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농-노곡산방

18세기 프랑스 파리의 카페는 시민들의 사랑방이었다. 낮에는 커피를 마시고, 밤에는 와인을 마셨다. 볼테르와 루소 등 철학자들도 계몽주의 사상을 설파했다. 이런 자리에 생명력과 상상력을 키운 것은 와인이었다. 혹자들은 이것이 프랑스혁명으로 이어졌다고도 한다. 그래서 ‘프랑스혁명은 와인으로부터 시작됐다”는 말도 있다. 대부분의 과일로 와인을 만들 수 있지만, 역시 명품 와인은 포도를 가장 선호한다. 당도가 높고, 자체 효모를 갖고 있어 스스로 발효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최근엔 와인을 만들 수 있는 과일의 종류가 더욱 다양해졌다. 이 중 경주에서 체리로 와인을 만드는 강소농이 있다. 경주시 감포읍에서 ‘노곡산방’을 운영하는 김영도(67)대표와 아내 노혜순(66)씨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 부부는 경북도농업기술원에서 개발한 와인제조기술과 경주 특산물인 체리를 결합해 체리와인의 상품화에 성공했다. 체리는 경주에서 생산되는 대표적인 과일이다. 김대표는 1천여 ㎡의 조그마한 체리 과수원을 운영하면서 체리와인을 만들고, 체험농장을 통해 연간 3천여만 원의 소득을 올린다. 아직까지는 소득이 그리 높지 않은 편이지만, 체리와인의 독특한 맛과 희소성이 입소문을 타면서 새로운 농가소득원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보인다. ◆노곡산방의 잡학박사김대표는 토목시공기술사 자격을 소지한 고급기술 인력이다. 요르단의 화력발전소 건설현장에도 참여할 정도로 국내외 대형 공사장의 시공과 감리를 주로 담당했다. 특히 비행장 건설에 많이 참여했다. 재주도 많다. 와인소믈리에 자격은 물론, 문화해설사와 바리스타 자격증도 있다. 옻칠공예와 옹기제조, 한옥시공, 사진촬영, 천연염색, 스토리텔링 등 못하는 분야가 없을 정도다. 잡학박사, 멀티 플레이어, 만능 엔터테이너다. 이같은 다양한 분야의 자격증과 기술 습득은 1990년 귀농을 결심한 후, 경주에 터를 잡으면서 익힌 재주들이다. 귀농을 하면 이런 자잘한 기술이 많이 쓰여질 것으로 미리 예상하고 대비해 둔 덕분이다. 김대표의 발을 경주에 묶은 것은 경주의 문화재다. 서울에서 답사 차 들린 감은사지의 동탑과 서탑의 아름다움에 반해 아예 경주에서 살기로 결심했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탑도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래서 감포에 터를 잡았습니다.” 당장 동네다방에 들러 “살 땅을 좀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노곡산방’의 주인이 됐다. 그게 벌써 귀농 19년차의 중견 농부가 됐다. 초창기에는 농사와 직장일을 함께 했으나 이제는 완전한 농부로 변신했다. 교사 출신인 아내는 커피 바리스타 자격을 가지고 재능기부를 하고 있다. ◆체리재배 최적지 경주경주는 우리나라 체리의 최대 집산지다. 경주지역 100여 호의 농가에서 58ha의 체리를 재배한다. 전국 생산량의 36%를 차지하고 있다. 체리 재배의 역사도 100여 년으로 길어 기술력도 높다. 일제 강점기 처음 보급된 체리의 역사는 이보다 훨씬 거슬러 신라시대까지 올라간다. 그동안 자치단체와 재배농가를 중심으로 체리의 품질향상을 위하여 다양한 노력을 한 것이 전국 최고의 체리 집산지로 만들었다. 경주체리는 ’지리적 표시 단체표장등록‘도 마쳤다. ◆체리와인 제조체리로는 와인을 만들기 어렵다고 알려져 있다. 핵과류로 와인을 만들려면 씨(핵)를 제거해야 함으로 노동력이 많이 든다. 껍질이 너무 얇아 발효가 어렵고, 과즙이 40% 정도 밖에 나오지 않아 생산량도 작다. 당연히 채산성이 떨어져 지역 특산상품으로 개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체리와인은 1주일 간의 저온발효를 거쳐서 거름작업으로 찌꺼기를 제거하고, 4~5회의 여과과정과 숙성, 2차 발효과정을 거쳐 일년 후에 병에 담아 상품화 한다. 제조 공정이 까다롭다. 김대표는 씨 분리기를 도입해 노동력을 크게 줄였고, 경북도농업기술원이 개발한 체리와인 제조기술을 이전받고, 자신만의 노하우를 가미해 와인제조 기술을 완전 정립했다. ◆사람을 키우는 농사김대표가 노곡산방에서 하는 중요한 일중의 하나가 사람을 키우는 일이다. 경주의 젊은농부들을 지도한다. 어느 날 젊은 농부 9명이 가르침을 받겠다고 찾아왔다. 청년들은 3년 동안 스파르타식 교육을 받았다. 농사기술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쳤다. 처음 시작한 것이 자신을 소개하는 ‘3분 스피치’를 훈련 시켰다. 자기소개와 앞으로의 계획을 동료들 앞에서 발표하는 과정이다. 모두가 3분이 3시간 만큼 길게 느껴질 정도로 어려워했다. 다음 단계에서는 ‘나의 농사’라는 제목으로 PPT를 직접 만들고 발표하는 교육이었다. 발표를 마치면 8명의 동료들이 반드시 10개의 질문을 하고 답변을 하는 고난도의 교육이었다. 발표는 고사하고 80개의 질문에 답변을 한다는 것은 어렵고 힘든 과정이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청년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미래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는 농부로 성장해 갔다. 이들은 경북도에서 시행한 청년창업 오디션에서 ‘김교각 스님의 차’를 소재로 한 사업계획을 발표해 2억 원의 사업비를 지원받는 성과도 올렸다. ◆열린공간 노곡산방노곡산방은 열린공간이다. 마을 주민은 물론 방문객의 사랑방이다. 농사에서부터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까지 다양한 소재로 대화를 나눈다. 산방은 산촌의 작은 집이란 말로 소박한 삶을 지향하는 곳이다. 이곳에는 세 가지 원칙이 있다. 누구나 이용하는 공간이지만, 정치와 종교이야기는 하지 않고 숙식을 제공한다. 또 하나 특별한 원칙은 ‘주인은 듣기만 한다’는 것이다. ‘경청’하는 의미와 함께 손님이 주인처럼 자유롭게 이용한다는 의미도 있다. 주민들과 함께 마을의 크고 작은 행사를 의논하고, 농사정보를 교환하는 장소로 운영돼 언제나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특별한 축제노곡산방에서는 봄.가을에 특별한 축제가 열린다. 지역 농산물을 주제로 도시 소비자를 초청하는 팜파티다. 봄에는 산나물, 가을에는 호박을 주제로 한다. 두릅과 취나물, 고사리등 이슬을 먹고 자란 산나물과 호박, 그리고 주민들이 주인공이다. 팜파티 참석자들은 반드시 현금 3만 원을 가지고 오라는 부탁을 받는다. 그 돈으로 주민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사가지고 가라는 뜻이다. 집집마다 보자기 색깔을 정해서 판매한다. 2016년 4월에 열린 팜파티에서는 7분 만에 완판을 하는 기록도 세웠다. 3만 원이면 양손에 농산물이 가득하다. 팜파티에서는 주민들이 마이크를 잡고 마을이야기와 자기 농산물을 소개한다. 평생 대중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이야기를 할 기회가 없었던 주민들은 자신이 주인이라는 자부심을 느낀다. 이런 장면은 사진으로 촬영해 액자로 제작해 집집마다 걸어준다. 평생 농사일만 해온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자랑거리가 생겼다면서 즐거워한다. 이렇듯 노곡산방의 팜파티는 모두가 함께하는 특별한 축제다. ◆지역민과 함께하는 귀농귀농인들이 겪는 어려움 중의 하나는 ‘지역 주민과의 융화’다. 도시의 개인주의적 문화와 농촌의 공동체문화가 상충되기 때문이다. 김대표도 그런 어려움을 겪었다. 지금은 서로 일체감을 느낄 정도로 가깝고, 아끼는 관계로 발전했다. 이런 관계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울산에서 선생님을 하다가 퇴직한 아내의 공이 크다. 아내 노혜순씨는 마을의 농산물을 도시 소비자들에게 판매하는 중간 연락책이다. 오랜 학교생활에서 맺은 동료와 제자, 교회 교우들로 구성된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농산물을 판매해 준다. 물론 판매수수료를 받지 않는 자원봉사다. 어떤 때는 소비자들이 주문하는 농산물을 집집마다 배정해서 모으기도 한다. 지난해에는 쑥을 구해 달라는 요청이 많아 주민들이 단체로 쑥을 뜯으러 나서기도 했다. 마을 주민들과는 월 1회 함께 식사를 하고 소통의 시간을 갖는 것도 주민들과 함께하는 방법이다. ◆ 앞으로의 계획최근 김대표가 고민하는 문제는 농촌의 고령화다. 대부분이 70대를 넘어선 초고령사회다. 고령화에 따라 매년 영농규모도 축소된다. 이것은 곧 소득 감소와 빈곤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거듭한다. 김대표는 농산물 가공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가공을 통해 농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여 주민들의 소득을 보전하기 위한 방책이다. 장아찌나 된장, 고추장, 산나물 등 1차적인 가공품은 대부분이 한번쯤은 만들어본 경험을 가지고 있고, 도시 소비자들에게 어머니의 손맛을 느끼게 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급속하게 진행되는 고령화시대에 대비해 부드러운 식감의 시니어식품을 개발하는 사업도 계획 중이다. 이런 사업계획은 김대표 혼자만의 사업이 아니라, 마을 전체 주민들이 참여하는 공동사업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부부는 농산물가공과 발효에 대한 공부를 하고, 다시 주민들에게 전달교육을 하고 있다. ▲농장명: 노곡산방▲농장주: 김영도. 노혜순 (2016 강소농)▲구입문의: 010-5355-8802, 054-746-8803▲블로그: https://blog.naver.com/hunji22▲소재지: 경주시 감포읍 노동길 209-4▲이메일: hunji22@hanmail.net 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 민간전문위원 이홍섭 기자 hslee@idaegu.com

우리동네 자랑- 김천시(하)- 기사

우리동네 자랑 김천시〈하〉-도심지역 김산(金山· 김천) 서쪽이 곧 추풍령이고, 추풍령 서쪽이 황간 땅이다. 황악산과 덕유산 동쪽 물이 합해져 감천이 되어 동쪽으로 흘러 낙동강에 접어든다. 감천을 낀 고을이 지례(知禮), 김산(金山), 개령(開寧)이며 선산과 함께 감천 물을 관개하는 이로움을 누린다. 김천은 국토 내륙의 중심에 위치하여 사방으로 통하는 국도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있고, KTX, 철도․고속도로가 연계되는 4통8달의 교통의 요충지이다. 이를 발판으로 조선말기에는 대구, 평양, 개성, 강경과 함께 전국 5대 시장의 하나로 손꼽힐 정도로 상업이 크게 발전했다. 1.부항댐(부항면)부항댐은 전국에서 가장 친환경적이고 아름다운 댐으로 건설됐다. 댐 경관을 조망할 수 있는 순환 일주도로(14.1km)와 산내들오토캠핑장, 물문화관, 부항대교, 부항정, 레인보우짚와이어(H=93m, L=1.8㎞)와 스카이워크(38m), 국내 최장 출렁다리(256m), 산내들공원, 산내들 패밀리어드밴쳐 파크 등 볼거리와 체험거리가 갖춰져 있다. 부항댐(부항면) 2.수도산자연휴양림(대덕면)천 년 고찰의 청암사와 수도암 등 이름난 사찰과 계곡의 물, 울창한 침엽수림이 있어 사계절 멋진 풍경을 보여준다. 가족단위 관광객들을 위한 숲속 휴양관, 숲속의 집, 힐하우스 등 12동 36실의 숙박시설과 청소년들을 위한 숲속수련관, 세미나실, 야외물놀이장, 숲속산책로 등 각종 편의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수도산자연휴양림(대덕면) 3. 인현왕후길(증산면)숙종의 계비 인현왕후가 폐위 당했을 당시, 청암사에 내려와 기도하며 복위를 꿈꾸었다.. 그 청암사가 자리한 수도산을 중심으로 9km 남짓의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인현왕후의 숨은 이야기를 즈려밟으며, 인현왕후길을 거닐어보자.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2018 대한민국 걷기여행길에 선정된 곳이기도 하다. 인현왕후 길(증산면) 4.벽화거리(자산동)자산공원을 중심으로 골목골목에 아름다운 풍경이 즐비하다. 동양화, 서양화, 예쁜 꽃, 노래하는 새들 등 벽화로 그려져 있어 새로운 골목길 문화를 만들어 딱딱하게 돌아가는 현실에서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새로운 볼거리를 조성했다. 벽화거리(자산동) 5.시립도서관(남산동)종합자료실과 디지털 자료실을 비롯해 어린이 인터넷 코너, 가족 영화감상 코너까지 다양한 시설을 자랑한다. 조용한 분위기의 열람실과 첨단시설 컴퓨터실, 시청각실 등 김천시민을 위한 문화강좌와 외국어강좌 프로그램도 개설되어 교육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김천시립도서관(남산동) 6. 징·꽹과리(양금동)징과 꽹과리는 제작자의 소리 감각에 따라서 차이가 날 수 있고, 지방에 따라서도 그 깊고 무거운 맛이 다르다. 징의 생명은 소리에 있으며, 김천 징은 황소울음을 내는 것이 특징이다. 경북 무형문화재인 양금동 김일웅씨는 4대째 함양에서 징을 만들어 온 외조부 밑에서 기술을 익혀, 40년 간 징과 괭과리를 비롯한 유기제품을 만들고 있다. 경북도 무형문화재 제9호. 징·꽹과리(양금동) 7.연화지(대신동)연화지는 조선시대 초에 농업용수 관개지로 조성되었던 저수지였다. 물이 맑고 경관이 많아 풍류객들이 못 가운데 섬을 만들고 봉황대라는 정자를 지어 시를 읊고 술잔을 기울이며 노닐던 곳이었다. 봄에는 벚꽃이 장관을 이루며, 여름이면 연화지 가득 피어 있는 연꽃이 관광객들의 시선을 머물게 한다. 연화지(대신동) 8.영남제일문(대곡동)영남제일문이 선 자리는 옛날 영남의 선비들이 과거길에 오를 때 추풍령, 조령, 죽령을 통해 한양길에 올랐으며, 지금은 서울에서 충청도를 거쳐 경상도 지역인 대구, 부산으로 내려갈 때 영남의 첫 관문인 김천시를 통과해야 한다는 역사적, 지리적 의미가 담겨있는 상징적인 장소이다. 영남제일문이란 현판(길이 7m, 높이 1.5m)은 서예 대가 여초 김응현 선생이 직접 글을 쓰고, 지역출신이자 각장자 이수자인 고원 김각한 씨가 서각했다. 영남제일문(대곡동) 9.녹색미래과학관(율곡동) 녹색미래과학관(율곡동) 즐거운 놀이와 과학이 만나 아이들이 무한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창의과학 놀이터다. 그린에너지를 테마로 한 전문과학관으로 기후변화관, 그린에너지관, 녹색미래관, 4D풀돔영상관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다양한 체험과 유익한 프로그램으로 아이들을 맞이하고 있으며, 마음으로 만나고 생활을 바꾸는 과학, 재미있고 즐거운 놀이와 논리가 만나 창의적 아이디어를 만드는 곳이다. 10.김천의 관문 지좌동김천 시가지의 동쪽에 자리한 마을이며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 감천을 사이하고 있다. 최근 국도 변을 따라 아파트 밀집 지역이 만들어지고 인구가 늘어 나면서 준 시가지를 이루고 있다. 경부선 철도와 경부고속도로 및 국도가 마을의 한 가운데를 지나고 있다. 동으로는 농소면 신촌 마을과 이웃하였으며, 서쪽은 감천을 사이하여 용호동 시가지와 마주 보고 있다. 김천의 관문 지좌동 안희용 기자 ahyon@idaegu.com

삼국유사 기행 15 도화녀와 비형랑

삼국유사의 내용은 설화, 신화로 구성된 부분이 많다. 특히 도화녀와 비형랑조는 죽은 왕이 살아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도깨비가 사람처럼 행동하며 일상적인 생활을 하는 신화적인 요소가 강한 부분이다. 진흥왕이 576년 8월에 사망하자, 거칠부를 비롯한 진골 귀족들이 왕의 둘째 아들인 사륜을 신라 25대 진지왕으로 추대했다. 진지왕은 진흥왕 말기에 국정 운영에 깊숙이 개입해 나라의 일을 맡아하는 경험을 쌓았다. 삼국유사 기행단이 무열왕릉 뒤편의 추정 진지왕릉을 답사하고 있다. 진지왕은 즉위하면서 거칠부를 상대등에 임명해 나라일은 실질적으로 거칠부가 장악했다. 그러나 거칠부가 사망하면서 진지왕을 지지하던 세력이 무너지고, 진지왕이 국정을 제대로 돌보지 않아 정치가 극도로 문란하게 됐다. 이에 진흥왕의 측근이었던 귀족세력들이 진지왕을 폐위시키고, 진지왕 형의 아들이자 진흥왕의 손자인 백정을 신라 제26대 진평왕으로 옹립했다. 진지왕의 등극과 폐위 과정에는 권력을 두고 이루어지는 숱한 갈등의 모습들이 그대로 노출된다. 신라시대 중기의 왕권을 둘러싼 세력 다툼과 권력 구도를 짐작하게 한다. ◆삼국유사: 도화녀와 비형랑제25대 사륜왕의 시호는 진지대왕으로 성은 김씨이며, 왕비는 기오공의 딸인 지도부인이다. 태건 8년 병신(576) -고본에는 11년 기해(579)라고 했으나, 잘못이다- 왕위에 올라 4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으나, 정치가 어려워지고 음란하여 나라 사람들이 그를 폐위시켰다. 이에 앞서 사량부 백성의 딸이 있었는데 자색이 곱고 아름다워 당시의 사람들이 도화랑이라 불렀다. 왕이 소문을 듣고 궁중으로 불러들여 욕보이고자 하니, 그 여인이 말하기를 “여인으로서 지켜야할 바는 두 남편을 섬기지 않는 것이거늘, 지아비가 있는 몸으로 어찌 다른 데로 가오리까? 비록 천자의 위엄으로도 끝내 절조를 빼앗지 못할 것이옵니다” 라 고 했다. 왕이 “너를 죽인다면 어찌하겠느냐?” 하니, 여인이 “차라리 시장거리에서 목을 베일지라도 다른 마음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라 했다. 왕이 “남편이 없으면 몸을 허락할 수 있겠는가?”라 물으니 “허락할 수 있습니다”라 했다. 왕이 그녀를 보내주었다. 이 해에 왕이 임금자리에서 쫓겨나서 죽었다. 그후 2년 만에 도화녀의 남편도 또한 죽으니, 죽은 지 열흘 되는 밤중에 홀연히 왕이 옛날의 평상시와 같이 여인의 방에 들어와 “네가 예전에 허락을 하였고, 지금은 너의 남편이 없으니 잠자리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라 하자, 그녀는 가벼이 허락하지 않고 부모에게 여쭈어 보았다. 부모가 “임금님의 말씀인데 어떻게 어기겠느냐?” 하고 딸을 왕의 방으로 들어가게 했다. 왕이 머무른 7일 동안 항상 5색 구름이 집을 덮고 향기가 방안에 가득하더니 7일 후에 홀연히 왕의 자취가 없어졌다. 여인이 이로 인해 태기가 있다가 달이 차서 해산을 하는데, 천지가 진동하면서 사내아이 하나가 태어났으니 이름을 ‘비형’이라 했다. 진지왕과 도화녀의 아들 비형랑의 놀이를 모방해 제작된 비형랑 공연. 진평대왕이 매우 기이한 소문을 듣고 궁중에 데려다 길렀다. 나이 15세가 되자 집사라는 벼슬을 주었더니, 그는 밤마다 멀리 도망나가 놀았다. 왕이 용맹스런 군사 50인을 시켜서 지키게 했으나, 매번 월성을 날아 넘어 서쪽 황천의 강변에 가서 귀신들을 데리고 놀았다. 군사들이 숲 속에서 엎드려 엿보았더니 귀신들은 여러 절에서 새벽종소리가 들리면 제각기 흩어지고 비형랑도 또한 돌아가는 것이었다. 군사들이 돌아와서 이 사실을 보고 드리니 왕이 비형을 불러 “너는 귀신들을 거느리고 논다고 하는데 정말이냐?”라고 묻자, 비형랑이 “그러하옵니다”라고 대답했다. 왕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너는 귀신들을 시켜 신원사 북쪽 개울에 다리를 놓도록 하여라”고 했다. 비형이 왕명을 받들어 그의 무리들을 시켜 돌을 다듬어 하룻밤 사이에 큰 다리를 완성했다. 그래서 다리 이름을 ‘귀교’라 했다. 왕이 또 “귀신들 가운데 인간 세상에 나와서 나라의 정치를 도울만한 자가 있는가?”라 하자, “길달이란 자가 있사온데, 가히 나라의 정치를 도울만합니다”라 했다. 왕이 함께 오라 하여 그 다음 날 비형과 같이 뵈었다. 그에게 집사 벼슬을 주었더니, 과연 그는 충성스럽고 정직하기가 짝이 없었다. 이때 각간 임종이 아들이 없었으므로 왕이 명하여 길달을 아들로 삼게 하자, 임종이 길달에게 명하여 흥륜사 남쪽에 다락문을 세우게 하고, 매일 밤 그 문 위에 가서 자도록 했다. 그래서 그 문 이름을 ‘길달문’이라 했다. 하루는 길달이 여우로 변해서 도망가자 비형이 귀신을 시켜 그를 잡아 죽였다. 이 때문에 귀신의 무리들이 비형의 이름만 들어도 두려워서 달아났다. 당시 사람들이 이를 두고 다음과 같이 글을 지었다. 성스런 제왕의 혼이 낳은 아들/ 비형랑이 있었던 집이로다./ 날고 뛰는 여러 귀신들아/ 이곳에는 머물지 말지어다.나라의 풍속에 이 글을 붙여 귀신을 쫓는다. ◆진지왕진지왕은 신라의 제25대 왕으로 576년부터 579년까지 왕위에 있었다. 진흥왕의 둘째 아들로 세자로 임명된 형이 572년 진흥왕 33년에 죽으면서 왕위를 계승했다. 성은 김이고, 이름은 사륜(舍輪)이며 금륜(金輪)이라고도 한다. 시호는 진지(眞智)이며, 삼국유사에는 이름을 따서 사륜왕이라고 기록하기도 했다. 어머니는 사도부인 박씨이다. 그는 기오공의 딸인 지도부인 박씨를 왕비로 맞이해 제29대 태종무열왕의 아버지인 이찬 김용춘을 낳았다. 삼국유사는 어머니를 색도부인 박씨, 왕비는 여도부인 박씨로 기록하고 있다. 진지왕은 576년(진흥왕 37) 진흥왕이 죽자, 그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진지왕은 즉위하고, 이찬 거칠부를 상대등으로 임명해 나랏일을 맡겼다. 즉위한 이듬해에는 직접 신궁에서 제사를 지내고 대대적으로 죄인을 사면했다. 그해 10월 백제가 쳐들어오자, 이찬 세종으로 하여금 군사를 이끌고 출병케 하여 일선에서 백제군을 크게 이기고 내리서성을 쌓았다. 서악동 무열왕릉 뒤편으로 4기의 고분이 나란히 있다. 학자들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면서 진지왕릉, 문흥왕릉, 진흥왕릉, 법흥왕릉으로 보고 있다. 진지왕 3년에는 중국의 진나라에 사신을 보내 수교했다. 또 백제를 공격해 알야산성을 점령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듬해 백제는 융현성과 송술성을 쌓아 신라 서북지역에 위치한 산산성, 마지현성, 내리서성으로 가는 통로를 막아 신라를 고립시켰다. 진지왕은 그해 가을에 재위 4년 만에 죽었으며, 영경사 북쪽에 매장되었다. 삼국유사에는 진지왕이 왕위에 올라 나라를 다스린 지 4년 만에 주색에 빠져 음란하고 정사가 어지러우므로 나라 사람들이 그를 폐위시켰다. 죽은 뒤에 애공사 북쪽에 매장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진지왕이 죽은 뒤에 형인 동륜의 아들인 백정(白淨)이 왕위를 계승했다. 그가 신라 26대 진평왕이다. 진평왕의 딸인 선덕여왕과 진평왕의 동생인 국반 갈문왕의 딸 진덕여왕 등 동륜의 후손들에게 왕위가 계승되었다. 진덕여왕이 죽은 뒤에 진지왕의 손자인 김춘추(金春秋)가 왕위를 계승해 29대 태종무열왕이 됐다. 신라는 29대 태종무열왕에서 36대 혜공왕까지 진지왕의 후손들이 왕위를 계승했다. 조선시대 경주 김씨 후손들에 의해 진지왕릉으로 비정돼 사적지로 지정 관리되고 있는 서악동 3층석탑 북쪽 선도산 자락의 진지왕릉. ◆흔적△진지왕릉: 진지왕릉은 경주시 서악동 산92-2번지 일대 선도산 자락에 5기의 고분과 함께 위치해 있다. 진지왕릉은 2011년 사적 제517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선도산의 남쪽 구릉을 따라 형성된 서악동 고분군의 아래쪽에 만들어진 5기의 고분은 2기는 능선을 따라 나란히 배치되었고, 그 아래에 3기는 옆으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진지왕릉은 능선을 따라 배치된 2번째 고분이다. 서악동 고분군 진지왕릉 가는 길. 진지왕릉은 아래쪽에 있는 문성왕릉과 마찬가지로 산사면의 일부를 깎아 평탄하게 한 후에 지름 20.6m, 높이 5.5m의 크기를 가진 원형봉토분이다. 봉토의 밑둘레에 자연석 일부가 노출되어 있는데 호석으로 추정된다. 봉분 주변에는 왕릉에 걸맞는 석물이나 장식은 아무것도 없다. 매장주체부는 고분의 입지와 인근의 서악동 고분을 보면 횡혈식석실묘로 추정된다. 현재 고분 앞에는 신라진지왕릉이라는 능의 표석과 안내 표지판이 있다. 진지왕의 무덤을 삼국사기는 영경사 북쪽, 삼국유사는 애공사 북쪽이라 기록하고 있어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지금도 여전히 무덤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고, 진지왕릉 또한 진지왕의 무덤이라는 지정에 대해서는 대부분 학자들은 회의적인 반응이다. 현재 진지왕릉은 1730년에 경주김씨 일족에 의하여 지정되었다. 진지왕릉으로 지정한 원인은 삼국사기에 진지왕의 장지를 진흥왕릉과 함께 영경사 북봉에 위치하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영경사를 서악동 삼층석탑이 있는 곳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경주 서악동 무열왕릉 뒤편에 있는 학자들이 주장하는 추정 진지왕릉. 학자들은 서악동 3층석탑은 형식상 9세기 후반에 조성된 것으로 보여, 6세기후반의 진지왕릉과 맞지 않다고 주장한다. 1817년 경주를 방문한 김정희는 무열왕릉 뒤편에 나란히 높은 봉분으로 서 있는 4기의 서악동 고분군의 2호분을 진지왕릉으로 보았다. 강인구는 3호분을, 이근직은 무덤의 특징과 묘제, 조영순서 등을 고려하여 서악동 1호분을 진지왕릉으로 보고 있다. 울산에서 경주 방향으로 흐르는 형산강 상류를 가로지르는 귀교보. △귀교보와 귀교들: 경부고속도로에서 경주IC로 들어와 첫 번째 만나는 대형 치미가 세워진 큰 교량이 있다. 이 교량 아래로 흐르는 강이 형산강 상류다. 강물을 거슬러 울산 방향으로 1㎞ 남짓 떨어진 곳에 길게 형성된 보가 있다. 사람들은 지금도 이 보를 ‘귀교보’라 부른다. 귀교보에서 제방을 넘어 넓게 펼쳐진 귀교들. 귀교보 서쪽에 강을 따라 길게 제방이 있고, 제방 넘어 넓은 들을 귀교들이라 부른다. 신라시대로부터 전해오는 이름으로 추정한다. 귀교보와 귀교들 사이에 길게 형성된 귀교 제방길. ◆새로 쓰는 삼국유사: 진지왕의 즉위와 폐위진흥왕은 큰 아들 동륜을 세자로 책봉하고, 둘째 사륜을 대신으로 임명해 나라일에 직접 참여하게 했다. 그러나 세자 동륜이 죽으면서 흥륜사를 지어 불교적으로 심취했다. 직접 팔관회를 열어 전쟁으로 죽은 백성들을 위로하는 제사를 주관하면서 서서히 나라일에서 물러났다. 이때 거칠부가 사실상 병권을 잡고 내정에도 깊숙이 개입해 사륜을 왕으로 추대했다. 사륜이 신라 제25대 진지왕으로 등극하면서 거칠부를 상대등으로 임명했다. 신라가 거칠부의 세상이 되었다. 귀교보 입구에 신라 황룡사지에서 출토된 치미를 재현해 세운 교량. 거칠부가 진지왕 2년에 죽자, 그들의 세력은 급속하게 몰락의 길을 걸었다. 진흥왕대에서부터 동륜의 아들 백정을 옹립하려던 노리부와 김후직, 화문, 노지 등의 인물들이 실세로 자리를 잡았다. 가야 출신인 노리부 등은 거칠부가 죽은 이후로 나라일은 뒤로 하고, 음란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진지왕을 폐위시켰다. 진지왕은 신라 최초로 폐위되는 불명예의 역사를 기록으로 남겼다. 귀족들은 진지왕에 이어 백정을 신라 제26대 진평왕으로 추대했다. 진평왕은 즉위 당시 10대 초반의 나이로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왕권을 강화하는 제도를 만들고, 서서히 국정의 실권을 잡았다.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22>국방 IT의 핵심 ‘AI와 빅데이터’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국방부가 최근 범부처 정보기술(IT) 융합과제로 선정해 2013년부터 7년간 약 120억 원을 투입해 개발한 ‘초실감 가상훈련시스템’을 공개했다.군사용 드론은 시험표적용, 정찰용, 공격용 및 기만용 등으로 나뉘는데 정밀타격이나 적에 대한 정찰 활동 등 다양한 역할을 해낼 수 있다.메인방위사업청과 국방기술품질원은 국산기술이 적용된 국방생체로봇 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생체로봇은 첨단 기술이 집약된 것으로 나비·비둘기·뱀·물고기 등 모습을 한다.가상전투시스템은 미지의 작전지역을 위성영상 등을 통한 정보로 비슷하게 가상공간을 구축하고 병사들에게 실전과 같은 훈련 기회를 제공한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 ‘동방예의지국’, 세계 유수의 대학에서 과 수석을 놓치지 않는 ‘영민한 민족’, ‘IT 강국’으로 일컬어지는 대한민국의 오점이다.최근 남·북 관계에 훈풍이 드나들고 있다지만 양국 아니 원래 하나였던 두 국가의 이해관계란 외줄 위 아찔하다 못한 서슬 푸름과 통일이라는 당위가 교차한다. 아이러니 하게도 말이다. 대한민국의 1년 국방비는 47조 원에 이른다. 세계 10위 규모다. 전체 예산 대비 2.4%, 국내총생산(GDP)으로 비춰볼 때 2.6%에 달하는 수치다. 반면 실업률 제고를 위한 일자리 예산은 약 23조 원, 안전 등의 생활예산은 20조 원, 환경 예산은 7조5천억 원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일각에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턱없이 낮은 복지예산을 지적, 복지예산증축을 위해 국방비 절감을 요구하고 있다. 남북 화해 분위기에 과거와 다름없는 국방비 지출은 자칫 ‘잉여예산’으로 치부될 수 있다는 일갈이 바로 그것.반면 또 다른 한편에서는 남·북의 대치 국면이 한결 완화됐다고는 하지만, 남북이 여전한 대립양상을 띠는 가운데서의 국방비 축소란 리스크를 자초한다는 말 그대로 어불성설이라는 지적 역시 왕왕 나오고 있는 상황. 이 같은 주장의 배경에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른바 ‘불안 심리’의 발로로 보여진다.구국을 위한 국방력 강화와 군비 축소란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대안으로 인공지능(AI)가 떠오르고 있다.바로 ‘디지털’과 ‘스마트’의 이름으로 최첨단의 국방경계를 공고히 하겠다는 능동적 대처로 풀이된다. 물론 여기에는 4차 산업혁명의 시류를 거스르지 않는 현명함도 내포돼 있다.최근 결혼율과 출산율이 급격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은 병력 운용 간 심각한 차질 양상으로 고스란히 이어진다.실제 한국정책평가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입영 장정이 64만여 명에서 2020년 52만 명 이하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최근 복무기간 단축으로 인한 숙련도 저하를 우려하는 일단과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시뮬레이션 훈련이 일장으로 상존하고 있다. 이는 곧 AI의 도입을 통해 소수 전문 인력이 효율성을 기반으로 한 전투력 제고에 나서겠다는 복안으로 보인다. ◆베테랑 교관보다 뛰어난 AI 기술비행 훈련에도 AI 기술과의 접목을 꾀하고 있다. 바로 미국의 사례다. 미 공군은 공군 전용 AI시스템을 구축·도입을 통해 원활한 실전을 영위하기 위한 ‘비행 전투 시뮬레이션’을 시도했다. 이 역시도 일장일단이 있겠지만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이 수십 년 경력의 베테랑 비행교관을 압도하면서 약간의 씁쓸함이 곁들어진 AI의 놀라운 기술력을 한층 더 가시화 한 바 있다.‘행군’은 군 시절 빼놓을 수 없는 추억 속 편린이다. 특히 전투병과에 배치돼 있는 보병에서의 행군이라 함은 군 생활 속, 응당 거쳐야 할 관문 중 하나다.하지만 4차 산업혁명의 범람은 일상생활뿐 아니라 군 생활, 그 중에서도 생명과 안위가 걸려있는 실전훈련 간에도 그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무인의 이름을 딴 전투 장비와 첨단 기술 등이 행군의 고통을 일정 부분 해소한다.5G 시대의 개막은 군 문화의 혁신을 도모하고자 한다. 장병 대신 로봇이나 드론이 사각지대 없는 완벽한 사주경계를 펼치는가 하면 리스크가 산재한 각 전투지역을 로봇이 대신 출전함에 따라 인명 살상 등의 폐해를 미연에 방지한다는 것.물론 상용화에 이르자면 어느 정도 시일이 걸리겠지만, 실제 국·내외를 막론하고 다수의 기관·기업들이 5G 기술력을 담아낸 군 시스템 도입에 발 벗고 나서고 있다.5G의 기술력은 무인 전투기에도 획기적 영향력을 뻗치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산업에 따르면 헬기 형태인 무인 기술 전투기는 제자리 비행이 가능함에 따라 별도의 활주로 없는 이·착륙에 용이하다.이뿐 만이랴. 5G가 가진 최적의 전송속도 및 시스템적 장점을 토대로 여타 전투기와의 각종 정보를 상시적으로 공유한다. 여기서 비춰보듯 정보체계의 무인화는 이제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닌 바로 우리 눈앞으로 다가왔다.일상 곳곳으로 활용되고 있는 ‘드론’ 역시도 군 정찰의 핵심 기술로 본연의 몫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특히 군 인력이 미처 닿기 힘든 해상작전에서 그 위세를 떨치고 있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드론의 주요 기술력이란 고속 침투 대응, 수색·정찰, 공중 수색, 기후 및 적 침투 등 해상상황에 관한 실시간 대처 등에 방점을 찍는다.작전지휘 간에도 이제는 AI다. 국방부에 따르면 2025년까지 군 내부의 데이터베이스를 기초로, 전장의 모든 변수를 빅데이터화한 후 최선의 작전계획을 영위하는 이른바 ‘AI지휘체계’를 구축한다. 여기에는 기상조건 및 북한군의 상황과 각종 지형 등의 데이터를 바탕, 적절한 전략 수립에 선제적으로 활용한다. ◆각국 군사로봇 개발에 사활 걸다‘정보가 곧 국력’이라는 말이 있듯이 정보는 곧 전쟁 성패의 바로미터다. 이 같은 정보획득의 과정서도 AI의 기술은 기존 정찰의 범위와 기능을 무력화시킬 만큼의 초고도화된 기술력을 발산하고 있다.과거 드론 및 고고도 정찰기 등으로 획득한 각종 정보를 각 군을 상대로 취합·공유하는 데 수 시간이 걸렸던 것을, 이제는 AI 시스템이 갖가지 (전투 간)경우의 수를 따져 최적의 적전 지휘를 공표하는데 수분으로도 충분하다. 이를 통해 지휘관 회의를 위한 이동 시간 절감과 동시, 각자의 자리에서 실시간 정보 공유가 가능해짐에 따라 신속한 상황 파악이 더욱 용이해 졌다.군사강국으로 일컬어지는 중국과 미국에서도 AI를 융합한 전투체계 모색에 사활을 걸고 있다.중국은 최근 화기 탐색 기능을 갖춘 이른바 ‘통합 전투시스템’을 공개했다. 이는 미래 전쟁에 대비한 개인별 맞춤 전투시스템으로, 주로 정찰 부대를 중심으로 활용되고 있는 상황이다.미국에서도 ‘군사용 로봇 개발’의 일환으로 100㎏에 가까운 군장을 메고 시속 약 20㎞의 속도로 험준한 산악지형을 침투하는 로봇을 선보였다. 정보력과 더불어 ‘기동력의 극대화’에도 초점을 뒀다는 평가다.우리 군 역시도 국방 청사진을 위한 ‘미래국방 발전전략’ 수립에 여념이 없다. 물론 여기에도 AI를 기반으로 둔다. 취지는 명확하다. 4차 산업에 기인, 과거 국지전과 비교해 전혀 다른 양상을 띨 미래 전에 적극 대비한다는 캐치프레이즈다.세부사항으로는 무인체계 통합 통신망, 에너지 무기, 생존을 위한 생화학무기 탐지, 투명망토 등의 특수 소재, 무인화, 센싱 네트워크 등이 꼽힌다. ◆국방 IT의 핵심 ‘AI와 빅데이터’국방과 IT의 핵심은 AI와 빅데이터의 융합으로 점철된다. 전쟁 발발의 사전 예측으로 전투상황을 미연에 방지함과 동시, 군수물자의 생산과 배치, 보급 간에도 빅데이터를 적극 활용함에 따라 물자 재고 절감과 이를 통한 경제성 확보에 나선다는 전략.조금 더 면밀히 살펴보자면, ‘AI 제어 시스템’ 구축을 통해 전력의 극대화를 꾀함과 동시, ‘군 발전 전략 플랜’을 바탕으로 한 치의 오차 없는 운용과 이에 부합되는 체계적이자 섬세한 전투태세를 AI로 하여금 발현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초연결, 초고도화의 개념이 견고히 탑재돼 있다.빅데이터 구축 역시도 미래 전장의 주도권 확보를 위함이다. 수많은 군 정보는 빅데이터를 통해 대용량의 체계적 정리가 수월해졌다. 데이터베이스의 유지와 관리, 한 걸음 더 나아가 신 정보의 생성 기반을 공고히 하겠다는 목표다.AI를 통한 국방비 절감 부분도 간과해선 안 될 문제다. 현재까지는 시범단계에 그쳐 있다 보니 가시적 성과는 미흡한 실정이긴 하나, 군사력 증강과 함께 군비 절감도 피할 수 없는 어젠더임을 정부 차원으로도 숙고하는 상황이다.이 같은 상황을 대변하듯 최근 국방부는 빅데이터와 사물 인터넷을 활용, 국방예산 절감을 위한 ‘재정개혁 위원단’을 꾸렸다. 예산 절감이 기대되는 과제를 능동적으로 찾아내 이를 중심으로 향후 심도 있는 관리체계를 구축하기 위함이다.주요 사항으로는 △사물인터넷 기반의 ‘스마트 탄약고’ 구축 △빅데이터를 활용한 예산 누수 방지 △정보 송달 간 중복 체계 통합 △군수물자 조달 정보 관리 등이다.미래 전투는 개별의 전투 인력과 빅데이터 수반의 정보 공유, 첨단화된 무기체계 일색일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선 AI와 사물인터넷의 융합이 필수불가결한 요소일 것이며 또 이 같은 요소를 충족시키고자 한다면 5G 기술력이 전제돼야 함이 마땅하다.그 사례로 ‘장교의 요람’으로 불리는 육군사관학교가 올 하반기를 기점으로 ‘스마트 육군사관학교’ 구축을 명문화했다. 이 역시도 초저지연, 초연결성을 담아낸 5G 기술이 기반으로 자리 잡고 있다.AI는 갖가지 무인 시스템을 낳았다. 이로 인해 잉여 인간으로의 전락을 우려하는 일각의 목소리 역시 심심찮다. 다만 시류라 함은 거스르는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융합을 전제한다. 집단 지성으로의 고찰에는 신중하되 국방과 IT의 만남이 전투 간 인명 손실을 최소화한다는 점에서 AI는 그저 ‘인간을 위함’이다. 글·사진 군월드 IT 사업팀김종윤 기자 kjyun@idaegu.com

스토리로 만나는 경북의 문화재(10) 영주 근대역사문화거리

영주 광복로에서 관사골 일대의 거리와 6군데의 개별 구조물이 지난해 전국 최초로 마을단위의 역사공간 등록문화재가 됐다. 사진은 광복로 상가 거리. 6월은 잘 익은 보리를 베어내는 계절이다.그때는 낡은 정미소도 탈탈 털털 요란한 소리를 내며 활기를 띠었다. 앞마당에 넘치던 나락 냄새까지 풍요롭던 세월, 정미소는 마을의 중심이었다. 오랜 시간의 흔적이 담겨있는 공간들을 찾아본다. ‘장소’를 단순한 물리적 영역을 넘어서 새로운 개념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지난해 이맘때 쯤 문화재청은 근대문화유산의 효과적인 보존 활용을 위해 선(線)과 면(面) 단위의 문화재 등록 제도를 새로 도입하기로 했다. 근대 시기에 형성된 거리, 마을, 경관 등 역사문화자원이 집적된 지역이 그 대상이 됐다. 지금까지는 문화재 등록 대상이 건축물이나 문헌 위주의 점(點) 단위였다. 이로써 급속하게 진행된 도시화로 고유의 경관을 잃어가는 마을이나 거리 등을 폭넓게 보존·활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문화재청이 등록문화재 지정 공고문과 함께 발표한 지도. 노란색은 일대의 거리 포함구역이고 주황색은 개별 근대건축 구조물을 표시한다. 첫 사례로 경북 영주 근대역사문화거리와 전북 군산과 전남 목포의 일정 지역을 문화재로 등록한다고 예고한 것이 딱 1년 전의 일이다.그 후 30일간의 기간을 거치고 심의를 통과해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문화재청은 공고문을 통해 ‘영주 근대역사문화거리’는 철도역사와 그 배후에 형성된 철도관사, 정미소, 이발관, 근대한옥, 교회 등 지역의 근대생활사 요소를 간직한 건축물이 집적되어 있다며 영주동 관사골에서 광복로 일대의 거리와 6군데의 개별 공간구조물을 등록문화재 제720호로 지정한다고 발표했다.이는 전국 최초로 마을단위의 역사공간이 등록문화재가 된 셈이다. 영주 근대역사문화거리는 근대시기 영주시의 형성과 발전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핵심 공간이다. 이곳에는 1920년부터 60년대 사이에 조성된 건물 들이 있다. 옛 영주역 5호 관사와 7호 관사, 영주동 근대한옥, 영광이발관, 풍국정미소, 영주제일교회 등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역사적 공간이다. 그 동안 개발로 인한 철거 위기도 적지 않았다. 한국전쟁과 개발논리에도 살아남은 이 6곳의 건물이 근대역사문화거리의 주축이다. 광복로와 두서로 일대에 모두 반경 300미터 남짓 안에 자리하고 있다. 걸어서 둘러보기로 했다. 세월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영주 풍국정미소는 등록문화재 제720-5호로 지정되었다. 거대한 도정기계를 비롯한 공간 자체가 양곡 가공과 곡물 유통의 산업사적 가치가 있는 곳이다. ◆영주 풍국정미소(등록문화재 제720-5호)붉게 녹슨 철문을 열어주는 주인 우길언(82)씨를 따라 정미소에 들어서니, 높은 천정에 달린 큰 크랭크축과 벨트가 옛 정취를 느끼게 한다. 하얗게 먼지가 내려앉은 게 수년간 영업을 하지 않은 듯하다. 어두컴컴함 속에서 낡은 기계들이 짐승처럼 웅크리고 있다. 슬레이트 지붕 사이로 들어온 자연광이 내부를 희미하게 밝히고 있다. 1966년부터 부터 직접 이곳에서 일했고, 정미소와 함께 늙어가는 우 씨는 2010년대 초에 시대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기계를 멈췄다고 한다. 더 이상 ‘윙윙윙~털털털...’하는 요란한 소리는 들리지 않고 고요하기만 하다. … ‘숨 가쁘게 달려왔으나 결국 실패하고 만 늙은 혁명가’ / ‘그 풍경을 나는 이제 사랑하려 하네’…. 안도현 시인은 ‘정미소가 있는 풍경’이라는 시에서 정미소를 이렇게 표현했다. 범상치 않은 아우라를 뿜어내는 건물을 보고, 비록 실패한 혁명가일지라도 그 존재만으로도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세월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이 공간에는 요즈음 시간의 흔적을 보러오는 이들이 더 많다.얼마 전 기계를 연구하는 공학도들이 서울서 찾아와 이틀간이나 머물면서 자료를 수집해 갔다. 근대 산업 시기부터 운영된 정미소로 양곡 가공업의 생성과 양곡 유통에 관련한 역사가 고스란히 존재하고 있다. 건축형식과 목재 설비구조, 도정 기기들 외에도 판수동 저울 등 당시의 정미소와 관련된 기구가 세월의 먼지를 쓰고 숨 쉬고 있다. 장소 자체가 양곡 가공과 곡물 유통의 산업사적 가치가 있는 곳으로 보인다. 당국에서는 향후 이곳을 양곡 가공과 곡물 유통을 주제로 한 산업문화관, 쌀 카페, 도정 참관 및 판매장으로 활용하면 가치가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광복 이전, 6·25전쟁 전후의 근대건축물이 남아있는 두서길 일대는 관사골로 불린다. 사진 왼쪽 아래 영주역 7호 관사의 낡은 건물과 그 오른쪽으로 영주역 5호 관사의 지붕도 보인다. ◆영주역 5호 관사(등록문화재 제720-1호)와 7호 관사(등록문화재 제720-2호)영광중학교 옆 가로수 그늘을 따라 오르막길을 걸어 관사골을 찾아 갔다. 어린이공원이라 불리는 작은 동산위에 오르자 영주동을 중심으로 시가지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다.영주의 진산(鎭山)이라 일컫는 해발 276m의 철탄산이 내려다보고 있다. 일제강점기부터 영주는 철도 교통이 발달해 철도 종사자들로 붐볐고, 역무원들의 관사도 늘어나 현재 두서길 일대는 관사골로 불린다. 1942년 중앙선이 개통되고, 영주역이 중간 역으로 역할 한 것이 영주시가 근대도시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등록문화재 제720-1호 영주역 5호 관사는 1935년 지은 건물로 일본식 목조 관사주택의 전형을 보여주는 건축물 중 하나다. 이 일대는 고려 말·조선 초 시기 유적을 비롯해 광복, 6·25전쟁 전후의 근대건축물이 다수 존재하는 곳이다. 영주 근대도시 형성과 발전의 산 역사가 된 장소이기도 하다.부근에는 다른 관사도 남아있지만 내부공간구성, 외관형태, 구조 및 재료의 보존상태가 좋으며 원형 보존이 잘 된 '5호 관사'와 '7호 관사'를 등록문화재로 지정했다. 1935년 지은 건물로 일본식 목조 관사주택의 전형을 보여주는 건축물 중 하나다.창이 바깥으로 튀어나온 구조이고 지금은 시멘트 기와 지붕을 하고 있다. 대개의 오래된 건물들이 그러하듯 다소 비장하게 남쪽을 향해 서있다. 영주동 근대한옥은 팔작지붕에 정면 7칸, 측면 6칸의 규모이며 옛 한옥의 전형을 보여 준다. 등록문화재 제720-3호이다. ◆ 영주동 근대한옥(등록문화재 제720-3호)관사골로 올라가는 길 왼쪽 조금 낮은 곳에 '영주동 근대한옥'이 있다.작은 공터에는 채소가 가득한 텃밭이 있고 그 앞으로 골기와 집이 한 채 보이므로 쉽게 찾을 수 있다. 문화재청 자료에 따르면, 명나라 황제가 어머니의 병을 고쳐준 의원 이석간에게 보답으로 99칸 본채와 별채 여러 채를 지어주었다고 한다.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건 별채인데, 그마저도 1920년에 신축한 거라고 한다. 팔작지붕에 정면 7칸, 측면 6칸의 규모이며 현재의 상태로 남아있다. 옛 한옥의 전형을 보여주는 격자무늬의 문들이 보인다. 80여년의 역사를 가진 영주 영광이발관. 이발 역사의 흔적을 간직하고 지금도 영업을 계속하며 추억의 비누향기가 나는 공간이다. 등록문화재 제720-4호. ◆영주 영광이발관(등록문화재 제720-4호)풍국정미소를 나와 조금 걸으면 광복로 남쪽도로변에 보인다. 1930년대부터 ‘국제이발관’으로 영업을 시작하여 ‘시온이발관’으로 바뀌었다가 ‘영광이발관’에 이르는 8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1970년경 현재의 이발관을 운영하는 사람이 인수하여 지금의 이름으로 영업 하고 있다. 서민들의 일상 생활역사의 흔적을 보여주는 곳이다. 1950년대 근대산업시기에 건축된 슬레이트 목조구조의 건축물이다. 영주에서 80년 동안 지속된 장인의 이발관 역사의 흔적을 보여주는 사례로 업계의 변화와 특성, 기술을 간직하고 있다. 사라져가는 ‘이발관’의 생활사적 가치가 높은 근대유산이다. 이곳에서는 여전히 비누 거품 솔과 가죽 끈에 면도칼을 갈고, 추억의 비누향기가 나는 곳이다. 영주 제일교회는 영주시의 근현대사에서 시민이자 신도들인 지역 주민들의 삶과 역사적 흔적이 남아있어 등록문화재 제720-6호로 지정되었다. ◆영주 제일교회(등록문화재 제720-6호)문화재청 등록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영주 제일교회는 1907년 정석주 집에서 기도모임으로 시작되었고, 1909년 4월 초가 3칸을 매입하여 교회를 설립하고 경북노회에 가입하였다고 한다. 2007년에 이미 창립 100주년이 됐다. 1938년 신사참배 반대운동으로 목사와 장로‧전도사들이 구금 또는 옥고를 치렀다. 한국전쟁 중에 소실되었다가 신도들의 노역봉사로 1958년 7월 준공된 역사를 지니고 있다.영주지역에서는 유일한 서양의 고딕식 건축양식이 보이는 절충형의 예배당 근대건축물이다. 영주시의 근현대사에서 시민이자 신도들인 지역 주민들의 삶과 역사적 흔적이 남아있어 전승 보전해야 할 문화유산으로 가치가 있다고 문화재청은 보았다. 이렇게 해서 선과 면 단위로 지정된 등록문화재를 차례로 둘러보았다.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다지만, 주민들은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일제의 잔재를 보존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과 역사적으로 지켜야할 우리의 역사라는 주장이 엇갈린다. 학계에서는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적산가옥을 보존해야 한다고 본다.일제가 남긴 오욕의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교훈의 대상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적 비극이 담긴 장소를 찾아 반성하고, 교훈을 얻는 여행을 뜻하는 ‘다크 투어리즘’도 있다.서울 서대문형무소나 나치독일이 남긴 흔적을 오히려 되살린 사례이다. 근대 유산은 자랑스럽든 아니든 우리 근·현대사의 증거다.그리고 이는 우리의 삶의 일부였다.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공간의 의미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세계는 커지고 우리 시야는 더 넓어질 수 있을 것이다.그 오랜 공간에는 만남이나 또는 헤어짐, 수많은 이야기 들이 있었을 것이다. 아픔의 시간을 딛고 지금 우리는 얼마만큼 성장해 있는가. 시간이 멈춘 거리, 이 6월에는 그리움과 함께 걷는다. 글·사진=박순국 언론인(글·사진= 박순국 언론인) 문정화 기자 moonjh@idaegu.com

삼국유사 기행 (14 ) 진흥왕의 전쟁

신라 제24대 진흥왕은 7세에 즉위해 36년간 왕좌에 있으면서 신라 최고의 영토를 확장하고, 왕권 강화를 꿈꾸면서 화려한 정치를 펼쳤다. 그러나 43세의 젊은 나이에 권력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신라 24대 진흥왕이 궁궐을 지으려다 황룡이 나타나는 바람에 절을 지은 황룡사의 터에 보리밭이 조성돼 관광객들의 포토존이 되고 있다. 당간지주와 황룡사역사관이 멀리 보인다. 진흥왕은 나제동맹으로 100년을 넘게 이어져 왔던 백제와의 동맹을 파기하고, 성왕을 죽이며 한강을 차지하는 정복 군주로 떠올랐다. 그는 화랑과 이사부, 거칠부 등의 장군을 앞세워 전쟁으로 영토를 확장하는 데 많은 국력을 기울였다. 영토가 국력을 자랑하게 했다. 신라의 부흥기에도 말기 못지않게 국가 간의 전쟁을 펼치면서도 권력에 대한 암투 또한 치열하게 전개됐다. 이사부와 거칠부는 왕권을 옹호하며 직접 전쟁에 나서 많은 공적을 올렸지만, 자신들의 권력 구도를 쌓아 올리는데도 상당한 심혈을 기울였다. 정복군주였던 진흥왕은 그를 어린 나이에 왕좌에 등극할 수 있도록 지원했던 이사부와 거칠부의 세력에 밀려, 그의 최후는 쓸쓸히 법당 안에서 맞이해야 했다. 진흥왕의 전쟁사와 함께 그를 지원했던 이사부와 거칠부, 내각의 힘이 절대적인 왕권을 흔들며 격랑 속으로 휘말렸던 역사를 돌아본다. ◆진흥왕의 전쟁진흥왕이 540년 즉위하고, 10여년 뒤 친정체제로 전환하면서 연호를 개국으로 변경하고 영토를 넓히기 시작하면서 신라, 고구려와 백제 삼국의 상황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진흥왕은 551년 백제의 성왕과 힘을 합쳐 고구려 정벌에 나섰다. 4~5세기 광개토대왕과 장수왕 대에 전성기를 지낸 고구려는 내부의 권력투쟁과 북방 돌궐의 침입 등으로 내우외환을 겪고 있었다. 백제는 고구려를 공격해 한강 유역의 6군을 회복했고, 신라는 한강 상류의 10군을 점령했다. 이때 신라는 고구려에 맞서기 위한 백제와 나제동맹을 유지하고 있었다. 경주 용강동 마을 가운데 고분에서 출토된 바둑돌. 학자들은 신라시대 진흥왕대의 유물로 보고 있다. 진흥왕은 2년 뒤에 백제군을 급습해 한강 하류를 빼앗고 새로운 주를 설치했다. 100여 년이 넘도록 유지된 나제동맹을 깨트리고, 공격적으로 한강 유역을 차지한 진흥왕의 나이는 당시 스무 살로 혈기왕성했다. 백제의 성왕은 귀족들의 반대에도 총사령관으로 태자 여창을 임명하고, 가야와 왜의 연합군을 편성해 신라 관산성으로 쳐들어갔다. 554년 신라와 백제의 운명을 건 관산성 전투는 우리나라 고대 국가 간의 전쟁에서 가장 처절한 싸움으로 설명된다. 관산성은 백제군에게 함락되었고, 승리를 보고받은 성왕은 태자를 격려하기 위해 구천으로 향했다. 성왕이 친위군대 50명만 이끌고 온다는 정보를 입수한 진흥왕은 성왕을 급습해 목을 베고, 그 여세를 몰아 관산성을 되찾았다. 이 전투에서 백제는 왕을 비롯해 좌평 4인과 2만 9천600명에 이르는 군사가 모조리 죽임을 당했다. 진흥왕은 넓어진 신라의 영토를 기념하기 위해 북한산, 창녕, 황초령, 마운령 등 그가 정복한 땅의 경계를 순회하면서 순수비를 세웠다. 북한산, 창녕, 황초령, 마운령 등에서 발견된 순수비는 진흥왕의 업적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는 증거들이다. 한반도 동남부에 있는 약소국 신라를 한강 유역을 중심으로 강원도, 함경도에 이르는 큰 나라로 성장시킨 것은 패기만만한 진흥왕의 힘이었다. 고구려와 백제 강대국 틈에서 눈치를 보던 신라는 진흥왕 이후로 삼국통일을 꿈꾸기 시작했다. ◆이사부와 거칠부진흥왕이 왕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법흥왕의 왕비였던 그의 외할머니의 힘이 크게 작용했다. 법흥왕이 사망하면서 당시 왕실에서 실질적인 주인은 왕비였던 파도부인이었다. 아들이 없었던 왕비 파도부인은 딸 지소부인의 아들인 외손자 삼맥종의 자질을 높게 평가했다. 또 당시 법흥왕의 최측근으로 상대등과 2품의 고위직에 있던 이사부와 거칠부가 파도부인의 뜻을 받들어 진흥왕의 즉위를 적극 지지했다. 이사부와 거칠부도 내물왕의 4세, 5세손으로 가까운 왕손이자 정권의 실세로 나라의 일을 쥐락펴락하는 대신이자 무장이기도 했다. 황룡사역사관에 옛날 담징이 그려 날아가던 새들이 부딪혀 떨어졌다는 설화가 전해지는 벽화가 재연되어 있다. 진흥왕이 즉위하면서 태후 지소부인의 섭정으로 나라의 살림을 꾸려나갔지만, 실질적인 내정은 이사부와 거칠부의 입김으로 흘러갔다. 이사부와 거칠부는 진흥왕의 전쟁에 앞장서는 무장으로 신라의 삼국통일 기반을 조성하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 △이사부: 이사부는 내물왕의 4세손으로 이름은 약종이었다. 그는 지증왕과 동문수학하면서 자라 지증왕이 왕위에 오르는데 1등 공신 역할을 했다. 지증왕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어 장군으로 전장에 나서 혁혁한 공을 세우기도 했다. 역사에 남아 있는 기록으로 울릉도를 복속시킨 것도 이사부의 솜씨다. 이사부는 법흥왕 대에도 장군으로 대대적인 활약을 이어갔다. 왜와 백제, 고구려, 가야국의 자잘한 침략을 막아내면서 금관가야를 점령해 실질적인 가야를 복속하는 성과를 올렸다. 이어 백제와 고구려의 전쟁 틈바구니에서 도살성과 금현성을 어부지리로 신라 땅으로 만들었다. 562년에는 대가야를 멸망시켜 가야를 완전히 신라에 합병시켰다. 단양적성비 등에 이사부는 왕 다음으로 가장 앞에 이름이 기록될 정도로 신라의 실세로 막강한 힘을 자랑했다. 이사부는 내정에도 밝아 나라의 정통성을 잇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방법으로 국사를 편찬해야 한다고 주장해 거칠부가 국사를 편찬하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다. △거칠부: 거칠부는 내물왕 5세손으로 왕손이었으며 이름은 황종(荒宗)이다.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대신으로 나랏일을 했다. 그는 젊었을 때 승려로 고구려 땅을 누비며 내정을 정탐하는 일을 하면서 고구려의 유명인사들과 교분을 쌓았다. 이러한 활동을 바탕으로 장군이 되어 백제,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유리한 입장에서 싸움을 전개할 수 있었다. 거칠부가 백제, 고구려 등과의 전쟁에서 혁혁한 공로를 쌓으면서 내각에서의 지위도 빠르게 성장했다. 그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면서 고구려에서 망명해온 승려 혜량법사를 추천해 바로 신라의 승통으로 임명하게 했다. 승통은 당시 신라 승려 최고의 관직으로 파격적인 인사였다. 마운령비 등에 거칠부의 이름이 왕 아래, 맨 윗자리에 기록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고구려 전쟁에서는 그의 공적이 두드러졌다는 것을 알게 한다. 울진 죽변면 봉평리에서 발견된 신라비. 법흥왕 대에 울진에서 중요한 사건이 발생해 이를 처리한 내용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어 국보 제242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흔적: 울진 성유굴과 봉평리신라비△울진 봉평리 신라비전시관: 전시관에는 국보 제242호 울진봉평리신라비가 실물 그대로 전시돼 있다. 봉평리 신라비는 법흥왕 당시 울진지방에서 성을 에워싸고 불을 지르는 등의 사건이 발생하여 정부가 대군을 동원해 진압하고, 사후 처리하는 과정까지 상세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이 비석의 기록은 당시 율령반포에 대한 사실과 관료제도, 지방통치조직과 촌락구조, 의식행사 등을 파악하는 귀중한 자료적 가치를 가진다. 전시관은 국보 신라비는 물론 실내전시관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시대의 중요한 석비 모형을 전시하고, 금석학의 계보와 시대별 비의 양식변화 등을 소개하고 있다. 또 야외 비석거리와 야외비석공원을 우리나라 지도 모양으로 조성하고, 비석이 발견된 위치에 그 비석의 모형을 재현해 전시하고 있다. 진흥왕이 세운 명활산성작성비를 비롯해 창녕 신라 진흥왕척경비와 황초령순수비, 북한산순수비, 마운령순수비 등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울진 성류굴 입구 암벽에 신라 시대에 새겨진 글. △성류굴의 진흥왕 명문: 최근 천연기념물 제155호인 울진 성류굴 내부 제8 광장에서 신라시대 진흥왕이 560년 6월에 성류굴을 다녀간 기록이 확인되면서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동굴 천정에서 바닥으로 연결된 종유석에 ‘경진년(560, 진흥왕 21년) 6월에 진흥왕이 다녀가면서 잔교를 만들고 뱃사공을 배불리 먹였다. 50명이 이를 보좌했다’는 내용의 글이 새겨져 있다. 천연기념물 제155호 울진 성류굴 내부의 8광장의 종유석에 새겨진 명문. 진흥왕이 다녀갔다는 내용의 글자가 최근에 발견돼 학계와 사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를 통해 560년 진흥왕이 울진 성류굴에 행차하여 다녀간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진흥왕의 이동에는 선박이 활용되었고, 행차에는 50인이 보좌하였으며, 행차와 관련하여 동굴 내부를 잇는 잔교가 설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울진 성류굴 내부의 8광장의 종유석에 신라시대 진흥왕이 다녀갔다는 내용의 글자가 새겨진 현장을 해설사가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삼국사기를 비롯한 기존 문헌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신라사를 연구하고, 울진 성류굴의 역사적 위상을 새롭게 조명하게 할 중요한 자료로 국보적 가치를 가진다고 평가된다. 국립경주박물관에 보존되고 있는 명활산성작성비. 진흥왕 대에 축성되었다는 내용과 당시 여러 제도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역사적 자료 가치를 가지고 있다. △명활산성작성비: 명활산성작성비는 보문단지 입구 명활산성 성벽 터에서 농부에 의해 1988년 발견됐다. 지금은 국립경주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실성왕 집권기인 405년 이전에 이미 축성되어 있었고, 자비왕과 소지왕 때에는 국왕이 머물렀던 궁성으로 사용되었다. 비문은 9행 148자로 앞면이 거의 꽉 차도록 글자가 새겨져 있다. 비문은 작성간지가 있는 서두, 축조 공사 총책임자의 이름, 축성 공사 실무자의 인명 및 담당 거리, 공사 담당 위치, 작성 참가자의 수, 공사 기간, 글쓴이의 이름 등의 순으로 기재되어 있다. 비의 건립 연대는 첫머리의 신미년이라는 간지로 보아 진흥왕 12년 551년으로 추정된다. 축성 시 비석을 세우는 것은 책임 한계를 명백히 밝히고 축성에 참여한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서이다. 신라 영역에서 이러한 작성비는 591년의 남산신성비가 여러 개 발견되었으나, 명활산성에서는 처음으로 발견됐다. 경주 남산에서 발견된 경주남산신성비 제4비. 명활산성작성비와 함께 신라시대 문화를 알게 하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명활산성작성비는 남산신성비와 공통되는 점이 많아 양자를 서로 보완하여 신라 중고기의 역사상을 추정할 수 있는 중요한 금석문으로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새로 쓰는 삼국유사: 진흥왕과 거칠부의 갈등진흥왕이 왕권 강화를 추진하면서 영토를 확장하던 당시 거칠부는 신라 최고 귀족으로 내정과 국방에서도 실질적인 권력자로 자리 잡았다. 진흥왕과 거칠부가 갈등을 빚게 된 계기는 왕위를 이을 세자 책봉 문제에서 비롯됐다. 세자였던 진흥왕의 첫째 아들 동륜이 책봉된 지 6년 만에 죽은 이후, 다음 세자 책봉 문제를 두고 진흥왕과 거칠부의 의견이 대립했다. 울진 봉평리 신라 비 전시관에 대한민국 모형의 공원을 조성하고, 시대별 비석들이 발견된 장소에 비석의 모형을 설치해 두고 있다. 진흥왕 북한산비의 모형. 진흥왕은 세자 동륜의 아들 진평을 세자로 책봉하려 했다. 그러나 귀족세력의 중심이자 실세였던 거칠부는 동륜의 동생 금륜(진지)을 세자로 책봉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맞섰다. 진흥왕은 장손이 왕위를 이어야 한다는 것과 신체가 장대하고, 지식이 깊으면서도 활달하며 강직한 기상을 가진 손자 진평의 인물됨을 높이 평가했다. 진평이 자신의 어릴 때 모습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반면 둘째 아들 금륜에 대해서는 편향적인 성격을 탐탁지 않게 보았다. 진흥왕의 뜻을 따르며 진평을 세자로 책봉하려던 세력들은, 왕비와 함께 금륜을 지지하는 거칠부의 세력에 밀려 조용하게 물러나 훗날을 도모하기로 했다. 진흥왕은 자신의 세력이 밀려나자 아들을 잃은 슬픔을 달래면서 승복을 입고 절에서 은둔하다 43세의 일기로 숨을 거두었다. 울진 봉평리 신라 비 전시관의 비석 공원에 설치된 진흥왕 황초령순수비 모형. 거칠부는 진흥왕의 둘째 아들 금륜을 제25대 진지왕으로 옹립하고, 상대등에 올라 정권을 마음대로 주물렀다. 그러나 거칠부의 종횡은 오래가지 않았다. 진지왕은 거칠부가 국사를 모두 자임하고 최고 실권을 행사하자 나랏일은 뒤로 하고 횡음에 빠졌다. 이어 거칠부가 죽자 그들의 세력은 급격히 와해되고, 진평왕을 지지하던 세력들이 진지왕을 몰아내고 진평왕을 26대 왕으로 내세웠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21>IT가 농사짓는 시대 온다

드론을 이용해 씨앗을 뿌려 심는 파종을 하면 그 비용을 절반 이상 절감시킬 수 있고 농약 살포도 전통적인 방법에 비해 몇 배나 빠르고 효율적으로 작업이 가능하다. 스마트팜의 대표적 기술은 크게 스마트 축사와 과수원, 온실 등에 적용된다. 스마트폰만 보유하고 있다면 시·공간의 제약 없이 온·습도, 이산화탄소(CO2) 농도를 확인하고 제어가 가능해진다. 메인 재배 과정을 자동화해 '로봇농장'을 구축한 일본과 수백 명의 인력이 수 일간 해야하는 작업을 몇 시간 만에 처리해내는 '로봇농부'를 제작한 미국 등 각국들은 치열한 농업로봇개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농업산업에 자동화 시스템을 구축하게 되면 최적의 양식 환경 조성을 위해 수질 온도와 상태, 여타 환경 등 모니터링한 후 실시간으로 제어할 수 있다. ‘흙’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인생사 치열한 궤적의 끝에는 물아일체의 니즈가 응당 도사린다. 흙과 벗 삼고자 하는 간절한 앙망이리라.‘귀농’이 품은 함의. 실패로 점철된 서글픈 편린일 수도, 수구초심을 담뿍 내포한 ‘회귀’ 정도로 말할 수 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저 땅의 촉감과 그 특유의 향을 그리워하는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 싶다.농업은 1차 산업이다. 4차 산업의 범람으로 ‘초고도화’의 아이덴티티가 공고해지는 시점. 원론적으로 보자면 농업의 시류는 분명 ‘역행’이다. 하지만 이 같은 논리는 농업이 품은 궤와 향후 청사진을 간과했다는 전제 하에 펼쳐지는 궤변일 뿐이다.농업은 생산과 가공, 서비스를 아우른다. 전 분야를 망라한다 할지라도 결코 과할 리 없다는 증명이다. 여기에는 4차 산업의 산물인 ‘초연결’의 모토가 잠식돼 있다. ‘농업과 정보기술(IT)’, 바로 ‘스마트팜’의 이름으로 말이다.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이때를 이른바 스마트팜 1세대로 보는 것이 중론이다. 스마트폰을 활용, 비닐하우스 환경과 그에 따른 작물의 발육 상황 등을 상시적으로 체크·영위함으로써 최적의 농업환경 구축에 이바지한다는 목표였다.1세대 스마트팜의 벨류가 제어와 체크의 기능으로 국한됐다면 올해 이르러 상용화 단계에 접어든 2세대 스마트팜은 인공지능(AI)의 세부적 기능 활용에 방점을 찍는다. 클라우드를 통한 빅데이터, AI적 자동제어가 결합된 ‘혼합 환경 컨트롤’ 등이 바로 그것이다.2세대 스마트팜의 괄목할만한 성장세는 인력의 유무로 가시화되고 있다. 데이터에 관한 이해도 제고가 오롯이 사람의 몫이었던 1세대 대비, 2세대에 이르러 수집된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분석, 제어의 기능을 넘어 최종 결정의 단계를 넘나드는 이른바 ‘토탈 솔루션’의 이름을 공고히 했다.더욱 고무적 사실이란 이 같은 자동제어시스템이 농업환경 전반으로 확산됨에 따라 고된 노동이 여의치 않은 고령 농업인과 귀농인, 신규 농업인들조차 스마트팜을 통한 농업 활동이 한층 더 용이해졌다는 것이다.이 같은 상황에 기인, 농촌진흥청에서는 복합에너지관리 및 로봇을 통한 농업시스템 구축을 핵심으로 삼아, 한국의 지형과 농업환경에 적합한 ‘3세대 스마트팜’ 상용화를 위한 연구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AI의 범위는 확장세다. 일방성이 아닌, 전 방위적으로 말이다. AI를 통해 농산물 가격을 예측하고, 의료·법률·보험·무인점포·불법거래감시·음성비서·상담사에서 국가 안보까지 그 범주를 시나브로 넓혀 가고 있는 상황.기본이 중요하다고 한다. 첫 단추의 위치가 전체 옷맵시를 결정한다. 농업은 1차 산업이자 베이스다. 그렇다 보니 터부시되기 일쑤였다. 4차 산업혁명의 도래를 두고 설왕설래를 거듭하기에 앞서, 1차 산업이 없었다면 지금의 4차 산업은 현재까지도 인큐베이터를 벗어나지 못 했을 터. 이 점을 결코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1차 산업이란 농업과 4차 산업의 최대 벨류로 일컬어지는 AI와의 만남, 이 같은 융합이 가시화될 수만 있다면 농업은 4차를 훌쩍 뛰어넘는 ‘제5차 산업’으로 명명하기에 전혀 어색할 리 없다. ◆농업 환경은 IT가 책임진다사물인터넷(IoT) 기술이 양식장에 투영됐다. 바로 ‘스마트 양식’의 이름으로 말이다. 아직 시범단계이긴 하나, 상용화를 위한 담금질은 그 어느 때보다 가일 층 박차를 가하고 있다.원리는 이렇다. 빅데이터를 활용, 양식에 필요한 생육환경과 수요조사 등 자동화 시스템 구축을 전제로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최적의 양식 환경 조성을 위해 수질 온도와 상태, 여타 환경 등을 모니터링한 후 실시간으로 제어해 낸다는 것. 이 역시도 자동제어 시스템을 적용, 인력 최소화에 그 의의를 둔다.정부 차원으로 ‘스마트농업 활성화’의 캐치 프레이즈가 활기를 띄고 있다. 농업 간 드론 및 농업 위성개발을 통해 효율적 농업환경 개선에 이바지한다는 복안이다. 실수는 최소화하되 실력은 배양, 농업결실 간 극대화를 꾀하겠다는 기조로 풀이된다.블록체인을 활용한 농업생산물의 이력 컨트롤, ‘플리즈마’를 근간으로 한 최첨단 저장방식이 대두되고 있다. 이 같은 기술 적용을 통해 기후나 습도, 외부요인 등 저촉을 최소화하는 농업 유통도 4차 산업의 이름으로 ‘초융합’의 기조를 가시화해가고 있다. ‘안심 먹거리’의 벨류 제고에 점층적으로 나서고 있는 형국이다.조작이 어려운 이앙기 운행도 ‘자율주행’의 이름으로 한층 더 용이해질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자율주행 이앙기는 사람의 조작 없이 오차를 최소화하는 범위서 모판에 모를 옮겨 심을 수 있는 혁신 기술 중 하나로 꼽힌다.국내 유수의 통신사에 따르면 자율주행 이앙기는 이동통신을 기반으로 상시 ‘이동 측위 기술’을 적용한 IoT 전용통신을 활용, 위치기반 정보를 실시간 취합함에 따라 작업 정밀도 제고를 통한 최적의 환경을 조성케 된다.‘20대 농군’이라는 직함, 매스컴 등에서 주의 깊게 다룰 정도로 과거에는 이질적이자 특이한 이력으로 점철되곤 했다. 이제는 앞서 언급했듯 농업 간 스마트 기기에 익숙한 청년층이 AI를 접목한 자동시스템을 활용한다는 것, 이색적일 리 없다.빅데이터를 통해 농작물의 생육 상태 등을 체크, 이에 따른 양분 및 수분을 공급하고, 자동 개폐를 통해 온·습도 등을 제어해 가는 광경은 신변잡기적 일상인냥 이제는 흔히 접할 수 있는 광경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향후엔 청년 농업인이라는 이름이 어지간히 어색해질 모양이다. 청년과 연령을 뗀 농업인이라는 직분이 오히려 맞춤이다. ◆농업과 IT 융합은 세계 트렌트사실상 농업과 IT의 융합은 전 세계적 추세다. 그도 그럴 것이 자동화를 모토로 한 스마트의 아이덴티티가 현재를 살아가는 4차 산업 시대의 주요 어젠더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독불장군은 뒤안길로 사라지고 융합과 연결의 시대가 펼쳐진 셈이다.스마트팜의 대표적 기술로는 크게 스마트 축사와 과수원, 온실 등으로 나뉜다. 스마트폰만 보유하고 있다면 시·공간의 제약 없이 온·습도, 이산화탄소(CO2) 농도까지 체크 및 제어가 이제는 가능해졌다. 이와 더불어 농장 곳곳에 설치된 센서를 통해 일조량과 토양 질 등을 수집, 최적의 농업환경 구축을 영위할 수 있다.최고의 스마트팜 관리를 위해선 최적의 솔루션이 응당 요구된다. 여기에는 사물인터넷과 공유 플랫폼이 구축돼야 할 것이며, ‘토탈 데이터’를 베이스로 한 고도화 된 솔루션 선행이 이뤄져야 한다. 실제 국내 모 업체에서 이 같은 스마트팜 상용화를 위한 연구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앞서 연재서도 다뤘던 5G 기술도 농업 현장서 혁혁한 성과를 거둘 것으로 전망된다. 5G의 주요 기술력이라 함은 막힘없는 실시간 영상 전공과 자율주행. 유수의 통신사들은 농업용 장비 제조사들과의 적극적인 콜라보를 통해 5G 솔루션이 가미된 농기계 개발에 적극적인 모양새다.농업은 대표적인 노동집약적 분야로 분류된다. 하지만 각종 AI 기술과의 적절한 조화를 이룰 수 있다면 한층 더 효율적이자 첨단의 산업군으로 도약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농후하다. 온고지신하되 청출어람을 목표로 둘 필요성은 충분하다는 것이다. ◆농업과 IT 결합은 ‘윈윈’농업과 기술의 접목을 먼 미래 이야기로 치부함은 어불성설이다. 윈윈(Win-Win)으로 생각해보자. 생산자 입장에서 AI기술력을 통한 작업환경 개선이 이뤄진다면 소비자는 안전한 먹거리를 빠른 시일로 용이하게 접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여타 산업군과 같이 농업 역시도 지난 반세기 간 격동의 시류를 극복해왔다. 기계화를 넘어 자동화, 현대화의 과도기를 겪어왔던 것이다. 이제 농업은 단순 농업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기술이 선행돼야 하고, 과학이 첨부돼야 할 것이며 이를 통한 데이터가 수반돼야 함이 마땅하다. 재래의 이름을 딴 험한 직종이 더이상 아니라는 것이다. 더불어 선점의 문제를 재고해봐야 할 때다.재배 과정의 자동화를 통해 전 세계 유일의 로봇농장을 구축한 일본의 예처럼, 수백 명의 인력이 수일로 소모되는 기존의 농업을 단 몇 시간 만에 처리해내는 ‘로봇농부’의 출현을 이끌어낸 실리콘벨리의 기술력과 같이, AI와 농업의 접목은 생산성 제고는 물론이거니와 고령화된 농업인구의 연령층을 현저히 낮출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농업의 가치는 더욱더 공고히 하되, 불순물은 여과하고 그에 따른 가치 제고에만 AI가 빛을 발할 수 있다면, ‘농업과 IT’는 삶의 질 향상 간 소중한 촉매제가 되지 않을까.우리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농업. 생명과 가장 밀착한 산업으로 그 중요성을 재고해봐야 할 때다. 이제는 전 세계로 눈을 돌려야 할 때. ‘IT강국’인 대한민국의 기술력이 접목된 우리의 농산물을 우리나라를 넘어 세계인의 밥상에 올려 둬야 할 오늘, 그리고 미래다.끝으로 하나만 더 짚고 가보자. 오는 11월11일은 ‘빼빼로 데이’이기에 앞서 ‘농업인의 날’이다. 글·사진 군월드 IT사업팀

(특집) 시 승격 70주년 맞은 김천시, 국토중심의 신성장 거점도시 만든다

김천시는 지난 2월 시민 70명이 참여한 가운데 7개 분과로 구성된 ‘ 시민위원회’를 출범시키는 등 시승격 70주년 기념사업을 본격화 하고 있다. 조선시대 김천은 낙동강의 지류인 감천(甘川) 주변에 시장이 열리면서 상업의 발달이 촉진됐다. 특히 김천 발달의 원천은 낙동강을 통한 영남 내륙으로의 접근로인 감천수로가 적극적으로 활용됐다.이로 인해 감호동 감천 변에 장이 형성되면서 전국 규모의 ‘김천장’으로 발전했다. 경상도와 전라도, 충청도의 경계지점에 위치한 김천은 3도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로 자연적 도로와 역, 그리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시장이 발달했다. 김천역은 전국 문물의 집산지가 되었고, 이것은 주변의 시장 번성으로 이어져 조선 후기 김천장은 삼도장(三道場)으로 불리며 대구·개성·평양·전주와 함께 전국 5대 시장의 하나로 번성했다. 1905년 경부선, 1923년 경북선이 개통하면서 김천은 교통과 상업의 중심지로서 입지적 장점이 더욱 강화됐다. 각 지역의 산물과 사람이 모여서 교역이 이루어지고, 각 지역으로 산물을 공급하는 중심도시가 됐다. ◆민선시대 개막으로 지역발전의 신기원 맞아해방 이후에도 교통요충지로 사람이 모여들었던 김천은 1949년 경북 도내에서 포항시와 함께 시로 승격했다. 하지만, 이듬해 6·25전쟁으로 시가지의 90% 가 파괴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전쟁의 상흔을 이겨 내고 영남의 중추도시로 발전해 1960년대 중반에는 인구 21만3천 명의 큰 도시로 발전했지만, 김천은 1970년대 중반 이후 산업화와 도시화에 뒤처져 수십 년 동안 도시발전의 침체기를 겪게 된다. 1995년 김천시와 금릉군이 도농복합도시로 통합하고, 민선 자치 시대가 개막되면서 김천은 지역발전의 신기원을 맞이했다. 그리고 미래 100년 발전을 향한 큰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투자기업 만족도 전국 1위, 주민 행복도 전국 5위로 평가받을 만큼 기업을 경영하기 좋은도시, 쾌적하고 살기 좋은 도시로 변모했다. 또한 조경대상을 3번이나 수상한 아름다운 경관을 간직하고 있으며, 도농복합도시로서 안락한 전원생활과 편리한 도시 생활을 동시에 누리는 도시가 됐다. 김천은 과거 1914년 금산·지례·개령군 일원과 성주군 일부가 병합되어 김천군이 됐다.1949년 김천군 김천읍이 시로 승격하고, 그 밖의 김천군 지역은 금릉군으로 분리되었다가 1995년 도농복합도시로 시군이 통합돼 새롭게 출범했다. ◆시승격 70주년 맞은 김천시올해로 시 승격 70주년을 맞이한 김천시는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담아 내륙중심도시 김천의 위상을 높여 나가고 있다. 시는 70주년을 기념해 과거를 통해 현재를 보고, 미래를 열어가는 계기로 만들고자 다양한 기념행사를 추진하고 있다. 시는 시정자문단, 시민단체, 공무원의 제안을 받아 ‘지역발전 학술세미나’ ‘음학회’ 등 20여 가지를 70주년 기념사업으로 채택했다.이어 지난 2월15일, 시민 70명이 참여한 가운데, 기획·미래·시민참여·문화예술·시민화합·대외협력 등 7개 분과로 구성된 ‘70인 시민위원회’가 출범하면서 기념사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특히 시는 김천의 옛 사진전시회와 축하음악회, 시민참여형 시민체육대회, 김천역사 바로알기 도전 골든벨 등을 통해 70주년의 의미를 더하고, 시민 토크와 지역발전 학술세미나로 미래 김천의 모습도 그려보는 다채로운 기념행사를 개최한다. 또한 뮤지컬 ‘길’과 ‘인현왕후’ 제작, 김산고을 원님 납시오, BOOK적 BOOK적 한마당 축제 등 문화예술 행사와 김천의 장인선발 및 영상물제작, 김천명산 70프로젝트, 국제드론 축구대회도 개최한다. 이와 함께 한국도로공사 창립 50주년과 연계한 마라톤대회, 뮤지컬 제작 등을 공동으로 추진해 이전 공공기관 임직원과 시민이 함께 어울리고 소통하면서 하나가 되는 공동체를 만들어 간다는 계획이다. 그리고 지역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행태들을 개선하기 위해, 시민의식 변화 프로젝트인 ‘Happy Together 김천’ 운동도 전개하고 있다. -----------------------------------------------------------------------------------------------◆김충섭 김천시장김충섭 김천시장은 “시 승격 70주년 기념사업을 통해서 시민 자긍심을 한층 더 높이고, 이를 통해 더욱 단단한 결속력을 다지는 계기를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김 시장은 “5월부터 KBS열린음악회, 시민토크, 사진전시회, 김천의 장인 선발 등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고, 하반기에는 격년제로 시행하는 시민체전 개최 때 ‘김산고을 원님 납시오’ 등 특색있는 행사도 진행하고, ‘인현왕후’와 ‘길’ 뮤지컬도 제작한다”고 밝혔다. 툭히 김 시장은 “김천시가 70년 동안 수많은 역경을 이겨내고 현재의 모습이 있기까지 그 중심에는 ‘시민’이 있었다”며 “시장은 바뀌어도 시민은 영원하며, 70주년 기념사업뿐 만이 아니라, 시의 모든 행사나 사업에 시민의 참여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우리의 미래는 시민과 함께 만들어 가야 한다 올해 특별히 70주년이라서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늘 시정의 사업들이 나와 무관치 않다는 생각으로 적극 참여해 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한편 김 시장은 달려온 70년을 뒤돌아보고 미래 100년을 열어가기 위한 사업도 힘차게 추진하고 있다. 현재 공사가 한창인 김천 일반산업단지 3단계 사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한편, 부품 소재 산업 벨트 및 자동차 튜닝산업육성, 초소형 전기차 및 국가혁신클러스터 조성으로 많은 기업을 유치하고 투자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 나가고 있다. 김충섭 시장은 “중·남부내륙철도 개설에 대비한 철도기반을 연계한 장기발전계획 수립과 대신지구(삼애원) 도시개발 등 대형 SOC 확충방안을 마련해서 국토중심의 신성장 거점도시로 만들어 갈 계획”이라고 앞으로의 시정 발전계획을 밝혔다. 김충섭 김천시장이 지난 4월 김천시여성단체협의회 를 찾아 ‘Happy Together 김천’ 운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김천시는 시민의식 변화 프로젝트인 ‘Happy Together 김천’ 운동도 전개하고 있다. (사진은 시민들의 하천정화 운동)사통팔달 국토의 중심도시 김천시 전경김천산업단지 전경지난 4월 시승격 70주년을 맞은 김천시와 창사 50주년을 맞은 한국도로공사(사장 이강래 왼쪽)가 공동으로 어울림 페스티벌 행사를 가졌다.김충섭 김천시장 김충섭 김천시장이 조성 중인 김천산업단지(3단계) 건설현장을 둘러보고 있다.안희용 기자 ahyon@idaegu.com

(특집)강소농 현장을 가다-성주 ‘참멜팜’

멜론은 한때 ‘교황의 과일’이라고 불릴 만큼 고급 과일이었다. 서민들은 선뜻 손을 내밀기 어려웠다. 제213대 교황 ‘이노센트 8세’는 멜론 마니아였다. 아침에 일어나면 멜론부터 먹고, 식사 전에는 멜론을 반으로 잘라 속을 파내고 와인을 부어 마셨다고 한다. 15세기 당시 멜론은 지금처럼 당도가 높은 과일은 아니었다. 당도가 낮고 채소처럼 먹던 시절이었다. 이후 품종개량을 거치면서 당도와 향이 강한 ‘머스크멜론’이 탄생했다. ‘머스크’는 페르시아어로 ‘사향’이란 뜻이다. 이처럼 고급 과일로 알려진 멜론이 어느 날 갑자기 우리 국민들 곁에 다가왔다. 멜론이 아니라 멜론이 함유된 가공품으로…. 참외의 고장 성주에서 멜론재배로 부자 농부를 꿈꾸는 강소농이 있다. ‘참멜팜’의 박진회(63)·이애경(63) 공동대표가 주인공이다. 이들 부부는 1만여 ㎡의 농지에서 캔털루프 멜론과 참외를 재배해 연간 1억여 원의 소득을 올린다. ◆32년 차 베테랑 농부박대표는 30년 이상 참외농사를 해온 참외전문가다. 하지만 본래 직업은 농업과는 전혀 거리가 먼 전기기술자였다. 인천에서 전파상을 운영하다가 1987년 칠곡군으로 귀농해 참외농사를 시작했다. 농사를 지으면서 인근에 있는 미생물배양기 제조회사에서 5년간 근무했다. 이때 박대표는 미생물이 토양과 농작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았고, 미생물 제조기술도 익혔다. 이후 2007년에 참외의 고장인 성주로 이주해 참외농사를 짓다가 3년 전부터 멜론을 함께 재배하고 있다. 모두가 성주에서는 멜론 재배가 어렵다고 고개를 흔들 때 과감하게 멜론재배에 뛰어들었다. 지금까지 익혀온 참외재배 기술과 토양관리 기술이 있었기에 자신이 있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30년 넘게 축적한 농사와 미생물, 토양관리 기술이 밑거름이 됐다. 이제는 많은 사람이 박 대표와 함께 캔털루프멜론 작목반을 조직해 보급에 힘쓰고 있다. ◆왜 캔털루프 멜론인가?성주는 우리나라 참외 면적의 80%를 차지할 정도로 전국 최고의 참외 고장이다. 당연히 소득 면에서도 최대의 ‘효자작물’이다. 성주지역 참외 농가의 기술력은 다른 지역에 비교해 월등히 높다. 성주군 전체 참외 소득이 5천억 원에 육박하고 억대 농가도 수두룩하다. 이런 고소득원을 두고 이들 부부가 캔털루프 멜론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은 무슨 이유일까? 박대표는 “비교적 경제적 능력을 갖춘 ‘베이비부머’들이 퇴직을 하고, 건강에 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먹거리도 기호성에서 기능성으로 바뀔 것”이라며 “혈관 건강에 좋다는 캔털루프 멜론이 각광을 받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노동력과 경영비도 적게 들어간다. 멜론은 참외와 비교할 때 재배 기간이 짧다 보니 관리에 따른 경영비가 절감된다. 그동안 축적된 참외재배기술을 그대로 멜론 재배에 적용할 수 있다는 점도 큰 장점이다. 박대표의 예측은 맞았다. 처음 멜론재배를 시작할 때 주변에서는 ‘성주지역에서 멜론재배는 어렵다’는 인식이 많았으나, 박 대표를 중심으로 한 캔털루프멜론 작목반이 재배에 성공하면서 높은 가격에 판매되자 많은 농가들이 도전하고 있다. ◆혈관 건강에 좋은 캔털루프멜론캔털루프 멜론은 프랑스 남부지역에서 주로 재배돼왔다. 껍질에 네트가 형성되어 있고, 녹색의 세로줄이 있다. 과육은 주황색으로 달콤한 향이 강하다. 이 향이 사향의 향기를 닮았다고 해서 ‘머스크향’이라고도 한다. 멜론은 생식용으로 먹거나 주스, 아이스크림, 스무디 등의 재료로 사용한다. 당질과 섬유질, 칼슘, 비타민, 미네랄 성분이 고르게 분포되어 있다. 최근에는 혈관 건강과 항암효과, 노화 방지, 면역력 향상 효과가 높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기능성 건강식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특히 강력한 항산화 효과가 있는 베타카로틴도 주목을 받고 있다. 베타카로틴 성분은 활성산소의 발생을 억제하고 제거하는 역할을 하는 항산화 효소의 일종이다. ◆ 땅심은 농사의 기본농업은 토양을 기본으로 하는 산업이다. 모든 작물은 땅에 뿌리를 박고 영양분을 섭취하고 햇빛에 의한 광합성작용으로 영양소를 만든다. 물론 요즘을 수경재배방식이 있지만, 기본은 토양이다. 박대표는 “좋은 열매를 거두기 위한 기본은 땅심을 돋우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농한기 없이 연중 돌아가는 과채류 재배 시스템 속에서도 박대표가 5천㎡의 벼농사를 하는 것도 쌀 생산 목적보다는 볏짚생산 목적이 더 크다. 가을이 되면 부부는 볏짚을 절단기로 짧게 잘라 멜론밭에 뿌리고, 흙과 잘 섞이도록 로터리 작업을 해주는 등 ‘땅심 돋우기’ 작업에 열중한다. “땅의 힘은 무한하지만, 계속 뽑아 쓰기만 하다 보면 언젠가는 고갈될 것이라 미리 대비해주기 위함”이라는 것이 박대표의 주장이다. 부부의 이런 노력 덕분에 다른 멜론밭보다 참멜팜 농장은 유기질 함량이 풍부하다. 땅심이 높다는 의미다. 이뿐만이 아니다. 박대표는 주변에서 ‘미생물 전문가’로 통한다. 예전에 미생물배양기 제조회사에서 터득한 미생물제제 배양 기술이 유용하게 쓰인다. 유용 미생물군인 EM을 확대 배양해 토양에 뿌림으로써 전기전도도(EC, 화학비료 집적도)를 낮춰 토양을 건강하게 하는 과학적 영농방법을 적용한다. 미생물 확대 배양에는 천일염과 막걸리, 해조류 등 다양한 천연 재료를 활용한다. 이런 노력은 멜론의 품질향상으로 이어진다. 고품질이다 보니 높은 가격으로 팔리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이런 고품질을 바탕으로 요즘은 전량 직거래로 판매하지만, 계통출하를 하던 2011년에는 서울농산물시장에서 연중 최고 경매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신기술로 노동력 절감수작업이 많은 농업에서의 ‘노동력 절감’ 문제는 가장 절실하면서도 중요한 과제다. 농가마다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는 인건비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참외와 멜론재배에서 박대표가 도입한 신기술은 ‘순접붙이기’와 ‘지표심기’다. 대부분의 농가에서는 ‘편엽 합접’ 방식으로 접붙이기를 한다. 대목으로 쓰는 호박의 줄기를 자르고 그 위에 참외나 멜론의 떡잎이 붙은 접수를 잘라서 붙이는 방식이다. 그러나 박대표는 접수의 떡잎 윗부분의 줄기를 잘라 접을 붙이는 ‘순접붙이기’를 한다. 이 방법은 대목과 접수의 활착이 이루어진 이후, 일일이 떡잎을 제거해주는 노동력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모종의 ‘지표심기’도 획기적인 영농방법이다. 지표 심기는 흙에 구덩이를 파고 심지 않는다. 이랑에 비닐 멀칭을 하고 충분한 관수를 한 후, 비닐을 일자(一字)로 절단하고, 그 속에 모종을 밀어 넣고 손으로 꾹꾹 눌러주기만 하면 된다. 이렇게 하면 뿌리의 활착률을 높이고 몸통에서 발생하는 부정근의 발생을 좋게 해 뿌리를 튼튼하게 한다. 이것은 초기 당도를 증가시키는 효과도 있다. 무엇보다도 땅을 파고 묻는 과정을 생략할 수 있어 노동력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신기술이다. 이 두 가지 영농기술은 박대표가 직접 개발한 것이다. ◆전량 직거래로 고소득 창출‘참멜팜’은 1만㎡의 하우스에서 생산하는 참외와 캔털루프 멜론을 전량 직거래로 판매한다. 공판장에는 한 상자도 내보내지 않는다. 이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하는 의문을 가지는 사람이 많다. 직거래의 기본은 품질이지만, 이들 부부의 타고난 홍보와 마케팅 기법이 큰 몫을 한다. 현재 고정 고객이 5백여 명 이상이다. 10년 이상 인연을 이어온 고객도 상당수다. ‘참멜팜’이란 농장 이름을 지을 때도 멜론 한 상자를 상품으로 걸고 공모한 결과 탄생한 이름이다. 공모에는 33명의 고객이 참여했고, 참외와 멜론의 합성어인 ‘참멜팜’이 당선됐다.물론 상품으로 멜론 한 상자를 선물했고, 나머지 32명의 응모자에게도 참가상이란 이름으로 멜론 한 상자씩 보냈다. 이 덕분에 이들은 모두 고정고객으로 자리 잡았고, 홍보요원이 됐다. 이들 부부는 고객의 이름과 주소, 연락처가 적힌 택배 노트가 보물이다. 잠을 잘 때도 머리맡에 둔다. 참외 고객에게는 멜론을 하나씩 보너스 상품으로 보내기도 한다. 남들은 미처 생각하지도 않던 1990년부터 ‘인터넷 판매’를 시도했다. 이런 남다른 노력에다 고품질이 ‘전량 직거래’라는 기적을 만들어 냈다. ◆ 멜론재배의 최고 전문가가 꿈박대표는 캔털루프 멜론의 재배 전문가가 되는 것이 꿈이다. 규모의 확대를 통한 소득증대보다는, 고품질의 멜론을 생산해 ‘전국 최고의 멜론 전문가’가 되는 것이 목표다. 박대표는 “규모를 확대하면 소득은 늘어나겠지만, 이보다는 최고의 기술을 축적하고 그 기술을 귀농인이나 청년 창업농들에게 전수해 고소득을 올리도록 해 조기에 농촌에 정착하는 일을 돕고 싶다”는 뜻을 밝힌다. 이것이 개인의 성장보다는 ‘우리나라 농촌 전체를 살리는 일’이라는 일종의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일까 끓임 없이 새로운 영농기술에 도전하는 이들 부부는 농사를 사랑하고, 천직으로 여기는 ‘참 영농인’의 모습이다. ▲농장명: 참멜팜▲농장주: 박진회·이애경 공동대표(2016 강소농)▲구입문의: 010-8854-5259, 010-4056-5259▲홈페이지: https://www.kumhak1.modoo.at▲소재지: 성주군 초전면 고산리 560▲이메일: kumhak1@naver.comt 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 민간전문위원 이홍섭 기자 hslee@idaegu.com

(시리즈) 대구를 담는 아름다운 전망대 (2) 대구 동구 구절송 전망대

구절송 전망대 남쪽에서 바라본 대구 시가지 전경. 왼쪽에 단산지와 오른쪽 이시아폴리스 내 아파트 대단지가 눈에 띈다.구절송 전망대는 대구 도심과 팔공산 전경을 앞뒤로 볼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봉무나비생태원에는 나비 150종과 외국나비 100여 종 등 나비 표본 1천여 개체가 전시돼 있다.여름철 봉무공원 단산지에서는 수상스키와 웨이크보드, 바나나보트 등 다양한 레저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대구 동구 봉무공원 입구에 서면 단산지가 눈에 들어온다. 갑갑한 마음을 풀어주는 시원함이 밀려온다.단산지 제방을 따라 이어지는 ‘만보 산책로’는 봉무공원의 대표적인 산책코스다. 강동마을지하도와 감태봉, 구절송을 거쳐 단산정, 봉무나비생태원에 이르기까지 7㎞ 거리다. 산책로 곳곳에 안내판이 있어 길을 잃을 일은 없다.◆은빛 원형의 구절송 전망대가벼운 마음으로 구절송 전망대에 올랐다. 단산지 제방에 핀 노란 꽃들이 반겼다. 곧이어 우거진 숲길이 땀을 식혀 준다. 하늘을 가린 그늘이 그저 반갑다. 멀리서 지저귀는 새소리는 소음에 찌든 귀를 정화해주듯 노랫소리로 들린다.한참을 걷다 보면 작은 체육시설이 나온다. 단산지부터 구절송 전망대까지 오르는 동안 크고 작은 체육시설이 서너 곳 있다. 10여 종의 운동기구에 시민들은 몸을 맡기는 데 여념이 없다.구절송 전망대를 운동 삼아 자주 찾는다는 장성화(48·동구 봉무동)씨는 “건강을 위해 일주일에 2번 이상은 전망대에 오르고 있다. 한눈에 들어오는 대구 시가지가 도심 속 장관이다”고 전했다.체육시설을 지나면 얼마 못 가 산길이 뚝 끊긴다. 대구 4차 순환도로(외곽순환도로) 조성을 위해 공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수백여 개의 임시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가 공사 중인 도로를 가로질러 다시 맞은 편 수백여 계단을 올라가야 산길이 이어진다.곧이어 가파른 산길을 만난다. 계단 없는 흙길이라 매우 미끄럽다. 이전 코스보다 힘들 수 있다. 등산객을 위해 곳곳에 쉴 수 있는 의자가 설치돼 있다. 산행을 자주 하지 않은 등산객이라면 너무 반가워 “의자가 나타났다”고 외칠 수 있다.어디까지 왔을까. 가빠진 숨을 돌리고 나면 산등선에 도착했다고 느낄 만큼 평평한 길이 나온다. 구절송 전망대를 가리키는 안내판과 의자가 있다. 의자에 앉으면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땀을 식혀준다.조금만 더 가면 여러 갈래로 뻗어있는 이상한 나무가 한그루 서 있다. 구절송이다. 하나의 나무가 9개의 줄기로 뻗어있다. 땅만 보고 걸었던 고개를 자연스레 들어 올려 감상하게 된다.구절송 뒤로 체육시설을 지나면 드디어 전망대가 보인다. 은빛 원형 조형물이 눈에 들어온다. 구절성 전망대는 한곳이 아닌 남북 양방향으로 경관을 볼 수 있다.전망대 남쪽으로는 대구 도심이 보인다. 처음 출발지였던 단산지 제방과 그 옆으로는 아파트단지가 빽빽하게 들어선 이시아폴리스가 눈에 띈다. 멀리로는 앞산과 이월드 대구 83타워가 있다.북쪽으로는 가산·한티휴게소·파계봉·수태골·비로봉 등 팔공산 전경을 조망할 수 있다.◆9개 가지로 이뤄진 구절송구절송은 한 그루터기에 9개의 줄기가 함께 자라고 있는 소나무다. 일반 소나무의 줄기가 하나인 것과 비교해 구조가 특이하다.이 나무는 도동 측백나무숲 중앙에 있는 구로정에서 9명의 늙은 문인들이 아름다운 시를 읊었는데 이에 감명받은 감태산의 소나무가 9개의 가지로 벌어지면서 구절송이 됐다는 전설이 있다.구절송 주변을 9바퀴 돌면 9수를 잘 넘겨 무병장수하고 자손이 번성한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대구시는 이러한 지역의 명소를 알리기 위해 2016년 구절송 전망대 조성사업을 추진했다.5억 원의 사업비를 들여 약 4개월간 전망대를 설치했다. 전망대 규모는 모두 306.6㎡로 하트 및 원형 조형물이 설치됐다. 태양광 가로등 13개와 정보안내판 등도 설치돼 등산객의 편의성을 높였다.◆가족과 함께하는 봉무공원구절송 전망대 산행의 시작점은 봉무공원이다. 공원에는 자녀와 함께 하는 볼거리와 레저스포츠 체험 등 재미있는 요소들이 많다.봉무공원은 1992년 10월 조성됐다. 어린이 놀이시설물 및 체육시설, 야영장 등을 갖추고 있어 주말에는 가족 단위의 나들이 장소로도 손색이 없다. 단산지 주변 산책로와 탐방로를 따라 곳곳에 8천여 본의 야생화와 야생초가 심겨져 있다.단산지에서 우측으로 향하면 나비정원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나비유인을 위한 밀원식물을 포함해 100여 종의 초화류와 나비 애벌레의 먹이가 되는 식물 20여 종이 식재된 공간이다.매년 3월 말부터 10월 말까지 끊임없이 꽃이 피어 여러 종류의 나비가 이곳에서 활동한다. 관람객들은 보다 가까이에서 날아다니는 나비와 애벌레를 관찰할 수 있다.봉무공원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봉무나비생태원이다.2002년 개원한 이곳은 나비가 애벌레가 서식하는 환경으로 조성해 살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 나비 150종과 외국나비 100여 종 등 나비 표본 1천여 개체가 전시돼 있다.봉무나비생태원은 나비누리관, 나비학습관, 곤충생태관, 나비사육장 등 시설들로 이뤄져 있다.나비누리관은 살아 있는 곤충을 직접 체험하거나 재료와 교구를 이용해 체험학습을 하는 곳이다.국내외 나비 종류를 한눈에 관람할 수 있는 나비학습관은 나비의 기원·일생·분류, 포토존, 정보검색코너 등 10여 개 코너로 구성돼 있다. 나비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손쉽게 접할 수 있다.곤충생태관은 나비를 방사하는 곳으로 165㎡(50평) 규모의 유리온실로 돼 있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정서 곤충을 볼 수 있고, 겨울철에는 살아 날아다니는 나비를 관찰할 수 있는 공간이다.봉무나비생태원에 방사하는 나비는 모두 나비사육장에서 키우고 있다. 이곳은 항온시설이 설치돼 사계절 나비를 사육한다. 나비들이 성장하기에 알맞은 온도와 습도, 광량을 조절해 나비를 생산한다. 사육에 필요한 먹이식물을 보관해 필요 시 공급하는 식초 보관장소이기도 하다.봉무나비생태원 뒤쪽으로는 1만1천570㎡(약 3천500평) 규모의 무궁화동산이 조성돼 있다. 무궁화 6개 품종 1만5천 그루가 있다. 느티나무, 이팝나무, 산사나무 등 12종 2천500여 그루가 무궁화와 어우러져 동산을 이루고 있다.이 밖에도 야영지와 어린이 놀이터가 갖춰져 있다. 야영지는 야영장 3단, 텐트 21동이 설치 가능하다. 6~9월 야영할 수 있고 24시간 운영된다.어린이 놀이터는 그네, 시소, 조합놀이대 등 다양한 놀이기구가 설치돼 있다.한편 지난달 31부터 지난 2일까지 사흘간 봉무공원에서 올해 처음 열린 ‘곤충 페스티벌’에 1만5천여 명이 방문했다.김종윤 기자 kjyun@idaegu.com

우리동네 자랑- 김천시(상)

경상도와 충청·전라도가 맞닿은 영남의 제일관문도시인 김천은 오랜 역사만큼이나 다양한 문화유산과 예술적 성향이 강한 도시로 성장 발전해 왔다. 삼산이수(三山二水, 三山: 금오산·황악산·대덕산, 二水: 직지천·감천)의 고장으로 예로부터 학이 많이 찾아온다 하여 황악산이 유명하고, 일명 불령산이라고도 불리는 수도산과 경북 8경의 하나로 손꼽히는 금오산 등이 수려한 산수를 자랑한다. 김천은 무엇보다도 포도와 자두의 고장이다. 서울에서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추풍령을 지나면 바로 나타나는 탁 트인 벌판은 모두 포도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포도는 전국생산량의 15%를 차지하고, 최근 신품종 샤인머스켓은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어 수출 효자종목이 되고 있다. 그리고 김천 자두는 22%, 김천 호두는 29.3%의 전국 점유율을 차지하면서 김천은 포도·자두·호두의 전국 최대 생산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김천 위치도 1 김천 위치도 2〈상〉 농촌지역 1.이화만리(농소면)백두대산 줄기에 위치한 고장으로 산천과 오랜 역사를 자랑하며 한국농어촌공사가 추천한 4월 꽃과 함께 농촌체험을 해볼 만한 곳 10선에 선정된 곳이다. 매년 4월이면 온 마을을 뒤덮는 자두꽃이 과히 백설의 장관을 이룬다. 이 시기를 맞춰 ‘김천 자두꽃 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이화만리(농소면) 2. 오봉저수지(남면)최대 담수량 400만t, 최대수심 20m, 둘레 4㎞의 규모로 구미·김천·대구로의 접근이 용이하며, 수상스키, 웨이크보드, 땅콩 보트, 바나나보트 등 수상 레포츠 체험을 경험할 수 있다. 주변에 생태습지와 수변공원, 수변 생태학습 체험장, 다목적 문화광장 등을 갖추고 있다. 오봉저수지(남면) 3.금릉빗내농악(개령면)김천시 개령면 광천2리(빗내마을)에 전승되는 농악이다. 1984년 12월29일 경북도무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됐다. 앞쪽으로 넓은 개령들이 있고 뒤쪽에는 감문산성의 성터와 군사를 동원할 때 올라가 나팔을 불었다는 취적봉(吹笛峰이) 있다. 삼한시대 때 나랏제사와 풍년을 비는 별신제(別神祭)를 지냈는데, 이것이 점차 혼합되어 동제(洞祭)형태로 전승됐다. 금릉빗내농악(개령면) 4.감문국 금효왕릉(감문면)감문국 왕릉으로 전해지는 금효왕릉은 궁궐지로부터 감문산을 넘어 북쪽으로 8km 떨어진 현재의 감문면 삼성리(오성마을) 밭 가운데에 봉분 높이 6m, 지름 15m 크기로 김천지방에 남아있는 최대의 고분이다. 오랜 세월 경작지로 잠식이 되어 전체적인 규모가 축소됐다. 감문국 금효왕릉(감문면) 5.김천포도(봉산면)김천 포도는 전국 포도 생산량의 15%로 전국 최대 생산량을 차지하고 있다. 봉산면이 주산지로, 새콤달콤한 맛으로 소비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김천 포도는 게르마늄 함량이 높은 토양과 일교차가 큰 재배여건으로 포도의 색깔이 좋고 당도가 높은 것이 특징이다. 김천포도(봉산면) 6.직지사(대항면)신라 눌지왕 2년(418년) 아도화상이 창건한 천년고찰로, 조선2대 정종대왕의 어태가 안치되어 있고, 임진왜란 때 국운을 되살린 사명대사가 출가한 사찰로 유명하다. 보물로 지정된 석조약사여래좌상과 삼층석탑을 비롯해 사명각, 천불전 등이 경내에 있다. 직지사(대항면) 7.감천참외(감천면)참외는 수분이 많아 이뇨작용이 뛰어나며 당분이 많아 피로회복에 효과적이다. 감천 참외는 양질의 토질에 친환경농법을 사용하여 깔끔한 외형과 단단한 과육으로 저장성이 좋고 일조량이 풍부하여 당도가 높고 품질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다. 감천참외(감천면) 8. 장바우감자(조마면)색깔이 희고 비옥한 사질양토에서 생산돼 맛이 좋다. 조마면 장암리·강곡리·신안리 일대에 감자재배 단지가 조성되어 있으며, 현재 170여 농가가 50ha를 재배하여 조기 출하해 농가소득 증가에 일조하고 있다. 알이 굵고 맛이 좋아 소비자들에게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이곳에 오면 왕 감자를 쉽게 구입할 수 있다. 장바우감자(조마면) 9. 방초정(구성면)이정복이 1625년에 처음 세웠으며, 1689년에 훼손된 것을 송제 이해가 중건해 주언 기문을 지어 남겼다. 방초정에는 당대의 유명한 문장가와 묵객들이 다녀갔고 그들의 시와 글이 많이 남아 있다. 현판 글씨는 김대만의 작품이다. 여름 뜨거운 태양 아래 붉게 물든 연못의 백일홍은 방초정의 진수를 느끼게 한다. (경북도 유형문화재 제46호) 방초정(구성면) 10.흑돼지(지례면)1990년대 초반부터 지레 흑돼지의 혈통 보전과 개량 보급에 힘써왔다. 특히 1993년부터 사라져 가는 지례 흑돼지의 특성을 되살리려는 노력에 힘입어 지레 흑돼지가 복원됐다. 담백하고 쫄깃한 맛이 특징으로 전국에서 관광객들이 찾아와 원산지에서 맛보는 원조의 풍미를 즐긴다. 흑돼지(지례면) 안희용 기자 ahyon@idaegu.com

삼국유사 기행(13)- 진흥왕

[{IMG01}] 신라 24대 진흥왕은 어려서 즉위해 태후가 10여 년을 섭정했다. 진흥왕은 삼국유사에는 15세, 삼국사기는 7세에 왕위에 올랐다고 기록하고 있다. 진흥왕의 어머니는 법흥왕의 딸이고, 아버지는 법흥왕의 동생이다. 법흥왕이 아들 없이 죽자, 왕의 조카이자 외손자가 왕위를 이은 이색적인 케이스다. 신라 초기에서 중기까지는 왕위세습을 자녀 또는 형제에게로 이으면서 여자에게도 세습권을 인정했다. 경주시 서악동 선도산 자락에 있는 신라 제24대 진흥왕릉(사적 제177호). 흙으로 덮은 봉토분으로 자연석을 이용해 보호석렬을 갖춘 것으로 여겨지지만, 보호석은 몇 개만 남아 있다. 학자들은 잘못 지정되었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진흥왕은 신라 건국 이래 가장 넓은 영토를 확보하고, 삼국통일의 기반을 다진 왕이다. 불교 이념을 근간으로 화랑도를 창설해 나라의 동량을 키우는 한편, 정신적 통일기반을 튼튼히 하면서 왕권을 크게 강화했다. 황룡사 터와 분황사지 사이에 구황동 당간지주가 우뚝 선 주변으로 보리밭이 조성돼 누렇게 익은 황금 보리밭을 배경으로 한 포토존으로 요즘 방문객들로 북적거리고 있다. 황룡사를 짓고, 최대불상 장육존상을 세운 진흥왕은 아들의 죽음으로 더욱 불교적으로 심취하기도 했다. 진흥왕이 말년에 국사를 편찬하고 병권을 거머쥔 실세 거칠부와 갈등을 빚었다. 43살의 젊은 나이에 죽은 진흥왕의 사인을 두고, 거칠부와의 갈등에 의심을 두는 학자들의 주장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이번 호에서는 진흥왕의 즉위와 친정, 업적에 대해 지금까지 남은 흔적을 더듬어보면서 개괄적으로 알아본다. 다음 호에서 진흥왕의 전쟁과 거칠부와의 갈등을 살펴보면서 진지왕의 즉위 과정도 자세하게 들여다보기로 한다. ◆삼국유사: 진흥왕제24대 진흥왕은 왕위에 오를 때 불과 15세였으므로 태후가 섭정을 했다. 태후는 법흥왕의 딸이며 입종갈문왕의 왕비였다. 태후는 임종할 때, 머리를 깎은 뒤 승려 옷을 입고 세상을 떠났다. 승성 3년(554) 9월에 백제의 군사가 진성에 침략해 와서 남녀 3만9천 명과 말 8천 필을 빼앗아갔다. 이에 앞서 백제는 신라와 군사를 합하여 고구려를 치려고 했으나, 진흥왕이 말하기를 “나라의 흥망은 하늘에 달렸는데 만약에 하늘이 고구려를 미워하지 않는다면 내가 어찌 감히 치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라 했다. 바로 이 말이 고구려로 전달되니 고구려가 그 말에 감동하여 신라와 우호 관계를 맺었다. 이에 백제가 신라를 원망하여 이렇게 침범한 것이다. 진흥왕이 세운 창녕 신라 순수비.◆흔적△진흥왕 순수비: 진흥왕은 18세가 되면서 섭정에서 친정체제로 전환하고, 연호를 바꾸어 정복 전쟁으로 영토 확장에 나섰다. 전쟁으로 빼앗은 지역에 차례로 기념비를 세웠는데 이를 순수비로 부른다. 진흥왕이 영토를 확장하고 경계를 돌아보면서 세운 마운령 신라 순수비. 백제와의 동맹을 깨고, 남한강 상류를 차지한 것이 그의 영토 확장을 향한 첫발이었다. 특히나 동맹국의 임금이었던 성왕을 관산성 전투에서 전사하게 한 것은 백제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계기가 되었다. 진흥왕은 단양에 단양 적성비를 세웠다. 당시 남한강 유역은 고구려 땅이었고, 중원 고구려비가 근처에 있었다. 진흥왕이 영토를 넓히고 국경지역을 돌아보면서 순수비를 세웠던 것은 1천500년 전이다. 순수비는 비교적 글자들이 깨끗하게 보존된 역사의 기록으로 과거를 보다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신라 진흥왕이 세운 북한산 신라 순수비. 낙동강 유역에는 창녕비(561)를 세우고, 북쪽으로 올라가 한강 하류에는 북한산비(555)를, 함경도 지역에는 황초령비(568)와 마운령비(568)를 세웠다. 모두 정복 사업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 [{IMG07}] 신라가 한강을 차지했다는 사실을 알려 주는 것은 단양 적성비와 북한산비다. 단양 적성비는 단양군 단성면 하방리에서 단국대학교박물관 조사단에 발견돼 1979년 국보 제198호로 지정되었다. 높이 93cm, 윗너비 107cm, 아랫너비 53cm이다. 단단한 화강암을 물갈이한 뒤, 그 위에 직경 2cm 내외의 글자를 음각하였다. 윗부분은 파손되었으나 좌우 양 측면은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 비문은 전체 22행에 각 행당 20자씩 새겨져 현재 남아 있는 글자 수는 비면의 288자와 주변의 발굴을 통해 수습된 21자를 합쳐 309자이다. 적성비는 이사부를 비롯한 여러 명의 신라 장군이 왕명을 받고 출정하여, 고구려 지역이었던 적성을 공략하고, 그들을 도와 공을 세운 적성 출신의 야이차와 가족 등 주변 인물을 포상하고, 적성지역의 백성들을 위로할 목적에서 세웠다. 이 비에는 기존의 문헌 자료에 보이지 않는 지방통치조직과 율령, 조세제도 등의 내용이 기록돼 신라사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황룡사 터에 장육존상과 십대제자상 등이 세워졌을 것으로 보이는 불상의 기초석과 중금당의 기초석이 남아 있다. 멀리 보이는 건물이 황룡사역사관이다. △황룡사 터: 황룡사는 신라 진흥왕 14년에 월성의 동쪽에 궁궐을 짓다가 황룡이 나타나 절로 고쳐 지었다. 17년 만에 완성한 역사다. 이어 진흥왕은 인도의 아소카왕이 석가삼존불상을 만들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금과 철, 삼존불상의 모형을 배에 실어 보낸 것이 신라의 땅에 닿아 진흥왕이 이것을 재료로 삼존불상을 만들었다. 나중에 선덕여왕이 황룡사 금당 남쪽에 자장의 권유로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황룡사 9층 목탑을 지었다. 각 층마다 적국을 상징하도록 했는데, 백제의 아비지가 645년에 완공했다. 진흥왕부터 4명의 왕이 94년에 걸쳐 황룡사 가람을 완공했다. 그러나 몽골족의 침입으로 1238년 모두 불타 없어지고 지금은 금당터 초석과 불상의 기단만 덩그렇게 남아있다. 1976년부터 시작된 황룡사지 발굴에서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이 큰 치미, 금제합, 명문판, 염주, 청동반함, 안합, 금동불 입상, 금동보살 불두 등의 유물 4만여점이 나왔다.경주시는 황룡사터 서쪽에 황룡사역사문화관을 건설해 황룡사의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하면서 찬란한 신라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역사교육의 산실 역할을 하고 있다. 한편 방문객들의 마음을 모아 황룡사 복원에 대한 염원을 담고 있다.신라시대 진흥왕이 화랑제도를 창설하고, 임신년에 두 화랑이 나라에 충성하고 열심히 공부에 매진할 것을 다짐한 내용이 기록된 임신서기석. 보물 제1411호로 지정돼 국립경주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임신서기석: 진흥왕은 화랑제도를 도입해 청년들을 나라의 기둥으로 길렀다. 임신서기석은 신라시대 화랑도 2명이 나라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는 내용을 새긴 작은 돌비석이다. 1934년 경주 현곡면 금장리 석장사지 부근에서 발견되어 보물 제1411호로 지정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되고 있다. ‘임신년’이라는 시기를 비롯해 74자가 새겨져 있다. 당시 청소년들의 강한 유교 도덕 실천 사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경주시 서악동 무열왕릉 뒤쪽으로 4기의 고분이 남북으로 위치해 있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 등의 역사서 기록으로 가장 왼쪽이 법흥왕릉, 그다음 고분이 진흥왕릉으로 추정된다. -진흥왕릉: 경주시 서악동 삼층석탑 서북 방향의 사적 제177호로 지정된 고분은 진흥왕의 업적에 비해 초라하게 느껴진다. 고분의 높이는 5.8m 정도로 낮고, 지름도 20여m 규모로 정면 외에 삼면이 키 낮은 소나무로 둘러싸여 있다. 외부 모습은 흙으로 덮은 둥근 봉토분으로 고분의 아랫부분에는 자연석들이 몇 개 드러나고 있어 보호석렬을 쌓았던 것으로 보인다.경주시 서악동 무열왕릉 뒤편에 소재한 진흥왕릉으로 추정되는 고분. 남쪽으로 진흥 왕비의 무덤, 진지왕릉으로 추정된다. 학자들은 무열왕릉 북쪽으로 4기의 높은 고분이 있는데 그 중 위에서 두 번째를 진흥왕의 무덤으로 추정한다. 뒤편의 고분을 법흥왕릉으로 보는 삼국유사와 삼국사기 등에서 기록하고 있는 ‘애공사 북쪽’ 등의 내용을 참고한 주장으로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진다.황룡사역사문화관에 추정 복원된 황룡사 장육존상 도해도.◆진흥왕신라 제24대 진흥왕은 일곱 살에 왕위를 이어받았다. 540년에 즉위한 진흥왕을 대신해 어머니 왕태후의 섭정이 10여년 이어지는 동안 왕업에 대한 공부를 살뜰히 했다. 신라시대 최초의 섭정이다.삼 진흥왕의 이름은 삼맥종, 또는 심맥부라고도 불렀다. 법흥왕의 동생 입종 갈문왕의 아들로 534년에 태어났다. 어머니는 법흥왕의 딸인 지소부인이다. 갈문왕이 자신의 조카딸과 결혼했다. 같은 신분끼리 결혼해야 후손이 그 신분을 유지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당시에는 그다지 특별한 일이라고 할 수 없다. 540년 법흥왕이 정비에게서 아들을 얻지 못한 채 죽자, 일곱 살의 삼맥종이 왕위에 올랐다. 당시 아버지인 갈문왕도 이미 사망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섭정은 지소부인 태후에 의해 이루어졌지만, 실질적인 정치를 보필한 신하는 이사부와 거칠부였다. 어린 진흥왕을 왕좌에 오르게 하는데도 이사부와 거칠부가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사부와 거칠부 모두 법흥왕 대에서 진흥왕 때까지 정치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지만, 이사부는 지증왕 대부터 정계에 진출해 한 세대 앞섰다. 진흥왕은 18세가 되면서 기개가 넘치는 청년으로 성장해 친정을 시작하면서 연호도 법흥왕 때부터 쓰던 건원에서 개국으로 고쳐 사용했다.진흥왕은 친정을 시작하면서 영토 확장에 많은 공을 들였다. 관산성 전투로 한반도의 중부를 차지하며 삼국통일의 초석을 놓기 시작했다. 왕태후는 진흥왕 즉위 첫해 죄수들을 사면하고 관리들의 벼슬을 한 등급씩 올려주었다. 그리고 이듬해 이사부를 병부령, 지금의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하여 국가의 모든 군사적인 일을 맡겼다. 귀족들의 협의체인 화백제도를 통해 정책을 결정해왔던 신라에서 병권을 전담하는 벼슬이 생기고, 왕이 벼슬을 임명할 정도로 권력이 집중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이사부는 지증왕 대에 우산국을 점령한 바 있는 장군으로 어린 왕과 군사적 식견이 부족한 왕태후를 도와 진흥왕 초기 군사와 정치를 이끌었다. 신라 최고의 역사서인 국사를 편찬하자고 건의한 사람도 이사부이다. 왕태후는 이 의견을 받아들여 거칠부에게 국사를 편찬하게 했다.왕태후는 국가적 차원에서 지은 최초의 절 흥륜사를 완성하고, 일반 백성이 출가하여 승려가 되는 것을 허락하는 등 불교를 장려했다.진흥왕은 영토확장에 나서면서 삼국통일의 원동력이 되는 화랑제도를 만들어 청소년들을 나라의 동량으로 육성했다.진흥왕이 영토를 확장하고 경계 부근에 세운 순수비 분포도. 영토는 진흥왕 최대의 관심사였다. 젊고 패기만만한 진흥왕은 신라가 더는 변방의 작은 나라에 머물 수 없다고 생각했다. 친정을 시작하면서 거칠부 등에게 명하여 고구려의 변경을 침략해 지금의 충주와 단양 등 남한강 변에 있는 10개 군을 차지했다. 그리고 3년 뒤 관산성 전투를 통해 한반도 중부를 점령 삼국의 패자적 위치에 올랐다. 젊은 왕의 걸음에는 거칠 것이 없었다. 555년에는 가야연맹에 속해 있던 지금의 경상남도 창녕에 하주를 설치했고, 이듬해에는 함경남도까지 영역을 넓혀 안변에 비열홀주를 설치했다. 그리고 6년 뒤에는 고령의 대가야를 멸망시키고 가야의 영토를 완전히 신라에 편입시켰다. 신라의 영토가 한반도 땅의 절반 이상을 장악해 신라 역사상 최대의 영토를 확보했다. 이러한 영토 확장은 삼국통일의 물적, 인적 토대가 되었다. 진흥왕은 연호를 ‘크게 번창하다’는 의미인 ‘태창’으로 다시 바꾸어 영토 확장과 신라의 번영을 자축했다. 이어 진흥왕은 서울을 거쳐 함경남도 함흥의 황초령, 이원군에까지 자신이 개척한 영토를 직접 돌아보면서 백성을 위로하고 포상했다. 또 이를 기념하고 왕의 위엄을 드러내고자 북한산 순수비, 황초령 순수비, 마운령 순수비 등을 세웠다.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20>IT로 환경오염을 진단하고 예방하다

IT 전략 기술 중 하나인 그린 IT는 환경 훼손을 최소화하는 범위에서 기술을 적용한다. 이윤 추구와 환경 보존이라는 시너지를 거두기 위함이다. 대구시와 경북도는 태양열, 태양광, 지열 등 각종 친환경 신재생에너지 보급 지원사업을 통해 시·도민의 에너지 비용 부담을 줄이려 힘쓰고 있다. 대구시는 지난 4월 기준 전기자동차를 7천800여 대를 보급했다. 올해 1만 대를 돌파하고 2022년 7만 대, 2030년 50만대를 보급해 지역 등록차량의 50%까지 전기차를 늘릴 계획이다. 수소차는 대기오염 물질을 전혀 배출하지 않고 주행 시 산소가 공급돼 경유차 2대분의 미세먼지를 흡수하는 친환경 차량이다. IT를 환경에 접목하면 실외에서 측정기를 통해 미세먼지 수치를 알려주고 실내에서는 사물인터넷을 활용해 스마트폰으로 공기 질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 공익광고의 한 구절이다. 너무 들어 고유화된 문구, ‘푸른 강산’이라 함은 어느새 선택이 아닌 필수 사안으로 자리 잡았다. 환경에 관한 중요성은 특정 어젠더가 아닌 신변잡기를 품은 채 생활 곳곳으로 적용되고 있다.그도 그럴 것이 인간 역시도 생태계의 구성 요소 중 하나일 뿐이다. 인간은 특정대상이 아닌 그저 더 많은 종의 동·식물과 공존하는 존재다. ‘상생’과 ‘조화’가 뒷받침돼야 함이 마땅하다는 방증이다.히포크라테스는 자연이 아니면 몸 안의 질병을 결코 이겨낼 수 없음을 피력했다. 대구의 ‘나무 아버지’로 회자되는 문희갑 전 대구시장은 재임 기간(7년) 중 약 650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그 결과 ‘전국 최서 지역’이라는 오명을 벗게 됐다.‘초연결’ 시대의 도래, 이는 ‘연결되는(Connective)’는 사회를 더욱 공고히 하게 된 계기다. 이는 곧 환경보호의 명분을 오롯이 담아낸 ‘친환경적 정보기술(IT) 기술’을 낳은 셈. 재활용의 아이덴티티를 품은 IT 기술력을 넘어 전 방위적 차원으로 환경오염을 미연에 방지하는 IT 기술이 ‘신성장’의 가능성을 표출하고 있다.여기에는 환경과 IT의 접목을 두고 과거와 현재의 존립 명분을 개별로 바라봐야 할 필요성이 있다. 과거의 IT가 인간 편의, 경제재건, 부가가치 창출 등의 수익구조를 주축으로 했다면, 진정한 의미의 환경 IT의 융합이라 함은 사람과 그 사람들이 부대껴 살아가는 지구 전반으로 그 방점을 찍는다. ‘그린 IT’의 이름으로 말이다.실제 미국 내 유수의 시장조사기관에 따르면 IT 전략 기술 중 하나로 그린 IT를 적시한 바 있다. 환경 훼손을 최소화하는 범위서 IT 기술을 적용, 이윤 추구를 넘어 환경 보존의 시너지를 거두고자 하는 그린 IT의 기조를 업계 전반으로 공감하고 있다는 증명이다.인공지능(AI)는 이제 ‘집단지성’ 발현을 위한 든든한 배경이다.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 더 나은 아이디어를 도출해가는 과정에서 AI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지대할 것임이 분명하다. 타인과의 협업, 자연과의 조화를 통해 환경 보존과 능력의 수요 제고를 영위해 가야 함이 마땅하다. 선배들이 일궈 놓은 환경 보존의 씨앗을 AI로 하여금 싹을 돋게 하는 일련의 작업, 이제는 우리의 몫이다.상황에 부합하고자 하는 AI와의 맞물림, 이것은 욕구 충족을 위한 주요 제반사안 임을 간과해선 안 된다. 인공지능으로 점철된 최신의 아파트라 할지라도, 바람이 지나갈 자리는 피해서 건설하겠다는 건축주의 신념, 그리고 원칙, 이러한 마음이 결집될수록 환경과 IT의 상생은 더욱 큰 명분과 실리적 결실을 생성해냄을 믿어본다.물아일체의 평화. 그냥 얻어지는 산물은 결코 아니다. ◆미세먼지 측정부터 예방·관리까지‘건설에 IT를 입힌다’는 문구란 더이상 이질적이지 않다. 초고도화된 AI 기술 구축을 위한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은 오늘이자, 기대해 마지않는 내일이다.이제는 건축물뿐 아니라, 건축물 생성을 위한 현장 관리에도 AI 기술은 명문화됐다. 국내 유수의 건설사는 사물인터넷(IoT) 기반의 현장관리시스템을 도입, 고도화된 연계 시스템을 통한 현장 내 발생되는 소음, 비산먼지 등의 유해환경을 상시 모니터링한다. 여기에는 딥러닝 데이터 시스템을 적용, 분석된 유해물질을 예방·절감하는데 그 의의를 둔다.미세먼지 관련은 앞서 연재서도 다룬 바 있다. 최근 뉴스의 도입은 “미세먼지가 짙게 낄 것으로 전망”으로 점철되는 실정. 지구 온난화와 더불어 미세먼지의 유해성이 뜨거운 감자로 대두된 상황이다.상황이 이렇다 보니 미세먼지 방지를 위한 마스크와 공기청정기 등의 품목은 가파른 소비 상승을 보였다. 이 같은 관심 제고는 곧 미세먼지와 AI 기술의 접목을 공고히 했고 이를 통한 해갈방안 모색에 혈안이 된 다수의 기업을 낳았다.이 중 미세먼지 예방 및 대처를 위한 국내 유수 통신사들의 발걸음이 고무적이다.미세먼지 지도 앱을 통해 한국환경공단의 데이터와 통신사에서 설치한 측정기에서 보내오는 데이터를 활용, 공식화된 미세먼지 측정치를 고객들에게 제공한다. 범주는 시·군은 물론 읍·면·동 단위에까지 이른다.공기 질 수준을 실시간 제공하는 시스템도 속속 선을 보이고 있다. IoT를 활용, 집 내부 곳곳의 공기 질 상태를 측정 후 스마트폰을 통해 미세먼지, 온도 등의 컨디션을 단계별로 제공한다.빅데이터를 활용한 ‘맞춤형 미세먼지 앱’도 상용화를 위한 마지막 담금질에 매진하고 있다. 스마트폰 사용자의 현 위치를 넘어 각 지역별 미세먼지 수치를 제공, 비교할 수 있다. 6개 광역시 1천500개에 이르는 ‘공기질 관측망’의 구축이 이를 가능케 한다.이 밖에도 스마트폰을 이용한 ‘미세먼지 청정 보행로’ 안내 서비스와 실내공기, 날씨 예보까지 제공하는 IoT 창호손잡이, ‘미세먼지 대응형’을 캐치 프레이즈화한 ‘스마트웨어’, 아파트 내부 각 지정된 장소에 장착된 측정센서를 통해 내·외부 공기 질 수준을 감지, 데이터화한 뒤 세대별 환기 시스템과의 연동을 통해 쾌적한 주거환경을 고취시키는 ‘그린 아파트’도 대중의 곁으로 한걸음 더 다가왔다. ◆IT로 수자원을 관리하다물은 지구 표면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문제는 이중 98%가 음용이 불가한 ‘바닷물’이다. 국제 연합 환경 계획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극심한 물 부족 사태에 직면해 있다. 이와 더불어 향후 5년 전후로는 3분의 2에 가까운 국가가 물 부족의 트라우마에 시달릴 것이라는 전망치를 내놓기도 했다.대한민국도 물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의 연평균 강수량은 1천200㎜로, 세계 평균을 웃돌고 있다. 하지만 땅 면적 대비 인구 분포가 촘촘한 터라 개인당 연 강수량을 수치화하면 10% 초반 선에 그치는 실정. 이마저도 장마기간에 집중돼 있어 그 심각성은 결코 먼 나라 얘기가 아니다. ‘물 쓰듯 한다’는 관용어가 이래저래 겸연쩍어진 셈이다.상황이 이렇다 보니 물 관리와 AI의 접목을 위한 시도는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물의 생산과 소비 패턴을 상시로 체크·분석함으로써 상수도와 수자원의 합리적 관리를 취하겠다는 복안이 바로 그것.분석된 궤적을 빅데이터화한 후 기존 수자원 관리의 임계점을 타파, 지역 간 수자원 편차를 좁히고 물 복지 문제 해결을 위한 전 지구촌 물산업의 급변에 능동적 대처를 영위함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융합이 아닐까. ◆국가별 환경IT 어디까지 왔나이처럼 환경보전은 우리나라를 넘어 전 세계적 추세로 발돋움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기인, 환경보호와 AI의 융합은 철저히 고찰되고 아울러 동반 성장시켜야 할 당위성이 농후해졌다.실제 마이크로소프트사는 클라우드를 기반으로 한 온라인 툴을 활용, 건축 자재 제조과정서 파생되는 탄소 배출량을 측정 후, 배출량 30% 절감을 목표로 한 시스템 구축에 열을 올리고 있다.중국 유수의 인터넷 기업은 사옥 전반으로 초고도화된 IT를 접목했다. 지구 온난화 방지를 위한 에너지 소비 절감 차원에서다. 화장실 온수는 사옥 내 서버 컴퓨터서 발생하는 열로 데운다.이와 더불어 각 사무실에 배치된 AI 시스템이 직원들의 에너지 이용 패턴을 분석, 데이터화 한 후 냉·난방 강도와 조명 세기 등을 컨트롤한다. 이를 통해 여타 비슷한 수준의 사옥 대비, 일일 탄소 배출량을 40% 정도의 수준으로 다운시켰다.직접적 환경관리 뿐 아니라, 원활한 관리 도모를 위한 ‘환경 행정’에도 AI 시스템이 십분 활용되고 있다. 최근 국내 모 지자체 소속 환경 연구소의 경우, 조직체계의 융합을 시발점으로, 환경보건 분야 간 개별의 배경을 취합, 이를 토대로 한 건강 관련 정보를 아우르는 빅데이터 구축에 나섰다.여기에는 ‘실용성’이 수반된다. 체계적이며 전 방위적으로 아우를 수 있는 AI 기술을 혁신의 발판으로 삼아, 스마트의 이름을 딴 환경관리를 시행, 이를 통해 쾌적한 환경과 건강한 삶 구현에 발 벗고 나서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인다.‘자연과 어우러진 환경에서 하루 중 단 5분만이라도 걷는다면 사람의 인지 능력이 좋아진다’는 세계 최고 수준의 업무환경을 자랑하는 ‘구글’의 기업 이념 중 하나다.인공지능의 청사진이 자칫 자연환경의 훼손으로 역행할 수 있다는 우려도 상존한다. 하지만 적절한 접목과 융합의 모토가 발현될 수 있다면 거스를 수 없는 시류인 4차 산업과 환경의 시너지는 응당 공고해질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아무리 자연을 불러 봐도, 자연은 우리에게 명확한 답을 내려주지 않는다. 초고도화된 AI 기술일지 언정 예상치 못한 오류는 분명 발견될 터, 다만 자연의 섭리에는 오류도, 실수도, 일말의 빈틈조차도 없음을 잊지 말자. 글·사진 군월드 IT 사업팀

(특집) 스토리로 만나는 경북의 문화재(9)-예천 선몽대 일원

명승 제19호로 지정된 ‘예천 선몽대 일원’은 솔숲과 내성천의 흐름, 백사장 그리고 단애 위의 옛 건물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정경을 보여주고 있다.맑은 물에 의해 생겨난 긴 모래톱이 수려한 풍경과 함께 이어진다. 내성천은 소백산맥의 남쪽 기슭 봉화군에서 발원해 예천분지를 거쳐 낙동강 상류로 흘러든다. 예천의 내성천변에는 뛰어난 경관 덕에 유서 깊은 문화유적도 많다. ‘예천 선몽대 일원’은 2006년 국가지정 문화재인 명승 제19호로 지정됐다. 선몽대는 우암산 능선이 내성천으로 내려앉는 벼랑 끝에 자리한다. 앞으로는 내성천의 맑은 물이 흐르고 드넓은 백사장이 펼쳐져 있어 진경산수화 속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다. 주변에는 우거진 소나무 숲이 펼쳐진다. 굵은 노송의 줄기와 거북 등 같은 껍질들이 이곳에서 살아온 나무들의 시간을 가늠케 한다. 솔숲과 내성천의 흐름과 백사장, 그리고 단애 위에 서 있는 옛 건물이 어우러져 빼어난 풍광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을 한데 묶어 ‘예천 선몽대 일원’이라는 이름으로 명승에 지정된 것이다. 대문채 지붕은 새가 날개를 펼친 듯하고 그 너머로 내성천의 수려한 풍경과 함께 산줄기가 이어진다.문화유적과 더불어 주위 환경이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고 있는 곳을 지칭하는 국가지정 문화재이다. 명승은 국보, 보물, 사적 등과 같이 문화재보호법을 근거로 문화재청이 지정하여 발표한다. 지친 현대인들을 위해 향유할 수 있는 우리의 문화유산으로서 휴식과 위안의 장소를 제공한다. 그 안에 있는 나무와 풀 한 포기, 작은 바위 하나에도 우리의 역사가 곳곳에 서려 있다. 거북 등 같은 껍질의 줄기들이 비틀어 오르는 거목소나무 숲은 신선이 내려와 놀았음직한 풍경이다.◆소나무 숲백송리 마을 옆으로 이어진 시원한 가로수 터널을 지나면, 문이 활짝 열리듯 내성천 물길과 십 리에 이른다는 백사장과 빼어난 소나무 숲이 펼쳐진다. 송림 사이에는 커다란 돌비석 두 개가 세워져 있다. 하나는 ‘선대동천(仙臺洞天)’이라 새겨진 비다. ‘선몽대가 산천에 둘러싸여 훌륭한 경치를 이루고 있다’는 의미다. 그곳에서부터 신선의 땅이 시작된다는 설명으로 느껴진다. 또 하나는 ‘산하호대(山河好大)’로 ‘산이 좋고 하천은 크고 길다’라는 의미다. 용이 승천하듯 힘 있는 몸짓으로 비틀어 오르는 거목소나무 숲은 신선이 내려와 놀았음직한 풍경이다. 송림이 끝날 무렵 우암의 기념비도 보인다. 선몽대 숲은 백송리 마을에서 내성천으로 연결되는 수구를 막아 수해를 방지한다. 매서운 겨울바람을 차단함으로써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조성했을 보호림 또는 풍수상 비보림(裨補林)으로 보인다. 소나무 그늘 아래 돗자리를 펴고 눕는다면, 신선이 꿈속에 나타날지도 모른다. 시간이 멈춘 듯 느리게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휴식하기 좋은 곳이다. 사각사각 밟히는 모래 소리가 기분을 좋게 한다. 숲을 지나 모래밭이 거의 끝나는 곳에 선몽대가 위치한다. 자연 암반을 있는 그대로 쪼아 만든 돌계단이 선몽대 입구에 있다. 신선만이 딛고 오를 수 있는 계단이라는 의미로 느껴진다. 퇴계선생의 친필인 선몽대 현판은 한국국학진흥원 유교문화박물관 전시실에 소장되어 있다. 선몽대는 1563년(명종18)에 우암(遇岩) 이열도(李閱道)가 창건했으며, 그는 퇴계 이황의 종손(從孫)이며, 문하생이기도 하다. 선몽대는 우암이 그 자리에서 신선이 노니는 꿈을 꾸었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라 한다. 그는 선조 9년 별시에 문과 급제해 승문원정자, 사헌부감찰, 형조정랑, 경산현감 등을 지냈다. 관리로서 청렴 강직했던 그는, 당시 관찰사의 그릇된 처사를 대하고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고향인 호명면 백송리로 돌아와 선몽대를 지었다. 우암산 북서쪽 벼랑 위에 내성천을 바라보며 정면3칸, 측면2칸 규모의 팔작지붕으로 세워진 정자다. 기단을 축조하지 않고 천연의 암반을 이용해 필요한 곳에만 초석을 놓았다. 1623년에 큰비로 무너져 1671년에 중건하는 등 이후 몇 차례의 보수를 거쳐, 지금에 이르고 있다. 우암이 신선이 노니는 꿈을 꾸고서 내성천이 바라보이는 곳에 지었다는 선몽대 건물. ◆저명인사들의 친필 시그곳에는 당시의 저명인사가 많이 모여 시를 지어 읊으며 선몽대의 창건을 축하했다고 한다. 이황은 선몽대(仙夢臺)라는 현판 글씨 석 자를 친필로 써 주었다. 현재 퇴계선생의 현판은 안동에 있는 한국국학진흥원 유교문화박물관 전시실에 소장돼 있다. 전시 설명문에는 ‘글씨에도 선계에 노니는 듯한 초탈적 감성이 미묘하게 묻어난다. 송설체의 유려한 필법 위에 왕희지의 굳세고 단정한 이른바 ‘퇴필’의 전형적인 서풍’이라고 적혀 있다. 신선만이 딛고 오를 수 있는 계단이라는 의미로 자연 암반을 있는 그대로 쪼아 만든 돌계단. 퇴계는 ‘선몽대에 지어 보냄(寄題仙夢臺)’ 이라며 친필로 시도 써주었다. 노송 속 높은 누대 푸른 하늘에 꽂혀있고(松老高臺揷翠虛)/ 강변의 흰 모래 푸른 절벽 그려내기 어렵노라(白沙靑壁畵難如)/ 내 지금 밤마다 선몽에 의지해 구경하니(吾今夜夜憑仙夢)/ 예전에 기리지 못하였음을 한탄하지 않노라(莫恨前時趁賞疎). 그 후 많은 선비, 문인들이 이곳에 모여 내성천을 굽어보며 시를 읊었다. 이열도는 퇴계 문하에서 당대의 석학들과 수학했다. 조정에 진출해 벼슬살이했던 인물이기에 약포 정탁, 서애 류성룡, 청음 김상헌, 한음 이덕형, 학봉 김성일 등 당대 유학자들이 친필시를 남겼는데, 목판에 새겨져 지금까지 전해 오고 있다. 현재 걸려있는 편액들은 모두 한국국학진흥원에 있는 원본의 복제본이라고 한다. ‘산이 좋고 하천은 크고 길다’라는 의미의 ‘산하호대(山河好大)’비석. 병자호란 때 청나라와의 강화를 반대한 척화파의 거두 청음 김상헌도 훗날 선몽대에 올라 시를 남겼다. 모래는 깨끗하고 냇물 맑아서 텅 빈 것 같으니 / 옥산 옥구슬 가득한 정원에 비교함이 어떠할까…. (중략) 1599년 가을에 참봉 조여익이 향시에 합격한 뒤 약포 정탁을 찾아왔다. 조여익은 이열도의 사위다. 그는 선몽대를 이야기하며 이황이 지은 칠언절구를 보여준다. 약포는 옷깃을 여미고 세 번이나 되풀이하여 읽으면서 경탄하고 느낀 바가 있어 절구를 차운해 시를 지었다. 그중 몇 구절을 보면,남긴 시를 되새겨 외우니 배알하는 듯하네/ 꿈을 깬 후 몇 번이나 선몽대 위에 누워보니/ 바위 가의 높은 대가 온 허공을 끌어당기고/ 적송은 구불구불 늙은 교룡 같구나/ 백 년의 세월이 눈길 돌리듯 짧은데/ 늘그막에야 속세의 꿈이 헛됨을 깨달았으니/ 선몽대의 한바탕 꿈 어떠한지 묻노라. (중략) 다산 정약용도 어릴 적에 당시 예천군수였던 부친 정재원을 따라 왔다가 ‘선몽대기’를 다음과 같이 적었다. “아버지를 따라 선몽대에 올랐다. 벽 위에 여러 시가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중의 하나는 관찰사를 지내신 나의 선대 할아버지께서 일찍이 지으신 것이었다.아버지께서 손으로 먼지를 털어내고 나에게 읽으라 하고서 말씀하시기를, ‘일찍이 영남에 관찰사로 왔을 때 이 누대에 오르신 것이다.공이 지금부터 2백여 년 전에 사셨던 분인데, 나와 네가 또 이곳에 올라서 즐기니, 어찌 기이한 일이 아니겠느냐’며 기(記)를 쓰라고 하셨다”. 다산의 3대가 시간은 달리했으나, 같은 공간에서 시를 지어 남겼다. 당시 인근 지역의 선비나 관리들은 자주 선몽대에 올라 시회를 열거나 대화를 나누는 사교의 공간으로 활용했다. 타 지역의 고급 손님들을 초대해 먼 곳의 정보를 듣는다. 통신 미디어가 발전되지 않았던 그 옛날 이곳에서 사교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기도 했을 것이다. 좋은 경치를 보면서 정신을 맑게 하고 세심하는 공간이기도 했지만, 지방 관리들에게는 선정을 베풀기 위해 꼭 필요한 장소였다. 선비들은 그런 곳에 별채를 짓고 그곳을 오가며 자연과 인간의 합일을 위한 수양에 노력했을 것이다. ‘훌륭한 경치로 신선의 땅이 시작된다’는 설명으로 새겨진 ‘선대동천(仙臺洞天)’ 비석. ◆내성천내성천은 선몽대 일원을 아름다운 비경으로 만든 첫 번째 요소이다. 내성천의 푸른 물은 상류에서 구불구불 감돌아 흘러온 후 선몽대 앞에서 물길을 따라 비단결처럼 여울져 내려간다. 한때는 천변의 백사장이 반짝거린다고 백금리(白金里)라고도 했다. 일부 환경전문가 중에서는 내성천이 육지화 되고 있는 영향으로 백사장에 나타나는 풀밭이 우려된다는 소리도 나온다. 숲의 전체 모습을 촬영하려면 강 건너편에서 보는 게 제격이란 생각에 신발 벗고 바지를 걷은 채 얕은 강물 속으로 들어갔다. 5월이긴 하나 아직은 서늘한 강물의 기운이 종아리를 감돌며 스친다. 고개 들어 바라보니 펼쳐진 소나무 숲도 내성천 물에 비친 우암산 선몽대의 반영도 둥실 뜬 흰 구름도 모두가 아름다운 정경이다. 손을 담가 만지는 물은 흘러가는 마지막 물이자 다가오는 첫 물이다. 지금 이 시각이 바로 그렇다. (글·사진= 박순국 언론인) 박순국 언론인문정화 기자 moonjh@idaegu.com

우리동네 자랑-울릉군 <3>북면

[{IMG01}] 울릉도는 정말 멋지고 아름다운 섬이다. 일주도로를 따라가다가 아무 곳에서나 차를 세우고 주변을 둘러봐도 그림 같은 곳이다. 최근 개통한 일주도로의 가장 큰 수혜자는 북면 지역이다. 그동안 북면 사람들은 도로가 없어서 10여 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1시간가량 돌아서 가야 하는 등 불편할 삶을 살아서 했다. 다행한 것은 거리가 먼 탓에 자연환경도 사람의 손을 덜 탔다는 점이다. 북면은 울릉도에서 물빛이 가장 곱고, 섬과 바위가 빚어내는 절경이 펼쳐지는 곳이다.코끼리 바위나 딴바위, 선녀의 전설이 내려오는 삼선암, 관음도 등 볼만한 부속 도서들은 한결같이 북면에 있다. 울릉군 전체인구 1만34명(2018년 7월 기준) 중 북면 인구는 1천529명으로 울릉도 인구의 약 15%에 해당한다. 면적도 전체면적 72.87㎦ 중 24.28㎦ 정도로 33%를 차지하고 있다. 북면 지역의 행정구역은 천부 1~4리, 현포 1~2리, 추산리, 나리 등이다. 북면에는 천연기념물인 성인봉 원시림과 울릉국화 섬백리향 군락지가 유명하다. ----------------------------------------------------------------------------------------1. 천부 일몰전망대 천부 일몰전망대 입구는 북면 보건지소와 북면 파출소 맞은편에 있다. 데크 계단과 흙길로 이루어진 작은 길을 따라 전망대까지 500m 거리를 10분 정도 올라가면, 우리나라의 몇 안 되는 아름다운 작은 자연 미항을 조망할 수 있다. 송곳봉과 공암, 천부항 그리고 죽암마을 앞에 있는 죽암딴바위, 석포전망대, 작은 홍문동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천부 일몰전망대 2. 천부 해중전망대천부항에서 섬목방향으로 약 100m 지점에 설치된 해중전망대는 수족관처럼 바닷속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수심 6m에서 수중창을 통해 울릉도 청정해역과 신비로운 수중 생태계를 관람할 수 있는 곳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수중전망대다. 천부해중전망대 3. 예림원현포리에 있는 예림원은 가장 울릉도다운 식물공원이다. 울릉도 수목과 특산식물이 더 넓은 바다와 한 곳에 어우러져 여행자들이 한 눈에 감상할 수 있다. 이 아름다운 숲속에 문자를 나무에 새기고 다듬어 조형미와 생명력을 표현한 문자 조각공원도 함께 관람할 수 있다. 예림원 4. 섬목 관음도 보행 연도교 총사업비 90여억 원을 들여 2012년 5월 준공한 보행 연도교는 울릉도에서 100여m 떨어진 무인도인 관음도를 연결하는 다리다. 길이 140m, 높이 37m, 폭 3m 규모의 보행전용 다리다. 관음도는 면적이 7만1천388㎡로 울릉도에 부속도서 중 죽도 독도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섬이다. 관음도 보행 연도교 5. 현포항‘동쪽 촛대 암의 그림자가 바다에 검게 어린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우산국의 주요 활동지로 추정되는 삼국시대 이전 역사를 지닌 유물과 유적이 발굴됐다. 동국여지승람에는 현포에 혼락기지와 석물, 석탑 등이 있었다고 전한다. 18세기 해동지도에도 석장과 탑이 있는 사찰터가 기록되어 있으며, 우산국만의 독특한 방식의 수많은 고분군이 고대 우산국의 도읍지로 추측하게 한다. 현포항 6. 알봉울릉도의 주봉을 이루는 성인봉 북쪽에 이루어진 칼데라화구 내에 새로 분출돼 형성된 작은 화산이다. 알봉은 이중식 화산의 중앙화구구로 동서 양쪽에 2개의 화구를 가지고 있으며, 성인봉의 능선을 따라 미륵산·송곳산·형제봉 등이 솟아 있다. 이곳을 개척하여 많은 사람이 살았는데 큰 알봉, 작은 알봉이 있다. 알봉 둘레길 7. 송곳봉 성인봉의 한줄기 산봉우리로 그 모양이 송곳처럼 뾰족하게 생겼다고 하여 송곳봉이다. 높이 430m인 이 봉우리가 불과 100m 이내의 짧은 거리로 바다와 접해 있어, 해상이나 육상에서 볼 때 더 높고 웅장하게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송곳봉 8. 삼선암 천부리 앞바다에 우뚝 서 있는 세개의 기암이다. 기암절벽과 산봉우리가 멋진 울릉도에서 삼선암은 울릉 3대 비경 중 제1경으로 꼽힌다. 멀리서는 2개로 보이지만, 가까이 가면 3개로 되어 있어 더 경이롭다. 삼선암에는 지상으로 놀러 온 세 선녀에 대한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삼선암 9. 공암(코끼리 바위)바위 모양이 코끼리를 닮았다고 해서 코끼리 바위라고도 하고, 소형 선박이 드나들 수 있는 10m의 구멍이 뚫린 바위라는 의미에서 ‘공암’이라고도 한다. 바위 표면은 주상절리 현상에 의해 장작을 패어 차곡차곡 쌓아놓은 듯한 모습을 보인다. 공암 10. 나리분지 성인봉 북쪽의 칼데라 화구가 함몰해 형성된 화구원으로 울릉도 유일한 평지다. 동서 약 1.5㎞, 남북 약 2㎞, 면적 1.5~2.0㎢ 규모의 나리분지는 화구원 안에 있던 알봉(해발 538m)의 분출로 두 개의 화구원으로 분리됐다. 북동쪽에는 나리 마을, 남서쪽에는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 알봉 마을이 있다. 나리분지 11. 너와집이 집은 울릉도 개척 당시(1882)에 있던 울릉도 재래의 집 형태를 간직하고 있는 너와집으로서 1940년대에 건축한 것이다. 경북도지정 민속자료 제55호 울릉 나리 너와집은 2007년 12월31일 자로 국가지정 중요민속자료 제256호 울릉 나리동 너와집 및 투막집으로 지정됐다. 너와집 12. 투막집울릉 나리 투막집은 1940년에 세워진 것이지만, 울릉도 개척 당시(1882)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1986년 12월 11일 경북도 지정 문화재가 된 나리 투막집은 울릉도의 귀중한 문화재 자료로 제182호는 북면 나리 117-4번지, 제183호는 북면 나리 307번지 외 두 필지가 있다. 1987년 울릉군에서 토지와 가옥을 매입해 보수·관리하고 있다. 투막집이재훈 기자 ljh@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