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기행 (69) 흥륜사 금당십성-아도화상

신라는 불교가 공인되어 본격적으로 전래되기 이전부터 칠처가람이 일어나 많은 고승이 활동하는 불법(佛法)과의 인연이 깊은 나라였다. 신라가 불교와의 인연이 깊은 나라였다는 것은 칠처가람으로 우선 설명이 된다.전법시대의 사찰 흥륜사, 영묘사, 영흥사, 황룡사, 분황사, 담엄사, 천왕사 등의 칠처가람은 이미 앞에서 다루었다.신라의 불교를 크고 깊게, 널리 알려 융성하게 일으켰던 고승들은 손으로 꼽을 수 없이 많다. 고승들이 행한 놀라운 이적들은 기록으로 또는 입으로 다양하게 전해지고 있다. 그들과 관련된 유명사찰도 신라의 터 곳곳에 위치하고 있거나 사라지고 없어도 설화와 같은 이야기로 더듬어 보게 한다.신라의 고승 중에도 최초의 국찰로 전해지는 흥륜사의 금당에 벽화로 그려져 있었던 열명의 고승, 신라 십성으로 불리는 승려들의 이야기를 더듬어 본다. 이번 호에서는 신라에 가장 먼저 불교를 전했던 아도화상과 안함을 만나본다. ◆삼국유사: 흥륜사의 금당 십성동쪽 벽에 경(庚) 방향으로 앉은 분, 진흙으로 만든 소상이다.아도, 염촉, 혜숙, 안함, 의상.서쪽 벽에 갑(甲) 방향으로 앉은 분, 진흙으로 만든 소상이다.표훈, 사파, 원효, 혜공, 자장. ◆신라의 고승: 아도화상과 안함-아도화상: 신라에 최초로 불교를 전한 승려로 전해지는 아도화상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아도는 아두라고도 불리며 고구려에 순도가 처음 불교를 전하고 2년이 지난 시기에 고구려에 들어와 불교를 전파한 인도의 승려라는 설이 있다.또 그의 국적은 분명하지 않으며 눌지왕 때에 고구려에서 신라로 들어와 불교를 전파했다. 따르는 승려 3명과 지금의 구미지역 모례의 집에서 머물다 죽었다고도 전한다.이어 삼국유사에서 아도는 고구려의 사신이 신라에 와 머물며 신라의 여인과 사이에 탄생해 16세에 고구려로 들어가 아버지를 만나 불교를 공부했다. 신라로 돌아온 아도가 불법을 전파하다 귀족들의 반대에 부딪혀 뜻을 펴지 못하고 모례의 집에서 땅굴을 파고들어가 죽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구미시 해평면에는 아도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도리사가 있다. 도리사는 아도가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만발한 곳에 절을 지어 그렇게 부른다. 신라시대부터 지금까지 법등이 이어지고 있다.도리사에는 보물 제470호로 지정된 삼층석탑과 아도화상의 석상, 사적비, 탱화, 세존사리탑 등의 문화유적이 있다. 아도화상의 석상은 높이 1m에 이르는 입상으로 윤곽이 뚜렷하며 기이한 느낌을 준다.세존사리탑에서 발견된 사리는 무색투명하고 둥근 콩알 크기로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사리 중에서는 가장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이 외에도 도리사에는 아도화상이 좌선했던 바위로 전해지는 편편하게 다듬어진 좌선대, 아도화상이 입적한 곳이라는 금수굴 등이 있다. -안함(安含)은 신라의 왕권이 안정되지 못하고 여전히 귀족들의 세력에 따라 나라의 정책이 운영되던 진지왕시대에 태어나 왕권안정을 찾아가던 진평왕 시대를 지나 선덕여왕 9년에 입적한 고승이다.안함은 흥륜사 십성 중의 한 사람으로 성은 김씨다. 진평왕 22년인 600년에 고승 혜숙과 함께 이포진에서 배를 타고 중국으로 가다가 풍랑을 만나 되돌아왔다. 이듬해 칙명을 받고 법사가 되어 중국 사신과 함께 중국으로 건너가서 황제를 만나 뜻을 전하고 대흥사에 머물렀다.중국에서 십성에 이르게 한 비법과 현의와 진문을 5년 동안 배우고 605년에 우전국의 비마진제, 농가타 등의 서역 승려들과 함께 귀국했다. 신라에 서역의 승려들이 들어온 것은 이때가 처음이라고 한다.안함은 황룡사에 머물면서 전단향화성광묘녀경을 번역했는데 승려 담화가 이를 필수했다. 저서로는 견문록 참서(讖書) 1권을 저술했으나 전하지 않는다. 또 동도성립기(東都成立記) 1권을 저술했는데 그가 안홍(安弘)이라는 설도 있다. ◆새로 쓰는 삼국유사: 아도화상의 환생-아도화상은 고구려의 장군이었다. 신라와의 전쟁에서 이겼으나 거짓 항복한 신라 장수의 배신으로 죽임을 당하게 되었다. 아도는 신라에 태어나 그 신라 장군의 후손들에게 복수할 것을 다짐했다. 결국 아도는 신라를 방문한 고구려 대신이었던 아버지 힘을 빌려 신라에서 다시 태어났다.그러나 아버지 아굴마가 고구려로 돌아가 버리자 어린 아도를 돌봐줄 힘이 부족한 어머니에게서 제대로 무술수업을 받지 못해 꿈을 이룰 수 없었다. 아도는 먹고살기에도 어려워 겨우 글을 깨치는데 급급할 정도였다.어머니는 아도가 답답해하자 16살이 되던 해에 고구려로 가서 아버지를 찾아 뜻을 펼치라고 주문하며 아버지와의 약조와 증표를 전해 주었다. -아도의 아버지 아굴마는 고구려 조정의 중요인물로 성장해 나라의 일을 도맡아 하고 있었다. 고구려 땅으로 들어간 아도는 어렵게 아버지 굴마를 만났다.굴마는 아도의 자질이 뛰어남을 알아보고 이름이 높았던 현창화상에게 아도를 보내 불법을 공부하게 했다. 아도는 삶의 참 이치를 깨달으며 복수에 대한 마음을 까마득히 잊고, 백성들의 깨우침을 인도하기 위한 삶을 살기로 했다.고구려에서 5년여 불법에 대한 공부를 익힌 아도는 아버지의 권유로 다시 신라로 돌아왔다. 아도는 어머니를 찾아가 아버지와의 만남과 공부한 내용을 낱낱이 전하고 신라 백성들을 위해 불법을 널리 전파하겠다는 뜻을 알렸다.어머니의 동의를 얻은 아도는 궁궐로 들어가 불법을 전파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그러나 불교의 진리에 대해 어두웠던 궁중에서는 귀족들의 눈치를 보며 오히려 배척하고, 아도를 죽여야 한다는 여론에 휘말려 오히려 핍박하게 됐다.그러던 중 왕비가 이름 모를 병에 걸려 먹지도 못하며 죽음을 앞두고 있었다. 왕은 전국에 방을 내려 왕비의 병을 고치는 사람에게는 3년간 세비를 면해주고, 큰 집을 하사한다고 했다. 그렇지만 용하다는 의원들이 몰려들었지만 병을 고치지 못했다. 이러한 사정을 들은 아도가 궁으로 들어가 왕비의 병을 고쳤다. 아도는 고구려 현창화상에게서 마음의 병을 고치는 도력에 대해서도 배움을 얻어 이미 도력이 뛰어나 그가 마음먹은 일은 작은 산이라도 가볍게 옮길 수 있었다. 왕비의 병을 낫게 해주었지만 왕의 후의에 반해 귀족들은 여전히 불교와 아도화상을 업신여기며 불교를 인정해주지 않았다. 결국 아도는 신라 궁궐에서 불교를 전파하려던 꿈을 포기해야 했다.궁궐에서 사당을 지어놓고 선대왕들에 대한 제를 올리는 일을 담당하던 세력의 핍박은 노골적이어서 아도가 견디기 어려웠다. 제대로 뜻을 펴지 못한 아도는 궁궐에서 도망해 구미로 발길을 옮겨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어우러진 곳에 도리사를 짓고 암암리에 불교를 전파하기 시작했다.그러나 끈질긴 신라 귀족들의 불교에 대한 박해로 인해 아도는 후일 좀 더 편안한 분위기에서 승려로 환생해 불법을 온 백성들에게 전파하는 일을 할 것을 다짐하며 굴을 파고 입적에 들었다.-원효로 환생: 아도는 원효로 환생했다. 처음 화랑이 되어 전쟁터를 전전하며 장군으로 눈길을 끌게 됐다. 그러다 어머니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갑옷을 벗은 원효는 삶과 죽음에 대해 고뇌하기 시작했다. 원효의 고민이 깊어지면서 전생에서 백성들에게 불법을 전하기로 했던 뜻을 생각해내고 불법공부에 매진했다. 아도는 고구려는 어떻게 변화했을까 궁금해졌다. 그래서 의상을 대동하고 유학을 떠났다가 첩자로 오인받아 구속되기도 했지만 가까스로 신라로 돌아와 백성들의 편안한 삶을 위해 화쟁사상을 전파하는데 일생을 보냈다. 아도는 삼생에 거쳐 그리던 불법을 만천하에 전하는 일을 해내는 훌륭한 승려로 후대에 이름을 전하고 있다. *새로 쓰는 삼국유사는 문화콘텐츠 개발을 위해 픽션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역사적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대구·경북 고교총동창회 (25)경북중·고

‘TK(대구·경북) 인맥의 산실’.경북중·고등학교의 위상은 실로 대단했다. 고교 비평준화(1958년생 이전) 시절, 영남권 수재들이 모두 모여드는 명문고의 상징이었다.세 줄의 흰 선(백삼선, 白三線)이 새겨진 교복은 당시 선망의 대상이었을 정도다.실제 ‘경북고 80년사’(1996년 발행)에 나온 1970년대 경북고 출신 학생의 서울대 진학 기록을 보면 비평준화 마지막 세대인 53~58회(71~76학번)의 서울대 진학자 평균은 연 135명에 이른다.이에 비단 TK뿐만 아니라 전국을 통틀어도 기라성 같은 인물이 대거 배출됐다.경북중·고는 평준화 확산 이후에도 대구의 강남 8학군인 수성구로의 학교 이전을 통해 공립명문고로서 전통을 잇고 있다.◆121년의 역사경북중·고교의 역사는 올해로 121년이 됐다.4년 전 까지 경북중·고의 뿌리는 일제강점기인 1961년에 설립된 대구고등보통학교로 알려져 있었다.하지만 2016년 당시 100주년 기념사업을 준비하던 총동창회가 1899년(대한제국 3년) 대구에 세워진 달성학교 설립 취지 및 교칙을 담은 문건을 기증받아 경북중·고와의 연관성을 확인하면서 개교 역사가 117년으로 늘어났다.심상과와 고등과를 둔 4년제 달성학교는 지방관과 대구의 유지들이 돈을 모아 함께 세운 사립학교로 영남 최초 근대식 교육기관이었다. 일제 식민교육정책에 항거하는 구국운동을 위한 학교였다.이후 일제는 1905년 을사늑약을 체결하고 교육정책도 식민지화 과정에 맞게 개편했고 달성학교의 심상과는 대구공립소학교로 인계하고, 고등과는 서상돈, 양기탁, 정재학 등이 국채보상운동 모금액 중에서 일부를 자금으로 1907년에 개교한 협성학교에 흡수시켰다.조선총독부는 고등보통학교의 관제를 제정해, 협성학교를 관립대구고보에 병합시켰고 1916년 4월 대구고보는 협성학교의 학생과 물품을 인수하는 한편 신입생을 선발해 개교했다.경북중·고가 1899년에 설립된 달성학교와 여기서 전환된 협성학교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학교의 인적·물적 토대가 영남의 선각자·유림들의 정신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1919년 3.1 운동 당시(대구는 3월 8일)에는 대구고보 전교생 239명 중 200여 명이 참가, 대구 만세운동을 주동했으며 항일동맹휴학·월남망국사(越南亡國史) 발표사건·비밀결사사건 등 민족정기를 밝히는 항쟁에도 앞장섰다.확인된 항일투쟁가만 38명이다.6.25 전쟁 때도 나라를 지키기 위해 경북중 32~34회 학생들이 학도의용군에 지원했다. 전사자가 53명에 이르며, 이 학도병을 기리는 조형물이 2.28 민주화운동 기념공원 옆 호국동산에 세워져 있다.1960년 2·28 민주운동 때는 경북고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해 대구고, 경대사대부고 등 여러 고교 학생들과 함께 자유당 독재정권에 맞서 거리로 뛰쳐나가기도 했다.2·28 민주운동은 이후 3·15 마산의거, 4·19 혁명의 도화선으로 작용해 민주화운동의 시초가 됐다.◆자랑스런 경맥인경북중·고는 TK는 물론 전국에서도 많은 인재를 배출했다.특히 노태우(32회 졸업) 전 대통령을 비롯해 이효상(4회)·박준규(25회)·김수한(29회) 전 국회의장, 김용철(26회) 전 대법원장 등 삼부요인을 전국에서 처음 배출한 고등학교로 이름을 올렸다.이후 경기고, 경남고 등지에서 삼부요인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신현확(20회) 전 국무총리도 경북고를 나왔고 관계는 물론 대법관, 헌법재판관, 검찰총장 등을 포함한 법조계에도 이 학교 출신이 손으로 꼽기 어려울 만큼 숱하다.21대 국회까지 경북고를 나온 국회의원 수만도 연인원으로 따지면 182명이다. 특히 1996년 15대 총선 때는 모두 18개의 금배지를 낳으면서 정점을 찍기도 했다.이 밖에 문교부 장관을 역임했던 1대 교육부총리 한완상(36회), 5개의 시중·국책 은행장을 거치고 삼성·대우그룹 회장을 하다 이수그룹을 창업한 김준성(20회), 박사로 통하는 육각수 이론의 창시자인 전무식(31회) 한국과학기술자 총연합회장, 무궁화 위성 발사를 성공시킨 황보한(37회), 쌍용그룹을 창업한 김성곤(15회) 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국내 제1호 전문경영인인 정수창(20회) 전 OB그룹 회장, 배우 강신성일(37회) 등 군·경찰, 재계, 학계, 의료계, 언론계, 종교계, 연예계 등에도 경북고 출신이 포진해 있다.야구 명문고로도 이름을 높여 전국 규모 대회에서 30여 차례 우승했고 국민타자 이승엽(76회) 선수, 2011년 삼성 라이온즈에서 사령탑 데뷔를 했던 류중일(64회) LG 트윈스 감독 등을 배출하기도 했다.윤덕홍(46회) 전 교육부총리의 경우 5형제가, 이효상(4회) 전 국회의장은 4부자가 이 학교를 졸업하는 등 3∼4대에 걸쳐 경북고를 나오거나 5∼6부자, 4∼5형제가 모두 경북고에 다닌 사례도 적지 않다.◆장학회(재)경북중고동문장학회는 1991년 8월21일 설립됐다.총동창회는 2016년 개교 117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목표액 100억 원의 장학기금을 모금하고 있다.1년 6개월 만에 목표액 50억 원을 돌파했으며 현재까지 약 60억 원이 모였다. 장학기금 참여 동문도 1천200여 명이 된다.장학회는 매년 1억 원 내외로 재학생 및 모교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다.지난해 기준 모교 재학생 장학금으로 80명에게 7천680만 원을 지급했다.교사의 사기진작을 위해 우수교사 10명을 선정, 해외 연수를 제공했으며 모교 재학생이 학업에 열중할 수 있도록 학교 시설지원비로 2천500만 원을 사용했다.특히 ‘경맥장학생’으로 3회 이상 선정된 학생에게는 ‘경맥장학회’에 자동 가입돼 졸업생 선배와 1:1 멘토서비스를 할 수 있는 기회도 주는 등 선후배간 탄탄한 네트워크 구축에도 힘쓰고 있다.◆다양한 연례 행사총동창회는 매년 1월 3번째 화요일에 정기총회 및 신년교례회를 열고 있다.전국에서 400여 명의 동문이 참여해 당해 연도 예산안 승인 등의 안건과 함께 동창회 관련 회의를 진행하고 선후배 간 신년 인사를 나누는 행사다.매년 5월 대규모 체육대회인 ‘경맥제’도 열린다.현재까지 47회 열린 경맥제에는 매년 경북고 운동장에서 개최되며 전국에서 동문 2천여 명이 참여한다.다양한 종목의 경기를 펼치며 가족들도 다 같이 즐길 수 있는 다채로운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매년 선후배 2기수가 주관, 경기종목과 상품 등을 구성해 준비하고 있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오는 9월로 연기됐다.매년 10월에는 재경경맥가을축제와 청가을체육대회가 펼쳐진다.재경동창회가 주최하는 재경경맥가을축제는 서울에서 개최된다. 매년 1천500여 명의 동문과 가족들이 모인다. 각종 경기를 비롯한 초청가수 공연 등을 통해 동문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청가을체육대회는 보통 재경경맥가을축제 이후에 치러지며 59회 이후 기수들이 활동하는 ‘경정회’에서 주관해 경북고 운동장에서 열리고 있다.‘젊은 피’인 경정회가 주관하는 만큼 더욱 활동적이고 의욕적으로 진행되며 상황에 따라서는 체육대회 대신 야유회나 엠티 등으로 대신하기도 한다.이와함께 부산, 포항, 제주 등 각 지역동창회에서도 지역동문들이 모여 소규모로 체육대회 및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졸업 10주년 마다 진행되는 행사는 경맥제 전날 실시하고 있다. 이번 50주년 행사는 9~10월께 1박 2일 코스로 진행될 예정이다.전국에서 40여개의 기수, 250여 명이 참가하는 전국합동산행도 있다. 난이도 별로 정해진 코스를 산행한 후 최종 집결지에 모여 만찬을 나눈 후 행사를 마무리한다.매년 총동창회장배 및 재경동창회장배 골프대회, 당구대회, 바둑대회, 테니스대회 등도 개최된다.이와 함께 경북중·고 , 전고·북중 총동창회 친선 교류전도 열린다.2000년 4월 양교동문의 바둑대회로 시작됐다. 2001년 4월 제3회 대회에서부터 바둑과 골프로 양교 친교를 다지기 시작한 이래 양교 순환방문과 양교 동문간의 친교를 위한 가교 역할에 큰 뜻을 품고 맥을 이어 가고 있다.경맥OB합창단, 경맥 산악회, 경맥 문학회, 수경회 등의 동창 모임도 활발하다.◆천경준 동창회장 인터뷰‘아는 사람(知), 생각하는 사람(思), 행하는 사람(行)’.경북고의 교훈이다.씨젠 회장인 천경준(47회) 총동창회장은 총동창회를 자랑해달라는 말에 “경북중·고 동문들은 교훈을 누구보다도 마음 속 깊이 잘 간직하며 실천하고 있다고 자부한다”고 강조했다.천 회장은 “경북고에서는 경북고인은 무엇을 알 것이며, 무엇을 생각할 것이며,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항상 깨우치도록 가르쳤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했는데 경맥인들은 이를 가장 잘 실천하는 사람”이라고 했다.지난 4월20일 회장직을 맡은 천 회장은 가장 먼저 장학사업에 몰두했다.장학기금을 매년 일률적으로 재학생들에게 돌아가게 하기 위함이다.천 회장은 “현재까지 동문들이 십시일반 모은 총액이 60억 정도 된다. 이를 예금해놓고 이자로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는데 이자율이 해마다 떨어지고 있다”며 “그렇다보니 매년 장학금도 줄고 있다. 이에 매년 똑같은 장학금 지급을 위해 최근 수익사업을 시작했다”고 했다.지난달 20일 서울 강남구 학동역 사거리에 65평 짜리 상가를 매입, 신세계푸드를 입점시켜 수익사업을 시작한 것.그는 “은행 이자의 3배 정도의 수익이 발생하고 있다”며 “학생들이 장학금을 받고 자극을 받아 우리나라 발전에 도움이 되고 기여할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나 학교 장학회에 다시 기부를 하는 선순환 구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천 회장은 이와함께 회장직을 맡은 이후 장학회에 자신이 회장으로 있는 씨젠의 주식을 기증하기도 했다.여기에는 기분 좋은 에피소드도 있다. 그는 “주식을 기증할때만 해도 팔면 2억 원 정도였지만 파는 과정에서 코로나19로 씨젠의 주식이 오르면서 기증액이 약 5억 원으로 껑충 뛰었다”고 웃어 보였다.씨젠은 코로나19 진단키트를 만드는 회사로 코로나19 진단키트 수요 증가에 따라 주가가 상승한 것.천 회장은 이와함께 멘토링 사업도 추진 중이다.천 회장은 “스마트 폰을 이용해 전 동문이 멘티가 되고 멘토가 되는 사업을 시작한다”며 “학생이나 졸업생, 사회인 등 경북중고 출신 동문이라며 누구가 고민을 나누고 누구나 대안을 제시해 줄 수 있다”고 했다.이어 “동문 중에는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많은만큼 서로에게 힘이 되고 힘을 주는 멘토링 사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라며 “현재 홈페이지 구축 중에 있으며 이는 경맥인들만의 특별한 혜택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마지막으로 천 회장은 “우수한 인재는 ‘좋은 스승’과의 만남이 있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얘기가 있다”며 “경북고에서 다양한 계층에서 훌륭한 인물이 나와 지역사회 나아가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인재가 될 수 있도록 총동창회가 좋은 스승의 역할을 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역설했다. 기사수정이혜림 기자 lhl@idaegu.com

한눈에 세계여행 하기 (14) 뉴질랜드②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국내여행은 물론 해외여행은 당분간 먼 나라 이야기가 될 전망이다. 하지만 여름 휴가철이 다가오고 있어 여전히 해외여행에 대한 로망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뉴질랜드에는 청정 자연의 아름다운 풍경부터 수준 높은 미식까지 다채로운 관광 명소가 즐비하다. 특히 가족, 연인, 신혼 부부 등과 함께 방문하기 좋은 휴양지가 많다. 뉴질랜드만의 특색 있는 지열 에너지를 활용한 온천과 머드 욕부터 세계적인 와인 산지, 여름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고급 휴양지 등 ‘랜선 여행’을 통해 가볼만한 구석구석 명소를 소개한다. ◆가족 여행 맞춤 코스, ‘로토루아’ 로토루아는 뉴질랜드에서 어린 아이부터 어른들까지 온가족의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는 매력만점의 여행지다. 로토루아는 세계에서 가장 활발한 지열지대 중 한 곳이다. 강력한 지열 에너지로 지친 심신을 달랠 수 있는 머드욕이나 온천욕도 로토루아에서 놓칠 수 없는 즐길 거리다. 자연 그대로의 지열 온천과 부글부글 끓는 머드를 직접 체험할 수 있다.또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온천과 스파가 도처에 있어 어디서나 쉽게 여행에 지친 노곤한 몸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낼 수 있다. 로토루아의 ‘테 푸이아(Te Puia)’는 로토루아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지열지대다. 신비한 지열 현상과 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족의 문화를 다채롭게 경험할 수 있다. 하루에도 수십 차례 뜨거운 물줄기가 30m 높이로 치솟는 포후투 간헐천도 볼 수 있다.특히 지열로 다양한 채소와 육류를 익혀 먹는 마오리족 전통 조리법인 ‘항이(Hangi)’ 음식도 맛볼 수 있다. 마오리 미술공예학교가 함께 위치해있어 마오리족 전통문화를 두루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여행지다. 미술공예학교에서 마오리 공예품의 제작 과정을 구경하고, 마오리족 전통 공연을 직접 배우는 등 뉴질랜드의 전통문화를 제대로 배워볼 수 있다. 특히 ‘헬스 게이트(Hells Gate)’에서는 대지의 뜨거운 에너지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로토루아 북동쪽으로 16㎞ 떨어진 곳에 있으며, 700여 년의 유구한 역사를 지닌 유황, 머드 온천이다. 뉴질랜드에서 가장 활발한 온천 지역 중 하나다. 부글부글 끓는 물과 머드, 증기가 솟는 분기공과 함께 남반구 최대 규모의 온천 폭포는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독특한 지열 현상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레드우즈 트리워크(Redwoods Treewalk)’는 출렁출렁한 흔들다리를 걸어보는 짜릿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삼나무 숲을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공중의 출렁이는 흔들다리를 통해 탐험할 수 있는 이색적인 생태관광 명소다. 100년이 넘는 유구한 세월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거대한 22그루의 삼나무들이 23개의 흔들다리를 통해 총 533m 길이로 이어져 있다.6m 높이부터 최대 12m까지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는데 안전 장구나 보호 장비 없이도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또 레드우즈 나이트라이츠의 야간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2.5m 높이에 설치된 30여 개의 독특한 등불이 어두운 숲과 극적인 대비를 이루는 아름다운 풍경도 감상할 수 있다. ◆신혼부부와 연인들의 로맨틱한 여행 명소 ‘더니든’ 커플 여행이나 신혼부부의 여행지로 뉴질랜드를 찾는다면, 최근 대세는 ‘더니든(Dunedin)’이다. 더니든은 남섬 오타고 지방에 자리해 있다. 일명 ‘남반구의 에든버러’라고 불릴 만큼 스코틀랜드의 문화와 특색이 짙은 도시다. 빅토리아 양식의 우아한 건축물과 유럽 어느 거리를 꼭 닮은 예스러운 풍경은 어디서 사진을 찍어도 화보가 된다. 더니든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연인과 로맨틱한 하루를 보낼 수 있다. 뉴질랜드의 유일한 성인 라나크 성(Larnach Castle)과 고딕 양식의 교회 첨탑, 영화 같은 건축미를 자랑하는 더니든 기차역 등을 둘러보다 보면 빅토리아 시대의 낭만에 한껏 빠져들게 된다. 더니든에는 자연 걸작도 많다. 도심에서 2㎞ 남짓한 거리에 있는 터널 비치(Tunnel beach)가 대표적이다. 바닷물의 끊임없는 침식 작용으로 형성된 높은 벼랑과 해안으로 튀어나온 수없이 많은 곶이 만드는 역동적인 풍경은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깊은 인상을 남긴다. 터널 비치에서는 벼랑을 관통하는 좁고 긴 터널도 있는데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순간 눈앞에 펼쳐지는 청량한 바다 풍경이 현실을 넘어선 다른 세상처럼 느껴진다. ‘자연이 준 가장 아름다운 선물’로 불리는 오로라(aurora) 관측을 하기에도 좋은 명소다.오로라를 관측하기 가장 좋은 시기는 평균적으로 3~9월이다. 이외에도 한가로운 산책이나 서핑을 즐기고 싶다면 세인트 클레어 비치(St Clair Beach)로 이동해보자. 도심에서 멀지 않아 편리하고 현대적으로 조성된 산책로는 물론 해수욕장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여럿 있어 어디서나 쉽게 접근이 가능하다. ◆와인과 미식의 천국, ‘혹스베이’ 질 좋은 토양과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춘 뉴질랜드는 세계적인 와인 산지로 유명하다. 지역과 관계없이 가장 많이 재배되는 샤도네(Chardonay)와 뉴질랜드 와인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 깊고 묵직한 맛이 특징인 피노 누아(Pinot Noir)까지 세계 와인 시장에서 뉴질랜드의 명성은 이미 남다르다. 와인과 근사한 다이닝을 즐기는 미식 투어를 선호한다면 미식가들의 천국이라 불리는 혹스베이(Hawke’s Bay)가 있다. 혹스베이는 뉴질랜드 와인 여행의 출발점이자 뉴질랜드 내에서 가장 오래된 와인 단지다.1851년 소수의 프랑스 선교사가 토지를 개간해 와이너리를 만들고, 천주교 수사들이 포도나무를 가꾸었던 것이 시초다. 혹스베이의 와인 지대는 김블렛 그레블스(Gimblett Gravels), 트라이앵글(triangle), 테마타(Te Mata) 등 여러 개의 소지역으로 나뉘어 있다.대표 와인으로는 깊고 풍부한 맛의 샤르도네와 적포도주가 있다. 70여 개가 넘는 포도원 중 42곳에서 와인 시음을 제공하며, 대다수의 포도원이 레스토랑을 함께 운영한다. 뉴질랜드 맛집 대부분은 포도주 양조장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지역에서 생산되는 와인과 분위기에 맞게 독창적인 음식 메뉴를 개발하기 때문이다. 미식 체험 후 날씨가 화창하다면 자전거로 포도원을 구경하는 투어도 추천한다. ◆여유로운 항구 도시, ‘베이 오브 플렌티’ ‘베이 오브 플렌티(Bay of Plenty)’는 여름의 매력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햇볕의 고장이다. 서퍼들이 사랑하는 해변과 따뜻한 바닷물, 부드러운 백사장, 수준급 실력을 자랑하는 레스토랑까지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고급 휴양지의 인프라를 대부분 갖추고 있다. 특히 뉴질랜드 내에서도 알아주는 전망 명소로 통한다. 이곳에는 해발 230m의 휴화산 마우아오(Mauao)가 있다. 마우아오 산 정상에 오르면 광활한 태평양만의 풍경이 그대로 눈앞에 펼쳐진다.탁월한 전망으로 관광객과 지역민 모두에게 사랑받는 산책로로 꼽힌다. 또 현지인 사이에서도 인정받는 로컬 휴양지로 유명하다. 서핑이나 낚시, 조개잡이를 하거나 해수욕을 즐기기에 제격이기 때문이다. 파파모아 해변(Papamoa Beach)에서 지상의 요트라 불리는 삼륜 블로 카트(Blokart)를 타고 짜릿한 속도감을 즐길 수 있다. 또 마웅가누이의 해수 풀장에서 뜨거운 바닷물에 몸을 담그는 여유로운 시간도 누릴 수 있다. -자료 제공: 뉴질랜드 관광청.구아영 기자 ayoungoo@idaegu.com

만성 피로 증후군

피로감을 호소하면 병원을 찾는 이들이 많다.대부분 단기간 피로를 느끼는 경우가 많은데, 여행이나 운동 혹은 휴식을 취하면 호전된다.하지만 적어도 4개월 혹은 6개월 이상 피로감을 느끼면서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면 이야기는 달라진다.이 경우에는 근육통과 두통 등의 전신 통증이 있거나, 집중력이 떨어지고 임파선 통증과 인후염 등을 동반하기도 한다.다음 8가지의 증상 중에 4가지 이상이 장기간 지속된다면 만성피로 증후군으로 진단할 수 있다. 1. 운동이나 고된 일을 한 후 24시간 이상 지속되는 피로감이 있다.2. 수면 후에도 개운하지 않은 상태가 지속된다.3. 최근 기억력이 떨어지거나 집중이 잘 안 된다.4. 근육통이 있다.5. 관절에 염증이 없는데도 아프다.6. 전에 없던 새로운 두통이 생긴다.7. 목 부위에 임파선을 누르면 아프다.8. 목이 자주 붓고 인후염이 생긴다. 만성 피로 증후군의 원인은 아직 정확히 밝혀진 바가 없으나, 매우 다양하고 복잡한 요인들이 관여하는 것으로 추측된다.따라서 치료도 통합적인 방법으로 접근한다.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울 정도의 심한 피로감을 느끼면서, 근육통과 집중력 저하를 동반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만성 피로는 신경 전달물질의 불균형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연구가 많다.집중력과 활력 그리고 행복감은 대부분 신경 전달물질들이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이중 활력과 기민함을 유지시켜주는 물질은 도파민이며, 집중력과 즐거움 혹은 동기부여와 같은 느낌은 노르에피네프린, 그리고 만족감 및 통증은 세로토닌과 관련이 있다.이러한 신경 전달물질의 부족이나 과잉으로 인해 불안과 우울한 느낌이 생긴다.결국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는 요인들이 만성 피로 증후군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노르에피네프린과 도파민을 만드는 물질은 티로신이라는 아미노산인데, 이는 갑상샘 호르몬을 만드는 원료이다.또 트립토판이라는 아미노산에서 세로토닌이 만들어지고, 세로토닌은 멜라토닌으로 전환된다.때문에 결국 세로토닌이 부족하면 불안과 우울증상 뿐만 아니라 불면증도 함께 동반될 수 있다.신경전달물질의 고갈이나 불균형의 주요인은 스트레스이다.스트레스는 정신적인 부분도 있지만 육체적인 부분 특히 체내의 염증이나 지속적인 면역자극에 의한 경우가 많다.스트레스가 있을 때 일시적으로 코티졸이라는 물질이 분비되지만, 만성적인 스트레스가 지속되면 코티졸 분비는 저하되고 결국 신경전달물질의 고갈이나 불균형이 초래돼 다양한 증상을 호소한다. 만성 피로 증후군을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약물은 아직 없다.다만 관련된 여러 증상이 있을 때 일시적으로 약물을 사용할 수 있다.알레르기나 비만, 호르몬의 불균형도 만성 피로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요인들을 교정하는 것도 필요하다.만약 신경 전달물질이 고갈됐다면 이들의 원료가 되는 아미노산과 필수 영양물질을 충분히 공급하는 것도 증상개선에 도움이 된다.식사의 패턴 운동여부, 알코올 섭취, 현재 본인이 감당하는 정신적인 스트레스 정도 등을 파악한 후 조절하는 것도 중요하다.복합적인 요인들을 찾아 교정하고 치료하면 대부분 증상이 호전될 수 있다. 도움말=영남대병원 가정의학과 정승필 교수 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김천 방초정

김천 시내에서 남쪽으로 황악산 바람재를 넘어 공자동 계곡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감천을 왼쪽에 두고 오른쪽으로 김천시 구성면 상원리 원터마을이 나온다. 마을 입구에 2층 누각으로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은 정자 하나가 길손을 맞는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로 주심포계 이익공 팔작지붕 양식의 건물로 1974년 12월10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6호로 지정된 ‘방초정’이다.1625년(인조3년) 원터마을에서 태어난 유학자 부호군 연안이씨 방초(芳草) 이정복(1575-1637)이 사별한 부인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정자로 알려져 있다. 세월이 흘러 퇴락해진 건물을 1689년 손자 이해가 중건하고, 다시 1727년에 보수했는데 이듬해 이인좌가 일으킨 ‘무신의 난’ 때 파손되고 말았다. 한동안 부서진 채 방치되다가 1737년에 일어난 홍수로 인해 유실된 누정을 1788년 5대 후손인 이의조가 현재의 위치로 이전해 세운 것이 현재 우리가 만나는 ‘방초정’이다.동남향인 ‘방초정’ 앞에는 오랜 세월을 견뎌온 고목을 품은 작은 연못이 하나 있다. 연못가에는 배롱나무를 비롯해 목백일홍, 나리꽃 등이 어우러져 한 여름에 찾아가면 왜 이곳을 ‘방초(芳草)’라고 부르는지 짐작할 수 있다.정자 바로 앞까지 자동차가 들어갈 수도 있지만 상원 마을 입구에서 부터 걸어가면서 보는 연못과 방초정의 풍경이 으뜸이다. 한 시인은 이 주변경치의 아름다움에 감탄해 ‘방초정십경(芳草亭十景)’이란 시문도 남겼다.‘방초정’이 있는 원터 마을은 조선시대의 관영숙소인 ‘상좌원(上佐院)’이 있던 곳인데 마을 이름은 여기서 비롯됐다. 이곳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조선중기인 1519년(중종3)으로 추정된다. 연안이씨 부사공파 일가가 처음으로 터를 잡고 마을을 이룬 이래 세거지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전형적인 반촌이다.​연안이씨는 신라 태종 무열왕 7년(660년)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정벌할 때 연합군 대총관 소정방의 부장으로 와서 공을 세운 후 신라에 귀화한 ‘이무’를 시조로 한다. 이무는 본래 중국 노자의 후손으로서 무열왕이 그를 ‘연안후’로 봉하고 식읍을 내린 것이 성씨의 출발이다.◆방초정과 최씨담(崔氏潭)‘방초정’은 2층 누각에 팔각지붕을 얹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장방형 건물이다. 2층 누각인 점은 일반적인 누정의 형태이나 2층의 방이 중앙에 자리 잡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양 끝에 방이 배치되는 누정의 일반적인 구조와는 달리 방에 앉아 사방을 조망할 수 있다는 게 ‘방초정’의 특징이다.누정 가운데 자리한 방의 둘레는 벽이 아니라 세 짝의 들문으로 이뤄져 있어 들문을 위로 들어 올려 걸어두면 사방으로 트인 공간을 이룬다. 이는 ‘방초정’이 자리한 곳이 평지라 마을 곳곳을 내려다 보는 것은 물론 마을을 오가는 사람들과 주변 논밭의 사정을 살필 수 있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또 한 쪽 방향으로만 보는 구조가 아니라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앉아 소통하기에 유리한 구조를 가진다. 들문을 내려서 닫더라도 문 한가운데 나있는 작은 살창 쌍여닫이문이 밖과 소통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정자의 아래층은 자연미를 살린 통나무 기둥에 2층 온돌방에 불을 지피는 아궁이와 굴뚝 기능을 하는 호박돌을 붙인 벽담으로 둘러싸여 있다. 기단 네 모서리 지붕 추녀에는 둥근 활주(闊柱)가 서 있어 건축적으로도 매우 아름답다.‘방초정’ 앞에는 ‘최씨담’이라 불리는 정방형의 연못이 있다. 두 개의 섬을 가진 연못은 이른바 ‘방지원도’로 이는 우리나라 전통적인 인공정원의 일반적인 형태다.연못가에는 수백 년은 됨직한 버드나무가 물가에 깊게 드리워 있고 배롱나무에 꽃이 피면 화사한 붉은빛이 연못에 비쳐 장관을 이룬다. 주변에는 오랜 세월 연못과 정자 곁을 지켜온 회화나무와 불두화, 사철나무, 작약, 원추리, 국화, 창포 등이 연못에 떠있는 개구리밥과 어우러져 정취를 더 한다.이정복이 세운 ‘방초정’과 인공연못인 ‘최씨담’에는 조선의 쓰라린 역사와 연안이씨 집안의 슬픈 가족사가 담겨 있다. 1592년(선조25)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구로다가 이끄는 제3번대와 모리와 시마즈가 인솔하는 제4번대가 성주, 지례, 개령, 김산을 지나 추풍령으로 향했다.​임진왜란이 일어나기 한해 전 인근 ‘하로마을’의 화순최씨에게 장가를 들었던 이정복은 처가에서 혼자 본가로 돌아와 있다가 전쟁이 터지자 선영이 있는 능지산 아래로 피신했다. 친정인 ‘하로마을’에 남아 있던 부인 최 씨는 왜군이 가까이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 죽어도 시집에서 죽겠다며 여종 석이를 데리고 시댁으로 향했다.​산길 40여 리를 걸어 원터마을에 도착했으나 이미 시댁식구들은 모두 피난을 가고 난 뒤 였다. 시댁식구들이 있는 능지산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중 왜구들과 마주치게 된 최 씨는 왜구에게 겁탈을 당하느니 깨끗하게 죽겠다며 웅덩이에 몸을 던진다. 최씨가 따르던 여종 석이에게 옷을 벗어 부모님께 전해주길 당부하고 자신은 명의로 갈아입고 투신하자 석이도 따라 뛰어들어 죽었다고 한다. 최씨의 나이 열 일곱이었을 때다. 후에 사람들은 이 웅덩이를 ‘최씨담(崔氏潭)’이라 부르고, 이정복은 부인이 자결한 웅덩이를 넓혀 연못을 만들고 그 옆에 자신의 호를 딴 ‘방초정’을 세웠다.​ 이러한 사연을 알고 난간에 오르면 연못의 두 섬은 이정복 부부처럼 안타까워 보이기도 하고, 최씨와 석이처럼 의연해 보이기도 한다.‘방초정’에 관해서는 또 다른 이야기도 전해져 온다.최씨 부인이 물에 빠져 죽고 난 후 신랑 이정복은 벼슬 임지에서 돌아와 부인을 잊지 못해 여러 해 동안 웅덩이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후손을 봐야 한다는 문중의 권유로 훗날 재혼을 하게 되지만 못 옆에 정자를 지어 이승에서 이루지 못한 부부의 인연을 영원토록 함께 하기를 기원했다고 한다. 그렇게 먼저 간 부인을 그리워하면서 지은 정자가 ‘방초정’이며, 웅덩이를 넓게 파서 만든 연못을 ‘최씨담(崔氏潭)’이라고 이름 지었다는 이야기도 전해 온다.방초정의 ‘방초’는 당나라 시인 최호(704~705)의 시 ‘등황학루’에서 따왔다. ‘앵무 섬에는 꽃다운 풀들만 가득하구나’(芳草萋萋鸚鵡洲)라는 싯구다. 황학루는 악양루, 등왕각과 더불어 중국 강남 3대 누각의 하나다. ‘방초’는 또 ‘춘향전’에서 이몽룡이 광한루 봄 풍경을 읊는 대목에도 나온다. ‘나뭇잎이 푸르게 우거진 그늘과 향기로운 풀이 꽃보다 나을 때(綠陰芳草勝花時)’라는 대목에서다.그러나 이정복에게 ‘방초’는 다른 의미였을 것이다. 부인이 자결할 때가 ‘녹음방초승화시’였던 5월말이나 6월초로 추정된다. 꽃잎 다 떨군 나무들이 새 잎을 달고 싱그러운 기운을 한껏 내 뿜을 때 이정복은 억장이 무너지는 아픔을 당했던 것이다. 그에게 ‘방초’는 절개를 지킨 부인의 향기였을지도 모른다. 이백과 최호가 ‘황학루’에서 앵무 섬을 내려다보며 예형의 죽음을 애도했듯이 이정복도 ‘방초정’에서 ‘최씨담’을 보며 부인의 죽음을 슬퍼했을 것이다.◆화순최씨 정려각과 여종 석이의 비석​마을 밖에서 ‘방초정’에 오르려면 정려각을 지나야한다. ‘방초정’ 들머리에 세워진 정려각에는 ‘절부 부호군 이정복 처증 숙부인 화순최씨지려(節婦 副護軍 李廷馥 妻贈 淑夫人 和順崔氏之閭)’라고 쓴 비각과, ‘충노석이지비(忠奴石伊之婢)’라고 쓰인 작은 비석이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이정복의 부인에게 인조임금이 1632년(인조 10년)에 내린 어필 정려각이다.‘충노석이지비(忠奴石伊之碑)’는 최씨 부인과 함께 자결한 몸종 석이의 비석이다. 이 비석은 연안이씨 후손들이 석이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제작했으나 종의 비석을 절부의 정려각 앞에 세울 수 없다며 ‘최씨담’에 던져졌다가 1975년 ‘최씨담’ 준설공사 중 발견돼 현재의 자리에 옮겨 놓았다.경북 유형문화재 제46호로 지정된 ‘방초정’에는 많은 시인과 묵객들이 누에 올라 주위의 경치를 찬미한 시와 글씨를 남겼다. 김천 삼산금오산, 황악산, 대덕산의 중앙을 관통해 흐르는 감천 중류에 위치한 ‘방초정’에는 편액뿐 아니라 20개가 넘는 시판이 걸려있다. 그만큼 ‘방초정’에서 조망되는 경치가 뛰어나다는 뜻이다.많은 시인 묵객들이 ‘방초정’에 올랐을 때 끓어오르는 시상을 시로 표현한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 가운데 작자를 정확히 알 수 없는 ‘방초정십경’이 유명한데, 방초정에는 십경의 제목이 각각 따로 판각돼 기둥과 대들보에 걸려있다. 그 가운데 일경 ‘일대감호(一帶鑑湖)’는 방초정에서 바라다 보이는 경치를 시로 표현했다.檻外鑑湖一帶流 (난간 밖에 감호가 한 줄 흐르니)明沙白石短長洲 (맑은 모래 흰 돌이 들쑥날쑥한 물가에 있구나)桃花氣暖春風靜 (복사꽃 기운이 따뜻한 가운데 봄바람이 고요하니)時有漁郞係片舟 (때때로 고기잡는 사내가 조각배를 매는구나)이 시에서 드러나는 정취는 아쉽게도 현재의 ‘방초정’에 올라서는 느낄 수 없다. 이 시가 말하는 ‘감호’는 ‘감천’으로 현재의 방초정에서 200m 이상 떨어져 있고 둑 아래여서 보이지 않는다. ‘방초정십경’이 지어진 시기가 난간 아래 감천이 흐르는 곳에 방초정이 있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이정복 부부의 애절한 사연을 간직한 채 오랜 세월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킨 ‘방초정’은 지난해 문화재청으로부터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도 지정됐다.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삼국유사 기행 (68) 백률사

삼국유사 전체 총론적인 성격을 가진 기이편에서 신라의 흥망성쇠를 더듬어 보고, 각론이자 본론이라 설명하는 흥법편에서 불교의 전래에 대한 이야기를 둘러보았다. 이번 호부터는 본격적인 불교사를 통해 전해지는 불국토 구현이라고 할 수 있는 탑상편을 소개한다.탑상편은 황룡사, 영묘사, 흥륜사, 백률사, 천룡사, 무장사, 민장사, 생의사 등의 유명 사찰과 종, 탑 등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간다.삼국유사 탑상편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가섭불연좌석에 이어 황룡사 장육, 황룡사 9층탑, 황룡사종과 분황사종, 흥륜사 금당십성 등의 내용이 나타나지만 기행 순서에 따라 백률사편을 먼저 소개한다.◆삼국유사: 백률사계림의 북쪽 산은 금강령이라 하고, 산의 남쪽에 백률사가 있다. 절에 대비상이 서 있는데 언제 처음 만들어진 것인지는 알지 못하나 신령스런 이적이 자못 많았다. 어떤 이는 중국의 뛰어난 기술자가 중생사의 불상을 지을 때 함께 만들었다고 한다.백률사 앞의 바위에 찍혀있는 발자국을 두고 사람들은 “이것은 대성이 일찍이 하늘의 도리천에서 돌아와 법당으로 들어갈 때 돌 위를 걸어간 발자국이다. 이제까지 문드러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또 어떤 이는 “부례랑을 구출해 돌아올 때 나타난 자취”라고도 말한다.천수 3년은 임진년(692)인데 9월7일에 효소왕이 대현 살찬의 아들 부례랑을 국선으로 삼았다. 1천여 명의 무리가 따랐는데 안상과 특히 가까이 지냈다. 천수 4년 계사년 늦봄에 무리를 이끌고 금란에 놀러 가다 북명 경계에 이르렀는데 말갈족에게 잡혀가니 무리가 모두 하릴없이 돌아왔으나 안상만 뒤쫓아갔다. 이때가 3월11일이다.왕이 이를 듣고 놀라 “아버님께서 신령스런 피리를 받아 내게 전해 주셨다. 지금 현묘한 가야금과 함께 궁궐 안 창고에 간직되어 있는데 어떤 이유로 국선이 적에게 포로가 되었단 말이냐, 이럴 어떻게 할꼬”라고 말했다.그때 상서로운 구름이 천존고를 뒤덮었다. 왕이 또 깜짝 놀라 창고 안을 살펴보라 했더니 가야금과 피리 두 보배가 없어졌다. “내 어찌 이다지 챙기지 못하여 국선을 잃더니 또 가야금과 피리를 잃어버렸단 말이냐”며 한탄했다.이에 창고지기 김정고 등 다섯 사람을 가두었다. 4월에 전국적으로 “가야금과 피리를 찾는 자에게 상으로 1년치 세금을 주겠다”고 방을 붙였다.5월15일, 낭의 두 부모가 백률사의 대비상 앞에 가서 정성들여 여러 날을 기도했다. 그러자 홀연히 상 위에 가야금과 피리가 나타나고, 낭과 안상 두 사람이 불상 뒤에서 걸어 나왔다. 두 부모가 엎어질 듯이 기뻐하며 오게 된 경로를 물었다.“제가 잡혀가 적국에서 목장 일을 하는데 갑작스레 단정한 스님이 손에 가야금과 피리를 들고 나타나 나를 따라오느라 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바닷가에 이르렀는데 안상을 만났습니다. 거기서 이 피리가 둘로 나눠져 두 사람이 각각 하나씩을 타고, 스님은 가야금을 타고 바다에 둥둥 떠서 돌아오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여기에 이르렀습니다”고 했다.이런 경위를 들은 왕은 크게 놀라며 낭을 맞아들이고, 가야금과 피리를 안으로 들였다. 금과 은으로 만든 각각 무게가 50냥 되는 다섯 가지 그릇 두 벌, 마납가사 다섯 벌, 굵은 명주 3천 필과 밭 1만 경을 절에 바쳐 부처님 은혜에 보답했다.나라 안에 대사면을 실시하고, 관련된 사람에게 직위를 3급씩 높여주고, 백성들에게 세금 1년치를 면제해 주었다. 절의 주지승은 봉성사로 옮기고, 낭은 대각간에 임명했다. 아버지 대현 아찬은 태대각간으로 삼고, 어머니 용보부인은 사량부 경정궁주로 삼았다. 안상 스님은 대통으로 삼고, 창고지기 다섯 사람은 풀어주면서 각각 5급의 벼슬을 내려주었다.6월12일 혜성이 나타나 동쪽 방면이 어두워지고, 17일에는 또 서쪽 방면이 어두워졌다. 일관이 “가야금과 피리에게 벼슬을 내리지 않아서 그렇습니다”고 아뢰었다.이에 신령스런 피리를 일컬어 ‘만만파파식적’이라 했다. 그러자 혜성이 사라졌다. 그 뒤에 영험스런 이적이 많으나 글이 길어져 싣지 않는다.◆새로 쓰는 삼국유사: 화랑과 고구려 출신 장군의 충돌효소왕 때 화랑의 국선이 되었던 부례랑은 왕의 신임을 두텁게 받고 있었다. 부례랑은 국선이 된 이후 1천여 명의 낭도들을 이끌고 전국을 유람하며 낭도들의 신체를 단련하는 한편 전술훈련 등으로 호연지기를 키웠다.부례랑 일행은 강원도 강릉을 지나 설악산에 이르러 산수를 즐기며 전술훈련을 하기로 했다. 설악은 산세가 아름다우며 계곡이 깊어 전쟁에 대한 훈련을 하기에 좋은 지역이었다.그러나 당시 설악산 일대에는 고구려 장군의 후손 대막호리가 대규모 목장을 경영하며 1만여 명의 가족들을 보살피고 있었다. 설악산 일원에서는 신라의 조정보다 대막호리의 영향력이 더 크게 미치고 있었다.대막호리는 장군의 후손답게 덩치가 우람하면서 무예에 뛰어날 뿐 아니라 덕이 있어 주민들이 모두 잘 따랐다. 그는 일대 목장과 농업, 임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대부분 자신의 휘하에 두고, 2천여 명의 청년을 군사훈련 시키며 사병으로 키워 외부침입에 대한 방어를 스스로 해결하고 있었다.이런 상황에 부례랑 일당이 전술훈련을 하면서 낭도들의 거침없는 행동이 대막호리 영역의 가축들을 놀라게 하는 한편 일부에서 농작물을 훼손하기도 하고, 부녀자들을 농락하는 사태가 벌어졌다.대막호리는 낭도들의 거침없는 행동에 크게 분노해 국선 부례랑과 안산 등의 우두머리 20여 명을 체포해 가두어버렸다.당황한 부례랑이 “우리는 신라의 화랑도들로 전국을 순회하면서 지역을 익히고 전술훈련을 하고 있는 중이다”며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선처를 부탁했으나 대막호리는 오히려 콧방귀를 뀌며 풀어주지 않았다.대막호리는 “너희들이 백성들에게 베풀어준 것이 무엇이냐, 우리가 말을 키우고 옥수수를 재배해 세금을 바친 것으로 배부르게 먹고살면서 고마움은 모르고 오히려 핍박하다니 가당찮다”고 꾸짖으며 화를 냈다.부례랑은 대막호리의 단호함에 전령을 불러 궁중으로 급파발을 보내 도움을 요청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고구려 장군의 후손 대막호리를 설득할 수 있는 군사나 강력한 힘을 가진 장수가 필요하다”고 짧게 사연을 적었다.효소왕은 국선 부례랑이 국내에서 볼모로 잡혔다는 소식에 깜짝 놀랐다. 통일 이후 신라 국민들에게 직접적으로 위해를 가할 군사가 있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못한 일이기 때문이다. 문무왕이 삼국을 통일하고, 신문왕에 이어 효소왕 대까지는 당나라와도 평화적인 분위기에서 교류하며 감히 신라를 넘보는 나라는 없었기 때문에 국선을 포로로 잡고 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었다.그때 백률사의 주지 스님은 고구려 출신 혜통 국사의 배움을 이어받은 정혜스님이었다. 정혜스님은 국내는 물론 국제 정세에 밝을 뿐 아니라 특히 고구려 신민들의 세계에서는 신적인 존재로 추앙을 받는 인물이었다.백률사는 흥륜사와 황룡사, 분황사에 이은 국가적인 사찰로 왕실에서도 잦은 법회를 주관하는 신라의 주요사찰 중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었다. 효소왕 또한 백률사 주지와는 긴밀한 유대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던 터라 부례랑의 소식을 접하고 바로 정혜스님을 불러 대책을 논의했다.왕의 밀지를 받아든 정혜스님은 무승 셋을 대동해 빠르게 설악산으로 이동했다. 화랑들의 무례한 행동으로 자칫 갈등관계가 깊어질 뻔했던 부례랑과 대막호리는 정혜스님의 주선으로 깨끗하게 오해를 풀고 친하게 되었다.“신라에는 더 이상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모두가 백성들을 위한 정치이고, 튼튼하고 건강한 나라를 위한 훈련 과정에서 빚어진 착오는 서로가 이해해야 합니다”는 스님의 말에 부례랑과 대막호리는 경계를 풀고 호탕한 건배를 나누며 뜨거운 관계로 발전해 나라를 위하는 일에 마음을 모으기로 다짐했다. *새로 쓰는 삼국유사는 문화콘텐츠 개발을 위해 픽션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역사적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대구·경북 고교총동창회 (24) 상주고

상주고등학교는 66년 역사를 지닌 지역 인재 배출의 요람이다.지금까지 학교를 졸업한 동문만 2만여 명에 달한다. 동문들은 사회로 진출해 상주고의 이름을 알리고 있다.강석진(4회) CEO컨설팅그룹 회장과 대통령 비서실장 및 통일부 장관을 역임한 류우익(13회) 동문, 국군 기무사령부 사령관과 국회의원을 역임한 김종태(14회) 동문, 대한치과협회 선거관리위원장을 지낸 조호구(15회) 동문, 기업은행장과 YTN 대표이사를 역임한 조준희(19회) 동문, 김상배(30회)·김상일(36회) 형제 부장 판사 등이 상주고의 동문이다.◆상주고 역사상주고는 1954년 전쟁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개교했다. 학교는 향토 인재 양성을 바라던 박인양 초대 이사장과 지역 유지들의 염원이 그대로 담긴 장소였다. 그 해 4월 흥암서원 상주고등학원에 소속된 2~3학년을 상주고로 편입시켜 첫 문을 열었다. 이후 2만여 명이 넘는 졸업생을 배출하며 지역 명문고로 자리 매김했다.1955년 7월 상주고는 현재 위치(상주시 상산로 117)로 자리를 옮겼다. 남산 구월봉 아랫자락에 있는 학교 터는 예로부터 명당으로 손꼽히던 장소였다. 여기에 조선시대 경상우도를 대표하는 교육기관 상주향교를 계승한다는 의미도 담았다.상주고가 획기적인 발전의 전기를 마련한 것은 국내 최고의 제약회사인 동아제약 창업주인 강중희 회장이 1964년 9월 상주학원 이사장으로 취임하면서부터다.강 이사장은 개교 이념을 육영, 향토개발, 인재양성으로 정하고 교직수당을 신설해 우수한 교원을 초빙하는 등 교직원을 진심으로 아끼는 것은 물론 학교 부지 확장, 건물 신축 등 학교 환경도 일신했다.이후 1977년 7월 현 강신호 이사장(동아쏘시오홀딩스 명예회장)이 취임하면서 학교는 더욱 많은 투자와 발전을 이루고 있다. ‘옳게 배우고 참되게 살자’라는 교훈을 바탕으로 대학입학시험에서 괄목한 성과를 지속적으로 이루고 있다.학교에 대한 투자는 1977년 7월 강신호 현 이사장이 취임한 뒤에도 꾸준히 이뤄졌다.상주고는 넓은 부지와 두 개 동의 교사를 비롯해 기숙사, 도서관, 체육관, 급식소, 중강당, 인조잔디운동장 등을 갖추고 있다. 이런 교육환경을 가진 고등학교는 경북 전체를 뒤져봐도 좀처럼 보기 어렵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교정의 소나무숲은 2002년 11월 산림청·생명의숲가꾸기국민운동·유한킴벌리가 주관한 ‘제3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우수상에 뽑힐 정도로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창의성, 인성, 전문성 지닌 지역인재 양성학령인구 감소 등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상주고는 지역 명문고의 자리를 지켜왔다. 특히 개인별 맞춤식 진로교육에 초점을 맞춘 교육과정은 대학 입시 성과로 나타났다.최근 6년간의 대학수학능력 시험에서 상주고는 경북 전체 계열별 1, 2, 3위를 차지했다.2020학년도 대입에서는 서울대 2명, 연세대 4명, 고려대 1명, 의과대학(연세대 등) 9명, 과학기술원(KAIST 등) 5명, 교육대학(대구교대 등) 4명, 수도권대(서울대 2명 등) 39명, 지방 국립대학(경북대 8명 등) 90명이 합격하는 성과를 올렸다.서울대 일반학과보다 사실상 합격 점수가 더 높은 의학계열 진학 학생이 늘어난 점을 주목할 만하다. 올해 대학 입시에서는 의과대학에 진학한 학생은 9명, 2012년부터 현재까지 무려 18명이 의대와 치의대, 한의대에 입학했다.2019년엔 경북교육청으로부터 인성교육 중점학교와 소프트웨어 선도학교, 과학 중점학교로 지정돼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다.◆체육대회 등 통해 선후배 간 우의 다져상주고 총동창회는 매년 개교기념일인 4월20일 전후로 본교 교정 등에서 총동창회 총회와 체육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올해는 코로나19 사태로 무기한 연기했다.총동창회 체육대회는 전국에서 매년 500~1천여 명의 많은 동문이 참석해 성황을 이룬다. 이 모임을 통해 동문들은 동기, 선·후배 간의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이는 모교에 대한 사랑과 동문 간 화합·소통의 장을 만들고 있다.상주고 총동창회 산하에는 각종 모임이 결성, 운영 중이다. 그중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는 모임으로 상주고 총동문골프회를 꼽을 수 있다. 이태구(24회) 회장을 필두로 재경(서울)·재구(구미)·재부(부산) 300명 이상의 동문이 활동하고 있다.매년 상주고 총동창회장 배 및 SBS 고교동창골프대회에 참가하고 있다. 올해도 키움증권배 SBS 고교동창 골프최강전에 한상준(30회), 김진수(35회), 박재철(36회) 동문이 참가해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또 대회에 참가하지 않는 동문들도 100명 이상의 응원단을 꾸려 열광적인 분위기로 동문 대표를 응원하는 등 끈끈한 학교애를 자랑하고 있다.◆학교를 사랑하는 마음은 선·후배 구분없다상주고를 졸업하거나 재학 중인 사람들은 상주시민들로부터 “공부 잘하나 보네”라는 말을 한 번 이상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지역에서 가장 우수하며 가장 많은 졸업생을 배출한 동문들은 지역의 크고 작은 일은 도맡아 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이렇듯 상주시민들의 성원과 교육열로 상주고 동문이면 누구나 학교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이러한 마음은 선배들의 후배들을 위한 기부로 매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올해 코로나19로 인한 마스크 품귀 현상이 일어나자 바이오파마 최창욱 회장(23회)이 후배들과 교직원들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덴탈 마스크 1만 개를 기부하며 학교를 사랑하는 마음을 보여주었다. 또 용마로지스 금중식 대표이사(26회)는 학교발전기금과 KF94 마스크 1천 개를 기부하는 등 기회가 될 때마다 모교와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동문장학금으로 정암장학회(4회 강구한), 미래꿈장학회(4회 강석진), 삼백장학회(10회 신종운), 상주고장학문화재단(이사장 민광옥 18회), 호원장학회(19회 조호구), 대경장학회(20회 김철대), 이온이엔지장학회(27회 윤칠용), 백화점약국장학회(34회 김상배), 서울내과장학회(39회 여범곤)와 졸업기수별 장학회(21회, 30회, 32회, 33회, 34회, 35회, 38회, 39회)를 비롯한 많은 동문 장학회에서 후배들에게 장학금을 기부하고 있다.한편 2019년 상주고 장학금 규모는 2억여 원으로 경북도내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대부분의 장학금은 학교법인 장학금인 수석문화재단과 동천수장학회 등과 동문 장학금이다.◆모교와 동문 잇는 가교이런 성과의 바탕에는 총동창회가 있기 때문이다. 사회 각계각층으로 선배들이 후배들을 응원하고 지켜보고 있다.상주고 총동창회는 1959년 8월 창립됐다. 초대 회장은 김길용 동문이 맡았다. 그 후로 15명의 동문이 동창회를 이끌었다.2대는 박준영(3회), 3대 장수영(2회), 4대 김옥출(1회), 5대 박성락(2회), 6대 강구한(4회), 7대 강석진(4회), 8대 유상근(5회), 9대 김광수(13회), 10대 조호구(15회), 11대 남상도(17회), 12대 민광옥(18회), 13대 장상수(19회), 14대 김철대(20회), 15대 박두석(21회), 현 16대 회장은 김영준(23회) 동문이다.그동안 총동창회는 모교와 동문, 모교와 지역사회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해 왔다. 장학금 기부 등을 통해 후배 사랑을 실천하고 뜻깊은 행사를 통해 동문들을 하나로 묶었다. 또 다양한 봉사활동을 통해 지역사회 발전에 공헌하기도 했다.상주고 총동창회는 매년 개교기념일인 4월20일을 전후로 모교에서 총회를 겸한 체육대회를 연다. 많게는 1천여 명의 이르는 동문이 이날 학교를 찾는다.총동창회 산하에 각종 모임도 활발하다. 특히 총동문골프회는 재경·재구·재부 등 300명 이상의 동문이 참가할 정도로 관심이 높다. ◆김영준 상주고 총동창회장 인터뷰상주고 총동창회 제16대 김영준 회장(23회)은 “최근 몇 년간 상주고가 거둔 대입 성적은 교육 일선에서 힘써주는 교직원과 총동창회, 학교법인, 후배 등 교육공동체 구성원 전원이 만들어낸 성과”라며 “학교의 발전과 모교 후배들을 위해 총동창회가 정신적·물질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상주고가 지역사회 교육기관으로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만큼 총동창회도 그에 걸맞은 지원을 해야 한다는 게 김 회장의 생각이다.그러기 위해선 사회 각계각층으로 진출한 동문을 하나로 묶는 총동창회 본연의 역할이 중요하다. 총동창 회장으로 취임한 뒤 그가 동창회 명부를 발간하는 사업에 집중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김 회장은 동문들의 소통과 교류를 위해 졸업생의 거주지역과 직업, 기수를 파악해 1만 명 이상의 동문 소식이 담긴 동창회 명부를 최근 펴냈다.그는 “동문들의 소식을 하나하나 파악하고 이를 기록하기 쉽지만은 않았다”면서도 “먼저 만들어진 동창회 명부를 통해 동문 간 교류와 소통을 확대하고 빠른 시일 내에 동창회 명부를 추가로 완성하는 것이 남은 숙제”라고 말했다. 그는 상주고의 역사와 전통을 기리기 위해 총동창회관 건립도 계획하고 있다.김 회장은 “점점 학교의 신입생 유치가 어려워지고 있다”며 “상주뿐 아니라 전국 중소 도시에서든 똑같은 상황이지만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고 말했다.그러면서 “중소도시 학교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수한 인재를 유치해 학교의 전통과 발전을 이어가는 것은 물론 어려운 여건의 학생을 위한 지원도 함께 늘려가야 한다”며 “학교를 졸업한 동문들이 더 소통하고 뭉쳐 다 같이 모교 발전에 힘을 보태게 하는 일이 총동창회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그는 동문들의 교류를 강화할 수 있는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할 계획이다. 김 회장은 “크고 작은 행사를 통해 모교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모교 장학기금을 확대해 총동창회가 학교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설명했다.최근 총동창회는 사무실을 상주고 앞으로 옮겼다. 학교 가까이에서 학교를 도울 수 있는 일을 찾아보고 학교 발전을 위해 총동창회의 힘을 보태기 위해서다.김 회장은 “뿌리가 튼튼한 나무가 오래가고 멋있는 법”이라며 “항상 모교를 생각하고 명문 사학으로의 발돋움 하기 위해 2만 동문이 다 같이 함께 노력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김일기 기자 kimik@idaegu.com

통풍…바로 알고 치료하자

통풍은 체내에 과다하게 축적된 요산이 결정화되면서 관절과 관절 주변 조직에 반복적으로 염증을 일으키는 만성질환이다.고혈압과 당뇨처럼 만성적인 질환이며 약물로 치료하고 관리하는 병이라고 생각하면 된다.우리나라의 통풍 유병률은 점차 증가하는 추세이다.2008년에는 전체 인구의 0.4%였는데 2015년에는 0.8%로 증가했다. ◆원인과 주요증상통풍의 주된 원인은 요산의 증가 (고요산혈증)이다.요산은 우리 몸 안에서 일어나는 퓨린 대사의 최종 산물이다.대부분의 포유류는 요산분해효소를 가지고 있어서 요산이 분해돼 배설이 되지만, 인간을 포함한 영장류는 요산분해효소를 가지고 있지 않아서 혈중 요산이 증가한다.고요산혈증은 △요산이 과다하게 생성되거나 △요산이 제대로 배설되지 않을 때 생긴다.대표적인 원인으로 퓨린이 많이 함유된 음식을 먹으면 요산이 증가하고 요산은 대부분 신장(콩팥)으로 배설되는데 신장 기능이 저하되면 요산이 늘어난다.퓨린이 많이 함유된 음식은 맥주, 육류 (특히 육류의 내장), 조개, 새우, 등푸른 생선 (고등어, 정어리 등), 과당이 많이 포함된 음료 (예. 탄산음료) 등이 있다.통풍의 증상은 관절과 관절 주변이 빨갛게 부어오르고 열감 및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는 것이다.주로 엄지발가락, 발등, 발목, 무릎과 같은 하지의 관절에 생기지만 드물게 손목, 손가락, 팔꿈치에도 나타난다.통풍은 급성 통풍 발작 시기와 통풍간헐기로 구분할 수 있다.급성 통풍 발작은 위에서 설명한 관절이 붓고 아픈 증상이 갑자기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간헐기 통풍은 통풍 발작이 지난 후 통증이 없는 상태다.통풍 발작이 사라졌다고 통풍이 없어진 것은 아니므로 꾸준한 약물 치료를 해야 한다.통풍의 치료가 제대로 되지 않을 경우 통풍결절(요산덩어리)이 관절 주위에 계속 남아있게 되고, 이는 급성 통풍 발작이 반복되는 원인이 되며 관절의 손상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진단과 치료진단은 임상 증상을 바탕으로 피 검사, 관절액 검사, 이중 에너지 CT 등을 통해서 할 수 있다.관절이 붓고 아픈 증상이 있으면서 피 검사에서 혈중 요산 수치가 올라가있는 경우에는 통풍의 가능성이 크다.간혹 급성 통풍 발작 시기에는 일시적으로 요산 수치가 평소보다 감소하는 경우도 있다.부어 있는 관절에서 관절액을 뽑아서 편광현미경으로 보면 요산결정이 보이기도 하고, 이중 에너지 CT에서 요산결정이 관절 주위에 침착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런 소견들이 나타나면 통풍으로 확진을 할 수 있다.또 감염성 관절염, 류마티스관절염, 재발성류마티즘, 가성통풍 등과 비슷한 양상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어서, 다른 질환의 가능성은 없는지도 항상 염두에 두고 검사해야한다. 통풍의 치료는 크게 △급성 통풍 발작의 치료 △요산저하치료 (근본적인 치료)로 나눈다.급성 통풍 발작은 비스테로이드소염제, 콜히친, 스테로이드와 같은 약을 먹어서 조절한다.통풍 발작이 있을 때 단기간 복용하고, 통풍 발작이 지나가면 중단한다.요산저하치료는 통풍으로 진단된 환자들 중에서 반복되는 급성통풍발작이 있거나, 만성신부전 (신장기능 저하), 관절에 요산결정체가 쌓인 경우 등에게서 시작한다.꾸준히 요산저하제를 복용하면 몸속의 요산을 낮추고 관절 주위에 요산이 쌓이는 것을 치료하고 예방하게 된다.몸속의 요산 수치는 적정 범위를 유지하는 것이 좋으므로, 요산저하제를 복용하면서 요산 수치가 3~6 ㎎/㎗ 사이를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생활 속 예방통풍은 약물 치료와 함께 비약물치료(식이요법과 생활습관 개선)를 병행하는 것이 좋다. 영양소가 골고루 포함된 식단으로 구성하되 퓨린 함량이 많은 식품들 (특히 고기의 내장류와 과당이 함유된 탄산음료 등)은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그리고 과음과 잦은 음주도 피해야 한다.또 충분한 수분 섭취를 하고 적절한 유산소운동을 할 것을 권한다.간혹 고기나 생선을 아예 먹지 않는다는 환자들이 있는데 이때는 필요한 영양소의 섭취를 위해서 반찬으로 적정량을 드시는 것은 문제가 없다.그리고 맥주만 안 먹고 소주와 막걸리와 같은 다른 술들은 괜찮다고 생각하시는 사람이 있는데 대부분의 술이 통풍에는 좋지 않으므로 가급적 술은 중단하시는 것을 권한다. ◆오해와 진실Q=통풍은 아플 때만 치료하면 된다?A=아니다.급성 통풍 발작의 치료는 아플 때만 하는 것이 맞다.하지만 통풍 발작의 원인을 제거하지 않으면 통풍 발작이 반복한다.따라서 꾸준한 요산저하제 복용으로 몸속의 요산을 낮추고 관절 주변에 쌓인 요산결정을 없애야 한다.만성신부전과 같이 신장 기능이 저하된 통풍 환자들도 요산저하치료를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Q=통풍의 증상은 관절이 붓고 아픈 것으로만 나타난다?A=아니다.통풍은 만성신부전, 요로결석, 고혈압, 고지혈증, 비만, 당뇨병, 혈관질환 (동맥경화, 심근경색, 뇌졸중)과도 관련이 있다.통풍이 조절되지 않으면 위의 질환들의 위험도 높아진다.따라서 통풍이 있다면 전문가와 상의하여 잘 치료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도움말=대구가톨릭대병원 류마티스내과 김지원 교수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삼국유사 기행 (67) 법왕이 살생을 금하다

백제 29대 법왕은 28대 혜왕과 같이 즉위 기간이 1년 남짓으로 짧아 역사적인 기록이 많지 않다.당시 삼국시대는 각국이 상대국가의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 첩자를 많이 활용했다. 잘못된 정보를 얻는 경우도 있었지만 다방면으로 여러 첩자를 통해 정보를 수집했기 때문에 서로 잘 알고 있었다.가장 힘이 약했던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압박하는 강한 나라로 자리를 굳혀가자 고구려와 백제는 앞다투어 이에 대한 원인을 분석하기에 이르렀다.백제 법왕은 신라가 황룡사, 분황사, 흥륜사 등의 대규모 사찰을 통한 불교를 장려하고, 화랑제도를 통한 교육을 강화해 국력을 결집하고 있다고 분석해 불교 장려정책을 쓰기로 했다.그러나 법왕의 노력은 짧은 재위기간으로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30대 무왕이 그의 정책을 이어받아 강한 나라의 기틀을 다지게 됐다. 무왕은 법왕의 불교장려 정책에 따라 왕흥사를 대대적인 국찰로 완공했다. 이어 불법을 장려해 나라의 힘을 키워 신라와의 전쟁에 나섰다.◆삼국유사: 법왕이 살생을 금하다백제 제29대 법왕은 이름이 선이고, 효순이라고도 했다. 개황 10년 기미년(599)에 왕위에 올랐다. 이해 겨울 명령을 내려 살생을 금하고, 집안에서 기르는 매 같은 새를 놓아주며 천렵질 하는 도구를 모두 불살라 사냥을 일체 못하게 했다.다음해 경신년에는 승려 30명에게 도첩을 내리고, 그때 도읍지인 사비성에 왕흥사를 지으려다 기초만 닦고 돌아가셨다.무왕이 이어 아버지가 기초를 놓은 곳에 기둥을 올려 여러 해 지나 완성을 보았다. 그 절의 이름을 미륵사라고도 한다. 산을 등지고 앞에 물이 흐르며 꽃나무가 빼어나 사계절의 아름다움을 두루 갖추었다.왕은 늘 배를 타고 강물을 따라 절에 들어가며,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했다.짐승들에게도 베푼 너그러움은 온 산에 도탑고/ 돼지며 물고기도 흡족한 혜택에 사해가 인자롭다/ 갑작스레 별세했다 섭섭히 말하지 말라/ 상계 도솔천은 바야흐로 꽃다운 봄이리니.◆백제 법왕과 무왕-법왕은 백제 제29대 왕으로 신라 진평왕 시대인 599년부터 600년까지 1년 남짓 왕위에 있었다. 성은 부여(夫餘), 이름은 선(宣) 또는 효순(孝順), 여선(餘宣) 등으로 전한다. 제28대 혜왕의 맏아들, 또는 제27대 위덕왕의 아들이라는 기록이다.법왕은 혜왕과 같이 재위 기간이 짧아 전해지는 기록은 많지 않다. 시호에서도 나타나듯이 불교를 숭상해 왕위에 오른 599년 12월에 살생을 금지하고 민가에서 사냥용으로 기르는 매와 새매를 모두 놓아주고 고기 잡고 사냥하는 도구를 모두 태워버리라고 명령했다.그리고 이듬해에는 왕흥사(王興寺)를 창건하고 승려 30인을 출가시켰으며, 가뭄이 들자 칠악사에서 기우제를 지냈다는 내용이 전해진다.삼국사기에는 왕흥사가 600년에 창건하기 시작해 무왕 때인 634년에 완성되었다고 기록돼 있지만 삼국유사에는 무왕 때에 지명법사의 도움을 받아 연못을 흙으로 덮어 창건했다고 기록되어 있다.2007년 충남 부여의 왕흥사지에서 발굴된 청동 사리함에는 “정유년(577년) 2월15일 백제왕 창이 죽은 왕자를 위해 사찰을 세웠다. 본래 사리 2매를 묻었을 때 신의 조화로 셋이 되었다”는 명문이 새겨져 있어서 왕흥사가 법왕 이전인 위덕왕 때에 이미 창건된 것으로 확인되었다.-무왕은 백제 제30대 왕으로 법왕에 이어 600년에 왕위에 올라 641년까지 집권했다. 성은 부여(夫餘), 이름은 장(璋)으로 수나라 기록에는 여장(餘璋)이라고 적혀 있다. 삼국사기를 비롯한 대부분 사서에는 29대 법왕의 아들로 기록하고 있다.무왕은 풍채가 뛰어나고 뜻과 기상이 호방하고 걸출했으며, 신라에 빼앗긴 영토를 찾기 위해 많은 시간을 전쟁터에서 보냈다. 그래서 신라와는 계속해서 갈등 관계에 있었다.무왕은 특히 623년 이후에는 거의 매년 신라와 전투를 벌였다. 627년에는 무왕 자신이 군사를 이끌고 웅진에 머무르며 신라에 대한 대규모 공격을 단행했다. 하지만 당나라의 개입으로 대규모 정벌은 실현되지 못했다.무왕은 고구려와도 갈등 관계에 있었다. 남북조시대를 끝내고 중국을 재통일한 수나라와의 외교관계를 통해 고구려를 견제하려고 했다. 611년에는 수나라와 사신을 주고받으며 고구려 침공에 대해 의논했다.수나라가 멸망하고 당나라가 건국된 뒤로는 해마다 당나라로 사신을 보내며 긴밀한 외교 관계를 맺었다. 그리고 왜(倭)와도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 관륵을 보내 천문지리 등의 서적과 불교를 전하기도 했다.무왕은 재위 기간에 신라와의 접경 지역에 여러 성을 쌓으며 국방을 강화하려고 노력했다. 왕권 강화를 나타내기 위해 궁궐을 대대적으로 중수하기도 했는데 630년에 사비의 궁궐을 중수했다.또 무왕은 삼국유사에 서동설화의 주인공으로 용의 아들로 탄생해 진평왕의 선화공주와 결혼해 왕위에 오른 것으로 소개되고 있다. 이 이야기는 고대부터 전승된 설화에 여러 가지 역사적 사건들이 뒤섞이며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무왕은 재위 42년째인 641년 3월에 죽고, 그의 맏아들인 의자왕이 왕위를 계승했다.◆새로 쓰는 삼국유사: 법왕과 무왕의 신라 베끼기백제 법왕은 급성장한 신라의 국력에 당황하면서도 황당해하는 한편 그 힘의 바탕에 의문을 가졌다. 백제는 다소 우월적 위치에 있었다고 자부하던 입장에서 공격을 받아 영토의 상당 부분을 잃은 이후 반성의 시간을 가진데 이어 만회의 기회를 노렸다.백제는 신라의 공격에 대한 복수를 꿈꾸며 신라의 성장배경과 힘의 원동력, 허점을 파악하기 위해 다각적으로 첩자를 심어 정보를 수집했다. 결국 신라가 성장한 배경에는 불교를 국가이념으로 삼은 탄탄한 정신적 결집을 찾아냈다. 또 화랑제도를 통한 인재양성의 교육철학이 끊임없는 성장의 원동력이라는 것을 파악하고 따라잡기에 나섰다.법왕은 먼저 백성들이 서로 사랑하고, 하나의 이념으로 뭉치는 정신적 합일점을 찾아가는 길을 불교적 심리전파라고 결론짓고, 불교중흥 정책을 대대적으로 펼쳤다.법왕은 국민들을 정신적으로 통일시키기 위해 상징적인 절을 짓기로 하고, 나라의 중심에 거대한 사찰 왕흥사 건설에 나섰다. 왕은 곧 나라이다는 생각에 절을 왕궁처럼 거대하게 설계하고 건축을 시작하면서부터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으려 했다.또 전국에 불교적 이념을 퍼뜨리기 위해 가장 먼저 사냥을 금지하며 살생을 못하게 했다. 백성들이 마음속에서부터 나라를 걱정하는 자세를 가질 수 있게 상징적으로 엄격하게 불교적 이념을 전파했다. 지명법사와 같은 유명 고승을 초빙하고, 승려들의 공부를 지원했다.법왕의 이러한 판단은 신라가 흥륜사 건축에 이어 왕궁에 버금가는 황룡사, 분황사, 영묘사, 영흥사 등의 대규모 사찰을 나라의 중심부에 줄줄이 세워 운영하는데 영향을 받았다.법왕의 불교 진흥정책은 다음 무왕에 그대로 전해졌다. 무왕은 신라의 중심부까지 숨어들어 정책은 물론 지리적인 특성까지 속속들이 몸으로 부딪치며 파악하고 있었다.무왕은 결국 왕흥사를 완공하고, 온 국민이 하나로 기원하며 마음을 모을 수 있게 동서 쌍탑을 건립했다. 왕흥사는 국민적 염원을 들어주는 미륵불을 안치하면서 미륵사로 이름을 바꾸어 백제를 대표하는 사찰로 천 년이 지나도록 이름이 전해지고 있다. *새로 쓰는 삼국유사는 문화콘텐츠 개발을 위해 픽션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역사적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한눈에 세계여행 하기 (13) 뉴질랜드①

뉴질랜드는 화려한 도심 속 자연 풍경과 수상 액티비티를 만끽할 수 있는 매력적인 나라다. 우리나라보다 3시간 빠르며, 정 반대의 사계절을 가지고 있다. 봄은 9~11월, 여름은 12~2월, 가을은 3~5월, 겨울은 6~8월이다. 우리나라와 다른 매력을 지닌 뉴질랜드를 방문한다면, 가봐야 할 대표 여행지 2곳을 추천한다. 세계에서 가장 작다고 알려진 뉴질랜드의 수도 ‘웰링턴’과 뉴질랜드의 최대 도시 ‘오클랜드’다. 웰링턴은 뉴질랜드 정치·문화·예술의 중심지로 시내 어디에서나 창조적이며 생기발랄한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매력적인 여행지다. 또 오클랜드는 그림 같은 바다를 중심으로 고요한 섬과 활기찬 도시 풍경이 공존한 주요 관문으로 통한다. ◆세계에서 가장 작고 멋진 수도, 웰링턴 웰링턴은 세계에서 가장 큰 독립 여행 안내서 출판사인 론리플래닛에 의해 ‘세계에서 가장 작고 멋진 수도’로 찬사를 받은 곳이다. 문화·예술의 중심지답게 뉴질랜드 국립박물관(테 파파 통가레와, Te Papa Tongarewa), 뉴질랜드 심포니 오케스트라, 로열 뉴질랜드 발레단 등 많은 문화 시설을 갖추고 있어 언제나 다양한 문화 체험을 즐기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테 파파 통아레와’는 보물 창고라는 뜻을 지닌 뉴질랜드의 국립박물관이다. 이곳은 오세아니아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방문한다. 전시 공간에는 뉴질랜드 원주민인 마오리와 태평양 문화유산, 뉴질랜드의 고유한 자연생태, 소중한 예술적 유산, 독특한 역사가 담긴 흥미로운 체험 전시물이 가득하다. 최신 기술과 전통적인 스토리텔링 기법을 결합한 전시물을 통해 관람객들에게 즐거움과 함께 다양한 영감을 제공하고 있다. 영화 마니아라면 뉴질랜드 영화 산업의 중심지인 웰링턴에서 ‘웨타 케이브(Weta Cave)’를 방문해보자. 웨타 케이브에서는 웰링턴의 할리우드로 알려진 ‘웰리우드’의 생생한 영화 속 세계를 만나볼 수 있다. ‘반지의 제왕’, ‘호빗’, ‘나니아 연대기’ 등 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아온 다양한 영화 속 판타지를 현실에서 만나볼 수 있는 꿈과 같은 경험을 선사한다. 특히 웨타 케이브 워크숍 투어에서는 20년 넘게 진행해온 창조적인 영화 제작 방식을 가까이서 들여다볼 수 있다. 영화에 사용된 의상·괴물들을 실제로 보고 만지며, 상상의 세계가 현실로 구현되는 과정에 대해 배우는 흥미진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또 웰링턴은 거리음식부터 고급식당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수준 높은 음식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미식 여행지다. 쿠바 스트리트(Cuba Street)는 뉴질랜드에서 히피 문화가 가장 두드러지는 곳으로, 보헤미안 스타일의 보석 같은 맛 집이 숨겨져 있는 곳이다.세련된 레스토랑과 멋진 바와 보석 같은 맛 집들이 즐비한 최고의 음식 문화 거리다. 웰링턴을 대표하는 고급 레스토랑인 매터혼(Matterhorn)과 로건 브라운(Logan Brown)도 찾아볼 수 있다. ‘매터혼’은 영화 제작자와 예술인들이 자주 찾는 명소로 유명하며, 로건 브라운은 격조 높은 인테리어와 혁신적인 요리로 명성이 높은 곳이다. 지중해식 요리를 선보이는 올리브(Olive)와 세탁소를 이색적인 바와 레스토랑으로 탈바꿈한 론드리(Laundry) 등 다양한 맛 집도 탐방할 수 있다. ◆청정 바다와 힙한 도시 문화의 공존, 오클랜드 오클랜드는 뉴질랜드 최대 도시이자 주요 관문이다. 그림 같은 바다를 중심으로 고요한 섬, 활기찬 도시 풍경이 공존하는 도시다. 하얀 백사장이 있는 서해안과 검은 모래 해변이 장관을 이루는 동해안까지 어디서나 가깝다. 또 요트의 도시라는 별명답게 요트를 빌려서 한가롭게 주변의 섬을 다니기에도 아주 좋다. 바다에서 요트를 타고 활기찬 수상 액티비티를 즐기는 것은 물론, 세련된 도시 문화 속에서 문화적 다양성이 어우러진 음식과 예술, 문화를 모두 만끽할 수 있다. 크고 작은 명소가 도시 안팎으로 많아 시티투어, 데이투어 등 일정이나 취향에 맞게 즐길 수 있는 투어 종류가 많다. 짜릿한 스릴이 넘치는 액티비티 명소, ‘스카이 타워’는 오클랜드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다. 뉴질랜드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328m에 달하는 높이는 남반구에서도 가장 높은 건축물로 기록돼 있다. 220m 높이의 스카이덱 전망대에서는 날씨가 좋을 경우 반경 82㎞까지 360도로 환상적인 전망을 감상할 수 있다. 스카이 타워에서는 스릴 넘치는 공중 액티비티도 즐길 수 있다.높이 192m에서 타워에서 뛰어내리는 스카이점프와 타워 주위를 걸어 보는 스카이워크를 통해 짜릿함을 만끽할 수 있다. 또 오클랜드에서는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모여 살아 다채로운 음식을 접할 수 있다.‘퀸즈 라이즈(Queen’s rise)’와 ‘아마노(Amano)’는 핫한 먹킷리스트 명소다. 오클랜드 중심가에 위치한 퀸즈 라이즈는 힙한 분위기 속에서 터키, 중국, 일본 등 세계 각국의 음식 문화를 두루 경험할 수 있다. 아마노는 수제 이탈리아 요리와 석조 및 목재가 조화를 이루는 고급스러운 인테리어가 돋보여 꼭 한 번 가보아야 할 먹킷리스트 명소다. 다양한 패션 피플들의 예산과 눈높이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패션 명소도 있다.쇼핑 명소인 ‘퀸 스트리트(Queen Street)’와 ‘카랑가하페 로드(Karangahape Road, 일명 K’Road)’는 힙한 도시 문화를 느낄 수 있다. 특히 퀸 스트리트는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와 현지 디자이너들의 소규모 부티크를 함께 둘러볼 수 있는 대표 명소다. 복고풍 패션을 선호한다면 다양한 빈티지 부티크를 찾아볼 수 있는 카랑가하페 로드도 추천할 만하다.문화적 다양성만큼이나 다채로운 감성과 문화를 만끽하며 흥미진진한 시티 투어를 즐길 수 있다. ‘데본포트(Devonport)’는 아름다운 해변과 지나간 역사의 흔적을 그대로 둘러볼 수 있는 해변 명소다. 오클랜드 시내에서 항만 건너편으로 곧장 보이는 곳에는 클래식한 매력과 함께 아름다운 전망을 즐길 수 있다. 주요 도로에서 살짝 벗어난 위치 덕분에 흐트러짐 없이 과거의 흔적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특히 데본포트의 해안가 마을은 클래식한 매력과 평온한 분위기가 공존하는 곳이다. 1800년대 말과 1900년대 초에 건축된 콜로니얼 목조 빌라가 거리에 즐비하고, 오클랜드 시내 중심지로 향한 해안 쪽에는 격조 있는 저택이 여러 채 자리 잡고 있다. 도로를 따라 늘어선 유서 깊은 건물들에 자리 잡은 빅토리아풍 카페나 골동품 숍, 공예점들을 구경하며 산책을 즐기기 좋다.-자료 제공: 뉴질랜드 관광청구아영 기자 ayoungoo@idaegu.com

청도 운문사 비로전

코로나19로 일상생활이 바뀐 지도 벌써 4개월이 넘었다. 추운 겨울을 지나 봄이 찾아오면서 땅에는 새싹이, 나무에는 꽃망울이 부풀어 올랐다. 하지만 봄 풍경, 정취를 느껴볼 틈도 없이 여름이 가까워 오면서 얼굴을 감싸고 있는 마스크처럼 답답한 연속의 나날이다.코로나19로 지친 마음을 달래고자 청도 운문사로 향했다. 대구에서 가까우면서 마음의 안식을 찾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해서다.수헌(壽軒) 이중경(1599~1678)이 쓴 오산지(鰲山志)에 따르면 청도는 예로부터 ‘산과 시내가 맑고 아름다우며 큰길이 사방으로 통한다’는 ‘산천청려, 대도사통’에서 유래했다고 한다.그 말 그대로 운문사로 향하는 길은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운문댐을 지나 구비진 길 사이사이엔 신록의 짙푸름이 평행선을 그으며 달리고 있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렸지만 신록 속에 가라앉은 오염되지 않은 공기를 마시기 위해 창문을 열었다. 얼마나 오랜만에 맡아보는 자연 그대로의 공기인지. 적어도 이곳에서 코로나19는 먼나라 이야기임을 새삼 느낀다.차를 멀리 주차해놓고 운문사까지 걸어갔다.주차장에서 운문사로 향하는 길은 어린이들도 쉽게 걸어갈 수 있을만큼 쉬운 길이다.여느 사찰과 달리 계단이 많지 않다. 천천히 걸으며 절로 향하는 동안 앞만 보고 달려온 스스로의 삶을 한 번쯤 되돌아보라는 부처님의 뜻이 아닐까. ◆비로전운문사에 도착하자마자 비로전으로 향했다.보통 대웅보전이 사찰의 중심이라고 하지만 운문사의 경우 비로전이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비로전은 1105년(고려 숙종 10년) 운문사 제3중창주인 원응 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불전이다. 1985년 보물 제835호로 지정됐다.현재 건물은 2006년 해체 수리 당시 종도리에서 발견된 ‘순치십년계사구’에 상량했다는 묵서명을 통해 1653년(조선 효종 4년)에 중창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종도리 묵서명과 함께 발견된 ‘운문사 법당 기문’과 ‘건륭 삼십팔년 계사 유월 십삼일 대웅전 중집기’, ‘불기 이천구백육십이년 대웅전 중집약기’ 등을 통해 1653년 중창한 이유와 그 후의 중수 사실도 알 수 있다.비로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식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조선 후기 불전으로는 큰 규모에 속한다. 기단은 크고 작은 자연석에 진흙을 다져 쌓고 그 위에 장대석을 이용해서 마무리한 혼합식 기단이다. 양 측면과 정면에는 4면의 장대석 디딤돌을 이용해 계단을 마련했고 정면 계단 좌우에 해태 두 마리를 두었다.기단 위에는 자연석을 다듬지 않고 그대로 사용한 주춧돌인 덤벙주초를 놓고, 외진주(바깥기둥) 12기와 내진주(안둘렛기둥) 2기 등 총 14기의 기둥으로 평면을 구성했다. 창호는 전면의 어칸에는 5짝 분합문을 달고 협칸에는 4짝 분합문을 달았다. 측면에는 2짝 분합문을 두었다. 배면의 좌우 협칸은 쌍창으로 구성하고 어칸에는 2짝 분합문을 달았다. 다른 창살이 격자무늬인 것과는 달리 전면 어칸 창살은 화려한 꽃무늬로 장식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비로전에 들어가 보니 ‘#덕분에 챌린지’를 하고 있는 듯한 불좌상이 눈에 띈다. ‘덕분에 챌린지’는 코로나19로 힘쓰고 있는 의료진에 고마움을 표시하는 캠페인의 일종이다.한 눈에 보아도 흔히 알고 있던, 그동안 봐 왔던 부처님의 모습과는 다름을 알 수 있었다.바로 ‘소조비로자나불좌상’이다.비로전의 주존으로 봉안된 불상으로 경북도 유형문화재 제503호로 지정돼 있다. 비로자나불은 부처님의 원래 모습인 진리 자체를 상징하며 ‘진신’ 또는 ‘법신’이라고 한다.소조비로자나불좌상은 높이 210㎝ 무릎 너비 152㎝로 중형 규모다. 머리는 나발에 중간 계주와 정상계주를 표현했다. 상호는 반쯤 뜬 눈에 오똑한 콧날, 꽉 다문 입술을 표현해 근엄하고 당당한 모습이다. 수인은 가슴까지 들어 올린 후 왼손을 오른손으로 감싸 쥐는 지권인을 취했으며 다리는 반가좌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좌상의 가부좌 형식에서 일반적인 결가부좌의 자세를 취하지 않고 오른발을 왼발 앞에 놓아 반가좌의 자세를 취했는데 이런 자세는 매우 특이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도둑도 가치를 알아본 탱화소조비로자나불좌상 뒤로 탱화가 눈에 들어온다.비로전에 봉안돼 있는 후불탱인 ‘비로자나삼신불회도’다.비로자나삼신불회도는 1755년 임한을 수화사로 19명의 화승이 제작했다. 현재 보물 제1613호로 지정돼 있다.삼신불회도는 법신 비로자나불과 보신 노사나불, 화신 석가모니불의 설법 장면을 표현했다.화폭이 가로 520㎝, 세로 460㎝로 큰 규모에 속한다.화면은 크게 3단으로 구성됐다.중앙에는 삼신불, 하단에는 협시보살과 사천왕, 상단에는 설법을 들으려는 십대 제자와 성중들이 표현돼 있다. 비로자나불 좌우로는 문수·보현 보살이 협시로 배치됐으며 하단에는 좌우 3위씩 총 6위의 보살이 자리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비로자나불 아래 양쪽 각 4위의 보살이 대칭을 이루어 중앙에 집중된 모습이다.또 상단에는 오색구름이 그려져 있고 좌우에는 타방불이 내려오는 모습이 표현됐다.비로자나삼신불회도가 가진 가치는 큰 규모에 속하는 탱화임에도 잘 보존돼 있다는 점이다.특히 이 삼신불회도는 존상의 배치 외에 도상적, 구도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 18세기 삼신불회도의 경우 법신 비로자나불, 보신 노사나불, 화신 석가모니불의 설법 장면을 각각 한 폭의 그림으로 구분해서 그리는 경향이 유행이었다. 하지만 이 삼신불회도는 한 폭에 법신, 보신, 화신의 설법 장면을 모두 묘사했다. 이로써 19세기 한 폭에 그려지는 삼신불회도의 구도가 완성되지 이전 형식을 알려주는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이처럼 비로자나삼신불회도의 가치는 문화재 도굴꾼들이 먼저(?) 알아봤다.때는 1940년대 여름. 당시 한 스님이 아무리 잠을 자려고 해도 잠에 들지 못했다. 결국 새벽 2시께 툇마루에 잠시 앉아 있기로 했다. 그런데 비로전 안에서 수상한 불빛이 나타난 것이 아닌가.수상함을 느낀 스님이 비로전으로 발걸음 했고 도굴꾼들이 탱화를 떼어 내려는 장면을 목격했다. 다른 스님들을 깨워 도굴꾼을 내쫓았다.문화재보호법이 없던 시절인 1940년대에는 문화재 도굴꾼들이 판을 쳤다. 스님의 불면증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비로자나삼신불회도는 볼 수 없었을 것이다.지금도 운문사에서는 이 이야기가 입에서 입을 통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꼼꼼하게 보아야 보인다비로전을 방문했다면 꼼꼼히 살필 필요가 있다. 가치 있는 역사의 흔적이 곳곳에 숨어있기 때문이다.아무 생각 없이 비로전에 들어갔다면 소조비로자나불좌상과 탱화밖에 볼 수 없을 것이다. 절에 온 만큼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구석구석 살펴볼 필요가 있다.누구에게 충고를 하랴. 나 역시 고봉 스님의 설명이 없었더라면 숨겨진 보물을 눈앞에 두고 못 찾았을 것이다.소조비로자나불좌상 뒤로 작은 공간이 있다. 이 공간은 부처님께 절을 올리기 전 오른쪽 어깨가 불좌상 쪽으로 향하도록 시계 방향으로 세 바퀴를 돌기 위해 마련됐다. 도는 이유는 ‘인도의 전통예법’에 따라 존경하는 대상에 대해 오른쪽 어깨를 보이는 데에서 유래하는 것이다.보통 오래된 사찰은 십중팔구 불좌상 뒤로 공간이 있다.비로전 후불벽 뒷면에 서면 나란히 앉아 있는 관음보살·달마대사 벽화가 보인다. 이 벽화는 보물 제1817호로 지정돼 있다. 화면이 크기는 세로 290㎝, 가로 524㎝다.후불벽 뒷면에 관음보살도가 있는 예는 강진 무위사 극락전, 여수 흥국사 대웅전, 순천 동화사 대웅전, 구례 천은사 극락보전 등 10여 점이 알려져 있다.하지만 관음보살과 달마대사가 한 벽면에 나란히 표현된 것은 운문사가 유일하다.화면 오른쪽에 그려진 관음보살도는 보타락가산에서 선재동자의 방문을 받고 설법하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이곳에 등장하는 백의관음, 선재동자, 정병, 청조, 청죽 등으로 이뤄진 화면 구성은 전형적인 보타락가산이 배경인 수월관음도의 도상적 특징을 보여준다.화면 왼쪽에는 험준하게 중첩된 암산의 깊은 암굴에서 수행하는 달마대사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는 선종의 초조 달마대사가 소림굴에서 9년간 면벽 수행했다는 일화를 실재감 있게 표현한 것이다.이 벽화는 두 가지 다른 주제를 한 화면에서 다루지만 관음보살의 보타락가산과 달마대사의 소림굴이 단절된 공간이 아닌 하나로 연결된 공간임을 강조한 구성력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다시 소조비로자나불좌상 앞으로 왔다.그러니 처음에 보이지 않았던 인형이 보인다. 불단 서쪽 천장 아래에 반야용선에 오르기 위한 ‘청의동자’가 그것. 반야용선은 중생을 태워 피안의 세계로 인도하는 배다. 반야용선이 출발할 때 한발 늦은 보살에게 사공이 밧줄을 던졌고 청의동자가 붙잡고 배에 오르려고 한다.청의동자와 반야용선을 누가 천장 아래에 매달았는지는 모른다. 다만 나무 상태를 봐서 100~200년 전으로 추정할 뿐이다.운문사 비구니들은 청의동자를 ‘악착보살’이라고 부른다.내가 원하는 것을 위해서 악착같이 올라가고 수행을 위해서는 악착같이 참아야 한다는 뜻에서다. 반야용선을 타고 극락에 갈 수도 있지만 부처님의 깨달음을 다다르기 위해서는 열심히 수행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한다.전 세계가 코로나19 전염병과 싸우고 있는 지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반야용선에 오르려는 청의동자처럼 우리 스스로 코로나19를 이겨내기 위해 힘든 현재 상황을 조금 더 참고, 생활 방역을 철저히 한다면 코로나19 사태도 어느 순간 종식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이다. 신헌호 기자 shh24@idaegu.com

삼국유사 기행 (66) 법흥왕의 불교

법흥왕은 안정적인 국가 경영을 위해 율령을 제정, 공포하는 등의 다양한 업적을 기록하고 있다. 불교를 공인해 나라의 국정이념으로 삼고 흥륜사를 건설하면서 금관가야를 합병하고, 왕권 강화 정책을 추진하기도 했다.법흥왕은 키가 7자나 되는 거인으로 마음도 후덕해 금관가야를 합병하고도 왕족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융화정책을 펼쳤다.그러나 기존 귀족들을 중심으로 두텁게 깔렸던 민간 신앙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이러한 정신적인 문제는 왕실 중심으로 진행하는 불교정책에 걸림돌이 되기도 했다.법흥왕은 왕위를 물려주면서 승복을 입고, 흥륜사에서 주지가 되어 백성들을 위한 공덕을 쌓는 법회를 주관하다 절에서 생을 마감했다.법흥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진흥왕도 왕권의 강화를 위해 황룡사를 지어 불교를 장려하는 한편 정복군주로 나서 영토를 크게 확장했다. 그러나 진흥왕도 말년에는 거칠부 등 귀족들의 힘에 밀려 전대 법흥왕의 뒤를 이어 흥륜사에서 생을 마감했다.◆삼국유사: 탑탑안항 사사성장진흥대왕이 즉위한 지 5년인 갑자년(544)에 대흥륜사를 지었다. 547년에 양나라 사신 심호가 사리를 가지고 왔으며, 565년에 진나라 사신 유사가 승 명관과 함께 내경을 받들고 왔다. 이제는 절들이 별처럼 벌여 있고, 탑들이 기러기처럼 서 있었다. 절의 깃발을 세우고 범봉을 걸며, 불상과 승려들이 사람들에게 복을 주는 밭이 되고, 대승과 소승의 법문이 나라 안에 자애로운 구름으로 덮였다.불국토로부터 보살이 세상에 나오고, 서역의 이름난 승려들이 이 땅에 내려오니, 이런 까닭에 세 민족을 통일해 나라를 만들고 사해를 껴안아 한 집을 이루었다. 그래서 덕 있는 이름은 천구의 나무에 쓰고, 신령스런 자취는 은하수에 비추었으니, 어찌 세 분 성인(아도, 법흥왕, 이차돈)의 위엄으로 이룬 것이 아니겠는가.그 뒤에 국통 혜륭, 법주 효원, 김상랑, 대통 녹풍, 대서성 진노, 파진찬 김억 등이 옛 무덤을 다시 쌓고, 큰 비석을 세웠다.때는 원화 12년 정유년(817) 8월5일이다. 이때는 제41대 헌덕대왕 9년이다. 흥륜사의 영수선사가 그 무덤에 예불하는 신도들을 모아 결사를 만들고, 매달 5일마다 그 영혼의 아름다운 소원을 위해 단을 마련하고 법회를 베풀었다.또 향전에서는 시골 노인들이 그의 기일을 맞을 때마다 흥륜사에서 모임을 가진다고 했는데 5일이 바로 사인이 목숨을 버리고 불법을 따르던 날이다.아, 이런 임금이 없었다면 이런 신하도 없었을 것이요, 이런 신하가 없었다면 이런 공덕도 없었을 것이다. 이는 유비가 제갈량을 만난 것처럼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격이고, 구름과 용이 서로 감응해서 만난 것처럼 아름다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법흥왕은 이미 없어졌던 터에 절을 세웠으며, 절이 완성되자 면류관을 벗고 방포를 입었다. 궁중의 친척을 절의 종으로 삼고 그 절의 주지가 되어, 몸소 대중을 널리 교화시키는 일을 맡았다.진흥왕은 그 아버지의 덕을 이어받은 성인으로 왕위를 계승해 위엄으로 모든 신하들을 거느리자 모두 순종하며 잘 따랐다. 이어 법흥왕이 머물렀던 흥륜사에 대왕흥륜사라는 편액을 내렸다.법흥왕의 성은 김씨이고, 출가한 뒤의 이름은 법운이며, 자는 법공이다. 책부원구에서는 성은 모, 이름은 진이라고 했다.왕이 처음 큰 공사를 시작하던 을묘년(535)에 왕비도 영흥사를 창건하면서, 첫 비구니 사씨의 유풍을 흠모해 왕과 함께 머리를 깎고 비구니가 되었다. 이름을 묘법이라 하고, 또한 영흥사에 머물다가 몇 년 뒤에 죽었다.국사에는 건복 31년(614)에 영흥사의 소상이 저절로 부서지고, 얼마 되지 않아 진흥 왕비 비구니가 죽었다고 하였다. 두 왕이 왕위를 버리고 출가한 사실을 역사서가 적지 않은 것은 세상을 이끌어가는 임금의 교훈이 아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또 대통 원년은 정미년(527)인데 법흥왕은 양나라 황제를 위하여 응천주에 절을 짓고 대통사라 이름하였다. 성스런 지혜는 만세의 큰일을 꾀하게 마련이나/ 구구한 입방아는 추호 같은 뜻을 기만할 뿐이다/ 법륜이 풀려 나와 금륜을 굴러가니/ 순임금 같은 시절 바야흐로 부처님의 시대로 높아지네// -원종 법흥왕에 대한 글이다.의에 죽고 생을 버림도 놀라운 일이거니/ 하늘의 꽃 흰 젖 더욱 깊이 느껴지네/ 어느덧 한칼에 몸은 사라진 뒤/ 절마다 쇠 북소리는 서울을 흔든다// -염촉 이차돈에 대한 글이다.◆새로 쓰는 삼국유사: 법흥왕의 뜻을 이은 진흥왕법흥왕은 왕비를 여럿 두었지만 아들을 얻지 못했다. 서로 시샘한 왕비들의 투기로 아들이 태어날 기미만 보이면 수단을 가리지 않고 없애버렸다.법흥왕은 불교를 공인하고, 왕실에서부터 서서히 백성들에게 불교를 전파해 국가이념으로 삼고,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나라를 경영하고 싶었다. 특히 건원이라는 연호를 사용하며 중국으로부터도 독립한 당당한 나라로 서고자 했다.이를 위해 왕위를 물려받을 적자는 성골이어야 한다는 신념이 강해 왕족끼리 결혼을 추진했다. 왕은 자신의 딸을 동생과 결혼시켜 왕족, 성골의 신분을 고집스럽게 유지하려 했다.아들이 없었던 법흥왕은 동생의 아들이자 딸의 아들인 삼맥종을 지극히 사랑해 아들처럼 곁에 두었다. 결국 조카 삼맥종을 태자로 삼았다. 왕의 뜻에 따라 이사부와 거칠부 등의 귀족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충분히 펼 수 있는 어린 삼맥종을 진흥왕으로 옹립하는데 앞장섰다.법흥왕은 이사부와 거칠부의 세력에 밀려 자신이 세운 흥륜사에서 승복을 입고 주지가 되어 백성들의 안위와 나라의 홍복을 빌다 입적했다.진흥왕은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어머니의 섭정으로 10여 년을 보내며 나름대로 국정 운영에 대한 철학을 배웠다. 진흥왕은 18세가 되어 친정하기 시작하면서 강한 나라를 주장하며 연호를 개국이라 바꾸고 정복군주로 나섰다.이사부와 거칠부 장군을 앞세워 백제와의 전쟁을 통해 한강유역을 확보하고 고구려와의 전쟁으로 황초령, 마운령까지 영토를 크게 확장했다.특히 왕권의 위엄을 세우기 위해 궁궐을 확장하려 했다. 그러나 후궁 미실의 반대로 황룡사로 바꾸어 건설하고 백성들의 안위와 나라의 발전을 위해 팔관회를 여는 등으로 불교 진흥정책에 힘을 썼다.진흥왕은 나라에서 엄격하게 제한했던 일반백성들도 공부하고 승려가 될 수 있게 했다. 원광법사 등의 이름 높은 승려가 배출되는 기반을 조성했다.진흥왕은 자신을 불교에서 훗날 사람의 수명이 8만 세가 될 때 미륵불과 함께 세상에 나타나 지배하는 전륜성왕이라 생각하고, 아들들의 이름도 동륜과 사륜으로 짓고 스스로 불교를 깊이 믿었다.아울러 나라의 힘을 기르기 위해 청소년들의 교육제도를 크게 활성화 시켰다. 화랑제도를 만들어 청년들이 나라를 위해 일하는 동량으로 키우는 데 성공해 삼국통일의 초석을 마련했다.그러나 진흥왕은 후궁 미실의 사심이 가득한 전략에 밀려나는 운명을 맞았다. 미실이 진흥왕의 아들 태자 동륜과 정을 나누다 동륜이 다른 후궁에 눈을 돌리자 거칠부와 손을 잡고 제거했다. 이어 진지왕과 관계를 맺으며 왕비로 간택해줄 것을 요구했지만 진지왕이 약속을 지키지 못하자 그마저 제거하고, 다시 진흥왕의 손자였던 진평왕을 옹립했다.진흥왕은 죽은 태자 동륜을 위한 추도식을 전대 법흥왕이 입적했던 흥륜사에서 올리다가 미실과 거칠부의 계략에 의해 연금되어 궁궐로 돌아오지 못하고, 승복을 입고 흥륜사에서 생을 마감했다. *새로 쓰는 삼국유사는 문화콘텐츠 개발을 위해 픽션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역사적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대구·경북 고교총동창회 (22) 경산 문명중·고

‘낙동강물 굽이굽이 용솟음치는/태백산맥 줄기줄기 힘차게 뻗은/이 터전 위 내 고장 신라성지에/이룩된 우리 모교 아아 문명아/청운의 희망 빛 가슴 벅차다….’학교법인 문명교육재단 설립자인 고 홍영기 이사장이 작사하고 유왕무 선생이 작곡한 경산 문명중·고등학교 교가다.경산시 백천동 경청로 230길 백자산 기슭에 자리 잡은 문명중·고는 짧은 역사에도 전국 도·농 학교의 모델로 주목을 받고 있다.문명중·고가 짧은 역사에도 경산지역을 대표하는 명문고로 자리 매김할 수 있었던 것은 동문 간의 우애와 모교에 대한 남다른 자부심 때문이다.1966년 3월 중·고가 함께 설립된 문명중·고는 올해 개교 54주년을 맞는다.문명중·고등학교는 54년 역사를 지닌 지역 인재 배출의 요람이다.◆문명중·고 역사문명고는 1966년 청도군 운문면 대천리 문명중과 병설 개교했다. 1993년 9월1일 운문댐 건설에 따라 대천면 소재지가 댐 건설에 편입돼 수몰되면서 폐교돼 이듬해인 1994년 3월 경산시 백천동 경청로 현 위치로 이전했다.2000년 소강당, 근학실, 독서실 등 형설헌 증축과 2001년 9월 3학급 증설 15학급, 2007년 3학급 증설로 현재 18학급으로 늘어났다.또 학교법인 문명교육재단 설립자인 고 홍영기 이사장(2011년 3월7일 작고)의 끈질긴 노력으로 2003년 10월 병설 중학교 부활 설립 인가를 받아 문명중·고가 병설됐다.2008년 6월 제2대 홍택정 재단이사장이 취임했다. 현재 중·고등학교 51회 졸업식을 통해 중학생 4천674명, 고등학생 5천711명 등 총 1만385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문명중·고는 개교 30주년을 맞은 1996년 3월 홍영기 재단 이사장 동상을 교정에 세웠다.2000년 8월 형설원 증축, 2002년 청운관 신축, 2012년 다목적 강당 신축, 2016년 다목적구장(농구, 배구 등) 설치, 2017년 식생활관 신축 등 현재 규모로 변모했다.문명중·고는 2010년 자율학교 지정, 2012년 선진형 교과교실제 지정, 2016년 S/W 교육 선도학교 지정, 2018년 교육부 고교학점제 선도학교 지정 등 선진형 교과교실제 시범학교로 선정되면서 명문 학교로 발돋움하고 있다.◆창의성, 인성, 전문성 지닌 지역인재 양성학령인구의 감소 등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문명고는 지역 명문고의 자리를 지켜왔다. 특히 개인별 맞춤식 진로교육에 초점을 맞춘 교육과정은 대학 입시 성과로 나타났다.최근 6년간의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문명고는 경북 전체 계열별 1, 2, 3위를 차지했다.올해 대입에서는 서울대 1명, 고려대 3명, 과학기술원(DGIST) 1명, 육사·공사·해사 등 사관학교 3명, 수도권대 39명, 지방 국립대학(경북대 16명 등) 70명, 영남대 59명이 합격하는 등 졸업생 179명 중 152명(85%)이 등록하는 성과를 올렸다.특히 최근에는 서울대 일반학과보다 사실상 합격 점수가 더 높은 의학계열 진학 학생이 꾸준히 늘어난 점은 주목할 만하다. 최근 5년간 의·치·한의과대학에 진학한 학생은 9명에 이른다.또 문명고는 1997년부터 올해까지 사법고시 3명, 행정고시 2명, 카이스트 교수 1명, 세무사 1명 등을 배출했다. 서울대 13명, 연세대 15명, 고려대 16명, 교육대 11명, 사관학교 14명, 과학기술원 20명 등을 명문대에 꾸준히 진학시켜 명실상부한 명문고로 급부상하고 있다.경산시 장학회, 경북도 특별장학회, 동창회 장학회, 학부모 장학회, 사도 장학회 등 23개 장학회에서 매년 문명고 학생 50명에게 5천만 원 상당의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문명고는 교육과정 자율학교, 선진형 교과교실제 과정 운영, 사교육 절감 창의경영 학교운영 등으로 지정받아 재학생의 학력 신장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또 사교육비 절감을 위해 기숙사 20실(120명 수용)을 갖추고 있다. 문명고는 오후 10시30분까지 전교생 1인 1 독서대를 제공해 모든 학생이 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교육환경을 갖추고 있는 게 특징이다.◆모교와 동문 잇는 총동창회 창립문명중·고 성과의 바탕에는 총동창회가 있다. 사회 각계각층에서 선배들이 후배들을 응원하고 지켜보고 있다.육군 제2작전사령관(육군대장)을 역임한 박영하(1회) 동문, 해군 소장 출신 박동우(8회) 동문, 행정고시 출신으로 청와대 문화체육관광 행정관을 역임한 박순태(9회) 동문, 전경세(31회) 판사, 변준석(28회) 검사, 한기욱(30회) 변호사 등이 문명고 동문이다.문명중·고 총동창회는 2010년 1월 창립됐다. 초대회장은 박영하(1회) 동문이 맡았다. 그 후로 6명의 동문이 총동창회를 이끌었다.2대는 안재걸(3회), 3대 이석진(5회), 4대 백운일(9회), 5대 엄인섭(11회), 현 6대 회장은 박창희(12회) 동문이다.문명중·고 총동창회는 2009년 12월 육군 제2작전사령관 출신 박영하 동문(1회)을 중심으로 24명의 졸업생이 발기인 대회를 시작으로 구성됐다.이듬해인 2010년 1월 모교 강당에서 300여 명의 동문이 참석한 가운데 총동창회를 창립하고, 박영하 동문이 초대 회장을 맡아 총동창회의 초석을 다졌다.문명중·고 총동창회가 창립된 지 10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모교와 동문, 모교와 지역사회를 잇는 가교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또 한편으로는 다양한 봉사활동을 통해 지역사회 발전에 공헌하고 있다.문명중·고 총동창회는 2010년 10월 제12회 주관으로 제1회 총동창회체육대회 개최를 시작으로 매년 30대부터 70대까지 동문이 한자리에 모여 옛 학창시절의 이야기꽃을 피우는 등 화합과 단결을 다짐하고 있다.또 매년 정기총회, 송년회 등 행사와 총동창회 기수별 등반대회, 골프모임 등 각종 모임을 통해 동문 선후배 간 화합과 친목을 다지고 있다.문명중·고 총동창회는 매년 모교에 장학금 500만 원을 기탁한다. 학교 시설 사업비 유치 등 지원 및 다양한 봉사활동을 통해 지역사회 발전에 공헌하고 있다.문명중·고 총동창회는 올해 인명록을 발간해 서로 소식이 궁금했던 동기, 선배, 후배들 간 유대를 강화한다는 방침이다.동문회 인명록은 기수·직업·직종별로 구분해 동문의 현황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편집하는 것은 물론 동문 간 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1만여 명 동문의 실주소가 적힌 주소록도 발간할 계획이다.올해 출범한 문명중·고 총동창회 제6대 임원진은 박창희 회장(10회)을 비롯 최경목 사무국장(21회), 백정미 사무차장(18회), 안성환 사무차장(27회), 박정아 재무차장(24회) 등으로 구성돼 학교발전과 선후배 간 화합의 장을 조성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박창희 총동창회장 인터뷰문명중·고 총동창회 제6대 박창희 회장은 지난달 29일 대구 인터불고 호텔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1만여 명의 동문 화합과 모교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박창희 회장은 “문명중·고는 대구는 물론 서울 등 어느 학교에도 뒤지고 싶지 않은 명문 중의 명문으로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며 “전국 곳곳에서 활약하는 동문의 명예를 지키며 성장하는 사학의 요람이 될 수 있도록 심혈을 바치겠다”고 강조했다.박 회장은 “총동창회가 활성화되고 발전하는 데는 무엇보다 기수별 동기회장단의 노력이 필요하다”며 “기수별 회장단과 산행 행사, 골프모임 등 친목을 위한 각종 행사를 더욱 활성화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그는 “지역별 동문회 활성화가 곧 총동창회 활성화로 이어진다고 생각하고 부산, 서울 등 지역별로 열리는 체육대회와 송년회 등 행사에 직접 참석할 계획이다”며 “등산회, 골프회 등 같은 취미를 가진 동문의 소모임 활성화에 노력을 기울이고 다양한 방법으로 동문의 결속과 협력을 다질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박 회장은 특히 올해 총동창회 인명록을 발간해 동문 유대강화를 위한 기초를 다지는 것은 물론 장학사업도 활발히 추진한다는 방침이다.그는 “명문고는 선배들보다 더 나은 후배들이 만들어 준다”며 “총동창회 장학회를 만들어 장학기금을 조성해 모교 후배들을 위해 사용하고, 수혜자들이 장학금을 기탁하는 선순환이 이뤄질 수 있도록 추진하겠다”고 말했다.박 회장은 “크고 작은 행사를 통해 모교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모교 장학기금을 확대해 총동창회가 학교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박 회장은 영남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대구한의대 자산운용과 겸임교수, 대구도시 도시재생아카데미 강사, 총동창회 제2대 사무국장, 제3~4대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현재 창성개발·창성아이엔디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남동해 기자 namdh@idaegu.com

삼국유사 기행 (65) 신라 불교의 공인

새로운 문화나 문물을 수용할 때는 어떠한 계기가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신라의 큰 발전을 가져온 불교를 받아들이는 데도 그러한 절차가 있었다. 이차돈이 목숨을 바쳐 신라가 불교를 공인하면서 널리 백성들의 마음에도 평화를 가져오는 길을 열었다.삼국유사는 법흥왕을 원종, 이차돈을 염촉으로 기록하고 있다. 법흥왕이 불법(佛法)의 참됨을 이해하고 백성들에게 널리 알리고자 했지만 토착신앙에 뿌리가 깊은 귀족들의 반대에 부딪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그때 왕의 마음을 헤아린 하급관리 이차돈이 불법의 전파를 위한 길을 제시했다. 목숨을 바친 이적으로 귀족들도 감복해 불교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법흥왕의 불교 공인에 이어 신라에는 빠르게 불법이 확산하였다. 고구려와 백제에 비해 늦게 받아들였지만 국가적인 경영이념으로 백성들에게까지 널리 퍼뜨려 결국 삼국통일을 이루는 상당한 힘이 됐다.이차돈의 희생은 나라를 크게 일으키고, 백성들의 마음에도 평화를 가져오는 큰 사랑의 불씨가 되었다.◆삼국유사: 원종은 불교를 일으키고 염촉은 몸을 바치다원화 연간(806~820)에 남간사의 승려 일념이 편찬한 ‘촉향분예불결사문’에 신라 불교 공인 과정에 대한 내용이 자세하게 실려 있다.신라 법흥대왕 때이다. 궁궐 안을 잘 다스리며 해 뜨는 나라의 곳곳을 굽어 살피다가 옛날 한나라의 명제가 꿈을 꾸고 불교가 동쪽을 흘러들어온 일을 생각하고 “과인이 왕위에 오른 다음 백성들이 복을 닦고 죄를 없앨 곳을 만들고자 하였노라”고 말했다.그러나 신하들은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하였다. 다만 나라를 다스리는 큰 뜻만을 지키고자 하고, 절을 짓겠다는 신령스런 대책에는 따르지 않았다.대왕이 탄식하며 “과인이 부덕하여 대업을 받들지 못하는구나. 위로 음양의 조화가 모자라고 아래로 뭇 백성들의 기쁨을 주지 못하네, 나라를 다스리는 바쁜 중에도 마음을 불교에 두었더니 누가 이 일을 도와주리오”라며 개탄했다.그때 남몰래 불도를 닦던 사람으로 성이 박이며 이름을 염촉이라 하는 이가 있었다. 아버지는 잘 모르겠으나 할아버지 아진 종은 곧 습보갈문왕의 아들이다. 대나무나 잣나무처럼 빼어난 바탕에다 맑은 거울 같은 뜻을 품었다.22세의 염촉이 왕의 얼굴을 우러러보며 “신이 듣기로는 옛 사람들은 나무꾼에게도 대책을 물었다 합니다. 외람되지만 죄를 무릅쓰고라도 말씀을 올릴까 합니다”며 뜻을 아뢰었다.“사인이 할 만한 일이 아니다”고 왕이 말했다. 그러나 “나라를 위해 몸을 버림이 큰 절개요. 임금을 위해 목숨을 다함이 백성의 곧은 의리입니다. 그릇되게 말씀을 전했다 하여 신에게 목을 베는 형벌을 주시면 온 백성이 모두 복종하고 감히 명령을 어기지 못할 것”이라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왕은 “살을 베어 저울로 달아서라도 새 한 마리를 살릴 것이요, 피를 뿌려 목숨을 재촉할지라도 일곱 마리 짐승을 불쌍히 여길 것이다. 내 뜻이 남을 이롭게 하는데 있는 데 어찌 죄 없는 이를 죽이리요. 네가 비록 공덕을 쌓고자 하나 내가 죄를 피하는 게 낫다”고 듣지 않았다.“뭐라고 해도 제 목숨만큼 버리기 어려운 것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저녁에 죽어 커다란 가르침이 아침에 행해지면 부처님의 날이 다시 설 것이요, 임금께서 길이 평안하실 것입니다”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왕은 “난새와 봉새의 새끼는 어려서도 하늘을 솟구칠 마음을 가지고, 기러기와 고니의 새끼는 나면서도 파도를 헤쳐나갈 기세를 품는다 했지. 네가 이와 같구나. 큰선비의 행실이라 할 만하다”라 칭찬하며 감복했다.이에 왕은 짐짓 위의를 갖추고 동서로는 풍도를, 남북으로는 상장을 벌려놓고, 여러 신하를 불러들여 “그대들은 내가 절을 지으려 하는데 일부러 늦추려 하는가”라며 물었다.이에 여러 신하는 전전긍긍하며 수선스레 맹서하고 여기저기 손가락질만 하는 것이었다. 왕은 사인을 불러 나무랐다. 사인은 얼굴빛을 잃고 어떤 말로 대꾸도 하지 않았다. 대왕이 크게 화를 내며 목을 베라 명령을 하니, 형리가 묶어 관아 밖으로 나갔다. 사인이 맹서를 바치자 옥리가 목을 베는데, 흰 젖이 솟아나 한 길이나 되었다.하늘은 사방이 캄캄하게 빛을 잃어 어둡고 땅은 육방이 진동하며, 비처럼 내리는 꽃이 표표히 떨어졌다.왕은 슬픔에 겨워 비통한 눈물을 옷에 적시고, 대신들은 근심스러워 식은땀을 관복에 흘렸다. 달디 단 샘물이 홀연히 솟아나고, 물고기와 자라는 다투어 튀어 오르며, 곧은 나무는 먼저 꺾이고, 원숭이는 떼 지어 울었다.춘궁에서 일하던 동료는 피눈물을 흘리며 쳐다보기만 하고, 월정에서 같이 뛰놀던 친구들은 애끓듯 서러운 이별을 했다.관을 쳐다보며 우는소리가 마치 제 부모를 잃은 듯했다. 그러면서 모두들, 개자추가 허벅지 살을 베었다 한들 이 엄청난 절개에는 비하지 못할 것이요, 홍연이 배를 갈랐다 한들 이 장렬함과는 견주지 못할 것이다. 이가 곧 임금의 믿음에 의지해 힘써 아도의 본 마음을 이룬 성자라고 했다.이어 북산의 서쪽 마루에 장사지냈다. 나인이 슬퍼하며 좋은 땅을 골라 절을 짓고 자추사라 했다. 이에 집집마다 예를 갖추어 대대로 영화를 지키고, 사람마다 도를 행해 불법의 이로움을 깨달았다.◆새로 쓰는 삼국유사: 이차돈의 결심이차돈은 원래 진골 출신의 왕족이다. 아버지가 궁궐에 일하였으나 청렴해 살림살이는 풍족하지 않았다. 차돈은 어려서부터 어질고 착해 부모님의 말씀을 거스르지 않고 글 읽기를 좋아해 일찍이 관복을 입었다.차돈이 태어나기 전 어머니의 꿈에 하얀 백조가 집안으로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툇마루에 걸터앉아 마을 쪽을 향해 크게 날갯짓을 하는 태몽을 꾸었다. 그래서 큰 사람이 될 것으로 믿고 아무에게도 태몽을 이야기하지 않았다.한번은 이차돈이 서당에 갔다가 돌아오는 데 온 몸이 멍들고, 옷은 먼지를 덮어써 거지꼴이었다. 못된 왈패들이 서당의 친구를 괴롭히는 현장을 보고, 책을 던져놓고 친구를 끌어안고 뭇매를 맞았다.이렇듯 차돈은 심성이 착하고 의리가 좋아 친구들이 늘 옆에 붙어다녔다. 그러나 차돈은 공부하기를 좋아해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일에는 별 취미가 없었다.차돈은 글 읽기는 물론 무술 수업에도 착실하고 지혜로웠으며, 체격이 관운장을 닮은 장군 틀이었다.이차돈이 차분하게 글 읽기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불법의 영향이 크다. 인도에서 당나라와 고구려를 거쳐 신라로 들어온 유학승과의 우연한 만남에서부터 사상적으로 불교에 깊게 몰두했다.차돈이 벼슬에 나아가 공무를 보면서도 불교 서적을 읽는데 열중해 그는 이미 신라가 불교와 깊은 인연을 가진 땅이라는 것을 몸으로 느꼈다.그가 스무 살 생일을 맞는 날 저녁, 집에서 성인식을 겸해 관부로 나아간 일을 기념하는 축하연이 무르익어갈 때 말쑥하게 차려입은 도인이 찾아왔다. 저녁상을 받은 도인이 차돈에게 부처가 그려진 비단 폭과 경전을 전해주며 불법에 대한 공부에 전념할 것을 주문하고는 연기처럼 사라졌다.그날부터 차돈은 부처님이 그려진 비단을 사당에 걸어두고 매일 경전을 읽으며 불도를 닦았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나면서 차돈은 부처님이 나타나 빙그레 웃으며 손짓하며 부르는 꿈을 여러 차례 꾸었다.왕이 불교를 널리 알리고 싶어하며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 불법을 널리 알리기 위해 자신이 희생할 터이니 여러 신하가 보는 앞에서 본보기를 보이라고 수차례 설득했다. 차돈의 확고한 신념에 법흥왕도 진리를 실천하는 길이라 여기고 그의 목을 베라고 명령했다.아끼는 신하 차돈의 목을 베자 우유 같은 피가 솟구치고, 천지가 진동하며 향기나는 꽃 비가 내렸다. 만 백성이 어버이가 돌아가신 듯 슬퍼하며, 한편으로 기뻐하며 찬양하고 불법을 믿기 시작했다. *새로 쓰는 삼국유사는 문화콘텐츠 개발을 위해 픽션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역사적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대구·경북 고교총동창회 (21) 효성여자고등학교

파란색 교복과 자주빛 가방, 까만 단화에 똑 단발을 하고 싱그런 웃음을 짓는 효성여자고등학교 여학생들의 모습은 예전에는 대구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중 하나로 꼽혔다.올해로 개교 69주년을 맞는 효성여고는 6·25 전쟁의 폐허 속에 ‘나라가 부흥하려면 여성교육이 중요하다’는 선각자들에 의해 가톨릭 정신을 바탕으로 세워졌다.올해 2월 기준 3만235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효성여고는 명실공히 대구의 명문 여고이다.효성여고 총동창회는 모교에서의 시간을 소중히 간직하며 후배들을 향한 내리사랑을 이어오고 있다.◆다양한 활동으로 모교 사랑 펼쳐1960년에 결성된 효성여고 총동창회는 7회 졸업생이자 역대 총동창회장을 역임한 우청자, 장정자, 정경자 동문 그리고 곽광자 동문이 주축이 돼 활성화되기 시작했다.50여 년을 이어온 총동창회의 초대 회장은 전정옥(2회) 총동창회장이며, 현재 제18대까지 이어져 비컨영어마을 원장인 곽인희(21회) 총동창회장이 맡고 있다.총동창회는 6회부터 47회까지 기수별 동기회로 세분화돼 운영되고 있으며 기수별 동기회는 매달 정기모임을 통해 친목을 다지고 있다.이사회는 역대 회장님들인 고문들과 각 기수 회장단으로 구성되며, 이사 70여 명이 홀수 달 둘째 주 화요일 정기모임을 통해 총동창회의 발전을 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모교와 동창회의 발전을 위한 가교 역할을 하면서 동창회의 주요 안건을 의결하는 동시에 동문 경조사를 알리는 창구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이밖에도 매년 개교기념일인 10월7일을 전후로 200여 명이 참석하는 총동창회 총회가 열리고 있으며 총회 때마다 회보 발간 및 다양한 모교 사랑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또 매년 입학식과 개교기념일, 졸업식 참석은 물론 매년 2월 동문 10명이 모교를 방문해 진로·직업탐색 비전스쿨 특강과 5월 스승의 날 카네이션 달기 행사, 수능격려 미사 등에 참여하고 있다.총동창회 장학회에서는 학업우수 장학생에게 장학금을 수여할 뿐 아니라 꾸준히 노력해 성적이 많이 오른 학생들을 선정해 학업에 대한 동기 부여 및 도전 정신을 함양해 나가도록 학생 100명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다.장학회는 1982년 3월 창단한 샛별 장학회부터 시작된다. 성옥련(2회) 동문을 초대 회장으로 2대 장정자(7회), 3대 허명자(16회) 회장으로 이어오다가 2011년 15대 이순금(12회) 총동창회 회장이 동창회와 장학회를 합쳐 총동창회장이 장학회장을 겸임하기 시작했다.총동창회는 올해 초 지역 내 코로나19 확산 당시 대구가톨릭 병원에 코로나 기금(1천만 원)을 내놓는가 하면, 곽인희 총동창회장이 마스크를 기부하기도 했다. 이밖에 2016년 통일나눔기금(200만 원) 기부, 모교 옛터 표지석과 성모마리아상 건립, 기숙사 건립기금 2억 원 전달, 교내 쉼터인 아고라 마련, 농구부 후원, 기수별 졸업 후 30년 되는 해 실시하는 홈커밍 데이 및 사은의 밤 개최, 조손·모녀 동문 초청 행사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총동창회는 소프라노 이기봉(20회) 동문의 지휘 아래 곽인희 회장을 단장으로 한, 40여 명으로 구성된 ‘라움 합창단’을 창단하기도 했다. 매주 1회 연습을 하며 한 마음 한 뜻으로 합창 연습에 매진하면서 동문간 우애를 다져나가고 있다. 그 결과 창단 해인 지난해 수성하모니 합창경연대회에서 우수상을 받는 쾌거를 올리기도 했다.총동창회는 개교 60주년을 기념해 2011년 320여 쪽의 ‘효성 60년’이라는 화보집을 제작하기도 했다. 이는 효성 70년, 효성 100년을 준비하는 기틀을 마련하는 계기로 꼽히고 있다. 현재는 내년 70주년을 맞아 회보준비위원회가 구성돼 김은숙(23회), 김용조(29회), 임순주(32회) 동문이 기초 작업을 하고 있다.◆자랑스런 동문들학교를 빛낸 자랑스런 동문들도 아주 많다.먼저 여성경제인으로 재미사업가 김백형(15회) 동문은 모교 강당 냉난방시설 설치 및 방송시설 리모델링 사업을 지원했다. 또 제14대 총동창회장이었던 변태희(16회, 류천화섬주식회사 대표이사) 동문과 CREATIVE DIRECTOR인 이경재(20회) 동문, BnC라이프 대표이사인 권영숙(21회) 동문, 차순자(22회, 보광직물 대표) 동문이 있다.교육계에서의 활약도 대단하다. 강은희(31회) 대구시교육감과 제15대 동창회장을 지낸 이순금(12회) 달성교육재단 이사장이 있다.곽광자(7회) 전 효성여대 불문과 교수, 권복순(15회) 전 대구가톨릭대 사회복지과 교수, 신종원(16회) 범어도서관 전 관장, 김선희(16회) 전 경운대 도서관장, 김순자(18회) 전 경북대 전자공학과 교수, 제17대 총동창회장을 지낸 박정자(20회) 대구대학교 조형예술대학 명예교수, 이춘옥(20회) 경북과학대학 유아교육학과 교수, 정현숙(20회) 전 계명문화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 백현순(25회) 한국체육대학 교수, 김은희(33회) 수성대 간호학과 교수, 경운대학교 간호대학학과장인 권말숙(34회) 교수 등이다.또 다수의 초·중등학교 교장선생님도 있는데, 오미순(18회), 김미자(21회), 임순남(21회), 유양희(21회), 조성희(21회), 조희자(21회), 박을규(22회), 조영미(22회), 김옥순(23회), 안중렬(23회), 조상완(23회), 예정숙(25회), 박다예(27회), 김희은(28회), 이윤옥(28회), 박은행(30회), 배은희(30회) 동문과 모교의 선생님이 된 동문들까지 훌륭한 인재를 배출해 냈다.뿐만 아니라 가톨릭 학교에서 여고시절을 보내며 키운 아름다운 씨앗이 세상에 나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게 하는 텃밭이 됐다. 1회 졸업생인 양병춘 벨라뎃다 수녀님을 시작으로 모교 교사였다가 대가대 성악과 교수를 역임한 홍인식(14회) 도미나 수녀님, 25년간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의료봉사를 하신 조정화(21회) 율리에따 수녀님을 비롯한 100여 명의 수도자를 배출했다.문화예술계에서 활동하는 동문도 많다. 최태화(14회) 재불 조각가, 이여옥(16회) 서양화가, 최수련(16회) 천연염색공예가, 남홍 이옥주(23회) 재불 화가, 강석순(24회) 도예가, 김혜경(24회) 전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장, 그리고 워런버핏의 한복을 디자인한 한복연구가 백길령(24회) 동문, 갤러리를 운영하는 윤영숙(25회) 동문 등이다. 또 보누스아트컴퍼니 대표이자 대경대학교 케이 뮤지컬학과 교수인 이보나(42회) 동문과 성악가인 김전미(47회) 동문은 음악계에서 열정적으로 활동 중이다.문인계에는 대구문협 사무국장을 지낸 안순자(21회) 동문과 김용조(29회) 동문 등이 있다.체육계에는 경북대 체육무용과 교수를 지낸 김정자(12회) 동문과 대구시 생활체조연합회 사무국장을 역임한 김정연(24회) 동문도 있다. 김숙희(28회) 동문은 경북도지사배 골프대회에서 3관왕을 차지하며 모교의 명예를 드높였다.정치계 인물로는 배지숙(34회, 대구시의회 의장) 동문과 홍복순(23회, 군위군의회 부의장) 동문이 있다.남편이 사회에서 큰 일을 하도록 살뜰히 보필한 내조의 여왕도 있다. 박인순(18회, 부군 김영만 군위군 군수), 김재덕(22회, 부군 이철우 경북도지사), 정활선(25회, 부군 류규하 중구청장), 구경희(26회, 부군 이태훈 달서구청장), 장정임(27회, 부군 경북도 전우헌 경제부지사), 김소옥(23회, 부군 이진훈 전 수성구청장), 이은숙(23회, 부군 우동기 전 대구시 교육감) 동문 등이다.의료계에서 활약하는 동문도 많다. 송미옥(21회) 동산의료원 전국 호스피스 회장, 류분선(24회) 효성병원 간호이사, 대구의료원 근무 중인 이정화(25회) 동문, 경산보건소장이자 환경운동가이기도 한 안경숙(27회), 소아과 의사 김정옥(28회), 치과의사인 김경애(29회), 김현주(29회), 이희숙(32회), 차현정(43회) 동문과 약사인 김분조(20회, 금강약국), 조외선(25회, 신평화약국) 동문도 있다.법조계에는 여성 최초 김천지원 지원장을 지냈으며 현 대구지방법원 부장판사인 서경희(29회) 동문과 서수연(43회) 변호사, 구미경찰서 청문감사관인 이달향(47회) 경정, 김미조(48회) 변호사, 안나현(52회) 변호사, 서지현(54회) 변호사, 행정고시합격 후 여성가족부에 근무한 김시윤(56회) 동문을 비롯한 다수의 법조계 인사도 있다.이밖에도 제3대 장학회 회장인 허명자 고문, 16대 총동창회장이었던 성상환 고문, 현 18대 수석부회장인 김인희(21회) 동문 등은 내조와 함께 종교단체 안에서 중요 직책을 맡아 교회, 동창회, 가정에서 열정을 쏟는 삶의 자세를 보여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으며 귀감이 되고 있다.〈곽인희 제18대 총동창회장 인터뷰〉곽인희 효성여고 총동창회장은 지난 10여 년간 동창회 임원으로의 활동을 거쳐 지난해 10월 총회에서 선출돼 제18대 총동창회장으로 취임했다.그는 “선배들이 모교와 동창회 발전을 위해 쏟으신 열정과 헌신적인 봉사를 보고 배웠기에 이제 실천에 옮기고자 한다. 그동안 각 가정과 사회에서, 효성여고 동문들이 열심히 살아왔기에 여고 동창회를 통해 그 시절 느꼈던 순수한 행복을 선물하고 싶다”고 말했다.곽 회장은 임기 중 가장 중점을 둘 역점 사업으로 내년 개교 70주년 기념행사 준비를 꼽았다.그는 “행사를 위해 많은 동문이 참석할 수 있도록 재경동문과 타 지역에서 생활하는 동문 찾기 운동을 펼치겠다”며 “은퇴한 은사님과 모교출신 수녀님들을 함께 모셔 제자 양성을 위해 애쓰신 은혜에 보답하고자 한다”고 전했다.이밖에도 동문단합을 위한 야유회 및 가을 소풍을 계획 중이며 동창회 활성화를 위해 골프와 파크골프, 요가와 실용댄스, 등산과 자전거, 회화 동호회 등 소그룹 동호회 활동을 진행하고자 한다.그는 총동창회의 부흥과 발전을 위해 후배 영입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곽 회장은 “현재 동창회에는 6회부터 34회까지 동문들이 참석하고 있다. 하지만 동창회의 앞날을 위해, 젊은 후배들이 함께 해 폭 넓은 선후배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후배 영입을 많이 독려하겠다”고 했다.마지막으로는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 가르쳐주시며 제자들에게 격려의 말씀을 잊지 않으시는 은사님들을 향한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곽 회장은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제자들과 소통하며 사랑을 실천하시는 제8대 교감을 지낸 노대수 은사님과 같은 은사님들이 계시기에 오늘날 동문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빛을 내고 있는 것”이라며 “보다 더 아름다운 인생을 위해 열심히 지도해 주시는 은사님들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