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국가암검진 시범사업…폐암 생존율 개선 목표

-김경호 대구시의사회 공보이사(대경영상의학과 원장)최근 들어 부쩍 흡연자들이 설 공간이 줄어들고 있다.TV에서 흔히 보이던 흡연 장면이 대폭 줄었고 특히 흉기는 그대로 방송하더라도 담배는 모자이크 처리하는 세심한(?) 화면 편집도 자주 눈에 띈다.흡연이 주원인인 폐암은 췌장암에 이어 생존율이 두 번째로 낮은 매우 위험한 암이다. 폐에는 신경이 없기 때문에 폐암이 생겨도 통증을 느끼지 못하므로 병이 많이 진행된 후에야 병원을 방문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기존의 흉부 X선 진단법으로 조기 진단이 어려워 생존율이 낮을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2010년 미국의 국가폐암검진연구에서 55~74세 연령 중 하루 1갑씩 30년 이상 흡연하고 금연기간이 15년 미만인 폐암 고위험군에 대해 저선량 흉부 CT를 이용한 검진을 시행해보니 폐암 사망률이 20% 감소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저선량 흉부 CT를 이용한 폐암검진의 필요성이 강력히 제기되는 것이다.최근 보건복지부가 폐암을 조기 진단해 폐암 생존율을 개선시킨다는 목표를 세우고 저선량 흉부 CT를 포함한 국가암검진의 시범사업을 서두르고 있다.시범사업의 대상으로 담배를 1갑 이상 30년 이상 피운 55~74세인자로 흡연 중이거나 금연했어도 그 기간이 15년이 지나지 않은 사람, 가족 중에 폐암 환자가 있거나 유방암 등의 암을 앓은 여성, 비흡연자라도 간접흡연과 석면·라돈·카드뮴 등에 자주 노출된 사람 등의 고위험군을 먼저 적용했다.또 이들에게 년 1회 저선량 흉부 CT를 촬영하고 병변이 발견된 경우에는 추가검사를 시행하는 것을 그 내용으로 한다.최근 방사선 노출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뜨겁다. 특히 CT촬영에 대해서는 비록 진단적 목적의 검사이지만 일정량의 방사선 노출을 피할 수 없는 특성 때문에 거부감을 표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이러한 과거 CT 촬영의 단점을 보완해 검진용 검사로 개발된 것이 저선량 흉부 CT이다. 기존 흉부 CT에 비해 방사선량이 현격히 감소돼 10분의 1 정도에 불과하며 조영제를 사용하지 않고 검사하는 장점이 있다.방사선량을 줄이면 상대적으로 안전하지만 영상에 잡음이 증가하고 정밀도가 떨어지지만 최근 영상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방사선량의 감소에도 불구하고 기존 CT 촬영과 비슷한 수준의 선명한 영상을 얻을 수 있게 됐다.흉부영상 전문가들은 “저선량 흉부 CT가 종양 같은 결절을 발견하는 데는 무리가 없으며, 고위험자의 경우 1년에 한 번씩 저선량 CT로 검사하면 폐암을 일찍 찾아내 치료에 효과적”이라고 설명한다.폐암은 조기 발견하지 못해 사망률이 높았으나 저선량 흉부 CT로 정기 검진할 경우 조기 발견이 가능해지므로 사망률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결론적으로 폐암은 사망자가 가장 많은 암이며 그 원인은 초기에 발견이 어려워 진단되는 시기가 늦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저선량 흉부 CT가 폐암 조기발견 및 생존율 개선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보고돼 국가에서도 6대암 검진사업에 포함시키려고 한다.물론 금연이 폐암의 위험도를 낮추는데 최우선이지만 금연이 힘들거나 비흡연자라도 다른 여러 가지 고위험군에 해당한다면 저선량 흉부 CT를 검진으로 적극 활용할 것을 권한다. 매년 저선량 흉부 CT 검진을 하는 것이 폐암 조기진단의 첩경임을 꼭 기억하자. 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국민건강보험 Q&A

Q=군 입대 시 건강보험은 어떻게 처리하나요?A=군 입대로 현역에 복무중인 자의 경우 입대전일 경우 입영통지서, 입대후일 경우 복무확인서를 공단지사에 제출하여 신고하면 됩니다. 육군 현역입영일 경우 유선 신고하면 인터넷으로 병무청 입영일자 확인 후 처리 가능합니다.군복무 기간에는 보험료가 면제되며 군입대일이 속한 달의 다음 달부터 군전역일이 속한 달까지 면제됩니다. 또한 복무기간 중에도 건강보험증을 사용할 수 있으니 휴가, 외출 시 요양기관을 이용해도 됩니다.Q=치석제거(스케일링)에도 건강보험이 적용됐나요?A=국민건강보험공단은 후속조치 없이 치석 제거만으로 치료를 끝냈을 경우 건강보험을 적용해 환자 부담을 낮춰줍니다.만 19세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 연1회 건강보험이 적용돼 1만5천 원만 내고 치석 제거를 받을 수 있습니다. Q=산정특례 제도란 무엇이며 신청절차는 어떻게 되나요?A=산정특례 제도란 진료비 부담이 크고 장기간의 치료가 요구되는 중증질환(암, 뇌혈관‧심장질환, 희귀질환 및 중증난치질환, 결핵, 중증화상, 중증외상, 중증치매)에 대해 환자가 부담할 비용을 경감해주는 제도입니다. 일반 환자의 본인부담률은 외래 30~60%, 입원 20%를 부담하지만, 산정특례 등록자는 외래·입원 관계없이 본인부담률 0~10%를 내면 됩니다.질환 발병 시 의료기관을 방문해 산정특례 질환으로 확진을 받고 공단 또는 의료기관(EDI신청 대행 신청)에 등록 신청을 합니다.SMS문자를 통해 산정특례 등록 결과를 통보받으면, 해당 질환 진료 시 산정특례가 적용됩니다. 자료제공=국민건강보험공단 대구지역본부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면역력 떨어지면 바이러스 재활성화…피부 통증부터 생겨

-아인스피부과의원 문석기 원장-대상포진이 왜 생기□나요?과거에 수두를 앓았거나 수두 예방접종을 한 사람의 경우 신경절에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가 평생 동안 잠복합니다.잠복해 있던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가 면역체계의 저하로 재활성화되면 신경에 염증을 유발하고 피부에 특징적인 군집성 물집을 형성합니다.잠복한 바이러스의 재활성화에는 고령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면역저하, 스트레스, 국소 외상 등도 관여합니다.-발병 빈도는 어떻게 되나요?우리나라의 대상포진 환자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50세 이상인 자, 여성, 당뇨환자, 대상포진의 가족력, 만성폐쇄성 폐질환, 천식, 만성신장질환이 있는 경우에서 발병률이 높습니다.50세 이상에서 발병 위험도가 급격히 증가해 전체 대상포진 환자의 60%가 50세 이상에서 발생했습니다.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의 보고에 따르면 3명 중에 1명은 일생동안 대상포진에 걸립니다. -어떤 증상이 생기나요?먼저 4~5일 발진이 생길 부위에 통증, 가려움, 따끔거리는 증상이 발생합니다. 이후에 침범한 신경의 분포에 따라 대부분 몸의 중앙선을 넘지 않는 한쪽에 국소적인 띠 모양 분포의 물집이 생기며, 통증 및 오한, 발열 등의 전신 증상이 동반됩니다. 7~10일 후에 물집이 생겼던 부위에 딱지가 생기고 2~3주에 걸쳐 서서히 병변이 소실됩니다. -아프지 않으면 대상포진이 아닌가요?대상포진 환자의 90%에서 통증을 호소합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가려움, 따가운 증상, 약간의 불편감 등 다양한 증상을 보이기도 합니다. 또 대상포진 환자의 20%에서는 대상포진 후 신경통으로 진행되며 중등도 이상의 만성 통증이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수년간 지속됩니다. -치료는 어떻게 하나요?대상포진의 치료 목표는 급성 통증을 줄이고 피부 병변의 진행을 막아 질병의 기간을 줄이는 것입니다. 이와 함께 급성 합병증과 대상포진 후 신경통 등의 만성 합병증을 줄이는 것이 치료 목표입니다.경구 항바이러스제를 7일간 투약하면 피부병변의 치유를 촉진하고 급성 통증의 기간을 줄이며, 대상포진 후 신경통의 발생빈도를 줄일 수 있습니다.통증 감소와 대상포진 후 신경통 예방을 위해 진통제와 스테로이드 등을 투여하기도 합니다. 또 피부 병변의 치료와 흉터 예방을 위해 습포 치료와 레이저 치료 등을 시행합니다. 면역저하 환자나 증상이 심한 경우에는 입원 치료 및 항바이러스제의 주사 투여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병변 호전 후에 피부에 발생하는 색소 침착과 흉터는 레이저 치료 등을 통해 호전시킬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전염될 수 있나요?수두 또는 대상포진 환자와의 접촉으로 대상포진이 발생한다는 주장에 대한 확실한 근거는 없습니다. 하지만 대상포진 환자와의 접촉으로 수두 발생 가능성이 있으므로 특히 영유아의 경우는 주의해야 합니다. -대상포진에 한 번 걸리면 자주 재발하나요?최근 논문에는 대상포진의 재발률은 2.3~6.41%로 보고됩니다.일부에서 대상포진이 자주 재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재발률은 높지 않습니다. 이는 재발이 흔한 단순포진과의 오인에 의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예방접종을 하면 완벽하게 예방이 되나요?대상포진 예방접종은 50세 이상이 대상입니다. 1회 접종을 하며 추가 접종은 아직 추천되지 않습니다.예방접종을 한 경우 예방률은 50~70%이며 대상포진에 걸리더라도 증상이 가볍게 지나갈 수 있습니다.2018년 질병관리본부는 대상포진을 앓은 경우에 접종 권고 사항을 추가했고 최소 6~12개월 경과한 후 접종하는 것을 권장했습니다.대상포진은 고통스러운 통증과 합병증을 유발하는 질환으로 피부과 전문의의 상담과 치료가 필요합니다. 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우리동네 자랑-경산시(하)

경산은 대구분지의 남동부에 있고, 북쪽은 팔공산 자락이 뻗어내려 있다. 경북의 최남단에 있는 경산은 서쪽은 대구시, 남쪽은 청도군, 동북쪽은 영천시와 경계를 이루고 중앙부에 평야가 전개되고 있다. 평야지역은 금호강과 지류의 퇴적작용에 의해 형성된 평야로 기후조건과 토양이 비옥하고 좋은 수리시설을 갖추고 있다. 여기에서 생산되는 대추, 복숭아, 포도, 자두 등 과일은 전국 소비자들로부터 최고의 웰빙식품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또 도로망도 경부고속도로, 신대구~부산고속도로, 경부선철도, 국도, 대구도시철도 2호선 등 사통팔달 교통이 경북 도내 최고 요충지역이다. 게다가 12개 대학, 170여 개 연구기관, 경산일반산업단지, 기업체 등과 현재 경산지식산업단지 조성, 대구도시철도 1호선 하양 연장 등 대형 사업진행으로 날로 인구가 늘어나고 발전하고 있다. 경산시는 2030년 인구 40만을 겨냥, 4차 혁명선도도시, 청색기술 중심도시, 미-뷰티도시, 휴먼의료도시, 청년희망도시, 착한나눔도시, 행복건강도시, 중소기업 경제도시, 스마트 농업도시 등 경산발전 10대 전략을 세워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1. 불굴사(와촌면 강학리) 신라 신문왕 10년(690년) 창건되어 조선 중기까지 50여 동의 건물과 12 암자, 8대의 물레방아를 갖춘 큰절이었다. 영조 12년(1736년) 큰 비로 대파되자 중창했으며 철종 11년(1860년)과 1939년에 중건했다. 경내에 삼층석탑, 약사여래입상, 석등, 부도 등이 있다. 1988년 원조 스님이 인도에서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시어 적멸보궁을 건립했다. 보물 제429호. 2. 삽살개 (와촌면 박사리)삽살개는 한반도의 동남부 지역에 널리 서식하던 우리나라 토종개이며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키는 수컷이 51㎝, 암컷은 49㎝이며 생김새는 온몸이 긴 털로 덮여 있다.성격은 대담하고 용맹하며 주인에게 충성스럽다. 신라시대에는 주로 귀족사회에서 길러져 오다가 통일신라가 망하면서 일반 백성이 키우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천연기념물 제368호. 3. 금호서원(하양읍 부호리)세종 때 청백리였던 문경공 허조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 건립한 서원이다.‘준도문(遵道門)’이라 편액 한 외삼문(外三門)을 들어서면 정면에 강당인 수교 당이 자리 잡고 있다. 마당의 좌측에는 평기와를 얹은 4칸 규모의 맞배기와집인 성경재를 두었고 성경재와 마주 보는 마당 우측의 경사진 대지 위에는 사당이 배치돼 있다. 경북도 문화재자료 제449호. 4. 자인 전통시장(자인면 서부리) 자인 전통시장은 1969년 10월22일 개설돼 점포 171개, 주차장 및 화장실 각 2동을 갖춘 지역의 대표 명물이다.인근 하양공설시장에 비해 역사는 짧지만, 장날(3일, 8일)이면 옛 시골장터의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어 많은 시민들과 전국의 관광객들이 찾아오고 있다. 5. 용산산성(용성면 용산리) 경산시 용성면 해발 435m 용산의 정상 아래를 둘러싼 형태의 산성으로 지금 남아 있는 성의 총 둘레는 1,481m이며 성벽의 높이는 약 1.5~2.5m이다. ‘삼국사기’에 김인문이 당나라로부터 돌아와서 군주로 임명되었고 장산성의 축조를 감독했다는 기록이 있다. ‘장산성’이 지금의 용산산성으로 파악되고, 이 성을 만든 연대가 삼국시대임을 알 수 있다. 6. 난포 고택 (용성면 곡란리) 난포 고택은 임진왜란 때 전라도사로 전주를 방어했던 난포 최공철이 지은 집이라고 전한다.명종 원년(1545년)에 지었고, 건축양식과 기법으로 보아 17세기를 전후한 시기의 집으로 보인다.원래는 정침·아랫사랑·중사랑·방아실·행랑채와 마루, 사당 등이 고루 갖추어진 집에서 지금은 정침·행랑채·사당만 남아있다. 경북도 지정 유형문화재 제80호. 7. 육동 미나리(용성면 용천리 등)경산 용성면의 육동, 남천 맥반석지구에서 생산되는 전국적으로 소문난 미나리다. 지리적으로 산간 오지의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환경에서 청정암반수로 재배되며, 미나리 특유의 향과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용성면 용천리를 비롯한 부재, 용전, 대종, 부일, 가척리 등 6개 마을에서 재배하는 육동미나리는 2월 말부터 시작하여 3, 4월이 본격적인 시즌이다. 8. 경산향교(경산시 중방동) 경산향교는 고려 공민왕 때 옥곡동에 창건되었고 조선 숙종 때 현재의 신교동으로 옮겨 세워 매년 음력 2월과 8월에 5성 22현에 대해 봉행하고 있다.경산에는 생활권을 반영하여 경산향교, 자인향교, 하양향교가 있으며 가을이면 주변 은행나무가 볼만하다. 9. 영남대민속촌(경산시 갑제동) 민속촌에는 영남대학교 거울 못 동쪽과 벚꽃 산책길 야산에 모두 7채의 복원된 전통가옥들이 있다.이 건물은 1970년대에 옮겨 세운 것으로 구계서원·의인 정사, 까치구멍 집·쌍송정·일휴당은 안동댐 수몰지역에서 옮겨 세웠다. 경주 맞배집, 인왕동 고분군 복원지는 경주에서 이건·복원하고, 최근에 칠곡군 석적면에 있던 화산서당을 이건·복원했다. 10. 감 못(경산시 갑제동)영남대학교 동문 앞에 연꽃으로 유명한 감 못이 있다. 8월이면 연꽃으로 뒤덮인 장관을 연출해 전국의 사진동호회에서 이곳을 즐겨 찾고 있다.감 못 주변에 명품대추 테마공원을 추진하고 있으며 대추가로수길, 대추광장, 대추관찰원, 조망대 등을 조성할 계획이다. 11. 삼성역(남천면 삼성리)경산시 남천면 삼성리에 있는 경부선 철도역으로 지난 1921년 신호소로 영업을 시작해 1926년 10월 보통 역으로 운수업무를 개시했다.지난 2004년 7월 여객취급이 중지된 후 배치 간이역으로 전환됐으며 간이역 정취를 느낄 수 있고 봄에는 주변의 화려한 벚꽃이 장관을 이룬다.12. 산전 맥반석 포도(남천면 산전리)경산포도는 일조량이 많아 당도가 높고 색상이 뛰어나 최고의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시설포도 최대산지인 남산면의 거봉포도와 맥반석 토양의 남천 산전 MBA포도는 맛과 질이 우수해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졌다.최근에는 껍질째 먹을 수 있고 당도가 높은 청포도 생산이 늘어나고 있다.남동해 기자 namdh@idaegu.com

떡잎부터 남달랐던 매의 눈 거침없던 ‘여성파워’로 우뚝서다

선덕여왕은 신라 중기의 왕으로 많은 기록을 남겼다. 여성으로는 신라시대 최초로 왕이 되면서 신라 56왕 중에서 3명의 여왕을 배출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여성이었지만 많은 업적을 남긴 왕으로 오래도록 칭송이 이어지고 있기도 하다. 학문을 장려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다. 현대 과학으로도 풀기 어려운 기하학적인 숙제를 남기고 있는 첨성대를 건축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황룡사구층목탑을 세운 일이다. 인재를 양성하고, 적절하게 부릴 줄 알았다. 김춘추와 김유신과 같은 인물을 활용해 고구려, 백제와의 전쟁을 지속적으로 치루면서 삼국의 균형을 유지했다. 끝내 당나라와의 외교를 통해 문물을 받아들이는 한편, 약소국의 서러움을 떨치고 삼국통일의 기반을 마련했다. 무엇보다 삼국유사에서 기록하고 있는 선덕여왕의 특별하게 뛰어난 지혜는 지금까지 학자들의 보고서에 오르내리며 회자되고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등의 역사서에서 선덕여왕의 무덤에 대한 기록이 일치해 신라 중기 이전의 왕릉 위치가 정확하게 드러난 최초의 사례로 소개되고 있다. ◆삼국유사: 선덕여왕 지기삼사제27대 덕만의 시호는 선덕여대왕으로 성은 김씨이며 아버지는 진평왕이다. 정관 6년 임진(632)에 왕위에 올라 16년간 나라를 다스리면서 미리 알아맞힌 일이 모두 세 가지 있었다. 첫째는 당나라 태종이 붉은색·자주색·흰색의 세 가지 빛깔로 그린 모란꽃 그림과 그 씨를 석되를 보내왔다. 왕이 그려진 꽃을 보고 말하기를 “이 꽃은 필시 향기가 없을 것이다”라 하면서 이내 뜰에 꽃을 심어라고 명령하여 그 꽃이 피고 떨어질 때까지 기다렸더니 과연 왕의 말과 같았다. 둘째는 영묘사 옥문지에서 겨울철인데도 많은 개구리들이 모여 3, 4일 동안 울었다. 나라 사람들이 괴이하게 생각하여 왕에게 물었더니, 왕이 급히 각간 알천과 필탄 등에게 명령하여 날랜 병사 2천 명을 뽑아 빨리 서쪽 교외로 나가 ‘여근곡’을 물어서 가면 반드시 적병이 있을 것이니 그들을 습격하여 죽이라고 명령했다. 두 명의 각간이 명을 받고 각각 병사 1천 명씩 거느리고 서쪽 교외로 가서 물었더니 과연 여근곡이 있었다. 그곳에 숨어 있는 백제 군사를 모두 잡아 죽였다. 셋째는 왕이 아무 병도 없는데 여러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짐이 아무 해 아무 달 아무 날에 죽을 것이니 나를 ‘도리천’ 속에 장사지내라”고 하였다. 여러 신하들이 그곳을 알지 못하여 어디냐고 여쭈었더니 왕이 말하기를 “낭산 남쪽이다”라 했다. 그 달 그 날이 되자, 과연 왕이 세상을 떠났으므로 여러 신하들이 낭산 남쪽에 장사지냈다. 10여 년이 지난 뒤 문무대왕이 왕의 무덤 아래 사천왕사를 지었다. 불경에 ‘사천왕천의 위에 도리천이 있다’고 했으니, 이로써 대왕이 영험하고 신성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의 여러 신하들이 왕에게 여쭙기를 “어떻게 모란꽃과 개구리의 두 사건을 미리 알았습니까?”라 하니, 왕이 “그려진 꽃에 나비가 없어서 향기가 없음을 알았다. 이는 바로 당나라 황제가 나의 남편 없음을 업신여긴 것이다. “개구리의 성난 모습은 병사의 형상이며 옥문이라는 것은 여인의 음부이고, 여자는 음이요, 그 색깔은 흰색이다. 흰색은 서쪽 방향이기 때문에 서쪽에 병사가 있음을 알았다. 남자의 성기가 여자의 옥문으로 들어가면 반드시 죽는다. 그래서 적병을 쉽게 잡을 줄 알았다”라 하니, 이에 여러 신하들 모두가 왕의 지혜에 탄복했다. 선덕왕이 영묘사를 세운 일은 양지 스님 전기에 자세히 실려 있다. 딴 기록에는 이 왕 때에 ‘돌을 다듬어 첨성대를 쌓았다’고 했다. ◆선덕여왕신라 27대 선덕여왕은 진평왕의 맏딸이다. 이름은 덕만이었다. 632년에 왕위에 올라 647년까지 16년간 나라를 다스렸다. 선덕여왕은 어릴 때부터 지혜가 뛰어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나라 태종이 보낸 그림을 보고 향기가 없는 꽃이라는 것을 알아 맞췄고, 옥문지에 백제 군사들이 숨어 있는 것을 개구리들의 징후를 보고 예측했다. 이어 자신의 장지를 낭산으로 지정하면서 도리천이라 불러 미리 사천왕사가 들어설 것을 짐작하는 등으로 선덕여왕은 특별한 지혜를 가졌다. 선덕여왕은 신라의 인재들을 당나라로 유학시켜 공부하게 하고, 신라에도 국학을 설립해 인재 양성에 힘썼다. 또 백제와 고구려 등의 침략전쟁이 많아 어려움을 겪으면서 당나라와의 외교를 통해 삼국이 서로 견제하도록 했다. 기록적인 업적들도 길이 전해지고 있다. 첨성대를 쌓아 천문을 살피거나 나라의 길흉을 점치며 안녕을 빌었다. 지금도 완벽하게 흉내낼 수 없는 기하학적 기술로 황룡사에 9층목탑을 세워 불교중흥으로 왕권의 안정을 도모하는 한편 삼국통일의 기반을 마련했다. 결국 상대등 비담의 난을 겪으면서 재위 16년만에 생을 마감하고, 그의 4촌 진덕여왕이 왕위를 이었다. ◆흔적△선덕여왕릉: 선덕여왕릉은 경주시 보문동에 있는 신라 27대 왕인 선덕여왕(재위 632∼647)의 무덤으로, 1969년 사적 제182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선덕여왕릉은 높이 6.8m, 지름 23.6m의 둥글게 흙을 쌓은 원형 봉토무덤으로, 밑둘레에 자연석을 이용하여 2∼3단의 둘레돌을 쌓았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여왕이 죽거든 부처의 나라인 ‘도리천’에 묻어 달라고 하였으나, 신하들이 이해를 못하자 여왕이 직접 도리천이 ‘낭산 정상’이라 알려주었다. 문무왕이 삼국을 통일한 후 낭산에 사천왕사를 지었고, ‘낭산의 정상이 도리천’이라 한 여왕의 뜻을 알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여왕릉은 1949년 대대적인 정비보수 과정을 거쳐 지금의 모습으로 관리되고 있다. 경주에서 울산으로 이어지는 7번 국도를 따라가다 사천왕사지 입구에서 산길로 접어드는 길은 소나무숲이 우거진 산책로로 조성돼 여름에도 시원한 그늘이 드리워진다. 왕릉은 공원 안의 조형물처럼 조용하게 숲 속에 위치해 있다. 드라마 ‘선덕여왕’ 이후 찾는 발길이 부쩍 늘었다. △황룡사구층목탑: 선덕여왕이 당나라에서 공부하고 온 ‘자장’의 건의로 황룡사에 구층목탑을 건립했다. 여동생의 남편이자 김춘추의 아버지 용춘을 건축의 총괄지휘자로 임명했다. 건축기술이 뛰어난 백제의 아비지를 초빙해 역사에 길이 남을 예술작품으로 건립했다. 높이 82m로 지금의 27층 높이 건축물이다. 순수 목조건축물로 현대 건축기술로도 흉내내기 어려울 정도의 과학이 깃들어 있다. 심초석에서 당나라가 제조한 것으로 밝혀진 백자항아리가 발견돼 당나라와의 문물교류가 활발했던 것을 짐작하게 한다. 1238년 몽고 침략전쟁 당시 불에 타 없어지고, 현재 주춧돌과 심초석만 남아 있다. △첨성대: 첨성대는 신라 천 년을 지나 지금까지 동부사적지 가운데 위치해 경주역사문화관광의 1번지로 주목받고 있다. 별을 관측하는 천문대라는 설과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단이라는 설이 부딪치고 있다. 정확한 용도는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첨성대는 27계단으로 쌓아 27대 선덕여왕과 의미가 겹친다. 맨 윗층의 사각형 단과 아래층 기단을 합하면 29층으로 음력의 한 달에 해당한다. 중앙의 창문까지 12단이고, 창문 위에서 꼭대기까지 또 12단인데 이것은 1년 12달과 24절기로 풀이된다. 첨성대를 쌓은 돌벽돌은 365개로 1년의 길이에 해당된다. 기단석은 네 방향으로 동서남북을 정확하게 맞추고 있고, 남향의 창문은 태양이 비칠 때 춘분과 하지, 추분, 동지를 측정할 수 있게 했다. 현재 남아 있는 첨성대의 구조와 기록만으로 첨성대가 어떠한 기능을 했는지 알 수 없다.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쳐 오면서 천문대를 뜻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던 것과 연계해 천문대와 관련된 시설로 추정할 뿐이다. ◆새로 쓰는 삼국유사: 선덕여왕진평왕은 아들 없이 딸만 셋을 두었다. 나이가 들면서 왕위 계승을 두고 고심하다가 맏딸에게 왕위를 물려주기로 결심했다. 딸의 안정적인 위치를 염려해 위협적인 요인들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 삼촌 진지왕의 아들들이었다. 지혜롭고 무예가 뛰어난 장조카 용수를 맏사위로 맞아들였다. 그리고는 중책을 맡겨 나라의 일을 배우고 익히도록 했다. 지혜로우면서도 다양한 재주를 겸비한 둘째 조카 용춘도 둘째 사위로 들여 반란의 싹을 없앴다. 또한 셋째 딸 선화공주는 백제의 무왕에게 시집보내 백제의 공격을 완화시키는 전략을 구사했다. 선덕여왕은 지혜로웠지만, 그 또한 아들을 낳지 못했다. 아버지 진평왕이 54년이나 왕위에 있으면서 자연스럽게 중년이 훌쩍 지난 나이에 왕위를 물려받았다. 선덕여왕은 왕위에 올라 전쟁을 치르랴 나라의 살림을 꾸리랴 자신을 돌아볼 정신이 없었다. 증조할아버지 진흥왕이 무자비하게 넓혀 놓은 영토를 지키기 위한 전쟁은 끝이 없었다. 고구려와 백제와의 전쟁은 잠잠할 날이 없었고, 왜구의 침략도 심심치 않았다. 아버지 진평왕이 전쟁을 하면서 화랑을 양성해 군사력을 키웠듯이 선덕여왕도 젊은이들의 교육에 힘써 국학을 진흥하고 화랑을 육성했다. 화랑들의 기개가 충만하면서 중앙정치권은 귀족들의 세력다툼으로 어지러워졌다.선덕여왕은 왕권의 안정과 나라의 기틀을 다지기 위해 친족들의 힘을 키우고 중용하는 전략과 유능한 청년을 선발해 중임을 맡기는 정책을 동시에 운용했다. 남편과 시동생이었던 용수와 용춘에게 나라의 살림을 맡기는 한편 용춘의 아들, 조카 김춘추를 키워 중요한 일을 하도록 했다. 이어 지략과 힘을 가진 김유신과 가까이 지낼 수 있도록 배려해 측근에 두면서 친화세력을 키웠다. 용춘과 김유신이 선덕여왕 주변에 두텁게 포진하면서 가까이 접근할 수 없게 된 비담은 상대등이라는 직위를 이용해 반란을 도모했다. 끝내 선덕여왕의 가슴에 비수를 꼽았지만, 자신도 춘추와 김유신에게 제압당하면서 빗나간 사랑의 비운의 주인공으로 전락했다. 선덕여왕의 선택은 삼국통일의 기반을 닦는 주춧돌을 놓았지만, 자신은 화려하게 피어나는 꽃을 스스로 지게 했다. *기획연재 중 ‘새로 쓰는 삼국유사’는 역사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지만, 새로운 문화콘텐츠 개발을 위해 인위적으로 구성한 픽션입니다.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혼자서, 저절로, 알아서 일하는 공장…지능화·자동화 통해 제조업에 날개

대한민국 기적의 시발은 ‘한강’이었다. 유사한 궤로 독일 경제의 전초는 바로 ‘라인강’으로 상징된다.우리는 그간 4차 산업혁명을 두고 ‘범람’이냐, ‘발발’이냐의 설왕설래를 거듭해 왔다. 유사 의미를 내포한다지만 그만큼 4차 산업은 ‘혁명’의 기치를 앞세워 ‘뜨거운 감자’ 내지 ‘센세이션’이라는 테마를 상존시켰다. 이는 곧 4차 산업의 근원이 우리 삶 저변으로 스며들었다는 방증이다.4차 산업혁명의 밀알은 ‘인더스트리 4.0(Industry 4.0)’으로 보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다. 이를 역추적해보고자 한다면 2011년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당시 독일공학협회는 인더스트리 4.0을 국가 차원의 ‘미래 먹거리’로 제시했다.독일에서 주창한 이 어젠더는 서두에 언급한 ‘경제 신흥국’의 발전사항과 일맥상통한다. 제조 부분에 세계 일류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한 독일이 여타 신흥국들의 눈부신 (제조업) 성장 동력을 일정 부분 견제하고자 착안한 것이 바로 인더스트리 4.0 프로젝트였던 것.인더스트리 4.0의 모토는 ‘공장의 완벽한 자동화’다. 여기에는 3차원의 현재와 4차원의 가상공간을 연계하는 ‘사이버 물리 시스템(CPS)’이 투영된다. 사물인터넷(IoT)의 활용으로 공장 전반의 상태 및 이를 토대로 한 ‘컨트롤 원격화‘야말로 인더스트리 4.0의 아이덴티티라 칭할 수 있다.스마트의 기술력을 담뿍 담아낸 ‘스마트팩토리’의 방점은 사물인터넷으로 상징한다. 다시 말하자면 사물인터넷을 기점으로 공장 내 가상의 영역으로 일컬어지는 전산 및 컴퓨터 기계 등과의 호환을 통해 원활한 커뮤니티의 장을 마련한다는 것이다.스마트팩토리의 자동화 과정은 총 5단계로 정의 내린다. 2019년 현재에 이르러 전 세계 기준 스마트팩토리의 기술력은 3단계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3단계는 로봇이 미처 범접할 수 없는 생산 공정간 인력이 투입되는 수준이다.전문가들은 진정한 의미의 스마트팩토리 구현을 위해선 ‘소프트웨어’의 획기적 발전이 동반돼야 함에 입을 모으고 있다. 사물인터넷이 접목된 자동화 장비를 운용하는 범주가 바로 소프트웨어 전문가들의 몫이기 때문으로. ◆생산성을 극대화하다스마트팩토리의 주요 산업군은 제조업이다. 스마트팩토리의 정의를 다시 한번 짚어보자면 스마트팩토리라 함은 사물인터넷과 인공지능(AI), 빅데이터의 기술력을 융합, 최선을 넘어 최적의 생산현장 발현을 그 의의로 둔다. 이는 곧 자동화 제고를 통한 인건비 절감, ‘생산성의 극대화’라는 캐치 프레이즈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으로 풀이된다.스마트팩토리 구현을 위한 주요 사양에는 증강현실(AR)의 선제적 접목이 필수다. 스마트팩토리의 원리 자체가 컴퓨터 시스템과 인력을 잇는 교각 역할로 점철됨에 기인, 가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AR이라함은 스마트팩토리의 근간이라 정의내림에도 결코 과하지 않다.스마트팩토리 내 AR의 기능적 측면은 다양하다. 우선 AR을 통해 노동자 개별로 작업지시 및 생산영위를 위한 갖가지 정보를 제공한다. 여기서 노동자에게 부여되는 AR은 착용이 가능한 웨어러블의 형태를 띤다. 작업자는 굳이 손을 이용하지 않더라도 착용한 AR기기를 통해 작업 간 다채로운 콘텐츠를 손쉽게 접할 수 있다.대한민국 유수의 한 생수 업체는 ‘생산속도 제고’를 회사의 주력 방침으로 내세웠다. 500㎖ 기준으로 시간당 8만여 병 생산이 가능하다는 것이 업체 측 설명인데, 이 같은 기술력이란 우리나라를 넘어 세계 일류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이를 가능케 한 것이 바로 ‘자동화 공정 시스템’이다. 이 많은 제품 생성을 위해 투입된 인원은 고작 30여 명 남짓. 공정 라인에 나선 인력들은 오롯이 무인 작동을 위한 시스템 컨트롤 에 주력한다.자동화 시스템 구축은 인력의 효율적 구상과 더불어 생산기일 단축을 통한 원활하고 유동적 공정라인 실현에 혁혁한 공적을 남기고 있다.유력 금형개발 업체의 기본라인은 24시간 자동화 시스템이다. 설계 과정서부터 조립에 이어지는 전 과정을 ‘3D데이터’ 주축으로의 시스템적 변혁을 꾀했다. 이 같은 변화는 기존 한 달 가까이 걸려 생산된 완제품을 불과 열흘 안팍으로 앞당기는 계기가 됐다.또 다른 사출기 업체는 재료 투입 과정부터 냉각, 성형 등의 사출 공정 중 대부분을 자동화 시스템에 투영시켰다. 여기에는 생산력 제고와 더불어 ‘안전’의 기치가 가미돼 있다. 사출 간 틀 사이 인력이 투입될 경우 자칫 돌이킬 수 없는 인명사고가 발발할 수 있음에 착안, 기계 내부에 사람이 감지되는 즉시 전 공정이 정지되는 기술력도 스마트팩토리의 빼놓을 수 없는 주요 요소다. ◆스마트팩토리와 5G의 만남AI로 하여금 발발 가능한 이항대립 구조는 몇 해를 걸쳐 끊이지 않는 논쟁거리 중 하나다. 인간의 편의제고를 위한 측면과 ‘잉여인간 양산’이라는 이분법적 논란이 AI 고찰의 당위성을 공고히 한다는 것인데, 이를 타개하고자 하는 노력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는 곧 무조건적 자동화 시스템 도입이 아닌 작업자 입장에서의 유연한 조건 설파에도 주력한다는 것.지역의 한 항만공사는 일부 부두를 대상으로 자동화 시스템 도입 목표를 밝혔다. 정확히 말하면 자동화가 아닌 ‘반 자동화’. 이 같은 결정의 배경엔 부두 노동자들의 ‘온전한 직업 보장’이라는 패러다임이 한몫했다. 공사 측은 부두 전반으로 무인 시스템은 접목하되, 컨테이너 하역 공간은 기존 노동력으로 운영한다는 방침을 내세웠다.‘초저지연’의 기술력을 품은 ‘5G’도 스마트팩토리의 근간 중 하나로 꼽힌다. 작업 간 끊기 지 않는 정보 공유와 원거리 진단 및 생산 전반으로 5G는 그 영향력을 떨쳐갈 기세다. 이 같은 상황을 반영하듯 유수의 통신업체 들은 제조업체들과의 적극적인 업무협약(MOU)을 통해 스마트팩토리 사업에 가일 층 박차를 가하고 있는 모양새다.실제 한 대형통신사에 따르면 생산품을 업체 니즈에 맞는 라인에 투영시켜주는 로봇과 제품의 각종 이미지를 면밀히 분석, 불량 유무를 제어 및 체크하는 머신, 공정 간 발생되는 각종 데이터를 빅데이터화 한 후 이를 상시 수집 및 분석하는 관제 모니터링 등의 이른바 ‘스마트팩토리 3종 서비스’ 개시를 위한 마지막 담금질에 매진하고 있다.유수의 철강업체는 버퍼링 없는 5G기술력과의 융합을 통한 ‘연속 공정’ 체제를 더욱 굳건히 했다. 여기에는 앞선 공정 간 발생한 데이터를 취합·분석하는 빅데이터 기술력도 아울러 접목했는데, 이를 토대로 품질 오류 발생 시 뒤 공정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함은 물론, 막히지 않는 데이터 호환 및 연동을 통해 제품 불량에 선제적으로 대응한다.스마트팩토리는 공정 간 자동화를 넘어 소비자와의 소통에도 적극적이다. 여기에는 애플리케이션의 역할이 주효했는데, 한 타이어 관련 플랫폼 회사는 타이어의 압력과 온도 등의 데이터 자료를 중앙 서버에 전송, 전송된 자료를 기반으로 차량 소유자 및 관리자들을 상대로 타이어 관련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체크할 수 있도록 한다. 소비자는 메시지를 통해 타이어 상태를 알림 받게 되는데, 이는 타이어의 유지·보수, 효율적 사후 관리, 한발 더 나아가 운전자 안전의 견인차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스마트 공장 도입으로 인한 경제적 산출효과는 수치를 통해 더욱 가시화해가는 과정이다. 지역의 한 중소업체는 스마트 공장 도입 전 대비 20배 이상의 수출액을 기록했으며 인력 소모 없이 전 자동화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또 다른 중소업체의 사례를 비춰 봐도, 자동화 공정 도입 이후 제품 불량률이 기존 4%대에서 0.5% 이하까지 절감한 것으로 알려진다. ◆국내 도입 더욱 높아져야스마트팩토리의 구호는 의외로 단순하다. ‘적은 인력, 신속하고 정확한 공정, 이를 통한 효율성 및 생산성의 극대화’가 바로 그것. 우리나라를 넘어 지구촌 전반으로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라도 최선을 넘은 최적의 생산품 생성을 위한 스마트팩토리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시류가 거세다.이 같은 상황에 기인, 정부는 최근 제조업 혁신을 꾀하기 위한 스마트팩토리 전문 프로그래머 양성과 함께, 재직자의 역량 제고를 위한 각종 교육 지원을 발표했다. 이는 지난해 말 정부차원으로 공식 발표된 ’중소기업 스마트 제조혁신 전략‘에 상응하는 대처로 보여지는데 여기엔 2022년 기준 스마트 인력 ’10만 명‘ 양성 계획이 담겨있다.사실 대한민국의 스마트팩토리 도입 수준은 5단계 중 1단계에 머물러 있는 처지다. 전 공정을 무인 제어하는 2단계 과정은 전체 스마트 공장 중 2%에 그쳐 있을 정도로 척박한 것 또한 현실이다.이 같은 현실을 타개하고자 정부는 위와 같이 응답했다. 중소기업의 틈새시장 공략과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 스마트팩토리는 터부시할 수 없는 주요정책임을 정부 차원의 자인인 것으로 풀이된다.유수의 IT 전문가들은 스마트팩토리의 시류를 20~30년으로 내다보고 있다. 앞서 가상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탄생한 PC가 그랬고 스마트의 이름을 딴 스마트폰 역시 완급 조절을 해가며 오늘에까지 이르렀다. 물론 진화의 과정은 현재진행형이다. 스마트팩토리의 가시적 경제효과야말로 초기 비용이라는 부담을 일정 부분 해갈해갈 ‘완충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파괴는 붕괴의 의미를 내포한다. 붕괴를 두고 다만 고인 물의 정체와 고착화를 무너뜨리는 또 다른 의미의 선한 파괴로 회귀될 수 있음을 굳게 믿어 볼 때다. 그 옛날 마차의 발명을 두고 ‘파괴적 혁신’이라 지칭했듯, 파괴의 중의적 표현을 간과하지 말자. 글·사진 군월드 IT사업팀김종윤 기자 kjyun@idaegu.com

가문 대대로 이어진 ‘애국의 피’…임진왜란부터 일제시대까지 구국의 선봉에 서다

안동에서 영덕으로 가는 34번 국도변 임하댐 아래, 번듯한 경북독립운동기념관이 마을을 지켜주고 있다.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 의성김씨 집성촌 ‘내앞마을’이다.영양 일월산의 지맥이 동남쪽으로 내려오다 서쪽으로 흘러오는 낙동강 지류인 반변천과 만나 이뤄진 전형적인 배산임수형 마을 ‘내앞’. 밝은 달 아래 귀한 사람이 입을 옷을 세탁하는 모습을 닮은 ‘완사명월형’이라며 내로라하는 풍수가들이 모두 우리나라의 최고 길지중 하나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 내앞마을. 귀봉종택은 그 내앞마을 의성김씨 집성촌에서 작은 종가로 통한다. 종가가 엄존하고 종손이 있는데도, 둘째의 작은 종가가 대를 이어오는 전통이 귀봉종택의 위상이다.중시조인 청계 김진에게는 다섯 아들이 있었으니 첫째 약봉 극일, 둘째가 귀봉 수일, 셋째가 운암 명일, 넷째가 학봉 성일, 다섯째가 남악 복일이다. 아들 셋이 문과에 오르고 둘이 생원에 합격했으니 세상에서는 ‘오자등과댁’이라 불리었다. 청계를 불천위로 모시는 약봉 극일의 후손이 대종택을 중심으로 종가를 이어오고 있는 가운데, 둘째 귀봉 수일의 아들 운천 김용이 불천위로 모셔지면서 일가를 이루었으니 작은 종가로 분파한 것이다. 의성김씨 대종택과 이웃해서 귀봉종택이 자리잡고 있지만, 골목 입구는 다르다.길게 이어진 골목 끝에 있는 대문채를 들어서면 위압적이지 않은 넓은 마당이 귀봉종택의 위상을 설명해준다. 경북도 민속자료에서 중요민속문화재 267호로 승격된 귀봉종택 사랑채에는 지난 해 가을 불천위 제사를 모실 때 제관들의 소임을 적어놓은 집사기가 아직 그대로 붙어 있다. 이곳에서 해마다 10월 운천 부부의 불천위 제사를 각 각 모셨는데, 올해부터는 운천의 제삿날 두 분을 함께 모시기로 했다고 종택을 관리하는 후손 김상태(57) 씨는 말한다. 제사도 시류를 거스를 수는 없는 모양이다.안채는 보통 양반 민가의 口자보다 훨씬 넓은 ㄱ자형 정침이 여성 공간인 안채와 사랑채, 부엌칸을 이어달아 6칸 넓은 대청이 종택 살림을 짐작케 해 준다. 정침의 이층 다락방 규모나 사랑채의 마루, 제사공간은 종택으로서의 위상을 보여주고 있다. ◆운천 김용과 호종일기운천 김용은 귀봉의 장남으로 향시에 장원하고 33세에 문과에 급제해 승문원에 들어갔다. 이듬해 예문관에 발탁될 정도로 왕의 신임을 받았다. 천연두로 고향에 내려와 있던 36세에 임진란이 일어나자 안동수성장으로 ‘모병문’을 지어 의병을 모집하고는 직접 지휘해 왜적을 막아냈다. 운천은 모병문에서 ‘국토가 잠식당하고 또 안으로 나라 기강이 무너진다면 모두 멸망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하고, “군부를 섬기는 백성으로서 한 번 죽기를 결심하고 결연히 의병 모집에 호응해달라”고 호소했다. 임란 당시 그의 집에는 안집사 백암 김륵이 와 있었는데, 그는 백암과 예안 현감 신지계 등과 함께 의병 결정을 논의했다. 운천은 동생 대박 김철과 함께 의병을 모집하고, 선두에서 왜적을 막아냈으니 그의 집이 ‘안동 의병 결성의 산실’이었다고 종손 김승태(66)씨는 증언한다. 왜적의 침입으로 선조가 의주로 파천한 뒤 임금을 호종하면 쓴 호종일기(1593년 8월부터 1594년 6월까지)가 있다. 운천이 예문관검열 겸 춘추관기사관으로 호가하면서 기록한 호종일기는 보물 484호로 지정돼 지금 국학진흥원에 보관돼 있다. 호종일기는 행재소에서 사관들이 호종하면서 당시의 정사를 기록한 1차적 사료로서 당시의 생활상은 물론, 정치 군사 외교 등 다방면의 자료들을 기록해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특히 왜란 당시 병사 4만을 이끌고 우리나라를 도우러 왔던 명나라 제독 이여송과 대장 양원, 오유충과 유정을 비롯한 여러 장수와 군졸들의 언행과 생활, 그리고 이들을 대접하며 여러 면에서 대면했던 접반사 이덕형과 김수 윤두수 심희수 이항복 심수경 장운익 등의 활약이 소상히 기록돼 있다. 예문관에 있을 때는 가차 없는 직필로 난세에 맞섰고, 사간원 시절에는 기축옥사에서 부당하게 희생당한 최영경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합계를 올려 주위 사류들을 통쾌 찬탄케 했다고 미수 허목은 묘비명에 적었다. 홍문관 사헌부 시절 지론이 정직해 조정과 백성들로부터 칭송을 받았던 것이다. 그의 직설은 춘추시대 신하의 말을 듣지 않았다가 전쟁에 패한 목공의 예를 들면서 광해군의 실덕을 거론해 왕의 과오를 성심으로 바로잡으려 했을 정도였다고 후손들은 전한다. 임진란 이후, 당쟁이 치열해 지면서 북인 정권에서 외직으로 밀려난 운천은 선산부사와 상주목사, 예천군수와 홍주 여주 목사 등 다섯고을의 목민관을 지내면서 가는 곳마다 선정을 펼쳐 지역민의 칭송을 받았음이 묘비명과 구전으로 전해지고 있다. 임진란 7년 전쟁으로 나라 곳곳의 민생은 피폐해졌고 민심마저 흉흉했으나 운천은 무너진 나라 기강을 지역에서부터 바로 세우고 파괴된 국토를 복구해 백성들의 삶을 안정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는 백성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풍속을 선도하기 위해 솔선 실천했다. 일생을 벼슬에도 명리에 휘둘리지 않고 청빈을 부끄러워하지도 않았으며 나라와 백성이 필요로 할 때는 몸을 바쳤으니 오로지 나라와 참다운 군자의 길을 걸었던 운천 김용으로 역사는 기록한다. ◆독립운동과 의성김씨 귀봉파항일독립운동사에서 안동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고, 그 중에서도 의성김씨의 희생과 헌신은 단연 돋보인다. 독립운동사에 따르면 내앞마을은 1895년 의병항쟁에서부터 독립운동에 나섰다. 일제의 조선 침략이 노골화되기 시작한 1904년 안동 유림들이 위정척사의 애국 계몽운동을 벌이기 시작했으니 그 시발점이 내앞이다. 만주로 망명해 독립운동 기지를 세우고 가산을 독립운동에 쏟아 부었던 운천의 후손들은 독립운동 공로를 인정받아 훈장과 포장을 받은 사람만도 18명에 달할 만큼 수많은 사람들이 구국 항일 호국운동에 몸담았다. 경북도독립기념관이 내앞마을에 들어선 것이 의성김씨 가문의 정신적 물질적 기여에 보답하는 차원이기도 했으니, 귀봉종택이 항일 국난 극복의 산실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강윤정 경북도독립운동기념관 학예연구부장은 말한다. 귀봉 김수일의 11대손인 비서 김대락은 사재를 털어 근대식 교육기관 협동학교를 여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1910년 치욕적 병탄으로 나라가 망하자 만삭의 손부와 손녀까지 대동하고 만주로 망명을 선택한다. 백두산 아래 한인이라는 뜻의 ‘백하’로 불렸던 것도 그때부터다. 경북도 기념물 137호인 ‘백하구려’는 현재 김대락의 종증손 김시승(83) 씨가 거주 관리하고 있다.정면 8칸으로, 서쪽 4칸은 사랑채이고, 동쪽 4칸은 중문간을 비롯한 아래채이다. 사랑채에 걸린 ‘백하구려’ 라는 현판 때문에 그렇게 불리는데, 비서 김대락이 만주로 망명가서 백하라는 호를 썼고, 이 집은 김대락이 만주로 망명하기 전 협동학교 교사로 사용됐던 곳이다. 김 씨는 “지금의 백하구려는 협동학교 당시의 집이 아니다. 협동학교를 설립하고 간판 붙일 곳이 없어 당시 초가집에 간판을 붙였는데, 독립운동을 하러 만주로 망명간 뒤 협동학교 교실로 쓰던 10칸이 뜯겼다. 지금 문화재청에서 복원해 주겠다는 제의도 있지만, 지금 집도 관리하기 힘들다”며 거절했다고 말한다. 김대락의 누이 김락은 독립운동의 한가운데를 지킨 여성 독립운동가다. 파리장서 의거라 부르는 1차 유림단 의거의 핵심 이중업의 아내이자, 단식 순국한 의병장 이만도의 며느리이며, 광복회와 제2차 유림단 의거에 참여한 이동흠 이종흠의 어머니이다. 그녀는 3·1만세시위에 참가했다가 일본 경찰에 끌려가 고문 끝에 두 눈을 모두 잃는다. 일송 김동삼은 본명이 김긍식이다. 그도 만주로 망명해서 이름을 동삼으로 바꾸었다. 김대락과는 같은 집안의 족질관계다. 항일운동을 하면서 협동학교를 설립하고, 또 만주로 떠날 때도 서로 의논했으며, 만주에서 항일운동을 하면서도 동지 이상으로 혈족의 의리를 보여줬다. 만주에서는 서로군정서의 참모장으로 청산리전투에도 참여했으며, 임정 국무령 이상룡이 국무위원으로 임명했으나 항일무장투쟁을 위해 취임하지 않았다. 1931년 하얼빈에서 일경에 체포돼 국내로 압송돼 평양법원에서 10년 형을 선고받고 옥살이 중, 1937년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했다. 그의 유해를 거둬들여 장사지내 준 만해 한용운이 일생 한 번 울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올 만큼, 선생의 애국 항일 운동과 투철한 민족 독립정신은 후세 귀감이 되고 있다. 일송 김동삼의 평가와 대우에 대해 김시승 씨는 “안동의 독립운동을 연구하는 역사가들이 내앞마을에 와서 ‘진정한 의미의 독립운동가는 일송 한 사람 뿐’이라는 칭송을 들었지만, 내앞마을에는 김동삼의 생가 표지석 하나가 전부”라며 섭섭해 한다. “일송의 항일투쟁 독립운동 공적이 남정현 지사나 신돌석 장군의 공적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며 공적이나 평가에 비해 정부나 학계의 대접이 섭섭한 면이 있음을 내비친다. ◆백운정과 의성김씨내앞마을에서 반변천 건너 나지막한 산등성이에 자리잡은 백운정은 청계 김진의 뜻에 따라 아들 귀봉이 41세때 지어 후학들을 가르치며 만년에 힐링하던 곳이다.동향으로 내앞마을을 조망하고 있는 백운정 마루에서 반변천을 바라보면, 강물이 호수처럼 드넓게 펼쳐져 내앞마을을 지켜주는 개호숲과 함께 한 편의 동양화를 이루고 있다. 귀봉의 아들 운천 김용은 병조참의와 명나라의 사신으로 갈 동지사에 제수되었으나, 세상은 광해군 등극 이후 북인의 횡포가 더해지면서 영창대군을 죽이고 인목대비를 유폐하는 상황에 이르자 세도의 뜻을 단념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지낸 곳이 백운정이다.400여년 전 귀봉과 운천 부자 생전에는 얕은 내를 건너다녔을 것이 지금은 강을 따라 보조댐까지 가서 강변으로 거슬러 가야 한다. 안내하는 귀봉의 후손 김상태(57)씨는 “임하댐이 건설 되기 전 어릴 때는 반변천을 건너 백운정을 찾았다”고 회고한다. 임하댐 건설로 넓은 모래밭이 지금은 호수가 되어 버렸으니 옛 정취는 시구와 이야기로만 전해지고 있다. 백운정 누마루 현판은 미수 허목이 썼는데, 백운정 마루에서 강변 풍경을 보면 글씨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정말 정자와 주변 풍광을 절묘하게 묘사한 글씨임을 느낄 수 있다. 많은 현판 중에는 퇴계 이황의 조양문과 이락문 두 편도 걸려 있다. 귀봉의 후손들이 관리하는 백운정은 여러 차례 중수를 했으나, 문화재가 아니어서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고 있다. 푸른 색 페인트로 서까래와 목조건물을 보호하려는 듯 페인트칠을 해놓아 아쉬움을 주고 있다.〈이경우 언론인〉문정화 기자 moonjh@idaegu.com

11척 장대한 기골 천자의 행차에 섬돌이

진평왕은 신라 26대 왕으로 54년 간 왕위에 있었다. 박혁거세 이후 천 년 신라 역사 가운데 가장 오랜기간 왕좌에 있었다. 진평왕은 할아버지 진흥왕이 신라 최대의 영토를 넓힌 뒤를 이어, 이를 반석 위에 올려놓기 위해 끊임없는 전쟁을 치러야 했다. 진흥왕 사망으로 진지왕이 왕위에 올라 문란한 정치로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노리부 등의 귀족들이 진지왕을 몰아내고 진평왕을 옹립했다. 진평왕은 나라를 안정시키기 위해 국내외적으로 전쟁을 치르면서 제도를 정비해 왕권 강화에 나섰다. 불교와 샤머니즘적 신앙을 접목해 왕권을 신성시 하는 풍토를 조성하는데도 성공했다. 진평왕 옥대, 하늘로부터 내려받은 보물 ‘천사옥대’를 만들어 절대적인 왕권을 세우는 밑거름으로 삼았다. 지금까지 황룡사 9층목탑, 장육존상과 함께 신라 3대 보물로 전해지고 있다. 진평왕은 왕위에 오르는데도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지만, 아들이 없어 성골 귀족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데도 많은 고충을 겪어야 했다. 김춘추와 김유신과 같은 절대적인 지지세력을 확보한 이후에야 딸에게 왕위를 넘겨주었다. 진평왕이 나라의 살림을 안정적인 기반 위에 올려둔 덕분에 선덕여왕과 진덕여왕이 잇따라 여왕으로 나라를 다스릴 수 있었다. 진평왕은 특히 삼촌인 진지왕의 아들 용수를 사위로 맞아들이고, 나랏일을 돌보도록 벼슬을 주어 왕권다툼을 예방했다. 진평왕의 즉위 과정과 신라 최고의 영토를 지키기 위한 전쟁으로 삼국통일의 기반을 다지는 정치, 안정적으로 여왕에게 왕위를 넘겨주는 신라 중대 역사의 일면을 본다. ◆천사옥대 -하늘이 준 옥대[청태 4년(937) 5월 정승 김부가 금으로 새기고 옥으로 반듯하게 장식한 허리띠 하나를 바쳤다. 길이가 10뼘으로 새겨 붙인 장식이 62개였는데 이것을 진평왕의 천사옥대라고 했다. 고려의 태조가 이것을 받아 궁중의 창고에 보관했다.] 제26대 백정왕의 시호는 진평대왕이며 성은 김씨이다. 태건 11년 기해(579) 8월에 왕위에 올랐다. 키가 11자였다. 내제석궁(다른 이름은 천주사이다. 이 왕이 창건한 것이다)에 행차했을 때, 섬돌을 밟으니 돌 세 개가 한꺼번에 부러졌다. 왕이 주위의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이 돌을 치우지 말고 뒤에 오는 사람들이 보도록 하라”고 했다. 바로 이 돌이 성안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다섯 개의 돌 중 하나이다. 그가 왕위에 오른 첫 해에 천사가 궁전 뜰에 내려와 왕에게 “상황께서 내게 명하여 옥대를 전해주라고 했습니다”라 하니, 왕이 친히 무릎을 꿇고 그것을 받았다. 큰 제사나 종묘에서 제사를 지낼 때는 이 옥대를 사용하였다. 그 후 고구려왕이 신라를 치려고 모의하면서 “신라에는 세 가지 보물이 있어 침범할 수 없다고 하니 무엇을 두고 하는 말인가” 하였더니, 황룡사 장육존상이 첫째이고, 그 절에 있는 9층탑이 둘째며, 진평왕의 천사옥대가 셋째라 하여 왕은 곧 그 계획을 중지하였다. 다음과 같이 찬미한다.구름 위의 하늘이 옥대 내리어 두르시니/ 천자의 곤룡포에 아담하게 어울리네/ 이로부터 우리 임금 몸 더욱 중후하니/ 내일 아침 강철로 섬돌 만들까 하네. ◆진평왕진평왕은 신라 제26대 왕으로 열세 살에 왕위에 올라 54년을 재임했다. 박혁거세를 제외하고 신라 천 년 역사에서 가장 오래 왕위에 있었다. 진평왕대에 이르러 진흥왕으로부터 시작한 신라의 국운이 바야흐로 꽃을 피웠다. 그의 뒤를 이어 선덕과 진덕 두 여왕을 보필했던 태종무열왕 김춘추가 삼한 통일 위업의 기초를 다졌다. 삼한 통일의 모든 것이 진평왕으로부터 시작했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평이다. 진평왕은 놓칠 뻔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으며 열세살인 579년에 왕위에 올라, 할머니인 사도부인이 수렴청정을 했다. 진평왕은 할아버지 진흥왕의 뜻일 이어받아 전쟁을 치르면서도 왕권을 강화하고 왕실을 신성화하는 데 진력했다. 진평왕은 자신의 이름은 석가모니의 아버지 이름 백정, 부인은 석가모니 어머니의 이름 마야부인, 동생 둘은 석가모니 삼촌의 이름 백반과 국반으로 지었다. 가족 모두가 석가모니족으로 신성화 했다. 진평왕은 왕위에 오르자마자 동생 백반을 진정갈문왕, 국반을 진안갈문왕으로 임명해 왕실의 세력을 친정체제로 두텁게 했다. 동생 둘은 형의 좌우에서 형의 말을 충실히 듣는 심복으로 자라갔고, 자연스레 사도부인 같은 기존 세력을 견제하기도 했다. 진평왕은 재위 6년 째 되던 해에 수렴청정에서 벗어나면서 건복(建福)으로 연호를 바꾸었다. 할아버지 진흥왕이 그랬던 것처럼 신라만의 독자적인 역사 만들기에 나섰다. 13년에는 남산성을 쌓고, 이어서 명활성을 고쳐 쌓아 왕경의 주변 방어태세를 굳건하게 했다. 주변국과의 전쟁은 끊이지 않았다. 특히 백제와의 싸움은 갈수록 치열해지면서 그치질 않았다. 신라가 팽창해 가는 만큼, 주변의 대항 또한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고구려 등의 침공에 대응해 수나라에 이어 당나라까지 교류를 이어갔다. 원광법사와 담육 등을 중국에 보내 공부하게 하는 등 불교 진흥에도 크게 노력했다. 진평왕은 황룡사를 크게 중창했다. 동서 금당을 추가로 지어 1탑-3금당의 가람구조로 변화했다. 내부의 반란까지 일어났다. 재위 53년 칠숙과 석품의 반란이 대표적이다. 다행히 초기에 발각돼 칠숙을 잡아 처형시켰는데, 석품은 백제 국경으로 도망쳤지만, 끝내 붙잡아 처형했다. 진평왕은 사촌 동생 용춘을 사위로 삼았다. 이는 만약에 있을지 모르는 모반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목적으로 해석된다. 진평왕의 집념은 이루어졌다. 딸인 덕만으로 왕위를 이었다. 선덕여왕이다. ◆흔적△진평왕릉; 경주 진평왕릉은 경주시 보문동 608번지 남촌마을 앞 보문들과 연접해 고즈넉한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사적 제180호로 지정된 왕릉이다. 4만3천645㎡ 부지에 소나무, 느티나무, 버드나무 등의 고목과 초목이 계절별로 꽃을 피우며 평화로운 풍경을 연출해 힐링의 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왕릉의 동쪽에 명활성의 흔적, 남쪽 보문사터에는 보물로 지정된 당간지주와 석조 등의 역사유적들이 있다.서쪽에는 낭산이 나지막하게 솟아 신문왕릉, 선덕여왕릉과 황복사 삼층석탑 등의 유적들이 즐비하다. 북쪽으로 보면, 신라 천 년 왕궁터 월성과 황룡사지, 분황사, 첨성대 동부사적지 등의 역사를 생생하게 증언하는 문화유적들이 끝도 없이 펼쳐진다. 진평왕릉 꼭대기에라도 서면, 천 년의 화려한 역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마치 과거사가 살아 있는 현실로 부활해 눈앞을 지나간다. “역사를 되돌아보고 싶다면, 진평왕릉으로 오라고 선전하고 싶다”는 경주남산연구소 김구석 소장의 신명나는 문화해설이 너무 사실적으로 들린다. △남산신성과 남산신성비: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서 공통적으로 신라시대에 남산신성을 쌓았다는 기록을 하고 있다. 남산신성은 진평왕 13년 591년에 축조했다. 전체 둘레 5천137m 포곡식 산성이다. 산성터에서 동, 서, 남, 북, 동남, 서남문 등 6개소의 문지가 발견됐다. 동문지는 옥룡암으로 이어지는 통로상에 있지만, 대부분 파괴되어 구조를 파악하기 어렵다. 남문지는 해목령에서 전망대로 가는 순환도로와 연결되는 성벽에 위치하고 있다. 문의 폭이 5m 이고, 부근에 신라시대 기와조각이 발견되고 있어 문루가 시설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산성 내부에는 22개소의 망대가 확인된다. 망대는 동쪽과 남쪽에 18개소가 집중되어 있고, 일정한 간격으로 설치되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삼국사기에는 문무왕 19년에 남산신성의 성벽을 증개축했다는 기록이 있고, 길이 100m에 이르는 긴 창고를 비롯, 3개의 대규모 창고터가 발견되면서 지금도 검게 탄 쌀이 보인다. 남산신성터에서 비편이 발견되면서 남산신성은 진평왕 13년 신해년 591년에 쌓았다는 것을 정확하게 파악됐다. 10개의 비편이 발견되었는데, 발견된 순서대로 이름이 붙은 8비와 9비는 남산신성 안에서 발견됐다. 또 1비와 2, 3, 9비는 거의 원상태로 발견돼 산성 축조연대는 물론, 산성을 쌓는데 동원된 인원과 책임자의 직명과 출신지명, 관등명이 순서대로 기록되어 있다. 남산신성비가 발견된 자리와 규모 등을 비추어 20개에서 200개 정도가 설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신성비는 신라 중고기의 지방통치체제와 역역동원 등에 관련한 문제, 촌락구조 문제 등을 파악하는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가진다. ◆다시 쓰는 삼국유사: 진평왕진흥왕의 큰 아들 동륜이 보명궁의 담을 넘다 큰 개에게 물려 죽었다. 보명궁주는 진흥왕의 후궁이다. 태자 동륜의 죽음은 아버지의 여자를 사랑한 불륜의 끝이었다. 아버지를 잃었을 때 진평왕의 나이 겨우 다섯 살이었다. 아버지의 죽음은 진평왕에게 두 가지 큰 짐을 지웠다. 불명예스럽게 죽은 아비의 자식이라는 짐, 사고가 없었던들 순조롭게 이어졌을 왕위가 한 순간 물 건너 간 것처럼 바뀌었다는 것이다. 진평은 이 두 가지 역경을 헤치고 자신의 자리를 찾아간 왕이었다. 그것은 신라의 국운을 바로 돌린 일이기도 했다. 동륜의 죽음으로 왕이 된 그의 아우 진지왕은 행실이 밝지 못했다. 진평에게 삼촌이 되는 진지왕은 자리에 오른 지 4년 만에 폐위되고, 20대 후반의 아직 젊은 나이로 세상을 마쳤다. 진지왕에게도 당시 아들이 있었다. 용춘 또는 용수라 불렸다. 이 아들은 나중에 진평왕의 딸 천명공주와 결혼하여 김춘추를 낳았다. 그러나 왕위는 이 아들에게 이어지지 않고 진평왕에게 돌아왔다. 삼촌의 집안에 왕위를 빼앗기는가 싶더니, 사촌을 물리치고 무난히 왕위에 올랐다. 진흥왕 이후 박차를 가하는 신라의 발전 분위기로 보아 신라 귀족층, 노리부 등의 실세들은 보다 정치적이지 못한 진지왕을 그대로 둘 수 없었다. 음탕하다는 이유로 왕의 자리에서 끌어 내리고, 진흥왕과 여러모로 닮은 진평을 왕위에 올렸던 것이다. 진흥왕 말기에 진지왕을 지지하는 거칠부 세력과 진흥왕의 뜻과 같이하는 진평왕을 지지하는 세력으로 나뉘게 되었다. 당시 병권과 내정의 실세였던 거칠부가 진지왕을 추대해 진지왕이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거칠부가 사망하면서 진지왕을 지지하는 세력이 급격하게 약화되고, 진평왕을 지지하는 세력 노리부와 김후직, 진평왕의 동생 등이 진지왕을 폐위시키고 진평왕을 왕위에 올렸다. 노리부는 가야 출신으로 진흥왕이 전쟁으로 정복한 땅의 인재들을 중용하는 정책에 힘입어 진흥왕을 따르는 핵심인물로 성장했다. 노리부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후덕함과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해 김후직과 함께 진평왕을 옹립하고 초기에 상대등에 올라 정사를 주도했다. 귀족 중심의 신라 중기 정치는 진평왕이 54년간 장기집권을 하면서 꾸준히 제도를 정비하고 왕권을 강화해, 후반기로 접어들어 절대적인 왕권정치 체제의 기반을 마련했다.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AI 시스템 활용해 집을 지었더니… ‘똑똑한 건축물’이 만들어졌다

‘융합’이 대세다. 산업 간 개별로의 동력에는 응당 임계점이 있다. 그렇기에 융합이라 하고 연결이라 불린다. 4차 산업 시대의 개막에 따라 이제는 연결을 넘은 ‘초연결’. 단순 고도화를 한 차원 뛰어넘은 ‘초고도화’가 산업군 전반으로 분포돼 있다.하지만 개별의 성질을 내포한 산업군과의 융합은 퍼즐 조각을 맞추듯 단순 작업이 아니다. 그저 시류에 편승하고자 산업에 정보기술(IT)을 붙이는 것만으론 자칫 과유불급으로 치부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연계됨으로써 발산되는 시너지 효과에도 고찰해 봐야 할 당위다.인공지능(AI)을 옷으로 비유해보면 어떨까. 기존 의료시스템에 첨단 AI 기술력을 입혀보자. 앞선 연재서도 다뤘듯 과거 국지전으로 국한됐던 전투태세를 넘어 미래 전에 대비키 위한 국방력에 AI를 입히는 과정, 1차 산업으로 터부시됐던 농업계에 AI를 가미함으로써 오차 없는 안심 먹거리를 용이하게 제공하는 일련의 작업 등.컨스트럭테크(constructech). 건설과 정보기술의 합성적 개념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는 ‘토탈 솔루션’과 ‘원스톱’의 캐치 프레이즈가 뒤따른다. 설계부터 금융에 이르는 건설현장의 전 과정을 AI 기반의 기술력으로 대체한다는 것이다.이 같은 시류를 방증이라도 하듯, 4차 산업혁명과 AI의 등장은 우리가 사는 주거에도 무인의 모토를 공고히 했다. 손수 조작해야 했던 보일러와 가스, 조명, 호출, 심지어 에너지 컨트롤에 이르기까지 이제는 ‘스마트’의 이름을 딴 원격으로 제어가 가능해졌다. 분명 효율적이며 편의를 중심으로 한 주거 시장이 우리 곁으로 스며들었다는 증명이다. ◆건설과 AI의 만남건설과 AI의 만남은 건설현장부터 그 빛을 발하고 있다. 바로 ‘기능별 등급제’의 이름으로 말이다. 묵묵히 일하는 당신이 더이상 먹먹해지지 않도록 하는 이른바 ‘사람을 위한’ AI 시스템이 바로 그것.기능별 등급제는 말 그대로 건설노동자의 기능과 노력 여하에 따라 성과 임금을 지급한다. 이를 통해 투명하고 효율 높은 인력 관리를 모토로 둔다는 것인데 여기에는 건설 관리프로그램 간 AI와 데이터베이스(DB) 기능이 접목됐다. 근로의 질 향상이 주된 목표다.최근 건설현장 폐기물·토사의 무단반출을 막기 위한 각 지자체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특정 지자체의 사례를 비춰보면, 위성항법장치(GPS)를 활용, 차량 운행경로와 폐기물 상·하차 장소를 통제할 수 있는 ‘자동관리 시스템’을 구축해가며 이른바 ‘폐기물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나섰다.이 같은 폐해를 일정 부분 해소하고자 마련된 ‘폐기물 관리시스템’은 폐기물 처리에 센서, 3D카메라 등의 첨단 기술을 적용, 폐기물 정량 처리가 가능하도록 돕는 솔루션이다. 폐기물 발생 시점으로부터 처리 과정을 통합 관리하는 사물인터넷(IoT)과 소프트웨어 솔루션이 주요 기술력으로 대두되고 있다.빅데이터와 3D기술이 모델하우스에도 투영되기 시작했다.'사이버모델하우스'는 빅데이터와 3D 기술을 접목, 고객이 원하는 집을 개별로 노출할 수 있는 이른바 ‘맞춤형 서비스’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상황. 기존 오프라인 모델하우스 대비 3분의1 가격으로 ‘예산 절감’ 차원에서도 제 몫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보안’은 주거의 필수 불가결한 요소다. ‘즐거운 나의 집’의 전제에는 반드시 ‘안전’이 깔려있어야 할 터. ‘펜스형 레이더 감지기’는 본래 군사용으로 사용하는 레이더 기술로써 적의 침입을 전 방위적으로 정찰하는 경계의 핵심 기술로 꼽힌다.이 같은 레이더 기술이 입주민들의 안위를 포커스로 맞춘 주거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펜스형 레이더 감지기는 안테나를 통해 발발한 전파를 활용, 감시 대상물에 반사 후 돌아오는 전파를 측정해낸다.이를 통해 대상물의 위치 및 형태 등을 파악함과 동시, 사람과 사람 외 사물 구분이 가능해짐에 따라 실내뿐 아니라 야외에서의 오작동을 방지하는 기능을 가진다는 것.카메라의 기술은 진일보를 거듭하고 있다. 수동 카메라는 추억 속 조각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 디지털 카메라를 거쳐, 이제는 AI를 담뿍 품은 ‘네트워크 카메라’가 주거 보안의 주요 요소로 손꼽히고 있다.이 네트워크 카메라는 기존 CCTV와 같은 단순 감시의 영역을 넘어 교통, 문화, 상업에 이르기까지 산업군 전반으로 그 위세를 떨치고 있다. ‘PTZ 카메라’라 명명하는 네트워크 시스템은 팬, 틸트, 줌 기능을 통해 침입이 발생한 지역에 대한 상세 영상정보를 제공, 근무 중인 보안요원들의 상시적 상황파악에 깊은 조력자 역할을 한다.이뿐만이 아니다. 경비원들은 PTZ 카메라를 통해 침입자의 경로 및 사후 도주 경로 추적이 용이해졌다. 여기에 AI 스피커를 아울러 활용한다면 시각적 효과를 넘어, 출입 통제 구역에서의 음향이나 액션이 간파될 경우,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무단 침입자에 대한 경고를 가할 수 있다. ◆3D는 광범위하게 적용된다3D의 입체성은 더이상 이질적일 리 없다. 영화, 드라마 등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물론이거니와 증강현실 등의 최첨단 기술이 적용된 산업현장에 이르기까지 3D 기술이 품은 함의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광범위하다.AI기반의 자동 설계 솔루션이 건설시장의 센세이션으로 주목받고 있다. 주요 사양은 건설 간 주거 공간 등의 계획 설계를 서포트하는 역할인데 이 솔루션으로 해금 건축에 필요한 각종 정보를 입력하면 일조량과 용적률 등을 파악, 최적의 조건이 담긴 3D 설계도를 그려내는 기술이 최근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건축 자재 납품 간에도 AI 시스템이 적극 활용되는 추세다. 여기에는 개별의 물류창고가 수반돼야 하는데 인증과 검사를 사전에 영위, 우량 공급자의 데이터베이스 확립을 통해 가격 효율성과 품질 제고의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복안이다. 납품 자체를 반조립 형태로 실시함에 따라 공사 기간 및 조립에 드는 인건비를 현저히 낮추는 효과마저 기대된다.굴삭기가 원격으로 제어된다? 가상 시뮬레이션이 아닌 실 장비로 영위되는 기술력이다. 여기에는 ‘초저지연’의 시스템을 담은 ‘5G’가 제 역할을 해낼 예정이다. 이 같은 기술이 상용화될 수 있다면 이제 1천㎞ 떨어진 곳에서도 5G의 ‘원격 통제 시스템’을 활용, 굴삭기의 원격 조종이 가능케 됐다.작업자 안전에도 5G 기술력은 든든한 버팀목이 돼줄 전망이다. 여기에서도 원격 제어 기술이 주가 되는데, 리스크가 산재한 산업현장에서의 장비 운용을 인력이 아닌 원격으로 운행함에 따라 파생 가능한 안전사고를 미연에 방지해 낸다는 것이다.이 같은 기술은 건설현장의 폭파작업이나 오염 지역에서의 각종 작업에서도 광범위하게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작업 간 AI의 시스템 활용을 통해 인간의 눈으로 미처 가늠할 수 없는 작업장의 각종 리스크를 사전 연계된 디스플레이를 통해 미리 확인, 불의의 사고를 원천 차단한다는 것이 기술의 모토다.최근 불어 닥친 미세먼지의 범람으로 ‘미세먼지 차단’이 전 국가적 어젠더로 대두되는 오늘, 미세먼지의 원천 차단을 가능케 하는 AI 기술이 주거 곳곳에 투영되고 있다. 집 안 곳곳에 설치된 센서 등을 통해, 집안 내 미세먼지의 발원인 현관에서부터 농도를 체크, 농도 세기에 따라 강풍을 내보냄으로써 집안으로 유입 가능한 미세먼지를 사전에 컨트롤 하는 기술이 최근 선을 보이고 있다. ◆건설 속 IT는 필수요소건설업의 가장 큰 리스크는 바로 ‘저 생산성’이다. 시쳇말로 규모는 큰데 비해 결과치는 멀리 있다는 것이다. 공사 간 잦은 설계 변경과 공사 기간 지연, 이로 인한 공사비 증가 등의 부수적 요소가 산재해 있음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건설에 IT를 입히는 과정을 두고 단순 4차 산업혁명 간, 그저 시류 편승에만 방점을 찍어선 안 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건설업의 지속 가능한 양질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도 AI와의 능동적 조화는 필수 불가결한 요소 중 하나다.건설과 AI의 접목에는 빅데이터의 수집 및 분석, 플랫폼 구축이 선행돼야 한다. 원활한 플랫폼 구축을 위해선 여기에 속한 IoT 기술과 클라우드 등의 적절한 시스템적 활용이 요구된다.빅데이터 수집과 분석에 있어선 전 방위적 체크가 가능한 ‘드론’과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등의 구현, 지능화 기능이 탑재된 모듈러와 로보틱스 등의 신기술력이 발현돼야 함이 마땅하다.대한민국 건설시장의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 한때 탑5에 들어갈 만큼 전 세계적으로 위세를 떨치던 건설업이 4차 산업혁명의 궤와 일맥상통하지 못하고 있다는 일갈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위에서도 언급했듯 건설시장의 저 생산성 타개를 위해선 AI 기술과의 적극적인 접목이 요구된다. 배경은 충분하다. 인터넷 보급률 세계 1위, ‘IT 강국’의 위상을 전 세계에 떨치는 대한민국의 저력이 가미됐으므로.‘스마트’와 ‘건설’의 조화란 결코 이채롭지 않다. 이를 위해 정부와 국회는 장기적 계획 모색과 규제 혁파, 해외 사업 간 양질의 인력 양상에 초당적 자세로 경청하고 실행에 옮겨야 할 지금이다. 글·사진 군월드 IT 사업팀김종윤 기자 kjyun@idaegu.com

국민건강보험 Q&A

Q=암검진 항목과 비용에 대해 알려주세요.A=국민건강보험공단은 발병률이 높은 위암, 유방암, 대장암, 자궁경부암, 간암검진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7월부터는 폐암 항목이 추가됩니다.위암과 유방암은 만 40세 이상, 대장암 50세 이상, 자궁경부암은 20세 이상 여성이 대상입니다. 간암 검사는 40세 이상자 중 고위험군(간경변증‧만성질환자 등)과 간염 항체 검사 결과가 ‘양성’인 사람만 받을 수 있습니다.폐암은 54~74세 중 30년 이상의 흡연력이 있는 고위험군이 대상입니다. 암 검진 비용은 공단이 90%를 부담하면 됩니다. 국가 암검진 대상은 본인부담이 없습니다. Q=군 입대 시 건강보험은 어떻게 처리하나요?A=군 입대로 현역에 복무중인 자의 경우 입대전일 경우 입영통지서, 입대후일 경우 복무확인서를 공단지사에 제출하여 신고하면 됩니다. 육군 현역입영일 경우 유선 신고하면 인터넷으로 병무청 입영일자 확인 후 처리 가능합니다.군복무 기간에는 보험료가 면제되며 군입대일이 속한 달의 다음 달부터 군전역일이 속한 달까지 면제됩니다. 또한 복무기간 중에도 건강보험증을 사용할 수 있으니 휴가, 외출 시 요양기관을 이용해도 됩니다. 자료제공=국민건강보험공단 대구지역본부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손발 첫 수포 생겼을 때 전염성 높아…격리 조치 필요

소아에서 흔한 감염성 질환 중 여름에 유행하는 대표적인 질환이 장바이러스(Enterovirus)에 의한 수족구병과 헤르페스 목구멍염이다.헤르페스 목구멍염은 흔히 구내염으로 알려진 질환이다. 엄밀히 말해 구내염은 여러 종류가 있으며 헤르페스 목구멍염은 그 중 하나이다.이 두 질환을 언급한 이유는 전염성이 강해 놀이방이나 어린이집과 유치원 등의 보육시설 생활을 통해 빠른 속도로 전염되기 때문이다. 또 대부분 가벼운 증상으로 지나가지만 일부에선 사망할 수 있다는 점이다.따라서 감염 의심 단계에서부터 철저한 관리와 병의 진행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진료가 중요하다.두 질환은 병변의 위치에 따라 진단명을 달리할 뿐 원인이나 전파경로, 증상, 진단 및 치료가 유사하다. 물론 수족구병이 헤르페스 목구멍염 보다 중증인 경우가 많다.수족구병은 입안이나 손과 발에 수포나 다양한 형태의 반점이 동반된다. 미열이 있기도 하지만 고열을 동반할 수도 있다. 또 호흡기계 증상(기침, 콧물, 인후통 등), 심혈관계 증상(호흡곤란, 가슴 통증, 부정맥 등), 위장관계 증상(구토, 설사, 복통 등), 신경계 증상(구토, 두통, 보챔, 눈부심 등) 등이 나타나기도 한다.발진은 병명에서 알 수 있듯이 입안, 손, 발에 나타나며, 손발에 생긴 수포는 대개 1주일 이내에 사라지는데 가끔 엉덩이에도 나타날 수 있다.주의할 점은 첫 증상이 나타난 후 수포성 발진이 사라질 때까지가 전염성이 가장 높은 시기이므로 이 시기엔 격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또 환자의 대변 속에 배출된 바이러스는 수 주 동안 전염력을 가지므로 감염된 아기의 변이 묻은 기저귀는 아무데나 버리지 않는 것이 좋다.헤르페스 목구멍염의 증상으로는 발열, 인두통, 음식이나 침 삼킴 곤란 등이 있다. 연장아에서는 두통과 요통을 호소할 수 있고 구토와 복통도 동반될 수 있다.편도주위, 연구개, 목젖 등에 발진과 궤양성 병변을 보이며, 손이나 발에는 발진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예방은 외출이나 식사 전후로 손씻기, 그릇이나 장난감 등의 관리 등 위생을 철저히 지키는 것이다.대부분 자연 치유되므로 대증요법(증상에 대한 치료)을 하지만 합병증이 있거나 식욕부진으로 인한 탈수가 진행된 경우는 입원치료가 필요할 수도 있다.두 질환 모두 대부분 합병증 없이 회복하지만 진행하면서 뇌수막염이나 뇌염, 폐부종이나 폐렴, 폐출혈, 심근염과 심막염, 쇼크 및 급속한 사망이 올 수 있다. 따라서 증상이 있다면 반드시 가까운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를 찾아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고 추적 관찰하는 것이 필요하다.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여름철 강한 자외선은 노화 촉진…안질환 유발 위험 주의

본격적인 여름철로 접어들면서 자외선에 대한 관심이 한층 높아졌다. 외출 시 자외선 차단제를 꼼꼼히 바르고 외출 후에도 2시간 간격으로 덧바르기까지 하지만 정작 ‘눈’은 자외선에 그대로 방치하는 경우가 많다.자외선은 파장의 길이에 따라 UV A·B·C 세 가지 종류로 나뉜다. 이중 UV-C는 파장이 짧아 대기층에 차단되고, UV-A와 UV-B는 파장이 길어 사람의 눈 까지 도달한다. 특히 자외선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UV-A는 각막을 넘어 수정체, 망막까지 침투해 여러가지 안질환의 원인이 되는데 대표적으로 황반변성과 백내장 등이 있다. ◆여름철 자외선에 치명적인, 황반변성강한 자외선에 장시간 노출되면 UV-A 파장이 망막에 흡수돼 활성산소를 생성해 눈의 노화를 촉진시킨다.활성산소는 세균이나 이물질로부터 우리 몸을 지키기 위해 어느 정도 필요하지만 너무 많이 발생하면 정상세포까지 공격해 노화를 앞당기고 황반변성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황반변성은 자외선에 오래 노출되면 증상이 악화될 수 있어 외출 시 자외선 차단에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황반변성은 눈 안쪽 망막 중심부에 위치한 황반부에 변성이 생겨 시력 장애가 발생하는 질환으로 녹내장, 당뇨망막병증과 함께 3대 실명 원인으로 불린다.황반에 변성을 일으키는 위험요인으로 가족력, 고혈압, 심혈관계 질환, 스트레스, 식습관 등 다양하지만 주된 원인은 노화로 나이가 들수록 발병률이 높아진다.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8년 연령별 황반변성 환자 수는 70대 24%(69만5천675명), 60대 18%(4만9천172명), 80대 이상 13%(3만5천412명) 순으로 주로 60대 이상에서 발생하고 있다.20~30대 젊은 황반변성 환자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로 자외선뿐만 아니라 전자기기에 포함된 블루라이트(청색광)를 주의해야 한다. 황반의 노란색소는 블루라이트를 흡수해 망막을 보호하지만 노화가 진행되면 색소가 줄어들어 블루라이트가 망막에 과도하게 흡수되는 것을 막지 못해 황반변성의 발생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 ◆자외선에 의한 혼탁 유발, 백내장백내장은 카메라의 렌즈 역할을 하는 수정체가 단백질의 구조적인 변화로 혼탁이 생겨 빛이 통과하지 못해 마치 안개가 낀 것처럼 시야가 뿌옇게 보이는 질환이다.흔히 백내장은 50대 이상부터 눈이 노화하며 발생하는 질환으로 알려져 있지만 강한 자외선 노출, 당뇨병, 스테로이드 장기복용 등의 외적인 요인도 크게 작용한다.특히 자외선에 지속적으로 노출될 경우 수정체 핵에 색소가 축적되는데 노화된 수정체에서는 색소가 없어지지 않아 노란 혼탁이 증가한다. 또 트립토판이라는 물질이 수정체 단백질을 변화시켜 수정체 상피, 전부피질, 핵 부위에 혼탁을 유발해 백내장 발생을 촉진시킨다.최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조사결과에 따르면 40대 10명 중 3명이 백내장을 앓고 있다. 자외선이나 환경적인 원인에 의해 젊은 연령층에도 백내장이 흔하게 발생하는 만큼 눈이 침침하거나 시력이 저하되는 등 이상 증상이 나타날 경우, 빠르게 안과검진을 받는 것이 눈 건강을 지키는 방법이다. 백내장은 수술로 치료가 가능하지만 평상시 자외선을 잘 차단하면 백내장 발생 및 진행을 좀 더 늦출 수 있다. ◆여름철 당뇨합병증인 당뇨망막병증황반변성과 백내장 외에 여름철 주의해야 하는 안질환으로 당뇨망막병증이 있다. 당뇨망막병증이란 당뇨병으로 인해 고혈당 상태가 지속되고 망막 혈관벽이 두꺼워져 혈액순환이 잘 되지 않아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하지 못해 망막세포가 죽게 되는 질환으로 심한 경우 실명에 이를 수 있다.여름에는 더운 날씨 탓에 청량음료, 탄산수 등 당분이 많은 음료를 과다 섭취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혈당을 상승시키고, 혈관의 흐름을 원활하지 못하게 해 눈 당뇨합병증인 당뇨망막병증을 유발할 수 있다. 당뇨망막병증은 발병 시 완치가 어려워 정기적인 안과검진과 반복적인 치료가 중요하다.당뇨를 진단받은 환자라면 6개월에서 1년에 한 번 정기적인 안과검진이 필수다. 당화혈색소가 1% 감소하면 미세혈관질환 합병증 발생률은 37% 감소하므로 당화혈색소를 관리 하는 것이 기본이다. 요즘처럼 여름철 햇빛이 강한 낮에 외출 할 때는 자외선을 차단할 수 있는 선글라스나 챙이 넓은 모자를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자외선으로부터 눈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되도록 자외선이 강한 시간대인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 사이에는 외출을 피하는 것이 좋다. 부득이하게 외출할 때는 손쉽게 차단할 수 있는 선글라스를 착용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모든 선글라스가 자외선을 100% 차단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외선을 얼마나 차단할 수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누네안과병원 망막센터 엄선정 안과전문의는 “선글라스가 짙을수록 차단이 잘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오히려 렌즈 색상 농도는 75~80% 정도가 적당하다. 짙은 색상의 렌즈는 착용 시 주위가 어두워져 동공이 확장되고 열린 동공으로 자외선이 망막까지 도달하기 쉽다. 직업 특성상 야외에서 오랜 시간 동안 작업을 하거나, 자외선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은 경우 정기적으로 안과검진을 받을 것을 추천한다”고 설명했다.도움말=엄선정 누네안과병원 망막센터 과장 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우리동네 자랑- 김천시(하)

우리동네 자랑 김천시〈하〉-도심지역 김산(金山· 김천) 서쪽이 곧 추풍령이고, 추풍령 서쪽이 황간 땅이다. 황악산과 덕유산 동쪽 물이 합해져 감천이 되어 동쪽으로 흘러 낙동강에 접어든다. 감천을 낀 고을이 지례(知禮), 김산(金山), 개령(開寧)이며 선산과 함께 감천 물을 관개하는 이로움을 누린다. 김천은 국토 내륙의 중심에 위치하여 사방으로 통하는 국도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있고, KTX, 철도․고속도로가 연계되는 4통8달의 교통의 요충지이다. 이를 발판으로 조선말기에는 대구, 평양, 개성, 강경과 함께 전국 5대 시장의 하나로 손꼽힐 정도로 상업이 크게 발전했다. 1.부항댐(부항면)부항댐은 전국에서 가장 친환경적이고 아름다운 댐으로 건설됐다. 댐 경관을 조망할 수 있는 순환 일주도로(14.1km)와 산내들오토캠핑장, 물문화관, 부항대교, 부항정, 레인보우짚와이어(H=93m, L=1.8㎞)와 스카이워크(38m), 국내 최장 출렁다리(256m), 산내들공원, 산내들 패밀리어드밴쳐 파크 등 볼거리와 체험거리가 갖춰져 있다. 2.수도산자연휴양림(대덕면)천 년 고찰의 청암사와 수도암 등 이름난 사찰과 계곡의 물, 울창한 침엽수림이 있어 사계절 멋진 풍경을 보여준다. 가족단위 관광객들을 위한 숲속 휴양관, 숲속의 집, 힐하우스 등 12동 36실의 숙박시설과 청소년들을 위한 숲속수련관, 세미나실, 야외물놀이장, 숲속산책로 등 각종 편의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3. 인현왕후길(증산면)숙종의 계비 인현왕후가 폐위 당했을 당시, 청암사에 내려와 기도하며 복위를 꿈꾸었다.. 그 청암사가 자리한 수도산을 중심으로 9km 남짓의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인현왕후의 숨은 이야기를 즈려밟으며, 인현왕후길을 거닐어보자.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2018 대한민국 걷기여행길에 선정된 곳이기도 하다. 4.벽화거리(자산동)자산공원을 중심으로 골목골목에 아름다운 풍경이 즐비하다. 동양화, 서양화, 예쁜 꽃, 노래하는 새들 등 벽화로 그려져 있어 새로운 골목길 문화를 만들어 딱딱하게 돌아가는 현실에서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새로운 볼거리를 조성했다. 5.시립도서관(남산동)종합자료실과 디지털 자료실을 비롯해 어린이 인터넷 코너, 가족 영화감상 코너까지 다양한 시설을 자랑한다. 조용한 분위기의 열람실과 첨단시설 컴퓨터실, 시청각실 등 김천시민을 위한 문화강좌와 외국어강좌 프로그램도 개설되어 교육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6. 징·꽹과리(양금동)징과 꽹과리는 제작자의 소리 감각에 따라서 차이가 날 수 있고, 지방에 따라서도 그 깊고 무거운 맛이 다르다. 징의 생명은 소리에 있으며, 김천 징은 황소울음을 내는 것이 특징이다. 경북 무형문화재인 양금동 김일웅씨는 4대째 함양에서 징을 만들어 온 외조부 밑에서 기술을 익혀, 40년 간 징과 괭과리를 비롯한 유기제품을 만들고 있다. 경북도 무형문화재 제9호. 7.연화지(대신동)연화지는 조선시대 초에 농업용수 관개지로 조성되었던 저수지였다. 물이 맑고 경관이 많아 풍류객들이 못 가운데 섬을 만들고 봉황대라는 정자를 지어 시를 읊고 술잔을 기울이며 노닐던 곳이었다. 봄에는 벚꽃이 장관을 이루며, 여름이면 연화지 가득 피어 있는 연꽃이 관광객들의 시선을 머물게 한다. 8.영남제일문(대곡동)영남제일문이 선 자리는 옛날 영남의 선비들이 과거길에 오를 때 추풍령, 조령, 죽령을 통해 한양길에 올랐으며, 지금은 서울에서 충청도를 거쳐 경상도 지역인 대구, 부산으로 내려갈 때 영남의 첫 관문인 김천시를 통과해야 한다는 역사적, 지리적 의미가 담겨있는 상징적인 장소이다. 영남제일문이란 현판(길이 7m, 높이 1.5m)은 서예 대가 여초 김응현 선생이 직접 글을 쓰고, 지역출신이자 각장자 이수자인 고원 김각한 씨가 서각했다. 9.녹색미래과학관(율곡동) 즐거운 놀이와 과학이 만나 아이들이 무한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창의과학 놀이터다. 그린에너지를 테마로 한 전문과학관으로 기후변화관, 그린에너지관, 녹색미래관, 4D풀돔영상관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다양한 체험과 유익한 프로그램으로 아이들을 맞이하고 있으며, 마음으로 만나고 생활을 바꾸는 과학, 재미있고 즐거운 놀이와 논리가 만나 창의적 아이디어를 만드는 곳이다. 10.김천의 관문 지좌동김천 시가지의 동쪽에 자리한 마을이며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 감천을 사이하고 있다. 최근 국도 변을 따라 아파트 밀집 지역이 만들어지고 인구가 늘어 나면서 준 시가지를 이루고 있다. 경부선 철도와 경부고속도로 및 국도가 마을의 한 가운데를 지나고 있다. 동으로는 농소면 신촌 마을과 이웃하였으며, 서쪽은 감천을 사이하여 용호동 시가지와 마주 보고 있다. 안희용 기자 ahyon@idaegu.com

제왕의 혼 닿아 날고뛰는 神 (귀신) 잡는 그가 떴다

삼국유사의 내용은 설화, 신화로 구성된 부분이 많다. 특히 도화녀와 비형랑조는 죽은 왕이 살아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도깨비가 사람처럼 행동하며 일상적인 생활을 하는 신화적인 요소가 강한 부분이다. 진흥왕이 576년 8월에 사망하자, 거칠부를 비롯한 진골 귀족들이 왕의 둘째 아들인 사륜을 신라 25대 진지왕으로 추대했다. 진지왕은 진흥왕 말기에 국정 운영에 깊숙이 개입해 나라의 일을 맡아하는 경험을 쌓았다. 진지왕은 즉위하면서 거칠부를 상대등에 임명해 나라일은 실질적으로 거칠부가 장악했다. 그러나 거칠부가 사망하면서 진지왕을 지지하던 세력이 무너지고, 진지왕이 국정을 제대로 돌보지 않아 정치가 극도로 문란하게 됐다. 이에 진흥왕의 측근이었던 귀족세력들이 진지왕을 폐위시키고, 진지왕 형의 아들이자 진흥왕의 손자인 백정을 신라 제26대 진평왕으로 옹립했다. 진지왕의 등극과 폐위 과정에는 권력을 두고 이루어지는 숱한 갈등의 모습들이 그대로 노출된다. 신라시대 중기의 왕권을 둘러싼 세력 다툼과 권력 구도를 짐작하게 한다. ◆삼국유사: 도화녀와 비형랑제25대 사륜왕의 시호는 진지대왕으로 성은 김씨이며, 왕비는 기오공의 딸인 지도부인이다. 태건 8년 병신(576) -고본에는 11년 기해(579)라고 했으나, 잘못이다- 왕위에 올라 4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으나, 정치가 어려워지고 음란하여 나라 사람들이 그를 폐위시켰다. 이에 앞서 사량부 백성의 딸이 있었는데 자색이 곱고 아름다워 당시의 사람들이 도화랑이라 불렀다. 왕이 소문을 듣고 궁중으로 불러들여 욕보이고자 하니, 그 여인이 말하기를 “여인으로서 지켜야할 바는 두 남편을 섬기지 않는 것이거늘, 지아비가 있는 몸으로 어찌 다른 데로 가오리까? 비록 천자의 위엄으로도 끝내 절조를 빼앗지 못할 것이옵니다” 라 고 했다. 왕이 “너를 죽인다면 어찌하겠느냐?” 하니, 여인이 “차라리 시장거리에서 목을 베일지라도 다른 마음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라 했다. 왕이 “남편이 없으면 몸을 허락할 수 있겠는가?”라 물으니 “허락할 수 있습니다”라 했다. 왕이 그녀를 보내주었다. 이 해에 왕이 임금자리에서 쫓겨나서 죽었다. 그후 2년 만에 도화녀의 남편도 또한 죽으니, 죽은 지 열흘 되는 밤중에 홀연히 왕이 옛날의 평상시와 같이 여인의 방에 들어와 “네가 예전에 허락을 하였고, 지금은 너의 남편이 없으니 잠자리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라 하자, 그녀는 가벼이 허락하지 않고 부모에게 여쭈어 보았다. 부모가 “임금님의 말씀인데 어떻게 어기겠느냐?” 하고 딸을 왕의 방으로 들어가게 했다. 왕이 머무른 7일 동안 항상 5색 구름이 집을 덮고 향기가 방안에 가득하더니 7일 후에 홀연히 왕의 자취가 없어졌다. 여인이 이로 인해 태기가 있다가 달이 차서 해산을 하는데, 천지가 진동하면서 사내아이 하나가 태어났으니 이름을 ‘비형’이라 했다. 진평대왕이 매우 기이한 소문을 듣고 궁중에 데려다 길렀다. 나이 15세가 되자 집사라는 벼슬을 주었더니, 그는 밤마다 멀리 도망나가 놀았다. 왕이 용맹스런 군사 50인을 시켜서 지키게 했으나, 매번 월성을 날아 넘어 서쪽 황천의 강변에 가서 귀신들을 데리고 놀았다. 군사들이 숲 속에서 엎드려 엿보았더니 귀신들은 여러 절에서 새벽종소리가 들리면 제각기 흩어지고 비형랑도 또한 돌아가는 것이었다. 군사들이 돌아와서 이 사실을 보고 드리니 왕이 비형을 불러 “너는 귀신들을 거느리고 논다고 하는데 정말이냐?”라고 묻자, 비형랑이 “그러하옵니다”라고 대답했다. 왕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너는 귀신들을 시켜 신원사 북쪽 개울에 다리를 놓도록 하여라”고 했다. 비형이 왕명을 받들어 그의 무리들을 시켜 돌을 다듬어 하룻밤 사이에 큰 다리를 완성했다. 그래서 다리 이름을 ‘귀교’라 했다. 왕이 또 “귀신들 가운데 인간 세상에 나와서 나라의 정치를 도울만한 자가 있는가?”라 하자, “길달이란 자가 있사온데, 가히 나라의 정치를 도울만합니다”라 했다. 왕이 함께 오라 하여 그 다음 날 비형과 같이 뵈었다. 그에게 집사 벼슬을 주었더니, 과연 그는 충성스럽고 정직하기가 짝이 없었다. 이때 각간 임종이 아들이 없었으므로 왕이 명하여 길달을 아들로 삼게 하자, 임종이 길달에게 명하여 흥륜사 남쪽에 다락문을 세우게 하고, 매일 밤 그 문 위에 가서 자도록 했다. 그래서 그 문 이름을 ‘길달문’이라 했다. 하루는 길달이 여우로 변해서 도망가자 비형이 귀신을 시켜 그를 잡아 죽였다. 이 때문에 귀신의 무리들이 비형의 이름만 들어도 두려워서 달아났다. 당시 사람들이 이를 두고 다음과 같이 글을 지었다. 성스런 제왕의 혼이 낳은 아들/ 비형랑이 있었던 집이로다./ 날고 뛰는 여러 귀신들아/ 이곳에는 머물지 말지어다.나라의 풍속에 이 글을 붙여 귀신을 쫓는다. ◆진지왕진지왕은 신라의 제25대 왕으로 576년부터 579년까지 왕위에 있었다. 진흥왕의 둘째 아들로 세자로 임명된 형이 572년 진흥왕 33년에 죽으면서 왕위를 계승했다. 성은 김이고, 이름은 사륜(舍輪)이며 금륜(金輪)이라고도 한다. 시호는 진지(眞智)이며, 삼국유사에는 이름을 따서 사륜왕이라고 기록하기도 했다. 어머니는 사도부인 박씨이다. 그는 기오공의 딸인 지도부인 박씨를 왕비로 맞이해 제29대 태종무열왕의 아버지인 이찬 김용춘을 낳았다. 삼국유사는 어머니를 색도부인 박씨, 왕비는 여도부인 박씨로 기록하고 있다. 진지왕은 576년(진흥왕 37) 진흥왕이 죽자, 그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진지왕은 즉위하고, 이찬 거칠부를 상대등으로 임명해 나랏일을 맡겼다. 즉위한 이듬해에는 직접 신궁에서 제사를 지내고 대대적으로 죄인을 사면했다. 그해 10월 백제가 쳐들어오자, 이찬 세종으로 하여금 군사를 이끌고 출병케 하여 일선에서 백제군을 크게 이기고 내리서성을 쌓았다. 진지왕 3년에는 중국의 진나라에 사신을 보내 수교했다. 또 백제를 공격해 알야산성을 점령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듬해 백제는 융현성과 송술성을 쌓아 신라 서북지역에 위치한 산산성, 마지현성, 내리서성으로 가는 통로를 막아 신라를 고립시켰다. 진지왕은 그해 가을에 재위 4년 만에 죽었으며, 영경사 북쪽에 매장되었다. 삼국유사에는 진지왕이 왕위에 올라 나라를 다스린 지 4년 만에 주색에 빠져 음란하고 정사가 어지러우므로 나라 사람들이 그를 폐위시켰다. 죽은 뒤에 애공사 북쪽에 매장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진지왕이 죽은 뒤에 형인 동륜의 아들인 백정(白淨)이 왕위를 계승했다. 그가 신라 26대 진평왕이다. 진평왕의 딸인 선덕여왕과 진평왕의 동생인 국반 갈문왕의 딸 진덕여왕 등 동륜의 후손들에게 왕위가 계승되었다. 진덕여왕이 죽은 뒤에 진지왕의 손자인 김춘추(金春秋)가 왕위를 계승해 29대 태종무열왕이 됐다. 신라는 29대 태종무열왕에서 36대 혜공왕까지 진지왕의 후손들이 왕위를 계승했다. ◆흔적△진지왕릉: 진지왕릉은 경주시 서악동 산92-2번지 일대 선도산 자락에 5기의 고분과 함께 위치해 있다. 진지왕릉은 2011년 사적 제517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선도산의 남쪽 구릉을 따라 형성된 서악동 고분군의 아래쪽에 만들어진 5기의 고분은 2기는 능선을 따라 나란히 배치되었고, 그 아래에 3기는 옆으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진지왕릉은 능선을 따라 배치된 2번째 고분이다. 진지왕릉은 아래쪽에 있는 문성왕릉과 마찬가지로 산사면의 일부를 깎아 평탄하게 한 후에 지름 20.6m, 높이 5.5m의 크기를 가진 원형봉토분이다. 봉토의 밑둘레에 자연석 일부가 노출되어 있는데 호석으로 추정된다. 봉분 주변에는 왕릉에 걸맞는 석물이나 장식은 아무것도 없다. 매장주체부는 고분의 입지와 인근의 서악동 고분을 보면 횡혈식석실묘로 추정된다. 현재 고분 앞에는 신라진지왕릉이라는 능의 표석과 안내 표지판이 있다. 진지왕의 무덤을 삼국사기는 영경사 북쪽, 삼국유사는 애공사 북쪽이라 기록하고 있어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지금도 여전히 무덤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고, 진지왕릉 또한 진지왕의 무덤이라는 지정에 대해서는 대부분 학자들은 회의적인 반응이다. 현재 진지왕릉은 1730년에 경주김씨 일족에 의하여 지정되었다. 진지왕릉으로 지정한 원인은 삼국사기에 진지왕의 장지를 진흥왕릉과 함께 영경사 북봉에 위치하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영경사를 서악동 삼층석탑이 있는 곳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서악동 3층석탑은 형식상 9세기 후반에 조성된 것으로 보여, 6세기후반의 진지왕릉과 맞지 않다고 주장한다. 1817년 경주를 방문한 김정희는 무열왕릉 뒤편에 나란히 높은 봉분으로 서 있는 4기의 서악동 고분군의 2호분을 진지왕릉으로 보았다. 강인구는 3호분을, 이근직은 무덤의 특징과 묘제, 조영순서 등을 고려하여 서악동 1호분을 진지왕릉으로 보고 있다. △귀교보와 귀교들: 경부고속도로에서 경주IC로 들어와 첫 번째 만나는 대형 치미가 세워진 큰 교량이 있다. 이 교량 아래로 흐르는 강이 형산강 상류다. 강물을 거슬러 울산 방향으로 1㎞ 남짓 떨어진 곳에 길게 형성된 보가 있다. 사람들은 지금도 이 보를 ‘귀교보’라 부른다. 귀교보 서쪽에 강을 따라 길게 제방이 있고, 제방 넘어 넓은 들을 귀교들이라 부른다. 신라시대로부터 전해오는 이름으로 추정한다. ◆새로 쓰는 삼국유사: 진지왕의 즉위와 폐위진흥왕은 큰 아들 동륜을 세자로 책봉하고, 둘째 사륜을 대신으로 임명해 나라일에 직접 참여하게 했다. 그러나 세자 동륜이 죽으면서 흥륜사를 지어 불교적으로 심취했다. 직접 팔관회를 열어 전쟁으로 죽은 백성들을 위로하는 제사를 주관하면서 서서히 나라일에서 물러났다. 이때 거칠부가 사실상 병권을 잡고 내정에도 깊숙이 개입해 사륜을 왕으로 추대했다. 사륜이 신라 제25대 진지왕으로 등극하면서 거칠부를 상대등으로 임명했다. 신라가 거칠부의 세상이 되었다. 거칠부가 진지왕 2년에 죽자, 그들의 세력은 급속하게 몰락의 길을 걸었다. 진흥왕대에서부터 동륜의 아들 백정을 옹립하려던 노리부와 김후직, 화문, 노지 등의 인물들이 실세로 자리를 잡았다. 가야 출신인 노리부 등은 거칠부가 죽은 이후로 나라일은 뒤로 하고, 음란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진지왕을 폐위시켰다. 진지왕은 신라 최초로 폐위되는 불명예의 역사를 기록으로 남겼다. 귀족들은 진지왕에 이어 백정을 신라 제26대 진평왕으로 추대했다. 진평왕은 즉위 당시 10대 초반의 나이로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왕권을 강화하는 제도를 만들고, 서서히 국정의 실권을 잡았다.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드론 정찰에서 군사용 로봇까지… 인공지능 “입대를 명 받았습니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 ‘동방예의지국’, 세계 유수의 대학에서 과 수석을 놓치지 않는 ‘영민한 민족’, ‘IT 강국’으로 일컬어지는 대한민국의 오점이다.최근 남·북 관계에 훈풍이 드나들고 있다지만 양국 아니 원래 하나였던 두 국가의 이해관계란 외줄 위 아찔하다 못한 서슬 푸름과 통일이라는 당위가 교차한다. 아이러니 하게도 말이다. 대한민국의 1년 국방비는 47조 원에 이른다. 세계 10위 규모다. 전체 예산 대비 2.4%, 국내총생산(GDP)으로 비춰볼 때 2.6%에 달하는 수치다. 반면 실업률 제고를 위한 일자리 예산은 약 23조 원, 안전 등의 생활예산은 20조 원, 환경 예산은 7조5천억 원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일각에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턱없이 낮은 복지예산을 지적, 복지예산증축을 위해 국방비 절감을 요구하고 있다. 남북 화해 분위기에 과거와 다름없는 국방비 지출은 자칫 ‘잉여예산’으로 치부될 수 있다는 일갈이 바로 그것.반면 또 다른 한편에서는 남·북의 대치 국면이 한결 완화됐다고는 하지만, 남북이 여전한 대립양상을 띠는 가운데서의 국방비 축소란 리스크를 자초한다는 말 그대로 어불성설이라는 지적 역시 왕왕 나오고 있는 상황. 이 같은 주장의 배경에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른바 ‘불안 심리’의 발로로 보여진다.구국을 위한 국방력 강화와 군비 축소란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대안으로 인공지능(AI)가 떠오르고 있다.바로 ‘디지털’과 ‘스마트’의 이름으로 최첨단의 국방경계를 공고히 하겠다는 능동적 대처로 풀이된다. 물론 여기에는 4차 산업혁명의 시류를 거스르지 않는 현명함도 내포돼 있다.최근 결혼율과 출산율이 급격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은 병력 운용 간 심각한 차질 양상으로 고스란히 이어진다.실제 한국정책평가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입영 장정이 64만여 명에서 2020년 52만 명 이하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최근 복무기간 단축으로 인한 숙련도 저하를 우려하는 일단과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시뮬레이션 훈련이 일장으로 상존하고 있다. 이는 곧 AI의 도입을 통해 소수 전문 인력이 효율성을 기반으로 한 전투력 제고에 나서겠다는 복안으로 보인다. ◆베테랑 교관보다 뛰어난 AI 기술비행 훈련에도 AI 기술과의 접목을 꾀하고 있다. 바로 미국의 사례다. 미 공군은 공군 전용 AI시스템을 구축·도입을 통해 원활한 실전을 영위하기 위한 ‘비행 전투 시뮬레이션’을 시도했다. 이 역시도 일장일단이 있겠지만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이 수십 년 경력의 베테랑 비행교관을 압도하면서 약간의 씁쓸함이 곁들어진 AI의 놀라운 기술력을 한층 더 가시화 한 바 있다.‘행군’은 군 시절 빼놓을 수 없는 추억 속 편린이다. 특히 전투병과에 배치돼 있는 보병에서의 행군이라 함은 군 생활 속, 응당 거쳐야 할 관문 중 하나다.하지만 4차 산업혁명의 범람은 일상생활뿐 아니라 군 생활, 그 중에서도 생명과 안위가 걸려있는 실전훈련 간에도 그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무인의 이름을 딴 전투 장비와 첨단 기술 등이 행군의 고통을 일정 부분 해소한다.5G 시대의 개막은 군 문화의 혁신을 도모하고자 한다. 장병 대신 로봇이나 드론이 사각지대 없는 완벽한 사주경계를 펼치는가 하면 리스크가 산재한 각 전투지역을 로봇이 대신 출전함에 따라 인명 살상 등의 폐해를 미연에 방지한다는 것.물론 상용화에 이르자면 어느 정도 시일이 걸리겠지만, 실제 국·내외를 막론하고 다수의 기관·기업들이 5G 기술력을 담아낸 군 시스템 도입에 발 벗고 나서고 있다.5G의 기술력은 무인 전투기에도 획기적 영향력을 뻗치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산업에 따르면 헬기 형태인 무인 기술 전투기는 제자리 비행이 가능함에 따라 별도의 활주로 없는 이·착륙에 용이하다.이뿐 만이랴. 5G가 가진 최적의 전송속도 및 시스템적 장점을 토대로 여타 전투기와의 각종 정보를 상시적으로 공유한다. 여기서 비춰보듯 정보체계의 무인화는 이제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닌 바로 우리 눈앞으로 다가왔다.일상 곳곳으로 활용되고 있는 ‘드론’ 역시도 군 정찰의 핵심 기술로 본연의 몫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특히 군 인력이 미처 닿기 힘든 해상작전에서 그 위세를 떨치고 있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드론의 주요 기술력이란 고속 침투 대응, 수색·정찰, 공중 수색, 기후 및 적 침투 등 해상상황에 관한 실시간 대처 등에 방점을 찍는다.작전지휘 간에도 이제는 AI다. 국방부에 따르면 2025년까지 군 내부의 데이터베이스를 기초로, 전장의 모든 변수를 빅데이터화한 후 최선의 작전계획을 영위하는 이른바 ‘AI지휘체계’를 구축한다. 여기에는 기상조건 및 북한군의 상황과 각종 지형 등의 데이터를 바탕, 적절한 전략 수립에 선제적으로 활용한다. ◆각국 군사로봇 개발에 사활 걸다‘정보가 곧 국력’이라는 말이 있듯이 정보는 곧 전쟁 성패의 바로미터다. 이 같은 정보획득의 과정서도 AI의 기술은 기존 정찰의 범위와 기능을 무력화시킬 만큼의 초고도화된 기술력을 발산하고 있다.과거 드론 및 고고도 정찰기 등으로 획득한 각종 정보를 각 군을 상대로 취합·공유하는 데 수 시간이 걸렸던 것을, 이제는 AI 시스템이 갖가지 (전투 간)경우의 수를 따져 최적의 적전 지휘를 공표하는데 수분으로도 충분하다. 이를 통해 지휘관 회의를 위한 이동 시간 절감과 동시, 각자의 자리에서 실시간 정보 공유가 가능해짐에 따라 신속한 상황 파악이 더욱 용이해 졌다.군사강국으로 일컬어지는 중국과 미국에서도 AI를 융합한 전투체계 모색에 사활을 걸고 있다.중국은 최근 화기 탐색 기능을 갖춘 이른바 ‘통합 전투시스템’을 공개했다. 이는 미래 전쟁에 대비한 개인별 맞춤 전투시스템으로, 주로 정찰 부대를 중심으로 활용되고 있는 상황이다.미국에서도 ‘군사용 로봇 개발’의 일환으로 100㎏에 가까운 군장을 메고 시속 약 20㎞의 속도로 험준한 산악지형을 침투하는 로봇을 선보였다. 정보력과 더불어 ‘기동력의 극대화’에도 초점을 뒀다는 평가다.우리 군 역시도 국방 청사진을 위한 ‘미래국방 발전전략’ 수립에 여념이 없다. 물론 여기에도 AI를 기반으로 둔다. 취지는 명확하다. 4차 산업에 기인, 과거 국지전과 비교해 전혀 다른 양상을 띨 미래 전에 적극 대비한다는 캐치프레이즈다.세부사항으로는 무인체계 통합 통신망, 에너지 무기, 생존을 위한 생화학무기 탐지, 투명망토 등의 특수 소재, 무인화, 센싱 네트워크 등이 꼽힌다. ◆국방 IT의 핵심 ‘AI와 빅데이터’국방과 IT의 핵심은 AI와 빅데이터의 융합으로 점철된다. 전쟁 발발의 사전 예측으로 전투상황을 미연에 방지함과 동시, 군수물자의 생산과 배치, 보급 간에도 빅데이터를 적극 활용함에 따라 물자 재고 절감과 이를 통한 경제성 확보에 나선다는 전략.조금 더 면밀히 살펴보자면, ‘AI 제어 시스템’ 구축을 통해 전력의 극대화를 꾀함과 동시, ‘군 발전 전략 플랜’을 바탕으로 한 치의 오차 없는 운용과 이에 부합되는 체계적이자 섬세한 전투태세를 AI로 하여금 발현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초연결, 초고도화의 개념이 견고히 탑재돼 있다.빅데이터 구축 역시도 미래 전장의 주도권 확보를 위함이다. 수많은 군 정보는 빅데이터를 통해 대용량의 체계적 정리가 수월해졌다. 데이터베이스의 유지와 관리, 한 걸음 더 나아가 신 정보의 생성 기반을 공고히 하겠다는 목표다.AI를 통한 국방비 절감 부분도 간과해선 안 될 문제다. 현재까지는 시범단계에 그쳐 있다 보니 가시적 성과는 미흡한 실정이긴 하나, 군사력 증강과 함께 군비 절감도 피할 수 없는 어젠더임을 정부 차원으로도 숙고하는 상황이다.이 같은 상황을 대변하듯 최근 국방부는 빅데이터와 사물 인터넷을 활용, 국방예산 절감을 위한 ‘재정개혁 위원단’을 꾸렸다. 예산 절감이 기대되는 과제를 능동적으로 찾아내 이를 중심으로 향후 심도 있는 관리체계를 구축하기 위함이다.주요 사항으로는 △사물인터넷 기반의 ‘스마트 탄약고’ 구축 △빅데이터를 활용한 예산 누수 방지 △정보 송달 간 중복 체계 통합 △군수물자 조달 정보 관리 등이다.미래 전투는 개별의 전투 인력과 빅데이터 수반의 정보 공유, 첨단화된 무기체계 일색일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선 AI와 사물인터넷의 융합이 필수불가결한 요소일 것이며 또 이 같은 요소를 충족시키고자 한다면 5G 기술력이 전제돼야 함이 마땅하다.그 사례로 ‘장교의 요람’으로 불리는 육군사관학교가 올 하반기를 기점으로 ‘스마트 육군사관학교’ 구축을 명문화했다. 이 역시도 초저지연, 초연결성을 담아낸 5G 기술이 기반으로 자리 잡고 있다.AI는 갖가지 무인 시스템을 낳았다. 이로 인해 잉여 인간으로의 전락을 우려하는 일각의 목소리 역시 심심찮다. 다만 시류라 함은 거스르는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융합을 전제한다. 집단 지성으로의 고찰에는 신중하되 국방과 IT의 만남이 전투 간 인명 손실을 최소화한다는 점에서 AI는 그저 ‘인간을 위함’이다. 글·사진 군월드 IT 사업팀김종윤 기자 kjyun@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