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날의 칼 태풍

양날의 칼 태풍전준항대구지방기상청장 어느덧 아침, 저녁으로 쌀쌀한 바람이 불어오고 이번주 내내 비까지 내리면서 계절이 가을로 갑자기 바뀐 듯 하다. 불과 얼마 전까지 폭염으로 전국이 찜통 안에 들어와 있는 듯 했는데 이러한 한여름 동안의 폭염으로 인해 사람들도 힘들지만, 바다 생물도 피해가 크다. 폭염에 따른 바다 수온 상승으로 적조가 번식하기 좋은 환경이 되면서 바다해안에 적조가 급속도로 퍼져 피해가 눈덩이처럼 늘어날 뿐 아니라 태풍 등 외부 요인이 없다면 적조는 가을까지도 계속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양식업에 종사하는 어민들은 답답한 마음에 태풍을 바라기도 한다. 어민들은 적조를 날려줄 태풍을, 더위에 지친 사람들은 더위를 날려줄 태풍을 원하지만 이제까지 우리에게 준 피해를 생각하면 태풍은 반가운 손님은 아니다. 이렇듯 양날의 칼과 같은 태풍, 과연 올해 가을에도 계속 영향을 줄 것인가?우선 태풍은 적도부근의 평균 해수면 온도가 27℃ 이상인 곳에서 주로 발생하는 열대성 저기압으로 따뜻한 해면으로부터의 에너지원 공급과 전향력이 있어야 하므로 적도부근에서는 발생하지 않고 북위 5°~15° 부근 해상에서 발생하며, 북상하면서 점차 발달하게 되는데 중심부근 최대풍속이 초속 17m/s 이상이 넘어서면 태풍으로 이름이 지어진다. 태풍은 연중 발생하지만 7월에서 10월 사이에 주로 우리나라에 영향을 주며 특히, 8월에서 9월 사이에는 평균적으로 10개의 태풍이 발생하여 그중 2~3개정도가 우리나라에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올해도 벌써 14개의 태풍이 발생하여 8월에는 3개(5호 ‘다나스’, 9호 ‘레끼마’, 10호 ‘크로사’)의 태풍이 우리나라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었고, 8호 태풍 ‘프란시스코’는 상륙하여 지나갔던 것처럼 4개의 태풍이 직, 간접적으로 피해를 주었다.태풍은 주로 북태평양고기압 가장자리를 타고 올라오는데 특히, 9월과 10월에는 북태평양고기압이 수축하여 태풍이 그 경계를 따라 남해상이나 대한해협을 지나는 경로를 따를 수 있기 때문에 경상도 지역에 피해를 주기도 한다.폭염이라는 산을 하나 넘었더니 태풍이라는 더 큰 산을 만나는 격인데, 강한 바람과 많은 비를 포함한 태풍은 우리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늘 해로운 것만은 아니다.태풍은 저위도지방의 열기를 고위도 지방으로 이동시켜 열적균형을 유지시켜주고 가뭄을 해소시켜주는 단비가 되기도 한다. 또한 큰 파도로 인해 바닷물이 아래위로 뒤섞여 신선한 공기를 바닷 속으로 밀어 넣어서 산소와 플랑크톤을 풍부하게 하여 태풍이 지나간 후에는 어민들에게 풍어의 기쁨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녹조현상을 일거에 해소시켜주는 순기능도 있다.한 예로 1994년 여름도 유난히 덥고 가뭄이 극심했었는데, 그해 8월에 내습한 태풍 ‘더그(Doug)'로 더위를 식혀주고 가뭄도 해갈 시켜 줬었다. 또한 해수를 뒤섞어 순환시킴으로써 플랑크톤을 용승 분해시켜 바다 생태계를 활성화 시키는 역할을 하여 심한 적조현상을 해결해 준 고마운 태풍으로 기록되어 있다.기상청에서는 태풍의 효율적인 예보를 위해 제주도에 국가태풍센터를 설치하여 태풍 예보를 하고 있는데 더욱 더 자세한 정보제공을 위한 ‘태풍 상세정보 서비스’를 2019년 3월부터 정식 운영하고 있다. 곡선진로에 기반한 지역별 태풍 최근접 예상정보, 강풍·폭풍반경 5일 예보, 태풍 강도 “약” 명칭 삭제, 개선된 진로예보 확률반경, 태풍종료 시점 풍속정보 제공 등 태풍정보를 보다 쉽고 자세하게 전달하여 태풍 정보의 활용도를 높임으로써 재해관련기관과 전 국민이 위험기상을 사전에 대비할 수 있도록 도움되기를 기대한다.하지만 태풍은 물론 호우, 대설 등 자연재해는 국민들이 미리 대비하고 철저한 준비를 해도 피해를 완전히 줄일 수는 없다. 다만 많은 준비와 대비를 함으로써 국민들의 소중한 재산과 소중한 인명피해를 상당량 줄일 수 있다고 본다.따라서, 태풍이 접근할 시에는 기상상황과 태풍 상세정보에 계속 관심을 가져야 한다. 가정에서는 비상식량 등을 확보해야하고, 축대나 담장이 무너질 염려가 없는지, 간판이나 비닐하우스 등이 바람에 날아갈 우려는 없는지 확인을 해야 한다. 또한, 바람과 함께 폭우가 동반되므로 상습침수지역 주민은 안전한 장소로 미리 대피해야 한다. 그리고 하천 둔치에 주차된 자동차는 안전한 곳으로 옮겨놓아야 하며, 해안가에서는 선박을 단단하게 고정시키고, 해일에 대비해서 방파제 및 축대를 점검해야 한다. 위험구역과 해안도로 구간에 대해서는 차량통행을 제한하는 등 국민모두가 태풍에 철저히 대비하는 유비무환의 정신을 가져야 태풍에 의한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권영진 대구시장 ‘1인 시위’가 말해주는 여론

권영진 대구시장이 4일 아침 중구 2·28기념중앙공원에서 이틀째 빗속 1인 시위를 이어갔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임명에 반대하는 시위다. 대구시장이 아닌 대한민국 국민의 자격으로 나섰다고 했다. 피켓에는 ‘국민 모욕, 민주주의 부정 셀프청문회 규탄! 조국 임명 반대’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광역자치단체장이 1인 피켓시위에 나선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얼마나 많은 고민 끝에 나섰겠나 하는 마음이 든다. 그는 “조국 후보자의 기자간담회를 보니 ‘어떻게 저렇게까지 할 수 있나’ 라는 생각이 들어 3일 새벽 시위를 결심했다”고 밝혔다.또 “임명을 강행할 경우 국민들이 느껴야 할 좌절과 상실, 정치권이 정쟁으로 지새울 것을 생각하니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절규하고 호소하는 일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이어 “정치적 부담을 느끼지만 할 말은 해야겠다. 대통령과 여당이 조금이라도 귀를 기울이면 나라가 이렇게 어렵지 않을텐데라는 기분으로 이자리에 서게 됐다”고 덧붙였다.매일 아침 출근 전 1시간씩 국민들을 위로하고 대통령과 정치권이 민심에 부응하는 결정을 할 수 있도록 호소하는 심정으로 시위를 이어갈 것이라고 했다.임명에 반대하는 다수 국민들의 여론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대통령은 3일 오후 조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 경과보고서를 6일까지 송부해달라고 국회에 재요청했다.이후 여야는 4일 오후 국회 청문회를 6일 개최하는데 가까스로 합의했다. 그러나 청문회가 계획대로 열릴 수 있을지, 또 열리더라도 정상적 진행이 가능할지는 아직 미지수다.조 후보자와 관련해 제기된 숱한 의혹은 국민적 소명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다. 청문회를 거치더라도 국민 여론이 첨예하게 갈라지는 국론 분열은 불가피할 전망이다.지역민의 다수 의견은 임명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역민을 대표하는 시장이 지역민의 의사를 대변하고 나서는 것은 당연하다. 또 국가의 앞날을 걱정하는 충정에도 이견이 없다.자치단체장도 투표를 통해 당선된 정치인이다. 하지만 특정 사안에 1인 시위라는 구체적 행동에 나선 것은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4일 지역의 더불어민주당 당직자가 권 시장 바로 옆에서 1인 피켓 맞불시위에 나섰다.권 시장 의도와 달리 1대1 찬반 구도가 돼 버렸다. 모양새가 나쁘다. 정치권 인사들이 자주 사용하는 1인 시위라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 운신의 폭을 좁힐 수도 있다.시장의 행동은 시민의 대표답게 진중해야 한다. 다수의 시민은 1인 시위에 나선 권 시장의 뜻에 공감할 것이다. 자치단체장의 의견 표출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준이면 족하다고 본다.

농촌 고령화와 농지연금

농촌 고령화와 농지연금김태원한국농어촌공사 영덕·울진지사장 고령농업인들의 농업경쟁력은 점차 감소하여 농업소득만으로는 노후를 지탱하기 힘들고, 더욱이 국민연금⋅주택연금제도의 사각지대로 사회 안정망마저 부족한 실정이다.이러한 농촌 현실을 감안하여 2011년부터 한국농어촌공사는 소유농지를 담보로 매월 연금형태로 노후생활 안정자금을 지급하는 농지연금을 도입 시행하고 있다.농지연금은 개인연금과 미비한 공적연금만으로는 생활자금이 부족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촌의 고령자들을 위해 공적연금제도를 보완할 수 있는 보충연금제도로서 매우 유용한 제도이다. 정부예산으로 실시하기 때문에 안정적이며, 해당 농지에서 농사를 짓거나 농지임대로 추가 소득을 얻을 수 있다.또한 농지연금 가입자는 담보농지에 대하여 재산세가 감면된다. 노후생활안정자금을 지원받기 위하여 담보로 제공된 농지에 대하여 토지공시가격이 6억 원 이하인 농지의 경우에는 재산세를 면제하고 6억 원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초과금액에 대한 재산세만 부과한다.농지연금의 가입조건은 농지를 소유한 만65세 이상 농업인이며, 영농경력은 전체 영농기간을 합산하여 5년 이상이면 된다. 가입당시 배우자가 60세 이상이라면 배우자 승계형으로 가입하여 본인 사망 이후 배우자에게 연금 승계도 가능하다. 농지연금의 지급 방식에는 생존하는 동안 매월 지급되는 ‘종신형’과 일정기간(5/10/15년)동안 매월 지급되는 ‘기간형’이 있다.연금 상환액은 담보농지 처분가격 범위 내로 한정된다. 사망시 담보농지를 처분하고 남은 금액은 상속인에게 돌려주고, 부족한 금액이 있어도 상속인에게 청구하지 않으므로 기존 금융기관의 대출과는 차별되는 제도이다. 현재 전국적으로 1만여 명 이상이 가입하여 노후대비에 농지연금을 활용하고 있다.이러한 농지연금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고령농업인들이 선뜻 가입 결정을 내리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인다. 전통적 생활방식인 자녀에게 소유농지를 물려줘야 한다는 관념과 미래농지처분여부에 대한 고민 등으로 망설이는 경우가 있다.농지연금제도는 고령화시대의 친서민 복지정책으로 고령농업인들의 안정적인 노후를 보장하는 세계 최초의 한국형 농업인 복지제도이다. 농지연금을 통해 농촌의 어르신들이 자녀들에게 의지하지 않고 떳떳하게 노후생활자금을 마련할 수 있고, 임대소득이나 농업소득도 올릴 수 있어 노후생활이 한층 더 윤택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새로운 질병과 백년대계

새로운 질병과 백년대계이부형현대경제연구원 이사이제 11년만 지나면 케인즈가 ‘새로운 질병’이라며 기술적 실업 이야기를 꺼내든지 딱 100년이 된다. 1930년에 케인즈가 ‘우리 손자들의 경제적 가능성’에서 기술적 실업이란 노동 절약형 기술의 발전이 가져온 실업을 말한다. 새삼스럽게 100년이 다 되어가는 이야기를 꺼낸 것은 지난 몇 년간 한창이던 어떤 논란이 어느덧 사라져 버려 국가 백년대계인 인적자본에 대한 대안을 찾고자 하는 노력이 보이지 않아서다.이는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고용시장의 변화에 관한 것이다. 얼마 전 우리는 4차 산업혁명으로 머지않아 국내 노동자의 70%가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며, 스마트기계가 종업원보다 많은 회사가 절반을 넘게 되면서 실업이 급증하리라는 등 전형적인 기술적 실업에 의한 일자리 위기설을 자주 접했다. 하지만, 최근 이런 위기설은 자취를 감췄다.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역사적으로 극단적인 경제 위기 상황이 아니라면 대규모 실업이 발생한 적이 없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기보다는 이제 4차 산업혁명에 뒤처져서는 국가의 명운이 없다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 잡았기 때문인 것 같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 과정에서 중요한 두 가지를 놓치고 있는 것 같다.우선 만약에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그 와중에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노동생산성의 극적인 향상으로 노동 절약 정도가 아니 노동 대체 정도가 상상보다 훨씬 빨라진다면 일자리 위기설은 언제든 실현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예를 들어, 우리는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농촌의 과잉 노동력이 도시 혹은 공장 노동자로, 기술적 실업 상태에 있는 자들이 서비스 일자리로 빠르게 편입되면서 과도한 실업을 회피한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만약 이런 일이 없었다고 가정해보라. 산업혁명에 따르는 기계화로 실업과 저임금 하의 생활고를 겪던 노동자가 러다이트운동(Luddite Movement)이라 불리는 기계파괴운동을 벌이고, 정부가 이를 강압적으로 진압하는 등 19세기 초반 영국이 보여줬던 극심한 사회적 혼란 이상을 겪어야 했을지 모를 일이다.다음으로 이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4차 산업혁명의 성공뿐 아니라 이를 통한 국가경쟁력 확보 차원에서도 인적자본의 육성과 활용이 매우 중요한데 이러한 논의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토지나 원재료와 같은 자원, 장치와 설비 등의 자본, 표준화된 노동력을 경쟁기반으로 삼아왔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 시대는 AI(인공지능)나 로봇, 정보, 데이터 등이 중요한 경쟁기반이고, 기업가정신은 물론이고 데이터와 정보를 활용한 문제해결 능력을 보유한 인재들이 경쟁기반이 된다. 기술적 실업 회피를 위해서도 이제 과거와 같은 표준화된 노동력을 양성하기 위한 시스템과는 아쉽게도 작별을 고해야만 한다.아마도 이 두 가지 과제를 풀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우리는 ICT 최강국 중 하나지만, 기업에서 일하는 ICT 인재 중 고도한 지식과 기능을 보유한 관련 인재는 30% 정도에 불과하다. 이는 일본과 중국에도 뒤지는 수준이고, 심지어 미국은 말할 것도 없다. 더군다나 OECD 상위권을 차지하는 인재투자국임에도 불구하고, 인재의 수준을 높일 수 있는 교육시스템의 질이나 수학 및 과학 교육의 질 등은 상위권에 있지도 않다. 그러다 보니 두뇌유출 정도도 높은 나라로 평가되어 인재활용에서도 주요국과 비교하면 경쟁력이 뒤진다.물론 이러한 문제점들이 다 해소된다고 해도 기술적 실업을 완전히 피해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실업급여처럼 실업자를 위한 소득보호를 제공하는 것과 같은 소극적인 노동시장정책과 더불어 실업자의 재취업 등을 위한 다양한 적극적인 노동시장정책의 도입에도 힘써야 한다. 우리의 교육시스템이 개인의 고용가능성을 높여줄 수 있어야 함은 기본이다.케인즈가 말했듯이 우리의 손자들이 새로운 질병에 감염되지 않고, 백년대계로 살아갈 수 있도록 바야흐로 지혜를 모을 때다.

찰옥수수 / 김명인

찰옥수수/ 김명인평해 오일장 끄트머리/ 방금 집에서 쪄내온 듯 찰옥수수 몇 묶음/ 양은솥 뚜껑째 젖혀놓고/ 바싹 다가앉은/ 저 쭈그렁 노파 앞/ 둘러서서 입맛 흥정하는/ 처녀애들 날 종아리 눈부시다/ 가지런한 치열 네 자루가 삼천 원씩이라지만/ 할머니는 틀니조차 없어/ 예전 입맛만 계산하지/ 우수수 빠져나갈 상앗빛 속살일망정/ 지금은 꽉 차서 더 찰진/ 뽀얀 옥수수 시간들!- 시집 『파문』 (문학과지성사, 2005).............................................................포도 먹을 때의 느낌을 순하디순한 짐승의 눈망울을 씹는 느낌에 비유한 장옥관 시인의 시가 있었고, 이 시를 읽고 시조시인 이종문이 ‘도저히/ 포도를 이젠/ 모, 모/ 못 먹겠다/ 순하디순한 짐승의 눈망울을 씹으면서 혀로다 눈동자를 골라 내 뱉는 것 같아서’ 라면서 ‘시 한 편 읽은 뒤로’란 제목의 재미난 시를 다시 쓴 바 있다. 야채나 과일 따위의 먹는 음식에서 다른 사물을 연상하는 일은 흔히 있다. 그 사물은 대체로 신체의 특정 부위와 관련이 있다. 앵두 같은 입술이라든지 마늘 같은 코와 마찬가지로 잘 빠진 옥수수 ‘상아빛 속살’을 보고 치열 고른 건강 미인을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하긴 치아와 꼭 닮은 옥수수 알갱이에서 출발한 호기심과 연상의 연구 성과물인지는 모르지만 ‘인사돌’이란 잇몸 약의 주성분은 옥수수에서 추출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옥수수 속대를 푹 삶아서 그 삶은 물을 입안에 머금고 있다가 뱉어내기만 해도 치통으로 고생하는 일은 없다고 한다. 어린 시절 동네시장에서 한 젊은 외국인 여성이 가지를 사는 광경을 목격했다. 그때 지나가는 남정네 하나가 키득거리며 우리말로 했던 농담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다. 역시 그 무렵 할아버지 제삿날 꼬챙이에 끼워진 홍합 말린 합자를 두고 작은아버지와 고모부가 주고받았던 저질 야담도 또렷이 기억한다. 아버지의 "애들 앞에서 씰데없이..."란 핀잔까지.다만 울진 평해가 고향인 시인의 오일장 추억에서 추출한 이 시는 그 비유에 그치지 않고 들쑥날쑥 성근 이조차 간수하지 못하고 합죽한 ‘쭈그렁 노파’와 까르륵 웃어재낄 때면 상아빛 이빨 반짝이고 날 종아리 눈부신 ‘처녀애들’의 극명한 교차와 대비를 통해 잠시 생을 흥정하고 계산한다. 물론 할머니도 한때는 ‘뽀얀 옥수수 시간들’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삶이란 내내 그리 살 수는 없는 것. 잠시 ‘예전 입맛’을 계산하지만 그들이 얄밉지는 않다. 부러운 청춘들이다. 하지만 모락모락 김나는 찰옥수수의 건강한 치열 같은 그 빛나는 시간들이 마냥 이어질 수는 없으리라. 그들 또한 언젠가는 그 시간들이 뭉개져나갈 것이다.할머니는 ‘우수수 빠져나갈 상앗빛 속살일망정’ 건강하고 눈이 부실 때 ‘꽉 차서 더 찰진’ 시간을 마음껏 누리라는 무언의 덕담을 덤으로 얹어 찰옥수수를 건넨다. 어제 50년 지기인 옛 친구들 몇과 어울려 오랜만에 술추렴을 했다. 지금은 다들 건강 때문에 예전의 그 주량이 어림없는데다가 술맛도 예전 같지 않다. 만나서 4시간 남짓 시종일관 나누었던 잡담의 5할이 국내정치였고 나머지 5할이 건강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 중 상당부분을 치과 부문에 할애했다. 친구 가운데 ‘돌팔이’ 치과의사 하나가 포함되어서이기도 했지만, 다섯 명 전부 임플란트를 몇 대씩 했거나 부분틀니를 한 처지였기 때문이리라. ‘이빨 빠진 호랑이’들이 흘러간 ‘뽀얀 옥수수 시간들’을 잠시 회억하는 누추한 잔치였다.

우신예찬

우신예찬 ‘우신예찬’은 르네상스 시대의 인문주의자 데시데리위스 에라스뮈스가 1511년에 출간한 책이다. 우신(愚神)이란 바보의 신이다. 우신(moria)의 어머니는 ‘청춘의 신’이고, 아버지는 ‘부유의 신’이다. 우신은 ‘도취’와 ‘무지’라는 유모의 젖을 먹고 자랐다. 그는 우신을 예찬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면서 실제로는 인간의 어리석은 행동을 비판하고 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교황과 교회 권력자, 왕과 왕족, 귀족들의 행동을 냉정하게 관찰하고 풍자했다. 그는 교회의 헛된 권위와 어리석음을 조롱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종교가 물질적, 육체적인 것들을 거부하고 순수한 영혼의 문제로 돌아가라고 했다. 이 책이 불후의 명작인 이유는 그가 주장하는 것들이 현대를 살아가는 여기 ‘어리석은 자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이다.우신예찬을 읽으며 오늘의 정치와 권력을 생각해본다. 우신이 그러하듯 권력도 ‘도취’와 ‘무지’라는 유모에 의해 양육되는 것이 아닐까. 권력은 반드시 사람을 취하게 하며 권력을 잡은 자는 무지해야 그것을 유지할 수 있다. 우신에겐 추종의 신, 향락의 신, 무분별의 신, 방탕의 신, 미식과 수면의 신과 같은 친구가 있었다. 오늘날에도 권력 주변엔 이런 사람들이 득실거린다. 이 책에는 지금 적용해도 기가 막히게 들어맞는 구절이 너무나 많다. “냉정한 진실보다는 달콤한 거짓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오늘날 군주들은 나 우신의 도움을 받아 모든 근심 걱정을 신들에게 맡겨두고 듣기 좋은 말만을 하는 자들에게 귀를 기울인다.” “지혜와 철학은 가난하고 지질한 사람을 만든다. 지혜는 사람을 소심하게 만든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가난과 기아와 헛된 희망 속에서 천대받으며, 각광은 고사하고 관심조차 받지 못하고 살아간다.” “가까운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바로 광기의 힘이다. 친구들 사이에 우정의 연대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도 광기의 힘이다. 뱀처럼 꿰뚫어 보는 냉철함보다는 에로스의 헤픈 정념이 진정 삶을 유쾌하게 해 주고 사회적 유대관계를 굳게 다져주는 것이다. 달콤한 꿀을 서로 주고받으며 마음을 달래지 않는다면 어떠한 모임이나 관계도 유쾌하게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 이 시대는 사려 분별력 있는 사람보다는 광기에 쉽게 휩쓸릴 수 있는 사람이 더 행복한지도 모른다. 광기를 예찬하면서 에라스뮈스는 정치권력 집단의 허구성에 대해서도 일갈한다. 그는 “최고 권력자가 일면 학식이 풍부한 참모들을 중용하는 것 같지만 그보다는 자신의 심기를 잘 헤아리고 즐겁게 해주는 광대들을 더 좋아한다.”라고 말한다. “아첨은 낙담한 영혼을 일으켜 세우고, 슬픔을 어루만져주고, 무기력한 사람들을 격려하고, 둔감해진 사람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아첨은 아이가 공부를 좋아하게 만들고, 노인의 주름을 펴주기도 하고, 조언과 가르침을 칭찬으로 포장하여 왕이 마음을 다치지 않도록 넌지시 말할 수 있도록 해준다. 아첨은 모든 인간관계에서 꿀이자 양념이다.” 그래서 우리는 권력을 가진 자, 가지려고 하는 자에게 그렇게 맹목적으로 아첨하는 것일까.에라스뮈스가 주교나 추기경, 교황과 같은 종교지도자들에게 요구하는 참모습은 ‘노동과 헌신’이다. 재물을 탐하고, 기득권 세력이 된 그들에게 에라스뮈스는 이렇게 질타한다. “가난한 사도의 직분을 행하는데 금전이 무슨 필요가 있는가? 자신을 한 번이라도 뒤돌아본다면 모든 것을 미련 없이 버리고 예전의 사도들처럼 노동하고 헌신하는 삶을 살고자 했을 것이다.” 우리가 귀하게 여겨온 정직한 노동, 가족과 이웃을 위한 헌신과 희생, 타인을 향한 연민과 배려 같은 덕목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소중하고 필요한 것인가?우신예찬은 이렇게 끝을 맺고 있다. “옛말에 ‘같이 마시고 다 기억하는 놈을 나는 증오한다.’라는 말이 있다. 이를 새롭게 고쳐 ‘아, 기억하는 청중을 나는 증오한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 안녕히! 손뼉 쳐라! 행복 하라! 부어라, 마시라! 나 우신의 교리에 탁월한 여러분이여.” 오늘의 가진 자와 권력자들도 그들이 과거에 내뱉은 말과 행동을 오래 기억하는 사람들을 싫어하고 증오한다. 하여 우신이여, 우신이여, 내 술잔을 채워라. 이 풍진 세상 그냥 박수나 치며 취생몽사 할까나.

정치인의 기부행위, 왜 근절돼야 하나

정치인의 기부행위, 왜 근절되어야 하나손황익대구 중구선거관리위원회 홍보주무관제21대 국회의원선거가 7개월 앞으로 다가온 이번 추석에는 명절 밥상 민심을 선점하기 위하여 입후보예정자들의 물밑 경쟁도 예상된다.그러나 명절 분위기에 휩쓸려 기부행위를 하거나 금품을 받아서는 안된다.‘기부’ 또는 ‘기부행위’의 사전적 의미는 ‘공공사업 또는 자선사업 등을 돕기 위한 돈이나 물건을 대가없이 내어놓는 것’을 말한다. 기부행위는 본래 좋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하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민주선거로서 1948년 5월10일 제헌국회의원선거가 실시된 이래, 1960년대까지 ‘정치인의 기부행위’는 선거운동을 하기 쉬운 장날에 여성 유권자에게는 고무신을, 남성 유권자에게는 막걸리를 무료로 제공하는 부끄러운 행위로 나타났다.그래서 “선거철 장날 인심이 명절보다 후하다”는 말이 생겨날 정도였다. 그리고 197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는 돈봉투를 돌리는 금권선거가 자행되었다.안타깝게도 은밀한 금품수수 행위는 아직까지 근절되지 않고 있다.‘공직선거법’에서는 ‘기부행위’를 ‘당해 선거구 안에 있는 자나 기관·단체·시설 및 선거구민의 모임이나 행사 또는 당해 선거구밖에 있더라도 그 선거구민과 연고가 있는 자나 기관·단체·시설에 대하여 금전·물품 기타 재산상 이익의 제공, 이익제공의 의사표시 또는 그 제공을 약속하는 행위’라고 규정하고 있다.여기에서 ‘선거구민과 연고가 있는 자’란 그 선거구민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기부행위를 할 수 없는 사람은 국회의원·지방의회의원·지방자치단체의 장·정당의 대표자·후보자입후보예정자와 그 배우자이다.또한, 누구든지 선거에 관하여 후보자(입후보예정자 포함) 또는 그 소속정당을 위하여 기부행위를 하거나 하게 할 수 없다.기부행위 제한 규정을 위반한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금전이나 물품 등을 받은 사람에게도 그 가액의 10배 이상 50배 이하의 과태료가 최고 3천만 원까지 부과된다.내년 4월15일에는 제21대 국회의원선거가 실시된다. 금품선거 없는 깨끗한 선거로 만들기 위해 후보자와 유권자 모두가 법을 지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선거법 위반행위에 대해서는 ‘국번 없이 1390번’으로 신고하면 되며, 사안에 따라 최고 5억 원까지 포상금이 지급된다. 신고자의 신분은 법에 의해 철저히 보호된다.다가오는 제21대 국회의원선거에서 모든 유권자가 자신의 소중한 한 표를 깨끗하게 행사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 바쁜데 웬 설사 / 김용택

이 바쁜데 웬 설사/ 김용택소낙비는 오지요/ 소는 뛰지요바작에 풀은 허물어지지요/ 설사는 났지요허리끈은 안 풀어지지요/ 들판에 사람들은 많지요- 시집『강 같은 세월』(창작과 비평사, 1995)....................................................살아가다보면 누구나 한두 번쯤 이런 긴박한 최악의 코너에 몰릴 때가 있다. 자신의 일이 아닐지라도 둘레에서 이 같은 상황을 목격할 경우도 있겠고. 실제로 이 시는 시인의 어머니가 저 광경을 목격하고선 아들에게 들려준 이야기를 시인 말마따나 고스란히 받아쓴 것이라고 한다. 어머니가 바쁜 농사철 논두렁에서 바라보니 어떤 사람이 깔짐 지게를 지고 소를 몰고 오는데 갑자기 똥이 마려운 폼이었단다. 소를 묶고 지게를 받쳐야 하는데, 지게를 받치자 깔짐이 넘어가버려 풀이 그만 허물어졌던 것이다.그때 소가 펄떡펄떡 뛰는 광경을 보았다. 깔짐은 넘어가지, 소는 뛰지, 받치기는 힘들지. 설사는 나오려고 하지, 보아하니 삼베옷 허리띠는 잘 풀어지지 않는 것 같고 들판엔 사람들도 많았단다. 고상한 표현의 ‘설상가상’정도가 아니다. 시인은 이 상황을 전해 듣고 그대로 베껴 썼다고 한다. 어쩌면 ‘소나기’부분은 각색일지도 모르겠다. 긴밀하게 이를 재구성 가공한 것이 더욱 구체성을 띄고 있다. 하지만 그냥 평범한 산문적 사고의 나열에 그쳤다면 시가 되진 못했으리라.‘소나기가 오는데다가 소도 뛰고 풀은 허물어졌다. 게다가 설사도 나고 허리끈도 안 풀어진다. 그리고 보는 사람도 많다.’ 정도가 되겠는데 재미와 감흥이 팍 떨어진다. 그렇다면 이 시에서 떠받혀주고 있는 부분은 반복해서 서술하고 있는 ‘지요’라는 나열적 질서가 되겠는데, 시적 운율을 느끼게 하여 시를 시답게 하고 있다. 이런 형식의 리듬은 사실 특별할 건 없고 우리의 일상에서 흔히 써먹는 말이다. ‘비는 오지요 갈 길은 멀지요 배는 고프지요...’ 따위의 익숙한 리듬이다.이 시는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으나 중학교 교과서에도 실렸었다. 이 정도면 요즘 아이들에게도 먹혀드는 개그 수준이 아닐까. 전유성은 시집을 즐겨 읽는 개그맨으로 알려져 있다. 아마 이런 시를 만나면 반색하며 소재로 써먹으려 할 것이고 그리해도 손색은 없겠다. 여섯 행에 불과한 이 짧은 시에서 어느 한 행이라도 빠져있다면 긴장감의 밀도가 떨어져 재미도 덜했을 것이다. 특히 ‘허리끈은 안 풀어지지요’란 대목이 누락된다면 아예 시의 꼬락서니가 안 되겠다. ‘바작’이란 낯선 농촌 물건도 살짝 시의 품격을 거들고 있다.바작은 지게에 짐을 싣기 좋도록 하기위해 대나 싸리로 걸어 접었다 폈다 할 수 있게 만든 조개모양의 물건이다. 아무튼 시가 재미나긴 한데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시에서 설사 만난 이는 저 극도의 난감한 상황을 어떻게 수습하였을까. 어떤 이유에서건 사람이 막다른 골목에 처하면 선택지가 없다. 극단적인 선택의 심리도 이와 비슷하다. 피하고 싶은데 피할 곳은 없고 모면하고 싶은데 극복은 안 된다.지금의 나라 꼬락서니도 그러하다. 국민들도 덩달아 누추하고 모멸적인 삶의 연속이다.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끝없는 논쟁은 이제 진영 싸움의 수준을 벗어났다. 양쪽 다 설사 만난 사람의 사생결단 싸움질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 상황을 피하려면 최소한 ‘허리끈’ 하나는 평소에 잘 관리되어야 하는데, 그 허리끈마저 지금은 요지부동이다.

단일민족통일국가에 대한 환상

단일민족통일국가에 대한 환상오철환객원논설위원 문 대통령은 ‘한반도 운전자론’을 내세우며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를 완화하고 북핵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주요국 정상들의 동조를 이끌어내려고 동분서주하여 왔다. 단일민족통일국가라는 위업을 달성하여 우리민족끼리 잘 살아보겠다는 순수한 열정에서 온갖 수모와 오해를 마다하지 않았던 것 같다.하지만 상이한 이념체제를 가진 나라를 평화적으로 통일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 방법 중 하나가 연방제통일방안이다. 이러한 구상은 김대중 대통령의 지론이었고, 북한의 주장과 궤를 같이했다. 연방제는 양 체제의 과도기적 연결고리다. 남북이 합의한다면 가능하겠지만 최종적으로 어느 체제로 갈 것인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북한은 체제의 전투력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연방제통일방안을 주장했다. 모택동 전술에 능한 북한의 눈엔 느슨한 남한의 적화는 식은 죽 먹기로 보였을 것이다. 인구에서 열세이긴 했지만 사상교육에 철저한 공산체제가 유약한 자유 민주체제를 제압한다고 봤다. 우파가 연방제통일방안을 종북 논리로 몰아붙인 연유다.그 결과는 별론으로 하고, 연방제가 현실적으로 가능하자면 양 체제가 유사할 필요가 있다. 양 체제가 접근해야 한다면 북한체제가 바뀌길 기대하는 것보다 대한민국 체제를 바꾸는 것이 더 수월한 선택이다. 헌법 제4조 위반으로 위헌이긴 하다. 지금 대한민국이 직면하고 있는 전대미문의 혼돈은 그 과정일 수 있다. 그런 다음에 경과적으로 연방제로 가고, 종국적으로 단일민족국가로 통일하는 수순이다. 그렇게 보면 한미일 체제를 깨고나와 북중러 체제에 접근하려는 움직임과 포용경제, 소득주도성장을 위시한 사회주의 정책의 기저에 단일민족국가라는 큰 그림이 깔려있다. 통일만 된다면 자유민주주의가 승리할 것이란 야무진 희망을 꿈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유란 바이러스와 같아서 쉽사리 박멸할 수 없는 측면이 있긴 하다. 그렇지만 불확실한 미래를 입맛대로 재단할 순 없다.북한은 한반도를 적화함으로써 체제경쟁에서 승리하고자 했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며 전쟁 준비에 매진했지만 선전·선동과 교란을 통한 체제 전복도 도모했다. 연방제통일방안도 대한민국을 적화하기 위한 통일전선전술이었다. 김일성과 김정일 시대엔 남북 인구격차가 크지 않았고, 유일지도체제가 굳건했기 때문에 연방제통일방안의 최종승자는 공산체제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김정은 시대를 맞아 북한은 내적 조건이 확 바뀌었다. 주민통제가 느슨해지고 경제격차가 확대되었지만 핵 개발이란 대어를 낚아채었다. 대한민국도 크게 변했다. 자유가 고도로 신장되었고, 경제는 선진국 수준으로 발전하였다. 북한이 평화적으로 적화하기에 부담스러운 환경이다. 북한체제로 통일한다고 하더라도 세습독재체제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어렵게 된 셈이다. 허나 북핵은 모든 변화를 압도했다. 확고한 체제유지는 물론 일약 군사강국으로 올라섰다. 어느 나라도 흔들 수 없는 나라가 되었다. 그렇지만 자유 시장경제체제하의 글로벌 개방국가를 통합한 단일민족국가란 득템이 체제붕괴의 덫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복병일 수 있다. 자연스런 귀결이다. 그런 연유인지 김정은은 우리민족끼리란 통치담론을 국가제일주의로 변경했다. 하나의 조선을 포기한 듯하다. 북한 개정 헌법에 민족성보다 국가성을 강조한 점이 그 증좌다. 홍콩사태에서 드러난 일국양제의 한계도 하나의 조선을 폐기하는데 일조했을 법하다. 남쪽의 좌파에겐 닭 좇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다.상황이 급변하였다면 그 변화에 대응하여 좌파 정권도 지금까지 지향했던 큰 그림을 대폭 수정할 필요가 있다. 북한을 감성적 관점에서 같은 민족의 통일 대상 집단으로 다룰 게 아니라 이웃하는 호전적인 독립국가라는 시각에서 이성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대한민국 헌법 제3조(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와 제4조(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는 논의대상이다. 영토와 통일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 우파와 좌파의 대립을 발본색원하여 엉뚱한 곳에 국력을 낭비하는 일을 없애야 한다. 단일민족통일국가는 시대에 뒤떨어진 그릇된 신화다. 한미동맹이 삐걱거리는 판에 미북의 밀월관계가 심상찮다. 방치하면 재앙이 될 수 있다. 미국이 중국과 수교하면서 대만을 내친 일은 타산지석이다. 명분보다 실리가 우선이다. 알량한 자존심보다 한미일의 신뢰회복이 실리이고 국익이다. 힘이 없으면 자존심도 없다.

‘어그로’(aggro)를 끄는 사회

‘어그로’(aggro)를 끄는 사회박운석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원래 게임용어에서 유래된 인터넷 은어 중에 ‘어그로(aggro)를 끈다’는 말이 있다. 눈길을 끌 만한 부정적인 글이나 사진, 동영상 등을 내세워 관심을 모으는 것을 뜻한다. 영어 단어 aggravation에서 왔다고 알려져 있다. 엔씨소프트문화재단에서 펴낸 ‘게임사전’에 따르면 상대방을 도발하는 행위, 약오르게 하는 것 등의 뜻을 가졌다. 흔히 특별한 이유 없이 시비를 걸며 기분 나쁘게 도발하는 것을 ‘어그로를 끈다’고 표현한다.원래 게임에서 쓰이는 ‘어그로’라는 말은 부정적인 게 아니었다. 다수의 플레이어가 함께 참여하는 역할 게임인 다중접속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MMORPG)에서 유래했다. 이 게임에 나오는 몬스터는 자신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되는 상대 캐릭터를 골라 집중 공격을 한다. 그러다가 또 다른 캐릭터가 갑자기 그를 공격하면서 성가시게 하면 몬스터는 공격방향을 그 캐릭터로 바꾸게 된다.만약 몬스터의 공격이 우리 팀의 주력선수에게 향하면 전력에 큰 손실이 생길 수 있다. 팀이 위기에 처한 이 때, 이렇다 할 공격 능력이 없으면서도 적을 도발하는 역할을 떠맡아 공격을 자신에게 집중시키는 희생전략이 ‘어그로’이다. 결국 ‘어그로를 끈다’는 것은 팀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희생이다. 이런 게임용어가 인터넷을 통해 번지면서 현실세계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도발하는 행동을 통해 관심을 끄는 것으로 의미가 변했다. 인터넷에 의도적으로 악의적인 내용의 글을 올려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는 행위를 ‘어그로를 끈다’고 한다.부정적인 이슈로 관심을 끌어 모은다는 의미에서 어그로는 ‘관종’과 별다를 바 없다. 관종이란 관심을 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지나치게 높은 병적인 상태에 있는 ‘관심병 종자’를 줄인 말이다. 허세를 떨거나 선동적이고 자극적인 게시물로 관심을 끌려는 사람들을 ‘관종’이라고 부른다.하긴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이 돈이 되는 세상이다. 요즘 한창 인기를 끌고있는 유투브 등의 플랫폼에서는 구독자와 조회수가 수익과 직결된다. 이들은 구독자를 늘리기 위한 혐오 콘텐츠의 생산과 유통, 재생산을 반복하고 있다. 혐오가 ‘관종의 시대’에 가장 핫한 콘텐츠가 된 것이다.EBS 방송의 지식채널e라는 프로그램을 보다가 놀란 적이 있다. 국내에서 연간 수입 톱9인 ‘1인 크리에이터’들의 수익이 최대 31억6천만 원, 최소가 6억1천만 원이라고 했다. 크리에이터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닐 테지만 많은 수가 혐오콘텐츠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건 사실이다. 크리에이터들은 조회수 어그로를 끄는 것으로 수익을 창출하기 때문이다. 조회수를 높이기 위해 갈수록 자극적인 내용으로 콘텐츠를 만들려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유투버들이 혐오성 콘텐츠로 돈벌이를 하고 있다면 정치인들은 막말과 망언 등 어그로성 콘텐츠를 확대재생산해 정치적 존재감을 과시하려는 경향이 있다. 게임에서는 이렇다 할 공격기술이 없으면서도 어그로를 끄는 것처럼 정치권에선 논리도, 설득력도 없지만 부정적인 이슈를 내세워 관심을 끌려고 한다.정치인은 예외 없이 어그로이고 관종인 듯 하다. 유권자들의 관심은 자신들의 정치생명과 직결된다고 믿는다. 때문에 관심만 끌 수 있다면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는다. 나아가 일부러 욕을 먹는 행동이나 막말도 서슴없이 해댄다. ‘악플’ 일지언정 ‘무플’보다 낫다고 보는 그들이다.가히 어그로의 세상, 관종들의 세상이다. 유투버들은 대중들의 관심을 끌만한 자극적인 콘텐츠로 조회수를 늘리고 광고를 끌어들여 경제적 이득을 취한다. 튀기 위해서 어그로를 끄는 행동이나 말을 주저하지 않는다.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대중들의 관심을 끌어들여 돈을 버는 게 아니라 표를 얻고자 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요즘 사회가 온통 진흙탕이다. 이 진흙탕 속에서도 어그로를 끄는 관종들의 관심은 하나다. 유명해지면 그만이다. 그러기 위해서 혐오와 막말과 흑백논리와 차별을 부추기고 추종자들의 관심을 극단으로 몰아간다. 혹시 우리는, 이들의 어그로에 나도 모르게 끌려들어가고 있는 건 아닌가 심각하게 생각해 볼 때다.

경상여고 악취, 근본 원인 해결해야

대구 북구 침산동 경상여고에서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악취 소동이 발생했다. 74명의 학생이 병원으로 이송됐다. 학생들은 귀가 조치했다.지난 2일 오전 경상여고 강당에서 조회를 하던 중 학생들이 가스 냄새를 맡고 어지럼증과 구토 증세를 호소했다. 이날 창문을 모두 닫은 채 에어컨이 가동되던 강당에 있던 학생들이 집단으로 메스꺼움과 구토 증상을 보임에 따라 출동한 소방·환경 당국이 실내외에서 다각도로 유해 물질 발생 가능성을 살폈다. 하지만 원인을 찾지 못했다.악취 소동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경상여고는 2017년 9월부터 악취 민원을 호소해 왔다. 특히 그해 9월 두 차례 학생 105명이 두통 등으로 병원 이송됐다. 당시 교실 창문으로 쇳가루 냄새 등이 나면서 학생들이 두통 등 증상을 보였고 학교 측은 자율학습을 중단하기도 했다. 그해 수능시험을 앞두고 악취 발생이 반복되자 교육청에 수능 고사장 변경도 건의했다.그동안 여러 차례 유사 사례가 있었다. 악취 문제는 잊을만하면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경상여고와 학생들은 대구 북구청과 대구교육청 등에 악취 근절 대책을 요구, 북구청이 학교 주변 공단 점검에 나섰지만 악취 원인을 찾지 못했다. 대구환경청과 시교육청, 북구청 등이 20여 차례 악취 원인을 밝히기 위해 시료를 채취해 분석하는 등 대응에 나섰지만 원인을 밝히는 데 실패했다고 한다. 대구시 보건환경연구원과 북구청도 인근 3공단 등의 화학물질 제조업체 등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단속을 벌였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혐의는 대구 3공단 입주업체로 쏠리고 있다. 학교 인근의 오염원으로 유력하기 때문이다. 3공단은 기계와 석유화학, 섬유 등을 생산, 가공하는 업체 2천500여 개가 밀집해 있다. 북구청 등은 3일부터 3공단 내 대기오염 물질 배출 업소 130여 곳을 대상으로 대기 질 점검에 나설 예정이다.대구시교육청도 그동안 2중창 설치, 공기순환기와 공기청정기를 보급하는 등 공기 질 개선을 위해 공을 들였지만 소용이 없었다.수년째 악취로 학생들이 고통받고 있지만 원인조차 밝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환경 당국의 대처 미흡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유사 사례가 언제 또다시 발생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동안 수도 없이 많은 유해물질 유출 사고를 겪었다.과학 수단을 총동원해서라도 원인 물질의 유입 경위를 밝혀야 한다. 그리고 유해 물질 배출 업체에 대해서는 엄정한 처벌을 내려야 한다. 당국은 학생들이 악취 고통에서 하루빨리 벗어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쏟아라. 더 이상 학생들이 고통을 겪도록 뇌 두어서는 안 된다.

무등록 오토바이의 위험천만한 질주

무등록 오토바이의 위험천만한 질주정선관문경경찰서 산양파출소장 경감 운전을 하거나 보행을 하다 보면 쌩하고 질주하는 번호판 없는 오토바이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주로 대학가나 농촌 지역 그리고 원룸 지역과 외국인 밀집 지역에 많이 운행되고 있는데 도심의 배달 오토바이 일부 중에도 번호판을 달지 않고 운행하는 경우도 있다.이처럼 번호판이 없는 오토바이는 책임보험마저도 가입되어 있지 않아 사고가 발생 시 보상 문제 등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자동차관리법상 오토바이는 지자체에 등록하고 번호판을 부착하여 운행하여야 하며, 자동차손해배상법에 의해 책임보험을 가입하여야 한다.하지만 운행자들은 비용문제를 탓하며 가입을등록과 보험가입을 하고 있지 않는다.보험연구원 자료에 의하면 2017년 책임보험 가입률은 43.4%에 불과하며 특히 영업용 오토바이는 고비용 탓에 책임보험 가입이 저조하다고 한다.오토바이를 등록 시에는 취등록세(2∼5%)를 지불하고 등록 후 책임 보험을 가입해야 하지만 이마저도 자손, 자차를 보장받을 수 없어 모두 본인이 부담해야 하는데 안전에 유의하여야 한다.특히 오토바이는 후면에만 번호판 부착이 되어 CCTV 촬영도 되지 않고 신호 과속 카메라에도 잡히지 않는 등의 문제가 있다.오토바이 미등록은 100 만원의 과태료 번호판 미부착은 50만 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을 받으며, 책임보험 미가입의 1회 처벌은 10만 원의 통고처분(미납 시 형사입건) 2회부터는 형사입건으로 반드시 운행 시에는 등록하고 번호판을 부착 후 보험을 가입하고 운행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위험천만한 무등록 오토바이의 질주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오토바이의 구입 시부터 번호판 부착과 책임보험의 가입을 전제로 계약이 이루어지도록 제도 개선을 하여야 하며, 번호판도 바람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특수제작하여 전면에도 부착하고 지자체를 중심으로 수시 단속하여야 한다.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오토바이가 사고가 났을 때 피해도 크지만 보험 미가입으로 인한 낭패를 보지 않는 게 상책이다.오토바이의 운행이 많아지는 요즘 운행자들의 준법정신과 안전운행을 기대해 본다.

구월이 오면 / 안도현

구월이 오면/ 안도현그대 구월이 오면/ 구월의 강가에 나가/ 강물이 여물어 가는 소리를 듣는지요/ 뒤따르는 강물이 앞서가는 강물에게/ 가만히 등을 토닥이며 밀어주면/ 앞서가는 강물이 알았다는 듯/ 한번 더 몸을 뒤척이며 물결로 출렁/ 걸음을 옮기는 것을 그때 강둑 위로/ 지아비가 끌고 지어미가 미는 손수레가/ 저무는 인간의 마음을 향해가는 것을// 그대 구월의 강가에서 생각하는지요/ 강물이 저희끼리만 속삭이며 바다로 가는 것이 아니라/ 젖은 손이 닿는 곳마다 골고루 숨결을 나누어주는 것을/ (중략)// 그대 사랑이란/ 어찌 우리 둘만의 사랑이겠는지요/ 그대가 바라보는 강물이/ 구월 들판을 금빛으로 만들고 가듯이/ 사람이 사는 마을에서 사람과 더불어 몸을 부비며/ 우리도 모르는 남에게 남겨줄 그 무엇이 되어야 하는 것을/ 구월이 오면/ 구월의 강가에 나가/ 우리가 따뜻한 피로 흐르는 강물이 되어/ 세상을 적셔야 하는 것을- 시집『그대에게 가고 싶다』(푸른숲, 1991)............................................구월입니다. 지난여름의 지긋지긋한 더위와 함께 넌더리나도록 여야정쟁을 보아왔던 사람에게도 어서 가을이 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계절의 변화에 시큰둥한 사람도 구월은 와서 강물이 여물어가는 소리를 듣습니다. 가을의 열매를 위해 그동안 꽃은 피었다 지고 여름의 뜨거운 햇볕과 무성한 녹음을 거쳤습니다. 아직은 푸릇푸릇한 꽃사과도 머지않아 단맛이 들면서 발갛게 익어갈 것이며 밤송이는 최선을 다해 속을 꽉 채울 것입니다.구월엔 ‘강물이 저희끼리만 속삭이며 바다로 가는 것이 아니라 젖은 손이 닿는 곳마다 골고루 숨결을 나누어 주는 것을’ 보고 깨우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하여 불신했던 날들의 반목을 머리 긁적이며 반성하는 날이 오길 기대하건만 현실은 그러하지 못합니다. 이제는 뜨거움만이 아니라 ‘우리가 따뜻한 피로 흐르는 강물이 되어 세상을 적셔야 하는 것을’ 깨달으며 다시 가슴에 새깁니다.어느 묘역 아래 너럭바위에 새겨진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는 비문학적인 구호가 문득 떠오릅니다. ‘뒤따르는 강물이 앞서가는 강물에게 가만히 등을 토닥이며 밀어주면 앞서가는 강물이 알았다는 듯, 한 번 더 몸을 뒤척이며 물결로 출렁 걸음을 옮기는’ 사람이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좋은 세상의 풍경입니다. 역사학자 토인비는 이기주의의 팽배가 인류의 위기를 초래하는 가장 심각한 요인으로 보았습니다.인류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극심한 이기주의 해소와 자기중심주의를 극복하는데 있다고 하였습니다. ‘사랑이란, 어찌 우리 둘만의 사랑이겠는지요.’ 저 구김살 없는 햇빛이, 저 짙어져가는 황금빛 들판이 어찌 우리 둘만을 위한 아낌없는 축복이겠는지요. ‘사람과 더불어 몸을 부비며 우리도 모르는 남에게 남겨줄 그 무엇이 되어야 하는 것을’ 널리 퍼트려야 우리의 미래가 보일 것입니다. 이 구월엔 우두망찰하지 않고 가을하늘과 저 들판과 강물을 향해 눈을 크게 열어야겠습니다. 산문적 일상을 살아가더라도 운문적 꿈은 잃지 않으며 포도송이처럼 탱글탱글한 사랑을 가슴마다 퍼 올려야겠습니다. 이 땅의 정치도 구월에는 좀 더 대국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9월, 수도권 인구가 절반을 넘는다

9월, 수도권 인구가 절반을 넘는다홍덕률대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세상이 뜨겁다. 연일 핫한 뉴스들이 터져 나와서다. 우선 한반도 주변의 국제정세다. 남북관계, 한·일관계 뿐만이 아니다. 미중, 미일, 북미 등의 관계도 요란하기가 그지없다. 국내 정치 뉴스들도 못지않다. 특히 조국 후보 청문회를 둘러싼 논란은 가관이다. 이성은 실종됐고 선동과 야만이 판친다.문제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데 있다. 한일 갈등과 법무장관 이상으로 중요한 국가 과제들이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청년 취업난은 하나의 예다.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기 위해 교육혁명을 어떻게 설계해야 할지도 매우 중요한 주제다. 하지만 어느 정치인도 정당도 언론도 관심두지 않고 있다.또 하나 있다. 망국적인 지역 불균형이다. 중요한 사건이 지금 이 시각에도 착착 진행되고 있지만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고 있다. 이 달, 9월 중에 수도권 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0%를 넘게 된다는 뉴스다. 지난 7월 현재 우리나라 총인구는 5천170만 9천명이었다. 수도권 인구는 2천584만 4천명, 전체 인구의 49.98%였다. 그간의 수도권 인구 증가 추세를 고려할 때, 9월 중에는 수도권 인구가 절반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다. 통계청의 인구 예측 자료다.전 국토 면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0.6%인 서울에 전체 인구의 20% 가까운 사람이 모여 살고 있다. 서울이 포화되고 나서는 인천과 경기도가 급팽창하기 시작했다. 대구는 오래 전에 3위 자리를 인천에 내줬으며, 지금은 부산마저도 2위 자리를 인천에 뺏기게 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와 있다. 급기야 면적이 11.8%에 불과한 수도권의 인구가 50%를 넘어서게 된 것이다. 정부 정책과 국회의 입법이 수도권의 이해와 압력을 거스르기는 더 어려워질 것이다.극심한 불균형은 이미 치명적인 문제점들을 낳고 있다. 우선 수도권의 초과밀화로 인한 비용증가와 효율성 저하다. 땅값, 집값은 물론이고 임대료와 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다. 서울의 물가지수는 뉴욕과 함께 세계 7위로 보고되고 있다. 극심한 교통난과 환경오염, 공기 질 저하도 피할 수 없다. 수도권 주민들의 삶의 질도 심각하게 추락하게 된다.그와 반대로 비수도권은 공동화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일자리와 사회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하니 청년들의 탈출 행렬은 그치지 않는다. 수도권에 진입하지 못한 청년들은 마치 루저처럼 취급받는다. 비수도권 시군들은 속속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 활력이 떨어지면서 있던 기업도 떠난다. 고약한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든 것이다.아예 ‘소멸’을 걱정하는 지역도 부지기수다.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 폐교는 더이상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대학들의 줄 폐교도 가시권에 들어와 있다. 지난 수년 사이 전국에서 21개 대학이 폐교됐으며, 그중 5개 대학이 대구경북에 위치했던 대학들이었다. 8월 말, 교육부가 발표한 대학 정책을 보면 비수도권 대학들의 폐교는 더 처절하게 진행될 전망이며, 대구경북 대학들도 초비상이다.물론 수도권 인구집중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서울공화국’이란 분노섞인 비판도 오래 되었다. 비수도권은 ‘내부 식민지’고 주민은 ‘이등국민’이라는 자조와 탄식도 귀에 익다. 9월의 인구 역전 역시 예견된 일이었다. 역대 정부들도 당연히 노력을 기울였다. 블랙홀처럼 전국의 인재와 돈과 기업을 빨아들이는 수도권의 흡입력을 저지할 정도로 의지와 정책 수단이 강력하지 못했을 뿐이었다.가장 강력하게 균형발전 정책을 폈던 정부는 참여정부였다. 전국 비수도권 지역에 10개의 혁신도시를 건설해 수도권에 위치해 있던 153개 공공기관을 이전시켰다. 세종시를 행정중심 복합도시로 건설해 중앙정부 부처를 이전시킨 것도 참여정부였다.비수도권에 양질의 일자리가 늘어나면서 수도권 인구의 증가는 잠시 주춤했다. 하지만 그 추세는 계속되지 못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국가균형발전 의지는 턱없이 부족했다. 아쉬운 것은 문재인정부 들어와서도 국가균형발전 의지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국가의 미래 경쟁력을 고민한다면 비수도권의 공동화를 방치해선 안된다. 국토의 효율적 활용과 국민의 삶의 질을 생각한다면 망국병이라고 지탄받는 이 극심한 불균형을 외면해서도 안된다. 수도권 인구가 절반을 넘어서게 되는 비극의 9월, 하지만 누구도 관심갖지 않는 무심한 9월을, 착잡한 마음으로 시작한다.

전기차 충전기 잦은 고장…선도도시 이름 무색

대구시는 전기차 선도 도시다. 2019년 국가 브랜드 대상에 선정되기도 했다. 전기차는 친환경 미래차로 각광받고 있다. 대구시의 신성장 동력사업이기도 하다.지역에 보급된 전기차는 올 연말까지 1만3천120대에 이를 전망이다. 지난해 말까지 등록된 전기차는 7천4대, 올 연말까지 6천116대가 추가 보급된다. 3년 뒤 2022년에는 7만 대로 늘어난다.그러나 보급확대와 함께 우려하던 사태가 곳곳에서 빚어지고 있다. 충전시설 관리 문제다.전기차 충전기가 고장날 경우 부품조달 문제 등으로 인해 수리에 평균 4일 이상 걸린다는 것이다. 이용자들의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평소 이용하던 곳이 아닌 다른 설치 지역을 찾아 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전기차 선도도시라는 이름이 무색하다는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다.지난 2017년 7월 대구시 전기차 충전기 관제센터가 개소한 이후 발생한 고장은 총 16건이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고장은 모두 올 들어 발생했다. 현재 대구시가 관리하는 충전기는 199기다. 연간 고장률이 10% 가까이 된다는 이야기다.대구지역에는 총 1천398기의 전기차 충전기가 설치돼 있다. 공공부문에서는 대구시 199기, 환경부 69기, 한전 60기 등 총 328기가 운용되고 있다.또 민간 사업자가 운용하는 충전기는 266기다. 개별 가정이나 아파트 단지등 순수 민간 부문에서 운용하는 충전기도 804기에 이른다. 대구시는 오는 2022년까지 총 5천기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대구시 이외의 공공기관과 민간 부문에서 운용하는 충전기의 고장률이 대구시에서 운용하는 기기와 비슷한 상태라면 연간 100기가 넘게 고장나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상황을 모르는 다수의 운전자들이 당황하거나 이리 저리 충전기를 찾아다니는 불편을 겪는다는 이야기가 된다.내년부터 대구지역 전기차 공용 충전기 이용이 전면 유료화 된다. 제주시는 금년 3월부터 유료화 했다. 서울과 광주시는 2020년을 목표로 유료화를 추진 중이다.유료화는 충전기 시설 운용에 민간사업자의 유입을 활성화 하기 위한 조치라고 대구시는 설명한다. 또 전기차 관련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한 의도도 있다.유료화에는 이견이 없다. 서비스를 이용했으면 당연히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그러나 고장률이 개선되지 않으면 곤란하다. 전면 유료화 이전에 고장의 원인과 수리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전기차 보급과 활성화는 기반시설이 중요하다. 충전시설은 시민들이 직접 부닥치는 기반시설이다. 초기부터 삐걱거리면 안된다. 시민들이 전기차 육성 사업을 걱정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