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향만리…금강송

금강송 정수자 군말이나 수사 따위 버린 지 오래인 듯/ 뼛속까지 곧게 섰는 서슬 푸른 직립들/ 하늘의 깊이를 잴 뿐 곁을 두지 않는다.꽃다발 같은 것은 너럭바위나 받는 것/ 눈꽃 그 가벼움의 무거움을 안 뒤부터/ 설봉의 흰 이마들과 오직 깊게 마주설 뿐/ 조락 이후 충천하는 개골의 결기 같은/ 팔을 다 잘라낸 후 건져 올린 골법 같은/ 붉은 저! 금강 직필들! 허공이 움찔 솟는다.시조집 『허공 우물』(천년의시작, 2009) .............................................................................................................정수자씨는 경기도 용인 출생으로 1984년 세종숭모제전 전국시조백일장 장원으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그을린 입술』 『비의 후문』 『탐하다』 『허공 우물』 『저녁의 뒷모습』 『저물 녘 길을 떠나다』 등이 있다. 그는 시조를 쓰면서 부단히 고뇌하는 시인이다. 정수자씨는 시조의 느슨한 정형도 우리네 산과 들과 개울이 길러온 곡선의 아담한 품과 가락을 항아리모양 담아온 것임을 깨닫는 일이 그것이다. 또한 급변의 와중에도 변함없이 살아남을 보편적 미학을 궁구하며, 고금의 종단이나 횡단의 관통과 통섭을 통해 오래된 새로움을 구하고자 힘쓰고 있다. 태백산맥 줄기를 타고 금강산에서부터 경북 울진, 봉화를 거쳐 영덕, 청송 일부에 걸쳐 자라는 소나무는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꼬불꼬불한 일반 소나무와는 달리 줄기가 곧바르고 마디가 길며 껍질이 유별나게 붉다. 이 소나무는 금강산의 이름을 따서 학자들이 금강소나무 혹은 줄여서 ‘금강송’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시인은 금강송을 바라보면서 떠올린 생각들을 아홉 줄로 축약해서 명징하게 보여주고 있다. 어떤 자세로,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한 삶인지에 대한 천착이 예사롭지가 않다. 금강송을 두고 이만큼 치열하게 이미지를 축조하는 일은 웬만한 내공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금강송’이 오늘의 우리에게 일러주는 메시지는 의미심장하다. 모름지기 이 땅에 발붙이고 사는 그 누구이든지 ‘금강송’의 내밀한 품격에서 가르침을 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더구나 몹시 혼탁한 시대가 아닌가. 중정의 삶이 요청되는 때에 군말이나 수사 따위 버린 지 오래인 것을 직시하고 뼛속까지 곧게 서 있는 서슬 푸른 직립들에 시선을 고정시킨다. 이처럼 금강송은 다만 하늘의 깊이를 잴 뿐 곁을 두지 않는 기품을 보인다. 또한 꽃다발 같은 것은 너럭바위나 받는 것이라면서 눈꽃 그 가벼움의 무거움을 안 뒤부터 설봉의 흰 이마들과 오직 깊게 마주서는 자존을 오롯이 견지한다. 실로 조락 이후 충천하는 개골의 결기로 팔을 다 잘라낸 후 건져 올린 골법으로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위의와 절조를 품고 ‘금강송’은 붉은 저 금강 직필이 되어 하늘을 찌르면서 치솟는다. 타협과 상생이 간절히 요청되는 시대에 한 편의 우뚝한 시조 ‘금강송’이 들려주는 속 깊은 노래는 삶의 한 지침이 되고도 남는다. 진실로 군말과 수사보다는 내면 깊숙이 우러나는 마음으로 새봄을 맞이했으면 좋겠다. 이정환 (시조 시인)

봉준호 기념사업 공약 봇물…“시행착오는 안돼”

총선을 앞둔 정치권과 지자체를 중심으로 ‘대구의 아들’ 봉준호 감독 기념사업 공약과 아이디어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봇물을 이루고 있다. 1969년 남구 봉덕동에서 태어난 그는 3학년 때까지 지역 초등학교에 다녔다. 그후 서울로 이사했다.아카데미상 수상 하룻만인 지난 11일 권영진 대구시장은 간부회의에서 “봉 감독이 대구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시민들에게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 인적 네트워크 등을 활용해 연결고리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역에서 기념사업을 할 수 있는 방안을 찾겠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조재구 남구청장도 “봉준호 거리 등을 조성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지역 정치권에서는 중·남구 선거구 예비후보들을 중심으로 기념사업의 구체적 공약이 쏟아지고 있다.“대명동에 봉준호 기념관을 건립하겠다. 대명2공원을 ‘봉준호 공원’으로 이름을 바꾸겠다. 생가터를 복원하고 영화의 거리를 만들겠다. 봉준호 동상과 영화 ‘기생충’ 조형물을 만들겠다”는 아이디어가 나왔다.또 “생가터 주변에 명예의 전당, 영화 박물관, 독립영화 멀티 상영관, 가상현실(VR) 체험관, 봉준호 아카데미 등을 건립해 봉준호 타운을 건립하겠다”는 공약도 제시됐다. 봉준호 스토리거리, 대형 영상 테마파크 조성과 함께 달서구 대구시 신청사 옆에 영화박물관을 건립하겠다는 계획도 나왔다.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정치권의 공약 제시를 나무랄 수는 없다. 발빠른 것도 좋지만 조금 혼란스럽다. 충분한 검토나 성사 여부와 상관없이 공약부터 발표하는 관행도 떨쳐내야 한다. 나중에 시민들을 맥 빠지게 하는 것이 이런 것들이다. 동상 건립, 생가터 복원 등 일부 아이디어는 지나치거나 너무 이른 것 아니냐는 반응도 있다.가장 중요한 것은 현실성이다. 대구시 차원에서 본인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기념사업과 없이도 할 수 있는 사업을 구분해 정리할 필요가 있다. 당사자를 설득할 수 있는 구체적 계획을 마련해 의논을 해야 한다.유명인을 소재로 하는 기념사업과 셀럽거리 조성은 이미 트렌드로 뿌리내렸다. 성과도 크다. 중구의 ‘김광석 거리’가 단적인 예다. 그러나 당사자 동의없이 성급하게 나섰다가 성사되지 못한 경우도 적지 않다.‘무엇을 담을 것인가,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등을 치밀하게 계획하는 것이 먼저다. 마음만 앞서면 헛공약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아진다.권영진 시장의 이야기처럼 지역의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당사자가 지역사회의 제의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접촉하는 동시에 지역사회의 공감대도 확산시켜 나가야 한다. 시행착오가 없도록 차분히 접근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의료칼럼…자신 몸의 보석은?

나는 손이 구백냥이동은리즈성형외과 원장연일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에 관한 보도로 걱정이 앞서던 어느 날, 낯익은 눈빛의 중년 여성이 마스크를 눌러쓰고 병원을 찾아왔다. 마스크를 벗고 환한 미소를 짓는 그 여성은 “선생님, 이제 제 얼굴이 어떻게 보이세요.”라고 이야기한다.몇 달 전 걱정에 가득한 눈빛으로 찾아와서 몇 가지 교정 수술을 했던 환자였다.낯익은 눈빛 주위로 얼굴 전체가 자연스럽게 변하면서 활기로 가득한 것을 보니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지난 겨울 찾아왔을 때를 돌이켜 보았다.성탄절을 앞두고 분주했던 겨울 어느 날, 나를 찾아와서는 대뜸 “선생님, 제 얼굴이 어떻게 보이세요.”라고 질문을 던졌다.그래서 찬찬히 얼굴을 바라보면서 “왜 그렇게 물어 보시나요.”라고 되물어보았다.“남들이 제 얼굴을 보고 너무 낯설고 어색하다고 해서요. 좀 더 자연스럽고 매력적인 모습이 될 수 없을까요.”라고 한다.찬찬히 얼굴을 바라보면서 “왜 그렇게 물으시나요.”라고 다시 물어보았다.“남들이 제 얼굴을 보고 너무 낯설고 어색하다고 해서요. 좀 더 자연스럽고 매력적인 모습이 될 수 없을까요.”라고 한다.인터뷰를 진행했다. 예쁜 얼굴은 아니었지만, 남들에게는 밝고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고 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조금씩 늙어간다는 생각에, 매스컴이나 주위 친구들의 부추김도 있고 여러 성형외과를 드나들면서 알음알음 친해지다 보니.. 처음에는 한두 가지 수술을 자연스럽게 살짝 해 본다는 것이 점점 일이 커진 것이다.나중에는 기왕에 수술을 할 바에야 대구보다는 서울 강남에 가서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광대뼈, 턱뼈, 양악수술까지 하게 된 것이다.직업상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명품매장의 고참 직원으로 자신의 말로는 “남들은 몸이 천 냥이면 눈이 구백 냥이라고 하지만, 자신에게는 자연스러운 미소와 좋은 인상이 구백 냥”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점점 그런 모습이 없어지고 억지로 웃는 듯한 모습이 되다 보니 자신의 고객들도 어색해 해서 요즘 많이 힘들다고 한다.그런 이야기를 듣고 나서 얼굴의 상태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광대뼈, 사각턱 수술을 해서 얼굴이 계란형이 된 것까지는 좋았는데, 양악수술까지 함께 하다 보니, 얼굴의 피부 조직과 뼈를 연결해 주는 조직들이 분리되면서 볼살과 턱 주위의 살이 아래로 처져 내려와서 오히려 나이가 들어 보이는 인상이 되었다. 그리고 양악수술을 하면서 앞으로 살짝 나와 있던 잇몸이 뒤로 들어가면서 인중이 길어져 보이고 얼굴이 밋밋한 모습이 되어버린 것이 아쉬울 정도였다.차라리 수술하기 이전의 상태가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 정도였다.곰곰이 생각해 보았다.결국 아래로 처진 볼살, 턱 주위의 조직을 원래대로 되돌려주는 수술을 하기로 했다.우선 얼굴 주름 당김 수술을 해서 처진 볼살과 목 부위로 처져 내려온 살을 위로 당겨 올려주었다. 그 후 양악수술 후 길어진 인중의 길이도 함께 줄여서 예전의 길이로 맞추어 주었다.수술 후 2주 정도가 지나자 이제 다시 갸름한 얼굴에 예전처럼 자연스럽고 활기찬 모습으로 돌아왔다. 환자가 나보다 더 좋아하는 것을 보니 수술결과가 만족스러운 모양이다.걱정이 많았던 귀 앞쪽의 흉터도 실밥을 빼고 나니 좋아지면서 머리를 뒤로 넘겨도 메이크업으로 충분히 커버할 수 있을 만큼 좋아졌다고 한다.그 후 두 달이 지나고 나서 다시 찾아온 모습을 보니, 내 눈에는 아직 군데군데 회복이 덜 된 곳이 보이기는 하지만, 얼굴 전체에서 배어 나오는 모습이 예전의 생기를 되찾은 것 같아서 나도 기분이 좋았다.당겨 올린 피부조직이 예전처럼 회복되는 데는 몇 달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이제 얼굴 때문에 더 이상 걱정할 일도 없고 젊은 직원들과도 잘 어울리게 되었다니 직장에서의 고민도 해결된 셈이다.고객들에게도 보다 자신감 있게 다가설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을 들으면서 이것 역시 의사로서의 보람이라 하겠다.흔히 몸이 천 냥이면 눈이 구백 냥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여성이 자연스러운 미소와 좋은 인상이 자신의 구백 냥이라고 하듯이 누구에게나 자신에게 가장 소중하고 가치 있는 부위가 있을 것이다. 흔히 외국의 인기 스타들이 자신의 다리, 손, 엉덩이 같은 부위에 보험을 들었다고 이야기하고는 하는데, 아마 이들에게는 이것이 자신의 구백 냥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필자에게 구백 냥이 되는 곳은 어딜까? 아마 나에게는 눈과 두 손이라 하겠다. 비록 투박하고 못생긴 손이지만, 원석 속에 숨어 있는 보석의 가치를 알아보는 눈과 섬세하게 깎고 다듬어 찬란한 빛을 내뿜는 다이아몬드를 만들어 내는 성형외과 의사라는 직업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문향만리…소설 ‘존엄의 굴레’

소설 ‘존엄의 굴레’ “…시신을 자연으로. 매장도 벌레에게…” 오철환 …주인공 ‘나’는 퇴직 공무원이다. 아들을 부정 취업시킨 일이 드러나 정년을 불과 1년 앞두고 파면되었다. 내가 받은 충격도 감당하기 힘들었지만 아내와 어머니가 받은 상처도 컸다. 아내는 가까이서 눈치 보느라 오히려 의연해보였으나 연로한 어머니는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어머니는 불심으로 아픔을 극복하고자 했다. 나는 불심이 희미했지만 어머니를 따라 불공을 드리려 가야했다. 절에서 인연 큰스님을 면담하고 정신적 치유를 받았다. 큰스님의 설법을 듣고 윤회사상에 대해 호감을 가졌다. 티베트의 장례인 천장은 불교와 윤회사상에 충실하다. 천장을 현대적으로 업그레이드 한 소위 ‘몸보시장례’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이는 사체를 환약의 형태로 가공하여 동물에게 주는 ‘몸보시’이자 장례다. 처음 들었을 땐 끔찍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바람직한 친환경 장례임을 부인할 수 없었다. 어쩌면 장례가 가야 할 최종 지향점이다. 나는 큰스님의 권유로 티베트불교에서 주도하는 ‘몸보시장례 확산운동’에 적극 동참하기로 결심했다. 이 운동은 벌써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나는 큰스님과 인근도시에 있는 티베트인들이 운영하는 환약제조장을 견학했다. 기증받은 사체를 환약형태로 만들어 동물들에게 사료로 공급하는 시스템이다. 막상 공장을 견학해보니 섬뜩했다. 관습과 선입견이 견고했다. 큰스님의 권유로 나는 윤회불교추진위원회 기획실장을 맡았다. 신흥불교 등록을 준비하던 중 경찰의 소환을 받았다. 사체의 훼손, 유기, 영득 등에 대한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나는 그냥 참고인 진술만 하고 풀려났다. 인간의 존엄이란 것이 죽고 난 후에도 그 사체 안에 둥지를 틀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티베트의 천장(天葬)이나 수장(水葬)은 끔찍하고 미개한 장례풍속으로 알려져 있다. 천장(또는 조장)이란 시신의 살점을 떼어 새의 먹이로 주는 장례다. 수장이란 전염병 등으로 죽은 사람들이나 애들의 시신을 강물이나 호수에 버려 물고기 밥이 되게 하는 것으로 천장의 보조수단이다. 뼈도 잘게 빻아 보릿가루와 섞어 독수리에게 준다. 생전에 남의 살을 먹고 살았으니 죽어서는 배고픈 동물들에게 시신을 돌려준다는 의미다. 영혼이 떠난 육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아야 극락왕생한다고 한다. 천장이 고귀한 생명사랑으로 가슴에 와 닿는다. 시신을 냉동하거나 뜨거운 불에 태우는 것은 괜찮고 다른 생명체의 피와 살이 되도록 보시하는 것은 고인에 대한 불경이라고 여기는 것은 일종의 편견이다. 로봇이나 기계를 이용하여 시신을 가공하는 광경을 상상해 본다. 인간은 동·식물을 식재료로 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어왔다. 이젠 자연생태계에 되돌려주는 일도 고민해야 한다. 불필요한, 어쩌면 골치 덩어리인 시신을 은혜 입은 생명체에게 되돌려주는 것이 과연 끔찍한 일일까. 껍데기에 불과한 시신을 생태계에 온전히 되돌려주는 날이 과연 올 수 있을까. 매장도 결국 벌레의 먹이로 내주는 것이고 화장도 시신을 불태우는 것이니 동물에게 돌려주는 것이라고 하여 마다할 이유는 없을 것도 같다. 물론 낯선 탓인지 아직 썩 내키지는 않지만.국토가 무덤으로 뒤덮이고 납골당이 부족하다. 자연친화적이고 인류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기여할 장례를 연구해야 할 때다. 이 문제는 종교적 차원에서 그 실마리를 풀어가는 것이 자연스럽고 거부감이 적을 것이다. 자비와 사랑은 모든 종교의 근본교리다. 하늘나라로 가기 위한 실천원리로 자연친화적인 장례문화를 연구·보급하는 일은 어쩌면 종교의 본래적 사명일 지도 모른다. 오철환(문인)

경제칼럼…지금은 광기보다 공포가 더 무섭다

지금은 광기보다 공포가 더 무섭다이부형현대경제연구원 이사대우지난 주말에는 모처럼 반가운 손님을 맞아 시내 곳곳에 있는 관광명소를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때가 때인지라 마스크와 장갑을 착용하고서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면역력 증진에 좋다는 기능성 건강보조제까지 챙겨서 집을 나섰다. 그런데 웬걸, 그렇게 많던 등산객들과 북적이던 관광객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그저 한적하기만 했다. 버스나 지하철과 같은 대중교통은 물론 평소 예약도 잘 안 받던 유명 맛집들도 텅텅 비었다.평소 같으면 외국인 관광객들로 북적일 대형 쇼핑센터나 공항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전염 우려로 사람들이 외출을 자제하고 외국인 관광객들의 입국 규모가 줄고 있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까지일 줄은 미처 몰랐다. 그러다 보니 혹시나 감염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는 집을 나선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졌고 도시의 드문 고즈넉함과 여유로움을 즐기기는커녕 오히려 두려움과 공포에 찬 시장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통상 우리는 시장이 이성을 잃고 광기로 들끓을 때 많은 걱정들을 하기 마련이다.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은 상황이다. 주식이나 부동산 시장이 빠른 속도로 가열되면 때를 놓쳐 그 편익을 누릴 수 없어서 후회될 때나 늦게라도 동참하자니 버블이 껴 있는 것 같아서 선뜩 결정하기 곤란할 때 더욱이 망설이는 사이에 가격이 더 상승할 것 같아 조바심이 날 때 말이다. 투자 접근성은 떨어지지만 원자재나 외환 등 다른 상품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그런데 이보다 더 걱정해야 하는 상황은 굳이 말하자면 시장이 공포에 휩싸일 때다. 시장이 광기로 뜨거워질 때는 기대와 불안이 동시에 교차하긴 하지만 경제시스템 자체는 돌아간다. 이런 광기는 곧 사라질 것이라는 부정적인 기대감, 즉 공포가 빠르게 확산되지만 않는다면 경제시스템 자체가 정지 또는 붕괴할 일은 없다는 말이다. 붕괴 후에는 버블로 평가되지만 오히려 광기가 시장을 휩쓸고 있을 동안 경제는 호황을 누리고 투자자는 행복한 꿈을 꿀 수 있다.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경험을 되살려 보자. 시장에 공포가 확산되기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간헐적으로 제기되는 위기론은 세계 경제의 호황에 묻히기 일쑤였고, 주식시장의 과열을 간과한 투자자들은 엄청난 수익에 도덕적 해이마저 저질러 가며 행복한 날들을 보냈다. 하지만 갑자기 부상한 미국 부동산 관련 금융상품의 부실화 우려에 대한 공포가 시장에 퍼지면서 상황은 반전되었다.부실화 우려가 커지는 금융자산을 빨리 처분하려는 이들은 급증하는 데 받아줄 곳이 없으니 피해가 커지고 그러한 상황이 지속되다 보니 누구든 예외 없이 언제 망할지 몰라 자금을 빌릴 수도 빌려줄 수도 없는 상황이 전개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런 현상이 반복되면서 글로벌 금융시스템이 점차 마비되기 시작하자 시장의 공포는 극에 달하게 되었고 전체 글로벌 경제 시스템이 붕괴되는 위기가 시작 된 것이다.잘 알려진 바와 같이 결과만 놓고 보면 글로벌 금융위기는 미국 부동산 시장 버블의 붕괴와 이에 따른 관련 상품의 부실로 세계적인 금융기관들이 연쇄 도산함으로써 발생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잘 살펴보면 그러한 결과를 낳은 배경에는 시장 붕괴에 대한 갑작스런 우려 즉 공포가 자리잡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다행스럽게도 지금 국내 시장에서 확산되고 있는 공포는 이와는 전혀 다른 성질의 것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경제적인 피해에 대해서는 과도하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떤 성질의 것이든 공포의 원인이 제거되지 않는 이상 여전히 경제적 피해가 커질 것이라는 우려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도 전세계가 대규모 자금공급에 나섬으로써 자금을 조달할 수 없어서 망할 수 밖에 없다는 시장의 공포감을 제거했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들이 하루라도 빨리 정상적인 경제 활동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최근 일고 있는 경제적 피해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공포의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말이다.

야권, ‘대통합신당’ 당명 적절한가

야권의 통합신당준비위원회가 지난 10일 통합신당의 이름을 ‘대통합신당’으로 잠정 합의했다. ‘대통합신당’ 당명은 자유한국당과 새로운보수당의 협의를 거쳐 최종 확정될 예정이다. 신당 이름으로 여럿 거론됐으나 다수 의견인 ‘대통합신당’을 채택했다고 한다.그러나 ‘대통합신당’이라는 당명은 국민 통합이라는 명분에만 앞선 나머지 정당으로서의 색깔과 정체성이 없는 우스꽝스러운 이름이 돼버렸다. 한국당과 새보수당 내에서 ‘대통합신당’ 당명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총선을 치른 후 추가로 논의할 여지는 남겨놓았지만 급조한 정당 냄새가 물씬 풍긴다.4·15 총선을 앞두고 정당 창당이 잇따르면서 당명 논란이 곳곳에서 불거지고 있다. 연동형 비례제 선거법에 저항하기 위해 만든 한국당의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은 선관위의 ‘비례한국당’ 당명 불허 결정에 따라 ‘비례’를 ‘미래’로 바꿨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주축이 된 당의 이름을 ‘안철수신당’으로 쓰려던 계획도 무산됐다. 대신 ‘국민당’으로 바꿨다. 선관위가 당명에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만든 국민의 당에서 ‘의’자 한 자만 뺐다.바른미래당과 대안신당, 민주평화당 등 호남을 지지기반으로 하는 옛 국민의당 계열 3개 정당이 통합한 신당도 조만간 출범 예정이다. 어떤 이름을 내걸지 궁금하다.정당 이름은 사회적 상규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어떤 이름을 지어도 상관이 없다. 하지만 선관위가 ‘안철수신당’을 정당의 정책과 가치를 표방하는 이름이 아니라며 불허했듯이 정당의 이름에는 나름 정당의 정체성을 보여주고 지향하는 이념도 미뤄 짐작할 수 있어야 한다.그런데 한국당과 새보수당이 내놓은 ‘대통합신당’이라는 이름은 뭔가 옹색하다. 이 이름은 2007년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한 국회의원들이 만든 ‘대통합민주신당’(원래는 ‘미래창조대통합민주신당’)과도 비슷하다. ‘대통합민주신당’은 정동영 후보가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낙선한 후 2008년 민주당과 합당하며 사라졌다.아무리 통합이 발등의 불이라고 해도 ‘대통합신당’ 당명은 아니다. 선거후 한국당의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과의 통합을 염두에 둔 임시 정당명이라고 해도 적절치 않다. 국민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도 약하다.한국당과 새보수당은 단 며칠이라도 시간을 갖고 공모 등 절차를 통해 근사한 이름을 지어 새로 출범하기 바란다.통합 신당이 보여줘야 할 가치는 낡은 관행과의 결별이다. 가치와 철학이 없는 정당 이름은 국민을 우롱하는 것과 다름 없다. 같은 값이면 정당명은 보수 우파의 기본 이념을 담아내고 부르기 쉬운 이름으로 바뀌길 기대한다.

세상읽기…공기나 물과 같은 땅은 없다

공기나 물과 같은 땅은 없다오철환객원논설위원 텔레비전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땅을 공기나 물과 같이 자유롭게 이용하도록 만들겠다는 취지의 자막과 함께 촉촉하게 젖은 내레이션이 들려왔다. 서울대교수와 부동산전문가의 인터뷰도 잇따랐다. 잠시 가슴이 먹먹하긴 했다. 실현가능성을 떠나 휴머니즘 물씬 풍기는 감상적 분위기가 잘 연출되었다. 땅은 생존하기위한 절대적 존재라는 점에서 공기나 물처럼 자유롭게 이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감성을 건드렸다. 치밀하게 기획된 홍보물임에 분명하다. 초등학생 때 생각이 났다.‘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땅의 소유가 정해져 있는 상황이 불합리했다. 동의나 계약한 적도 없었지만 땅은 구획되고 소유되고 있었다. 태어남과 동시에 기본적 생존조건은 공평하게 주어져야 한다. 공기와 물과 땅이 없인 살 수 없다. 땅은 공기나 물과 같이 자연에서 주어진 것으로 어느 정도 변경은 가능하겠지만 노동으로 창조된 것이 아니다. 따라서 땅은 어느 특정 개인이 줄을 긋고 소유할 성질의 재화라 할 수 없다. 먼저 태어난 사람이 차지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힘 센 사람이 빼앗는 것도 아니며 애초 자기 소유도 아닌 만큼 매매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토끼나 멧돼지처럼 발이 가는 대로 가고 머물고 싶은 곳에 머무는 자유가 인간에게도 보장되어야 한다. 땅에서 먹이를 구하고 살아가는 것은 천부적 권리다. 권리 이전의 권리다. 공기와 물과 땅은 태어남과 동시에 의지와 무관하게 조건 없이 주어지는 모든 생명체의 공유물이다.’ 어릴 땐 꽤 그럴듯한 생각이라고 믿었다. 나이가 들면서 그러한 생각이 철없는 공상이란 것을 깨닫고 망각 속에 묻어버렸다. 논리적 사고가 형성되고 세상물정을 알게 되면서 유치한 공상에 결함과 무리가 존재함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인류는 원시시대엔 먹이를 찾아 이동했지만 농경생활을 하면서 살기 적합한 곳에 정착하였다. 정주지역에서 족당과 어울려 생활의 터전을 이루고 살아갔던 까닭에 삶의 근거를 옮기기가 쉽지 않게 되었다. 땅 위에 반영구적인 건물이나 구조물이 생겨났다. 따라서 스스로 동의하지 않는 한, 남의 땅을 무단히 점유하기가 불가능해졌다. 기득의 땅 소유권을 인정하고 그 대가를 치른 다음에야 원하는 땅을 배타적으로 승계하는 방식은 자연스런 역사적 귀결이다. 공기나 물은 이동이 자유롭고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함께 사용해도 좋을 만큼 풍부하다. 희소성이 없어 경제재라기 보단 자유재에 가깝다. 가공된 물은 점차 경제재로 바뀌긴 했지만 비교적 저렴하여 생존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다. 공기도 급속히 오염되고 있어 경제재로 변할 날이 멀지 않다. 반면, 땅은 공기나 물과 비교할 수 없다. 거주 가능한 땅이 한정되어 있는데다 선호하는 땅은 경쟁이 치열하다. 생산이 불가능하여 늘릴 수도 없다. 위치가 고정되어 있어 옮길 수도 없다. 이제 땅은 고유한 특성을 가진 특별한 재화로 독특한 지위를 확고히 하고 있다. 땅이 애초 공기나 물과 같은 생존의 기본조건이라는 측면을 부인하긴 어렵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재화로서의 특성도 유별나다. 땅은 복합적인 중요한 소유대상인 셈이다. 이러한 이유로 땅을 단순히 공기나 물과 같이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해야하는 자연물로 보는 시각은 인간적이긴 하나 엉성하고 유치하다. 땅에 대한 원시적 낭만적 관점은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 결함과 허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접근하기 어려운 전문지식이나 수준 높은 논리적 사고를 요하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공산주의 사상이라는 의심을 살 위험을 무릅쓰고, 잘 꾸미고 포장한 세련된 홍보물을 황금시간대에 방송으로 내보내는 것은 과히 놀랄만하다. 정치적 의도를 가진 기획물이라는 의심을 지을 수 없다. 엘리트들이 종사하고 시청률에 목매는 방송국에서 아무런 생각이나 목적 없이 공연히 논란이 일 영상물을 제작하지 않을뿐더러 광고수입에 의존해야하는 민영방송이 광고와 거리가 먼 기획물을 무단히 자발적으로 만들 것 같지도 않기 때문이다. 결코 우연히 불거진 일이 아니다. 개인 의견이라는 했지만 장관이 토지국유화를 언급한 지난일이 떠올라 더욱 불길하다. ‘함께 잘 사는 사회’를 지향하고 ‘소득주도성장’을 앞세워 공산주의로 간다는 의심이 만연한 상황에서 파급력이 큰 방송에서 대놓고 버젓이 자행한 일이라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표를 계산했을 것이다. 땅 없는 사람들, 현실에 불만을 품은 지식인, 그리고 말만 번지러한 강남좌파를 아우른다면 폭발력이 있다고 예상했음직하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할 때다.

아침논단…‘공포 바이러스’가 더 위험하다

‘공포 바이러스’가 더 위험하다박운석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지난 주말 몇몇 외식산업 종사자들의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다. 대구에서는 꽤나 알려진 신흥 상권인데다 가장 핫한 저녁시간대임에도 불구하고 한두 테이블을 제외하고는 식당들은 텅텅 비어 있었다.사람들이 모여들면서 그 전 같으면 으레 나누었을 악수도 머뭇거리는 게 보였다. 몇몇은 주먹인사로 대신하기도 했다. 악수를 하려다가도 서로 멈칫하면서 주먹을 가볍게 부딪치며 인사를 대신하는 것이었다.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가 그랬다. 당시엔 ‘악수를 자제하자’는 자발적인 운동까지 일어났었다.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이 비말(기침 등을 할 때 튀는 매우 작은 침방울)을 통해 전염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악수 인사법에까지 공포가 덮쳤다. 악수를 하면서 손바닥을 통해 바이러스가 전염될 수 있다는 말에 ‘주먹인사’가 다시 유행인 것이다.전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걱정으로 공황상태이다. 확진자가 늘어나면서 덩달아 불안감도 커져만 가고 있다. 이미 각종 행사들도 줄줄이 취소되고 있다. 일부 학교의 휴업 결정과 곳에 따라서는 봄방학까지 겨울방학이 연기되기도 했다. 외국인 유학생이 많은 대학들은 개강 시기를 3월 중순으로 연기하기도 했다.안전이 최우선인 것은 당연하다. 특히나 전염성이 강한 바이러스 감염증일 경우 더욱 그렇다. 때문에 안전을 위해 모든 필요한 조치를 선제적으로 취해나갈 필요는 있다. 대통령의 말처럼 바이러스에 관한 한 시기를 놓치는 것 보다는 과잉대응이 낫다.다만 근거 없는 공포가 확산되는 것은 우려할 만하다. ‘공포 바이러스’의 전염력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보다 훨씬 큰 것 같다. 누가 가벼운 기침만 해도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대중들의 불안을 비집고 공포가 파고들고 있다. 하지만 막연한 공포, 근거 없는 공포로 인한 혼란과 부작용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크다.제일 먼저 경제에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잘못된 정보는 집단행동으로 이어지고 이는 경제위기라는 혼란을 부추길 수 있다. 벌써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영화관이나 식당, 호텔 등은 발길조차 뜸해졌다. 여행 취소, 각종 행사 취소에 이어 이젠 외출 자제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여기다 각종 괴담과 거짓정보까지 떠돌아다니며 공포를 키워나가는 것 같다.세계보건기구(WHO)는 이를 ‘인포데믹(infodemic)’으로 표현했다. 인포데믹은 각각 ‘정보’와 ‘감염병 확산’을 뜻하는 인포메이션(information)과 에피데믹(epidemic)을 합친 신조어로 ‘정보감염병’을 뜻한다. 신종 코로나와 관련된 정보가 과도하게 넘쳐 괴담을 낳고 있다는 설명이다. 필요 이상의 불안감을 조성해 사회문제로 키워나가는 바이러스와 다름없다.지금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퇴치와 확산방지도 중요하지만 막연한 불안을 잠재우는 것도 중요하다. 물론 대책 없는 ‘안심 바이러스’를 퍼트리자는 것이 아니다. 경각심을 가지고 손씻기 등 개인위생만 잘 준수한다면 일상생활을 영위해 나가는 데는 지장이 없다고 한다. 문제는 평상심을 유지하는 일이다.공포도 결국은 정보가 가려질 때 커지게 마련이다. 당국에서도 필요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 신뢰도를 높여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가짜뉴스가 발붙일 틈을 주지 말아야 할 것이다.근거 없는 불안 때문에 과잉 대응을 하게 만드는 것은 낭비다.대한예방의학회·한국역학회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대책위원회가 10일 서울의대 기초연구동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이날 대책위가 발표한 내용도 지나친 불안감 때문에 의학적 상식에서 벗어난 과잉 대응이 넘쳐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대표적인 과잉 대응 사례로 확진자와 밀접접촉자의 동선 지역에 대한 출입규제, 유치원·학교의 휴업 등을 꼽았다. 외국인 입국금지 조치는 더욱 신중해야 할 문제라고 밝혔다.지금은 개개인의 일상생활이 너무 위축되고 있다. 이로 인해 경제심리마저 쪼그라들고 있다. 작은 식당 출입까지 삼가는 정도다. 이는 소비둔화로 이어지고 어려운 지역경제를 더 얼어붙게 만들 수 있다. 선제적인 방역 뿐 아니라 막연한 공포를 다스리는 데도 신경을 써야하는 이유다.

문향만리…그리운 패총

그리운 패총 이지엽 하얗게 뼈만 남아 육탈된 시를 보러/ 백포만 주머니꼴 낮은 구릉 찾아 갔어/ 가볍게 목례를 하고 조의를 표했지/ 이미 화석 되어 켜켜이 쌓인 퇴적층 속/ 긁개와 돌창 든 사내 뒷모습이 외로웠어/ 손들어 웃는 모습이 낯선 변방 같았어 고인돌과 독무덤 사이 흘러간 수세기를/ 정을 비운 몸만으로 층층 쌓아 막아선들/ 어찌 다 적을 수 있을까 원시의 숲 눈먼 책들/ 껍데기가 집이 되고 나라가 되는 동안/ 깡마른 음계의 바람 같은 말씀이여/ 논물이 그리운 봄날, 재두루미 입술 묻는-『개화』, (목언예원, 2014) ................................................................................................ 이지엽은 전남 해남 출생으로 1982년 한국문학 신인상, 198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했다. 작품집으로 『씨앗의 힘』 『해남에서 온 편지』 『초록 생명의 꿈』 등이 있다. 패총은 사람이 먹은 조개의 빈 조개껍질이 바닷가나 호숫가에 퇴적되어 있는 유적을 말한다. 조개무지, 조개무덤이라고도 부른다. 패총은 생활유적이기 때문에 조개껍질 이외에 토기, 석기도 출토되지만 조개껍질의 칼슘성분이 토양을 중화하여 유기 성분의 고고유물을 보호해주기 때문에 사람의 뼈, 동물의 뼈, 골각기 등이 다수 출토되었다. 패총은 문자가 없었던 사회를 연구하는 사료로서 중요시 되고 있다. 화자는 백포만을 찾아가서 패총 앞에서 느낀 소회를 노래하고 있다. 그곳에는 시가 있고, 옛사람들의 그림자가, 말소리가, 눈웃음이 어른거리는 곳이기도 하다. 세월을 한참이나 거슬러 올라가서 그 시대에 살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 만하다. 사내 뒷모습도 보고 원시의 숲 눈먼 책들도 바라보면서 이 시대의 삶을 잠시 반추할 수도 있겠다.이 시조는 화법이 독특하다. 갔어, 표했지, 외로웠어, 같았어와 같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으로 친근하게 전개되고 있다. 또한 보이는 것만을 그리고 있지 않고 상상력을 한껏 동원하여 여러 가지 장면들을 실감실정으로 제시함으로써 독자가 시 속에서 자유자재로 활보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준다. ‘그리운 패총’은 이처럼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시 세계를 펼쳐 보인다. 하얗게 뼈만 남아 육탈된 시를 보러 백포만 주머니꼴 낮은 구릉 찾아 가서 가볍게 목례를 하고 조의를 표했지라는 첫 수가 청자의 귀를 솔깃하게 하고 시각적으로도 두 눈에 쏙 들어오게 한다. 그곳은 이미 화석 되어 켜켜이 쌓인 퇴적층 속이기에 긁개와 돌창 든 사내 뒷모습이 외로웠고, 손들어 웃는 모습이 낯선 변방 같았을 것이다. 그리고 고인돌과 독무덤 사이 흘러간 수세기를 정을 비운 몸만으로 층층 쌓아 막아선들 어찌 다 적을 수 있을까 원시의 숲 눈먼 책들이라는 대목에서 상상력은 작동된다.껍데기가 집이 되고 나라가 되는 동안 깡마른 음계의 바람 같은 말씀이여라고 속으로 가만히 외치면서 논물이 그리운 봄날, 재두루미 입술 묻는다는 장면의 제시로 끝맺고 있다. 비교적 긴 시에서 마무리가 묘하다. 흔히 끝부분에서 실패하는 시를 더러 보는데, ‘그리운 패총’은 끝줄이 미완의 문장이지만 시의 결구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하나의 모델을 보여주고 있다. 논물이 그리운 봄날, 재두루미가 입술을 묻을 때 봄을 맞은 이들은 살랑바람에 눈을 씻으며 카랑한 하늘을 우러를 것이다. 패총을 이루던 그 때 그 사람들처럼. 이정환(시조 시인)

‘교통문화지수’ 전국 최하위권…이대로 둘건가

대구와 경북의 교통문화지수가 전국 최하위권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대구는 전국 17개 시·도 중 13위에 머물렀다. 전년 3위를 기록한 뒤 불과 1년 만에 10단계나 추락했다. 종합평가 점수도 76.52점으로 전년의 78.92점보다 2.4점 하락했다.경북은 전국 최하위인 17위로 전년의 16위보다 1단계가 더 낮아졌다. 다만 경북의 평가 점수는 74.69점으로 전년의 73.37점보다 1.32점 높아졌다.교통문화지수가 급격하게 낮아진 대구의 경우 특히 보행 행태에서 여러가지 문제가 드러났다. 항목별로는 횡단보도 신호 준수율 전국 15위(88.39%), 횡단보도 스마트기기 사용률 16위(20.02%), 도로 무단횡단 빈도 16위(34.20%) 등으로 낮은 평가를 받았다. 또 규정속도 위반 빈도 14위(48.70%), 방향 지시등 점등률 13위(67.55%) 등이었다.구·군 별로는 중구와 동구가 전국 69개 구 그룹 중 최하위권인 E등급이었다. 순위는 중구 69위, 동구 66위였다.경북은 횡단보도 신호 준수율 17위(86.37%), 횡단보도 스마트기기 사용률 10위(13.24%), 도로 무단횡단 빈도 7위(31.54%) 등으로 나타났다. 또 규정속도 위반 빈도 17위(50.74%), 방향 지시등 점등률 16위(63.13%)였다.경북은 인구 30만 미만 시 그룹(49개)에서 E등급(하위 10%)에 안동시와 문경시가 포함됐다. 또 군 그룹(80개)에서는 칠곡군과 청송군이 E등급으로 분류됐다.이와 함께 대구에서는 소방시설 주정차 금지구역 지정 제도가 시행 10개월이 지나도록 실질적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국의 홍보 미흡과 함께 시민의식 부족 등이 겹친 탓으로 분석된다.새로운 제도는 소방시설 인근 도로의 경계석과 차선을 빨간색으로 칠해 주정차 금지를 표시하고 있다. 그러나 481곳 중 안내 표지판이 설치된 곳은 절반도 안되는 237곳에 불과하다.인근 거주자들도 무슨 표시인지 몰라 궁금해 할 때가 많다는 것이 시민들의 반응이다. 교통안전 시설을 설치만 하고 사후관리는 전혀 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대구의 교통문화지수가 불과 1년 만에 10단계나 하락했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원인분석이 시급하다. 경북이 계속해서 전국 최하위권에 머무는 것도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도로·교통 여건을 개선하지 않고 규정만 준수하라고 강요하면 시민들을 교통법규 위반자가 되도록 강요하는 것과 다름 없다. 미흡한 여건이 시민들로 하여금 교통질서 규범을 지키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손경찬 공동칼럼…선현의 올곧은 가르침

손경찬대구예총 정책기획단장·시인새해 들어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올해는 정초부터 고향 발걸음이 바쁘다. 태국에서 사업하는 지인이 동해안의 미항(美港)인 축산항 바다가 훤히 보이는 좋은 터에 별장을 짓겠다고 하여 그 진척을 확인하기 위해 고향에 자주 내려갔다. 지난주에도 고향에서 일을 마친 뒤에 이왕 온 터라 어릴 때 살던 영덕 병곡 백석리와 그 앞에서 펼쳐진 명사 이십리 고래불 해변을 걸었다. 겨울 고래불은 한산하지만 밀려오는 파도 속에서 옛일들이 하나둘씩 떠오른다.그 사이 강산이 다섯 번 바뀔 정도의 오랜 세월은 지났지만 내 마음에 비쳐나는 고래불 풍경은 예전 그대로이다. 가까이 보이는 바다풍경이나 저 멀리보이는 산세는 그때와 비교해도 변함이 없다. 울음 우는 갈매기 소리나 파도가 밀려와서는 흰 포말을 가르는 모습은 아무리 보아도 지겹지 않다. 고래불 해변은 내 젊은 한때 고생하던 시절이 낭만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고, 또 이곳이 고려말 대학자 목은 이색 선생의 자취가 묻어나기 때문이기도 하다.젊은 시절 필자는 고래불 해변에서, 지금은 자수성가해 훌륭한 기업인이 된 친구와 함께 여름한철 장사를 하면서 고생했던 추억이 새롭다. 그때는 회를 팔고 파라솔을 빌려주며 또 해수욕객들의 인명을 구하는 등 청춘을 바쳐 일했지만 당장 먹고 살기 위해 이 장사를 그만하고 장래를 위해서는 고래불을 떠나야지 생각이 많았던, 그 시절을 회상하면서 그리움 속을 쫓는다.‘고래불’은 고려삼은(三隱)의 한 분이신 목은 이색 선생의 말에서 연유됐다고 한다. 영해 괴시리가 외가인 이색 선생은 괴시리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이곳에서 보냈다. 유년 시절 고래불 맞은편 산으로 올라가서 동해바다를 볼 때에 고래 떼를 보고, 또 고래가 물을 뿜는 모습을 보고서는 ‘고래뿔’이라고 해서 이곳 지명이 고래불이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도 동해 영덕 앞바다에서 밍크 고래 무리들이 출현한다고 하는데, 예전에도 영해 앞바다, 이곳에서 고래가 많이 서식하고 유영했음을 알 수 있고 이색 선생은 ‘관어대부’를 노래했다.‘목은시고’ 권1에 실려 있는 관어대부 서(序)에는 ‘관어대는 영해부(寧海府)에 있는데, 동해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어 바위절벽 밑에 유영하는 물고기들을 셀 수 있어 관어대라고 부르는 것이다. 영해부는 나의 외가가 있는 곳인데, 중원(中原)에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소부를 짓는다’ 고 밝혔다.이어지는 문장에서는 ‘영해의 동쪽 언덕, 일본의 서쪽 물가에는 큰 파도만 아득하고 그 나머지는 알 수가 없구나. 물결이 움직이면 산이 무너지는 듯하고, 물결이 잠잠하면 닦아 놓은 거울 같도다. 바람 귀신이 풀무로 삼는 곳이요, 바다 귀신이 집으로 삼은 곳이라. 고래들이 떼 지어 놀면 기세가 창공을 뒤흔들고 사나운 새 외로이 날면 그림자 저녁놀에 잇닿네. 관어대가 굽어보고 있으니 눈에는 땅이 보이지 않는구나…(이하 생략)’관어대소부에서 이색 선생은 고래의 유영 모습을 보면서 자연의 이치를 떠올려 ’모든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파고 들어가면 앎에 이른다’는 격물치지를 역설했던 것이다.이색 선생은 ‘관어대소부’에서 주 문왕의 시 ‘어인’에 숨겨진 중용의 큰 뜻을 말하고 있다. 자신이 관어대에서 물고기들이 노니는 모습을 지켜보며 ‘어인’을 상기했고, 빠른 물고기든 느린 물고기든 다 하늘의 이치에 따라 나름의 세상살이를 하고 있음을 보았다는 얘기다. 한 마디로 자연의 이치에 모든 답이 들어있다는 게 목은 이색 선생의 가르침이다.우리사회의 정치·경제·사회 등 모든 면에서 정도(正道)가 제 자리를 찾지 못해 국민 불만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현실이다. 요즘처럼 세상일이 답답하고 어지러울 때 고래불을 찾아와 고생하던 때를 떠올리고 또 고향의 대표적인 옛 선현의 올곧은 가르침을 곱씹어 본다.

문향만리…역천

역천(逆天) / 이상화이 때야말로 이 나라의 보배로운 가을철이다/ 더구나 그림도 같고 꿈과도 같은 좋은 밤이다/ 초가을 열나흘 밤 열푸른 유리로 천정을 한 밤/ 거기서 달은 마중 왔다 얼굴을 쳐들고 별은 기다린다 눈짓을 한다/ 그리고 실낱같은 바람은 길을 끄으려 바래노라 이따금 성화를 하지 않은가.// 그러나 나는 오늘밤에 좋아라 가고프지가 않다/ 아니다 나는 오늘밤에 좋아라 보고프지도 않다.// 이런 때 이런 밤 이 나라까지 복 지게 보이는 저편 하늘을/ 햇살이 못 쪼이는 그 땅에 나서 가슴 밑바닥으로 못 웃어 본 나는 선뜻만 보아도/ 철모르는 나의 마음 홀아비자식 아비를 따르듯 불 본 나비가 되어/ 꾀우는 얼굴과 같은 달에게로 웃는 이빨 같은 별에게로/ 앞도 모르고 뒤도 모르고 곤두치듯 줄달음질을 쳐서가더니.// 그리하여 지금 내가 어데서 무엇 때문에 이 짓을 하는지/ 그것조차 잊고서도 낮이나 밤이나 노닐 것이 두려웁다.// 걸림 없이 사는 듯 하면서도 걸림뿐인 사람의 세상/ 아름다운 때가 오면 아름다운 그때와 어울려 한 뭉텅이가 못 되어지는 이 살이/ 꿈과도 같고 그림 같고 어린이 마음 위와 같은 나라가 있어/아무리 불러도 멋대로 못 가고 생각조차 못 하게 지천을 떠는 이 설움/ 벙어리 같은 이 아픈 설움이 칡넝쿨같이 몇 날 몇 해나 얽히어 틀어진다.// 보아라 오늘밤에 하늘이 사람 배반하는 줄 알았다/ 아니다 오늘밤에 사람이 하늘 배반하는 줄도 알았다. (역천 전문).......................................................................................가을은 풍성한 계절이다. 비록 일제 식민치하이지만 가을엔 잠시나마 수확의 기쁨을 누린다. 땅은 비록 빼앗겼지만 하늘은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있다. 밤하늘을 맘껏 바라본다. 하늘을 빼앗기지 않고 온전히 바라 볼 수 있다는 사실은 다행이고 기쁨이다. 밤하늘엔 달과 별이 있어 좋다. 하늘조차 어둠으로 가득 찬 현실에선 달과 별을 노래할 수밖에 없다. 달과 별이 어두운 하늘에서 빛을 발하듯이 땅에서도 일제를 몰아내고 빛을 찾고 싶은 소망이 간절하다. 달이 마중 나오고 별이 기다리지만 오늘밤엔 가고 싶거나 보고 싶지 않다. 암울한 현실을 잊고 살까 두렵다. ‘보배로운 가을철’ 청명한 밤에 ‘열푸른 유리로 천정’을 한, 저편 하늘이 복 지게 보인다. ‘햇살이 못 쪼이는 이 땅에서 나의 가슴 밑바닥으로 못 웃어본’ 시인은 햇살 가득 쪼이는 땅에서 마음껏 웃어보고 싶다. 달과 별에게 줄달음질을 치고 싶다. 한편 현실을 외면하고 꿈속에 살까 두렵다. 환한 달과 반짝이는 별 그리고 실낱같은 한줄기 바람조차도 늘 아름다울 수만은 없다. ‘걸림뿐인 사람의 세상’에서 ‘어울려 한 뭉텅이가 못 되어지는’ 아픔이 가슴을 저민다. 엄혹한 현실과 아름다운 이상 사이에서 갈등하는 시인의 모습이 처연하다. 자아와 비아의 괴리일 수 있다. 불러도 가지 못하고 생각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설움이 칡넝쿨처럼 얽혀 틀어진다. 역정이 불쑥 치솟는다. 하늘과 사람이 호응하지 못하고 서로 배반하는 암울한 식민지 상황은 하늘을 거스르는 죄악이다.시대정신을 이해하지 않고는 시를 제대로 감상할 수 없다. 〈역천〉을 바르게 감상하기 위해선 일제 식민치하를 잘 알아야 한다. 일제가 세력을 떨치고 있던 당시 시대상황에서 광복은 요원한 이상이자 꿈이었다. 달이 마중 나오고 별이 손짓을 하더라도 선뜻 달려갈 마음이 생기지 않는 시인의 처지가 당시 우리민족이 처한 암담한 상황이었다. 절망 중에 빛을 찾기 위해 날카로운 글을 날렸던 시인의 고귀한 정신이 〈역천〉으로 새롭게 다가온다.오철환(문인)

중국말 하는 대만관광객은 귀한 손님

중국말 하는 대만관광객은 귀한 손님오용수대구관광뷰로 대표이사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확진자가 4만 명, 사망자도 900명을 넘었다. 한편 일본 요코하마항에 정박 중인 크루즈 승객 감염자도 130여 명에 이른다. 싱가포르는 국제회의 참석자, 태국은 중국관광객을 통한 감염으로 확진자가 많고, 중국과 이웃한 대만과 베트남이 오히려 덜한 편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중국과 교역이나 여행을 금지하지 말도록 권해도,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중국 방문자의 입국을 막고 있다.우리나라도 10일 현재 27명의 확진자가 발생하였는데, 2, 3차 감염자들의 감염 경로도 중국 이외 제3국 등 복잡하고, 동선도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또 이들이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다중 시설도 들렸다. 확진자가 방문한 백화점, 면세점, 호텔, 극장, 음식점 등이 즉각 자진 휴업하는 일이 줄을 잇게 되었다. 자연 국민의 불안은 점점 높아져서 중국어만 사용하면 피하는 경향이 생겨났다. 그런데 대구를 찾는 외국인의 43%가 대만관광객이고, 중국관광객은 9%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단체관광객은 한한령(限韓令)으로 막혀있고, 학생교류단체들도 모두 취소되었다. 그래서 대구에서 중국어로 말하는 사람은 거의 대만인으로 여겨도 된다.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이 크게 보도되기 시작한 설 연휴가 끝난 직후, 대구를 찾은 대만관광객이 숙소와 음식점에서 중국말을 하자, 이때 들어온 한국인 고객이 음식점을 나가버리거나, 숙박을 취소하고 환불을 요구하였다. 이에 업소 주인이 대만인에게 나가주도록 요청한 일이 생겼다. 또 체험장에 온 대만관광객 중 한 사람이 자주 기침을 하자, 중국어를 모르는 주방 종업원이 일을 그만두고 나가버렸다. 부득이 한국인만 맞이하다가, 대만관광객의 필수 코스가 되도록 적극 협력해준 거래처에 신뢰를 유지하고, 고객들에게 실망을 주지 않기 위해 업체 대표가 손실을 보더라도 외국인 관광객을 다시 받기로 했다.관광·항공업계는 한파에 떨고 있다. 여행사를 찾는 전화 예약은 없고, 대부분 취소 전화다. 숙박업, 테마파크도 비슷한 상황이다. 항공사도 지난해 일본노선이 대폭 축소되었는데, 이번에 중국노선까지 중단되고, 다른 노선도 빈자리가 많게 운항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무급 휴가를 보내는 등 긴축경영을 하고 있다. 이 시기에 대구·경북으로 찾아오는 손님은 각별히 따뜻하게 맞아줘야 한다. 관광업계 종사자뿐만 아니라 모두가 열린 마음으로 나서야 한다. 물론 안전이 최우선이지만, 아직 대구·경북에는 확진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대구시민은 경북으로, 경북도민은 대구로 품앗이관광이라도 조심스럽게 시도해 보자. 대부분 다중 시설의 손님이 줄었지만, 동성로의 새로운 명물 관람차는 예상보다 찾는 이가 많다. 오랫동안 내려오는 대보름축제를 우리는 취소하는데, 대만은 개최했다. 피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철저히 준비하고 슬기롭게 대처하자. 쉬운 길을 두고 험난한 길을 택하는 이에게 격려와 조언이 필요하다.사스 때 관광업계가 가장 힘들었다. 그때도 6개월가량 영향을 받았는데, 이번에도 의료계에서는 여름이 되면 끝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전망한다. 물론 조금 빠를 수도 있고 늦을 수도 있지만, 분명 끝은 있다. 우리는 그때를 대비하여 착실히 준비하자. 지금은 해외보다는 국내관광이 나은 편이다. 또 해외관광도 대만, 일본 등 주력시장은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동남아 중에서도 베트남 등은 확진자가 적은 편이다. 그리고 중국관광객도 언젠가는 다시 돌아 올 것이다. 그때를 대비하여 관계를 유지하자. 누구든 어려울 때 도와준 친구를 잊지 않는 법이다.이번 기회에 질병 예방과 국제 예절에 맞도록 생활습관도 바꿔보자. 첫째, 기침이 나면 실내외 어디서나 마스크를 착용하고, 마스크가 없을 때는 옷소매로 입을 가리자. 자신도 지키지만 남을 배려하기 위함이다. 둘째 음식을 여러 사람이 와도 한 접시로 주기보다 개인별로 제공하자. 부득이하면 앞접시를 이용하여 각자 덜어서 먹도록 하자. 술잔 돌리기도 이미 사라지지 않았는가. 셋째 병이 퍼질 때는 될 수 있으면 악수 등 신체접촉은 피하고 눈인사로 바꾸자. 언제부터인가 인사를 덜하는 경향이 있다. 타인이라도 가벼운 인사는 사람을 기쁘게 한다.

우한 폐렴, 2·3차 감염 방지가 관건

국내에서 우한 폐렴(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환자 3명이 추가 발생했다. 중앙방역대책본부는 9일 국내 확진자가 27명으로 늘었다고 밝혔다. 이 중 3명이 완치돼 퇴원, 격리병상에서 입원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는 모두 22명이다. 추가 확인된 3명의 환자는 73세 한국인 여성과 중국 광둥성을 방문했던 아들 부부다.9일 현재 우한 폐렴 누적 사망자 수는 811명을 기록,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사망자 수 774명을 훌쩍 넘어섰다. 누적 확진자는 중국 본토 3만7천198명을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3만7천500여 명에 달한다. 하지만 후베이성을 제외한 중국 다른 지역의 확진자 증가세는 주춤하고 있다.9일 3명의 추가 확진자가 발생했지만 지역 확산은 진정세다. 우한 폐렴 17번째 확진자와 접촉했던 대구·경북 거주 25명은 그동안 별다른 이상이 없어 자가 격리 조치를 종료했다. 불안해하던 지역민들이 안도하게 됐다.하지만 중국 위생방역 당국이 9일 우한 폐렴이 공기 중 입자로도 전염 가능하다고 경고하고 나서 감염 위험이 높아졌다. 이 경우 사회활동도 제약받을 수밖에 없다.특히 싱가포르에서 열린 콘퍼런스에 참석했다가 확진 판정을 받은 17, 19번 확진자에 이어 영국·말레이시아·싱가포르인 각 1명 등 9일 현재 모두 5명으로 늘었다. 이들은 콘퍼런스에 참석했던 후베이성 거주자에게서 전염된 것으로 관측된다.이날 오전 25번째 환자가 발생한 데 이어 오후 아들(51·남)과 며느리(37·여·중국인)가 26, 27번째 환자로 추가 확인됐다. 이들은 지난해 11월 중국 광둥성을 방문한 후 지난달 31일 귀국했다. 이날 검사에서 양성으로 확인됐다. 이들 3명은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에서 격리 치료 중이다. 중국에 간 적이 없는 25번 확진자는 며느리에게서 2차 감염된 사례다.일본 연구진이 9일 우한 폐렴 감염자의 절반 이상은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잠복기 상태의 사람으로부터 바이러스가 옮았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와 주목된다.급격 확산세는 주춤하는 양상이지만 경계심을 늦춰서는 안 된다. 에어로졸 형태로 전파될 수 있다고 하니 일상생활 증 공기 감염도 조심해야 할 상황이다. 보건 당국은 2·3차 감염 방지를 위해 감염 경로 확인 및 확진자 동선 파악 등 배전의 노력을 쏟기 바란다.또한 내외국인 입국자에 대한 검역 및 감시를 더욱 철저히 해 만에 하나라도 일어날 수 있는 사태는 없도록 해야 한다. 국민들의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한 예방과 홍보에 신경 써 주길 바란다. 더 이상 확산은 막아야 한다.

문향만리…화장

화장/김훈제목인 화장은 화장(化粧)과 화장(火葬)을 교묘하게 버무린 것으로 삶의 무거움과 가벼움을 단번에 합성시킨 절묘한 장치다. 소설 〈화장〉은 비장할 정도로 잔혹하다. 사그라지는 여체의 적나라한 묘사는 눈을 돌리고 싶을 정도다. 싱싱한 여체에 대한 자제력은 오히려 여운을 길게 남긴다. 별다른 기복이나 드라마틱한 전환이 없는데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독자를 끝까지 끌고 간다. 작가의 상상력은 실존적 의미와 형이상학적 세계를 두루 섭렵하고 있다. 치밀한 설계와 탄탄한 문장이 돋보이는 수작이다.주인공 ‘나’는 국내 제일의 화장품회사 실세 상무다. 오 상무는 오십대 중반의 나이지만 도뇨관에 의지해 소변을 봐야 할 정도로 심각한 전립선염에 시달린다. 아내는 뇌종양에 걸려 2년 동안 세 번의 수술을 받고 병원에서 투병하고 있다. 아내는 잡지사 여기자였다. 아내가 벌어온 돈으로 대학원을 다녔다. 화장품회사 말단사원으로 취직해서 상무까지 승진한 배후에 내조가 없었다 할 수 없다. 단칸방에서 시작해서 10억짜리 단독주택에 살고 있으니 그런대로 잘 풀린 삶이다. 5년 전 입사한 여사원, 추은주를 마음에 두고 연모한 걸 제외하면 부부 금슬도 나쁘지 않다. 투병 중인 아내에게 남편으로서 성실히 간호하고 정성껏 뒷바라지하였다. 몸이 추악하게 변하고 선똥을 수시로 지리는 아내를 눈살 한번 찌푸리지 않고 손수 목욕을 시켜주기도 했다. 추은주에 대한 연모와 욕망으로 헛된 상상에 사로잡히긴 했지만 글로써 뜨거운 감정을 애써 달랬다. 추은주를 여신으로 상정하고 3인칭 경어체 글을 쓰는 까닭도 주체할 수 없는 욕정을 다스리려는 눈물겨운 몸부림에 다름 아니다.“당신의 이름은 추은주. 제가 당신의 이름으로 당신을 부를 때, 당신은 당신의 이름으로 불린 그 사람인가요. 당신에게 들리지 않는 당신의 이름이, 추은주, 당신의 이름인지요.”수치심과 고통으로 괴로워하던 아내는 죽음에 온순히 투항했다. 아내가 키우던 개도 안락사 시켰다. 딸은 약혼자를 따라 뉴욕으로 떠났고, 여신 추은주는 회사를 사직하고 외무공무원인 남편과 함께 워싱턴으로 갔다. 그동안 고심해왔던 광고콘셉트도 ‘가벼움’으로 정리되었다. 그날 밤, 오 상무는 모든 의식이 허물어져 내리고 증발해버리는, 깊고 깊은 잠을 잤다.진화 이전의 본능은 끈질긴 생명력을 발휘한다. 규범과 도덕률로 촘촘하게 짜인 질서에 쉽게 길들여지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이끌림을 뿌리치지 못하고 욕망에 따라 일탈하기도 한다. 수컷이 처음 보는 싱싱한 암컷에게 눈이 가지 않으면 죽을 때가 되었다는 말이다. 오 상무라 해서 예외일순 없다. 정신은 몸에 얽매이지 않은 지라 자칫하면 감당하지 못할 과욕을 부리기 십상이다. 극심한 전립선염으로 여자를 감당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선 눈길은 가고 마음은 타오르지만 마냥 본능을 쫓을 계제는 아니다. 여신은 어쩌면 대체재다. 무거운 몸이 도뇨관으로 소변을 배출하여 가벼워지듯 시든 얼굴은 화장품으로 화장을 하여 가벼워진다. 화장품 광고 콘셉트가 가벼움으로 가는 이유다. 여신으로 연모한 추은주도 가고 아내의 화신인 딸도 간다. 세월의 어둠과 무거움을 화장으로 가려 밝음과 가벼움을 잠시 누릴 수 있지만 결국 어둠과 무거움을 이기지 못하고 화장될 운명인 것이 인생이다. 생산능력이 있는 여신과 딸이 햇빛 아래 빛나는 삶의 표상이라면 뇌종양에 쓰러진 아내와 전립선염에 시달리는 오 상무는 묵직한 죽음의 실루엣이다. 세월에 어찌 맞서랴. 오철환(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