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부•허벅지 사이 혹처럼 볼록…탈장된 장 다시 넣어야

-경대연합외과 이상호 원장 상당수가 탈장을 그 명칭처럼 장이 배 바깥쪽으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복강 안의 내부 장기는 복벽과 복막에 둘러싸여 있는 데 탈장은 복벽에 생긴 틈으로 복강안의 장기(주로 대망이나 소장일부)가 탈장낭을 통해 밖으로 빠져나오는 것을 말한다.복부 어느 부위에서 발생할 수 있지만 주로 서혜부에 발생한다.서혜부 탈장은 탈장의 90% 이상을 차지하며 복부와 허벅지가 만나는 부위보다 약간 위쪽 부위에 혹처럼 나타난다. 주로 서 있거나 복압이 증가했을 때 혹처럼 만져지다가 눕거나 복압이 낮아지면 자연스럽게 없어진다.드물게는 빠져나온 장이 꽉 끼여 허혈성 손상을 입게 되면 응급수술을 해야 하는 경우도 발생하므로 탈장된 부위의 통증이 동반되면 가능한 신속히 진료를 받고 탈장된 장을 복강 내로 다시 넣어야 한다.서혜부 탈장의 원인은 선천적 요인과 후천적 요인이 있다.소아에게 생기는 탈장은 거의 선천적으로 생기며 서혜부 탈장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간접 서혜부 탈장은 복벽에 틈이 생겨서라기보다는 태아기에 형성된 복막 주머니가 막히지 않고 열려 있었거나 약하게 막혔다가 다시 벌어져서 이곳을 통해 장이 밀려 나온다.이 복막 주머니는 원래 태아의 뱃속에서 만들어진 고환이 임신 8개월경에 서혜부를 통해서 음낭으로 내려오면서 동시에 막을 끌고 내려와 만들어진 것으로 성장을 하면 막히게 된다. 하지만 이 부위가 막히지 않으면 탈장의 원인이 된다.장은 내려오지 않았지만 이곳에 물이 고여 물주머니가 생기는 것을 음낭수종이라고 하는데 음낭수종과 탈장은 발생기전이 비슷해 서로 사촌 간이라 할 수 있다.후천적 요인으로는 복압이 너무 올라 갈 수 있는 심한 운동, 변비, 임신, 복수, 만성기침 등이 있다.또 복벽이 너무 약해지는 고령, 당뇨, 심장병 등도 후천적 요인이 될 수 있다.서혜부 탈장의 경우 자연적으로 없어지지 않으며 반드시 수술적 교정이 필요하다. 소아나 성인 모두에서 감돈 탈장의 위험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진단 후에는 수술 날짜를 잡는 것이 좋다.특히 소아에서는 감돈 탈장이 한번 발생한 경우는 재차 발생할 가능성이 크므로 빨리 수술해야 한다. 소아의 경우는 탈장낭만 묶어 주면 되고 성인의 경우는 복벽을 보강해 주어야 한다.과거 피부를 절개해 수술을 하다 보니 근육의 박리를 많이 해야 했고 다시 그 근육과 근막을 봉합해야 해서 수술 후 통증이 오래 지속되고 복압을 높이는 일을 상당기간 조심해야 했다.반면 복강경 탈장 수술은 탈장의 외측 즉 근막과 근육의 박리 없이 복강 안에서 탈장낭 만을 박리해 수술하므로 수술 후 회복이 빠르고 통증이 적은 장점이 있다.서혜부에 나왔다 들어갔다 하는 계란 크기의 혹이 만져진다면 가능한 빨리 외과 전문의의 진찰을 받는 것이 좋다. 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우리동네 자랑-울릉군 <3>북면

[{IMG01}] 울릉도는 정말 멋지고 아름다운 섬이다. 일주도로를 따라가다가 아무 곳에서나 차를 세우고 주변을 둘러봐도 그림 같은 곳이다. 최근 개통한 일주도로의 가장 큰 수혜자는 북면 지역이다. 그동안 북면 사람들은 도로가 없어서 10여 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1시간가량 돌아서 가야 하는 등 불편할 삶을 살아서 했다. 다행한 것은 거리가 먼 탓에 자연환경도 사람의 손을 덜 탔다는 점이다. 북면은 울릉도에서 물빛이 가장 곱고, 섬과 바위가 빚어내는 절경이 펼쳐지는 곳이다.코끼리 바위나 딴바위, 선녀의 전설이 내려오는 삼선암, 관음도 등 볼만한 부속 도서들은 한결같이 북면에 있다. 울릉군 전체인구 1만34명(2018년 7월 기준) 중 북면 인구는 1천529명으로 울릉도 인구의 약 15%에 해당한다. 면적도 전체면적 72.87㎦ 중 24.28㎦ 정도로 33%를 차지하고 있다. 북면 지역의 행정구역은 천부 1~4리, 현포 1~2리, 추산리, 나리 등이다. 북면에는 천연기념물인 성인봉 원시림과 울릉국화 섬백리향 군락지가 유명하다. ----------------------------------------------------------------------------------------1. 천부 일몰전망대 천부 일몰전망대 입구는 북면 보건지소와 북면 파출소 맞은편에 있다. 데크 계단과 흙길로 이루어진 작은 길을 따라 전망대까지 500m 거리를 10분 정도 올라가면, 우리나라의 몇 안 되는 아름다운 작은 자연 미항을 조망할 수 있다. 송곳봉과 공암, 천부항 그리고 죽암마을 앞에 있는 죽암딴바위, 석포전망대, 작은 홍문동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다. 2. 천부 해중전망대천부항에서 섬목방향으로 약 100m 지점에 설치된 해중전망대는 수족관처럼 바닷속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수심 6m에서 수중창을 통해 울릉도 청정해역과 신비로운 수중 생태계를 관람할 수 있는 곳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수중전망대다. 3. 예림원현포리에 있는 예림원은 가장 울릉도다운 식물공원이다. 울릉도 수목과 특산식물이 더 넓은 바다와 한 곳에 어우러져 여행자들이 한 눈에 감상할 수 있다. 이 아름다운 숲속에 문자를 나무에 새기고 다듬어 조형미와 생명력을 표현한 문자 조각공원도 함께 관람할 수 있다. 4. 섬목 관음도 보행 연도교 총사업비 90여억 원을 들여 2012년 5월 준공한 보행 연도교는 울릉도에서 100여m 떨어진 무인도인 관음도를 연결하는 다리다. 길이 140m, 높이 37m, 폭 3m 규모의 보행전용 다리다. 관음도는 면적이 7만1천388㎡로 울릉도에 부속도서 중 죽도 독도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섬이다. 5. 현포항‘동쪽 촛대 암의 그림자가 바다에 검게 어린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우산국의 주요 활동지로 추정되는 삼국시대 이전 역사를 지닌 유물과 유적이 발굴됐다. 동국여지승람에는 현포에 혼락기지와 석물, 석탑 등이 있었다고 전한다. 18세기 해동지도에도 석장과 탑이 있는 사찰터가 기록되어 있으며, 우산국만의 독특한 방식의 수많은 고분군이 고대 우산국의 도읍지로 추측하게 한다. 6. 알봉울릉도의 주봉을 이루는 성인봉 북쪽에 이루어진 칼데라화구 내에 새로 분출돼 형성된 작은 화산이다. 알봉은 이중식 화산의 중앙화구구로 동서 양쪽에 2개의 화구를 가지고 있으며, 성인봉의 능선을 따라 미륵산·송곳산·형제봉 등이 솟아 있다. 이곳을 개척하여 많은 사람이 살았는데 큰 알봉, 작은 알봉이 있다. 7. 송곳봉 성인봉의 한줄기 산봉우리로 그 모양이 송곳처럼 뾰족하게 생겼다고 하여 송곳봉이다. 높이 430m인 이 봉우리가 불과 100m 이내의 짧은 거리로 바다와 접해 있어, 해상이나 육상에서 볼 때 더 높고 웅장하게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8. 삼선암 천부리 앞바다에 우뚝 서 있는 세개의 기암이다. 기암절벽과 산봉우리가 멋진 울릉도에서 삼선암은 울릉 3대 비경 중 제1경으로 꼽힌다. 멀리서는 2개로 보이지만, 가까이 가면 3개로 되어 있어 더 경이롭다. 삼선암에는 지상으로 놀러 온 세 선녀에 대한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9. 공암(코끼리 바위)바위 모양이 코끼리를 닮았다고 해서 코끼리 바위라고도 하고, 소형 선박이 드나들 수 있는 10m의 구멍이 뚫린 바위라는 의미에서 ‘공암’이라고도 한다. 바위 표면은 주상절리 현상에 의해 장작을 패어 차곡차곡 쌓아놓은 듯한 모습을 보인다. 10. 나리분지 성인봉 북쪽의 칼데라 화구가 함몰해 형성된 화구원으로 울릉도 유일한 평지다. 동서 약 1.5㎞, 남북 약 2㎞, 면적 1.5~2.0㎢ 규모의 나리분지는 화구원 안에 있던 알봉(해발 538m)의 분출로 두 개의 화구원으로 분리됐다. 북동쪽에는 나리 마을, 남서쪽에는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 알봉 마을이 있다. 11. 너와집이 집은 울릉도 개척 당시(1882)에 있던 울릉도 재래의 집 형태를 간직하고 있는 너와집으로서 1940년대에 건축한 것이다. 경북도지정 민속자료 제55호 울릉 나리 너와집은 2007년 12월31일 자로 국가지정 중요민속자료 제256호 울릉 나리동 너와집 및 투막집으로 지정됐다. 12. 투막집울릉 나리 투막집은 1940년에 세워진 것이지만, 울릉도 개척 당시(1882)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1986년 12월 11일 경북도 지정 문화재가 된 나리 투막집은 울릉도의 귀중한 문화재 자료로 제182호는 북면 나리 117-4번지, 제183호는 북면 나리 307번지 외 두 필지가 있다. 1987년 울릉군에서 토지와 가옥을 매입해 보수·관리하고 있다. 이재훈 기자 ljh@idaegu.com

남달랐던 마립간 배필 찾기 삼만리…천생연분 그의 인연 ‘황후의 조건’은?

삼국유사의 지철로왕은 지증왕이다. 지증왕 이후부터 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신라왕릉에 큰 변화가 나타난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 신라 역대왕의 능묘 소재지나 장례지에 대해서 지증왕까지는 오릉, 미추왕릉, 내물왕릉만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지증왕의 무덤은 사실상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지증왕의 아들 법흥왕부터는 차례로 그 왕릉의 소재지나 장례지가 주변에 있던 사찰을 중심으로 방위, 산 이름, 지역명 등으로 나타내고 있다. 지증왕과 법흥왕을 경계로 왕릉의 입지조건이 달라졌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내는 부분이다. 법흥왕릉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신라왕릉의 소재지에 대한 기록은 바로 신라 고분의 변천 과정을 문헌으로 뒷받침한다. 최초의 석실을 묘제로 채택한 왕릉은 법흥왕릉이다. 이를 기점으로 석실분은 확산되어 갔다. 신라 고분은 6세기 초까지는 평지에 돌무지덧널무덤이 축조되었으나 6세기 중엽부터는 입지조건도 구릉지대로 옮겨가고 내부구조도 굴식돌방무덤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천마총이 지증왕릉으로 추정된다는 학자들의 의견이 그럴듯하여 지증왕의 잘 알려지지 않은 왕위 계승과 천마총의 비밀을 풀어본다. ◆삼국유사: 지철로왕제22대 지철로왕의 성은 김씨고 이름은 지대로 또는 지도로이다. 시호는 지증이니 시호가 이것이 처음이었다. 또 우리말로 왕을 마립간으로 한 것도 이 왕 때부터 시작됐다. 왕은 영원 2년 경진(500)에 왕위에 올랐다. (혹은 신사년 501년이라고 하나 그렇게 되면 영원 3년이다.) 왕은 음경의 길이가 1자 5치나 되어 배필을 구하기가 어려워 사람들을 세 방면으로 보내어 배필을 구했다. 배필을 구하는 사람이 모량부의 동노수라는 나무 밑에 왔을 때, 개 두 마리가 북 만 한 큰 똥 덩어리 한 개의 양 끝을 서로 다투어 가면서 깨물고 있는 것을 보았다. 마을 사람들에게 물으니 한 소녀가 말하기를 “이것은 모량부 상공의 딸이 여기에서 빨래하다가 숲속에 숨어서 눈 것입니다”라 하여 그녀의 집을 찾아가서 알아보니 키가 7자 5치였다. [{IMG03}] 이 사실을 자세히 왕에게 말씀드렸더니, 왕이 수레를 보내어 궁중으로 맞아들여 황후로 책봉하자 여러 신하들이 모두 예를 갖추어 축하했다. [{IMG04}] 또 아슬라주(지금의 명주) 동쪽 바다 가운데에 바람만 잘 불면 이틀 뱃길 거리에 우릉도(지금은 于陵을 羽陵으로 쓴다)가 있다. 주위 둘레가 2만6730보이다. 섬 오랑캐들이 물이 깊은 것을 믿고 교만하고 거만하여 신하 노릇을 하지 않았다. 왕이 이찬 박이종에게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그들을 토벌하도록 명령했다. 박이종이 나무로 된 사자 모양의 허수아비를 만들어 큰 배 위에 싣고 위협해서 말하기를 “항복하지 않으면 이 짐승을 풀어놓겠다”라 하자 섬 오랑캐가 두려워서 항복했다. 이종을 포상하여 고을의 장으로 삼았다. ◆흔적△천마총 : 천마총은 경주시 황남동 경주역사유적지구 대릉원지구에 있는 신라시대의 왕릉으로 추정되는 고분이다. 이칭 별칭 황남동 제155호분으로 알려져 있다. 역사성과 특성을 고려해 인접 지역 고분군 통합 2000년 12월 사적 제512호로 재지정 됐다. 박정희 대통령 당시 정부의 경주종합개발계획에 의거 황남동 제98호 고분의 내부를 공개하여 관광자원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을 수립해 발굴작업이 시작됐다. 제98호분은 한국 최대형 고분이므로 이를 발굴하기 위해서는 소형의 고분을 발굴하여 경험과 정보를 얻어 발굴한다는 방침을 세워 제155호분을 먼저 발굴하게 되었다. 1973년 본격 발굴이 시작된 제155호분 천마총도 대형에 속하는 고분이다. 당시까지 발굴 조사된 고분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거의 완형에 가까운 고분이어서 신라의 왕릉급 대형고분에 관한 새로운 정보를 많이 제공했다. 고분의 형식은 돌무지덧널무덤, 적석목곽분으로 분류된다. 천마총에서 발굴된 금관, 금제 관모, 금제과대가 각기 국보 제188호, 제189호, 제190호로 지정돼 있다. [{IMG06}] 껴묻거리 유물은 장신구류 8천766개, 무기류 1천234개, 마구류 504개, 용기류 226개, 기타 796개로 모두 1만1천526개가 출토됐다. 발굴된 금관은 의식용이라 할 수 있고, 금모는 실용관이라 할 수 있다. 천마도장니의 천마는 비상하는 모습으로 고구려벽화의 무용총 수렵도의 그것과 매우 유사하다. 고구려나 백제와는 달리 고분벽화가 별로 없는 신라의 회화자료로서 천마총의 천마도는 매우 귀중한 대접을 받고 있다. [{IMG04}] 천마총 고분의 축조 연대를 추정하기 위해 목관조각의 방사성탄소측정(원자력연구소 검사) 결과, 서기 340년 전후 70년이므로 축조 연대는 서기 270년∼410년 사이에 들어간다. 이 연대는 목관재료 자체의 연대로 추정하면, 실제 고분 조성 시기는 서기 500년 전후가 될 것이라 본다. 발굴보고서는 소지왕과 지증왕을 이 고분의 피장자로 추정하고 있다. 경주분지에서의 돌무지덧널무덤이 지증왕 대까지 축조되고, 법흥왕 대부터는 서악동 무열왕릉의 후방 왕릉군으로 옮겨가기 때문에 황남동에서의 돌무지덧널무덤의 연대는 6세기에 끝났다고 학자들은 의견을 모으고 있다. 또 천마총의 묘단, 목곽부, 적석부, 분구 등 구성요소의 규모가 합리적 비례를 취하고 있고, 목곽, 수장궤 및 천마도, 금관이식 등은 다른 무덤에서 볼 수 없는 발달된 양식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황남동에서는 최후 단계인 6세기 초의 무덤으로 추정한다.따라서 잠정적으로 지증왕의 왕릉으로 추정하는 학설이 설득력을 얻는다. 지증왕은 지대로, 지도로, 지철로왕으로도 불렀다. 신라의 왕호를 거서간, 차차웅, 이사금, 마립간을 거쳐 처음 왕으로 부르게 했다. 국호를 ‘덕업일신 망라사방’에서 글자를 취해 ‘신라’로 지었다. 지증왕은 순장을 금지하게 하고, 소를 이용한 농사법을 장려했다. 재위 6년인 505년 처음으로 얼음을 저장하는 석빙고를 만들고 배를 원활하게 이용할 수 있는 제도도 마련했다. 서울 동쪽에도 시장을 설치하고, 나라 안에 주와 군, 현을 정비해 군주를 파견해 다스리게 하고, 이사부를 통해 지금의 울릉도인 우산국을 정벌했다. △법흥왕릉: 법흥왕릉은 경주시 충효동 서악이라 불리는 선도산의 서쪽 기슭 낮은 구릉에 자리하고 있는 신라 제23대 법흥왕의 능이라 전해지는 고분이다. 사적 제176호로 지정되어 있다. 내부구조는 알 수 없고, 외형상으로는 원형 토분으로 되어 있다. 신라왕릉으로는 비교적 작은 편이다. 호젓한 산속에 위치해 새소리, 개구리울음이 들려 산책하기에는 좋은 코스이지만, 법흥왕 이름이 주는 무게에 비해 너무 왜소하여 다소 실망스럽기도 하다. 법흥왕릉은 수많은 대소고분이 밀집된 경주 시내의 고분군을 벗어나 교외의 야산 구릉 지대에 축조돼 여러 가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봉분의 표면이나 주위에는 아무 장식물이 없다. 봉분 아래에 호석을 받쳤던 자연석의 일부가 드물게 드러나 있다. 비슷한 유형으로 선도산 동쪽 기슭의 무열왕릉이 있다. 이러한 호석 구조는 경주 시내에서 냇돌만 쌓은 평지 돌무지덧널무덤의 호석보다 한 단계 발전한 것이다. ‘삼국사기’는 법흥왕은 재위 27년에 애공사 북쪽에 장사지냈다, ‘삼국유사’는 애공사 북쪽에 있다고 기록했다. 고분의 남쪽에는 신라 하대에 세운 것으로 보이는 삼층석탑이 있는데 ‘애공사지탑’이라 부르고 있다 법흥왕은 지증왕의 아들이다. 27년간 왕좌에 있으면서 신라역사에 획을 긋는 많을 업적을 남겼다. 국방을 튼튼하게 하기 위해 병부를 설치하고 상대등을 설치하며, 율령을 반포한 데 이어 불교를 공인했다. 금관가야를 정복해 영토를 넓히고 건원이라는 연호를 사용했다. ◆새로 쓰는 삼국유사: 소지왕과 지증왕의 대결지증왕은 내물왕의 증손자이고, 어머니는 눌지왕의 딸이다. 김씨 왕위 세습체계를 이룬 내물왕의 직계 왕손인 셈이다. 그러나 내물왕의 같은 증손자이지만 눌지왕, 자비왕으로 이어지는 맏아들의 소지왕에게 왕위가 이어지면서 지증왕은 사실상 왕좌에 앉기 어려운 처지였다. 지증왕은 외할아버지 눌지왕의 근엄한 모습을 옆에서 바라본 이후 왕좌에 대한 꿈에 사로잡혔다. 이를 눈치챈 지증의 어머니는 왕권을 둘러싼 싸움에서 벗어나도록 눌지왕에게 부탁하여 일찌감치 주거지를 왕경에서 멀리 떨어진 흥해로 옮겨버렸다. 그러나 지증의 머리에는 왕관을 쓰고 용포를 두른 외할아버지의 모습이 날이 갈수록 선명하게 새겨졌다. 자신이 왕이 되어 위풍당당하게 국정을 펼치는 장면을 상상하면서 나날을 보냈다. 흥해는 넓은 들에 곡식이 넘실거려 풍요로웠고, 바다와 연접해 청년들이 호연지기를 키우기에 적합한 분위기였다. 여기에서 지증은 평생의 친구 이사부를 만났다. 이사부는 학식이 깊고 무술적 재질도 특출하게 뛰어났다. 지증은 흥해 넓은 들과 산, 바다에서 이사부와 함께 학문을 탐구하는 한편, 말을 달리면서 무술을 연마해 문무를 겸비한 동량으로 성장했다. 지증은 키가 8척에 이르며 단단한 근육질로 뭉친 범 같은 장군상이었다. 지증은 마흔이 지나면서 2살 위인 외사촌 소지왕을 가끔 멀리서 볼 수 있었다. 소지왕이 월성의 보수공사 때문에 명활성에서 집무를 보고 있을 무렵, 지증은 공사에 직접 참여해 월성의 내부는 물론 외부 구조까지 샅샅이 익히게 되었다.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소지왕이 월성으로 입성할 때를 노려 반란이 일어났다. 왕가에 먼저 입성해 불교를 설파하는 승려와 후궁으로 들어왔던 선혜부인이 눈이 맞았다. 이들은 소지왕이 미색이 뛰어난 벽화를 들여와 아들을 낳자 왕을 제거하기로 하고 거사를 일으켰다. 선혜부인팀과 벽화팀이 충돌하면서 소지왕이 궁지에 몰렸다. 이러한 소식을 전해 들은 지증이 이사부와 날랜 무사들을 이끌고 사방에서 월성으로 잠입했다. 지증과 이사부 팀은 지친 두 무리를 소리소문없이 잠재웠다. 소지왕은 이미 거의 죽음에 이르러 있었다. 난을 평정한 지증은 소지왕이 깨어나기를 기다리면서 갈문왕으로 내정을 운영했다. 이사부를 병권과 내정을 함께 다스릴 수 있는 대신으로 발탁해 조정을 손아귀에 넣었다. 조정을 완전히 장악한 지증왕은 500년 드디어 왕좌에 올라 꿈을 이루었다. 그가 64세가 되던 해이다.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너 어떤 패션 좋아하니? 나는 ‘똑똑한 스타일’ 입는데

‘옛말’이 품은 함의. 추억 속 아스라이 점철된 편린일 수도, 시쳇말로 인생사 왕년이라 거드름피울 수 있는 그 시절 클라이맥스쯤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공통된 것은 그저 곱씹어야만 느낄 수 있는 빛바랜 영광이라는 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섬유’는 대구의 아이덴티티 였다. 일제강점기 섬유공장의 대대적 유입으로 대구의 섬유산업은 각광 받기 시작했다. 특히 ‘경제5개년 계획’의 절정이었던 1970년대, 섬유산업은 지역경제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가일 층 박차를 가해온 섬유산업은 1990년 한 해에만 약 150억 달러 치를 수출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전체 한국 수출량(650억 달러) 대비 25%를 차지할 만큼의 놀라운 수치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때까지였다.최근 섬유산업의 수출 성적표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해 섬유산업 수출액은 140억 달러에도 채 미치지 못하는 초라한 결과지를 수용해야만 했다. 30년 전보다 되레 역행한 수치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세계수준의 패션 부흥은 먼 나라 얘기로만 치부되기 일쑤.섬유산업의 쇠락 원인은 다각도로 제기되고 있다. 우선 급작스런 최저임금 상승과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한 기업 환경의 하릴없는 퇴보가 선으로 꼽힌다.한 가지 고무적인 사실은 최근 섬유산업 재건의 기치를 앞세운 대구의 가열찬 행보가 꽤나 가시적이다. ‘섬유도시’라는 옛 명성을 오늘날로 계승하기 위한 이른바 ‘밀라노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나선 것.세계 패션의 메카로 일컬어지는 이탈리아 밀라노의 노하우를 그간 쌓아올린 대구의 섬유기술에 접목, 1970~19080년대의 영광을 재현해내겠다는 포부다. 프로젝트에 관한 설왕설래를 거듭하고는 있긴 하나 한 줄 남은 끈마저 놓아버리기엔 아직 이른 감이 없지 않다.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실, 바로 시의의 문제다. 4차 산업혁명의 범람으로 산업과 IT의 초연결 산업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시점임을 놓쳐선 안 된다. 시의를 거스른 진부한 발전계획은 자칫 모색으로만 그칠 공산이 크다. 시발점이라 믿어보자. 예전의 영광은 기대하되, 그 옛날의 구태는 청산해야 함이 마땅하다.패션과 IT는 떼려야 뗄 수 없고, 아울러 분리해 놓고 봐서도 안 될 노릇이다. ‘IT 강국’의 캐치 프레이즈와 섬유산업의 메카로 명성을 쌓아올린 대구의 노하우는 응당 보기 좋은 궁합이다.단순 명맥 이어가기에 그쳐선 안 된다. 청년들의 열정, 그리고 발군의 실력과 경험을 지닌 지역 섬유업계와 인공지능의 만남을 이번 연재를 통해 주선해 볼 수 있게 되길 간절히 바라본다. ◆염색부터 유통까지 ‘원스톱서비스’명동과 더불어 대한민국 패션 일번지로 일컬어지는 동대문이 최근 ‘패션 클러스터’로의 도약을 꾀하고 있다. 국내 고도화된 IT 기술력을 패션과 융합한다는 것인데 일감을 공동수주하고 생산하는 원스톱 네트워크 구축이 바로 그것이다.원리는 이렇다. 개별 니즈에 따른 주문 완료 시 원단 수급서부터 디자인에 이르는 생산 전 과정을 하루 내 완성해 낸다는 이른바 ‘IT 패션 모멘텀’. 여기에는 염색, 원사, 유통까지 아우를 수 있는 국내 기술력이 십분 투영된다. 이 같은 환경이 자리 잡을 수 있다면 20%에 가까운 비용 절감 효과와 수출경쟁력 제고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유수의 IT업체와 패션업계의 융합도 활발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5G 패션 스마트팩토리’의 이름으로 기존 천편일률적 작업환경 타파를 통한 생산성 제고에 방점을 찍는다. 여기에는 AI와 빅데이터의 기반으로, 생산 시 효율성 극대화와 실시간 유행 예측을 영위, 소비자로 하여금 취사 선택간 혁신과 편의의 장을 제공하는데 그 의의를 둔다.이를 위해선 5G 지능형 로봇 개발과 네트워크 환경 구축, IT 관련 인프라 구축 및 빅데이터를 활용한 개별로의 트렌드 분석, 스마트팩토리를 근간으로 한 패션업계 전반으로의 AI 기술 접목이 필수 불가결한 요소로 꼽힌다.이 밖에도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을 기반으로 개별의 머리모양을 선 확인할 수 있는 헤어 스타일링 체험 서비스와 AR 기반의 주얼리 체험, 취향에 맞는 패션 선택을 용이케 하는 의류 디자인 프로그램 등이 상용화를 위한 마지막 담금질에 매진하고 있다.AI와 사람의 콜라보도 적지 않은 기대를 모으고 있다. 미국의 한 패션업체에서는 알고리즘과 패션 담당자와의 융합을 통해 소비자로 하여금 맞춤형 옷과 액세서리 등을 추천, 원스톱으로 배송하는 시스템이 최근 각광을 받고 있다.현재 300여만 명의 고객 유치에 성공한 이 업체는 지난해에만 1조5천억 원에 이르는 매출 신장을 기록하는 등 패션과 IT 연계산업의 성공모델로 자리 잡고 있다. ◆몸에 IT를 입어보자패션과 IT의 만남은 스마트의 이름을 딴 ‘스마트 웨어’로의 등장을 예고했다. 신변잡기와 환경에 따른 ‘적절한 패션 창출’, 이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복안이 바로 그 것이다. 특히 미세먼지의 범람으로 외출에 소극적인 소비자들로 하여금 의류에 스마트 모듈을 장착, 장착된 모듈과 스마트폰의 연계를 통해 휴대폰 앱으로 현재의 미제먼지 농도와 그에 따른 갖가지 대처상식 등을 제공한다는 목표다.레저에 최적화된 의류도 IT의 시류를 피해갈 수 없다. 자동 발열 기능을 의류에 부착, 레저 환경에 따라 자유로이 온도를 제어할 수 있어 공간 제약을 최소화한다. 세탁도 기존 의류와 같은 물세탁 등이 자유로운 것으로 알려진다.패션과 크라우드 펀딩의 만남도 꽤나 흥미롭다. 고객과 브랜드는 개별이 아닌 ‘상생’의 모토를 둔 이른바 ‘윈윈 전략’을 전면에 내세운다. 브랜드 입장에서는 펀딩의 성패에 의거, 수용예측이 가능해져 예기치 못한 재고 생성 등의 갖가지 리스크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또 소비자는 브랜드 자체로의 이미 걸러진 양질의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양쪽 모두에게 이득이라는 평가.방식은 의외로 간단하다. 소비자에게 브랜드 디자인을 미리 공개한 후 정해진 기간으로 목표 금액이 기간 내 채워질 시, 생산과 유통에 따른 유용 자금을 확보·제작에 들어가는 방식이다. 금액 충전은 오롯이 고객의 니즈에 의거해 이뤄진 만큼 그만큼의 실패확률은 낮아지는 셈이다.남성정장과 AI의 만남은 이질적이다?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정장에 삽입된 근거리 무선통신(NFC) 태그가 스마트폰과 연동, 정장에 스마트폰을 태그하기만 하면 각종 서비스를 영위할 수 있는 제품이 최근 등장했다.정장을 입은 회사원들은 더이상 명함을 찾아 안 주머니 이곳저곳을 뒤질 필요가 사라진다.정장 주머니에 스마트폰을 태그하면 문자를 통해 원하는 상대방에게 자신의 명함을 전송할 수 있는 기술, 결코 먼 나라 얘기가 아니다.이제는 위풍당당한 발걸음으로 런웨이 곳곳을 누비는 모델에게 눈길을 뺏기기 전, 한 번쯤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모델의 의상이 디자이너의 손길로 탄생한 옷인지 3D 프린터로 만들어진 의상인지 말이다.패션산업과 IT의 접목을 단순 열풍으로 치부해선 안 된다. 시나브로 발전해 온 필수불가결한 상생의 요건이라는 것. 기본 아이템 개발을 넘어 생산, 유통, 홍보에 이르기까지 패션과 IT의 접목이라 함은 시의를 내포한 주요 사업수단으로 대두되고 있는 오늘이자 내일이라는 것이다. ◆이제 섬유도 부가가치 상품사실 여타 분야에 비해 패션산업은 AI의 영향력이 협소하다. 그만큼 사람의 손을 타야 할 ‘노동집약적’ 산업군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체된 섬유산업에 AI를 접목해야 할 당위는 분명하다. 다름 아닌 ‘최선의 부가가치 창출’을 위함이다.오롯이 디자이너의 손길이 닿아야 할 제품생성 이면에 디자이너의 경험이 축적된 인고의 과정을 빅데이터를 통해 수집하는 과정, 번뜩이는 영감과 경험 등을 AI가 일정 부분 대체·수집함에 따라 효율성 제고에 나선다는 것이다.별 다른 이유가 아니다. 기능적 측면이나 실시간 이뤄져야 할 유행분석은 AI가 더욱 신속하고 섬세하다. 물론 인간 고유의 영역은 어찌할 수 없다 손 치더라도 인공지능과 패션은 충분히 ‘상호보완적’ 관계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방증이다.AI를 통해 ‘유통의 간소화’를 꾀해야 한다. 클러스터라는 전제로 양질의 인력이 분포돼 있는 지역 섬유업계의 성장 가능성을 이끌어내야 함이 마땅하다. 초연결, 초융합의 네트워크 구축이 가미된다면 부가가치 창출이란 동기는 빛을 발할 것이 자명하다.그 옛날, 우리가 배우고 접한 교과서 곳곳에 ‘대구는 섬유도시’로 명명했던 당시를 그리워만 해선 안 된다. 유행은 돌고 인생 역시도 돌고 돈다고 했던가. 대구의 섬유산업은 분명 찬란한 부흥을 맞이했었고 처절한 쇠퇴를 하릴없이 수용해야만 했다. 이제는 부흥의 시대로 돌아와야 할 때다. 물론 AI와 더불어 말이다. 글·사진 군월드 IT사업팀김종윤 기자 kjyun@idaegu.com

국민건강보험 Q&A

Q=이달에 확대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을 알려주세요. A=눈·귀·코·안면 등 두경부 자기공명영상법(MRI)검사가 이달 1일부터 건강보험이 적용됐습니다.두경부 부위에 질환이 있거나 질환이 의심돼 의사가 MRI검사로 정밀 진단을 해야 한다고 판단한 경우에 건강보험이 적용됩니다.환자의 의료비 부담은 평균 16만~26만 원(측두골조영제 MRI 기준)으로 기존 의료비의 3분의 1수준으로 낮아졌습니다. 하반기에는 복부와 흉부 MRI검사에도 보험이 적용될 예정입니다. Q=가입자와 동거하는 시부모를 피부양자로 취득하는 경우 가입자의 남편이 보수 또는 소득이 있는 경우에도 피부양자 취득이 가능한지요?A=가입자의 시부모는 피부양자로 취득할 수 있습니다. 가입자는 근로소득자이고 남편은 사업소득자이지만 시부모가 남편 일방에 의해 부양을 받는다고 볼 수 없으므로 아들이 사업소득이 있더라도 며느리의 피부양자가 될 수 있습니다. 자료제공=국민건강보험공단 대구지역본부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여성메디파크 여준규 원장과 알아보는 난소종양

생리를 시작한 모든 여성은 신체적 변화와 정신적 변화 뿐만아니라 진정한 여성으로서의 아름다움을 갖추게 된다. 하지만 이 시기부터 여성 질환이 발생한다.10대부터 50대까지 가장 흔한 난소종양. 흔히 암으로 통하는 악성종양은 제외하고 난소의 양성종양에 대해 알아보자.10대와 20대, 30대에서는 난소종양이 흔히 발생하며 종류도 매우 많다.10~20대에 가장 흔한 종양에는 단순 난소낭종, 기형종, 자궁내막종이 있다. 30~40대에는 고형종, 점액종, 장액종 등이 있으며 이 밖에는 수많은 양성종양이 있다.생리가 일정한 여성의 종양은 통상 1~2개월에 평균 1㎝ 정도 자란다.증상도 종양의 종류에 따라 워낙 다양하며 개인차도 커서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경우도 허다하다.흔히 ‘물혹’으로 말하는 단순낭종인 경우 증상이 없다면 크기가 6~8㎝ 이하일 때 자연적으로 소멸될 수도 있다.하지만 이 밖에 종양은 크기와 증상 여부와 관계없이 결국에는 수술적 치료를 해야 한다.그래서 조기진단과 조기 치료가 중요하다. 종양을 성질을 파악하는 혈액검사를 필수적으로 하고 추적관찰을 하는 것이 올바른 치료법이다.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크기와 종류에 상관없이 복강경을 통해 개복과 난소 절제 없이 종양만 제거하고 난소를 성형 복원하는 것이다.난소 절제를 권하는 의사들도 있는데 고형종과 난소암이 의심되거나 확진된 경우를 제외하면 난소를 원형 그대로 보존할 수 있다.특히 10~50세 이전에는 난소 보존이 필수적이다.48세 이후에는 재발 방지를 위해 완전 제거를 고려할 수도 있다. 난소종양은 자궁종양과 달리 수술적 치료가 유일한 치료법이다.복강경 시술을 하면 1㎝ 이하의 수술 자국이 남아 얼마든지 비키니 수영복도 입을 수 있다.난소종양 크기 20~30㎝ 이상이더라도 개복하지 않고 난소 절제 없이 시술할 수 있다.담당 의사가 개복수술을 권하거나 난소 완전절제를 권한다면 해당 의사의 복강경 수술에 대한 실력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복강경 수술의 장점은 빠른 회복이다. 수술 후 2주가 지나면 과격한 활동도 가능하다.여러 번 개복수술의 경험이 있는 환자는 장기유착증의 위험이 크지만 이 때문에 개복수술을 반드시 선택할 필요는 없다.의료진의 수술 능력에 따라 복강경으로 좋은 치료 효과를 낼 수 있다.다만 장 유착 또는 방광 유착, 요관 유착이라면 수술을 위해 불가피하게 유착박리술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때 역시 복강경이나 개복과는 상관없이 부작용과 합병증이 똑같이 일어날 수 있다.개복수술을 했을 때 부작용이 적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무좀 생기기 쉬운 여름…빙초산 바르는 민간요법 위험해요”

-오라클피부과 대구점 이성우 원장 봄의 정취를 마음껏 즐길 여유도 없이 습도와 기온이 높아지는 여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여름철은 곰팡이가 서식하기 좋은 고온·다습한 환경이므로 무좀도 더 빈번히 발생한다.또 날씨가 점점 더워지면 옷차림이 간편해지고 샌들이나 슬리퍼를 신는 경우가 많아진다. 하지만 무좀으로 인해 발에 각질이 생기거나 발톱에 변성이 생기면 발을 드러내기가 민망해진다.손발톱 무좀은 어떻게 치료해야 할까? 손발톱 무좀은 곰팡이에 의한 피부 감염증으로 전체 피부 곰팡이 감염의 46%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또 손발톱 이상 질환의 15~40%나 될 만큼 가장 흔한 손발톱 질환이기도 하다.원인균으로는 Trichopyton rubrum이 가장 흔하다.손발톱의 △색깔 변화 △두꺼워짐 △쉽게 부스러짐 △손발톱 박리증 등을 동반한다. 때로는 통증, 보행장애, 이차 세균감염 등을 유발해 일상생활에서 큰 불편을 줄 수 있다.특히 노인 인구가 늘어나고 당뇨 등의 만성질환 증가하고 면역 억제제의 사용으로 점차 환자 수는 증가하는 추세다.하지만 약물 침투가 어려운 손발톱의 해부학적 특성과 다양한 원인균, 환자 특성(고령 등), 장기간의 치료 기간, 전신 약물 치료 부작용, 약물 상호작용 및 약물투여 금기증 등 여러가지 요인으로 손발톱 무좀의 치료가 쉽지 않다.따라서 여러가지 특수성을 고려해 환자마다 맞춤치료가 중요하다.손발톱 무좀 치료는 크게 약물 치료와 비약물 치료로 구분한다.가장 기본적인 일차 치료법은 전신 항진균제 복용으로 터비나핀, 이트라코나졸, 플루코나졸 등의 약물을 장기간 복용하는 방법이 있다.하지만 증상이 경미한 경우나 전신 약물 부작용이 우려되면 에피코나졸, 아모롤핀, 시클로피록스 등의 약을 발톱에 바르는 국소 항진균제를 사용하기도 한다.이외에도 보조 치료로 감염된 손발톱을 뽑는 손발톱 제거술을 선택하기도 한다.최근 경구 항진균제 복용이 불가능하거나 약물 치료를 선호하지 않은 환자에서 비교적 안전한 치료로 손발톱 무좀 레이저 치료를 시술하는 추세다.여러가지 요건을 고려해 자신에게 맞는 치료를 선택해서 치료받는 것이 바람직하다.민간요법으로 빙초산과 목초액 같은 화학약품을 사용해 자가 치료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은 부작용 위험이 높은 만큼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손발톱 무좀은 가족력과 당뇨 등의 동반 질환, 면역억제제의 사용, 손발 무좀 등 여러가지 요인에 의해 재발률이 20~50%에 달한다.재발방지를 위한 수칙을 지킨다면 예방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1. 손발을 항상 깨끗하고 건조하게 관리한다.2. 신발은 자주 갈아 신고 신발 안이 축축해지지 않도록 한다.3. 손톱깎이 등 손발톱 관리 도구를 다른 사람과 함께 사용하지 않는다.4. 손발톱을 깎을 때 상처가 나지 않도록 한다.5. 공동으로 사용하는 공간에서는 가급적 개인 신발과 양말을 신는다.6. 손발톱무좀에 걸렸다면 발수건과 슬리퍼, 욕실매트 등은 가족과 같이 쓰지 않는다.7. 손발톱 무좀 증상이 의심되면 즉시 피부과 전문의를 찾아 초기에 치료해야 한다.손발톱 무좀은 단기간에 치료되지 않아 치료를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손발톱 무좀은 완치 가능한 질환이라는 점을 명심하고 피부과 전문의와 상담해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이 손발톰 무좀 완치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다. 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우리동네 자랑-울릉군 <2>서면

울릉도의 서남쪽에 있는 서면은 산악 지형과 해변 평지의 특성이 조화롭게 형성된 지역이다. 울릉군 전체면적 72.87㎦ 중 서면의 면적은 27.19㎦이다. 밭이 3.33㎦, 논이 0.20㎦, 임야 21.96㎦ 등으로 이루어져 울릉 지역 읍·면 중 가장 넓다. 주요 행정구역으로는 남양 1리, 2리, 3리와 남서 1리, 2리 그리고 태하1, 2리가 있다. 인구는 서면 1천24명과 서면 태하출장소 506명을 합쳐 총 1천530명이다. 울릉군 전체인구의 15% 정도인 셈이다. 문화 유적은 남서동 고분군, 태하리 광서명 각석문, 성하신당, 솔송·섬잣·너도밤나무 군락지와 대풍감 향나무 자생지, 통구미 향나무 자생지 등이 있다. 관광지는 거북바위, 사자바위, 남양몽돌해변, 남근바위, 대풍감, 만물상, 황토굴, 투구봉, 비파산 등이 있다. --------------------------------------------------------------------------------------------1. 울릉 수토역사전시관울릉 수토역사전시관은 울릉도와 독도를 지켜온 조선의 기록과 자료를 전시하는 공간이다. 조선은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울릉도를 ‘수토’라는 특별한 제도를 통해 관리 해 왔다. 수토역사는 조선이 울릉도와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였음을 알리는 증거다. 관람을 통해 역사속의 영토수호 과정을 알고 선조들의 의지와 노력을 느껴보자. 2. 태하향목 관광모노레일전국 최고의 아름다운 비경을 간직한 태하향목의 관광명소를 편안하게 감상 할 수 있도록 관광모노레일 시설을 만들었다. 모노레일 재원은 총연장 304m의 레일에 20인승 2대가 동시 운행한다. 분당 50m의 속도로 산정까지 약 6분이 소요되고 최대 등판각도가 39도나 된다. 3. 대풍감서면 태하리 북서쪽 해변 바다 끝에 위치한 바위산이다.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한국관광 100선에 꼽히는 명소다. 돛을 높이 달고 바위구멍에 닻줄을 매어 놓고 본토쪽으로 불어대는 세찬바람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해서 기다릴 대(待)자를 써서 대풍감으로 명명했다. 1962년 12월3일 대풍감 향나무 자생지(천연기념물 49호)로 지정됐다. 4. 학포마을 왼편에 바다로 침강하는 곳에 암벽으로 만들어진 기묘한 형상의 ‘만물상’이 있다. 이곳에 학이 앉아있는 모양의 바위가 있어서 ‘학포’라고 한다. 학포는 태하보다 규모가 작고, 황토가 많아 ‘소 황토구미’라고 불린다. 가을이 되면 해질무렵 이곳에서 우리나라 백두대간의 그 위엄한 큰 능선을 육안으로 볼 수 있다. 울릉에서 최근거리는 울진군 죽변항으로 약 130km 정도다. 5. 남양마을비파산을 사이에 두고 양쪽 골짜기와 냇물이 흘러내리고 있으며, 서쪽을 남서마을 동쪽을 남양마을 이라고 부른다. 다른 마을보다 골짜기와 시내가 많다고 하여 예전에는 ‘골계’라고 불렀다. 지금은 울릉도에서 가장 따뜻한 남쪽이란 뜻으로 ‘남양’이라 한다. 겨울에 눈이 내리면 가장 빨리 녹는 지역이다. 6. 통구미 거북바위거북바위가 있는 곳은 지형이 양쪽으로 산이 높이 솟아 있고, 골짜기가 깊고 좁아 통처럼 생겼다하여 ‘통구미’(通桶尾)라 부르기도 하며, 거북모양의 바위가 마을을 향해 기어가는 듯한 모양을 하고 있어 통구미(通龜尾)라 부른다. 이 거북바위에는 바위 위로 올라가는 형상의 거북이와 내려가는 거북이가 보는 방향에 따라 6~9마리 정도 있다. 7. 태하등대모노레일카를 이용하거나 황토굴 위쪽의 산길을 따라 40분 정도 부지런히 걸어 올라가면 , 울릉도항로표지관리소(태하등대)에 갈수 있다. 등대 가는 길에는 50년 이상되는 해송 나무 숲, 해국이 길가에 있다. 특히 해국이 필 때면, 그꽃에 매료되어 쉬어가지 않고는 등대에 오를 수가 없다. 8. 성하신당울릉도 사람들이 배를 새로 만들어 바다에 띄울 때 반드시 와서 빈다는 곳이다. 매년 음력 3월1일에 정기적으로 제사를 지내며 풍어, 풍년을 기원하고, 해상작업의 안전과 사업의 번창을 기원한다. 이곳은 조선 태종 때 안무사 김인우와 관련된 동남동녀의 전설이 내려오는 곳이기도 하다. 9. 태하 황토굴태하는 원래 황토가 많이 났다고 해서 ‘황토구미’라고 부르는 마을이다. 조선시대에는 이곳의 황토가 나라에 상납까지 됐다. 조정에서는 3년에 한 번씩 삼척 영장을 울릉도에 순찰보냈는데, 그 순찰 여부를 알기 위해서 이 곳의 황토와 향나무를 바치게 했다고도 한다. 10. 버섯바위바위의 모양이 꼭 버섯을 닮아 버섯바위라 불린다. 주로 사막에서 잘 관찰되는 암석의 형태로 미암괴 또는 받침돌이라고 한다. 바람을 맞은 모래와 먼지가 수천 년에 걸쳐 암석의 아랫부분을 더 깎고 마모시켜 윗부분보다 더 가늘게 만들어 버섯 같은 모양을 형성한다. 11. 사자바위신라왕은 우산국을 토벌하기 위해 강릉군주 이사부를 보냈다. 신라군은 군선의 뱃머리에 목(木)사자를 싣고 몰살시키겠다고 하자, 우산국의 우해왕은 투구를 벗고 신라의 이사부에게 항복했다. 우산국은 멸망했지만 전설은 남아 그때의 목사자가 사자바위로, 우해왕이 벗어 놓은 투구가 지금의 투구봉이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12. 국민여가캠핑장울릉군 서면 울릉순환로 1580에 위치한 국민여가캠핑장은 생활관 1동, 방갈로 2동, 카라반 2대, 캠핑데크 7개로 이루어진 아담한 캠핑장이다. 울릉군에서 시설관리를 하는 지자체 캠핑장이다. 이용은 한달 전에 유선으로만 예약( 054-791-6781) 가능하다. 이재훈 기자 ljh@idaegu.com

정월보름 ‘까마귀의 제삿날’ 그 시작은 연못의 편지로부터

사금갑(射琴匣)은 ‘거문고집을 쏘라’고 풀이되는 서출지에서 사건이 전개되는 삼국유사의 냄새가 가장 짙은 신화 같은 이야기다. 서출지는 경주 남산의 동쪽 가운데에 있는 작은 연못이다. 지금도 사적지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경관이 뛰어나 많은 사람들이 찾는 문화유적이다. ‘사금갑’은 쥐와 까치가 사람처럼 말을 하고, 돼지가 서로 싸우고, 연못에서 신선이 나오는 등의 동화 같은 이야기다. 당시 시대 상황을 여러 각도로 추측하게 하는 신기하고 재미있는 글이다. 학자들의 분석이 다양하게 보고되고 있는 글이기도 하다. 서출지 남쪽에는 신라사람들이 다 들을 수 있게 아미타불을 염불하던 스님이 있었다는 염불사터에 동서 쌍탑으로 삼층석탑이 복원돼 있다. 임금을 구한 편지가 출토되었던 연못과 신비스런 스님이 있었다던 염불사지로 가본다. 그리고 소지왕의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이력을 추측해 새로 삼국유사를 써본다. ◆삼국유사 사금갑-거문고집을 쏘라-제21대 비처왕(소지왕이라고도 한다)이 즉위한 지 10년 되는 무진(488)에 천천정에 행차했다. 이때 까마귀와 쥐가 와서 울더니 쥐가 사람의 말로 이야기하기를 “이 까마귀가 가는 곳을 찾아가소서”라 했다.(혹은 말하기를 신덕왕이 흥륜사에 예불하러 가려는데 길에서 여러 마리의 쥐들이 꼬리를 서로 물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것을 괴상히 여겨 돌아와 점을 쳐보니 ‘내일 먼저 우는 까마귀를 찾아보라’ 등등의 이야기가 있지만, 이것은 틀린 말이다.) 왕이 말을 탄 무사에게 명령하여 뒤따르게 했다. 남쪽으로 피촌(지금의 양피사촌으로 남산 동쪽 기슭에 있다.)에 도착했을 때 돼지 두 마리가 서로 싸우고 있었다. 주저주저하며 그것을 보다가 그만 까마귀가 간 곳을 놓쳐버리고 길가에서 배회하고 있었다. 이때 노인이 못에서 나와 편지를 주었다. 겉봉에 ‘떼어보면 두 사람이 죽을 것이고, 떼어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는다’고 쓰여 있었다. 무사가 와서 그것을 바치니 왕이 말하기를 “두 사람이 죽는 것보다 차라리 떼지 않고 단 한 사람이 죽는 것이 낫겠다”라 했다. 일관(길일을 가리는 일을 맡아보는 벼슬아치)이 말씀드리기를 “두 사람이란 것은 일반 백성이요, 한 사람이란 것은 왕입니다”라 하자 왕도 그렇게 여겨 편지를 떼어 보았다. 그 편지 속에 사금갑(射琴匣: 거문고 집을 쏘라)이라고 쓰여 있었다. 왕이 궁에 들어가 거문고집을 보고 활을 쏘았다. 그 속에는 내전에서 분향 수도하는 중과 궁주(왕비)가 은밀하게 사귀면서 간통하고 있었기에 두 사람을 처형했다. 이로부터 나라의 풍속에 매년 정월 첫 돼지 날과 첫 쥐 날과 첫 말의 날에는 모든 일에 조심하고 삼가서 함부로 움직이지 아니했다. 정월 보름을 ‘까마귀의 제삿날’이라 하여 찰밥으로 제를 지냈으니, 지금까지도 행해지고 있다. 세속의 말로 ‘달도’라고 하니, 슬퍼하고 근심하여 모든 일을 금하고 꺼린다는 뜻이다. 편지가 나온 못을 서출지로 이름을 붙였다. ◆흔적: 서출지△이요당: 이요당은 서출지 서편에 한쪽은 저수지 안쪽으로 쑥 들어와 있고, 한쪽은 저수지 둑과 연결된 도로에 접해 있는 조선시대 건축된 정자다. 동남향으로 ‘ㄱ’ 모양의 순수 한옥형 정자로 지어져 자못 풍류가 느껴진다. ‘지자요수知者樂水요 인자요산仁者樂山’이라는 말과 함께 이요당은 지혜로움과 덕이 넘치는 인품을 두루 갖춘 선비의 풍모를 닮아 반은 물 위에 떠 있고, 반은 땅에 연접해 지어 선비들이 여름에도 시원하게 글을 읽었던 곳이다. 건물 이름 이요당도 요산요수에서 취했다. 조선시대 현종 5년에 임적이라는 사람이 지었다. 처음에는 3칸 규모였으나, 다섯 차례의 중수를 거쳐 지금은 정면 4칸, 측면 2칸 팔작지붕으로 고풍을 연출하고 있다. 임적은 가뭄이 심할 때는 물줄기를 찾아 이웃 마을까지 물이 부족하지 않도록 도왔고, 가난한 사람들을 많이 도와 덕망이 높았다. 남쪽 양피못 언덕에는 임적의 아우 임극이 지은 산수당이 있다. 한때 양피못을 진짜 서출지라고 주장하는 설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현재 서출지가 진짜 서출지라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서출지는 동남산 통일전 남쪽에 연접해 있는 부지면적 7천㎡ 규모의 아담한 연못이다. 신라시대부터 전해오는 전설이 깃든 연못으로 지금도 이요당 정자와 함께 향나무와 소나무, 백일홍이 어우러지고, 못 가운데는 연꽃이 가득해 연인들의 산책코스로 인기다. 경주시는 서출지 제방 둘레에 조명등을 설치해 밤에 오히려 신비스런 분위기를 연출해 찾는 발길이 늘어나고 있다. 신라 소지왕 때에 연못에서 신선이 편지를 들고 나타나 왕의 목숨을 구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으며, 역사문화 탐방객들의 필수코스로 손꼽힌다. 또 서출지에서 비롯된 정월 대보름 제사와 찰밥 풍습은 지금까지도 민족 고유의 풍습으로 전해지고 있다. 서출지는 국가에서 사적 138호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염불사지 삼층석탑은 서출지에서 약 1㎞ 거리에 염불사가 있었다고 전해지는 곳에 동서 쌍탑으로 복원돼 있다. 삼국유사에는 ‘피리사’라는 절에 신비스런 승려가 항상 아미타불을 염불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스님이 입적한 이후에 피리사를 ‘염불사’로 고쳐 부르고 있다. 염불사지 삼층석탑은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2003년과 2008년 두 차례에 걸쳐 발굴조사를 하고, 2009년 1월 동서 쌍탑으로 삼층석탑을 복원했다. 이때 인도에서 가져온 사리를 복원공사내역과 함께 매립했다. 염불사지에는 이거사 터에서 옮겨온 석탑 부재들이 쌓여 있다. ◆다시 쓰는 삼국유사: 소지왕의 위기소지왕은 479년에 아버지 자비왕의 뒤를 이어 신라 21대 왕위에 올랐다. 당시에는 17대 내물왕부터 실성왕, 눌지, 자비왕까지 김씨들이 왕위를 대물림하고 있었지만, 박씨와 석씨들의 권력을 향한 힘겨루기는 끈끈하게 이어지고 있어 연대하는 지혜가 필요했다. 박, 석, 김 3성의 왕권 차지를 위한 견제와 타협은 미묘한 권력 구도를 형성하면서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첨예한 대립의 각으로 맞물려 돌아가고 있었다. 김씨 왕위세습체제는 완벽하게 갖추어지지 않은 불완전한 힘으로 박씨, 석씨 등의 세력과 연합하는 전략을 동원해야 하는 시기였다. 이와 함께 육부촌장들의 힘겨루기와 백제, 고구려의 침략은 정권을 유지하는데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하면서 소지왕의 의지를 지치게 했다. 소지왕은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불교에 상당히 심취했다. 이름도 아버지는 자비왕, 자신은 스스로 부처를 뜻하는 ‘비처’라고 부르기도 했다. 신라의 불교는 왕실을 비롯해 귀족층에서부터 시작해 백성들에게로 전파되는 형식으로 뿌리를 내렸다. 소지왕은 초창기에 백성들을 많이 사랑했던 왕으로 칭송을 들었다. 가뭄에 백성들을 위해 창고를 열어 곡식을 나누어주고, 지방을 돌아다니며 백성들을 직접 보살피기도 했다. 사방에 우편 역을 설치하고, 도로를 고치고, 시장을 열어 백성들의 생활에 도움을 주려 했다. 계속되는 고구려의 침략에 대비해 월성 주변에 해자를 설치하는 한편, 백제와 결혼동맹을 맺고 고구려를 견제했다. 외세 침략에 대비하면서 소지왕은 내부에서 일어나는 정적들의 반란에 제대로 견제의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소지왕은 고구려 등의 침략에 대비해 월성의 성벽을 튼튼하게 하고, 해자를 보강하는 공사를 단행했다. 외부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공사 기간 동안 소지왕은 명활산성을 궁으로 사용했다. 다시 월성으로 돌아오는 시기에 맞춰 정적들의 공격을 받았다. 왕권을 노리는 정적들의 공격을 여러 번 받으며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이번이 가장 강력했다. 이때가 왕위에 오른 지 10년 되었을 때다. 후궁으로 들어온 선혜부인이 신궁의 승려 묘심과 내통하고, 궁궐과 외부를 잇는 세력을 키워 소지왕을 제거하고 새로운 왕을 옹립할 계획을 꾸몄다. 소지왕은 반란세력의 기미를 사전에 정보를 입수해 가까스로 반란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진압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반란세력은 완전히 제거되지 않고 숨죽이며 다시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소지왕은 내부적인 정적들의 도전에 직면해 김씨 일족과 박, 석씨 세력의 도움으로 겨우 왕권을 유지하면서 정치싸움에 환멸을 느껴 점점 환락에 빠져들었다. 소지왕은 집권 하반기에 접어들면서 막연한 종교적인 힘에 의존하는 한편, 여성 편력으로 내부적 갈등을 이겨내지 못하고 실권해 죽임을 당했다. 소지왕의 여성 편력을 이용해 반란세력들은 미모가 뛰어난 벽화를 왕에게 소개했다. 처음에는 거부하며 정치에 몰입하려 애를 썼지만, 벽화의 조직적이고 개략적인 유혹에 소지왕은 이성의 끈을 놓아버렸다. 결국 소지왕은 반란세력의 힘에 밀려 왕좌에서 내려와야 했고, 죽음으로 모든 권력을 놓아야 했다. 소지왕을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고 신라 22대 왕좌에 오른 사람이 지증왕이다. 힘으로 왕좌를 빼앗은 지증왕은 3년여 동안 갈문왕으로 있으면서 왕위에 올라야 하는 당위성을 주장하며 서서히 자리를 잡았다. 64세에 왕의 권좌에 오른 지증왕은 왕권 강화를 위한 정책과 울릉도 영토회복 등의 활약을 하면서 15년 간의 제왕으로 군림했다. ‘신라’라는 국호도 지증왕이 처음 사용했다. 지증왕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호에서 계속 이어간다.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대형병원 응급실 과밀화 해소로 양질의 응급의료

대구의 대형병원 응급실은 늘 북새통이다.환자들이 조금만 아파도 대형병원을 찾는 데다 지역 특성상 경북과 경남의 환자도 대구의 대형병원으로 몰려들기 때문이다.대형 응급실에는 촌각을 다투는 응급 환자만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응급실을 찾은 대부분 환자는 의료진의 중증도 분류에 따르면 비응급에 해당한다.응급실을 찾은 비응급 환자로 응급실이 과포화 상태가 되고 그만큼 의료자원의 소모도 커진다.하지만 환자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환자들은 자신의 증상이 응급인지 아닌지 정확히 구분할 의료지식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점도 이유다.또 심각한 증상으로 판단했지만 실제로는 경증인 경우도 있고 그 반대도 있기 때문이다.◆전국 최초 지역 응급의료네트워크 구축응급실 과밀화를 해소하는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응급실에서 응급처치 후 상태가 비교적 안정되거나 꼭 대형병원에서 입원할 필요가 없는 준 응급 등의 환자라면 입원 가능한 병원으로 환자를 옮겨주는 것이다.실제로 대구지역 모든 병원의 응급실이나 입원실이 포화상태가 아니다. 대형병원이 아닌 2차 병원의 응급실에는 여전히 여유가 많다.이를 감안한 대구시는 지역 응급의료의 주요 현안 과제인 대형병원 응급실 과밀화를 해소하고 중앙정부 중심의 응급의료 정책에서 벗어나 대구시의 실정에 맞는 대응체계를 마련하기로 했다. 전국 최초로 추진한 ‘지역 응급의료네트워크 구축 사업’이다.이 사업을 통해 대형병원이 응급환자의 중증도 판별 급성기 질환을 치료한 후 입원 관찰을 해야 하지만 입원실이 없어 장시간 응급실에 지내야 하는 경우 수준을 갖춘 병실과 의료진을 확보한 협력병원으로 입원하도록 해 치료의 지속성을 확보했다.즉 대형병원의 초기 응급환자 대응능력 수준은 유지하면서 많은 환자에게 시기적절한 치료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올해 5개 대형병원(경북대병원, 계명대 동산병원, 영남대병원, 대구가톨릭대병원, 대구파티마병원)과 49개 협력병원이 이 사업에 참여해 응급실 과밀화 해소를 위해 협업하고 있다.5개 대형병원 응급실에는 환자 전원 업무를 담당하는 전담 코디네이터가 배치돼 있다.◆2차 의료기관의 전문적인 역량 높여이 사업을 통해 질환별 전문화된 진료 역량을 갖춘 협력병원으로 전원이 이뤄지고 있다. 과밀화된 대형 병원 응급실에서 대기 중인 환자들이 자신에 맞는 지역 네트워크 병원으로 분산해 신속하고 지속적인 입원치료 서비스를 제공받게 됐다.또 환자 분산만이 아닌 전원된 환자의 안전성 및 치료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는 병원 간 진료 정보망(www.dgsafenet.co.kr)도 구축해 환자 선정부터 전원과 재전원, 치료 경과 보고체계 및 치료 종결까지의 추적조사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대구시는 지역 응급의료네트워크 구축사업을 통해 2012년 23개소였던 협력병원을 올해 49개소로 확장하는 등 지역사회 응급의료 자원을 활용한 2차 의료기관의 전문화에 대한 지원 및 역량 강화의 계기도 마련했다.또 의료 보호 환자 등 취약계층에 대해 민간이송업체와 연계 네트워크 시스템을 통해 협력병원으로 후송되는 환자에 대한 이송료를 지원해 환자의 만족도를 높이고 있다.◆6년 새 5개 대형병원 전원 25배 증가이 같은 노력으로 5개 대형병원의 전원 의뢰 건수는 2012년 168건에서 지난해 4천233건으로 6년 만에 25배 급증했다.대형병원 응급실을 찾는 환자가 해마다 꾸준히 증가했지만 병상 포화지수(PPB)는 사업 도입 전인 2011년 1.04에서 도입 후(2017년) 0.83으로 감소했다. 또 6시간 이상 응급실에 체류한 환자 비율도 2011년 65.5%에서 2017년 25.6%로 급감했다.PPB 수치가 1.0인 경우 1년 내내 응급실 1병상당 1명의 환자가 차지하고 있다는 의미다. PPB 수치가 높으면 응급실이 과밀화된 것이다.이와 함께 지난해 대구시가 추진한 네트워크 사업을 이용한 전원환자 대상 만족도 조사 결과 76.3%가 이 사업이 과밀화 해소에 효과가 있다고, 74.8%는 대구시의 네트워크 사업을 다시 이용하고 싶다고 답했다. 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치료’가 아닌 발병 전 ‘예방’… 인공지능, 의료 패러다임 변화시킨다

한국 관광의 성지로 일컬어지는 제주도. 그럼에도 제주도 지명에 관한 유래를 아는 이는 의외로 많지 않다. 제주도는 ‘영원에 대한 욕망’을 내제한다. 중국의 진나라 황제가 영원불멸의 상징인 불로초를 찾던 중, 그의 충신인 서복이 한라산에서 약초를 구하고 서쪽으로 돌아간 일화가 ‘서귀포’의 유래로 알려져 있다.인간 불멸의 삶은 그간 공상 과학영화 속 단골 소재 중 하나였다. SF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에서는 인간의 몸을 기계로 대체, 질병과 노화가 없는 유토피아를 성사시켰다. 2005년 개봉된 영화 ‘아일랜드’는 인간 복제 기술의 접목으로 영원의 젊음과 건강을 영위하는 첨단 기술을 소재로 담았다.이렇듯 인간의 생로병사는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늙고 병들며, 종국엔 죽음을 맞이한다는 사실을 애써 거스르고자 한다. 이 같은 니즈는 자연스레 건강한 라이프 제고를 위한 의료시스템에 주목케 되는 근거로 자리 잡았다.인간의 이러한 본능은 의료IT 기술 제고에 한몫했다. 그간 공상으로만 치부됐던 일들은 시나브로 현실화 시점에 다다랐다. 빅데이터를 활용한 인공지능 기술로 환자의 질병을 진단하고, 화상카메라를 활용, 언제, 어디서든 시간과 장소의 제약을 받지 않고 진료를 받는다.스마트폰의 활용으로 24시간 자신의 신체 변화를 측정하고 질병을 조기에 예방한다.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모바일 등이 기존 의료 시스템의 고질적 임계점을 타파하고자 한다.향후 5년으로 자율주행차,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3D프린팅, IoT, 클라우드 컴퓨팅 등 5대 분야 30여 만 개에 이르는 새로운 일자리 창출이 예견되는 상황이다. 반면 AI가 인간이 하는 일을 시나브로 대체하면서, 인간이 자칫 잉여의 존재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상존한다. 하지만 이는 지성인으로서 거쳐야 할 치열한 고민의 범주일 뿐, 결코 디스토피아의 절망은 아니다.AI와 별개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창의적 아이디어나 그에 수반된 개념 창출의 능력은 인간이 인공지능을 압도한다. 위에서 언급했듯 의료와 IT의 접목은 생명존엄의 굴레서 자칫 파생 가능한 인간의 실수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알파고의 인공 신경망은 10만 개 안쪽의 뉴런을 복제 해내는 것에 그쳤지만 인간은 대뇌피질에만 약 1천억 개의 뉴런을 가지고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인간과 IT의 초연결이란 개별의 단점을 상호보완하며 최선, 아울러 최고의 결과를 도출해냄을 기대해 볼 필요가 있다.AI를 이용하는 것은 인간이다. 활용을 위한 최종 의사결정의 위치는 인간 고유의 권한이다. AI의 활용 방식에 따라 미래는 천차만별로 변화될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해보자. AI로 인한 삶의 질 제고는 응당 믿어볼 만한 가치다. ◆의료계의 AI는 예방으로 통한다.인구 고령화 시대다. 나이가 들수록 수입은 줄어들지만 평균 연령이 높아져 만성질환에 의한 의료비 부담은 급속도로 늘고 있다. 바야흐로 디지털 헬스케어라 함은 ‘선택’이 아닌 ‘필수’로의 개념 전환이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지난해 만성질환자의 45%는 60세 이상이었다. 이들의 의료비 부담은 2011년부터 2017년까지 연평균 8.1%씩 급증했다. 디지털 헬스케어가 ‘치료’ 중심의 기존 의료체계를 ‘예방’ 중심으로 변화시켜야 하는 이유다.이 같은 사회변혁의 궤를 따라 ‘스마트’의 아이덴티티를 간직한 헬스케어가 전 방위적으로 각광받고 있다. 스마트 헬스케어란 인간의 신체와 건강이 연결된 서비스와 IT가 융합된 종합 의료 서비스체계를 뜻한다. 스마트폰 앱으로 고혈압과 당뇨병 등 만성질환을 진단하고 AI를 통해 재활과 간병 등을 아우르는 것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이처럼 IT와 웨어러블 기기의 결합은 ‘건강’의 정의를 재정립하고자 했다. 다양한 웨어러블 기기와 IT 기술의 결합은 환자의 상태를 실시간 감지·예측한 후 예방을 위한 추론의 장을 펼친다.AI의 고무적 혁신은 ‘예측’과 더불어 ‘예방’의 영역이다. AI 기술력으로 인해 전통적인 의료정보에는 존재치 않는 예측·예방의 영역이 보강된 셈이다. 환자의 실시간 건강상태 변화에 대한 정보를 축적, 행동변화와 그에 따른 반응을 예측한다. 예측된 데이터로 파생 가능한 질병발발의 근원을 추적, 예방을 영위한다는 것이다.IoT와 빅데이터의 접목으로 환자의 실시간 반응과 행동양식과 등을 취합· 축적을 통해 예측, 더 나아가 예방 능력을 제고하는 일련의 과정. 이는 환자의 라이프 로그(Life-log) 정보를 지속적으로 빅데이터화함으로써 가능해진다.이중 AI 기반의 챗봇(Chatbot)을 통한 헬스케어 서비스가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챗봇 과의 대화를 통해 본인의 건강상태를 체크, 향후 호전상태를 위한 예방 및 치료법 등을 실시간으로 공유한다.챗봇은 고령화 시대, 금전적 여유가 없는 서민들에게는 단비와 같은 존재일 것으로 사료된다. ‘보편화’의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값비싼 전문 의료 인력을 챗봇으로 대체, 저렴한 비용으로 시·공간의 구애 없이 각종 진단을 영위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향후 헬스케어 챗봇에 대한 관심은 증폭할 것으로 보인다.이밖에도 당뇨, 고혈압 등의 만성질환에도 IT 기술은 혁혁한 성과를 거둘 것으로 전망된다. 질병 측정을 넘어 향후 관리 및 예방 기능이 투영된 웨어러블 기기의 대중화는 더 이상 생경해마지않는 유토피아가 아니다. ◆많은 데이터로 정확한 진단을사람이 평생동안 만들어내는 의료 데이터는 1천100테라바이트(TB·1천24기가바이트) 정도라고 한다. 한정된 인간의 능력만으로는 정확한 진단을 위한 데이트 축적이 불가능할 터. AI와의 접목, 선행돼야 함이 마땅한 과제다. 많은 양의 데이터 습득이 용이해질수록 더욱더 면밀하고 정확한 진단이 가시화되기 때문으로.방대한 의료 자료는 AI 기술 발달의 베이스로 인식된다. 의료 기록은 물론 유전자 자료나 스마트폰에서 측정한 인적 데이터 등 의료 IT는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 가고 있다.유수의 시장조사 업체에 따르면 내년 전 세계를 걸쳐 축적될 의료 데이터가 2천314엑사바이트(EB·10억7천 기가바이트)에 이른다. 2015년의 15배가 넘는 실로 경이로운 수치다.최근 AI와 신약개발의 융합도 재편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신약개발을 위해선 통상 10년의 기간과 1조 원이 넘는 비용 투자가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진다.이제는 AI의 활용으로 최적화된 개발 간 환경 조성의 시점이 머지 않았다.원리는 이렇다. AI가 의료 논문 자료들을 읽고 각종 의학 관련 세미나 및 발표 결과를 임상 데이터화한 후 단시간으로 분석한다. 분석 후에는 신약발굴을 위한 컨셉트를 정하고 해당 영역과 향후 개발에 관한 커리큘럼을 연계시킨다.이처럼 가설을 세우고 새로운 질병에 대한 신약개발 경로를 지정하는 등 AI가 인간의 역할을 대체, 비용과 시간을 현저히 낮추는 것이다.아직 걸음마 수준에 불과하지만 AI는 신약개발을 위한 유전자(DNA), 단백질, 제약 등의 연관관계를 발굴하는데도 적극 활용되고 있다. AI를 통해 각종 데이터와 논문 등을 분석·연구과정을 거친 뒤 이들의 상관관계를 측정, 신약·생약 개발에 나서고 있다. ◆헬스케어와 IT의 만남세계 유수의 시장조사기관 발표에 따르면 글로벌 헬스케어 IT 시장은 2016년에서 2022년까지 연평균 52% 성장세를 전망했다.다수의 컨설팅 기업들도 2026년 헬스케어 분야에서 AI와의 접목을 통한 비용 절감 효과를 1천500억 달러로 추산했다. 1년 기준이다.해외 선진국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헬스케어 IT 시장 선점을 위해 발 빠르게 준비해왔다.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하,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산업은 각종 규제와 이해 당사자 간의 충돌로 인해 여전히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헬스케어 분야 간 AI 인공지능 기술의 원천은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하는 ‘머신러닝’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이에 대한 본격 활용이 용이치 않다. 의료 데이터를 병원 내에서만 보유하고 한정된 인원들만 열람할 수 있는 제도상의 문제 때문으로. 헬스케어 AI 분야 간 국내 기업들이 의료 소비자들에게 맞춤형 서비스 실현을 위해서는 이와 같은 문제해결은 필수적이다.이제 첫걸음을 내딛은 헬스케어 IT 분야가 어느 정도의 속도를 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구더기 무서워 장 담그지 못하는’ 우매함의 전철을 굳이 밟을 이유가 없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시점이라고 하지 않았던가.머지않은 미래, 글로벌 IT 기업들의 대거 유입으로 대한민국의 병원과 의사를 대체할 수 있다. 초당적 자세로 관련 규제의 완화를 일궈야 할 때다. 전 방위적 지혜를 아울러 모아야 할 오늘에 이르렀다. 글·사진 군월드 IT 사업팀김종윤 기자 kjyun@idaegu.com

야트막한 언덕 위 외로이 선 ‘쾌재정’ 부끄러움 아는 선비 모습 고스란히 닮아

이른바 패스트트랙 문제로 당파싸움이 한창인 날 쾌재정을 찾았다. 여의도의 풍경은 쇠뭉치를 휘두르는 난장판이었지만, 한적한 농촌은 딴 세상처럼 평화로웠다. 모내기 철 가까운 봄날이어서 들녘은 생명의 온기로 부풀었고, 산새들은 짝을 지어 보금자리를 찾고 있었다. 자연의 여여(如如) 함에 비추어 보건대, 세속의 민낯은 참혹한 것이었다. 참혹을 넘어 민망한 것이었다. 오만과 독선과 탐욕 때문일 것이다. 권력의지의 주된 에너지원이 오만과 독선과 탐욕일 때 나쁜 정치판이 성시를 이루는 법, 작금의 여의도 살풍경이 그 대표적인 본보기일 터이다. 논밭을 일구는 농부에게, 노래하는 새들에게, 이 맑은 봄날에게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러움을 모르면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지... 마음속에 되뇌며 차를 달렸다. 내 차의 내비게이션은 이곳이 내가 찾는 그곳이라며 상주시 이안면 가장리 농로(農路)에 내리라 한다. 텅 빈 들녘 경운기 곁에 내리라 하니 황당한 일이었다. 주변에 ‘쾌재정’은 보이지 않았다. 도무지 유적이 있을 것 같지 않은 곳이었다. 밭갈이하는 농부도 그런 곳은 모른다 했고, 안내 표지판도 찾을 수 없었다. 차를 되돌려 수소문을 나섰다. 문 잠긴 경찰 지구대를 지나, 주민잔치 한마당이 열리고 있는 이안면 사무소를 거쳐, 철길 밑 굴다리를 지나, 다시 내비게이션이 데려다준 곳 또한 그곳, 그 자리였다. 교통경찰이 귀띔해준 야트막한 동산이 시치미를 떼고 나를 맞았다. 산이라기보다는 언덕에 가까운 저 숲속에 쾌재정이 있을 것이었지만, 쾌재정 입구는 보이지 않았다. 농가의 텃밭이 앞길을 가로막고, 발길 끊긴 지 오래인 듯 우거진 잡초가 뒷길을 지우고 있었다. 이끼 낀 너럭바위를 지나 흐린 옛길의 흔적을 더듬어 마침내 ‘쾌재정’(경상북도 문화재자료 581호)에 이르렀다. 위리안치된 선비처럼 남루한 모습이었다. 냇물이 동쪽으로 흘러 무지개를 드리운 것 같고, 산이 냇물에 임하여 마치 누에의 머리같이 된 곳에 정자가 있어 나는 듯하다. 이름하여 ‘쾌재정’이라. ‘동쪽으로 학가산, 서쪽으로 속리산을 바라보고, 남쪽으로 갑장산을, 북쪽으로 대승산을 바라본다. 강산이 아름다워 비단결 같도다. 그 주인은 누구인고, 채기지(蔡耆之)로다’와 같이 쾌재정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기문(記文)은 옛 시인의 허사였다. 쾌재정은 조선 초기의 문신이며, 문장가, 중종반정공신으로 인천군에 봉군되었던 난재 채수(1449-1515) 선생이 낙향하여 지은 정자이다. 그는 이곳에서 최초의 국문소설로 알려진 (설공천전)을 쓴다. 저승을 다녀온 설공찬(薛公璨)이 당시의 정치인들에 대한 염라대왕의 평을 이야기로 만든 (설공천전)은 허균의 (홍길동전) 보다 100년 앞서 쓰인 패관소설이다. 훈구대신과 신진사림의 갈등, 요즘 말로 하자면 보수 우파와 진보 좌파의 세력다툼으로 영일이 없었던 조선 중종 조의 정치적 상황이 그 배경이다. 주인공 설공찬이 들려주는 저승 이야기는 이렇다. 저승에는 남녀차별이 없어 여성이라도 능력만 있으면 높은 벼슬을 할 수 있다는 것. 이승에서 아무리 큰 권력이 있었어도 저승에서는 그 사람의 행적에 따라 벌을 받는데, 그 예로 당 태종은 사람을 많아 죽여서 지옥에 있다는 것. 아무리 임금이라도 반역을 저질렀으면 지옥에 간다는 이야기이다. 당시의 풍속에 비추어보면 가히 파격적인 내용이었다. 특히 반역에 대한 부분은 중종(中宗)이 반정(反正)으로 연산군을 몰아내고 정권을 잡은 지 얼마 안 되는 민감한 시점이었기 때문에 중종과 권신(權臣)들의 눈에 여간 거슬리는 것이 아니었다. 당연히 조정은 (설공천전) 필화사건으로 들끓었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는 아옹다옹으로 날밤을 새우나보다. 중종 3년(1508) 9월의 일이었다. “채수(蔡壽)가 (설공찬전(薛公瓚傳))을 지었는데, 내용이 모두 화복(禍福)이 윤회(輪廻)한다는 논설로, 매우 요망(妖妄)한 것이며, 중외(中外)가 현혹되어 믿고서 문자(文字)로 옮기거나 언어(諺語)로 번역하여 전파함으로써 민중을 미혹시킵니다. 부(府)에서 마땅히 행이(行移) 하여 거두어 드리겠으나, 혹 거두어들이지 않거나 뒤에 발견되면, 죄로 다스려야 합니다” 라고 사헌부가 임금에게 아뢰자, 임금은 “(설공찬전)은 내용이 요망하고 허황하니 금지함이 옳으나, 법을 따로 세울 필요는 없다. 나머지는 윤허하지 않는다” 고 하였다. 그럼에도 채수를 교수(絞首)해야 한다는 탄핵 상소가 계속되자, 그가 지은 (설공찬전)이 괴이하고 허탄한 말을 꾸며서 문자로 나타낸 것이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믿어 혹하게 하므로 ‘부정한 도로 정도를 어지럽히고 인민을 선동하여 미혹케 한 율(律)’에 의해 사헌부가 교수(絞首)로써 조율했는데, 파직만을 명한다. 이와 같이 임금은 거듭 극형이 아닌 파직을 명한다. 그러나 요망한 사설로 민심을 어지럽힌 채수를 교수형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조정의 여론은 끊이지 않았다. 그러자 9월20일 조강(朝講)에서 영사(領事) 김수동(金壽童)이 “채수(蔡壽)가 만약 스스로 요망한 말을 만들어 인심을 선동시켰다면 사형으로 단죄함이 가하지만, 다만 기양(技癢)의 시킨 바가 되어 보고 들은 대로 망령되이 지었으니, 채수를 교수로 단죄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형벌(刑罰)과 상(賞)은 중(中)을 얻도록 힘써야 합니다. 만약 이 사람이 죽어야 한다면, (태평광기), (전등신화) 같은 유(類)를 지은 자도 모조리 베어야 하겠습니까?” 라고 채수를 두둔한다. 임금은 “(설공찬전)은 윤회화복의 설(說)을 만들어 어리석은 백성을 미혹케 하였으니, 채수에게 죄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교수함은 과하므로 참작해서 파직한 것이다”라는 설명으로 필화사건을 매듭짓는다. 배타적 이념과 진영의 치킨게임으로 ‘궤멸’, ‘청산’과 등과 같은 섬뜩한 말들이 흉흉한 작금 사정에 비추어 볼 때, 어느 한 쪽에 휘둘리지 않는 임금의 자세는 돋보이는 바 있다. 중종실록에 실려 있는 선생의 (졸기·卒記)는 선생의 사람됨을 이렇게 적고 있다. 채수는 사람됨이 영리하며 글을 널리 보고 기억을 잘하여 젊어서부터 문예(文藝)로 이름을 드러냈고, 성종조에서는 폐비의 과실을 극진히 간하여 간쟁하는 신하의 기풍이 있었다. 그러나 성품이 조급하며 허망하여서 하는 일이 거칠고 경솔하였으며, 늘 시주(詩酒)와 음률(音律)을 가지고 스스로 즐겼다. 일찍이 설공찬전(薛公瓚傳)을 지었는데, 떳떳하지 않은 말이 많기 때문에 사림(士林)이 부족하게 여겼다. 사림의 평가가 어떠하든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선생은 최소한 부끄러움을 아는 선비였다는 사실이다. 중종반정(中宗反正)에 가담한 공로로 인천군(仁川君)에 봉군되는 과정과 경위가 그것을 말해준다. 따르지 않을 때는 목을 베어 오라는 엄명과 함께 거사 주도한 박원종은 수하를 시켜 선생을 반정에 동참시키게 한다. 저간 사정을 알게 된 선생의 사위 김감(金勘)은 ‘장인이 올 리가 없다’는 생각에 선생을 취하도록 술을 권한다. 만취한 상태로 부축을 받아 궐기 장소에 인도된 선생은 영문도 모르는 채 반정에 참여한 공신이 되고, 분의정국공신(奮義靖國功臣) 3등의 녹훈을 받게 된다. 술기운에 떠밀려 얻게 된 공신 책봉이 선생에게는 견디기 힘든 부끄러움이었다. 염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부끄러움이 선생의 낙향을 부추긴다. 여의도 사람들이 새겨야 할 대목이다. 정쟁 없는 시절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쟁의 앞뒤 맥락에는 부끄러움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 염치가 있고 없고의 차이로 나뉘는 서로 다른 클래스가 있다. 채수 선생에게서 보듯, 부끄러움을 아는 자의 부끄러움은 후세를 경계(警戒)하는 (설공찬전)을 낳고,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보듯,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들의 저 잘난 민낯은 민생파탄의 난장판을 낳는다. 염치 있는 세상이 보고 싶은 이유이다. 강현국(시인, 사단법인 녹색문화컨텐츠개발연구원 이사장) 문정화 기자 moonjh@idaegu.com

청도, 2019 청도소싸움축제 준비로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황소들의 불꽃 튀는 대결! 힘과 힘, 기술과 기술의 대격돌!‘2019 청도소싸움축제’ 준비로 청도지역이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전국 최고의 소싸움을 자랑하는 청도소싸움축제가 16일부터 19일까지 소싸움경기장에서 열린다. 올해는 ‘함께하는 즐거움, 터지는 감동! 청도소싸움이면 충분하다!’ 라는 슬로건 아래 청도군 화양읍 삼신리 전국 유일의 소싸움 전용 돔 경기장에서 펼쳐진다. 개막일 16일부터 2일간은 체급별로 전통 민속 소싸움경기가 진행되고, 18일부터 주말 2일간은 짜릿함과 긴장감을 더하는 ‘갬블 소싸움경기’가 진행된다. 몇주 전부터 청도지역엔 전국에서 무시무시한 덩치(?)들이 몰려들고 있다. 거대한 뿔과 몸집에다 부리부리한 눈을 부라리며 쉭~ 쉭~거친 숨을 내뿜는 천하장사 같은 싸움소들이 주인과 한 몸이 돼 체력단련에 나서는 등 한판 대결을 펼칠 만반의 준비를 끝냈다. 싸움소들은 이날을 위해 일 년을 기다려 왔다. ◆소싸움은 이렇게 펼친다소싸움경기는 전국 각지에서 출전한 200여 마리 싸움소가 대백두급, 소백두급, 대태백급, 소태백급, 대한강급, 소한강급 6개 체급으로 나눠 예선을 거쳐 본선(96마리)에서 상금 1억1천220만 원을 걸고 명승부를 벌인다. 개막일인 16일 오후 2시 화려한 개막퍼포먼스와 가수들의 축하공연을 시작으로 미니 ‘Bull’ 콘서트, 화려한 비보잉쇼,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색 마술쇼, 관객과 소통하는 마임쇼, 통일 메아리악단 등 다양한 공연으로 축제분위기를 높인다. 또 어린이 관람객들을 위한 농경 문화체험(소달구지 타기, 소 여물 주기 등)과 전통놀이 체험(투호던지기, 제기차기 등), 변신 싸움소 바우 상영관·즉석 사진이벤트·펀칭 게임·썬캡 만들기·퍼즐 맞추기·감물염색 손수건 만들기 등 체험 콘텐츠가 색다른 재미를 제공된다. 이외에도 청도 우수 농·특산물 판매장과 야생화 전시회, 청도 사진동호회 사진전 등 가족이 즐길 수 있는 다채로운 부대 행사가 축제장 곳곳에서 펼쳐진다. ◆소싸움 배경소싸움은 두 소를 맞붙여 싸우게 하는 우리나라 전래 민속놀이다. 주로 경상도 지방에서 성행했지만, 강원도와 황해도, 경기도 일부 지역에서도 소싸움을 해왔다.주로 추석을 전후하여 마을이나 고을의 큰 잔치판으로 소싸움이 열렸다. 소싸움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확실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고려 말엽에 자생적으로 생겨 난 놀이, 신라와 백제가 싸워 이긴 전승기념 잔치에서 비롯됐다는 설 등이 구전되고 있다. 농경문화가 정착한 시대부터 목동들에 의해 놀이로 시작돼 점차 부락 단위 또는 씨족 단위로 규모가 커져 명예를 걸고 싸우는 시합으로 발전돼 흥겨운 놀이판으로 발생했을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소싸움의 유래농경문화와 함께 농민 간의 자연스러운 놀이의 형태로 시작한 태동기를 거쳐, 농경이 발달한 남쪽 지방을 중심으로 규모가 퍼져 부락 단위와 씨족 단위의 가세와 족세 과시의 장으로 성행함으로 발전기를 가졌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우리 민족의 협동단합을 제압하기 위해 경기 개최를 금지해 명맥만 유지해 휴식기를 거친 후, 70년대 이후 공유의 민속놀이로 자리 잡기 시작해 90년대 이후 본격적인 지역행사로 중흥기를 맞이했다. 소싸움은 소 주인 간의 겨루기이기도 하지만, 마을 간의 겨루기이기도 했다. 그래서 소싸움 터에는 많은 구경꾼이 몰리고, 자기 마을 소를 응원하기 위해 풍물을 동원하여 풍악을 울리면서 겨루기를 했다. 구경꾼들은 돈이나 술, 담배 등을 걸고 내기를 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소싸움이 이어지고 있는 곳은 청도를 비롯한 경남 진주와 창원, 김해, 창녕, 의령, 함안, 합천 대구 등 경상도에서 많이 펼쳐졌다. 이와 함께 전라북도 완주와 정읍도 소싸움의 고장이다. ◆청도 소싸움축제대부분의 지역에서는 향토축제의 부대 행사로 소싸움 대회를 개최하지만, 청도는 소싸움을 축제로 승화시켰다. 청도소싸움축제는 우리나 최초로 소싸움을 테마로 개최하는 국제적인 행사다. 특히 소싸움 축제를 위한 대규모 전용 경기장을 마련하고 있을 뿐 아니라, 소싸움 축제와 대회를 주관하는 추진위원회가 상설화돼 있다. 이와 더불어 소싸움 경기장을 관리하는 청도 공영사업 공사를 두고 있다. 청도소싸움축제는 1990년부터 친목 단체인 청도투우협회 회원들이 중심이 돼 ‘제1회 영남 소싸움대회’를 펼치면서, 매년 3·1절 기념행사로 정착해 각남면 서원천변에서 개최됐다. 1999년부터는 청도군소싸움축제추진위원회 주관으로 소싸움대회에서 소싸움축제로 변경했다.이와 함께 한·일 친선투우대회, 주한미군 로데오경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 유치로 국제적 행사로의 발돋움했다. 1999년에 문화관광부(현 문화체육관광부)지정 ‘한국의 10대 문화관광축제’로 선정됐다. 2000년에는 6차례 벌어졌던 한·일전 경기를 12차례로 확대해 토너먼트방식으로 경기를 진행했다. 한국의 대표 싸움소와 검은색의 일본 싸움소를 맞붙여 관중들의 흥미를 더했다. 2001년에는 국내 문화관광축제 사상 처음으로 관광객에게 입장료를 적용하는 등 30만여 명의 국내외 관광객이 몰려 2억 원(입장료)의 순수익을 냈다. 2002년은 축제 기간을 5일에서 9일로 연장하기도 했으며, 다양한 문화프로그램을 추가해 볼거리 풍성한 축제로 자리매김했다.특히 청도군은 소싸움경기를 관광·레저산업으로 발전시켜, 청도군 화양읍에 상설 소싸움 돔 경기장을 마련해 2011년부터는 주말마다 하루 12경기 경기를 펼치고 있다. 청도군은 청도군수배 소싸움대회 등 다양한 콘텐츠 개발 및 홍보로 신규 관람객을 유치하고, 싸움소의 경기력을 크게 끌어올려 2018년 기준 300억 이상의 매출을 기록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소싸움의 기술소싸움 초기에는 소의 크고 작음의 구분 없이 힘과 기술로 승부를 겨뤘다. 하지만, 최근에는 보다 전문화돼 싸움소를 체급별로 나눠 경기를 펼친다. 싸움소는 미련할 것이란 생각을 금물이다. 싸움소는 상상외로 다양한 기량을 연마해 실제 경기에서 주인들의 명령에 따라 화려한 기술을 보일 정도로 머리가 좋다. 소싸움의 기술은 힘겨루기를 기본으로 △정면에서 상대방의 머리를 부딪치며 공격하는 ‘머리치기’ △힘을 다해 밀어붙이는 기본 기술로 싸움소의 기초 체력과 특유의 뚝심을 필요로 하는 ‘밀치기’ △모둠치기 △빈틈을 노려 목을 밀어붙이는 ‘목치기’ △상대의 옆구리나 배를 공격하는 ‘옆치기’ △상대방 뿔어 걸어 누르거나 들어 올려 목을 꺾는 ‘뿔걸이’ △뿔을 마구 흔들어 상대의 머리와 뿔을 공격하는 ‘뿔치기’ △뿔치기 뒤에 바로 머리 치기로 이어지는 연속 공격인 ‘연타’ 외에도 △들치기 △후려치기 △목감아 돌리기 △주둥이 들치기 등 여러 가지 기술이 있다. ◆소싸움의 승패야생 동물들은 앞발이나 날카로운 이빨을 이용하여 싸움을 하지만, 소싸움은 머리와 뿔만 이용한다. 뒤에서 공격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우직한 맛이 있다. 소싸움을 짧게는 수분에서, 길게는 수십 분도 더 걸려서 승부가 난다. 싸움 도중 고개를 돌려 달아날 방향을 찾거나, 입에 허연 거품을 뿜으며 혀를 빼물고, 뒷배가 들쭉날쭉하면서 똥을 싸는 놈을 반드시 지고 만다.소싸움의 승패는 패자가 고개를 돌려 멀리 도망가는 것으로 끝난다. 이긴 소는 도망치는 소를 절대 쫓아가서 공격하지 않는다. 싸움소들의 천성이다. ◆소싸움장 사람들△싸움소 주인-싸움소를 소유, 소싸움경기시행자에게 등록한 자.△심판-소싸움경기시행자의 면허를 받아 소싸움을 관리·운영하고, 그 경기결과를 판정하는 자.△조교사 -소싸움경기시행자의 면허를 받아 싸움소를 관리하고 조련시키는 자. 김산희 기자김산희 기자 sanhee@idaegu.com

사위에 휘두른 질투의 칼날 제 왕좌를 뒤엎다

역사는 상상이다. 누구도 사실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설명할 수 없다. 지금 일어나는 사실들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설명하기 어려우니, 보지 않은 1천여 년 전의 역사에 대해서야 말할 나위도 없다. 제18대 왕인 실성왕에 대한 이야기는 삼국시대 대부분의 역사에 대한 이해와 해석의 표준으로 삼고 있는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서조차 각각 다르게 기술하고 있어 더욱 상상력을 동원하게 한다. 삼국유사는 실성왕의 죽음과 눌지왕 즉위 과정에 대해 간단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를 두고 학자들은 당시 주변 정세 등을 두고 온갖 정황을 역사적 사건과 가치 기준에 빗대어 해석하고 있다. 어차피 오래된 시간이 만든 일들에 대한 상상력을 덧대어 추정한 것에 불과해 사실여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실성왕의 죽음과 내물왕, 눌지왕으로 이어지는 왕위 계승을 중심으로 당시 권력의 이동 과정을 상상해 본다. ◆삼국유사 실성왕의희 9년 계축(413)에 평양주의(지금의 경기도 양주) 큰 다리가 완성되었다. 실성왕은 전왕(내물왕)의 태자인 눌지가 덕망이 있어 자신의 왕권을 위협함을 미워하고 꺼려서 그를 죽이려고 고구려 군사를 청하여 거짓으로 눌지를 맞이했다. 그러나 고구려 사람들은 눌지의 어진 행실이 있음을 보고, 곧 창을 뒤로 돌려 왕을 죽이고, 눌지를 왕으로 세우고 돌아갔다. ◆당시 기록 속의 왕들△내물왕: 내물왕은 미추왕에 이어 김씨로는 두 번째 신라 왕위에 올라 지속적으로 세습체제를 갖추었다. 내물왕은 16대 흘해왕이 아들 없이 죽자 왕위에 올랐다. 왕비는 미추왕의 딸로 석씨의 피를 반은 가지고 태어난 여인이다. 김씨로 왕권을 거머쥐었지만, 석씨의 세력을 등에 업은 셈이다. 그러나 내물왕 대에는 백제와 왜구의 침략이 심하여 고구려의 도움을 받아 방어하면서 그들의 간섭을 많이 받아야 했다. 당시 백제는 최고의 전성기를 맞은 근초고왕이 나라를 다스리며 왜와 가깝게 지내면서 마한을 정복하고 낙동강 유역까지 진출했다. 내물왕 때에는 가뭄과 지진도 자주 일어나 자연재해를 많이 입었다. 농사도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부족해 농사를 포기하고, 떠도는 백성들의 수도 늘어났다. 백제의 힘을 등에 업은 왜구의 침략도 잦았다. 내물왕 재위 9년에 이어, 38년에는 왜군들이 금성을 에워싸고 5일간이나 물러가지 않았다. 내물왕은 적들이 배를 타고 육지 깊숙이 들어왔기 때문에 지치기를 기다렸다가 그들이 퇴각할 때 기병을 앞세워 크게 무찔렀다. 재위 44년 399년에도 백제를 등에 업고 수도까지 침략해 온 왜군을 물리치기 위해 내물왕은 고구려 광개토왕에게 도움을 청했다. 고구려 보병과 기병 5만 명이 신라 국경지역으로 들어와 왜군과 가야군을 물리쳤다. 내물왕은 356년에 왕위에 올라 47년간 재위하다가 402년에 죽었다. 아들의 나이가 어려 고구려에 볼모로 10년간 잡혀있다 돌아온 실성왕이 왕권을 잡았다. 실성왕의 아버지는 미추왕의 동생인 대서지 이찬이고, 왕비는 미추왕의 딸 아류부인이다. 내물왕과는 동서 간이다. 그는 내물왕이 자신을 고구려에 볼모로 보낸 것에 대한 앙갚음으로 내물왕의 두 아들 복해와 미해를 고구려와 왜에 볼모로 보냈다. 고구려에는 내물왕이 보냈다는 기록도 있지만, 많은 학자가 실성왕이 두 아들을 모두 보냈다고 주장하고 있다. △눌지왕: 눌지왕은 신라 19대 왕이다. 내물왕의 아들이고, 왕비는 실성왕의 딸이다. 눌지왕은 417년에 즉위해 458년까지 41년간 왕위에 있으면서 노인들을 위로하는 잔치를 열기도 하고, 백성들에게 곡식과 비단을 나누어 주는 한편, 소가 끄는 수레를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치기도 했다. 실성왕은 내물왕이 자신을 고구려에 볼모로 보낸 것을 몹시 원망했다. 이 때문에 그가 왕위에 오르자 내물왕의 아들을 죽여 복수하려 했다. 실성왕은 그가 고구려에 있을 때 알고 지내던 사람에게 몰래 편지를 보내 내물왕의 아들인 눌지를 죽이라고 했다. 그리고는 눌지에게 고구려 사신을 마중하라고 했다. 고구려 사람들은 눌지의 사람됨을 보고 죽이지 못하고, 실성왕이 그를 죽이라고 통보한 사실을 털어놓았다. 이에 눌지는 도성으로 돌아와 실성왕을 죽이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눌지왕이 부인의 아버지인 장인 실성왕을 살해한 것이다. 삼국사기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지만, 삼국유사에는 고구려 사람들이 실성왕을 죽이고 눌지를 왕위에 오르게 했다고 적고 있다. 왕위에 오른 눌지왕은 고구려와 왜에 볼모로 가 있는 동생들을 생각하면 형으로서 도리를 다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신하들에게 동생들을 데려올 것을 당부했다. 이에 김제상(삼국사기에는 박제상)이 왕의 명을 받들어 고구려로 가서 보해를 먼저 데려오고, 왜나라에 거짓 항복해 미해를 구하고 자신은 잡혀 죽었다. 이로 인해 제상의 부인 이야기는 벌지지, 망부석, 은을암 등의 설화로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흔적△내물왕릉은 경주시 교동에 있다. 교촌마을 북쪽에 있고, 1969년 사적 제188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원형 봉토분으로 아랫부분에 자연석이 드문드문 보여 호석을 둘렀던 것으로 추정된다. 밑지름이 22m이고, 높이 5.3m이다. 평지에 목관을 두고, 그 위에 돌을 쌓아 올린 다음 흙으로 덮어 봉분을 완성하는 돌무지덧널무덤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천마총이나 황남대총과 같은 돌무지덧널무덤에 비교해 턱없이 규모가 작은 것으로 보아 석곽묘로 짐작하는 학자들의 주장이 설득력 있다. 자연스럽게 지금 현재 지정된 고분은 내물왕릉이 아닐 것이라는 주장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현재 지정된 내물왕릉에서 서남쪽 500m 지점의 대규모 쌍분이 삼국유사에서 말한 첨성대 서남쪽과 일치하고, 윗부분이 함몰되어 시대적으로 적석목곽분의 형식일 것으로 보여 학자들은 이 고분을 내물왕릉으로 주장하고 있다. △황남대총은 대릉원 가운데 호젓한 호수에 물그림자를 데칼코마니로 만들며 일대에서 가장 큰 규모의 위용을 자랑하는 왕릉으로, 남북으로 봉분이 이어진 쌍분이다. 황남동 98호분으로도 불리며 사적 제512호로 지정됐다. 고분의 아래는 남북으로 120m, 동서 80m, 높이 22로 신라 최대의 고분으로 이름을 올려두고 있다. 1973년 7월부터 3년여 시간에 걸쳐 발굴한 결과 북분에서는 금관, 남분에서는 금동관을 비롯한 큰 칼이 나오면서 남분이 왕, 북분은 왕비의 무덤으로 분석됐다. 무덤은 얕게 땅을 파고 냇돌과 잔자갈을 깔아 구축한 바닥에 이중 덧널을 설치하고, 따로 방을 만들어 다양한 껴묻거리를 묻었다. 무덤에서는 남분에서만 3만7천여 점을 비롯해 6만여 점의 유물이 쏟아졌다. 금관과 금동관, 금제관드리개, 금목걸이, 유리구슬을 꿰어 만든 장식, 금제허리띠, 장신구, 금동장고리자루큰칼, 금동신, 은제허리띠, 금은반지 등의 금은으로 만든 유물이 출토됐다. 또 금속용기와 칠기, 토기, 유리용기 등의 생활용구와 무기, 마구류까지 다양하게 나와 국립경주박물관에 전시하고 있다. 황남대총은 실성왕이거나 눌지왕의 무덤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여자의 무덤으로 보이는 북분에는 금관과 화려한 유물을 넣고 봉분을 더 크게 하지만, 왕인 남분에는 금동관을 넣는 등으로 미루어 눌지왕이 실성왕의 장례를 치른 것으로 짐작하기 쉽다. ◆다시 쓰는 삼국유사: 눌지왕의 반격석씨들이 왕위 세습을 이어오던 당시 내물왕은 김씨로는 두 번째 왕위에 올랐다. 석씨가 왕위를 대물림하던 때에 흘해왕의 아들이 없어 내물왕은 김씨이지만 석씨의 배경에 힘입어 왕좌에 올랐다. 내물왕의 부인은 미추왕의 딸이고, 미추왕의 부인은 석씨 왕손이었다. 미추왕이 처가 석씨의 힘을 빌려 왕위에 올랐듯 내물왕 또한 석씨의 권세에 힘입어 왕위에 오른 셈이다. 내물왕은 47년간 왕위에 있으면서 대내외적으로 많은 도전을 극복해야 했다. 가뭄과 지진, 홍수, 전염병 등의 자연재해 적인 어려움도 많았다. 내물왕은 당시 김씨로 세력이 미약한 편이었다. 백제와 고구려로부터 방어하는 군사력을 키워야 하는 어려움과 실성왕 세력으로부터 절대적인 우세한 힘을 확보해 왕권을 안정화하려는 노력도 필요했다. 내물왕과 비슷하게 미추왕의 딸을 부인으로 삼아 석씨 왕족과도 연대하고 있는 실성왕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내물왕은 실성을 고구려에 인질로 보냈다. 백제 최고의 전성기를 맞은 근초고왕이 왜나라까지 끌어들여 신라를 침략했다. 왜군들은 신라의 도읍지인 금성까지 밀고 들어와 나쁜 짓을 일삼았다. 내물왕은 이러한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고구려와 손을 잡으면서 고구려의 심한 내정 간섭을 경험해야 했다. 내물왕 후대에 이르러 백제가 고구려를 견제하기 위해 신라와 동맹을 제의해 나제동맹을 맺으면서 신라는 대외정책에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실성왕은 10년 동안 고구려에 인질로 있으면서 고구려 실세들과 정치적으로 유대를 맺었다. 실성은 고구려 후광을 업고 신라로 돌아와 내물왕을 제거하고 왕위에 올랐다. 이어 내물왕계의 세력을 약화시키는 한편 내물왕에 대한 보복 정치를 단행했다. 내물왕의 둘째와 셋째 아들인 보해와 미해를 고구려, 왜나라에 인질로 보냈다. 이어 내물왕의 장자인 눌지를 제거하기 위해 그가 볼모로 지내면서 친분을 쌓았던 고구려 사신들을 초청했다. 실성왕은 고구려 사신들에게 눌지를 제거하라는 밀지와 함께 눌지에게 고구려 사신을 마중하게 했다. 그러나 고구려 사신들이 눌지의 훌륭한 인품에 반해 실성왕의 밀지를 눌지에게 귀띔해 주고는 그냥 돌아가 버렸다. 눌지가 거꾸로 돌아와 실성왕을 제거하고 왕위에 올랐다. 눌지왕의 부인은 실성왕의 딸이므로 눌지는 장인을 살해하고 왕위에 오른 것이다. 실성왕은 대마도 정벌을 꿈만 꾸고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16년 만에 왕좌에서 사라졌다. 눌지왕은 또 고구려와 왜나라에 볼모로 잡혀간 동생들을 구하기 위한 구국단을 구성해 파견했다. 고구려에서는 설득전략이 먹혀들어 가 보해를 무사히 빼내어 왔다. 그러나 왜에서는 사정이 달라져 왕을 살해하기로 작전을 변경했다. 그러나 왜의 왕을 살해하려던 구국단은 성사 직전에 은잠술이 능한 왜의 비밀수호단에 잡혀 미해만 가까스로 도망하고, 모두 참형을 당했다. 눌지왕은 42년간 왕위에 있으면서 후대에 접어들어 백제와 손을 잡고 고구려를 견제하는 한편 수시로 침략해 오는 왜군을 격퇴하는데 많은 공을 들였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AI와 손잡은 산업…미래 시장 판도 뒤집는다

4차 산업혁명의 범람은 ‘연결(Connection)’ 산업을 낳았다. 유통과 IT, 교육 IT, 미세먼지와 IT의 접목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인공지능(AI)사회는 ‘인간성 상실’의 동기를 양산함과 동시, ‘인문학’과의 병렬적 융합마저 꾀해야 할 당위를 시나브로 안겼다.‘잘 사는 것’의 범주는 극히 제한적이다. 이제는 ‘How’, 어떻게 살아가는가의 고찰이 필수불가결한 시대다. AI로 하여금 발발 가능의 치부는 최소화하되, 인간편의의 극대화를 꾀해야 할, 말 그대로 ‘과도기적 시점’이라는 것이다.똑같은 문제를 다양한 소양을 통해 다각도의 해답을 찾는 ‘창의적 인재’가 대두됨과 동시, 변별력을 두기 위한 방책으로 인문학적 소양이 각광받고 있다. 유토피아(utopia)와 디스토피아(dystopia)의 이항대립 구조가 아닌, ‘집단지성’을 발휘, AI의 현명한 활용과 제어를 영위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타인과의 ‘협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위해 능력별 수요 제고에 맞춘 가열찬 행보를 진행해야 함은 응당 마땅할 터.복수의 경제 전문가들의 다채로운 예측에 기인, AI로 인해 창출 가능한 신직업군과 소멸될법한 일자리 범주를 두고 설왕설래를 거듭 중이다. 새 시대의 기대와 더불어 ‘잉여인간’ 양산이라는 극한 우려의 상존, 바로 그것에 기인한다.영국 산업혁명기 에 발발한 ‘러다이트 운동’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기계 파괴 운동’이라는 부제에서도 비춰보듯, AI로 인해 당면한 파괴적 시류를 거스르기엔 4차 산업혁명의 물길은 옹골차며 그리고 거세다. 변화를 거부하기에 앞서, 위에서 언급했듯 AI를 어떻게 수용할지의 커리큘럼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평생 직업능력개발 등이 사회적 공론화의 과정을 거친 후 양질의 클래스가 탄생돼야 함이 마땅하다. 오는 2025년으로 국내 자율주행 스마트카, 가상현실(VR, AR, MR), 3D프린팅,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 컴퓨팅 등 5대 분야에서 30여만 개의 신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란 전망에 기인한 것이다.AI의 활용은 인간으로 비롯된다. 최종 의사결정 역시 인간 고유의 몫이다. 인간으로 하여금 AI의 HOW가 공식화된다면 윤택한 삶의 그림은 더욱 가시적일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정부와 학교는 AI적 역량을 무한대로 펼칠 수 있는 인재양성에 전 방위적 투자를 쏟아야 할 것이며, 향후 능동적 교육을 영위한 이들이 제대로 된 역량을 펼칠 수 있는 일자리 환경 조성에도 성심을 다해야 한다. 여기에는 창의성과 감성, 사회적 협력이 주요 골자로 수반돼야 함이 마땅하다.AI와의 연결이란 다시 말해 기존 단순· 반복적인 업무로의 해방을 의미한다. 또 다른 의미로 AI가 미처 범접할 수 없던 ‘블루 오션’의 창의적 일자리 구축이 절실한 때라는 것이다. ◆문제해결의 중축역할, AIAI는 그 자체로의 아이덴티티를 지니지 않는다. 다만 각 분야 간 융합에 의거·발현되는 이른바 ‘서브’의 역할이다. 하지만 서브라 할지라도 단순 서포트의 의미로 국한해서는 안 될 노릇이다. 정보기술의 무수한 분야 간 AI 도입에 따라 인공지능은 개별로의 빛을 발할 것으로 보인다. AI야말로 ‘문제해결’의 중추적 역할을 한다는 방증이다.AI는 명칭 그대로 인간의 지능으로 영위 가능한 분야를 컴퓨터를 통해 접목해가는 연구과제다. 컴퓨터 프로그램이 인간지능의 툴을 모방, 더욱 세밀하고 광범위하되, 인간으로서 범할 수 있는 실수를 최소 한다는 데 그 의의를 둔다는 것이다.최근 상상 속에서만 펼쳐오던 블랙홀의 실사가 공개됐다. 아이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통해 블랙홀에 관한 ‘예측’이 이뤄진 후 100여 년 만의 쾌거다. 무려 5천500만 광년 떨어진 천체의 흔적을 발견한 셈이다.이번 블랙홀은 총 8개에 이르는 전파망원경을 통해 포착됐다. 은하 ‘M87’ 중앙에 있는 블랙홀의 암지대와 고리 형태의 구조를 찾아낸 것이다. 과거 블랙홀의 가시적 구조는 강력한 중력에 의해 찾을 수 없다는 학술 결과를 뒤집은 고무적 결과다. 여기에는 대한민국의 과학자 8명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세간의 이목을 한층 더 집중시킨 바 있다.여기서도 AI는 발군의 역할을 해낸 것으로 알려진다. 인공지능화된 분석기를 통해 관측자료 보정과 영상화 작업을 실행했던 것. 특히 블랙홀 관측에 이용된 망원경은 지구 지름 정도의 크기로, 파리에서 워싱턴의 한 모처를 탐색할 수 있을 정도의 망원 기능을 지닌다. 단순 예측이 인공지능의 접목에 의거, 가시적 발현 광경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모든 분야에 적용되다시쳇말로 ‘신의 영역’이라 불리는 부동산 시장서도 AI는 든든한 조력자 역할을 한다. 정권에 따라, 또는 경기에 의해 널뛰듯 하다 보니 오롯이 예측만이 가능할 뿐, 고착화될리도, 현 기조를 고수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나마 신빙성 있는 예측이란 AI, 이 중에서도 ‘빅데이터’의 공신력에 일정 부분 의존할 따름이다.부동산과 빅데이터란 분명 개별의 성질을 지닌 전혀 다른 분야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둘의 관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동반자적 관계’를 유지한다. 주택 관련 단순 정보제공과 현 시세 제공에 국한됨은 이미 옛말이다. 이제는 축적된 빅데이터로 각 지역별 주택시세와 향후 예측, 금융 계산(예상) 등의 범주에까지 그 영향력을 한껏 뽐내는 모양새다.이유는 간단하다. 소비자들의 니즈는 인간의 단순 예측보다 수많은 데이터가 쌓여 발현된 빅데이터에 한층 더 안정감을 느낀다. 이제는 빅데이터 활용에도 기술력에 따른 왕도가 극명히 갈릴 것이라고 하니 빅데이터와 부동산은 이제 고유명사라 지칭할지라도 결코 과하지 않다.비록 스트레이트 기사에 국한되기는 하나 AI로 작성된 기사가 이목을 집중을 시키고 있다. ‘5W1H’의 육하원칙을 완벽히 재현해내는 인공지능의 라이팅 기술. 이 중 스포츠 관련 중계기사에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다.유전자 분석에도 AI의 기술력은 십분 발휘되고 있다.타액에 담긴 DNA를 분석, 개별로 특수 된 보험을 추천하는 서비스가 도입을 앞두고 있다. 고객의 타액을 묻힌 키트를 보내면 이에 따른 유전자를 분석, 그에 따른 결과치로 보험관리전반을 관리·영위한다는 것이다. 개인의 데이터화된 유전자 정보를 바탕으로 맞춤형 보장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복안이다.이 밖에도 사진 분석을 통해 희귀 유전질환의 일정 여부를 판단해내는 기술은 AI의 쾌거다. 빅데이터 정보를 딥러닝 기술에 접목, 만성질환의 근원으로 점철되는 ‘비만’의 원인 예측과 이에 따른 솔루션을 제시해내는 프로그램도 속속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딥 러닝은 지난 2016년 이세돌 9단과의 바둑시합을 펼친 바 있는 '알파고'의 학습법으로도 회자되고 있다.AI 기반의 설계기법을 적용, 소프트웨어 프로토타입 기반의 AI의자와 보이스 피싱 등 금융사기 전화를 실시간으로 차단하는 인공지능 앱 역시도 AI의 또 다른 혁신으로 주목받고 있다. ◆미래 산업의 필수요소AI에 관한 수치화된 전망은 앞서 연재서도 치열하게 다뤄왔다. 굳이 상기하자면 AI 관련 산업화는 예측수단이 아닌, 이미 고유화된 수용범위다. 그만큼 미래 산업과 AI의 연결고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필수요소라는 것이다.우리는 AI의 기술력에 신봉하기에 앞서 인공지능의 ‘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AI의 담론과 아울러 ‘인간을 위함’이라는 인문학적 벨류를 더불어 고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AI는 도외시할 수 없는 미래 인류의 청사진임을 수용하되 과학 발전과 더불어 인간만이 지닌 가치를 성찰한다면 AI의 이질감은 충분히 극복 가능한 과제다.‘벌레’라 함은 결코 식의 범주가 아니었다. 징그러웠고 그러다 보니 혐오스러웠다. 학습효과 덕이었다. 벌레는 지저분하다 했고, 그렇기에 해한 존재라 응당 여겨왔다. 당연히 먹거리일 리 없었다. 지금에 와서 징그러운 벌레를 미래의 '식량자원'으로의 인식 전환이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다만 지금이라도 식용곤충을 체험하고 맛보며 인식의 괴리를 좁혀나가는 노력이 가해진다면 벌레가 ‘슈퍼푸드’로의 점층적 변혁을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인공지능 역시 마찬가지다. 그 옛날 로봇의 출현을 공상 과학 중 편린 내지, 생경함의 대상쯤으로 치부함이란, 그때는 맞고, 지금은 아니다. 글·사진 군월드 IT사업팀김종윤 기자 kjyun@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