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논단…혀 밑의 도끼를 감춰라

혀 밑의 도끼를 감춰라박운석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며칠간 페이스북을 비롯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닫고 살았다. 거북한 말의 전쟁 때문이다. 정치이슈를 올리며 니편내편을 가르는 듯한 글도 불편하고, 내편이 아니면 욕설까지 더하는 글을 보면 얼굴을 찡그리게 된다. 소통의 장이 아니라 편향된 나의 주장만 펼치는 강요의 장이 되어가는 SNS가 불편했다. 글 뿐만 아니라 말 또한 격해지고 있다. 가히 말의 전쟁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말의 전쟁 중심에 정치권이 있다. ‘혀 아래 도끼 들었다’는 속담은 남을 해칠 수도 있으니 말조심을 하라는 뜻이다. 그런데 정치권에서는 혀 아래 도끼를 오히려 휘두르고 있다. 사용하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듯이 보인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달창’ 발언이 그랬다. 그는 “KBS 기자가 요새 ‘문빠’ ‘달창’들에게 공격받았다”고 말해 여성비하 논란을 일으켰다. ‘달창’은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을 비하해서 말하는 비속어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의 광주행에 대해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이야기한 ‘사이코패스 수준’ 발언도 그랬다. 이 대표는 최근 라디오방송에서 “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국회에서 5.18 특별법을 다루지않고 광주에 내려가겠다고 발표한 것은 거의 사이코패스 수준이라고 본다”고 언급했다. 문재인 대통령을 향한 김현아 자유한국당 의원의 ‘한센병’ 발언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그러고서는 원래 뜻은 그게 아니었단다. 원래 전하고자했던 메시지는 없어지고 막말만 남았는데도….막말이란 게 갈수록 수위가 높아지게 마련이다. 제1야당 대표는 문대통령을 ‘좌파 독재자’라고 표현했고 문재인 대통령의 5·18기념사에는 ‘독재자의 후예’라는 표현이 나타났다. 정치란 게 원래 그런 거다? 아니다. 정치인들에게 말은 손잡이 없는 칼이다. 휘두를수록 칼을 잡고 있는 손만 다친다. 말로 먹고사는 게 정치라면서 왜 막말로 자해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정치는 소통이라면서 불통의 막말로, 갈등을 조정하는 게 정치라면서 증오의 막말로 오히려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 눈치 없이 휘두르는 혀 아래의 도끼가 제 몸을 찍는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멈출 줄을 모른다. 혹시 노이즈마케팅으로 막말을 이용하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만약 그렇다면 오산이다. 그들이 노리는 것처럼 막말은 블루오션이 아니기 때문이다. 뉴스만 보면 쏟아지는 정치권의 막말에 익숙해져서 그런 것인지 일상생활에서도 말들이 점점 거칠어지고 있다. SNS는 하고 싶은 말을 그냥 내지르는 도구처럼 변해가고 있다. 마치 남의 눈치 보며 살 필요가 있느냐는 식이다. 그러다보니 격하고 무례한 말과 글에 대한 내성도 점점 강해지고 있다. 악순환이다. 정치권에서는 악순환의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다. 말과 글은 소통의 도구이기도 하지만 위험하기도 하다. 감염력도 높다. 정치권의 막말은 SNS를 통해 순식간에 이슈화되면서 빠르게 전파된다. 뒤늦게 사과하고 SNS에서 글을 지우곤 하지만 이미 확산된 다음이다. 말의 전쟁이라지만 너무들 하는 게 아닌가 싶다. 공식석상에서, 더군다나 정당들의 입이라는 대변인 논평에서 어떻게 저렇게도 저급한 표현들을 주고받는지 이해할 수 없다. 국민들을 우습게보지 않고서야 그럴 수 있을까. 막말금지법이라도 만들어야할 판이다. 정치는 누가 뭐래도 대화와 타협이 우선이다. 말은 대화와 타협을 이끄는 수단이다. 상대를 향해 증오를 가득 담은 말을 쏟아내 놓고는 타협을 이끌어낼 수는 없는 법이다. 말은 그 사람의 인품을 닮는다. 공멸의 길로 가는 저급한 막말잔치보다 갈등을 봉합해주는 훈훈한 말의 성찬을 기대해본다. 서로가 최소한 넘지 말아야 할 선은 지켜야 할 것 아닌가. 말이 입힌 상처는 칼이 입힌 상처보다 깊다는 것을 명심했으면 한다. 말의 전쟁 중에 우울한 소식들이 잇따른다. 19일 발표한 OECD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1분기 경제성장률은 -0.34%로 성장률을 공개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2개 회원국 가운데 가장 낮았다. 전문가들은 설비투자 감소의 위험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 말 많은 집은 장 맛도 쓰다. 어디 지금이 말 많은 집으로 비쳐질 때인가. 제발 혀 아래의 도끼를 감춰줬으면 한다.

세상읽기…경제는 경제로 풀자

경제는 경제로 풀자오철환객원논설위원 자유시장경제에서 자원배분은 가격의 매개변수적 기능에 의해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자발적인 교환과 경쟁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시장의 힘에 의한 자원배분은 완전경쟁시장에서 효율적이다. 현실 경제에서는 규모의 경제, 외부효과, 공공재 등이 존재하기 때문에 효율적인 자원배분이 이루어지지 못한다. 이러한 시장실패를 치유하고 효율적인 자원배분을 달성하기 위하여 정부는 민간부문의 경제활동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게 된다. 규모의 경제와 외부효과는 일단 논외로 하고 여기서는 공공재만 살펴본다. 일반적으로 공공재는 비경합성과 비배제성을 가진다. 많은 사람들이 동일한 재화나 서비스를 동시에 소비할 수 있고 한 개인의 소비가 다른 사람들의 소비를 감소시키지 않는 특성이 비경합성이다. 대가를 치루지 않으려는 사람에게 소비를 하지 못하게 막을 수 없는 특성이 비배제성이다. 비경합성과 비배제성을 가진 경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부담으로 생산된 공공재를 공짜로 소비하려고 한다. 공공재 공급을 시장에 맡길 경우, 공공재에 대한 진정한 선호를 아무도 표시하지 않고 무임승차하려 하기 때문에 필요한 만큼의 공급이 불가능하게 된다. 따라서 정부가 공공재를 적절히 공급함으로써 시장의 실패를 막아보고자 한다. 공공재의 비용부담은 공권력에 의한 강제적 징수에 의하는 수밖에 없다. 이런 경우에도 불완전한 정보와 제한된 지식 등으로 정부가 시장을 완벽하게 대체할 수 없다. 정부가 시장에 불가피하게 개입한다하더라도 신중하게 최소한도로 접근하여야 하는 이유다. 최근 버스운행서비스(이하 버스)와 관련, 정부는 버스준공영제를 확대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버스를 공공재로 보아 공공부문에서 개입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버스가 공공재인지 여부는 비경합성과 비배제성의 잣대로 판별해 볼 수 있다. 비경합성 특성은 버스에서 비교적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정원 내에서는 비경합적이나 정원을 초과하면 경합적으로 바뀐다. 만원인 경우를 제외하면 비경합성이 만족된다. 반면, 비배제성은 충족되지 못한다. 요금을 내지 않으면 탑승을 쉽게 배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버스의 경우, 비경합성은 제한적으로 만족되나 비경합성은 만족되지 않는다. 버스는 공공재라 할 수 없다. 버스는 정부가 섣불리 개입하는 것보다 시장기구에 맡겨두는 것이 자원배분에 더 효율적이라는 의미다. 버스준공영제를 확대하겠다는 의미는 비록 공공재는 아니지만 공적 성격이 없지 않으므로 준공영제로 어중간하게 가겠다는 걸로 보인다. 만약 그런 뜻이라면 이는 한참 잘못되었다. 지자체에 따라 조금 다른 점은 있지만, 버스준공영제에서 민영과 공영의 나쁜 점만 노정되고 있는 증후를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오지 노선 운영, 직원 처우 개선 같은 순기능이 없진 않다. 그 같은 순기능은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기존 버스준공영제가 실시되고 있는 광역지자체의 운영실태를 살펴보면 그 문제점을 잘 알 수 있다. 우선, 노선의 불합리를 꼽을 수 있다. 지방정부가 노선을 인위적으로 조정한 까닭에 그 불완전한 정보와 제한된 지식으로 인하여 노선이 불합리하게 된다. 시장에 맡기면 자동으로 효율적 노선 배합이 선택될 텐데 공공 개입으로 효율적 노선 믹스가 왜곡되고 만다. 그 결과 소비자도 만족하지 못하고 버스업체도 이용자가 줄어 적자다. 민간에 두면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한다. 요금은 시장원리에 의해 결정되고 그 비용은 소비자가 부담한다. 지하철 신설 등으로 노선을 인위적으로 조정할 필요도 없고 요금인상 때문에 주민 눈치를 살필 필요도 없다. 구체적 운용 측면에서 검토해 봐도 버스준공영제는 불합리하다. 비록 표준운송원가를 연결고리로 지방정부가 통제하긴 하지만, 운영과 차량·노무관리 등을 버스업체에 맡기고 손실이 발생하면 그만큼 세금으로 메워주는 방식은 설득력도 없고 효율적이지도 않다. 버스를 타는 사람의 요금을 안 타는 사람의 주머니에서 일부 지급하는 상황은 비정상이다. 대구의 경우, 버스준공영제와 도시철도에 매년 약 일천억 원씩 각각 지원한다. 낮은 재정자립도에 가용예산이 부족한 형편에 허리가 휜다. 이는 비단 대구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버스의 자원배분은 시장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실현가능하다. 굳이 공공부문에서 개입하겠다는 의도는 포퓰리즘으로 밖에 볼 수 없다. 버스가 공익적이라는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차라리 완전공영제로 가는 편이 더 낫다. 경제문제는 경제원리로 풀어야 답이 나온다.

권순진의 맛있게 읽는 시…부부

부부 / 함민복긴 상이 있다/ 한 아름에 잡히지 않아 같이 들어야 한다/ 좁은 문이 나타나면/ 한 사람은 등을 앞으로 하고 걸어야 한다/ 뒤로 걷는 사람은 앞으로 걷는 사람을 읽으며/ 걸음을 옮겨야 한다/ 잠시 허리를 펴거나 굽힐 때/ 서로 높이를 조절해야 한다/ 다 온 것 같다고/ 먼저 탕 하고 상을 내려놓아서도 안 된다/ 걸음의 속도도 맞추어야 한다/ 한 발/ 또 한 발- 시집,『말랑말랑한 힘』(문학세계사, 2005)..................................................... 시인이 마지못하고 피치 못해 수락한 후배의 결혼식 주례에서 신랑신부에게 해주었던 말을 한편의 시로 다듬었다. 노총각 시인에게 주례를 부탁할 땐 뭔가 특별한 시적 수사를 은근히 기대했을 터인데, 그 기대에 부응키 위해 며칠 골똘히 짜낸 것이 이 ‘긴 밥상’ 이야기다. 당시엔 강화도 바닷가 사글세방을 빌려 혼자 사는 처지였기에 큰상이 있을 리 없고, 있다한들 그걸 펼 일은 도무지 없을 터이다. 하지만 가족들과 함께 살 때의 제삿날이라도 문득 떠올렸다면 이야기가 된다. 긴 밥상의 한쪽을 들어본 사람은 무슨 말인지 다 알아듣겠다. 흔들리지 않게 높이와 속도를 조절해가며 걸음걸이를 서로 맞춰가야 상 위의 음식이 엎질러지지 않음을. 문턱을 넘고 좁은 문을 통과할 땐 바로보고 가는 사람이 등 뒤로 걷는 사람에게 건네는 ‘조심’이란 짧은 한 마디, 그리고 앞 사람의 눈빛만 보고 방향을 가늠하면서 상이 놓일 자리까지 탈 없이 옮겨와 상을 안착시킨다. 그런 상을 많이 들어본 부부는 척하면 삼천리고 안 봐도 비디오다, 자연히 서로 빠삭하고 닮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가면서 긴장은 흐트러지고 감각은 무디어져 그 조화가 깨어지기도 한다. 욕하면서 가끔 보는 종편채널이 있다. 부부들과 패널들이 떼거리로 나와서 서로의 허물을 이야기하며 깔깔대는 “얼마예요”란 이상한 예능프로그램이다. 다른 사람의 말에 야유를 보내는가 하면 더러는 감정이입도 되고 시청자들에게 동의와 위로를 구하기도 하는 형식이다. 내 눈에는 멋지고 이상적인 여성은 하나도 안 보이고, 남편 또한 아내의 관점에서는 하나같이 철부지고 여자의 마음을 몰라주는 속 좁은 이기주의자들이다. 서로 제 잘났다 자기 말이 옳다고 한다. 그걸 우두커니 바라보는 내가 한심스러울 때가 있다. 한편으로는 그런 배우자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은근히 부러워지면서 ‘복도 많아’ 그런다. 이집 저집 부딪치며 다투고 참는 이유도 비슷하다보니 다행히 출연자들 가운데는 험악한 지경까지 가는 경우란 거의 없다. 그러나 현실 속 부부들은 유쾌하고 솔직한 부부설전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로 갈라서는 커플이 수두룩하다. 젊은이들은 주변에서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끔 ‘잘 사는 부부’를 찾기란 쉽지 않다고 한다. 둘레에는 부러움을 살만큼 잘 사는 부부보다 그냥 사는 부부가 압도적인 탓으로 결혼에 별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부부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자녀들조차 부모의 결혼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여학생들에게 아빠 같은 사람과 결혼하고 싶은지 물어보면 5% 정도, 엄마와 같은 결혼생활을 하고 싶은지 물어보면 3% 남짓만 ‘그렇다’고 답할 만큼 부모의 결혼 생활을 바람직한 모델로 꼽지 않는다는 것이다. 설문 환경 탓도 있겠으나 예전과는 많이 다른 현상이다. 아무쪼록 세상의 부부들이여, ‘먼저 탕 하고 상을 내려놓는’ 일 없이 ‘한 발 또 한 발’ 사랑의 이름으로 두렵지 않기를.

세상읽기…보수정당에 드리는 고언(苦言)

보수정당에 드리는 고언(苦言)홍덕률대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보수정당의 언행을 둘러싸고 말이 많다. 환호하는 고정 지지층도 있지만 우려하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몇마디 고언(苦言)을 내놓고자 한다. 보수가 제대로 서야 정치도 나라도 선진화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첫째는 지나친 막말들이다. 같은 뜻이라도 품위있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 경영을 꿈꾸는 정당과 정치 지도자라면 더욱 그렇다. 나라의 운명과 국격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보수정당 지도자들이 쏟아내는 말들을 보면 착잡하기 그지없다. 더 자극적인 막말과 더 저급한 비속어를 찾아내기 위해 경쟁하는 것처럼 보인다. 과연 정치 지도자의 말인지 귀를 의심하게 된다. 한때 홍준표대표가 던진 거친 말들이 아직도 생생한데, 최근에는 김무성 전 대표의 청와대 다이너마이트 폭파 발언, 한선교 사무총장의 막말들, 나경원 원내대표의 달창 발언, 김현아 원내부대표의 한센병 발언 등이 줄을 이었다. 한국의 보수와 정치에 절망하게 만든 막말 행진이었다. 이젠 멈춰야 한다. 다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다. 한국의 보수와 보수정당을 위해서다. 둘째는 말에 담긴 생각이나 이념과 관련해서다. 특별히 걱정되는 것은 보수정당이 세상을 보는 눈이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과거에 매여 있다는 것이다. 낡은 색깔론과 종북몰이가 대표적인 예다. 독재타도론도 매우 어색하고 뜬금없다. 당연히 감동도 없다. 더이상 낡은 이념에 발목잡혀 있어서는 안된다. 치열하게 미래를 연구해야 한다. 미래세대를 위해 지금 정당과 국회는 무슨 일을 준비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그러려면 당의 틀을 확 바꿔야 한다. 역동적이고 진취적인 보수정당으로 거듭나지 못하면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셋째는 이념과잉과 사실왜곡의 문제다. 여기서도 최근 보수정당을 보면 걱정이다. 사실 왜곡과 가짜 뉴스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것 같아서다. 5·18민주화운동, 세월호 참사, 해방 직후 반민특위 등에 대한 왜곡과 폄훼가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권력상실에 대한 분노를 소화하지 못해서일 수도 있고, 빨리 권력을 빼앗아 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조급증 때문일 수도 있다. 단기적으로는 지지층 결집의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중장기적으로는 독약이다. 사실왜곡과 가짜뉴스는 오래 갈 수 없다. 사실에 기초해서 사회를 분석·진단하고, 그 위에서 이념과 전략을 짜며, 그것으로 국민의 심판을 받는 것이 맞다. 실사구시와 정직이야말로 힘의 원천임을 믿어야 한다.넷째,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세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절차와 수단도 목표 못지않게 중요하다. 최근 국회에서의 감금, 회의 방해 등은 잘못된 것이었다. 정치선진화와 민생국회를 기대해 온 국민들에게 실망을 안겨줄 뿐이었다. 국회를 장기간 공전시키는 것도 민생 민주정당의 길이 아니다. 그런 방식으로는 국민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 민주주의와 민생에 대한 진정성과 국가경영의 실력으로 국민의 신뢰와 감동을 끌어내야 한다. 다섯째, 정치에 대한 관점과 관련해서다. 정치에는 크게 두 측면이 있다. 하나는 사회갈등을 조정하고 통합해 내는 역할이다. 특히 입법으로 사회문제들의 제도적 해법을 제시하는 것은 정당과 국회의 고유 권한이자 책임이다. 정치의 다른 측면은 국가권력을 둘러싼 경쟁이다. 정권획득은 정당의 궁극적인 목표이기도 하다. 어느 정당이든 정치가 갖는 두 측면과 역할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하지만 최근 보수정당의 경우는 지나치게 후자에 치중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회통합과 입법과 민생에 대한 고민은 제쳐놓고 권력탈환에만 올인하는 것 같다. 그것도 실력으로가 아닌 증오심의 결집을 통해서다. 그러는 사이 나라는 극단의 싸움터가 되고 말았다. 중장기적으로 보면 집권에도 도움이 안되는 하책이다. 국민은 요즘 착잡하다. 합리적인 보수의 재건을 기대해온 국민은 더욱 심란하다. 막말하는 보수, 시대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보수, 사실왜곡 위에 서있는 보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보수, 권력탈환에만 올인하는 보수를 보며 절망하기까지 한다. 국민은 청소년들도 본받을 수 있는 교육적이고 품격있는 보수를 원한다. 대화와 입법으로 국민통합과 민생과 민주주의에 기여하는 열린 보수를 보고 싶어 한다. 나라를 위해서기도 하지만 그 전에 보수를 위해 드리는 고언이다. 대구를 위해서이기도 하다.

권순진의 맛있게 읽는 시…부부

부부 / 문정희부부란/ 무더운 여름밤 멀찍이 잠을 청하다가/ 어둠 속에서 앵하고 모기 소리가 들리면/ 순식간에 둘이 합세하여 모기를 잡는 사이이다// 너무 많이 짜진 연고를 나누어 바르는 사이이다/ 남편이 턱에 바르고 남은 밥풀 꽃만 한 연고를/ 손끝에 들고/ 어디 나머지를 바를 만한 곳이 없나 찾고 있을 때/ 아내가 주저 없이 치마를 걷고/ 배꼽 부근을 내어 미는 사이이다/ 그 자리를 문지르며 이달에 너무 많이 사용한/ 신용카드와 전기세를 문득 떠올리는 사이이다// 결혼은 사랑을 무효화시키는 긴 과정이지만/ (중략)// 부부란 서로를 묶는 것이 쇠사슬인지/ 거미줄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묶여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고 느끼며/ 어린 새끼들을 유정하게 바라보는 그런 사이이다- 시집 『다산의 처녀』 (민음사, 2010)............................................................ 5월21일은 둘이서 하나가 된다는 의미로 제정된 ‘부부의 날’이다. 부부란 엄밀히 말하면 계약관계이다. 오래전 법전을 들추어본 기억으로는 부부관계를 ‘서로 동거하고 부양하며 협조하는 관계’로 알고 있다. 육체적, 경제적, 정신적 상호 원조의무를 뜻하며, 더 쉽게 요약하면 사랑과 돈과 대화이다. 부부의 기종과 연식, 취향에 따라 어느 것이 더 비중이 있고 덜 할 수는 있겠으나 이 중 어느 하나만 탈이 나도 곧장 위험해질 수 있는 관계가 부부다. 대체로 나이가 들수록 상대적으로 중요해지는 것은 정서적 교감이고 대화라고들 한다. 물론 아무나와 무턱대고 이런 계약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왜 하필 나이고 당신인가. 우연인가 운명인가. 어느 시에서처럼 ‘아무리 털어도 떨어지지 않는 도꼬마리씨’같은 것일까. 왜 하필 내게 붙어 왔을까. 우연 같지만 필연이고 운명인 것이 부부다. 하지만 요즘은 ‘졸혼’이란 일본문화가 급속히 확산되어 우리한테까지 문화현상으로 옮겨와 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는 좋은 아내를 얻은 남자라고 탈무드는 말하고 있다. 탈무드에 따로 언급은 없으나 가장 행복한 여자 역시 좋은 남편을 얻은 여자일 것이다. 운명적으로 그런 좋은 남자, 좋은 여자를 만나기란 당연히 쉽지 않다. 처칠에 버금가는 존경을 받았던 영국의 유명한 재상 ‘디즈레일리’는 35세 때 15세나 연상인 과부와 결혼했다. 50세인 마리안느는 미모가 출중하지도, 지적 매력을 갖고 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결혼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갖추고 있었다. 그것은 사람을 다루는 기술과 존경심이었다. 언제나 미소로서 남편을 편하게 했고 힘을 북돋워주며 존경했다. 그리고 남편이 하는 일은 무엇이든 나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했고 실패하지 않으리란 믿음을 가졌다. 디즈레일리는 그런 아내를 고맙게 여기며 아내를 사랑으로 감쌌다. 그는 결혼생활 30년 동안 아내로 인해 마음 상한 일이 한 번도 없었다고 술회했다. 그러나 그들의 행복한 결혼생활은 첨부터 사랑을 기반으로 출발하지는 않았다. 마리안느는 당시 상당한 재력가였고 디즈레일리는 자신의 정치인생에 도움이 될 그 돈에 이끌렸다. 훗날 디즈레일리는 “사실 난 돈 때문에 당신과 결혼했어”라고 실토했다. 그러나 이어서 “만약 당신과 다시 결혼한다면 그때는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들에게 ‘결혼은 사랑을 무효화시키는 긴 과정’이 아니라 사랑의 긴 발효과정이었다.

권순진의 맜있게 읽는 시…그날

그날/ 정민경나가 자전거 끌고잉 출근허고 있었시야// 근디 갑재기 어떤 놈이 떡 하니 뒤에 올라 타블더라고. 난 뉘요 혔더니, 고 어린놈이 같이 좀 갑시다 허잖어. 가잔께 갔재. 가다본께 누가 뒤에서 자꾸 부르는 거 같어. (중략) 근디 눈물 반 콧물 반 된 고놈 얼굴보담도 저짝에 총구녕이 먼저 뵈데.// 총구녕이 점점 가까이와. 아따 지금 생각혀도......(중략) 총구녕이 날 쿡 찔러. 무슨 관계요? 하는디 말이 안나와. 근디 내 뒤에 고놈이 얼굴이 허어애 갔고서는 우리 사촌 형님이오 허드랑께. 아깐 떨어지도 않던 나 입에서 아니오 요 말이 떡 나오데.// 고놈은 총구녕이 델꼬가고, 난 뒤도 안돌아보고 허벌나게 달렸쟤. (중략) 아직꺼정 고놈 뒷모습이 그라고 아른거린다잉......- 5·18민중항쟁 27주년기념 백일장 시 부문 대상작..................................................................이웃집 아저씨가 단숨에 내뱉은 그때 ‘그날’의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 쓴 것 같은 이 시가 18세 소녀의 시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라는 찬사를 받았다. 5·18민중항쟁기념사업회가 당시를 경험하지 못한 학생들에게 민주주의와 공동체문화의 소중함을 일깨워주자는 취지로 2007년 개최한 백일장에서 대상을 차지한 당시 경기여고 3학년 학생의 작품을 보고 심사를 맡은 정희성 시인은 경악했다고 한다. ‘그날’의 일을 요즘 아이들이 알기나 할까 싶었는데, 항쟁을 겪은 사람도 이렇게는 쓸 수 없을 것을 어린 학생이 팽팽한 긴장감으로 ‘그날’의 현장을 이토록 놀라운 솜씨로 몸 떨리게 재현해놓았으니 말이다.정민경양은 여수에서 태어나 여섯 살까지 광주에서 자랐으며 어릴 때 들은 이야기와 강풀의 ‘26년’이란 만화가 원천이 되어 자연스레 시가 되었다고 한다. ‘그날’은 한 아저씨의 자전거에 올라탄 학생이 진압군에게 붙잡혀 끌려가는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도움을 청하는 학생을 진압군에게 내주고, 평생을 후회와 슬픔으로 살아야 했던 ‘나’에 대한 고해성사다. 산문 형식의 이 시에는 5·18에 대한 모든 것을 망라하였다. ‘학살당한 어린 시민군의 슬픈 얼굴, 항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없었던 소시민의 비애, 사람의 오금을 저리게 했던 진압군의 총구, 제 나라 국민에게 등을 돌린 비겁한 언론사들’여기에 살아남은 자들의 견딜 수 없는 슬픔까지, 5월의 아픔과 비극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5·18도 4·19나 6·25와 마찬가지로 역사 속으로 깊숙이 숨어 교과서 안에서 관념으로만 이해될 만큼 세월이 흘렀다. 현재와 맞닿은 역사로 이해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39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트라우마’를 겪는 ‘그날’ 그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끝나지 않은 5·18이다. 그리고 그때 항쟁을 무력 진압했던 우두머리가 멀쩡히 살아있고 그들과 맥이 닿은 정치세력이 일부 존재한다. 실체적 진실이 온전히 규명되지 않았고, 극소수이긴 하지만 아직도 북한군 투입설이나 폭도들의 대부분이 불량배들이라고 나불대는 이도 있다.최근 5·18에 대한 새로운 증언들이 이어지고 있다. 그 증언들은 그동안 침묵하고 봉인했을 뿐이지 대부분 다툼의 여지없는 진실의 언어라고 본다. 명백한 사실과 진실도 누군가 입을 떼지 않으면 묻혀버릴 수밖에 없다. 세월 참 많이 흘렀다. 이제 하루빨리 진실의 역사 위에서 과거를 넘어 미래로 나아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세상읽기…잘 살아라

잘 살아라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눈부신 오월의 하루가 열렸다. 따가운 태양으로 후끈 달아오르던 대지가 축복처럼 내리는 비에 젖는 항구 부산에서 향긋한 땅의 내음을 코끝으로 들이켠다. 역 마당에 피어난 이름 모를 하얀 꽃들이 다소곳한 자태로 비에 젖는다. 빨간 장미가 우거진 모퉁이를 돌아 기차역으로 들어선다. 정시에 떠나는 기차를 놓치지 않아야 늦지 않게 식장에 도착할 터인데 싶어 조바심이 난다.눈부시게 아름다운 오월, 친한 후배의 딸이 결혼하는 날이다. 세월은 얼마나 빠르게 날아가는지, 내가 오월의 신부가 된 지도 벌써 30여 년 전이니 말이다. 우연한 인연으로 친동기처럼 아끼는 사이가 된 후배, 그녀가 불룩한 배로 인턴이라며 내게 왔다. 아픈 아이를 돌보는 의사의 입장만 생각하던 철없던 선배는 그녀에게 어린이날 기념으로 장식할 풍선을 불게 했다. 만삭의 배로 심호흡을 많이 하고 몸을 많이 움직여야 순산한다는 얼토당토않은 이론까지 들이대 가면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내린 지시에 그녀는 충실하게 따랐다. 잘 부풀어지지 않는 풍선을 빵빵하게 불어대느라 급기야 어지럼증까지 느껴 누워서 호흡을 가다듬어야 했다니 말이다. 그때 낳은 딸을 출가시키는 날이라니 어찌 안 가볼 수 있으랴. 이런저런 바쁜 일들을 모두 다 싹 밀쳐두고 고속열차에 몸을 실었다. 담장 넘어 넘실대는 꽃들이 내게 충고하는 것 같다. 무슨 일이든 미루지 말 것. 그때그때 고마운 것은 갚아가며 인생의 즐거움을 맛볼 것, 무엇보다 자주 웃을 것, 가까이 있는 소중한 이들에게 잘할 것….천사 같은 얼굴의 두 사람이 혼인하려고 환한 얼굴로 서 있다. 온 마음과 정성을 다 하여 사랑하는 부부가 되어 효를 다하는 자녀가 되고 만인에게 존경받는 부모가 되어 행복한 가정 이루길 기원한다. 아버지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오월의 신부에게 온 세상의 축복을 다 빌어주고 싶다. 신부의 반짝이는 드레스를 보면서 음과 양의 조화를 표현한 유명 다기에서 보고 감동했던 그 순결하고 고결해 보이던 드레스를 떠올려본다. 이따금 찾아올지도 모를 슬픔과 미움의 감정들은 아예 막아주고 싶을 만큼. 나는 행복에 겨워하는 커플을 바라보면서 네 글자를 떠올린다. ‘미용고사’를. “미안합니다.” “용서하세요.”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언제나 이런 단어들을 스스럼없이 사용하면서 맑고 밝게 살아가기를 빌어주고 싶다. 우리의 모든 고통은 과거의 기억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하지 않던가. 지우개로 지우듯 나쁜 감정이나 기억을 깨끗이 없앨 수만 있다면 우리 마음의 고통은 눈 녹듯이 사라지지 않을까. 향기로운 오월, 결혼식장에서 식이 끝날 때까지 꼿꼿이 서서 지켜보며 나는 그들에게 ‘미용고사’를 마음으로 건넨다. 그리고 나를 소중이라고 부르는 이의 진심을 담은 결혼 30주년 기념 편지를 나지막이 읊조려본다. 오늘 새로운 발걸음을 시작하는 부부가 언제나 변함없이 하루하루 즐겁고 행복하게 살면서 해마다 오월이면 꺼내어 읽어보기를 희망하면서.‘1주년 지혼식: 아직 초보자여 종이에 먹물도 마르지 않는 상태를 말하니 그저 좋기만 할거구먼./5주년 목혼식: 상대방을 보아도 나무토막 보는 것처럼 무감각하니, 어허! 나무가 잘 자라려면 물을 주어야지./10주년 석혼식: 결혼식 때 장만한 놋쇠 그릇에 녹이 났으니 합심하여 잘 닦아서 후일을 대비하게./20주년 도혼식: 투박한 질그릇이 오히려 더 친근하니 담긴 음식 맛도 좋아라. 깨져도 붙여 쓸 수 있지만, 금은 없어지지 아니하니 미연에 주의하게./25주년 은혼식: 하얗게 빛나는 은 쟁반에 서로의 얼굴을 비추니, 비친 얼굴에 풍상 세월 흔적은 남아도 거울 같은 은쟁반에 마음마저 비칠레라./30주년 진주혼식: 상처와 오점을 싸안고 진주 보석으로 승화시키니, 녹아든 이물질은 흔적조차 없고 아름다움만 그윽하네./50주년 금혼식: 반백 세월을 같이 하였으니 서로가 금과같이 귀한 사람이라, 금관은 못 씌워 줘도 멋진 금가락지 한 개씩은 장만해서 끼워 봄이 어떨지./60, 70주년 금강혼식: 날로 자라는 다이아몬드와 같아서 주위의 부러움을 한껏 받고도 고귀함에 고개 숙여지니, 존경과 찬사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어라.‘ 기쁘고 행복하던 때, 또는 상대가 내 마음 같지 않아 화나고 슬프던 순간 등, 다양한 감정이 섞이더라도 이를 통해 조금씩 성장해 가는 것이 사랑이 아니겠는가. 풋풋하고 설렘 가득한 기억만을 건져 담아 언제나 상대를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고 공감하고 서로 축복해주기를, 그런 바람으로 첫날밤에 하면 좋은 약속이라 여기는 ‘결혼기념일’ 글을 아름다운 부부에게 보내며 소망한다. “잘 살아라.~!

아침논단…음악의 태동으로 살펴본 인센티브의 위력

음악의 태동으로 살펴본 인센티브의 위력박정호KDI 전문연구원인센티브(incentive)란 어떤 행동을 하도록 사람을 부추기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자극을 의미한다. 인센티브에 대한 영향은 인류가 처음 태동한 이후부터 줄곧 우리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왔다. 음악이라는 예술 장르의 형성 역시 예외일 수 없다.초기 음악을 형성하고 발전시켜 왔던 주된 동인은 동료와의 의사소통을 위해서였다. 원시인들 역시 동료와의 의사소통은 생존을 위해 중요했다. 맹수 등 외부로부터의 위험을 알려야 하고, 사냥이나 농사일에 성과를 낸 동료를 격려해줘야 했다. 이 과정에서 원시인들이 먼저 선택한 방식은 ‘말’이 아니라 ‘음악’이었다.이는 음악이 우리에게 의사소통을 위해 말보다 먼저 등장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인류학자들에 의하면 인간이 목소리를 통해 말을 하기 시작한 것은 대략 8만년 전이지만,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것은 그보다 50만 년은 더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원시인들은 당시 낼 수 있는 소리가 모음들에 지나지 않아 원활한 의사소통이 어려웠다. 인간은 모음은 비교적 쉽게 발성할 수 있지만, 자음을 내기 위해서는 상당한 훈련을 요구한다. 그렇다고 자음을 체계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 역량 또한 전무했다. 그래서 그들이 선택한 것은 음악이었다.그들이 낼 수 있는 발음인 모음을 높은 음역대로 발음하거나 반대로 낮은 음역대로 발음하면서 구분된 의사표현을 하려고 노력했으며, 모음을 길게 발음하거나 짧게 발음하기도 하고, 억양 등을 넣어 가면서 다양한 표현 방법을 구사하기 시작하였다. 이는 음정과 박자의 원시적 형태라 할 수 있다.이러한 모음의 높낮이, 장단을 과연 음악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하고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모음만을 사용해서 노래를 부르는 것을 버컬리즈(Vocalise)라고 하면서 정식 음악의 한 형태로 인정하고 있다. 작곡가 그리그의 솔베이그의 노래 후반부라든가 라흐마니노프 곡들 중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아~~’ 라는 모음만으로 훌륭한 음악을 구성해 냈다.원시인들은 모음을 사용한 노래를 통해서 동료들에게 맹수의 접근을 신속하게 알릴 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까지 인접했는지를 구분해서 정보를 제공해 줄 수 있었을 것이다. 노래를 통해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 부족민들이 흥에 겨울 때는 손뼉을 치고, 박자를 맞추면서 위협을 극복하는 데 공을 세운 동료들을 축하해 주었을 것이다. 공을 세운 동료를 기쁘게 해주는 노래이자, 그들에게 감사의 표시를 하는 노래들은 앞으로도 그들에게 동료들을 위해 노력해야 겠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어 주는 포상이자 인센티브였다.인류가 음악이라는 예술 행위를 하도록 부추기는 자극이 되어준 또 한 가지 측면은 음악을 통해서 병을 치료했다. 원시시대에는 사람들이 병든 것은 사람 몸 속에 악령이 들어갔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때문에 사람의 병을 치료하는 것은 사람 몸 속에 있는 악령을 내쫒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원시인들은 동료의 몸 속에 숨어 있는 악령을 쫓아내기 위해서 환자를 눕혀 놓고 옆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본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맹수와 유사한 소리를 내면서 악령도 무서워 도망가도록 유도했다. 이러한 소리가 조금 더 진화하여 악령을 쫓아내는 주문으로 변모하게 되었고, 이러한 주문은 일정한 억양과 음감을 띠게 되었다. 즉, 음악이 된 것이다. 오늘날 이러한 음악을 샤머니즘 음악이라고 부르며 무당이 굿을 하면서 부르는 노래라든가 장단을 맞추기 위해 사용하는 악기가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이처럼 대표적인 예술 형태인 음악은 우리에게 직접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해 주는 주요한 방식이었기에 탄생하였다. 동료들과의 유용한 의사소통의 수단이 음악이었으며, 병을 치료해 주는 유용한 도구가 음악이었다. 이러한 인센티브가 없었다면 음악이라는 장르는 인류와 지속적으로 함께해 오지 못했을 것이다.

권순진의 맛있게 읽는 시…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 권정생세상의 어머니는 모두가 그렇게 살다 가시는 걸까/ 한평생/ 기다리시며/ 외로우시며/ 안타깝게.../ 배고프셨던 어머니/ 추우셨던 어머니/ 고되게 일만 하신 어머니/ (중략)/ 어머니는 누구랑 살까/ 이승에 있을 때/ 먼 나라로 먼저 갔다고/ 언제고 언제고 눈물지으시던/ 둘째 아들 목생이 형이랑 같이 살까/ 아침이면 무슨 밥 잡수실까/ (중략)/ 어머니 사시는 거기엔/ 전쟁이 없을까/ 무서운 포탄이 없을까/ 총칼을 든 군대들이 없을까/ 모든 걸 빼앗기만 하는 임금도 없을까/ 무서워서 하루도 한 시도/ 마음 못 놓는 날이 정말 없는 것일까/ 그래서 헤어지는 슬픔도 없는 것일까/ 정말 울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중략)/ 너무 많이 배고프지 않았으면/ 너무 많이 슬프지 않았으면/ 부자가 없어, 그래서 가난도 없었으면/ 사람이 사람을 죽이지 않았으면/ 으르지도 않고 겁주지도 않고/ 목을 조르고 주리를 틀지 않았으면/ 소한테 코뚜레도 없고 멍에도 없고/ 쥐덫도 없고 작살도 없었으면/ (중략)/ 그리고 이담에 함께 만나/ 함께 만나 오래 오래 살았으면/ 어머니랑 함께 외갓집도 가고/ 남사당놀이에 함께 구경도 가고/ 어머니 함께 그 나라에서 오래 오래 살았으면/ 오래 오래 살았으면……- 동시집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 (1988)................................................................ 언젠가 수십 광년의 거리인 태양계 밖에서 지구와 환경이 비슷한 행성이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접했다. 그때, 나는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을 넘어 지구별에서 저 세상으로 떠난 사람들끼리 따로 한 살림 오붓하게 차려 살고 있진 않을까란 공상을 했다. 권정생 선생과 그 어머니의 이승에서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든 시를 읽으면서 내 공상도 활기를 띄어 내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도 이랬으면 하고 바랬다. 그곳에 전입신고 마치고 “아이고, 이제 왔나, 고생 많았지” “보고 싶었어요, 어머니” 외할머니도 뵙고, 순영이 누나도 만나고, 그리운 사람 모두와 인사를 나눈 뒤 이제는 자리 잡고 지낼 만 하신지. 이승과 크게 다르지 않은 무늬로 오래오래 사시다가 훗날 우리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권정생 선생의 섬세한 애정이 구구절절 배어있어 이오덕 선생 말씀 마따나 '무조건 감동적'이다. 선생 자신도 12년 전 5월17일 ‘보리밥 먹어도 맛이 있고’ ‘나물 반찬 먹어도 배가 부른’ 그곳으로 떠나가서 ‘어머니랑 함께 외갓집도 가고’ ‘남사당놀이에 함께 구경도 가고’ 그러면서 오래오래 잘 살고 계실 것이다. 선생은 자발적 가난을 실천하며 인류를 진정으로 사랑하신 이 시대의 성자셨다. 그리고 줘도 받지 않으실지 모르겠으나 누구보다 노벨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한 평화주의자셨다. 선생은 다시 태어난다면 건강한 몸으로 태어나 스물다섯 살쯤에 스물 두세 살의 처녀와 벌벌 떨지 않고 예쁜 사랑을 하고 싶다고 고백했다. ‘그 나라’에서 오래오래 사시다가 행여 이 세상으로 다시 오신다면 꼭 그러시길 바란다. 내 어머니도 내 아버지보다 조금만 더 마음씨 착한 남자 만나서 하고 싶은 그림 그리며 속 하나도 안 썩이는 딸 아들 하나씩 다시 낳아 진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이경우의 따따부따…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지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지지난 9일의 문재인 대통령 취임 2주년 기념 대담은 문 대통령의 판정승으로 끝났다. 상대가 대통령이었다. 우리는 이런 각본 없는 대담에 익숙하지 않다. 그런데 상대인 대통령의 반응도 그렇고 대담 내용보다 대담자의 자세에 대한 비난이 일고 있는 것도 그 반증이다. 시청자들에게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기자회견과 비교됐을 법하다. 평소 장관은 물론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조차 독대하기 어려웠던 박 전 대통령은 기자회견도 힘들었다. 탄핵되기 전인 2016년 1월 신년 기자회견은 당시 정연국 청와대대변인은 “사전 질문을 조율하지 않고 질문자도 미리 정하지 않았다”고 자랑했다. 그러나 질문자와 질문 내용이 사전에 흘러나오면서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비난을 피하지 못했다. 거기에다 내용면에서도 알맹이 없는 수준 이하였다는 혹독한 평가를 받았다.문 대통령은 취임하면서 소통을 강조했고 몇 차례 직접 대본 없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국민들이 받아들이는 체감온도는 논외로 치더라도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주려 노력했다. 이번 취임 2주년 회견을 어떤 모습으로 할 것인지 내부적으로 많은 논의를 거쳤을 것이다. 형식과 내용면에서 고심 끝에 나온 방안이 KBS기자와의 대담 형식이었다고 한다. 문제는 대담자인 송현정 기자였다. 야당이 주장하는 ‘독재자’라는 평가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바로 들이대기도 했고 대통령의 답변 도중에 말을 끊기도 했다. 대통령 답변이 삼천포로 빠지면 표정을 일그러뜨리기도 했다. 그러자 청와대 청원게시판과 KBS 시청자게시판에는 송 기자의 공개 사과를 요구하는 청원이 현재진행형으로 잇따르고 KBS 시청료 거부운동으로 확산되기도 한다. 문 대통령과 대담하는 송 기자는 내가 보기에도 어깨에 힘이 너무 들어갔다. 박근혜 전 대통령 당시의 기자회견에 대한 평가나 상대가 대통령인데 대한 국민적 감시를 너무 의식한 탓일 터다. 생글생글 웃으면서 긍정적인 이야기로 수위조절 했다면 대통령 페이스에 말려 아부한다고, 그게 무슨 대담이냐고 매도당할 테고 진작 그럴 줄 알았다는 돌팔매를 각오해야 했다. 그러니 어깨를 석고붕대로 고정하고 눈동자에도 힘을 주고 안면 근육은 강직도를 한껏 높였다. 그래야만 시청자들이 짜고 치는 고스톱이 아니라고 믿어 줄 것이라고 자기검열 했을 것이다. 기자의 질문 자세를 두고 버릇이 없다거나 수준이 낮다거나 평가할 수는 있지만 기자는 인터뷰이에 대한 인격적 존경과 업무적 공정 사이에서 자신의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직업인이다. 그러니 기자에게 예의 없는 질문은 애초에 없다. 단지 뻔한 질문을, 답변을 얻어내지 못하는 줄 알면서도 질문을 위한 질문을 하거나, 상대의 인격을 무시하고 모욕을 주거나, 공개적으로 창피를 주기 위한 질문은 노 생큐다.국민들은 기자를 인터뷰이의 취향과 관심사에 추임새나 넣는 관제언론 시대의 리포터로 알고 있는 것일까. 그런 현상은 사회적 정치적으로 영향력이 큰 상대일수록 더욱 심할 수밖에 없다. 송 기자에 대한 비난도 어쩌면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의 대통령 심기를 지레 걱정하는 오버가 만들어낸 결과가 아닌지 의심된다. 회견 이후 송 기자와 KBS에 대한 네티즌들의 빗발치는 항의에도 문 대통령은 전혀 불쾌해하지 않았다고 청와대 핵심관계자가 전했다. “오히려 더 공격적인 공방이 오갔어도 괜찮았겠다”는 문 대통령의 반응은 대담자인 송 기자나 KBS 방송국은 물론 대통령 지지층이나 일부 항의하는 국민들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권력자를 대하는 기자들의 인터뷰 준비와 대응 자세의 대전환을 요구한다. 질문에 빠진 내용이 없을 수 없다. 대담에서는 경제 남북문제 국내정치 등 한 가지 주제만 하더라도 세미나를 열어 답을 찾아야 할 사안들도 있는데 모두가 만족할 답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어떤 형식이든 열린 자세의 대담은 자주 할수록 좋다. 그것이 답답할 수밖에 없는 국민에게는 소통의 방식으로 이해될 것이니까. 국민들은 그런 대담에서 대통령의 대답을, 그 행간까지 읽으면 될 일이다.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을 보아서야 되겠나.

당직변호사

▲17일 여인협 ▲18일 이상욱▲19일 이상은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경제칼럼…절반만 사랑하는 사람과는 결혼할 수 없다

절반만 사랑하는 사람과는 결혼할 수 없다이부형현대경제연구원 이사 어느 날 한 남자가 연인인 여자에게 당신을 사랑하니 자기와 결혼해달라며 청혼했다. 그러자 그녀는 굉장히 난처한 듯 ‘어떻게 하지. 나는 당신의 딱 절반만 사랑하는데. 내가 사랑하는 당신의 그 절반이라면 결혼할 수 있어요’라고 답했다. 이에 남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결혼할 건지 말 건지 결정하길 강요했고, 그녀는 또다시 ‘아무리 그래도 당신의 절반밖에 사랑하지 않는데 어떻게 온전한 당신과 결혼할 수 있겠어요’라며 거절했다.남자가 얼마나 황당해했을지도, 무리한 결정으로 딜레마에 빠지지 않으려는 그녀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난데없이 웬 뜬구름 잡는 이야기? 아니다. 요즘 우리사회에서 첨예하게 벌어지고 있는 소득주도성장의 토대에 관한 논란을 보면 흑과 백, 선과 악, 득과 실 등 이분법적인 사고에 근거해서 어느 한쪽을 무리하게 선택하려는 흑백사고의 오류(black-or-white fallacy)에 빠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들어서 꺼낸 이야기다.찬성하는 쪽은 우리 경제가 성장한 만큼 분배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하고, 반대하는 쪽은 그것은 해석상 오류이고 오히려 분배를 위한 임금을 인위적으로 올리면 시장 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고 맞서고 있다. 마치 헤어질 것처럼 결혼을 강요하는 듯한 남자와 그 남자의 절반만 사랑하기에 아니, 그 남자의 나머지 절반을 사랑하지 않기에 결혼할 수 없다는 그녀가 맞서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어느 쪽 주장이 더 타당할까? 소득주도성장의 토대에 관한 최근 논란은 실질 GDP 성장률과 실질 임금 상승률 간의 격차 또는 노동소득분배율(국민소득에서 차지하는 피용자보수 비중)의 변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만약, 실질 GDP 성장률에 비례해 실질 임금이 상승하거나, 노동소득분배율이 상승하면 분배가 개선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논란의 내용을 살펴보면 서로 다른 기준으로 산출한 결과를 두고 공방을 주고받고 있어서 어느 쪽 주장이 더 타당한지 판가름하기 어렵다.분명한 것은 어느 쪽이든 비교의 기준이 되는 것은 GDP나 국민소득처럼 부가가치로 환산된 우리나라 전체의 생산성을 나타내는 지표라는 점이다. 다시 말하자면 생산성과 분배가 큰 괴리 없는 상태를 유지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고, 나아가서는 생산성 개선 없는 분배는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나눠 줄 양이 일정 수준에서 정체될 경우, 분배는 단순히 더 많이 가진 자와 그렇지 않은 자 사이의 제로섬게임으로 변질되어 또 다른 문제로 비화할 것이 뻔하다.더군다나 2050년이면 우리나라는 저출산 고령화로 전체 인구 중 경제활동인구가 50% 수준으로 떨어지고, 65세 이상 인구가 40% 정도로 확대될 전망이다. 만약, 이 전망이 앞으로도 바뀌지 않는다면 분배에 필요한 자원 규모는 급격히 팽창할 것이다. 생산성의 개선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분배할 자원은 턱없이 부족해진다는 것이다. 물론, 엄청난 부작용을 감수하고서라도 윤전기를 막 돌리면 감당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아는 바이다.다행스럽게도 최근의 논란에서는 임금 상승 등에 따른 비용 상승, 고용 환경 개선 지연, 자영업 경영환경 악화 등 소득주도성장정책이 기대한 만큼의 결과를 아직 얻지 못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양측 모두 인정하는 분위기이다. 또, 중장기적으로는 혁신을 통해 경제 전반의 생산성을 높여 지속가능 분배를 위한 기반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도 서로 접점을 찾고 있는 것 같아 한시름 놓인다.앞으로의 논의는 어떻게 생산성을 높여 나눠줄 파이를 키울 것인지, 또 이렇게 해서 커진 파이를 어떻게 합리적으로 분배할 것인지에 집중하면 좋겠다. 나아가 분배시스템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 모니터링하고 부족한 부분을 어떻게 보완할 것인지에 대한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성장이 먼저냐 분배가 먼저냐가 아니라 성장과 분배가 동시에 합리적으로 이루어지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딱 절반만 사랑하는 사람과 어떻게 결혼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