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서 내려온 소금강산 자락의 여섯부족 신라왕조의 기틀되다

통일신라는 대한민국의 뿌리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신라를 세우고 첫 왕을 옹립한 육부촌장들이야말로 사실 이 나라를 있게 한 일등공신이다. 삼국유사는 기이편에서 고조선에 이어 위만조선, 부여, 고구려 등의 건국설화를 기록하면서 신라를 세운 내력을 육부촌으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육부촌장들은 박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하고, 신라를 건국했다. 최초 신라의 궁궐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창림사지의 삼층석탑에서 삼국유사 기행단이 해설을 듣고 있다. 육부촌은 월성을 중심으로 지금의 금강산과 건천, 동해 양남면, 외동읍과 울산 경계지역 등으로 짐작된다. 전체가 현재 경주시 행정구역보다 크지 않은 듯하다. 또 육부는 신라왕조가 시작된 후 한참 뒤에 편성된 행정구역으로 해석되고 있지만, 고려시대에 써진 삼국유사는 그대로 육부촌으로 기록하고 있다. 신라를 세우고 왕을 추대한 육부촌장들을 기념하고 제사를 올리는 사당 양산재가 남산의 서북쪽 자락에 있다. 특기할만한 것은 육부촌장들이 모두 하늘에서 내려온 신인으로 그려져 있고, 이들이 모두 지금도 경주에 살고있는 이, 정, 손, 최, 배, 설씨의 시조가 되었다는 기록이다. 이들이 처음 정착한 지역을 정확하게 특정할 수는 없다. 단지 경주 이씨들은 삼국유사 기록을 근거로 지금의 소금강산자락 표암을 그들의 시조가 탄강한 자리로 설정하고, 사당을 지어 매년 제사를 올리고 있다. 삼국유사는 신라 태동을 소개하면서 육부촌장과 박혁거세를 같은 조에 기록하고 있지만, 육부촌장과 박혁거세 이야기를 나누어 육부촌과 촌장들의 이야기 현장을 먼저 찾아가 본다. ◆삼국유사의 육부촌삼국유사 ‘신라의 시조 혁거세왕’조에 신라를 세우고, 첫 번째 왕을 옹립한 사람들과 그들의 시원을 ‘진한 땅에는 여섯 마을이 있었다’고 설명하면서 육부촌에 대한 내력을 기록하고 있다. 알천공이 처음 하늘에서 강림했다는 금강산의 광림대. 첫째는 알천의 양산촌이다. 남쪽은 지금의 담엄사이다. 촌장은 알평이라 하고, 처음 표암봉에 내려와 급량부 이씨의 시조가 되었다. 둘째는 돌산의 고허촌이다. 촌장은 소벌도리라 하는데 처음 형산에 내려와 사량부 정씨의 시조가 되었다. 지금 남산부라 하고 구량벌, 마등오, 도북, 회덕 등의 남쪽 마을이 이에 속한다. 셋째는 무산의 대수촌이다. 촌장은 구례마이며 처음 이산에 내려와 점량부 또는 모량부 손씨의 시조가 되었다. 지금 장복부라 하고, 박곡촌 등의 서쪽 마을이 이에 속한다. 넷째는 자산의 진지촌이다. 촌장은 지백호라 하는데, 처음 화산에 내려와 본피부 최씨의 시조가 되었다. 지금 통선부라 하고, 시파 등의 동남쪽 마을이 이에 속한다.최치원은 바로 이 본피부 사람이다. 지금 황룡사 남쪽과 미탄사 남쪽에 옛터가 남아 최후(崔候)의 옛집이라 하는데, 거의 분명하다. 다섯째는 금산의 가리촌이다. 촌장은 지타라 하는데, 처음 명활산에 내려와 한기부 배씨의 시조가 되었다. 지금 가덕부라 하고, 상서지, 하서지, 내아 등의 동쪽 마을이 이에 속한다. 여섯째는 명활산의 고야촌이다. 촌장은 호진이라 하는데, 처음 금강산에 내려와 습비부 설씨의 시조가 되었다. 지금 임천부라 하고, 물이촌, 잉구진촌, 궐곡 등의 동북쪽 마을이 이에 속한다. 윗글을 살펴보건대, 여섯 부족의 시조는 모두 하늘에서 내려왔다. 노례왕 9년(32)에 비로소 여섯 부족의 이름을 고치고 성씨를 내려 주었다.지금 사람들 사이에서 중흥부는 어미가 되고 장복부는 아비가 되며, 임천부는 아들이 되고 가덕부는 딸이 된다고 하나, 실속은 자세하지 않다. ◆신라 6부촌의 현재 위치삼국유사가 6부촌의 위치를 고려 시대의 행정구역명으로 특정하고 있지만, 학자들의 주장이 엇갈려 현재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옛 지명과 역사적 이야기 등을 토대로 현재의 위치를 추정해본다. 알천공이 하늘에서 내려와 가장 먼저 몸을 씻었다는 광림대 석혈. △알천 양산촌(급량부)은 남쪽이 지금의 담엄사라고 했다. 이병도는 남천 이남지역, 김원룡과 이기동은 남산의 월성쪽 경사면과 남산의 서쪽 산자락이라 주장한다. 민덕식은 북천과 남천 사이로 해석한다. 양산촌의 양(楊)은 남쪽을 뜻하므로 양산촌은 남산으로 풀이된다. 현재의 위치로 남산 북쪽 산자락에서 오릉 지역을 포함 북천의 남쪽 일대일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알천공이 내려온 곳으로 표암 또는 박바위로 알려진 곳. 경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돌산 고허촌(사량부)은 남산부라 하고, 구량벌, 마등오, 도북, 회덕 남쪽 마을이라 했다. 남산부는 지금의 내남면과 울산시 두서면이고, 구량벌은 울산 울주군 두서면 구량리, 회덕은 경주에서 언양으로 가는 국도 주변이다.이병도는 남천 이북, 서천 이동, 월성 이서, 북천 이남, 서악동, 민덕식은 남산 서쪽 산자락의 탑동으로 보았다. 현재의 위치는 남산 서남쪽으로 내남면에서 울산의 경주 북쪽 경계 부근까지일 것이다. △무산 대수촌(모량부)은 당시 장복부라 하고, 박곡촌 등의 서쪽 마을이라고 했다. 이병도는 효현동, 김원룡과 민덕식은 금척리, 이기동은 서악동 일대로 풀이했다. 현재 위치로는 경주시 서면에 모량천이 흐르고 있어, 이 강의 유역일 것으로 짐작해 서악동과 건천읍, 서면 일대까지라고 본다.경주 이씨의 시조 알천공의 탄강지를 기념해 후손들이 표암재를 건립하고 매년 제사를 올리고 있다. △취산 진지촌(본피부)은 고려시대에 통선부라 하고, 시파 등의 동남쪽 마을이다. 이병도는 황룡사 남쪽 인왕동, 김원룡은 낭산 일대, 이기동은 낭산 서쪽 산자락으로 황룡사 이남으로 본다. 민덕식은 괘능리와 조양동으로 보고 있다. 현재 위치로는 황룡사지 남쪽 낭산 일대일 것으로 추정된다. △금산 가리촌(한기부)은 상서지, 하서지, 내아 등의 동쪽 마을이라고 유사는 기록하고 있다. 이병도와 김원룡은 백률사 일대, 이기동과 민덕식은 소금강산 일대로 해석해 소금강산 일대로 같이 보았다. 현재 위치는 상서지와 하서지, 내아 등은 지금의 경주시 양남면 상서동, 하서리, 나아리 등과 일치하는 것으로 보여 동해와 연접한 양남면 일대로 본다.알천 양산촌이 위치했던 곳으로 전해지고 있는 오릉의 동남쪽에 담엄사의 것으로 추정되는 당간지주가 묻혀있다. △명활산 고야촌(습비부)은 물이촌, 잉구진촌, 궐곡 등의 동북쪽 마을이라 했다. 이병도와 김원룡, 이기동, 민덕식 모두 보문동으로 해석하고, 오영훈은 황성공원 일대로 주장한다. 현재의 위치는 습비부는 보문리 지역이고, 물이촌은 지금의 경주시 천북면 물천리, 궐곡은 천북면 물천리 북쪽에 인접한 갈곡리를 이르는 말이므로 보문 동북쪽과 천북면 일대일 것이다. ◆흔적과 뒷이야기학설에 따르면 6부촌의 현재 위치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6부촌장들이 처음 내려온 곳과 활동 주 무대인 주거지의 위치를 다르게 설명하고 있어 육부촌은 서로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짐작하게 한다. 육부 촌장의 후손들이 남산자락에 사당을 지어 매년 제사를 올리는 양산재 대덕문. 경주 이씨의 시조로 전해지는 알평공은 표암봉에서 내려왔다 하고, 소금강산 서남쪽자락에 표암으로 전해지는 바위와 흔적을 역사적 현장으로 해석해 경주 이씨들이 신성시 하고 있다. 경북도는 표암 일대를 박바위 또는 밝은 바위로 해석하고, 경북도 기념물 제54호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경주 이씨의 근원지로 보면서 신라 건국의 산실로 역사적인 곳으로 보고 있다. 육부 촌장들에게 제사를 올리기 위해 위패를 모시고 있는 육부전. 삼국유사가 기록하고 있는 6부촌장, 6성의 후손 경주 이씨, 정씨, 손씨, 최씨, 배씨, 설씨 후손들은 경주시 탑동 남산자락에 1970년 사당 양산재를 지어 촌장들의 위패를 모시고 매년 정기적으로 제사를 지낸다. 신라 제3대 유례왕(삼국사기는 유리왕)이 6부 촌장들에게 양산촌은 이씨, 고허촌은 최씨, 대수촌은 손씨, 진지촌은 정씨, 가리촌은 배씨, 고야촌은 설씨 등의 성을 처음 내려 각자 시조가 되었다. 경주 배씨의 시조가 된 금산 가리촌의 촌장 지타가 처음 탄강한 명활산의 산성터가 복원 중이다.◆새로 쓰는 삼국유사- 6부촌시대진한 지역에는 절대적인 통치자가 없고, 여러 부족 중에서 두드러진 6촌이 울산지역에서부터 영일지역까지 각자의 영역을 구축하고 세를 키우고 있었다. 6부는 각기 진법을 겸한 도법과 검법, 의술을 바탕으로 한 독술, 악기를 무기로 쓰는 음공, 창술, 말타기를 기초로 하는 궁법 등을 특기로 독창적인 무예를 전수하고 있었다. 특히 신라 천 년 왕궁의 터 월성을 중심으로 촌장 알평은 평평한 들과 분지에서 풍부한 농산물을 생산하고 있었지만, 적의 침입으로부터 방어를 위해 진법과 묵직한 도법을 자랑으로 삼고 있었다. 왜구를 비롯한 적들은 알평이 지휘하는 양산촌 중심부에는 누구도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 남산자락의 소벌도리 촌장은 화려한 검술을 바탕으로, 빠른 보법으로 영역을 지키는 탁월한 리더십을 가지고 있었다. 서악지구에서 서면 모량천 일대 부족들을 다스리는 구례마는 의술에 밝았다. 경주 일대에서 가장 높은 단석산 주변에서 약초를 직접 재배도 하면서 무색무취한 독과 병기를 개발해 적들이 가까이 침범할 수 없게 했다. 황룡사 남쪽 낭산 일대에 자리를 잡은 진지촌 지백호 촌장은 병법과 예능에 탁월한 솜씨를 자랑했다. 특히 예술적인 자질이 뛰어나 거문고, 대금 등 모든 악기에 정통했을 뿐 아니라, 소리에 공력을 실어 적을 제압하는 무예에 조예가 깊었다. 금산 가리촌의 촌장 지타는 동해에 접한 해안부락을 다스리면서 농사와 사냥은 물론 바다에서 고기를 잡아 연명하는 생업과 관련해 창술의 달인이었다. 그가 다루는 창술은 신기막측하여 가까이에서 보아도 그의 창끝을 가늠하지 못한다.또 그가 던지는 창은 백장 밖의 새와 10장 깊이의 물고기 가슴까지도 정확하게 찌르는 솜씨로 누구도 그의 앞에서 함부로 무기를 들지 않았다. 명활산과 금강산을 부대로 사냥을 주업으로 했던 고야촌의 촌장 호진은 발 빠른 움직임이 필요해 승마술과 활을 다루는 기술이 특히 발달했다. 일직선으로 빼곡하게 들어선 숲에서 나무들이 가린 뒤쪽의 목표물도 빠르게 살을 날려 명중시키는 흉내 낼 수 없는 궁술을 가지고 있었다. 뚜렷한 개성과 각자의 특기할 무술 실력을 가진 6부 촌장들이지만, 수시로 공격해오는 왜구와 이웃한 군사들의 침략에 골머리를 싸매고 있었다.결국 이들은 서로의 안전을 보장하고 편안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 협력하고, 절대적인 지혜와 무술적 기량을 가진 지도자를 선발하기로 합의했다. 이들은 그로부터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만장일치제인 화백회의를 통해 결정했다. 6부촌장들이 합의하여 최초로 지도자로 추천된 박혁거세가 신라의 왕이 되었다. 뛰어난 자질을 가진 혁거세는 6부 촌장들의 무술을 모두 전수하여 창림사 터에 궁궐을 세우고, 6부촌을 하나의 나라로 키웠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의자·자동차·나무…모든 것이 연결된 ‘초연결 사회’가 펼쳐진다

대구시는 지난해 9월 전국 지자체 최초로 사물인터넷 기반의 미니태양광 보급 사업을 추진했다.사물인터넷은 단순 연계를 넘어 ‘초연결 사회’로의 도약을 꾀하고 있다. 인간 주변의 모든 만물이 사물인터넷으로 연계되는 세상이 전망된다.지능형 사물인터넷은 인간의 제어 없이 프로그램 스스로 배경, 상황 등을 습득하고 제어한다.사물인터넷 분야를 통해 관련 매출과 인력 등이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사물인터넷 매출액은 9조 원대로 전년 대비 20% 성장했고 인력도 지난해 약 8만 명으로 2천 명 이상 증가했다. 올해 초 모 언론을 통해 흥미로운 기사를 접한 바 있다. 대구 달성군 가창지역에서 현재 운영 중인 '수도계량기 사물인터넷 원격검침 서비스’가 대구 전역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2017년 전국 최초로 도입된 수도계량기 원격검침 서비스는 사물인터넷망을 이용, 검침원 방문 없이도 옥내 누수를 자동으로 점검해 알려줌으로써 장기간 물 사용이 없는 가구 등을 선별해 1인 가구, 독거어르신 등 취약계층에 대한 복지서비스를 가능케 한다.이처럼 사물인터넷의 궤적은 인간사 중심에까지 시나브로 스며들고 있다.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지해내는 센서란 더이상 이질적 대상이 아니다. 일장일단이라고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사물인터넷은 그만큼 우리 일상 곳곳으로 잠입해 있다는 것이다. ◆모든 만물이 연결되다사물인터넷(사물인터넷)의 시작은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MIT의 한 교수로부터 사물인터넷이라는 용어가 처음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그 후 사물과 사물 간 인간의 역할은 모호해진다. 그 자리를 유·무선 통신 장비가 대신했으며 이 같은 개념이 공고해지고 스마트 시티와 유통혁명 등 4차 산업혁명의 주류 기술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사물인터넷의 핵심으로 일컬어지는 ‘라이다’ 가격이 2016년 대비 3년 새 100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을 비춰볼 때도, 사물인터넷의 확장성은 ‘현재진행형’이다.사물인터넷은 단순 연계를 넘어 ‘초연결 사회’로의 도약을 꾀하고 있다. 인간의 신변잡기적 삶에 사물인터넷의 무의미한 가치는 더이상 찾아보기 힘들다. 엔터테이너적 소비부터 사람 간 커뮤니케이션에 이르기까지 사물인터넷의 발로에 의한 혁신은 무궁무진할 것으로 보인다. 한발 더 나아가 인간과 사물의 소통을 두고 더이상 SF적 요소일 것이라는 치부 역시 이제는 일거에 걷힐 것이다.인간 주변의 모든 만물이 사물인터넷으로 연계되는 세상, 더이상 꿈만은 아니다.사물인터넷은 용어 그대로 사물을 ‘인터넷화’하는 것이다. 유·무형의 각 사물들이 한 방향이 아닌 다채로운 방식으로 연결된다. 이 같은 다양성은 인간으로 하여금 새로운 서비스를 선사한다. 말 그대로 가상의 현실과 우리의 연계해주는 접점이 바로 사물인터넷이라는 것.과거의 인터넷은 연계점의 한계가 있었다. 컴퓨터라는 주체가 우선시돼야 했고, 무선 인터넷의 가동이 원활해야 했다. 연결점의 수단으로 휴대전화가 빠질 수 없다. 당연히 유형의 사물로 국한될 수밖에 없는 시스템적 한계였다.하지만 사물인터넷은 세상의 모든 사물이 연결된 인터넷 프로그램이다. 의자, 자동차, 나무 할 것 없이 별도의 브릿지가 필요치 않은 유기적 호환이 가능하다. 잡화점의 결제 프로세스와 버스 스테이션 등의 무형적 사물에 이르기까지 사물인터넷의 범주는 무한대다. ◆고도화 넘어 초고도화 시대로사실 사물인터넷의 과거는 그리 밝지만은 않았다. 과거의 사물인터넷은 ‘와이파이’를 이용한 리모컨에 불과했던 것 또한 사실이다.사물인터넷이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킨 것은 2017년 머닝러신과의 융합부터다. 이후 사물인터넷과 AI 기술이 접목된 상품들이 불티나게 공개되고 있다.이때부터 인간의 수고스러움은 한층 더 절감된다. ‘스마트’라는 이름의 상품들은 스마트폰을 이용해 On/Off 등의 조작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라면 사물인터넷의 메리트는 정체됐을 터. 사물인터넷과 인공지능의 결합, ‘지능형 사물인터넷’이 인간의 니즈를 더욱 자극시키고 있는 상황이다.지능형 사물인터넷의 정점은 바로 ‘능동화’다. 인간의 제어 없이 프로그램 스스로 배경, 상황 등을 습득·제어한다. 예를 들어 거주자의 매일, 매주, 매월의 가스 및 전기 사용량을 습득·체크 한 후 부착된 이동 센서에 따라 거주자가 집을 비울 시, 자동으로 가스 및 전력을 차단하는 기술이다.이뿐만이 아니다. 매일 똑같은 조도의 형광등에 스마트의 기술력을 적용, 채광 유·무에 따른 조도 조절을 통해 불필요한 전력 낭비에 도움을 준다. 단순 편안함을 선사하는 것이 아닌 스마트의 이름으로 삶의 질 전반을 윤택하게 하는 것이다.사물인터넷이 투영된 손목시계로 인간의 심장박동이나 체지방 등을 측정, 이를 토대로 수면습관, 식사패턴 등 건강 제어의 역할을 한다. 침실에 사물인터넷을 연결, 수면습관 등을 파악해, 올바른 수면 유도와 습관을 토대로 현재의 건강 수준을 제공하는 것이다. 스마트화된 칫솔이 칫솔의 이동 경로를 추적, 올바른 양치습관을 이끌어내는 것 또한 사물인터넷의 기술력 중 하나다.차량 운행 간 수기로 확인해야 했던 각종 소모품의 교환 시기도 사물인터넷의 범주로 스며들고 있다.차량 내부 센서와 사물인터넷의 결합으로 이동 간 엑셀, 브레이크, 기어 등의 주행상태를 파악, 모자란 오일 체크나 차량의 이상 유무까지 실시간으로 제공하게 된다. 온도에 따른 냉·온풍기 가동, 일조량에 의거한 조명의 자동 ON/OFF 등 사물인터넷은 지능화의 단계를 거치고 있다.공공과 산업분야에서도 사물인터넷의 스마트화는 확실한 재화로 자리매김하고 있다.트렉터에 부착한 GPS가 파종 구역을 체득, 일의 효율성을 제고하고 CCTV에 부착된 오디오센서를 통해 리스크가 감지된 음성을 청취함으로써 범죄율 절감에 나선다.이처럼 사물인터넷의 스마트 시스템은 스마트 홈, 스마트 시티, 스마트 의학, 자율 주행에 이르기까지 인간을 제외한 모든 재화로 그 영역을 공고히 해가고 있다. 연결이 아닌 초연결화, 고도화를 넘은 초고도화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방증이다. 작지만 강한 역할을 영위하는 사물인터넷은 대기업의 틈바구니 속, 중소기업이 헤집을 수 있는 바로 ‘블루오션’이라는 것이다. ◆한국은 세계 점유률 ‘5번째’2018년 국내 사물인터넷 관련 매출액은 9조 원을 육박했다. 전년(7조 원) 대비 20%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2015년부터 2018년에 이르기까지의 연평균 수치는 더욱 고무적이다. 25%에 가까운 성장세를 해마다 보인 셈이다.국내 사물인터넷 관련 인력만 해도 2018년 8만여 명으로 집계됐다. 그전 해인 2017년 대비 2천 명 이상이 증가한 것이다. 2019년에도 사물인터넷으로 인한 인력창출은 역동적 흐름 세를 나타내고 있다. 올해 고용 커리큘럼 상 필요인력은 약 5천 명, 사물인터넷 관련 일자리 수요 역시 상승 곡선을 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사업 분야별로는 센서와 모듈이 장착된 스마트 단말기 등 제품기기의 매출액(4조 원)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비중으로는 거의 절반에 가까운 약 45%를 차지한다. 반면 전년 대비 매출액 증가율은 10%대로 성장세에 비해선 고무적이지 않았다. 제품기기의 아이덴티티가 서비스와 플랫폼으로 이동하는 변혁기에 접어들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사물인터넷 관련 전체 매출액에선 내수시장이 전체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8조 원에 가까운 규모다. 하지만 사물인터넷에 대한 관심도 제고와 전통적 기술력이 맞물려 수출액 역시 빠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2018년 기준, 최근 3년간 연평균 40%에 육박한다. 이는 국내 사물인터넷 기술은 여타 정보통신기술 대비 상대적 우위를 점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내수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경쟁력을 꾀하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전 세계적으로도 사물인터넷의 성장률은 가열찬 행보를 보인다.IDC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글로벌 사물인터넷 시장규모를 지난해 대비 약 16% 증가한 8천억 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했다. 한화로 840조 원에 이르는 규모다. 특히 보고서에는 IT 강국인 한국의 사물인터넷 시장규모를 세계 5번째로 전망했다. 미국과 중국, 일본, 독일에 이은 규모다.사물인터넷의 전용망으로 일컬어지는 ‘로라망’. 로라망은 사물끼리 서로 통신을 주고받을 수 있게 도와주는 저전력 장거리 통신 기술을 일컫는다. 하지만 로라망의 경쟁력은 대기업 간 ‘그들만의 리그’에 그치고 있다. 통신망 사용료는 천정부지로 올라갈 것이고, 대기업의 굴레에 중소기업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더욱 좁아든다. 창의는 기대할 수 없을 것이며, 천편일률적 통신망 구축이 예견되는 실정이다.국가적 차원의 로라망 구축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통신망 자체를 표준화해 국민들로 하여금 투명성을 제고할 필요성이 있다. 로라망을 바탕으로 한 각종 사물인터넷 산업군을 대기업의 산물로 치부할 것이 아닌, 중소기업의 ‘생존 기치’로 적극 보호해야 할 때다.글·사진=군월드 IT 사업팀김종윤 기자 kjyun@idaegu.com

약해진 뼈, 일상 속 ‘골절’ 예방해야

골다공증은 뼈의 강도가 약해져 골절의 위험이 증가되는 골격계 질환이다.골다공증은 ‘일차성 골다공증’과 ‘이차성 골다공증’으로 분류된다.일차성 골다공증은 폐경 후 여성호르몬이 부족해 생기는 ‘폐경 후 골다공증’과 노인 남녀에서 칼슘과 비타민D 부족으로 발생하는 ‘노인성 골다공증’으로 다시 나눈다.이차성 골다공증은 뼈를 약하게 하는 원인 질환이나 약물 때문에 골다공증이 발생하는 경우이며 이때 원인질환을 치료해야 골다공증도 치료가 된다.이차성 골다공증의 원인으로는 부갑상선기능항진증, 갑상선기능항진증, 성선기능저하증 등의 질환과 위절제술 및 글루코코르티코이드, 과량의 갑상선호르몬 등이 있다. ◆칼슘과 비타민 D가 골다공증 예방뼈는 우리가 태어나서 자라는 동안 양적으로 질적으로 계속 성장해 성인 30대에 최대 골량을 가진다.뼈가 약해지는 것을 막으려면 골량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질 좋은 뼈를 충분히 생산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즉 어른과 노인뿐 아니라 소아·청소년기를 거쳐 성인이 될 때까지 뼈를 만드는 데 꼭 필요한 칼슘이 풍부한 음식을 즐겨 먹고, 칼슘 흡수에 필수 요소인 비타민 D를 섭취하고 적절한 운동을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칼슘이 풍부한 음식에는 멸치, 건새우, 뱅어포, 미역, 우유, 치즈 등 유제품, 두부, 콩 및 녹색채소가 있다.비타민 D는 햇볕을 쬐면 피부에서 만들어지며 말린 표고버섯, 등푸른 생선 및 달걀 노른자 등에 풍부히 함유돼 있다.운동은 뼈의 강도를 좋게 하기 위해 필수적이다.야외에서 하는 운동은 비타민 D 합성도 할 수 있어서 좋다.흡연은 임상 연구에서 대퇴골절을 증가시키는 위험 인자로 밝혀져 있다.간접적 으로는 여성의 폐경기를 재촉하고, 에스트로겐의 효과를 감소시킬 수 있다. 동물실험에서도 흡연은 뼈를 약하게 하는 것으로 보고된다. 음주는 하루 30g 이상(술의 종류에 상관없이 대략 하루 3잔 이상) 마시면 뼈의 생성이 감소하고 파괴는 증가해 뼈를 약하게 하므로 피해야 한다. ◆골절 예방이 중요골다공증을 치료한다는 것은 약해진 뼈가 사소한 충격이나 심지어 일상생활 중에 부러지는 것을 막는 것이다. 즉 골절을 예방하는 뜻이다.약을 복용해 뼈의 강도를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낙상이나 사고를 예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실제로 많은 골절 사고가 욕실이나 물이 흘러있는 거실, 방 등 가정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뼈의 강도를 측정해 골다공증을 진단하는 골밀도검사를 한다. 골절이 있거나 의심되는 경우 X-선을 비롯한 다른 영상학적 검사도 병행해야 한다.골다공증의 치료는 크게 생활관리와 약물치료로 분류하는데 대한골다공증학회에서 권고하는 생활관리 지침은 다음과 같다. -대한골다공증학회의 권고 지침1. 칼슘은 우선 음식을 통해 섭취하며, 식품으로 칼슘섭취가 불충분한 경우 칼슘보조제를 사용할 수 있다. 칼슘의 1일 권장섭취량은 폐경 전 성인 여성 및 50세 이전 성인 남성은 800~1천㎎, 폐경 후 여성 및 50세 이상 남성은 1000~1천200㎎이다.2. 비타민 D 보조제의 1일 권장량은 800IU 이상으로 한다.3. 카페인 음료의 섭취는 줄이고 음식은 싱겁게 먹는다.4. 과도한 음주는 제한하고 흡연자는 반드시 금연한다.5. 꼭 운동한다. 유산소운동 외에도 체중부하운동, 근력운동, 안정성운동을 한다.도움말=계명대 동산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김혜순 교수 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냉이 넣고 된장찌개 ‘보글보글’ 새콤달콤 달래 무쳐 먹어봐요

향긋한 냉이를 넣고 보글보글 끓인 된장찌개와 양념장에 새콤달콤하게 무쳐낸 달래는 괜스레 싱숭생숭해지는 봄,잃어버린 입맛을 돋우는 데 제격이다. 봄철 대표 나물, 냉이와 달래에 대해 알아본다.◆봄이 주는 선물, ‘냉이’‘냉이로 국을 끓여 먹으면 피를 간에 운반해 주고, 눈을 맑게 해 준다.’쌉쌀한 맛과 특유의 향이 특색인 냉이는 주로 이른 봄에 수확해 무침, 국, 전 등 다양한 요리에 활용된다.특히 된장찌개에 넣고 끓여 내면 냉이 특유의 향이 국물에 배어 근사한 국물 맛을 낼 수 있다. 연간 냉이 생산량의 70~80%는 주로 3월경에 출하되므로 지금이 딱 냉이의 제철이다. 최근에는 시설 재배가 늘면서 사시사철 냉이를 먹을 수 있지만, 이른 봄 야생에서 나오는 냉이의 향이 가장 좋다.냉이는 알칼리성 채소로 입맛을 돋워주고 단백질과 비타민, 무기질이 풍부한 채소이다. 비타민 A, B1, C가 풍부해 원기를 회복하고 피로 해소 및 춘곤증에도 좋다. 칼슘, 칼륨, 인, 철 등 무기질 성분을 함유하고 있어 지혈과 산후출혈 등에 처방하는 약재로 사용되며 간과 눈에도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냉이의 잎에는 베타카로틴이 다량 함유되어 있으며 뿌리에는 알싸한 향의 콜린 성분이 들어있다.베타카로틴은 시력을 보호하고 간에 쌓인 독을 풀어줘 간 기능을 회복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 또 거칠어진 피부 개선과 여드름 예방에도 도움을 주며, 생리불순을 비롯한 각종 부인병 완화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흙 속에서 캐낸 냉이는 잘 씻어 흙을 제거한 뒤 먹는다. 잔뿌리를 칼로 살살 긁어낸 후 시든 잎을 떼어내고 30분 정도 물에 담가둔 후, 흐르는 물에 씻어 요리에 사용한다. ◆봄 향기 물씬 풍기는 달래‘달래는 적괴(암, 종양)를 다스리고 부인의 혈괴를 다스린다.’톡 쏘는 맛을 가진 달래는 이른 봄부터 들이나 논길 등에 커다란 덩이를 이루며 자란다. 알뿌리는 양파와 비슷하고 잎은 쪽파와 비슷하다.맛이 유사한 파나 마늘은 산성식품이지만 달래는 다량의 칼슘을 함유한 알칼리성 식품이다.잎과 뿌리에 강한 향미를 지니고 있는 달래는 주로 무침, 장아찌, 적, 된장국 등을 해 먹는다.특히 육류 요리 시 같이 섭취하면 콜레스테롤 저하 효과를 볼 수 있어 궁합이 맞다. 비닐하우스 재배로 언제든지 맛볼 수 있지만 달래의 제철은 이른 봄이다. 봄철 들에서 캐는 달래가 매운맛이 강하고 맛이 좋다.알뿌리가 굵은 것일수록 향이 강하지만 너무 커도 맛이 덜하다. 또 줄기가 마르지 않은 것이 싱싱하다.봄철 대표 나물인 달래는 냉이와 함께 거론되기 때문에 헷갈리기 쉽지만 동그란 알뿌리가 있는 것이 달래이다.비타민과 무기질, 칼슘이 풍부한 달래는 자궁출혈, 위암, 종기 및 타박상의 치료제로도 쓰였으며 빈혈 증상 및 간장 기능의 개선을 돕는다. 또 ‘알리신’ 성분을 포함해 원기회복과 자양강장 효과가 있다.달래는 생으로 먹을 수 있으므로 깨끗이 다듬어 씻는 것이 중요하다. 흐르는 물에 한 뿌리씩 흔들어 씻어낸 후 껍질을 벗기고 깨끗한 물로 씻어준 뒤 조리법에 맞게 손질하여 사용한다.도움말=한국건강관리협회대구지부봄의 시작을 알리는 톡 쏘는 매운맛의 달래와 쌉싸름한 냉이.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근원이 마르지 않는 샘물 ‘옥정영원’ 속 올바른 마음 닦는 선현의 길 비춰 보이네

◆쌓다 만 석성 경북 군위군 고로면에 위치한 화산산성(華山山城, 경북기념물 제47호)은 조선시대 미완성의 성곽이다. 팔공지맥의 하나인 화산(828m)에 기대어 축성한 석성인데 군위군과 영천시의 경계지역인 화산을 중심으로 그 계곡에서 정상으로 이어지게 쌓은 것이다. 기암괴석으로 이뤄진 화산은 북쪽이 가파르고 험준하지만, 산정에 오르면 삼위가 평탄한 분지를 이루고 울창한 숲과 자잘하게 번져 난 물길이 장관을 이룬다. 1709년(숙종 35년) 병마절도사 윤숙이 왜군의 내침에 대비해 축성의 기초 공사를 시작했지만, 가뭄과 질병이 만연하고 백성들의 고통이 극심해지자 중단하고 말았다. 까탈스러운 산세와 깊은 계곡 등 지형을 적절하게 활용하여 축조를 시작했던 화산산성은 그래도 족히 1km 길이가 넘게 남아있고 그 쌓아올린 돌조각 하나하나가 매우 선명하다. 찬찬히 들여다보노라면 축성 당시의 절묘한 축조법과 공사의 순차를 알 것도 같고, 힘겹게 노역하던 군병들의 얼굴빛도 어슴어슴 밀려드는 것 같다. 특히 수구문 터에서는 조선 중기 이후에 유행한 2층 수구로 축조하려 했던 모습을 엿볼 수가 있다. 또한 아름답게 축조된 동문, 반월형 홍례문의 돌기둥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보는 미감을 더한다. 그리고 화산의 남쪽 중턱에는 군사 물자를 조달하던 군수사(軍需寺) 터가 있는데, 그 부서진 기왓조각들이 도란도란 옛이야기를 들려주기라도 하는 것만 같다. 여기에 더하여 군대 막사 남쪽 널찍한 마당가의 수원이 마르지 않는 우물, 옥정영원이 눈길을 끈다 ◆성찰의 준거로 삼은 샘, 옥정영원영천시 신녕면 교전에서 태어난 송계〈송계 한덕련(1881-1956), 실천도학자로 칭송받는 선비〉라는 인물이 있었다. 고향에서 가학으로 학문을 익히고 제자를 육성하는 데 힘쓰던 그는, 서른이 넘어서자 전국의 유교 성지를 찾아 여행을 떠나고자 결심한다. -공부가 어디 서책에만 있을 뿐이랴. 선현들의 흔적과 체취를 호흡하는 것 그리고 살아있는 거유들과 문답을 즐기는 것 또한 크나큰 배움이 아닐런가.- 송계는 진실로 선현들의 흔적을 찾아 묵상하고 현존하는 선비들을 만나 담론을 나누고 싶었던 것이다. 자신의 선택에 분명한 가치를 두고 있던 송계는 안동을 비롯한 북부지역을 돌아 죽령을 넘어갔다.그리고 괴산 화양서원을 거쳐 전라북도 부안 개화도에서 며칠 묵은 뒤에 경남 거창과 청도, 고령 등 여러 유현 지역의 순례길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교전리에 있던 서당의 문을 닫고 군위군 고로면 옥정동으로 떠났다. 1919년 이른 봄, 송계는 가쁜 숨결을 몰아쉬었다. 군위 고로면, 마을의 울타리 같은 화산산성이 둘러 쳐져 있는 옥정동으로 걸어 오르고 있었다. 길이 꽤 가팔랐다. 간간이 목탄 화물차와 우마차가 다니는 신작로(현재의 28번 도로)를 벗어나 화산 계곡을 따라 산등성을 타고 오르는 길은 여간 험하지 않았다. 산골짜기가 깊은 곳에는 여태 잔설이 남아 있건만, 길섶의 이른 생강나무꽃은 저만큼 피어졌고, 양지 녘에는 붉은 진달래꽃 망울도 금세 터트릴 것만 같다. 경칩을 지낸 산속에서 짝을 찾는 뻐꾸기 울음소리에 봄은 이미 저만큼 다가서 있었다. 1시간은 족히 걸었을까. 송계는 신녕장에서 종이와 먹 등 몇 가지 일용품을 산 장바구니를 산성의 수구문에 내려놓고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송계는 마을을 출입할 때마다 산성을 마주칠 때면 계곡으로 흐르는 물 위를 걸쳐 마치 구름다리처럼 쌓은 아치형 성문이자 수구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돌을 깎아 가로로 세로로 이불을 개어놓은 듯 가지런히 쌓아올린 화강암 석벽이 군사용 성벽이라기보다 아름다운 꽃담 같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날이 갈수록 나라 안은 시끄럽고 혼란스러웠다. 일제가 곳곳에서 눈을 부라리고 있어 도심은 말할 나위 없고 두메산골조차 그 눈길을 피할 수가 없는 암흑천지였다. -임금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나라마저 빼앗아간 일제를 어찌 용서할 수 있으랴. 다만 내가 힘이 없어 한탄할 뿐이다. 서세동점 하는 세상의 흐름을 읽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끝낼 줄 모르는 당쟁의 소용돌이는 자신의 사리사욕에 눈이 먼 지도자들의 어리석디어리석은 처사가 아니었던가. 송계는 수구문으로 흘러내리는 물가의 마른 바위에 허리를 기대고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성현은 비례물동(非禮勿動)이라 하지 않았던가. 나는 세상 밖으로 나서지 않으리라. 후학으로 나라를 구하리라. 실천적인 공부로 자신을 밝히고 이웃을 밝혀 나가리라. 쉬었다가 마을 어귀로 돌아가는 길모퉁이에서 송계는 다시 긴 숨을 몰아쉬었다. 초봄의 입김이 담배 연기처럼 길게 내뿜어졌다. 드디어 산정이 드러나고 마을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손바닥만 한 밭을 일구고 사는 마을 사람들, 밭고랑에 엎디어 춘경을 시작하는 손길이 분주해 보였다. 마을 앞으로 근원이 마르지 않는 실개천이 흘러내리는 옥정동은 북으로 화산을 등진 채 남으로 넓은 분지를 일구고 사는 20호의 산골 마을이다.마을 남쪽으로 넓게 펼쳐진 분지는 갈대와 싸리나무, 갯버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데 신비롭게도 넓은 분지 한가운데 큰 바위 돌 사이로 맑은 샘이 끊임없이 솟아 흘러내린다. 그리고 그 물길은 태곳적 삼림 같은 숲 속을 가로질러 산성의 수구문으로 이어진다. 바람이 일렁일 때 마다 하얀 싸리꽃이 설화처럼 흩날리고 갯버들은 하얀 솜털 같은 꽃을 피우고 있지만, 계곡의 물은 여전히 얼음처럼 차다. 군데군데 언 채로 녹지 않은 얇은 얼음이 바위틈에 이끼처럼 붙어있다. 송계는 옥정동으로 찾아드는 원근 지방의 제자들과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는 일상이 퍽 만족했다. 가까이 아끼던 제자의 외가가 있는 곳이라 생활하는 데도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서책을 보다 깜빡 잠이 들었다. 순간 꿈속인가? 마을 앞의 넓은 숲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사다리 같은 누각이 세워져 있고, 마을 사람들이 몰려와 자신더러 그 누각에 올라가 하강하는 도인을 받들어 모시라고 했다. -덕이 많은 훈장 어른께서 도인을 영접하소서... 사람들에게 떠밀리다 못 한 송계는 마침내 옷깃을 여미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신령한 사람을 조심스럽게 받아 안았다. 안고 자세히 보니 그 위인은 단순한 도인이 아니라, 자신이 늘 닮고자 흠모하고 있던 공자(孔子)의 모습과 흡사하지 않던가. 송계는 너무나 감동하여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누를 길이 없었다. 엎드려 절을 하고 다시 일어나서는 하얀 사발 그릇에 물을 한잔 올리며 “마을 앞 옥정의 물입니다”라고 하니, 그 도인은 “어허, 옥정영원이로다” 하면서 물을 받아 마셨다. 그 순간 송계는 꿈에서 깨어났다. 비록 꿈속이지만 너무나 생생한 그 모습이 뇌리에 선명했다. 송계는 벅차오르는 감동을 주체하지 못한 채 종이를 꺼내고 먹을 갈기 시작했다. 그리고 경건한 마음으로 샘가의 바위에 ‘옥정영원’이라는 이름을 정성스럽게 새겼다. -마을 사람들과 제자들이 함께 음용하는 이 우물을 보다 신령스럽게 여김은 물론, 학동들에게 성찰의 준거가 될 수 있게 해야지..... 송계는 해서체로 반듯하게 ‘玉井靈源’이라 새겨 넣었다. 샘의 다른 한쪽에 세심탁족(洗心濯足)이라는 댓귀를 더 새겨 넣었다. -옥같이 맑은 물, 그 근원이 신령스러운 이 물가에서 몸과 맘을 닦아 선현에 이르게 하리라…. 그리고 많은 세월이 흘러갔다. 현대사회로 접어들면서 옥정동은 그야말로 상전벽해가 되고 말았다.1960년대 후반에 마을이 철수 되고, 그 자리에 군부대의 유격훈련장이 들어앉은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산성과 군수사 터, 그리고 옥정영원 샘은 고된 군사 훈련 중의 장병들에게 피로를 들어주는 쉼과 볼거리, 음용수가 되어주고 있다. 샘가의 ‘옥정영원’을 새긴 바위 언저리에 파르스름한 석화가 구절초처럼 곱게 피어나 있다. 분지에서 불어오는 봄기운 가득한 갈대 바람을 안고 화산 정상에 오르면 북쪽으로 멀리 인각사가 한 폭의 그림처럼 들어선다. 천 년 전 일연선사가 들어앉아 삼국유사를 저작했던 유서 깊은 절이 아니던가. 절집 앞으로 위천의 상류가 흘러내리고 있다. 그 옛날 윤숙 장군도 또한 송계 선생도 산정에 올라 오늘날 화산을 찾는 나그네들처럼 이 풍경을 찬미하며 살았으리라…. 김정식/대마문화콘텐츠연구소장 김정식 대마문화콘텐츠연구소장 문정화 기자 moonjh@idaegu.com

피폐해진 고려 말 ‘나라의 길’ 고민 책 속에 담아

“즐겁던 한 시절 자취 없이 가버리고/ 시름에 묻힌 몸이 덧없이 늙었에라/ 한 끼 밥 짓는 동안 더 기다려 무엇 하리/ 인간사 꿈결인 줄 내 인제 알았노라.” 군위군청 뜨락에 세워진 일연 시비에 새겨진 글이다.일연선사가 22세부터 22년간 머물면서 수도했던 곳으로 전해지는 달성군 비슬산에는 일연선사의 흔적을 찾으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일연선사가 머물렀던 곳으로 전해지는 보당암의 터로 전해지는 대견사의 전경. 삼국유사가 일연 스님의 작품이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고 있다. ‘삼국유사’가 허황한 잡학 서적이라는 비난을 받은 시기가 있었던 것처럼, 일연 스님 또한 인각사의 비문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한 시기가 있었다.경산 삼성현역사문화관에 세워진 일연선사의 모습. 지금은 일반적으로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와 함께 고대사를 서술한 역사서의 양대산맥’으로 평가되고 있다. 주보돈 박사는 삼국유사에 대해 “삼국유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삼국사기를 함께 다루어야 하는 빛과 그림자 같은 성격을 가진 신라사의 기본사서”라며 “서로를 대비해야 비로소 그 성격들이 제대로 드러난다”고 평가했다. 일연 스님은 13세기 말 고려시대 국사로 책봉돼 나라의 길을 제시하는 가장 큰 스님이었다. 몽고의 침입으로 나라가 어지러울 때 팔만대장경을 제작하는 일에 직접 참여했으며, 삼국유사와 중편조동오위와 같은 100여 편의 저술을 펴냈다. 아쉽게도 지금까지 남은 저술은 삼국유사, 중편조동오위가 유일하다. 군위 인각사에 남은 일연선사비의 모습. 임진왜란 당시 크게 훼손돼 남은 글자가 거의 없어 안타깝다. 일연스님의 행적은 ‘인각사 보각국사비’의 비문 전체가 실려 있는 탁본이 발견되면서 제대로 알려지기 시작했다.보각국사비는 일연 스님을 기념하여 세운 것으로 탑과 함께 군위 인각사에 있다. 일연의 비문은 전면의 본문은 민지(閔漬)가 짓고, 후면의 음기는 산립(山立)이 지었다. 서성이라 불리는 왕희지의 글씨를 집자하여 세웠다. ◆일연의 행적일연은 고려 희종 2년 1206년 경주의 속현이었던 장산군, 현재의 경산에서 태어났다. 그의 속성은 김씨, 이름은 견명이다. 경산시는 삼성현역사문화관을 설립해 일연선사의 흔적을 더듬어볼 수 있게 하고 있다.일연선사가 태어난 곳은 경산이다. 경산시가 일연선사를 비롯해 3분의 성현을 만나볼 수 있게 조성한 삼성현역사문화관 정문 모습. 일연은 9세에 지금의 광주로 알려진 해양 무량사에서 불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어떤 학자들은 해양이 지금의 영해와 포항지역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광주에도 일연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다. 14세에 설악산 진전사에서 머리를 깎고, 대웅장로에게 구족계를 받아 본격적인 승려의 길을 걸었다. 이어 강석과 선림을 편력하면서 수행해 동료들로부터 구산사선의 으뜸으로 평가받았다. 일연선사가 36여년간 머물렀던 달성 비슬산. 유가사에 세워진 일연선사의 시비. 일연은 22세에 승과 선불장에서 상상과에 합격하고, 현재 달성 비슬산인 포산 보당암에 주석하며 수행했다. 그는 22년간 포산의 여러 사찰에 머물면서 특정 신앙이나 종파에 매이지 않고 신앙과 사상 공부에 매진했다. 비슬산에 그의 흔적을 쫓아 대견사, 유가사 등의 사찰과 함께 일연 시비와 동상이 세워져 있다.일연선사가 14세에 머리를 깎고 본격적인 불법을 공부하기 시작한 설악산 진전사의 삼층석탑. 44세에 정안이 설립한 남해 정림사에 초청되어 주법이 되었다. 고종 46년, 54세에 일연은 대선사가 되었다. 2년 뒤 56세에 왕명을 받아 강화 선월사에서 활동하게 되었다.달성군 비슬산 자락에 세워진 일연선사 동상. 원종 5년 1264년에는 영일 운제산 오어사 주법으로 있다가, 다시 포산 인홍사(仁弘寺)로 옮겼다. 1274년 인홍사를 중수해 사액을 받아 인흥사(仁興寺)로 개명했다.또 포산 동쪽에 있는 용천사를 중수해 불일사로 절 이름을 바꾸고 수행을 이어갔다. 일연선사가 머물면서 삼국유사를 집필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청도 운문사. 충렬왕 3년, 72세에 왕명을 받아 운문사에 주석하면서 선풍을 높였다. 특히 운문사에서 삼국유사를 썼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지만, 운문사에는 그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충렬왕 8년에는 개경의 광명사에서 주석하기도 했다. 그다음 해 일연은 원경충조(圓徑冲照)라는 호를 받으면서 국존으로 책봉됐다. 국사가 아닌 국존으로 책봉한 것은 원나라가 쓰는 국사 칭호를 쓰지 못하도록 간섭했기 때문이다.군위 인각사에 남은 일연선사부도비. 일연은 1283년 78세에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군위 인각사로 내려왔다. 일연은 인각사에서도 2회에 걸쳐 구산문도회를 개최했다. 이는 가지산문을 중심으로 불교계의 교권을 확보하고자 하는 의미가 깊은 것으로 해석된다.군위 인각사 국사전에 안치된 일연선사의 진영. 일연은 충렬왕 15년, 1289년 7월 84세의 일기로 인각사에서 입적했다. 인각사에 머무른 지 6년 만의 일이다. 보각국사 일연선사의 진영을 안치하고 있는 인각사의 국사전. 삼국유사는 일연의 사후 보각국사로 추증되면서 청분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청분은 삼국유사에 무극으로 등장하는 일연의 제자로 전해지고 있다. 무극은 일연의 사후에 행장을 지어 충렬왕에게 바치는 등 일연을 추종하면서 일연이 입적한 해에 운문사 주지직을 맡은 인물이다. ◆보각국사비일연이 입적하고 6년이 지난 1295년, 그가 입적한 인각사에 ‘보각국사비’가 건립됐다. 일연의 제자 혼구, 무극, 청분으로 불리는 스님의 행장으로 민지가 짓고 왕희지의 글씨를 집자해 비명을 새겼다. 비의 뒷면에 진정대선사 청분(무극)이 세운 경위를 적고, 문도와 단월들의 이름을 열거한 음기를 새겼다. 비문에는 일연의 저술로 ‘어록’ 2권, ‘게송잡저’ 3권, ‘중편조동어위’ 2권, ‘조파도’ 2권, ‘제승법수’ 7권, ‘대장수지록’ 3권, ‘선문염송사원’ 30권, ‘중편조정사원’ 30권 등 100여 권이 기록되어 있다.일연선사비의 탁본이 발견되면서 전체 글자를 알게 됐다. 비가 발견되었던 곳에 복원해 세운 인각사의 일연선사비. 이 가운데 ‘중편조동오위’가 일본에서 발견돼 삼국유사와 함께 유일하게 현존하는 일연의 저술로 남아있다. 비문의 말미에 “스님은 사람됨이 성품을 꾸미지 않았으며 진정으로 사물을 대하였다. 무리 가운데 있으면서도 홀로 있는 듯하였고, 존귀함과 비천함을 같이 생각하였다. 불도를 닦는 여가에 대장경을 열람하고 여러 전문가의 주석을 깊이 연구하였다. 겉으로 유가의 책을 섭렵하고 겸하여 백가를 꿰뚫었으니, 처방에 따라 사물을 이롭게 하고 신묘한 쓰임이 종횡무진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보각국사비는 보물 제428호로 지정돼 현재 군위 인각사에 보존되고 있지만, 많이 훼손된 상태여서 일부 비문을 겨우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왕희지 글씨가 희귀하여 너도나도 탁본하면서 훼손이 크게 진행되었다. 임진왜란 때 왜병들이 파손을 자행했다는 기록도 전한다. 다행히 탁본이 발견되면서 비문의 전문을 새긴 ‘보각국사비’를 복원해 처음 발견되었던 곳에 세워 후인들이 기념할 수 있게 했다. ◆비슬산과 설악산 진전사일연선사 수행의 길은 비슬산과 진전사에서 찾아야 한다. 9세에 무량사에서 공부를 시작했지만, 본격적인 수행은 14세에 머리를 깎고 설악산 진전사에서 대웅장로로부터 구족계를 받아 본격적인 승려의 길을 걸었으며, 비슬산에서 22년간이나 수도 정진했기 때문이다. 설악산 진전사는 통일신라 헌덕왕 821년 도의국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신라말에서 고려 초에 선종의 종찰이자 당대의 선승 염거화상, 보조국사 등이 득도한 곳이다. 일연선사가 체발득도한 선종의 대본찰로 기록되고 있다. 1467년까지 존속되었던 것으로 전해지지만, 일제강점기에 둔전사로 불리어 오다 발굴조사에서 진전사라는 기와편이 발굴되면서 현재 터가 재확인되었다. 국보 제122호인 진전사지 삼층석탑과 보물 제439호 도의국사의 부도탑이 남아있다.일연선사가 가장 오래 머물렀던 비슬산. 그 계곡에 마치 예술작품 같은 얼음이 얼어 장관이다. 일연은 22세에 승과에 합격한 이후 비슬산에서 22년간 머물며 보당암, 무주암 등에서 깨우침을 얻고, 4개소의 암자와 절에서 수행을 이어갔다. 지금 비슬산에는 대견사가 있다. ‘크게 보고’, ‘크게 느끼고’, ‘크게 깨우친다’는 뜻이다. 신라 헌덕왕 때 810년 보당암으로 창건했는데, 조선 세종 때 대견사로 개칭되었다. 일연선사가 22세에 주지로 주석했던 곳이라 전한다. 대견사는 일제강점기 1917년 일본의 기를 꺾는다는 속설에 따라 강제 폐사되었다. 100여년 동안 폐사지로 방치되어 오다가, 2012년 동화사와 달성군 협약으로 정식사찰로 재등록해 호국사찰로 복원되었다. ◆운문사운문사는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운문산 기슭에 있다. 청도군에서 동으로 약 40㎞ 지점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9교구 말사이다. 청도군에 속해 있으나 교통 편의상 대구와 생활권이 밀접해 있고, 경주와 울산 등지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일연선사가 머물면서 삼국유사를 집필했다는 청도 운문사 입구의 소나무 숲길. 신라 진흥왕 21년인 560년에 한 신승에 의해 창건돼 원광국사, 보양국사, 원응국사 등에 의한 제8차 중창과 비구니 대학장인 명성스님의 제9차 중창불사에 의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경내에는 천연기념물 180호인 처진 소나무와 금당 앞 석등을 비롯한 보물 7점을 소장하고 있는 유서깊은 고찰이다. 사찰 주위에는 사리암, 내원암, 북대암, 청신암 등 4개의 암자와 울창한 소나무, 전나무 숲이 있어 이곳의 경관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특히 운문사는 신라 삼국통일의 원동력인 ‘세속오계’를 전한 원광국사와 일연 선사가 오랫동안 머물면서 삼국유사를 지었다는 내력으로 더욱 유명하다. 지금은 260여 명의 학승이 4년간 경학을 공부하는 우리나라 최대의 비구니 교육기관이 자리한 사찰이다. 높이 1천188m 고지로 태백산맥의 가장 남쪽에 있는 운문산은 동으로 가지산, 남으로 재약산, 영축산 등과 이어져 있어, 산악인 사이에 ‘영남의 알프스’라 불리고 있다. 운문산은 산세가 웅장하며 나무들이 울창하여 등산객이 많이 찾는다. 이곳에는 운문사를 비롯한 크고 작은 절과 암자가 있고, 주변 경관이 매우 아름답다. 일연선사가 운문사에 주석하면서 삼국유사를 집필했다는 연구보고서들이 나오고 있지만, 운문사에는 이렇다 할 일연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 ◆인각사인각사는 군위군 고로면 화북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절터로 전해지면서 사적 제374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인각사의 옛터는 남북이 좁고 동서는 넓은 평지를 이루는 곳에 있었는데, 현재의 사찰 경내는 좁고 좌·우측에 있는 넓은 평지는 밭으로 경작되고 있다. 인각사는 신라시대 선덕여왕 12년인 643년에 원효(元曉)가 창건했다. 절의 입구에 깎아지른 듯한 바위가 있는데, ‘기린이 뿔을 이 바위에 얹었다’고 하여 절 이름을 ‘인각사’라 하였다고 전한다. 1307년(충렬왕 33년)에 일연이 중창하고, 이곳에서 삼국유사를 저술했다고 일부 학자들과 군위군은 주장하고 있다. 당시 이 절은 크고 높은 본당을 중심으로 그 앞에 탑, 좌측에는 회랑, 우측에는 이선당(以善堂), 본당 뒤에 무무당(無無堂)이 있었다고 한다. 일연은 이곳에서 총림법회 등 대규모의 불교행사를 개최했다. 조선 중기까지 총림법회를 자주 열고, 승속(僧俗)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하나 그 뒤의 역사는 전하지 않는다. 지금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의 말사로 등록되어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법당과 2동의 요사채뿐이다. 중요문화재로는 보물 제428호로 지정된 인각사보각국사탑과 비가 있다. 일연선사비는 임진왜란의 병화 등으로 글자의 훼손이 심해 알아보기 어렵다. 법당 앞에는 신라시대 삼층석탑이 있다. 탁본이 발견되면서 비문의 전문을 알게 돼 절의 동남쪽에 일연선사비를 복원해 세워두고 있다. -------------------------------------------------------------------------------------------*작가 일연의 생애(표 작성)-1206년(고려 희종 2년) 경산에서 태어났다.아버지는 지방토호 김언필, 어머니 이씨-1214년 9세에 광주(또는 영일, 영해지역) 무량사에 들어가 학업 시작,-1219년 14세 설악산 진전사의 대웅장로부터 구족계 받음.-1227년 22세에 승과에 합격, 현풍 비슬산 보당암-1237년 32세 포산(비슬산) 무주암에서 ‘생계불감 불계불증’을 화두로 깨달음을 얻었다.-1249년 44세 남해 정림사 주법나라에서 삼중대사, 선사(41),-1256년 54세 대선사가 됨-1261년 56세 강화 선월사 주지로 부임-1264년 59세 운제산 오어사, 포산 인흥사, 불일사(용천사), 인흥사에 주석-1277년 72세 운문사 주지 취임, 1277년 삼국유사 저술 시작 1281년 1차 완성.-1283년 78세 인각사 선도 정진하며 후학의 교육-1289년 84세 입적(인각사)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신비롭고 초현실적인 ‘민중의 역사서’…경주 곳곳 그 무대 속으로

경주는 ‘뚜껑 없는 박물관’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인식될 정도로 역사문화유적이 가득하다.삼국유사 저자인 보각국사 일연선사의 진영. 군위군 고로면 인각사 국사전에 안치되어 있다. 수많은 역사문화 유적과 함께 재미있는 신화와 전설도 많다. 이러한 화려한 역사문화자원으로 ‘세계유산도시 이사국’이라는 이름을 얻고 있다. 하지만, 정작 세계적인 역사문화 도시라는 이름과는 달리 세계에서 찾아오는 관광객들의 발길은 그렇게 많지 않다. 널린 구슬을 꿰어 보배로 만들 스토리텔링, 즉 문화콘텐츠 사업이 부족하다는 것이 큰 이유 중의 하나다. ‘삼국유사 기행’은 삼국유사에 기록된 전설적인 이야기의 현장을 기행단과 함께 직접 찾아가 역사적 사실들을 추적해본다.새로운 시각으로 책에 소개된 내용을 살펴보고, 이야기를 재구성 스토리텔링으로 소개한다.삼국유사 이야기의 현장을 찾아 역사를 더듬어 보는 기행단들이 박혁거세가 태어났다는 나정에서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기행은 카페를 운영하면서 삼국유사 공부팀을 구성해 함께 답사하며 정보를 교류해 새롭게 삼국유사를 써 나가는 방법으로 삼국유사 이야기를 문화산업 자원화할 계획이다.이러한 작업이 영화, 뮤지컬, 소설, 수필 등의 문화산업을 융성하게 하는 하나의 문화콘텐츠를 개발하는 실마리가 될 것이라 기대하며 삼국유사 기행을 시작한다. 기획연재에 앞서 삼국유사가 어떠한 책인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를 알아보고, 작가 일연선사가 걸었던 길을 먼저 추적해 본다. ◆삼국유사의 편찬 동기삼국유사는 고려 후기 충렬왕 때에 일연이 기록한 개인 저술이다. 삼국의 정사에 기록되지 아니한 일들을 기록했다는 것에도 의미가 깊다. 몽고침략의 극복과 붕괴된 사회질서의 유지를 위한 의도가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삼국유사는 국민의 분노와 저항의식의 심화로 빚어진 산물이기도 하다. 삼국유사가 기록될 무렵, 몽고 침략으로 30년에 걸친 전쟁으로 백성의 고뇌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한 상황이었다. 삼국유사 전편에 민족사의 자주성과 문화의 우위성을 강조하는 관념이 드러나는 것도 이러한 관점에서 출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단군을 민족공동의 시조로 하여 중국역사의 시작이라는 요임금과 같은 시대로 인식하고, 단군 이후 이어지는 국가들의 계통을 분명히 밝히지는 않았지만, 고조선에서 위만조선, 마한, 부여, 삼국시대로 맥을 잇고 있다. 이는 중국에 대한 역사의 대등성, 자주성을 역설하고 있다. 원의 압제를 뿌리칠 수 없게 되었던 당시 현실에서 저항적 민족의식의 표현으로 해석된다.삼국유사 저자 일연선사의 유적을 전시하고 있는 경산 삼성현전시관의 삼국유사 복사본. 삼국유사 전편에 짙게 드러나는 불국토 사상도 저항적 민족의식으로 풀이된다.이 땅이 부처와 인연이 깊은 나라라는 사실을 강조해, 침략해온 몽고족에 비해 문화적으로 우월하다는 것을 확인시키려 한 것이다. 고려의 불교문화가 중국보다 앞선 것이라는 자부심과 긍지를 표현했다. 또 불국토사상을 통해 몽고민족에 대한 저항의식을 드러내 불국토는 침략자로부터 보호돼야 한다는 생각을 유포시켰다. 이러한 생각은 고려 귀족들과 민중들을 하나로 묶는 끈으로 작용하게 했다. 또 한 가지, 불교의 윤회사상을 넘어선 정토신앙이 있다. 정토신앙은 모든 번뇌와 망상만 끊어진다면 현재 살고 있는 현실이 정토이고, 정토는 죽은 뒤에 다시 태어나는 곳이다.이를 통해 비극적인 현실에도 방관적인 태도를 취함으로써 기존체제의 유지에 도움을 주었다. ◆삼국유사 내용삼국유사를 크게 단락별로 나누어 읽어보면 책을 펴낸 동기를 짐작하기 쉽다. 삼국유사는 전체 5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5권은 다시 9편으로 나누어져 사건과 사실들을 유형별로 기술하고 있다.일연선사가 삼국유사를 쓴 곳이라고 전해지는 청도 운문사의 신라시대 삼층석탑. 1편은 ‘왕력편’으로 신라 건국시기부터 고구려, 백제, 가락, 후고구려, 후백제, 다시 고려의 통일까지 왕대와 연표를 도표식으로 표시하고 있다. 위쪽에는 중국의 역대 왕조와 연호를 제시해 시대적인 기준을 비교할 수 있게 했다. 2편은 ‘기이 59조’로 구성됐다. 고조선에서 고려 건국 이전까지 존재했던 국가의 건국설화를 서술하고 있다. 또 무속 및 불교설화를 통해 우리민족의 고대 정신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있다.한편으로는 민족의 현실적인 삶의 기반인 국가의 흥망을 불교적 시각에서 이해하려 했다. 이런 점에서 ‘기이편’은 삼국유사 전체의 서론적 성격과 총론으로 해석된다. 3편 ‘흥법’부터는 각론이면서 본론이라 할 수 있다. 흥법은 6개 조로 구성돼 삼국유사의 중심이자 본론격인 불교사 관계의 시작인 불교의 전래와 수용, 진흥에 대한 사실들을 기록하고 있다.삼국유사의 저자 일연선사가 가장 오랜 기간 머물렀던 달성군 비슬산의 보덕암으로 알려지는 대견사 삼층석탑. 4편 ‘탑상’은 31개 조로 구성돼 절과 탑, 불상이 건립된 유래와 영험 등에 대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불교가 흥함에 따라 불상이 조성되고, 탑이 건립된 유래 등을 읽을 수 있다. 삼국유사가 지향하는 불국토 구현에 대한 내용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5편 ‘의해’는 14개 조로 원광법사, 양지스님, 혜숙과 혜공, 자장, 원효, 의상, 사복, 진표, 법해스님 등 고승들의 행적을 통해 불법을 이해하도록 설명하고 있다. 6편 ‘신주’는 3개 조에서 밀본이 귀신들을 쫓아내고 혜통이 용을 항복시키는 등의 신을 감동시키고 신을 통해 목적을 달성하려는 주문이다. 불교의 사회화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7편 ‘감통’은 10개 조에서 불교 신앙의 기적들을 소개한다. 스님이 아닌 보통사람들의 신비체험이나 종교적 실천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선도산 성모, 광덕과 엄장, 월명사의 도솔가, 김현과 호랑이의 사랑이야기, 융천사의 혜성가 등의 내용이 전설로 소개된다. 8편 ‘피은’도 10개 조로 숨어 사는 사람에게 내재되어 있는 능력과 가치를 주제로 하고 있다. 스님들이 숨어 사는 것은 도를 구한다는 의미를 지닌 것으로 피은을 통해 신기로운 사건이 발생하고 중생의 감화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소개한다. 9편 ‘효선’은 5개 조로 세속적 윤리인 효와 종교적인 신앙인 선과의 관계를 정립하고, 불교적 윤리실천을 이루기 위한 편으로 해석된다. 윤리적인 효와 불교의 선은 갈등과 충돌이 일어나는데, 이를 해결하고 조화시켜 주는 내용으로 서술되어 있다. ◆삼국사기와 비교삼국유사와 삼국사기는 140년의 차이를 두고 제작된 우리나라 고대사를 증명하는 최고의 역사서로 손꼽힌다. 그러나 기술방법이나 사관 등에서 엄연히 차이가 나는 부분이 많다.삼국유사의 저자 보각국사 일연 선사의 진영을 모신 군위 인각사의 국사전. ‘삼국사기’는 김부식 외에 10여 명의 편찬위원이 왕명을 받아 저술한 정사로 분류된다. ‘삼국유사’는 일연이 개인적으로 체험과 연구를 통해 기술한 사찬서라는 점이 다르다.삼국유사에 기록된 향가를 소개하는 경산 삼성현전시관의 헌화가 영상. 편찬 목적에서도 비교된다. 삼국사기는 ‘묘청의 난’으로 분열된 민심을 수습해 국왕 중심의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하고, 대륙의 강자 금과의 관계에서 유연한 평화적 외교술로 안정을 찾으려고 편찬했다.삼국유사는 기존체제의 안정을 통한 혼란 수습과 원나라(몽고)의 침략에 대한 정신적 극복을 위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 때문에 유교의 합리주의보다는 신비적이고 초현실적인 내용으로 편성됐다. 서술형태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삼국사기는 중국 정사의 표준체인 기전체로 미려한 문장으로 기술됐다.삼국유사는 자유로운 형식으로 전체적인 구성은 기전체와 비슷하지만, 흥법 등은 열전 형태로 쓰였으며 소박하다.삼국유사가 쓰여진 곳으로 전해지는 청도 운문사 입구의 소나무 숲길. 내용면에서도 차이가 있다. 삼국사기는 정사로서 왕실, 통치자 중심의 사료가 주요 편집 대상이다. 정치, 제도, 인물 중심의 역사를 기술했다.삼국유사는 귀족이나 민중 제약 없이 광범위하게 사료를 수집해 기록했다. 특히 삼국사기는 고구려, 백제, 신라 3국의 역사만 기록했지만, 삼국유사는 고조선, 부족국가, 삼국시대 등을 기록해 우리의 상고사를 소개하고 있다. ◆삼국유사에 대한 평가삼국유사는 오랫동안 정사가 아닌 야사로 분류돼 상대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다가 20세기에 들어와 한국의 고대문화를 총체적으로 담은 사서로 평가받기 시작했다.그러면서 오래전부터 불교와 인연이 깊은 땅이라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몽골보다 문화적으로 우월함을 확인하고, 혼란한 민심에 강렬한 신앙심을 고취하려는 문화의식을 고취한 기록이다.일연선사가 가장 오래 머물렀던 달성 비슬산 유가사의 일연선사 시비. 삼국유사는 새로운 고대사를 체계화해 민족의식을 특별히 고양하려 했다. 중국과 대등한 뿌리가 깊은 민족이라는 자긍심과 자부심을 강조하고 있는 민족적 문학서 이기도 하다.특히 한국사의 통사를 서술하는 실마리를 마련해 우리나라 최초의 통사서라 할 수 있는 조선왕조 동국통감을 편찬하는 데 큰 도움이 된 사료라 평가된다. 조계종 정윤 스님은 “중국의 ‘사기’는 역대 중국 정사의 모범이 된 기전체의 효시로써 2천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중국사에서 역작으로 꼽는다.이런 저력을 발휘한 인물은 그 나라의 보배”라며 “우리나라는 바로 일연스님이 이에 해당한다”고 평했다. 이어 “일연이 저술한 삼국유사는 민중의 역사서로 한국의 위대한 문화유산”이라 강조했다.일연선사가 직접 주관했다는 팔만대장경. 일연이 활동하기 이전은 무신정변이, 활동하는 무렵에는 몽골의 침입을 받아 30여 년간 삼별초항쟁 등이 있었고, 민란으로 이어지는 혼란의 시대였다. 게다가 고려 특권층 중에는 원나라에 사대주의 세력을 가진 이들이 있었다. 이 때문에 고려는 점차 원나라 지배하에 독립국으로서의 자주성을 잃어가고 있었다. 이런 시대에 일연은 ‘삼국유사’를 저술해 고려인들에게 정신적 지주를 제시해 주었다.민족의 원류가 ‘단군’일 뿐만 아니라, 삼국의 뿌리가 모두 하늘과 연결된 태생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민족성을 찾고, 문화전통을 재인식하려는 자존이라고 본다. ◆참고문헌삼국유사 기행을 연재하면서 삼국유사 해설은 다음 작가들의 서적, 논문과 경북대학교 주보돈 명예교수와 경주남산연구소 김구석 소장 등의 해석을 참고한다.삼국유사 기행에 참고서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삼국유사 해설서들.-삼국유사의 종합적 해석 상, 하(이범교, 민족사)-삼국유사(고운기, 홍익출판사)-삼국유사 1, 2, 3(최광식, 박대재, 고려대학교출판부)-청소년을 위한 삼국유사(김원중, 민음인)-불국토를 꿈꾼 그들(정민, 문학의 학문)-만화 삼국유사(유영승, 녹색지팡이)-경북대학교 주보돈 명예교수의 해석-경주남산연구소 김구석 소장의 해석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투명성·보안·신뢰 ‘무장’ 혁신 몰고 온 블록체인 세상을 변화시킨다

블록체인은 쌍방향을 지향하는 P2P 방식을 적용해 금융과 화폐 시스템의 대체역할과 공공재와의 연결고리적 임무까지 수행이 가능하다.블록체인의 최상위 명분은 ‘신뢰’와 ‘보안’이다. 해킹의 리스크가 절감되고 무엇보다 기존 데이터 관리기관에 드는 비용이 줄어드는 장점이 있다.블록체인은 ‘전자투표 현실화’의 전제조건을 내걸고 정치권에 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 블록체인 장점을 통해 안전한 거래가 가능하기 때문에 전자투표에 안성맞춤이다.비트코인의 시스템은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한다. 일본인 사토시 나카모토에 의해 고안된 비트코인은 2008년 불어 닥친 글로벌 금융위기의 대안으로 탄생했다. 서류 없이 부동산을 거래한다. 블록체인으로 이른바 ‘상품권 깡’을 방지하고 블록체인을 이용한 암호화폐 결재·송금 플랫폼이 쏟아져 나온다. 광물자원을 블록체인이 추적하며, 증권사는 블록체인으로 해외송금을 시도한다.블록체인과의 기술융합으로 에너지의 신속하고 안전한 거래가 가능해진다. 블록체인은 ‘전자투표 현실화’의 전제조건을 내걸고 정치권에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 블록체인에 관한 잠재 가능성은 응당 고무적이다.이처럼 블록체인 기술은 사회 저변으로 빠르게 스며들고 있다.앞서 블록체인의 기술적 이슈는 바로 ‘암호화폐’였다. 이를 토대로 전 방위적 응용이 가능한 4차 산업혁명의 근간으로 블록체인은 그 메리트를 한껏 축적해 왔다.하지만 이제 암호화폐는 블록체인의 부분적 요소일 뿐, 총체적 명분은 분명 아니다. ‘빙산의 일각’이라는 것이다. 블록체인을 ‘보안’으로 통칭해보자. 보안 적 신뢰를 구축하고자 한다면 ‘속도’싸움에도 주력해야 한다. 블록체인을 고유명사가 아닌, 하나의 ‘산업’으로 보자는 말이다.블록체인 역시 앞서 연재에서 다뤘던 ‘5G’ 기술과 그 궤를 함께한다. ‘융합’, ‘초연결’이라는 대동소이한 명분을 내포한다는 것이다. 실제 세계 최고의 유통업체인 ‘월마트’는 블록체인 기술과 사물인터넷(IoT)을 융합, 각종 육류의 사육 프로세서와 육질, 위생 상태를 관리·감시하고 있다.블록체인은 기존 편향적 서비스 방식을 타파, ‘시스템적 기술력’을 바탕으로 신뢰를 확보한다. 블록체인은 면대 면의 쌍방향을 지향하는 P2P(개인 간 거래) 방식을 적용, 별도의 서버나 브릿지 없이 컴퓨터와 컴퓨터 사이를 연계한다.연계된 개별의 컴퓨터는 그 자체로 주체적 역할을 영위, 이를 통해 금융과 화폐 시스템의 대체역할뿐 아니라, 공공재와의 연결고리적 임무까지 수행이 가능하다.블록체인은 분명 4차 산업혁명의 중심 요소 중 하나임은 쉬 부정할 수 없다. 블록체인 활성화를 통해 투명성과 신뢰를 제고, 이를 통해 사회혁신의 촉매제 역할을 할 것이라는 데도 별다른 이견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비육지탄이라는 말이 있다. 성공할 기회를 잃고 허송세월을 보낸다는 뜻이다. 4차 산업의 모든 새로운 분야는 기회의 적절한 활용도에 따라 그 가치의 엄청난 괴리를 선사할 것으로 보인다. 단지 선점의 의미만은 아니다. 블록체인에 관한 성공적 기회를 잡고 싶다면 전 방위적 고찰과 섬세한 전략수립이 필수다. ◆블록체인의 장점은 ‘신뢰와 보안’2018년은 비트코인 탄생 10주년이 되는 해였다. 비트코인의 시스템은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한다. 일본인 사토시 나카모토에 의해 고안된 비트코인은 2008년 불어 닥친 글로벌 금융위기의 대안으로 탄생했다. 2017년 말부터 가격이 급등하며 비트코인은 화폐의 또 다른 이름으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그렇다면 블록체인이란 과연 무엇일까.블록체인의 블록은 ‘소규모 데이터’를 뜻한다. 이 같은 작은 데이터를 체인화, 불특정다수의 분산저장을 창구화한 후, 데이터의 각종 불법행위를 미연에 감지해 내는 시스템이다. 여기서 사용되는 것이 바로 ‘분산데이터베이스’ 기술이다.블록체인의 최상위 명분은 ‘신뢰’와 ‘보안’이다. 별도의 중개자 없이 참가자(노드) 공동으로 기록·검증을 영위한다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블록체인은 업무의 효율성을 지향한다.중앙 탈피 적 분산식 업무를 적용, 노드 개별로 기록 원장 등을 보관 후, 보관된 자료는 새 거래 내역에 반영해 갱신 시 적용하게 된다. 해킹의 리스크가 절감되고, 무엇보다 기존 데이터 관리기관에 드는 비용이 줄어드는 장점이 있다.블록체인의 위·변조 방지 기능이 대두됨에 따라 파생 가능한 산업군 역시 늘어가는 추세다. 초연결을 통한 경제적 가치가 무궁무진할 것이라는 기대심리의 발로다. 의료, 금융, 콘텐츠 등 일일이 열거하기에도 쉽지 않을 정도다.이 같은 시류는 ‘글로벌 사이버 패러다임’의 변혁과도 일맥상통한다. 기존 중앙 집중방식에서는 중앙기관의 오류로 인해 모든 노드가 피해를 받는 구조였다. 하지만 P2P 비즈니스는 개별의 노드가 투명성을 전제로 각종 리스크를 현저히 낮춘다.현재 블록체인 시장은 데이터를 세분화해 속도를 높이는 ‘샤딩’ 방식과 체인저장 기록을 최소화시키는 ‘플리즈마’ 기술 도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 기술이 상용화될 시 기존 블록의 속도 대비, 100배 이상 빨라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블록체인과 5G의 초 연계성을 찾아내는 항해, 바로 지금부터다.블록체인은 크게 프라이빗과 컨소시엄, 퍼블릭형으로 나뉜다.프라이빗 블록체인은 노드의 제한을 둔다. 소유자가 분명 존재하고, 소유자에 의해 허락된 노드만이 네트워크로의 입장이 가능하다.소유자 입장에서의 노드 컨텍이 영위되다 보니 처리속도가 한층 더 제고되고 이를 통해 개별이 아닌 기업화 블록체인 구성이 용이해진다. 또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소유자 니즈에 따라 여러 방식의 구동제어가 가능하다.컨소시엄 블록체인을 두고 애매한 포지션이라고 일컫는 목소리가 있다. 다름 아닌 컨소시엄 블록체인이 프라이빗과 퍼블릭의 중간적 형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메리트만은 결코 애매하지 않다.컨소시엄은 프라이빗과 달리 소유자가 컨택한 노드들이 구동 권한을 갖는다. 당연히 분산구조를 차용하며, 프라이빗과 마찬가지로 한정된 노드의 참여로 보안적 리스크는 현저히 낮다. 더욱이 퍼블릭의 맹점으로 지적되는 거래 속도 지연과 확장성 문제를 일정 부분 해갈함에 따라 금융사 간 ‘트랜잭션’으로의 활용도가 높은 편이다.퍼블릭형 블록체인은 프라이빗과 컨소시엄에 비하면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일부 암호화폐 거래소를 차치한다면 퍼블릭형을 개발하는 공급업체는 그리 많지 않다. 당연히 기술적 요소 및 인프라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퍼블릭형은 개발자와 채굴자, 서비스 개발자, 거래소 등으로 구성된다.정부 차원의 빅 데이터 관련 산업은 과거의 견지적 자세를 일정 부분 희석시켜가며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국토교통부는 ‘부동산 거래 블록체인 시범사업’의 캐치프레이즈로 토지대장을 국토부 이하 각 지자체, 금융결제원이 더불어 보유할 수 있는 시스템 개발에 나섰다.식품의약품안전처는 블록체인 기술이 접목된 ‘전자증명시스템’을 구축, 수출국에서 파생된 식품위생증명서를 통해 위·변조의 원천 차단을 예고하고 있다.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블록체인 기반의 ‘온라인 선거시스템’을 도입했다. 블록체인의 아이덴티티기도 한 신뢰와 투명성을 바탕으로 유권자 인증, 투표결과 저장 및 검증 과정을 블록체인 기술에 투영한다. 우선 국가 단위가 아닌 민간분야의 범주로 시범 운영 뒤, 테스트 결과에 따라 적용 범위를 점차 확대해나간다는 방침이다. ◆4차 산업의 핵심기술 중 하나블록체인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우리 정부는 오는 2022년까지 글로벌 블록체인 시장이 2019년 대비 10배 이상의 성장세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이에 정부는 블록체인의 기술력 보강 90% 초과 달성과 투자금액 300억 원이라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유수의 경제전문가들 역시 10년 내 블록체인의 경쟁률을 세계 GDP의 10%에 달할 것으로 예측하고 나섰다. 시나브로가 아닌 말 그대로 블록체인의 ‘파괴적 혁신’을 기대하는 것이다.블록체인이 미래의 확실한 먹거리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선 자유 시장 내, 선의의 경쟁력 제고에 주력해야 한다.이를 위해선 우리나라를 넘어 범세계적 (블록체인 시장)동향을 면밀히 검토, 이에 따른 올바른 정책 수립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물론 어떠한 산업군이라도 ‘인간을 위함’이다. 소비자 보호를 위한 규제 역시도 시장경제를 저해하지 않는 선에서 구축해 둘 필요가 있다.서두에서 언급했듯 블록체인은 이제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블록체인은 보안을 바탕으로 한 신뢰의 영역이자, 이를 구축하기 위한 속도 경쟁에 나서야 함이 마땅하다.물론 일각에서는 블록의 속도성이 제고될수록 그 안전성이 절감된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블록의 속도가 높아질수록 트랜잭션의 확인 시간은 자연스레 단축된다.이는 곧 정보유입 간 불균형 해소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일부 노드의 이기가 발생한 다 손 치더라도 단시간 내 정도로의 유입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블록체인의 속도제고에 역량을 집중시켜야 할 당위다.기술은 진일보한다. 블록체인은 진일보의 갈림길에 서있다. 선점의 문제만이 남은 것이다. 블록체인이 가진 투명성과 보안, 신뢰 등의 메리트는 속도와의 초연결을 영위함에 따라 산업 전반으로 무시 못 할 파급효과를 낳을 가능성이 농후하다.그러기 위해선 ‘융합’이 선행돼야 한다. 기술과의 단순 융합을 넘어 인간과의 융합, 현실과의 적절한 접목과 조율이 수반돼야 할 것이다.글·사진=군월드 IT 사업팀김종윤 기자 kjyun@idaegu.com

외부활동 늘어나는 봄철…미세먼지·황사에 눈 건강 비상

연일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추운 겨울이 가고 날이 따뜻해지며 외부활동이 증가하는데, 미세먼지나 황사,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알러겐 등으로 눈 건강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3월 백내장, 안구건조증 환자수 최대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최근 3년(2015~2017년) 통계에 따르면 3월에 백내장과 안구건조증 환자 수가 가장 많았다.누네안과병원 임성아 원장은 “외부 활동이 많아지는 봄철에 미세먼지, 황사 바람과 같은 환경적 요인이 더해지면서 특히 3월에 안구건조 환자가 많아진다” 며 “시야가 뿌옇게 보이는 현상은 백내장과 안구건조증에 모두 나타날 수 있다 보니 비슷한 불편함을 느끼고 안과를 방문했다가 백내장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백내장∙안구건조증 동시 환자 많아나이가 들면 눈물샘에서 나오는 눈물의 양이 줄어들어 안구를 보호하는 윤활유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이런 이유로 노인들에게 안구건조증이 더 자주 나타나는데 백내장 수술은 대표적인 노인성 질환인 만큼 백내장과 안구건조증을 함께 겪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백내장 환자가 안구건조증을 치료하지 않고 백내장 수술을 하면 수술이 잘 되어도 눈이 불편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임성아 원장은 “안구건조증을 가지고 있는 백내장 환자라면 수술 전 안구건조증을 치료하는 것이 수술 후에도 눈을 보다 편안하게 유지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다”며 “수술 전 안구건조증을 미리 치료하지 못했다면 수술 후 관리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보통 수술 후에는 겁이 나서 눈 주변을 제대로 만지지도, 씻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경우 속눈썹 부분에 노폐물이 쌓이게 된다.수술 후 일주일 째부터는 집에서 눈 온찜질과 눈꺼풀 청소 등을 병행하면 회복에 도움이 될 수 있다.온찜질을 5분간 하고 시중에 판매하는 눈꺼풀 세정제 등으로 눈꺼풀 위, 아래를 깨끗하게 닦아주면 안구건조증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다.또 수술 후 한 달쯤 지난 후에는 약간의 압박을 가하며 마사지를 해주는 것도 좋다. 압박을 가하면 눈꺼풀 기름샘에서 분비물이 잘 배출돼 더욱 깨끗하게 닦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IPL레이저’와 ‘리피플로’ 등의 전문 치료 가능안구건조증 발병 원인은 환경적 요인을 비롯해 전신적 요인까지 복합적으로 얽힌 경우가 많다.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안구건조증이 나타나는 이유가 눈물 생성의 부족 때문인지 또는 눈 기름샘 상태나 불완전 깜빡임 여부 때문인지 등을 검사해 알맞은 치료를 해야 재발 가능성이 줄어든다.안구건조증 증상이 경미할 때에는 인공눈물만으로 치료하기도 하나 일상 생활에 불편함을 느낄 정도라면 보다 근본적이며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최근에는 안구건조증 치료의 신의료 기술로 추가된 IPL레이저와 FDA 허가를 받은 리피플로 치료 등도 비교적 많이 진행된다.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평상시의 눈 주변 청결 유지이다.매일 세수하듯 눈꺼풀 청소를 해주는 것이 좋다.5~10분 정도 온찜질이나 따뜻한 물 세안으로 눈꺼풀에 묻어있는 기름진 분비물을 녹여준 후 약간의 압박을 가하며 속눈썹 방향으로 밀듯이 마사지를 해주면 도움이 된다.면봉 타입의 눈꺼풀 세정 용품 등으로 아래위 속눈썹 부위의 기름샘 입구를 닦아내는 것도 효과적이다.외부 환경에 항상 노출됐지만 관리를 소홀히 하기 쉬운 것이 눈이다.눈에 불편함이 느껴진다면 주저하지 말고 안과를 찾아 검진과 진료를 받는 것이 빠른 치료를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도움말=누네안과병원 각막센터 임성아 원장 아래 위만 하시길 바랍니다." data-recommend="안구 건조" title="안구 건조">안구건조증을 완화하는 좋은 방법은 눈의 청결을 유지하는 것이다. 면봉 타입의 눈꺼풀 세정 용품 등으로 아래 위 속눈썹 부위의 기름샘 입구를 닦아내는 것도 효과적이다.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우리동네 자랑8-예천군

충효의 고장인 예천군은 우리나라의 중추지역인 허리 부분이지만, 경북에서는 서북단에 위치한 곳이다. 특히 경북도청 이전으로 인해 획기적인 성장·발전의 발판을 마련하는 등 탄력을 받아 관광산업 활성화에 성장잠재력 큰 지역으로 기대를 받고 있다. 예천군은 크게 백두대간권역, 회룡포·삼강권역, 내성천권역 3개 권역으로 나뉘어 권역별 관광테마 상품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가운데 위치한 예천읍을 중심으로 북쪽 지역에 5개면은 용문사, 금당실마을, 곤충생태원을 잇는 백두대간 권역과 석송령, 예천온천, 예천박물관을 연계한 내성천 권역으로 관광산업의 무게를 두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예천에서는 선조들의 발자취와 얼이 서린 소중한 자산인 전통문화가 담긴 역사체험으로 과거의 숨결을 느낄 수 있으며, 빼어난 청정자연을 고스란히 보존해 온 자연의 선물이 공존함을 느낄 수 있다. 개심사지 오층석탑예천읍 남본리 송포들에 위치한 탑으로 고려 현종 1년(1010)에 조성되었다. 속칭 외남본리 솔개들이라고 불리는 논 가운데 2층 기단 위에 5층으로 조성된 탑이다. 상층 기단 갑석에 탑기가 음각되어 있어 조성 시기와 고려시대 사회제도를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개심사지 오층석탑금당실 전통마을과 송림금당실 전통마을은 조선시대 전통가옥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전쟁이나 천재지변에도 안심할 수 있는 땅으로 조선 태조가 도읍지로 정하려 했던 우리나라 십승지 중 하나다. 마을안길은 아름다운 돌담길로 되어 있으며, 천연기념물 469호인 송림은 더위를 식혀주는 그늘 숲 역할을 하고 있다.금당실 전통마을 송림 초간정 및 원림 조선 선조 15년(1582)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인 ‘대동운부군옥’을 저술한 초간 권문해 선생이 세우고 심신을 수양하던 곳이다. 암반 위에 절묘하게 자리 잡은 초간정은 송림과 한데 어우러져 선비들의 ‘무위자연’ 사상을 엿볼 수 있다.초간정 및 원림 예천곤충생태원예천 곤충생태원은 국·내외 곤충을 한눈에 보고, 직접 만질 수 있도록 꾸며 놓았다. 특히 예천곤충엑스포 개최로 전국적인 곤충생태체험 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자연의 소중함을 느끼게 하는 교육 장소로 각광을 받고 있다. 함포재사이 건물은 안동 권씨 입향조인 야옹 권의와 아들 심언, 손자 시와 욱, 담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해 건립된 재실로 조선시대 건물이다. 건축연대는 망와의 명문에 나타난 건륭 37년 임진년(1772년) 시기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된다. 2003년 경북도 문화재자료 제455호로 지정됐다.함포재사석송령감천면 천향리 석평마을 앞에 서 있는 수령 700년이 넘은 반송으로 천연기념물 제294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나무는 사람 취급을 받아 성이 석이요, 이름은 송령이다. 예천군 토지대장에 석송령 명의로 토지가 등재(등록번호 3750-00248)돼 있어 종합토지세도 부과되고 있다. 이 토지에서 나오는 수익으로 이 동네 학생들에게 장학금까지 지급하고 있다.석송령 보문사 삼층석탑보문면 수계리에 있는 신라시대의 사찰 보문사에 있는 고려시대 석탑으로 경북유형문화재 제186호다.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형성한 고려 전기의 화강석으로 만들어진 일반형 석탑이다. 탑신부의 높이 197cm, 기단부 높이 172cm로 규모는 작으나, 석재를 다듬은 솜씨가 뛰어나고 화려함을 엿볼 수 있다. 선몽대자연과 함께하여 더 아름다운 정자다. 퇴계 이황의 종손자요 문하생인 우암 이열도가 1563년 건립한 정자다. ‘하늘에서 신선이 내려와 노는 꿈을 꾸었다’해서 '선몽대'라 이름 지었다. 정자 내에는 당대의 석학인 퇴계 이황, 약포 정탁, 서애 류성룡, 청음 김상헌, 한운 이덕형, 학봉 김성일 등의 친필시(복제본)가 목판에 새겨져 지금까지 전하고 있다. 선몽대(仙夢臺) 현판은 퇴계 이황의 친필이다.선몽대 물체당조선후기에 세운 주택으로 1984년 국가민속문화재 제174호로 지정됐다. 현 소유주인 임재원의 8대조가 사들인 건물로, 7대조 임노운의 호를 따서 물체당이라고 이름지었다. 구조는 영남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ㅁ자 집이었으나. 앞면 양쪽으로 1칸씩 날개를 달고, 뒷면에도 양쪽 끝에 1칸씩 도장방을 달아 ㅂ자형의 평면구조를 이루고 있다. 회룡포회룡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물돌이 마을로 낙동강 지류인 내성천이 350도 휘돌아 나가는 육지 속의 섬마을이다. 맑은 물과 백사장, 주변을 둘러싼 가파른 산, 그리고 강 위에 뜬 섬과 같은 농촌 마을이 어우러져 비경을 이룬 한국의 전통적 자연 경승지 중 하나다.회룡포 삼강주막낙동강 700리에 마지막 남은 주막. 1900년에 지어진 주막으로 규모는 작지만, 그 기능에 충실한 집약적 평면구성의 특징을 가져 건축역사 자료(경북도 민속자료 제134호)로 희소가치가 높다. 특히 주막의 부엌에는 글을 모르는 주모가 막걸리 주전자의 숫자를 벽면에 칼끝으로 금을 그어 표시해 놓은 ‘가내기’ 문자의 외상 장부가 이색적이다.삼강주막권용갑 기자 kok9073@idaegu.com

해외에 있는 친구가 눈앞에 영화 속 ‘홀로그램 입체 통화’ 머지않아 현실로 다가온다

1. 경북도는 지난해 9월 5G(5세대 통신) 상용화를 위한 ‘스마트서비스 융합밸리 조성을 위한 5G 테스트베드 구축 연구용역’ 최종 보고회를 개최했다. 이 사업은 모두 1천750억 원이 투입된다.메인3. 5G 네트워크망을 이용하면 앞으로 영상통화는 홀로그램을 통한 입체적 통화 구현이 가능해진다.2. 국내 이동통신의 시작은 1984년 한국이동통신의 ‘카폰’이다. 차량용 서비스로 이동 중에 통신이 가능했다. 얼마 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는 모바일 전시회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가 열렸다.MWC는 독일 베를린의 국제 가전박람회(IFA),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국제 전자제품 박람회(CES)와 더불어 세계 3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로 꼽힌다.이 자리에서 모바일 강국의 위상에 걸맞게 대한민국 대형 통신 기업들의 활약은 그야말로 군계일학이었다. 이 중 ‘모바일의 심장’으로 일컬어지는 ‘5G’ 기술은 전시회 간 독보적 화두로 자리 잡았다.과거의 휴대전화는 수·발신의 기능으로 점철됐다. 데이터적 메리트는 논외사항일 뿐이었다. ‘1g의 전쟁’이라는 마케팅 용어가 등장할 정도로 휴대전화의 하드웨어적 부분에 초점을 두고 소비자를 공략했다. 음악을 다운받고 청취하며 게임 사양의 고도화를 전면에 내세웠다. ‘피처폰’의 이름으로 휴대전화라 함은 수 없는 용틀임을 거쳐 왔다.이제 휴대전화를 통한 인터넷 검색과 쇼핑, 금융업무 등은 신변잡기적 일상이 됐다. ‘인터넷 강국’의 위상을 떨친 대한민국의 통신 환경 역시 이 같은 변화에 한몫했다.LTE(Long Term Evolution)로 불리는 4G를 넘어 바야흐로 5G의 시대다. 산업 간의 적절한 융합은 응당 수반돼야 할 전제조건이다. 용량과 속도의 차이를 넘어 ‘감성’과 ‘가치’를 소비자는 요구하고 있다. 5G는 자율주행차, 스마트워치, 인공지능 스피커 등의 인공지능(AI) 기술을 총망라한다.스마트폰 가입자가 대한민국 인구수를 뛰어넘은 6천만 명에 달하고 있다. 500만 원의 가격과 800g에 육박하는 무게를 지닌 이른바 ‘벽돌폰’의 존재를 두고 설왕설래를 거듭하던 그 옛날의 기억, 그것은 추억 속 편린이 된 지 오래다. ◆국내 이동통신의 시작 ‘카폰’우리나라 이동통신의 근원은 어디서부터일까. 휴대폰 이전 우리는 무선호출기(삐삐)의 출현을 반겼다. 몇 해 전 인기리에 방송된 드라마 ‘응답하라 1994’ 시리즈에서 무선호출기의 인사말 등록을 위해 라디오 스피커에 전화기를 갖다 대는 장면을 우리는 접한 바 있다. 지금 세대로는 분명한 괴리감이 있지만 그 시대의 청춘들은 그것이야말로 추억 속 아이콘이었으리라.이동전화의 시작은 의외로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서비스의 출발은 대중이 아닌 특정인 100여 명으로 제한됐다. 그마저도 쌍방향이 아닌 일 방향 방식의 통화만 가능했다. 당시 기술력으로 통화품질에 대한 기대는 당연히 할 수 없었고, 수요가 부족하다 보니 공급 역시 응당 따를 수 없는 구조였다. 이 같은 맹점을 타파하고자 1970년대 초 ‘기계식 서비스’의 도입을 시도했지만 이 역시도 기술력의 한계로 좌초된 바 있다.본격적인 이동통신의 역사라 함은 1984년으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그것이 바로 한국이동통신의 ‘카폰’인데, 이는 차량용으로 국한, 이 또한 진정한 의미의 이동통신 서비스의 개념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본격적인 휴대폰 시대가 개막됐다는 것이 통신업계의 통상적 연혁이다.수기 대신 메시지로 마음을 전하고 감정을 이모티콘으로 대처하는 문자 서비스의 시작은 1996년에야 비로소 실현된다. 이 지점이 바로 ‘2세대 이동통신’인데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전환점을 맞았다는 점에서 오늘날 휴대전화 발전의 초석, 또는 터닝포인트라는 평가를 얻고 있다. 하지만 이 때까지만 해도 메시지는 문자로만 집중돼 있었고, ‘다중접속 방식’을 이용하다 보니 수신상의 오류도 왕왕 발생했다.2002년, 한·일 월드컵의 뜨거운 열기와 함께 ‘3세대 이동통신’ 시대가 개막했다. 벨소리는 단음에서 16·64 화음 등이 접목됐고 당시엔 믿기 힘든 ‘카메라’가 장착된 휴대전화가 대중의 이목을 단박에 집중시켰다. 아울러 단순 문자를 넘어 사진과 영상 등의 멀티미디어 적 통신을 각각의 휴대전화로 전송이 가능해진 단계에 이르렀다. 유심의 사용 역시 바로 이때부터다.그 후 2G, 3G 등 데이터 통신을 거쳐 2011년 현재의 LTE, 바로 ‘4G’ 시대가 열렸다. 이 무렵 광대역, 3밴드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했고 모바일을 통한 데이터 전송과 인터넷 검색은 휴대전화의 단순 수·발신의 기능을 넘어 또 다른 아이덴티티로 자리잡았다. ◆LTE보다 20배 빠르다.5G의 정의부터 알아보자. 결론부터 내리자면 5G는 지난 세대를 거쳐 온 것과 마찬가지로 5번째, ‘5세대 이동통신’을 의미한다. 최대속도 20Gbps, 기존 LTE에 비견될 수 없을 정도의 빠른 속도와 거대 용량을 자랑한다. 더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5G의 통신 속도는 현재 LTE의 최대 20배에 달한다. 이를 수치화 해보자면 LTE 통신 속도 기준, 2GB 상당의 고화질 영화를 다운받는 데 16초가 걸린다면 5G에서는 1초도 채 걸리지 않는다. 데이터양 역시 방대해져 기존 LTE의 100배 이상이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5G의 출현은 단순 속도와 용량의 업그레이드로 설명되기 어렵다. 그것은 4차 산업혁명과 그 궤를 함께 하는데 5G의 빠른 속도와 기술력 등이 함축된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등의 콘텐츠가 무궁무진할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실제 사례로 방송 간 초고화질 영상이 막힘없이 송출되는 것도 모자라, 실시간 확대에도 버퍼링 없는 원활한 시청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5G의 방대한 데이터 용량을 통한 전송이 현실화된다면 많은 인파가 몰린 그 어떠한 장소를 막론하고 초 고화된 콘텐츠 송출이 용이해질 것으로 보인다.자율주행차의 비약적 발전에도 5G는 든든한 ‘러닝메이트’가 될 것으로 추측된다. 자율주행의 선제 조건에는 이동통신망의 능동적 활용이 절대적이다. 바로 차량과 보행자 간 ‘데이터 공유’를 위함이다.자율주행의 안전성은 시간이다. 데이터 공유에 소요되는 시간이 단축될수록 자율주행의 안전성은 더욱 공고해진다. LTE보다 10배가량 빠른 속도를 지닌 5G를 자율주행 업체들은 간과할 리 없다.지난해 열린 평창올림픽에서 5G의 역할은 꽤나 고무적이었다. ‘타임 슬라이스’ 기술이 5G를 통해 다양한 올림픽 종목에 구현됐던 것. 다각도에서 순간을 잡아내는 타임 슬라이스란 많은 수의 카메라가 동시다발적으로 촬영한 영상을 5G 단말기로 실시간 전송하는 기술력을 뜻한다. 큰 용량의 높은 픽셀을 지닌 이미지 전송 시, 대용량 통신은 필수불가결한 시스템인 것이다.영상통화의 아이덴티티도 변모할 것으로 보인다. 단순 평면이 아닌 홀로그램을 통한 입체적 통화 구현이 바로 그것인데 ‘5G 네트워크망’이야 말로 홀로그램 기술의 근간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농업과 산업 분야에서의 5G는 그 기세가 더욱 가열 차다. 트랙터의 원격제어 간 5G 관련 테스트가 현재 진행 중에 있으며 로봇으로 운영되는 무인자동화 공장서 그 로봇을 통제하는 것이 바로 5G의 통신기술이다. 건물철거나 지뢰제거 등 각종 리스크가 잠재된 현장 곳곳에 투입된 로봇의 능력치를 한층 더 가속화시키는 것 또한 5G의 잠재적 가능성이다. ◆IT산업의 신경망 ‘5G’5G의 기술력은 독자적이지 않다. 하지만 모든 AI의 기술적 용량과 속도를 제고하기에 5G를 ‘IT의 양념’이라고 일컫는다. 그에 따른 전망치는 무한대다. 인공지능이 말 그대로 지능이라면 5G는 그러한 지능을 유기적으로 엮는 신경망에 빗댈 수 있다.세계 유수의 IT 전문 집단은 5G의 경제적 효과를 2035년 기준, 약 12조 달러로 전망하고 있다. 그에 따른 새로운 일자리도 2천200만 개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는 상황.그렇다면 5G 상용화 시 그에 따른 요금제는 얼마나 오를까. 가장 민감한 부분이자 고객들의 피부에 직접 맞닿아 있는 주요 어젠더다.과거에는 어땠을까. 2G에서 3G로 옮겨가던 시기, 각 통신사는 기본요금을 기존 1만 원 초반에서 3만 원대 중반으로 끌어 올렸다. LTE 도입 간에는 요금 인상 대신 무제한 요금제를 폐지하는 등의 통신 혜택을 떨어뜨린 바 있다. 이 역시도 역으로 계산하자면 3G 대비 요금제 수준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5G에 요금에 대한 불안심리가 증폭되는 이유다. 실제 전문가들은 과거 요금 인상의 궤적을 비춰볼 때 5G요금제는 4G 대비 최대 1만5천 원까지 상승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5G는 모든 AI의 기술적 측면과의 적절한 연계성을 지닌다. 후방의 역할이긴 하나 그 쓰임새에 따라 인공지능의 발현이 다각도의 모양새로 표출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현령비현령이라 하지 않았던가.바야흐로 4차 산업혁명의 물이 끓고 있는 시점이다. 발화점의 최상위 명분은 누가 뭐래도 5G의 기술력이다. 모든 사물인터넷(IoT) 관련 사업을 총망라해 속도와 용량의 정체성은 5G로부터 비롯된다는 주장, 결코 과하지 않다. 더 빠른 데이터를 적재적소에 발현하는 ‘AI 휴먼테크날리지’의 기본, 바로 5G임을 잊지 말자.글·사진=군월드 IT 사업팀김종윤 기자 kjyun@idaegu.com

실명 망막질환, 조기 발견하면 진행 늦출 수 있어

60대 여성 A씨는 지난해 연말 건강검진 결과 황반부에 변성이 의심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안과전문병원에서 망막정밀검사를 받았다.검사 결과 드루젠으로 인한 건성 황반변성으로 진단받아 상태가 더 악화되지 않도록 관리하고 있다.최근 건강검진 도중 받은 안저검사에서 녹내장 의증 및 드루젠 소견 등을 듣고 안과전문병원을 내원하는 환자가 늘고 있다.드루젠은 노화로 인해 눈의 기능이 저하되고 혈류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망막색소상피에 쌓이는 노폐물을 말한다.드루젠 의심 소견을 듣고 정밀 검사를 진행한 결과 드루젠이 아닌 단순 색소탈락 또는 침착으로 판명되는 경우도 있다.반면 정밀검사를 통해 망막 질환을 빠르게 발견하는 때도 있다.망막질환은 자칫 실명으로 이어질 수 있고 빨리 발견할수록 시력을 유지하는 데 유리하므로 건강검진에서 황반변성이 의심된다는 결과가 나왔으면 서둘러 안과전문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는 것이 좋다.또 정상적인 색소변화라면 별도의 치료가 필요하지 않지만 6개월~1년에 한번 정기적인 안과검진을 통해 꾸준히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황반변성 환자 4년간 62% 증가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최근 4년간 황반변성 환자는 2014년 10만1천694명에서 2017년 16만4천818명으로 62% 증가했다.황반변성은 황반부에 신생혈관 유무에 따라 건성황반변성과 습성황반변성으로 나눌 수 있다.건성황반변성은 드루젠으로 인해 황반에 있는 시세포가 파괴돼 중심부 시력이 서서히 감소하는 것을 말한다.진행 속도가 느려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초래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일부에서는 습성황반변성이 되기도 한다.습성황반변성은 황반에 좋지 않은 혈관(신생혈관)이 생성돼 급격한 시력 저하를 유발하고 심할 경우 실명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누네안과병원 망막센터 김양재 원장은 “A씨처럼 건강 검진에서 황반변성 의심 소견을 듣고 망막정밀검사를 진행한 결과 건성황반변성을 발견하는 경우도 있다. 또 황반변성이 아닌 다른 망막질환을 발견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또 “황반변성이 아니라고 해서 방치해 치료 시기를 놓치면 시력을 회복하기 어려울 수 있다”며 조기 발견과 치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황반 이상 질환들시각자극을 시신경으로 전달하는 망막은 사람의 눈을 사진기에 비유할 때 카메라의 필름에 해당하는 부위다.그중 중심 시력을 담당하는 부분이 황반이다.황반변성은 이러한 황반에 변성이 생기는 질환으로 50세 이상 고연령층에서 많이 발생한다.초기에 시력이 저하되고 물체가 휘어 보이거나 중심 부분이 보이지 않는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황반변성 외에 황반에 이상이 생기는 망막질환으로는 망막전막증, 중심성장액성맥락망막병증, 황반원공, 황반부종 등이 있다.이들 질환은 주로 고연령층에서 많이 발생하지만 젊은 나이에도 발생할 수 있으며 황반변성과 비슷한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망막전막증은 황반주름이라고도 부르는데 황반 위에 섬유성 막이 자라나는 질환이다. 망막전막의 두께나 주름의 정도에 따라 증상이 다르게 나타나며 물체가 휘어 보이거나 서서히 시력이 저하된다.중심성장액성맥락망막병증은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와 과음, 흡연,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 30~60대 남성에서 많이 발생하는 망막질환이다.황반 아래 특별한 원인 없이 물이 고이는 현상이다. 갑자기 눈앞에 동그란 동전 모양의 그림자가 가리면서 시력이 침침해지는 증상이 나타나면 의심해야 한다.황반원공은 황반에 작은 구멍이 생기는 질환으로 급격한 시력저하 증상이 나타난다. 유리체가 망막에서 떨어지면서 황반 조직 일부를 뜯어 구멍을 만들게 된다.유리체를 제거하는 유리체 절제술과 특수 가스를 주입하는 수술이 시행된다.◆빠른 발견과 치료가 중요고령화와 만성질환의 증가로 해마다 증가하는 망막질환은 초기에 노안으로 착각하고 방치해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환자가 증상을 느껴 안과에 내원하면 질환이 이미 많이 진행된 경우가 대부분이라 예방 및 빠른 발견과 치료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망막은 눈 속 깊이 위치하며 많은 혈관으로 이뤄져 망막 건강을 위해서는 평소 혈압, 혈당, 콜레스테롤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또 자외선에 노출되는 시간을 줄이고 금연하며 평소 암슬러격자 테스트를 통한 자가진단을 습관화하는 것도 조기 발견에 도움이 된다.김양재 원장은 “망막질환 고위험군인 -6 디옵터 이상 고도근시, 고혈압, 당뇨 등의 전신질환 환자, 망막 가족력이 있는 경우에는 반드시 6개월~1년에 한번 망막정밀검사를 받는 것”을 당부했다.또 “평소 기름진 음식보다는 생선과 항산화 비타민이 풍부한 녹황색 채소 및 과일 등을 많이 섭취하는 것이 좋고 루테인이나 제아잔틴 등을 섭취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도움말=누네안과병원 망막센터 김양재 원장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임금 앞에서도 바른 말 하던 ‘대궐 안 호랑이’…가슴 속 뜨거운 ‘충심’ 가문 대대로 이어져

임진왜란 때 부인에게 보낸 학봉의 언문편지... 대구에서 안동으로 가는 고속도로 서안동 인터체인지에서 나와서 봉정사 방향으로 조금 달리면 학봉 김성일(1538~1593) 선생의 종택이 있는 금계마을이 나온다.금계(金溪)는 옛날에 금제(琴堤)라 하였는데 금(琴)이 방언으로 검다는 의미의 검(黔)이기 때문에 속칭 검제(黔堤)라고도 불린다. 풍수가들은 이 마을을 두고 천년불패지지(千年不敗之地)라고 말한다. 천 년 동안 패하지 않고 번성하는 땅이라는 의미이다.아울러 삼재불입지지(三災不入之地)라고도 한다. 곧 전쟁, 기근, 전염병이 없는 복된 땅이라고 알려진 영남의 길지로 인구에 회자된다. 학봉 종택에는 학봉선생의 삶과 학문, 충절정신이 서려있고, 의병활동에 헌신한 후손들의 흔적이 남아있다. 학봉의 후예들은 평상시에는 예를 중시하는 선비의 삶을 살지만, 나라가 위태로울 때는 독립운동에 앞장서서 싸워왔던 애국시민들이었다. 고택에는 그들의 충절정신이 녹아있는 문화재가 가득하다. ◆퇴계학의 적통을 이은 학봉의 학문학봉은 의성김씨 내앞파 시조 김진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김진은 1525년 사마시에 급제한 뒤 성균관에 유학했다. 그러나 과거공부를 중단하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는 다섯 아들을 모두 퇴계의 문하에 보냈는데, 그중 세 아들은 대과에 급제해 벼슬길에 올랐다. 어린시절 학봉은 유난히 총명했다. 형제들과 퇴계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는데 그 총명함에 대해 스승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29세(1566) 때 퇴계가 나라의 부름을 받아 서울로 가면서 요임금과 순임금으로부터 주자에 이르기까지 유학의 도통을 이은 성현들의 학문과 심법을 4자 운문으로 적은 80자 명문을 짓고 직접 써서 학봉에게 주었으니, 이것이 바로 병명(屛銘)이다. 병명의 마지막 구절에 “박문에다 약례까지 양쪽 다 지극하여[博約兩至]/연원 정통 이어받은 그 분은 주자(朱子)였네[淵源正脈]”라는 글귀가 있다. 이 글귀 속에 학문과 인격의 완성을 이루기를 기대하는 제자에게 주는 스승의 마음이 담겨있다. 후손들은 이 병명을 퇴계의 학문을 적통으로 이었다는 증표로 여기고 있다. 학봉은 31세 때 문과에 급제해 벼슬살이를 시작했다. 다음 해 퇴계가 선조임금의 간청을 물리치고 벼슬에서 물러나면서 동고 이준경, 고봉 기대승, 그리고 제자인 학봉을 추천할 정도로 제자로 인정하였다. 학봉 또한 퇴계가 세상을 하직하자, 스승의 평생 행적을 정리한 ‘퇴계선생사전’을 지었다. 47세에 나주목사로 부임해 신문고를 설치해 억울한 백성들을 보살폈다. 이듬해 퇴계의 여러 저술을 모아서 간행했고, 53세 때 일본 통신부사로 주체적인 외교활동을 전개하고 일본인들에게 퇴계학을 전하였다.54세에 세 번의 상소를 올려 군정과 시정과 국방강화를 주장하였고, 55세에 경상도병마절도사, 초유사, 감사로 관군과 의병을 지휘하여 진주대첩을 이루어내었다. 56세 때 왜군의 공격에 대비해 병사와 백성을 돌보던 중 순국하면서 25년의 벼슬살이를 마감했다. ◆ 충절의 구국정신 잇는 후손학봉이 54세(1591) 때 일본 통신부사의 임무를 마치고 돌아와 복명한 일로 곤경에 처했는데 이에 대해 편향된 시각이 있다.을 보면, 학봉에 대해서 ‘당파싸움에 급급한 나머지 침략의 우려가 없다고 보고했다’라고 하면서 국론을 분열시킨 인물로 폄하하고 있다. 그렇지만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간행한 에는, ‘왜가 반드시 침입할 것이라는 정사 황윤길의 주장과는 달리, 학봉은 민심이 흉흉할 것을 우려하여 군사를 일으킬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고 상반된 견해를 밝혔다’고 기록돼 있다.또한 임진왜란의 생생한 기록인 에는 학봉에 대해 ‘사려 깊은 대학자의 고뇌’에서 내린 복명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는 당시 민심이 피폐하여 왜군이 침범한다는 소문이 만연하자, 왜군이 문제가 아니라 민심부터 안정시켜야 한다는 충정으로 왕에게 고했던 것이다. 이는 평소 학봉의 행적을 통해 그의 인품과 소신을 알 수 있다. 학봉이 36세(1573)에 사간원정언으로 있을 때, 선조가 “나를 옛날 어느 임금과 비교할 수 있는가”라고 묻자 정이주가 “요순 같은 성군입니다”라고 말하자, 학봉은 “전하는 요순 같은 성군도 될 수 있고, 걸주(폭군의 상징인 하나라의 걸왕과 은나라의 주왕)같은 폭군도 될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선조가 그 까닭을 묻자 “신하가 옳게 간하는 말을 듣지 않는 잘못된 버릇이 있으시니 진실로 염려됩니다”라고 목숨을 걸고 간하자, 선조가 화를 내며 얼굴빛이 변하니 주위에서 목숨을 잃을 것을 걱정했다. 그는 이처럼 충심을 다해 임금을 보필했다. 또한 42세 때 사헌부장령이 되자 임금이 싫어하더라도 주저하지 않고 불의와 부정이 있는 조정의 관리들을 탄핵하여 바로잡는 데 앞장서기도 하고, 억울한 사람을 구명하는데도 눈치를 보지 않았다. 그렇기에 당시 조정에서는 그를 ‘대궐 안 호랑이[殿上虎]’로 불렀다. 55세 때 학봉은 경상우도병마절도사로 임명되어 임지로 가는 중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였다. 당시 관리와 백성들이 모두 도망하여 기강이 엉망이었다.선조는 다시 학봉을 경상우도초유사로 임명하였다. 초유사는 난리가 났을 때 백성들을 설득하여 나라를 위해 일어서도록 권유하는 직책이다. 그는 관군과 의병을 모아 대항하였다. 왜적은 3만의 병력으로 진주성을 공격해 왔지만, 학봉은 목사 김시민과 함께 관군과 의병을 지휘해 진주대첩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이런 학봉의 기개와 충절정신이 후손들에게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11대 종손인 김흥락은 항일 독립운동에 참여한 안동지역 독립운동의 대부였다. 정부에서 훈장을 받은 제자만 60명이나 배출했고, 학봉의 직계 후손 중에서도 11명이 훈장을 받은 사실이 그 증거이다. 13대 종손인 김용환은 안동 일대에서 유명한 노름꾼이자 파락호로 위장하여 학봉종택에 대대로 내려오던 전답 700두락 18만 평(현재 시가로 200억 원)을 모두 독립군자금으로 보냈다. 근래에 독립운동을 했던 자료와 증거들이 발견되어 1995년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받았다. 현재 15대 종손인 김종길(85) 씨는 부친이 돌아가신 뒤 3년상을 마치고 2010년 1천400명이 모인 가운데 길사를 지낸 뒤 학봉의 종손이 됐다. 그는 삼보컴퓨터 사장 등을 지냈지만, ‘효제충신(孝悌忠信)’을 실천해 조상을 현창하는데 앞장서고 있다.종부 이점숙씨는 종가음식문화보존회를 통해 종가의 음식문화를 알리는 등 함께 가문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문화재의 보고 운장각학봉종택은 사랑채, 안채, 문간채, 사당, 풍뢰헌(風雷軒), 선대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운장각(雲章閣) 등 대소 건물이 90여 칸이 넘는다.운장각에는 학봉이 남긴 서적, 유품, 친필기록, 고문서 56종 261점(보물 제905호), 제초고 및 선조 전래의 전적문서와 후손들의 유품 등 503점의 유적이 소장된 문화재의 보고이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유물은 학봉이 사용하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안경이다. 그가 명나라에 서장관으로 갔을 때 구입한 것이라고 하는데, 안경테는 거북껍질로 되어 있다. 선생의 손때가 묻어 있다고 생각되니 숙연해진다. 고문서는 학봉종택의 자랑으로 교지(敎旨)·교서(敎書)·유서(諭書)·소지(所志)·분재기(分財記) 등 1만여 점이다.그중에 간찰(簡札)·제문(祭文) 등은 제외하고, 특히 정치·경제·사회·문화 등의 연구에 필요한 문서류만 선별하여 17종 242점이 1987년 3월7일 보물 제906호로 지정되었다. 이들 자료는 조선시대 중기, 후기, 말기의 사회·경제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필자는 학봉이 55세(1592) 겨울. 임진왜란 중에 부인에게 직접 쓴 언문편지에 눈길을 멈추었다. 때는 12월24일. 왜적과 목숨을 건 싸움을 했던 10월의 전투 끝에 진주성을 지켜낸 지 두 달이 됐다.전쟁에 지친 백성들을 돌보고 다시 쳐들어오는 왜적과의 전투를 위해 노심초사 준비를 하던 중에 학봉은 어느 날 안동 납실에서 피난 생활을 하는 부인 권씨에게 언문편지를 써서 보낸다. “요사이 추위에 모두 어찌 계신지 가장 염려하네. 나는 산음 고을에 와서 몸은 무사히 있으나 봄이 이르면 도적이 대항할 것이니 어찌할 줄 모르겠네. 장모 뫼시옵고 설 잘 쇠시오. 자식들에게 편지 쓰지 못하였네. 잘들 있으라 하오. 감사라 하여도 음식을 가까스로 먹고 다니니 아무것도 보내지 못하오. 살아서 서로 다시 보면 그때나 나을까 모르지만…. 그리워 하지 말고 편안히 계시오.” 학봉은 공적으로는 경상우도감사로서 진주성을 수성해야 하는 입장이지만, 사적으로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의 미안함과 가족을 그리워하는 심정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편지를 보낸다.무엇보다 아내를 배려한 한글로 된 자유분방한 글씨와 수결은 오백년 전 한글서예의 귀한 자료로 자리매김 된다. 아울러 종택에 걸린 명가의 현판 글씨도 건물에 잘 어울린다. 특히 미수 허목의 ‘광풍제월’이 오랫동안 머리에 맴돈다.정태수(서예가·대구경북서예가협회 이사장)문정화 기자 moonjh@idaegu.com

영원한 ‘맨발의 청춘’…1960~70년대 극장가 뉴 스타 넘버 원

신성일은 평생을 청춘으로 살았다. 머리에 하얗게 서리가 내린 80대에도 청바지를 즐겼다. 그의 불꽃같은 삶은 전설이 됐다. 신성일이 숨지기 한 달 전인 2018년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 레드카펫을 밟으며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는 모습.영원한 ‘맨발의 청춘’. 지금도 청춘 대부분은 맨발이다. 1960·1970년대, 그때 청춘들은 더 춥고 배고팠다. 상처투성이 청춘들은 그런 속에서도 사랑을 했다.그들을 대변했던 스타 신성일. 온 국민들이 그를 보며 영화 속 주인공이 되어 현실을 잊을 수 있었다.◆야망의 탄생신성일은 일제강점기 1937년 5월8일 대구시 중구 인교동 253 외할머니댁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강신영.대구농협지점장이던 아버지 강병오는, 어머니 김연주와 사이에 2남 1녀를 두었고 신영은 차남이었다.아버지 강병오는 이미 결혼, 3남을 두었으나 이혼 후 함께 근무하던 어머니와 다시 결혼한 처지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신영이 돌도 지나기 전 폐결핵으로 숨졌다.경북여고를 나온 어머니는 외할머니와 함께 소년 신영을 억척스럽게 키웠다. 잘 생긴 소년은 공부는 물론 운동까지 뛰어났다.신영은 대구 수창국민학교 2학년 때 광복을 맞았다. 4학년 때부터 아버지의 첫 부인이 사는 경북 영덕을 오가며 양 집안의 교류를 텄다.경북중을 우수한 성적으로 들어간 신영은 1학년 때 6·25가 터졌다. 신영은 전쟁 중 기와공장 임시교사에서 공부, 경북고에 입학했다. 동기로는 문희갑 전 대구시장, 정해창 전 법무부장관, 김재익 전 청와대 경제수석 등이 있다.당시 그는 친구들과 대구 송죽극장과 자유극장을 드나들며 학생 입장 불가 프랑스 예술영화에 빠져들었다.고교 2학년 1학기 때 그의 운명을 바꾸는 사건이 터졌다. 경북도청 부녀계장이면서 약방과 서점사업을 겸업하던 어머니가 주도하던 계가 깨진 것이다.어머니는 한밤에 달아나 버렸고 빚쟁이들이 몰려와 신영을 다그치며 마구 때렸다. 하룻밤 사이 거지가 된 왕자 같았다.이모 집에서 얹혀살던 신영은 상경, 서울대에 지원했으나 2년 연속 떨어졌다.신영은 청계천 판자촌에서 호떡 장사를 했으나 잘 팔리지 않았다.◆스타의 길목그는 단군 이래 제일 잘 생긴 한국인이란 말을 들었다. 20대의 신성일.1950년대 후반 한국은 6·25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었다. 모두가 가난했고 불의가 횡횡했다.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눈에 불을 켰으나 살길이 막막했다.우울한 강신영은 서울 충무로를 걷고 있었다. 우연히 고교 동창 손시향과 마주쳤다. 그는 ‘검은 장갑’이란 노래를 히트시킨 유명 가수여서 멋진 옷차림이었다.신영은 너무 반가웠으나 친구는 어깨만 한번 쳐주고 지나갔다. 그는 남루한 자신을 돌아보며 치를 떨었다. 문득 성공을 향한 욕망이 불타올랐다.넋을 놓고 걷던 그에게 ‘한국 배우전문학원’이란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배우 꿈을 가져본 적 없던 신영은 새 길을 가기로 결심한다. 당시 최고 강사진을 보유한 학원에서 신영은 6개월 간 연기를 배웠다.1959년 8월 당시 최고 영화사 ‘신필름’이 전속 연기자를 뽑는다는 공고를 냈다. 22세 청년 강신영은 괜한 자존심 때문에 원서를 넣지 않았다.면접 당일 부슬비가 오는데도 신영은 광화문 뒷골목 오디션 현장을 배회했다. 수천 명의 인파 속에서 신필름 소속 이형표 기술감독이 신영을 발견했다. 이 감독은 원서조차 내지 않은 신영을 신상옥 감독에게 들여보냈다.오디션이 끝난 후 혼자 있던 신 감독은 신영을 보자마자 3년 전속계약을 제안했다. 운명은, 원서조차 내지 않은 그를 영화계로 이끈 것이다.◆한국 영화의 왕별신상옥 감독은 강신영에게 ‘뉴 스타 넘버 원’이란 뜻의 ‘신성일(申星一)’이란 예명을 지어 줬다. 22세 백수 청년이 하루아침에 최고 월급을 받는 배우로 탈바꿈했다.그는 서울 종로구 가회동에 하숙집을 얻고 사람 사귀는 일에 정성을 쏟았다. 작가, 기자, 영화인 누구에게나 다가갔고 허드렛일도 도맡았다.신성일은 1960년 1월 신상옥 감독의 ‘로맨스 빠빠’로 데뷔했다. 왼 쪽 두 번째가 고교생 역할의 신성일. 오른쪽부터 김승호, 주증녀, 엄앵란, 김진규, 도금봉, 남궁원 그리고 맨 왼 쪽에 최은희가 보인다.신 감독은 신성일을 1960년 1월 개봉한 영화 ‘로맨스 빠빠’에 첫 출연시켰다. 영화는 보험회사원 아버지가 실직하자 온 가족이 위로하는 내용의 희극이었다. 주인공 아버지역에 김승호, 조연으로 최은희, 남궁원, 엄앵란 등이 나오고 고교생 막내 아들 역을 신성일이 맡았다.영화는 성공을 거뒀으나 신성일의 연기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이후 그저 그런 영화에만 출연하며 시간이 갔다.1962년 여름 두 번째 기회가 왔다. 평소 친했던 동아일보 기자가 영화사 극동흥업에서 기획 중인 영화의 남자 주연으로 신성일을 추천한 것이다.인기 라디오 드라마 ‘아낌없이 주련다’를 각색한 영화는 6·25 때 부산에서 레스토랑을 경영하는 전쟁미망인과 피난 온 대학생의 사랑을 그린 이야기여서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그러나 극동흥업 영화에 출연하려면 자신을 키워준 신필름을 배신해야 했다. 신성일은 결단을 내렸다. 신필름과 전속계약 기간이 끝난 것을 명분으로 극동흥업과 새로 계약을 체결하고 ‘아낌없이 주련다’의 남자 주연으로 발탁됐다.사실주의 영화 ‘오발탄’으로 주가가 높았던 유현목 감독은 ‘아낌없이 주련다’를 통해 신성일의 연기를 한 단계 도약시켜 주었다.바야흐로 한국 영화계가 전성기에 접어들고 있었다. 신성일의 시대도 펼쳐지고 있었다. 신성일 주연으로 1년에 수십 편의 영화가 제작됐다.1964년 개봉한 김기덕 감독의 ‘맨발의 청춘’에서 신성일은 뒷골목 건달 ‘두수’역을 맡아 최고 스타에 올랐다. 상대역은 뒷날 아내가 된 엄앵란.1964년 신성일의 대표작 ‘맨발의 청춘’이 개봉됐다. 김기덕 감독의 이 영화는 불과 18일 만에 제작됐지만 보기 드문 흥행작이 됐다.뒷골목 건달 두수(신성일)와 대사 딸 요안나(엄앵란)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인 이 영화는 “눈물도 한숨도 나 혼자 씹어 삼키며….”로 시작되는 가수 최희준의 주제가를 배경으로 스포츠머리, 가죽점퍼, 트위스트 춤 등 당시 젊은이들의 유행과 무모함을 잘 담아내 청춘을 열광시켰다.1970년대 전후 그는 문희, 윤정희, 남정임 등 소위 1세대 트로이카들의 상대역을 독점했다. 1970년대 후반에는 장미희, 정윤희, 유지인 등 2세대 트로이카들과 손발을 맞췄다.신성일은 자신의 이름대로 스타 중 스타, 왕별이 된 것이다.1970년대 들어 흑백 TV가 크게 늘고 박정희 정권의 검열정책이 강화되면서 한국영화는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그래도 신성일은 1970년대 전반까지 해마다 20~40여 편의 주연을 맡았다. 1975년 이후에는 10편 이내로 줄었다. 이는 동시녹음이 일반화되면서 성우 목소리를 이용하는 속성촬영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그는 평생 50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했다. 대부분 주연이었으며 100여 명의 여주인공과 공연했다.◆아내이자 동지 엄앵란신성일은 1966년 개봉된 이만희 감독의 ‘만추’를 자신의 대표작으로 여겼다. 신성일은 문정숙과 쓸쓸한 사랑을 나눈다. 신성일은 만추 원본이 사라져 다시 볼 수 없음을 안타까워했다.1964년 11월14일 서울 워커힐 호텔에선 왕국에서나 있을 법한 결혼식이 열렸다. 당시 최고 인기 남녀 배우 신성일과 엄앵란이 부부가 되는 날이었다.전 국민의 이목을 끈 결혼식에는 구경꾼까지 수천 명이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인파에 밀려 하객들은 식장에 접근도 못 했다. 화환은 넘어지고 축의금이 털리는 등 엉망이 되자 진행요원들은 몽둥이까지 휘둘렀다.신성일보다 한 살 연상인 엄앵란은 학사 출신 배우로 신성일보다 먼저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엄앵란은 결혼 후 영화 일선에서 물러나 신성일의 뒷바라지에만 힘을 쏟았다. 1979년부터 10여 년간 대구에서 ‘나드리예’라는 식당을 경영하며 남편의 정치 활동을 지원하기도 했다.◆영원한 자유인1960년대는 한국영화 전성기였다. 신성일은 해마다 수십 편에서 주역을 맡았다. 사진은 1966년작 이만희 감독의 ‘군번 없는 용사’. 오른 쪽 세 번째가 주인공 신성일이고, 왼 쪽 두 사람은 차례로 신영균과 허장강신성일은 언제나 거침없이 말하고 행동했다. 마음에 안 드는 것은 그냥 넘어가지를 못했다. 특히 거짓말은 비겁한 짓이라고 생각, 지나치게 솔직해서 문제 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1969년 부산의 국도극장 개관 쇼에서 역시 자유분방한 가수 조영남이 불손하게 굴자 흠씬 두들겨 준 일도 있다.2011년 발간된 자서전에서는 1970년대 미국행 여객기 일등석에서 애인과 사랑을 나눈 사실을 밝혀 세상을 뒤집어 놓았다.그는 1987년부터 사귄 슬롯머신 사업가 정덕일에게 영화사업을 위해 40억 원을 받았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정덕일은 후일 김영삼 정부 출범 후 6공 실력자 박철언에게 뇌물을 줬다는 이유로 구속된다.그는 연애했던 상대가 누구인지도 숨김없이 밝혀 오히려 주변이나 언론이 명예훼손 가능성 때문에 얼버무리곤 했다.슬하에 1남 2녀를 둔 신성일 부부는, 1980년대 이후 서로 떨어져 살며 상대의 삶에 대해 간섭하지 않았다. 그러나 서로 어려울 때면 돕는 모습을 보였다.그들 부부의 사는 모습은 프랑스 소설가 사르트르와 보바르의 계약 결혼에 비견되고 2010년대부터 등장한 ‘결혼을 졸업한다’는 의미의 졸혼 원형으로 불리기도 했다.◆‘맞지 않는 옷’1974년 40만 관객이란 초대박을 친 이장호 감독의 ‘별들의 고향’ 포스터. 신성일과 아역 배우 출신 안인숙이 주연을 맡았다.그는 청소년기 집안의 몰락으로 예상치 않던 배우의 길로 들어섰지만 정상에 올라선 이후 정치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그러나 정치는 그에게 ‘맞지 않는 옷’처럼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복잡 미묘한 정치계에서 직선적인 성격의 그는 영화계와 달리 실패를 거듭했다.신성일은 40세 때인 1978년 10월 결국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는다.본인이 출마한 것이 아니라 그해 12월 10대 총선에서 서울 지역구에 출마한 공화당 후보를 도운 것이다. 그는 여기서 부패 금권선거의 실상을 보게 된다.그는 이후 1981년 11대 총선과 1996년 15대 총선에서 각각 서울 용산·마포와 고향인 대구 동구 갑에서 출마했으나 낙선한다.그는 삼수 끝에 2000년 4월 16대 총선에서 대구 동구에 출마, 금배지를 단다. 63세 때다.그는 국회의원 시절 고향 대구를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임기가 끝난 후인 2005년 2월 그는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때 뇌물을 받았다는 이유로 구속됐다. 광고업자에게 정치후원금 1억여 원을 받고 영수증을 써 줬으나 검찰은 대가성이 있다고 본 것이다.그는 실형 5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 2년만인 2007년 2월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불꽃처럼 살다 가다그는 자유인이었다. 언제나 거침없이 말하고 행동했다. 2017년 6월 그가 집을 짓고 살던 경북 영천의 ‘성일가’ 뒷산을 오르다가 쉬고 있는 모습.그는 2008년 경북 영천시 괴연동에 ‘성일가’라는 한옥을 짓고 서울을 오가며 생활했다. 그는 보통 사람이 되어 마을 사람들과 어울렸다.그는, 2017년 폐암 3기 진단을 받았다. 그는 투병 생활 중 갑자기 병이 악화돼 전남 화순 전남대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다 2018년 11월4일 눈을 감았다. 81세였다.그는 평생을 청춘처럼 살았다. 머리에 하얗게 서리가 내린 80대에도 청바지를 즐기고 모든 일을 직접 했다. 이제 그의 불꽃같은 삶은 전설이 됐다. 이송하 전 연합뉴스 기자 연보·1937년 5월8일 대구 인교동 출생·1950년 대구 수창국민학교 졸업·1953년 경북중 졸업·1956년 경북고 졸업·1957년 서울 배우전문학원에서 연기 실습·1959년 8월 신필름 입사·1960년 영화 ‘로맨스 빠빠’로 데뷔·1962년 건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학사·1964년 2월 영화 ‘맨발의 청춘’ 개봉·1964년 11월14일 엄앵란과 결혼·1971년 영화 ‘연애교실’로 감독 데뷔·1974년 영화 ‘별들의 고향’ 개봉·1979년 한국영화배우협회장·2000~2004년 제16대 국회의원·2002년 한국영화배우협회 이사장·2008년 경북 영천 성일가 건립·2009년 계명대 연극예술과 특임교수·2008~2013년 대구 국제뮤지컬페스티벌 이사장·2018년 11월4일 별세홍석봉 기자 dghong@idaegu.com

“저를 따라오세요” 로봇이 직접 공항 안내… 일상 속으로 들어온 ‘지능형 로봇’

지난해 11월 개막한 ‘대구국제기계산업대전’에서 이승호 대구시 경제부시장이 인공지능(AI) 로봇팔과 오목게임을 하고 있다.로봇은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하기 위해 개별적 임무를 부여받았다. 실버로봇, 비서로봇, 서빙로봇, 배우로봇, 요리사로봇 등 종류가 다양하다.일본 소프트뱅크 기업은 2014년 휴머노이드를 표방한 로봇 ‘페퍼’를 공개했다. 이 로봇은 명령어뿐만 아니라 대면하는 사람의 감정상태도 분석해 그에 맞는 대화를 한다.인천국제공항은 2016년부터 국내 기업들과 로봇서비스 관련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로봇시장 선점을 위한 도약을 꾀하고 있다.지능형 로봇의 정체성은 ‘자율’이다. 앞으로 인간의 오감은 물론 인간이 놓칠 수 있는 초감각적 미세 부분까지도 감지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로봇이란 표현은 20세기 초 체코의 한 소설에서 ‘로봇’이라는 단어가 처음 세상 밖으로 나왔고 그 역사는 길지 않다. 로봇 태권V와 마징가Z와의 접전은 유년기의 뜨거운 감자였다. 아무래도 한·일 대전이라는 명분이 컸으리라.1980~1990년대 애니메이션의 화두는 ‘로봇’이었다. 거기에는 ‘공상’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었다. 로봇이란 그저 상상의 산물이었다. 오죽했음 국회의사당 돔이 태권V의 비밀기지일 것이라는 허무맹랑한 루머가 생성됐을까.인위적 조작이 아닌 자동으로 움직이는 로봇은 인류의 염원이었다. 로봇의 어원은 체코어 ‘로보타’에 근거한다. 워크, ‘일한다’라는 뜻이다.로봇의 아이덴티티는 그 어원에서 유추되듯 사람의 일을 대체한다는 의미로 정의된다. 산업의 범주로 한정지어온 로봇의 기능은 시나브로 발전을 거듭했다. 단순 서비스를 넘어 ‘두뇌’를 탑재한 ‘지능형 로봇’으로의 도약을 꾀하고 있는 단계에 접어들었다.로봇은 3대 요소를 내포한다. 첨단 기술을 실현시켜 줄 인공지능이 탑재돼 있고 각종 기능을 영위할 센서, 센서에 의해 다양한 움직임을 조작할 작동체가 바로 그것이다. 한 마디로 ‘인공 피조물’의 성격을 띤다.로봇은 더 이상 이질감의 대상이 아니다. 되레 신변잡기를 내포한다. 센서와 인공지능의 업그레이드에 따라 로봇은 또 다른 메리트를 인간에게 선사한다. 이 같은 일련의 과정을 ‘로봇화’라고 하는데, 그 중심에는 로봇의 ‘능동화’가 자리한다. 말 그대로 지능을 가진 로봇이 인위가 아닌 로봇 스스로 결정한다는 것이다. 로봇화는 무인화·스마트화의 또 다른 벨류다.로봇의 출현이 공상으로 치부했던 어린 시절의 편린은 이제 추억이다. 로봇은 그 운용 방식에 따라 우리 삶에 공헌할 수 있는 동반자이자 벗이다. ◆소설에서 처음 나온 ‘로봇’로봇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20세기 초 체코의 한 소설에서 ‘로봇’이라는 단어가 처음 세상 밖으로 나왔다. 과업을 위한 로봇은 190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개발, 산업 전반으로 출현했으며 1970년대 말쯤이 돼서야 컴퓨터로 제어되는 오늘날 로봇의 형태가 갖춰졌다. 1990년대 로봇 산업 간 일본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1997년 계단을 오르내리는 최초의 인간형 로봇과 1999년 실버세대를 강타한 애완로봇 역시 일본의 기술력으로 탄생했다.2000년대 들어서 미국에서는 로봇의 지능화를 꾀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공상 과학에서나 접해왔던 우주환경에서의 로봇 개발에 열을 올린 시기였다. 2003년 미국NASA는 ‘스프릿’이라는 이름의 로봇을 화성으로 보냈으며,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의료분야 간 수술전문 로봇 ‘다빈치’가 개발됨으로써 인공지능적 초고도화 로봇이 출현했다.우리나라에선 1970년대 후반 현대자동차 공장에 용접로봇이 도입된 후로 로봇산업의 발전을 이끌어왔다. 이후 2008년 ‘지능형로봇 특별법’ 제정을 시작으로, 소용돌이치는 AI 로봇시장에 첫 발걸음을 뗐다.이처럼 로봇산업은 비약적 발전을 거듭해왔다. 짧고 굵은 로봇역사에 기인해 볼 때 응당 고무적 성과다. 과거 산업용으로 대변되던 ‘과업형 로봇’은 기존 머신과의 차별성을 두지 못한 채 그 벨류를 잃어가고 대신 친교의 모토로 감성을 담뿍 담은 ‘지능형 로봇’이 각광받고 있는 추세다.그 대표적인 사례가 세계 최초의 애완용 로봇인 소니 사의 ‘아이보’다. 허한 마음 달랠 길 없는 현대인의 고독을 예리하게 파고든 수작이라고 일컬어진다. 인간의 우울함을 상쇄하고 싶으나 막상 애완동물을 키울 여건이 되지 못한 이들에게 아이보는 최고의 대체물이었다. ‘인간과 로봇의 상생’이라는 모토로 출발한 아이보는 감성을 담은 지능형 로봇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지능형 로봇의 정체성 ‘자율’그렇다면 지능형 로봇의 기능은 어떤 원리로 발현될까. 주요기술부터 짚어본다면 그 이해가 빨라질 수 있다.지능형 로봇의 기술은 크게 센싱과 프로세싱, 액팅 기술로 나뉜다. 센싱은 로봇이 음성과 장소, 각종 환경을 감지한 정보를 습득하는 기술이다. 프로세싱은 습득을 통해 학습된 인포메이션을 기반으로 상대의 명령어 등을 수용하는 프로그램이다. 액팅은 용어 그대로 수용된 프로그램을 실제 행동으로 표현하는 기술이다.지능형 로봇의 정체성은 무엇보다 ‘자율’이다. 자율을 성사시키기 위해선 인간의 오감(시·청·촉·후·미각)이 로봇에도 투영돼야 한다. 사실 로봇은 발전 궤적에 따라 자칫 인간이 놓칠 수 있는 초감각적 미세 부분까지도 감지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로봇의 대표적 센서로는 터치, 거리, 마이크, 카메라로 대표된다. 충돌 센서의 대표적 기능이 바로 로봇 청소기다. 후각 센서는 가스의 미세한 흐름을 감지해주는 가스 누출기가 대표성을 가진다. 이밖에도 로봇 스스로 움직임을 제어, 또는 확인할 수 있는 가속도 센서와 주위 온도에 따라 이벤트를 달리하는 온도 센서 등 센서의 기능에 따라 로봇의 역할은 무한대로 확산될 수 있다. ◆활용범위는 전 방위적지능형 로봇의 활용범위는 가히 전 방위적이라고 할 수 있다. 제조, 유통, 서비스, 의료 등 거의 모든 산업군을 망라, 로봇의 가치가 한층 더 제고되는 시점이다.과거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던 로봇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고정밀도 제품 생산을 위해 보다 심도 있는 작업까지 가능한 단계에 이르렀다. ‘시나브로’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로봇 시장의 성장세는 가히 고무적이다.우선 제조업 현장에서의 로봇활용은 그 확장세를 날로 드높이고 있다. 과거 조립, 이송 등의 단순·반복 작업을 몇 단계 뛰어넘어 인간과 로봇이 공존하고 상생하는 이른바 ‘코봇’ 활용이 폭증하고 있다. ‘협동로봇’의 함의를 품고 있는 코봇. 코봇은 ‘사람과 기계의 융합’이라는 모토로 산업용 로봇의 절반금액이자 무게 또한 가벼워 가성비와 이동에 용이하다.코봇은 2005년 EU의 ‘중소기업 자동화 지원 정책’으로 첫선을 보였는데 코봇의 등장으로 최신 자동화 기술의 전초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각 항공사에도 지능형 로봇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추세다.일본의 하네다공항은 2016년부터 보안검색대에 사람이 아닌 로봇 ‘나오’를 배치, 승객들을 대상으로 날씨 및 이착륙, 도시 정보 등을 제공하고 있다.네덜란드 암스테르담공항에서는 2015년 ‘스펜서’라는 이름의 로봇을 활용, 승객의 보딩 패스를 스캔한 후 탑승구에 이르기까지 서브하는 안내 서비스를 펼쳤다.우리나라 역시 항공사 간 지능형 로봇의 활용도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인천국제공항에서는 2016년부터 LG전자, 미니로봇, 원익로보틱스, YSTT 등과 로봇서비스 관련 업무협약(MOU)를 체결함으로써 급변하는 로봇시장 선점을 위한 도약을 꾀하고 있다. ◆세계 시장은 연 15% 성장해로봇에 대한 전망을 논하는 것이 상전벽해라 일갈하는 일각의 목소리가 있다. 그만큼 로봇은 고찰의 대상이 아닌 괴리 적 아이덴티티를 품어왔다.국제로봇연맹에 따르면 2015년 전 세계 산업용 로봇 판매 대수는 전년 대비 15% 증가한 26만여 대에 이른다. 올해는 그 두 배에 달할 42만여 대로 전망된다. 산업용 로봇의 보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남으로써 ICT가 오롯이 융합된 초연결 기술이 로봇에 적용, 기존 산업용 로봇에서 지능형 로봇으로 옮겨가는 추세다.전 세계 지능형 로봇의 시장은 연평균 15% 가까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지능형 로봇이 ‘4차 산업혁명을 이끌 핵심 산업’으로 일컬어지는 것이 과하지 않을 정도다. 쉽게 말해서 지능형 로봇 개발을 위한 핵심 기술이 바로 4차 산업혁명의 모토와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국·내외 로봇 전문가들 역시 지능형 로봇을 두고 “산업과의 연계성이 극대화된 고부가가치 산업”이라고 입을 모은다. 지능형 로봇의 근간이 전자와 전기, 소프트웨어 기술이라는 초절정에 달하는 융합기술이 영위돼야 하기 때문. 아울러 고령화 추세와 소득수준 향상으로 인한 문화생활이 대두됨에 따라 오는 2020년에는 서비스용 로봇이 전 세계 로봇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로봇의 근간은 ‘창의’로봇의 근간은 창의다. 창의의 발로는 인간이자, 바로 그 인간이 탄생시킨 지능형 로봇의 판단능력 또한 무궁무진하다.지능형 로봇의 청사진만을 주창하기에 앞서 인공지능의 궤적부터 수용해야 함이 마땅하다. 인공지능에 대한 이해가 수반되지 않은 채 지능형 로봇의 고찰을 운운한다는 것은 어불성설로 그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뫼비우스의 띠와 같이 영원히 풀리지 않을 난제 ‘어떻게 잘 살아가는가‘의 가장 광범위한 범주가 바로 인공지능이자 지능형 로봇이기 때문이다. 병렬적 방식의 융합을 한 차원 뛰어넘는 ‘범학문적 접근’이 절실할 때이다.인공지능이 주체가 될 미래 문명은 과연 유토피아로 꽃을 피울 것인가, 아님 디스토피아로 전락하고 말 것인가. 현재로서의 해답은 분명 모호하다. 단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인공지능의 시작은 인간이라는 것, 이는 곧 인간과의 공존을 의미한다는 방증이다. 경계하되 머물지 말고 발전시키되 새로운 성, 신 인간의 다양성을 로봇으로부터 기대해볼 필요가 충분함을 간과하지 말자. 글·사진=군월드 IT 사업팀김종윤 기자 kjyun@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