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걸음마 수준인 지방의회

김종엽편집부국장 겸 제2사회부장“간담회 장소를 본인이 사전예약한 곳으로 하지 않았다고 ‘00 안 가면 알아서 해. 확 다 뒤집어 버릴 거야’, ‘내가 하라고 했으면 해야 될 거 아니냐’, ‘사무국 박살 낼 거야’ 등의 폭언에 치욕감과 모멸감을 느꼈습니다.”경찰서 조서 내용이 아니다. 기초의회 임시회 본회의장에서 한 지방의원이 동료 의원의 막말에 대한 사과와 재발 방지를 촉구하는 발언이다.우리나라 기초의회가 태동한 지 벌써 28년째다. 모든 기초를 세우는 나이 이립(而立) 즉 ‘서른 살’을 목전에 두고 있다. 이립은 논어의 ‘三十而立’에서 온 말이라고 한다. 가정과 사회에 모든 기반을 닦는 시기로 자립을 앞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일련의 사태를 종합해 보면 아직도 걸음마 단계다.올 들어 예천군의원 해외여행 추태를 시작으로 임시회 본회의 5분 발언 표절과 막말, 돈 봉투 파문에다 CCTV 무단 열람과 감청까지 풀뿌리 민주주의를 이끌어가는 대구·경북 기초의원들의 자질을 의심케 하는 사례가 끊이질 않고 있다. 자립보다 지방자치의 근간을 뒤흔드는 수준이다. 시민들의 피로감은 커졌고 무용론에 이어 폐지론까지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다.달서구의회는 올 들어 간담회 식당 장소 선정 문제로 동료 의원에게 막말하다 입방아에 오른 데 이어 5분 발언 표절이라는 신조어도 낳았다. 표절이라면 흔히 책이나 논문표절을 말하는 데 기초의회에서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달서구의회 A의원은 지난 3월 같은 당 소속 수성구 의원의 5분 발언 내용을 사실상 그대로 베낀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물의를 빚었다. 한 시민단체가 수성구의회와 달서구의회 홈페이지에 게시된 두 의원의 5분 발언을 대조한 결과를 발표하면서 알려졌다. 해당 의원은 지난 7월27일 의회 윤리특위 위원장직을 사임했다.기초의원들의 잦은 일탈 역시 불신을 키우고 있다. 구미시의회 A의원은 최근 자신의 지역구에 있는 한 경로당의 CCTV를 무단으로 열람하고 내용을 복사해 간 것으로 드러나 논란을 빚었다. 해당 의원은 CCTV 시스템을 점검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고발장이 접수돼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여기에다 시의장은 아들이 대표이사로 있는 건설업체가 구미시의 수의계약 공사를 따낸 사실이 드러나 사퇴 요구를 받고 있다. 이에 앞서 자신의 주유소 인근에 특혜성 도로 개설과 지방선거 금품 제공 의혹으로 이미 의원 두 명은 자리에서 물러났다. 급기야 지난달 13일에는 여야 의원이 보조금을 심사하면서 심한 욕설을 내뱉는 모습이 생방송으로 고스란히 중계되는 촌극까지 빚어졌다. 이를 지켜본 시민들은 황당할 따름이다.해외연수는 더욱 가관이다. 2019년 시작과 함께 예천군의원들의 해외연수 중 추태가 알려지면서 전국의 이목이 집중됐다. 9명의 의원 전원이 지난해 12월 7박10일 일정으로 미국·캐나다에 해외연수를 떠났다. 한 의원은 가이드를 폭행하고, 한 의원은 가이드에게 여성 접대부를 요구한 사실이 드러나 비판을 받았다. 두 의원은 제명됐다. 예천군민들은 당연히 분노했다. 해외연수 취소 및 연기 바람이 전국 기초의회로 확산됐다.이런 와중에 일부 의회는 자숙은커녕 꼼수 연수 및 끼워 넣기 해외연수를 진행해 비난을 자초했다. 북구의회 의원 4명은 해외연수 추태 파문 여진이 채 가라앉지도 않았던 지난 5월 10일간 유럽을 다녀왔다. 해외연수 심의조차 받지 않았다. 8명 이하의 의원이 해외연수를 할 경우 심의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규칙을 활용하는 꼼수를 동원했다. 이보다 앞서 지난 4월에는 칠곡군의회가 외부 단체의 외국방문에 의원들을 동행시키는 이른바 ‘끼워 넣기 해외연수’를 진행해 눈총을 샀다. 의원 2명이 의회 차원의 공식 연수가 아닌 지역 자원봉사단체의 태국 방문에 슬그머니 동행한 것이다.지방의원은 조례의 제정 및 개정·폐지, 자치단체 예산의 심의 확정 및 결산의 승인 같은 의결권과 행정사무감사와 행정사무조사를 통한 행정감사권을 통해서 자치단체를 견제하고 통제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지방자치법도 ‘공공의 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그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여야 한다’고 지방의원 의무를 명문화했다. 결국 지방의원은 국회의원처럼 지역을 대표하는 정치인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사는 지역의 일꾼이라는 의미가 더 크다. 진정으로 지역과 지역민을 위해 일하는 참일꾼만이 지역 발전과 더불어 풀뿌리 민주주의를 꽃피울 수 있다.

대구 두류공원 리뉴얼 통해 모습 일신해야

대구시가 두류공원 리뉴얼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런데 주춤하고 있다. 공원 계획은 100년 앞을 내다보고 추진하는 장기 사업이다. 주위의 종속 변수로 인해 계획에 차질이 빚어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대구시에 따르면 두류공원 리뉴얼 사업은 2030년까지 총사업비 1천825억 원을 들여 3단계로 나눠 대구를 대표하는 센트럴파크로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1단계 사업은 두류공원 내 야구장과 유니버시아드 테니스장을 허물어 광장을 조성하고, 사계절을 주제로 한 힐링 숲 조성, 첨단 공연장 조성 등이 계획돼 있다.그런데 2단계와 3단계에 포함돼 있는 이월드와 연계한 리뉴얼 사업이 문제가 됐다. 2단계 계획에는 이월드와 연계해 150억 원을 들여 오버브리지 및 공연장을 설치키로 했다.또 두류공원과 이월드(83타워)를 연계한 관광형 공원 조성을 위해 두류공원 인근에 숙박시설 및 위락시설 조성 등을 포함해 다양한 개발 방안을 마련키로 한 것이다.시는 1단계 두류공원 리뉴얼 사업을 이달 중 발표할 계획이었다.하지만 지난달 16일 발생한 이월드 아르바이트생 다리 절단 사고가 두류공원 리뉴얼 사업의 발목을 잡았다. 두류공원의 주요 시설인 이월드를 연계한 두류공원 리뉴얼 사업이 이번의 사고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될 상황에 몰린 유병천 이월드 대표 때문에 전체 리뉴얼 그림이 헝클어지게 됐다고 한다. 리뉴얼 사업에는 지역 정치인 및 대구시와 유병천 이월드 대표가 관여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두류공원은 1965년 공원으로 지정됐다. 대구 달서구 두류3동과 성당동에 걸쳐 있는 165만3천965㎡ 규모의 큰 공원이다. 각종 체육, 문화, 위락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도시철도 1, 2호선이 주변을 지나는 등 접근성도 뛰어나 대구 시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이월드는 대구시가 두류공원 내에 민자를 유치, 1995년 건립한 놀이 시설이다. 우방타워랜드로 불리다가 대주주가 몇 차례 바뀌면서 최근엔 이월드가 됐다.대구 시민들은 이월드 이후 25년간 두류공원에는 코오롱 야외음악당 외에는 변변한 시설이 추가되지 않아 볼거리와 즐길 거리 등 콘텐츠 부족을 느껴왔던 터다.대구시는 현 이월드의 사정 여하와 상관없이 리뉴얼 사업을 계획대로 추진해야 한다. 1단계 사업부터 시작하라. 2, 3단계 사업은 부차적 사업이다. 이월드와 대구시의 환경 및 여건 변화에 따라 추후 진행해도 된다. 두류공원을 더 이상 콘텐츠 부족과 낡은 시설 위주의 뒤처진 문화 체육 시설로 두어 선 안 된다. 원할한 사업 추진을 바란다.

추석 연휴, 사이버 범죄 예방은?

온 가족이 모이는 추석명절이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다.해마다 명절이 다가오면 기승을 부리는 범죄가 바로 인터넷 사기이다.명절 때 주로 발생하는 인터넷 사기 유형은 열차승차권, 상품권, 숙박권 등에 대한 높은 할인율로 피해자를 현혹시키는 거래유도 사기이다.파격적인 가격을 제시하면서 현금거래(계좌이체)를 유도해 입금되면 연락이 끊겨 피해를 보는데 할인율이 높으면 우선 사기거래를 의심하고 금전 거래할 시는 반드시 카드나 안전거래 사이트를 이용해 거래하여야 한다.또 상대방과 거래 전 ‘사이버안전국’ 홈페이지나 ‘사이버캅’ 어플을 이용해 상대방 계좌정보, 전화번호를 검색해 최근 사기 신고 이력이 있는지 확인해 보아야 한다.안전거래사이트도 정상적인 사이트가 맞는지 조회할 수 있어 거래 전 반드시 검색해 볼 것을 추천한다.택배로 선물을 주고받거나 인터넷으로 제수용품을 주문이 늘어나고 있다.택배이용량이 급증한 틈을 노려 핸드폰 문자로 택배 배송에 문제가 있다며 정보를 다시 확인해달라는 문자나 택배 배송불가라고 찍힌 문자로 피해자를 당황하게 한 후 문자에 같이 찍힌 인터넷주소링크를 클릭하게 해서 소액결제 등 사이버범죄를 저지르는 스미싱 문자도 기승을 부린다.택배문자는 절대 그런 방법으로 오는 경우가 없으니 수신 즉시 삭제하길 권장한다.또 스마트폰 보안설정을 강화하고 공신력 있는 백신프로그램을 사용해 휴대전화기에 나도 모르게 설치되었을지 모르는 악성코드를 주기적으로 삭제해주는 것도 피해를 예방하는 방법이다.특히 지인으로 가장한 명절 인사 및 선물 확인 등 방법으로 사이버 사기문자의 발생도 많으니 친척이나 친구 등 지인의 이름으로 온 문자라도 인터넷 주소가 첨부돼 있다면 즉시 삭제하고 나에게 연락을 통해 확인하는 게 필요하다.범인을 검거해도 피해가 발생한 후는 피해 회복이 어려운 경우가 많아서 예방법을 익히고 미리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기본적인 사이버 범죄 예방법 숙지로 가족과 함께 풍성한 한가위를 보낼 수 있도록 지혜가 필요하다.

공공급식과 로컬푸드의 ‘접점 찾기’

로컬푸드. 우리 고장에서 생산된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좋은 먹거리를 뜻한다. 통상 반경 50㎞를 기준으로 한다. ‘신토불이’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이때 좋은 먹거리란 신선하고, 안전하고, 가격도 합리적이라는 말이다. 생산자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하는 로컬푸드 직매장이 2012년 전북 완주에서 첫 선을 보인지 7년 넘게 지났다.현재 전국의 로컬푸드 직매장은 229곳. 대구는 6곳, 경북은 9곳이 있다. 직거래 장터는 대구 20곳, 경북 30곳에 이른다.로컬푸드가 농촌을 되살리는 순기능을 가졌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구 도시철도 2호선 문양역 로컬푸드 직매장의 이종철 대표도 그런 사람들 중 한명이다.“모두들 떠나는 통에 농촌이 사라진다고 야단들입니다. 사람이 없으면 당연히 농촌도 사라지겠지요. 그러나 해결책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로컬푸드 활성화가 훌륭한 해법입니다.” 그는 영농 종사자 고령화, 규모 영세화, 이농 등 현재 나타나고 있는 모든 농촌문제를 로컬푸드가 일거에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돈벌이만 되면 젊은 사람 농촌 돌아와젊은 사람들이 농촌을 떠나는 이유는 돈벌이가 안 되기 때문이다. 농사를 지어서는 미래가 없으니 떠날 수밖에 없다는 것. 농산품이 제값을 받을 수 있고, 출하만 안정되면 젊은 사람들이 농촌으로 돌아온다. 이 대표의 확고한 믿음이다. 로컬푸드로 ‘지속 가능한 농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지난 2013년 문을 연 뒤 2014년 재개장한 문양역 직매장의 지난해 매출은 94억5천만 원. 6년간 연평균 성장률이 25%를 기록할 정도로 고성장을 이어왔다. 문양역 직매장은 납품 회원농가가 350여 곳에 이른다. 소비자 회원은 1만2천 명을 돌파했다. 지난해 구매실적이 있는 고객은 43만 명을 넘어섰다.로컬푸드 직매장은 생산자가 농산물의 수확, 포장, 가격결정, 매장 진열, 재고 관리 등을 직접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그러나 모든 형태의 로컬푸드 사업이 순항하는 것은 아니다.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공공급식이 아직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단체급식이 주를 이루는 공공급식은 기획생산, 계약재배 등이 돼야 가능하다. 한꺼번에 많은 물량이 안정적으로 확보돼야 하기 때문이다.대구시는 지난해 친환경 로컬푸드를 학교급식 등에 공급하기 위해 대규모 공공급식센터를 건립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예산은 300억 원 규모였다.현재 대구시교육청에 학교급식 지원금으로 지원하고 있는 연간 300억 원 이상의 현금 대신 대구시가 현물을 구입해 지원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렇게 되면 일괄구매로 친환경 로컬푸드를 싼값에 구입하고 품질과 안전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는 것.---대구 대규모 공공급식센터 진척 없어그러나 계획은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진척이 없다. 300여 명의 학교 급식자재 공급업자들이 생존권 차원에서 격렬한 반대를 한 때문이다. 대구시는 이들이 단가 등 여러가지 요인 때문에 고품질의 로컬푸드를 납품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대구시의 입장은 확고하다. 공공급식 특히 학교급식은 우수식품을 공급해야 한다는 것. 현재와 같은 학교별 구입 시스템 하에서는 친환경 농산물 판로가 막힐 우려가 있다는 설명이다. 그렇게 되면 지역의 우수 농산품 생산과 소비의 선순환구조가 정착할 여지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서울은 이미 공공급식센터를 통한 식자재 공급이 사실상 전면시행에 들어갔다고 밝혔다.지역의 로컬푸드 생산농가는 소규모에 고령 농민이 절대 다수다. 공공급식센터가 설립되면 일정규모 이상의 농가나 전문 영농기업 등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이들이 설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먹거리의 유통과 안전성 확보라는 두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것으로 기대됐던 로컬푸드 사업이 성큼 성큼 나아가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로컬푸드가 나아가는 것만큼 보완책도 마련돼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로컬푸드를 육성해야 한다는 답은 나와있다. 여건이 성숙될 때까지 차근차근 나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속도가 너무 느리다.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를 위한 새로운 정책은 없을까.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만나야 할 사람은 언젠가는 만난다

만나야 할 사람은 언젠가는 만난다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 벼가 익어간다. 가을이 다가왔다. 학술대회 장소로 가는 길옆, 들판에는 벼가 누렇게 익어 간다. 올해는 유난히도 추석이 일찍 찾아왔지만, 논밭의 색으로 보니 그래도 올 된 햇곡식과 과일로 차례 상을 차릴 수 있을 것 같아 그나마 다행스럽다.차창을 열고서 천천히 달려보며 가을의 향기를 음미한다. 코에 묻어 드는 바람을 들이키다 하늘을 올려다본다. 기적이라도 울리며 기차가 달려갈 듯한 철길 사이로 풀들이 자라나 있고 그 너머엔 키 큰 해바라기들이 소리 없이 영글고 있다. 지구 반대편에서도 그리움을 간직한 채 늘 고향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반가운 나의 친구처럼.우연한 기회에 단체의 장을 맡게 되었고 그리하여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가게 되었다. 뜻있는 지도자의 제안으로 그곳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고국의 동료들을 찾아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다른 일정으로 참석을 못 하게 되어 아쉬워하다가 마침 잠깐 짬을 내어 얼굴만 보고 일어서라는 총무의 권유에 못 이겨 따라나섰다. 예정에도 없는 일정이라 마음은 불안했지만, 그래도 애초에 거절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생각에 마지못해 승낙한 참이었다.국제회의장 근처의 자그마한 레스토랑, 어두운 불빛 아래서 서로 간단한 소개가 이루어졌다. 언제 한국을 떠나 이곳에 정착하였고 나는 누구이고 무엇을 하는 사람이라는 등, 자유롭게 자기를 알리는 시간이었다. 누가 누군지 모두 기억하지는 못하였지만, 그중에 유독 나와 학번이 같은 이의 목소리가 귀에 박혔다. 기다랗게 앉은 테이블에서 이쪽과 저쪽 대각선으로 얼굴은 볼 수 없지만, 희미하게 들리는 그의 억양이 유난히 친근하게 들렸다. 소개하는 말투도 전형적인 서울 말씨가 아닌 경상도의 높낮이가 살짝 남아 있는 것이 아닌가. 혹시? 하는 생각에 저녁을 하고 일어서면서 그에게 다가갔다. “나는 지방 oo에서 온 누구누구이다. 학번이 나와 같아서 반가워 인사하러 왔다.”라고 했다. 그러자 그가 대뜸 나의 친구 이름을 대면서 아느냐고 묻는 것이 아닌가. 바로 같은 여고를 입학했다. 여고 동창일 수도 있었다니. 같은 학교에 들어갔다가 서울로 이사 가는 바람에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도미하여 미국에서 정착, 지금껏 살았다고 하지 않은가. 그런데도 아직 경상도의 억양이 남아 있다니. 너무나 반가워서 우리 둘은 어깨를 맞대고 끌어안다가 사진을 찍고 연락처를 교환하며 서로 추억을 나누었다. 수십 년도 더 지나서 만난 그와 나, 무엇이 그리도 강하게 우리 둘을 끌어당겼을까. 말의 끝에 남은 억양이었을까. 아니면 고향의 냄새였을까. 동시대를 살았다는 학번이었을까. 우리 둘을 그리도 강하게 끌어당겼을까 강한 자석처럼 말이다.서로 메일을 주고받으며 어제 만난 친구처럼 옛날을 회상하는 친구, 어쩌면 그는 수백만 년 동안 만년설로 얼어있던 거대한 뿌리의 빙하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은 아닐까. 나는 이쪽에서 그는 저쪽에서 떨어져서 같은 물길을 따라 흘러가다가 가끔씩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도 만나지 못하였던. 그러다가 드디어 부딪히고 나서야 알게 된 존재는 아닐까. 고등학교 시절의 영화 이야기도 비슷하다. 영자의 전성시대, 사랑의 계절, 얄개…. 모두 우리의 뇌리에 박혀있는 추억의 그 이름, 고국의 가을을 생각하면 언제나 그립고 그리운 풍경이라던 그. 편지함에서 나의 메일을 발견하고 어떤 표정을 지을까. 친구들아! 명화를 보며 감동하듯이 이 가을 멋지게, 서로 살아가는 모습 가끔씩 보여주고 힐링 좀 하자꾸나.스피커로 흘러나오는 바이올린 협주곡의 선율이 강물 위로 흘러 다닌다. 멋진 멘트가 이어진다. “입김으로 뜨거운 음식을 식힐 수도 있고/ 누군가의 언 손을 녹일 수도 있다/ 눈물 속에 한 사람을 수몰시킬 수도 있고/ 눈물 한 방울이 그를 얼어붙게 할 수도 있다/ 당신은 시계 방향으로/ 나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커피 잔을 젓는다/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우리는 마지막까지 서로를 포기하지 못했다/ 점점, 단단한 눈 뭉치가 되어갔다/ 입김과 눈물로 만든”가을이 내게 속삭인다. 하늘은 파랗고 햇살은 밝아 참으로 좋은 날이다. 이런 가을날, 만나야 할 사람은 언젠가는 만나지 않던가요? 떠내려가는 빙하의 조각처럼?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어느 시인의 시처럼.‘시계탑에 총을 쏘고, 손목시계를 구두 뒤축으로 으깨버린다고 해도 우리는 최초의 입맞춤으로 돌아갈 수 없다.

씨팔! / 배한봉

씨팔!/ 배한봉수업 시간 담임선생님의 숙제 질문에 병채는/ 이라고 대답했다 하네/ 아이들은 책상을 두드리며 웃었으나/ / 병채는 다시 한 번 씩씩하게 답했다 하네/ 처녀인 담임선생님은 순간 몹시 당황했겠지/ 그러다 녀석의 공책을 보고는 배꼽을 잡았겠지/ 어제 초등학교 1학년 병채의 숙제는/ 봉숭아 씨방을 살펴보고 씨앗수를 알아가는 것/ 착실하게 자연공부를 하고/ 공책에 이라 적어간 답을 녀석은/ 자랑스럽게 큰 소리로 말한 것뿐이라 하네/ 세상의 물음에 나는 언제/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답을 외쳐본 적 있나/ 울퉁불퉁 비포장도로 같은/ 삶이 나를 보고 씨팔! 씨팔! 지나가네- 시집 『잠을 두드리는 물의 노래』 (문학의 전당, 2006)..................................................................‘우리 집엔 강아지가 3마리가 있어요.’와 ‘우리 집은 3층이에요.’라고 할 때의 수를 읽는 방법은 다르다. 각각 ‘세 마리’와 ‘삼층’이라고 해야 옳은데, 초등 1학년에겐 이 개념의 구분이 좀 어려울 수도 있겠다. 영어에서도 기수와 서수가 있듯이 우리도 수를 읽는 방법에 두 가지가 있다. 영어의 경우 기수는 기록을 나타낼 때 사용되고 서수는 순서를 표현할 때 사용된다. 말하자면 기수는 원투쓰리이고 서수는 first second third...로 나간다.하지만 우리는 영어와 달라 우리 사회통념상의 관행과 일정한 상황 원칙에 따라 사용된다. ‘떡집은 1층, 학원은 2층’처럼 차례와 번호를 나타내거나 길이 무게 등의 측정단위가 붙은 수는 ‘일 이 삼’으로 읽고, ‘인절미 5개 주세요.’와 같이 개수와 횟수를 나타낼 때는 ‘하나 둘 셋’으로 읽는다. 그런데 딱 부러진 원칙이 있는 것도 아니다. 시간을 읽을 때 ‘일곱 시 다섯 분’하면 틀린 표현이 되고 ‘일곱 시 오 분’ 해야 옳다. 시와 분초의 기준이 또 다르다.테이블 넘버를 적어놓은 식당에서 종업원이 유독 18번 테이블은 열여덟 번이라고 호명한다. 여기에 무슨 구멍이라도 있단 말인가. 이런 지경이니 초등 1학년 아이가 을 ‘씨팔’이라 읽었다 해서 그리 잘 못되고 우스운 일인가. 굳이 하자를 들먹이자면 저‘씨팔’을 그‘씨팔’로 듣고 상상하면서 키득거리는 무리들의 관념 아닌가. 처녀 담임선생이 순간 당황한 것도 사전에도 없는 발칙한 단어를 상상했던 탓이리라.시인도 재밌어하고 맞장구를 쳤기에 이런 시도 써진 것 아닌가. 요즘은 온갖 외래어와 축약어, 파생어와 은어들이 뒤섞여 현란하게 사용되고 있어 발음만 듣고는 그 말뜻을 바로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 과정의 오해와 진실 사이에서 웃지 못 할 해프닝도 비일비재하다. 79년도 직장 초년생 시절, 사무실에 막 여상을 나온 여직원이 한명 배속되었다. 반듯하기로 소문난 박 대리가 신문을 보다가 “아니 사람이 타고난 대로 살면 되지 꼭 ‘이쁜이 수술’까지 해야 돼?” “안 그래 미스 송? 미스 송은 예뻐서 이런 고민할 일은 없겠네!”당시 신문의 줄 광고를 보고 한 마디 한 것인데, 둘레 사람들은 모두 킥킥거렸고, 그 미스 송도 얼굴이 시뻘게졌다. 지금도 그 박 대리의 어안이 벙벙하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정치인의 흥망성쇠는 말 속에 있다는 말도 오래전부터 회자되어왔다. ‘말꼬리 자르기’는 뭐고 ‘말꼬리 물고 늘어지기‘는 또 무언가. 병채만이 ‘세상의 물음에’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답을 외칠’ 자격이 있고, 그걸 욕으로 알아듣는 자 모두 ‘씨팔! 씨팔!’소리를 들어도 싸다.

한일 갈등 불똥, 청년 구직자에 튀어선 안 돼

한일 갈등 여파가 일본 취업 시장까지 덮치는 양상이다. 경기 호황으로 한국인 대졸 취업자를 선호하던 일본 기업들이 양국 간 갈등이 심화되면서 한국인 채용 기피 등 우려를 낳고 있다. 일본의 수출규제로 시작된 한일 갈등의 불똥이 일본 취업을 준비 중인 지역 청년 구직자에게 튀면서 비상이 걸렸다.한일 갈등에 따른 고용감소는 아직 본격화되지는 않았지만 지역 대학의 취업 담당자들이 우려의 시각으로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9월부터 하반기 취업시즌이 시작된다. 하지만 한일 갈등이 지속되면서 일본 취업과 관련된 고용 환경이 급격히 나빠지고 있다.고용노동부 주도로 다음 달 열릴 예정이었던 해외취업박람회가 취소됐다. 이 박람회는 해마다 소프트뱅크 등 일본의 중견 기업이 대거 참여했으며, 지난해 대구 대학생들도 이 박람회를 통해 상당수 취업했다. 당장 지역 대학들에도 불똥이 튀었다.지역의 영진전문대와 영남이공대의 경우 해마다 졸업생 상당수가 일본 기업에 취업해 왔고 대학 측은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해왔다. 그런데 지난달부터 시작된 일본의 경제 보복으로 한일 간 갈등이 심화되면서 양국 간 취업 시장도 얼어붙고 있는 것이다.일본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이 자칫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지난 28일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해외 취업 설명회에 참관했다. 이 장관의 해외취업 설명회 참관은 일본 취업을 희망하는 취업 준비생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차원이다.한일 양국의 사회적 분위기가 나빠지면서 학부모나 재학생들이 일본 취업 이후에 대해 걱정하는 등 심리적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국내서 커지는 반일 감정이 자칫 일본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 구직자에 비난의 화살로 향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나온다. 여기에 일본 내 커지는 혐한 분위기 탓에 현지에서 적응 우려도 높다.우리 정부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 발표와 일본의 2차 수출규제 등 양국이 치킨게임으로 치달으면서 일본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 구직자들의 걱정이 덩달아 커지고 있다. 일본의 경제 보복으로 당장 우리나라의 소재·부품·장비 산업이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취업전선까지 영향이 나타나면 곤란하다.한일 양국은 하루빨리 탈출구를 찾고 관계 회복을 도모해야 한다. 더 이상 양국의 감정을 악화하는 정부 간의 조처는 없어야 할 것이다. 가뜩이나 취업난에 시달리는 우리 청년들이 그나마 겨우 탈출구로 삼았던 일본 취업까지 막아서야 되겠나. 양국 관계 회복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봉숭아꽃 / 민영

봉숭아꽃/ 민 영내 나이 오십이 되기까지/ 어머니는 내 새끼손가락에/ 봉숭아를 들여주셨다// 꽃보다 붉은 그 노을이/ 아들 몸에 지필지도 모르는/ 사악한 것을 물리쳐준다고/ 봉숭아물을 들여주셨다// 봉숭아야 봉숭아야,/ 장마 그치고 울타리 밑에/ 초롱불 밝힌 봉숭아야!// 무덤에 누워서도 자식 걱정에/ 마른 풀이 자라는/ 어머니는 지금 용인에 계시단다. - 시선집 『달밤』 (창비, 2004).....................................................오래전 TV퀴즈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는 한 젊은이가 부모님을 방청석에 모셔놓고 상금을 받으면 부모님 유럽여행 가는데 보태겠노라 호언까지 하고선 첫 단계 OX문제에서 그만 낙마하는 안타까운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임성훈 진행자가 몇 번이고 잘 생각해서 결정하라는데도 확신에 찬 표정으로 X를 눌렀다. 바로 그 문제의 문제는 ‘봉선화와 봉숭아는 같은 꽃인가?’하는 것이었는데 다른 꽃이라고 대답해버렸던 것이다.비슷한 경우로 반딧불과 개똥벌레, 미루나무와 사시나무도 마찬가진데 그런 문제 앞에서 어물어물할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보면 망신이라고 얼굴 붉힐 것까지는 없지 않은가. 그보다는 손톱에 봉숭아 물들여본 경험이 있는 젊은이가 얼마나 있을지가 더 궁금하다. 그 옛날 늦여름 살평상에서 흔히 보았던 봉숭아 물들이기에 얽힌 추억과 그리움을 지금 사람들이 느낄 수나 있을까. 나도 오십까지는 아니었어도 초등학생 시절 어머니가 봉숭아물을 들일 때 그 옆에 쪼그리고 있으면 새끼손가락에 물을 들여 주시곤 했다.예로부터 봉숭아 물들이기는 병마를 막기 위한 주술적 의미가 컸다고 한다. 여름철 손톱에 들인 봉숭아물이 첫눈 올 때까지 지워지지 않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속설쯤은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봉숭아물을 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내 손톱과 네 짓이긴 꽃잎이 서로 붉게 몸을 섞었다는 이유만으로 사랑이 돋아난다는 믿음을 이해할까. 봉숭아물은 매니큐어 같은 화려한 원색이 아니다. 손톱에 뜬 초승달과 은은하게 어우러져 애절한 그리움을 덧씌운다. 손끝마다 핏물이 베어 오래 지워지지 않을 그리움이 시인에겐 어머니였다.그러나 손끝이 닿지 않는 울밑에 선 그리움은 너무나 깊다. 봉숭아 물들이기를 여름방학 숙제로 내는 학교들이 있다고 들었다. 그래서인지 어제 전철 안에서 조잘거리는 한 무리의 어린 여학생들 손톱에는 모두 볼그족족 물이 들어있었다. 첫눈 올 때까지 봉숭아물이 남아 있기를 바라는 기다림과 아날로그적 그리움을 체험해보라는 의미였을까. 나도 얼마 전 ‘소녀상 안착식’때 ‘봉선화 박사’ 만당 이종갑 시인이 마련한 봉선화 물들이기 이벤트에서 엉겁결에 새끼손가락을 맡겼더니 지금은 제법 볼그족족한 손톱을 알아보는 사람도 있다.이종갑 시인은 봉선화 추출물을 소금에 접목시킨 기능성 소금인 ‘봉선화소금’을 제조 판매하는 ‘봉선화식품’의 대표이다. 이 대표는 봉선화가 심겨 있는 곳에 독사와 해충들이 접근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끼고 이를 신안천일염에 접목하면 건강한 소금이 되겠다는 확신을 가졌다. 그 자신 봉선화와 함께한 열정으로 말기 대장암을 극복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제 여름은 가고 추억은 잠들지만 그 추억은 다시 깨어날 것이다. 굳이 사랑이 아니더라도 붉게 물든 손톱을 보면 무언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임진왜란 영천성 수복, 문화자원으로 활용하자

임란영천성수복대첩 기념학술대회에서 제안임진왜란 당시 왜군으로부터 수복한 영천성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기념물 혹은 조형물 제작 등 문화자원으로 활용하자는 제안이 제기됐다.정규정 임란영천성수복대첩기념사업회 회장은 29일 영천시교육문화센터에서 열린 임란영천성수복대첩 기념학술대회에서 “임진왜란 영천성 수복의 역사적 의미나 가치를 잘 새길 수 있도록 스토리텔링 기반으로 다큐멘터리, 드라마, 연극, 화, 뮤지컬, 애니메이션 등을 만든다면 영천 지역의 정체성 확립과 관광객 유치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고 밝혔다.임진왜란 영천성 수복은 1592년 음력 7월23일 영천과 군위, 의성, 경산, 하양, 경주 등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들이 왜군이 점령하고 있는 영천성을 도로 찾기 위해 성 남쪽, 강 건너 ‘추평’ 벌판에 결집하기 시작한 날이다.4천여 명의 의병들은 ‘창의정용군’이라는 기치로 영천성을 공격해 성안의 왜적을 거의 섬멸하다시피 한 압도적인 승리로 이를 수복했다.특히 이번 행사는 한·일 간에 잠재된 갈등이 고조되는 시기에 열려 의미를 더하고 있다.이날 학술대회에는 임진왜란과 영천성 수복에 대한 역사적 의미와 활용방안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한명기 명지대학교 사학과 교수는 ‘2019년에 돌아보는 임진왜란의 역사적 교훈’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임진왜란은 ‘끼여 있는’ 상대적 약소국에게 자강노력과 전략외교가 얼마나 절실한 지를 여실히 보여준 전쟁으로 이를 되풀이하지 않기위해서는 미래의 변화상을 예견하고 현재의 문제점을 개혁할 수 있는 자세가 중요하다”며 “자기 성찰과 반성이 전쟁 이후 제대로 계승되지 못했던 전철을 답습하지 말고 징비정신을 새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정재진 담나누미스토리텔링연구원장은 ‘임진왜란 영천성수복대첩의 전개과정’의 주제발표에서 “영천은 예로부터 호국의 성지로 장구한 시간 동안 수많은을 전란(戰亂)치르고 영천을 거치지 않은 것은 거의 없었다”며 “임진왜란 당시는 왜군의 주요한 진격로 중의 하나고, 1905년 을사늑약이 강행되자 정환직, 정용기 부자를 비롯한 많은 지사(志士)들이 강탈당한 국권을 되찾고자 영천을 중심으로 일으킨 산남의진(山南義陣)의 본 고장임으로 국가가 전란을 맞아 위기에 처하면 일치단결해 견위수명하는 특별한 정신을 발현한 것으로 이를 영천의 정신이라 부르자”고 제안했다. 사진설명…이규화 임란영천성수복대첩기념사업회 회장이 주제발표에서 영천성수복대첩을 영천의 문화자원으로 활용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주민소환제

오스트라시즘(Ostracism, 도편추방제)은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 아테네에서 국가에 해를 끼칠 정치적 영향력이 큰 인물을 시민들이 비밀투표로 뽑아 10년간 국외로 추방한 제도를 말한다. 유권자인 시민이 정치에 직접 참여할 수 있게 한 제도였지만 정적 제거 수단으로 악용되는 등 시간이 흐를수록 변질하면서 결국 소멸했다.오늘날 대부분 국가에서 대의정치, 즉 간접 민주정치가 보편화하면서 이를 보완하는 방법으로 주민투표제, 주민발안제, 주민소환제 등 직접 민주정치 요소가 가미되고 있다. 이 가운데 주민소환제의 선례로 이 오스트라시즘을 꼽는다.요즘 경북 포항에서는 시의원의 주민소환 추진을 놓고 주민들의 입장이 갈려 어수선하다고 한다. 편이 갈리는 근본 이유는 ‘어떤 일이 주민소환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곧 ‘그 어떤 일’의 범위를 둘러싼 해석을 두고 갈등이 생기는 것 같다.2019년 2월부터 포항시는 남구 오천읍에 건립한 ‘생활폐기물 자원화시설’의 가동에 들어갔다. 국·시비와 민자 등 1천500억 원 이상이 투입된 이 시설은 하루 500t 규모의 생활쓰레기를 연료화해 시간당 12.1MW의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그런데 시설이 가동되자 그 지역의 일부 주민들이 시설 가동으로 인한 대기오염 등을 문제 삼아 5월부터 시설의 가동 중단과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또 이 과정에서 자신들의 입장에 적극 동조하지 않았다고 해당 지역 시의원 2명에 대해 주민소환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그러자 얼마 후에는 이 지역의 또 다른 주민들이 주민소환에 반대하고 나섰다. 민원에 동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시의원 주민소환을 청구한 것은 부적절한 행동이고, 오히려 주민 간 갈등이 생기고 지역 이미지가 손상된다며 주민소환 즉각 중단을 요구한 것.어느 쪽 주장이 타당한지는 판단하기가 쉽지 않아 보이지만 어쨌든 주민소환제가 구체적 적용에서 집단 간 갈등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수개월째 주민 갈등이 계속되자 일각에서는 주민소환법 자체의 미비점을 지적하고 있다. 현행 주민소환법과 그 시행령에 제정 목적과 청구 서명인 수 등 요건만 갖춰져 있을 뿐, 주민소환을 청구할 수 있는 구체적 행위나 사유가 명시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그래서 특정한 목적을 갖고 주민소환제를 악용하려고 할 경우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부작용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주민들의 지역정책 참여 및 관심을 높여 지방자치를 제대로 뿌리내리게 하기 위해서라도 주민소환법을 서둘러 보완해야 한다는 것이다.우리나라 주민소환제는 2006년 5월 제정된 ‘주민소환에 관한 법률(주민소환법)’에 근거해 2007년 7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이에 따라 선출직 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은 주민들이 직접 소환할 수 있게 됐다.이익집단의 남용 등 부작용은 물론 가볍게 볼 수는 없겠지만, 그러나 주민소환제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 자치단체의 불합리한 행정을 견제하는 등 실보다 득이 많은 제도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 의견이다.실제로 법 시행 이후 주민소환법으로 직을 상실한 사례는 2007년 경기도 하남시의 시의원 두 명뿐이다. 그만큼 악용과 남용 가능성이 우려할 정도로 많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주민소환법이 적용 대상인 선출직 정치인에게 도입 취지에 맞게 실질적 견제 효과를 내게 하려면 법을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같은 이유에서, 국민들은 또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한 주민소환법(국민소환법) 제정을 서둘러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현재 선출직 가운데 대통령을 비롯해 자치단체장, 지방의원은 임기 중이더라도 제도적으로 유권자가 직접 재신임 여부를 물을 수 있지만, 유독 국회의원은 일단 선출만 되고 나면 유권자들이 이들을 직접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사실 일부 국회의원들이 막말과 음주추태 등으로 자질 논란을 일으킨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때마다 국민소환제 도입 요구가 빗발쳤지만, 국회는 그동안 관련 법안을 발의만 해놓고 자동폐기 시키는 방법으로 국민적 요구를 외면해 왔다. 현재 20대 국회에도 국민소환제 관련 법안이 3건이나 계류된 상태이다. 한편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지난 6월 국회의원 소환제를 도입하자는 청원이 올라와 단기간에 20만 명 이상이 동의했다./

벌초 중 불청객 말벌, 조심해야

이진우성주소방서장무더위와 장마가 끝나고 여름끝자락 햇살이 내리쬐는 계절이다. 이런 계절에 더욱 왕성한 활동을 하는 존재가 바로 말벌이다.경북도에서는 올해 6~8월 초까지 8천300여 건의 벌집제거 출동, 372명이 벌 쏘임 피해를 입었다. 이 가운데 성주군에서는 400여 건의 벌집제거 출동, 20명이 벌 쏘임 피해를 입었다.주로 지붕, 가로수, 아파트 베란다 등 우리 생활 영역에 벌집을 짓기 때문에 이에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벌 쏘임은 피부 두드러기를 동반한 통증이나 부종을 일으키고 심하면 독에 대한 항체가 과다하게 발생해 쇼크사에 이를 수 있다.이런 사고를 예방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까. 우선 야외활동 시 주변에 벌집이 있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특히 8, 9월은 추석을 앞두고 산에서 벌초를 하다 벌 쏘임 사고를 당한다.이 같은 사고는 매년 되풀이되는 일로 이를 방지하기 위해 사전에 작업 공간 내 벌집이 있는지를 육안으로 확인 후 벌초를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또 벌을 자극하는 향수, 의복 사용은 자제해야 한다. 산란기에 접어드는 이맘때 벌들의 공격성은 짙어진다. 야외활동 시 어두운색 의복을 피하고 향수 사용을 피해야 한다. 벌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들이니 외출 시 주의할 필요가 있다.알레르기 완화 약품 휴대도 벌 쏘임 사고시 적절한 대응 방법이다. 자신과 일행들의 안전을 위해 외출 시 가방에 항히스타민제 같은 비상약품을 휴대해 신속한 조처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벌 쏘임 사고를 방지하는 방법이다.특히 벌집을 발견하거나 벌에 쏘였을 때 반드시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고 신속히 119에 신고를 해야 한다. 소방서는 정기적으로 생활안전을 위한 교육 및 전문장비를 구비하고 인력을 보충하고 있다.직접 벌집을 제거하거나 무리한 응급처치를 하는 것보다 119에 신고해 적절한 조치를 받는 것이 좋다.

자유의 땅, 용자(勇者)의 나라

자유의 땅, 용자(勇者)의 나라이성숙거울처럼 눈부신 하늘이다. 당장이라도 하늘이 부서져 유리 파편이 쏟아져 내릴 것만 같다. 오랜만에 캘리포니아 날씨가 정상을 찾았다. 한동안 서울의 초가을 날씨처럼 선들선들해서 사람들의 걱정을 사던 날씨가 열기와 명도를 안고 돌아왔다.가까운 해변으로 나들이를 했다. 역에 차를 세웠다. 미국에 살면서 해 봐야 할 것 몇 가지가 있다. 국립공원 내 캠핑과 대륙횡단 여행, 그리고 기차여행이다. 그 중 한 가지를 실천하는 날이다. 기차여행은 시간을 거스르는 듯한 묘한 매력을 준다. 비행기처럼 빠르게 당도하지 않아 좋고, 자동차처럼 조바심 낼 필요가 없어 좋다. 생활이 주는 가파른 긴장에서 놓여나게 하고 세상과 사람을 구경하는 여유를 누리게도 한다. 기차로 미국 대륙횡단을 해야겠다는 모종의 꿈을 안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다.부에나 팍 기차역에는 매표소가 없다. 티켓 자동판매기 앞에서 사용법을 읽었다. 알파벳 첫 글자를 찍은 후 해당 역 이름을 찾으면 모니터에 가격이 뜨고 결제를 하는 방식이다. 여기서 엘에이 유니온 역까지 간 후 메트로 선을 갈아타고 산타모니카 역까지 가는 게 목표다. 유니온까지는 약 20분, 유니온에서 산타모니카까지는 1시간 반이 걸린다. 왕복으로 티켓을 샀다.메트로 링크는 엘에이 외곽을 운행하는 라인이다. 엘에이 도심을 오가는 메트로 라인을 중심으로 메트로 링크가 방사선으로 뻗어 있다. 각 노선은 색으로 구별되어 있다. 메트로 선으로 갈아타지 않고 그대로 간다면 엘에이 북쪽 외곽인 샌 버나디노까지 올라갈 수 있다. 오렌지 라인의 남쪽 끝은 샌디에이고까지 이어진다. 이 코스는 해안을 따라 놓여 있어 바다를 바라보며 갈 수 있다니 조만간 시도해 볼 생각이다.매트로 링크 내부는 좌석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도록 되어 있는 열과 한 방향으로 놓인 열이 반씩이다. 기차에는 부랑걸인이 많이 탄다고 해서 내심 겁을 먹었으나 오전이라 그런지 험상궂어 보이는 사람은 없다. 열차 내부는 서울의 지하철보다 깨끗하다. 열차 내에서 음식을 팔지는 않는다. 유니온에서 커피나 프레즐을 사들고 올라오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테이블 있는 좌석에 가방을 내려놓자 아들을 데리고 탄 흑인 부인이 함께 앉아도 좋겠는지 묻는다. 여행은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부인은 특유의 곱슬머리를 정성스럽게 땋고 머리카락 끝에 장식을 달았다. 그러고 보니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맞은편 대각선에는 수염에 염주 같은 것을 매단 청년이 전화통화 중이다. 청년의 어깨를 드러낸 몸에는 거의 빈틈없이 문신이 있다. 목덜미와 허리춤에도 젊은 끼가 새겨져 있다. 맞은편 좌석이 비어 있지만 다리를 뻗어 발을 걸치고 있는 사람은 눈에 띄지 않는다. 일상 보아 오던 모습들이 낯설게 다가온다. 같지 않으면 이상하거나 어색했던, 무례함이 통하던 서울과 많이 다른 모습이다.젊은 흑인 부인은 아들과 불꽃놀이를 보러 간다고 한다. 이날은 독립기념일이다. 해마다 이날 산타모니카 해변에서는 대형 불꽃놀이가 펼쳐진다. 그래서 인지 기차는 만원이다. 나는 만원이라고 말하고 있고 그녀는 기차가 붐빈다며 약간 불편해 한다. 서울처럼 사람과 사람이 부딪혀 서야 할 정도는 아니다. 평소에는 빈자리가 많다는데 이날은 서 가는 사람이 대여섯 명 있는 정도다.인구밀도 높은 한국에서 차 안이 붐빈다고 하면 사람들이 몸을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빽빽이 타 있는 상태를 말한다. 이 미국 사람은 좌석이 다 차서 몇 사람이 서 있는 상태를 붐빈다고 말하는 것이다. 나는 서울의 만원버스나 전철을 생각하면서 혼자 웃었다. 서로 다른 경험은 서로 다른 해석을 낳나 보다.산타모니카 역을 빠져나오자 사람들이 모두 공통의 목표를 가진 듯 일제히 한 방향으로 걷는다. 콜로라도 블러바드를 따라 10여 분, 나도 그들 사이에 섞여 해변으로 걷는다. 성조기 문양의 옷차림도 많다. 차량이 통제된 거리에 자전거와 세그웨이가 달려 나간다. 사람들은 아무데나 자전거를 세워둔 채 가버리고 또 다른 사람이 길에 세워진 자전거나 세그웨이를 타고 떠난다. 이곳은 일찌감치 공유경제가 실현되고 있다.슬리퍼를 벗어 들고 모래사장을 가로질러 바다에 이른다. 바닷물이 발끝을 적신다. 이글거리는 태양을 이고 섰는데도 바닷물 냉기에 몸이 흠칫 놀란다. 이내 솜처럼 흡수력 좋은 심장으로 바다가 스민다.몇 시간 후면 이곳에서 축제가 시작될 것이다. 제트 스키를 타는 사람, 모래 위에서 커피를 홀짝 거리는 사람, 음성 높낮이가 만들어 내는 화음. 멋들어지게 자유를 누리는 이들이 부럽고 경이롭다.

일, 백색국가 제외…지역 경제 시험대 섰다

일본이 28일 한국을 수출관리상의 우대 대상국인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개정 수출무역관리령 시행에 들어갔다.한국에 전략물자를 수출하는 일본 기업들은 3년 단위로 ‘일반 포괄 허가’를 거쳤지만 앞으로는 개별 허가를 받거나 일반 포괄 허가보다 훨씬 까다로운 ‘특별 일반 포괄 허가’를 받아야 한다. 식품과 목재를 제외한 거의 모든 품목이 규제 대상이다.지난 4일 스마트폰의 디스플레이 등에 사용되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 3개 소재에 대해 수출을 제한하는 1차 조치에 이어 2차 경제 보복 조치다.대구시와 경북도는 이미 1차 경제 보복 조치 당시 뒤따를 2차 조치를 예상하고 만반의 대응 태세를 준비해 왔다. 하지만 2차 보복 조치가 현실화된 상황에서 부문별 비상대응 체제를 가동, 지역 경제에 미칠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그동안 대구시 및 경북도와 관련 기업들과의 대책회의에서 드러난 우리의 취약 부문에 대한 지원이 차질 없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지역 반도체 소재·부품 제조사들은 부품 국산화에 따른 막대한 자금 투입 등을 걱정하고 있다. 지역의 관련 기업끼리 공동으로 R&D를 추진하는 방안도 좋은 방법이다. 소재부품 국산화를 위해서는 R&D도 중요하지만 당장 필요한 것은 돈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금융지원을 서둘러야 한다.또 현실적인 문제가 대체품을 찾아도 테스트가 오래 걸린다는 점이다. 정부 관련 연구소 와 대학 등이 나서야 한다. 장비의 경우 범용장비 상당 부분은 대체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대체나 국산화가 쉽지 않은 특정 장비는 정부와 지자체가 나서 대안을 찾도록 해야 한다.하지만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도 대비해야 한다. 해결책이 없다고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정부도 28일 소재·부품·장비 산업 관련 예산을 2022년까지 5조 원 이상 투입키로 하는 등 대응방안을 내놓았다. 핵심 부품의 대외의존도를 극복하려는 조치다.대구는 중소기업의 소재·부품 중심 도시다. 당연히 일본의 소재·부품을 수입하는 업체도 있지만 우리 기업들의 경쟁 상대가 더 많다. 이는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일본의 경제 보복은 우리 정부와 기업을 각성시키는 계기가 됐다. 소재·부품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됐다는 점이다. 정부는 소재·부품·장비 산업에 대한 지원을 늘리고 대기업은 국내산을 더 많이 구매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는 부문이다. 앞으로 대기업과 지역 기업들의 유기적인 협력이 필요하다.일본 경제 보복을 계기로 대구가 세계적인 부품·소재 도시로 비상할 수 있기를 바란다.지역 기업들은 이번 위기를 기회 삼아 한 단계 더 올라서는 계기를 삼도록 해야 한다.

통계는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통계는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이부형현대경제연구원 이사인류가 망망대해를 자유롭게 항해하면서 미지의 세계를 발견하고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게 해 준 나침반을 두고 프랑스의 세계적인 대문호 빅토르 위고는 ‘배의 영혼’이라고까지 칭송했다고 한다. 이는 15세기 이후 프랑스가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건설하여 막대한 부를 쌓음으로써 당시의 다른 유럽국가처럼 제국의 반열에 오르는 데 나침반이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통계를 두고서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자 앞으로 어디로 가야만 하는지를 보여주는 나침반과도 같다고 한다. 과거의 나침반이 그랬듯이 오늘날 통계도 국가의 명운을 좌우할 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그래서인지 OECD에서도 데이터와 이를 토대로 한 정책결정 즉, 증거기반 정책결정(Evidence-Based policy Making)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신뢰할 만한 기본 데이터를 모으고 생성하여, 표준화 등을 통해 실질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증거로 데이터를 변환함으로써 정책결정 과정에서 참여자가 이해하기 쉽고, 신뢰할 수 있으며, 시의적절한 증거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또 이를 공유함과 동시에 관련 이해관계자의 참여를 통해 증거를 확산시키는 것도 필요하다고 한다. 다시 말하자면 정책 의사결정은 신뢰 가능한 데이터와 통계 및 이것들이 보여주는 객관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이것이 사회 전반에 공유되어 사실 왜곡이 일어나지 않도록 함으로써 국가나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틀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그런데 최근 고용이나 소득 관련 통계를 둘러싼 논란을 보노라면 국내 주요 정책 의사결정들이 이와는 사뭇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것이 아닌지 염려스럽다. 정책 의사결정 과정에서 통계가 보여주는 신뢰할 만한 증거에 대한 믿음보다는 어느 한쪽의 편협한 해석이나, 아예 특정 의지를 관철하고자 하는 심리가 더 크게 작용하는 것이 아닐까는 우려가 크다는 말이다.예로 고용 관련 논란은 한쪽에서는 신규 취업자 수가 거의 30만 명에 달하고 고용률도 역대 최고수준으로 고용 호조세가 이어지고 있다면서, 4%에 근접한 높은 실업률은 고령화나 고용 환경 개선에 따르는 고용시장 내 노동인구 유입 등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다른 한쪽에서는 제조업이나 자영업이 몰려있는 도소매업, 그리고 40대 연령층의 일자리가 급감하는 등 우리 경제의 중추를 이루고 있는 부문의 고용 환경이 좀처럼 나아지고 있지 않다고 비판한다. 물론 양쪽의 주장 모두 관련 통계가 잘 보여주고 있기는 하다.소득분배 관련 논란은 또 어떤가. 한편에서는 5개로 나눈 모든 소득계층의 소득이 증가해 소득개선을 위한 정책효과가 역대 최고수준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관련 통계에 비춰 볼 때 정책효과에 대한 평가를 제외하면 맞는 말이다. 그런데 또 다른 한편은 분기별 최고와 최저 소득계층 간 격차 또한 역대 최대치로 벌어져 소득 양극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한다. 물론, 이 또한 관련 통계가 잘 보여주고 있는 사실이다.나침반이 늘 남과 북을 가리키듯 신뢰할 수 있는 통계가 보여주는 현상에도 늘 명과 암이 존재하고, 두 가지 현상이 모두 진실이다. 그래서 이를 두고 논의할 때는 어느 쪽이 더 옳은지를 판별해서 그렇지 않은 쪽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이 두 가지 진실을 정책 의사결정 과정에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가 핵심이어야 하는 것이다.예를 들어 고용이나 소득분배 통계에서 밝은 쪽만 본다면 더 나은 정책 의사결정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고, 어두운 쪽은 그대로 방치되거나 더 어두워질 수 있다. 반대로 어두운 쪽에만 집중한다면 그나마 밝은 쪽도 유지하기 어렵게 된다.통계학자 발터 크래머의 말처럼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려는 목적으로 통계를 들먹인다’면 앞으로 우리는 전혀 의도치 않은 불행한 미래를 맞이해야 할 것이다.

최부자의 사회적 책임

일본이 우리나라로 수출하던 일부 품목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면서 경제적 압력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한국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보복이라는 설에 일본은 다양한 구실로 변명하며 새로운 카드로 관계를 악화시키고 있다.문제는 우리나라의 대응책에 따른 위정자들의 자세에 있다. 국민들이 힘을 모아 대응해도 어려울 판에 위정자들은 서로 삿대질이다.정부가 일본의 경제적 압력에 맞서 지소미아(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파기를 선언하자 여당은 “일본의 오만에 쐐기를 박는 우리의 민족정기를 살리는 단호한 의지를 보인 것”이라 환영했다. 그러나 야당은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를 구하기 위해 국면의 전환을 꾀한 것”이라며 비난의 수위를 높이고, 장외투쟁을 벌이고 있다. 국민들의 정서를 양분화하고 있다. 답답한 노릇이다.작금의 현실에 경주 최부자집 창고에서 발견된 문서들이 정신이 번쩍 들게 한다. 말로만 전해내려오던 일제에 항거했던 독립운동, 국채보상운동, 현대판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의 실천 등의 미담을 증거하는 문서들이 무더기로 모습을 드러냈다.경주 최부자는 일본의 무력을 앞세운 경제적 침략에 전 재산을 털어 독립운동을 지원하며 항거했다.일제는 조선을 침략하기 시작하면서 경주 최부자의 재산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일본인 관리인을 지정해 최부자가 자신의 재산을 마음대로 처분하지 못하게 했다. 이에 맞서 경주 최부자는 일대 지도자들과 힘을 모아 백산무역주식회사를 설립해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당시 전 재산을 담보로 자금을 대출해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기도 했다.또 최부자는 월성여학교를 설립한데 이어 대구대학교 설립에 앞장 서 계몽운동과 육영사업에 나설 때도 전 재산을 털어 넣었다. 이러한 흔적들이 문서로 고스란히 남아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부자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도 남음이 있다.경주 최부자의 사회적 책임을 이행한 사실은 기구성책, 과객도기, 식상기 등의 창고에 묻혀있던 문서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사방 백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손님에게는 후하게 대접하라’ 등 최부자 가훈을 철저하게 실천한 흔적이요 증거다.톨스토이가 ‘인간에게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한가’라는 책으로 제언한 삶의 지침을 읽을 필요가 없다.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이 금융업으로 200년간 지속해 왔던 부의 축적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자랑이다.300년 12대 지속되었던 부자의 이름을 나라를 살리기 위해, 국민들의 깨우침과 평안을 위해 송두리째 받치며 인근지도자들과의 연합을 주도했던 경주 최부자의 정신을 오늘 위정자들에게 귀뜸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