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과 유승민의 ‘자기희생’

60여 일 앞으로 다가온 21대 총선 정국에 초대형 이슈가 연이어 터지고 있다.유승민 새로운보수당 보수재건위원장이 9일 새보수당과 자유한국당의 신설 합당을 제의하면서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에 앞서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지난 7일 험지로 일컬어지는 서울 종로 출마를 선언했다.두 야당 지도자의 잇단 선언은 자기 희생을 바탕으로 한다. 이번 총선의 최대 변수인 중도·보수 야권 통합이 급물살을 타게 됐다.---중도·보수 야권의 통합신당 급물살유 위원장의 불출마는 탄핵사태 이후 대구지역 일부 보수성향 시민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유승민 거부 반응’을 불식시킬 계기가 될 것이다. 표심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그는 지난해 10월 “탄핵의 강을 건너자, 개혁보수로 나아가자, 낡은 집을 허물고 새 집을 짓자”는 보수 재건 3원칙을 제시했다. 이날 그는 “이 원칙만 지켜진다면 공천권과 지분, 당직에 대한 일체의 요구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다만 ‘도로 친박당, 도로 친이당’이 되지 않도록 공정한 공천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내건 조건은 합리성이 있다. 보수가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이에 앞서 황 한국당 대표는 ‘대한민국 정치 1번지’라는 종로 출마를 선언했다.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 1위인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전 총리와 진보-보수 간 빅매치를 벌이겠다는 것이다.그는 “문재인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는 민심을 종로에서 시작해 서울, 수도권, 전국으로 확산시키겠다”고 강조했다. 그의 출마가 보수 바람을 불러 일으키는 방아쇠가 될지, 아니면 장렬한 옥쇄로 마무리 될지 아직 모른다. 조금 늦긴 했지만 올바른 선택이다.그간 황 대표와 유 위원장의 마음 고생이 많았을 것이다. 작게는 개인적 정치 생명을 거는 일이고, 크게는 인물난에 허덕이는 보수 야권의 유력 대선 주자를 잃게 될지도 모르는 결정이다. 선뜻 결단을 내릴 수 없는 개인적 갈등, 그리고 보수 정치 지도자로서 대국을 망치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을까 저어하는 고뇌가 읽혀진다.그러나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제 그들의 결단은 야권 공천혁명으로 이어져야 한다.황 대표는 ‘현역 의원 50% 교체’ 등 대국민 약속을 지켜야 한다. 스스로 험지를 택한 그는 공천과 관련 당내 누구의 눈치도 볼 이유가 없다. 오직 총선 승리만 보고 가면 된다. 공천관리위원회에 더욱 힘을 실어주고 약속한 인적 쇄신과 혁신공천을 차질없이 진행해 나가야 한다.한국당 중진 김무성 의원은 “야권 통합이 이뤄지면 광주, 여수 등 어느 곳이든 당이 요구하는 곳에 출마하겠다”고 밝혔다. 중진들의 험지 출마를 이끌어 내는 물꼬가 트였다.홍준표 전 당대표, 김태호 전 경남도지사 등 중진들도 늦었다는 핑계만 대면 안된다. 대승적 결단을 해야 한다. 그것이 자신들을 몇차례씩 국회로 보내주고 대한민국의 지도자로 키워준 국민과 당원들에 대한 보답이다.---대구지역도 차제에 친박 논란 정리해야대구·경북 정치권에도 비상이 걸렸다. 황·유 두 사람의 결단은 대대적 컷오프 예고에 맞서온 지역 의원들의 반발을 잠재울 명분이 될 전망이다.지역 의원들은 “선거철만 되면 TK 물갈이론이 찾아온다. TK가 당의 식민지냐”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지역에서도 이번 기회에 친박 논란을 정리하고 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선거 때마다 유령처럼 찾아와 지역 여론을 분열시키고 지역의 정치적 역량을 모으는데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다.보수 정당은 지난 2016년 20대 총선, 2017년 대선, 2018년 동시 지방선거 등 전국단위 선거에서 내리 3연패했다. 이번 총선까지 지면 재기불능 상태가 될지도 모른다.통상 총선은 여당의 ‘국정 안정론’과 야당의 ‘정권 심판론’ 맞대결이었다. 그러나 이번 총선 정국에는 ‘야당 심판론’이 등장했다.여당과 대통령은 국정을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중간 평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야당은 심판이나 청산의 대상이 아니다. 국정 운영의 견제자고 감시자다. 감시자를 심판해버리면 어쩌자는 것인가. 중도·보수가 되살아나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독자기고…생명 구하는 양보, 소방차 길 터주기

생명 구하는 양보, 소방차 길 터주기이춘식경산소장서 자인119안전센터장사이렌을 울리며 현장으로 급히 달려가는 소방차가 있다.하지만, 도로 위 차량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비켜주는 일 없이 요지부동이다.말 그대로 불이 난 곳이 강 저편이니 나에게는 급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누구나 바쁘겠지만 ‘생명을 구하는 양보’는 반드시 필요하다.날이 갈수록 교통량이 증가하고 불법 주·정차 차량이 늘어나면서 소방차 현장 도착 시각은 갈수록 지연될 수밖에 없다.그러나 화재 현장은 1분 1초가 다급하며 현장 도착이 늦어질수록 소중한 인명과 재산피해는 급격히 늘어나 대형 참사로 이어진다.현실은 소방통로 불법 주·정차 차량은 심각한 문제가 대두하고 있다.현재 대부분 주택밀집지역이나 골목길은 승용차 한 대가 겨우 다닐 만큼 비좁고 시장도 쌓아둔 물건이 소방차 진입을 방해하여 대형화재가 될 가능성이 크다.더욱이 아파트 단지의 경우 차량을 이중으로 주차하는 등 관리사무소에서도 통제되지 않아 소방차 진입에 어려움이 따르고 있다.외국은 긴급차량 출동을 위한 Fire-Lane(미국) 및 교통제어시스템이 운영되고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출동차량의 지휘관이 방송 및 수신호로 안내하고 있다.외국의 여러 사례를 보면 정책적으로 강력한 단속을 통하여 소방차 출동 시 길 터주기 문화가 정착되었다고 한다.우선 단속 등 강력한 정책을 통해 소방차 길 터주기도 좋지만 우리들의 가족과 이웃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진정성 있는 시민의식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도약하고 있는 시점에 이러한 선진시민으로서 안전의식 준수가 세계가 부러워하는 진정한 선진국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소방차량에 길을 양보하고 불법 주·정차금지 등 소방기관에서 인명구조와 화재진압의 신속성을 확보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홍보하고 있는 ‘소방차 길 터주기’ 운동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다.사랑하는 내 가족, 내 이웃을 위해 아름다운 양보의 미덕으로 선진국민의 모습을 보여줄 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괜찮을까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괜찮을까요?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세계를 불안으로 떨게 한다. 대보름달은 시절에 아랑곳없이 밝고 크게 슈퍼 문이 되어 떴다. 달을 보며 사람들은 어떤 기도를 올릴까. 요즘엔 전화벨만 울려도 가슴이 쿵쾅거린다. 더 나쁜 소식이라도 들려올까 봐서. 선별 진료소 당번을 서다 보니 하루의 시간은 너무도 길게 느껴진다. 중국을 거쳐 왔으면 확인서를 작성해서 오라고 요구하는 회사도 있고 아이들은 열이 조금만 나도 선별 진료소를 찾는다. 보호구를 착용하고 환자를 진찰하는 것은 참 힘들다. 발걸음이 뜸해진 사이 찬바람 속에 나섰다. 중천에 뜬 달님에게 두 손을 모아 본다. 어서 사태가 종식되어 일상으로 돌아가 평화를 얻을 수 있기를.코로나는 왕관(crown)이라는 뜻이다. 코로나바이러스도 왕관 모양의 돌기가 있는 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사람에게 인후염, 위장관 질환에 흔히 발견되던 친숙한 바이러스였던 것이 얼마나 지독한 모습으로 바뀌었을까. 뉴스엔 ‘코로나‘라는 단어가 지배하고 있다. 한 친척은 한잔하시면 늘 자랑삼아 이야기하신다. 장가든 날 코로나 택시를 타 보았다. 60년대 코로나 택시로 나들이를 하였으니 어찌 그 추억을 잊겠는가. 어떤 이는 코로나 맥주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나이 어린 조카가 코로나맥주 캔에 그려진 노랑이를 보고는 디메트로돈 공룡이라며 사달라고 졸라댄 적이 있다. 그때 할 수 없이 박스로 샀던 적도 있으니. 추억이 깃든 코로나가 이젠 잠자리에서도 가위까지 눌리게 한다. 오늘은 또 얼마나 공포에 질린 환자들을 만날까.병원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출입구를 통제하고 면회도 자제해달라는 문구가 대문짝만하게 나붙어 있다. 로비에 들면 직원들이 출입자의 행선지를 일일이 적게 하고 체온을 잰다. 손 소독을 철저히 하고 가라고 당부하니, 몸이 아파서 병원을 내원했지만, 혹시 저 안으로 들어가서 진찰을 받아도 될까 불안하리라. 지난 주말에는 멀리 중동에서 근무하는 아이 아빠가 휴가차 방한했을 때도 인사하겠다며 일부러 병원을 찾아왔던 단골 아이 엄마가 병원 로비에서 한참을 망설였단다. 열이 나서 보채고 아무것도 먹지 못해 축 늘어져 있는 아이를 안고 병원 입구에 서서 보니 정말이지 그 속으로 들어가 진료 받다가 오히려 더 힘든 상황이 되지 않을까 염려되더라고 고백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명쾌한 답이 떠오르지 않아서 친정어머니께 전화해 여쭈었단다. “엄마, 병원 안에 들어가도 되겠어요? 이름도 적으라고 하고, 마스크를 모두 쓰고서 비닐 옷까지 입고 있는데 어쩌지요? 엄마, 저 그냥 집으로 갈까요?” 라고 울먹이는 소리로 전했더니, 어머니가 말하기를 “과장님 안에 계시는데 뭔 걱정이야, 그냥 들어가서 진찰 받아, 내가 바로 갈 테니!” 하셨다며 웃는다. 부리나케 달려온 그녀의 어머니는 ’별일 없으시죠?”라며 나의 안부부터 챙긴다.선별 진료소를 운영하고 있고 환자일 가능성이 높으면 음압 병동에 입원 시켜 상태를 지켜보면서 검사를 한다. 음압 병동은 독립된 건물이라서 통로도 병원과는 완전 별도로 되어있고 음압병실 자체가 주변의 기압보다 낮은 압력을 유지하면서 내부의 공기가 정해진 통로로만 빠져나가도록 시설이 되어 있다. 음압 시설은 내부 압력이 낮으므로 외부로 공기 유출이 되지 않는다. 압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움직이지 않던가. 그러니 외부에서 공기가 들어오려 하지, 절대 안쪽의 오염된 공기가 밖으로 유출되지 않는다. 동력을 이용해 빼내는 공기통로에는 필터를 이용해 바이러스나 세균이 밖으로 나가는 것을 차단하기에 참으로 안전한 시설이 바로 음압 시설이다. 배기구도 따로 분리되어 있는 병실을 음압 시설 병실이라 부른다. 이런 음압시설을 별도로 갖춘 병동을 음압 병동이라고 부른다. 음압 시설은 심각한 호흡기 전염병 환자를 격리·치료할 수 있다. 최근엔 중국을 다녀온 적이 없는 70대 여성 환자가 감염되어 더 걱정스럽다. 중국을 다녀온 아들 며느리와 동거했을 뿐인데 그들은 1차 검사에서 음성이라고 나왔으니, 증상이 없는 무증상 환자가 감염원이 되었는지, 증상도 나타나지 않고 타인에게 감염만 시키고 자신은 그사이 자연 치유되었는지, 방역 당국에서 면밀한 조사를 하고 있다고 하니 결과를 지켜볼 수밖에.바이러스는 건조한 환경에서 증식을 잘한다.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의미로 물을 많이 마시고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 건조한 환경을 피하는 것이 상책일 것 같다.오래지 않아 출시 백 년을 맞이한다는 투명한 병에든 황금빛 찰랑대는 생기 있는 코로나 맥주병을 보면서 ‘그때 그 병이 바로 이것과 같은 이름이었지’ 떠올릴 날을 기다리면서 오늘도 무사하기를 기대해본다.

인사…대법원

◆대법원◇ 지방법원 부장판사△대구지법 정욱도 백정현 김정도 서경희 황영수 김성열 이영숙 정석원 김태천 권준범 이호철 김낙형△대구가정법원 이상균 김종혁 정세영△대구지법 서부지원 전우석 김정우 김정일 정한근△대구지법 안동지원 조순표△대구지법 경주지원 이병삼 문성호 한소희 우정민(사법연구)△대구지법 포항지원 박진숙 권순향△대구지법 김천지원 이성균△대구지법 상주지원 권성우△대구지법 영덕지원 황보승혁 ◇ 고등법원 판사△대구고법 공도일 박영주 조진구 송민화◇ 고등법원 판사△대구고법 사공민 정신구◇ 지방법원 판사△대구지법 나원식 이정목 이원재 이기웅 류영재 권형관 박노을 김남균 박가연 홍은아△대구가정법원 김유경△대구지방법원 서부지원 함병훈△대구지방법원·대구가정법원 안동지원 김준영 이승엽 이정현△대구지방법원·대구가정법원 경주지원 김형돈△대구지방법원·대구가정법원 김천지원 서청운 최유빈△대구지방법원·

인사…법무부

◆법무부◇ 고위공무원 승진△대구교도소장 김승만◇ 고위공무원 전보△대구지방교정청장 이경식◇ 부이사관 승진△대구보호관찰소장 손세헌◇ 부이사관 전보△교정기획과장 우희경 △전주교도소장 최병록 △의정부교도소장 오세홍◇ 서기관 전보△대구지방교정청 사회복귀과장 정재열 △경북직업훈련교도소장 류동수 △경북북부제2교도소장 최진규 △경북북부제3교도소장 박융우 △상주교도소장 황의호 △대구교도소 총무과장 윤영주 △대구교도소 보안과장 이민열 △대구교도소 분류심사과장 강군오 △경북북부제1

문향만리…눈

눈 / 황외순열한 계절을 지나 당도한 편지 한 장지난 일은 모두 덮자, 예서 새로 출발하자심장에 현을 켜는 말시리도록 반짝인다-시조집『단편같이 얇은 나는』(고요아침, 2019)올 겨울은 눈을 보기 어렵다. 겨울은 뭐니 뭐니 해도 눈인데, 펑펑 쏟아지는 함박눈이 제격인데. 동서고금에 눈을 노래한 시편은 많다. 윤동주는 눈 오는 날 눈밭에서 뛰어노는 강아지가 꽃을 그린다고 하면서 눈이 눈을 새물새물하게 한다고 노래했다. 김광균은 일찍이 눈 내리는 소리를 두고 ‘설야’에서 어느 머언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 밤 소리 없이 흩날리느뇨/ 처마 끝에 호롱불 여위어 가며/ 서글픈 옛 자췬 양 흰 눈이 내려/ 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이 메어/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내리면/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라고 노래하여 많은 이를 탄복하게 만든 바 있다. 김수영은 ‘눈’에서 눈이 온 뒤에도 또 내린다/ 생각하고 난 뒤에도 또 내린다/ 응아 하고 운 뒤에도 또 내릴까/ 한꺼번에 생각하고 또 내린다/ 한 줄 건너 두 줄 건너 또 내릴까/ 폐허에 폐허에 눈이 내릴까라고 특이한 발상으로 눈을 노래하여 우리로 하여금 깊은 사유의 세계로 들어서게 했다. 또한 그는 또 다른 ‘눈’에서 눈은 살아 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자고 마음 놓고 마음 놓고/ 기침을 하자/ 눈은 살아 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라고 읊조려서 간담을 서늘케 했다. 황외순은 경북 영천 출생으로 2012년 동아일보와 부산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으로 문단에 나왔고, 시조집으로 ‘단편 같이 얇은 나는’을 펴냈다.​ 결핍과 공감, 길 과 그늘 혹은 어둠, 자유와 속박 그리고 미래를 향한 예지의 눈으로 ‘존재의 거처를 살피는 일’에 전념하는 시인이다. 결핍을 시조로 승화시키고자 다채로운 시선으로 자아와 사물, 세계의 이면을 부단히 살피고 궁구하면서 ‘새로운 목소리’의 발현을 꿈꾸고 있다. 황외순의 ‘눈’역시 새로운 이미지를 구현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눈’을 두고 ‘열한 계절을 지나 당도한 편지 한 장’이라고 하니 무슨 편지일까 궁금했는데 특별히 다른 이야기는 아니다. ‘지난 일은 모두 덮자, 예서 새로 출발하자’라는 다짐이다. 사실 지난 일을 모두 덮기가 쉽지 않다. 덮어버리려 해도 회한 같은 것이 자꾸 꾸역꾸역 떠올라 밀어내기가 어렵다. 새로 출발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심장에 현을 켜는 말’인 ‘눈’으로 말미암아, ‘시리도록 반짝’이는 ‘눈’으로 말미암아 지난 일을 덮는 일도. 새로 출발하는 일도 가능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언제나‘눈’은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과 같은 것이니까. 조심스러운 청유형인 ‘덮자, 출발하자’라는 말에 친근감을 느끼게 되어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레 들게 되고, 앞서 살핀 ‘심장에 현을 켜는 말’ 즉 ‘심금’을 울리는 청각적인 말이 환한 빛인 눈으로 시각화되면서 공감각의 세계가 체현되어 ‘시리도록 반짝’임으로써 덮을 것은 죄다 덮어버리고, 새로운 출발 선상에 설 수 있음을 일러준다. 이처럼 ‘눈’은 다함없는 기대와 설렘의 정표다. 이정환(시조시인)

해외 여행자, 잠복기 국내 이동 자제해야

우한 폐렴(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국내 확진자가 6일 현재 23명으로 늘어났다. 하룻새 4명이 추가로 확인돼 전파 속도가 빨라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특히 청정지역인 대구에도 17번 확진자(30대 남성·경기 구리시)가 지난 설 연휴 때 이틀간 다녀간 것으로 나타나 지역민들의 불안감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17번 확진자는 콘퍼런스 참석 차 방문했던 싱가포르에서 인천공항으로 돌아온 직후인 지난 달 24일 KTX를 타고 대구로 왔다. 이후 25일까지 이틀 간 머물면서 수성구에 있는 친가와 북구의 처가를 방문해 친인척 등을 접촉한 것으로 나타났다.현재까지 대구에서 접촉한 사람은 가족 5명, 친척 2명, 택시기사 2명, 편의점 직원 4명, 주유소 직원 1명 등 14명이며 이들은 긴급 검사 결과 모두 바이러스 음성으로 나타났다. 천만다행이다. 대구시는 이들을 자가격리조치하고 하루 2회 이상 이상 증상 여부를 체크하고 있다.방역 당국은 확진자가 대구를 다녀갔지만 이미 12~13일이 경과해 곧 최대 잠복기(14일)가 지나게 된다고 밝혔다. 확진자와 접촉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8일까지 이상 증상이 없으면 사실상 감염 위험이 없다는 것이다.그러나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확진자가 접촉한 사람이 더 있는 상황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한 폐렴은 무증상 환자의 경우 전염력이 상대적으로 약하긴 하지만 전염 가능성은 있다. 17번 확진자는 구리시의 집으로 돌아간 직후인 지난달 26일부터 열이 나는 등 이상 증상이 생겼다고 한다. 대구에는 하루 전까지 체류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파력이 약하다고만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확진자 가족 등과 접촉한 사람들을 통한 3차 감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대구·경북 이외 지역에서는 확진자 가족 등의 감염 판정이 잇따르고 있다. 우려하던 2·3차 감염이 현실화 되는 모양새다.이와 함께 중국 이외 제3국에서 감염돼 귀국하는 사람이 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우한 폐렴 감염자가 증가하고 있는 동남아 지역 국가는 방역 사각지대로 방치되는 상황이다.이번 확진자 대구 방문에서 나타난 것처럼 제3국 경유자의 관리 대책 강화가 발등의 불이다. 실제 17번 확진자는 확진 판정 전 3차례나 집 근처 병원을 방문했지만 별다른 조치를 받지 못했다.대한의사협회의 주장처럼 입국 금지 대상을 중국전역으로 확대하는 방안과 함께 고위험 지역에서 돌아온 입국자의 관리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 외국 방문자의 경우 별다른 증상이 없더라도 잠복기 동안에는 국내 이동을 하지 않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경우의 따따부따…네 정체를 밝혀라

네 정체를 밝혀라시인에게 꽃은 그랬다. 네가 내 이름을 불러주어서야 비로소 꽃이 되었다고. 남들이 꽃으로 인정해 주어서 꽃이 됐다는 거다. 꽃으로 불리기 위해 자신이 먼저 보여주었다. 정체성은 그렇게 만들어진다.28살 청년 원종건이 자신의 민주당 인재영입 자격을 스스로 반납한다는 발언은 그 자체만으로 보면 산뜻하고 쿨하다. 인터넷 서핑으로 챙겨보니 그가 한 때 주위의 따뜻한 시선과 세상의 관심을 받았던 사실 정도를 알게 됐다. 물론 그를 인격파탄자시하는 미투 폭로자의 주장이 사실인지와는 별개의 문제다. 따라서 그가 정말 어떤 인간이었는지, 누구인지는 여전히 의문이다,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의 21대 총선 출마 포기 발언도 그 경위를 짐작은 할 수 있다. 그가 청와대에 있을 때 부동산 투기로 커다란 이득을 챙겼다는 논란에 휩싸였고 그는 실제 차액보다 더 많이 사회에 기부했다고 토로했다. 그가 아무리 억울하다며 요동쳐도 세상의 눈총만큼은 피해 갈 수 없다는 현실을 그 자신은 물론 민주당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총선을 앞둔 예비후보들이 얼굴 알리기에 바쁘다. 후보들이야 일단 지명도를 높이는 일이 급하겠지만 유권자로서는 정말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여간 궁금하지 않다. 원종건씨나 김의겸씨처럼 행적이 드러난 사람들이라면 요즘 세상에서 그의 행적을 뒤지는 일이 가능하겠지만 그나마 빙산의 한조각일 뿐이다.많은 후보들이 자신의 경력을 들어 화려한 공적을 나열한다. 어느 자리에서 어떤 일을 했고 얼마나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과 국가 발전에 기여했다고. 과연 그러한가. 그것이 정말 사실이고 그렇게 자랑만 할 일인가. 공직자로 잘못한 결정이나 처신은 없었나. 자리에 따르는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거나 개인의 이익을 챙기는 수단으로 이용한 적은 없나. 비리나 부정이라 콕 집어 법률적 심판을 받지 않았다고 청렴하거나 유능한 것도 아닐 것이고 반대로 무능과 무사안일로 사회적 국가적 손실을 입힌 적은 없는가.아무리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이라지만 그럴수록 그가 몇 살이고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알 수 있게 해야 한다. 어느 동네서 자랐다. 어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을 나왔다. 직장과 사회 생활은 어떠했다. 그런 이야기들이 단순히 과거만의 일이 아닐 것이다.어떤 정치인에 대해서는 그의 출신 고교 총동창회에서 제명했다는 뉴스가 나와 진위를 확인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물론 총동창회 차원에서는 그렇게 결정한 적이 없다며 해명했으나 그의 동창들이 눈 퍼렇게 살아 있으니 지역에서 그의 학창시절 행적은 도마 위 생선이다.또 어떤 정치인은 고위직에 있을 때 국가적 송사 사건의 당사자였다는 거다. 당시 그의 결정과 판단이 국가에 엄청난 손실을 끼쳤다면서 상대당 예비후보가 공개 토론을 요구하고 나섰다. 국민들의 궁금증을 더하고 있다.물론 사람은 성장하니 어린 시절 또는 학창시절 이야기나 직장에서의 행위가 전부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실은 분명히 밝혀져야 하고 당시 어떻게 판단했고 지금은 거기서 얼마나 성장했는지 유권자들은 알아야 한다.아무런 보장도 보증도 할 수 없는, 아니면 그만인 공허한 정치적 수사나 공약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후보자의 인간됨이다. 그래서 유권자가 궁금한 것은 그의 행적이다. 자랑하고 싶은 경력만큼이나 그의 실수나 잘못도 알고 싶다. 물론 평가가 모두 같을 수는 없다. 그럴수록 그의 행적이 분명히 밝혀져야 한다.그가 누구인지, 어디에서 무엇을 하던 사람인가 알아야 한다. 개인정보와 프라이버시를 앞세우는 후보라면 공직자가 되겠다거나 아예 지도자로 나서지 말아야 한다. 공인이라면 모두 까밝힐 각오를 해야 한다.과거를 두려워하지 않고 공개할 수 있는 떳떳한 후보. 정직한 후보. 세금으로 먹여주는 또 한 명의 관리가 아닌, 개인의 이익보다 지역을 대변하고 대표하고 공공의 이익에 봉사할 수 있는 그런 후보가 유권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

기상이야기…날씨와 바이러스

날씨와 바이러스전준항대구지방기상청장겨울철에 유병률이 높아지는 것이 있다. 바로 ‘감기’이다. 만병의 근원이자 누구나 걸릴 수 있는 가장 흔한 질환인 감기는 날씨가 추워져 기온이 내려가면 잘 걸린다고 알려져 있다. 감기는 코와 목 등 호흡기 점막에 바이러스 감염에 의해 발생하는 질환으로 라이노 바이러스, 코로나 바이러스 등 200여 가지에 이르는 다양한 감기 바이러스에 의해 발생한다. 특별히 겨울에 감기가 많이 걸리는 것은 춥고 건조한 날씨와 관련이 있다. 감기는 최종적으로 면역력이 약해진 몸속에 침입한 바이러스 때문이지만, 춥고 건조한 날씨가 바이러스의 증식과 생존, 또 면역력 약화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연구팀은 기온과 습도에 따른 코로나바이러스의 생존율에 대한 실험을 진행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사람을 포함한 동물계에 광범위하게 호흡기 및 소화기 감염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로 감기의 주된 병원체이고, 과거에 유행했던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MERS)도 코로나바이러스의 일종이다. 실험결과 코로나바이러스는 기온이 4℃일 때 28일까지 생존해 있었고, 기온이 20℃ 일 때는 더 빠르게 사멸했다. 특히 기온이 20℃, 습도 50%일 때 3~5일 사이에 사멸했으며, 기온이 40℃일 때는 모든 습도조건(20%, 50%, 80%)에서 최장 5일까지 생존했고, 습도 80% 이상에서는 6시간 이내에 사멸하였다. 위 실험을 통해서 기온과 습도가 높을수록 코로나바이러스가 빠르게 사멸했다. 반대로 말하면 차고 건조한 겨울철에 바이러스가 오랫동안 생존하면서 감염률을 높일 수 있게 된다. 또 예일대 연구팀에 따르면 코감기를 유발하는 라이노 바이러스도 낮은 온도에서 더 잘 증식하게 된다고 한다. 우리 몸속의 폐는 보통 37도 정도를 유지하지만 코와 기도의 온도는 들숨날숨 때문에 외부 기온에 영향을 받아 35도 내외의 온도가 나타나고, 좀 더 차가운 코에서 번식하게 된다. 기온과 습도는 감기를 유발하는 바이러스의 생존과 증식의 관계 외에도 우리 몸의 면역체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차가운 공기에 노출되어 체온이 떨어지면 코의 혈관이 수축되어 따뜻한 혈액이 코로 공급되는 것이 차단된다. 이때 따뜻한 혈액은 감염을 퇴치하는 백혈구를 공급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몸이 차가워지면 이런 공급이 감소되어 면역력 감소로 이어지게 된다. 또 습도가 낮으면 코 속의 점막도 건조해져서 잠복해 있던 바이러스가 우리 몸으로 침투하기 좋은 조건이 되어 면역력이 떨어진 틈을 타 바이러스가 활성화되면서 감기가 유발된다. 한편 여름철에 비해 겨울철에는 주로 실내생활을 하며 난방을 하기 때문에 습도가 매우 낮아져 바이러스가 오랫동안 생존할 수 있고, 다른 사람과의 접촉빈도도 높아져 감기의 전파가 더 잘 일어난다고 할 수 있다.지금은 중국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전 세계에 확산되어 감염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실험을 통해 코로나바이러스가 기온과 습도가 높을수록 빨리 사멸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지금과 같은 영하의 기온은 고려되지 않아 한계가 있고, 특정한 환경조건에서 이루어진 실험으로 체계적인 방역이 이루어 질 때는 전혀 의미가 없어진다. 바이러스의 전파는 감염된 환자의 비말(기침, 재채기를 할 때 나오는 호흡기 분비물)을 통해 감염되거나 공용으로 사용하는 물품을 통해서도 이루어지기 때문에 마스크 착용과 손 씻기가 매우 중요하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고형 비누를 이용해 15초간 꼼꼼히 손을 씻으면 90%의 균을 제거할 수 있고, 30초간 씻으면 99%의 균을 제거 할 수 있다고 한다. 더불어 물로 헹궈낼 수 없을 경우 알코올 손소독제를 약 15초간 잘 문질러주면 99.99%의 살균효과를 볼 수 있으며, 손소독제의 알코올은 60~80% 함유했을 때 가장 효과적이라고 한다. 더불어 발열과 기침 등 의심증상이 발생한다면 필히 마스크를 착용하고 기침이 나올 때는 옷소매로 가려서 하며 외출을 자제해 지역 내 전파를 막아야 한다. 또 질병관리본부 콜센터(국번없이 1339) 또는 관할 보건소를 통해 상담과 향후 절차를 안내받아야 한다. 우리는 2002년 사스, 2009년 신종플루, 2015년 메르스를 극복한 경험이 있다. 정부와 지역사회, 국민 모두 감염 예방을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만큼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에 대해서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우한 폐렴에 취약계층은 더 서럽다

우한 폐렴(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이 취약계층을 강타했다. 우리 사회가 감염 공포에 휩싸이면서 가뜩이나 힘든 취약계층이 예상치 못한 피해를 입고 있다. 당장 노숙자 급식소가 문을 닫았다. 헌혈 기피로 혈액 수급도 차질을 빚고 있다. 보건 당국의 적절한 조치가 시급하다.5일 현재 중국 전역은 물론 세계 각국에서 총 2만4천524명의 우한 폐렴 확진자가 발생했다. 492명이 숨졌다. 국내에도 확진자가 총 18명이 됐다. 우한 폐렴의 급속 확산에 따른 여파가 우리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우한 폐렴 공포가 저소득층 홀몸노인과 노숙자 등 취약 계층에 타격을 주고 있다. 감염 우려로 노약자를 한 곳에 모으기가 쉽지 않은 데다 급식 자원봉사자도 구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전국천사무료급식소는 5일부터 대구비산무료급식소 등 전국 26곳의 급식소 운영을 중단하기로 했다. 노숙자 등 이용자만 1만5천여 명에 달하는 곳이다. 무료 도시락 배달 봉사 중단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배식과 식사 보조를 하던 자원봉사자가 줄어든 때문이다. 홀몸노인과 노숙자 등이 밥을 굶게 될 형편이다.지역에도 바로 불똥인 튀었다. 포항시는 5일 신종 코로나 확산에 따라 12개 무료급식소 운영을 2월 한 달간 잠정 중단한다고 밝혔다. 포항시는 급식소 대신 독거노인관리사와 찾아가는 복지서비스팀을 활용해 도시락을 나눠주기로 하는 등 불편이 없도록 했다.마스크와 세정제는 우한 폐렴을 예방하는 데 필수품이다. 하지만 사재기 등과 과수요까지 겹치면서 시중에서 구하기가 힘들어졌다. 바로 취약계층이 타격을 받는다. 마스크조차 구하기가 쉽지 않다. 가격도 올라 취약계층엔 부담이다.혈액 수급도 초비상이다. 학생들이 방학을 맞는 겨울철이면 헌혈이 준다. 설 연휴까지 겹쳤다. 이런 마당에 우한 폐렴이 덮치면서 헌혈 참여가 크게 위축된 때문이다.대한적십자사 대구경북혈액원에 따르면 우한 폐렴 여파가 국내에 본격화된 지난달 20일 이후 지역 헌혈자가 급감하고 있다고 한다. 이에 혈액 수급도 비상 상황이다. 5일 현재 대구경북혈액원이 보유한 혈액량은 하루분에 불과한 전국 최저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정부와 지자체는 무료 급식 중단으로 노숙자와 홀몸노인 등이 밥을 굶는 일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지자체가 나서 도시락 배달 등 별도의 조치를 취하기 바란다. 취약계층에 대한 마스크 및 세정제 지원책도 마련해야 한다. 차질을 빚고 있는 혈액 수급도 홍보 강화 및 단체 헌혈 장려 등 특별 대책을 강구하길 바란다. 우한 폐렴으로 사회안전망이 붕괴되는 사태는 막아야 한다.

세상읽기…인류의 재앙과 사랑의 마음

인류의 재앙과 사랑의 마음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미라가 된 형체들 사이를 조심조심 걸어갔다. 검은 피부는 불거진 뼈 위로 팽팽하게 당겨졌고, 두개골이 드러난 얼굴은 갈라지고 쭈그러들었다. 무시무시한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인 것 같았다. 차갑게 굳은 도로에서 영원히 몸부림치는 그 형체들을 지나, 그 적막한 통로로 밀려와 쌓이는 재를 뚫고 그들은 말없이 걸어갔다./저녁에 또 다른 해안도시의 음산한 형체가 나타났다. 희미하게 기운 듯한 느낌을 주는 높은 건물들의 덩어리, 남자는 강철 보강제가 열 때문에 물렁해졌다가 다시 굳으면서 건물들이 현실 같지 않은 모습으로 서 있게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녹아내리다 응고된 유리가 케이크의 아이싱처럼 벽에 매달려 있었다.” 코맥 매카시의 소설 ‘로드(THE ROAD)'에 나오는 두 장면이다. 매카시는 미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로 윌리엄 포크너, 허먼 멜빌,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계승한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소설 ‘로드’는 자연재해, 핵전쟁, 9·11 테러 같은 대재앙 이후의 메마른 잿더미의 세계가 보여주는 음울하고도 암울한 모습을 기묘하게 묘사하고 있다. 비평가들은 ‘로드’만큼 멸망의 날을 강렬하고 절망적으로 표현하면서도 기이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작품은 없다고 말한다. 이 소설은 지옥으로 가는 여정을 담은 또 다른 단테의 ‘신곡’이라고도 말한다. 작가가 그리고 있는 대재앙 이후의 세계는 가슴을 쥐어짜는 슬픔이 가득하고 사람의 피를 얼어붙게 만든다. 그는 희망이 솟아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불태워버린다. 이 소설을 읽으며 독자는 자신과 자신의 자녀들이 겪을지도 모를 미래에 대해 절망적인 탐색을 하면서 묵시록적 두려움과 섬뜩함을 느끼게 된다. 이 책의 이야기는 독자로 하여금 해묵은 질문을 다시 하게 한다. “이 우울하고 음산한 세상에서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지금 지구 상에서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자연재해와 인공적 재앙, 전염병은 우리를 극도로 불안하게 한다. 호주 산불, 전 지구적인 온난화와 해수면 상승, 아프리카 메뚜기 떼의 습격, 중국 후베이성 우한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창궐 등은 매카시가 소설 ‘로드’에서 묘사하고 있는 그 절망적인 장면들을 어쩌면 우리 생애에 경험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백혈병을 앓는 딸의 부모가 후베이성을 봉쇄하는 다리로 와서 딸만이라도 나가게 해 달라고 절규하는 사진, 시신을 넣을 자루가 부족하다는 보도 등은 소설에서 묘사하고 있는 비극적인 상황이 실제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매카시는 소설 ‘로드’에서 독자로 하여금 극도의 공포심을 느끼게 만들면서 빛이 사라지며 죽어가는 세계를 충격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우리는 이 소설을 읽으며 인간의 잘못된 생각과 의식, 행동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재앙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전 세계에 만연해 있는 극우와 극좌의 대립, 우한 폐렴 초기 단계의 언론 통제와 진실 은폐, 권력을 잡기 위해 미래 세대를 희생시키는 포퓰리즘 등도 자연재해 이상의 대재앙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도 과거의 많은 생물종과 마찬가지로 진화의 정점에서 스스로 자초한 대재앙으로 멸종할 수밖에 없는가? 그렇다면 모든 것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가는 데까지 갈 수밖에 없는가?”같은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빈부격차, 극단적인 이념 대결, 핵무장을 포함한 군비 경쟁 등으로 항상 위험을 등에 지고 있는 오늘의 세계가 판단을 잘못할 때는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소설 ‘로드’에 나오는 아버지와 아들 두 등장인물은 인류 전체를 대변한다. 두 인물은 선과 악의 개념조차 사라진 황폐하고 황량한 세계를 떠돈다. 그러나 자연이 인간의 파괴로부터 피난처를 마련해 줄 수 있다는 희망조차 제거된 상황에서도 아버지와 아들은 ‘사랑’이라는 형식을 통해 구원을 제시한다. 그렇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사랑의 마음’이다. 재앙의 현장에 뛰어든 각국 의료진, 자국민을 데려오기 위해 자원해서 비행기에 탑승한 승무원 같은 사람들의 고귀한 희생정신과 사랑의 마음에서 우리는 희망을 발견한다. 용기 있는 사람들의 숭고한 인류애가 인류 구원의 등대라는 사실을 새삼 절감하는 요즘이다.

문향만리…무슨 흔적이 남았을까

무슨 흔적이 남았을까 / 최재목 벌레 한 마리가 기어간다/ 보일 듯 말 듯한 흙 틈새로/ 그들만이 아는 길 따라/ 끊임없이,// 그래서, 무슨 흔적이 남았을까/ 살펴봐도/ 발자국은 보이지 않는다/ 순간에도 다가서지 못하고/ 영원이란 건 더더욱 알 턱도 없는/ 그들이 다녔던 길엔, 『상처의 형식과 시학』 (지식과교양, 2018)벌레 한 마리를 바라본다. 벌레는 그들만의 길을 따라 기어간다. 길도 없는 흙 틈새로 기어간다. 가는 길을 알고 가는 걸까. 끊임없이 가는 걸 보면 가고자 하는 곳은 있는 모양이다. 인간의 기준으로 보면 움직인 거리는 미미하지만 그에겐 상당한 의미가 있겠지. 대구에서 서울 간 거리만큼 의미 있는 이동일 수 있다. 인간에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기껏 미량의 흙만 보이지만, 그가 보는 것은 무엇일까. 시인의 호기심 어린 눈길은 느끼고 있을까. 경치는 살피고 가는 걸까. 그에게 어떤 생각이나 느낌은 존재하는 걸까. 그들이 보는 풍경이란 건 어떤 것일까. 인간이 정의할 수 없는, 그들만의 개념은 존재할까. 벌레가 간 길이 있지만 지나고 나면 그뿐이다. 그 흔적조차 없다. 흔적이 있으나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발자국만이 흔적인 것은 아니다. 발이 없는 그가 발자국을 남겼을 리 없지만 발자국을 찾는다. 보이는 것만 흔적일 수 없다. 보이지 않는 흔적을 찾아본다. 보이지 않는 흔적은 느끼고 공감하는 수밖에 없지만 그것이 말처럼 그렇게 싶지 않다. 그들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탓이고 애정이 없는 탓이다. 그들을 알 수 없고 볼 수 없는 건 어쩌면 인과응보다. ‘순간에도 다가서지 못하고 영원이란 건 더더욱 알 턱도 없는 그들이 다녔던 길엔’ 허무와 정적만이 흐른다. 벌레의 시각을 알고자 한다면 벌레의 눈을 가져야 하고, 개의 삶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개의 눈을 가져야 한다. 돼지우리나 개집에서 살았다는 천재 예술가의 에피소드를 맛이 살짝 간 기행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그들을 보듬고 이해해보고자 하는 열정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비록 완전한 이해는 불가능하겠지만 그러한 시도는 맥을 제대로 짚었다고 생각한다. 비록 돼지나 개는 될 수 없었지만 돼지우리나 개집에서 바라보는 인간의 모습은 평소 밖에서 보던 모습과는 달랐을 것이다. 벌레를 유심히 지켜보는 시인에게서 벌레가 되어 보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가슴에 와 닿는다. 그렇게 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 예술적 영감을 받아 시적 정서로 거듭났다. 쪼그리고 앉아 벌레를 연모하는 최재목 시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남을 알고 이해한다는 건 쉽지 않다. 인간은 이기적 존재여서 자신의 입장에서 남을 볼 뿐 그의 관점에서 그의 사정이나 처지, 생각을 보지 못한다. 보지 못하니 알지 못하고 알지 못하니 배려하거나 사랑하지 못한다. 평생을 같은 집에 함께 살고도 남편은 아내를 알지 못하고 아내는 남편을 이해하지 못한다. 원점이 다르고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소통하고 배려하고 사랑하기 위해서는 역지사지의 노력이 필요하다. 평생 노력해도 만족할 만큼 이루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는가. 시는 시인이 ‘생각하고’ ‘바라본’ 세계다. 시의 세계는 시인 나름의 개성적인 색깔과 향기를 지닌다. 시를 읽는다는 건 한 시인의 삶의 여정을 찬찬히 살펴보는 것이다. 오랫동안 고뇌하고 번민한 삶의 발자취를 돌아보는 것은 영혼을 풍성하게 하는 보약이다. 오철환(문인)

경제칼럼…돼지 사이클과 마스크대란

돼지 사이클과 마스크 대란이부형현대경제연구원 이사대우지금으로부터 2000년도 더 된 사마천의 사기 중에는 상업과 공업을 중심으로 부자가 된 인물들을 다룬 화식열전이 있다. 이 중에는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월나라 책사인 범려가 왕인 구천에게 경제에 관해 간언한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다.“물가를 조정하고 시장에 물건이 부족하지 않게 하는 것이야말로 나라를 다스리는 이치입니다. 물자를 모으는 이치는 물자를 온전히 보전하는 데 힘을 쓰되 묵혀서도 안 되며, 값이 오를 때까지 차지하고 있어서도 안 됩니다. 재물과 화폐는 물 흐르듯 돌게 해야 합니다.”지금으로 따지자면 시장 수급을 잘 조정하되, 매점매석과 같은 부정적인 방법을 통한 폭리를 예방하는 등 시장의 순기능을 원활히 하는 것이 부국강병의 길이라는 의미다. 실제로 월나라 왕 구천은 10여 년에 걸쳐 범례의 간언을 실천한 결과, 나라는 부강해지고 당시 경쟁국이었던 오나라와의 경쟁에서 앞서갈 수 있었다고 한다.갑자기 웬 사기(史記) 이야기냐고, 아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으로 부르는 게 값이 될 정도로 특수를 누리고 있는 마스크 시장을 보니 범려의 간언이 생각나서 하는 말이다. 국내 마스크 시장은 뭉텅이 돈을 싸 들고 와서는 공장 앞에 진을 치고 대규모로 싹쓸이해 가려는 중국 상인들이 몰려오고, 이때다 싶어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폭리를 취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면서 가격 불안이 조장되고 있다. 여기에다가 마스크 제조용 원자재인 중국 부직포 원단의 공급마저 원활치 못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더해져 마스크 가격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금 그가 살아있다면 분명 비분강개해서 관련된 자를 엄벌하도록 간언했을 것이고, 사태는 조기에 진정되었을 것이다.매우 유감스럽게도 종종 시장에서는 이처럼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이 발생하면 단기적인 품귀현상과 함께 가격 급등 현상이 발생하거나 유사 저질 상품이 등장해 시장질서를 파괴하고 각종 피해를 유발하기도 한다. 하지만 통상 시장에서는 특정 상품의 가격이 갑자기 상승하면 소비 자체가 줄거나 대체재로 수요가 전환되면서 가격이 안정화되는 이른바 돼지 사이클(Pork Cycle)이 나타난다. 예를 들자면 조류독감, 돼지열병 등이 유행했을 당시를 떠올려보자. 단기간 닭고기와 돼지고기 가격이 일시적으로 급상승한 것은 사실이지만, 닭고기와 돼지고기가 상호 대체재로 작용하거나 소비가 줄면서 시장은 비교적 단기간에 수급과 가격 균형을 되찾았다.하지만 지금 마스크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일반적인 돼지 사이클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국경을 넘는 극심한 투기현상으로 절제되지 못한 일부 사람들이 인명을 담보로 한 물욕이 그대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법제도적으로 아무 문제없이 초단기간에 엄청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일이 눈앞에 벌어지고 있다면 유혹에 빠지기 십상이다.다만, 이번처럼 전 세계가 전염병과의 전쟁을 선포할 정도로 엄청난 인명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이렇게까지 해서 돈을 벌고자 하는 욕망에 충실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식용유, 참기름, 경유, 휘발유, 분유 등 시장이 불안정해질 때마다 수많은 가짜가 득세했고 위기 상황에서 라면이나 생수 등 생필품 사재기가 종종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건 정도가 지나쳐도 한참 지나친 일이다.그나마 다행인 것은 마스크 등 매점매석 행위 금지 고시와 긴급 수급 조정조치와 같은 정부 차원의 대응책이 오늘부터 추진된다는 점이다.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는지 영리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역기능이 만연한 시장의 정상화는 그리 쉽지 않을 것이지만, 공포에 사로잡힌 시장을 단기간 내 안정시키기에는 정부 정책만큼 강력한 것도 없다.아울러 소비자들도 어서 빨리 영민함을 되길 바란다. 이제 더는 가짜와 폭리가 시장에서 막춤을 추지 못하도록 말이다.

‘마스크 대란’ 조짐…당국, 예상 못했나

우한 폐렴(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국내 확진자가 4일 1명 추가 발생해 총 16명으로 늘어났다.지역에서는 다행히 확진자가 1명도 없다. 대구에서는 확진자 접촉자, 의심 신고자, 우한 입국자 등 모두 69명을 관리해 왔다. 이중 23명은 잠복기가 지나 관리대상에서 제외됐다. 경북은 228명을 관리해 왔으나 현재는 대상이 101명으로 줄었다.그러나 확진자가 없다고 마음을 놓아서는 절대 안된다. 중국에서는 지난해 12월1일 첫 발병자가 나타난 뒤 현재까지 모두 427명(필리핀 1, 홍콩 1명 포함)이 숨지고 2만여 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최근 들어서는 사망자가 하루 50~60명씩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상황이다. 확진자도 하루 3천~4천 명씩 늘고 있다. 언제 진정국면에 들어설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다.대구시와 경북도 등 각 지자체는 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개최하고 2, 3차 감염을 통한 지역사회 확산 차단에 총력을 경주하고 있다. 민간 부문에서도 기관·단체 별로 감염예방대책위원회가 구성돼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경북대는 개교 74년 만에 처음으로 많은 사람이 모이는 졸업식, 입학식을 취소키로 결정했다. 포스텍, 포항대, 선린대, 위덕대 등 포항, 경주 지역 대학들도 잇따라 졸업식을 최소했다. 안타깝지만 불가피한 결정이다.지역 주요 공연장들도 대부분 공연을 연기하거나 취소하고 있다. 대구시립교향악단은 2, 3월 정기 연주회를 8월 이후로 변경하고 발매된 티켓에 대해서는 환불할 예정이다. 오페라하우스는 3, 4월로 예정된 공연을 모두 5월 이후로 연기한다.그러나 허점도 적지 않다. 개인 방역의 가장 기초적 물품인 마스크가 품귀현상을 빚고 있어 원성을 사고 있다. 일부 상인들이 대량으로 사재기를 한 뒤 되파는 매점매석 행위도 나타나고 있다. 물량이 부족하자 가격도 오르고 있다. 일부 품목은 2~3배 올라도 구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한다.당국은 어떤 경우가 있더라도 마스크만은 원활하게 공급되게 해야 한다. 정부는 뒤늦게 사재기를 하면 형사처벌하겠다는 대응책을 내놨다. 충분히 예견되는 상황인데도 대처 못한 것은 범정부적 협업과 대책이 제대로 추진되고 있나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각급 학교 개학이 확산 방지의 최대 고비다. 특히 지역대학에는 이달 중 중국유학생들이 한꺼번에 돌아올 예정이어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지자체와 방역 당국은 각급 학교, 어린이집, 대형 마트, 도시철도, 시내버스 등 많은 사람이 모이거나 이용하는 시설의 감염 차단 대책을 다시 한번 점검하기 바란다.

아침논단…이번엔 프레임부터 바꾸자

이번엔 프레임부터 바꾸자박운석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몇 년 전 오랫동안 타던 자동차를 바꿨을 때의 일이다. 어떤 자동차를 고를까 고심 끝에 한 자동차 모델을 선택하고 계약을 했다. 새 차를 기다리는 며칠 동안 희한한 경험을 했다. 도로에 평소에 많이 보이지 않던 그 모델의 자동차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니는 것이었다. 다른 자동차보다 유독 계약한 모델의 자동차만 강렬하게 눈에 들어왔다. 분명 며칠 사이에 그 자동차만 많이 팔린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또 다른 경험도 있다. 얼마 전 속이 좋지 않아 병원을 다녀온 이후도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약을 복용하며 이틀간 멀건 흰죽을 먹고 지낼 때였다. 힘없이 TV를 보고 있는데 웬 먹방(먹는 방송)이 그렇게나 많은지…. 채널을 돌려도 먹방 일색이었다. 드라마에서도, 오락프로그램에서도, 예능프로그램에서도 맛있게 먹는 출연자들의 모습만 비췄다.물론 이런 먹방도 다른 날보다 그날 하루만 더 방영된 것도 아닐 것이었다.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나를 바꾸는 심리학의 지혜, 프레임’이라는 책에서 이 현상은 배가 고팠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세상을 온통 ‘음식 프레임’으로만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거리의 자동차도, 먹방도 그날 갑자기 많아진 건 아니었다. 결국은 세상을 보는 나의 관점이 바뀐 것이었다. 나의 프레임이 바뀌었기 때문에 그렇게 보인 것뿐이었다.프레임(frame)은 틀이다. 고정관념처럼 박혀버린 생각의 틀이다. 그래서 한번 만들어진 프레임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여러 프레임 중에서도 가장 걱정되는 건 자기중심적 프레임이다. 최인철 교수는 이를 경계한다.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프레임을 통해서 채색되고 왜곡된 세상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자기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며,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하는 채색된 세상은 보수와 진보 프레임이 명확한 정치권이 대표적이다. 정치인들은 자기들의 잇속을 챙기는 하나의 수단으로 ‘보수 대 진보’라는 프레임을 사용한다.어차피 정치는 프레임 싸움이기는 하다. 때문에 기를 쓰고 상대의 약점을 파고들어 상대에게 불리한 프레임을 뒤집어씌우려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경험한 바 있다. ‘친일 프레임’ 대 ‘종북 프레임’이다.지난 해 일본의 무역보복이 시작됐을 때 정부·여당은 반일을 내세우며 친일 프레임으로 야당을 비판했다. 보수진영인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조금이라도 일본에 대해 우호적인 제스처를 취하면 어김없이 ‘친일’이라는 덫에 걸려들었다. 야당은 문재인정부의 대북정책을 퍼주기라 규정하며 종북 프레임으로 공격해 왔다. 진보진영에서 북한을 도와야한다는 뜻만 내비쳐도 바로 ‘종북’이라는 프레임에 갇혔다.21대 총선이 7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총선도 프레임 전쟁에서 벗어나지는 못할 것이다. 여전히 보수 진영에서는 종북 프레임을, 진보 진영에서는 친일 프레임을 휘두를 것이다. 하지만 분열을 조장하는 것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갈등을 조장하고 나의 편을 결집시켜야 더 쉽게 표를 모을 수 있어서다. 적과 동지를 명확하게 구분해주는 것이 친일 프레임이고 종북 프레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프레임이 두드러질수록 선거가 끝난 이후 부작용은 클 수밖에 없다.이제는 리프레임을 고민할 시기다. 최인철 교수는 우리의 착각과 오류, 오만과 편견, 실수와 오해는 프레임 때문에 생겨난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중심적 프레임을 깨고 나오는 용기, 편견과 오해를 인정하는 지혜를 발휘해 프레임을 리프레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신년 초 한 일간지의 새해특집 여론조사에서 의미 있는 결과가 나왔다. 이 조사에서 ‘친일이나 종북과 같은 이념논리로 정치권이 공방을 펼치는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어느 정도 공감하느냐’는 질문에 78.8%가 공감한다고 답한 것이다.이제는 프레임을 바꿔야 한다. 이번 총선에서는 친일과 종북 프레임이 아니라 좀 더 건설적이고 공감 가는 프레임을 들고 나와야 할 것이다. 국민들은 바보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