 전국 최초로 노인들의 치매 예방치료 프로그램으로 활용해 랩을 배우면서 사회적 고립감을 해소하고 활력도 불어넣어 노년의 삶 질을 한 단계 높여주는 프로그램도 마련하는 중이어서 눈길을 끈다.이런 말이 있다. “지금이 가장 젊은 때”라고. 할매 래퍼들에게 딱 어울리는 말이다. 젊음은 인생의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이다. 90~100세를 바라보는 할매래퍼들은 장밋빛 뺨도, 빨간 입술도 아니고, 나긋나긋한 무릎도 아니다. 그러나 할매 래퍼들은 그들의 의지와 상상력, 나아가 자신들만의 특별한 활력을 전해준다.칠곡군에는 현재 ‘수니와 칠공주’를 비롯해 보람할매연극단, 우리는 청춘이다, 어깨동무, 텃밭 왕언니 등 5개의 할매 래퍼 그룹이 활동하고 있어 기대가 크다. 훗날 우리는 할매래퍼를 삶의 깊은 샘에서 솟아나는 새로운 랩의 영역을 개척한 가수로 기억할 것 같다.이임철 기자 im72@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