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꾼’이 만들어 내는 세상이 그립다

김시욱에녹 원장출근을 앞두고 면도를 하다보면 상처 입기가 일쑤다. 거울에 비친 얼굴을 바라보며 이번엔 좀 나아지겠지 라는 생각으로 조심해 보지만 결과는 다르지 않다. 면도기를 여러 차례 바꿔 보지만 그것마저도 마땅한 대안은 아닌 듯하다. 핏빛으로 얼룩진 얼굴을 닦아 내다 보면 이유모를 짜증이 일어난다. 그럴 때마다 사라져 가는 이발소 주인의 면도 솜씨가 그립다. 날 선 폭 넓은 면도칼로 단번에 해결하는 깔끔한 솜씨는 전문가만이 누리는 여유다. 손님의 불안감을 단번에 신뢰와 편안함으로 바꿔버리는 솜씨는 ‘꾼’임을 증명했다.코로나19 여파로 불안이 끊이지 않은 일상이다. 자고 일어나면 확진자의 통계치를 확인하는 일이 습관이 되다보니 초중고 전 학년이 등교하는 요즘은 확진자 제로라는 보도가 간절한 소망이기도 하다. 한편에선 위안부 피해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과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비리 의혹이 언론과 SNS를 가득 채우고 있다. 진실게임이 어느새 진보와 보수, 그리고 반일과 친일 프레임으로 넘어가면서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되고 있다. 각 진영의 아전인수식 확증편향은 사생결단으로 치닫는 듯하다.21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원구성 협상을 앞둔 여의도의 모습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상임위원장 18석을 배분하는 문제를 두고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의 설전은 룰이 무너진 듯하다. 더불어민주당은 절대 과반을 만들어 준 국민의 명령이며 국정주도권을 위임한 것이라며 상임위 18석 전부를 가져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반해 미래통합당은 의석수에 비례한 11:7의 배분이 국회 원구성의 관행이며 여당이 무조건적인 행정부의 도우미로 나서는 것은 삼권분립에 위배된다며 반박하고 있다. 룰이 무너진 말싸움은 초등학교 시절의 운동회 기마전을 연상케 한다. 기수의 모자만 벗겨도 이기는 게임임에도 상대방을 무너뜨리고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게 해야만 하는 유치한 승부욕이 떠오른다.고 노무현 대통령의 초등학교 운동회 연설인 ‘인생은 항상 겨루지만’이 더 소중해 보이는 것은 이러한 까닭이다. 이기고 지는데 집착하지 말고 규칙을 지켜서 열심히 겨루라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한번 겨루기해서 진 사람이 다음 겨루기에서 이길 수 있는 사람이 훌륭하다’란 말은 깊은 울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정치 ‘꾼’들이 그리운 것은 새삼스런 일이 아니지 싶다. 흔히 ‘꾼’의 사전적 의미를 찾자면 직업적인 일이나 전문적인 행위를 나타내는 말로 그러한 일이나 행위를 전문적으로 혹은 습관적으로 하는 사람을 나타낸다고 한다. 물론 한때는 부정적 의미에 더하여 비난받는 사람들에게 많이 쓰이곤 했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 속에 그 언어적 의미는 전문가를 지칭하는 말로 변해 오면서 프로페셔널과 다름이 아니다. 엄연히 직업란에 정치인이라고 쓰는 현실에서 정치 ‘꾼’이 더없이 정겹게 들려야 하는 이유이며 지향해야 할 방향인지도 모른다. 시류에 영합하며 진영 논리를 부추기는 삼류 정치인이 아니라 살아있는 정치의 본성을 이해하며 협치를 이끌어 가는 정치 ‘꾼’이 필요한 것이다.최근 낙선한 모 국회의원을 자타공인 정치 9단으로 부르는 모양새다. 임기가 만료되지 않은 시점임에도 여타 많은 방송사에서 정치 평론가로 초청경쟁에 들어갔다는 말이 들린다. 한국 정치사에 정치 9단으로 불린 인물은 고 김대중 대통령과 김영삼 대통령, 그리고 김종필 국무총리를 손꼽을 수 있다. 공과를 구분할 수도 있겠으나 분명 정치가 가지는 본질을 외면하지 않고 때로는 온몸으로 저항하면서도 국익과 국민을 우선시하며 협치를 이끌어 낸 분들임은 분명하다. ‘꾼’의 면모를 갖춘 정치인들이라고 할 수 있다.최근 정치권과 우리 일상에서 ‘정의를 내세운 곳에는 정의가 없고 민주를 내세운 곳에는 민주가 없다’는 말이 희화화 되고 있다. 인간이 추구하는 절대 가치인 정의와 진리 그리고 민주주의의 목표인 민주가 상실된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음에 빗댄 말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도 여야를 막론하고 우리 정치권의 책임이다. 국민을 위한 정치라는 원칙에서 벗어나 진보와 보수라는 단일 프레임으로 정당정치의 폐단을 답습해 온 탓임이 분명하다. 검증되지 않은 지역 및 비례후보를 영입하고 비리와 도덕성이 노출되었음에도 안고 가는 몽니와 아집은 부끄럽고 유치할 뿐이다. 편안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의도 정치는 언제 올 지 궁금하다.

코로나19 재확산, 방심을 경계한다

27일 국내에서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40명이 나왔다. 대구에서는 2차 등교한 첫날 고3 학생이 감염되는 등 3명(1명은 해외유입)이 발생했다. 나머지는 모두 수도권에서 나왔다. 27일은 대구에서 코로나19 첫 확진자 발생한지 꼭 100일 째 되는 날이다. 안정권에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재확산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게다가 이젠 장기화를 걱정해야 하는 마당이다. 일상으로 돌아가기가 쉽지 않다.신규 확진자가 40명대를 기록한 것은 지난달 8일(53명) 이후 49일 만이라고 한다. 이태원 클럽발 코로나19가 전국의 학원, 노래방, PC방, 주점, 음식점 등 업종을 불문하고 전방위 확산되고 있다. 그동안 방역 당국의 노력과 국민들의 희생이 수포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다.27일부터 고등학교 2학년 이하 초·중·고교생 및 유치원생의 등교수업과 등원이 시작됐다. 학교 감염과 방역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학부형들마저 근심어린 표정으로 아이들의 첫 등교를 지켜보았다. 이런 판국에 학교에서의 확진자 발생은 학생과 학부모의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했을 것이다.고3 확진자가 나온 학교는 27일부터 등교를 중지하고 원격 수업으로 전환했다. 확진자가 하교 후 친구를 만났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인근 5개 고교도 등교를 중지했다. 교육당국이 발 빠른 조치를 했지만 학생들의 추가 감염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지역에도 코로나19가 4개월째 이어지면서 곳곳에서 피로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모두들 참을만큼 참았다. 시내 유흥가가 다시 활기를 찾고 식당가 등도 끊어졌던 고객들이 하나 둘 되돌아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문제는 방역 당국이 그만큼 강조한 마스크 쓰기와 사회적 거리두기가 허물어지고 있다는 점이다.버스나 지하철 등 대중교통 이용 시 마스크 의무화(대구는 3주째 시행, 전국 26일부터 시행)에도 불구, 극소수이긴 하지만 지키지 않는 이들이 있다. 나 하나쯤은 괜찮겠지 하는 방심이 코로나19 상황을 통해 몇 차례 경험했는데도 이를 잊거나 무시하는 경향이다. 우리는 그동안 방심이 초래한 대형 사고를 수도 없이 목격했는데도 무감각하다.나와 가족의 안전을 위해서도 마스크 쓰기 등 생활 방역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그것만이 코로나19에서 벗어나고 안전한 사회를 담보할 수 있는 길이다. 방심은 금물이다.대구·경북은 지난 100일간 힘겨운 고통을 겪었다. 감염병도 이겨냈다. 그러나 코로나19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코로나19의 종식을 위해 대구·경북 지역민 모두가 성숙한 시민의식을 발휘해야 한다. 그래야 빠른 시일 내 일상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불붙은 재정건전성 논란을 보면서

이부형현대경제연구원 이사대우지난 25일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의 주요 내용을 둘러싸고 말들이 많다. 행정부는 전시재정편성이라는 각오로 신속히 3차 추경안을 편성하고, 국회는 오는 6월까지 처리해 주길 바란다는 대통령의 주문은 이미 시장에서 예상했던 바로 큰 이견이 없는 분위기다. 다만 이 과정에서 증세없이 추경을 포함한 확장적 재정정책을 견지함으로써 중장기적으로 경제 규모를 키워 세입 기반을 확충하고 재정건전성을 회복하면 된다는 배경 설명이 잠시 주춤하던 재정건전성 논란에 기름을 붓는 결과를 초래하고야 말았다.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제적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국채를 발행하더라도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다는 정부와 여당의 입장과 필요한 재원 조달 방안은 둘째 치더라도 빠르게 악화되는 재정건전성과 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또 다른 충격에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묻는 시장의 입장이 정면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양측 모두 나름의 정당성이 있는 것 같지만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도대체 무엇을 위한 논쟁인가 싶기도 해서 혼란스럽기 그지없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 같다.우리 모두는 코로나19 사태가 미증유의 경제적 충격을 몰고 올 것이라는 것에 동의하고 실제로도 그런 현상들을 경험하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부채에 시달리는 가계와 기업들이 생계와 경영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고 좋은 일자리든 아니든 일자리 총량이 점점 줄어들고 있을 뿐 아니라 새로운 일자리 창출에 대한 기대도 크게 약화된 상황이다. 지금은 어떻게 하든 실업을 막아내는 것이 최우선 과제임에 틀림없고 재정지출이든 뭐든 당면 과제 해결을 위한 정책당국의 노력 자체가 저평가 되어서는 안된다. 이는 논란의 핵심 사안도 아니며, 또 그렇게 되어서도 안된다.국가부채 증가 그 자체에 대한 논란도 마찬가지다. 지금 당장 강력한 세출구조조정으로 필요한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면 국채를 발행할 필요도 없고 국가부채도 더 이상 증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추경은 논외로 하더라도 경기 악화로 재정수지 적자가 예상되는 지금은 기존 예산안을 줄이지 않는 한 국가부채 증가를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두가 좀 더 적극적으로 경기 방어를 해야 한다고 하면서 국가부채 증가는 무슨 수를 쓰든 막아야 한다는 논리는 그 자체로 모순이다.그렇다고 재정건전성에 대한 논의가 아주 불필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많은 전문가들의 우려처럼 기축통화국이 아니어서 단기간 내 국가채무가 증가하고 통화량이 급팽창하게 되면 국가 신용도가 떨어지면서 경제위기에 빠질 수도 있다.그래서 지금과 같은 위기 시에는 주어진 예산제약을 넘어선 재정편성도 당연하다는 이유로 예산통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자원의 비효율성을 야기함으로써 재정건전성과 국가 경제를 훼손하는 이른바 연성예산제약(soft budget constraint) 현상의 예방을 위한 통제장치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위기를 핑계로 공기업을 포함해 국가재정에 기대어 연명하고자 하는 좀비기업들에게 계속해서 당근을 제공할 수는 없는 일이지 않은가.또 확장적 재정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근거 마련을 위해서라도 재정지출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나타내는 재정의 승수효과(multiplier effect)를 지출 부문별로 따져보고, 나타날 부작용에 대해서도 미리 예측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특히 3차 추경을 앞두고 있는 지금은 세출구조조정에 관한 논의와 재정지출 확대 우선 순위와 규모를 정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다.다만 지금 당장은 위기극복에 집중해야 할 시기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이제 정책당국의 단기적인 확장적 재정 방침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인정하자는 것이다. 그래야 지난 2차례의 추경효과와 3차 추경의 디테일에 대한 논의도 심도있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세출구조조정이나 연성예산제약 현상 예방장치 도입 등과 같이 과도한 재정건전성 훼손을 막을 수 있는 보완장치도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산장

산장 기 드 모파상~혼자는 외로워서 미친다~…산봉우리들에 둘러싸인 알프스 산장이 그 배경이다. 그 산장은 여섯 달 동안만 문을 연다. 눈으로 길이 막히기 전에 산장 가족들은 마을로 내려간다. 산 안내 노인 가스파르와 산 안내 청년 울리히, 그리고 커다란 개 한 마리가 산장에 남아 집을 지킨다. 산장의 겨우살이는 무료함과의 싸움이다. 산장의 겨울은 단순하고 무료하다. 늙은 가스파르는 독수리와 새들을 사냥하며 시간을 보내고, 젊은 울리히는 골짜기까지 건너가서 멀리서나마 주인집 딸을 생각하며 마을을 하염없이 내려다보곤 한다. 밤에는 카드놀이, 주사위놀이, 도미노 등을 한다. 재미를 돋우려고 사소한 물건을 걸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부터 눈이 내렸다. 눈은 나흘 동안 계속 내렸다. 그때부터 그들은 죄수처럼 갇혔다. 이따금 노인은 총을 들고 영양을 찾아 나섰다. 그날도 노인은 사냥을 하러 집을 나갔다. 영하 18도였다. 오후 네 시쯤 돌아올 예정이었으나 날이 저물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울리히는 개와 함께 노인을 찾아 나섰다. 며칠 동안 눈 속을 찾아 헤맸지만 노인은 보이지 않았다. 죽을 고생을 하고 산장으로 되돌아왔다. 피로가 누적되었던 울리히는 오랫동안 잠을 잤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서야 잠을 깼다. 아무도 없었다. 노인의 영혼이 찾아와 부른 소리라 생각했다. 그날 이후, 울리히는 밤마다 환청에 시달렸다. 문을 닫아걸고 밖에다 대고 소리쳤다. 개도 주인의 목소리가 향하는 보이지 않는 적을 향해 미친 듯이 짖어댔다. 울리히는 공포를 잊기 위해 매일 술을 마셨다. 보관하던 술도 바닥났다. 개도 주인을 따라 미쳐갔다. 문을 발톱으로 긁고 이빨로 갉아댔다. 날이 갈수록 공포감은 더욱더 증폭되었다. 마침내 울리히는 막다른 골목에 몰린 겁쟁이처럼 문을 열어젖혔다. 자신을 부르는 이가 누군지 알아보고 그를 강제로 몰아낼 작정이었다. 그때, 개가 밖으로 뛰어나갔다. 울리히는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문을 닫고 빗장을 질렀다. 울리히는 밖에서 누군가 울부짖으며 벽을 긁고 있는 걸 알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주인은 집 안에서 공포에 휩싸여 결사적으로 방어벽을 쳤다. 개는 집 밖에서 추위와 굶주림을 벗어나고자 벽을 긁었다. 밖에 있는 개는 음산한 소리를 질러댔고, 울리히는 그와 유사한 신음소리로 응대했다. 벽을 사이에 둔 결사항전이었다. 마침내, 겨울이 끝나고 산장 가족들이 돌아왔다. 문 밖에는 개가 독수리에게 몸을 뜯긴 채 빼만 남아 있었다. 문을 부수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쓰러진 찬장 뒤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머리카락은 어깨를 덮고 있었고, 수염은 가슴까지 내려와 있었다. 울리히였다. 의사는 그가 미쳤다고 진단했다. 산장 주인의 딸은 그 해 여름에 우울증으로 고생했다. 사람들은 산의 찬 기운이 그 원인이라고 말했다.… 알프스 산장을 지키는 안내인이 겨울을 홀로 나는 이야기다. 둘이 있을 땐 외로움과 무서움을 모른다. 혼자가 되는 순간 두려움이 엄습한다. 어디를 보든 백일색이다. 살아 있는 것이라곤 보이지 않는다. 고요와 적막이 골짜기에 가득 차 있을 뿐이다. 외로움에 집중하면 고요한 적막에서도 무서움을 찾아낸다. 죽은 영혼이 찾아오지 않을까 해서 경계심을 가질수록 자질구레한 자연의 소리마저 두려움의 대상이다. 보이지 않는 어둠이 공포로 다가온다. 술로 공포를 잊으려 하지만 심신만 피폐해진다. 인간은 사람 사이에 있을 때 안정감과 행복감을 느낀다. 혼자 있을 땐, 혼자라는 사실만으로도 공포를 느낀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오철환(문인)

인간에 대한 예의

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지난 월요일(5월 25일) 2차 기자회견 중에 “배고프다고 밥을 사달라고 했는데, 돈이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라고 한 말을 두고, 최민희 전 국회의원은 “시민단체는 모금한 돈으로 개인이 밥을 먹자 하면 지출할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공금을 개인 쌈짓돈처럼 써서는 안 된다. 원론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그런데도 뒷맛이 씁쓸한 이유는 무엇일까? 말이나 글에서 전후 맥락을 제대로 이해하면 많은 문제들을 보다 쉽게, 잘, 때론 아름답게 해결할 수 있다. 그리스인들은 어떤 문제와 마주할 때 다음 3가지 질문을 하며 가치 판단을 했다고 한다. 첫째, ‘나에게 이익이 되는가, 손해가 되는가?’라는 실용적, 경제적 판단. 둘째, ‘옳은가, 그른가?’라는 윤리적, 도덕적 판단. 셋째, ‘아름다운가, 추한가?’라는 미학적 판단. 이 세 가지는 단순하지만 참으로 놀라운 질문이다.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김헌 교수의 저서 ‘천년의 수업’에 나오는 내용이다. 개인이 한평생 살면서 부딪히는 거의 모든 일에는 일차적으로 실용적, 윤리적 판단이 개입한다. 내가 어떤 일을 해야 할 때, 누가 업무를 지시할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이 일이 내게 이익이 되는가와 옳은가?’를 묻고 판단한다. 많은 사람들이 조직이나 직장, 가족에게 이익을 주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이유를 대며 옳지 않은 일을 한다.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은 엄청난 이익을 주지만 옳지 않기 때문에 단호하게 거절한다. 개발독재 고도성장기에는 수많은 기업과 개인이 옳지는 않아도 조직과 개인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때는 크게 양심의 가책도 받지 않았다. 조직을 위해 한 몸 바치는 것을 고귀한 희생으로 간주하기도 했다. 그 시절에는 기업뿐만 아니라 시민단체나 민주화 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목표 달성과 대의를 위해 개인은 희생되어도 괜찮고, 크고 작은 불법을 저질러도 된다고 생각했다. 이제 세상은 많이 달라졌다. 옳지 않은 일은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된다. 세계의 모습은 홀로그램이다. 모든 분야에서 부분은 더욱더 전체의 움직임에 의존하게 되고, 전체 역시 부분 하나하나의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홀로그램의 점 하나하나가 그것이 일부를 이루는 전체에 대한 정보를 포함하고 있는 것처럼, 지금은 개체 하나하나에 전체의 정보가 녹아들어 오는 시대다. 권위적인 시대의 의사소통은 수평적이라기보다는 수직적이었다. 이제 지배적 의사소통 형식은 일방향에서 쌍방향으로 전환되었다. 오늘의 세계는 개인의 가치와 자아실현을 중심에 두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는 시대다. 어떤 사회적 단위나 시스템도 자기실현을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개인의 지적 잠재력과 협력을 활용하지 못하면 효율이나 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 사회운동에서도 집단 정체성만 강조하며 입 닫고 조직에 맹목적으로 충성하라고 하던 시대는 막을 내리고 있다. 사회운동 참여과정이 개인적 정체성에 부합하고 자아실현을 도울 때만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그 운동에 참여한다. 개인 중심의 규범은 부분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맞물려 있다. 과거에는 부분은 전체의 기능적 부속품으로 간주되었지만, 이제는 부분의 합이 전체가 아니라, 전체가 부분 속에서 실현되는 시대다. 윤미향 사태는 연민과 사랑의 마음이 없는 오만과 독선, 독단과 위선이 낳은 결과다. 정대협 같은 시민단체는 이익이라는 경제적, 실리적 관점보다는 도덕적, 윤리적 판단과 가치를 더 중시해야 한다. 오욕과 굴욕의 역사, 그 희생자들에 대한 배려가 그 무엇보다 우선 되어야 한다. ‘배고프니 밥 사달라는 말’에 ‘돈을 함부로 쓸 수 없다’는 말로 반격하는 것은 비겁하다. 전후 맥락을 살펴보면 할머니가 한 말은 ‘모금한 돈을 할머니들을 위해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뜻이다. 말꼬리를 물고 늘어지기보다는 먼저 상처 받은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것이 인간에 대한 예의다. 궁색한 변명과 패거리의 손익을 우선시하는 몰염치한 진영 싸움이 정말 한심하고 추하다. 이제 시민단체들은 옳은 것을 넘어, 아름답다는 평을 듣는 단계로 발전해야 한다. ‘아름답지는 못해도, 최소한 추한 모습은 보이지 말라.’ 하늘이 두렵지 않은가?

‘스쿨존 안전’ 첫 걸음은 불법 주정차 근절

5, 6월은 어린이 교통사고가 연중 가장 많은 계절이다. 올해는 초등학교와 유치원의 등교 개학이 겹쳐 걱정이 된다. 코로나19 사태로 늦춰진 유치원생, 초교 1·2학년, 중학교 3학년, 고교 2학년의 등교가 27일부터 시작된다. 나머지 학년도 6월8일까지 순차적으로 등교하게 된다.스쿨존(어린이 보호구역) 교통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지난 3월25일 이른바 ‘민식이법’(도로교통법과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개정 법률)이 시행에 들어갔다.스쿨존에서 규정속도 시속 30㎞를 넘거나 운전자의 부주의로 사고를 내면 가중 처벌된다. 피해 어린이가 사망하면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다. 또 불법 주정차를 할 경우 일반 도로에 비해 2배가 넘는 과태료를 물게 된다. 보호구역 내 횡단보도 교통신호등 설치 등도 의무화 됐다.최근 3년(2017~2019년)간 보행 교통사고로 전국에서 7천894명(사망 42명, 부상 7천852명)의 초교생 사상자가 발생했다. 사상자 중에는 처음 학교에 가는 1학년이 전체의 22.3%인 1천763명에 이르렀다. 3학년 이하 저학년은 62.4%였다.스쿨존 안전의 주된 위해 요인은 불법 주정차와 과속이다. 그 중에서도 운전자들이 무심코 저지르기 쉬운 것이 불법 주정차다. 잠깐 볼일 보고 돌아오는데 별일 있겠느냐고 쉽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교통전문가들은 스쿨존 안전의 가장 큰 위해 요인이 불법주정차라고 강조한다.좁은 길에서 불법 주정차된 사이로 어린이가 갑자기 튀어나오면 속도가 조금만 빨라도 사고를 막을 방법이 없다. 특히 키가 작은 저학년 어린이들은 좁은 도로 횡단 시 주차 차량 때문에 주행하는 차량을 식별하기 어렵다. 운전자도 마찬가지다. 조금만 방심하면 차량 사이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어린이를 놓치게 된다.문제는 우리의 의식이다. 민식이법 시행에도 불구하고 스쿨존의 여건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초교 주변 도로에는 여전히 불법 주정차 차량이 줄지어 있다.경찰은 계도와 단속을 병행하고 있지만 인력의 한계가 있다고 하소연한다. 개학 후에는 초교 정문 쪽 통학로 주변 단속에 집중할 방침이라고 한다. 스쿨존 주변 무인 주정차 단속장비 확충과 함께 과속방지턱, 미끄럼 방지 시설, 안내표지판 등 도로안전 구조물 설치도 늘려야 한다.어린이는 ‘움직이는 빨간 신호등’이다. 어린이가 보이면 무조건 속도를 늦추거나 멈춰야 한다. 어린이가 아니더라도 도로에서는 보행자가 우선이다. 기다리고 양보하는 운전습관이 사고를 예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젠 얼치기를 걸러낼 때다

박운석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고려인삼 중에 ‘얼치기’라는 삼이 있다. 전통 심마니들 사이에서 구전되어 오는 말이다. 임금에게 진상한 산삼 중에 약이 되는 삼은 진으로 불렀고 아무리 오래된 삼이라도 약이 되지 못하는 삼은 얼치기라 했다.이처럼 얼치기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간치기 혹은 탐탁치 않은 사람을 말한다. 어느 한 방면에서 기술이 부족하거나 서투른 사람을 이르기도 한다. 때론 풋내기, 반풍수라는 말과도 비슷하다. 반풍수는 얼치기 풍수라는 뜻이다. 됨됨이가 똑똑하지 못하고 모자라는 ‘얼간이’, 겨울에 논밭을 대충 갈아엎어서 심는 푸성귀인 ‘얼갈이’도 비슷한 말이다.전통 심마니들은 얼치기를 ‘잡마니’라고 하기도 한다. 요즘 얼치기와 잡마니가 판을 치고 있다. 선무당 사람 잡고 반풍수 집안 망친다고 했다. 모두 일을 그르치는 얼치기, 잡마니를 말한다.이런 반풍수와 선무당, 얼치기, 잡마니를 걸러내는 것이 왜 중요한지는 K-방역에서 확연하게 드러났다. 한국이 코로나19 방역에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온 것은 얼치기가 아닌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했기 때문이다. K-방역이 세계의 모범이 된 가장 큰 요인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정치권력의 간섭을 원천 차단한 게 코로나19 방역 성공의 원동력이었다. 국민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낯선 위기에 대처하는 능력은 결국 얼치기 정치권력이 아닌 전문가가 나서야 한다는 것을 증명했다.이때까지는 어땠나. 전문성은 둘째였다. 비전문가들이 나서서 반풍수 역할을 해왔다. 긴급재난지원금 효과로 소비심리가 4개월 만에 개선되었다는 긍정적인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하지만 총선 직전 전국민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안을 두고 경제부처 관료들이 왜 여권의 전국민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에 반대했는지는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금 조금 나아지고 있는 소비심리 만으로 전국민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이 성공이라고 자평하기엔 이르다. 앞으로 돈을 쏟아부어야 할 곳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쓸 돈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게 뻔한 데 거둬들일 수 있는 세금은 줄어든다는 점이다.그런데도 ‘곳간에 쌓아두면 썩어버리기 마련’이라는 국가재정에 관한 인식을 가진 정치인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결국 곳간을 채우는 것도 세금이고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주머니에서 나와야 할 돈 아닌가.코로나19 사태와 총선이 이어지면서 쑥 들어가 버린 소득주도성장만 해도 그렇다. 거쳐 갔거나 재임 중인 청와대 정책실장, 경제수석에 의해 나라 경제가 좌우된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정도로 이들의 힘은 막강하다. 이들이 지속해온 정책인 소득주도성장도 결국은 돈을 뿌리는 경제정책이다. 하지만 청년취업, 노인 일자리 등 그렇게 많은 돈을 뿌리고도 제대로 작동된 게 어딨나. 코로나19로 묻혔지만 경제는 파탄 직전 아니었던가.그래서 코로나19 대처방식에서 배울 점이 많다. 정치권력이라는 외부의 입김보다 전문가 중심으로 진단을 하고 대책을 세우고 해결책을 실행한 결과가 방역 성공으로 나타났다. 이때까지와 달리 기본을 챙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이번 코로나19 방역에도 얼치기가 나섰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선무당, 반풍수들이 아닌 방역전문가들이 제자리를 찾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동안 우리사회 모든 분야에서 전문성은 밀려나고 비전문가들, 특히 얼치기 정치권력이 나서 그르친 경우가 얼마나 많았던가.산발적으로 지역감염이 일어나고 있기는 하지만 코로나19가 진정기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위기는 이제부터일 것이다. 이전부터 보여 온 불경기에다 코로나19 불황이 또 얼마나 오래 갈지 안갯속이기 때문이다.해답은 전문가들 손에 달려있다. 그래서 K-방역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코로나19 이후 경제위기 대처는 전문가들이 나서야 한다. 정치권력의 필요에 따라 대책이 수립되고 여기에 휘둘리게 된다면 위기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사회적 거리두기와 오랫동안 이어진 경제활동 중단으로 경제 뿐 아니라 사회전반이 허약해진 상태다. 이제 정확한 진단과 처방, 수술은 전문가가 나서야 한다. 반풍수와 선무당, 얼치기, 잡마니를 걸러낼 때다.

신발이거나 아니거나

신발이거나 아니거나 박명숙 저것은 구름이라, 한 켤레 먹구름이라/ 허둥지둥 달아나다 벗겨진 시간이라/ 흐르는 만경창파에 사로잡힌 나막신이라 혼비백산 내던져진, 다시는 신지 못할/ 문수도 잴 수 없는 헌신짝 같은 섬이라/ 누구도 닿을 수 없는 한 켤레 먹구름이라.......................................................................................................................박명숙은 대구 출생으로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은빛 소나기』『어머니와 어머니가』『그늘의 문장』과 시조선집으로 『찔레꽃 수제비』등이 있다. 1990년대 전반에 등장한 탁월한 시인들로 박권숙, 이종문, 이달균 등을 들 때 박명숙을 빼놓을 수 없다. 그만큼 그의 시 세계는 개성적이기 때문이다.‘신발이거나 아니거나’는 독자에게 친절한 시는 아니다. 지나치게 자상한 시는 금방 식상할 수 있다. 제목부터가 심상치가 않다. 신발이든지 아니든지 간에 그 대상을 두고 시의 화자는 대뜸 저것은 구름이라 한 켤레 먹구름이라고 진술한다. 신발이 돌연 구름이 되고, 그것도 한 켤레 먹구름이 된다. 그런데 그것은 허둥지둥 달아나다 벗겨진 시간이기도 하다. 또 다시 훌쩍 공간 이동을 하여 흐르는 만경창파에 사로잡힌 나막신이 된다. 연이어서 혼비백산 내던져진, 다시는 신지 못할 문수도 잴 수 없는 헌신짝 같은 섬이기도 하다. 그리고 끝으로 결론짓는다. 누구도 닿을 수 없는 한 켤레 먹구름이라고. 제목부터 애매모호한 이미지를 도입한 이후 시종일관 확장은유를 원용하여 해득이 불가능한 상상력의 육화, 낯선 이미지의 배치를 통해 새로운 시의 한 경지를 열어 보이고 있다. 한 켤레 먹구름, 벗겨진 시간, 헌신짝 같은 섬 등과 같은 개성적인 구절들이 서로 맞물려서 미묘한 정서적 파장을 일으키면서 심금을 울리는 점에 특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로 ‘신발이거나 아니거나’는 신들려서 쓴 듯하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이 시의 주제나 메시지가 무얼까 하고 굳이 매달릴 필요가 없을 것이다. 나직이 읊조리면서 시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리라 생각된다.그의 다른 시편으로 ‘어린이날’이 있다. 뜻밖의 반전이 있는 작품이다. 말이며 눈빛이며 주고받기도 무심한 날 텅 빈 동네 놀이터에서 시소 타는 노부부에게 어린이날은 그다지 외로울 것도 슬플 것도 없는 날이다. 기운이 철철 넘치거나 생기발랄할 수 없는 연조이기에 노부부 사이에 뜨거운 정담이 오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두 사람이 비교적 건강한 가운데 함께 노년을 보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소소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이들은 문짝 나간 버스 같은 허술한 가슴으로 젊은 날 추억들이 무임승차를 하는 날에 그 추억들을 곱씹으면서 바람에 눈을 헹구며 시소를 탄다. 이런 어린이날을 두고 시의 화자는 노인의 날이라고 말하고 있다. 참 쓸쓸하고 서글픈 정경이다.그의 또 다른 작품에 ‘드므’가 있다. 불가해한 일면을 가진 시다. 두려웠다, 거기도 내 얼굴이 남아 있었다, 라는 첫머리가 섬뜩하다. 내 얼굴이 거기에도 남아 있었다는 사실은 시의 화자에게는 적잖은 두려움이라는 것이다. 그 얼굴은 천길 물속을 타고 오른 일그러진 두 눈빛이라고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다. 그런데 석양이 피를 길어내며 그 눈빛을 끄고 있었기에 달아날 수가 없었고, 불길에 휩싸인 채로 물길에 감긴 그대로 독 안에 든 시간이었다, 라고 진술한다. 끝으로‘드므’는 한 역할을 한다. 즉 얼굴에 기록된 죄들을 드므가 씻고 있었기 때문이다. ‘드므’는 많은 내용을 함유하고 있지만, 상상만 할 수 있을 뿐 다 헤아리지는 못한다. 자기반성, 내적 성찰의 깊이가 특유의 시어들과 만나 새로운 미학적 세계를 창출하고 있기 때문이다.때로 고즈넉한 혼자만의 골방에서 며칠을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럴 때 불현듯 ‘신발이거나 아니거나’, ‘어린이날’, ‘드므’와 같은 비범한 시편을 얻게 되지 않을까.이정환(시조 시인)

위안부 피해 할머니는 시간이 없다

오철환객원논설위원 일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와 정의연의 갈등이 점입가경이다. 정의연의 비리는 천인공노할 일이다. 위안부 피해자를 팔아 영달을 추구했다면 그분들을 두 번 팔아먹은 행위다. 전모를 명백히 밝히고 죄 값을 치러야 한다. 위안부 피해회복의 정의와 정의연의 비리는 별개라는 시각이 전제되어야 비로소 문제의 실마리가 풀린다. 성역이라는 방어막을 걷어야 할 때다. 최근까지 불거진 의혹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모두 정의연과 리더 개인의 비리에 집중되어 있다. 정의연은 피해회복의 정의와 그 필연성을 방패삼아 버티려 한다. 의혹 해소는 커녕 이상한 언행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있다. 그것도 남의 다리를 긁는다. 기가 찬다. 갈등의 배후에 친일·반인권·반평화 세력이 있다는 전혀 엉뚱한 음모론을 내놓았다. 문제의 초점을 흐리고 의혹을 뭉개려는 의도다. 정의를 위하여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친일 세력이 자신들을 공격한다는 말이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상황에서 정의연이 그렇게 주장하는 입장을 이해할 순 있다. 그렇더라도 잘못된 조직 운영과 각종 비리를 덮고 그냥 갈 수 있다는 인식은 오산이다. 적법한 절차와 과정이 정의로운 결과를 담보한다. 백보를 양보하여 정의연에 대한 비리 폭로가 친일파의 공격이라는 점을 수용한다고 해도 달라질 일은 없다. 비리를 폭로하는 사람이 친일파든 친미파든 비리의 본질은 변함이 없다. 일본을 좋아하든, 미국을 좋아하든, 그건 개인의 자유 의지다. 일본과 일본인을 좋아한다는 사실이 일제나 식민 지배를 찬양한다는 뜻은 아니다. 흘러간 역사를 두고 미래에 태어난 사람이 역사적 사실에 매여 연연하는 것은 시대착오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지만 역사로 미래를 포박할 수는 없다. 이제 친일 프레임은 역사 속의 유물로 묻어둬야 할 때다. 이사가 불가능하다면, 일본이든 중국이든, 이웃나라와 사이좋게 지내는 게 서로 좋다. 감정이 남아있어도 큰 틀에서 전향적인 자세로 화해와 평화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정략적 목적으로 정치권이 앞장서서 이웃나라와 불화를 조장하는 일은 한심한 자해 행위다. 자국제일주의란 발톱은 숨겨둬야 제 맛이다. 자국중심주의는 힘의 우위가 그 전제다. 군사력과 경제력이 바탕이 되어야 이웃나라와 당당하게 서고 자국민의 생명과 이익을 지킬 수 있다. 부국강병에 이론이 있을 수 없다. 위안부 피해자 피해회복은 화급하다. 피해회복은 일본의 사죄와 금전적 배상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피해회복을 한꺼번에 해결하면 최선이겠지만 그게 힘들다면 단계적 접근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피해자들이 90대 고령이기 때문이다. 남은 생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도록 금전적 보상이 급선무다. 원인제공자 일본에서 돈을 충분히 받아내는 것이 원칙이겠지만 시간이 걸린다면 국가가 선 보상을 해주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국가가 힘이 없어 국민을 보호해주지 못한 책임이 크다. 국가가 힘이 없고 가난하면 여자와 애들이 개고생 하는 점은 만고의 진리다. 사적인 일로 침몰한 세월호 사건에 비하면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가책임은 보다 명확하다. 세월호 유족에게 보상한 금액의 반에 반만 해줘도 지금 위안부 피해자들에겐 큰 도움이 된다. 일본의 진심어린 사죄는 시간을 두고 끈기 있게 해결해나가야 할 장기과제다. 피해자에게 보상을 미리 대신 했다면 구상권이 발생함은 물론이다. 국가 차원에서 구상권 행사를 강력히 추진하기 곤란할 땐 시민단체의 협조가 필요하다. 시민단체는 정의의 깃발아래 뭉친 자발적 모임이기 때문에 위안부 피해자의 보상 여부나 생존 여부와 관계없이 눈치 보지 않고 위안부 운동을 이어갈 수 있다. 위안부 합의로 받은 10억 엔을 모두 피해자에게 신속히 나눠주는 한편, 민간에선 반대운동을 강력히 전개하는 등 민관 양동작전도 유용한 선택지로 남아있다. 지금도 늦지 않다. 실리적 대응이 아쉽다. 시민단체라 하더라도 투명한 회계처리와 적법한 운영은 도덕적 규범을 넘어 법적인 의무다. 항상 못마땅하게 지켜보는 타인이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들의 눈은 소금으로 작용한다. 인간은 이기적이고 탈선할 개연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감시·감독이 필요하다. 법과 규정은 지켜져야 한다. 목적이 정의롭다고 법을 무시하라는 법은 없다. 위안부 피해자 문제는 시간이 없다. 피해자들의 옹색함과 불편함을 외면하는 것은 정의를 떠나 죄악이다. 돈부터 먼저 줘야 한다. 어떻게 처리하든지 그 뒤처리는 국가 책임이다.

정의연 전모 밝혀 위안부 눈물 닦아 드려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25일 대구에서 그동안 응어리진 한을 눈물로 토로했다.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당선인이 위안부를 팔아 본인의 사욕만 채웠다고 비판했다. 정의연 관련 의혹도 상세하게 밝혔다.정의연의 비정상적인 회계 처리와 독단적 운영은 그동안 언론을 통해 속속 밝혀지고 있다. 검찰도 수사에 나섰다. 하지만 정의연 윤 이사장을 옹호하는 여권 인사들과 진보 세력이 두둔하고 있어 검찰 수사가 제대로 진행될지 걱정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이 할머니는 이날 대구 수성구 만촌동 인터불고호텔에서 연 2차 기자회견에서 윤 당선인을 겨냥해 “사리사욕을 채워서 마음대로 국회의원 비례대표로 나갔다”고 말하고 모금활동과 함께 싸잡아 비난했다.이 할머니는 또 “윤 당선인이 최근 본인을 찾아와 눈물을 왈칵 쏟았는데 이를 두고 용서했다고 하는 기사는 너무 황당하다”며 용서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그는 “이 사람은 자기 맘대로 뭐든지 하고 싶으면 하고 팽개치고 하는데, 어떻게 30년을 했는데 한마디 말도 없이 마음대로 팽개쳤다”고 정의연의 독선 운영을 고발했다.또 수요집회와 관련해 “우리 국민은 물론이고 세계 여러분들이 그 데모에 나오시는데 그분들에게도 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행동했다”며 울분을 터트렸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되사람(되놈)이 챙긴 것 아니냐”고 말해 윤 당선인이 위안부 할머니들을 내세워 사욕을 챙겼다며 흥분했다.이 할머니는 배포한 기자회견문에서 ‘30년 동지로 믿었던 이들의 행태라고는 감히 믿을 수 없는 일들이 계속 드러나고 있는 상황에서 당혹감과 배신감, 분노 등 여러 가지 감정을 느꼈다’며 기자회견 배경을 설명했다.하지만 그가 “저를 비롯한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 회복과 일본의 사죄와 배상 및 진상의 공개, 그리고 그동안 일궈온 투쟁의 성과가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듯이 정의연 운동의 본질이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운동의 성과는 정당하게 평가받아야 한다.이 할머니는 올해 93세다. 그와 남은 할머니들에게 남은 시간은 별로 없다. 피해자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무력하게 당해야 했던 이들의 아픔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후손들이 기억해야 한다.윤 당선자는 철저하게 비판받고 그 잘못에 대해서는 사법당국의 처벌을 받아야 한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한이 특정인과 특정 세력의 이용 도구가 되어서도 안 된다.

대구·경북 코로나 재확산 빨리 잡아야

대구·경북에 또다시 코로나19 먹구름이 덮쳤다. 이태원 클럽 발 확진자로 인한 감염이 4차, 5차까지 발생했다. 대구를 방문한 2차 감염자가 동전노래방과 음식점 등 지역 곳곳을 방문한 사실이 드러났다. 재확산에 대한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이에 대구시는 7월 예정인 대구치맥페스티벌을 잠정 연기했다. 2013년 축제 시작 후 처음이다. 유흥시설 집합금지 명령도 2주간 연장했다. 대중교통 마스크 행정명령 의무화도 연장했다. 방역 당국은 감염 경로 파악과 최초 확진자 및 밀접 접촉자 등에 대한 자가 격리 및 검체 검사 등 추가 확산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25일 대구와 경북에서 각각 1명씩의 지역 발생 확진자가 추가로 나왔다. 대구에서 발생한 신규 확진자는 이태원 클럽 발 4차 감염으로 추정된다. 24일 확진 판정을 받은 19세 여성 A씨는 지난 11일 대구 달서구 코인노래연습장을 다녀간 것으로 파악됐다. 이 노래방은 이태원 클럽 관련 확진자인 대학생B(19·달서구)씨와 C(19·서울 관악구)씨가 다녀간 곳이다. 경북 성주의 A씨 외할머니도 23일 확진 판정을 받았다.구미의 확산세도 심상치 않다. 25일 현재 등교 하루 만에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은 구미거주 대구농업마이스터고 3학년 D군(18)과 관련한 확진자가 엘림교회를 중심으로 목사 부부 등 모두 8명으로 늘어났다. 교회 신도 중에는 학습지 교사가 포함돼 구미시와 방역당국은 학습지 학생과 교사의 가족 등 100여 명과 중앙시장 상인 500여 명 등 600여 명을 상대로 검체 검사를 하고 있다.이들 확진자의 밀접 접촉자 조기 확인이 쉽지 않아 방역 당국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한다. 확진자의 동선을 확인, 시민들의 자발적인 검사 참여가 절실한 상황이다.지역 내 확진자 발생이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던 상황에서 이 같은 재확산 기미는 안타깝기 짝이 없다. 방역의 고삐를 더욱 죄어야 한다.대구·경북민들은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 느슨해진 마스크 쓰기를 다시 옥죄어야 한다. 다중이용시설 방문을 자제하고 거리 지키기와 손 씻기, 기침 예절을 준수해야 한다. 생활 방역이 자리 잡지 못하면 그동안의 대구·경북민의 희생과 노력이 물거품이 되고 만다. 겨우 잡은 코로나19 방역 성공을 눈 앞에 두고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당국도 지역사회 전파 차단에 배전의 노력을 쏟아야 한다. 또한 전파 경로를 모르는 확진자와 무증상 확진자에 대한 관리 감독도 강화해 추가 확산을 막도록 해야 할 것이다.

코로나19 대구의 기록

김상진수성구립용학도서관 관장코로나19 사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구에서 ‘영남권 기록문화의 본산(本山)’으로서의 기능이 자연스레 수행되고 있다. 대구는 지난 2월18일부터 신천지 대구교회를 중심으로 코로나19가 급격히 확산되면서 국내에서 가장 많은 확진자를 발생시킨 불명예를 안게 됐다. 25일 0시 현재 대구의 누적 확진자는 6천874명으로, 전국 1만1천206명의 61.3%를 차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구지역 출판사와 언론사, 각종 기관 및 단체가 앞 다퉈 대구의 코로나19 현장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기록은 역사가 되고, 역사는 미래가 된다’는 말이 있다. 기록문화의 가치를 나타낸 표현이다. 유네스코가 지난 1995년 세계기록유산사업을 시작한 이유이기도 하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사업은 세계의 기록유산이 인류 모두의 소유물이므로, 미래세대에 전수될 수 있도록 이를 보존하고 보호하기 위해 마련됐다. 기록유산은 기록을 담고 있는 정보, 또는 그 기록을 전하는 매개물을 포괄한다. 현재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우리나라 기록물은 모두 16건이다. 이는 국가 단위로 아시아 1위, 세계 4위다. 그 가운데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 기록물도 2017년 포함됐다.이 밖에도 대구가 기록문화의 중심지였던 근거는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1601년부터 대구에 자리를 잡은 경상감영에서 ‘영영장판(嶺營藏板)’을 중심으로 ‘영영본(嶺營本)’이 간행되면서 서울과 전주를 포함한 전국 3대 출판거점의 역할이 수행됐다. 조선시대 기록문화의 매개물은 책판(冊版)이 유일했던 점을 감안하면 대구가 영남권 전역에 지식과 정보를 전파한 기록문화의 본산이었던 것이다. 당시 경상감영의 관할지역을 현행 행정구역으로 살펴보면 대구·경북지역은 물론, 부산·울산·경남지역이 모두 포함된다.대구지역 출판사인 학이사는 지난 4월 코로나19 대구시민의 기록인 ‘그때에도 희망을 가졌네’에 이어, 5월 들어 대구 의료진의 기록인 ‘그곳에 희망을 심었네’를 잇따라 발간했다. 일반시민 51명과 의료진 35명이 각각 필진으로 참여한 이들 기록물은 원고료 없는 재능기부로 제작됐다. 판매 수익금은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이웃을 위한 기금으로 기탁될 예정이다. 시민들과 의료진이 대구지역 코로나19의 상황을 생생한 역사를 남기는 기록자로 기꺼이 나선 데다, 어려운 이웃을 도움으로써 공동체의 가치를 높이는 자발적인 행동이어서 더욱 의미가 크다.이들 기록물은 출간된지 각각 며칠 지나지 않아 1천부씩 찍은 1쇄(刷)가 매진돼 2쇄를 간행한데 이어, 코로나19의 충격파가 우리나라만큼이나 큰 일본에 소개되고 있다. 대구시민의 기록은 벌써 일본어판(版) 전자책(e-book)으로 제작돼 일본 독자들의 손에 들어갔으며, 대구 의료진의 기록도 곧 일본어 번역이 이뤄질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어판 제작은 일본 도쿄에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쿠온출판사가 담당하고 있다. 이와 관련, 코로나19 대구 기록 시리즈를 기획한 학이사 신중현 대표는 최근 아사히신문 및 NHK와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일본 언론에 기사화되기도 했다. 신 대표는 시리즈 3탄으로 대구 언론인들의 기록도 준비 중이다.대구지역 문화단체와 문화기관에서도 코로나19 기록화 대열에 나섰다. 대구시인협회는 지난 3월 인터넷 카페에 ‘코로나19 대구경북’이란 코너를 만들어 지역 시인들의 시와 칼럼 등을 모으고 있다. 현재 작품 100여편이 실렸으며, 코로나19가 진정될 무렵에 책으로 출간된다. 대구문화재단은 지난 15일까지 대구시민을 대상으로 ‘2020 대구: 봄’이란 주제 아래 그림, 수필, 영상, 사진 등을 공모했다. 공모전에는 모두 500여건이 접수됐으며, 6월 중에 수상작품이 발표된 뒤 온라인 및 오프라인 전시회 등을 통해 전국에 공유될 예정이다.대구시의사회는 코로나19 사태를 상세히 기록함으로써 나중에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제대로 대처하기 위해 백서(白書)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달 백서출간위원회를 구성한 대구시의사회는 회원을 대상으로 백서에 담을 동영상과 사진, 수필 등을 공모하고 있다. 백서는 코로나19가 종식되는 시점에 발간될 예정이다. 대구시의사회는 또 회원을 대상으로 코로나19 관련 논문 40편을 엄선한 뒤 2021년 학술지 등재를 목표로 지원금도 후원한다. 신문사와 방송국을 비롯한 지역 언론사가 대구에서 진행된 코로나19 사태의 매순간을 기록하기 위해 땀 흘린 노고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 역할이기에 본 칼럼에서는 생략한다.

가랑비

가랑비 하종오자주 님께서는 어디론가 갔다 오시고, 그럴 적마다 봄빛은 누리에 더 들어찹니다. 이상합니다. 님께서 아니 계실 때, 개구리들이 나오고 수로에는 새끼 고기들이 몰려 놉니다. 저는 둔덕에 불 질러 마른 풀 태우면서 해충 알이 죽기를 바라고, 또 지난해 떨어져 있다가 더러 새들에게 쪼아 먹히고 남은 곡식 알갱이가 올해에는 돋아나 제게 걷히기를 바랍니다. 무릇 사람을 위하여 사라지지 않는 미물은 없지만 사람은 함부로 미물을 위하여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저 자신을 통해 깨칩니다. 새삼스럽게 깨칠 때, 재 덮인 둔덕에서 가느다란 연기 몇 줄기가 피어올랐다가 공중에서 흩어집니다. 아하, 불현듯 가리사니가 생깁니다. 님께서는 며칠씩 어딘가를 가시면 거기에서 저처럼 행하시고 돌아오시는군요. 그러니 님께서 아무 연락이 없으셔도 먼데서부터 봄빛이 어리다가 하늘까지 차올라 파랗지요. 님께서 아니 계실 때, 나무들은 움틔우고 등성으로 철새들은 날아옵니다. 이 무렵에 오는 비도 산에 들에부터 조심조심 잘게 옵니다. 이것도 그 사연 때문입니까? 이제 님께서는 제 곁에서 영영 떠나셔도 좋습니다.『님 시편』 (민음사, 1994).................................................................................................................... 님은 단순한 접미사에서 명사, 대명사에 이르기까지 종횡무진 광범위하게 쓰인다. 님의 역사는 길고도 끈질기다. 고대시가 ‘공무도하가’에서 고려가요 ‘가시리’, 조선조 왕방연의 시조 ‘고운님 여의옵고’, 송강 정철의 가사 ‘사미인곡’, 한용운의 ‘님의 침묵’에 이르기까지 님은 우리 민족의 문학사를 거의 관통하고 있다. 최근 사이버 공간에선 상대방이나 제삼자를 가리지 않는 범용 대명사로 광범위하게 쓰인다. 하종오 시인은 님을 모시고 시편까지 엮은 터라 ‘님의 시인’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법하다. 산문시 「가랑비」의 님은 종교적인 신이라기 보단 관념상의 절대자 내지 자연으로 봐도 별 무리가 없어 보인다. 봄빛이 온 누리에 가득차고, 가느다란 가랑비가 내린다. 개울 어귀에서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가 기지개를 켜고 물뱀도 슬슬 움직이기 시작한다. 겨울동안 얼어붙었던 물길이 풀리고 시냇물이 졸졸 소리를 내면 갓 눈 뜬 어린 물고기도 세상 구경을 나온다. 님은 볼 일 보러 갔나 보다. 님이 없어도 제각기 제 할 일을 알아서 잘 한다. 시인은 밭두렁에 불을 질러 마른 풀을 태운다. 풀 섶에 깐 해충 알을 소각한다. 해충은 태워 없애지만 참깨씨알이나 콩알 등 남은 곡식 알갱이는 살아남아 소출에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해충은 곡식의 포식자인 관계로 식량을 축내는 인간의 경쟁자이다. 자신이 해충이라고 불리는 걸 안다면 벌레가 퍽 억울해 할 것 같다. 벌레도 아마 고통을 느낄 것이다. 알 상태로 죄 없이 미리 화장당하는 해충의 신세가 가엾다. 인간을 기준으로 인간이 판단하여 어떤 생명체는 박멸하고 어떤 생명체는 보존한다. 그 정당성이 의심스럽다. 생명은 모두 존귀하다는 진리를 깨친다. 둔덕 위로 피어오른 한줄기 연기가 하늘가에서 스러진다. 시인은 깨달음을 얻는다. 님은 다른 곳에서 같은 일을 한다. 봄빛이 차올라 하늘까지 닿았다. 하늘이 파랗다. 버드나무에 물이 오르고 가지마다 처녀의 젖 망울 마냥 연초록 새순이 살포시 터진다. 소년은 연한 가지를 골라 버들피리를 만들어 불며 봄날을 맞이한다. 산등성이를 넘어온 철새들이 피리소리에 맞춰 공중곡예를 한다. 가랑비가 산과 들을 살짝 적신다. 님은 안 계시지만 봄은 완연하다. 이젠 님은 영영 돌아오지 않아도 좋다. 다부진 홀로서기 선언이다. 오철환(문인)

모두가 바라는 간절한 소망

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후두두 비가 내린다. 빗소리가 요란하여 밖에 나서 보니 노란색 장미가 탐스럽게 피어있다. 쇠로 된 울타리 봉에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배경으로 장미는 울타리를 신나게 타고 오른다. 봄이 찾아온 줄도 모르는 사이 5월은 끝자락으로 달리고 울타리를 장식하는 장미 송이를 보면서 어느 해 봄, 작은 포트에 담겨왔던 장미 모종을 떠올린다. 얼어 죽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어느새 자라나서 저리도 탐스러운 꽃을 피우다니. 힘들다고 아우성을 해대는 인간에 비해 작고 여리기만 한 식물들은 얼마나 변함없이 또 알차게 고단한 시간을 엮어서 예쁜 꽃을 피우는지, 생각하면 참으로 신통하기만 하다.거리에 작게나마 활기가 돈다. 지난주 고3 개학으로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병원에서도 손길이 분주하다. 학교에서는 열나는 아이들이 있을까 봐 하루 세 번도 넘게 열을 체크하고 일회용 개인 식사를 나르느라 바쁘고 집에서는 마스크를 챙기고 손 소독제 주머니에 넣어 보내느라 바쁘다. 병원에서는 학교에서 의심 증상으로 보낸 아이들을 선별하고 입원할 아이를 받느라 분주하였다.이번 주엔 초등 1, 2학년과 유치원생이 드디어 학교에 간다고 한다. 어린 학생들이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제대로 지킬 수 있을지 걱정스럽지만, 입학통지서를 받고 아직 입학식도 못 한 어린 친구들은 학교를 무척이나 그리워한다. 학교 가면 얼마나 뛰어다닐 것인가.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보면 반갑다고 얼싸안고 얼굴 맞대지는 않을지, 우르르 몰려다니지는 않을지, 답답하다며 마스크를 벗어 던져버리진 않을지 좀 걱정된다. 하지만 언제까지 은둔의 생활을 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학교에 가서는 꼭 마스크를 쓰고 있도록 가르치고 친구들 간에도 양팔 간격 이상을 꼭 유지하도록 누누이 강조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어린 학생들이 처음부터 잘 지킬 것이라고 믿기는 어렵겠지만, 학교에서 처음부터 잘 가르쳐서 방역에 소홀함이 없도록 해야 하리라.날씨는 점차 더워지니 에어컨을 켜지 않을 수는 없고 마스크 끼고 공부해야 할 어린 학생들이 잘 참아낼까 우려는 된다. 오랜 시간 마스크를 쓰다 보면 호흡으로 인한 습기가 찬다. 그러면 바이러스 차단 효과도 떨어질 수 있으니 어릴수록 마스크는 더 자주 갈아주는 것이 좋다. 귀한 마스크를 자꾸 갈아줄 수 없다면 2~3개의 마스크를 말려가며 교대로 착용하는 방법도 권한다. 마스크를 꼭 쓰고 거리 유지를 하면서 구석구석 손을 씻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손 씻기를 제대로 하기 어려운 어린 학생들에 대한 상황도 고려하여 바른 대책을 세워야 하겠지만, 그렇더라도 학교에서 손 씻기 한다고 모두 한꺼번에 수도꼭지 아래 모여드는 것도 문제일 것 같다. 양치질할 때는 더 조심해야 하리라. 마스크 벗고 물을 튀겨가며 칫솔질하다 보면 혹시 모를 감염에 노출될 수도 있을 것 같아 걱정도 된다.아이들에게 가정에서 물 없이 발라 비벼 말리기만 하면 소독되는 손 소독제를 하나씩 챙겨 넣어서 조금이라도 자주 사용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어떤 물체에 손이 닿았다면 바로 꺼내서 수시로 바르고 소독하도록 교육해야 하리라. 손을 씻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더 명심해야 할 것들이 있다. 손 소독제는 완전히 마를 때까지 비벼주고 마스크는 자주 손으로 만지지 말고 얼굴에 손을 갖다 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손이 제일 더럽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러니 눈, 코, 입이 가려워도 균이 있을 손을 대지 말고 그냥 꾹 참게 하거나 다른 천 같은 것으로 문지르는 것이 좋다 일러주어야 한다.어린 학생의 등교도 중요한 과제이겠지만, 입시를 앞에 둔 고3만이야 하겠는가. 저학년 학생들의 등교를 조금씩 유연하게 계획을 세워서 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순차적인 개학이라고 하지만, 일단 학교생활을 하게 되면 감염이 확산할 위험은 언제나 상존하니 말이다. 예전 과밀 학급이던 시절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뉘어 2부제로 수업하던 때도 있지 않았는가. 현재도 서울 경기 지역을 중심으로 또 경북의 한 지역에서도 감염 원인을 알 수 없는 확진자가 자꾸 발생하고 있다. 저학년 학생들의 등교 개학은 일단 시작은 하더라도 조금이라도 우려되는 상황이 되면 바로 조처해서 더 큰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플랜 B로 돌아가도록 해주면 어떨까 싶다. 오랫동안 입원해 있던 한 아이가 떠오른다. 올해 입학하는 아이, 그의 소원은 “지금 당장 학교 가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 표정을 보면 무작정 미룰 수도 없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모두 한 마디씩 우려를 표시하는 개학이다. 일단 시작해보고 조정하는 수밖엔 다른 방도가 없지 않으랴. 힘들게 코로나19를 이겨낸 아이의 소원이 순조롭게 잘 이루어지길.

음주운전은 범죄행위다

정선관문경경찰서 교통관리계장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해 경찰의 음주운전 단속방법이 기존의 고정식 검문에서 벗어나 선별식 검문 방식으로 변화됐다.이것은 라바콘 등으로 S형 도로를 만들어 서행을 시킨 다음 정상적으로 통과하지 않고 라바콘을 충격하거나 에스 코스를 이탈할 경우 음주의 의심이 있다고 판단하여 선별 검문하는 방식이다.하지만 과거에 비해 음주운전 단속 방법이 변경되자 일부 운전자의 음주운전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보험업계에 따르면 지난 1~3월의 음주운전 교통사고는 4천101건 발생하여 전년 같은 기간 3천296건보다 24.4%가 증가했다. 사망자도 6.8% 증가됐다.이는 운전자와 접촉이 불가피한 일제검문식 음주운전 단속이 코로나 19로 중단된 결과로 풀이돼 새로운 방식이 필요하게 되었다.특히 사회적 거리 두기에서 생활방역체계로 전환되는 시점에서 일상생활과 경제활동 등이 늘어나 중단되었던 각종 모임과 여행 그리고 회식이 늘어남에 따라 음주운전도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경북 경찰에서는 코로나19로 변화되었던 음주운전자 검문방식을 비접촉식 음주감지기를 사용하여 일제 검문식으로 바꿀 예정이다.비접촉식 음주감지기는 공기중에 포함된 알코올 분자를 감지하므로 운전자가 후∼ 하고 불어 넣는 날숨을 내쉬지 않아도 된다.운전자는 단속 경찰관의 지시에 따라 창문을 열고 마스크를 벗고 그냥 질문에 대답하면서 단순 호흡하면 된다.이때 경찰관은 비접촉식 음주감지기를 운전자의 얼굴 앞에 대고 약 3~5초간 대기하면 감지방식이 완료된다.인사회생활을 하면서 회피할 수 없는 술. 하지만 술을 마시고 운전을 하다가는 타인의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는 음주운전은 범죄행위이며 자신뿐 아니라 타인의 단란한 가정마저 파괴할 수 있는 행위로 반드시 금지되어야 한다.농번기가 시작된 농촌에서도 절대 허용할 수 없는 음주운전에 모두의 경각심을 갖고 안전운전했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