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여고 교사도 코로나19로 확진 받아

대구여고 교사가 코로나19로 확진받아 이 학교 교직원 80여 명이 자가격리됐다.23일 대구시교육청에 따르면 확진 판정을 받은 교사는 상인고 겸임교사를 겸하고 있으며 지난 17일 대구여고 전체교직원 회의에 참석했다. 당시 참석자는 이 학교 학교장을 포함해 80여 명인 것으로 파악됐다.회의에는 새로 인사 발령받은 교사와 기존에 근무하던 교사 등 대부분이 참석, 신학기 시간표를 조정했다고 전해졌다.회의는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열렸으며 오전에는 전체 교직원이, 오후에는 과목별 교직원들이 별도로 진행됐으며 점심 식사는 과목별로 외부 식당에서 한 것으로 전해졌다.학교 측은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당시 회의에 참석한 교장을 포함한 교직원 80여 명 전원을 자가격리하는 한편 학교 출입 통제도 강화하기로 했다.대구시교육청 관계자는 “지난 7일 종업식 이후 보충수업이나 방과후수업은 하지 않아 학생 접촉자는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세상읽기…‘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까만 밤, 선별진료소 문을 나서 병원 마당에 내려섰다. 달은 보이지 않고 늘어선 방송국 로고가 박힌 차량들 사이로 밤하늘은 어느 새 푸르스름한 빛을 띠고 있다. 밤 촬영에 필요하여 세워둔 것일까. 커다랗고 밝은 조명등 불빛에 비친 나뭇가지에는 어느새 노르스름한 새순들이 돋아있다. 가까이 다가서서 보니 산수유 꽃이다. 어느새 봄은 소리 없이 다가와 살며시 꽃을 피우며 묻고 있다, 건강하시지요? 얼어붙어 걱정으로 가득한 우리 마음을 위로라도 하려는 듯이. 갑자기 불어나기 시작한 코로나19 의심환자들을 우선으로 가리기 위해 선별진료소를 두 곳으로 늘려 24시간 쉼 없이 전 진료과장이 순번제로 가동하는 체제로 돌입하였다. 며칠 사이 너무도 긴급하게 돌아가는 상황이라 입원한 환자들을 급히 다른 곳으로 보내고 병동을 통째로 비워야만 했다. 더러는 집에 가서 조리하면서 지내다가 이런 사태가 마무리되면 다시 오리라 다짐하면서 퇴원하였다. 일시에 병동을 비우고 시설을 재정비하고 환풍구를 막아 격리시설을 갖추느라 전 직원이 동원되어 땀범벅이 되어 응급사태에 대처하기 위한 상황으로 돌아간다. 의료진을 믿고 이제껏 장기 치료받던 환자들은 혹여 퇴원하고 집에서 다시 아프면 어떡하느냐며 걱정한다. 코로나19확진 환자가 입원한 병원에 있었다고 하면 다른 병원에서 받아주기나 하겠느냐며 앞일이 태산이라며 우울해한다. 긴급 상황이 마무리 되면 언제든 다시 찾아오라며 마스크 낀 얼굴로 눈인사를 건네며 전송하였다. 그렇게 보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지만, 정말 가슴 아프다. 차마 끝까지 마주 볼 수가 없어 손을 흔들며 건강 잘 챙기시라 인사하였다. 우리 환자들이 모두 어디에서든지 치료 잘 받고 언제까지나 건강하기를 비는 마음으로 그믐 밤 하늘을 하염없이 올려다본다.세 자리 숫자를 훌쩍 넘긴 접수번호를 받아들고 쓸쓸한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이들, 떨리는 몸에 마음은 얼마나 쑤시고 아릴까. 모르는 사이 확진자와 접촉하게 되어 검사에서 혹시나 양성으로 나오면 어쩌나 하는 마음인지 얼굴엔 수심이 가득하다. 밤이 깊어 갈수록 대기는 차갑게 식어 입김이 하얗게 묻어난다. 우주복처럼 생긴 레벨 D 방호복을 입고 눈에는 고글을 쓰고 마스크를 코가 아프도록 눌러서 끼고서 장갑을 낀 채로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 진료기록을 입력하고 검사 처방을 내기를 반복하다보니 어느 순간 대기 순번을 들고 오는 이의 기록이 아무리 찾아 봐도 전산시스템에는 이름조차 뜨지 않는다. 웬일인가 싶어서 접수에 확인해보니 조회 날짜를 바꾸어야 된다는 것이 아닌가. 쉴 틈 없이 문진하고 처방을 내느라 어느새 날짜 변경선을 넘듯, 시각은 자정을 넘어 새날이 되었던가 보다. 차가운 겨울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따스했던 날들은 세상인심에 저절로 식어 가는가. 다시 얼어붙을 듯한 바람이 불어댄다. 겨울이 다시 찾아올 것처럼. 문을 여닫을 때마다 틈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이 참으로 차갑다. 진료소를 찾은 이들의 안경은 뿌옇게 안개가 낀 듯 눈만 빠끔하게 보인다. 새벽까지 두려운 마음으로 무던히도 기다렸을 가슴 아픈 이들, 얼른 검사받고 괜찮은 결과를 얻어 다시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라며 정성스레 문진한다.이럴 때 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무엇일까. 바로 긍정의 주문이지 않겠는가. 라이온 킹의 그 말. 하쿠나~! 마타타~! “문제없어요, 다 잘 될 거에요.” 이 상황 어쩌겠는가. 내내 걱정하기보다는 우선 급한 일부터 차근차근 처리해가면서 긴박한 위기를 잘 극복하여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하지 않겠는가. 발열체크에서 신호만 울려도 푸드 코트 안으로도 못 들어가고 선별 진료소 가서 확인해오라고 할 정도로 극도의 공포로 얼어붙지 말고 차분하게 대응하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마음을 크게 먹고 건강을 잘 챙기면서 모두가 힘을 합치고 똘똘 뭉쳐서 이 상황을 무사히 넘겨야 한다는 목표, 그리하여 환자들이 원래 자주 가던 병원을 다시 찾게 되어 믿고 의지하던 의료진에게 진료를 받으면 신뢰가 더 깊어지지 않을까 싶다. 우리 모두 서로 힘을 합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면 어려움을 이겨내고 승리의 기쁨을 다함께 맛보는 날이 오지 않겠는가. 가장 기본적인 것이 어쩌면 가장 최선의 예방책일지 모르겠다. 평소에도 손을 자주자주 또 바르게 30초 이상 꼼꼼하게 잘 씻고, 타인을 위해 기침이나 재채기할 때는 꼭 입과 코를 휴지나 옷소매로 가리는 개인위생을 철저히 지킨다면 이까짓 바이러스는 언젠가는 스스로 우리 곁을 떠나게 될 것이니. 두터운 눈밭을 뚫고 화사하게 피어나는 복수초(福壽草)처럼 우리도 서로에게 병이 아닌 복을 주고받는 관계가 되기를 소망한다.

문향만리…절정

절정 이육사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오다 //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 서릿발 칼날 진 그 위에 서다 //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 이러매 눈감아 생각해 볼 밖에 /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매서운 한파는 채찍이 되어 북방으로 내몬다. 하늘이라도 지칠 만큼 멀리 쫓겨 왔다. 하늘마저 힘없이 낮게 내려않았다. 더 이상 쫓겨 갈 곳이 없다. 쫓겨 온 곳이 원래 살던 곳보다 더 춥고 엄혹하다. 그렇다고 두고 온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다. 고향은 이미 ‘나의 살던 고향’이 아니다. 산천과 논밭을 빼앗기고 봄마저 빼앗겼다. 서릿발마저 잡아먹을 듯이 칼날처럼 날카롭다. 일제의 착취와 수탈은 여기까지 미친다. 몸과 마음을 녹일 곳 없는 고립무원이다. 어디다 무릎 꿇고 빌어 보고 싶지만 의지할 곳도 비빌 언덕도 없다. 한 발 쑤셔 넣고 디딜 땅조차 없다. 삶의 극한상황이자 인고의 절정이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눈감고 골똘히 생각해 본다.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개다. 겨울이 강철로 된 무지개인양 비록 위세를 떨치지만 스러지고 나면 그뿐이다. 축축한 물 기운이 가시면 사라질 운명이다. 화려한 빛과 색채로 세상을 유혹하는 한편 차갑고 억센 쇠 채찍을 휘둘러대지만 원래 무지개는 신기루와 같이 곧 사라져 흩어질 허상이다. 고개를 넘으면 겨울도 내리막길을 걷고 봄이 오는 법이다. 극한의 추위도 곧 물러갈 것이다. 무자비한 기세로 채찍을 휘두르는 한파도 이젠 막바지 발악이다. 이 극한 추위를 견디고 극복하는 일이 고비다. 곧 봄은 온다. 일제가 동양평화라는 무지개 같은 꿈과 희망을 내세우지만 실상은 한낱 사탕발림이고 눈속임이다. 굳이 그것이 무지개라면 차갑고 강압적인 강철 무지개다. 대동아공영권 운운하는 것은 곧 들통 날, 소가 웃을 새빨간 거짓말이자 파렴치한 사기극이다. 일선동조론과 내선일체는 우리 민족을 전쟁터로 유인하기 위한 허울 좋은 그럴듯한 미끼이며 한발 더 나아가면 민족말살 음모다. 일제 사기행각의 전말은 시간이 지나면 군국주의 파쇼로 백일하에 드러날 일이다. 강철 무지개는 일제의 채찍이고 칼날이다. 강철 무지개가 쇠처럼 강하고 영원할 것 같지만 지나고 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무력한 환상일 따름이다. 끝없이 세력을 뻗치고 승승장구할 듯 유난을 떨고 있지만 그것은 메뚜기의 한 철 허장성세다. 한치 앞도 못 보는 천방지축 일제에 분노가 치민다. 시인의 상상력과 애국의지는 해와 무지개마저 소환된다. 무지개는 해를 향해 겨냥된 칼날로 허공에 팽팽하게 걸려있다. 강철무지개는 군국주의 파쇼, 해는 일제를 상징한다. 강철무지개는 일장기의 심장인 붉은 해를 찌르는 절묘한 장치다. 제 손가락으로 제 눈을 찌르는 형국이다. 군국주의 파쇼는 일제를 무너트리는 부메랑칼날이라는 은유다. 겁 없이 설쳐대는 일제도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이제 곧 무너질 일만 남았다. 태평양전쟁은 제 무덤을 파는 행위다. 강철무지개는 일곱 겹의 강궁을 상징하기도 한다. 시인은 일제의 심장에 화살을 당길 작정이다. 일제의 철저한 검열과 감시·감독을 피할 수 있는 상징과 은유는 이육사 시인만이 사용가능한 비장의 무기다. 코로나19가 절정이다.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이다. 스스로 보균한 듯 서로를 배려하고 침착하게 절제한다면 머지않아 신종바이러스는 곧 자멸할 것이다. 이제 곧 봄이 온다. 오철환(문인◆)

학습의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

학습의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우리 지역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무섭게 늘어나면서 학생들이 학교나 학원에 나가기 보다는 자가 학습을 하는 경우가 많다. 올해 수능시험을 준비해야 하는 예비고3이나 재수생은 이 시간을 막연하게 보내지 말고 생산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 시간 동안 학습의 생산성을 높이는 자기만의 방법을 찾아볼 수도 있다. 자기주도학습 습관을 훈련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자기주도 학습은 피로를 잊게 하고 공부에 재미를 느끼게 한다. 무조건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다고 성적이 향상되는 것은 아니다. 강제로 공부방에 넣고 감시 감독하는 방법을 취하면 10시간을 앉아 있어도 실제 공부는 2시간도 채 안 된다는 연구도 있다. 학업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학업에 임하는 자세와 태도, 수면 습관 등이 매우 중요하다.▶ 학습 습관과 태도한 번 틀린 문제를 자꾸 틀리는 경향이 있다. 틀려본 문제라면 더욱 기억에 오래 남아 다음에는 반드시 맞혀야 하는데 이상하게 또 틀리고 만다. 공부할 때도 마찬가지다. 처음 공부할 때 재미를 느끼지 못한 과목이나 단원은 아무리 시간을 들여도 진도가 나가지 않고 공부하기가 싫어진다. 처음에 제대로 개념을 파악하지 못한 단원은 두 번째 볼 때도 대충 넘어가기 쉽다. 성적이 잘 오르지 않는 과목은 무턱대고 시간을 많이 투자해 반복만 할 게 아니라 그 과목에 대한 자신의 학습 습관과 태도 등을 면밀히 분석해 봐야 한다. 취약한 단원, 틀린 문제를 되풀이해서 공부할 때는 항상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기본 개념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 자신의 취약점을 잘 알 수 없다면 그 단원의 개념과 내용을 적용한 응용문제와 다른 단원과 관련지은 통합 문제를 풀어보면서 교과 내용을 깊이 있게 확인하고 다지는 것이 좋다.▪ 하기 싫다고 계속 미루지는 않는가? - 이런 경우는 만사 제쳐놓고 그 단원부터 뿌리를 뽑겠다는 적극적인 자세를 가지고 완전히 이해될 때까지 악착같이 물고 늘어지는 근성이 필요하다. 무엇이든 한 번 정성 들여 이해하고 나면 다음부터는 훨씬 쉬워진다. ▪ 특정 단원에 자신감을 잃지는 않았는가? - 어떤 특정 단원에서 몇 차례 실수를 계속하다보면 그 단원과 관련된 문제만 나오면 위축되고 평소 실력을 발휘할 수가 없다. 악순환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자신의 판단력과 능력을 신뢰하면서 비슷한 유형의 문제들을 확신이 설 때까지 계속해서 풀어보며 강한 근성을 기르는 것이 좋다.▶ 생산적이고 창의적인 학습 교과서나 참고서를 공부할 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에 밑줄을 긋고 빈 공간에 수업 시간에 들은 내용을 빽빽하게 적는 학생들이 의외로 많다. 복습할 때 쉽게 요점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책을 참고하지 않고 한 권으로 다 해결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에 무엇을 적거나 밑줄을 치고 표시를 할 경우 실제로는 반복적으로 복습을 할 때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거나 오히려 학습 효과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기 쉽다. 책에 많이 적고 다양한 표시를 해 두면 다시 읽을 때 밑줄 친 내용이나 적은 내용 이상을 생각하지 않게 되고 다른 방향으로 생각을 진전시키기도 어렵다. 나아가 밑줄을 치지 않은 부분을 무심히 흘려버리기도 한다. 그렇다면 책에 아무 표시도 하지 않고 깨끗하게 비워두는 것이 좋은가? 학업성취도가 높은 학생들을 상대로 한 다음의 실험은 시사 하는 바가 크므로 의미를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한 그룹의 학생들에게 같은 과목 교과서를 두 권씩 준비하게 했다. 한 권에는 수업 중에 마음껏 적어 넣고 표시를 하게 했다. 그런 다음 복습할 때 처음에는 그 책으로 공부를 하게 하고 그 다음에는 아무것도 적지 않은 책을 읽으면서 앞서 적었던 내용을 상기하게 했다. 다음에는 다시 한 번 깨끗한 책을 읽으며 그 내용을 다른 관점에서 다양하게 생각해 보고 질문을 하게 했다. 그런 다음에 그 교과내용과 관련된 문제를 풀게 했다. 틀렸거나 맞히긴 해도 확실히 모르는 문제들에 대해 틀리게 된 과정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왜 틀리게 되었는가를 자세하게 설명하게 했다. 그런 식으로 정리를 하고난 다음 다시 한 번 교과서를 읽고 최종적으로 정리를 하게 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자 실험에 참가한 대부분 학생들이 그 단원에 대해 완전학습이 이루어졌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올바른 읽기와 개념 많은 학생들이 책을 읽을 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내용에 밑줄을 친다. 여러 색깔의 형광펜으로 보기 좋게 표시하는 경우도 많다. 이는 다음에 다시 볼 때 전체 내용을 읽지 않고도 그 부분을 쉽게 찾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갈은 방식의 독서가 생산적이지 못하고 창의력을 떨어뜨려 깊이 있는 독서에 장애가 된다는 연구 결과들이 여려 차례 발표된 바 있다. 밑줄을 치거나 형광펜으로 표시할 경우 다음에 읽을 때는 앞뒤 문맥을 배제한 채 그 부분만 다시 보기 쉽다. 전체적인 이해도를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처음 읽을 때 놓친 내용을 거듭 놓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글이 주는 느낌 또한 처음에 받았던 그대로 떠오르기 쉽고 창의적으로 발전시키기 어려워진다. 문학 작품이나 시집 등을 읽을 때는 아무 표시도 하지 않는 것이 직관력과 상상력을 배양을 위해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내용을 깊이 있게 음미하고 재해석하는 과정이 아니라 중요한 정보를 단순히 반복해서 암기하기 위한 수단이라면 밑줄 긋기나 형광펜 사용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시각적 효과를 통해 핵심 내용을 눈에 확 들어오게 표시해 두면 단순 반복에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수준과 필요에 적합한 책을 고른 뒤 철저하게 이해에 중점을 두며 읽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이해가 쉽지 않다고 암기해 버리려는 학생들이 적잖은데 시간 단축의 측면에서든 기억력의 유지 측면에서든 훨씬 손해다. 어떤 내용이든 처음 접할 때의 자세가 대부분을 결정한다. 처음에 철저하게 이해하지 않고 대충 읽게 되면 나중에 다시 읽을 때도 건성으로 넘어가기가 쉽다. 특히 수험생들은 진도가 느리더라도 조바심을 내지 말고 개념과 원리의 이해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잠과의 전쟁수험생과 학부모를 상대로 “최고의 학습 장애 요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잠’이라는 대답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러나 “잠을 줄여야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라는 잘못된 믿음이 최대의 학습 장애 요인임을 아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4당5락’이란 말은 사실이 아니다. ‘6당5락’이 더 맞다. 4시간 자면 반드시 떨어지고 5시간 자도 위험하다. 적어도 6시간 이상 자지 않으면 시험에 실패할 확률이 매우 높다.미국 브라운 대학 연구진이 잘못된 수면 습관이 미국의 10대들에게 미치는 악영향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다. 연구를 주도한 크롤리 교수는 “10대들의 주말 늦잠은 여객기를 타지 않고도 자신의 신체에 시차를 주게 된다. 이 때문에 생기는 주초의 피로가 수업 능력을 떨어지게 한다.”라고 지적했다. 이런 현상이 한국 학생들에겐 학창시절 내내 지속된다.고교생 대부분이 자정 이후에 잠자리에 든다. 상당수의 학생들은 새벽 한 두 시를 넘긴다. 문제는 하루 일과가 오전 8시 경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취침 시간과는 상관없이 아침 6시 전후에는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일 년 내내 네다섯 시간만 자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늦게 자면서도 일찍 일어나야 하는 대부분 학생들은 오후가 되어야 정신이 맑아지고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크롤리 교수는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충분하게 자야한다고 말한다. 푹 자야 수업시간에 긴장감을 유지하며 집중할 수 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오전에 맑은 정신이 유지되게 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수험생활의 적은 잠이 아니다. 잠에 대한 잘못된 믿음과 이를 강요하는 사람들이 삶과 교육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는 것이다. 자녀 교육으로 인한 온 가족의 야행성 생활은 학교와 직장에서 학습과 일의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있다. ‘제 시간에 잠자기’ 범국민운동을 생각해 볼 때다.도움말 지성학원진학지도실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문향만리…건널목 무대

건널목 무대 김석이일제히 멈추어선 기대도 안고 간다/ 겹쳐진 그림자도 발등에 업고 간다/ 신호등 바뀔 때마다 입장하는 등장인물오고가는 길목에 쏟아지는 시선집중/ 살펴볼 겨를 없이 떠밀려 간다 해도/ 막혔던 길을 젖히며 당당하게 손 흔든다이쪽에서 저쪽으로 나에게서 너에게로/ 잠시 멈춘 그 사이 펼쳐지는 파노라마/ 나는 늘 주인공이다/ 이십초의 주마등-시조집 『소리 꺾꽂이』(발견, 2019) ................................................................................................................... 김석이는 부산 출생으로 2012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비브라토』『블루문』『소리 꺾꽂이』등이 있다. 등단 이후 줄기찬 도전의지와 장인 정신으로 자신만의 정신적 수맥을 찾아 천착을 거듭하는 시인이다. 집을 나서면 길을 간다. 걸어가는 길에 반드시 마주치는 것이 있다. 건널목이다. 신호등 앞에 선 이들이 꽤 모여 있으면 곧 신호가 바뀔 것이라는 것을 누구나 다 안다. 길을 건너려는 사람들의 표정은 모두 제각각이다. 대체로 바쁜 느낌을 준다. 갈 길에 대한 생각, 할 일에 대한 궁구에 골몰하는 모습이다. 제목 ‘건널목 무대’에서 건널목에 무대를 결합했다. 놀라운 발견이다. 어떻게 조직화해야 우선 제목부터 시가 될 수 있을까 하고 오래 궁리했을 법하다. 이 경우 제목이 곧 글감인데 참신한 제목에 힘입어 시가 잘 전개되고 있다. 건널목은 사람들이 잠깐 모였다가 흩어지는 곳이니 무대가 된다. 일제히 멈추어선 기대도 안고 가면서 겹쳐진 그림자도 발등에 업고 가는데, 신호등이 바뀔 때마다 입장하는 등장인물은 늘 달라진다. 무대에 머무는 시간이 길지 않아서 주인공이 따로 없다. 모두가 주인공인 셈이다. 기실 자신들은 등장인물인지 주인공인지 별 다른 생각이 없겠지만, 화자는 분명하게 말한다. 당신들은 모두 건널목 무대의 출연자이자 주인공이라고. 오가는 길목에 쏟아지는 시선이 집중되고 살펴볼 겨를 없이 떠밀려 간다. 그때 길을 가는 사람은 막혔던 길을 젖히며 당당하게 손을 흔들면서 나아간다. 목적지는 다 다르지만 저마다 중요한 일을 감당하기 위해 가고 있는 것이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나에게서 너에게로, 너에게서 나에게로 저쪽에서 이쪽으로 부단히 진행된다. 가끔 잠시 멈춘 그 사이 펼쳐지는 파노라마를 주시하기도 한다. 그 순간 나는 늘 주인공이 되는데 그 시간은 지극히 짧은 이십 여초의 주마등이다. 이렇듯 ‘건널목 무대’는 인생을 이십초의 주마등에 빗대며 강렬한 울림을 던지고 있다. 건널목 무대를 열심히 오고가다가 건진 뜻하지 않은 수확이다. 비단 건널목 무대만 그렇겠는가. 진정성의 화분에 건강한 삶의 씨앗을 심고 잘 가꾸게 되면 보다 좋은 무대에 설 수 있을 것이다. ‘건널목 무대’는 그러한 희망의 메시지를 은연중 가슴에 품게 만든다. 그것만으로도 이 작품은 충분히 값어치가 있다. 또한 세심한 관찰이 시를 쓰는 과정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워준다. ‘건널목 무대’가 보여주는 삶의 진정성과 사유의 깊이는 그저 얻어진 것이 아니다. 오롯이 창작에 전념한 결과물이다. 그래서 울림이 더욱 크다. 지나온 날들이 발밑에 엎드려 길이 되고, 낙엽처럼 떨어져나간 하루하루가 추운 등을 감싸줄 때 낙엽은 떨어진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이다. 겨울의 밑둥치에서 자라고 있는 초록의 꿈을 바람이 흔들어 깨운다. 건널목 무대에도 이제 따사로운 봄빛이 내리고 있다. 이정환(시조 시인)

알렉사는 만능 해결사인가

알렉사는 만능 해결사인가 이현숙재미수필가세 살인 옆집 에마의 절친은 알렉사(Alexa)다. 그녀의 부모는 직장을 다니고 어린이집에 다니기에는 이른 나이라 외할머니가 돌본다. 한창 재롱을 부릴 때이기도 하지만 귀여워서 자주 옆집에 놀러 간다. 그녀는 나이의 특성상 하나에 집중하지 않고 소꿉놀이를 하다가도 갑자기 자전거를 타거나 색칠 놀이를 하자고 한다. 그 중간중간에 그녀는 테이블에 놓인 손바닥만 한 기계 앞에 멈춘다. “알렉사! 뚜뜨따따 뚜뜨 베이비 샤크(아기상어).” 여물지 않은 그녀만의 단어로 명령을 내린다. 그녀의 친구답게 찰떡같이 알아듣고 아기상어 노래를 들려준다.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춤추고 노래하는 그 아이의 리듬에 맞추며 손뼉을 치며 나도 따라 부른다. ‘알렉사, 렛잇고’도 그녀의 단골 명령이다. 에마의 할머니인 로울데스는 부엌에서 일하면서도 말 한마디로 TV를 켤 수 있고, 음악도 골라서 듣기에 알렉사의 열렬한 팬이다. '알파 세대(Generation Alpha)’인 에마뿐 아니라 내 또래의 아날로그 세대까지 아우르며 점점 최첨단으로 발전하고 있다. 그 집의 최애 아이템이다.알렉사는 아마존에서 개발한 인공지능 플랫폼이다. 사용자는 아마존 에코를 이용해 알렉사와 의사소통을 할 수 있으며, 음악재생, 알람 설정, 날씨와 교통정보 등 인간의 생활을 편리하게 하려 맹활약을 한다. 2만 5,000가지 일을 처리하기에 불가능이 없는 만능 개인 비서다. 입안의 혀처럼 주인이 내리는 명령을 척척 해결한다. 보안 기능이 있어서 주인이 집을 비운 사이 유리창을 깨거나 화재 알람이 울리면 스마트폰으로 알려 준다. 어린이용으로 나온 ‘에코 닷 키즈 에디션’에는 동화를 읽어주는 오디오북과 부모가 쓰는 에코와 자녀의 에코 연결 기능 등이 포함됐다. 부모가 사용 시간을 제한할 수 있고, 부적절한 어휘가 포함된 콘텐츠를 제외하는 기능도 있다고 한다. 혼밥 혼술이라는 단어가 나오듯 단출해진 시대이기에 외로운 사람들에게 대화의 상대가 되어 준다. 특히 혼자 사는 노인이 응급 시에 긴급 호출 기능으로 위급 상황을 넘긴 경우도 많다.장점이 많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단점도 적지 않다. 에마처럼 알파 세대에게 말로 다 되는 세상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기계에 의존하는 삶을 살까 봐 걱정이다. 유튜브에서 여섯 살 아이가 산수 숙제하는 모습이 나왔다. “알렉사! 5 빼기 3은 뭐야?” “2”라는 답을 듣고 그는 얼른 받아 적었다. 귀엽다고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기계가 알려준 답을 전적으로 믿고, 기계와 대화하다 보면 기계 안에 갇히게 된다. 올해로 16살 된 손자는 스마트폰과 게임기에 빠져 대인관계를 원만하게 이루지 못해 전문가의 상담을 받고 있다. 스포츠나 뉴스에는 관심이 없고 손에 전자기기가 쥐어져 있지 않으면 불안해한다. 상대의 감정을 읽어내지 못하고, 자신의 마음을 올바로 전달하지 못하기에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아 학교생활이 원만하지 않아 가족의 걱정이다.에마가 알렉사 앞에 서며 몸을 움직이거나 생각하는 것을 잃어버린 게으른 아이도 자란다면, 명령하듯 말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 누구나 자신의 일방적인 말에 따라야 정상이라고 생각하며 건방지게 자라면 어떡하나. 내 손녀딸도 아닌데 걱정된다. 얼마 전 젊은 부부가 TV 뉴스에 동영상을 제보했다. 스마트폰으로 방에 설치해 놓은 보안용 카메라를 통해 아이들이 잘 지내는지 확인하던 엄마는 아이들이 알렉사를 통해 낯선 남자와 대화 하는 걸 보고 깜짝 놀았다. 아이는 놀면서 이런저런 질문에 순진하게 답을 했다. 아이를 통해 전달됐을 정보보다도 부모가 모르는 사이에 자식을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에 소름이 끼쳤단다. 당장 알렉사 기계를 떼어냈다. 어디 아이뿐이랴. ‘낮말은 알렉사가 듣고, 밤 말도 알렉사가 듣는다’라고 해야 할 판이다. 자신도 모르게 정보가 누군가에게 노출된다고 생각하면 등이 오싹한다. 전문가는 AI 스피커가 스마트 기기를 제어하는 역할이 보편화 됐을 때는, 주위 스마트 기기를 악의적으로 조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사생활이 침해되고 개인정보가 유출돼 피해를 보는 사례가 늘고 있는 이유다.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했다. 인간만이 소유한 능력은 생각하는 것과 감정을 느끼는 것이다. 매 순간 상황을 받아들이고 느끼며, 판단하고 결정하는 일은 사람만이 할 수 있다. 생각하고 움직이자. 사랑하고 반성하고 용서하는 과정도 기계는 할 수 없다. 기계치인 나는 인간이 만든 기계가 인간을 통제하고 지배하는 세상이 오면 어쩌나 하고 겁이 난다. 이미 많은 기계로 둘러싸여 살기에 서너 집 건너마다 있다는 알렉사를 우리 집에 들이지 않을 것이다. 필요에 의해 스마트폰은 사용하지만, 친지들의 전화번호는 단축번호를 누르지 않게 외워야겠다. 그동안 접어두었던 암기력과 기억력을 깨우려 한다. 생각의 관점을 넓히고 뇌를 운동시키자. 편리함에 묻혀 점점 나약해지는 인간의 존재 가치를 위해, 본질적인 인간성을 지키기 위한 나의 작은 의지다.

이경우의 따따부따…101대 99와 대구통합신공항 이전

101대 99와 대구통합신공항 이전순탄하게 결정되리라고 예상하진 않았지만 이렇게 사단이 커질 줄이야. 대구통합신공항 이전부지 선정을 둘러싸고 이웃인 군위군과 의성군이 벌이는 한 치 양보 없는 기 싸움이 갈수록 가관이다. 여기에는 한 뿌리라며 최근에는 통합해야 한다는 주장을 공개적으로 주창하고 있는 경북도와 대구시가 은근히 뒤에서 용을 쓰고 있다. 얼마 전 이 지면을 통해 지적한 적도 있지만 그 경쟁이 도를 넘고 있으니 지역과 국가적 장래를 위해서라도 명쾌한 해결책을 찾아야 할 때다.101대 99.지난해 11월 22일부터 3일동안 시민참여단 200명(의성군민 100명과 군위군민 100명)이 한 자리에서 숙의형 시민의견조사라는 과정을 거쳐 신공항 이전부지 선정 기준과 절차를 결정했다. 이전부지 선정기준은 투표로 하고 군위군민은 군위 두 곳에, 의성군민은 비안에 각각 투표하고 결과 공동후보지인 의성 비안 또는 군위 소보가 높으면 공동후보지를, 군위 우보가 높으면 단독후보지를 후보지로 한다는 것이다. 선정기준 투표방식을 결정하는 시민참여단의 투표 결과는 101대 99로 나타났다. 결과적으로 공항 주요고객인 대구시민의 의견은커녕 반대하는 지역민의 의견도 반영되지 않은 결론이 내려진 것이다. 시민참여단 한 사람의 결정이 전체 판을 결정한 셈이다.90대 76, 그리고 찬성 76대 반대 74그리고 올 1월 21일 대구통합신공항 부지 선정을 위해 실시한 주민투표에서 의성군민은 88.69% 투표율에 90.36%가 찬성했다. 군위군민은 80.61% 참여해 우보에 76.27%, 소보에 25.79%가 찬성했다. 의성군수는 당연히 의성 비안을 신공항 후보지로 유치신청 했다. 그러나 군위군수는 군민 74%가 반대하는 소보에 유치를 신청할 수 없다며 군민 76%가 찬성한 우보에 유치신청을 했다. 군공항유치 신청은 자치단체장이 주민의 의견을 충실히 반영해서 하도록 규정한 군공항이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8조2항에 따른 적법 행위라는 주장이다. 숙의형 시민의견조사결과에 따른 주민투표를 반영해서 군위 소보·의성 비안 공동후보지를 신공항 부지로 신청하지 않은 군위군에 대한 비난에 빗발치고 국방부는 군위 소보·의성 비안 공동후보지를 이전부지로 선정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군위군은 국방부장관은 유치신청한 지자체 중에서 이전부지 선정위원회 심의를 거쳐 이전 부지를 선정토록 규정한 특별법을 들이대며 “법대로 하라”고 오히려 국방부를 압박하고 있다. 국방부는 투표 전 지역주민 공청회에서 자치단체장의 유치신청 권한을 확인해 주기도 했다.3000억원 대 1500억원소음과 민원 덩어리의 애물단지 공항을 유치하겠다는 지방자치단체의 눈물겨운 현실은 사실 엄청난 공항주변지역 지원과 그에 따른 경제효과 때문이다. 공항이 들어서면 생산유발효과나 간접적 경제효과는 물론 고용창출효과까지 나타난다는 장밋빛 효과가 들먹여진다. 무엇보다 현실적으로 지원하는 이전 주변지역 지원계획만 봐도 그렇다.국방부는 지난해 12월 4, 5일 군위와 의성에서 열린 주민공청회를 열었고 같은 달 17일 대구군공항 이전사업 지원위원회는 이전주변지역 지원계획을 확정했다. 생활기반 시설 설치와 복지시설 확충, 소득증대와 지역발전 등 4개 분야 11개 단위사업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단독후보지 우보에 공항이 들어서면 군위에 3000억 원이 떨어지지만 공동후보지에 공항이 들어서게 되면 의성군과 군위군이 1500억 원씩 나눠 가져야 한다는 단순 계산이다.101대 99의 투표결과를 존중하고 90대 76을 인정하라고 군위군을 강요하기엔 76대 26이라는 현실과 단체장의 신청권한이라는 절차 또한 적법하니 국방부의 고민이 깊어지는 것 같다. 어쨌든 현 단계에서 군위군이 합의 결과를 무시하고 우보 단독후보지를 신공항 부지로 신청한 것을 도덕적으로 비난할 수는 있어도 단죄할 수는 없게 됐다. 그런 만큼 이제는 국방부가 결자해지 차원에서 이전부지선정위원회를 열어 결론을 내려야 할 때다.

문향만리…만무방

만무방~만무방은 ‘염치없이 막돼먹은 사람’~ 김유정…응칠은 뜨내기 만무방이다. 할 일도 없지만 일거리를 찾으려 하지도 않는다. 내키는 대로, 되는 대로 산다. 원래 응칠은 아내와 아들이 있는 농군이었다. 빚잔치 후, 먹고살기 위해 각자도생하고자 뿔뿔이 흩어졌다.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다가 아우 응오를 찾아갔다. 그에게 빌붙자는 의도가 아니라 피붙이가 그리웠던 탓이다. 응오의 마을에 달포가량 머물고 있다. 성실한 농군 응오는 응고개의 다랑이 논을 부쳐 먹고 있다. 벼를 털어 봤자 남는 게 없어 벼 벨 생각을 않고 있다. 그마저 도둑이 들어 벼 포기를 야금야금 잘라 간다. 설상가상 응오의 처는 병이 들어 송장같이 누워있다. 화도 나고 의심도 벗을 겸 응칠은 벼 도둑을 잡기로 결심한다. 밤이 이슥해지자 응칠은 밤을 새울 각오를 하고 응고개로 향했다. 가는 길에 바위틈 굴 안에서 막판에 몰린 만무방들과 노름을 한다. 밤이 깊었다. 응칠은 논두렁이 잘 보이는 곳에 잠복한다. 논둑에 희끄무레한 형상이 어른거린다. 한 사내가 얼굴을 가리고 봇짐을 걸머지고 있다. 몽둥이를 휘둘러 고꾸라트렸다. 놀랍게도 그는 아우 응오였다. 야밤에 자기가 지은 벼를 훔쳐가는 참이었다. 딱한 처지가 참담하다. 응칠은 삐딱하게 대하는 아우를 매타작한다. 응칠은 한숨을 쉬며 아우를 등에 업고 묵묵히 고개를 내려온다.…만무방은 ‘염치없이 막돼먹은 사람’을 의미한다. 지주와 장리를 놓은 김 참판을 뺀 모든 사람이 다 만무방이다. 만무방이라 하여 본디부터 만무방인 사람은 없다. 작가가 살았던 시대는 암울한 때였다. 앞만 보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만무방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사회였다. 지주와 김 참판이 선량한 농민들을 착취하여 만무방으로 전락시킨 장본인이라는 점이 작가의 시각이다. 지주와 김 참판은 악덕한 지배층의 표상이자 진짜 만무방이다. 만무방으로 비치는 사람은 ‘순박한 농군’이다. 그들은 불합리한 구조적 모순의 덫에 빠진 억울한 희생양일 뿐이다.벼를 베고 탈곡을 해봐야 지주에게 바치고 고리대금업자에게 뜯기고 나면 빈털터리다. 잘 먹고살기는커녕 연명하기조차 힘들다. 피폐한 삶에 허덕이다가 종내에는 ‘만무방’이 되고 만다. 이판사판 노름판에서 일확천금을 노리지만 그럴수록 상황은 더 꼬이기 마련이다. 가족마저 해체된다. 지주가 도지를 감해주고 응오의 소극적 편법을 눈감아준다고 될 문제는 아니다. 개인의 문제라기 보단 시스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작가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응칠이 응오를 매타작하는 결말에서 그 점을 얼핏 엿볼 수 있다.생산에 참여한 자에게 그 기여분에 상응한 보상이 보장되지 않는 한, 이 부조리한 상황을 타개하기 어렵다. 봉건적 계급사회에서는 근본적으로 해소될 수 없는 모순이다. 열심히 일한 사람에게 노력한 만큼 그 보상이 돌아가는 시스템이 도입되어야 한다.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모두에게 평등한 기회가 주어지고 공정한 절차를 거쳐 정의로운 결과가 보장되는 시스템이 뿌리내리기 전에는 그 답을 구하기 어려운 문제다. 사회부조리를 최전선에서 신랄하게 고발했던 문인들이 일찍이 사회주의에 눈을 돌렸던 것은 어쩌면 자연스런 현상이다. 빈부격차가 해소되지 않은 가운데 사회저변에서 부당하게 홀대받고 있는 문화예술인들이 아직도 그 언저리에서 볼멘소리를 하고 있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사회주의가 그 지향점을 바르게 제시하긴 했지만 정작 자본주의시장경제가 그곳에 더 가까이 다가간 시스템으로 판정받은 역사적 사실은 뜻밖의 반전이다. 오철환(문인)

경제칼럼…라임사태가 금융소비자에게 주는 교훈

라임사태가 금융소비자에게 주는 교훈이부형현대경제연구원 이사대우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수출중소기업을 중심으로 큰 피해를 가져왔던 키코(KIKO)사태 이후 비교적 잠잠하던 국내 금융시장이 최근 금리연계 DLF(파생결합펀드)사태와 라임사태로 개인투자자들을 중심으로 피해가 확산되면서 다시 한번 크게 요동치고 있다.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번 라임사태는 키코사태와 금리연계 DLF사태와는 완전히 다른 형태의 금융사고로 볼 수 있다.무엇보다 자산운용사의 도덕적 해이가 컸다. 자산운용사 임원들은 펀드 손실에도 불구하고 고액 임금을 받았고, 일부 임원은 사채투자로 막대한 차익을 얻었다고 한다. 또 손실이 난 펀드의 청산에 쓰일 자금 조달을 위해 멀쩡히 잘 운영되던 다른 펀드에 손실을 떠넘기기도 했다. 이른바 돌려막기 내지는 심하게 이야기하면 다단계 금융사기를 칭하는 폰지사기(Ponzi Game)까지 동원되었던 것이다.여기에다 기관투자자들의 이기심도 한몫했다. 라임자산운용에 돈을 빌려준 은행과 증권회사는 대출 이자와 판매 수수료뿐 아니라 우선 변제권을 행사하면 개인투자자에 앞서 대출 원금을 회수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개인투자자는 투자 원금을 한 푼도 회수하지 못하는 비상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계약에 따른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도의적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는 없다.결국 라임사태는 자산운용사인 라임자산운용의 도덕적 해이와 이에 투자한 은행과 증권사의 이기심, 다단계 금융사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벌어진 것으로 아주 복잡한 금융사고다. 하지만 역시 안타깝게도 가장 큰 피해자는 개인투자자라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이 사례들이 주는 교훈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겠다.우선, 투자는 자기책임원칙이 불문율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상황이건 투자 손실의 전부를 보전받을 수 없으며, 결국 투자 원금 손실은 개인투자자들의 몫인 것이다.키코는 환율변동 리스크 회피를 목적으로 많은 국내 수출중소기업들이 가입했는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원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3조원 이상의 환차손을 야기한 바 있다. 비록 지난 연말에 금융 당국이 관련 은행들의 불완전 판매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을 권고하긴 했지만, 전체 피해의 1%에도 못 미치는 규모다.금리연계 DLF도 마찬가지다. 이 상품은 약정 대상 금리가 만기 때까지 설정 금리 수준을 유지하면 원금과 약정 수익이 보장되지만, 그 아래로 떨어지면 원금을 모두 손실할 수 있는 상품으로 국내 은행과 증권사들이 8,000억 원 이상 팔아치운 바 있다. 이 또한 지난해 중반 이후 독일, 미국, 영국 등 약정 대상국의 금리가 불안정해지자 대규모 손실이 발생했고, 금융 당국의 판매사 제재와 손해액의 최고 80% 배상이라는 분쟁조정안이 발표되기까지 했다.간접투자에는 항상 정보의 비대칭성이 따른다는 점에도 유의해야 한다. 펀드처럼 전문가에게 자금을 맡겨 운영한 후 발생한 수익을 받는 간접투자방식을 취할 때 개인투자자는 전문가보다 훨씬 적은 정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투명하게 정보가 공개되지 않은 채 제한적으로 주어진 정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개인투자자는 리스크 발생 시 회피 수단이 없고, 종국에는 큰 손실을 스스로 감당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라임사태처럼 전문가의 도덕적 해이까지 더해지면 최악이다.특히나 위험이 없는 투자상품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예를 들어 소액투자가 용이한 펀드는 17세기 유럽에서 대륙 간 해상교역이 활성화되면서 본격적으로 도입되었다고 한다. 당연히 투자한 상인과 배가 무사히 돌아오면 큰 배당금을 얻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투자금 전액을 잃는 고위험 고수익 상품이었다. 그때와는 많이 달라졌지만, 펀드든 타 투자상품이든 태생부터 본질은 위험투자상품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소소한 개인투자자들이라면 눈 앞에 펼쳐진 장밋빛 전망에 현혹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오로지 아는 자만이 딱 그만큼만 피해갈 수 있다.

세상읽기…재난의 시간을 견디는 지혜

재난의 시간을 견디는 지혜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코로나19’가 사람들의 생활 패턴에 영향을 주고 있다. 바깥출입이 잦고 외부인을 많이 만나던 사람들도 외출을 자제하고 일찍 귀가한다. 일부 사람들은 평일과 휴일을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종전과는 다른 생활을 하게 된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집에서 TV 보는 시간이 늘어났다고 말하고, 또 일부 사람들은 책 읽는 시간이 많아졌다고도 한다. 각자의 취향에 따라 주어진 시간을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하겠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모처럼 독서를 통해 지적인 희열을 맛보게 되어 좋다고 말한다. 주어진 상황을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따라 인간의 행불행은 결정된다. 밀폐와 폐쇄, 유배와 고립, 권태와 단조로움도 거기에 대응하는 사람에 따라 그 시간의 용도와 가치는 달라진다.페트라르카와 함께 르네상스의 인문주의 토대를 마련한 조반니 보카치오는 속어인 이탈리아어로 쓴 문학 작품을 고대 고전문학의 반열에 들게 한 작가다. 그가 쓴 ‘데카메론’은 1348년 이탈리아를 강타한 페스트가 피렌체까지 이르게 되었을 때 교회 미사에 참석했던 7명의 귀부인이 3명의 신사를 초대하여 전염병이 잠잠해질 때까지 교외의 별장에 은둔하기로 결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10명의 남녀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매일 한 가지씩 10일 동안 순번을 정해놓고 이야기를 지어내 도합 100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를 서로에게 들려준다. 단테의 ‘신곡(神曲)’이 신의 도리를 보여준 작품이라면, ‘데카메론’은 인간의 본능과 악덕, 허위 등을 폭로하는 ‘인곡(人曲)’이라고 일컬어진다. 소설 속 모든 이야기는 자발적인 격리와 단절의 환경 속에서 나왔다.보름 동안 일찍 집에 들어와 책 읽기에 몰두했다는 지인은 이 자발적 단절의 시간 동안 행복한 삶에 대해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어떤 여성분은 KBS 클래식 FM과 몇 권의 책, 간단하게 먹을 것만 있으면 한 달 정도는 외출 없이도 행복하고 만족한 삶을 살 수 있다고 했다. ‘에피큐리언(Epicurean)'이란 용어가 지금은 향락주의자 또는 쾌락주의자의 의미로 쓰이지만 원래는 그 뜻이 아니다. 그 어원이 된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쾌락을 추구하는 철학자였다. 그가 도달한 쾌락의 정점은 만족이라는 이름의 사치였다. 그 사치를 누리는 데는 그렇게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았다. 아담하고 소박한 정원, 거기에 심어진 무화과 몇 그루, 약간의 치즈와 서너 명의 친구로 충분했다. 그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게 사치스럽게 살 수 있었다. “사려 깊고 아름답고 정직하게 살지 않고서 즐겁게 살 수는 없다. 반대로 즐겁게 살지 않으면서 사려 깊고 아름답고 정직하게 살 수는 없다. 사려 깊고 아름답고 정직하게 살기 위한 척도를 가지지 않은 사람은 즐겁게 살 수 없다.” 에피쿠로스의 이 말은 사는 것이 너무 고통스럽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에피쿠로스가 추구한 쾌락은 모든 정신적, 육체적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이었다. 순간적이고 육체적인 쾌락을 추구했던 퀴레네 학파와는 달리 에피쿠로스는 지속적이고 정적인 쾌락을 추구했다.‘아타락시아(ataraxia)’란 ‘마음이 동요되지 않고 평안한 상태’를 말한다.대구에도 코로나 확진자가 계속 나오고 있다. 동선이 공개되고 크고 작은 행사들이 잇달아 취소되고 있다. 보건당국은 개인위생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나와 내 가족이 안전하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현명한 행동 방침에 대한 생각과 함께 이 폐쇄와 고립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 모두는 삶을 마감할 때까지 앞으로도 여러 번 크고 작은 재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모두가 고통스러운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자신의 삶과 생활방식에 대해 다양한 성찰을 하게 된다. 개발독재와 고도 성장기를 거치면서 우리는 너무 외향적이고 떠들썩한 생활에 익숙해져 있다. 이제 내 가정, 가까이 있는 이웃, 친지를 중심으로 소박하게 사는 삶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인 ‘소확행’의 추구와 지적인 삶, 외양의 화려함보다는 내면의 깊이를 탐색해 본다면 이 움츠림과 위축의 시간도 나름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세상읽기…영화 ‘기생충’이 주는 진부한 교훈

영화 ‘기생충’이 주는 진부한 교훈오철환객원논설위원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작품상을 비롯한 4개 부문에서 오스카상을 수상했다. 예술성을 중시하는 칸과 상업성에 민감한 아카데미를 동시에 장악한 쾌거였다. 비영어권에서 영어 더빙도 없이 명품 영화로 평가받았다는 점은 기적이다. 인구 오천 만에 불과한 분단국가에서 영화계를 놀라게 한 일들이 잇따르고 있어 우리 민족의 저력을 새삼 돌아본다. 드라마 ‘대장금’이 해외에게 선풍적 인기몰이를 해서 놀란 일, 드라마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욘사마 열풍을 불러일으킨 일, 박찬욱 감독을 비롯한 몇몇 한국영화인들이 잊을 만하면 유명 영화제 수상소식을 전해온 일 등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한국영화 아카데미 석권의 전주곡쯤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사실과 잘 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는 교훈을 확인해준다.한국적인 것이 경쟁력을 갖는다. 남과 다른 걸 발굴하고 다듬는 것이 세계시장에서 먹혀드는 비결이라는 뜻이다. 비단 자랑스러운 부분에만 한정되진 않는다. 한국적 현상이 부끄러운 치부라 하더라도 숨기는 게 능사는 아니다. 정면으로 맞서서 승부를 걸어야 가능성이 열리는 법이다. 빈부격차, 사교육, 분단과 이념 분쟁 등에 기인하는 한국적 부조리와 모순을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해부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치유하는 첩경이다. 세계인의 공감과 공조를 이끌어 내는 것은 덤이다.우리나라는 유독 예술분야에서 강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음악계는 누구를 먼저 들어야할지 모를 정도로 거장들이 쟁쟁하다. 작곡가 안익태와 윤이상,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와 강동석,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조성진, 첼리스트 장한나, 소프라노 조수미 등 기라성 같은 스타들이 즐비하다. 비단 클래식 분야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세계인에게 ‘말춤’을 추게 했던 ‘강남 스타일’의 싸이, 매순간 새로운 신화를 쓰고 있는 K-팝의 BTS 등 대중음악도 클래식 못지않다. 미술계도 만만찮다. 비디오아트를 창시한 백남준과 모노파의 이론과 실천을 주도한 이우환 등 이름을 다 거명하자면 끝이 없다.우리 민족의 예술본능은 아무래도 내림일 가능성이 크다. 진수의 ‘삼국지위지동이전’이나 김부식의 ‘삼국사기’를 보면 당시 우리 민족의 두드러진 예술본능을 발견할 수 있다. 부여에서 삼한에 이르기까지 어느 지역 가릴 것 없이 ‘가무를 즐겼다’, ‘가무백희’라는 표현이 빠지지 않고 나온다. 예로부터 춤과 노래에 끼가 많았다는 점을 잘 알 수 있다. 예술적 DNA가 끊이지 않고 대대로 전승된 셈이다. ‘흥’이라든가 ‘신명’이 타고난 고유의 정서라는 주장이 빈말은 아니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라는 노래도 그런 범주일 수 있다.우리 핏속에 녹아있는 우리만의 재능을 발굴하고 가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각자의 소질을 개발하는 일이 글로벌 무한경쟁시대에 살아남는 생존전략이다. 이는 누구나 알고 있는 지극히 진부한 상식이다. 그런 이유로 오히려 간과하거나 소홀히 하기 쉽다. 대부분 공부로 승부하려고 버둥거린다. 책만 보면 경기하는 아이에게 공부를 강요한다. 사농공상의 뿌리 깊은 유교적 가치관 때문일 수 있다. 다가오는 미래는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아가는 시대가 아니다. 잘못된 편견이나 선입견은 과감히 청산해야 할 때다. 자식이 행복한 삶을 영위하길 원한다면, 지금이라도 재능에 맞고 선호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목줄을 풀어주어야 한다.이러한 관점에서 ‘개미와 배짱이’ 우화를 현대적으로 리메이크할 필요가 있다. 예전에는 모두 개미처럼 열심히 일해야만 추운 겨울을 날 수 있다고 가르쳤다. 제4차 산업혁명시대에 걸맞게 현대적 버전으로 업그레이드시켜야 한다. 개미와 같이 성실한 품성을 가진 자는 열심히 일 해야 하겠지만 배짱이 같이 노래하는 걸 즐기는 자는 그에 맞는 길로 인도할 필요가 있다. ‘기생충’의 대박이 엉뚱한 곳에서 재능을 썩히는 사람들에게 ‘인생엔 다양한 길이 있다’는 교훈을 주었으면 한다. ‘토끼와 거북이’ 우화도 흘려들어선 안 된다. 거북이가 토끼를 이기는 결말을 알고 있지만 토끼처럼 급히 뛰는 사람이 많다. 급히 뛰면 피로가 쌓이고 피로가 쌓이면 쉬어야 하는 것이 정한 이치다. 급히 뛰면서 자기만은 쉬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인생은 마라톤이다. 감당할 수 있는 체력을 감안하여 완급을 조절하고 쉴 때는 쉬어가는 지혜를 발휘하여야 만족스러운 성과를 낼 수 있다. 봉준호 감독도 단번에 단상에 뛰어올라 대박을 터트린 건 아니다. 봉준호가 여러 곳에서 우후죽순처럼 나오길 바라며.

문향만리…모서리

모서리우은숙저, 도도한 앉음새에 타협은 없었다/ 옹골찬 모습엔 흩뜨러짐도 없었다/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단호함만 있었다.그러나 한 걸음에 달려온 햇빛 소나기/ 그 눈부신 절정이 창문을 투과하자/ 견고한 각진 얼굴이/ 순해지네/ 느긋해지네.꼿꼿한 경계가 풀려난 그 자리/ 모난 것도 둥근 것을 품고 살았구나/ 몸 안에 잔물결 이는 그곳/ 딱딱하다가/ 말랑한.-시조집 『그래요, 아무도 모를 거예요』(시인동네, 2020)......................................................................................................................우은숙은 강원도 정선 출생으로 199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마른 꽃』『물소리를 읽다』『소리가 멈춰서다』『그래요, 아무도 모를 거예요』『붉은 시간』(고요아침 현대시조 100인선 18번, 2016) 등과 평론집 『생태적 상상력의 귀환』이 있다. 날마다 매운 혀를 낮달 속에 구겨 넣고 싶은 마음으로 시조 창작의 길을 걷고 있는 시인이다.사람들은 이따금 모서리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일상 속에서 자주 맞닥뜨리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가끔 모서리에 뜻하지 않게 부딪쳐서 몸에 멍들거나 상처가 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부주의한 자신을 자책하기도 한다.왜 하필이면 그 순간 조심하지 않았지 하면서 삶 속에서 모서리와 같은 각지고 거친 존재를 떠올려보기도 한다. 그만큼 모서리는 우리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필요한 모서리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때로 대적하기 힘든 무기가, 적이, 매서운 눈총이 되어 우리를 위협한다.‘모서리’는 그런 착상 끝에 생산된 세 수의 연시조다. 첫수 저, 도도한 앉음새에 타협은 없었고, 옹골찬 모습엔 흩뜨러짐도 없었지만,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단호함만 있었던 것을 독자의 뇌리에 각인시킨다. 그렇다. 도도하기에 타협이, 옹골차기에 흩뜨러짐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모서리에게는 범접치 못할 단호함만 있어서 가까이 하기 어려웠던 것이다.이러한 모서리에 변모가 일어난 것을 둘째 수는 알려주고 있다. 한 걸음에 달려온 햇빛 소나기가, 그 눈부신 절정이 창문을 투과하는 순간 견고한 각진 얼굴이 순해지고 느긋해지는 것을 화자는 눈여겨보고 증언한다. 꼿꼿한 경계가 풀려난 그 자리를 보면서 모난 것도 둥근 것을 품고 살았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마침내 몸 안에 잔물결 이는 그곳을 체감하고 딱딱하다가 말랑말랑한 성정까지 읽어낸다.우은숙의 ‘모서리’에서 인생의 의미를 재발견한다. 외유내강이라는 말과 더불어 외강내유를 생각하게 된다. 겉으로 보기에는 부드러워 보여도 내면이 강골인 사람도 있고, 반면에 겉이 강한 듯 보여도 그 속은 한없이 여린 이도 있다. 모서리는 겉으로 보기에는 타인에게 상처 주기 쉬워 보여도 외려 그 속은 여려서 도리어 상처받기 쉬운 한 자아를 떠올리게 한다.시는 놀라운 발견이자 자각이고 성찰이다. 새로운 시각으로 풍경과 내면을 아우르면서 언어에 생명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그때 한 편의 시는 미학적 자기장을 형성하면서 감동을 안기게 된다.‘모서리’는 모서리라는 비근한 소재를 텍스트로 삼아 한 편의 진지한 인생담론을 들려주고 있다. 우리는 존재론적 성찰을 통해 현실을 직시하고 미래를 견인할 힘을 얻는다.모난 것도 말랑말랑하고 둥근 것을 품고 산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이정환(시조 시인)

아침논단…누가 진짜 기생충인가?

누가 진짜 기생충인가?박운석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짜파구리(짜파게티+너구리)를 먹었다. 흔히 먹는 음식이 아님에도 최근 한 달 사이 두 번이나 먹었으니 자주 먹은 셈이다. 첫 번째는 설 연휴 때 20대 조카들이 해 먹는 라면요리를 얻어먹은 것이었다. 명절 음식에 조금은 느끼함을 느끼고 있던 설 다음날, 조카들이 나서서 라면을 사오고 자기식대로 요리를 했다. 쏭쏭 썬 대파를 고명으로 얹은 걸 보니 나름대로의 레시피로 몇 번 만들어본 솜씨인 듯 했다.두 번째는 영화 ‘기생충’이 미국 최고 영화상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등 4관왕에 오른 후였다. 이 영화에서는 부잣집 박사장네가 짜파구리에 한우 채끝살을 넣어 먹는 장면이 나온다. 아카데미 4관왕 효과인지 짜파구리는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화제몰이를 하고 있다. 실제로 구글에서는 시상식 후 짜파구리(영화 자막 으로는 ‘Ram-don’) 조리법 검색 양이 400% 이상 늘기도 했다. 국내외 ‘짜파구리’ 열풍에 참을 수가 없었다. 동네 마트에서 두 가지 라면을 사와서 설 연휴 때 먹었던 기억을 더듬어 그대로 만들어 먹었다.희한하게도 맛이 달랐다. 똑같은 종류의 라면에 똑같은 분말스프인데…. 아마 두 번째 먹을 땐 영화 기생충을 떠올리며 이것저것 생각이 많아서 그렇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영화 기생충은 우리나라 사회의 계층갈등과 불평등, 양극화 현상을 다룬 영화다. 감독은 의도한 것일까? 짜파구리는 두 개의 라면을 소비자들이 직접 섞어서 만들어 먹는 요리다. 요즘 유행어로 말하면 ‘꿀조합’이다. 두 개의 라면을 섞어 하나로 버무려 새로운 맛을 내듯 양극단으로 치닫는 계층갈등, 이념갈등을 하나로 잘 섞어 꿀조합을 만들어내라는 게 감독의 의도 아니었을까.사실 영화 속 짜파구리가 우리 사회의 계층문제를 비유한 게 아니냐는 해석은 기생충 개봉 당시부터 있었던 이야기다. 두 개의 라면은 반지하의 두 가족을 빗댄 것이고 토핑으로 얹은 한우 채끝살은 부자 가족을 의미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그럴듯한 이야기이기도 하다.짜파구리를 먹으며 온갖 상상을 하는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있다. 누가 진짜 기생충인가 하는 문제다. 영화는 누가 기생충인지 명확하게 이야기하진 않는다. 다만 가난한 사람들이 기생하는 걸로 묘사되어 있긴 하다. 학력을 속인 김씨 집안 아들과 딸은 박사장 집에 영어와 미술 과외교사가 되어 기생한다. 김씨 부부는 운전기사와 가정부로 들어가 들어앉은 것처럼 말이다.하지만 기생충이 이들 뿐일까. 부자인 박씨네는 운전부터 시작해 집안일, 일상생활 거의 모두를 다른 사람의 노동력에 기생하고 있다. 물론 대가를 지불할 능력이 있어서다.한국미디어문화학회가 최근 펴낸 평론서 ‘천만영화를 해부하다-기생충’(출판사 연극과인간)에서 김형래 교수는 “영화는 서로 공생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듯하다”고 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기생하기 때문에 누가 기생충인지 명확하지 않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서로에게 기생한다는 것은 결국 공생하고 있다는 말이다.영화 ‘기생충’ 열풍에 기생하려는 정치인들이 볼썽사나운 것도 이 때문이다. 4월 총선에서 조금이라도 유리한 홍보전략을 위해 어떻게든 영화 기생충과 엮어보려는 시도가 안쓰럽다. 애초부터 공생의 의도가 없어서 더 안타깝다.영화가 아카데미 작품상등 4개 부문을 휩쓴 건 전 세계가 안고 있는 계층갈등이나 빈부간의 격차, 불평등, 사회부조리 등을 다뤄서다. 그래서 세계인들의 공감을 이끌어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영화 기생충이 말하고자 했던 양극화 등의 메세지엔 입을 닫고 단지 총선용 마케팅에만 신경을 쓰는 정치권이 보기 좋을 리 만무하다.우리 사회가 불평등한 건 현실이다. 영화에서처럼 퀴퀴한 반지하에 살며 온 세상을 고루 비춘다는 햇빛마저 평등하게 소유하지 못하는 세상 아닌가. 지금 정치권은 영화 기생충에 기생해 이득을 보려고 할 때가 아니다. 영화가 이야기하는 사회의 양극화, 불평등, 불합리, 부조리에 대한 적극적인 논의와 대책을 내놓아야 할 때 아닌가. 단순히 영화의 인기에 숟가락만 얹으려는 건 또 다른 기생의 한 형태일 뿐이다.

문향만리…숲속의 나무

숲속의 나무서지월 숲속의 나무는 바람이 불어와도 / 그냥 흘려 보냅니다 숲속의 나무는 비가 와도 / 그대로 흘려 보냅니다 / 숲속의 나무는 내가 누구인가를 모릅니다 / 숲속의 나무는 잎을 달아 노래하고 / 꽃을 달아 호젓이 명상하다가 / 열매를 피워 스스로의 무게를 가늠해 볼 뿐 / 지나가는 산토끼나 다람쥐 그들을 / 그대로 있게 합니다 내가 누구인가를 / 모르는 숲속의 나무는 그대로 선 채로 / 낮에는 햇빛 먹고 밤에는 / 달빛 먹고 살아갑니다 아득히 먼 / 별빛 우러러 숲속의 나무는 / 하늘의 뜻 알아차리고 흐르는 물소리로 / 땅의 기운 알아차립니다 / 내가 누구인가를 모르는 숲속의 나무는 / 조금도 흔들림이 없습니다서지월시집 『나무는 온몸으로 시를 쓴다』 (고요아침, 2019)........................................................................................................... 나무는 시인의 순수한 내면세계를 상징한다. 속세를 벗어난 호젓한 숲속에서 새소리에 마음을 열고 바람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햇살을 바라고 구름과 사귀며, 비를 피하지 않고 바람도 받아들인다. 숲속의 나무는 자연 속에서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스스로 없는 듯 존재한다. 현실에서 저만치 떨어져 있는 시인은 숲속의 나무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는다. 시인이 곧 나무이고 나무가 곧 시인이다. 속세와 서먹서먹한 시인은 아름답고 청징한 나무가 되었다.바람이 불어도 비가 쏟아져도 아랑곳없이 다 내려놓고 무욕으로 흔들리지 않는다. 무소유무욕에 다름 아니다. 존재를 잊고 생각의 범주마저 벗어난다. 무념무상이고 물아일체다. 나뭇잎이 돋아나면 그 잎으로 노래하고 꽃이 피면 그 꽃을 달아 명상에 잠긴다. 열매를 맺으면 지나가는 산토끼나 다람쥐에게 맡기면 그만이다. 원래 내 것이라 할 수 없으니 가져간들 어떠리. 햇빛에 만족하고 달빛에 감사하는 나무는 시적 영감으로 가득 찬다. 별빛만 봐도 하늘의 뜻을 알아차리고 흐르는 물소리만 들어도 땅의 기운을 느낀다. 염화미소에 이심전심이다. 무념무상의 경지에 이른 나무는 순수의 정수다.시인은 욕심과 증오로 가득 찬 인간과 이별하고 숲속으로 떠난다. 비리와 부조리에 매몰된 세상과 담을 쌓고 시인은 나무가 된다. 나무가 된 시인은 이제 온몸으로 시를 쓸 뿐이다. 나뭇잎과 꽃잎과 열매는 향기로운 시가 되어 지나가는 바람에 시심을 실어 보낸다. 나뭇가지에 앉은 새들은 시를 노래하고 떨어지는 낙엽도 시에 취한다. 마음껏 나누어도 시심은 줄어들지 않는 화수분이다.나무는 끝없이 베푸는 존재다. 탄산가스를 흡수하고 산소를 공급한다. 테르펜이나 피톤치드를 뿜어내는 나무는 이타적인 생명체의 모범이다. 온갖 동식물에 보금자리를 내어주고 열매와 잎사귀를 먹이로 내놓기도 한다. 살아서 나눔을 실천하는데 그치지 않고 죽어서도 남김없이 보시를 실천하는 보살이다. 집과 가재도구를 만드는 목재로 변신하여 우리 삶을 기름지게 하고 몸을 태워 추위로부터 우리를 지켜주기도 한다. 그러고도 잘난 체하지 않는 겸양은 가히 신의 경지라 할만하다. 신이 창조한 생명체 중에 최고의 작품은 나무라고 한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신이 당신을 닮은 생명체를 창조하셨다면 그건 아마 인간이 아니라 나무일 것이다. 신이 가장 사랑하는 생명체가 인간이라는 생각은 착각이다. 그렇지 않다면 신이 인간처럼 이기적이고 위선적이라는 의미다. 생명이 윤회한다는 불가의 가르침이 사실이라면 다음 생엔 깊은 숲속의 볼 품 없는 한그루 나무로 환생하고 싶다. 서지월 시인이 나무가 된 사연은 충분히 이유가 있다. 오철환(문인)

아침논단…2020 대구수성 한국지역도서전

2020 대구수성 한국지역도서전김상진수성구립용학도서관 관장‘2020 대구수성 한국지역도서전’ 준비가 본격화되고 있다. 한국지역도서전은 대한민국의 지역출판물과 독서문화를 공유하고 소통하기 위해 매년 기초자치단체 단위에서 열리는 전국 규모의 책축제인 동시에, 독서축제다. 올해는 오는 5월22일부터 24일까지 대구시 수성구 두산동 수성못의 상화동산과 수성구립도서관인 범어·용학·고산도서관 세 곳에서 진행된다. 이를 위해 조직위원회가 지난달 29일 발족됐으며, 사무국을 중심으로 슬로건 공모전이 진행되는 등 행사 준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한국지역도서전은 지난 2017년 제주에서 시작됐다. 서울과 경기도 파주의 유력 출판사들이 국내 출판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현실 속에서도 지역문화를 보전하고 확산하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 지역출판사들이 모인 한국지역출판연대가 제주시와 함께 도서전을 개최하면서부터다. 이어 2018년에는 경기도 수원에서, 2019년에는 전북 고창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올해로 4회째다. 수성구는 지난해 고창에서 열린 한국지역도서전에서 몇몇 도시와의 경합을 거쳐 도서전 유치에 성공하면서 차기 개최도시 선포식에 초대됐다. 내년 개최지는 강원도 춘천으로 내정된 상태로, 오는 5월 상화동산에서 공식적으로 선포된다.개최지를 소개하는 과정에서 눈치 빠른 독자는 알아챘겠지만, 한국지역도서전은 각 권역의 출판 및 독서문화를 대표하는 기초자치단체에서 열리고 있다. 제주권에서는 제주시, 경기권에서는 수원시, 호남권에서는 고창군, 영남권에서는 수성구, 강원권에서는 춘천시가 그러하다. 혹시나 미흡한 점이 있다고 한다면 해당 기초자치단체는 해당 권역에서 출판 및 독서문화를 대표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의지와 각오를 다진 끝에 인정받은 것이며, 자치단체 스스로와 지역주민에게 약속을 한 것이다.출판문화 또는 기록문화가 의미 있는 것은 그 시대의 문화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역의 출판문화와 기록문화에는 지역문화가 오롯이 담겨 있을 수밖에 없다. 대구의 문화, 수성구의 문화에 서울이나 파주의 출판사가 관심을 가질 리 만무하다. 이런 이유로 한국지역도서전은 지역출판사들의 출판물만 공유할 것이 아니라, 해당 지역의 문화를 제대로 녹여내야 의미가 있다.이 때문에 역대 한국지역도서전 조직위원회는 준비과정에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2017년 제주에서는 ‘동차기 서차기 책도 잘도 하우다예(동네방네 책도 많네요)’란 슬로건을 내걸고 ‘4·3특별전’과 ‘올레책전’ 등을 펼쳤다. 또 2018년 수원 화성행궁 일대에서는 ‘지역 있다, 책 잇다’란 슬로건 아래 ‘신작로 근대를 걷다’ ‘도서관 속 수원, 역사와 문학을 담다’ 등의 특별전을 진행했다. 2019년 고창 책마을해리에서는 ‘지역에 살다, 책에 산다’란 슬로건을 내걸고, ‘할매작가 전성시대전’ ‘책감옥 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됐다.대구수성 한국지역도서전 조직위원회도 어깨가 무겁다. 대구와 수성구의 문화 정체성을 제대로 조명함으로써 지역주민에게는 자긍심을, 외지 방문객들에게는 우리 지역의 문화적 특질을 보여줘야 하는 부담감 때문이다. 특히 ‘고담시티’로 불린 적이 있을 정도로 부정적인 이미지만 있을 뿐 정체성이 모호한 대구는 물론, 졸부동네로 비춰질 수도 있는 ‘대구의 강남’이란 별명을 가진 수성구의 문화 정체성을 확인시켜줘야 한다. 현재 조직위원회의 구상은 다음과 같다. 대구의 문화 정체성은 고려시대 초조대장경이 팔공산 부인사에 보관됐으며, 조선시대 출판문화의 3대 거점 역할을 경상감영에서 수행했던 역사적 사실을 통해 대구가 영남권 기록문화의 본산이란 점을 부각시킬 계획이다. 또한 수성구 파동에 있었던 계동정사가 대구 유생들에게 퇴계 성리학을 보급하기 시작한 대구 유학의 뿌리란 점으로 수성구의 문화 정체성을 확립한다는 전략이다.올해 한국지역도서전에 의미를 부여할 또 다른 대목은 민간 주도로 추진된다는 점이다. 개최지 단체장인 김대권 수성구청장이 의례히 맡았던 조직위원장 자리를 사양하고, 시조시인인 문무학 전 대구문화재단 대표를 위촉했다. 또한 민간 전문가를 조직위원회 사무국장으로 임명함으로써 민간 전문가들이 행사를 주도하도록 체제를 갖췄다. 이밖에도 명실상부하게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한국지역도서전이 되도록 오는 25일까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슬로건을 공모 중이다. 또 1천 명이 1만 원씩 모아 지역출판대상을 시상하는 ‘천인(千人) 독자상’에 동참할 후원자도 모집한다. 아무쪼록 많은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동반된 한국지역도서전을 통해 대구와 수성구의 문화역량이 확인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