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층이동의 기회, 과정, 결과

계층이동의 기회, 과정, 결과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수험생 가정에서 고속도로 정체가 아주 심한 날 갑자기 서울에 가야 하는 일이 생겼다. 서울 어느 특정 지점에 고3 수험생이 보호자와 함께 오면 명문대학 입학에 아주 유리한 특혜를 주는 이벤트가 있기 때문이다. 단 대구에서 출발해 자동차로 와야 하고 선착순 100명에게만 혜택을 준다. 그 공고는 당일 오전 6시에 있었다. 그 소식을 접한 수많은 가정이 아이를 태우고 서울로 출발했다. 동대구 IC와 북대구 IC는 몰려든 차량으로 붐볐다.고속도로는 전 구간이 4차선이다. 아무리 마음이 급해도 교통 법규는 지켜야 한다. 1차선은 추월선이기 때문에 추월할 때만 들어가야 한다. 속도가 느린 화물차는 주로 4차선을 이용한다. 일반 승용차는 2, 3차선으로 주행한다. 차종은 개인의 형편에 따라 달랐다. 고가의 고급 승용차, 폐차 직전의 낡은 차, 심지어 화물차도 있었다. 성능이 탁월한 고급 승용차는 감시 카메라가 없는 곳에서는 규정 속도 이상으로 달리기도 했다. 어떤 차는 아무리 엑셀레이트를 밟아도 시속 100km도 안 나와 화물차에게 추월당하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최선을 다해 목적지에 도착해 보니 이미 선착순 100명이 마감된 상태였다. 탈락한 자들이 자신의 차량 성능을 아쉬워하면서 낙담한 아이를 달래며 돌아서려는데 한쪽에서 사람들이 모여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리 중 한 사람이 이번 이벤트는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며 입에 거품을 물고 주최 측을 성토하고 있었다.순번 안에 든 일부 차량은 시종일관 1차선으로만 달렸다는 것이다. 탈락한 사람들은 엄청 배신감을 느꼈다. 화물차로 줄곧 4차선으로 달려온 사람은 1차선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조차 몰랐다며 허탈해했다. 차량 성능이 좋은데도 법규를 지켜 주행선으로 달려온 사람들 역시 억울했다. 법규를 지킨 자신의 고지식함을 자책했다. 무엇보다 화가 나는 것은 시종 1차선으로만 달려 순번 안에 든 사람들이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뒤늦게 도착한 사람들을 불쌍하다는 듯이 바라보는 그 시선이었다. 그들 중에는 수험생 학부모의 눈에 익숙한 사람도 있었다. 그 고위직 인사는 평소 우리 사회에서 반칙과 특권을 추방해야 한다고 강조해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았다. 심지어 그는 한 방송에 출연해 상습적으로 추월 차선으로만 달리는 운전자는 반드시 색출하여 운전면허를 박탈해야 한다며 목청을 높이기도 했다. 그런 사람이 법규를 어기며 시종일관 추월선으로만 달릴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불공정한 게임에 항의하던 사람들이 그를 지목하며 이 행사는 무효라고 대들자, 그는 “나는 서울에 그 전날 볼일이 있어 먼저 와 있었습니다. 운전은 아내가 해서 정확한 과정은 잘 모르겠습니다. 규정을 지키며 2, 3차선으로 달린 사람에겐 미안합니다. 이제부터는 제가 앞장서서 모든 사람들이 법과 규칙을 지킬 수 있도록 만들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어이가 없었다. 지금 당신은 어떤 차를 타고 어느 차선으로 주행하고 있는가.서울대 수시에 합격한 학생들의 비교과 실태가 나왔다. 합격자는 평균 30회 수상을 했다. 최다 수상 학생은 108개를 받았다. 고교 3년 재학 기간 동안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상을 받은 것이다. 이게 정말 가능할까. 봉사활동은 평균 139시간이었다, 400시간이 넘은 학생도 6명이나 있었다. 하루 4시간씩 100일을 봉사해야 한다. 이 또한 가능한 일일까. 전공적합성 지표인 동아리 활동은 평균 108시간이었고 최다 학생은 374시간이었다.창의력이 생존 수단이 되는 4차산업혁명의 시대에 객관식의 현행 수능 비중을 무조건 높일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전형의 다양성과 학생부종합전형은 유지돼야 한다. 다만 투명성, 공정성, 신뢰성을 높여 깜깜이 전형이라는 불신을 해소해야 한다. 지금은 학종의 평가 과정이 과거보다는 투명해졌고 신뢰성을 얻어가고 있다. 대학은 평가 과정과 그 결과를 계속 공개하여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대학입시가 계급 논쟁으로 발전하면 정글의 법칙만 활개 치게 된다. 교육을 통한 계층이동의 통로가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열려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해야 한다. 기회는 균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대입전형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무조건 바꾸는 게 능사는 아니다

무조건 바꾸는 게 능사는 아니다오철환객원논설위원 적폐와 개혁이 유행이다. 유행이 아니라도 적폐는 청산 대상이다. 보수나 진보를 가릴 것 없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고, 그 본성 또한 절대선과 거리가 있다. 따라서 적폐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일지 모른다. 비록 선에 도달하기 힘들겠지만 선을 향한 끊임없는 노력은 인간의 영역이다. 유행이 아니라도 개혁은 끊임없이 해나가야 할 숙제다. 개혁의 목적은 적폐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적폐와 개혁은 동전의 양면이다. 적폐를 완전히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 국가이념은 하늘로 날아가서도 안 되고, 땅속으로 파고들어도 안 된다. 개혁은 땅을 밟고 사는 인간의 한계를 고려하여 적당한 선에서 타협해야 한다. 하늘을 날아 태양을 쫓는 이상적 과욕은 이카로스의 추락이 기다릴 따름이다.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제도부터 덜컹 바꾸려 한다면 개혁은 실패한다. 제도를 바꾸어 득이 많다면 당연히 바꾸어야 맞다. 그렇지만 개혁이 개선을 보장하진 않는다. 미숙한 개혁은 오히려 개악으로 흐르기 쉽다. 개혁엔 부적응과 혼란이 따르기 마련이다. 개혁은 달리는 수레의 바퀴를 갈아 끼우는 작업이다. 그만큼 어렵다. 따라서 제도를 바꾸기 전에, 운용을 잘못하고 있지는 않는지, 개선할 여지는 없는지, 치밀하게 분석해봐야 할 터다. 제도의 틀 안에서 해결될 수 없고 그 부작용이 감당하기 힘들만큼 절박하다면 제도개혁이 불가피하다. 반면, 운용의 묘를 잘 살려 그 결함을 치유할 수 있을 정도라면 위험을 무릅쓰고 제도개혁을 감행할 일은 아니다. 운용의 묘를 살리는 방법만으로 대부분의 경우 폐단을 치유할 수 있다. 다양한 제도를 채택하는데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비슷한 현상을 구현하는 현실은 제도보다 운용이 먼저라는 점을 시사한다.검찰과 경찰의 조화로운 공존은 필요하다. 검경수사권조정이 불가피한지는 의문이다. 검찰이 경찰보다 더 성숙한 권력기관으로 굳어져 있다. 검찰에 더 우수한 인재와 세련된 노하우가 축적되어 있다는 뜻이다. 이런 시스템이 수십 년간 뿌리를 내려온 상황에서 검찰의 권력을 빼서 경찰에 넘겨주는 제도개혁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를 일이다. 검찰이 못한 일을 경찰인들 할 수 있을까. 게다가 제도를 바꾸자는 국민적 합의가 없는 상태에서 무리하게 제도를 바꾸는 일은 반칙이다. 운용의 묘를 살려 개선할 여지가 있다면 우선 그 길로 가는 것이 정석이다.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신설도 마찬가지다. 현 제도 틀 안에서 충분히 고위공직자를 수사할 수 있는데 굳이 새로운 권력기관을 만들 필요가 없다. 조직은 인사와 권한이 핵심이다. 공정한 수사는 인사권 독립과 권한 위양을 통해 가능하다. 정치에 휘둘리지 않는 엄정한 수사를 가능하게 하는 전제조건은 인사권 독립과 권한 위양이다. 인사권만이라도 정치권과 독립적으로 공정하게 보장된다면 검찰이 정권의 시녀나 대통령의 친위대로 전락할 일은 없다. 인사권 독립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새로운 기관을 신설한다고 해도 말짱 황이다. 공수처가 신설된다고 하더라도 그 수장의 임명권자가 대통령이라면 대통령의 권한만 키워줄 뿐이다. 검경의 인사권을 대통령에게서 떼어내 독립성을 보장하는 방법이 더 나은 대안이다.준연동형비례대표제도도 개선으로 가긴 어렵다. 유권자의 직접 뽑을 권리를 침해할 따름이다. 유권자가 후보자를 잘 판단하지 못하는 점이 흠결이라면 그 문제부터 풀어야 한다. 이는 운용의 문제다. 대뜸 제도부터 바꾸고 보자는 무리한 시도는 불순한 의도로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현 제도로 최선을 다해본 연후, 사심 없는 차원에서 철두철미한 연구와 시뮬레이션을 거쳐 제도를 바꾸는 것이 순리다. 정권의 정치 공학적 차원이라면 국민을 ‘졸’로 보는 작태다.장관의 청문과정에서 드러난 입시의혹을 제도 탓으로 돌려서 대입제도를 바꾸겠다는 태도도 떳떳하지 못하다. 대입제도는 많은 변화를 거쳐 왔다. 그렇지만 많이 바꾼 만큼 입시상황이 개선되었다고 보긴 어렵다. 일단 제도를 주어진 것으로 보고 최선을 다해 운용의 묘를 최대한 살리는 일이 우선이다. 그래도 결함을 치유할 수 없을 경우, 최후의 방법으로 제도를 고치는 것이 맞다. 신중한 접근은 기본이다. 장관이 기존 업무도 파악하기 전에 개혁부터 서두르는 자세는 경솔하다. 위선적으로 볼 소지가 크다. 범죄 혐의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조신하게 처신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부끄러움을 모르고 잘난 체 설쳐대는 모습은 국민의 혈압을 올리는 꼴불견이다.

양극화를 넘어 공존과 포용의 사회로

양극화를 넘어 공존과 포용의 사회로홍덕률대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2011년 9월17일, 그러니까 꼭 8년 전이었다. 그날은 토요일이었다. 세계 금융의 중심지, 뉴욕의 월스트리트에 이목이 집중되었다. 1천여 명의 시위대가 모여든 것이다. 20대 청년들이 많았다. ‘Occupy Wall street. (월가를 점령하라.)’ 대표 슬로건이었다. 그래서 ‘월스트리트 점거 시위’로 불리게 됐다.‘We are the 99%. 우리는 99%에 속한 사람이다.’ 자주 등장한 구호였다. 극소수 수퍼리치(거대 부자)가 지배하는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궁핍한 다수 서민의 저항이었다. 일부는 인근의 리버티 플라자공원에서 노숙하며 시위를 이어갔다. 행진도 있었지만 불의한 체제와 궁핍한 삶을 주제로 한 토론도 활발했다.인터넷과 소셜 미디어는 그들의 주장과 함성을 전 세계로 퍼 날랐다. 사진들과 함께였다. 지구촌의 주요 도시들로부터 공감과 지지가 쇄도했다. 시위대들은 지구촌 곳곳의 목소리들을 모으기로 했다. 10월15일을 ‘전세계 공동의 날’로 정했다. 82개국 900여 개 도시의 시민들이 참여했다. ‘저항의 세계화’라 할만 했다. 한국의 시민들도 호응했다. 한국의 월스트리트, 여의도로 모였다. ‘여의도를 점령하라.’ 시위 현장에 걸린 현수막 구호였다. 1%를 위한 정책들과 투기자본에 대한 성토가 주를 이뤘다.월스트리트 점거(오큐파이) 시위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세계 자본주의의 중심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성토가 터져 나왔다는 사실에 있다. 이 때의 자본주의는 ‘무한경쟁, 승자독식 자본주의’였다. 성공한 소수가 한 사회의 부와 자산 대부분을 차지하고, 실패한 다수는 빈곤과 절망에 처해지는 자본주의였다. 국제적으로도 마찬가지였다. 부자 나라에서는 식량이 넘쳐났지만 가난한 나라들에서는 발육부진과 기아 사망이 넘쳐났다.양극화가 주 타깃이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1대 99의 사회’라는 슬로건과 ‘우리는 99%다’라는 구호도 양극화를 겨냥한 것이었다. 소수 투기자본의 탐욕과 서민의 생활고, 높은 실업률과 극심한 불평등을 효과적으로 이슈화시켰다. 1980년대 이후 지구촌을 휩쓴 ‘신자유주의’가 문제의 본질이라는 토론도 활발했다.그러한 우려와 비판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고삐 풀린 자본주의’, ‘정글자본주의’, ‘20대 80의 사회’ 등의 비판은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우리나라에서도 ‘88만원 세대’라는 책이 널리 읽혔고 ‘희망고문’, ‘헬조선’이라는 비아냥이 청년세대에 널리 퍼졌다. 세계 많은 나라들에서 동조시위에 참여한 80% 혹은 99%에 속하는 서민들도 주로 양극화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성토했다.다행히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보다 정확하게는 1년 전인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가 결정적이었다. 영국의 대처리즘과 미국의 레이거노믹스를 중심으로 1980년대부터 지구촌을 휩쓸기 시작한 신자유주의 모델이 실패했다는 분석이 각 나라들에서 제출되기 시작한 것이다. 새로운 대안체제를 모색하기 위한 움직임도 빨라졌다. 물론 1990년대 중반 이후에도 영국의 블레어총리와 사회학자 기든스, 그리고 미국의 클린턴대통령에 의해 ‘제 3의 길’ 노선이 주장되고 실천된 적이 있었다.우리 사회의 불평등과 양극화는 매우 심한 편에 속한다. 그렇게 된 계기는 1997년 말의 외환위기에서 찾을 수 있다. IMF는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대가로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강요했다. 기업과 금융기관의 강도높은 구조조정과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대표적이었다. 결과는 참혹했다. 비정규직과 실업자는 급증했고 중산층은 붕괴되었다. 노숙자로 전락한 이들도 부지기수였다.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규모와 속도로 진행된 양극화는 지금까지도 우리를 힘들게 하고 있다. 여기저기서 살기 힘들다는 탄식과 신음이 넘쳐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자영업자들뿐만이 아니라, 실업자로 혹은 신용불량자로 대학문을 나서는 청년들의 절규도 숙지지 않고 있다. 3포, N포의 청년들은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과 미래까지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불평등과 양극화를 완화하는 일이 절박하고 시급하다. 사회경제 시스템의 운영 원리를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에서 공존과 포용으로 전환해 가야 한다. 그래서 80% 혹은 99%가 활력과 희망을 갖게 해야 한다. 고개숙인 청년들의 미래와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도 일으켜 세워야 한다. 8년째를 맞는 월스트리트 점거시위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숙제다.

사위질빵 꽃

사위질빵 꽃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 바람결이 한결 선선하게 다가온다. 추석이 지났다. 아부다비에 사는 조카는 늦은 밤 사막의 보름달을 보내왔다. 커다랗게 떠오른 달을 보며 가족의 건강을 소원하면서. 5시간 늦은 시차로 그제야 뜬 달을 보면서 식구들의 얼굴을 떠올렸으리라.유난히 일찍 찾아온 추석, 눅눅하던 날도 말끔해져 명절 분위기를 더했다. 고운 옷으로 갈아입은 가족이 차례를 모시러 모여들었다. 명절 연휴가 되지 않으면 좀체 틈을 내기가 힘든 직장인들이라서 훨훨 세계를 향해 떠나고 싶은 마음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조상 음덕을 잊지 않으려고 몇 시간씩 달려오는 것을 보니 대견하다. 가족들이 모여 함께 음식을 나눠 먹으며 일상의 대화를 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 그 가치가 절실하게 느껴지니 세월이 절로 사람의 마음을 어른처럼 만들어 가는가 싶다.추석이면 둥근 달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음악을 깔아 시 영상을 보내주는 이가 이번에는 ‘달빛 기도’를 전해왔다. “너도 나도/ 집을 향한 그리움으로/ 둥근 달이 되는 한가위/우리가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이/ 달빛처럼 순하고 부드럽기를 /우리의 삶이/ …중략…// 두 손 모아 기도하려니/ 하늘보다 내 마음에/ 고운 달이 먼저 뜹니다./한가위 달을 마음에 걸어두고/ 당신도 내내 행복하세요, 둥글게”외국에서 온 식구들이 인사하고 싶다고 하여 친정어머니 아버지 산소를 찾았다. 하늘도 한결 가을 분위기다. 그림 같은 구름을 머리에 이고서 산을 오른다. 부모님을 찾아가는 길, 노랑나비와 호랑나비가 산 아래까지 내려와서 춤을 춘다. 우리의 길 안내를 하려는 모양이다. 조금 뒤처져 걷고 있으면 다시 날아와 우리 곁을 맴돈다. 걸음을 재바르게 옮기면 다시 저만치 앞에서 날개 짓을 한다. 수풀 우거진 산길이라 길이라도 잃을까 봐서 노심초사 손을 이끄는 것 같다. 산소를 찾아 오를 때마다 나타나는 저 나비를 보면, 꼭 어머니 아버지의 현신인 것 같아 가슴이 먹먹해 온다. 돌아보니 동생의 눈가에도 물기가 촉촉하다. 우리 곁에 영원히 살아 숨 쉬는 부모의 숨결인 것 같다.산소가 보이는 산 중턱에 올라서니 묘지 둘레에 초록의 망이 빙 둘러쳐 있다. 제부가 멧돼지 방지용 울타리 작품이라고 설명한다. 그가 한여름에 들렀을 때 우거진 잡풀 덩굴 속에서 무덤 위에 난 멧돼지의 난동 흔적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그 장면이 너무 안쓰러워 무더위 속에서 바로 시내에 나가서 고춧대를 지지하는 알루미늄 막대기를 군데군데 세워 망 울타리를 만든 것이라니. 힘센 멧돼지가 머리 조금만 쓰면 그까짓 쯤 쉽게 떠밀어 버릴 수 있을 것이었지만, 그 울타리는 제부의 정성을 아는 듯 오롯이 세워둘 때의 그 상태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사위의 장인 장모에 대한 사랑이 지극함에 더없이 고맙고 대견하다.지극한 마음으로 서로에게 정성을 다하는 이들에 감동하였을까. 산소 주변을 둘러보니 심어둔 적도 없었는데 하얗게 피어난 꽃들이 또 하나의 울타리처럼 빙 둘러서 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사위질빵이었다. 상아색에 가까운 하얀색이랄까. 꽃을 활짝 피운 덩굴 풀, 사위질빵이 이웃한 나무들을 감아 올라가 빈틈없는 울타리로 서있다. 하얀 꽃을 머리에 잔뜩 이고서 만면에 미소를 짓고 있다. 어머니의 함박웃음같이. 사위질빵이라는 이름은 장모가 사위 사랑하는 마음이 담긴 식물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농촌에서 수확물이나 땔감을 나르는 도구로 지게였는데 두 어깨로 무거운 짐을 지기 위해서는 지게다리 양쪽에 튼튼한 질빵을 만들어 달아야 많은 짐을 져 나를 수가 있었다. 모처럼 처가에 온 사위에게 농사일을 덜 시키기 위한 장모의 지혜로 사위질빵 줄기로 만든 지게 질빵은 무거운 짐을 짊어지면 끊어지기에 조금만 지고 나를 수 있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이 식물의 줄기를 걷어서 질빵을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는 식물이다. 여러 가닥의 줄기가 뻗으면서 자라나 상아색 꽃망울을 달고서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사위질빵을 보니 어머니가 평소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던 그 선한 사위의 얼굴이 다시 보인다. 참으로 흐뭇하다.깊어가는 가을이 오면 하얀 머리카락 같은 털을 달고 사위질빵 씨앗이 맺게 되는데 불어오는 바람에 더 멀리로 날아가 뿌리를 내리고 자라나서 더 튼실한 울타리를 만들어 주리라. 사위질빵은 꽃도 곱지만, 향은 자연 속 시인인 듯 은은한 향기로 여운을 남긴다. 열매가 익어 가면 작은 씨앗 끝에 흰 깃털이 호호백발 할머니의 머리카락처럼 짧게 밑으로 처져 바람을 타고 멀리멀리 날아간다. ‘아들딸 낳고 잘 살라’는 부모님의 소망을 간직한 듯, 사위질빵꽃이 바람에 하늘거린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우리를 지켜주시겠다며.

대구시 신청사 후보지 선택 방법

대구시 신청사 후보지 선택 방법오철환객원논설위원 대구시 신청사 유치경쟁이 지역 간 갈등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내년 총선과 맞물려 해당 구청들이 배수진을 치는 모양새다. 다들 숨이 넘어간다. 이와 관련 대상후보지의 적극적 입지 평가와 더불어 상대적 약점을 우선 따져볼 필요가 있다.중구의 현 위치부터 본다. 현 주차장 부지에 최소 지하 5층, 지상 50층 이상 랜드마크를 민관공동사업으로 추진할 여지가 있다. 관용 및 공용공간을 제외한 공간을 면세점 등 품격 있는 생활공간으로 분양하는 조건이다. 시장메커니즘에 의해 민관공동사업이 가능한 지역이라는 점이 최대강점이다. 스카이라운지에 전망대까지 갖춘다면 관광산업에도 기여하리라 본다. 국채보상로를 따라 지하공간을 조성하여 중앙지하상가와 연결하면, 국채보상공원, 2·28중앙공원 및 동성로 중심상권은 물론 약전골목, 근대골목 등을 하나로 묶을 수 있다. 이는 시너지를 극대화시킴으로써 도심 활성화의 기폭제가 되고, 대구경제의 추동력이 될 수 있다. 경상감영과 대구읍성 복원이 이루어진다면 금상첨화다. 지하철 1호선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져 접근성도 좋아진다. 결정적 약점이라면 드림저축은행을 비롯한 인근 땅을 매입하는 수고와 비용을 감수해야 하는 점이다. 신청사를 다른 지역으로 이전할 경우 초래될 도심 공동화와 심리적 박탈감이라는 부작용도 결코 간과할 수 없다.다음은 북구의 옛 도청 부지를 살펴본다. 대상 부지를 중앙정부로부터 확보할 수 있고, 도청이 있던 곳이라 행정타운 기능에 익숙한 곳이다. 배산임수로 풍수가 좋다는 소문도 플러스알파다. 어떻게 설계하고 개발하느냐에 따라 그 간극은 비록 크지만 랜드마크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은 부인하기 어렵다. 백지상태의 공간을 어떻게 가공하느냐는 부지 선정 이후의 과제다. 부지 선정에 영향을 미칠 사항은 아니다.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다. 러시아워의 혼잡비용과 경북이 버리고 간 땅이라는 점이 취약점으로 작용한다.달서구의 옛 두류정수장 부지도 유력하다. 지하철 2호선과 달구벌대로에서 멀지 않다. 대구시 소유로 예산이 별도로 지출되지 않긴 하나 땅값이 들지 않는 건 아니다. 비록 시유지라 하더라도 시가상당액만큼 가치가 희생되기 때문에 공짜는 아니다. 인근에 있는 이월드, 두류공원, 코오롱음악당, 문화예술회관 등은 양면성이 있다. 기존시설은 상호간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는 이웃이긴 하다. 하지만, 힐링과 거리가 있는 시청의 딱딱한 업무가 인근지역과 잘 어울리는 기능인지 의문이다. 평상시에도 유동인구가 많고 항상 행사가 끊이지 않는, 현 교통 혼잡지역에 유동인구를 불러들이는 시청이 굳이 또 들어와야 되는지 고민해볼 부분이다.마지막 후보지는 달성군 화원이다. 달성군은 대구의 약 절반을 차지하는 신성장허브다. 화원은 1호선이 지나는 낙동강변의 지리적 중심이고, 달성군에서 부지를 무상 제공한다는 점이 매력이다. 군지역이라는 심리적 거부감과 잠재이용자의 누적이동거리가 큰 점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관건이다.각 후보지의 개략적 사항을 짚어 보았다. 비교평가에 정성적 성격이 강한 만큼 객관성이 담보되긴 어렵다. 항목별 가중치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발상의 전환이 유용하다. 기회비용 개념을 활용하는 방법이 그것이다. 기회비용이란 ‘어떤 선택으로 인해 포기된 기회들 가운데 가장 큰 가치를 갖는 기회 자체 또는 그러한 기회가 갖는 가치’를 말한다. 신청사로 인해 포기된 최선의 기회를 가치로 환산하여 그 가치가 가장 작은 곳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각 후보지의 기회비용을 추산해 보기위해 신청사가 들어선다면 포기되어야할 최선의 기회를 각각 상정해 본다.현 시청 부지는 공원이나 공용주차장 용도가 신청사로 포기될 최선의 기회일 수 있다. 옛 도청부지는 경북대, 창조센터 등과 연계한 ICT파크가 미래 먹거리를 책임질 최고최선일 수 있다. 신청사로 인해 포기해야 할 기회는 ICT파크다. 옛 두류정수장 부지는 인근지역과 시너지가 가능한 힐링공간이 최유효사용일 수 있다. 신청사가 들어선다면 힐링공간의 가치가 기회비용이다. 화원은 신성장허브의 중심으로 개발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신성장허브 핵심을 포기하는 대가가 기회비용이다. 공원과 주차장, ICT파크, 힐링공간, 신성장허브의 중심 등이 각각 상정된다. 신청사로 인해 최선의 다른 용도를 포기해야하는 대가가 가장 작은 곳이 최적입지다. 무엇을 포기하는 것이 가장 좋을까? 최종선택은 시민의 몫이다.

‘자살공화국’ 오명 벗어야

‘자살공화국’ 오명 벗어야홍덕률대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우리나라는 세계 1등 기록을 여러 개 갖고 있다. 양궁, 스피드 스케이팅, 여자골프와 같은 스포츠 종목뿐만이 아니다. 공산품도 여럿 있다. 2017년 기준, 시장점유율 세계 1위 제품은 77개에 달했다. 최근 일본이 집중 공격하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 품목도 5년간 세계 1위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우리의 문화상품들도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드라마와 영화, 노래와 춤에 이르기까지 한류 돌풍이 그것이다. 아시아를 넘어 유럽과 미 대륙 청소년들까지 열광하고 있는 방탄소년단, BTS를 보라.뿐만 아니다. 우리의 민주화운동 역시 수출품 목록에 올랐다. 독재와 부패에 저항하고 있는 세계의 양심 시민들도 한국의 민주화 의지와 역량을 부러워하며 배우고 있다. 해방 이후 불과 반세기만에 산업화에 이어 민주화까지 성공한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 IT 정보화혁명에서도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반도체와 스마트폰 같은 하드웨어는 물론이고 인터넷 보급률과 속도 등에서도 세계 일류를 자랑하고 있다. 최근 일본의 비상식적인 도발도 우리나라의 놀라운 발전에 대한 견제 목적이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하지만 영광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둠도 있고 부끄러운 1등 기록도 여럿 있었다. 청소년 공부시간과 통근 시간, 연간 노동시간이 OECD 회원국들 가운데 1등이다. 성별 임금격차와 노인빈곤율도 마찬가지다. 하나 더 있다. 자살률이다. 2003년 이후 줄곧 OECD 회원국 중 1위를 차지해 왔다. 불명예요 우리의 부끄러운 민낯이 아닐 수 없다.실제로 우리는 우울한 자살 기사들을 일상적으로 접하며 살고 있다. 직장상사의 갑질로 괴로워하던 회사 직원, 생활고에 내몰린 일가족의 자살 뉴스가 툭하면 보도되고 있다. 정치인과 유명 연예인의 자살 뉴스도 적지 않다. 그를 모방한 베르테르 효과형 자살도 있다. 한참 신나야 할 중고등학생이 성적을 비관하거나 학교에서의 왕따, 폭력에 신음하다 자살했다는 소식도 종종 접하곤 한다. 사실상 사회적 타살로 볼 수 있는 사례들이 많은 것이다.2017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24.3명이었다. 자살률은 1년 동안 인구 10만명당 자살자 수로 집계한다. OECD 회원국 평균은 12.1명이었다. 19.4명인 2위 헝가리와의 격차도 매우 크다. 자살자 수는 2017년 기준 1만2천463명이었다. 하루 평균 34.1명, 42분에 한명 꼴로 자살하는 셈이다.사망원인별로 보면 자살은 5위로 집계된다. 교통사고 사망률의 2.5배 수준이다. 하지만 청소년, 청년으로 눈을 돌리면 다르다. 10대와 20대, 30대의 경우는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다. 사망원인 중 자살이 차지하는 비중은 10대에서 30.9%, 20대에서는 44.8%에 달했다. 가정해체와 학교폭력, 숨막히는 입시체제와 취업난, 과도한 경쟁과 미래에 대한 불안 등이 주요 원인일 것이다.9월10일, 오늘은 ‘세계 자살예방의 날’이다. 전 세계에 생명의 소중함과 자살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자살예방협회(IASP)가 2003년에 제정했다. 우리 정부는 2022년까지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을 20명 이내로 그리고 연간 자살자 수를 1만명 이하로 끌어내리겠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종합적인 처방과 대책이 필요하다. 생애주기별로도 세심하게 예방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자살 고위험군 지지 체계를 구축해야 하며, 국민 모두도 자살 위기에 놓인 이들에 대한 긴급 대처 방법을 익혀야 한다.가정이나 학교에서 폭력에 시달리는 청소년들을 위한 대책도 세워야 할 것이며, 학생들을 극도의 경쟁체제로 내모는 대입 제도와 학교 문화도 개혁해야 한다. 생계난에 신음하는 저소득층과 특별히 자살률이 높은 노인세대를 위한 사회안전망도 촘촘하게 구축해야 한다. 기업을 비롯해 사회 구석구석에 뿌리내린 갑질 관행도 척결해야 한다. 사회경제적 양극화와 승자독식의 사회구조도 바꿔가야 할 것이다. OECD 회원국들 가운데 최하위 수준인 사회통합을 높이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궁극적으로 생명존중의 문화를 함께 키워가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정부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생명을 살리는 일,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드는 일에 우리 모두가 정성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자살예방 성과에서도 세계 1등을 차지하면 좋겠다. 오늘, ‘세계 자살예방의 날’이 그런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스트레스 받았나요

스트레스 받았나요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새벽에 눈을 떴다. 벌떡 일어나 창을 열고 밖을 내다본다. 고요하다. 스트레스를 주던 것들이 사라졌을까. 연일 태풍이 불어대더니.날씨와 뉴스를 검색해 본다. 끝난 청문회 소식, 우리나라를 기록적인 강풍으로 할퀴고 지나간 제13호 태풍 ‘링링’이 7일 밤 북한으로 북상하면서 세력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반갑다. 어쨌든 오늘은 날씨가 맑아야만 한다. 건강을 생각하며 해마다 오늘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대회 홈페이지를 열어보니 2019 핑크 런 대구대회, 날씨는 구름 조금 23℃. 장소는 대구 스타디움 동편 광장, 상태는 진행 중으로 뜬다. 다행이다. 몰아치는 비바람 속에서 혹여 대회가 취소될까 봐 얼마나 마음을 졸였던가. 실망하는 회원들의 얼굴을 어찌 대할까 싶었다.핑크 리본 마라톤 대회로 불리던 이 대회는 대구뿐 아니라 서울, 대전, 부산, 광주에서도 진행하는 큰 사업이다. 여성들의 소중한 유방 건강을 위한 핑크 리본 캠페인의 일환으로 3천명 선착순 마감하는 행사로, 참가는 10km, 3km로 부담 없이 달릴 수 있어 좋고 참가비 전액을 한국유방건강재단에 기부한다니 정말 만 원의 행복이 따로 없다 싶다. 출발 전에 한국유방건강 무료 상담 및 이동검진 부스에도 들를 수 있고 참가자 전원이 기부자 명단에 올라 커다란 기둥에 적혀있어 각자의 이름을 찾아 인증 샷을 찍으며 가족과 동료와의 웃음 시간을 가진다.출발 전 스트레칭 시간을 갖고 몸을 풀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가을의 정취를 흠뻑 느낄 수 있어 좋다. 기록은 자동 측정 방식으로 출발 지점 매트를 지나가는 순간부터 계측되는 넷 타임(Net-time)방식이다. 출발지점 측정 발판을 밟는 순간부터 기록이 측정되며 출발지점 반환지점 골인지점에서도 측정되니 해마다 자신의 기록이 어찌 변하는지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울 수 있다. 한국여자의사회 대구경북지회장을 맡아 이 대회에 참가하는 필자는 이런저런 일을 돌봐야하기에 매년 3km의 짧은 구간을 선택한다. 마라톤으로 지구 한 바퀴 클럽에 가입하는 것이 목표인 선배에게 이야기했더니, 그분은 정색하며 내 어깨를 치신다. “바꿔라 10km로. 기록을 재야 다음 해에 어떻게 되는지 알아서 발전이 있지. 만약 올해 끝까지 달리지 못하면 내년에라도 다시 도전할 수 있지 않겠는가”라면서 자꾸만 긴 거리를 달리라고 권하신다. 그는 풀코스 마라톤 1,000번, 42,195km. 지구 한 바퀴의 거리를 두 발로 달려보는 것이 최대 목표라고 한다. 선배를 보면서 갱신되는 숫자로 얻는 행복이 정말 대단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2001년 시작되어 한 해도 빠짐없이 매년 전국 다섯 개 대도시에서 개최되는 달리기 축제인 행사, 유방 건강에 대해 정보를 바르게 전하고 유방암 조기 검진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한 행사라서 호응도가 높다. 유방암은 젊은 여성뿐 아니라 남자도 걸릴 수 있기에 더 관심이 가는 것 같다. 아린 기억 속에는 레지던트 마지막 해에 전문의 시험공부를 하는 중 유방암이 발견되어 전문의 자격을 얻었던 봄에 유명을 달리한 후배가 있다. 핑크 런(Pink Run)에 참가하면 언제나 그녀가 아프게 눈에 밟힌다. 그녀도 하늘에서 핑크빛 물결을 이루며 달리는 우리들을 내려다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겠지,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겠지 싶다.사람들은 말한다. 건강한 음식 잘 챙겨 먹고 열심히 운동하면서 스트레스 받지 말고 마음 편하게 살아야 한다고. 여기에서도 스트레스, 저기에서도 스트레스,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찌 스트레스 받지 않고 지낼 수 있겠는가. 밤새 태풍이 물러가지 않을까 봐 스트레스 받았다는 필자에게 한 말씀 읊으시는 교수님이 계신다. 우리나라 말에 서툰, 북쪽에서 온 어른이 늦은 나이에 학생들과 어울려 공부하고 있었다고 한다. 교육과정이 어려워 모두 힘들어하였다. 그래서 배우는 이들은 각자 스트레스 받았다는 이야기를 교수님께 하였다.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에 어르신이 옆 학생에게 다가와 점잖게 물었다. “스트레스 받았어요? 나는 그것을 아직 못 받았는데, 어디 가면 받을 수 있어?” 스트레스가 무슨 귀한 선물인 양 생각하신 모양이라고. 스트레스도 적당하다고 생각하면 어쩌면 생에 활력을 주는 자극이 되지 않을까.예쁜 소녀를 부르는 애칭이라던 ‘링링‘이 지나갔다. 가을이 성큼 다가올 것 같다. 풀벌레 소리, 이슬 가득한 풍요로운 가을을 기대하며 저마다의 가슴 가득 결실을 기대하며 달려보면 어떨까.

우신예찬

우신예찬 ‘우신예찬’은 르네상스 시대의 인문주의자 데시데리위스 에라스뮈스가 1511년에 출간한 책이다. 우신(愚神)이란 바보의 신이다. 우신(moria)의 어머니는 ‘청춘의 신’이고, 아버지는 ‘부유의 신’이다. 우신은 ‘도취’와 ‘무지’라는 유모의 젖을 먹고 자랐다. 그는 우신을 예찬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면서 실제로는 인간의 어리석은 행동을 비판하고 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교황과 교회 권력자, 왕과 왕족, 귀족들의 행동을 냉정하게 관찰하고 풍자했다. 그는 교회의 헛된 권위와 어리석음을 조롱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종교가 물질적, 육체적인 것들을 거부하고 순수한 영혼의 문제로 돌아가라고 했다. 이 책이 불후의 명작인 이유는 그가 주장하는 것들이 현대를 살아가는 여기 ‘어리석은 자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이다.우신예찬을 읽으며 오늘의 정치와 권력을 생각해본다. 우신이 그러하듯 권력도 ‘도취’와 ‘무지’라는 유모에 의해 양육되는 것이 아닐까. 권력은 반드시 사람을 취하게 하며 권력을 잡은 자는 무지해야 그것을 유지할 수 있다. 우신에겐 추종의 신, 향락의 신, 무분별의 신, 방탕의 신, 미식과 수면의 신과 같은 친구가 있었다. 오늘날에도 권력 주변엔 이런 사람들이 득실거린다. 이 책에는 지금 적용해도 기가 막히게 들어맞는 구절이 너무나 많다. “냉정한 진실보다는 달콤한 거짓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오늘날 군주들은 나 우신의 도움을 받아 모든 근심 걱정을 신들에게 맡겨두고 듣기 좋은 말만을 하는 자들에게 귀를 기울인다.” “지혜와 철학은 가난하고 지질한 사람을 만든다. 지혜는 사람을 소심하게 만든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가난과 기아와 헛된 희망 속에서 천대받으며, 각광은 고사하고 관심조차 받지 못하고 살아간다.” “가까운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바로 광기의 힘이다. 친구들 사이에 우정의 연대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도 광기의 힘이다. 뱀처럼 꿰뚫어 보는 냉철함보다는 에로스의 헤픈 정념이 진정 삶을 유쾌하게 해 주고 사회적 유대관계를 굳게 다져주는 것이다. 달콤한 꿀을 서로 주고받으며 마음을 달래지 않는다면 어떠한 모임이나 관계도 유쾌하게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 이 시대는 사려 분별력 있는 사람보다는 광기에 쉽게 휩쓸릴 수 있는 사람이 더 행복한지도 모른다. 광기를 예찬하면서 에라스뮈스는 정치권력 집단의 허구성에 대해서도 일갈한다. 그는 “최고 권력자가 일면 학식이 풍부한 참모들을 중용하는 것 같지만 그보다는 자신의 심기를 잘 헤아리고 즐겁게 해주는 광대들을 더 좋아한다.”라고 말한다. “아첨은 낙담한 영혼을 일으켜 세우고, 슬픔을 어루만져주고, 무기력한 사람들을 격려하고, 둔감해진 사람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아첨은 아이가 공부를 좋아하게 만들고, 노인의 주름을 펴주기도 하고, 조언과 가르침을 칭찬으로 포장하여 왕이 마음을 다치지 않도록 넌지시 말할 수 있도록 해준다. 아첨은 모든 인간관계에서 꿀이자 양념이다.” 그래서 우리는 권력을 가진 자, 가지려고 하는 자에게 그렇게 맹목적으로 아첨하는 것일까.에라스뮈스가 주교나 추기경, 교황과 같은 종교지도자들에게 요구하는 참모습은 ‘노동과 헌신’이다. 재물을 탐하고, 기득권 세력이 된 그들에게 에라스뮈스는 이렇게 질타한다. “가난한 사도의 직분을 행하는데 금전이 무슨 필요가 있는가? 자신을 한 번이라도 뒤돌아본다면 모든 것을 미련 없이 버리고 예전의 사도들처럼 노동하고 헌신하는 삶을 살고자 했을 것이다.” 우리가 귀하게 여겨온 정직한 노동, 가족과 이웃을 위한 헌신과 희생, 타인을 향한 연민과 배려 같은 덕목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소중하고 필요한 것인가?우신예찬은 이렇게 끝을 맺고 있다. “옛말에 ‘같이 마시고 다 기억하는 놈을 나는 증오한다.’라는 말이 있다. 이를 새롭게 고쳐 ‘아, 기억하는 청중을 나는 증오한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 안녕히! 손뼉 쳐라! 행복 하라! 부어라, 마시라! 나 우신의 교리에 탁월한 여러분이여.” 오늘의 가진 자와 권력자들도 그들이 과거에 내뱉은 말과 행동을 오래 기억하는 사람들을 싫어하고 증오한다. 하여 우신이여, 우신이여, 내 술잔을 채워라. 이 풍진 세상 그냥 박수나 치며 취생몽사 할까나.

단일민족통일국가에 대한 환상

단일민족통일국가에 대한 환상오철환객원논설위원 문 대통령은 ‘한반도 운전자론’을 내세우며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를 완화하고 북핵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주요국 정상들의 동조를 이끌어내려고 동분서주하여 왔다. 단일민족통일국가라는 위업을 달성하여 우리민족끼리 잘 살아보겠다는 순수한 열정에서 온갖 수모와 오해를 마다하지 않았던 것 같다.하지만 상이한 이념체제를 가진 나라를 평화적으로 통일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 방법 중 하나가 연방제통일방안이다. 이러한 구상은 김대중 대통령의 지론이었고, 북한의 주장과 궤를 같이했다. 연방제는 양 체제의 과도기적 연결고리다. 남북이 합의한다면 가능하겠지만 최종적으로 어느 체제로 갈 것인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북한은 체제의 전투력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연방제통일방안을 주장했다. 모택동 전술에 능한 북한의 눈엔 느슨한 남한의 적화는 식은 죽 먹기로 보였을 것이다. 인구에서 열세이긴 했지만 사상교육에 철저한 공산체제가 유약한 자유 민주체제를 제압한다고 봤다. 우파가 연방제통일방안을 종북 논리로 몰아붙인 연유다.그 결과는 별론으로 하고, 연방제가 현실적으로 가능하자면 양 체제가 유사할 필요가 있다. 양 체제가 접근해야 한다면 북한체제가 바뀌길 기대하는 것보다 대한민국 체제를 바꾸는 것이 더 수월한 선택이다. 헌법 제4조 위반으로 위헌이긴 하다. 지금 대한민국이 직면하고 있는 전대미문의 혼돈은 그 과정일 수 있다. 그런 다음에 경과적으로 연방제로 가고, 종국적으로 단일민족국가로 통일하는 수순이다. 그렇게 보면 한미일 체제를 깨고나와 북중러 체제에 접근하려는 움직임과 포용경제, 소득주도성장을 위시한 사회주의 정책의 기저에 단일민족국가라는 큰 그림이 깔려있다. 통일만 된다면 자유민주주의가 승리할 것이란 야무진 희망을 꿈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유란 바이러스와 같아서 쉽사리 박멸할 수 없는 측면이 있긴 하다. 그렇지만 불확실한 미래를 입맛대로 재단할 순 없다.북한은 한반도를 적화함으로써 체제경쟁에서 승리하고자 했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며 전쟁 준비에 매진했지만 선전·선동과 교란을 통한 체제 전복도 도모했다. 연방제통일방안도 대한민국을 적화하기 위한 통일전선전술이었다. 김일성과 김정일 시대엔 남북 인구격차가 크지 않았고, 유일지도체제가 굳건했기 때문에 연방제통일방안의 최종승자는 공산체제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김정은 시대를 맞아 북한은 내적 조건이 확 바뀌었다. 주민통제가 느슨해지고 경제격차가 확대되었지만 핵 개발이란 대어를 낚아채었다. 대한민국도 크게 변했다. 자유가 고도로 신장되었고, 경제는 선진국 수준으로 발전하였다. 북한이 평화적으로 적화하기에 부담스러운 환경이다. 북한체제로 통일한다고 하더라도 세습독재체제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어렵게 된 셈이다. 허나 북핵은 모든 변화를 압도했다. 확고한 체제유지는 물론 일약 군사강국으로 올라섰다. 어느 나라도 흔들 수 없는 나라가 되었다. 그렇지만 자유 시장경제체제하의 글로벌 개방국가를 통합한 단일민족국가란 득템이 체제붕괴의 덫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복병일 수 있다. 자연스런 귀결이다. 그런 연유인지 김정은은 우리민족끼리란 통치담론을 국가제일주의로 변경했다. 하나의 조선을 포기한 듯하다. 북한 개정 헌법에 민족성보다 국가성을 강조한 점이 그 증좌다. 홍콩사태에서 드러난 일국양제의 한계도 하나의 조선을 폐기하는데 일조했을 법하다. 남쪽의 좌파에겐 닭 좇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다.상황이 급변하였다면 그 변화에 대응하여 좌파 정권도 지금까지 지향했던 큰 그림을 대폭 수정할 필요가 있다. 북한을 감성적 관점에서 같은 민족의 통일 대상 집단으로 다룰 게 아니라 이웃하는 호전적인 독립국가라는 시각에서 이성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대한민국 헌법 제3조(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와 제4조(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는 논의대상이다. 영토와 통일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 우파와 좌파의 대립을 발본색원하여 엉뚱한 곳에 국력을 낭비하는 일을 없애야 한다. 단일민족통일국가는 시대에 뒤떨어진 그릇된 신화다. 한미동맹이 삐걱거리는 판에 미북의 밀월관계가 심상찮다. 방치하면 재앙이 될 수 있다. 미국이 중국과 수교하면서 대만을 내친 일은 타산지석이다. 명분보다 실리가 우선이다. 알량한 자존심보다 한미일의 신뢰회복이 실리이고 국익이다. 힘이 없으면 자존심도 없다.

9월, 수도권 인구가 절반을 넘는다

9월, 수도권 인구가 절반을 넘는다홍덕률대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세상이 뜨겁다. 연일 핫한 뉴스들이 터져 나와서다. 우선 한반도 주변의 국제정세다. 남북관계, 한·일관계 뿐만이 아니다. 미중, 미일, 북미 등의 관계도 요란하기가 그지없다. 국내 정치 뉴스들도 못지않다. 특히 조국 후보 청문회를 둘러싼 논란은 가관이다. 이성은 실종됐고 선동과 야만이 판친다.문제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데 있다. 한일 갈등과 법무장관 이상으로 중요한 국가 과제들이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청년 취업난은 하나의 예다.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기 위해 교육혁명을 어떻게 설계해야 할지도 매우 중요한 주제다. 하지만 어느 정치인도 정당도 언론도 관심두지 않고 있다.또 하나 있다. 망국적인 지역 불균형이다. 중요한 사건이 지금 이 시각에도 착착 진행되고 있지만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고 있다. 이 달, 9월 중에 수도권 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0%를 넘게 된다는 뉴스다. 지난 7월 현재 우리나라 총인구는 5천170만 9천명이었다. 수도권 인구는 2천584만 4천명, 전체 인구의 49.98%였다. 그간의 수도권 인구 증가 추세를 고려할 때, 9월 중에는 수도권 인구가 절반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다. 통계청의 인구 예측 자료다.전 국토 면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0.6%인 서울에 전체 인구의 20% 가까운 사람이 모여 살고 있다. 서울이 포화되고 나서는 인천과 경기도가 급팽창하기 시작했다. 대구는 오래 전에 3위 자리를 인천에 내줬으며, 지금은 부산마저도 2위 자리를 인천에 뺏기게 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와 있다. 급기야 면적이 11.8%에 불과한 수도권의 인구가 50%를 넘어서게 된 것이다. 정부 정책과 국회의 입법이 수도권의 이해와 압력을 거스르기는 더 어려워질 것이다.극심한 불균형은 이미 치명적인 문제점들을 낳고 있다. 우선 수도권의 초과밀화로 인한 비용증가와 효율성 저하다. 땅값, 집값은 물론이고 임대료와 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다. 서울의 물가지수는 뉴욕과 함께 세계 7위로 보고되고 있다. 극심한 교통난과 환경오염, 공기 질 저하도 피할 수 없다. 수도권 주민들의 삶의 질도 심각하게 추락하게 된다.그와 반대로 비수도권은 공동화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일자리와 사회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하니 청년들의 탈출 행렬은 그치지 않는다. 수도권에 진입하지 못한 청년들은 마치 루저처럼 취급받는다. 비수도권 시군들은 속속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 활력이 떨어지면서 있던 기업도 떠난다. 고약한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든 것이다.아예 ‘소멸’을 걱정하는 지역도 부지기수다.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 폐교는 더이상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대학들의 줄 폐교도 가시권에 들어와 있다. 지난 수년 사이 전국에서 21개 대학이 폐교됐으며, 그중 5개 대학이 대구경북에 위치했던 대학들이었다. 8월 말, 교육부가 발표한 대학 정책을 보면 비수도권 대학들의 폐교는 더 처절하게 진행될 전망이며, 대구경북 대학들도 초비상이다.물론 수도권 인구집중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서울공화국’이란 분노섞인 비판도 오래 되었다. 비수도권은 ‘내부 식민지’고 주민은 ‘이등국민’이라는 자조와 탄식도 귀에 익다. 9월의 인구 역전 역시 예견된 일이었다. 역대 정부들도 당연히 노력을 기울였다. 블랙홀처럼 전국의 인재와 돈과 기업을 빨아들이는 수도권의 흡입력을 저지할 정도로 의지와 정책 수단이 강력하지 못했을 뿐이었다.가장 강력하게 균형발전 정책을 폈던 정부는 참여정부였다. 전국 비수도권 지역에 10개의 혁신도시를 건설해 수도권에 위치해 있던 153개 공공기관을 이전시켰다. 세종시를 행정중심 복합도시로 건설해 중앙정부 부처를 이전시킨 것도 참여정부였다.비수도권에 양질의 일자리가 늘어나면서 수도권 인구의 증가는 잠시 주춤했다. 하지만 그 추세는 계속되지 못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국가균형발전 의지는 턱없이 부족했다. 아쉬운 것은 문재인정부 들어와서도 국가균형발전 의지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국가의 미래 경쟁력을 고민한다면 비수도권의 공동화를 방치해선 안된다. 국토의 효율적 활용과 국민의 삶의 질을 생각한다면 망국병이라고 지탄받는 이 극심한 불균형을 외면해서도 안된다. 수도권 인구가 절반을 넘어서게 되는 비극의 9월, 하지만 누구도 관심갖지 않는 무심한 9월을, 착잡한 마음으로 시작한다.

만나야 할 사람은 언젠가는 만난다

만나야 할 사람은 언젠가는 만난다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 벼가 익어간다. 가을이 다가왔다. 학술대회 장소로 가는 길옆, 들판에는 벼가 누렇게 익어 간다. 올해는 유난히도 추석이 일찍 찾아왔지만, 논밭의 색으로 보니 그래도 올 된 햇곡식과 과일로 차례 상을 차릴 수 있을 것 같아 그나마 다행스럽다.차창을 열고서 천천히 달려보며 가을의 향기를 음미한다. 코에 묻어 드는 바람을 들이키다 하늘을 올려다본다. 기적이라도 울리며 기차가 달려갈 듯한 철길 사이로 풀들이 자라나 있고 그 너머엔 키 큰 해바라기들이 소리 없이 영글고 있다. 지구 반대편에서도 그리움을 간직한 채 늘 고향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반가운 나의 친구처럼.우연한 기회에 단체의 장을 맡게 되었고 그리하여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가게 되었다. 뜻있는 지도자의 제안으로 그곳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고국의 동료들을 찾아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다른 일정으로 참석을 못 하게 되어 아쉬워하다가 마침 잠깐 짬을 내어 얼굴만 보고 일어서라는 총무의 권유에 못 이겨 따라나섰다. 예정에도 없는 일정이라 마음은 불안했지만, 그래도 애초에 거절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생각에 마지못해 승낙한 참이었다.국제회의장 근처의 자그마한 레스토랑, 어두운 불빛 아래서 서로 간단한 소개가 이루어졌다. 언제 한국을 떠나 이곳에 정착하였고 나는 누구이고 무엇을 하는 사람이라는 등, 자유롭게 자기를 알리는 시간이었다. 누가 누군지 모두 기억하지는 못하였지만, 그중에 유독 나와 학번이 같은 이의 목소리가 귀에 박혔다. 기다랗게 앉은 테이블에서 이쪽과 저쪽 대각선으로 얼굴은 볼 수 없지만, 희미하게 들리는 그의 억양이 유난히 친근하게 들렸다. 소개하는 말투도 전형적인 서울 말씨가 아닌 경상도의 높낮이가 살짝 남아 있는 것이 아닌가. 혹시? 하는 생각에 저녁을 하고 일어서면서 그에게 다가갔다. “나는 지방 oo에서 온 누구누구이다. 학번이 나와 같아서 반가워 인사하러 왔다.”라고 했다. 그러자 그가 대뜸 나의 친구 이름을 대면서 아느냐고 묻는 것이 아닌가. 바로 같은 여고를 입학했다. 여고 동창일 수도 있었다니. 같은 학교에 들어갔다가 서울로 이사 가는 바람에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도미하여 미국에서 정착, 지금껏 살았다고 하지 않은가. 그런데도 아직 경상도의 억양이 남아 있다니. 너무나 반가워서 우리 둘은 어깨를 맞대고 끌어안다가 사진을 찍고 연락처를 교환하며 서로 추억을 나누었다. 수십 년도 더 지나서 만난 그와 나, 무엇이 그리도 강하게 우리 둘을 끌어당겼을까. 말의 끝에 남은 억양이었을까. 아니면 고향의 냄새였을까. 동시대를 살았다는 학번이었을까. 우리 둘을 그리도 강하게 끌어당겼을까 강한 자석처럼 말이다.서로 메일을 주고받으며 어제 만난 친구처럼 옛날을 회상하는 친구, 어쩌면 그는 수백만 년 동안 만년설로 얼어있던 거대한 뿌리의 빙하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은 아닐까. 나는 이쪽에서 그는 저쪽에서 떨어져서 같은 물길을 따라 흘러가다가 가끔씩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도 만나지 못하였던. 그러다가 드디어 부딪히고 나서야 알게 된 존재는 아닐까. 고등학교 시절의 영화 이야기도 비슷하다. 영자의 전성시대, 사랑의 계절, 얄개…. 모두 우리의 뇌리에 박혀있는 추억의 그 이름, 고국의 가을을 생각하면 언제나 그립고 그리운 풍경이라던 그. 편지함에서 나의 메일을 발견하고 어떤 표정을 지을까. 친구들아! 명화를 보며 감동하듯이 이 가을 멋지게, 서로 살아가는 모습 가끔씩 보여주고 힐링 좀 하자꾸나.스피커로 흘러나오는 바이올린 협주곡의 선율이 강물 위로 흘러 다닌다. 멋진 멘트가 이어진다. “입김으로 뜨거운 음식을 식힐 수도 있고/ 누군가의 언 손을 녹일 수도 있다/ 눈물 속에 한 사람을 수몰시킬 수도 있고/ 눈물 한 방울이 그를 얼어붙게 할 수도 있다/ 당신은 시계 방향으로/ 나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커피 잔을 젓는다/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우리는 마지막까지 서로를 포기하지 못했다/ 점점, 단단한 눈 뭉치가 되어갔다/ 입김과 눈물로 만든”가을이 내게 속삭인다. 하늘은 파랗고 햇살은 밝아 참으로 좋은 날이다. 이런 가을날, 만나야 할 사람은 언젠가는 만나지 않던가요? 떠내려가는 빙하의 조각처럼?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어느 시인의 시처럼.‘시계탑에 총을 쏘고, 손목시계를 구두 뒤축으로 으깨버린다고 해도 우리는 최초의 입맞춤으로 돌아갈 수 없다.

이웃과 잘 지내는 법

이웃과 잘 지내는 법오철환객원논설위원일본의 백색국가 제외 결정에 대하여 대한민국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을 구사했다. 백색국가 제외로 대응하고, 한술 더 떠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도 파기하였다. ‘너 죽고, 나 죽자’ 식이다. 화끈하고 시원하다. 그렇지만 갈등이 해결될 기미는 없다. 일본도 한심하긴 하지만 남의 나라에 ‘감 놔라 배 놔라’ 할 순 없고,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대한민국의 편에 서서 훈수를 떠보는 일은 의미 없진 않을 것 같다.일본이 백색국가 제외를 결정한 이유로 든 건 화학무기 제조나 핵무기 제조에 쓰일 수 있는 불화수소다. 그 논리는 간단하다. 불화수소를 평소 물량보다 훨씬 더 많이 사갔는데, 그 행방이 묘연하다. 북한으로 넘어갔을 가능성이 있다. 안보상 이유로 전략물자 수출을 심사하겠다. 이건 WTO 위반이 아니다. 견강부회로 명분을 급조한 감은 있지만 논리는 된다. 대한민국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유일하게 일본의 백색국가에 포함되어 있었다. 이젠 믿을 수 없으니 다른 국가와 같이 취급하겠다는 것이다. 막연한 정황만을 트집 잡아 수출할 때마다 일일이 심사해보고 그 허가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말이다.사법적 판단 내지 정치·외교적 사안에 대한 경제제재를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보복으로 보는 입장에선 가히 흥분할 만하다. 글로벌 밸류 체인으로 묶여 복잡하게 뒤엉켜서 돌아가는 자유무역체제하에서 정치·외교적 문제로 경제보복을 감행하는 일은 비열한 짓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그 본심이 무엇이든 간에 외형상 안보불신을 명분으로 경제보복을 당했다면, 그 명분에 대한 성실한 해명이 필요하다. 일본이 의심하는 전략물자 수입 분에 대한 사용실태와 재고를 상세히 알려주고, 그 의심을 해소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 협상의 실마리가 풀린다. 그런 절차도 없이 감정적으로 맞대응한 조치는, 순진한 건지 무능한 건지, 적절하게 대처한 건 아닌 것 같다. 격분한 상태에서 판단하면 반드시 실패한다는 칭기즈칸의 말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은 일본이 선공했기 때문에 보복 차원에서 똑같은 제재를 한 것이 되었다. 일본 주장처럼 WTO 규약 위반일 수 있다. 덫에 걸린 꼴이다. 안보불안으로 인한 제재는 WTO 규약 위반이 아니라는 일본이 뺨을 때리고 싶도록 얄밉긴 하다. 그렇지만 계속 당하고 화만 낼 게 아니라 일본의 영리한 면모도 배워둘 필요도 있다.일본의 경제보복에 대해 ‘죽창 의병’과 ‘이순신의 열두 척’을 거론하며 일제 불매와 반일을 선동하며 국민을 갈라 친 전략은 거의 초등학생 수준이다. 명분으로 내세운 이유를 성실히 해명하고 물밑으로 본심을 공략하는 세련된 대응이 그렇게 어려운 것일까. 일본의 제재는 올 초부터 벌써 예견된 비밀 아닌 비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대책도 없이 손 놓고 있다가 보복을 당하고 나서 허둥거리며 국민의 뒤로 숨는 모습은 정말 무능하고 못났다.국민들이 흥분하여 일제 불매와 반일을 선동하더라도 정부는 냉정하게 대응해야 하는 것이 정석이다. 흥분하면 진다. 낭창하게 대응해야 이긴다. 일본이 수출을 하지 않겠다는 것도 아니고 일일이 심사하겠다는 것이다. 협상과 동시에 관련 기업에게 당장 도움이 필요한 조치를 해주고, 보란 듯이 대일 투자와 협력을 더욱 돈독히 하도록 장려하는 등 통 큰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한수 위의 대응방법이 아닐까. 이런 고수가 상대방을 더 자극할 수 있다. 글로벌 초연결사회에서 소재·부품·장비 등 모든 부문을 국내에서 생산하는 폐쇄적 독립경제체제는 퇴행적 시스템이다. 글로벌 밸류 체인으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국제 분업 생태계에서 수직 계열화를 갖추겠다는 생각은 원시적 사고다. 국가 간 경제전쟁을 불가능하게 하는 묘책은 상호 긴밀히 밀착하는 것일 수 있다. 상호 의존성이 높은 개방경제가 경제전쟁을 원천봉쇄하는 최선책이다.소재·부품·장비 국산화를 지원하는 인위적 전략은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가 마음먹은 대로 다 할 수 있다면 세상에 못사는 나라는 하나도 없을 것이다. 국제 분업은 시장에 맡겨두는 것이 최선이다. 기업이 스스로 알아서 할 일이다. 국가는 인력개발과 기초과학 연구개발에 주력하고 기업은 관련 기술 연구개발에 집중하는 식의 역할분담이 장기적 해법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이웃을 바꿀 수 없다면 서로 돕고 협력할 일이다. 분노는 후회를 낳고, 용서와 배려는 상생으로 이끈다. 이웃과 잘 지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영원히 살 것처럼 꿈을 꾸라’

‘영원히 살 것처럼 꿈을 꾸라’홍덕률대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때는 1963년 8월 28일. 하루가 빠지는 56년 전이었다. 워싱턴의 링컨기념관 근처. 구름도 거의 없는 맑은 하늘이었다. 25만 시민이 모여들었다. 흑인의 ‘일자리와 자유’를 요구하는 집회였다. 대부분이 흑인이었지만 백인도 5만 명은 되어 보였다.20세기를 대표하는 명연설이 등장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 I have a dream.’ 주인공은 마틴 루터 킹 목사였다. 당시 나이 34세. 평화주의자, 흑인 인권운동가로 불꽃같은 삶을 살다 간 젊은 목사였다. 이듬해인 1964년, 35세의 나이에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4년 뒤, 1968년. 인종주의자의 총탄에 세상을 떠났다. 39세의 여전히 젊은 나이였다. 그의 연설 가운데 몇 대목을 가져와 본다.‘나에겐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이 나라가 떨쳐 일어나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진리를 우리 모두가 자명한 진실로 받아들이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나의 네 자식들이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에 따라 평가받는 나라에서 살게 되는 날이 언젠가 오리라는 꿈입니다. 흑인 소년 소녀들이 백인 소년 소녀들과 손을 잡고 형제자매처럼 함께 걸어가는 꿈입니다.’뿌리깊은 인종차별과 계속되는 살해 협박, 테러에 굴하지 않고 그가 품었던 꿈은 미국인의 꿈이 되었고, 그의 연설은 미국인의 양심을 흔들어 깨웠다. 지금도 유색인들은 물론이고 갖가지 형태의 차별과 억압에 신음하는 이들에게 소망과 용기를 심어주고 있다.요즘 힘들어하는 청소년들과 아파하는 청년들의 탄식을 종종 듣곤 한다.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 착잡하고 미안한 생각이 크다. 특히 필자를 아프게 하는 것이 있다. 꿈마저 잃어버린 청소년과 청년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중고등학생들의 경우는 숨막히는 입시체제가 큰 원인일 것이다. 고등학생 대학생의 경우는 청년 취업난이 워낙 심해서일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미래의 불확실성도 한몫 했을 것이다. 아무리 꿈꾸고 노력한다 해도 이룰 수 없는 구조라며 포기한 청년들도 없지 않을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의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호소하고 싶다. 아무리 어렵고 불가능해 보이더라도 꿈만은 내려놓지 말라는 것이다. 꿈은 살아 숨쉬는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지만, 특히 청소년과 청년에게는 생명이자 특권이기도 하다. 유대인의 지혜서인 탈무드는 이렇게 쓰고 있다. ‘승자의 주머니 속에는 꿈이 있고 패자의 주머니 속에는 욕심이 있다.’미국의 유명 앵커 린다 엘러비의 말도 들어본다. ‘죽은 물고기나 물살에 몸을 맡기는 법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목표를 향해 고통에 맞서고 도전하는 용기야말로 생명의 본질이라는 뜻이기도 하다.역시 백인 우월주의와 싸우다 27년을 감옥에 갇혀 지냈던 만델라. 출옥 후 대통령에 당선되고 결국 인종차별 없는 남아프리카화국을 세우고야 만 만델라.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영광은 넘어지지 않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다시 일어서는데 있다.’그렇다. 나는 이 땅의 청소년, 청년들이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꿈꾸고 도전하기를 바란다. 이왕이면 이웃과 세계와 인류를 향해 큰 꿈, 아름다운 꿈을 품고 가꾸기를 희망한다. 자신도 행복할 수 있고 이웃도 복되게 하는 꿈을 찾고 키워가길 바란다.아울러 자신의 능력과 가능성을 과소평가하지 않기를 바란다. 크고 작은 실패 경험 때문에 의기소침하지 않기를 바란다. 오히려 실패를 통해 배운다는 생각으로 의연히 대처해 가기를 바란다. 어떤 상황에서도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기를 기대한다. 칠전팔기의 정신으로 다시 일어서는 청소년, 청년이기를 바란다.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는 이렇게 말했다. ‘미래는 약한 자에게는 불가능이고, 겁 많은 자에게는 미지이며, 용기있는 자에게는 기회이다.’기성세대들도 청소년과 청년이 꿈꾸고 도전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일만큼 소중한 일이 없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다. 넘어져 좌절하고 있는 청소년과 청년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만큼 보람있는 일도 없음을 우리 사회가 깊이 새기기를 희망한다.‘에덴의 동쪽’과 ‘이유없는 반항’이란 영화로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24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영화배우가 있었다. 제임스 딘이다. ‘영원히 살 것처럼 꿈을 꾸고 오늘 죽을 것처럼 살아라.’ 그가 남긴 명언이다. 필자의 좌우명이기도 하다.

벌초하는 날

벌초하는 날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하늘빛이 달라졌다. 가을 색이 묻어난다. 하얀 구름 두둥실 떠 있고 매미 소리마저 잦아들었다. 추석이 다가오고 있다. 산들은 붉은 옷으로 갈아입기 전 마지막 푸르름을 더해 마음껏 자태를 뽐내고 있는 듯하다. 맑고 푸른 하늘 아래 일가친척들이 하나둘씩 모여든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모두가 산소를 돌아본다. 자식 된 도리지 않겠는가.산소가 위치한 산 중턱으로 올라가는 길가에는 알밤이 탐스럽게 영글어 반질반질 익어가고 있다. 인적이 드문 산속이라 떨어져 벌어진 밤송이 사이로 사이좋게 갈색의 밤톨들이 방글방글 웃고 있다. 막내가 손으로 집어 들어 살펴보다가 다시 제 자리에 놓는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그 밤은 우리가 먹을 것이 아니라 산짐승들의 겨울 먹이라는 것이 아닌가. 만약에 우리가 도토리나 알밤을 주워서 가 버리면 그들은 배가 고파 겨울이 되면 근처 마을로 내려올 것이라고. 어느새 어른스러운 말을 하는 아이에게 내심 놀라며 주위를 돌아보니 억새가 자기도 동의한다는 듯 너울너울 팔 흔들며 춤추고 있다.묘소 입구에 들어서니 봉우리 위로 자란 풀들이 삐죽삐죽 솟아올라 키를 넘기고 있다. 팔을 걷어붙이고 벌초를 시작하려 하자 어르신들의 주의사항이 이어진다. 우선 주변을 꼼꼼히 살펴보라고 하시더니 준비해온 벌레 퇴치 스프레이를 신나게 분사하신다. 가을이 되니 독사가 많이 있을 터이고, 벌도 독이 한창 올라 있을 때이니만큼 조심조심 행동해야 한다고 이르신다. 벌초하다 해마다 벌에 쏘이는 일이 발생하였다. 아무리 조심하여도 누군가는 벌레에 물리거나 벌에 쏘여 고생하였다는 후일담을 듣기도 하였다. 특히 풀밭에서 집을 짓고 사는 땅벌이나 말벌은 정말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당부하신다. 벌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집안 아저씨는 벌이 싫어하는 색으로만 골라서 옷을 입고 향수도 뿌리지 않고 단단히 준비해왔다며 자신감을 드러내신다. 풀이 우거져 있는 곳에 뱀이 있을지도 모른다며 등산화까지 신고 오셨다.벌초가 시작되면 연세 지긋하신 어르신은 묘에 자란 풀을 낫으로 베기 시작하신다. 장갑을 끼고서 정성 들여 이발을 시켜드리고 계신다. 따갑게 내리쬐는 가을 햇볕에 연신 땀을 흘리면서도 얼굴에는 행복한 표정이 떠나지를 않는다. 가장 웃어른이다 보니 조상의 머리를 이발시켜드린다고 하시며 조심스레 풀을 자르신다.과거에는 산소에 풀이 많이 자라있는 모습은 창피한 일이었지만, 요즘에는 일가친척들이 멀리 떨어져 있기도 하고 모두 바쁘게 생활하다 보니 산소를 찾아가는 일이 드물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명절 즈음에서야 흩어져 있는 친척들이 날짜를 맞추어 함께 소풍 삼아 가는 날이 되었다. 즐거운 마음으로 음식을 준비하여 산소를 찾아간 것이다. 어르신들이 묘를 정리하는 동안 그 아래 순위 어른들의 몫은 예초기로 잡풀 베기를 담당하기로 하였다. 맨 아래 순위 젊은이들은 나머지 잡다한 일들을 맡아 한다. 만들어 놓은 음식 짐을 옮겨오고 음료수를 가지고 가서 일하시는 어른들의 목을 축여드리고 베어 놓은 풀을 옮기고 뒷정리하는 일들, 집안의 막내들의 몫이다. 벌초하는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다 보니 여기서도 손아래 손윗사람이 구별된다.그 모습을 보니 ‘벌초하는 날’이라는 시가 떠오른다. 이즈음이면 늘 입안에서 맴도는 시인의 시 ‘심술쟁이 가을장마 때문에 잡초가 배꼽까지 자라 있다. 오늘도 울 할배는 자주 찾아뵙지 못한 나의 두 손 꼭 잡아 주시며 반가워하신다/ 예초기로 인적이 드문 길을 터 가며 산소로 올라가 “할배요! 아부지 어무이요! 씨돌이 왔심더” 반백 년 동안 다녀도 언제나 울 할배는 너틀 웃음 지며 왕사탕 한 개씩 주신다/ 코흘리개 시절 해가 노을 속으로 떠난 후 사랑채로 가면 담배쌈지에서 왕사탕 한 개 주신다. 할배 무릎에 앉아 먹다가 잠이 오면 어머니 품으로 돌아가 푸른 꿈을 꾸었고, 새벽이면 술상 차려온 어머니에게 씨돌이부터 찾으시던 울 할배//…중략…//할배요! 씨돌이 왔다 갑니더. 추석 때 오겠심더.’우리와 끈끈한 인연으로 맺어진 분들, 그분들의 봉분 주변에 난 풀을 베어 깔끔하게 정리하는 풍속인 벌초를 금초(禁草)라고 하였다. 아무리 바쁘고 힘들더라도 벌초하는 날만은 우리들의 일가친척들, 조상님들, 후손들이 만나 서로 교감을 잘 나눌 수 있기를. 그리하여 벌초하러 가는 그 길마저 자연과의 행복한 만남이 되기를 기대한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전후 베이비붐 세대 친구 몇 명이 같이 저녁을 먹었다. 자연스럽게 어릴 때와 학창 시절 이야기가 나왔다. 그날 이야기는 우리가 참 복 많고 행복한 세대라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우리는 전쟁을 겪지 않았고 고도성장기에 대학을 다니고 직장생활을 했으며, 처자식을 부양하고 부모를 봉양하고 그런대로 노후 대책도 마련할 수 있었던 운 좋은 세대였다. 1950년대 중후반 세대들의 어린 시절은 춥고 배고프고 때로 막막했다. 그때는 특별한 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사람들의 형편이 비슷했다. 처지가 비슷하다 보니 동병상련하면서 서로 기대고 의지하며 살았다. 극도의 궁핍 속에서도 대부분 가정은 아이들을 상급학교로 진학시켰다. 그 당시 부모들은 자는 아이 머리를 만지며 “열심히 배워서 우리보다는 잘 살아야 한다.”라고 기원했다. 우리 세대는 ‘배는 고팠지만 희망이 있는 시대’를 살았다.오늘의 청소년들은 어떤가. 그들은 “지금 배는 안 고프지만 희망이 없는 세대”라고 말한다. 부모들도 자녀들을 보며 “나보다는 더 잘 살아야 한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네가 나만큼이라도 살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소망한다. 대학에 대한 생각도 많이 달라졌다. 어느 정도 재력이 있다면 명문대는 삶을 향유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렇지 않으면 명문대를 나와도 뾰족한 해결책이 없다고 말한다. 지금은 SKY를 졸업한 사람이 승자가 아니고 결혼할 때 양가로부터 집 한 채를 물려받는 자가 승자라고 말한다. 결혼 당시 최소한 전셋집 정도에서는 출발해야 아이를 낳고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평생 허덕이다 생을 마감할 가능성이 높다. 부모 세대처럼 빈손으로 출발하면 영원히 빈손으로 적자 인생을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한일 무역 문제가 발생하고 나서 어느 명문대 재학생과 이야기를 하다가 “요즘 대학가는 일본의 무역규제 조치에 대해 왜 항의 시위 같은 것을 하지 않는가?”라고 물었다. 답이 충격적이었다. “스펙 쌓고 취직 준비하기 바쁜데 데모할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부모님 세대들은 국가와 민족, 통일 등 굵직한 주제를 두고 열심히 운동을 해도 졸업과 동시에 취직을 할 수 있었잖아요. 우리는 죽도록 공부해도 취직이 안 됩니다. 불매운동이나 촛불집회는 어른들이나 하세요. 내 코가 석자입니다.” 더 할 말이 없었다.수시 상담을 하면서 자기소개서 문구 하나로 고민하는 학생과 학부모를 보면 안쓰럽다. 당사자는 중요하다고 생각하겠지만 비슷한 내용을 수없이 보는 나로서는 거의 차이를 못 느끼고 별다른 감흥이 없다. 지금은 대외 수상이나 논문 같은 것을 기재하지 못하게 되어있지만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특별한 스펙은 학생부 종합전형에서 위력을 발휘했다. 부모의 교육 수준과 재력이 엄청나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딸이 외고 2학년 때 2주 인턴을 한 뒤 의대 연구소 논문의 제1 저자로 등재된 사실이 밝혀졌다. 적법 여부를 떠나 수많은 젊은이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런 특권층이 적법했다고 당당하게 목소리를 높이는 현실 자체가 취업난과 생활고로 허덕이는 그들을 분노케 하고 좌절하게 한다. 외고를 나와 이공계열을 거쳐 의학전문대학에 진학한 뒤 두 번 유급을 했는데도 장학금을 6학기 동안 받았다는 사실과 “유급을 하고는 학업 포기까지 고려할 정도로 낙담한 사정을 감안해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학업에 정진하라는 뜻에서 면학장학금을 지급했다.”는 지도교수의 말은 계층이동의 사다리가 부러졌다고 생각하는 젊은 그들을 허탈하게 한다. 그들은 주먹을 불끈 쥐고 핏발 선 눈으로 냉소와 조롱의 질문을 던진다. 낙제한 학생에게 격려 장학금을 준 교수를 국민의 스승으로 모시고 그의 모든 행적을 까발리자. 돈이 없어 휴학하는 학생에게 포기하지 말라고 장학금 주는 착한 교수는 없나? 실연해서 죽고 싶다는 학생에게도 삶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며 장학금을 주는 기특한 교수는 없나? 가진 자들이 보여주는 행동과 말이 수많은 사람들을 슬프게 하고 있다. 각종 특혜와 불평등을 없애 반칙 없는 세상을 만들자며 촛불을 들도록 부추긴 당신들이 이제 답하라. 우리에게 정말 희망이 있는가? 이게 온전한 나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