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성병원 · 대구하나센터 업무협약

해성의료재단 해성병원(이사장 이은지)은 19일 해성병원에서 더나은세상을 위한 공감 대구하나센터와 대구지역 탈북민들의 건강증진과 의료지원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당직변호사

▲20일 조상희 ▲21일 임성진 ▲22

해바라기

해바라기 / 원무현아버지/ 뽕밭에 묻어야 했던 날/ 나와 어린 동생은 장맛비 속에/ 하염없이 고개를 꺾었지요// 바람 앞에 촛불처럼 겨우 붙어 있던 목/ 추스르신 어머니/ 아픈 목을 쓸어안으며/ 팍팍한 세상 잘 떠났지 뭐/ 죽은 사람은 죽은 것이고/ 산사람은 살아야지/ 팽! 코를 푸실 때/ 쪼개진 구름 사이에서/ 색종이 같은 햇살이 쏟아져 내렸지요/ 어머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얘들아 해바라기 같은 내 새끼들아/ 고개 빳빳이 세우고 저기/ 저기 해 좀 보아/ 아무리 보아도 어머니/ 어머니 눈엔 아버지 얼굴만 떠있었는데요- 시집 『홍어』 (한국문연, 2005).......................................................아마추어 시인의 시들이 실패하는 이유가 여럿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무언가를 자꾸 설명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나도 전에 그랬고 지금도 그 습성은 남아있다. 제 스스로 시의 설계도를 깔끔하게 그려낼 재간이 부족한 탓도 있겠고, 독자들의 감상수준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하여 납득과 공감을 얻으려다 도리어 난삽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반면에 ‘시적 장치’의 지나친 비약과 함축, 지적인 시에 대한 막연한 동경, 혹은 ‘시적 상상력’을 핑계로 문맥의 부정확을 방기하는 것 역시 초보 시에서 자주 보이는 결함들이다.시의 난해성 여부와 문학성과는 거리가 멀다. 대중성 획득을 위한답시고 억지 이미지를 덧씌우거나 낡고 다 아는 메시지를 에워싸는 상투적인 서술이 지적 받는 것이지, 쉽게 소통 되는 시가 문제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맥락도 없이 난해한 시는 지적인 시로 분칠한 것일 뿐 문학성과는 더더욱 거리가 멀다. ‘문학성’과 ‘대중성’을 한꺼번에 얻을 수 있다면 그야말로 바람직한 좋은 시의 형태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원무현의 시도 같은 미덕을 지니고 있다. 우선 그는 좋은 시인으로서의 자질과 기질을 지니고 있다. 그의 모든 감각기관과 세포가 일제히 시를 향해 열려있고, 오랫동안 ‘시적인’ 삶을 살아냈기 때문만은 아니다.시의 언어가 생리적으로 체험이나 사물의 구체를 겨냥하기 때문만도 아니다. 좋은 시인은 그의 내면의 상처를 복기, 분석하여 그것에 보편적 의미를 부여할 줄 아는 사람이다. 고만고만한 시인들의 대개는 자기의 감성적 상처를 지나치게 과장하거나 그것을 억지로 감춤으로써, 끝내 추상이나 힘겨운 감상의 망토를 벗지 못하는데 반해 원무현의 시에는 삶과 자신의 체중이 고스란히 실려 있다. 서정의 갈래는 각기 다르지만 함민복, 도종환, 유홍준, 문동만 등의 시가 그러한데 그리 읽혀지는 시인은 의외로 많지 않다. 그의 첫 시집 ‘홍어’에는 삭힌 홍어만큼이나 그 향취가 농후하고 불콰한 기색이 역력하다.‘해바라기’는 시인 자신의 상처와 회상에 머물지 않고 시를 읽는 사람에게도 똑같은 정서적 반응으로 자리하게 되는데, 사실은 시집 표제작인 ‘홍어’가 농도에 있어서는 더 짙은 편이다. 한 편의 시로 빙그레 미소를 머금거나 가슴이 따뜻해지고 머리가 맑아질 때가 있다. 흔치 않지만 눈물을 자아나게 하는 시도 있다. 웃음과 울음은 맥박수를 증가시키고 혈액순환을 돕고 산소의 호흡량을 증가시켜서 건강에 이롭다고 한다. 오히려 울음은 눈물을 통해 체내의 유해한 독소물질이 빠져나가기 때문에 웃음보다 더 유익하다고 한다. 그래서 예전엔 명절 다음날 영화관을 찾아 팽! 울음 코도 곧잘 풀었다.

나도 뻔뻔하게 살고 싶다

나도 뻔뻔하게 살고 싶다살다보면 생각지도 않았던 귀인을 만나기도 하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장자가 수레를 끌고 가다 수레바퀴 자국에 갇힌 붕어 우화가 그런 것이다. 강물을 끌어 오는 수고 보다 지금 당장 한 바가지의 물이 필요하다는 것 아닌가. 병상에서 10시간 이상을 꼼짝없이 누워 지내야 하는 처지에서도 신체의 생체 시계는 여전히 가동됐다. 참으로 참기 힘든 것은 소변 욕구였다. 아랫배는 탱탱하게 팽창되고 방광은 이미 용량을 초과한 지 오래다. 그러나 아무리 용을 써도 소변은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정신은 또렷해도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한 아랫도리는 내 몸이 아닌 듯 전혀 감각이 없었다. 실례하겠다며 내 배 위에 올라앉은 간호사는 능숙한 솜씨로 내 아랫배를 주무르면서 “편안히 계시면 됩니다” 하고 나를 안심시켰다. 한 참 있으니 그의 말처럼 편안해졌다. 세상에, 이렇게 시원하고 또 통쾌하기까지 하다니. 고마웠다. 보수를 받고 일하는 직업이라지만, 이렇게 누구의 불편함과 고통을 해결해서 편안하고 기분 좋게 만들어주니 직업 치고는 정말 좋은 직업 같다. 고마운 사람을 여러 번 만났지만 다시 잊지 못할 고마움이었다. 덕분에 배뇨의 황홀경에 빠진 상태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는 장면을 TV에서 봤다. 문 대통령은 의혹만으로 인재를 포기할 수는 없다며 가족들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조 후보자를 장관에 임명했다. 일전 불사의 결의를 만천하에 공표한 셈이다. 아니, 대통령님. 법 위반 사항은 형사법으로 해결해야 하고 그런 문제라면 장관 후보자로 추천할 때 죄다 걸렀을 것 아닙니까? 지금 국민들이 실정법 위반을 따지는 겁니까? 국무위원 후보자가 실정법 위반이면 이건 아예 후보 예비 ‘풀’에도 못 끼는 것 아닙니까? 도대체 청와대 인사 시스템은 뭐 하는 겁니까?조국 장관의 교수 시절, 청와대 민정수석시절 보수 진영이나 기성세대를 향해 날리던 예리한 어퍼컷들이 하나 둘 새겨졌다. 이제 그는 인사 청문 대상자의 비도덕성이나 위법으로 인한 사정당국의 혐의만으로도 사퇴했던 수많은 후보자들을 기억했어야 했다. 있는 집안 출신으로 서울대 법대 박사에 모교 교수라니, 학벌에다 부와 권력까지 모두 가진 사람이 자기 말처럼 진보적 사상을 갖고 있었으니 강남좌파 엘리트가 도덕성과 공정성으로 보수 우파 공격의 선봉에 섰던 것이다. 그랬던 그가 사실은 기득권을 향유했고 이용했음이 들통 난 것이다. 자녀 교육과 가정 관리에서 인간의 욕망을 억제하지 못한 속물이었는데 억지로 감춰온 위선의 민낯을 스스로 보여 준 것이다. 거기에다 재직했던 서울대에는 제자들의 비난에도 사표 대신 휴직계를 내는, 장관직 이후의 교수직까지 보장 받겠다는, 양 손에 떡을 움켜 쥔 그의 치졸한 욕심에 실망하는 국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건 마치 얼굴 예쁜 여자아이가 공부도 잘 하는데다 집안도 좋아 주위의 부러움을 사는 것과 같았다. 거기에다 마음씨까지 고왔으니 주위의 시샘을 넘어 또래의 우상이 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얼굴도 병원에서 뜯어고친 성형미인이었고 성적은 편법과 특혜로 만들어진 성과임이 들통 난 꼴이었다. 그런 조국 장관의 뻔뻔함은 보통 사람은 흉내낼 수 없을 정도의 맷집이다. 말로만 “성찰하겠다” “내 자신을 다시 돌아보겠다” “미안하다” 말고 그렇게 반성하면 내려와야지. 장관직을 끝내 버티는 고집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가. 자신만이 검찰 개혁을 완수할 수 있다는 권력욕을 사명감이라고? 국민에게 봉사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다. 권력을 잡고 검찰을 개혁하겠다는 오만함보다 목마른 붕어에게 한 바가지 물을 주는 조국이었으면 좋겠다. 시원하게 소변 한 번 보게 해 주는 그런 시원함을 말이다. 지금 국민들은 조국 장관이 청와대에 들어가기 전에 기득권을 향해 날카롭게 쏘아대던 자신의 트윗처럼 산뜻한 도덕적 처신을 기다린다. 나도 저렇게 뻔뻔하게 살고 싶다는 사람들이 늘어날 까 두렵다.

가을의 불꽃놀이 ‘단풍’

가을의 불꽃놀이 ‘단풍’김종석기상청장높디높은 파란하늘과 울긋불긋 펼쳐진 단풍 물결에 감탄하고야 마는 가을이다. 어느새 코끝으로 서늘해진 바람의 냄새를 맡고 나면 매번 반복되지만 매번 계절 변화에 마음이 분주해지곤 한다. 특히 일엽지추(一葉知秋), 나뭇잎 하나의 떨어짐을 보고 가을의 영긂을 안다고 했던가. 물드는 단풍, 떨어지는 낙엽에 깊어가는 가을을 실감한다.가을의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단풍’은 여름과 가을이 교차하는 시기로 인해 잎 속에 생리적 반응이 일어나면서 녹색의 잎이 적색, 황색, 갈색으로 변하는 현상을 이른다. 사실 이러한 단풍은 나무들이 겨울을 대비해 다이어트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무의 겨울나기를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나무는 땅 속에 뿌리를 두고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식물이기 때문에 동물처럼 추위와 더위를 피해 동굴과 같은 피난처를 찾을 수 없고, 사람처럼 옷을 입고 벗을 수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혹한을 스스로 견뎌내기 위한 적응 과정으로 잎을 물들이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잎과 줄기에 흐르는 수분을 줄여 겨울철 추위를 대비하는 것이다. 기온이 낮아지고 수분이 줄어들게 되면 나뭇잎은 광합성 작용을 멈추게 되어 엽록소가 저하되고, 그렇기 때문에 평소의 초록빛은 점점 사라지고 대신 엽록소의 초록빛에 가려 제 색을 드러내지 못하던 색소들이 얼굴을 내밀게 되는 것이다.단풍잎에서는 ‘안토시안’이라는 붉은 색소가, 은행잎에서는 ‘카로타노이드’라는 노란 색소가 선명해지면서 아름다운 알록달록한 빛깔을 뿜게 된다. 하지만 아름다운 단풍도 봄날에 핀 꽃처럼 열흘을 넘기지 못하고 땅에 떨어지고 만다. 낮 기온이 5℃ 이하, 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 나무뿌리는 수분 흡수를 완전히 멈추기 때문이다. 낙엽은 따뜻했던 날씨가 차가워질 무렵부터 고동식물의 잎이 말라 떨어지는 현상으로, 나무가 월동준비를 위해 하는 첫 단계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또한, 단풍 이외에 사계절 내내 푸른 소나무와 같은 상록침엽수도 낙엽이 진다. 보통 낙엽은 가을에 지는 것이 통상적이지만, 상록침엽수들은 1~2년에 한 번씩 꼭 가을철이 아닌 사계절 어느 때고 낙엽을 만들어 내 그동안 나무에 지니고 있던 불필요한 성분들을 배출하게 된다.단풍이 잘 들기 위해서는 햇살이 잘 들고 강수량이 적으며, 일교차가 커야 한다. 반대로 단풍이 잘 들지 않는 조건은 가뭄이 지속되거나 급속히 기온이 떨어지고 찬비가 내리는 경우라 할 수 있다. 이렇듯 단풍도 계절적 조화가 잘 이루어져야 아름답게 물든다. 우리나라의 단풍이 아름다운 것은 고운 단풍이 들기 위한 조건에 맞는 날씨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즉 가을에 비가 적게 오고 밤낮의 기온차가 크기 때문이다. 보통 우리나라 이외에 동북아시아 및 미국 북동부 지역이 세계적으로 아름다운 단풍이 드는 지역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단풍 시기는 예측이 어렵다. 매년 가을이 되면 단풍 시기를 발표하지만, 이는 미래를 예측하는 일이다 보니 오차가 있기 마련이다. 또한, 현재 단풍시기를 예측하는 방법은 통계에 기반한 방법이기 때문에 요즘처럼 과거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 기후가 계속될 때는 예측이 더더욱 어려워진다. 하지만 단풍 나무과에도 여러 종류의 나무가 있고, 단풍이 드는 순서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일단 첫 단풍의 시기만 잘 관찰하면 그 이후의 단풍 예측은 비교적 정확한 편이다. 단풍 시작일은 산 정상에서부터 20% 가량 물들었을 때를, 절정일은 산 전체 중 80% 물들었을 때를 이른다. 또한, 단풍의 절정 시기는 보통 첫 단풍 이후 2주 정도 뒤에 나타난다는 것을 기억해두었다가, 산행 계획을 잡을 때 참고하면 된다.기상청 홈페이지에서도 9월 하순부터 단풍 시기에 대한 정보를 서비스하고 있다. 국내 20여 개 유명산에 대해 단풍이 시작된 산의 경우 빨간 단풍잎 이모티콘 표시를 통해 어느 지역에서 단풍이 시작되었는지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최근에는 국민들이 직접 관측하고 제보하는 날씨제보 제도를 활성화하고 있다. 기상정보를 소비하는 소비자의 입장에서, 날씨와 계절을 직접 제보하고 공유하는 제보자가 되어 기상정보의 다양한 소통을 유도하기 위한 제도다. 산행하면서 돌발기상을 만나거나 아름다운 단풍 절경을 만나면 사진 또는 동영상 촬영을 통해 제보해 주면 그 지역 등산을 준비하시는 분들에게 매우 유익한 정보가 될 수 있다. 이번 가을은 알록달록한 경이로움의 부름을 받아, 자연이 주는 불꽃놀이에 흠뻑 빠져보자.

계층이동의 기회, 과정, 결과

계층이동의 기회, 과정, 결과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수험생 가정에서 고속도로 정체가 아주 심한 날 갑자기 서울에 가야 하는 일이 생겼다. 서울 어느 특정 지점에 고3 수험생이 보호자와 함께 오면 명문대학 입학에 아주 유리한 특혜를 주는 이벤트가 있기 때문이다. 단 대구에서 출발해 자동차로 와야 하고 선착순 100명에게만 혜택을 준다. 그 공고는 당일 오전 6시에 있었다. 그 소식을 접한 수많은 가정이 아이를 태우고 서울로 출발했다. 동대구 IC와 북대구 IC는 몰려든 차량으로 붐볐다.고속도로는 전 구간이 4차선이다. 아무리 마음이 급해도 교통 법규는 지켜야 한다. 1차선은 추월선이기 때문에 추월할 때만 들어가야 한다. 속도가 느린 화물차는 주로 4차선을 이용한다. 일반 승용차는 2, 3차선으로 주행한다. 차종은 개인의 형편에 따라 달랐다. 고가의 고급 승용차, 폐차 직전의 낡은 차, 심지어 화물차도 있었다. 성능이 탁월한 고급 승용차는 감시 카메라가 없는 곳에서는 규정 속도 이상으로 달리기도 했다. 어떤 차는 아무리 엑셀레이트를 밟아도 시속 100km도 안 나와 화물차에게 추월당하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최선을 다해 목적지에 도착해 보니 이미 선착순 100명이 마감된 상태였다. 탈락한 자들이 자신의 차량 성능을 아쉬워하면서 낙담한 아이를 달래며 돌아서려는데 한쪽에서 사람들이 모여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리 중 한 사람이 이번 이벤트는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며 입에 거품을 물고 주최 측을 성토하고 있었다.순번 안에 든 일부 차량은 시종일관 1차선으로만 달렸다는 것이다. 탈락한 사람들은 엄청 배신감을 느꼈다. 화물차로 줄곧 4차선으로 달려온 사람은 1차선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조차 몰랐다며 허탈해했다. 차량 성능이 좋은데도 법규를 지켜 주행선으로 달려온 사람들 역시 억울했다. 법규를 지킨 자신의 고지식함을 자책했다. 무엇보다 화가 나는 것은 시종 1차선으로만 달려 순번 안에 든 사람들이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뒤늦게 도착한 사람들을 불쌍하다는 듯이 바라보는 그 시선이었다. 그들 중에는 수험생 학부모의 눈에 익숙한 사람도 있었다. 그 고위직 인사는 평소 우리 사회에서 반칙과 특권을 추방해야 한다고 강조해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았다. 심지어 그는 한 방송에 출연해 상습적으로 추월 차선으로만 달리는 운전자는 반드시 색출하여 운전면허를 박탈해야 한다며 목청을 높이기도 했다. 그런 사람이 법규를 어기며 시종일관 추월선으로만 달릴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불공정한 게임에 항의하던 사람들이 그를 지목하며 이 행사는 무효라고 대들자, 그는 “나는 서울에 그 전날 볼일이 있어 먼저 와 있었습니다. 운전은 아내가 해서 정확한 과정은 잘 모르겠습니다. 규정을 지키며 2, 3차선으로 달린 사람에겐 미안합니다. 이제부터는 제가 앞장서서 모든 사람들이 법과 규칙을 지킬 수 있도록 만들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어이가 없었다. 지금 당신은 어떤 차를 타고 어느 차선으로 주행하고 있는가.서울대 수시에 합격한 학생들의 비교과 실태가 나왔다. 합격자는 평균 30회 수상을 했다. 최다 수상 학생은 108개를 받았다. 고교 3년 재학 기간 동안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상을 받은 것이다. 이게 정말 가능할까. 봉사활동은 평균 139시간이었다, 400시간이 넘은 학생도 6명이나 있었다. 하루 4시간씩 100일을 봉사해야 한다. 이 또한 가능한 일일까. 전공적합성 지표인 동아리 활동은 평균 108시간이었고 최다 학생은 374시간이었다.창의력이 생존 수단이 되는 4차산업혁명의 시대에 객관식의 현행 수능 비중을 무조건 높일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전형의 다양성과 학생부종합전형은 유지돼야 한다. 다만 투명성, 공정성, 신뢰성을 높여 깜깜이 전형이라는 불신을 해소해야 한다. 지금은 학종의 평가 과정이 과거보다는 투명해졌고 신뢰성을 얻어가고 있다. 대학은 평가 과정과 그 결과를 계속 공개하여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대학입시가 계급 논쟁으로 발전하면 정글의 법칙만 활개 치게 된다. 교육을 통한 계층이동의 통로가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열려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해야 한다. 기회는 균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대입전형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끝판왕’ 부동산대책은 무엇을 잡았나

‘끝판왕’ 부동산대책은 무엇을 잡았나이부형현대경제연구원 이사 지난해 9월13일 정부는 지속적인 규제에도 불구하고 뛰는 집값이 잡히지 않자 부동산 대책의 ‘끝판왕’이라 불릴 만큼 강력한 규제책을 발표했다. 9·13 부동산 대책이라 불리는 이 정책에는 다주택자에 대한 중과세, 대출규제, 3기 신도시 등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와 같은 이른바 대출과 세금 및 공급이라는 부동산 관련 3종 세트가 망라되어 있다. 즉 투기적인 수요는 최대한 누르고 실수요 충족을 위한 공급은 늘려 부동산시장을 안정화하겠다는 것이다.그러다 보니 대책 발표 당시만 해도 부동산시장 전반이 하향 안정화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다. 이런 기대감이 반영된 탓인지 실제로 지난 1년간 서울과 지방의 아파트 매매가격은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까지만 보면 정부의 대책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것 같았고, 앞으로도 안정화되어 곧 합리적인 수준에서 누구나 살 집을 얻을 수 있겠다는 또 다른 희망도 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부동산시장이 완전히 망가져 경제에 큰 부담을 주지 않을 정도의 선에서 말이다.하지만 실상은 정책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서울 부동산 가격은 최근 다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고, 민간택지 내 분양가 상한제 시행에 앞서 공급 부족 현상이 심화될 것이라는 기대에 신축은 물론 입지와 가격 등 경쟁력을 갖춘 오래된 주택도 신고가를 경신하고 있다.이에 반해 지방은 소수 광역시를 제외하고는 가격 하락에 신규 공급물량도 많아 그야말로 암흑기를 보내고 있다.특히 가격하락에도 수혜자는 그다지 많지 않고, 오히려 시장 불안에 전세 자금을 떼이는 사례가 발생하는 등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무엇보다 부동산시장의 침체가 지방 경기 악화의 도화선이 될 가능성이 크게 높아졌고, 우리나라 전체 경기 회복에도 큰 짐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투기와 집값은 끝까지 잡겠다는 각오로 대책을 마련했다는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과연 누구를 위해 또 무엇을 잡았는지 궁금하는 게 세평이다. 더군다나 현 정부 출범 이래 본 대책까지 17개월 동안 두달에 한 번꼴로 부동산 대책이 발표되었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더 그렇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부동산 대책이라고 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지만 돌이켜 보면 애당초 대책의 방향성이 시장의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부동산시장도 기본적으로는 주택이라는 상품 자체의 특성은 물론 수요와 공급이라는 상식에 가까운 이론을 바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이는 최근 국내 부동산시장에서 벌어지는 현상만 보더라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전반적인 수요는 잡았을지 모르나 특정 지역이나 주택이 아니면 거래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시장과 혹시라도 거래가 성사되면 가격 불안을 부추기는 시장, 공급은 확대하려는 데 수요 분산의 진전 가능성 예측이 어려운 시장, 한쪽에서는 공급이 넘쳐나는데 다른 한쪽은 공급이 부족한 시장 등이다. 물론 부동산이라는 재화가 가지는 특성상 수급조절이 단기간에 전국적으로 이루어지기는 어렵다. 또 일부 투기적 성향을 지닌 수요자와 공급자의 도덕적 해이가 부동산시장의 불안을 더 조장하기도 한다. 이런 점을 고려하더라도 지금의 부동산시장은 매우 기형적이다.부동산시장은 단순히 주택이라는 상품 자체만 공급하고 소비하는 시장이 아니다. 짧게는 현재 수요자와 길게는 그 자녀들의 삶을 좌우할 수도 있는 여건을 공급하고 소비하는 시장이기도 하다. 꾸준히 주택을 공급해도 수요가 집중되어 가격이 널뛰기하는 곳을 살펴보면 생업 영위, 교육, 치안, 문화생활 등 정주에 필요한 요건을 두루 잘 갖춘 곳이거나, 앞으로 그렇게 될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부동산시장의 안정을 위해서는 이러한 특성들이 잘 반영된 수급조절대책이 중장기적으로 일관성있게 지속되어야 한다. 케인즈의 비판처럼 아무리 이론이 필요없다 하더라도 잘 알지도 못하는 흘러간 3류 글쟁이의 말만 듣고 정책 의사결정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피안 / 이승훈

피안/ 이승훈머리를 빡빡 깎고 싶은 밤이 있지 어제도 거실에서 술 마시다 말고 스님처럼 머리 빡빡 밀고 싶어 화장실 들어가 거울보고 그래 빙판을 머리에 얹고 다니는 거야 검은 머리칼이 아귀다 중얼대고 나왔지 어느 날 머리 빡빡 깎고 집에 오면 아내는 내가 이젠 완전히 미쳤다고 하겠지- 계간 《시작》 2009년 봄호...............................................강수연이 ‘아제아제 바라아제’에서 비구니 연기를 위해 머리칼을 싹둑 잘라내 화제가 된 게 꼭 30년 전이다. 당시엔 그 삭발로 인해 2년간 다른 작품을 출연하지 못할 정도로 여성배우에겐 큰 부담이었다. 이후 수많은 배우들이 머리를 밀었다. 배우들의 연기를 위한 삭발은 큰 주목을 받지 못할 만큼 예사로운 일이 되었다. 연기와 상관없이 연예인들 사이에선 헤어 패션의 하나로 자리 잡았고,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트렌드가 되었다. 탈모를 숨기기 위해서, 흰머리 염색이 성가셔서, 비듬이 많아서, 듬성듬성 난 머리카락이 흉해서 아예 밀어버리기도 한다.그날이 그날인 반복적이고 무료한 일상에서 뭔가 변화를 주기 위해 머리를 자르기도 한다. 별다른 까닭 없이도 머리를 빡빡 깎고 싶은 충동이 일 때가 있다. 자잘한 일상의 번뇌와 망상으로부터 벗어나고자 스님처럼 머리를 밀어버리고 싶은 순간도 있는 것이다. 문득 ‘검은 머리칼이 아귀다’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 세상에서 다른 삶을 다르게 살아보고 싶은 자아 충동인 것이다. 과거엔 여자들이 머리를 자르기만 해도 실연했냐는 소리를 들었다. 변화를 통한 새로운 삶의 깨달음이 피안으로 가는 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피안은 불교용어로 진리를 깨닫고 도달할 수 있는 이상적 경지를 말한다. 이승의 번뇌를 해탈하여 열반의 세계에 도달하는 경지를 이른다. 누군가에게도 그 삭발이 피안의 세계로 가는 길일까. 그러나 대개는 시간에 지남에 따라 자신도 변하지 않을뿐더러 세상도 바뀌지 않아 삶은 그대로일 가능성이 더 많다. ‘그래 빙판을 머리에 얹고 다니는 거야’ 결기를 다지며 머리를 깎아도 돌아오는 것은 세상의 빈정거림이다. 스님 될 것도 아니고 군대 갈 것도 아니면서 머리는 왜 미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아내조차 ‘이젠 완전히 미쳤다고’ 그런다.누구를 위한 삭발들인가. 세상을 구제하지도 못하고, 그 ‘빙판’위에서 스스로 영혼의 스케이팅을 즐길 것도 아니라면 도대체 머리카락을 갖고 왜 장난질을 치는지 모르겠다. 사람의 머리카락 수는 보통 10만개, 하루 빠지는 머리카락 수는 100가닥에 이른다고 한다. 아직은 심각하게 염려할 정도는 아닌데 나도 매일 바닥에 부려진 머리카락의 잔해를 닦아내는 게 일이다. 가만히 두어도 머리카락은 매일 사라진다. 머리카락은 외부의 충격과 태양 광선으로 부터 두피를 보호한다. 10만 개의 머리카락을 한데 묶으면 5톤 트럭도 끌 수 있다고 한다.머리카락은 대부분 문화권에서 생명의 분신이자 힘의 상징으로 여겼다. 성서에 나오는 삼손은 머리카락을 잘려 힘을 잃었으며, 로마 황제를 가리키는 단어 ‘카이사르’도 머리털이 긴 남자를 뜻한다. 뉴질랜드의 마오리족도 머리를 깎거나 깎인 사람은 한동안 일상생활을 못하게 했다. 우리나라는 터럭 한 올도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재산으로 여겨 빠진 머리칼도 따로 모아 두었다. 삭발하는 정치인 자신들이야 각별한 저항의 상징과 지지자들의 결집을 목적으로 미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들 평범한 시각으로는 ‘피안’은커녕 ‘쇼’ 이상의 의미를 보지 못하겠다.

왜 소설 ‘동물농장’을 다시 읽나

왜 소설 ‘동물농장’을 다시 읽나박운석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동물들이 드디어 혁명을 일으켰다. 인간 농장주인으로부터 가혹하게 노동력을 착취당하던 동물들이었다. 마침내 동물들은 인간 주인을 몰아내고 자기들이 직접 농장을 경영하기 시작했다. 동물들은 혁명을 이끈 ‘나폴레옹’과 ‘스노볼’이라는 돼지 두 마리를 지도자로 삼았다. 이들은 혁명 후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는 등의 7계명을 헛간 벽에 적어두고 초심을 다졌다. 일요일마다 회의하는 것도 빠트리지 않았다. 하지만 갈수록 돼지집단 내부의 권력투쟁과 부정부패라는 권력의 달콤함에 빠져들고 만다. 이들 특권층 돼지들은 ‘어떤 동물도 술을 마셔서는 안된다’는 계명을 무시하고 술을 마시고, 자녀들을 위해 전용 고급 교실을 짓는 등 자신들이 혁명의 구실로 삼았던 ‘적폐’들을 그대로 재현했다. 그러고서는 다른 동물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떤 동물도 저항하지도, 비판하지도 못했다. 시간이 갈수록 동물들은 폭력과 노동착취, 복종에 익숙해지고 무기력해져만 갔다. 다른 생각을 가진 동물은 무조건 적으로 몰려 숙청되기 때문이었다. 조지오웰이 1945년 발표한 소설 ‘동물농장’의 일부 내용이다. 동물농장은 러시아 혁명 이후 ‘프롤레타리아 유토피아’를 내건 공산주의 독재가 타락해 가는 과정을 풍자한 소설이다. 발표된 지 70년이 넘은 이 소설을 다시 읽으며 섬뜩함을 느낀다. 그 당시 소설 속의 상황과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너무나 똑같기 때문이다. 당혹스러웠다. 발표된 지 70년이 넘은 이 소설의 내용이 왜 하필 현재 한국의 상황과 똑같은지. 그렇다면 소설 동물농장이 주는 교훈은 당시나 현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먼저 소수 엘리트 권력층의 부패는 그들만의 책임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소설 동물농장에서 지배층인 돼지가 가장 먼저 챙겼던 특권은 사과를 슬쩍 가져가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일반 대중인 다른 동물들이 이들의 이율배반적인 행위를 감시하고 제지했더라면 돼지들의 지도자 나폴레옹이 독재자로 변해가는 걸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배당하는 동물들은 그러지를 못했다. 그들의 무지와 무기력이 결국은 권력의 타락을 불러온 것이었다. 권력을 잡은 머리 좋은 돼지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진실을 철저하게 억압했다. 이들 사회의 이상이 집약된 율법인 7계명을 먼저 무시하고 모른 체하는 뻔뻔함도 나타났다. 심지어 애초의 동물 7계명이 조작되고 부정되어도 어느 누구도 이를 비판하거나 저항하지 못했다. 특정 계층은 대중을 기만하면서 거짓과 조작이 진실을 덮었다. 그 속에서 동물들은 굴종과 복종에 익숙해져 갔고 무기력해져만 갔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동물은 무조건 적으로 모는 이분법적 논리에 의해 숙청되거나 즉석에서 처형됐다. 급기야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는 계명은 어느새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는 내용으로 바뀐다. 평등은 말뿐이었고 철저히 계급사회로 이뤄진 독재체제로 변해버린 것이다. 소설 동물농장에서 일어난 에피소드들은 과거 러시아혁명에 관한 우화이다. 그러나 당시와 똑같은 사건들이 현재의 사회, 현재의 정치에서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실제 AFP통신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2017년 초, 빅 브라더가 당원의 모든 것을 감시하는 전체주의 국가를 그린 조지 오웰의 또 다른 소설 ‘1984’의 판매가 무려 95배나 폭증했다고 보도했다. 영국에서도 이 소설의 판매가 165% 늘어났다. 이같은 오웰의 소설 재출간 붐은 현재 사회가 ‘1984년의 동물농장’이어서가 아닐까.한국은 어떤가. 정권은 바뀌고 있지만 부정부패와 부조리, 편법은 여전하다. 동물농장을 읽고 좌절하는 건 그래서다. 과연 누가 “한국은 그렇지 않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더 슬픈 건 ‘동물농장’은 1945년에도 있었고 지금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미래세계에서도 있을 것이다. 소설에서 풍자하는 우화는 세계 곳곳의 삶의 모습을 담은 현재의 축소판이다. 소설 속 지도자 돼지 나폴레옹은 여전히 죽지 않았다. 그럴싸한 논리에 현혹된 대중들이 경계를 늦추는 순간 보란 듯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소설 동물농장을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다.

9월 / 문인수

9월 / 문인수무슨 일인가, 대낮 한차례씩/ 폭염의 잔류부대가 마당에 집결하고 있다/ 며칠째, 어디론가 계속 철수하고 있다/ 그것이 차츰 소규모다/ 버려진 군용 텐트나 여자들같이/ 호박넝쿨의 저 찢어져 망한 이파리들/ 먼지 뒤집어쓴 채 너풀거리다/ 밤에 떠나는 기러기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몇몇 집들이 더 돌아와서/ 또, 한세상 창문이 여닫힌다.- 시집 『동강의 높은 새』 (세계사, 2000)..................................................9월도 중순을 지나면서 완연한 가을 기운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아직도 8월 더위의 잔류부대가 완전히 철수하지 않아 간헐적으로 30도를 웃도는 날들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차츰 소규모다’ 간간이 방안에서는 선풍기가 돌고 있지만 앞으로 에어컨을 가동할 일은 별로 없을 것 같다. 역시 추석 지나고 9월 중순쯤 되니 계절은 가을의 영역임을 분명히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그럼에도 어쩌면 매복중인 더위가 한두 차례 기습을 가해올 수 있겠고, 곳에 따라서는 ‘대낮 한차례씩 폭염의 잔류부대가 마당에 집결’해 있는 것을 볼지도 모르겠다.‘호박넝쿨의 저 찢어져 망한 이파리들’ 어쩌면 저 망한 이파리들은 수정받지 못한 호박꽃과 함께한 운명일 수도 있겠다. 호박꽃은 얼른 보면 비슷하게 생겼지만 자세히 보면 암꽃의 아래쪽엔 구슬만한 호박이 달려 있는 반면 수꽃은 그냥 꽃만 있다. 암꽃의 암술에 수꽃의 꽃가루가 벌 나비에 의하여 수분이 되어야만 호박으로 자란다. 역할을 다한 수꽃이나 수정을 못 받은 애기호박은 자라지 못하고 꽃과 함께 떨어진다. 그럴 수 있고 아닐 수도 있겠으나 ‘먼지 뒤집어쓴 채 너풀거리’는 후줄근한 신세들의 표정이다.한편 그늘진 곳 양치식물은 빳빳이 줄기를 세우고, 기러기들은 군사시설 철조망 위로 힘껏 날아오른다. ‘밤에 떠나는 기러기 소리’에 어린 갈대가 저절로 흔들린다. 그러나 폭염과 싸우고 고달픈 인생과도 싸웠던 ‘몇몇 집들이 더 돌아와서’ ‘또, 한세상 창문이 여닫힌다.’ 이렇게 시간은 흘러 다시 9월의 한복판 속으로 들어와 있다. 간이역 투명한 햇살을 받으며 ‘귀향 환영’ 현수막이 늦도록 내걸렸다. 그러나 내 고향 가는 길 저 멀리 새털구름 한 자락 덩그러니 걸려있을 뿐 어디에도 고향에 온 것을 반기는 현수막은 뵈지 않는다.문인수 시인의 고향인 성주 가는 길은 햇살의 농도와 상관없이 여전히 일상이 접혀있다. 황금빛 몸살을 앓는 고향 사람들은 지난 수년간 밤마다 한 곳에 집결해 내내 지난여름을 추억하듯 지글지글 끓었다. 코스모스는 살래살래 철없이 손짓하지만 어디로 가지 못하고 꼼짝없이 9월의 길목에 퍼질러 앉아있었던 것이다. 가을의 순한 햇살은 은총처럼 쏟아지는데 들판의 평화는 온전히 찾아온 것 같지 않다. 언제쯤이면 지난날들을 뿌듯하게 추억하며 들녘의 환한 웃음으로 되돌아올까. 지긋하게 노을을 바라보고 귀뚜라미 울음도 맑게 들을 수 있을까.닫힌 창문 다시 열고 약속이 소망으로 열매 맺는 고향땅을 볼 수 있으려나. 저 시리도록 푸른 하늘에 떠있는 양떼구름 한 틀 짊어지고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생기려나. 고향 땅 무흘 계곡은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의 학문을 이어받은 한강 정구 선생의 숨결이 고스란히 스며있는 곳이다. ‘선지후행, 경의협지’ 새삼 그의 깊은 학문과 애국애민의 정신을 기린다. 가을에 들어서서 몸을 더욱 덥게 하는 것은 세상의 기류다. 누구는 배코를 치고 또 누구는 밥을 굶는단다. 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가을의 삽상한 기운을 느끼기는 당분간 어려울 것 같다.

무조건 바꾸는 게 능사는 아니다

무조건 바꾸는 게 능사는 아니다오철환객원논설위원 적폐와 개혁이 유행이다. 유행이 아니라도 적폐는 청산 대상이다. 보수나 진보를 가릴 것 없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고, 그 본성 또한 절대선과 거리가 있다. 따라서 적폐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일지 모른다. 비록 선에 도달하기 힘들겠지만 선을 향한 끊임없는 노력은 인간의 영역이다. 유행이 아니라도 개혁은 끊임없이 해나가야 할 숙제다. 개혁의 목적은 적폐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적폐와 개혁은 동전의 양면이다. 적폐를 완전히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 국가이념은 하늘로 날아가서도 안 되고, 땅속으로 파고들어도 안 된다. 개혁은 땅을 밟고 사는 인간의 한계를 고려하여 적당한 선에서 타협해야 한다. 하늘을 날아 태양을 쫓는 이상적 과욕은 이카로스의 추락이 기다릴 따름이다.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제도부터 덜컹 바꾸려 한다면 개혁은 실패한다. 제도를 바꾸어 득이 많다면 당연히 바꾸어야 맞다. 그렇지만 개혁이 개선을 보장하진 않는다. 미숙한 개혁은 오히려 개악으로 흐르기 쉽다. 개혁엔 부적응과 혼란이 따르기 마련이다. 개혁은 달리는 수레의 바퀴를 갈아 끼우는 작업이다. 그만큼 어렵다. 따라서 제도를 바꾸기 전에, 운용을 잘못하고 있지는 않는지, 개선할 여지는 없는지, 치밀하게 분석해봐야 할 터다. 제도의 틀 안에서 해결될 수 없고 그 부작용이 감당하기 힘들만큼 절박하다면 제도개혁이 불가피하다. 반면, 운용의 묘를 잘 살려 그 결함을 치유할 수 있을 정도라면 위험을 무릅쓰고 제도개혁을 감행할 일은 아니다. 운용의 묘를 살리는 방법만으로 대부분의 경우 폐단을 치유할 수 있다. 다양한 제도를 채택하는데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비슷한 현상을 구현하는 현실은 제도보다 운용이 먼저라는 점을 시사한다.검찰과 경찰의 조화로운 공존은 필요하다. 검경수사권조정이 불가피한지는 의문이다. 검찰이 경찰보다 더 성숙한 권력기관으로 굳어져 있다. 검찰에 더 우수한 인재와 세련된 노하우가 축적되어 있다는 뜻이다. 이런 시스템이 수십 년간 뿌리를 내려온 상황에서 검찰의 권력을 빼서 경찰에 넘겨주는 제도개혁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를 일이다. 검찰이 못한 일을 경찰인들 할 수 있을까. 게다가 제도를 바꾸자는 국민적 합의가 없는 상태에서 무리하게 제도를 바꾸는 일은 반칙이다. 운용의 묘를 살려 개선할 여지가 있다면 우선 그 길로 가는 것이 정석이다.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신설도 마찬가지다. 현 제도 틀 안에서 충분히 고위공직자를 수사할 수 있는데 굳이 새로운 권력기관을 만들 필요가 없다. 조직은 인사와 권한이 핵심이다. 공정한 수사는 인사권 독립과 권한 위양을 통해 가능하다. 정치에 휘둘리지 않는 엄정한 수사를 가능하게 하는 전제조건은 인사권 독립과 권한 위양이다. 인사권만이라도 정치권과 독립적으로 공정하게 보장된다면 검찰이 정권의 시녀나 대통령의 친위대로 전락할 일은 없다. 인사권 독립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새로운 기관을 신설한다고 해도 말짱 황이다. 공수처가 신설된다고 하더라도 그 수장의 임명권자가 대통령이라면 대통령의 권한만 키워줄 뿐이다. 검경의 인사권을 대통령에게서 떼어내 독립성을 보장하는 방법이 더 나은 대안이다.준연동형비례대표제도도 개선으로 가긴 어렵다. 유권자의 직접 뽑을 권리를 침해할 따름이다. 유권자가 후보자를 잘 판단하지 못하는 점이 흠결이라면 그 문제부터 풀어야 한다. 이는 운용의 문제다. 대뜸 제도부터 바꾸고 보자는 무리한 시도는 불순한 의도로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현 제도로 최선을 다해본 연후, 사심 없는 차원에서 철두철미한 연구와 시뮬레이션을 거쳐 제도를 바꾸는 것이 순리다. 정권의 정치 공학적 차원이라면 국민을 ‘졸’로 보는 작태다.장관의 청문과정에서 드러난 입시의혹을 제도 탓으로 돌려서 대입제도를 바꾸겠다는 태도도 떳떳하지 못하다. 대입제도는 많은 변화를 거쳐 왔다. 그렇지만 많이 바꾼 만큼 입시상황이 개선되었다고 보긴 어렵다. 일단 제도를 주어진 것으로 보고 최선을 다해 운용의 묘를 최대한 살리는 일이 우선이다. 그래도 결함을 치유할 수 없을 경우, 최후의 방법으로 제도를 고치는 것이 맞다. 신중한 접근은 기본이다. 장관이 기존 업무도 파악하기 전에 개혁부터 서두르는 자세는 경솔하다. 위선적으로 볼 소지가 크다. 범죄 혐의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조신하게 처신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부끄러움을 모르고 잘난 체 설쳐대는 모습은 국민의 혈압을 올리는 꼴불견이다.

양극화를 넘어 공존과 포용의 사회로

양극화를 넘어 공존과 포용의 사회로홍덕률대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2011년 9월17일, 그러니까 꼭 8년 전이었다. 그날은 토요일이었다. 세계 금융의 중심지, 뉴욕의 월스트리트에 이목이 집중되었다. 1천여 명의 시위대가 모여든 것이다. 20대 청년들이 많았다. ‘Occupy Wall street. (월가를 점령하라.)’ 대표 슬로건이었다. 그래서 ‘월스트리트 점거 시위’로 불리게 됐다.‘We are the 99%. 우리는 99%에 속한 사람이다.’ 자주 등장한 구호였다. 극소수 수퍼리치(거대 부자)가 지배하는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궁핍한 다수 서민의 저항이었다. 일부는 인근의 리버티 플라자공원에서 노숙하며 시위를 이어갔다. 행진도 있었지만 불의한 체제와 궁핍한 삶을 주제로 한 토론도 활발했다.인터넷과 소셜 미디어는 그들의 주장과 함성을 전 세계로 퍼 날랐다. 사진들과 함께였다. 지구촌의 주요 도시들로부터 공감과 지지가 쇄도했다. 시위대들은 지구촌 곳곳의 목소리들을 모으기로 했다. 10월15일을 ‘전세계 공동의 날’로 정했다. 82개국 900여 개 도시의 시민들이 참여했다. ‘저항의 세계화’라 할만 했다. 한국의 시민들도 호응했다. 한국의 월스트리트, 여의도로 모였다. ‘여의도를 점령하라.’ 시위 현장에 걸린 현수막 구호였다. 1%를 위한 정책들과 투기자본에 대한 성토가 주를 이뤘다.월스트리트 점거(오큐파이) 시위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세계 자본주의의 중심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성토가 터져 나왔다는 사실에 있다. 이 때의 자본주의는 ‘무한경쟁, 승자독식 자본주의’였다. 성공한 소수가 한 사회의 부와 자산 대부분을 차지하고, 실패한 다수는 빈곤과 절망에 처해지는 자본주의였다. 국제적으로도 마찬가지였다. 부자 나라에서는 식량이 넘쳐났지만 가난한 나라들에서는 발육부진과 기아 사망이 넘쳐났다.양극화가 주 타깃이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1대 99의 사회’라는 슬로건과 ‘우리는 99%다’라는 구호도 양극화를 겨냥한 것이었다. 소수 투기자본의 탐욕과 서민의 생활고, 높은 실업률과 극심한 불평등을 효과적으로 이슈화시켰다. 1980년대 이후 지구촌을 휩쓴 ‘신자유주의’가 문제의 본질이라는 토론도 활발했다.그러한 우려와 비판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고삐 풀린 자본주의’, ‘정글자본주의’, ‘20대 80의 사회’ 등의 비판은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우리나라에서도 ‘88만원 세대’라는 책이 널리 읽혔고 ‘희망고문’, ‘헬조선’이라는 비아냥이 청년세대에 널리 퍼졌다. 세계 많은 나라들에서 동조시위에 참여한 80% 혹은 99%에 속하는 서민들도 주로 양극화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성토했다.다행히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보다 정확하게는 1년 전인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가 결정적이었다. 영국의 대처리즘과 미국의 레이거노믹스를 중심으로 1980년대부터 지구촌을 휩쓸기 시작한 신자유주의 모델이 실패했다는 분석이 각 나라들에서 제출되기 시작한 것이다. 새로운 대안체제를 모색하기 위한 움직임도 빨라졌다. 물론 1990년대 중반 이후에도 영국의 블레어총리와 사회학자 기든스, 그리고 미국의 클린턴대통령에 의해 ‘제 3의 길’ 노선이 주장되고 실천된 적이 있었다.우리 사회의 불평등과 양극화는 매우 심한 편에 속한다. 그렇게 된 계기는 1997년 말의 외환위기에서 찾을 수 있다. IMF는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대가로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강요했다. 기업과 금융기관의 강도높은 구조조정과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대표적이었다. 결과는 참혹했다. 비정규직과 실업자는 급증했고 중산층은 붕괴되었다. 노숙자로 전락한 이들도 부지기수였다.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규모와 속도로 진행된 양극화는 지금까지도 우리를 힘들게 하고 있다. 여기저기서 살기 힘들다는 탄식과 신음이 넘쳐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자영업자들뿐만이 아니라, 실업자로 혹은 신용불량자로 대학문을 나서는 청년들의 절규도 숙지지 않고 있다. 3포, N포의 청년들은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과 미래까지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불평등과 양극화를 완화하는 일이 절박하고 시급하다. 사회경제 시스템의 운영 원리를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에서 공존과 포용으로 전환해 가야 한다. 그래서 80% 혹은 99%가 활력과 희망을 갖게 해야 한다. 고개숙인 청년들의 미래와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도 일으켜 세워야 한다. 8년째를 맞는 월스트리트 점거시위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