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영주댐 방류

경북 북부지역에서 영주댐 방류를 놓고 대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애초 건설 초기부터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영주댐이었지만 최근에는 1년 넘게 담수한 ‘댐 물’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두고 물관리 주무 부처인 환경부와 영주시를 비롯해 인근 안동시, 예천군, 상주시, 봉화군 등 내성천 주변 주민들 사이에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지역민들은 일차적으론 댐 방류 철회를 요구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환경부의 행보에 대한 의구심이 있다. 환경부가 지난해 담수를 시작하면서 댐 처리 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그 목적임을 밝혔기에 지역민들은 이번 방류가 향후 영주댐의 존치나 철거를 결정하는 데 어떤 식으로든 관련이 있지 않겠느냐고 우려하고 있다.댐 방류에 대해 지역에서 반대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환경부는 10월 15일과 16일 두 차례에 걸쳐 방류를 시도했다. 그러나 두 차례 시도는 지역민들이 댐 수문 바로 아래에서 몸으로 저지하는 바람에 결국 잠정 유보됐다.현재와 같은 대치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은 환경부가 방류 결정 과정에서 지역민들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는 등 댐 운영을 일방적으로 한 데 그 원인이 있다. 이번에 방류를 결정한 주체는 영주댐협의체다. 이 협의체는 그동안 녹조와 누수 등으로 논란이 벌어진 영주댐의 처리 방안을 검토하기 위해 환경부가 올해 1월20일 출범시킨 거버넌스 조직이다.그러나 협의체에 대해 지역에서는 출범 당시부터 비판적 시각이 있었다. 18명으로 이뤄진 협의체의 구성 과정에서 주민 의견을 전달할 지역단체가 소외된 데다, 또 지역 몫으로 2명만 배정되는 등 사실상 지역 입장과 상관없이 의사 결정이 이뤄질 수 있는 구조로 출범했기 때문이다.영주댐협의체는 10월6일 회의를 열고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하루 수심 1m 이내로 약 80일 동안 댐을 방류한다’는 결정을 했다. 당시에도 회의장을 찾은 영주댐수호추진위원회 회원들과 영주시의회 의원들이 시민 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일방적 방류 계획을 철회할 것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2009년 공사에 들어간 영주댐은 2016년 댐 본체 공사가 마무리됐다. 이후 환경부는 2016년과 2017년에 한 차례씩 시험담수를 했지만, 당시 저수율이 채 20%에도 미치지 않아 지역에서는 댐 자체에 구조적 문제가 있지 않으냐는 의혹도 제기됐다.그리고 1년여간 담수가 없다가 환경부는 2019년 3월 세 번째 시험담수에 들어갔다. 의혹이 제기된 댐 시설의 안전성을 평가하는 한편, 댐이 건설된 하천인 내성천의 생태환경 전반을 종합 진단해 향후 댐 처리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게 당시 환경부가 밝힌 시험담수 목적이었다.다행히 3차 담수에서는 저수율이 평균 50~60%를 기록하면서 담수 기능 등의 의혹은 일단 해소되는 것 같았다. 또 물이 들어찬 영주댐을 보며 지역에서는 안정적 용수 확보는 물론이고, 댐 주변과 연계한 관광벨트 구상 등을 하며 영주댐의 경제효과를 기대하는 분위기도 형성됐다.이런 가운데 환경부가 영주댐협의체 회의 결과를 토대로 지역민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10월15일 댐 방류를 강행했고, 지역에서는 즉각 방류 반대를 위한 실력 행사에 들어갔다. 환경부의 입장은 애초 방류를 전제로 한 담수였고 목적대로 관련 기초자료를 충분히 확보했으므로 계획대로 방류하겠다는 것이었다.그러나 지역민들은 생각이 달랐다. 환경부가 제시한 방류 이유에 동의할 수 없고, 무엇보다 댐 건설로 인해 수몰 피해까지 본 지역민들의 의견을 들어보지 않고 방류를 강행한 것에 분노했다. 또 방류가 향후 댐 철거라는 어떤 의도에 따라 추진되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지역민들 사이에 퍼졌다.현재 잠정 유보된 영주댐 방류는 앞으로 어느 방향으로 해결의 가닥이 잡힐지 지금으로선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환경부는 일단 방류 계획은 철회한 상태이지만 향후 계획에 대해서는 아직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으며, 지역민들도 환경부의 공식 발표가 나올 때까지는 농성을 풀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방류 강행에 주민들 실력 저지환경부가 1차 방류 시한으로 예고한 10월15일 오전 11시, 영주댐 수문 바로 아래에서는 주민들이 방류 반대 시위를 벌였다. 그 시각 한국수자원공사 영주댐지사에서 여러 차례 ‘방류를 하겠다’는 경고 방송을 보냈지만, 주민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이날 방류는 하루 뒤인 16일 오전 11시로 연기됐다.이날 같은 시각 영주댐 하류 500m 지점에서는 주민들과 30여 개 시민사회단체 회원, 도지사, 자치단체장, 도의원, 시의원, 국회의원 등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영주댐 수호를 위한 범시민 결의대회’가 열렸다.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맞이한 재방류 예고일인 16일 오전, 주민들은 댐 아래에서 반대 시위를 이어갔다. 결국 환경부는 방류 계획을 잠정 보류했다. 그리고 10월20일에는 영주댐 하류 500m 지점에서 영주시의회가 임시회를 열었다.시의회는 이날 △공사가 완공된 지 4년이 지나도록 준공 검사를 하지 않는 이유를 밝힐 것, △영주댐협의체가 댐 방류 결정 권한을 가진 것인지 그 법적 근거를 제시할 것, △담수 대책 없는 방류를 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할 것 등의 질의를 하고 환경부에 답변을 요구했다.◆ 지역민과 환경부의 다른 생각환경부의 댐 방류 계획에 맞서 지금도 댐 아래에서 하루 12시간씩 순번제로 24시간 방류 저지에 나서고 있는 지역민들은 방류 계획의 완전 철회와 기존 영주댐협의체 해체 후 영주시민이 참여하는 새로운 협의체 구성을 요구하고 있다.강성국 영주댐수호추진위원장은 ‘영주댐은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이주민들의 애환과 희생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곳이다. 1조 원이 넘는 예산이 투입된 영주댐을 주민들의 희생을 무시하고 다시 무용지물이 되게 하는 것은 그냥 두고 볼 수 없다’고 지역의 분위기를 전했다.장욱현 영주시장은 ‘의견 수렴기구인 댐협의체 구성이 잘못된 만큼 협의체 구성을 다시 해야 한다. 또 방류가 댐 해체를 전제로 하지 않는다는 말을 믿을 영주 시민이 없는 현실을 고려해 환경부는 댐을 제대로 활용하는 방안을 찾는 동시에, 농업용수 공급을 위해 최저수위(저수율 34%)를 지키겠다는 약속부터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이 같은 격앙된 지역 분위기에 대해 환경부는 댐 철거는 없을 것이고 협의체는 새로 구성하겠다는 입장이다.두 차례 방류 시도가 좌절된 후 10월17일 영주댐 인근 주민 농성장을 방문한 김동진 환경부 수자원정책국장은 ‘방류는 댐 해체를 전제로 하는 게 아니며 내년까지 용역이 진행되고 있고 현재 의견을 모으는 과정이다. 지역 의견을 절대 소홀히 하지 않고 있다. 정부를 믿고 협력해 달라’고 말했다.조명래 환경부 장관은 10월 초 박형수(영주·영양·봉화·울진) 국회의원과 만난 자리에서 ‘향후 지역주민이 더 많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해 영주댐을 운영하겠다. 정부가 영주댐을 해체하거나 자연하천화 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1조1천억 원 투입해 만든 영주댐영주시 평은면 용혈리 일대 내성천에 있는 영주다목적댐은 낙동강 유역 하천의 유지용수 확보와 홍수 피해 경감, 경북 북부권에 대한 안정적인 용수 공급 등을 위해 4대강 사업의 수질관리 대책 중 하나로 2009년 12월 공사에 들어갔다. 사업비로 1조1천30억 원을 투입해 2016년 10월25일 높이 55.5m, 길이 400m 규모의 본체를 완성했다.영주댐은 만수위 기준으로 연간 2억㎥의 맑은 물을 확보해, 이 중 1억8천㎥를 하천 유지용수 등 환경개선 용수로, 1천만㎥를 영주, 상주 등 북부지역의 안정적인 생활·공업 용수로 공급한다. 또 수력발전을 통해 연간 15.78GWh(4인 가구 기준, 3천288가구 연간 사용량)의 청정에너지를 생산한다.이밖에 댐 주변에 51km 길이의 국내 최장 순환도로를 개설하고 이주단지 3개소(66가구)를 조성하는 등 댐을 중심으로 한 관광벨트화 사업도 영주시에서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영주댐은 건설 초기에 나온 부실 공사 의혹에다 심각한 녹조현상, 모래 강 내성천의 황폐화, 댐 시설물의 누수 등 여러 문제점이 그동안 지적되기도 했다.

[기자수첩]급차로 변경 교통단속…유전무죄

이영상 대구지방경찰청장이 부임한 지도 3개월이 지났다.그로부터 최근까지 많은 변화가 있었다.그중에서도 교통 분야에서 말이다.이 청장은 경찰청 교통국장 출신답게 교통과 관련해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직접 현장에 나가 교통안전문화 전파에 힘쓰고 있는 모습이 대표적인 사례다.일선 경찰서에서도 교통 캠페인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하지만 부자동네에 한해서는 예외인가보다.대구 수성구 범어도서관과 두산위브더제니스 아파트 앞도로는 자동자들의 곡예운전이 벌어지지만 단속의 사각지대로 전락했다.보행자 신호가 바뀔 때마다 한 번에 2~3차로를 넘나드는 일들이 벌어진다. 출퇴근 시간대면 파란 불이 켜진 횡단보도를 침범하기도 한다. 얌체 운전이며 불법 행위다.‘급차로 변경 금지’라는 표지판이 무색할 정도다. 이곳의 문제는 경찰도 인지하고 있다.그럼에도 단속은 뒷전이다.사연은 이렇다.도로가 먼저 난 상태에서 아파트가 지어졌기 때문에 구조개선이 어려워 단속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이다.여기서 모순이 발생한다.경찰은 급차로 변경, 끼어들기, 꼬리 물기 등 얌체 운전 행위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곳에는 어김없이 캠코더를 세운다.경찰의 논리로 보면 다른 곳들도 도로가 먼저 생기고 도심이 발전함에 따라 문제가 생기는 것인데 똑같이 봐줘야 하지 않나.유독 달구벌대로에 있는 범어도서관 일대에서만 캠코더 단속을 보기 어렵다.경찰이 부자동네의 편의 봐주고 있다고 생각 드는 것도 여기에 있다.이곳에서 급차로 변경이 관행화 돼 가는 이유는 운전자가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다. 도로를 횡단하지 않으면 수백m를 더 가서 유턴해야 하는 불편이 발생한다. 운전자들은 불법을 저지르고도 경찰의 단속이 없으니 같은 행위를 매일 반복한다.분명한 것은 불편한 것보다 시민 안전이 우선이다.더욱이 교통안전문화를 전파하기 위해서라도 단속은 필요하다. 한꺼번에 여러 차선을 한 번에 넘는 행위가 불법이라는 것은 알고 있는 운전자가 얼마나 될까.알면서도 편의를 위해 도로를 횡단하는 것도 문제지만 불법행위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잘못된 운전습관은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대구경찰이 교통안전문화 조성에 내세운 핵심 키워드는 ‘사람 중심’이다.자동차로부터 사람이 안전하려면 운전자의 인식도 작은 것에서부터 바뀌어야 한다.잘못된 운전습관은 스스로 고치기 어렵다. 운전자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경찰이 나서야 할 때다.

인구소멸, 해법 찾나…의성군의 반전

의성군은 지방 소멸 위험 지자체 중 전국 1위로 꼽힌다. 그런 의성군이 작년 합계출산율 경북도 1위, 전국 3위라는 놀라운 성적을 거뒀다.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인구 소멸 상황에서 한 가닥 희망의 빛을 발견한 셈이다. 의성군의 쳥년·결혼·육아 등 대책이 통했다. 타 지자체도 이를 배워 확산시켜 나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지난해 의성군의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산되는 평균 출생아 수)은 1.76명으로 경북 1위, 전국 3위를 차지했다. 저출산, 고령화를 극복하고 나타난 뜻밖의 결과다.경북도내 합계출산율은 2/4분기 1.01로 전국 평균(0.84)보다는 높다. 하지만 21%에 달하는 높은 고령화와 수도권으로의 인구 유출에 따른 소멸 위기를 맞고 있다.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코로나19 영향으로 올해 3~4월 수도권 순유입 인구가 2만7천500명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같은 기간 1만2천800명보다 2.15배 늘어났다. 특히 경북의 청년 인구는 올 한 해(8월 기준) 1만8천456명이 빠져나갔다. 청년층의 수도권 유출이 심각한 수준에 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의성군의 합계출산율이 늘어난 것이다.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합계출산율은 전국 0.92명, 경북 1.09명으로 나타났다. 의성군은 1.76명으로 지난해 1.63명보다 0.13명 증가했다. 전국적으로는 전남 영광군(2.54명), 전남 해남군(1.89명)에 이어 3번째다.의성군의 높은 출산율은 다양한 청년·결혼·임신·출산·육아정책의 산물이다. 의성군은 지난 2018년 이전까지 5년 동안 지역 초·중·고교 폐교 등 지속적인 인구감소로 ‘인구 소멸 위험’ 전국 1위로 분류됐다.이에 의성군은 온갖 묘책을 내놓고 궁리를 거듭해 인구 증대 방안을 찾았다. 경북도도 힘을 보탰다. 그리고 인구증가 정책을 밀어붙였다. 청년정착플러스사업과 청년농업인스마트팜창업지원, 지역에 주소를 두고 관내 예식장을 이용하는 부부(혼주)에게 결혼장려금지원, 결혼 1년 이하 무주택신혼부부에게 신혼부부주거비용을 지원했다. 또 관내 임산부 출산 전 검사, 난임부부 지원, 출산장려금지원과 다자녀가정 출산용품 및 첫돌사진촬영지원, 출산통합지원센터 운영 등 다양한 정책을 추진했다. 각종 청년 지원책과 유인책이 빛을 발했다. ‘궁즉통’이었다. 그 노력은 2년 여 만에 결실 맺었다.앞이 캄캄해 보이던 인구 절벽의 방안을 찾았다. 다른 지자체도 여러 방안을 모색하고 있지만 의성군 사례를 벤치마킹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의성군의 인구정책이 위기의 경북을 구하는 길이 됐으면 한다.

부끄러움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이달 7일부터 시작한 21대 국회 첫 국정감사가 26일 끝났다. 문재인 정권 중간평가라는 의미는 결국, 역시나 여야의 정쟁의 장으로 번지면서 빛이 바랬다. 국감 기간 동안 정책 대안 마련은커녕 호통과 막말로 정치 공방만 벌였다. 그 공방 속에 라임·옵티머스 사태와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등 국민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민감한 사안은 묻혀버렸다.이번 국감으로 문뜩 떠오른 한자어가 있다. 견강부회(牽强附會)와 후안무치(厚顔無恥)이다.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억지로 끌어붙여 자기 주장의 조건에 맞도록 함을 비유하는 한자어가 견강부회이다. 후안무치는 낯이 두꺼워 부끄러움이 없다라는 뜻으로 뻔뻔스러워 부끄러워 할 줄 모르는 것은 말한다.똑같은 이슈를 두고, 똑같은 국감증인의 말을 두고 여야가 자기들 입장에 맞게 견강부회하고 있다. 그럴 정도로 부끄러움 없이 뻔뻔하다보니 갈수록 얼굴은 두꺼워지고 있다. 국회 상임위원장과 상임위원이 감사 도중에 주먹다짐 일보직전까지 가는 일까지 벌어졌다. 고성에 삿대질은 물론이고 의사봉까지 내동댕이치기까지 했다. 그러고 나서도 서로 사과하기는커녕 유감표명도 없었다. 낯 두꺼운 일은 그들이 했는데 왜 보고 있는 국민들이 부끄러워해야 하는지.맹자는 인간의 본성을 네가지 마음씨로 설명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인 측은지심(惻隱之心), 부끄러워하는 마음인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할 줄 아는 마음인 사양지심(辭讓之心),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인 시비지심(是非之心)이다. 이 중 수오지심은 자신이 착하지 않음을 부끄러워하고 남이 착하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이다.사실 인간이 짐승과 구분되는 점 중 하나가 부끄러워하는 마음이다. 부끄러움은 사람만이 가진 감정이다. 남우세스러운 일을 저지르고 나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걸 국회가 나서서 보여줘서 안타까울 뿐이다. 욕설에 막말에 후안무치한건 그들인데 왜 보고 있는 국민들이 부끄러워해야 하나.얼마 전에 나온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지’(이주연 저)라는 책에선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인 염치가 결정적인 순간마다 사회와 공동체가 최악으로 치닫지 않도록 지켜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사회를 지탱해온 염치마저 없어진 듯하다. 경제적으로는 갈수록 살만한 세상이 돼가고 있지만 부끄러움을 모르는 몰염치한 사람들은 오히려 늘어나고 있어서일 게다.‘염치 불구하고’라고 흔히 쓰는 말은 ‘염치 불고(不顧)하고’의 잘못된 표현이다. 불고(不顧)는 돌아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즉, 염치를 돌아보지 않는다는 건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말이다. 돌아보면 염치 불고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이젠 뉴스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공식처럼 사용하는 말이 있다. 주로 권력을 가진 자들이 염치 불고하고 하는 말이다. 먼저 어떤 의혹이 제기되면 “가짜 뉴스”라고 주장한다. 의혹이 수사 과정에서 드러나면 “재판에서 밝히겠다”고 하고, 법원 판결이 난 후에는 “대법원의 판단을 구하겠다”고 한다. 대법원의 판단 후에도 할 말은 있다. “역사가 증명할 것”이라고 한다.하긴 염치없는 정도를 넘어 후안무치한 이들에게 맹자의 수오지심을 이야기해봤자 쇠귀에 경 읽기이다. 벼룩도 낯짝이 있고 빈대도 콧등이 있고 미꾸라지도 백통이 있다고 했다. 아주 작은 벼룩에게도 양심은 있다는데 부끄러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 너무 많다. 대부분 지도층 인사들이다. 이들에게 더욱 요구되는 게 염치고 부끄러움이다. 그런데 후안무치한 이들을 보고 부끄러워하는 건 오히려 일반 국민들이다. 이젠 국민들도 부끄러움에 대해 갈수록 무감각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마음 한 구석 수오지심은 붙들고 있어야 건강한 사회다.욕망을 주체할 수 없는 사람일수록 부끄러움을 모른다. 권력, 재물, 명예에 대한 집착이 강해질수록 수오지심은 없어진다. 이들에게 맹자의 말을 들려주고 싶다. 무수오지심 비인야(無羞惡之心 非人也). 자신의 착하지 않고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갈수록 낯짝 두꺼워지고 있는, 지도층이라고 폼 잡는 그들에게 물어본다. 너는 사람인가. 그러면서 돌아본다. 나는 어떤가.박운석(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

삼성의 창업과 그 수성

오철환객원논설위원 삼성 이병철 창업자는 1938년 3월1일 대구 인교동에서 삼성상회를 열었다. 마산에서 곡물상을 하다가 실패했으나 이에 굴하지 않고 다시 도전한 것이다. 이병철 회장은 인재를 가장 중시했다. 의심이 가는 사람은 애초 쓰지 않았고 일단 믿고 사람을 쓰면 의심하지 않고 과감하게 맡겼다. 와세다대학 시절 사귄 친구 이순근을 삼성상회 지배인으로 발탁해 경영 일체를 일임한 일화는 그 실천이었다. 이순근 지배인은 삼성상회를 반석 위에 올려놓음으로서 그 신뢰에 보답했다. 이러한 인재중심경영은 시종일관 지켜졌다.삼성상회가 순풍에 돛단 듯 번창하자 이병철 회장은 그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시도했다. 양조업에 진출해 대박을 치면서 손꼽히는 부자가 된 것이다. 해방이 되자 사업보국이란 측면에서 새로운 사업을 모색했다. 1954년 대구에서 삼성의 모기업이라 할 수 있는 제일모직을 설립했다. 돈병철로 불리며 거부의 대명사가 됐으나 그의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1969년 삼성전자를 설립해 전자산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금성사가 선도기업으로 국내 가전시장을 장악한 상태라 삼성의 뒤늦은 전자산업 진출은 무모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병철 회장의 성공은 늦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을 입증해준 셈이다.이건희 회장은 창업자의 3남이지만 1987년 삼성그룹의 후계자로 등극했다. 장남과 차남의 하극상에 힘입어 어부지리로 후계자가 된 점도 있었다. 이건희 회장은 취임사에서 ‘초일류기업’이란 뚜렷한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삼성의 목표와 진로를 공개적으로 명확하게 밝혔다. 이는 회장으로서의 자격과 실력을 맛보기로 살짝 보여준 터였다. 아울러 삼성창업자의 인재를 보는 안목에 기대를 갖게끔 하는 단서로 작용했다.‘자신부터 바꾸라.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는 말로 집약된 혁신경영은 1993년의 신경영대장정으로 나타났다. ‘초일류기업’이란 비전을 달성하기위해 뼈를 깎는 혁신을 시작한 것이다. 혁신하지 않으면 초일류는커녕 망할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 근 두 달 이상 임직원을 대상으로 수십 차례에 걸쳐 강연을 진행했다. 경쟁기업의 장점을 벤치마킹하고 그를 통해 청출어람의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반도체, 휴대폰, TV는 세계 일등으로 올라섰다. 위기를 먼저 절감하고 대응한 덕분에 기회를 잡은 것이다.‘양보다 질’이라는 품질경영은 혁신의 또 다른 콘텐츠다. 1995년 구미사업장의 ‘애니콜 화형식’에서 휴대폰, 팩시밀리 등 불량품 15만여 개를 부수고 불태웠다. 500억 원 상당 제품들이 연기로 사라졌다. 이 놀라운 퍼포먼스는 삼성브랜드를 최고 품질을 가진 일등제품으로 끌어올린 상징적 이벤트로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휴대폰의 국내시장점유율이 올라가고 세계시장 공략에 성공한 밑바닥에 이건희표 품질경영이 깔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삼성전자는 1988년에야 휴대폰 사업에 진출했다. 이 회장은 “한 사람이 휴대폰 1대를 보유하는 시대가 온다”며 무선단말기를 삼성전자의 미래사업으로 선정했다. 그의 예측대로 이제 거의 모든 사람이 스마트폰을 가지고 생활하는 세상이 됐고 스마트폰은 삼성의 주력상품으로 세계 정상에 우뚝 섰다. 이러한 성과는 그의 뛰어난 통찰력과 남다른 예지력이 낳은 결실이다.이 회장은 인문학과 디자인의 중요성도 일찌감치 간파했다. 인문적 소양을 가진 인재와 뛰어난 디자이너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삼성의 스마트폰과 컬러텔레비전이 항상 한발 앞서가는 디자인과 콘텐츠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도 세련된 디자인 때문이기도 하려니와 그 속에 스며있는 인간존중의 정신 때문이기도 하다. 미래사회엔 문화가 경쟁력이라는 그의 예언도 현실이 됐다. 방탄소년단의 경이로운 활약상을 보며 미래를 읽는 그의 눈에 그저 신통방통해 할 뿐이다.삼성임직원은 50만 명을 넘어섰다. 이 회장의 리더십이 50여만 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간접적인 전후방연관효과까지 감안하면 수백만 명을 먹여 살렸다. 한 명의 천재가 전 인류를 먹여 살리는 시대를 예고하는 전주곡이다. 이병철 회장이 창업에 성공한 기업가라면 이건희 회장은 수성에 성공한 기업가다. 수성이 창업보다 어렵다고 한다. 이 회장은 수성을 넘어서서 세계 초일류기업이란 찬란한 금자탑을 쌓아올린 걸출한 위인이다. 그도 인간인 이상 그 허물이 없을 수 없다. 그 공에 비하면 그 허물은 깃털처럼 가볍다. 가벼운 허물을 두고 3류 행정과 4류 정치가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 이 회장은 비록 떠났지만 제 갈 길을 잘 가도록 삼성을 힘껏 응원한다.

사모곡/이상진

사철의 빛살들을/뜨락 가득 쓸어 담아//생인손 앓듯 걸어오신 구순의 긴 여정을//이제는/내려놓으소서/벽오동 푸른 그늘에//무명베 오지랖에/빈 마음 채우시며//앞뒤 들 사래마다 피와 살 비벼 넣으신//가없는/모정의 세월/뼈에 새겨 아픕니다//어머니 불러보면 가슴 가득 메어 오고//앓아눕는 신열인 양 몸조차 가눌 길 없어//나 오늘/엄동의 설야/뜬눈으로 지샙니다「대구시조 제23호(2019, 그루)」이상진 시인은 전남 장흥에서 출생해 1990년 시조문학 추천완료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남도 가는 길」이 있다. 신앙인으로서 믿음을 고백하는 시편들을 적지 않게 썼다.우리는 어릴 적에는 엄마라고 부르다가 성장하면서 어머니라고 부른다. 어머니라는 호칭은 백만 번을 불러도 그리운 이름이다. 살면서 한두 번씩 속으로 어머니를 부른다. 살아계실 때는 말할 것도 없고 돌아가시고 나면 더욱 간절히 어머니를 찾을 때가 있다. 외롭고 쓸쓸할 때도 그렇고 기쁜 일이 있을 때도 그러하다. 오래 전 어머니는 새벽에 일어나시면 머리를 감고 나서 빗으로 가운데 가르마를 탄 후 곱게 빗으시고는 했다. 잠결에 그런 장면을 엿보면서 또 하루가 어머니와 함께 시작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사모곡’은 그런 마음을 성심껏 담은 시조다. 그래서 화자는 사철의 빛살들을 뜨락 가득 쓸어 담아 생인손 앓듯 걸어오신 구순의 긴 여정을 이제는 내려놓으시기를 권한다. 벽오동 푸른 그늘이 넉넉하니 그곳에 다 내려놓기를 간절히 바란다. 무명베 오지랖에 빈 마음 채우시며 앞뒤 들 사래마다 피와 살 비벼 넣으신 가없는 모정의 세월이 뼈에 새겨 아프기 때문이다. 어머니, 하고 불러보면 가슴 가득 메어 오고 앓아눕는 신열인 양 몸조차 가눌 길 없기에 엄동의 설야를 뜬눈으로 지새우고 있다. 아들의 마음이 곡진하기 이를 데 없다.그는 또 ‘토기장이’라는 시편에서 피조물로서 신앙고백을 하고 있다. 귀하고 천한 그릇이 쓰임새 각각 달라 큰 그릇 작은 그릇 모두 도공의 손에 달려 있음을 증언한다. 그것은 내 의지와는 전혀 관계없는 일이라는 점을 깊이 자각한 것이다. 온전히 토기장이의 뜻에 있다고 믿는다. 이쯤에서 토기장이가 누구인지를 짐작할 수 있겠다. 녹로를 발로 밟아 손으로 빚는 그릇은 빚을 때 목적에 따라 다른 모양이 나온다. 구운 뒤 등이 터진 토기는 깨뜨려서 버린다. 그러면서 내 길을 인도하시는 그분만이 붉게도 푸르게도 옷을 입히는 도공의 손을 아신다면서 나는 진흙이니 어찌 토기장이 마음을 다 헤아릴 수 있겠는가 하고 노래하고 있다.그는 어머니를 그리는 마음을 노래한 ‘사모곡’을 통해 심금을 울리면서 우리 모두에게 어머니를 외쳐 부르게 한다. 돌아보면 어머니로부터 받은 가르침과 칭찬과 꾸지람이 생각나고 가슴이 뭉클해져서 어머니를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추억속의 어머니는 딸이라면 자신의 현재 모습을 통해 어머니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점점 원하든 원하지 아니 하든 아들은 아버지를, 딸은 어머니를 닮게 마련이다. 만추의 계절에 쓸쓸함을 이기기 위해서라도 더 자주 어머니를 불러볼 일이다. 낳으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오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없어라, 라는 양주동 작시 ‘어머니 마음’을 조용히 읊조려 본다.‘사모곡’과 함께 또 하루를 힘차게 시작했으면 좋겠다. 이정환(시조 시인)

소싸움/ 황인동

자 봐라!// 수놈이면 뭐니 뭐니 해도 힘인 기라/ 돈이니 명예니 해도 힘이 제일인 기라/ 허벅지에 불끈거리는 힘 좀 봐라/ 뿔따구에 확 치솟는 수놈의 힘 좀 봐라/ 소싸움은/ 잔머리 대결이 아니라/ 오래 되새김질한 질긴 힘인 기라/ 봐라, 저 싸움에 도취되어 출렁이는 파도들!/ 저 싸움 어디에 비겁함이 묻었느냐/ 저 싸움 어디에 학연지연이 있느냐/ 뿔따구가 확 치솟을 땐/ 나도 불의와 한 판 붙고 싶다「대구문협대표작선집1」 (대구문인협회, 2013)소싸움은 싸움소끼리 다투는 힘겨루기다. 관중이 보는 가운데 훈련된 싸움소끼리 싸움을 붙여 승부를 겨루는 전통 민속놀이다. 사람이 소와 싸우는 투우와는 결이 다르다. 싸움에서 이긴 소는 몸값이 오르고 소 주인은 상금을 받는다. 관중은 돈을 걸고 도박을 하는 경우가 많다. 소싸움을 민속놀이라 하지만 흰옷을 입고 가무를 즐기며 농경생활을 했던 우리 민족이 온순한 초식동물인 소를 서로 싸우게 하고 이를 즐겼다는 사실은 특기할 만하다.소는 농가의 재산목록 1호로 꼽힐 정도로 소중한 재산일 뿐만 아니라 농사일에 없어선 안 될 필수불가결한 가축이었다. 소가 출산을 하면 집안의 큰 경사였다. 소는 성질이 유순하여 힘없는 애를 공격하는 사고가 일어나지 않고 소를 풀밭에 함께 풀어놓아도 서로 싸우는 일이 거의 없다. 매미채를 만들기 위해 꼬리에서 털을 뽑아가도 눈만 끔벅일 뿐 아픔을 참아주는 착한 친구다. 소 돌보는 일은 애라고 해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그래선지 소 풀 먹이는 일은 시골 농가의 어린이에게 보편적인 일과로 통했다. 소싸움이 널리 행해지지 않은 것은 당연한 귀결일 수 있고 어쩌면 그 존재 자체만으로 의외의 민속일 수 있는 까닭이다.싸움의 승패를 좌우하는 건 힘이다. 자연 상태에서 만물은 힘에 의해 서열과 질서가 정해진다. 권력이나 명예 또는 금전으로 힘을 얻는 것이 아니라 힘으로 권력이나 명예 또는 금전을 획득한다. 힘의 원천이 시대에 따라 변천하여 왔지만 힘은 약육강식의 세계를 정리하는 기준으로 변함이 없다. 신체의 완력에서 머리의 지식으로 끊임없이 그 원천이 진화하긴 했지만 힘은 남보다 더 많은 욕망을 얻는 정당한 근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소싸움은 인류의 원시적 풍경을 재현한다. 불끈거리는 허벅지 근육과 확 치받는 뿔따구는 단순하고 화끈한 힘의 속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발가벗고 산야를 누비며 사냥을 하던 까마득한 원시의 추억이 손짓한다. 싸움은 잔머리나 꼼수가 아니라 정당한 대결이라는 단순한 진리를 일깨워준다. 꾸준히 단련된 근육에서 나오는 힘만이 싸움을 승리로 이끈다는 사실에 매료된다. 소싸움은 힘이 무엇이며 또 어떠해야 하는지를 웅변하고 있다. 출렁이는 파도처럼 열광하고 흥분할 따름이다.소싸움엔 인간의 속임수나 비겁함 따윈 없다. 격렬한 승부에 출신이나 성분이 끼어들 여지가 전혀 없다. 주인의 지위에 흔들리지 않고 뇌물도 통하지 않는다. 상금을 두고 거래를 하거나 협상을 벌이지도 않는다. 몸과 몸, 뿔과 뿔을 부딪치며 정직하게 힘만으로 자웅을 겨룰 뿐이다. 솔직담백하고 정정당당한 힘의 경연이 소싸움의 매력 포인트다. 인간의 약삭빠른 삶 속에서 찾아보기 힘든 원초적 투쟁모습이 꽉 막힌 답답한 가슴을 확 뚫어주는 것이다. 스트레스를 말끔히 날려 보내고 카타르시스를 맛볼 기회를 제공한다. ‘뿔따구가 확 치솟을 땐 나도 불의와 한 판 붙고 싶다.’오철환(문인)

시·도 예산정책협의회 가시적 성과 이어져야

대구시와 경북도는 다음달 5일 ‘국민의힘’과 대구시청에서 시·도 예산정책협의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11월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본격 가동을 앞두고 지역의 현안과 국비 예산 확보를 위한 마지막 조율 자리다.협의회에는 주호영 원내대표, 이종배 정책위의장, 당 소속 예결위원, 지역출신 국회의원 전원이 참석한다. 권영진 대구시장, 이철우 경북도지사도 함께 한다.대구·경북은 지역발전 사업에 투입할 수 있는 뚜렷한 세수가 없다. 때문에 국비 예산 확보가 지역 발전을 가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견기업 몇개 유치하는 것보다 당장 효과는 크다. 국비 지원이 없으면 지역 발전을 위한 대규모 사업은 꿈도 꾸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대구·경북은 야당인 국민의힘의 본거지다. 다른 지역에 비해 국비 확보에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입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푸념만 늘어놓을 수는 없다. 지역이 처한 현실이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지역 정치권은 말로만 대구·경북을 내세우지 말고 요즘같이 어려울 때 지역현안에 대한 맞춤형 예산 확보로 답해야 한다. 정책실현 지원을 통해 자신을 선택해준 지역민에 보답해야 한다.이번 협의회에서 대구시는 대경권 감염병전문병원 추가설립, 엑스코선(도시철도) 예타 심의통과 협조, 서대구 하폐수처리장 지하화 국비지원 등 5개 주요 현안사업 협조를 요청한다. 또 첨복단지 내 제약스마트팩토리 플랫폼 구축 등 10개 핵심사업에 대해서는 국회 심의과정에서 예산이 추가 증액돼야 한다는 건의를 전달한다.경북도는 동해선 전철화 사업, 남부 내륙철도(김천~거제), 구미 강소연구개발특구 선정 등의 차질없는 추진을 건의할 계획이다. 또 영일만 횡단고속도로, 혁신원자력 기술연구원 등 현안에 대한 지원도 요청한다.자치단체 간 국비 확보는 총성없는 전쟁이다. 손놓고 있는 지자체는 없다. 대구시와 경북도가 국비를 확보하고 현안을 해결하려면 치밀한 준비를 해야 한다. 거부할 수 없는 참신한 아이디어와 논리로 무장해 중앙정부와 국회의원들을 설득해야 한다. 그것이 어려운 시기 공직자들이 지역민을 위하는 길이다 .동시에 지역 정치권은 지역민의 입장에서 애로 사항을 청취해 예산 심의와 법안 심사에 적극 반영해야 한다. 민생 돌봄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예산정책 방안 강구는 너무나 당연하다. 그것은 지역 국회의원이 갖춰야 할 능력 중 하나다.코로나19로 지역경제가 붕괴 직전이다. 국비 확보는 지역경제 회생의 첫 걸음이다. 시·도 예산정책협의회 논의가 가시적 성과로 이어지기 바란다.

‘코로나 일상’ 속의 독서문화운동

김상진수성구립용학도서관 관장‘코로나 이후는 없다. 코로나와 함께 사는 시대를 준비하라.’카이스트 미래전략연구센터가 최근 발간한 ‘카이스트 미래전략 2021’을 홍보하는 문구다. 다르게 표현하면 ‘포스트(post) 코로나는 없다. 위드(with) 코로나 시대를 준비하라’다. 다음해의 경영전략을 소개하는 이 책은 매년 시리즈로 간행되고 있다. 올해는 ‘위드 코로나 : 달라진 세상, 새로운 기회’란 부제를 달고 있으며, 지난해 발간된 ‘카이스트 미래전략 2020’의 부제는 ‘기술과 인간의 만남’이었다. 부제만 살펴봐도 코로나19가 세상을 바꾼 것을 알 수 있다.지난해 12월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19 사태가 벌써 11개월째로 접어들면서 ‘위드 코로나 시대’란 말은 일상화됐다. 이 말은 코로나19를 예방하면서 일상생활을 해야 하는 시기를 뜻한다. 국립국어원은 이를 대체할 우리말로 ‘코로나 일상’을 선정하기도 했다. 코로나 일상에서는 감염병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가운데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비대면 상황이 요구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인류는 이때껏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많은 변화를 경험했다.모든 시민을 대상으로 지식정보를 제공하는 공공도서관도 예외가 아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인근 지역에서 발생하면 문을 닫았다가 상황이 호전되면 문을 열기를 반복했다. 문을 열 때는 방역을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준수해야 했다. 문을 닫은 채 비대면 상황을 유지해야 할 때도 시민들의 일상을 위해 온라인 소통에 집중했다. 오프라인으로 진행되던 강연은 영상 콘텐츠로 제작돼 유튜브와 밴드 등 온라인 매체를 통해 시민들에게 제공됐다. 강연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줌(zoom) 등 쌍방향 소통이 가능한 화상회의 시스템도 활용됐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는 생각할 수도 없었던 변화가 수개월 만에 일어났다.지난 16일부터 18일까지 3일간의 공식일정을 마친 ‘2020 대구수성 한국지역도서전’도 마찬가지다. 당초에는 지난 5월 수성못 상화동산에서 열리는 대면 전시회로 기획됐으나, 대구를 중심으로 코로나19 사태가 확산되면서 행사 일정이 10월로 연기됐다. 그 뒤 상황이 호전되면서 대면 및 비대면 행사를 병행하는 것으로 계획이 바뀌었으나, 수도권을 중심으로 코로나19 사태가 재확산되는 바람에 비대면 행사로 궤도가 전면 수정됐다. 모든 프로그램은 영상 콘텐츠로 제작돼 온라인 플랫폼과 유튜브에 탑재됐다. 개막행사와 지역출판 심포지엄, 도서관을 찾은 지역 저자 등은 유튜브 라이브로 실시간 생중계됐다.코로나 일상 속의 대구수성 한국지역도서전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위드 코로나 시대, 책축제 및 독서문화축제의 뉴노멀을 제시하기로 한 것이다. 사흘간의 이벤트가 아니라 내년도 한국지역도서전까지, 구체적으로 말하면 강원도 춘천에서 열릴 2021 한국지역도서전까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1년간 지역도서전을 유지한다. 공식일정 이외에 기념도서와 자료집은 물론, 백서까지 온라인 플랫폼에 탑재한다. 메인 화면도 일부 바뀐다. 앞으로는 지속 가능한 독서문화운동을 위한 플랫폼으로 개편될 예정이다.이는 단순히 오프라인으로 진행되던 지역도서전을 온라인에 옮겨둔 정도가 아니었다. 오프라인 행사로 진행됐을 경우 사흘간의 전시와 체험 등으로 대구수성 한국지역도서전은 막을 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온라인 플랫폼을 구성함으로써 각종 프로그램은 영상 콘텐츠로 영원히 기록되게 됐다. 특히 대구의 문화 정체성을 밝힌 ‘대구, 출판문화의 거점’이란 제목의 수성특별전I과 함께, 활 든 선비로 콘셉트를 잡은 계동 전경창 선생의 선비정신을 다룬 수성특별전II ‘수성, 대구 유학의 뿌리’는 불의에 저항하는 대구정신을 조명하는 영상 콘텐츠로 활용도를 높이게 됐다.비대면 접속의 활성화로 ‘디지털 대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이 가속화되고 있다. 디지털 대전환은 디지털 기술을 사회 전반에 적용함으로써 전통적인 사회구조를 혁신시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 컴퓨팅,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솔루션 등 정보통신기술(ICT)을 플랫폼으로 구축해 전통적인 운영방식과 서비스 등을 혁신하는 것을 의미한다. 성공적인 디지털 대전환을 통해 4차 산업혁명이 실현된다. 요즘 코로나19 사태로 인류가 느끼는 변화는 디지털 대전환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이제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코로나 일상을 맞이하고 있다. 코로나 탓만 할 것이 아니라, 기존 생각의 틀을 완전히 바꿈으로써 변화된 세상에 적응해야 한다. 디지털 대전환을 대하는 자세도 마찬가지다. 아날로그 세대는 디지털 대전환을 단순히 도구의 변환으로만 생각하지만, 그 정도가 아니다. 삶의 방식이 바뀐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성주 사드, 호국의 방패인가 애물단지인가

성주에 사드를 배치한지 3년이 지났지만 장비 반입 때마다 정부와 주민이 충돌을 반복하고 있다. 뾰족한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갈등의 골만 깊어지고 있다. 사드 배치 당시 약속한 정부 지원책은 하나도 지켜진 것이 없다. 북 미사일을 막기 위한 방패용으로 들여놓은 무기가 애물단지가 됐다. 정부는 해결할 의지를 그다지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이대로 둬선 안 된다. 해결책을 기대한다. 국방부는 지난 22일 경북 성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기지에 공사 장비를 반입했다. 낡은 병영시설의 리모델링 공사를 위한 공사 자재와 장비를 들여놓았다. 덤프트럭 등 31대에 모래와 자갈 및 포클레인 등 장비를 옮겼다. 국방부는 “(사드) 성능 개량과는 관련이 없고 공사 장비·자재와 장병들의 생활 물자를 반입한 것”이라고 했다.사드기지 공사를 반대하는 주민 70여 명이 기지 입구에서 “사드 가고 평화 온다”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경찰의 강제 해산 조치에 저항했다. 경찰은 700여 명의 경력을 동원, 시위 주민들을 강제 해산시켰다. 앞서 지난 5월에도 주민 등 100여 명이 장비 반입 저지에 나서는 등 2017년 4월 사드 반입 이후 3년동안 해마다 시위와 강제해산, 장비 반입 완료 등을 되풀이하는 이상한 모습만 보이고 있다. 주민과 사드 반대 단체들은 국방부가 자재 반입 명분으로 물자를 비축, 사드 못 박기에 들어가는 것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정작 정부는 중국의 반발을 우려해 정식 배치를 하지 않고 있는 모습이다. 환경영향 평가를 빌미로 임시 배치라는 불안전한 상태를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성주군도 답답하기 짝이 없다. 주민 반발을 달래가며 울며 겨자 먹기 격으로 사드를 배치했다. 대신 대구-성주 간 경전철 건설과 전통시장 활성화 등 16개 현안 사업에 대해 정부가 지원해 주는 조건으로 타협을 봤다. 하지만 3년이 지난 현재까지 예산이 확보된 것은 대구-성주간 국도 교차로 개선 등 5개의 소규모 예산 사업이 고작이다. 이마저도 사드 배치 이전부터 추진해 온 사업이어서 사드 배치에 따른 보상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래저래 성주군과 주민들만 속앓이를 하고 있다. 국방부는 더 이상 중국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북 미사일을 막는 사드가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한다는 대명제 아래 배치를 정당화해야 한다. 이미 중국의 사드 보복 조치로 우리는 손해를 볼 만큼 봤다. 이제 사드 배치를 확정하고 지역민들과 약속한 현안 사업을 지키는 일을 시행할 때다. 정부는 원칙대로 추진하라.

민낯 드러난 ‘탈원전’ 전면 재검토를

문재인 정부 탈원전 정책의 민낯이 드러났다. 월성원전 1호기 폐쇄와 관련한 감사원 감사결과는 힘으로 밀어붙인 탈원전의 한 단면이다. 감사원은 월성 1호기 폐쇄결정 과정에서 경제성을 지나치게 저평가했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폐쇄의 가장 큰 이유인 경제성이 조작됐다는 것이다. 탈원전은 그 동안 국민적 공감대가 결여됐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무리한 추진 과정이 이번 감사를 통해 드러난 것이다. 월성 1호기는 예정보다 3년이나 앞서 영구 폐쇄됐다. 탈원전을 본격화하기 위해 멀쩡한 원전을 고철로 만든 것에 다름 아니다. 원전을 한국처럼 40년도 쓰지않고 폐기하는 국가는 찾기 어렵다. 미국의 원전 수명은 한국의 2배가 넘는다고 한다. ---폐쇄 때마다 친원전-반원전 대립 가능성탈원전 정책은 월성 1호기 감사결과 발표 이후 신뢰기반 자체가 더욱 흔들릴 수밖에 없다. 2030년까지 설계수명이 만료되는 국내 원전은 총 10기(경북 5기)에 이른다. 정부는 탈원전 정책에 따라 수명 연장없이 폐쇄해 나갈 방침이다. 그때마다 ‘친원전’과 ‘반원전’ 국민의 갈등과 대립이 되풀이 될 가능성이 높다.탈원전은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돼 있다.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는 대통령 공약에 맞추기 위해 나온 무리수다. 산자부, 한수원 등의 경제성 조작과 은폐 시도의 몸통을 밝혀내야 한다. 감사는 끝났지만 국민적 의혹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경북은 탈원전의 최대 피해지역이다. 국가 발전산업을 선도해 왔다는 자부심이 한순간 바닥으로 추락했다. 원전산업 발전을 위해 건설부지를 내주며 협조한 공로는 간 곳이 없다. 정부가 지정한 ‘기피산업’의 집합처가 됐다. 대한민국 원전의 메카가 애물단지를 모아놓은 지역으로 전락한 것이다. 경제적 타격은 말할 것도 없다. 월성 1호기 가동 중지에 따른 지역 고용감소는 연인원 32만 명에 달한다. 피해 금액은 2조8천억 원으로 추산됐다. 경북에는 총 24기의 국내 원전 중 절반 가까운 11기가 가동 중이다. 또 2기(울진 신한울 1·2호기)는 곧 완공 예정이다. 그러나 4기(신한울 3·4호기, 영덕 천지 1·2호기)는 건설이 중지되거나 아예 백지화됐다. 감사원 감사 결과 발표 이후 경북도, 경주시 등 관련 지자체가 긴급 대응팀을 구성해 대책 마련에 나섰다. 월성 1호기는 이미 폐쇄 절차가 상당히 진행됐고, 10년 연장 수명이 2022년 만료된다. 정부 방침이 아니더라도 재가동하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우선은 지역과 지역민이 입은 피해보전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자신들을 이용만 했다는 경주시민의 절규가 더 이상 이어지지 않게 해야 한다. 정부는 월성 1호기 조기 폐쇄에 따른 피해 보전을 외면해선 안된다. 정치권도 피해보상 특별법 제정을 서둘러야 한다. ---신한울 3·4호기 건설재개가 당면 과제울진 신한울 3·4호기의 건설재개도 시급하다. 건설재개를 논의할 제대로 된 공론화 과정을 요구해야 한다. 공사중지 결정 과정에 월성 1호기와 같은 외압이 있었는지도 밝혀내야 한다.신한울 3·4호기는 공정률 10%에서 중지됐다. 두산중공업이 원자로·증기 발생기 등의 제작에 착수했다. 건설 중단이 확정되면 1조 원 이상의 매몰비용이 발생한다. 신한울 3·4호기, 영덕 천지 1·2호기 건설이 모두 백지화되면 지역의 피해는 5조 원에 이를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탈원전 이후 정부가 추진한 원전해체연구소 건립에서도 경북은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다. 본원은 부산·울산 접경지역에 건립돼 경수로를 취급하게 된다. 경주에는 중수로를 취급하는 분원이 건설될 뿐이다. 국내 원전은 경수로가 주종이다. 경주 분원의 취급 대상인 중수로는 4기(월성 1~4호기)에 불과하다. 원전해체 산업은 글로벌 시장 선점을 겨냥해 육성된다. 하지만 활성화 시기와 물량 자체가 불확실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탈원전은 많은 문제점이 드러났다. 우리의 원전산업은 세계적 경쟁력을 지니고 있다. 탈원전이 올바른 선택이 아니라는 다수 전문가들의 주장을 외면해선 안된다. 월성 1호기 감사 결과는 탈원전 정책을 전면 재검토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애도/ 루이스 글릭

당신이 갑자기 죽은 후,/ 그동안 전혀 의견 일치가 되지 않던 친구들이/ 당신의 사람됨에 대해 동의한다./ 실내에 모인 가수들이 예행연습을 하듯/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당신은 공정하고 친절했으며 운 좋은 삶을 살았다고./ 박자나 화음은 맞지 않지만 그들은/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흘리는 눈물은 진실하다./ 다행히 당신은 죽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공포에 사로잡혔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이 지나고/ 조문객들이 눈물을 닦으며 줄지어 나가기 시작하면,/ 왜냐하면 그런 날에는/ 전통 의식에 갇혀 있다가 밖으로 나오면/ 9월의 늦은 오후인데도/ 햇빛이 놀랍도록 눈부시기 때문에,/ 사람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하는 그때/ 당신은 갑자기/ 고통스러울 만큼 격렬한 질투를 느낄 것이다./ 살아 있는 당신의 친구들은 서로 포옹하며/ 길에 서서 잠시 얘기를 주고받는다./ 해는 뉘엿뉘엿 지고 저녁 산들바람이/ 여인들의 스카프를 헝클어뜨린다./ 이것이, 바로 이것이/ ‘운 좋은 삶’의 의미이므로./ 지금 이 순간 살아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므로.「시로 납치하다」 (더숲, 류시화 역, 2018) 애도는 사람의 죽음을 안타까워하고 슬퍼한다는 의미다. 사망소식을 접할 때 자동으로 나오는 정형화된 말이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이다. SNS에 부고가 올라오면 똑같은 애도문구가 줄줄이 이어진다. 그런 광경을 보고 그냥 넘어가긴 꺼림칙하다.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댓글을 달아주지 않으면 뭔가 찜찜하다. 허나 안타까워하고 슬퍼하는 마음이 조금이나마 있어 명복을 빌어주는 것인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조문객이 많이 몰리는 장례식장이라고 해서 고인이 생전에 잘 살았다는 증거는 아닌 듯하다. 조화가 빽빽이 늘어선 상가라고 해서 애도마저 유달리 넘쳐 뵈진 않기 때문이다. 정승 댁 개가 죽으면 문전성시를 이루고 정승이 죽으면 파리만 날린다는 속담이 생뚱맞다고 생각되진 않는다. 조문행렬이 고인을 애도하기 위한 줄이 아니라 상주에게 눈도장 찍기 위한 처세의식이라고 말한다면 조문객을 폄훼한 부적절한 언사이거나 지나치게 시니컬한 시각인 걸까. 아무래도 진정한 애도는 양보다는 질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자신의 죽음을 진정 슬퍼해주고 명복을 빌어주는 사람이 한명이라도 있다면 인생을 헛되이 살지 않았으리니. 죽고 나면 다들 칭찬에 너그러워진다. 좋게 이야기하는 것이 연기가 아니다. 존재가 없으므로 경쟁상대도 아니고 질투나 시기할 필요도 없다. 죽은 다음 아무리 좋은 평가를 받아도 살아서 돌아오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안다. 눈물은 죽음 앞에 오는 조건반사이거나 두려움일 수 있지만 그렇다고 눈물을 흘리는 것이 거짓은 아니다. 고인이 살아서 그 모습을 봤다면 의외의 상황에 겁먹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죽은 자는 말이 없다. 하늘가에는 뭉게구름이 떠가고 파란하늘엔 햇살이 빛난다. 코스모스가 길가에서 화사하게 고개를 들고 지나가던 연인이 그 앞에 멈춰 선다. 매일 일어나는 일상이 고인에겐 다시 누릴 수 없는 환상이다. 해가 지고 바람이 불어도 좋다. 서로 포옹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평범한 모습이 부럽다. 억울하고 질투를 느낄 일이다. 그냥 숨 쉬고 살아 움직이는 것이 ‘운 좋은 삶’이라는 의미다. 당신에게 가장 ‘운 좋은 일’은 살아있다는 사실이고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때는 지금이다. 노벨문학상을 받는 시인이라고 특별한 정서를 가진 것은 아닌 모양이다. 오철환(문인)

인생에서 성공하는 것은/ 정명희

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화살나무 이파리가 빨갛게 물들었다. 길손에게는 가을이 깊어가니 순간을 잊지 말고 잘 살아가라고 알리는 것 같다. 내려가는 기온에 빨리 가을 색으로 물들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꽃과 나무들,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이 지났으니 이제 늦가을로 접어든다. 울긋불긋 물들어 흩날리는 단풍잎을 따라 마음에도 살랑살랑 바람이 이는 날, 맑게 갠 하늘에 따스한 햇볕을 등에 받으며 출근하다가 잠시 순간의 평온을 느껴본다.세상이 아무리 야단법석을 해대어도, 코로나가 제아무리 끈질기게 이어져도, 자연의 시계는 늘 흔들림 없이 째깍째깍 가고 있지 않던가. 봄이 온 줄도 모르는 우리를 위해 꽃도 활짝 피어났고 뜨거운 햇살로 여름을 느끼게 했고 이젠 꽃집마다 탐스러운 국화 화분이 줄지어 서 있는 가을이 찾아와 우리에게 이 한때 잠시 숨돌려보라고 재촉한다. 국화가 만발한 들판에서 마음껏 들숨 날숨 해가며 가을을 즐기고 싶은 마음은 모두 굴뚝같지 않으랴.시원한 아메리카노를 즐기던 이도 어느새 따뜻한 커피를 선호한다. 커피 잔을 통해 전해오는 따스함을 느껴가며 커피 향을 맡을 수 있는 평화로운 가을을 맞을 수 있다면, 놀랍고 걱정스러운 것 없이 하루를 살아갈 수 있다면, 지금 같은 코로나 시대에는 그것만으로도 행복하지 않겠는가.한 시대를 풍미하던 삼성가의 이건희 회장이 타계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선친인 이병철 회장 타계 후 13일 만에 회장에 취임했다는 이건희 회장, 오랜 숙고 끝에 내놓은 것이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자”로 유명한 ‘신경영 선언’이었다고 하지 않은가. 에세이집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에서 심정을 토로했다. “1987년 회장에 취임하고 나니 막막하기만 했다. 삼성 내부는 긴장감이 없고 내가 제일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92년 여름부터 겨울까지 불면증에 시달렸다. 이대로 가다가는 사업 한두 개를 잃는 것이 아니라 삼성 전체가 사그라들 것 같은 절박한 심정이었다.” 얼마나 답답한 심정이었을까. “마누라·자식 빼곤 다 바꿔라” 외치던 그의 결단으로 지금의 삼성을 만들지 않았던가.세상 참 덧없다고 허전해하는 이들이 많을 것 같다. 건장하게 생활하던 이가 어느 날 갑자기 쓰러졌다. 심폐소생술과 온갖 최신의 의료기술로 소생은 했지만 끝내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수년 병원에서 지내다가 갑자기 저세상으로 가버렸다는 소식을 들으니 백세 시대라고 하는 요즘에 팔순도 못 넘기고 떠난 그의 일생, 아쉬움도 많았을 것 같아 생각이 자꾸만 맴돈다.일전에는 호세 무히카(85) 전 우루과이 대통령이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서민적인 대통령이었던 그를 우루과이 국민들은 “페페”라 불렀다. 그는 특히 대통령답지 않은 청빈한 생활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대통령궁을 노숙자에게 내주고 본인은 원래 살던 농가에서 출퇴근했고, 대통령으로 재직하면서도 화초 키우는 일을 계속했다. 1987년식 폴크스바겐 비틀 자동차를 직접 몰고 다녔고 대통령 월급의 90%를 기부했다. 그가 많은 말을 하지만 결코 국민을 속이지 않는 대통령, 고등학교 졸업장도 없지만 ‘철학자’로 불리는 대통령이라 더 대단하게 느껴진다.그는 명연설가로 기억되기도 한다. “우리는 더 많이 일합니다. 돈 나갈 데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런저런 할부금을 다 갚을 때쯤이면, 인생이 이미 끝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앉아서 일하고 알약으로 불면증을 해소하고 전자기기로 외로움을 견디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계화를 막을 수 없는 것은 우리 생각이 지구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농민의 아들로 태어난 무히카는 좌익 게릴라로 무장 투쟁에 나섰고 군사 독재 시절에는 총 15년간 감옥살이까지 했다고 한다. 그의 고별사가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린다. 85세에 정계를 떠나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증오는 불길입니다. 불타는 사랑은 뭔가를 창조하지만, 증오는 우리를 파괴합니다. 나는 수십 년 동안 내 정원에 증오를 키우지 않았습니다. 미워하면 어리석음에 이르고 객관성을 잃는다는 게 내 삶에서 힘들게 얻은 교훈이기 때문입니다.”증오가 난무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모두가 힘든 이때 사람들은 내 편이 아닌 상대편에 대해서는 쉽게 분노를 표출한다. 정치무대에서 퇴장하는 무히카 전 대통령에게 국민은 “고마워요, 페페”라며 환호했다. 수십 년 동안 정원에 증오는 심지 않았다던 지구 반대편 노정객의 고별사가 예사로 들리지 않는다.‘인생에서 성공하는 것은 이기는 것이 아니라 넘어질 때마다 일어나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라고 그는 말하지 않았던가. 이를 되새기면서 오늘 우리 마음의 정원엔 무엇을 심어볼까.

독감백신 공포…고위험군 잠정 접종 중단을

보건 당국은 독감(인플루엔자)백신에 문제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하지만 접종 후 숨진 사람이 지난 16일부터 7일간 무려 25명에 이르는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정상적 상황이 아니다. 독감백신 공포가 급속 확산되는 것은 당연하다. 숨진 사람들은 인천의 고교생을 제외하면 대부분 고령층이거나 기저질환이 있는 고위험군이다. 보건 당국은 전문가 회의를 거쳐 “백신과 사망의 직접적 연관성이 현재로선 확인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사망자들이 특정 회사의 백신이나 동일한 제조번호 제품을 맞았다면 백신의 문제일 수 있지만 제품의 종류와 지역이 모두 다르다는 것이다.2건 정도에서는 독감백신의 부작용인 아나필락시스(급성 과민반응)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추적조사 결과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전체 예방접종 사업을 중단할 만한 상황은 아니다”고 밝혔다.하지만 국민들의 불안감은 가시지 않는다. 무료 접종 초기 전국 의료기관마다 장사진을 이루던 대기 행렬이 사라졌다. 당국에서는 “예방접종은 특히 고령이나 어린이, 임신부들의 합병증을 방지하기 위해 필요하다”며 “건강이 좋은 날 예약을 한 뒤 접종을 꼭 받으라”고 당부한다.국민들은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다. 짧은 기간동안 백신 접종 후 숨지는 사례가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다. 외지에 살고 있는 자식들이 고령의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접종받지 말라고 만류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영유아를 둔 부모들도 자녀 접종에 확신이 서지 않아 애만 태우는 형국이다.사망자 대부분이 무료 백신을 맞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무료 접종을 기피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보건 당국은 무료 백신과 유료 백신의 차이가 전혀 없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최근 수송과정에서 발생한 백신 상온 보관, 흰색 침전물 등의 사례가 불신을 가중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현 단계에서 가장 급선무는 백신과 사망의 정확한 연관 관계 확인이다. 보건 당국이 부검 등을 통해 숨진 사람들의 사인을 조사하고 있다. 2주 정도가 걸릴 예정이라고 한다. 조사 결과가 나오면 모든 의문이 해소될 것이다.그러나 지금은 한시가 급하다. 원인을 규명하는 사이 희생자가 더 나올 가능성이 크다. 정확한 사인이 규명될 때까지 노령층 등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한 접종만이라도 잠정 중단하는 조치가 필요하다.독감백신 접종의 중요성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국민의 생명과 관련된 사안이다. 효율성만 앞세울 때가 아니다. 보건 당국은 백신과 사망의 인과 관계가 없다는 설명이 국민들을 납득시키지 못한다는 사실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소방관 수당 반환

직장인들에게 수당은 생각하면 참 그렇다. 많이 받을수록 좋은 건 맞는데 그게 내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또 통장에 들어온 걸 보면 당장 기분은 좋지만 제대로 맞게 들어온 건지 왠지 찜찜함이 가시지 않으니 말이다.수당은 사실 기본급의 미비점을 보완한다는 취지로 도입돼 법률에 그 세부 항목 등을 규정해 놓고 있다. 그러나 관련 법도, 그 조항도 워낙 복잡하기에 개인이 이를 제대로 정확하게 알기는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나마 꽤 알더라도 스스로 이를 정확하게 금액으로 산출해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그래서 대다수 직장인에게 수당은 주는 대로 받는 것이고, 그리고 그게 다 맞겠거니 하는 게 현실일 것이다. 현재 진행 중인 국감에서 소방관들의 수당 반환 문제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2011년, 당시 소방관들은 소송을 통해 3년 치 휴일수당을 받았는데, 2019년 10월 대법원에서 이 휴일수당은 초과근무수당과 중복해 받은 것이므로 반환해야 한다고 확정판결했다. 이에 따라 전국의 소방관 1만7천여 명이 이미 받은 휴일수당에다 그 기간의 법정이자 277억 원까지 더한 1천300여억 원을 물어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수당 소송은 반환에까지 이르게 된 사정을 들여다보면 소방관들로서도 억울해할 만한 부분이 적잖이 있을 것 같다. 2009년 일부 지역의 소방공무원들이 휴일에 근무한 수당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며 초과근무수당을 달라고 소속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냈다. 그리고 2011년 1심 재판에서 소방관들이 승소했다. 1심 재판부는 ‘휴일수당과 초과근무수당을 중복해 지급하라’고 선고하며 ‘청구한 금액에 연 5%의 이자율을 더해 지급하고 미지급 시 판결한 날로부터 연 20%의 이자를 더해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당시 이 판결 역시 수당 중복 지급의 적절성에 대한 논란이 있긴 했지만, 어쨌든 그때부터 각 지자체는 서둘러 소송에 참여한 소방관들에게 청구한 금액과 그에 대한 이자를 가지급했다. 문제는 2심에서 생겼다. 2014년 고등법원 재판부는 ‘휴일수당과 초과근무수당의 중복 지급은 할 필요가 없다’며 1심과 정반대의 판결을 내렸다. 그 근거로 재판부는 행정안전부 예규에 나오는 중복지급 불가 규정을 들었다. 이렇게 1, 2심의 판결이 다르게 나오면서 소방 현장에서도, 지자체에서도 혼란이 생기자 소송은 대법원까지 가게 됐다. 그러나 2심 판결이 난 지 5년이 지나서 2019년 10월 열린 재판에서 대법원은 1심 판결을 취소하고 2심 판결을 그대로 확정했다. 그동안 대법원의 최종 판결만 기대했던 소방관들에게는 그 결과도 최악이었지만, ‘해당 사건은 민사재판이 아닌 행정재판 대상이다. 처음부터 다시 소송을 하라’는 재판부의 얘기는 황당하기조차 했다. 변호사 출신인 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이를 두고 ‘애당초 지방법원이 해당 소송이 행정소송 대상임을 짚어 주었더라면 대법원에 가서야 관할이 잘못돼 소송을 처음부터 다시 제기하라는 얘기는 듣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대법원 판결에 따라 지역에서도 대구소방관 1천529명과 경북소방관 1천444명이 117억5천만 원과 188억 원을 반환해야 할 처지가 됐다. 여기에는 원금 외에 연 5% 이자(경북 56억 원, 대구 7억5천만 원)도 포함돼 있다. 지역 소방관들 사이에서는 ‘애초 법원에서 수당을 받으라고 해서 받았는데 10년 가까이 지나서 자신들이 한 판결을 뒤집고 이자까지 더해 반환하라고 하니 당황스럽기만 하다’는 불만스러운 분위기가 있는 모양이다. 현재 일부 지자체에서는 이 문제를 정리한 것으로 전해지지만 대구, 경북에서는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2011년만 해도 소방공무원은 지방직과 국가직으로 이원화돼 있어 지자체별 상황에 따라 인력과 장비, 복지 등에서 차이가 있었고, 그 때문에 일부 소방관들이 불이익을 보는 사례가 보도된 적도 있었다. 그리고 정부는 이 같은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2020년 4월 소방공무원을 국가직으로 47년 만에 일원화했다. 아무쪼록 국민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화재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소방관들에게 불이익이 가지 않도록 정부, 지자체, 소방청이 머리를 맞대고 묘책을 찾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