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업 중 구명조끼 착용 생활화 해야

최시영울진해양경찰서장 우리 바다에는 6만여 척의 크고 작은 어선이 매일 조업중으로 최근 3년간 연평균 3천144척의 해양사고가 발생해 98명의 인명 피해가 있었다.어선 노후화와 어업인구의 고령화, 외국인 선원과 5t 미만 소형어선의 증가로 경미한 해양사고가 점차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선박사고의 위험성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현실이다.사고의 원인을 보면 종사자의 부주의나 실수가 높아 기상불량이나 구명조끼 미착용 상황에서는 자칫 대형사고로 이어질 개연성이 크다.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소형선박 어선원에 대한 구명조끼 착용 의무화에 대해 학계와 어민들 사이에서 논의되고 있지만 아직 법으로 강제되지 못하고 있다.해양경찰은 잊을 만하면 발생되는 어선의 조업중 사고 예방을 위해 1인 조업선을 대상으로 ‘자기구명 3가지 원칙(구명조끼 착용, 휴대폰은 방수팩에, 긴급신고 119)’ 준수하기 캠페인을 연중 실시하고 있다. 해양안전을 위한 다양한 정책의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해양경찰은 국민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부단한 정책 발굴과 시행에 노력해야 할 것이며, 선박 관련 종사자와 바다를 찾는 국민은 자신의 안전을 위해 조금의 불편은 감수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바로 지금 내 곁에서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사고는 나와 무관하다’는 안전불감증을 버리고 해양경찰의 안전한 바다만들기 캠페인에 함께 동참해 줄 것을 당부하고 싶다.우리나라도 국민소득 3만불 시대다. 이에 걸맞는 성숙한 해양안전의식이 갖추어질 때 바다는 안전해 질 수 있다.바다 베테랑인 선장이 거안사위(居安思危)의 지혜를 발휘할 때도 바로 지금이다.그들이 솔선하여 해양안전 캠페인에 적극 동참할 때 비로소 안전한 바다가 완성될 것임을 확신한다.

침묵의 대가 / 마르틴 니묄러

침묵의 대가/ 마르틴 니묄러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다음 그들이 사회민주당원을 가뒀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민주당원이 아니었다/ 그다음 그들이 노동조합원을 덮쳤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다/ 그다음에 그들이 유대인에게 왔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다/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는/ 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했다』 (1955초판)........................................................마르틴 니묄러(1892~1984) 목사가 쓴 것으로 알려진 글이다. 루터교 목사인 그는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독일 국민들의 참회와 화해를 이끄는 대변자로서 활동했으나, 애초에는 반공산주의자인 히틀러의 지지자였으며 민족보수주의적인 성향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러나 히틀러가 국가의 우월성을 종교처럼 맹신하자 환멸을 느끼게 되었고, 많은 개신교 성직자들이 나치의 위협에 무릎을 꿇은 가운데서도 그는 반 히틀러 독일 성직자그룹의 리더가 되었다. 히틀러에 의해 체포된 그는 강제수용소에 감금되었다가 1945년 연합군에 의해 풀려난다.시적인 형식으로 전해져오는 이 글의 본디 제목은 ‘처음 그들이 왔을 때 First they came’이다. 나치가 특정집단을 하나씩 차례로 제거함으로써 권력을 쟁취할 때, 저항하지 않고 침묵한 독일 지식인들을 꼬집고 있다. 그리고 적극 동조하진 않았어도 무관심으로 방조했던 국민들을 함께 나무랐다. 1960년대 말 미국의 사회운동가들에게 널리 퍼져 전 세계에 알려졌는데, 정치적 무관심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동시에 상호의존성과 연대를 강조하려는 의도로 자주 인용되었다. 최근까지도 진영 불문하고 패러디로 쓰이거나 문구가 추가되기도 한다.2014년 12월 통합진보당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을 때도 이 시가 인용되었고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이 전 방위적으로 칼날을 겨눌 때도 이 시는 등장했다. 통합진보당 해산 시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종북주의를 척결한 자유민주주의의 승리’와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신공안정국의 발호’ 그리고 ‘그게 우리 밥 먹는 것과 무슨 상관있나’ 등 대체로 세 갈래로 나눴다. 대선 당시 이정희 후보에 대한 보복이라는 의심을 받았던 박근혜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를 확고하게 지켜낸 역사적 결정”이라 자평하며 득의만만했다.반면 당 해산 결정과 함께 의원직을 잃은 이상규 전 의원은 “통진당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진보정당, 그리고 새정치민주연합 같은 야당, 시민단체, 노동조합 등 사회 전 영역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때 한 국립대로스쿨 교수는 “통진당이야 어찌됐든 밥벌이나 잘 챙겨라” 통진당 해산 선고 판결문을 놓고 치열한 격론을 벌여야 마땅할 법학교수가 아무리 술자리라지만 학생들 앞에서 할 소리인지 두고두고 씁쓸했다.우리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는 그렇게 흐물흐물 넘어갔고 잊혀졌다. ‘먹고 사는 일’이 힘들고 최대의 현안이 되어버리면 민족주의 파쇼정치 세력이 득세하기 마련이다. 히틀러의 등장이 그러했듯 지금의 아베 정권도 군사강국을 도모하며 제국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 그들이 계속 그런 식으로 나간다면 인류에게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남길 수 있다. 나 몰라라 방관한다면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 나를 위해 말해줄 이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다.

가짜뉴스, 대책이 필요하다

가짜뉴스, 대책이 필요하다홍덕률대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작년 12월이었다. 전진구 해병대 사령관이 구설에 올랐다. ‘9·19 남북 군사합의를 따를 수 없다’며 반대했다는 것이다. 빅 뉴스였다. 해병대 출신 예비역 단체는 ‘구국의 영웅’이라면서 그를 지지하는 기자회견까지 열었다. 유튜브와 소셜미디어를 통해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그러나 전진구 사령관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사령관 개인은 물론 군의 신뢰까지 타격을 입었다.9·19 남북정상회담 때는 ‘대통령 전용기에서 태극기가 사라졌다’는 말도 돌았다. 그 즈음, 정부가 북한에 쌀을 보내는 바람에 쌀값이 올랐다는 얘기까지 덧붙여졌다. 민심은 술렁거렸다. 그러나 모두 사실이 아니었다.지난 해 7월 말, 노회찬 전 정의당 대표가 자살하기 직전이었다. 그의 부인이 전용 기사를 뒀다는 보도가 있었다. 유력 일간지였다. 하지만 오보였다. 늦게 정정보도를 했지만 노회찬 대표는 자살한 뒤였고 오보도 널리 유포된 뒤였다. 유족들은 깊은 상처를 받고 난 뒤였다.가짜뉴스 소동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2016년의 미국 대선은 가짜뉴스들로 넘쳐났다. ‘교황이 트럼프를 지지하고 있다.’ ‘힐러리가 국무장관 시절에 중동의 테러단체 IS에 무기를 팔아넘겼다.’ 모두 가짜뉴스로 판명되었다.최근의 현상인 것도 아니다. 1923년이었다. 일본 도쿄 인근에서 대형 지진이 발생했다. 관동대지진이었다. 민심이 흉흉했다. 일본 내무성은 계엄령을 선포했고 일선 경찰서에 지침을 하달했다. ‘재난을 틈타 이득을 취하려는 무리들이 있다. 조선인들이 방화와 폭탄에 의한 테러, 강도 등을 획책하고 있으니 주의하라’라는 내용도 있었다. 곧바로 황당한 괴담들이 만들어졌다. ‘조선인들이 폭도로 돌변해 우물에 독을 풀고 방화 약탈을 하며 일본인을 습격하고 있다.’ 조선인 폭동설은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악의적으로 만들어진 가짜뉴스의 전형이었다. 일본인들은 흥분했고 조선인은 무차별 살육의 표적이 됐다. 그 괴담이 거짓임을 알고 있던 일본 치안당국은 방관하거나 교묘히 부추겼다. 희생된 조선인이 6천명을 넘었다.좀더 거슬러 올라가 본다. 1590년의 일이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을 평정했다. 조선 왕 선조는 일본 정세를 파악하기 위해 사절단을 파견했다. 서인 황윤길이 정사로, 동인 김성일이 부사로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1년 뒤 귀국한 두 사람의 보고는 달랐다. 황윤길은 반드시 왜군의 침입이 있을 것이라고 했고 김성일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1년 뒤, 국토는 유린됐으며 조선 민중들은 희생됐다. 1592년의 임진왜란이었다.가짜뉴스의 폐해는 말할 수 없이 크다. 평생을 쌓아온 개인의 명예쯤은 한순간에 날아간다. 국가경제를 휘청거리게도 만들고 민주주의를 무너뜨리기도 한다. 심지어 국민의 생명과 국가의 주권을 위협하기도 한다.최근 한일 경제전쟁의 엄중한 국면에서도 가짜뉴스들은 활개를 친다. 유튜브와 소셜미디어들이 가짜뉴스의 생산 및 유통망으로 활용되고 있다. 일부 정치인들이 그를 받아 정략적으로 활용함으로써 더 증폭되기도 한다. 가짜뉴스들은 종종 일본으로 건너가 우리나라를 공격하는 무기로 활용되기도 한다. 일본에서 만들어진 가짜뉴스들을 국내로 들여와 국론을 분열시키기도 한다. 국가의 명운을 좌우할 판단과 정책과 대응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는 형국이다.대책이 필요한 때가 됐다. 표현과 언론의 자유를 악용해 오히려 그 자유들을 위협하는 가짜뉴스들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응할 때가 되었다. 특히 정치적인 이유로 혹은 상업적인 이익을 위해 직업적으로 가짜뉴스를 생산하고 유포하는 이들은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단죄해야 할 때가 됐다.민주주의 선진국들도 이미 관련 법을 제정했거나 준비하고 있다. 여와 야 모두 가짜뉴스의 폐해에 대해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은 다행이 아닐 수 없다. 법적·제도적 장치를 준비하는 것 외에 가짜뉴스를 가려내고 퇴출시키기 위한 언론의 자정 노력과 팩트체킹 역할도 중요하다.아울러 온 국민이 거짓을 멀리하고 정직을 중시하는 도덕적 소양을 길러야 한다. 사실보다 기대와 신념을 앞세우는 확증편향, 진실보다 사익과 권력을 추구하는 반지성주의를 극복해 내는 힘도 함께 키워야 한다. 뉴스 소비자들의 분별력과 그것을 키워내야 할 교육계의 책임이 막중하다.국민의 안위와 국가의 주권까지 위협하고 있는 가짜뉴스. 이제 대책을 준비해야 할 때다.

끊이지 않는 놀이공원 안전사고 “근절책 없나”

대구 달서구 두류동에 있는 대형 놀이공원 이월드에서 20대 아르바이트 안전요원이 열차형 놀이기구 ‘허리케인’의 바퀴와 선로 사이에 다리가 끼어 절단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지난 16일 오후 발생한 이번 사고는 아직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안전요원이 열차 출발 후 마지막 칸과 뒷 바퀴 사이 공간에 매달려 있다가 속도가 붙기 전 뛰어내리는 관행적 안전의식 불감증이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시민들은 “안전의식 미흡으로 놀이공원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며 “자기 직원들 안전도 책임지지 못하는 놀이공원이 손님들의 안전을 어떻게 생각할지 우려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사람이 직접 몸으로 체험하는 놀이기구는 일단 사고가 발생하면 중대 재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용객들이 많이 찾는 시설일수록 숙련된 전문 직원이 필요하지만 사고가 난 시설에는 전문 관리자 없이 아르바이트 직원 1명이 근무한 것으로 알려졌다.아르바이트 직원들의 위험한 행동을 놀이공원 측이 알고 있었지만 묵인해 관행화 됐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지난 2013년부터 2018년까지 6년간 국내 유원시설에서 발생한 중대 사고는 총 74건이다. 7명이 사망하고 83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중대 사고의 유형은 놀이기구 사이에 사람이 끼거나 추락, 갑작스런 기구 멈춤 등이다.이번에 사고가 난 허리케인은 모두 6량으로 돼 있고 1량 당 4명이 탑승하는 24인승이다. 놀이기구 작동을 맡은 안전요원은 동료 요원이 떨어진 사실도 모른 채 운행을 끝냈다. 그는 허리케인이 제자리에 돌아온 후 동료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그 때서야 추락 사실을 인지했다고 한다. 비명소리가 음악소리와 현장 소음 등에 묻힌 때문이다.사고 놀이기구 승하차장에는 CCTV가 설치돼 있지않아 사고가 나도 원인조차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 현장요원들이 안전수칙을 제대로 지키는지 확인할 방법도 없다. 대부분 놀이공원이 비슷한 실정이다.놀이기구를 운영하는 국내 유원시설은 매년 늘고 있지만 안전을 체크하는 검사기관이 크게 부족한 것도 문제다.지난해 문체부에 신고된 유원시설은 총 2천319곳. 2년 전 1천554곳보다 49%나 늘어났다. 그러나 시설점검은 단 1개 업체에서 하고 있어 점검의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가 많고, 점검의 질도 낮다는 불만이 이어지고 있다.놀이공원 사고 예방을 위한 대책이 절실하다. 안전의식 제고를 위한 반복 교육과 규정 위반에 대한 벌칙 강화가 지금으로서는 가장 현실적 방안이다. 시설물 안전점검은 당연히 최우선 사항이다.

그릇 헤아리기

그릇 헤아리기 배병일영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백세인생 이라는 노래가사가 한 때 유행한 적이 있다. 가사 내용을 들어보면, 이미 부모님을 여읜 분들이야 그 애잔한 마음이 가눌 수 없을 것이고, 특히 아직 부모님이 구존하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말미암아 직접 모시지 못하고 있는 중년의 자식들은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기에 바쁜 가사이다. 요즘 가요의 신곡은 주로 젊은이들이 공감을 해야만 히트를 칠 수 있지만, 중노년은 아직도 6070이나 7080노래에 머물고 있는 등 인기가요의 장르 자체가 아예 달라서 신곡의 인기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그래서 백세인생 노래가 한때 히트를 쳤지만, 젊은이의 뒷받침이 없어서 롱런은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부모에 대한 애정이 효라고 하여 옛날부터 하나의 사회적 윤리규범이 되어 효도라고 일컬어져 왔지만, 지금에 와서는 여러 가지 사회적 문화적 변형으로 인하여 그 의미가 많이 퇴색되었다. 특히 고령인구의 급속한 증가로 인하여 종전에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던 100세 이상 생존하시는 분도 많아지고 있다. 내 주위에도 육순·칠순자식이 팔순·구순부모를 모시는 경우가 많다. 노부보다는 노모가 휠씬 부양하기가 편하다고 하지만, 세상일이 그렇게 마음대로 쉽게 되는 것은 아니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너무 오래 살아서 자식에게 부담을 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미안함과 너무 오래 살아서 혹시나 질병 등으로 거동을 못하게 되어 자식 등 남에게 부담이나 추한 모습을 보이기 되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이 함께 있는 것 같다. 어쨌든 지금 우리나라는 노인이 노인을 보살피는 노노캐어가 큰 문제이다. 지난번 대선 때도 문재인대통령이 치매는 국가의 책임이라는 공약으로 조금 재미를 보았다고 할 정도로 치매는 고령화사회에서 심각한 사회적 문제이다. 사실 그냥 목숨만 부지하는 인생보다는 건강하게 정신이 맑게 사는 인생이야말로 올바른 고령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건강하게 정신이 맑다는 것은 혼자서 움직이면서 치매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치매를 노망이라고 할 때는 질병으로 보지 않았지만, 치매는 사람으로 하여금 사람답게 살 수 없도록 하는 질병임에 틀림없다. 모일간지에 매주 게재된 김형석교수의 100세일기가 인기다. 몇 달전 교수님의 선배 이야기를 빌려서 치매 부인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 내용인즉, 아내가 치매를 앓았는데 워낙 성격이 착했기 때문인지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쪽 옷장의 옷들을 저쪽 옷장으로 옮겨 놓았다가는 다시 순서를 바꾸어 제자리로 돌려놓는 일을 종일 계속하곤 했다는 것이다.구순을 넘긴 노모께서도 몇 년 전까지는 농사일을 하는 등 본업에 충실하였지만, 그만 고관절골절로 인하여 거동이 부자연스럽게 되면서 집안에만 머물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당신이 원하는 바를 하지 못하게 됨으로써 육체적 정신적 고통도 함께 온 것 같고, 그 후부터 이상한 언행을 보이기 시작했다. 노모는 저녁마다 부엌에 들어가서 그릇을 헤아리고 있었고, 장롱을 뒤져 수의를 찾았고, 그리고 아침마다 그릇과 수저가 없어졌다고 하고 수의가 없어졌다고 하였다. 처음에는 무슨 연유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해 하다가 어느 순간에 치매라는 것을 알았을 때, 자식으로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치매는 언행이 서툴고 정신이 흐린 것이라는 것만으로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 후회스러웠다. 특히 장롱이나 찬장 등 무엇을 뒤지거나 옷이나 그릇 등 무엇을 헤아리는 것이 초기 치매라는 것을 일찍 알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지금도 그 역정을 받아주기보다는 차가운 반응을 먼저 보이는 등 자식된 도리를 다하지 못하고 있다. 그저 불효를 나도 모르게 하고 있으니, 참으로 망측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불효 언행을 미루어 볼 때, 조선시대와 우리세대 이전에 효도를 직접 행하신 선현들이나 선배들은 효라고 하는 것을 정말로 몸에 베여 있었구나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이고. 이렇게 하다가 나도 치매에 걸려서 그릇을 헤아리게 되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되면 나는 어떻게 하지’하는 생각이 떠오르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일 경제 보복, 지역 기업 피해 우려 높다

일본의 경제 보복으로 인한 첫 피해 사례가 확인되는 등 경제 보복 피해가 본격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일본이 한국을 백색 국가(화이트 리스트)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 시행일이 열흘 앞(28일)으로 다가오면서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게다가 미중 무역 분쟁의 장기화, 세계무역기구(WTO) 개발도상국 지위를 두고 높아지고 있는 미국의 압박 강도, 홍콩의 대규모 시위 사태도 또 다른 변수다. 대외 통상 환경은 최악의 상황이다.특히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는 일본 의존도가 높은 구미에 치명타다. 특단의 대책이 요구되는 상황이다.무역협회와 구미시 등에 따르면 지난해 대 일본 수입액은 12억 달러로, 전체 수입액 28억 달러의 44%를 차지했다. 이는 전국 평균 일본 수입 비중 11%와 경북의 15%보다 3~4배가량 높다.구미 지역의 일본 수입 기업은 현재 392곳으로 이 가운데 115개 사가 전기·전자 관련 소재·부품을, 107개 사가 기계류 관련 제품을 일본에서 구입하고 있다. 구미 지역의 일본산 소재·부품 의존도가 그만큼 높다는 의미다.하지만 상당수 기계·장치 관련 기업들이 일본에서 무역상사를 통해 필요한 제품을 조달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대일 의존도는 더욱 높다. 이런 실정이다 보니 핵심 소재·부품의 국산화나 수입선 다변화가 쉽지 않다.첫 피해 사례도 접수됐다. 구미시가 지난 12일까지 구미국가산업단지 입주기업 600여 개 사를 상대로 전수조사, 25건의 피해 신고 중 4개 사에서 구체적인 피해가 확인됐다는 것.이들 업체는 일본의 반도체 핵심 소재(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 레지스터, 고순도 불화수소) 수출 규제 이후 원료 수급에 차질을 빚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외국인 투자지역 등 구미에 들어선 일본 투자 기업 22곳도 비상이 걸렸다. 이들은 지역 외국인 투자 기업 40개 사의 55%를 차지한다. 탄소섬유·종이제품·반도체장비·LCD장비·이차전지·태양전지·자동차부품·유리제품·금속가공제품 등이 주 생산품이다. 지역 기간산업이 망라돼 있다. 이들 업체들의 부품 및 소재 수입이 차질을 빚을 경우 구미 지역 수출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이같이 경제보복 피해 발생과 우려가 커지면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기업들은 소재 개발과 수입선 다변화를 꾀하고 있지만 마땅한 대응책이 없어 발만 구르고 있다. 특히 이들 기업들은 오는 28일 발표될 백색 명단에 자신들의 수입 품목이 포함될지 여부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자칫 구미경제가 위기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정부와 지자체는 예상 피해 품목을 추려 관련 기업에 통보하고 대응 방안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경북도와 대구시는 관련 기업들과 함께 대응책 마련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팔공산 국립공원 승격’ 속도 내야

옐로스톤(Yellowstone)은 1872년 지정된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이다. 미국 서부 와이오밍 등 3개 주에 걸쳐 있다. 화산폭발로 이뤄진 고원지대에 마그마가 지표 가까이 있어 다채로운 자연현상이 나타난다.한국 사람들의 귀에 익숙한 그랜드캐년 국립공원의 3배가 넘는 약 9천㎢의 광대한 면적에 황야와 협곡, 간헐천, 폭포, 기암괴석 등이 분포하고 있다. 옐로스톤이란 이름은 미네랄이 풍부한 온천수가 바위 표면을 노랗게 변색시켜 붙여졌다.대한민국 최초의 국립공원은 지리산이다. 1967년 지정됐다. 우리의 국립공원 관련 논의는 일제 치하인 1935년에 있었다. 금강산을 지정하자는 논의가 있었으나 불발에 그쳤다. 제1공화국 시절 남한산성이 거론되기도 했다. 그 후 지리산이 지정된 1960년대 중반까지 뚜렷한 논의조차 없었다.---환경장관 “국립공원 지정 요건 충족”현재 우리나라 국립공원은 총 22개소에 이른다. 산악형 18개소, 해상·해안형 3개소, 사적형 1개소 등이다.산악형은 가야산, 계룡산, 내장산, 덕유산, 무등산, 변산반도, 북한산, 설악산, 소백산, 속리산, 오대산, 월악산, 월출산, 주왕산, 지리산, 치악산, 태백산, 한라산 등이다. 해상·해안형은 다도해해상, 태안해안, 한려해상 등이다. 사적형은 경주다.최근 대구·경북의 명산인 팔공산이 국립공원 지정 요건을 충족했다는 소식이 들려 지역민들이 크게 반기고 있다.조명래 환경부 장관은 지난 7월 “팔공산은 자연생태계 등이 우수해 국립공원 지정 기준을 중족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어 “해당 자치단체와 협의 및 주민의견 수렴 등을 거쳐 국립공원으로 지정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겠다”고 밝혔다.1980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팔공산의 국립공원 승격 논의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간 승격을 둘러싼 찬반이 첨예하게 맞서왔다.난개발을 우려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승격 논의가 10여 차례 있었으나 진전을 보지 못했다. 재산권 행사와 관련한 불안감 때문에 토지소유 주민들이 반대에 나서면서 무산되곤 했다. 반대에 대한 대응책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한 때문이었다.찬성하는 사람들은 “국립공원이 되면 우리지역 명산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관리의 효율화와 자연보전 기능 강화 등을 든다. 이들은 “국립공원으로 승격돼도 관리 주체가 국가로 바뀔 뿐 규제는 별 차이가 없다”고 말한다.이에 반해 반대 측은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지금만 해도 그린벨트, 공원구역, 상수도 보호구역 등 각종 규제 때문에 제대로 재산권을 행사해 본 적이 없다. 국립공원 지정을 밀어붙인다면 생존권 차원에서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팔공산은 행정구역상 대구 동구, 경북 경산시 와촌면, 영천시 신녕면·청통면, 군위군 부계면·산성면·효령면, 칠곡군 가산면·동명면 등 2개 광역시도, 5개 시군구, 8개 면에 걸쳐 있다. 전체 면적은 125.607㎢이며 대구가 28%, 경북이 72%를 점유하고 있다. 사유지는 78%에 이른다.-자연·인문자원 풍부…최고의 여건 갖춰팔공산은 수려한 자연자원과 함께 유서깊은 불교문화 유적 등이 산재해 있다. 국보, 보물 등 국가지정 문화재 31점, 지방문화재는 90건에 이른다. 또 골짜기마다 전설과 설화가 서려있다. 스토리텔링화 해서 관광자원화 할 수 있는 최고의 여건이다.국립공원 승격의 명분은 차고 넘친다. 이제는 반대 주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구체적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대구시와 경북도가 주민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면서 환경부 등 정부 당국과 논의를 속도감 있게 진척시켜야 한다.지난 2013년 국립공원으로 승격된 광주 무등산도 지정 전 사유지가 80%에 이르러 난개발로 큰 몸살을 앓았다. 그러나 1980년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시작된 ‘무등산 공유화 운동’이 난개발 방지와 국립공원 지정 등에 큰 기여를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국내 대표적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으로 평가되는 이 운동은 ‘무등산 1천 원 땅 한평 갖기 운동’으로 이어져 사유지 매입과 함께 기부를 받는 등 적지않은 성과를 거뒀다. 광주가 어떻게 난제를 풀었는지 벤치마킹도 필요한 시점이다.

이제 가면 / 김대중

이제 가면/ 김대중잘있거라 내강산아 사랑하는 겨레여/ 몸은 비록 가지마는 마음은 두고 간다/ 이국땅 낯설어도 그대 위해 살리라// 이제가면 언제 올까 기약 없는 길이지만/ 반드시 돌아오리 새벽처럼 돌아오리/ 돌아와 종을 치리 자유종을 치리라// 잘있거라 내강산아 사랑하는 겨레여/ 믿음으로 굳게 뭉쳐 민주회복 이룩하자/ 사랑으로 굳게 뭉쳐 조국통일 이룩하자.- 1982년 12월23일 미국행 출발을 앞두고......................................................1980년 5월17일, 이른바 ‘김대중 내란 음모’ 혐의로 신군부에 의해 연행된 김대중 선생은 광주항쟁의 배후조종자로 구속되어 1980년 9월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언도받는다. 사형수로서 4개월여 육군교도소 독방에 수감된 뒤, 무기수로 감형된 선생은 1982년 12월16일 석방될 때까지 청주교도소에서 한 달에 한번 가족에게만 봉함편지를 쓸 수 있었다. 이때 부인 이희호 여사를 비롯한 가족들에게 보낸 옥중서신 29통을 모아 엮은 것이 ‘김대중 옥중서신’이란 책이다. 옥중서신에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단련시킨 흔적이 역력히 배어있다.이 책에 수록된 글들은 자신을 파괴하려는 온갖 수단에 꿋꿋하게 맞서는 한 인간의 놀라운 의지력을 오롯이 보여주고 있다. 우리의 삶은 주어진 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믿음을 갖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그는 사형선고를 받은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차가운 감옥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았으며 분노와 억울함으로 시간을 보내도 시원찮을 그 시간에 다양하고 폭넓은 독서와 공부로 미래를 준비하였다. 선생의 깊은 인류애에 뿌리를 둔 사상은 깊어갔으며 눈 밝은 통찰력으로 역사의식을 정립해갔다.내용 가운데 이런 것도 있다. “돈, 권력, 명예는 하나다. 이 중 하나만 가지면 그것이 순환하여 돈이 되든 명예가 되든 권력이 된다.” 그러므로 이것의 집중을 막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경제민주화개념이 접목된 DJ 노믹스의 경제철학 가운데 하나다. 덧붙여 ‘사람은 가난하게 되지도 말고 지나치게 부유하게 되지도 말 일이다. 우리는 가난해도 부유해도 다 같이 돈의 노예가 된다. 알맞게 갖고 자유인이 될 일이다.’라고 하였다. 옥중에서 ‘쇼펜하우어’를 읽었는지 알 수 없으나 정확하게 그의 생각과 일치한다.그의 뛰어난 통찰력은 늘 사람들을 탄복케 했다. 삶 자체가 한국 현대사이고, 삶의 궤적이 곧 우리의 정치사인 김대중 대통령께서 고난의 역사를 살다 가신지 10년이 흘렀다. 그의 인생 역정은 좌절과 희망, 투쟁과 피의 역사라 할 수 있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 그 자체였다. 숱한 고비에서도 민주화에 대한 일관된 신념은 변한 적이 없었다. 그런 선생이 딱 한번 선처를 바라는 탄원서를 쓰고 풀려났던 게 이 시를 쓰기 일주일 전 일이었다.이 사실을 두고 말들이 있지만 선생이 살아서 반드시 자유의 종을 치고야 말겠다는 굳은 의지였고 잡초와 같은 승부근성의 발휘였으리라 믿는다. 그 승부수로 억압의 시대에 희망의 빛이 되었고, 인동초의 삶이 민주회복을 이루지 않았던가. 그러나 남북이 하나가 되는 대업은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평화와 화합을 바탕으로 한 대북 정책과 한반도 통일은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해서는 안 될 민족의 소명이다. 선생께서 다시 돌아와 우리들 답답한 가슴을 종매로 힘껏 쳐주길 소망한다.

진정한 실력

진정한 실력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 아침저녁 공기가 확연히 다르게 느껴진다. 풀벌레 울음소리도 조금 바뀌었다. 매미들의 노랫소리도 훨씬 더 애절하게 다가오고, 저녁이면 어느새 귀뚜라미 소리가 들려오니, 어느새 가을맞이 준비를 해야 할 때다. 견디기에 수월한 계절이니 무언가 담담하게 준비를 해야 할 것도 같고 또 계획도 알차게 세워야 하지 않겠는가.깔끔하게 정리를 하고 가을을 맞아야겠다 싶어 버릴 것부터 골라내기 시작했다. 읽다가 접어든 책을 들고서 과감히 쓰레기 박스에 넣는 순간, ‘000 혜존’이라고 쓴 지은이의 필체가 눈에 들어온다. 마치 그분을 대한듯하여 얼른 집어 들었다. 마저 읽어야지 다짐하면서, 언젠가는 모두 정리해야 할 물건들일진대 아직은 미련이 남아서인지 좀체 실천이 쉽지 않다.지난해보다는 더위가 그다지 심하지 않게 지나간 듯한데 이번 여름엔 유난히 부고 소식이 많았다. 가까운 지인들의 경사에는 기쁜 마음으로 찾아가거나 축의금을 인편에 보내기도 하지만 조사에는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장례식장을 찾을 때마다 어김없이 다녀가셨다는 지인이 계신다. 그분을 식장에서 뵈면 언제나 말씀하신다. ‘잘 죽는 것도 실력’이라고. 옛 친구들이 추풍에 낙엽지듯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기 시작한 지 오래되었다고 하시며 이야기보따리를 펼치신다. 80대 중반을 넘어서고부터는 날이 갈수록 몸이 쇠약해져 어느 날 갑자기 모임에 나오지 않으면 “그 친구 갔군”하고 생각해야 한다고 하시며 무엇보다 준비를 잘해야 한다고 강조하신다. 같이 학교에 다녔던 동기들이 해를 거듭할수록 가을바람에 낙엽처럼 사라지는 비율이 나날이 높아간다며 자신도 준비를 열심히 하고 계시는 듯하다. 돌아가실 때가 되어도 끝까지 존엄하게 살다 가야지 다짐하신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친구의 부친이 돌아가셔서 추모하러 장례식장을 찾았더니 그 친구 또한 진지한 얼굴로 한마디 거든다.“사람이 죽는 것도 실력이 있어야 할 것 같아. 대단한 실력은 죽음을 차분히 준비하여 자신의 의지대로 마무리하는 것 말이야.”친구 부친은 갑작스레 말기 암으로 진단되어 시한부 판정을 받으셨다. 갑자기 닥쳐오는 자신의 죽음 앞에서 얼마나 황망하였을까. 하지만 그분은 마지막을 찬찬히 준비했던가 보다. 부인을 위해 작은 집을 마련하고, 자식들에게는 일일이 부탁의 편지와 함께 남은 재산을 조금씩 선물로 나누어주셨다. 그리고는 “나이 들어가면서는 준비를 잘해야 한다. 그것이 진짜 실력이다. 마지막까지 잘 아파야 하고, 잘 죽어야 한다. 그래서 내가 아플 때 쓸 비용과 죽고 나서 들어가는 돈을 미리 저축해두었단다. 너희들 살기도 힘든데 부모가 아파서 들어가는 비용까지 감당하게 해서야 어디 쓰겠냐. 내가 나를 위해 조금씩 평생 준비해 놨으니 걱정은 하지 말아라. 그리고 내가 이 세상을 하직하기 전까지 자주 얼굴 보여주고 목소리 들려주면 그것으로 만족한단다.”라고 이르셨다고 한다.그분은 임종을 앞두고선 의사에게 심정지가 오면 연명치료를 하지 말라는 약속을 받고 문서에 사인까지 미리 직접 하셨다. 자식들에게 아버지 연명치료 여부를 결정하는 아픔을 주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 미리 준비하셨으리라. 임종이 가까워지면 1인실로 옮겨서 마지막을 맞고 싶다고 하셨다. 자신이 고통에 힘겨워하는 모습을 보고 누군가 겁먹을 수 있을 터이니 가족들과 조용히 있고 싶다는 뜻이지 않았겠는가.간혹 장례식장에서 생전의 모습으로 기억해두고 싶은 영상 편지를 남기는 이들의 소식을 들은 적이 있다. 아들, 딸, 며느리, 사위, 그리고 손자들에게 가슴 뭉클한 작별 인사를 하기도 하고 또 지인들에게 특히 사이가 좋지 않았던 분들에게 용서를 당부하는 말을 남기기도 한다. 친구 부친의 영상편지에는 “사랑하는 아들아, 아버지가 부탁이 있다. 가끔 내가 보고 싶거든 하늘을 봐라. 아버지가 모두 너희 잘되라고 하늘에서 기도하고 있을 것이니 한 번씩 꼭 하늘을 보면서 살아라. 힘들 때는 하늘을 보면서 다시 힘을 내라.”고 하셨다.계절이 바뀌는 길목에서는 새로운 준비를 하게 된다. 우리 인생의 가을에도 이런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아플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마지막 가는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 존엄성을 잘 지키면서 마무리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보면서.남은 이들이 함께했던 순간을 떠올리면 늘 미소 지을 수 있도록, 진정한 실력을 쌓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깔끔한 마무리야말로 한 인간의 인생이 고스란히 담긴 진짜 실력 일터이니.

‘최악의 지역경제’ 회생시킬 대책 내놔라

경제가 최악이라고 모두 아우성이다.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대구·경북만 예외일 수는 없다. 하지만 지역경제 상황이 전국 최하 수준이라는 통계에 접하면 떡심이 풀린다. 어느 분야 하나 제대로 굴러가는 것이 없는 것 같다. 대구경북은 중소·영세기업 위주라서 구조적으로 취약한데다 경기마저 나빠 타격이 더 큰 것으로 분석된다.지역경제의 활력을 반영하는 신설법인 수는 8년 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지난 2011년 상반기 이후 처음 감소세로 돌아섰다. 올해 상반기 신설법인은 3천624개로 지난해보다 4% 감소했다. 경북은 1천947개로 5.8%, 대구는 1천677개로 1.9% 줄어들었다.같은 기간 전국의 신설 법인은 지난해보다 2.1% 증가했다. 대구는 특별·광역시 7곳 중에서 광주 다음으로 저조했다. 경북은 광역도 9곳 중에서 강원 다음으로 낮았다. 신설법인 감소는 지역 주력인 자동차 부품, 전기전자업 침체와 맞물려 창업이나 투자가 위축된 때문으로 분석된다.수출과 수입에도 먹구름이 끼고 있다. 대구경북지역의 6월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13.3% 감소했다. 특히 무선통신기기·디스플레이 등 전기전자가 22.9% 줄어 결정적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된다.수입 역시 14.2% 감소했다. 특히 설비투자지표인 기계류 수입이 20.8% 감소해 향후 경기 전망을 어둡게 한다.지난달 대구의 취업자는 122만7천 명으로 전년 동기보다 1.7%(2만1천 명) 감소했다. 실업자는 5만4천 명으로 2천 명 증가했으며, 실업률은 4.2%로 0.2%포인트 상승했다.경북은 취업자가 144만7천 명으로 전년 동기대비 0.2% 늘었고, 실업률은 3.3%로 0.4%포인트 하락했다. 하지만 지난해 고용상황이 크게 악화된 데 따른 기저효과로 보이기 때문에 고용상황이 개선된 것은 아니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다음달 추석 연휴가 끝나면 내년 4월 치러지는 21대 총선 선거운동이 본격화 된다. 정치권의 다양한 공약이 앞다투어 쏟아질 것이다.지역 차원에서는 경제회복이 최우선이다. 정치권은 민생 현장과 지역 경제계의 의견을 가감없이 수렴해야 한다. 경제를 회생시키고 민생을 안정시킬 수 있는 실질적 내용이 공론화 되고 공약에 담겨야 한다. 그래서 서민들의 삶의 무게를 덜어주는 정치 본연의 기능을 조금이라도 회복해야 한다.급한 사안은 중앙과 지방의 정책 입안자들에게 즉시 전달해 해결책을 이끌어 내야 한다.지방자치단체에서는 경제회생을 위한 창의적 아이디어를 쉼없이 짜내야 한다. 그래서 지역 특성에 맞는 최상의 안을 도출해야 한다. 그것이 어려운 시기 지역 공직자들이 해내야 할 일이다.

맥도날드 햄버거의 아이러니

맥도날드 햄버거의 아이러니이현숙재미수필가엘에이에서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커다란 노란색 M자 아치가 자주 눈에 띈다. 미국을 대표하는 패스트푸드 체인점인 맥도날드다. 교통의 요지와 고속도로 주변에 당당하게 자리를 잡고 사람을 부른다. 이민 초기인 1980년, 처음 먹어본 맥도날드의 빅맥 햄버거는 너무 맛있었다. 진한 향수병에 시달렸을 때도 내 손에 들려 태평양 바닷가에 함께 갔다. 가족들의 이름을 모래사장에 썼다 지우며 눈물을 흘리다가 누런 봉투에서 식어버린 빅맥을 꺼내 먹고는 했다. 삶의 허기를 달랬던 눈물 젖은 빵인 셈이다.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며 자리를 잡고 있기에 맥도날드는 눈을 들면 보인다는 표현도 있다. 창립자인 레이 클록은 로케이션이 사업의 성공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며 체인점의 부지와 위치결정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의 안목과 관찰력은 대단해 맥도날드 매장이 들어서면 그 주위로 경쟁업체들이 자리를 잡으며 상권이 형성된다. 그래서 맥도날드는 가장 비싼 거리와 교차로에 땅을 갖고 있다고 한다.지나며 쉽게 만나게 되는 맥도날드의 숨겨진 이야기를 영화 ‘파운더’를 보고 알게 되었다. 미국 최대 햄버거 프랜차이즈인 맥도날드 창립자는 레이 클록이다. 그런데 영화에는 다른 두 명의 주인공이 더 나온다. 모리스와 리처드 맥도날드 형제다. 그들은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버너디노의 작은 승차 구매(Drive-Thru) 시스템의 식당을 운영했다. 햄버거 조리를 분업화하여 30초 만에 만들어냈는데 값이 저렴하고 품질과 맛은 최고였다. 맥도날드 형제가 직원들과 테니스코트에서 주방 위치를 분필로 그려가며 몇 개월 동안 시행착오를 거쳐 개발한 자동 시스템 덕분이다. 헨리 포드의 자동차 모델 T형 생산라인을 재구성한 방식으로 당시 획기적이었고, 현재까지 미국 패스트푸드 주방의 초석을 다졌다는 평가를 받는다.밀크셰이크 판매원이던 레이는 이런 맥도날드의 효율적인 운영방식에 반했다. 햄버거를 사기 위해서 끝없이 몰려드는 손님들을 보고 그의 욕망은 끓어올랐다. 교회의 십자가만큼이나 맥도날드의 황금 아치를 사람들이 많이 볼 수 있게 하겠다며 끈질기게 형제를 설득했다. 1955년 일리노이주 디플레인스에 맥도날드 1호점을 시작으로 레이의 질주는 멈출 줄 모른다. 가족 경영을 내세우며 재료의 신선함, 음식의 품질관리에 신경 쓰는 형제와의 마찰은 점점 커졌다. 결국, 1961년에 270만 달러와 연 이익의 1.9%를 지급받는 조건으로 상표권을 레이에게 팔았다. 그러나 연 이익금인 로열티는 구두로 한 계약이라 받지 못했다. 오직 하나, 자신들이 시작한 맥도날드 식당만은 남겨달라는 부탁도 거절당했다. 결국 ‘The Big M’이라는 상호로 바꾸었는데 근처에 맥도날드 체인점이 들어오며 망했다. 합법적으로 강탈당하고 난 후 두 형제의 허탈해하는 표정이 화면을 꽉 채우는데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영화를 보는 내내 고민했다. 현재 세계 119개국에 3만4천여 개의 매장을 소유한 글로벌 기업의 진정한 창업자는 누구일까.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며 사업 확장을 한 적극적인 레이 클록인가. 그는 자신이 1955년에 설립한 첫 프랜차이즈 식당을 1호점이라 부르고, 후에 박물관으로 만들었다. ‘맥도날드 형제는 햄버거를 만들었고 나는 그것을 삼켜버렸다.’ 한국판 영화 포스터에 한마디로 정리가 됐다. 맥도날드 햄버거의 창시자는 두 형제지만, '맥도날드 기업'의 설립자는 자신이라는 것이다.아니 진정한 원조는 품질 우선을 앞세운 맥도날드 형제가 아닐까. 창립 정신은 가족이지 돈이 아니라는 순박하고 고지식한 형제가 만약 그를 만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맥도날드 형제는 자신들이 개발한 아이디어로 그 지역에서 안전하게 장사를 했을 것이다. 레이는 그저 그런 시골 레스토랑으로 남을 수 있다고 형제를 비꼬는 내용이 영화에 나온다. 지역의 맛 집 정도로 알려질 수도 있었다.레이는 야수처럼 탐나는 먹이를 잽싸게 낚아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그 영역을 넓혔다. 야비해 보이지만 그를 손가락질 할 수 없는 것은 소비자인 내가 그 혜택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편안하게 바로 손에 넣을 수 있으니까. 그런 사업가가 없었다면 우리는 지역주의 안에서 새로운 세계를 접하기 힘들거나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가끔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먹으며 아직도 그 아이러니에서 벗어나지 못해 고민한다. 이런저런 이유를 가져다 붙여도 사업가 기질이 없는 나는 레시피를 만들고 땀 흘려 기초를 다진 형제가 창립자라고 생각한다. 맥도날드는 모든 곳에 있어야 한다며 가능성을 알아보고 키운 레이의 능력은 인정하지만 그가 남의 것을 빼앗은 것은 확실하니까.역시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이 맞다. 알고 나니 온전하게 빅맥의 맛을 즐길 수가 없으니 말이다.

지속가능한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우리나라 국민 한 사람이 하루에 배출하는 쓰레기양은 얼마나 될까? 대략 929.9g 정도 된다. 그럼 1년 동안에는? 365일을 곱하면 대략 33만9천450g, 약 339.45kg이다. 이는 환경부의 ‘2018년 전국폐기물 통계조사’ 결과이다. 환경부는 이를 더 세분화해 분석했다.하루 배출쓰레기 929.9g에는 종량제봉투에 들어가는 쓰레기 255.4g, 음식물류 368g, 플라스틱 등 재활용가능자원 306.5g 등이 들어 있다. 그런데 배출된 쓰레기의 내용을 보면 개인이 일상생활하면서 줄이기를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쓰레기의 종류가 생각보다는 많지 않은 듯하다.물론 쓰레기줄이기는 개개인의 의지가 가장 중요할 것이다. 그래도 쉽게 실천할 수 있어야 누구나 할 수 있을 것이고, 그만큼 성과가 클 것임은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일회용 플라스틱 컵과 비닐봉지는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생활쓰레기 줄이기의 대상이다.정부는 법률로 2018년 8월1일부터는 커피전문점이나 패스트푸드점 등에서 사용하는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2019년 4월1일부터는 마트 등에서 비닐봉지를 무상 제공하는 것을 금지해 생활 속 쓰레기줄이기를 강제하고 있다.쓰레기줄이기 문제에서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시민들의 관심을 지속해서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정부는 시민들이 쓰레기줄이기를 꾸준히 실천할 수 있도록 다양한 아이디어를 계속 제공해야 한다는 말이다.얼마 전 외신에 나온 기사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는 관광객이 운하에서 쓰레기를 건져 올리는 ‘쓰레기낚시 운하크루즈’ 관광 상품을 내놨고, 로마에서는 페트병과 대중교통 이용 포인트를 교환해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한다. 모두 쓰레기 회수율을 높이기 위한 아이디어로, 의미 있는 성과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국가에서는 대개 쓰레기를 생활쓰레기와 산업 현장에서 발생하는 사업장쓰레기로 분류하는데,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생활쓰레기에는 종이 플라스틱 스티로폼 가전제품 소형가구 음식물쓰레기 등이 포함된다.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은 2016년 기준 1인당 플라스틱 연간 소비량이 98.2kg으로, 국가별 순위에서 1위에 올랐다. 같은 기간 미국 97.7kg, 프랑스 73kg, 일본이 66.9kg을 소비한 것보다 더 많았다.이 기간 한국은 일회용 컵을 연간 257억 개 사용했다. 인구를 5천만 명으로 잡고 단순계산하면 1인당 연간 514개를 사용한 셈이다. 그만큼 우리는 일회용품과 플라스틱 사용을 줄일 필요가 있고, 또 그럴 만한 여지도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당장 생활에 불편함을 느끼기에 여전히 불만의 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렇더라도 마땅히 해야 할 일일 것이다.대구, 경북에서도 1인당 생활쓰레기 배출량이 증가하고 있다. 환경부와 한국환경공단의 대구경북 2015~2017년 생활폐기물 발생량 집계를 보면 2015년 5천772t, 2016년 5천842t, 2017년 6천59t으로 3년 새 5%가량 증가했다.또 같은 기간 ‘1가구당 배출량/1인당 배출량’은 5.76kg/2.20kg(2015년), 5.77kg/2.23kg(2016년), 5.88kg/2.42kg(2017년)으로, 1가구당 배출량은 2.1%, 1인당 배출량은 10.1% 증가했다.대구, 경북의 쓰레기 배출량과 관련해 눈에 띄는 점은 인구와 쓰레기 배출량과의 상관관계다. 인구가 이 기간 526만6천여 명에서 500만3천여 명으로 약 5%가 줄었는데도 생활폐기물 발생량이 오히려 5천772t에서 6천59t으로 5% 정도 증가했다는 점이다. 지역민 모두가 깊이 생각해 볼 문제라고 본다.2000년대 이후 정부의 쓰레기 정책은 기존 ‘채취-생산-소비-폐기’라는 선형구조에서 ‘채취-생산-소비-회수-이용 및 재소비’라는 순환구조로 전환되고 있다. 특히 사용 후 쓰레기 회수율 높이기에 주안점을 두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이미 시행 중인 쓰레기 정책에도 시행착오가 적지 않다.가령 농어촌 폐비닐과 빈병, 폐건전지의 경우 회수에 중점을 두고 있지만, 실제 그 회수율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쓰레기 문제는 정책 의지도 중요하겠지만 관심과 실천을 유지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아이디어를 꾸준히 개발하고 제시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할 것이다.

광야에서 / 문대현

광야에서/ 문대현찢기는 가슴안고 사라졌던 이 땅에 피울음 있다/ 부둥킨 두 팔에 솟아나는 하얀 옷에 핏줄기 있다/ 해뜨는 동해에서 해지는 서해까지/ 뜨거운 남도에서 광활한 만주벌판/ 우리 어찌 가난하리오 우리 어찌 주저하리오/ 다시 서는 저 들판에서 움켜진 뜨거운 흙이여- 노래를 찾는 사람들 2집(1989)....................................................‘광야에서’는 1984년 문대현 작사, 작곡의 민중가요다. 지금은 방송음악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문대현은 성균관대 무역학과 82학번으로 당시 22살이었다. ‘여행을 가도 슬프고 연애를 해도 슬펐던’ 시기에 막걸리를 잔뜩 마시고서 30분 만에 만든 노래였다. 이 노래는 곧장 그의 주도로 1984년 결성된 성균관대 노래동아리 ‘소리舍廊’에 의해 초연되었다. 큰 호응을 얻고서 처음엔 운동권 학생들 사이에서만 불리다 1986년부터 구전되어 대중들에게도 알려졌다. 이후 ‘노찾사’ 2집과 안치환, 김광석 앨범에 수록되면서 ‘대중가요’로 널리 퍼졌다.문대현이 음악을 하게 된 동기도 그렇거니와 그의 음악은 형에게서 받은 영향이 크다. 문대현의 형 문승현은 서울대 정치과 78학번으로 국내 최초 민중가요 노래패 ‘새벽’에서 활동했으며 ‘노찾사’를 결성한 주역이었다. 그가 만든 노래 ‘그날이 오면’ ‘사계’ '오월의 노래' 등은 일반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암울했던 80년대 민중가요의 선두주자였던 ‘노래를 찾는 사람들’은 시대의 아픔을 반영한 ‘그날이 오면’, ‘광야에서’ 등 숱한 명곡들을 남겼다.노래를 통해 독재 권력의 억압에 저항하고 새로운 사회를 꿈꿔왔다. 문승현과 더불어 원년 ‘노찾사’ 멤버인 한동헌은 서울대 경제과 77학번으로 오랫동안 ‘노찾사’를 이끌었다. 그는 우리 시대의 요구를 ‘지성적 대중음악’이라고 진단했고 그 방향에서 활로를 모색하고자 했다. 지성적 대중음악이란 세상과 삶에 대한 성찰과 고민을 깊이 있게 담아 표현해내는 품위 있는 음악을 뜻한다. 한동헌은 김민기와 김광석의 노래, 정태춘의 몇몇 노래, 이적의 노래, 외국의 경우 레너드 코헨이나 밥 딜런의 노래 등을 예로 들었다.문대현은 노랫말의 배경에 대해 “당시는 전두환이 한일문화교류를 한답시고 일본 가서 천황 알현한다고 난리칠 때였어요. 민기 형의 ‘천리길’이나 ‘아침이슬’의 상징적 이미지 등이 뒤섞여 내재했다가 술기운에 그렇게 나온 것 같아요. 거창한 이념이 아니라 암울한 현실 속에서 무엇도 할 수 없어 자괴하던 나의 독백이었다며 “그 광야는 어느 시인의 것이기도, 술 취해 부르던 노래 ‘아침이슬’의 광야이기도 하다”고 했다. 물론 ‘어느 시인’은 이육사를 말하며, 만주벌판에 말달리던 독립군과 육사의 ‘광야’를 단박에 연상케 하는 가사다.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6·10민주항쟁 30주년 기념식에서 이 노래가 불리어졌다. 각종 기념식에서 전에는 전혀 불리지 않았던 뜻밖의 노래들이 등장하곤 했다. 국가기념식 중계를 거들떠보지도 않던 사람들이 중계방송을 지켜보며 코끝이 찡해지고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상식과 정의의 문제’이고 보편적인 미추와 품위의 문제였던 것이다. 그제 경기 광주시청에 임시로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을 남한산성아트홀 앞마당으로 이전 안착시키는 기념식을 가졌다. 기념식 마지막에 ‘광야에서’를 합창했다. 저 들판 광야에서 뜨거운 흙을 움켜쥐는 날, 그날이 와서 ‘해뜨는 동해에서 해지는 서해까지’ 우리의 노래를 뿌리자.

‘지네’에 물렸을 때 증상과 처치법

이용훈김천소방서 구조구급과 소방장 얼마 전 친구에게서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물놀이 갔던 친구가 지네에 물려서 피를 흘린다는 것이다. 크게 호들갑 떠는 친구를 진정시키고 차분히 이야기를 해줬다. 걱정하는 친구를 보며 지네에 물렸을 때 증상과 처치법을 시민들에게 알려주어야겠다는 의무감이 들었다.결론부터 말하자면 지네에 물려도 주의는 필요하지만 크게 걱정할 것은 없다. 왜냐하면 지네는 맹독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병원이나 약국을 방문해도 지네 전문약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면역력이 약한 사람이나 알러지가 있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심하게 반응할 수 있기 때문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지네에 물리게 되면 나타나는 가장 대표적인 증상은 가려움이다. 벌레나 곤충에 물렸을 때에 생기는 가려움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가렵다고 손톱으로 긁어주는 것은 좋지 않다. 손톱에 있는 독성이 옮아갈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될까?일단 비누를 이용해 흐르는 물로 상처부위를 씻는 것이 좋다. 비누가 알카리성의 띄고 있기 때문에 산성인 지네독을 해독하기에 좋기 때문이다. 그 다음 냉찜질이다. 냉찜질은 통증을 완화시켜주고 붓기를 빼주는 역할을 한다. 그 후에 곤충에 물렸을 때 사용하는 연고를 발라주면 된다.추가적 조치가 있다면 온찜질을 하는 것이다. 지네독은 40도 이상의 물에는 빨리 해독이 되기 때문에 냉찜질을 통해서 통증이 완화 된다면 온찜질을 이용해서 해독작용을 촉진해주는 것이 좋다.지네에 물리더라도 침착하게 처치를 한다면 크게 위험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응급조치를 했음에도 심하게 붓거나 통증이 지속되는 경우에는 피부과나 의료기관을 방문해서 꼭 전문적인 치료를 받아야 한다.

균형 잡힌 얼굴이 미인

균형 잡힌 얼굴이 미인이동은리즈성형외과 원장젊은 여성 환자가 진료실로 들어왔다. 코에 필러주사를 맞겠다고 찾아왔다. 진료실에 앉자마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작년에 코를 높이는 주사를 맞았는데, 시간이 지나가면서 높이가 살짝 줄어드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여름도 지나고 곧 개강하기 전에 무엇을 하는 것이 좋을까 하다가, 코를 조금 더 높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병원을 찾아왔다는 것이다.이야기하는 동안 거울을 보며 자신을 향해 표정을 여러 모습으로 지었다.환자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정확한 분석을 위해서 얼굴사진을 몇 장 찍어서 나와 같이 그 사진을 보면서 이야기해 봅시다.”병원에 오는 환자들을 진찰하기 전에 먼저 스튜디오에서 얼굴의 표준 사진을 촬영하는 것이 필자의 오래된 습관이다.성형수술은 근본적으로는 자기만족이이다. 하지만 사진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면 남들이 보는 자신의 모습, 즉 객관적인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환자의 얼굴사진을 컴퓨터에 올려 보니 그 환자가 이야기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 보였다.얼굴의 위쪽 삼분의 이가 얼굴 전체 면적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서 아래쪽 삼분의 일, 즉 흔히 말하는 하관의 크기가 너무 작다. 게다가 눈썹, 눈, 광대뼈, 코의 크기가 너무 크게 자리 잡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입의 크기가 폭도 좁고 두께도 너무 얇다. 전반적으로 위쪽 얼굴과 아래쪽 얼굴의 비대칭이 너무 심한 것이다.사진을 함께 보면서 설명을 해 주었다. “보시다시피 위쪽 얼굴과 코의 크기가 아래쪽 얼굴, 특히 입술의 크기에 비해 차이가 너무 심한 것으로 보입니다. 만약 생각하는 것처럼 코의 크기가 더 크게 변한다면 그 크기의 비대칭이 너무 커져서 오히려 얼굴의 밸런스가 무너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코의 크기를 크게 해 주는 것보다 오히려 입술의 크기와 폭을 크게 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필자의 설명을 듣던 환자가 무엇인가 이해하게 되었다는 뜻으로 이야기했다. “이제껏 집에서 거울을 들여다 볼 때나, 여러 병원에서 상담을 하러 다니면서 코에 대한 생각만 해 왔었는데, 이렇게 사진으로 얼굴 전체를 보니 문제는 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입술과 턱 주변에 있다는 점을 이제야 알 것 같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대로 코에 필러를 주사했을 때도 처음 코가 높아지는 것을 보고 좋아했었지만,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했었는데, 이제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결국 그 환자는 상대적으로 커 보이는 위쪽 얼굴을 줄이는 주사요법을 시술하고, 아래쪽 얼굴의 볼륨을 늘려주기 위해 입술의 두께와 폭을 늘려주고, 턱 끝의 볼륨을 필러로 늘려주었다. 새롭게 변한 모습에 만족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환자는 돌아가면서 자신의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고 좋아했다.환자들을 만나다 보면 눈썹, 눈, 코, 입이 각각 아름다운 사람들은 많이 만날 수 있다. 하지만, 각각이 다 좋은 모습인데도 불구하고 어딘지 모르게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지 못한 어색한 모습의 얼굴을 보기도 한다. 그럼 그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중요한 것은 각각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얼굴이라는 캔버스 위에 어떻게 자리 잡고 있으면서 한 폭의 조화로운 그림처럼 하나의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할 것인가라고 하겠다.그러기 위해서는 눈썹, 눈, 코, 입술의 크기, 위치가 얼굴 전체에서 적당한 크기로, 적절한 위치에 있는 것이 중요하다.비록 이목구비가 아름답지 못하더라도 얼굴 안에서 있을 자리에 균형이 잡힌 모습으로 있는 경우에는 남들에게 하나의 통일된 이미지로 좋은 인상을 주는 모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흔히 분위기가 있는 얼굴이 바로 그것이다.비록 적당하고 균형이 잡힌 위치에 눈, 코, 입이 자리를 잡고 있다 할지라도 작은 입술, 작고 폭이 좁은 눈, 작고 짧은 코, 여성 환자의 얼굴에 남성형의 매부리코가 있는 경우처럼 얼굴 전체의 조화가 깨어진 경우는 얼굴의 밸런스를 맞추어주기 위해서 길이와 폭, 크기에 변화를 주는 수술이 필요하다.거리를 다니면서 보면 단순히 수술한 티가 나는 모습뿐만 아니라, 한 부분만 과도하게 강조된 모습의 밸런스가 망가진 얼굴이 조금씩 더 많이 보이는 것 같아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각자의 모습에 어울리는 가장 조화로운 얼굴들을 거리에서 많이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각각의 이목구비가 조화와 균형을 이룰 때 미인으로 보이듯이, 우리 사회도 얼굴이란 거대한 캔버스처럼 각자의 구성원들이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할 때, 보다 나은 사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