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진의 맛있게 읽는 시…이 순간

이 순간 / 피천득이 순간 내가 별들을 쳐다본다는 것은/ 그 얼마나 화려한 사실인가// 오래지 않아/ 내 귀가 흙이 된다 하더라도/ 이 순간 내가/ 제9교향곡을 듣는다는 것은/ 그 얼마나 찬란한 사실인가// 그들이 나를 잊고/ 내 기억 속에서 그들이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순간 내가/ 친구들과 웃고 이야기한다는 것은/ 그 얼마나 즐거운 사실인가// 두뇌가 기능을 멈추고/ 내 손이 썩어 가는 때가 오더라도/ 이 순간 내가/ 마음 내키는 대로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은/ 허무도 어찌하지 못할 사실이다.- 금아 시문선(경문사, 1959)....................................................피천득 선생은 한국 현대수필 1세대를 대표하는 수필가이자 시인이고 영문학자였다. 담백하고 향기로운 그의 글처럼 평생을 단아하고 순박한 삶으로 많은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누구보다 맑고 순수한 분이셨기에 97세로 세상을 떠나시기까지 아끼는 곰돌이인형을 침대 맡에 두고 주무셨는지 모르겠다.‘이 순간’은 시이면서 수필의 향이 느껴지고, 수필이라 하기엔 과분하게 시적이다. 수필 같은 시가 좋은 점은 이렇게 은은하면서도 침투력이 강하다는데 있다. 수필은 진실을 향해 다가가는 자기성찰을 꾸밈없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금아 피천득의 ‘수필은 청자연적이다’로 시작되는 ‘수필’은 교과서 공부를 한 사람이면 누구나 기억할 것이다. ‘수필은 한가하면서도 나태하지 아니하고, 속박을 벗어나고서도 산만하지 않으며, 찬란하지 않고 우아하며 날카롭지 않으나 산뜻한 문학이다.’그 수필을 갈고 닦고 기리고자 수필가들이 ‘수필의 날’을 제정한 지 올해로 19년이 되었다. 조선 후기 문장가인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중 ‘일신수필’을 쓴 첫날인 7월15일을 수필의 날로 정했다고 한다. 일신수필은 최초 9일간의 중국 여행 기록으로 각 지방의 문물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그들을 소상히 기록한 글이다. 이 열하일기에서 최초로 ‘수필’이란 용어가 사용된 게 수필의 날을 기리게 한 근거였을 것이다.수필은 대체로 자신의 삶과 인생을 담는 생활문학으로 알려져 있다. 실은 수필뿐 아니라 모든 문학 장르가 다 삶과 인생의 발견이자 창조이다. ‘이 순간 내가 마음 내키는 대로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은 허무도 어찌하지 못할 사실이다.’ 삶을 살아가면서 무엇이든 글을 쓰면서 사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삶의 폭이나 깊이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게 시이든 수필이든 일기든 편지든, 내 단상처럼 그 어느 것도 되지 못하는 잡문이든, 그리고 책으로 묶여지든 그렇지 않든, 인터넷 카페나 SNS 벼름박이든 상관없이.하지만 아무리 붓 가는대로 손가락이 움직이는 대로 쓴다지만 아무렇게나 질질 내갈겨도 좋은 것은 아니다. 점잖하지 못한 센 말이 때로는 의사 표현의 강도를 드러내는 수단으로 요긴하게 기능할 때도 있다. 그러나 거친 막말이나 욕설, 비속어, 가당치 않는 비유 등을 함부로 뇌까리는 것까지 용인될 수는 없다. 그것은 환호를 받든 질타를 받든 모든 사람의 정신건강에 해악을 끼친다. 무익한 말초적인 쌍말로 인한 내성의 폐해도 크다. ‘허무도 어찌하지 못할’지라도 덮어놓고 언어파괴와 되먹지 못한 말을 일삼아서는 안 되겠다.

/박준우 시시비비/ 지진특별법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

포항지진이 발생 2년이 다 돼 가지만 50만 포항시민이 염원하는 ‘지진 특별법’은 언제 제정될지 아직 오리무중이다. 그간 나왔던 정치권 얘기를 모아보면 특별법은 제정이 됐어도 벌써 됐을 텐데, 실상은 그렇지 않아 답답할 노릇이다.이미 정부는 지진 발생의 책임을 일부 인정했고 정치권도 여야 할 것 없이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에 대해 한목소리를 냈다. 게다가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특별법안을 이미 독자 발의까지 해놨다. 그런데도 특별법은 미뤄지기만 했다. 시민들이 원성을 높이자 정치권은 “내 할 일은 다 해 놨는데…”라는 식으로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정쟁 놀음에 속 타는 이들은 포항시민뿐이다.포항에서는 2017년 11월15일 규모 5.4 강진이 발생해 수천억 원에 달하는 직,간접 피해를 냈다. 주택 등 재산피해뿐 아니라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등이 입은 피해도 적지 않아 철강 도시는 자체 재건이 어려울 만큼 그 후유증에 힘들어하고 있다.포항 시내 곳곳에는 지금도 아파트 외벽에 낙하물 방지 펜스가 설치되어 있고 집 잃은 시민 수백 명은 조립식 임시대피소나 체육관에서 무더위를 견뎌내고 있다. 지진 발생 직후부터 50여 개 시민사회단체가 중심이 되어 시민들은 자체 복구 활동을 벌였지만 역부족임을 절감해, 정부에 피해 복구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요청해 왔다.그러나 특별법에 대해서는 정부가 응답이 없다. 물론 정부는 지진 직후 포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해 복구에 힘써왔다. 지자체에는 피해복구비를 지원했고, 시민들에게는 전기, 통신 등의 이용료 감면 혜택을 줬다. 그렇지만 이 정도론 크게 부족하다는 것이다. 정부 지원에서 벗어나 있는 피해시민들이 아직 있고, 심각한 피해를 본 지역경제도 되살려야 하기 때문이다.특히 정부는 2019년 3월20일 원인조사 발표에서 국책사업으로 추진된 지열발전 실험에 의해 지진이 촉발됐다는 결과를 내놨다. 그래서 당시 시민들은 지진의 원인과 책임이 밝혀졌으니 늦었지만 정부에서 당연히 특별법안을 국회에 제출해 줄 것으로 기대했다.그러나 그뿐이었다. 그 후로 다시 100일 넘게 지나갔다. 이제 정부는 특별법 제정을 정치권에 완전히 떠넘겨 놓은 듯하다. 그런데 책임을 넘겨받은 여당은 물론이고, TK 맹주를 자임하고 어려울 때마다 지역의 도움으로 기사회생했던 자유한국당마저 포항지진 특별법 처리에 열의가 없는 듯한 모습이다.오죽하면 “정치권이 그동안 한 것이라곤 국회 문 걸어 잠가놓고 싸움질하다 이달에 다시 문 연 게 전부다”라는 얘기가 시민들한테서 나올까. 그런데도 포항시민들은 국회만 바라보고 있다. 현재 국회에는 두 당이 발의한 특별법안이 상임위에 상정돼 있고 더불어민주당도 7월 중에 특별법안을 발의하겠다고 했다. 정치권 분위기가 무르익었으니 이번 회기엔 반드시 특별법을 제정해 줄 것이란 기대감이 시민들 사이에 커지고 있다. 정치권, 특히 자유한국당은 이 기대를 외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지진원인 발표 100일째인 7월2일 포항시가 개최한 ‘포항지진특별법과 피해배상을 위한 포럼’이 서울에서 열렸다. 이 행사에 포항의 자유한국당 두 국회의원도 참석해 특별법과 관련한 발언을 했다.“민주당에서 승낙하지 않아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피해구제법과 진상규명법이 상임위에 올라가 있어 7월 중순께 상임위가 열리면 최우선 논의되도록 할 것이다.” 김정재 의원(포항북)“국회가 열린다. 지진특별법이 제정될 수 있도록 추진 전략을 짜야 하지만 법에 어떤 내용이 담겨야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정부와 여당의 협조 없이는 안된다.” 박명재 의원(포항남-울릉)두 의원의 말을 종합해 보면 특별법 제정이 이번에도 호락호락할 것 같진 않다. 그렇지만 시민들의 염원을 생각한다면 두 국회의원은 결기를 갖고 특별법 제정에 더욱 바짝 달라붙어야 할 것이다. 여야 합의처리가 최선일 테지만 그게 어렵다면 다른 방법을 강구하는 데도 두 의원이 앞장서야 할 것이다.“불의의 재난을 당해 국가의 지원 없이 회복이 불가능한 처지에 있는 국민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라고 있는 게 특별법일 텐데, 왜 이렇게 특별법 제정이 어렵고 힘드냐?” 하소연할 데가 없어 더 답답한 포항시민들이다.

의료칼럼…환자에게 맞는 수술 있다

환자에게 맞는 수술 있다이동은리즈성형외과 원장50대 중반의 아주머니 한 분이 상담 차 내원했다. 눈꺼풀이 처지면서 덮여 내려오면서 눈이 작아지고, 특히 바깥쪽 피부가 접혀서 불편하다고 한다.특히 여름철이 되면서 날이 더워지고 땀이 많이 나는데, 이마의 땀이 접힌 피부를 타고 눈 안쪽으로 흘러들어가니 눈도 따갑고, 눈의 흰자에 염증이 생겨서 눈도 불편해졌다고 한다. 그래서 안과에서 이것에 대해 치료를 하게 되었는데, 쌍꺼풀 수술을 하면 좋아진다고 해서 기왕 할 바에야 좀 더 예쁜 모양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성형외과로 오게 되었다고 한다.눈 모양을 보니 젊었을 때의 곱던 모습이 아직 남아 있다. “젊었을 적에 눈이 예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라고 하니까 부끄러워하신다.그러면서 그는 주위의 지인들이 눈꺼풀 수술을 하였는데 그러고 나니 인상이 무서워지고 눈을 부릅뜬 것 같아서 ‘인상을 망쳤다.’ ‘손주들이 무서워서 할머니에게 오지 않으려고 한다.’ ‘가족들도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한다’는 불만을 토로하고 있단다. 그래서 자신도 마음속으로는 걱정도 되고 해서 방문했다고 속내를 말한다.노화가 진행되면, 눈의 노화가 가장 먼저 겉으로 보이게 된다. 눈꺼풀의 피부도 처지고 눈을 뜨는 근육의 힘도 약해져서 눈 주위의 모습에 많은 변화가 생긴다. 우선 눈꺼풀에 가려지면서 앞이 잘 보이지 않으니 턱을 들고 예전처럼 잘 보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다음 단계로 약해진 눈 뜨는 근육의 힘을 더 세게 만들기 위해 이마 근육의 힘을 빌려서 쓰게 된다. 그 결과로 이마에 주름이 생기고 눈썹이 위로 당겨 올라가게 된다. 아마 주위에 있는 50 대 이상 중년의 얼굴 모습이 대부분 이러한 모습이다.이럴 경우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흔히 쌍꺼풀 수술을 한다. 즉 처진 눈꺼풀 피부를 잘라내고, 눈 뜨는 근육의 힘도 복구해 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하게 되면 얼굴 모양에 많은 변화가 생기게 된다. 즉 예전처럼 눈의 힘만으로 정상적인 시야를 볼 수 있게 되면서 이전에 사용하던 이마 근육의 힘이 필요 없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로 이마 근육의 힘이 빠지면서 눈썹이 아래로 처져 내려오고 이마의 주름이 없어지게 된다.그렇게 되면 눈은 커지고 눈썹은 아래로 처져 내려오는 모습이 되는데, 눈과 눈썹 사이의 거리가 많이 줄어들게 된다. 마치 인상을 쓰면서 눈을 부릅뜨는 것 같은 모습이 되는데 이런 인상이 마치 ‘토끼눈’ 같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인상이 너무 드세졌다고 하는 사람도 있게 된다.그래서 환자에게 이러한 일이 생기는 원인을 충분히 설명하고 눈의 상태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눈 주위에 염증이 있고, 눈가의 피부가 짓무른 것을 보니 수술을 해야 할 상황이다. 그래서 다른 대책을 생각해야 할 상황이다. 마침 눈썹과 속눈썹에 문신한 것이 보인다. 그래서 ‘눈썹을 들어 올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눈썹 수술을 권유하게 되었다.눈썹 수술은 처진 눈꺼풀 피부를 눈꺼풀 위에서 잘라내는 것이 아니고 눈썹 아래쪽의 두꺼운 피부를 잘라내고 눈썹을 위로 당겨서 고정해 주는 수술이다. 눈썹 아래쪽의 피부를 제거하기 때문에 처진 피부를 좀 더 효과적으로 해결해 줄 수 있고, 게다가 눈썹을 위로 당겨서 고정하기 때문에 눈썹이 내려오지 않아서 눈과 눈썹 사이의 거리가 변하지 않기 때문에 인상의 변화도 적다.필요에 따라서 눈썹 수술과 함께 눈꺼풀 수술도 함께해서 눈 전체의 인상을 좀 더 부드럽게 만들어줄 수도 있다.환자의 건강상태에 별문제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수술을 시작했다. 눈썹 아래쪽의 피부를 정확하게 제거하고 위쪽으로 당겨서 고정해 주었고, 쌍꺼풀도 예쁘게 다시 만들어주었다. 수술 후 1주일째가 되고 실밥을 제거하고 나니 군데군데 멍이 약간 남아 있기는 하지면 어느 정도 예전의 눈 모양이 나오는 것 같아서 이 정도면 결과는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1개월 정도 지난 후 예쁘게 눈 화장을 하고 방문한 환자의 얼굴을 보니 적어도 10년 정도는 젊어진 얼굴이고 얼굴의 균형도 잘 잡혀 있어서 환자가 아주 만족해했다. 눈 수술을 하면 인상이 무서워진다는 편견을 바로 잡아줄 수 있어서 나도 기분이 좋았다.결국 모든 환자에게는 그에 맞는 수술이 있기 마련이다. 적어도 환자의 고민을 세심하게 들어주고 그에 맞는 수술을 최선을 다해서 선택을 했을 때 환자에게 가장 좋은 결과를 돌려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당직변호사

▲19일 이정수 ▲20일 이재훈 ▲21

미주통신…질란드와 들꽃향기

질란드와 들꽃향기신영재미 시인·칼럼니스트뉴잉글랜드 지방 매사추세츠주 보스턴과 뉴햄프셔주 인근에 산다는 것이 참으로 감사한 날이다. 1시간 남짓 운전으로 가면 바다가 있고 2시간 정도 가면 산을 만난다.매사추세츠주 동쪽으로 대서양과 접하고 북쪽으로 버몬트주와 뉴햄프셔주, 남쪽으로 로드아일랜드주와 코네티컷주, 서쪽으로 뉴욕주와 접한다. 영국 청교도들이 정착했던 탓에 그들의 정신문화가 깊이 박혀 있으며 매사추세츠주는 유서 깊은 교육의 고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더욱더 좋은 것은 자연과 가까이 만날 수 있는 우거진 숲과 산과 바다가 많다는 것이 참으로 축복이다.지난주 토요일 ‘보스톤산악회’ 정기산행이 있어 다녀왔다. 산악회에서는 닉네임을 정해 부르고 있다. 그 이유는 어떤 모임에서처럼 그는 누구(학연, 지연 지위 등)라는 수식어의 필요성을 접고 산(자연)이 좋아 만나고 나누는 그저 자연의 한 사람으로 만나자는 취지에서의 시작이라고 한다.필자의 내 닉네임은 ‘하늘’이다. 그리고 이번 정기산행을 주관했던 분의 닉네임은 ‘들꽃향기’였다. 들꽃향기님은 산을 오른 지 10년이 된 산사람이고, 나는 2011년부터 시작했으니 만 8년차의 산사람이 되었다. 이렇게 10년이 가깝도록 함께 산을 오르내리니 나이와는 상관없이 편안한 친구가 되었다.10여 년이 다되도록 산을 오르내리다 보니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옛말이 있듯이 뉴햄프셔주 화이트 마운틴 지역을 지나칠 때면 산들이 눈을 통해 마음으로 들어온다. 부르지 않아도 익혀진 이름으로 가슴을 파고든다. 그 계절마다에서 만났던 아름다운 추억과 버거웠던 산행의 힘듦 속에서의 추억들이 곰실거리며 가슴을 헤집고 파고드는 것이다. 이렇듯 정해놓고 오른 것은 아니었지만, 화이트 마운틴(White Mountains) 안에 4,000 피트 넘는 산이 48개가 된다고 하는데 35개 이상을 올랐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지난해였다. 가을 산을 오르며 닉네임이 들꽃향기는 필자에게 말했다. ‘하늘, 우리 4,000ft 이상의 48개 산행을 마무리해 보면 어떻겠냐’고 말이다. 그래서 그것 참 기분 좋은 일이겠다는 말을 했다. 그렇게 지내다 이번 산행지 질란드(Mt. Zealand·4,260ft)는 ‘보스톤산악회’에서 10년 만에 두 번째로 오르는 산이라고 했다.산 높이는 그리 높지 않았지만, 거의 7시간이 넘게 걸릴 수 있는 긴 산행지였기에 선뜻 정하지 못했던 산행지였다. 겨울 계절이면 엄두도 못 낼 산행지였지만, 여름 계절이라 가능했던 곳이다. 이렇게 또 하나의 산을 올랐다.산은 정상이 목표가 아니라는 것을 산을 하나둘 오르면 오를수록 깨달아 간다. 산을 오르며 만나는 너무도 광활하고 신비로운 자연에서 크신 창조주를 만나고 너무도 작은 피조물인 나를 만나게 되는 까닭이다.그래서 산을 오르면 더욱더 겸손한 마음이 절로 차오르고 삶에서 다른 사람의 탓이 아닌 나의 탓을 깨닫게 되는 까닭이다. 그것은 우리 모두는 자연의 한 일부부인 이유일 것이다. 계절마다 만나는 바람은 내 배꼽 밑의 오랜 신음마저 끌어올려 주어 깊은 호흡을 만나게 한다. 새로운 호흡으로 정신이 맑아지는 것이다.이번 산행지인 질란드를 오르며 4.6 마일 지점에서 Zealand Fall(AMC Hut)을 만났다. 이때부터는 험하고 가파른 길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힘겨운 걸음으로 한참을 올라 갈림길 사이 Zeacliff(7.0 miles) 지점에 도착했다.눈 앞에 펼쳐진 진분홍 들꽃(철쭉과)들이 우리를 환영해 주었다. 우리는 또다시 가쁜 숨을 몰아쉬며 질란드 정상에 도착했다. 간단히 점심을 먹고 빠른 걸음으로 산에서 내려오니 7시간 만의 산행이었다. 또 하나의 ‘소중한 추억’이 된 질란드와 들꽃향기 그리고 들꽃향기님이 기억은 오랜세월 간직하고 싶다.

영남대 의과대학 학술지 DOAJ 등재

영남대 의과대학(학장 윤성수)에서 발행하는 ‘Yeungnam University Journal of Medicine(YUJM)’이 ‘Directory of Open Access Journal(DOAJ)’에 등재됐다.DOAJ는 세계 최대의 Open Access(OA) 저널 데이터베이스로서 학술저널을 평가 및 분류하는 양적, 질적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7월 현재 131개국 1만3천470여 개의 저널과 410만여 건의 논문이 등재된 상태다.DOAJ는 국제 OA기준에 부합하기 위해 58개 항목을 평가해 심사에 통과한 저널만 싣는다. 따라서 DOAJ에 등재됐다는 것은 국제 규격을 갖춘 학술지로 인정받았음을 의미한다. YUJM은 전국 의과대학 학술지 중에서 세 번째로 DOAJ에 등재되었다. YUJM은 1984년 창간된 후 기초 및 임상의학 분야에 관한 종설, 원저, 증례보고 등의 내용을 싣고 있다. 올해부터 매년 3회 정기 발행 중이다.

경제칼럼…청년의 미래, 우리의 미래

청년의 미래, 우리의 미래이부형현대경제연구원 이사미중 무역전쟁에 이어 한일관계 경색에 이르기까지 우리 경제를 위협하는 대외 악재가 끊임없이 터지고 있다. 그러는 사이 국내 경제 이슈는 최근 결정된 최저임금을 제외하고는 일일이 미디어를 챙겨보지 않으면 찾아보기 힘들다. 그 중에서도 특히 청년 문제에 대한 이슈들은 거의 자취를 감추다시피 한 것 같다. 15~29세에 해당하는 청년 실업률이 10%대를 넘나들고, 구직활동을 장기간 쉬거나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직장을 찾는 청년들까지 포함한 확장실업률이 사상 최고수준으로 나타났는데도 말이다.늦은 감이 없지는 않지만 이제서야 일자리를 필두로 청년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누구나가 다 아는 것 처럼 청년이 국가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몇 가지 질문에 대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 가운데 저출산 문제의 본질적인 해결책은 무엇인가? 향후 고령화 진전에 따른 사회적 비용은 누가 지불하나? 자본은 과연 부족한 노동력을 완전 대체할 수 있나? 수출지향형(외수 주도) 성장의 한계를 극복할 대안은 무엇인가? 등의 질문들은 당면해 있는 문제의 해결책을 요구하는 것일 뿐 아니라 우리의 미래를 좌우할만한 결정적인 집단 의사결정의 방향을 따지는 것들이다.질문에 대한 답의 근본적인 해결책 중 하나는 작금의 우리 청년들이 가진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청년들이 처한 문제는 그야말로 복잡다난하기 짝이 없다. 어려서부터 치열한 입시경쟁을 뚫고 진학해도 기약도 없는 취업준비가 기다리고 있다. 취업 후에는 언제 일자리를 잃을지 늘 불안하고, 학자금 대출 상환에도 시달려야 한다. 집값을 비롯한 높은 생활물가는 이제 겨우 사회인이 된 청년들의 두 어깨를 짓누른다. 이쯤 되면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노후준비도 모두 사치로 여겨져 포기하거나 기약도 없이 미루고자 하는 청년들이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이른바 비자발적인 ‘N포 세대’가 작금의 우리 청년들을 단적으로 묘사하는 대명사가 된 이유다.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도 많은 청년들이 결혼을 희망하고 있어서, 적절한 정책대응이 이루어진다면 암울해 보이는 우리의 미래를 좀 더 밝게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보인다는 점이다. 한 국책연구원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비록 샘플 수가 3천명 정도에 불과하지만, 미혼 청년들 중 약 80%가 적절한 상대가 있고 취업이나 집 마련 등 경제적인 여건이 허락한다면 결혼하고 싶다는 것이다. 물론 세부적인 조건에는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이제라도 우리 청년들 앞에 놓여진 조건들을 바꿔나갈 필요가 있다. 청년들이 적절한 교육과정을 마치고 원한다면 능력과 적성에 맞는 좋은 일자리를 얻어 안정적인 생활 기반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결혼과 출산, 육아에 필요한 직간접 비용을 최대한 낮출 수 있도록 사회적 배려도 넓혀야 한다. 남녀 모두 결혼과 출산, 육아 등으로 차별받지 않도록 최대한의 배려가 필요하다. 더는 우리 청년들이 결혼과 출산, 육아 등이 큰 기회비용으로 생각하지 않도록 말이다.우리 청년들은 20대 국회 시작 첫날에 ‘청년은 청소년과 장년 사이에 끼어 있는 낀 세대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중요 자원으로서 보호육성하고 성장시켜야 합니다’라며 발의된 청년기본법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이후 많은 관련법안들이 발의된 것도 알 것이다. 그런데 이들 법안들이 지금은 관심도 못 받고 잠자고 있다고 한다. 청년의 범주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특정 연령층에 대한 혜택이 타 계층에 대한 역차별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등의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 이대로라면 20대 국회의원 임기 만료와 동시에 자동 폐기될 수 밖에 없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이제 우리 청년들은 사회적 관심마저도 포기해야 할 위기다. 비록 제한된 논의로 이상향만 제시했지만, 멀어져 가는 사회적 관심을 이제는 우리 청년들에게 돌려줘야 할 때다.

권순진의 맛있게 읽는 시…등신불을 죽이다

등신불을 죽이다/ 전원책당신이 살아있다는 소문은 어떻게 된 것인가/ 당신 집 빗장을 채울 때/ 세상 모든 빛을 가두면서/ 당신의 모든 행간은 숯과 소금으로 채워져/ 누구도 읽어내지 못한 당신 허물만으로/ 육신의 잠은 넘쳤다/ 혹 당신이 옹기 속 그 너른 대청에 앉아서도/ 눈과 귀를 열어 대중을 어르는 일에/ 무심하지 않았는지,/ 이제 빗장을 깨고 나와/ 내 벗은 몸을 실컷 보라고 호통친다는/ 이 즐거운 소문은 어떻게 된 것인가- 시집『垂蓮의 집』(해와달, 2003).............................................................. 지금은 폐지되었으나 JTBC ‘썰전’을 재미있게 시청했었다. ‘썰전’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을 대표하는 논객이 각각 출연해 시사이슈를 두고 ‘설전’을 벌이는 정치예능프로이다. 2016년 1월 이철희 이준석이 물러나고 후임으로 전원책 변호사와 유시민 작가가 새로운 패널로 기용되면서 적잖은 관심을 끌었다. 당시 전 변호사는 상대에 대한 인물평 주문에 “나보다 머리 좋고, 나보다 잘생겼고, 나보다 젊고, 나보다 잘났고 기타 등등. 나보다 못한 게 없다”며 유 작가를 향한 폭풍칭찬을 늘어놓으면서도 “다만 보수 쪽에서는 정반대로 해석할 것”이라며 반전의 조크를 날렸다. 유시민 작가 역시 은근히 친밀감을 드러내 보였다. 과거 진중권 교수와 전원책 변호사가 한 TV프로에서 무릎을 맞대고 앉아 오순도순 맞장을 뜨며 서로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며 했던 발언을 기억하고 있다. 저돌적으로 밀어붙이며 직설적 화법을 구사하는 전 변호사와 은유와 비유의 날선 독설로 유명한 진 교수가 그랬듯 유 작가와도 비슷한 분위기를 연출해 보기에 과히 나쁘지 않았다. 전 변호사의 토론 중 윽박지르며 흥분하는 모습의 바람직하지 못한 토론태도가 때로는 거슬렸고 어떤 발언에서는 ‘저 양반 왜 저러지’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그래도 썩 밉지는 않았다. 전 변호사는 기회주의자들로 득실득실한 보수 진영에서 드물게 공부가 되어있고 나름의 논리와 신념의 일관성을 가진 사람이라 생각했다. 진보를 공격하다가도 잘못된 보수에 대한 질타도 아끼지 않았다. 적어도 자신의 영달을 우선시하는 일부 보수논객들에게서 자주 목격되는 논리적 억지가 그에게는 덜 했다. 그는 보수를 관통하는 기본정신이 기득권 옹호가 아니라 ‘자유’와 ‘책임’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그가 지난 해 한국당 조강특위 위원이 되면서 스텝이 꼬이는 바람에 이젠 TV에서도 거의 모습이 사라졌다. 시인이기도 한 그는 언젠가 인터뷰에서 “머리는 우파지만 가슴 속은 좌파다”라고 고백한 적이 있다. “어차피 모든 예술가는 진보적일 수밖에 없어요. 문인이 체제 비판적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가슴이 따뜻하기 때문이고요.” ‘썰전’이 없어진 이후 유일하게 챙겨보는 정치예능프로가 MBN의 '판도라‘였다. 보수 논객인 정두언 전 의원은 전 변호사보다도 훨씬 안정감 있고 균형감이 돋보였다. 정청래 전의원과의 ‘캐미’도 잘 맞았다. 물론 발언에 모두 동의하기는 어려웠으나 그만하면 보수의 한 축이 되어도 괜찮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야말로 어떤 측면에서는 자유주의 좌파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그의 갑작스런 비보에 충격을 금할 수 없다. ‘이제 빗장을 깨고 나와’ ‘내 벗은 몸을 실컷 보라’는 듯 매주 방송에 나와 정치발전을 위해 논객으로서 자신의 정견을 펼쳐왔는데, 더는 볼 수 없게 되어 더욱 안타깝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아침논단…제자 이야기

제자 이야기신동환객원논설위원S선생님은 일행과 함께 모 협동조합이 운영한다는 식당에 들렀다. 손님이 많았다. S선생은 일행들에게 ‘이 곳 조합 직원으로 제자 K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고 했다. 일행은 종업원에게 지나가는 말로 K를 만날 수 없느냐고 물었다. 일행은 그 일을 잊고 있다니 이곳 협동조합의 제복을 입은 이가 다가왔다. 같이 온 종업원이 그를 소개 했다. S선생 이름을 이야기하니 급히 올라왔다고 한다. S선생은 그를 40여년이 만에 만나서 그런지, 생각이 가물가물해 잘 알아보지 못했다. “선생님 접니다.” 그는 웃으며 인사를 하였다. S선생은 그의 웃는 모습을 보며 기억을 떠올렸다. 그의 웃음은 수줍음을 지니고 있었다. 맞다. 너 K지? 예, 그는 잠시 머뭇머뭇하더니 큰절을 하였다. S선생은 뜻밖이었고, 일행도 놀랐다. 주위의 손님들도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돌아간 뒤 일행은 제자의 칭찬이 아니라 S선생의 덕담을 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큰절을 올리다니, 보기 드문 일입니다. 선생님이 바르게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역시 선생님은 교육자이십니다. 그 후 S선생은 친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우연찮게 그 이야기를 꺼냈다. 퇴직한 선생님들이 모인 자리라서 그런지 모두들 고마워하였다. 옆에 있던 L선생은 본인이 들은 이야기라며 다른 제자 이야기를 했다. P선생은 몇 달 전에 호텔에서 칠순 잔치를 치렀다. 손님이 꽤 많았다. 평소 P선생의 후덕하심이다. 50대 초반의 감색 양복을 입은 손님이 들어 왔다. 호스트인 장남이 모르는 손님이다. 그가 들어오는 모습을 본 P선생이 달려와 그를 반갑게 맞았다. 그는 P선생의 초등학교 제자이다. 그 제자와는 잊지 못 할 사건이 있었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데리고 수학여행을 갔다. 첫날밤 선생님들은 단체로 회식을 갔다. 지금 같으면 엄두도 못 낼 일이었지만 그 때는 어느 정도 마음의 여유가 있던 시절이기도 하였다. 경리를 맡아 있던 P선생은 내키지 않았다. 여행비가 가득 들어 있는 돈 가방을 어찌할 수 없어서이다. P선생은 불참하기로 했다. 다른 선생님들이 막무가내였다. 그 중 선생님 한 분이 전교 어린이 회장을 가리켰다. 모든 선생님들이 동의하였다. P선생은 마지못해 그들의 의견을 따랐다. 선생님들이 간 뒤 마음씨 좋게 생긴 아저씨가 어린이 회장에게 디가 왔다. 너희들 어디어디에서 왔지, 방은 춥지 않느냐, 불편한 것은 없나, 내일 아침은 무엇을 먹으면 좋겠니. 그는 어린이 회장에게 우스운 이야기도 하며 주인인척 했다. 어린이 회장도 경계심을 풀었다. 그러다 그는 어린이 회장에게 여러분이 자는 방의 전구를 갈아 끼워야 하니 전구를 사오라고 했다. 고액권을 주며 남는 돈은 과자를 사먹으라고 했다. 어린이 회장은 아무 의심 없이 그에게 가방을 맡기고 가게에 갔다. 그는 돈 가방을 갖고 줄행랑을 처 버렸다. 어린이 회장은 울면서 선생님을 기다렸다. 선생님이 왔다. 어린이 회장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자초지종 이야기를 했다. 선생님은 눈물로 범벅이 된 회장의 얼굴을 닦아주고, 살포시 어깨를 감싸 안았다. ‘걱정하지 마’ 선생님은 한마디의 꾸중도, 얼굴 찡그림도 없었다. 사후 경제적인 부담도 전혀 시키지 않았다. P선생의 월급과 동료 선생님들의 부담으로 문제를 해결하였다. 어린이 회장도 회장의 부모님도 P선생을 무척 고맙게 생각했다. 그 때의 담임선생님이 오늘 칠순 잔치를 하는 선생님이고 어린이 회장은 오늘 남색 옷을 입고 온 신사이다. 제자는 그 후 선생님을 잊을 수 없었다. 제자는 사업에 성공하여 중견 기업의 사장이 되었다. 제자는 경비 일체를 부담하였다. P선생과 선생님의 가족들의 만류는 제자의 의지를 꺾지 못하였다.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한마디씩 하였다. 선생님도 대단하고 제자도 대단하다. 예부터 군자의 즐거움은 천하의 영재들을 얻어 가르치는 것이라고 했다. 덕과 학식을 갖춘 사람을 군자라 한다. 아름다운 제자를 가지려면 스승은 덕과 학식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수성구청 여자태권도 선수단, 전국대회 개인·단체전 준우승

대구 수성구청 여자태권도 선수단은 지난 11일~14일 강원도 화천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제18회 여성가족부장관기 전국여성태권도대회’ 여자 일반부 경기에서 개인전 종합 준우승(금메달 2, 동메달 4)과 단체전(5인조) 준우승의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권순진의 맛있게 읽는 시…노래

노래/ 김남주이 두메는 날라와 더불어/ 꽃이 되자 하네 꽃이/ 피어 눈물로 고여 발등에서 갈라지는/ 녹두꽃이 되자 하네// 이 산골은 날라와 더불어/ 새가 되자 하네 새가/ 아랫녘 윗녘에서 울어예는/ 파랑새가 되자 하네// 이 들판은 날라와 더불어/ 불이 되자 하네 불이/ 타는 들녘 어둠을 사르는/ 들불이 되자 하네// 되자 하네 되고자 하네/ 다시 한 번 이 고을은// 반란이 되자 하네/ 청송녹죽 가슴으로 꽂히는/ 죽창이 되자 하네 죽창이 - 시집 『사랑의 무기』 (창작과비평사, 1989) ......................................... 동학농민혁명을 기리는 ‘노래’가 바로 조국 수석이 페이스북에 소개한 바로 그 ‘죽창가’이다. 그는 이에 앞서 “우리 정부와 국민을 농락하는 아베 정권의 졸렬함과 야비함에는 조용히 분노하되, 그 에너지를 내부 역량 축적에 쏟아야 한다. 이념과 정파를 떠나 구호가 아닌 실질적 극일(일본을 이기는 것)을 도모하자…. 우리에게는 그럴만한 능력과 경험이 있다. 그건 자부할 만하지 않은가”라는 황상진 한국일보 논설실장의 칼럼을 소개하기도 했다. 최재성 의원은 “경제 보복의 피해만 생각한다면 빨리 항복하고 끝내는 게 맞겠지만 이 정도 경제침략 상황이면 정치인들이 주판알만 튕길 때가 아니라 의병을 일으켜야 할 일이다”고 했다. 죽창가는 예상했던 대로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최 의원의 발언도 비판받고 있지만 꼭 그래야만 할까. 심지어 대통령의 ‘배 12척’ 비유를 두고 “세월호 한 척 갖고 이긴 문 대통령” “자기가 싼 배설물” 운운한 정미경 위원 등을 보면 나가도 너무 나갔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의 주류 언론과 보수야당은 이번 분쟁의 근본 원인을 ‘한국 정부의 비이성적이고 감정적인 조치’ 탓으로 돌리면서 양비론을 유포한다. 슬쩍 여론의 눈치를 보아 ‘일본에도 일부 책임이 있다’는 식의 끼워 넣기를 한다. ‘극일’은 1983년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사태 때 전두환 정권이 만든 용어다. 이후 이 단어는 한국인들의 대일 의식을 규율하는 ‘가이드라인’으로 이용됐다. 그들은 한국이 일본에 맞대응하려는 것은 ‘비이성적이며 감정적’이라고 단정한다. 일본의 이번 공격에는 ‘한국 내 여론’도 계산에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일본의 한 시사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평론가가 “문재인정권이 무너져야 한다”고 말했는데, 어쩌면 아베 정권의 속내도 그러할 것이다. “일본의 무역 보복 조치는 문재인 정부가 자초한 일”이라는 주장만 되풀이한다면 고종이 헤이그에 밀사를 보냈기 때문에 일본이 고종을 퇴위시키고 한국 군대를 해산하고 한국 내정을 장악한 것이라고 주장했던 옛날의 그 매국노들과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그리고 여전히 우리 안에는 일본과 맞서면 우리만 손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서커스단의 코끼리가 얌전히 말뚝에 묶여있다. 코끼리는 어린 시절부터 단단한 말뚝에 묶여서 자란다. 아무리 말뚝을 뽑고 달아나려 해도 어린 코끼리의 힘으로는 뽑을 수 없었다. 몇 번 시도하다가 결국 어린 코끼리는 말뚝 뽑는 것을 포기하고 만다. 점점 몸이 커지고 힘이 세졌는데도 코끼리는 말뚝을 뽑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실제로 어른코끼리는 1톤이나 되는 짐을 쉽게 들어 올릴 수 있을 정도로 힘이 세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자신의 힘은 약하다고 생각한 코끼리는 자신의 힘이 얼마 만큼인지 끝까지 알지 못한 채 말뚝에 묶여 지내게 된다. 그들은 단 한번이라도 ‘녹두꽃’이 되고자 ‘파랑새’가 되고자 대나무의 끝을 뾰족하게 갈아본 일이 있던가.

아침논단…잊혀진 이상화 생가

잊혀진 이상화 생가박운석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1926년 개벽지에 발표한 이상화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첫 연 첫 행이다. 일제에 대한 저항의식을 노래한 이 시를 꺼내든 건 예전의 기억이 새삼 떠올라서다.몇 년 전, 대구의 문화예술관련 기관에서 근무할 때다. 근대 문화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대구의 옛 골목에 숨어있는 이야기를 이상화고택 앞에서 거리연극 이벤트로 재현하는 기획을 한 적이 있었다. ‘옛 골목은 살아있다’는 타이틀로 진행한 문화도시운동이었다. 근대골목이 대구의 새로운 관광코스로 막 떠오르던 시기였다. 서상돈 선생과 이상화를 주인공으로 해 대구에서 일어난 국채보상운동과 3.1만세운동을 연극에 담았다. 매주 현장에서 이 연극을 지켜보면서도 당시에는 필자도 이상화고택이 생가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고택에서 북쪽으로 500m 떨어진 서성로에 시인의 생가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부끄럽지만 안타까운 사실이었다. 아마 지금도 마찬가지일거라고 추측해본다. 올해도 여전히 ‘옛 골목은 살아있다’라는 타이틀로 대구의 연극인들을 모셔 당시의 사실을 재현한 연극을 하고 있다. 6월말 전반기 공연을 마치고 7월~8월 혹한기를 지나면 9월부터 다시 상화고택 앞에서 행사가 이어질 예정이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대부분의 관객들은 이상화 고택을 여전히 생가로 알고 있을 터다. 고택 앞에는 생가에 관한 어떠한 안내조차 없는 상태이다 보니 그럴 만도 하겠다. 이상화 생가는 서문로 2가 11번지다. 흔히 북성로 돼지국밥 골목으로 알려진 길에서 다시 좁은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야 볼 수 있다. 이곳은 상화가 태어나서부터 32세 때까지(1900~1932) 살았던 본가였다. 시인은 당시 거처하던 사랑채를 ‘담교장’이라 이름 짓고 항일인사와 전국 문인들의 출입처로 삼았다. 그 후 가세가 기울어 생가를 처분하고 몇차례 이사를 했다가 현재의 고택에서 생의 마지막 4년(1939~1943년)을 보냈다. 당시 약 400여평에 달하던 시인의 생가(서문로 2가 11번지)는 현재 4곳으로 분할되어 있다. 따라서 11-1번지 대문에 붙어있던 ‘이상화 생가터’라는 안내판은 애초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다행히도 이 같은 사실은 지난해 이곳에 한옥카페를 연 한 시민에 의해 바로잡혔다. 사람들이 한옥카페를 찾아 모여들면서 자연스럽게 시인에 대해 관심을 가진 그는 생가터 안내판이 잘못된 것을 알고는 대구시에 지속적으로 민원을 제기한 끝에 바로잡았다. 그렇지만 대구시의 각종 홍보물에는 아직 11-1번지만을 생가로 표기하고 있다. 대구 ‘근대로의 여행’ 관광홍보물에도 제대로 알리지 않고 있다. 당시 생가 마당을 지키며 소년 이상화에게 시심을 심어준 라일락 고목(수령 200년 추정)에 반해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는 한옥카페 대표는 이제 상화를 연구하는 향토사학자가 되었다. 시인의 삶을 지켜본 라일락 고목을 ‘이상화 나무’로 이름 짓고 ‘담교장’이라는 당호(집이나 건물의 이름)도 재현해 달아두었다. 상화에 관한 각종 문헌과 기록물을 모으고 조사하는 게 일과가 됐다. 상화고택에 가려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생가는 대구 중구 근대골목 투어인 ‘근대로(路)의 여행’ 1코스에 포함되어 있다. 이인성고택과 이병철고택~삼성상회 옛터~우현서루 옛터~달성토성을 잇는 코스다. 근대골목 투어와는 별도로 이곳의 이상화 나무와 가까운 계산성당 내에 이인성 나무, 경상감영공원 옆 종로초등학교에 있는 최제우 나무를 연계한 ‘노거수 관광’ 스토리를 엮어내도 괜찮을 듯하다. 무엇보다 이곳은 대구를 대표하는 시인의 젊음과 수많은 일화를 간직한 곳이고 시심을 가다듬은 생생한 역사의 현장이다. 대구의 근대문학 태동길이라 이름 지어도 손색없는 스토리를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고택의 그늘에 가려 잊혀져만 가는 이상화 생가가 안타깝다. 고택 앞에는 생가에 대한 안내를, 생가 앞에는 고택에 관한 안내를 해야 하는 게 당연하다. 가능하면 역사적 고증을 거쳐 당시 항일인사들과 문인들의 모임장소였던 ‘담교장’까지도 복원해 역사교육의 장으로, 대구 근대문학 관광콘텐츠로 잘 활용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