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 행정통합, 공감대 확산 바탕 추진을

대구·경북 행정통합의 뼈대가 될 기본계획 초안이 발표됐다. 행정통합공론화위원회는 지난 2일 ‘대구경북특별광역시’와 ‘대구경북특별자치도’ 등 2가지 밑그림을 제시했다.행정통합의 비전은 ‘2040 글로벌 경제권, 통합 대구경북’ 달성이다. 4대 중점 전략은 신행정, 신산업, 신연결, 온오프 글로벌 인프라 건설이다. 통합에 따른 경제산업, 과학기술, 문화관광 등 부문별 발전전략도 공개됐다.공론화위원회는 초안에 대한 여론수렴을 거쳐 4월 하순까지 확정된 기본계획안을 시도지사에게 제출할 방침이다. 앞으로 2개월 내 대구·경북 행정통합의 모든 기본 사항이 확정된다는 이야기다. 통합 논의가 급물살을 타게 된다.공론화위원회는 4~9일 대구, 경북 동부권, 서부권, 북부권 등 4곳에서 권역별 대토론회를 개최한다. 여론조사, 빅데이터 조사, 시도민 대표 500명이 참여하는 숙의 토론조사 등도 실시한다.대구시와 경북도는 확정된 기본계획을 바탕으로 5월 행안부 통합건의서 제출, 6·7월 주민투표 발의, 7·8월 주민투표 실시 등의 일정을 진행할 계획이다.그러나 문제는 행정통합에 대한 시도민의 관심도가 여전히 낮다는 점이다. 최초 제안은 지난 2019년 12월에 나왔다. 이미 1년2개월 이상 시간이 지났지만 관심도가 높아졌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또 공론화위원회가 지난 2월 중순 실시한 시도민 여론조사 결과 행정통합에 대한 견해도 찬성 40.2%, 반대 38.8%로 팽팽하다. 향후 추진과정에서 주민의견 수렴이 쉽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행정통합 인지도가 낮은 데는 여러 외부 요인이 있다. 코로나19 장기화, 그로 인한 경제난, 가덕도신공항 특별법, 4·7 서울·부산시장 보선, 법-검 갈등 등 전국적 이슈에 행정통합이 묻혀버린 때문으로 풀이할 수 있다.그렇다고 대구·경북 행정통합이 주민 관심 밖에서 추진돼서는 안된다. 행정통합이 관심을 끌지 못한 근본 원인은 시도민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와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관심을 끌만한 이슈나 열띤 찬반 논쟁이 없었다는 점도 주요 원인이다.향후 논의는 기본계획의 장단점을 분석하는 동시에 시도민의 공감대를 확산시키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시도민의 관심도를 끌어올리지 못해 논의를 중단하는 사태는 막아야 한다. 그렇다고 성과를 내야 한다는 조급증에 사로잡혀 일방적으로 밀어붙여서도 안된다. 쉽지 않겠지만 두가지 경우를 모두 피해갈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무엇 때문에 관심이 저조한지 서둘러 분석하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공론화위원회는 ‘대구·경북 행정통합 논의는 이제부터 본격 시작’이라는 각오로 시도민 삶의 질 향상과 지역발전이라는 두가지 근본 목표를 충족시키는 방향을 찾기 바란다.

안전의식 높여야 비로소 어린이 보호구역이 완성된다

김선영달서경찰서 교통안전계만물의 시작을 알리는 봄이다. 2021년의 봄은 몹시도 기다려지고, 유난히 반가운 계절이다. 어느 누구도 경험해 보지 못한 코로나 사태로 혼돈의 한 해를 보낸 지금, 그 속에서도 조금씩 질서를 잡아가며 그토록 염원하던 일상으로의 복귀를 위해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지난 2일부터 지역 유치원·초등학생들이 매일 등교를 시작했다. 이에 따라 등·하교 시간에 학교 주변을 중심으로 차량과 보행자 통행이 늘어나 어린이보호구역 내 교통사고 발생이 우려된다.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전국 어린이 교통사고 사망자는 2017년 54명, 2018년 34명, 2019년 28명(대구지역은 2019년 이후 사망자 없음)으로 꾸준히 줄어드는 양상을 보이지만, 어린이 교통사고 건수는 2018년 1만9건, 2019년 1만1천54건으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대구지역 어린이 교통사고 발생 중 최근 5년간(2016~2020년, 평균 25.6건) 스쿨존 어린이 사고를 살펴보면, 신학기가 시작하는 3월부터 사고가 크게 증가해 활동이 많은 5월에 가장 많이 발생했다. 사상자 중 저학년 52.3%, 고학년 26.5%, 미취학 어린이 21.2% 순으로 발생했으며, 하루 중 오후 2시~6시에 가장 많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어린이보호구역 내 신호등과 과속단속카메라 설치 의무화 등을 담고 있는 ‘도로교통법 개정안’과 어린이보호구역 내 안전운전 의무 부주의로 사망이나 상해사고를 일으킨 가해자를 가중처벌하는 내용의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등 2건이 지난해 3월25일부터 시행됐다.또 오는 5월11일부터는 어린이 보호구역에서의 주정차 위반 범칙금·과태료는 현행 일반도로의 2배인 8만 원(승용차 기준)에서 3배인 12만 원으로 인상된다. 하지만 이런 교통안전시설 확충과 법률 개정만으로는 어린이 교통사고 예방에 한계가 있다.운전자들은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안전보다는 빠르게 가야겠다는 생각이 앞서는 경우가 많다. 운전자의 보행자 보호를 위한 ‘일단정지’ 운전습관과 어린이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인식 전환이 선행되지 않는 이상 그 어떤 예방 대책도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특히, 어린이들은 주변을 살피지 않고 좁은 시야로 도로위를 횡단하는 특성이 있다. 스스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도록 도로를 건널 때는 우선 멈춤, 운전자와 눈 맞추기, 차를 계속 보면서 걷는 습관 등이 익숙해 질 수 있도록 가정과 학교에서 지속적으로 지도해야 한다.‘교통사고는 나에게도 언제나 일어날 수 있다’라는 경각심을 갖고 운전자와 어린이들 모두 안전의식을 높이고, 교통안전을 생활화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비로소 어린이 보호구역은 완성될 것이다.

바이든 리스크 시작되나?

이부형현대경제연구원 이사대우우여곡절 끝에 들어서 이제 막 2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을 보낸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행보를 보면 아직까지는 시장의 기대에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어서 참으로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세계기후협약 복귀, 세계무역기구(WTO) 등 다자주의 존중 선언, G20 공조 및 동맹 강화 방침 등과 같은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의사 표명은 미국의 보호주의 색채가 옅어짐은 물론 세계 교역량 축소,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과 같은 리스크도 함께 축소될 것이라는 것을 예고하는 것일 뿐 아니라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도 그만큼 축소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이 이는 지난 4년 간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을 키워왔던 트럼프 리스크(Trump Risk)와의 결별을 예고하는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어 세계 경제는 물론 우리 경제에도 이 이상의 호재는 없어 보인다.그래서 여기까지는 바이든 행정부에 대한 시장의 기대가 반영된 것이어서 다행스럽다는 것이지만, 이런 생각도 이제 곧 바꿔야 할 지 모르겠다. 연일 이어지고 있는 대 중국 강경책은 물론이고 지난 달 말에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한 공급망 재편 관련 행정명령만 보더라도 ‘바이 아메리카(Buy America)’를 중심으로 기존 미국 우선주의가 유지 또는 강화될 것이라는 예상은 쉽게 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행정명령에는 미국 제조업 경쟁력 유지 및 강화에 꼭 필요한 반도체나 고용량 배터리 및 희토류 등의 핵심 부품과 자재의 공급망에 대해 짧게는 100일 길게는 1년 이내에 재검토하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어서 우리 입장에서도 공급망 재편 등 사전 대응이 불가피해 진 것이다.트럼프 행정부 당시 미국에 대한 우리나라의 수출과 투자 실적만 살펴봐도 이는 절대 기우가 아니다. 수출 측면에서는 승용차, 자동차부품, 무선전화기 등 이전의 오바마 2기 행정부 때 대 미국 수출 증가를 이끌었던 품목들의 수출이 부진하면서 전체 수출 실적의 둔화를 불러왔다. 이는 소재부품도 예외가 아니다. 반면에 투자 측면에서는 오바마 2기 행정부에 비해 50% 이상 대 미국 투자가 증가했는데 특히, 제조업과 정보통신업과 같이 미국의 전략산업 부문으로 트럼프 행정부의 대 중국 규제가 집중된 부문에 대한 투자가 급증한 것이다.이처럼 바이든 행정부의 ‘바이 아메리카’ 정책이 본격화된다면 트럼프 행정부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의 대 미국 직접 수출 증가세 둔화와 함께 투자 확대가 동시에 진전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미국의 전략산업으로 대 중국 규제 관련 산업일 경우 이러한 경향이 가속화될 수 있을뿐더러 우회수출 기회의 축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데, 아마도 최근 국내 반도체나 자동차 배터리 관련 주요 업체들의 미국 투자가 증가하는 것도 이런 리스크를 회피하려는 행동으로 보여진다.더군다나, 이러한 바이든 행정부의 행보에 대해 미국 국민들의 60%가 환호하고 있다는 여론조사결과가 나온다니 우리 입장에서는 더 위협적인 일이다. 미국 우선주의와 고립주의를 동시에 추구했던 트럼프 행정부와는 달리 미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면서도 국제사회로의 귀환을 통해 기존 미국 주도 세계 평화질서 유지라는 팍스 아메리카(Pax Americana)의 영예를 되찾으려는 바이든 행정부의 행보에 미국 국민들이 갈채를 보내고 있다는 것은 향후 미국의 통상산업정책이 우리에게 불리하게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으로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는 것이다.당연히 이런 예상은 당연히 빗나갔으면 좋겠고 설령 그것이 맞더라도 트럼프 리스크에 버금가는 바이든 리스크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아니길 바란다. 자칫하면 수출 감소, 투자와 고용 창출 기회 축소, 금융시장 불안 등 국가 경제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는 일이 현실화되길 바라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때마침 지난 2월 우리나라 수출이 크게 증가했다고 한다. 특히, 그 동안 부진했던 반도체와 자동차 수출이 크게 늘었을 뿐 아니라 중국, 미국, 유럽 등 3대 수출시장에서 4개월 연속 증가했다고 하니 바이든 리스크와 같은 엉뚱한 소리보다는 글로벌 경기 회복의 혜택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 더 좋을 법하다. 하지만, 뻔히 예정된 리스크를 모른 척 그냥 보고 넘기는 것도 그다지 현명한 일은 아니다.

‘도덕 감정론’을 다시 읽는 이유

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보다 17년 앞서 ‘도덕 감정론’을 썼다. 이 책은 ‘국부론’의 기초가 됐다. 모든 사람이 자신을 우주와 세상의 중심이라 생각하고 자기 이익만 추구한다면 타인과 더불어 살며 남을 행복하게 하는 도덕적 결정 따위는 할 수가 없다. 사람들이 오로지 일신의 영달과 치부, 명예만을 추구한다면 세상은 각박하고 삭막해질 것이고, 부패와 타락이 만연하게 될 것이다. 애덤 스미스는 사회가 그런 상태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도덕적 결정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인간이 도덕적 결정을 내릴 때는 ‘공명정대한 관찰자(impartial spectator)’를 염두에 둔다고 했다. 누군가가 늘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다고 상상하며 동정심과 양심의 조언에 따를 때가 많다는 것이다.‘도덕 감정론’은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나 빌 게이츠 같은 사람들이 인생의 등불로 삼은 고전 중의 고전이다. 애덤 스미스 자신도 ‘국부론’보다는 ‘도덕 감정론’의 저자로 기억되길 원했다. 국부론의 내용 대부분은 여기 사는 오늘의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정부에서 최고의 지위를 차지하려고 야심가들은 탈법적인 행위를 한다. 이들은 자신의 야심을 달성하기 위해 저지른 탈법적 행위에 대해서 나중에 해명을 요구받을 것이란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야심가들은 사기와 거짓말뿐 아니라 극악무도한 범죄까지도 저지르기도 한다. 그러나 야심가들은 성공하기보다는 실패할 때가 더 많으며 저지른 범죄에 상응하는 형벌을 받게 된다. 설령 야심가들이 탈법으로 부와 권세를 얻게 됐다고 해도, 그들이 원래 향유할 것으로 기대했던 행복은 누리지 못하고 실망하게 되며 매우 비참하게 된다.”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지금 힘 있는 자들에게 기생해 호가호위하는 사람들이 깊이 음미해볼 말이다.세상 많은 사람이 현재의 실력자에게 줄을 서고 그 앞에 고개를 숙인다. 실력과 자질, 자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요령과 편법, 때론 불법과 탈법적 방법을 써서라도 일단 어떤 자리를 차지한다. 자신이 저지른 행동을 합리화하고 망각하기 위해 엉뚱한 일들을 벌이기도 한다. 그러나 자기 능력과 한계는 자신이 안다. 그런 사람들에게 애덤 스미스는 말한다. “탈법으로 성공한 야심가는 자신이 저지른 악행을 자신과 타인의 기억에서 지우기 위해서 낭비를 하거나, 방탕한 쾌락에 탐닉하거나, 공공업무에 몰두하기도 한다. 그러나 자신이 저지른 악행은 절대로 잊히지 않고 그를 따라다니며 괴롭힌다. 그는 건망증과 망각이란 어둡고 우울한 힘에 의존해보지만 허사이다.”도덕적이지 않은 행동으로 성공하기도 쉽지 않지만, 설령 성공한다고 해도 파멸할까 두려워 행복을 누릴 수 없다는 게 애덤 스미스의 충고이다. “야심가는 자신이 저지른 악행을 기억하고 있다. 그는 부끄러움과 양심의 가책이란 복수의 여신들 추적에 계속 은밀하게 시달린다. 영예가 사방에 에워싸고 있는 동안에도 자신은 음울하고 악취 나는 불명예가 자신을 빠르게 추적하고 있으며 곧 자신을 파멸할 것이란 두려움에 떤다. 위대한 카이사르도 자신의 호위병을 물리치고 움직일 정도로 배포가 컸지만, 자신의 의구심만은 떨쳐버리지 못했다.”부동산과 증권투자 등으로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되거나 벼락거지로 전락하는 요즘 자신의 일자리를 지키며 일상에 충실한 사람들은 엄청난 스트레스와 함께 가치의 혼란을 겪고 있다. 애덤 스미스의 말은 그나마 우리에게 위안을 주며 착잡한 마음을 가라앉혀 준다. “중산층 사람들이 부자가 되는 길은 도덕성을 쌓는 길과 일치한다. 중산층 사람들이 종사하는 직업에서 진실하고 신중하고 올바르고 꿋꿋하고 절제된 행동을 하는 사람 중에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가끔은 도덕적이지 않은 사람도 뛰어난 직업적 능력 때문에 성공할 수도 있다. 그러나 습관적인 몰염치, 불의와 부정, 나약함, 방탕함을 저지르는 사람은 직업적 재능마저도 흐리게 하고 둔하게 만들어서 성공하기가 어려워진다. 중산층 사람들의 직업에서 성공은 이웃과 동료들의 호의와 호평에 달려있다. 정직이 최선의 방편이란 오랜 속담이 중산층 계급 사람들에겐 진리이다.” 200년도 넘은 애덤 스미스의 책을 다시 잡는 이유는 세상이 혼탁하지만 아직은 도덕적 인간과 정직한 삶을 신뢰하고 싶기 때문이다.

숯검정이 여자/ 박정남

감나무 우거진/ 뒤꼍을 돌아가다가/ 녹슨 양철동이 속의/ 숯검정 하나를 만난다/ 숯검정에 불을 붙여/ 다림질하던 추석 전날 아침/ 그날 아침은 재재거리던 제비들을/ 지붕 위로 쫓고/ 어머니는 밤새 지은 옷들을/ 빨랫줄에 내다 널었다/ 이슬에 촉촉이 젖은 고운 옷들을/ 어머니께서는 다리시고/ 나는 호박단, 뉴똥, 항라의 결 고운 옷들/ 가장자리를 잡아주며/ 속이 발갛게 달아오른 숯덩이, 여신 펼쳐진/ 옷감 위를 오르내리는, 얼굴 환하게/ 바라보았었다// 검정치마를 입고/ 메주콩을 꼬시게 따먹으며/ 문고리에 검정 고무줄을 걸어놓고/ 고무줄을 넘으며 뜀박질을 하던/ 가시내는,/ 낮은 시렁에 매달아놓은/ 메주에 곧잘 박아 혹이 동그랗게 나고/ 유독 살아 검은, 그 골방에서/ 겨울을 나던 가시내는/ 각시풀을 찾아 길게 땋아/ 각시 인형을 만들고/ 바람 찬 논두렁의/ 냉이와 씀바귀를 찾아/ 때 낀 손들도 갈라져서/ 얼얼이 핏빛도 비쳐드는/ 곧 강물은 풀려/ 봄은 오고 있겠지// 아직은 쌀쌀한 2월/ 쪽진 머리를 수건으로 동여맨/ 시골아줌마들이 역전이나 버스주차장에 나와/ 메주를 앞에 놓고 앉아있다/ 이른 봄의 냉이와 부추, 참쑥, 쏙음 배추의/ 흙 묻은 손도 함께 시장어귀까지 나와/ 몸빼 차림으로 퍼대고 앉아있다/ 검은 치마의 그 가시내도 입 다물고/ 옆에 쪼그리고 앉아있다// 어머니는 곰팡이를 대강 씻어내고/ 손 없는 날을 골라/ 햇볕에 장을 담갔다/ 우리 집 가장 배가 부른 장독은/ 동동 붉은 고추도 띄우고/ 숯검정도 띄우고/ 살이 노란 마른 명태도 띄우고/ 햇볕 속에 만삭을 기다렸다/ 기인 봄날의 햇덩이는 온통 이곳에서 이글거렸다/ 노오란 명태 살이 삭아가며/ 까아만 장물이 우러나며/ ‘찬바람이 일 때쯤 무를 썰어 넣고/ 된장국을 끓여봐’/ 장을 뜨시던 날 어머니는 된장을 이기시며 말씀하셨다// 그해 가실 겨울은 온통 시원한 된장국으로 났다/ 그리고 딸을 낳았다/ 된장국을 맛있게 먹고 낳은 딸은/ 살이 검었다/ ‘속살이 검으면 남편복이 있대’/ 칠에 동서들은 갓난애/ 목욕을 시키시며/ 새로 사온 한 벌의 옷을 앞에 놓고/ 말씀하셨다// 검은 살밑의 반짝반짝/ 숯검정이 우리 아가는/ 제비처럼 날아다니며/ 엄마의 뽀뽀를 받고/ 그러허다. 세상 여자는 숯검정이 될 일이다/ 마음에 확 불이 불던/ 그 산속 가마의 불을 잊지 못하며/ 늘 뜨거운 불속을 그리워한다/ 검둥이든 흰둥이든 여자의 영혼은/ 까아만 숯검정일 뿐이다/ 까맣게 뒷 모퉁이에 검은 눈 반짝이며/ 앉아있거나/ 딸 난 집 금기 줄에 꽂혀있거나/ 서낭당 굵은 나무 허리 새끼줄에 꽂혀있다가도/ 사랑을 받으면 은은한 윤기 흐르는 몸의/ 여자는 두 눈 반짝이는 숯검정이 된다/ 바람 부는 날의 가을, 으스러지게 껴안겨/ 따뜻한 불 피우는/ 이글이글 천의 바다를 넘나들고/ 이 땅의 허무의 색깔인 모든/ 낙엽들을 태우고도 찬연한/ 여자는 유독 속에서부터 빨갛게 달아오르는/ 숯검정이 된다// 보게나, 여자들의 서글한 검은 눈이/숯검정이로 애타게 부르고 있네/ 숯검정이로 빛나면서 떨어지고 있네「숯검정이 여자」 (청하, 1985)숯을 보면 된장 담그던 어머니와 그 위에 띄워두었던 숯검정이가 떠오른다. 숯검정이 정기가 된장으로 배여 들었고 그 시원한 된장국을 먹고 딸을 낳았다. 된장의 기운이 딸에게 전해졌다. 딸은 여인으로 성숙하고 속살 검은 여인은 불타오르고픈 숯검정이 화신이다. 모성의 뭉근함과 성숙한 여인의 터질 듯 부푼 에로티즘의 화음이 절묘하다.오철환(문인)

가덕도신공항, 문제되면 누가 책임지나

가덕도신공항 특별법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부산 시민들은 환호하며 반기고 있다. 반면 통합신공항 특별법과 패키지 통과를 바랐던 대구·경북 지역민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손놓고 있던 지역 국회의원들에게 비난 화살이 집중되고 있다.정치권은 원칙과 절차의 정당성을 무시한 채 괴물 법안을 통과시켰다. 표 앞에선 여야가 따로 없었다. 하지만 근원을 따져보면 국회의원들은 들러리에 불과하다. 주역은 사실상 문재인 대통령이다. 2016년 김해공항 확장 결정에 따라 무산된 가덕도 신공항 건설에 다시 불을 지핀 사람은 오거돈 부산시장이다. 이것을 ‘부채질’한 사람이 문 대통령이다.문 대통령은 21대 총선 전 부산을 방문해 가덕도를 언급하며 PK 민심을 부추겼다. 2012년 대선 후보 시절엔 가덕도신공항을 건설하겠다고 공약했다. 2016년 20대 총선 때에도 가덕도 신공항을 강조했다.문 대통령은 이낙연 민주당 대표와 경제부총리, 국토교통부장관 등을 대거 동반한 채 국회통과 전날(2월25일) 가덕도를 찾았다. 그리고 “가슴이 뛴다”며 대폭 지원을 약속했다. 가덕도에 힘을 실어줬다. 다음날 여야는 합심해 가덕도 특별법을 통과시켰다.대통령의 선거개입 논란이 불거졌다. 야당은 대통령이 선거중립을 내팽개쳤다며 법적 조치를 벼른다. 청와대는 즉각 “선거용이 아니라 국가 대계”라며 반박하고 나섰지만 옹색하다.국민들은 알고 있다. 지난 1일 나온 여론조사 결과가 뒷받침한다. 국민 절반 이상이 가덕도 특별법 국회통과가 잘못됐다며 탐탁잖게 여겼다. 53.6%가 ‘잘못된 일’이라고 답했다. 잘 됐다는 응답은 33.9%에 그쳤다. 심지어는 부·울·경 주민들도 54%가 ‘잘못됐다’고 응답했다.TK 출신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에도 이렇게 고향을 노골적으로 밀어주지는 않았다. 이명박 정부는 신공항 추진을 백지화했고 박근혜 정부는 김해공항 확장으로 방향을 틀었다.역대 정권이 마찬가지였다.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때는 오히려 TK 역차별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20년 숙원사업이라며 대놓고 부산 가덕도를 밀었다.지역이기와 정치에 매몰돼 대형 국책 사업을 무산시킨 결과, 후폭풍이 만만찮을 것이다. 그 피해는 오롯이 국민 몫이다.이 모두가 변호사 출신 문재인 대통령이 절차와 원칙을 무시한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예타를 면제하며 진행했던 4대강 사업도 이명박 전 대통령의 덜미를 잡았다. 가덕도신공항은 예산만도 국토부 추정치가 28조6천억 원이다. 국책사업의 특성상 사업 진행 중 발생하는 추가 비용까지 따지면 천문학적 예산이 들어간다. 활주로 침하 등 안전성도 담보할 수 없다. 나중에 문제가 되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

가덕도신공항은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선택인가

오철환객원논설위원대통령이 부산을 방문해 가덕도신공항을 독려한 다음날 가덕도신공항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몇 번에 걸친 평가 때마다 꼴찌를 했고 가덕도 입지의 문제점을 귓등으로나마 수차례 들었다. 턱도 없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그래도 모험을 감수할 만큼 부산시장이 그렇게 대단한 자린지 처음 알았다. 법과 상식이 무너졌다. 부산, 울산, 경남 등이 잘 되는 일이라면 대구, 경북 등 이웃지역에도 떡고물이 떨어질 건 뻔할 것이고, 국가적으로도 당연히 바람직할 것이다. 행정구역이야 구분돼 있지만 생활이나 경제는 경계가 없기 때문이다.가덕도신공항은 그 입지선정이나 특별법 제정에 앞서 경제적 타당성분석이나 이용편의성분석, 환경영향평가분석 등이 선행돼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어떤 과정을 거쳐 경제적 효과가 어느 정도 향상되는지, 그 전후방효과는 어떠한지 등이 시뮬레이션이나 산업연관분석 등을 통해 밝혀져야 한다. 시민의 편의성이 지금보다 얼마나 증가하는지, 자연환경을 파괴하거나 생활환경을 해치는 영향은 없는지 등 연구·검토할 사항이 많다. 인천공항의 경우만 봐도 신공항의 필요성 제기부터 개항까지 근 이십년이 걸렸고 타당성조사 및 기본설계만 대략 4년이 소요됐다.신공항 건설은 충분한 사전 연구·검토가 필수적이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당파적 이해관계로 밀어붙일 사안이 아니다. 지역 간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갈등의 문제가 아니고 경제성 여부에 대한 정책결정 내지 정파 중립적인 의사결정의 차원에서 봐야 한다. 또한 단기적 일회성 민원해결 사안이 아니고 되돌리기 힘든 비가역적이고 장기적인 대역사다. 계속적인 비용지출을 유발하고 장래를 향해 지속적으로 영향을 준다. 신중하고 정밀하게 장기간 연구·검토하는 일이 결코 낭비가 될 수 없는 이유다.최소한 경제적 측면에서 부산과 인근지역에 활력을 불어넣는다는 연구결과라도 앞세운다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여지도 있다. 허나 무안, 양양, 예천 등의 사례에서 보듯 부산경제를 살리기는커녕 오히려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더 크다. 바다에 헛돈을 얼마나 쏟아 부을지는 논외로 하고, 기반이 약한 외해 해상공항의 유지관리에 예산을 무한정 지원할 정도로 부산시민의 자부심을 충족시켜주는 역할이라도 한다면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찮은 보궐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서 가덕도신공항 카드를 단지 선심성 표 구걸용 선물로 망설임 없이 내놓는 현실이 당혹스럽다 못해 참담하다.2002월드컵을 치르기 위해 광역단체마다 대규모 축구장을 경쟁적으로 건설했다. 끝나고 나도 경제적 활용가치가 있다고 했지만 이는 지금 대부분 예산 먹는 하마신세로 전락했다. 새만금간척사업, 영암 국제자동차경주장, 여수 세계박람회장, 시화호 등 유사사례는 비일비재하다. 치밀한 연구·검토 없이 우격다짐으로 결정된 정략적 사업들이 표류하면서 국민의 혈세만 낭비되고 있다. 그래도 교훈을 얻지 못하고 또 새로운 실패의 본보기를 더 만들 요량인지 지금도 경쟁적으로 허술한 공약사업을 남발하고 있다. 대규모 해상풍력단지, 한전공대, 공공의대 등 표심을 유혹하는 얄팍한 포퓰리즘은 끝이 없다.당리당략에 의한 잘못된 사업은 보통 선거공약을 통해 양산된다. 선거에서 승리한 당선인은 다음 선거를 위해 선거공약을 챙기게 마련이다. 공익단체나 언론도 공약이행을 독려한다. 그러다 보니 대통령을 비롯한 선출직은 공약에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당선되고 보자는 심리에서 표만 될 것 같으면 무엇이든지 무분별하게 공약으로 채택하곤 한다. 이러한 현상을 방관하기엔 그 대가가 너무 가혹하다. 시민을 위하는 공약, 국민에게 이득이 되는 공약,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공약 등을 검증해 공인해주는 시스템을 개발·도입하는 일이, 비록 엄청 어렵겠지만, 시급하고 긴요하다. 최종적으로 유권자 몫이기도 하다.단임 대통령의 경우 차기를 준비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당파적 이해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의리상 당파를 떠날 수 없겠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얽매일 이유는 없다. 단임이라는 의미는 장기집권을 예방하는 의미도 갖지만 당파에서 벗어나라는 함의도 있다. 단임 대통령은 오직 국민만 보고 가면 된다. 1년만 더 하면 집으로 갈 사람이 무리하게 당파에 연연하는 모습은 정말 이해하기 힘들다.

코로나19 대응 1등 공신 대구 시민에게 박수를

장두기성서경찰서 경비작전계대구 시민들이 코로나19로 고통을 받은 지도 1년이 넘게 흘렀다. 지칠 때도 됐으나 여전히 대구 시민들은 힘들게 코로나19를 이겨내고 있다.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이나 어린아이들은 마스크 착용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닐텐데도 어딜 가나 마스크 착용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고마움을 느낀다. 학생들의 경우 학교 수업 중 마스크 착용이 얼마나 힘들겠나 생각하면 마음이 짠하다. 또한 자영업자들도 생계의 위협 등 이중고를 겪고 있음에도 위기 상황에 훌륭하게 대처해 주고 있어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지난주 방학기간 중 집안에만 있어서 답답해하는 아들과 집사람이 바람을 쇠러 가자고 해 셋이서 송해공원으로 나들이를 나간 적이 있다. 실내에서의 모임이 자제되고 식당이나 술집 등의 영업도 제한되는 만큼 답답한 시민들의 발걸음이 야외로 많이 이어진 것 같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송해공원 주변에 가족단위로 답답한 마음을 달래고 있었지만 어느 누구 하나도 마스크를 쓰지 않고 다니는 사람이 없어서 정말이지 대구 시민으로서의 자부심이 생겼다. 심지어는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기까지 마스크를 쓰고 아장아장 걷는 것을 보고 귀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해 미소가 절로 나오는 순간이었다. 이제는 대구 시민들에게 마스크 착용은 생활화가 됐으며 다른 사람들을 위해 공기 좋은 야외에서도 마스크 매너를 지키는 것이 정말 대단하다.겨울에는 추위가 언제 물러가나 걱정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기 마련이나 추위에 웅크리지 않고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활동을 하면 오히려 추위를 덜 느끼고 활기를 찾을 수 있으며 그렇게 겨울을 이겨내다 보면 결국은 추위는 물러가고 기다리던 봄이 오기 마련이다.코로나19라는 한파 역시 대구 시민들의 당당한 대처로 인해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는 봄날이 빨리 찾아오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추운 겨울이 지나 봄이 찾아오듯이 코로나19에서 벗어나 대구 시민 여러분들이 빨리 행복한 일상으로 돌아가 마음속에 봄날이 오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이제 백신 접종도 시작이 되고 코로나19 종식도 다가오는 만큼 절대 방심을 하지 말고 이제껏 너무나 잘해온 것처럼 계속해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키면서 백신 접종에 임한다면 효과는 더욱 커질 것이다.백신 수송 및 보관 장소의 안전유지 등 경찰의 임무 수행과 시민들의 방역수칙 준수와 질서 지키기라는 시민의식이 더해진다면 우리 대구는 분명 더 빠른 시일 내에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다시 한번 당부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며 불편하더라도 조금만 더 힘을 내서 마지막까지 방역수칙을 준수해주기를 당부드리며, 코로나19 대응의 1등 공신인 대구 시민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와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나는 겸손한가

박운석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맹사성(孟思誠·1360~1438)은 조선 세종 때 명재상으로 조선조에서 가장 오랫동안 좌의정을 지냈다. 우리 고유 음악인 향악에 대한 지식과 관심이 많아 조선 초기 음악을 정리하기도 했다. 뛰어난 능력과 인품 외에도 청렴한 생활로 역대 최고의 청백리로 평가받고 있다. 겸손이 몸에 배어 벼슬이 낮은 사람이 찾아와도 공복을 갖추고 대문 앞에서 맞았고 손님이 말을 타고 돌아간 후에야 집으로 들어올 정도였다.맹사성이 겸손의 대명사가 된 건 젊었을 때의 교훈이 한 몫 했다. 그는 어느 날 유명한 고승을 찾아가 목민관의 도리를 물었다. “나쁜 일은 하지 말고 착한 일을 많이 베풀라”는 고승의 말에 언짢은 기색을 보였다. 그러나 고승은 잔이 넘치도록 차를 따를 뿐이었다. 찻물이 넘쳐흘러 방바닥을 적신다는 맹사성의 외침에 고승은 태연하게 말했다. “찻잔이 넘쳐흘러 바닥을 망치는 것은 알면서 지식이 넘쳐 인품을 망치는 것은 어찌 모르십니까?” 부끄러움에 황망히 일어나 나가려다 문틀에 머리를 부딪혔다. 그러자 고승은 다시 말했다. “고개를 숙이면 부딪히지도 않습니다”고개를 숙이라는 겸손의 가르침은 대구 달성의 도동서원에도 있다. 이 서원은 한훤당 김굉필(金宏弼·1454~1504)을 배향하는 서원이다. 이 서원의 중심건물인 중정당(中正堂)으로 가려면 환주문(喚主門)을 지나야 한다. 이 문은 갓을 쓴 유생들의 경우 반드시 고개를 숙여야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낮은 것이 특징이다. 예를 갖춰 겸손한 마음을 가지지 않고는 이 문을 지나지 못한다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 앞으로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지 않고 뒷짐을 진 채로는 배움의 공간으로 발을 들여놓을 수 없음을 은연중에 가르쳐준다.서울시장과 부산시장 재보궐 선거가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정해졌고, 무소속 금태섭 예비후보와의 경선에서 이긴 국민의당 안철수 예비후보는 4일 국민의힘 최종 후보와 야권 단일후보를 놓고 승부를 펼치게 된다.이때쯤이면 후보자들 뿐 아니라 여야 정치인 모두 겸손해진다. 가보지 않은 환주문 앞에 서있는 양 고개를 숙인다. 평소에 잘 찾지 않던 시장으로 몰려가 어묵을 한입씩 베어 물고는 사진을 찍는다. 겸손함을 넘어 교통량이 많은 교차로에서 연신 90도 절을 하기도 한다.국민들 앞에서 선거철 한 때나마 겸손해지는 건 좋은 일이다. 그러나 상대방의 약점을 꼬투리삼아 비방하는 것도 선거 때면 부지기수로 일어나는 일이다. 이런 그들에게 사찰의 법당이나 처소 앞 디딤돌 위에 붙은 ‘조고각하(照顧脚下)’라는 글귀를 보여주고 싶다. ‘다리 아래를 잘 살피고 돌아보라’는 뜻으로 디딤돌 위의 조고각하는 신발을 가지런하게 정리해두라는 말이다. 하지만 ‘조고각하’가 신발 정돈만 잘하라는 말은 아닐 터. 넓게는 다른 사람의 흠을 찾고 비판하기 전에 자신의 흠은 없는지 먼저 돌아보라는 의미다. 눈은 속눈썹을 보지 못한다는 ‘목불견첩(目不見睫)’도 같은 말이다. 자신의 잘못은 알아차리지 못하면서 남의 허물을 보고는 득달같이 달려드는 걸 빗댄 경우다. 이 역시 겸손하라는 가르침이다.선거를 앞두고 겸손 코스프레를 할 게 뻔한 그들에게 묻고 싶다. 조용히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본 적 있는가. 평소에 환주문 앞에 선 듯 국민들 앞에서 겸손했는가. 자신의 허물을 찾아보고 돌아본 적이 있었던가. 찻잔이 넘쳐 방바닥을 더럽히는 것만 보이고 나의 알량한 지식을 과도하게 드러낸 적은 없었는가. 내 발밑을 잘 살피고 있는가. 자기자신을 지나치게 과신하고 있지는 않은가.‘머리를 너무 높이 들지 말라. 모든 입구는 낮은 법이다’라는 영국 속담이 있다고 한다. 서울시장이든, 부산시장이든 입구는 낮은 법이다. 누구든 시장이 된 후에도 머리를 너무 높이 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극단으로 치우친 사람들이 많아지고, 자신의 이념이나 자신의 지식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건 결국 겸손하지 못한 것이고 ‘조고각하’를 하지 않아서일 수 있다. 이마저도 어렵게 생각된다면 도동서원을 찾아가면 된다. 겸손한 유생들만 드나들 수 있는 환주문 앞에 서서 ‘나는 자격이 있는가’를 돌아볼 일이다.

해남/최영효

땅끝 앞 돌섬 위에 저 소나무 꼴값 좀 보소 뒤틀려 휘어져서 어덜 보고 있는감요/지금 니 거기 선채로 날 기다리고 있었구마이//그냥 캭 죽으면 될 걸 죽지 못해 살고 있지라 이 뺨 저 뺨 오지게 맞고 막판에 울러 왔지라/사는 게 끝은 있어도 까닭은 없는 게비여//끗발이 죽었분디 뭔 일이 됐겄소만 잘못 만난 때는 있어도 잘못 태어난 사람 없지라/여그가 땅끝이라도 시작은 인자부터요시조집 「아무것도 아닌 것들의」(고요아침, 2020)최영효 시인은 경남 함안 출생으로 1999년 현대시조 신인상, 2000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조집 ‘무시로 저문 날에는 슬픔에도 기대어 서라’, ‘노다지라예’, ‘죽고못사는’, ‘컵밥3000 오디세이아’, ‘아무것도 아닌 것들의’와 시조선집 ‘논객’ 등을 펴냈다. 그의 시조는 스케일이 크고 스펙트럼이 넓다. 또한 서정과 서사를 아우르는 능력이 탁월하다. 그래서 그의 시조 세계를 태산준령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스케일이 크면서도 정치하다. 세밀하면서도 도저한 깊이를 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그는 남다른 기량과 시대를 꿰뚫는 혜안으로 새로운 시조의 광맥을 줄기차게 굴착 중이다. 지천명을 훌쩍 넘어 등단한 이후 눈부신 적공을 쌓고 있는 것이다. 이 일은 그가 문청 시절부터 열망을 가지고 문학의 길을 준비해왔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50여 년의 산 체험은 그로 하여금 불굴의 시편을 쓸 수 있는 바탕이 됐던 셈이다. 다섯 권의 시조집이 그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해남’을 보자. 해남은 토말 즉 땅끝과 만나는 곳이다. 일찍이 꿈에 그리던 해남 땅끝 마을에 이르러 바닷물에 입맞춤한 기억이 있다. 또 한 번의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해남’은 입말을 질펀하게 구사하고 있다. 땅끝 앞 돌섬 위에 저 소나무 꼴값 좀 보소 뒤틀려 휘어져서 어덜 보고 있는감요, 라고 화자는 다소 능청을 떨면서 말한다. 그러다가 지금 니 거기 선 채로 날 기다리고 있었구마이, 라면서 화답을 한다. 시의 화자는 그냥 캭 죽으면 될 걸 죽지 못해 살고 있지라 이 뺨 저 뺨 오지게 맞고 막판에 울러 왔지라, 라고 속사정을 토로하면서 사는 게 끝은 있어도 까닭은 없는 게비여, 라고 말한다. 사는 까닭이 따로 없음을 환기시킨다. 또 다른 깨달음이다. 끗발이 죽었분디 뭔 일이 됐겄소만 잘못 만난 때는 있어도 잘못 태어난 사람 없지라, 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이들 중에 잘못 태어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는 것이 분명하다. 다들 잘 태어난 사람인데 다만 하기 나름일 뿐이다. 각양각색의 삶이 모여 이루는 세상에서 여그가 땅끝이라도 시작은 인자부터요, 라는 화자의 마지막 발언에서 희망을 읽는다. 인제부터 시작하면 모든 일이 새롭게 열릴 것이다.그는 단시조 ‘저 여자’에서 엄마만 살아 있고 여자는 벌써 죽었다, 라면서 연골이 다 닳은 나목과 벼락 맞은 옹이 몇 개가 새벽을 끌고 갔다가 신발에 끌려온 여자, 라고 노래하고 있다. 꽤나 아픈 시다. 여자는 이미 죽고 없고, 엄마만 살아 있는 정황은 삶의 현장 곳곳에서 맞닥뜨릴 수 있다. 벼락 맞은 옹이와 연골이 다 닳은 나목이라는 은유가 저 여자의 현재 상황을 아프게 드러낸다. 그는 새벽을 끌고 갔지만 신발에 끌려온 여자다.최영효 시인, 그는 이즈음 역사의식을 근간으로 해 동학농민혁명의 격전지인 ‘우금치’를 수차례 찾아 발품을 팔면서 서사시조집을 구상 중이다. 시조의 새로운 진경이 열릴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이정환(시조 시인)

‘가덕도 특별법’ 부·울·경조차 부정적 의견 많아

가덕도신공항 특별법이 지난달 26일 끝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특별법에는 필요할 경우 예비타당성 조사면제, 사전 타당성조사 간소화, 각종 법령 부담금 감면 등 독소적 특례조항이 담겨 있다. 국토부 장관의 승인이 있으면 공사와 관련한 건축법, 대기환경보전법 등 31개 법의 인허가도 면제된다.4월7일 부산시장 보선을 겨냥한 ‘매표(買票)공항’이란 비난이 터져 나오는 이유다. 진보진영에서도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대구·경북이 궁여지책으로 선택한 대구·경북 통합신공항특별법은 상임위원회 문턱도 넘지 못했다. 무산된 것이나 다름 없다. 가덕도를 밀어붙인 민주당의 반대 때문이다.가덕도신공항이 건설되면 대구·경북 신공항의 위상은 동네공항 수준으로 쪼그라들게 된다. 민주당의 TK-PK 갈라치기에 힘 한번 써보지 못한 채 당한 것이다.민주당은 가덕도신공항이 국가 균형발전의 한 축이라고 강변하지만 가덕도 특별법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는 싸늘하다. 53.6%가 ‘잘못된 일’이라고 평가했다.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한 지난 26일 리얼미터가 YTN의 의뢰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다. ‘매우 잘못된 일’이란 평가도 36.4%에 이르렀다. 연령대 별로는 모든 계층에서 ‘잘못된 일’이란 비율이 높았다.가덕도 특별법 통과에 ‘잘된 일’이란 응답은 33.9%에 그쳤다. 가덕도신공항이 건설되면 가장 많은 혜택을 입게 되는 부산·울산·경남 지역도 ‘잘못된 일’이란 응답이 54.0%에 이르렀다. ‘잘된 일’이란 평가는 38.5%에 그쳤다.‘잘못된 일’이란 반응은 지역별로 대구·경북이 73.4%로 가장 높았다. 다음은 대전·세종·충청 66.9%, 서울 57.0%, 인천·경기 50.5% 순이었다.이번 결과는 지난 2월2~4일 한국갤럽이 조사한 ‘가덕도신공항 반대’ 37%보다 반대(잘못된 일) 비율이 16.6%포인트 높아진 것이다. 잘된 일이라는 반응은 종전의 찬성 33%와 거의 비슷했다. 조사한 주체와 설문이 다르긴 하지만 20여 일 만에 가덕도신공항에 대한 반대 여론이 크게 확산된 것으로 풀이된다.다가오는 선거를 겨냥한 민주당의 가덕도 특별법은 악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국민들이 선거를 앞두고 표만 바라보는 정당에 보내는 시선이 매우 비판적이라는 사실이 이번 설문 결과 드러난 것이다.더구나 새로운 사업도 아니고 특정 지역의 희생을 바탕으로 다른 지역의 표심을 얻으려 하는 정책은 당연히 비판받아야 한다. 가덕도신공항이 여권의 의도대로 진척된다는 보장도 없다. 선거는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 하지만 국민들도 더는 속지 않을 것이다.가덕도 특별법은 지역 갈등은 물론이고 국책사업의 신뢰도에 두고두고 약영향을 끼칠 것이다. 정치 교과서에 기록됨직한 ‘다수당의 횡포’다.

기자수첩-문경사랑 주소갖기 운동에 지역사회도 동참해야

김형규사회2부 문경시가 인구 7만5천 명을 사수하려고 안간힘을 쏟고 있다.한 해 출생자가 사망자 수보다 적은 ‘데드 크로스’가 발생하는 등 이미 예고된 인구감소가 현실화되고 있기 때문이다.문경 인구는 석탄산업 황금기였던 1974년 말 16만1천125명에 달했지만 해마다 2천 명 가량이 줄어 지난 1월 말 기준 7만919명을 기록했다.전월인 지난해 말(7만1천406명)보다 487명이 감소한 것이다.출생 32명, 전입 314명으로 모두 346명의 인구증가 요인이 있었지만, 사망 66명, 전출 768명으로 834명이 줄었다.감소세가 증가세보다 2배를 웃도는 심각한 데드 크로스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인구 감소세가 이어지면 도시 브랜드 이미지 실추는 물론 행정 권한 축소 등의 심각한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인구증가를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해온 문경시가 체감하는 위기감은 상상 그 이상일 것이다.그동안 문경시가 인구 감소 대응 방안을 고민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전국 최고의 출산 장려금 정책과 신혼부부 주택자금 이자 지원, 출산장려금 지급, 산모·신생아 건강관리, 아이 돌봄 사업, 문경시 장학회 다자녀 장학금 지급 등을 펼쳐왔다.물론 성과도 있었다.2019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출생아 수가 전년 대비 증가해 경북 23개 시·군 중 유일하게 2년 연속 증가라는 성과를 거뒀다.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인구감소가 해마다 계속되고 있다.이제는 기존 정책을 재점검하고 보다 실효성 있는 대책을 강구해야 할 시점이다.문경시의 인구감소 요인을 꼼꼼히 분석하면 인구 유출과 고령화를 가장 큰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결혼을 연기하고 출산을 꺼리는 분위기가 여전한 현실을 감안하면 전국 최고의 출산장려금 정책 등 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결국 먹고사는 문제, 즉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는 게 문제 해결의 출발이자 해법이다.특히 인구 유출에 대해서는 철저한 분석과 신중한 검토를 통해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인구감소는 문경만의 문제가 아닌 국내는 물론 전 세계가 안고 있는 아킬레스건이다.그렇기 때문에 해당 지역에서 거주하는 주민들이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정책을 펼쳐야 인구감소를 막을 수 있다.문경시도 인구감소에 따른 위기 극복을 위해 인구 7만5천 명 회복 및 ‘문경사랑 주소갖기 운동’을 펼치며 모든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하지만 지자체의 노력만으로는 어림없다.시민들의 적극적인 동참이 없다면 문경사람 주소갖기 운동이 성공을 거둘 수 없다는 것이다.문경이 행복한 도시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지역사회의 적극적인 동참이 전제가 돼야 한다.지금부터라도 ‘인구 사수’를 위한 지역사회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자연은 스스로 울타리를 치지 않는다

천영애시인봄이 오면서 시골 마을에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밭갈이를 하러 사람들이 드나들기 때문이다. 전국적인 투기 광풍이 시골마을까지 닿아 마을 땅의 반 정도는 소위 말하는 외지인들이 주인이다. 낯선 그들은 마을로는 들어오지 않고 들판 여기저기에 작은 쉼터를 지어 드나든다. 시골 사람들의 텃세가 심하니 도시인들이 시골의 마을 안으로는 들어가지 말라는 소문 때문인 듯 그들은 주로 마을 밖으로 오간다.나도 도시에 살지만 고향을 시골에 둔 덕분에 언제 돌아와도 원주민 대우를 받는다. 부모님 세대의 몇 남지 않은 어르신이나 그 자식 세대에게 나는 한마을 사람이다. 그러니 내가 시골로 온 날은 산책을 해도 마을을 한 바퀴 돌거나 누가 주인인지 아는 밭 주변을 돈다. 어느 밭에 어떤 나무가 심어져 있는지, 어떤 곡식을 재배하는지 보지 않아도 안다.얼마 전에 마을 전체를 새로 측량했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우리 집 땅이 마을 길 넓히는데 들어간 건 알았지만 생각보다 많이 들어갔다는 걸 이번에 새로 알았다. 물론 보상 따위는 없었는데 이번에 측량을 하면서 보상을 해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보상보다는 땅을 돌려 줬으면 좋겠지만 우리가 그 땅을 돌려 달라면 농기계가 다닐 길은 아마 없어질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냥 두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그냥 우리 땅이 거기 있거니 하는 거다.그런데 측량을 새로 하면서 뒷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모두 사라졌다. 길이었던 것들이 알고 보니 사유지더라는 것이다. 그 사유지의 주인은 길이 사라지건 말건 그 길에다 울타리를 치고 사람들의 출입을 막았다. 산에 작은 텃밭이 있는 사람들은 드나들 길이 사라졌기 때문에 밭을 경작할 도리가 없다. 물론 사유지이니 그들의 권리를 찾아가는 것에 대해서 누구도 뭐라 할 수는 없다.그러나 오랫동안, 수 백년은 족히 이 마을에 터를 잡고 살아온 사람이라면 절대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 그냥 거기까지가 내 땅이오, 하겠지만 사람들이 드나드는 길을 막지는 않는다. 농사를 조금 덜 지어먹으면 된다는 생각이다. 그렇게 살면서도 그들은 아무 불편이 없었고, 손해를 본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더불어 살아가려면 내가 조금 손해를 봐야 하기도 한다는 것을 안다.도시 사람들이 이 시골의 땅 주인이 되면서 그들은 제일 먼저 울타리부터 쳤다. 울타리가 쳐진 땅은 마을에 속한 땅이긴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마을에 속한 땅은 아니다. 그 땅은 마을로부터 고립됐고, 마을 사람 누구도 울타리가 쳐진 땅을 넘겨다 보지는 않는다. 과일 수확을 하고는 한 바구니 가득 과일을 담아 새로 이사 온 집 입구에 놔두는 일도 하지 않는다. 울타리가 쳐지고 문이 굳게 잠긴 땅은 스스로 고립을 자초한다.오래전에 젊은 화가 가족이 마을 옆에 집을 짓고 이사를 왔다. 오랫동안 농사를 지어 온 땅에다 집을 지었던 그 가족은 울타리를 치지 않았다. 어찌 보면 매사에 방심하는 듯한 그 건물이 금방 익숙해지지는 않았지만 그 집 근처에 과수원이 있었던 엄마는 과일을 수확하면 그 집의 아이들이 먹으라고 과일 바구니는 현관에 두고 오곤 했다. 물론 과일이 그리 좋은 것은 아니었다. 소위 말하는 B품이었지만 그 화가는 늘 고마워했다. 좋은 과일은 팔아야 하고 농사를 짓는 농부들조차 좋은 과일을 잘 먹지 않을 때였다. 아이들이 얼마나 먹고 싶어 하겠냐고, 과일을 수확할 때마다 먹을 만한 것들을 골라 그 현관에 두고 오곤 했다. 그렇게 그들은 마을 사람이 돼 갔다. 어린 아이들이 자라 성인이 되고, 어떤 아이는 직장에 다니고 어떤 아이는 대학교에 들어갔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학교를 다니느라 우리 집 앞을 오가던 그 작은 아이들이 생각난다.울타리를 친다는 것은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일이고, 사람들로부터 멀어지는 일이다. 도시 생활에 익숙해진 그들은 그 생활이 당연한 일이겠지만 시골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그 울타리는 늘 생경하다. 뭐하러 그 논밭에 돈을 들여서 울타리를 치는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넓은 자연을 더 넓게 가지는 방법은 스스로의 공간적인 한계를 두지 않는 것이다. 도시에는 도시적인 삶의 방법이 있고 시골에는 시골적인 삶의 방법이 있다. 몸은 옮겨가도 삶의 방법이 옮겨지지 않는다면 그는 여전히 도시에 사는 것이다.

비열한 거리/ 박미영

낡은 배낭 같은 말이 지나간다 늙었다 그 말의 눈매가 스치자/ 진실은 흰 천을 걷어낸 미이라 같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끔찍해서 모두 고개를 돌리고 말,/ 대화가 더러워졌다 우리는 그날 진실했을까 사실만 말했던 걸까 오래된 말가죽 냄새가 난다/ 그들은 아무런 희망도 남자 않은 패잔병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이 거리조차 탈출할 수 없겠지만 결코 항복하지 않을 절망에 빠진 군대로 말입니다/ 늙은 말이 거리의 단단한 바닥을 후벼 팔 듯 턱을 부빈다 김 오르는 여물처럼 피어오르는 먼지, 말이 운다 개가 짖는다 온 거리의 개가 다 짖는다 채찍이 허공에 멈춘다/ 어둠이 내려도 지독한 치욕은 그들을 비탄의 구덩이에 구겨 넣고 밟아댈 것입니다/ 입 안에서 으적으적 씹히는 모래, 이렇게 죽는구나 온 몸에 치욕을 밀어 넣고 삼키며, 숨도 못 쉬며 죽어가는구나 죽어가는 늙은 말 긴 속눈썹 젖은 물기/ 거리는 단 한 점 미동도 없어, 다만 주점의 네온이 반짝 켜진다「비열한 거리」 (작가콜로퀴엄, 2003)‘비열한 거리(Mean Streets)’는 1973년에 나온 ‘마틴 스콜세지’ 감독, ‘로버트 드 니로’ 주연의 마피아 영화다.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갱스터의 이중성과 비열함이 적나라하게 연출된다. 동일한 제목의 한국영화도 있다. 2006년에 개봉한 유하 감독, 조인성 주연의 깡패 영화다. 두 친구가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서로를 배신하고 이기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두 영화는 제목만큼이나 비슷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시 ‘비열한 거리’도 섬뜩하고 비장하다. 축 처진 늙은 말이 보는 인간의 거리는 잔혹하다. 자신의 향락과 영달을 위해 교언영색으로 속내를 감추고 남의 뒤통수를 칠 궁리만 한다. 공정, 형평, 정의 따위는 눈 닦고 찾아봐도 없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할 뿐더러 거리낌 없이 남을 해친다. 앞에선 웃는 낯으로 손을 잡던 사람이 뒤로 돌아서선 등허리에 비수를 꽂는다. 진실은 흰 천에 가려진 박제된 미라다. 그 끔찍한 모습에 눈을 돌리기 마련이다.항간의 말은 욕설투성이다. 그 욕설 속에서 진실한 모습을 찾는 일은 오물더미에서 장미꽃을 피우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오물더미에서 고약한 냄새가 풍기 듯 거리엔 역한 말가죽 냄새가 진동한다. 서로 자신의 욕심만 부리다간 모두 다 폭 망하는 법이다. 거리엔 희망을 잃은 패잔병으로 가득하다. 치욕적인 패배의 원인이 과욕과 이기심임을 깨닫지 못하고 하이에나처럼 거리를 서성인다. 선의가 선의로 끝나지 않은 나쁜 기억으로 인해 선의로 포장한 악행만 횡행할 따름이다.굶주린 말이 맨땅을 후벼 파보지만 모래만 씹히고 먼지만 날린다. 이제 남은 것은 울음뿐이다. 절망한 말은 하늘을 보며 울부짖지만 개들만 짖어댈 뿐 아무도 관심이 없다. 당근은 없고 채찍만이 허공에 뜬다. 지친 말은 비열한 거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슬픈 눈물을 흘리며 죽음을 기다린다. 황량한 거리엔 선술집의 등불만 무심하다. 비장미가 압권이다.비열한 거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다른 거리를 가도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이기심이란 본능은 사람 사는 거리를 비열하게 만들고, 부조리의 굴레를 벗을 수 없는 운명은 인간을 고통의 바다로 이끈다. 그나마 인간 세상을 비추는 빛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시일 터이다.오철환(문인)

공공의료 확충,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

금향숙대구 북구 여성단체협의회장코로나19라는 유례없는 감염병이 발생한 지 1년이 지났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우수한 건강보험 제도와 국민들의 높은 의식 수준, 그리고, 의료인들의 헌신으로 코로나19 대처의 롤 모델로 세계적인 찬사를 받았다.하지만, 코로나 3차 대확산에 진입하면서 K-방역의 허점이 드러나고 있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코로나 확진자가 증가하면서 중증 환자를 치료할 병상 부족 등 상황이 심각한 실정이다.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유행으로 공공병상 확보 등 공공의료 확충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있었으나, 경제적인 이유와 사회적인 관심 저조로 감염병 전문 병원 등의 체제를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코로나19 위기를 맞게 된 때문이다.우리나라의 공공의료기관 비율은 2016년 기준 5.8%로 OECD 평균인 65.5%에 비해 매우 낮다. 또한 공공의료기관 병상 비율도 10.3%로 OECD 평균 89.7%와 차이가 크다.사회보험 방식(SHI)의 재원으로 운용되는 국가 중에서도 우리나라와 같이 공공의료기관의 공급 역량이 낮은 국가는 없다. 일본의 경우 공공병상 비율이 27.2%, 독일 40.7%, 프랑스는 61.5%를 차지하고 있다.2019년 12월 말 기준 공공의료기관은 221개 기관으로 전체 의료기관 4천34개소의 5.5%이며 공공병상 수는 6만1천779개 병상으로 전체 병상의 9.6%에 불과하다.그나마 지역별로 편중돼 70개 진료권 중 27개 진료권에는 공공 병원이 전무하다. 10%도 안되는 공공병원이 코로나 환자의 77.7%를 담당하고 있는 실정이다.공공의료 부족은 응급진료 등 필수 의료서비스를 제한해 지역별 건강 격차를 초래하며, 국가적인 재난・재해・응급 상황에서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안전망 취약의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공공의료기관 확충은 국민들에게 많은 혜택이 주어진다.양질의 의료서비스를 합리적인 가격에 이용할 수 있게 돼 건강보험지출 감소로 인한 보험료 인상률이 억제하고, 응급의료 등 지역별 거점 의료기관에서 필수적인 의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어 국민 안전이 제고 될 것이다. 질병 교육・상담 등 예방과 건강증진 서비스 강화로 개인별 건강 수준도 향상될 수 있다. 또 코로나 등 대규모 감염병에 대한 대응 역량이 강화돼 감염병 발생 시에도 지역 내에서 안정적인 진료가 가능해진다.공공의료기관의 가치를 생각한다면 사회간접자본 투자 대비 절대 큰 비용이 아닐 것이다. 메르스와 코로나19 장기화를 겪으면서 공공의료 확충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국민과 지방자치단체의 공공의료 확충에 대한 요구도 증가하고 있다. 정치권과 정부에서도 공공의료 확충 방안에 대한 장기적인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