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결혼식 / 최정례

내일은 결혼식/ 최정례신발을 나란히 벗어놓으면/ 한 짝은 엎어져 딴 생각을 한다/ 별들의 뒤에서 어둠을 지키다/ 번쩍 스쳐 지나는 번개처럼// 축제의 유리잔 부딪치다/ 가느다란 실금/ 엉뚱한 곳으로 방향을 트는 것처럼// 여행 계획을 세우고 예약을 하고 짐을 싸고 나면/ 병이 나거나 여권을 잃어버리는 것처럼/ 가기 싫은 마음이/ 가고 싶은 마음을 끌어안고서/ 태풍이 온다// 태풍이 오고야 만다/ 고요하게 자기 눈 속에 난폭함을/ 숨겨두고/ 내일은 결혼식인데 하필 오늘/ 결혼하기 싫은 마음이 고개를 쳐드는 것처럼- 2017 현대문학상 수상시집(현대문학, 2017)..............................................난데없이 신발을 잃어버리고 헤매는 꿈을 꾸었다. 아니나 다를까 대인관계의 오해나 구설로 고통을 받고 있거나 진행 중인 일을 그르칠 수 있다는 해몽이다. 오랫동안 겪고 있는 일들이 은유의 기재로 꿈에 나타난 것이다. ‘신발을 나란히 벗어놓으면’ 꼭 ‘한 짝은 엎어져 딴 생각을’ 한다. 여행가방을 다 싸놓고 나서 가기 싫은 마음에 미적거리다 차를 놓쳐버리는 기분이랄까. 강한 태풍이 몰아쳐 비행기가 뜨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랄까.지난 2일 밤 EBS금요극장에서 방송한 은 봤던 영화지만 다시 보았다. ‘졸업’은 현대를 사는 미국 젊은이들의 고뇌가 깃든 작품으로 불안한 미래를 앞둔 주인공 벤자민의 방황을 통해 기성세대의 가치관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는 60년대 후반의 대표적인 할리우드 작품이다. 그런데 보다보니 71년 국내 개봉된 이 영화를 내가 언제 어디서 봤는지 통 기억에 없다. 대강의 스토리는 안다지만 풀타임으로 봤는지조차 분명치 않았다. ‘사이먼&가펑클’의 음악과 함께 라스트신만 기억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였다.영화의 내용은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얄궂었다. ‘벤’이 여친 ‘엘레인’의 엄마 ‘로빈슨 부인’하고의 불륜 장면이 충격적인데, 내 기억과 일치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가 엘레인의 엄마가 아니라 친척으로 기억하고 있었다는 사실과 함께 벤이 로빈슨부인의 유혹에 일방적으로 넘어간 것만이 아니라 스스로 머시멜로의 달콤함에 빠져든 사실도 새삼 알았다. 벤이 대학 졸업이후의 공허감을 로빈슨부인에게서 채웠던 것인데 한마디로 이런 내용인 줄은 몰랐다.기억이 왜곡되어 있었던 것이다. 다만 이제 알게 된 사실 하나는 당시 우리사회 정서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한 남자와 모녀가 잔다는 엄청난 막장 내용인지라 심의 과정에서 이모와 조카로 자막을 고쳐서 상영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얼버무리고 문제 장면은 가위질을 해놓았으니 봐도 제대로 보지 못했음은 당연한 노릇이었다. 그건 그렇고 영화 ‘졸업’의 엘레인에게도 ‘내일은 결혼식인데 하필 오늘 결혼하기 싫은 마음이 고개를 쳐들’었을까. 그만큼 원치 않는 결혼이었고 벤을 깊게 사랑했던 걸까. 그래서 식장을 뛰쳐나올 수 있었던 것일까.그저 빤한 로맨틱 영화라 생각하면 그리 봐줄 수 있겠으나 영화로 인해 점화된 내 청춘의 나날을 떠올리면 쓸쓸함과 씁쓰레함만 가득해진다. 기어이 영화는 몹쓸 내 젊은 날의 기억에 불을 붙이고 만다. 떼밀리고 떼밀려 원치 않는 여자와 약혼을 하고 내일이면 청첩장이 나온다는데, 멀리서 찾아온 그녀는 “우리 다 벗어던지고 함께 도망가 버릴까? 그러자 우리!” 그 말을 들었더라면, 그 용기가 발휘되었더라면 지금쯤 내 삶은 해피엔딩으로 치달을 수 있을까.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또다시 질 수는 없다

또다시 질 수는 없다홍덕률대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지난 8월2일, 일본이 전면적인 경제침략에 나섰다. 그 전까지 보여온 태도도 무례하기 짝이 없었다. 한국 정부가 기울인 다각도의 외교 노력들은 억지와 대화 거부에 부딪쳤다. 한국의 실무 협상단은 물론 주일 대사, 특사단, 방일 의원단 등도 노골적으로 홀대받았다.우리 국민은 자존심에 심한 상처를 입었다. 불매운동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거리 촛불도 등장했다. 대통령도 단호한 대응 의지를 천명했다.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을 것이며 국민을 믿고 정부가 앞장서겠다고 했다. 경제부총리와 장관들도 정부의 대응 방침을 발표했다.정치권도 나섰다. 여와 야가 함께 일본 규탄 성명을 채택했다. 만장일치였다. 만시지탄이지만 다행이었다. 일본의 경제침략 대응 예산을 포함해 지루하게 끌던 추경 예산안도 통과시켰다. 전열을 갖춘 셈이다.적지 않은 고통이 따르겠지만 꼭 성공해야 한다. 우리 경제의 일본의존도를 줄이고 경제체질도 튼튼하게 만들어야 한다.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다시는 일본이 한국을 얕잡아 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장기전에도 대비해야 한다. 이번에 확인된 일본의 의도에 비추어 보면 확전의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먼저 참의원 선거용이 아니었음은 이미 확인되었다.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보복이라는 분석이 대세지만 그 역시 충분한 설명은 되지 못한다. 그것을 넘는 보다 큰 노림이 있다고 봐야 한다.아베가 그리는 첫째 목표는 평화헌법을 개정하는 것이다. 일본을 전쟁가능 국가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아베는 2007년부터 평화헌법 개정을 주장해 왔다. 참의원 선거가 끝난 날에도 평화헌법 개정을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의회와 국민 여론을 돌려놓는 것이 숙제다. 동아시아에서의 긴장과 갈등이 필요하다. 그동안에는 북한과 북핵이 동아시아 긴장 조성자의 역할을 해 주었지만 앞으로는 안 그럴 수도 있다. 일본이 한반도 평화 기류를 반기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새로운 긴장과 갈등이 필요했던 아베에게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은 긴장 조성용으로 좋은 소재였을 뿐이다.아베의 또다른 큰 목표는 일본을 태평양전쟁 전의 동아시아 패권국으로 세워 과거 군국주의 시절의 영광을 되찾는 것이다. 여기서도 한국은 가장 성가신 눈엣가시다. 성노예와 강제징용 등, 과거 군국주의 시절 일본이 저지른 만행들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다. 한국은 경제 규모와 실력에서도 일본의 아시아 경제패권을 위협하는 수준으로까지 올라섰다. 최근의 남북한 평화가 한반도 통일로까지 이어지면 더 골치 아프다. 아베가 그리고 있는 동아시아 패권국가의 꿈은 영원히 불가능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잖아도 일본은 장기간의 경제침체와 고령화 등으로 위기의식이 팽배해 있다. 안에서도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지만 밖에서도 한국과 한반도의 상승 기운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다.그것이 아베의 궁극적인 목표고 현 사태의 본질이라면 일본의 막무가내 시비와 한국 때리기는 계속될 것으로 봐야 한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대한 태클도 노골화될 것이다. 일본 국민의 혐한 정서 부추기기 역시 더 심해질 것이다. 확전과 장기전에도 대비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아베와 일본 극우세력이 그리워하는 과거 군국주의 시절은 우리에게 잊을 수 없는 비극이었다. 일본은 자국민에게까지 원자폭탄의 참상을 겪게 하고서야 항복했다. 마침 오늘은 74년 전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날이다. A급 전범들을 추앙하고 있는 아베와 일본 극우세력은 아직도 그 비극의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역사를 지우고 왜곡하는 일에 열을 올리고 있다. 아시아 패권국가로 다시 서기 위해 집요하게 일을 꾸미고 있다.또다시 일본의 속국으로 살 수는 없다. 고통이 따르겠지만 반드시 이겨내야 한다. 쉽게 생각해서도 안되지만 일제 식민사관과 패배의식에 빠져서는 더더욱 안된다. 감정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자신감을 갖되 장기전을 각오하고 냉정하면서도 치밀하게 대응해야 한다.먼저 정부는 촘촘하게 정책을 만들고 밤낮없이 국제무대를 뛰어야 한다. 여와 야도 당리당략을 버리고 국력을 결집하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엔지니어와 노동자, 연구개발자와 소비자 등 국민 모두도 의지를 모으고 실력을 발휘해야 한다. 극일(克日). 2019년 8월이 한국민 모두에게 준 역사적 사명이다.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무궁화 단상

신승남 중부본부 부장.신승남 중부본부 부장포항 기청산 식물원에는 아주 특별한 관목 울타리가 있다. 잘 정리된 이 울타리는 은행나무 울타리다. 나무의 수명은 대략 100여 년이다. 늘씬하고 쑥쑥자라는 은행나무 가로수를 생각했다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갖고 있는 은행나무에 대한 선입견이다.100여 년이나 된 은행나무들이 촘촘하게 울타리를 이루고 있다. 키는 2m가 되지 않는다. 처음 이 은행나무를 보는 이들은 못믿겠다는 반응이다. 특히 잎을 모두 떨군 겨울에는 여느 은행나무와는 달리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은행나무는 전세계 1과, 1속, 1종 만이다. 그래서 은행나무가 아닐 수가 없다.크고 웅장한 은행나무를 떠올리는 사람들에게 은행나무로 만든 울타리를 보여주면 놀랍고 신기해 한다. 하지만 난 이 은행나무 울타리가 신기하지도 반갑지도 않다. 은행나무가 은행나무 답지 않아서다.그럼 무궁화는 어떨까. 우리나라 꽃, 무궁화는 관목이다. 일반적으로 키는 1m 전후로 작고 아담한 수형에 제법 큰 꽃을 피운다.그래서 큰 무궁화나무를 만나면 그 아름드리 나무에 놀라고 감탄하게 된다. 금오산 잔디광장에 제법 키가 큰 무궁화나무 2그루 나란히 서 있다.줄기가 제법 굵은 이 무궁화나무는 오랜 세월만큼 주름진 옷을 입고 있다. 이렇게 오래되고 큰 무궁화나무를 보면 때가 끼고 보잘 것 없는 작은 나무라는 고정관념을 깨게 된다.오래된 나무에 큼직하고 화려한 꽃이 필때마다 참 한결같은 나무라는 생각을 한다. 유목일때나 성목이 되어서나 한결같이 크고 화려한 꽃을 피워내고 있으니 말이다.‘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무궁화는 애국가에도 당당히 등장하는 나라 꽃이다. 일제 강점기 많은 탄압과 억압에도 억척스럽게 지켜온 꽃이기도 하다.피고 지고 또 피어 100일 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큼직한 꽃송이는 벌과 나비들에게 먹음직한 잔치를 예고한다. 나무는 꽃을 피웠다고 모두 씨앗을 맺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유독 무궁화나무는 꽃을 피운 자리마다 씨앗을 맺는다.아마도 큰 꽃과 푸짐한 꽃가루로 많은 곤충들에게 풍성한 먹을 거리를 제공하고 그 덕에 가루받이를 잘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무궁화 꽃에는 꽃가루를 탐하는 개미가 많이 몰려든다.또 꺾꽂이로도 뿌리를 잘 내리는 무궁화는 어디서나 잘 자라는 까다롭지 않은 나무이다.전국 어디서나 여름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무궁화는 해마다 강전지로 나뭇가지를 잘라 키가 큰 나무를 보기 어렵다.무궁화 나무를 작은 키에 왜소한 형태로 키우는 것은 우리의 고정관념이다.생각해 보면 은행나무를 키우는 사람이나 무궁화나무를 키우는 사람이 나무를 어떻게 키울지 결정하고 오랜세월을 다듬어가는 것은 모두 비슷하다.큰 교목으로 키워서 튼튼한 목재로 사용하고 깊은 그늘을 이용할 것인지, 아니면 아담한 관목으로 키워 울타리로 이용할 것인지 키우는 이의 의도와 목적이 나무의 크기와 쓰임을 결정한다.이는 순전히 나무를 키우는 사람의 생각이지 나무의 의지는 아니다. 나무에게도 제 나름대로의 타고 난 특성이 있다.아이들을 키우는 교육도 마찬가지다.‘너는 큰 재목이 안 되니까 기술을 배워 밥벌이나 하면 돼, 아님 넌 내 자식이니까 더 큰 일을 해야 해’ 등 부모나 선생님들의 수많은 고정관념과 선입견이 우리 아이들의 꿈을 빼앗고 있는지도 모른다.키 작은 무궁화 나무를 보며 이런 반성을 했다.‘내가 아이들이 더 자랄 수 있는 가능성을 잘라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사막에서도 잘 자랄 수 있는 은행나무처럼 환경을 스스로 극복하라고 채찍질 하는 것은 아닌지.’오늘 산책 길에 무궁화를 만났다. 단심 무궁화(흰 바탕에 붉은 수술과 암술)다. 무궁화 나무가 키가 작은 것은 일제의 잔재라고 한다.일제는 민족의 강한 생명력을 상징하는 무궁화 나무의 키를 낮추기 위해 의도적으로 강한 가지치기를 했다고 한다.최근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와 백색국가 제외 등으로 한·일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무궁화는 일제강점기 일본의 학정과 가지가 잘려지는 고통에도 온몸으로 잎을 피우고 꽃을 틔운 나라 꽃이다.무궁화는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 지, 한·일 갈등에 있어서 국민들이 무슨 생각을 가져야 할 지 무언의 답을 던지며 무더위에도 활짝 웃고 있다. 신승남 기자 intel887@idaegu.com

수사는 경찰, 기소는 검찰, 재판은 법원

여혜진경산경찰서 사이버수사팀 경사수사구조 개혁의 본질은 비대해진 검찰의 권력 남용을 차단하고 견제와 균형을 형사사법절차에 실현하게 하는데 있다.우리나라 대표적인 수사기관으로 경찰과 검찰이 있다.양 기관이 서로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구조가 되어 형사사법구조가 공정해지면 그 혜택은 오직 국민에게 돌아가게 된다.하지만, 현재 상황은 검사가 수사의 주재자이며 공익의 대표자로 범죄수사, 공소제기, 재판 집행을 지휘, 감독하고 경찰은 수사를 개시한 후 모든 수사에 관해서 검사의 지휘를 받도록 규정돼 있다.선진국형 형사사법시스템은 수사권은 경찰, 기소권은 검사에게 분산돼 있으나 우리나라 검찰은 기소권뿐만 아니라 수사권, 영장청구권 등 형사사법체계상 모든 권한을 독점하고 있다.검찰에서 이러한 절대권한을 가진 곳은 우리나라밖에 없다.견제받지 않는 검찰 권한은 권한남용의 폐단으로 이어지고 실질적으로 수사는 경찰이 대부분 하고 있으나 수사를 하지 않은 검사의 지휘를 받는 것은 불필요한 중복 수사가 이뤄져 피해자의 기본권이 침해되고 시간적, 경제적 손실 같은 2차, 3차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여러 여론조사에서도 이미 응답자의 70% 이상 수사구조개혁에 찬성한다는 의견이 나타나 수사권 조정의 필요성에 대해 국민 대다수가 공감하고 있다.수사구조개혁은 경찰과 검찰의 단순한 권한 배분 문제가 아닌 검찰의 막강한 권한 행사로 인한 수많은 폐해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와 비대해진 검찰권의 남용을 차단해서 민주주의 원칙인 ‘견제와 균형’을 형사사법절차에서 실현할 수 있는 시대적 과제이다.수사는 경찰, 기소는 검찰, 재판은 법원이 담당해 수사의 잘못된 점은 기소단계에서 점검하고 기소의 잘못된 점은 재판에서 바로잡는 단계별 검증을 거치게 되면 국민의 인권이 보호될 수 있는 것이 수사구조개혁이 필요하다.수사구조개혁의 목적이 국민의 인권보호에 있는 만큼 국민의 인권보호와 올바른 치안서비스 제공을 위해 ‘경찰은 수사, 검찰은 기소’라는 견제와 균형을 바탕으로 정당한 수사구조개혁이 이뤄질 수 있도록 개선책이 요구된다. 남동해 기자 namdh@idaegu.com

생각들 / 황병승

생각들/ 황병승밤새도록 당신을 들락거리는 생각들/ 당신을 잠 못 들게 하는 생각들/ 당신의 천장을 쿵쿵거리는 생각들/ 당신을 미치게 하는 생각들/ 미쳐가는 당신을 조롱하는 생각들/ 당신을 침대에서 벌떡 일으키는 생각들/ 당신을 고무(鼓舞)시키는 생각들 순식간에/ 당신의 고무를 무화시키는 생각들/ 당신을 돌처럼 굳어가게 하는 생각들/ 당신을 뿔뿔이 흩어지게 하는 생각들/ 머리부터 발끝까지 당신을 무덤으로 만드는 생각들/ 무덤 속에서 당신의 머리칼을/ 손톱을 자라게 하는 생각들/ 죽어도 죽지 않는 생각들/ 관 속의 뼈들을 달그락거리게 하는 생각들/ 무덤이 파헤쳐지고 장대비가 쏟아져도/ 백 년 이백 년 당신을 놓아줄 생각이 없는 생각들/ 당신의 텅 빈 해골을 가득 채우고 있는 그/ 가차 없는 생각들- 월간 《현대시》 2016년 3월호............................................................황병승 시인의 사망 소식을 접한 지 열흘이 넘었다. 7월24일 처음 주검이 발견되어 보도되면서 단박에 인터넷 실검 1위에 올랐다. 그러나 잠시였고 한 시인의 죽음이 세상 사람들의 관심을 오래 붙들고 있을 수는 없었다. 경찰은 사망한지 약 보름쯤 지났을 것이라 추정했다. 정확한 사인은 다음날 부검을 통해 밝힐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고인은 알코올중독증세 등으로 건강이 안 좋았다는 정도만 알려졌을 뿐 아직 구체적인 사인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지난달 25일 이후 고인과 관련한 뉴스는 어디에서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90년대 초 내가 다니던 회사에 70년생 신입여사원이 한 명 들어왔다. 사무실 직원 하나가 “캬, 드디어 우리 공장에도 미래파가 입성했구먼!” 그러면서 다들 그 신입사원을 기성의 경계 밖 날선 신세대로 규정했고, 낯선 현상의 하나로 받아들였다. 황병승 시인을 바라보는 내 느낌도 그랬다. 70년생 황병승은 2005년 ‘여장남자 시코쿠’란 단 한 권의 시집으로 한국 시단을 후끈 달구었던 시인이다. 한 문학평론가는 ‘괴물 신인의 괴팍한 등장’이라고 했고, 또 다른 이는 ‘시 아닌 것을 긁어모아 시를 만들어 내는 연금술사’라며 찬사를 보냈다.시인이자 평론가인 권혁웅은 황병승을 비롯해 젊고 파격적인 경향의 동시대 시인들에게 ‘미래파’라는 이름을 처음 붙이고 미래파 논쟁을 이끌기도 했다. 그들의 ‘획기적인 형식실험’을 ‘실속 없는 언어유희’라며 쏘아붙이고 적대시하는 기성 시인들에게 황병승은 개념상 ‘주적’임에 틀림없었다. 그 미래파 기수인 시인의 두 번째 시집 ‘트랙과 들판의 별’ 역시 기존의 시 문법은 깡그리 파괴되어 ‘시도 아닌 것이 소설도 아닌 것이’ 난해하기 그지없다. 누가 그에게 시가 뭐냐고 물었더니 그는 “집에서 혼자 할 수 있는 최고의 놀이 중 하나”라고 답했다.‘밤새도록 당신을 들락거리는 생각들’ ‘당신의 텅 빈 해골을 가득 채우고 있는 그 가차 없는 생각들’이 그 놀이였으리라. 그는 어느 시에서 “나에게 소원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한 번만이라도 생긴 대로 살고 싶은 것 하지만 그게 안 돼서 말처럼 쉽지가 않아서 나는 엉망으로 늙어간다”고 했다. 그 기분을 이해할 것 같다. 그의 시에 입을 댈 명분은 어디에도 없다. 그의 죽음을 ‘사회적 타살’이라며, 우리 모두가 ‘공범들’이라고 입술을 깨무는 동료 시인들도 있다. 시라는 게 무슨 대단한 것이라면 몰라도 이제 더 이상 간섭 말고 지그시 눈 감아 주자.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기적을 불러오는 대화

기적을 불러오는 대화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 더위가 이제 9부 능선으로 오르는 것 같다. 키 높이로 자란 글라디올러스가 열기에 지쳐 비스듬히 몸을 기울이고 휴식을 취하는 자세다. 태어나면서부터 누렇게 물을 들여 익어가는 듯한 모습으로 자라던 노각은 내 팔뚝을 넘어 자랐다. 쌉쌀한 맛을 기대해본다.미국으로 떠나기 전 텃밭은 김을 맸다. 돌아와 보니 잡초 정리지도사가 다녀갔던가. 과일과 채소는 보이지 않고 튼실하게 자란 잡초가 텃밭의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질긴 생명력! 제 나름의 꽃을 피워 한번만 봐달라고 애원하는 듯하다. 척박한 땅에서도 불평해대지 않고 묵묵히 자라나는 저들의 끈기에 칭찬의 박수라도 보내야 할까.문득, 뜨거웠던 뉴욕의 하루가 떠오른다. 세계여자의사회 창립 100주년 기념 및 국제 학술대회 축하 특별행사로 이스트 강변의 유엔본부를 방문하게 되었다. ‘여성의 건강: 지속가능한 개발 목표를 위한 기본 요소 만들기‘라는 주제로 세계여자의사회 10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행사였다. 한국 여자의사회 회원들도 사전 허가를 얻어 참가하게 되었다. 우뚝 솟은 건물 사이의 뉴욕 도심은 정말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었다. 헉헉거리며 오랫동안 걸어 겨우 유엔 본부에 도착하였다. 입장하기 전 총을 장전한 보안요원의 점검을 받아야했다.헌데 이일을 어쩌면 좋으랴. 평소엔 평정을 잃지 않으시던 원로 선생님께서 얼굴이 사색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들어보니 보안검색에 필요한 여권이 없어졌다는 것이 아닌가. 어디에서 사라졌는지 기억조차 없다고 하신다. 연로하신 선생님께서 정신적 충격으로 무더운 날 넘어져 버릴까 걱정되었다.이럴 때 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무엇일까. 바로 긍정의 주문이지 않겠는가.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의 그 말. 하쿠나~! 마타타~! "문제없어요, 다 잘 될 거에요." 이왕 없어진 여권을 내내 걱정하기보다는 유엔의 문안으로 발을 들여놓는 것이 우선이지 않은가. 선배님을 무조건 위로했다. “여권은 누가 주워서 꼭 돌려줄 거예요.” 일단은 “근심 걱정 모두 떨쳐버리고 일단 부딪혀 봐요.” 허가증도 있고 한국의 주민등록증도 일단 증명해달라고 우겨 봐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연후에 여권 걱정하자고 어깨를 감싸 안았다. 하지만 선배님은 컨퍼런스가 진행되는 내내 어두운 얼굴이다. 비난의 말도 누군가로부터 들은 모양이다. 모든 일 다 접고 빨리 임시여권 만들어야 귀국이 덜 늦어질 수 있다는 충고도 있었다. 그러니 세미나만 끝나기를 바라신다. 세션이 끝나자마자 영사관에 다녀와야겠다고 하시면서. 세계보건기구의 대표 연설도 미국항공우주국의 로켓과학자인 앨린 박사의 ‘우주가 남성과 여성에게 어떻게 다르게 영향을 미치나?’라는 열띤 강연도 귀에 스치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어쩌랴, 계속 주문을 걸었다. “괜찮을 거예요! 어딘가 있을 거예요.““하쿠나 마타타~! ” 드디어 메일이 왔다는 알림이 뜨는 것이 아닌가. 바로 학회장 등록 데스크에서. 등록할 때 이름표와 책자는 받아들고서 신분확인으로 보여준 여권을 그곳에 두었던 것이라니. 걱정이 사라진 선배의 얼굴은 뉴욕의 밝은 햇살보다 더 화사하게 빛났다.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어떤 나쁜 상황이 생겼을 때 주변 사람의 대화유형에는 3가지가 있다. 첫째 원수 되는 대화, 그 다음이 멀어지는 대화, 마지막으로 다가가는 대화다. 원수 되는 대화를 예로 들면 상대방이 바로 이런 일을 당했을 때 “여권을 아무데나 두고 다니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이런 말을 들으면 당사자는 스트레스가 급격하게 오르게 되지 않겠는가. 결국, 관계를 망치게 되는 말일 것이다. 일은 이왕 벌어진 것 아닌가. 기왕지사에 대해 비난하지 말고 감정을 다스려 문제해결에 필요한 사항을 차분히 점검하면서 도움 되는 이야기를 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또 하나는 멀어지는 대화이다. 상대의 말에 집중하지 않고 전혀 다른 관심사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이다. 여권을 잃어버려 어쩔 줄 몰라 하는 상황에서 점심은 무엇을 먹으면 좋을까 미리 계획을 세우며 질문하는 것 등 말이다. 세미나장에서 제일 좋은 자리는 어디일까? 묻는 이도 여기에 속할 것이다.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입장은 생각하지 않고서 자신만을 위한 대화이니. 우리가 상대를 배려하면서 나누어야 할 대화는 바로 다가가는 대화이지 싶다. 곤경에 빠진 상대를 발견한다면 어쨌든 기분이 나아지도록 도와주어야 하지 않으랴. 아무리 무더운 여름날이더라도 아름다운 말로 대화를 청량하게 나누다 보면 시원한 바람도 곧 느낄 수 있지 않으랴. 얼마 남지 않은 무더위엔 ”구나, 겠지, 감사”의 말을 입에 달고 살아보자. ‘그렇구나~!,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 그만하기 다행이야~!감사하면서 기적을 불러보자.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일 보복, 대구·경북 피해 최소화에 만전을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로 대구·경북 경제에도 비상이 걸렸다. 지역 주력 업종 상당수가 규제 영향권에 들어 타격이 우려되고 기업의 불안감이 가중되고 있다. 미중 무역분쟁이 전면전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로 지역 수출이 더욱 오그라들 가능성이 높은 등 지역 경제에 드리운 암운이 더욱 짙어지고 있다. 특히 일본의 수입의존도가 높은 품목들은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대구시와 경북도가 수출규제 비상대책단을 운영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이럴 때일수록 대구시와 경북도는 지역 업종별 수출입 변화 추이를 더욱 면밀히 챙기고 관련 기업에 대한 지원에 차질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대구시는 지난해 기계, 화학, 철강금속, 전자전기, 플라스틱·고무가죽, 섬유 등 854개사에서 6억5천73만 달러(7천785억 원)어치를 일본에서 수입한 것으로 나타났다.경북의 수입액은 22억 달러로 전체의 15%를 차지해 중국·호주에 이은 세 번째 무역규모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 관련 기업 305개사의 피해가 예상된다.대구의 경우 이차전지제조용 격리막 등 6개 품목의 수입 의존도가 50% 이상으로 관련 기업의 소재·부품 조달에 어려움이 예상된다.경북은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타격이 클 것으로 보인다. ‘편광재료로 생산하는 판’의 경우 일본으로부터 수입하는 전체 6억5천33만3천 달러 중 경북이 3억1천871만1천 달러로 48.8%에 달한다. 또 철강 분야의 평판압연제품은 일본산 수입 비중이 20.2%, 전기전자 분야 노(爐)용 품목은 19.9%로 나타나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철강 분야다. 대부분 품목이 국내 기술로 생산 가능하거나 대체 수입할 수 있다고 한다.대구시와 경북도는 피해 업종별로 단계적 대응책을 세워 발 빠른 지원에 나서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해야 한다. 대구시와 경북도는 피해 상황을 파악한 후 우선 조치해 주기로 하는 등 비상체제에 들어갔다. 지역 금융권도 피해 기업에 대한 자금 지원에 나서기로 하는 등 일사불란한 대응체제가 마련되고 있다.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차제에 정부 차원의 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대체 소재와 부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지방 정부도 행정·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둘째, 지방 정부가 코트라 등과 협조해 대체 수입처를 조기 확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경기 침체 속에 미중 무역전쟁 격화, 일본의 경제 보복으로 우리 경제는 사상 초유의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정부와 지자체, 기업과 국민이 합심해 지혜를 모아 난국을 헤쳐 나간다면 어려움은 있겠지만 불가능은 없을 것이다.홍석봉 기자 dghong@idaegu.com

‘일 경제 보복’ 긴 호흡으로 대처해야

지국현논설실장한일 관계가 지난 1965년 수교 이후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일본은 지난 2일 넘지말아야 할 선을 끝내 넘었다.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간소화 대상국가)에서 배제하는 경제 보복을 감행했다. 우리의 명줄을 죄려는 엄청난 도발이다.민간 분야에서 연간 1천만 명(2018년 기준 방한 일본인 292만 명, 방일 한국인 753만 명) 이상이 상대국을 방문하며 교류를 확대하고 신뢰를 쌓아온 양국 관계는 일순간 얼어붙었다.묘수가 보이지 않는다. 양국 관계 경색은 경제에 이어 군사협력, 관광, 문화, 학술, 스포츠 등 전 분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강 대 강’ 대치 때문에 타 분야로 불똥이 튈 수밖에 없다.일본은 한국 대법원의 강제 징용자 배상 판결에 대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또 이면에는 급격한 성장으로 일본 경제를 위협하는 한국을 견제하려는 의도도 없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자신들 저지른 문제 경제보복 연결시켜일본이 자신들이 저지른 과거사 문제를 경제 보복으로 연결시킨 것이 이번 사태의 핵심이다. 그 과정에서 사태 확산의 징후가 여러번 포착됐지만 간과한 우리 정부의 무대책, 무능력도 한 몫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반일 감정이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일 국무회의에서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역시 맞대응할 방안들을 가지고 있다. 부당한 조치에 상응하는 조치를 단호하게 취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유례없는 초강경 발언이다.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은 “일본이 우리를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한 것은 우리에 대한 공개적인 모욕”이라고 소리를 높였다.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은 주한 일본대사에게 “우리국민은 (일본을) 더 이상 우호국으로 생각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강력 항의했다. 외교관계 단절 등의 초강경 조치 직전에나 들을 법한 격한 톤이다.민간 분야도 들끓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일본의 이번 조치를 규탄하는 집회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일본제품 불매 운동과 일본 관광을 하지말자는 시민 운동도 확대되고 있다.사태는 일본이 도발하고 키웠다. 그러나 목소리만 높이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당연히 강온 양면 전략으로 임해야 한다. 또 좀 더 냉철하고 장기적으로 봐야 한다.국민들도 정도 이상으로 공포감에 휩싸이거나 일본을 혐오할 필요는 없다. 차분하게 추이를 지켜보면서 정부와 경제계의 대책을 지켜보는 것이 옳다. 특히 정부는 좀더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우리가 일본을 압박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나 보고 실효성 있는 제재를 가해야 한다. 당장 뚜렷한 것이 없다면 외교적 노력을 더욱 확대하면서 시간을 벌어야 한다. 국민 감정을 달래느라 설익은 대책을 남발해서는 안된다. 상대에게 결정적으로 아픈 ‘한 수’를 찾아내거나 만들어야 한다.지소미아(GSOMIA·한일 군사정보 보호협정) 폐기같은 양측에 모두 피해를 줄 수있는 조치는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 북한의 핵무장에 도움을 주는 그 어떤 조치도 안된다. 북한이 이번 사태를 어떻게 즐기고 있을지 우리국민은 보지 않아도 안다. 인정하기 싫지만 우리는 싫으나 좋으나 일본과 부대끼면서 살아야 하는 지정학적 운명을 가지고 있다.---해법 찾기 어려운 상황…우리 실력 키워야국가 간 관계는 가까울 때도 있고 멀어질 때도 있다. 일본과는 과거사 문제 때문에 갈등이 상존한다. 한일관계는 당분간 해법을 찾기 어려운 상황에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그러나 언젠가는 경색국면이 풀린다. 당장 발등의 불은 그 시기를 앞당기는 노력이다. 그리고 다시는 이번과 같은 상황에 처하지 않도록 우리의 실력을 키워야 한다. 긴 호흡, 긴 안목으로 대처하고 대책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변화 요인이 있을 때 중요한 팩트를 놓치지 않고 차분히 대응할 수 있게 준비해야 한다. 구체적이고 실용성 있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는 각종 대응 명분을 쌓아가야 한다. 잠깐 분노하고 말아서는 안된다.열흘 뒤면 8·15 광복 74주년이다. 더 이상 일본과의 과거사가 미래로 나아가는 우리의 발목을 잡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은 없을까.지국현 논설실장지국현 기자 jkh8760@idaegu.com

해방의 달 8월…기술, 안보 독립 계기 삼아야

다시 8월이다. 오는 15일은 광복 74주년을 맞는 날이다. 29일은 1910년 나라를 일본에 빼앗긴 국치일이다. 8월은 나라를 빼앗기고 되찾은 달이다. 일제의 강제 침탈로 우리 국민들은 36년 동안이나 치욕의 삶을 살았다.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빌미로 일본이 경제 보복에 들어갔다. 100년 만에 다시 일본의 무역 침탈로 나라가 위기에 빠졌다.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안보 상황도 녹록지 않다. 소련 공군기의 독도 영공 침범, 중국 군용기의 무력시위, 걸핏하면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며 위협하는 북한 등 국가 안보도 불안하기 짝이 없다.2일 화이트리스트 제외가 확실시되는 등 한일 간 경제전쟁이 본게임에 접어들 전망이다. 일본은 수출 규제의 칼을 빼든 지 한 달여 만에 후속 규제를 예고하며 우리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아베는 미국의 중재와 자국 기업에 불똥이 튈까 우려하는 세계 언론들의 비판에도 불구, 조자룡 헌 칼 쓰듯 수출 규제의 칼을 마구잡이로 휘두르고 있다. 일본의 경제 보복에 전의만 불태우고 있는 문재인 정부와 집권 여당을 국민들은 불안한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일본 제품 불매운동과 일본 여행 자제 등 반일 운동이 세차게 전개되고 있지만 아베는 콧방귀만 뀌고 있다. 아베의 한국 목 조르기에 일본산 소재·부품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우리 기업들은 좌불안석일 따름이다.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엊그제 국회에서 열린 제1차 일본수출규제대책 민·관·정 협의회에서 소재·부품 국산화를 외치고 있는 여권에 대해 “일본 기술을 따라잡으려면 반세기가 걸린다”고 지적했다. 그게 우리나라 소재·부품의 현 주소이고 현실적인 한계라는 점을 자인한 것이다.이번 위기를 소재·부품산업의 국산화를 앞당기는 기회로 삼자는 주장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 특정 국가 의존도를 탈피, 유사 사태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지금 1차 타깃이 됐던 반도체 소재 부품과 관련해서는 국내 중소기업 등의 국산화가 발 빠르게 추진 중이다. 정부와 대기업의 움직임도 부산하다. 잘만하면 이번 기회에 국산 소재·부품을 일류로 업그레이드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주변 강대국의 도발과 북한의 핵위협 등 어느 때보다 좋지 않은 안보 상황에도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언제 뒤통수를 칠지 모르는 중국과 북한도 문제지만 전통적인 우방인 미국의 안보 우산도 더 이상 믿을 수는 없는 상황이 됐다. 트럼프가 미군을 철수하겠다고 언제 엄포 놓을지도 모르는 판국이다. 국방 예산 증액과 군 장병의 정신무장 등을 통해 핵 위협에 맞설 수 있도록 군사력을 강화해야 한다.이에 앞서 북한 퍼주기와 남북 대화에만 혈안인 문재인 정부의 대오각성이 우선돼야 한다. 이번의 경제·외교·안보 위협을 기술과 안보 독립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또다시 얻어맞고만 있을 수는 없다. 국민의 각오과 결기가 필요한 8월이다.홍석봉 기자 dghong@idaegu.com

불길한 저녁 / 김사인

불길한 저녁/ 김사인고등계 형사 같은 어둠 내리네/ 남산 지하실 같은 어둠이 내리네/ 그러면 그렇지 이 나라에/ ‘요행은 없음’/ 명패를 붙이고 밤이 내리네// 유서대필 같은 비가 내리네/ 죽음의 굿판을 걷자고 바람이 불자/ 공안부 검사 같은 자정이 오네/ 최후진술 같은 안개 깔리고/ 코스모스 길고 여린 모가지 흔들리네/ 별은 뜨지 않네// 불가항력의 졸음은 오고/ 집요한 회유같이 졸음은 오고/ 피처럼 식은땀이 끈적거리네/ 슬프자, 실컷 슬퍼 버리자/ 지자, 차라리/ 이기지 말아버리자.- 시집 『어린 당나귀 곁에서』 (창비, 2015)....................................................‘슬프자, 실컷 슬퍼 버리자’ 어떤 슬픔이기에 이다지도 목이 멜까? ‘지자, 차라리 이기지 말아버리자’ 얼마나 짓밟혔으면 이렇게 바락바락 자조할 수 있을까? 아니 오기를 넘어 독기서린 말을 내뱉는 걸까. ‘고등계 형사 같은 어둠’ ‘남산 지하실 같은 어둠’이 내리는 암울한 그 시절은 상상만으로도 소름 돋고 옴짝달싹못하는 절망의 시간들이었다. 지난 30일 화요일 밤 0시50분 아주 늦은 시간, EBS1에서 다큐 시네마 ‘1991, 봄’이 방영되었다.1991년 5월8일, 한 젊은이의 분신자살 소식이 들렸다. 전민련(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사회부장 김기설이 서강대학교 캠퍼스 옥상에서 불에 탄 주검으로 발견되었던 것이다. 가족과 친구들은 그의 분신자살을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었다. 불과 두 달 전까지만 해도 그는 여자 친구와 가족에게 결혼을 이야기하며 미래를 꿈꾸던 청년이었기 때문이다. 가족들은 김기설의 죽음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현장에서 발견된 유서 두 장의 필적이 숨진 아들의 글씨가 아니라는 것이다. 누가 봐도 가족이 제출한 김씨의 필적은 유서와는 많이 달랐다.가족의 진술을 토대로 검찰은 수사에 착수하였고, 주변인들의 필적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전민련 총무부장 27세 강기훈씨가 바로 그 유서를 쓴 장본인이라고 특정했다. 대한민국을 뒤흔든 ‘유서대필’사건은 그렇게 탄생했다. 검찰은 김씨의 유서와 비슷해 보이는 필적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김씨의 지인 강기훈씨가 과거 경찰에 연행되었을 때 작성했던 진술서의 필적이었다. 검찰은 즉각 국과수에 두 문서의 필적감정을 의뢰했고 결과는 놀랍게도 필적이 일치한다는 것이었다. 유서대필과 자살방조라는 사법사상 전무한 혐의로 강씨는 구속되었다.강기훈씨는 법정에서 “다른 사람은 얘기를 못해도 저는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검찰이 조작했습니다”라고 진술했다. 강씨의 유서대필사건이 보도되면서 그들의 지인과 관련 재야단체에서는 보관하고 있던 그들의 필적을 공개했다. 이후 사건의 행방은 점점 묘연해져갔다. 민주주의와 평화통일을 염원하며 국가의 불의에 저항하던 10명의 청춘들이 연이은 분신자살 등으로 스러졌다. 정치권과 언론에서는 분신정국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서강대 박홍 총장은 “지금 우리 사회에는 죽음을 선동하는 어둠의 세력이 있다”며 기자회견을 열었고, 시인 김지하는 조선일보에 기고 글에서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고 했다. 젊은이들의 분신자살은 배후세력이 선동한 죽음으로 탈바꿈되었다. 2015년 봄에야 강기훈은 최종 무죄가 된다. 누명을 벗기까지 24년이 걸렸다. 1991년 봄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인간의 존엄이 땅에 떨어진 가장 뼈아픈 대목 중 하나였으며, ‘요행 없음’의 시대였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대구시설공단의 ‘이상한’ 주차장 관리

박준우논설위원 겸 특집부장요즘 대도시 사람들은 거의 매일 주차 전쟁을 겪으며 산다. 어쩌다 일 때문에 차를 몰고 시내에 나가게 되면 주차 공간을 찾지 못해 골목길이나 이면도로를 이리저리 헤매기 일쑤고, 조금 늦게 퇴근한 날에는 동네 아파트단지나 주택가에 차 댈 곳이 없어 쩔쩔맨 경험이 한두 번쯤은 있다.차량 증가 속도에 맞춰 주차 공간을 확보할 수 없어 일어나는 불가피한 현상이다. 조금씩 양보하고 배려하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그나마 스트레스 덜 받고 다툼 없이 생활할 수 있는 세상이 됐다.그런데 대구 교통 1번지라 불리는 수성구 범어네거리 인근 이면도로 주차장 밀집 지역에서 수년째 이해 못 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 범어네거리 범어지하도 상가를 관리하는 대구시설공단이 이곳에 상가 부설 무료개방 주차장 세 곳을 운영하고 있는데, 세 주차장의 출입구를 종일 차단봉과 쇠사슬로 막아놓고 있는 것이다.사연은 이렇다. 2009년에 범어지하도 상가가 건립되면서 대구시설공단은 부근 주차장 밀집지역 터에 차량 28대를 동시 주차할 수 있는 상가 부설 무료개방 주차장 세 곳을 만들었고,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다.그런데 2014년부터 세 곳 주차장 출입구에 차단 시설이 설치돼 이용객의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시설공단 측의 설명은 출입구를 열어 놓으니 일반 시민들이 이용해 이를 막기 위해 출입구를 막았다는 것. 즉 상가 이용객만 이곳을 이용하도록 제한하고 있다는 것이다.그러면서 상가 이용객일 경우 전화를 주면 상가관리소 직원이 주차장 앞에 나와 기다리다가 차단기를 올려준다는 설명이다.그렇지만 현재 세 곳 주차장은 시설공단 측 설명과 달리, 상가 이용객보다는 주로 상가에 입주한 시설공단 산하 관리사무소 직원들과 대구문화재단, 대구교육청 글로벌스테이션 관계자들이 구역을 나눠 사용하고 있다 한다. 사실상 직원과 관계자들의 전용주차장 구실을 하는 것이다.날마다 주차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도심에 만들어 놓은 무료개방 주차장을 일부 사람만이 전용 주차장으로 이용한다는 사실에 대해 시민들은 과연 어떻게 생각할까. 대구시설공단은 이참에 이곳을 시민들이 더 많이 이용할 수 있도록 활용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가령 지하상가 통로 벽에 붙여놓은 상가위치도에 주차장 안내글이라도 써놓든지 아니면 주차장 부근에 안내판이라도 설치해 놔야 할 것이다. 지금처럼 안내문 한 줄 보이지 않고 주차장 출입구마저 막혀 있다면 이곳이 상가 부설 무료개방 주차장인지 누가 알겠는가.사실 범어지하도 상가의 경우 지하철 역사와 붙어 있어 직원이나 관계자 외에 부설 주차장을 이용하려는 시민들이 그리 많을 것 같지도 않다. 그럴 바에는 아예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공영주차장화 하는 방안도 생각해봄 직하다.직원 전용주차장으로 사용한 게 벌써 6년 가까이 된다니 대구시설공단의 무관심이라고 봐야 할지, 아니면 다른 시민은 이용하지 말라는 배짱인지 알 수 없는 속내다.대구 골목길에는 내집 앞 주차를 막기 위해 놓아둔 주차금지 표지판, 폐타이어, 콘크리트 장애물 등을 어디서나 볼 수 있다. 이곳에 점용허가나 사용허가를 받은 것도 아닐 텐데 밤낮없이 이렇게 장애물을 놔두고 있으니 통행하는 차량이나 보행자로서는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어떨 때는 이것 때문에 이웃 간에 다툼이 생기기도 하고, 특히 긴급출동 중인 소방이나 순찰 차량은 곤란을 겪기도 한다. 물론 차 댈 장소가 없어 생기는 불편한 사정 때문이란 걸 짐작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 같은 행동이 정당화 되는 건 아닐 것이다.그렇다면 시민들의 내집 앞 주차공간 잡아놓기와 대구시설공단의 범어지하도 상가 무료개방 주차장 관리 행태는 뭐가 다를까. 대구시의 무료개방 주차장이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공재로 봐야 할 텐데 이를 특정 개인이나 기관, 단체에서만 사용할 수 있도록 관리하는 게 과연 옳으냐는 말이다.주차 공간 확보를 위해 내집 앞 장애물 놓아두기가 묵인되는 게 현실이라면 대구시의 무료개방 주차장도 관계자들만 이용하게 하는 걸 그냥 모른 척하는 게 공동체를 위하는 길이지 싶기도 한 데, 정말 그런 것인가./논설위원 겸 특집부장박준우 기자 pjw@idaegu.com

테네시 윌리엄스를 만나다

테네시 윌리엄스를 만나다성민희재미수필가너무 덥다. 담장을 타고 오른 부겐베리아 꽃잎도 바싹 말랐다. 컴퓨터를 켠다. 여행을 다녀온 뒤 덮어두었던 사진이랑 메모지를 뒤적여 테네시 윌리엄스를 화면에 불러내니 함께 했던 얼굴들이 그의 묘비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그날은 시카고에서 미시시피강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와 테네시 윌리엄스의 생가가 있는 콜럼버스에 도착했다. GPS의 안내에 따라 움직였지만 유명작가 생가라는 안내 표지가 없어 찾기가 쉽지 않았다. 한때는 유리 동물원과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발표하여 전 세계의 연극은 물론 영화계까지 들썩거리게 만들던 작가로 퓰리처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작가이다.한 시간 남짓 더 달려서 도착한 곳은 엄청나게 큰 공원묘지였다. 안내소는 이미 문을 닫은 시간이라, 묘지의 위치도 모른 채 무작정 입구로 들어갔다. “이 넓은 곳 어디에 가서 테네시 윌리엄스를 찾나.” 서로 수런거리는데 세 명의 인부가 나뭇잎을 쓸고 있었다.테네시 윌리엄스의 묘를 찾는다고 하니 그 자리에 서서 손가락으로 비석 하나를 가리켰다. 그것은 긴 사각형의 회색 돌에 ‘테네시 윌리엄스’라는 이름이 큰 글씨로 찍힌 묘비였다. 시인, 극작가라는 설명도 있다. 원래 테네시 주의 주지사, 상원의원을 지낸 집안이었으나 할아버지 대에 몰락해 구두 외판원으로 살아가는 아버지와 전형적인 남부지역 여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가 뉴욕의 허름한 호텔에서 사망하기까지 1911~1983년이라는 기간도 표기 되었다. 그의 죽음은 파티에서 코케인을 섞은 와인을 마신 때문이다.알콜 중독자인 그가 만취 상태로 토하다가 질식해서 죽었다, 혹은 병뚜껑이 목에 걸려 죽었다는 등 이유도 분분하지만 어찌 되었든 미국 극문학의 금자탑을 이룬 작품의 저자, 체호프 이 후 가장 위대한 작가라는 칭송을 받았던 사람의 무덤치고는 너무나 평범했다. 꽃 한 송이 없이 먼지만 뒤집어쓴 채 도로와의 경계 자리에 서 있는 묘비는 자폐증과 절망, 고뇌와 고통으로 가득했던 주인의 지난 세월을 말해 주는 듯했다.사진을 찍는데 비석 아래쪽의 짧은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The violet in the mountains have broken the rocks’ 란 문구다. 그의 작품에서 한 말이다. 직역을 하면 ‘산의 바이올렛 꽃이 바위를 부순다.’ 로 무슨 메타포일까 한참 생각했다. 집에 와서 인터넷을 뒤지니 어떤 여자가 미국 여배우 패트리샤 클락슨의 연설에서 이 구절을 듣고 감격해서 썼다는 에세이가 나왔다. 여배우가 말했다고 했다. “이 글의 의미는 간단합니다. 나를 압박하는 어떤 힘든 일도 시간이 지나면 아름다움과 자연과 화려함과 살아있는 것(beautiful, nature, colorful, alive)의 힘에 의해 부서진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는 바위를 부수는 바이올렛 한 다발이 있습니다.” 글을 쓴 여자는 자기에게 바이올렛은 무엇이며 바위는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다. 사람에 따라서 모두 다르겠지만 테네시 윌리엄스에게 있어서의 바위는 무엇이었을까. 어릴 적부터 따라다니던 질병, 가정불화, 누나의 정신병, 동성애라는 자아에서 오는 정서적인 불안정, 작가로서의 명성이 주는 불안감, 우울증 등이 아니었을까. 그는 그것을 이겨보려고 글을 쓰며 극 중 인물을 통하여 그의 내면을 분출하고 치유하려고 애를 썼을 지도 모르겠다. 그의 고뇌에 무엇이 바이올렛이 되어주었을까. 그는 얼마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묘지를 지나 영혼의 고향 ‘엘리지안 필드’에 내리고 싶었을까.그는 과거에 대한 집착, 외로움을 이기기 위해 술과 섹스를 탐닉하는 작품 속의 인물을 통해 ‘인간 본연의 고독과 욕구를 시정적인 언어로 잘 형상화했다’는 평은 물론,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잔인함과 냉혹함을 능숙하고 무리 없이 조율하여 공감하게 만드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천박한 주제로 글을 쓰는 작가라는 비난도 받았다. 세상의 평가가 어찌되었던 비석에 새겨진 글에서 인간 내면의 가장 깊은 곳은 아름다움과 순결을 갈망한다는 그의 생각을 읽는다.어느덧 해가 지고. 우리는 서둘러 묘지를 빠져나와 허름한 서민 아파트 앞에 섰다. 마구 자라난 누런 잔디 위에 ‘테네시의 어린 시절 집’이라는 팻말이 서 있다. 테네시 윌리엄스가 어느 층 몇 호에 살았는지 전혀 안내도 없는, 그에 대해 아무런 흥미도 느낌도 없는 누군가가 살고 있는 아파트 앞에서 플래쉬를 터뜨려가며 우리는 회색빛 낡은 건물 사진을 찍었다. 한 때는 키웨스트에서 헤밍웨이와도 우정을 나누던 옛 영광을 우리는 알고 있다며 마구 카메라 셔트를 눌렀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안전한 휴가, 작은관심으로부터 시작

안전한 휴가, 작은관심으로부터 시작장아영영덕소방서 강구119안전센터태풍 ‘다나스’가 몰아친 뒤 대한민국은 본격적인 여름으로 들어섰다.무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보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다중이용시설로 이동하게 되고 이로 인해 각종 사고가 발생하기 쉽다.다중이용시설는 불특정다수인이 이용하는 시설이다.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시설인 만큼 여러 화재요인이 뒤따른다.그중 가장 큰 원인은 전기부주의다.대부분의 다중이용시설은 많은 조명과 적절한 실내온도를 유지하기 위한 냉난방기 등 전기를 이용한 설비가 많다.특히 여름철은 이용객들의 쾌적한 환경을 위해 냉방시설을 과도하게 가동시키는 경우가 있다. 이로 인해 전기 과부하가 생기게 되고 화재로 이어질 수 있다.다중이용시설의 특성상 건물내부에 타기 쉬운 가연물들이 많고, 내부구조에 익숙하지 못한 다수의 사람들로 재산피해는 물론 인명피해까지 발생할 수 있다.이를 예방할 수 있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건물 관계자는 주기적인 전기점검을 통해 누전, 합선이 되지 않도록 관리하며 종업원들에게는 일상적인 화재예방교육을 통해 안전관리의식을 고취시켜야 한다.옥내소화전 및 스프링클러의 작동이상 유무 및 적절한 소화기 배치 등 화재 시 초기진압에 큰 역할을 하는 소방시설의 점검 및 관리도 중요하다.또한 가장 중요한 인명피해를 막기 위해 완강기 등 각종 피난기구에 대한 점검도 소홀히 하지 않아야 한다.시설이용객들은 건물 곳곳에 붙어있는 대피로 및 비상구 위치를 숙지해두는 것이 자신의 몸을 지키는 가장 큰 예방법이 될 것이다.모두가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주의한다면 시원하고 안전한 여름 휴가철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강석구 기자 ksg@idaegu.com

자본주의의 약속 / 함민복

자본주의의 약속 / 함민복혜화동 대학로로 나와요 장미빛 인생 알아요 왜 학림다방 쪽 몰라요 그럼 어디 알아요 파랑새 극장 거기 말고 바탕골소극장 거기는 길바닥에서 기다려야 하니까 들어가서 기다릴 수 있는 곳 아 바로 그 앞 알파포스타칼라나 그 옆 버드하우스 몰라 그럼 대체 어딜 아는 거요 거 간판좀 보고 다니쇼 할 수 없지 그렇다면 오감도 위 옥스퍼드와 슈만과 클라라 사이 골목에 있는 소금창고 겨울나무로부터 봄 나무에로라는 카페 생긴 골목 그러니까 소리창고 쪽으로 샹베르샤유 스카이파크 밑 파리 크라상과 호프 시티 건너편요 또 모른다고 어떻게 다 몰라요 반체제인산가 그럼 지난번 만났던 성대 앞 포트폴리오 어디요 비어 시티 거긴 또 어떻게 알아 좋아요 그럼 비어 시티 OK 비어시티--- 시집『자본주의의 약속』(세계사,1993)..........................................................이 시가 발표된 지 30년 가까이 되었으니 시 속에 등장하는 간판의 상호도 지금쯤 많이 바뀌었을 것이다. 누군가와 약속을 잡는 과정에서 상대편과의 통화 내용이 그대로 시가 되었다. 시인 자신이 직접 경험한 일일 수도 있고, 가까이에서 ‘엿들은’ 내용일지도 모르겠다. 이도저도 아니면 시적 상상력이라고 해두자. 그저께 내가 머무는 지역의 번화가(그래봤자 서울의 변두리 후미진 동네 어디쯤 되겠지만)에서 초등 2학년 정도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가 너 댓살 된 여동생의 손을 붙들고 휴대폰으로 통화하는 것을 우연히 엿들었다.상대편은 아이들의 엄마로 추정되고 다른 볼일을 보는 사이에 아마 길이 어긋난 것 같았다. “어디라고? 눈에 뛰는 간판 말해봐” “응, 여기 ‘황금 안마’ 24시” “그것 말고 다른 것?” “원조 족발” 그런 식으로 이어지다가 무슨 병원 이름을 대고서야 통화가 끝났다. 상호와 간판은 그 도시의 얼굴이고 표정이며 지역의 문화수준을 가늠하는 코드이다. 간판이 문화코드가 되어가는 과정에는 그 지역의 역사성과 결부되어 있다. 간판은 도시 전체의 사회문화적 인식을 반영하므로 자연스레 그 도시의 표정이 깃들고 품격이 결정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도시의 인상을 결정하는 주된 시각적 대상이기 때문에 단순한 광고물이 아니라 도시의 문화를 대변하고 상징한다. 시에 나열된 간판만으로도 당시 젊은이들의 문화의식과 소비행태를 알 수 있으며, 얼마나 외래문화에 찌들었는지도 짐작하게 된다. 오로지 상업적 메시지 전달만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에 이쯤 되면 간판공해로 몸살을 앓는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한국은 간판 공화국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간판 천국이다. 간판은 주목을 받기 위한 투쟁의 차원에서 벌어지는 포장 심리이며, 산업사회의 압도적인 충동 양식이다.지금은 간판도 공공재라는 인식이 확산되어 예전에 비해 많이 자제되고 세련되어졌으나 전체적으로는 크게 변하지 않은 듯하다. 각 지자체들이 조화롭지 않은 무질서하고 혼란스런 간판은 도시의 품격을 떨어뜨린다는 사실도 잘 인지하고 있다. 좋은 디자인과 품격을 갖춘 간판만으로도 도시의 아이덴티티가 형성될 것이다. 가로 경관을 아름답고 개성 있게 가꾸기 위한 시민공감대가 형성될 경우 주민들은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삶터에 대한 자긍심과 애정을 갖게 되고 더불어 삶의 질도 높아지리라.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자매의 고민

자매의 고민이동은리즈성형외과 원장병원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보면, 혼자보다는 가족이 함께 찾아오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여성 환자의 경우 모녀 또는 자매끼리 병원을 방문하는 경우가 있다.아무래도 혼자 결정하기보다는 둘, 혹은 셋이서 함께 결정하는 편이 서로 조언을 해 줄 수 있고 보다 객관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후덥지근한 어느날 오후, 중년의 자매가 찾아왔다. 처음 보는 순간, 이들이 어떻게 나를 찾아왔는지 알아볼 수 있었다.자매의 얼굴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유달리 길어 보였다. 코 아래 인중의 길이가 길게 늘어져서 그런 느낌이었는데, 그 모습마저 자매가 비슷했으니 누가 보아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길게 늘어진 코 밑 인중, 양쪽 입술도 아래로 축 처져서 얼굴이 길어 보이기도 했지만, 우울한 인상에 나이도 더 들어보였다.같은 부모 아래에서 자라난 자매 모두 이러한 얼굴 모습 때문에 어려서부터 놀림도 받고 그것 때문에 고민도 많이 했다고 한다. 나이가 들어서도 늘 마음에 걸려 있었다고 했다.자매의 상태를 보고 몇 가지 검사를 함께 진행했다. 인중의 길이가 보통 사람보다 얼마나 긴 것인지, 인중의 모습이 어떻게 생긴 것인지, 혹시 좌우가 다른 짝짝이가 아닌지, 어떻게, 얼마나 줄여 주어야 현재의 얼굴에 가장 적당한 것이 될지를 두고서다.수술에 대한 중요한 사항들을 설명해 주고 수술에 대한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수술을 결정했다.두 사람 모두 특별히 건강상 문제는 없어서 수술은 문제없이 진행되었다. 얼굴의 비례와 균형에 맞추어 가장 적당한 길이로 코 밑 인중의 길이를 줄이고 윗입술을 당겨 올려 주었다.수술상처는 최대한 꼼꼼하게 봉합해서 겉으로 보아서는 거의 티가 나지 않을 정도까지 만들어주었다. 큰 기대를 하고 온 만큼, 그들 자매의 바람에 충분히 보답하기 위해 노력을 한 셈이다.자매 중 동생은 인중의 길이만 줄여주는 것으로 끝이 났지만, 몇 년 전 수술했던 코에 문제가 생긴 언니는 코 수술도 함께 했다.인중의 길이도 줄어들었지만, 코도 오뚝하게 세워준 셈이니, 인상이 완전히 바뀐 셈이다.실밥을 뽑고 나서 어느 정도 부기가 가라앉은 다음, 자매는 환한 얼굴로 병원을 찾아왔다.수술하기 전의 사진과 비교해보니 수술 전보다 많이 젊어 보이는 인상이다.주위로부터 몰라보게 젊어지고 밝아졌다는 말을 듣고서 새삼 작은 변화가 얼굴 전체에 주는 영향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코 수술을 함께 한 언니는 이제 새로운 얼굴의 모습이 자신감을 주는 것 같아서 생활에 활력이 생기는 것 같아서 좋다는 것이다.처음에는 이런 별난 수술을 왜 하는지 못마땅해 했던 가족들도 요즘은 전보다 더 밝은 모습으로 자주 웃는 것을 보면서 가족 간에도 분위기가 좋아졌다고 좋아한다는 것이다.자연스러워지기까지 시간이 조금 더 걸리겠지만,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고, 그럴수록 더 좋아질 것이니 이제 행복해질 일만 남았다고 말해 주었다.수술을 하고 환자들의 웃는 낯을 보고 있으면, 사람에게 얼굴은 참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첫 인상을 갖게 만드는 얼굴은 잘 생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는 조화와 균형이 더 중요하다.이러한 균형이 조금만 어긋나도 전체의 인상이 자연스럽지 못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어떤 이유에서 그런 것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서 여기저기 물어서 이런 저런 수술을 하곤 하는데, 그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밸런스가 더 어색해져서 오히려 더 못난 얼굴이 되고 마는 것 같아서 안타까운 일이 많다.사람들의 얼굴에서 그런 부조화를 세심하게 찾아서 교정해 줌으로써 그들의 자존감을 올려줄 수 있게 해 줄 수 있다면, 성형외과 의사들의 우리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조금 더 늘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장마도 어느덧 지나가고 뜨겁게 이글거리는 ‘대프리카’의 여름이 찾아왔다. 시원한 차림으로 거리를 걸어 다니는 사람들 속에서 조화와 균형이 잡힌 자신감 넘치는 외모의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늘어나서 더위를 식혀주는 한 줄기 소나기처럼 대구의 인상을 조금 더 시원하게 만들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