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슈퍼전파자는 정부다

슈퍼전파자는 정부다오철환객원논설위원 코로나19가 봇물 터지듯 빠른 속도로 번지고 있다. 세계가 벌집 쑤셔놓은 듯 난리법석인데 충분히 관리가능하고 방역 대응이 안정국면에 들어섰다는 등 현실과 동떨어진 황당한 발언이 화를 키워갔다. 과도한 불안과 공포가 오히려 문제라는 식으로 최근의 공황 상태를 가짜뉴스 탓으로 몰고 가기도 했다. ‘무증상감염’을 거론하고 ‘에어로졸 감염’을 보고하는 등 전문가단체가 높은 감염성을 경고하는데도 정부·여당은 근거 없는 안일한 낙관과 무능한 뒷북 대응으로 일관했다. 국내의료계에서도 ‘인류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질병’이라며 ‘세계 어떤 전문가도 아직 코로나19에 대해 확실하게 알지 못 한다’는 내용의 담화문을 내어놓았으나 정부·여당은 ‘우리 방역당국의 성공적 대응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는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만 하였다. 쇠귀에 경 읽기가 따로 없다. 그러는 동안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펼쳐졌다. 뻑 하면 들먹이던 골든타임을 어이없이 허비했다. 국내의료계는 초기부터 중국 전역으로부터의 입국제한 등 강력한 조치를 요구하였으나 무슨 연유에선지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접근하는 우를 범했다. 초기 대응의 실패가 정치적 목적에서 중국 눈치를 본 때문이라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한 주장이 사실이라면 정략적 이유로 국민의 생명을 내놓았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역사적 단죄가 두렵지 아니한가.코로나19가 우후죽순처럼 창궐하자 한국인에 대해 입국금지조치를 취하는 나라가 늘어나는 등 '한국인 공포증'이 일고 있다. 세계인이 한국인에게 등을 돌리는 분위기다. 입국보류 조치를 취한 나라도 나타나고 일정기간 격리하거나 건강상태를 관찰하는 등 입국절차를 강화한 나라도 속속 이어지고 있다. 향후 입국금지 또는 입국제한 대상으로 지정하는 국가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지금까지 애써 쌓아올린 국가신인도가 한순간에 추락할 걸 생각하면 분통이 터진다. 운항을 중단하는 항공사가 늘고 있고 중국마저 한국인 입국금지 카드를 만지작거린다. 너무 어이없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러시아도 중국인 입국금지조치를 취한 마당에 중국인을 포함한 중국 경유 외국인 전면 입국금지 조치를 지금까지도 취하지 않고 있는 우리정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비등하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사의다. 아직도 만절필동이고 ‘중국의 어려움은 우리의 어려움’인가. 마스크를 사려고 선 긴 줄을 보면서 그래도 중국에 마스크를 무상으로 보내줄 마음이 동하는가,이번 코로나19 사태는 세월호 사건에 비해 당혹감이 들 정도로 허술하다. 세월호 일곱 시간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던 사람들은 우리국민을 지켜주지 않고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일곱 시간을 분단위로 밝히라던 서슬 퍼렀던 기세는 다 어디로 갔는가. 골든타임 여섯 시간을 놓쳤다는 죄목으로 수많은 공직자들을 법정에 세웠던 일, 부다페스트 유람선 침몰 사고 때 골든타임이 훨씬 지난 시점에서 골든타임을 놓치지 말라며 구조대원을 독려하던 일 등이 최근 일처럼 기억에 생생하다. 이번 사태에서도 골든타임을 놓치고 사태를 악화시킨 팩트의 진상을 명백히 밝혀내고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여 책임질 사람이 있다면 일벌백계로 응징하여야 마땅하다. 국민의 불안과 공포가 그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극심하고 정신적 피해와 경제적 손실은 계산할 수 없을 만큼 천문학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사태는 대충 넘어갈 사안이 결코 아니다.이젠 국가를 믿고 안심할 수 없다. 국민이 적극 나서서 살 방법을 찾을 때다. 그렇다고 홀로 개별적으로 해결할 사항은 아니다. 감염된 사람을 색출·격리하여 자신에게 옮지 않도록 조치하는 일도 중요하겠지만 그 보다도 남을 먼저 배려함으로써 감염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일이 바람직하다. 자기가 잠재보균자라는 가정 하에 남에게 전염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철저히 단속하는 자세가 요체다. 내 탓이란 깨어있는 시민의식 말이다. 슈퍼전파자의 신상을 털고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히는 일이 필요하진 않다. 슈퍼전파자도 어찌 보면 피해자다. 신천지교회가 이단인지 아닌지, 그게 주안점이 아니다.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르는 법이다. 현재 공인된 종교들도 초창기엔 이단으로 박해받았던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전염병 창궐은 접어두고 종교문제에 초점을 맞추려는 조짐은 극히 불손하다. 신천지를 희생양 삼아 책임전가를 노린다면 천벌을 받을 일이다. 굳이 그 멍에를 써야할 자를 찾아야 한다면 정부가 다름 아닌 슈퍼전파자다.

세상읽기…‘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까만 밤, 선별진료소 문을 나서 병원 마당에 내려섰다. 달은 보이지 않고 늘어선 방송국 로고가 박힌 차량들 사이로 밤하늘은 어느 새 푸르스름한 빛을 띠고 있다. 밤 촬영에 필요하여 세워둔 것일까. 커다랗고 밝은 조명등 불빛에 비친 나뭇가지에는 어느새 노르스름한 새순들이 돋아있다. 가까이 다가서서 보니 산수유 꽃이다. 어느새 봄은 소리 없이 다가와 살며시 꽃을 피우며 묻고 있다, 건강하시지요? 얼어붙어 걱정으로 가득한 우리 마음을 위로라도 하려는 듯이. 갑자기 불어나기 시작한 코로나19 의심환자들을 우선으로 가리기 위해 선별진료소를 두 곳으로 늘려 24시간 쉼 없이 전 진료과장이 순번제로 가동하는 체제로 돌입하였다. 며칠 사이 너무도 긴급하게 돌아가는 상황이라 입원한 환자들을 급히 다른 곳으로 보내고 병동을 통째로 비워야만 했다. 더러는 집에 가서 조리하면서 지내다가 이런 사태가 마무리되면 다시 오리라 다짐하면서 퇴원하였다. 일시에 병동을 비우고 시설을 재정비하고 환풍구를 막아 격리시설을 갖추느라 전 직원이 동원되어 땀범벅이 되어 응급사태에 대처하기 위한 상황으로 돌아간다. 의료진을 믿고 이제껏 장기 치료받던 환자들은 혹여 퇴원하고 집에서 다시 아프면 어떡하느냐며 걱정한다. 코로나19확진 환자가 입원한 병원에 있었다고 하면 다른 병원에서 받아주기나 하겠느냐며 앞일이 태산이라며 우울해한다. 긴급 상황이 마무리 되면 언제든 다시 찾아오라며 마스크 낀 얼굴로 눈인사를 건네며 전송하였다. 그렇게 보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지만, 정말 가슴 아프다. 차마 끝까지 마주 볼 수가 없어 손을 흔들며 건강 잘 챙기시라 인사하였다. 우리 환자들이 모두 어디에서든지 치료 잘 받고 언제까지나 건강하기를 비는 마음으로 그믐 밤 하늘을 하염없이 올려다본다.세 자리 숫자를 훌쩍 넘긴 접수번호를 받아들고 쓸쓸한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이들, 떨리는 몸에 마음은 얼마나 쑤시고 아릴까. 모르는 사이 확진자와 접촉하게 되어 검사에서 혹시나 양성으로 나오면 어쩌나 하는 마음인지 얼굴엔 수심이 가득하다. 밤이 깊어 갈수록 대기는 차갑게 식어 입김이 하얗게 묻어난다. 우주복처럼 생긴 레벨 D 방호복을 입고 눈에는 고글을 쓰고 마스크를 코가 아프도록 눌러서 끼고서 장갑을 낀 채로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 진료기록을 입력하고 검사 처방을 내기를 반복하다보니 어느 순간 대기 순번을 들고 오는 이의 기록이 아무리 찾아 봐도 전산시스템에는 이름조차 뜨지 않는다. 웬일인가 싶어서 접수에 확인해보니 조회 날짜를 바꾸어야 된다는 것이 아닌가. 쉴 틈 없이 문진하고 처방을 내느라 어느새 날짜 변경선을 넘듯, 시각은 자정을 넘어 새날이 되었던가 보다. 차가운 겨울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따스했던 날들은 세상인심에 저절로 식어 가는가. 다시 얼어붙을 듯한 바람이 불어댄다. 겨울이 다시 찾아올 것처럼. 문을 여닫을 때마다 틈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이 참으로 차갑다. 진료소를 찾은 이들의 안경은 뿌옇게 안개가 낀 듯 눈만 빠끔하게 보인다. 새벽까지 두려운 마음으로 무던히도 기다렸을 가슴 아픈 이들, 얼른 검사받고 괜찮은 결과를 얻어 다시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라며 정성스레 문진한다.이럴 때 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무엇일까. 바로 긍정의 주문이지 않겠는가. 라이온 킹의 그 말. 하쿠나~! 마타타~! “문제없어요, 다 잘 될 거에요.” 이 상황 어쩌겠는가. 내내 걱정하기보다는 우선 급한 일부터 차근차근 처리해가면서 긴박한 위기를 잘 극복하여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하지 않겠는가. 발열체크에서 신호만 울려도 푸드 코트 안으로도 못 들어가고 선별 진료소 가서 확인해오라고 할 정도로 극도의 공포로 얼어붙지 말고 차분하게 대응하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마음을 크게 먹고 건강을 잘 챙기면서 모두가 힘을 합치고 똘똘 뭉쳐서 이 상황을 무사히 넘겨야 한다는 목표, 그리하여 환자들이 원래 자주 가던 병원을 다시 찾게 되어 믿고 의지하던 의료진에게 진료를 받으면 신뢰가 더 깊어지지 않을까 싶다. 우리 모두 서로 힘을 합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면 어려움을 이겨내고 승리의 기쁨을 다함께 맛보는 날이 오지 않겠는가. 가장 기본적인 것이 어쩌면 가장 최선의 예방책일지 모르겠다. 평소에도 손을 자주자주 또 바르게 30초 이상 꼼꼼하게 잘 씻고, 타인을 위해 기침이나 재채기할 때는 꼭 입과 코를 휴지나 옷소매로 가리는 개인위생을 철저히 지킨다면 이까짓 바이러스는 언젠가는 스스로 우리 곁을 떠나게 될 것이니. 두터운 눈밭을 뚫고 화사하게 피어나는 복수초(福壽草)처럼 우리도 서로에게 병이 아닌 복을 주고받는 관계가 되기를 소망한다.

세상읽기…재난의 시간을 견디는 지혜

재난의 시간을 견디는 지혜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코로나19’가 사람들의 생활 패턴에 영향을 주고 있다. 바깥출입이 잦고 외부인을 많이 만나던 사람들도 외출을 자제하고 일찍 귀가한다. 일부 사람들은 평일과 휴일을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종전과는 다른 생활을 하게 된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집에서 TV 보는 시간이 늘어났다고 말하고, 또 일부 사람들은 책 읽는 시간이 많아졌다고도 한다. 각자의 취향에 따라 주어진 시간을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하겠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모처럼 독서를 통해 지적인 희열을 맛보게 되어 좋다고 말한다. 주어진 상황을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따라 인간의 행불행은 결정된다. 밀폐와 폐쇄, 유배와 고립, 권태와 단조로움도 거기에 대응하는 사람에 따라 그 시간의 용도와 가치는 달라진다.페트라르카와 함께 르네상스의 인문주의 토대를 마련한 조반니 보카치오는 속어인 이탈리아어로 쓴 문학 작품을 고대 고전문학의 반열에 들게 한 작가다. 그가 쓴 ‘데카메론’은 1348년 이탈리아를 강타한 페스트가 피렌체까지 이르게 되었을 때 교회 미사에 참석했던 7명의 귀부인이 3명의 신사를 초대하여 전염병이 잠잠해질 때까지 교외의 별장에 은둔하기로 결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10명의 남녀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매일 한 가지씩 10일 동안 순번을 정해놓고 이야기를 지어내 도합 100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를 서로에게 들려준다. 단테의 ‘신곡(神曲)’이 신의 도리를 보여준 작품이라면, ‘데카메론’은 인간의 본능과 악덕, 허위 등을 폭로하는 ‘인곡(人曲)’이라고 일컬어진다. 소설 속 모든 이야기는 자발적인 격리와 단절의 환경 속에서 나왔다.보름 동안 일찍 집에 들어와 책 읽기에 몰두했다는 지인은 이 자발적 단절의 시간 동안 행복한 삶에 대해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어떤 여성분은 KBS 클래식 FM과 몇 권의 책, 간단하게 먹을 것만 있으면 한 달 정도는 외출 없이도 행복하고 만족한 삶을 살 수 있다고 했다. ‘에피큐리언(Epicurean)'이란 용어가 지금은 향락주의자 또는 쾌락주의자의 의미로 쓰이지만 원래는 그 뜻이 아니다. 그 어원이 된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쾌락을 추구하는 철학자였다. 그가 도달한 쾌락의 정점은 만족이라는 이름의 사치였다. 그 사치를 누리는 데는 그렇게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았다. 아담하고 소박한 정원, 거기에 심어진 무화과 몇 그루, 약간의 치즈와 서너 명의 친구로 충분했다. 그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게 사치스럽게 살 수 있었다. “사려 깊고 아름답고 정직하게 살지 않고서 즐겁게 살 수는 없다. 반대로 즐겁게 살지 않으면서 사려 깊고 아름답고 정직하게 살 수는 없다. 사려 깊고 아름답고 정직하게 살기 위한 척도를 가지지 않은 사람은 즐겁게 살 수 없다.” 에피쿠로스의 이 말은 사는 것이 너무 고통스럽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에피쿠로스가 추구한 쾌락은 모든 정신적, 육체적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이었다. 순간적이고 육체적인 쾌락을 추구했던 퀴레네 학파와는 달리 에피쿠로스는 지속적이고 정적인 쾌락을 추구했다.‘아타락시아(ataraxia)’란 ‘마음이 동요되지 않고 평안한 상태’를 말한다.대구에도 코로나 확진자가 계속 나오고 있다. 동선이 공개되고 크고 작은 행사들이 잇달아 취소되고 있다. 보건당국은 개인위생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나와 내 가족이 안전하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현명한 행동 방침에 대한 생각과 함께 이 폐쇄와 고립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 모두는 삶을 마감할 때까지 앞으로도 여러 번 크고 작은 재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모두가 고통스러운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자신의 삶과 생활방식에 대해 다양한 성찰을 하게 된다. 개발독재와 고도 성장기를 거치면서 우리는 너무 외향적이고 떠들썩한 생활에 익숙해져 있다. 이제 내 가정, 가까이 있는 이웃, 친지를 중심으로 소박하게 사는 삶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인 ‘소확행’의 추구와 지적인 삶, 외양의 화려함보다는 내면의 깊이를 탐색해 본다면 이 움츠림과 위축의 시간도 나름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세상읽기…영화 ‘기생충’이 주는 진부한 교훈

영화 ‘기생충’이 주는 진부한 교훈오철환객원논설위원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작품상을 비롯한 4개 부문에서 오스카상을 수상했다. 예술성을 중시하는 칸과 상업성에 민감한 아카데미를 동시에 장악한 쾌거였다. 비영어권에서 영어 더빙도 없이 명품 영화로 평가받았다는 점은 기적이다. 인구 오천 만에 불과한 분단국가에서 영화계를 놀라게 한 일들이 잇따르고 있어 우리 민족의 저력을 새삼 돌아본다. 드라마 ‘대장금’이 해외에게 선풍적 인기몰이를 해서 놀란 일, 드라마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욘사마 열풍을 불러일으킨 일, 박찬욱 감독을 비롯한 몇몇 한국영화인들이 잊을 만하면 유명 영화제 수상소식을 전해온 일 등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한국영화 아카데미 석권의 전주곡쯤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사실과 잘 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는 교훈을 확인해준다.한국적인 것이 경쟁력을 갖는다. 남과 다른 걸 발굴하고 다듬는 것이 세계시장에서 먹혀드는 비결이라는 뜻이다. 비단 자랑스러운 부분에만 한정되진 않는다. 한국적 현상이 부끄러운 치부라 하더라도 숨기는 게 능사는 아니다. 정면으로 맞서서 승부를 걸어야 가능성이 열리는 법이다. 빈부격차, 사교육, 분단과 이념 분쟁 등에 기인하는 한국적 부조리와 모순을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해부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치유하는 첩경이다. 세계인의 공감과 공조를 이끌어 내는 것은 덤이다.우리나라는 유독 예술분야에서 강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음악계는 누구를 먼저 들어야할지 모를 정도로 거장들이 쟁쟁하다. 작곡가 안익태와 윤이상,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와 강동석,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조성진, 첼리스트 장한나, 소프라노 조수미 등 기라성 같은 스타들이 즐비하다. 비단 클래식 분야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세계인에게 ‘말춤’을 추게 했던 ‘강남 스타일’의 싸이, 매순간 새로운 신화를 쓰고 있는 K-팝의 BTS 등 대중음악도 클래식 못지않다. 미술계도 만만찮다. 비디오아트를 창시한 백남준과 모노파의 이론과 실천을 주도한 이우환 등 이름을 다 거명하자면 끝이 없다.우리 민족의 예술본능은 아무래도 내림일 가능성이 크다. 진수의 ‘삼국지위지동이전’이나 김부식의 ‘삼국사기’를 보면 당시 우리 민족의 두드러진 예술본능을 발견할 수 있다. 부여에서 삼한에 이르기까지 어느 지역 가릴 것 없이 ‘가무를 즐겼다’, ‘가무백희’라는 표현이 빠지지 않고 나온다. 예로부터 춤과 노래에 끼가 많았다는 점을 잘 알 수 있다. 예술적 DNA가 끊이지 않고 대대로 전승된 셈이다. ‘흥’이라든가 ‘신명’이 타고난 고유의 정서라는 주장이 빈말은 아니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라는 노래도 그런 범주일 수 있다.우리 핏속에 녹아있는 우리만의 재능을 발굴하고 가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각자의 소질을 개발하는 일이 글로벌 무한경쟁시대에 살아남는 생존전략이다. 이는 누구나 알고 있는 지극히 진부한 상식이다. 그런 이유로 오히려 간과하거나 소홀히 하기 쉽다. 대부분 공부로 승부하려고 버둥거린다. 책만 보면 경기하는 아이에게 공부를 강요한다. 사농공상의 뿌리 깊은 유교적 가치관 때문일 수 있다. 다가오는 미래는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아가는 시대가 아니다. 잘못된 편견이나 선입견은 과감히 청산해야 할 때다. 자식이 행복한 삶을 영위하길 원한다면, 지금이라도 재능에 맞고 선호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목줄을 풀어주어야 한다.이러한 관점에서 ‘개미와 배짱이’ 우화를 현대적으로 리메이크할 필요가 있다. 예전에는 모두 개미처럼 열심히 일해야만 추운 겨울을 날 수 있다고 가르쳤다. 제4차 산업혁명시대에 걸맞게 현대적 버전으로 업그레이드시켜야 한다. 개미와 같이 성실한 품성을 가진 자는 열심히 일 해야 하겠지만 배짱이 같이 노래하는 걸 즐기는 자는 그에 맞는 길로 인도할 필요가 있다. ‘기생충’의 대박이 엉뚱한 곳에서 재능을 썩히는 사람들에게 ‘인생엔 다양한 길이 있다’는 교훈을 주었으면 한다. ‘토끼와 거북이’ 우화도 흘려들어선 안 된다. 거북이가 토끼를 이기는 결말을 알고 있지만 토끼처럼 급히 뛰는 사람이 많다. 급히 뛰면 피로가 쌓이고 피로가 쌓이면 쉬어야 하는 것이 정한 이치다. 급히 뛰면서 자기만은 쉬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인생은 마라톤이다. 감당할 수 있는 체력을 감안하여 완급을 조절하고 쉴 때는 쉬어가는 지혜를 발휘하여야 만족스러운 성과를 낼 수 있다. 봉준호 감독도 단번에 단상에 뛰어올라 대박을 터트린 건 아니다. 봉준호가 여러 곳에서 우후죽순처럼 나오길 바라며.

세상읽기…30초의 손씻기는 건강의 기본

30초의 손 씻기는 건강의 기본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땅속 튤립이 지금쯤 뾰족하게 싹을 내밀고 있을까. 오랜만에 텃밭에 들렀다. 반가운 마음으로 내려 가 보니 하얀 알뿌리들이 싹을 단채 몽땅 다 뽑힌 채 뒹굴며 말라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들짐승이 맛난 먹이로 알았을까. 난장판을 만들어 놓은 보물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봄이 찾아오려나 싶었는데 심술궂은 날이 되어가는 것 같다. 며칠째 잠잠한가 싶더니 의외의 뉴스다. 해외 여행력이 없고 접촉력도 없는 80대 한국인, 동네에서 심장질환이 의심된다는 진료소견을 듣고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았다가 영상 촬영에서 폐렴 소견을 보였다는 환자. 메르스를 경험했던 의료진이 코로나19 바이러스 검사를 시행했더니 양성이었다는 놀라운 소식이다. 해외 여행력이 없고 발열과 호흡기 증상도 없었기 때문에 선별진료소를 거치지 않았고, 심장질환을 검사하기 위해 엑스레이를 찍었고, 판독 결과 폐렴이 확인됐다고 한다. 과거 메르스를 경험했던 의료진은 이를 이상하게 여겨 코로나19 진단검사를 시행했고. 검사 결과가 양성으로 확인되자 병원은 즉각 보건당국에 신고했다. 환자는 현재 국가지정입원치료병상에 격리됐다고 한다. 신규 환자가 발생한 건 2월 10일 이후 거의 일주일 만이다. 치료를 받는 환자 20명은 대체로 상태가 양호하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오전 10시, 오후 5시 신종코로나 환자 현황의 공개 때마다 촉각이 곤두선다. 선별진료소를 운영하는 필자의 병원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예방 수칙을 환자 및 보호자께 방송으로 알리고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정작 정기적인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이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으로 치료를 받지 못해 놓치는 환자들도 늘어간다. 별도의 건물로 세워진 선별진료소가 있다고 해도 혹시 하는 마음에 겁이 나서 내원하지 못하여 자신이 가진 지병 치료에 소홀할까 봐 더 우려된다. 언젠가는 코로나19 감염도 물러가는 날이 오리라 믿어보지만, 중요한 것은 감염원을 특정할 수 없는 환자 상황이다. 지역사회 전파가 확산할까 봐 걱정이다. 지금은 글로벌 사회이다 보니 해외 여행력이 없더라도 확진자와 직접 접촉이 없더라도 어딘가에는 노출되지 않은 감염원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상시 대비 태세를 갖추어야 하리라. 중국 등 코로나 19 유행지역을 다녀온 뒤 14일 이내에는 스스로 알아서 자가 격리하고 그동안에 기침이나 발열이 있으면 선별 진료소를 방문하여 진찰받고 그 외 원인불명의 폐렴이 있을 때는 의사의 소견으로 코로나19감염이 의심되면 상시 검사하여 검역하는 시스템으로 전환하여 늘 철저히 대처하면서 검역하고 건강에 힘써야 마음 편히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검색어 1순위를 놓지 않는 코로나 바이러스를 막는 가장 쉬운 방법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손 씻기다. 모든 것은 손과 입을 통해 전염되고 퍼진다고 보면 된다. 그러니 바이러스에 대한 호흡기 감염을 막는 가장 쉬운 방법은 바로 감염원을 전파하는 손 씻기를 올바르게 자주 철저히 하는 것이다.환자안전을 위한 의료기관인증평가중에서 가장 중요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손 씻기 수행이다. 일 년은 365일이지 않은가, 건강을 위한 손 씻기도 365다. 건강을 위한 3가지 약속인 자주 씻고. 올바르게 씻고, 깨끗하게 씻기는 건강을 지키는 기본이다.또 올바른 손 씻기 6단계는 1단계: 손바닥과 손바닥을 마주 대고 문지르고 2단계: 손가락을 마주 잡고 문지르고 3단계: 손톱과 손바닥을 마주 대고 문지르고 4단계: 엄지손가락을 다른 편 손바닥으로 돌려주면서 문지르고 5단계 :손바닥을 마주 대고 손깍지를 끼고 문지르고 6단계: 손가락을 반대편 손바닥에 놓고 문지르며 손톱 밑을 깨끗하게 씻는 습관이 필요하다.손 씻기는 ‘글리터버그‘라는 손 세정교육기를 활용하면 손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씻었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형광 물질이 든 로션을 손 전체에 바르고 뷰 박스에 손을 비춰본 후 평소대로 손을 씻고 글리터버그에 대보면 손바닥의 주름과 엄지와 검지 사이, 손톱 밑, 손등의 손톱이 붙은 자리에는 형광이 그대로 남아있다. 그것이 바로 세균이라고 여기면 된다. 일단 눈으로 보고 나면 어떻게 씻어야 할지 확실하게 감이 잡힌다. 더 중요한 건 손으로 얼굴을 절대 자주 만지지 않는 것이다. 우린 평균 1시간에 3.6회나 얼굴을 만진다고 한다. 자주 얼굴을 만지면 눈, 코, 입으로 세균이 들어가 감염되기 쉽다. 그러니 손으로 얼굴을 만지지 말고 형광물질이 남김없이 씻겨나갈 때까지 손만 씻어도 감염병의 70%는 예방할 수 있다는 기적, 바로 손 씻기 30초다.

세상읽기…공기나 물과 같은 땅은 없다

공기나 물과 같은 땅은 없다오철환객원논설위원 텔레비전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땅을 공기나 물과 같이 자유롭게 이용하도록 만들겠다는 취지의 자막과 함께 촉촉하게 젖은 내레이션이 들려왔다. 서울대교수와 부동산전문가의 인터뷰도 잇따랐다. 잠시 가슴이 먹먹하긴 했다. 실현가능성을 떠나 휴머니즘 물씬 풍기는 감상적 분위기가 잘 연출되었다. 땅은 생존하기위한 절대적 존재라는 점에서 공기나 물처럼 자유롭게 이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감성을 건드렸다. 치밀하게 기획된 홍보물임에 분명하다. 초등학생 때 생각이 났다.‘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땅의 소유가 정해져 있는 상황이 불합리했다. 동의나 계약한 적도 없었지만 땅은 구획되고 소유되고 있었다. 태어남과 동시에 기본적 생존조건은 공평하게 주어져야 한다. 공기와 물과 땅이 없인 살 수 없다. 땅은 공기나 물과 같이 자연에서 주어진 것으로 어느 정도 변경은 가능하겠지만 노동으로 창조된 것이 아니다. 따라서 땅은 어느 특정 개인이 줄을 긋고 소유할 성질의 재화라 할 수 없다. 먼저 태어난 사람이 차지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힘 센 사람이 빼앗는 것도 아니며 애초 자기 소유도 아닌 만큼 매매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토끼나 멧돼지처럼 발이 가는 대로 가고 머물고 싶은 곳에 머무는 자유가 인간에게도 보장되어야 한다. 땅에서 먹이를 구하고 살아가는 것은 천부적 권리다. 권리 이전의 권리다. 공기와 물과 땅은 태어남과 동시에 의지와 무관하게 조건 없이 주어지는 모든 생명체의 공유물이다.’ 어릴 땐 꽤 그럴듯한 생각이라고 믿었다. 나이가 들면서 그러한 생각이 철없는 공상이란 것을 깨닫고 망각 속에 묻어버렸다. 논리적 사고가 형성되고 세상물정을 알게 되면서 유치한 공상에 결함과 무리가 존재함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인류는 원시시대엔 먹이를 찾아 이동했지만 농경생활을 하면서 살기 적합한 곳에 정착하였다. 정주지역에서 족당과 어울려 생활의 터전을 이루고 살아갔던 까닭에 삶의 근거를 옮기기가 쉽지 않게 되었다. 땅 위에 반영구적인 건물이나 구조물이 생겨났다. 따라서 스스로 동의하지 않는 한, 남의 땅을 무단히 점유하기가 불가능해졌다. 기득의 땅 소유권을 인정하고 그 대가를 치른 다음에야 원하는 땅을 배타적으로 승계하는 방식은 자연스런 역사적 귀결이다. 공기나 물은 이동이 자유롭고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함께 사용해도 좋을 만큼 풍부하다. 희소성이 없어 경제재라기 보단 자유재에 가깝다. 가공된 물은 점차 경제재로 바뀌긴 했지만 비교적 저렴하여 생존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다. 공기도 급속히 오염되고 있어 경제재로 변할 날이 멀지 않다. 반면, 땅은 공기나 물과 비교할 수 없다. 거주 가능한 땅이 한정되어 있는데다 선호하는 땅은 경쟁이 치열하다. 생산이 불가능하여 늘릴 수도 없다. 위치가 고정되어 있어 옮길 수도 없다. 이제 땅은 고유한 특성을 가진 특별한 재화로 독특한 지위를 확고히 하고 있다. 땅이 애초 공기나 물과 같은 생존의 기본조건이라는 측면을 부인하긴 어렵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재화로서의 특성도 유별나다. 땅은 복합적인 중요한 소유대상인 셈이다. 이러한 이유로 땅을 단순히 공기나 물과 같이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해야하는 자연물로 보는 시각은 인간적이긴 하나 엉성하고 유치하다. 땅에 대한 원시적 낭만적 관점은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 결함과 허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접근하기 어려운 전문지식이나 수준 높은 논리적 사고를 요하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공산주의 사상이라는 의심을 살 위험을 무릅쓰고, 잘 꾸미고 포장한 세련된 홍보물을 황금시간대에 방송으로 내보내는 것은 과히 놀랄만하다. 정치적 의도를 가진 기획물이라는 의심을 지을 수 없다. 엘리트들이 종사하고 시청률에 목매는 방송국에서 아무런 생각이나 목적 없이 공연히 논란이 일 영상물을 제작하지 않을뿐더러 광고수입에 의존해야하는 민영방송이 광고와 거리가 먼 기획물을 무단히 자발적으로 만들 것 같지도 않기 때문이다. 결코 우연히 불거진 일이 아니다. 개인 의견이라는 했지만 장관이 토지국유화를 언급한 지난일이 떠올라 더욱 불길하다. ‘함께 잘 사는 사회’를 지향하고 ‘소득주도성장’을 앞세워 공산주의로 간다는 의심이 만연한 상황에서 파급력이 큰 방송에서 대놓고 버젓이 자행한 일이라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표를 계산했을 것이다. 땅 없는 사람들, 현실에 불만을 품은 지식인, 그리고 말만 번지러한 강남좌파를 아우른다면 폭발력이 있다고 예상했음직하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할 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괜찮을까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괜찮을까요?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세계를 불안으로 떨게 한다. 대보름달은 시절에 아랑곳없이 밝고 크게 슈퍼 문이 되어 떴다. 달을 보며 사람들은 어떤 기도를 올릴까. 요즘엔 전화벨만 울려도 가슴이 쿵쾅거린다. 더 나쁜 소식이라도 들려올까 봐서. 선별 진료소 당번을 서다 보니 하루의 시간은 너무도 길게 느껴진다. 중국을 거쳐 왔으면 확인서를 작성해서 오라고 요구하는 회사도 있고 아이들은 열이 조금만 나도 선별 진료소를 찾는다. 보호구를 착용하고 환자를 진찰하는 것은 참 힘들다. 발걸음이 뜸해진 사이 찬바람 속에 나섰다. 중천에 뜬 달님에게 두 손을 모아 본다. 어서 사태가 종식되어 일상으로 돌아가 평화를 얻을 수 있기를.코로나는 왕관(crown)이라는 뜻이다. 코로나바이러스도 왕관 모양의 돌기가 있는 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사람에게 인후염, 위장관 질환에 흔히 발견되던 친숙한 바이러스였던 것이 얼마나 지독한 모습으로 바뀌었을까. 뉴스엔 ‘코로나‘라는 단어가 지배하고 있다. 한 친척은 한잔하시면 늘 자랑삼아 이야기하신다. 장가든 날 코로나 택시를 타 보았다. 60년대 코로나 택시로 나들이를 하였으니 어찌 그 추억을 잊겠는가. 어떤 이는 코로나 맥주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나이 어린 조카가 코로나맥주 캔에 그려진 노랑이를 보고는 디메트로돈 공룡이라며 사달라고 졸라댄 적이 있다. 그때 할 수 없이 박스로 샀던 적도 있으니. 추억이 깃든 코로나가 이젠 잠자리에서도 가위까지 눌리게 한다. 오늘은 또 얼마나 공포에 질린 환자들을 만날까.병원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출입구를 통제하고 면회도 자제해달라는 문구가 대문짝만하게 나붙어 있다. 로비에 들면 직원들이 출입자의 행선지를 일일이 적게 하고 체온을 잰다. 손 소독을 철저히 하고 가라고 당부하니, 몸이 아파서 병원을 내원했지만, 혹시 저 안으로 들어가서 진찰을 받아도 될까 불안하리라. 지난 주말에는 멀리 중동에서 근무하는 아이 아빠가 휴가차 방한했을 때도 인사하겠다며 일부러 병원을 찾아왔던 단골 아이 엄마가 병원 로비에서 한참을 망설였단다. 열이 나서 보채고 아무것도 먹지 못해 축 늘어져 있는 아이를 안고 병원 입구에 서서 보니 정말이지 그 속으로 들어가 진료 받다가 오히려 더 힘든 상황이 되지 않을까 염려되더라고 고백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명쾌한 답이 떠오르지 않아서 친정어머니께 전화해 여쭈었단다. “엄마, 병원 안에 들어가도 되겠어요? 이름도 적으라고 하고, 마스크를 모두 쓰고서 비닐 옷까지 입고 있는데 어쩌지요? 엄마, 저 그냥 집으로 갈까요?” 라고 울먹이는 소리로 전했더니, 어머니가 말하기를 “과장님 안에 계시는데 뭔 걱정이야, 그냥 들어가서 진찰 받아, 내가 바로 갈 테니!” 하셨다며 웃는다. 부리나케 달려온 그녀의 어머니는 ’별일 없으시죠?”라며 나의 안부부터 챙긴다.선별 진료소를 운영하고 있고 환자일 가능성이 높으면 음압 병동에 입원 시켜 상태를 지켜보면서 검사를 한다. 음압 병동은 독립된 건물이라서 통로도 병원과는 완전 별도로 되어있고 음압병실 자체가 주변의 기압보다 낮은 압력을 유지하면서 내부의 공기가 정해진 통로로만 빠져나가도록 시설이 되어 있다. 음압 시설은 내부 압력이 낮으므로 외부로 공기 유출이 되지 않는다. 압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움직이지 않던가. 그러니 외부에서 공기가 들어오려 하지, 절대 안쪽의 오염된 공기가 밖으로 유출되지 않는다. 동력을 이용해 빼내는 공기통로에는 필터를 이용해 바이러스나 세균이 밖으로 나가는 것을 차단하기에 참으로 안전한 시설이 바로 음압 시설이다. 배기구도 따로 분리되어 있는 병실을 음압 시설 병실이라 부른다. 이런 음압시설을 별도로 갖춘 병동을 음압 병동이라고 부른다. 음압 시설은 심각한 호흡기 전염병 환자를 격리·치료할 수 있다. 최근엔 중국을 다녀온 적이 없는 70대 여성 환자가 감염되어 더 걱정스럽다. 중국을 다녀온 아들 며느리와 동거했을 뿐인데 그들은 1차 검사에서 음성이라고 나왔으니, 증상이 없는 무증상 환자가 감염원이 되었는지, 증상도 나타나지 않고 타인에게 감염만 시키고 자신은 그사이 자연 치유되었는지, 방역 당국에서 면밀한 조사를 하고 있다고 하니 결과를 지켜볼 수밖에.바이러스는 건조한 환경에서 증식을 잘한다.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의미로 물을 많이 마시고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 건조한 환경을 피하는 것이 상책일 것 같다.오래지 않아 출시 백 년을 맞이한다는 투명한 병에든 황금빛 찰랑대는 생기 있는 코로나 맥주병을 보면서 ‘그때 그 병이 바로 이것과 같은 이름이었지’ 떠올릴 날을 기다리면서 오늘도 무사하기를 기대해본다.

세상읽기…인류의 재앙과 사랑의 마음

인류의 재앙과 사랑의 마음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미라가 된 형체들 사이를 조심조심 걸어갔다. 검은 피부는 불거진 뼈 위로 팽팽하게 당겨졌고, 두개골이 드러난 얼굴은 갈라지고 쭈그러들었다. 무시무시한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인 것 같았다. 차갑게 굳은 도로에서 영원히 몸부림치는 그 형체들을 지나, 그 적막한 통로로 밀려와 쌓이는 재를 뚫고 그들은 말없이 걸어갔다./저녁에 또 다른 해안도시의 음산한 형체가 나타났다. 희미하게 기운 듯한 느낌을 주는 높은 건물들의 덩어리, 남자는 강철 보강제가 열 때문에 물렁해졌다가 다시 굳으면서 건물들이 현실 같지 않은 모습으로 서 있게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녹아내리다 응고된 유리가 케이크의 아이싱처럼 벽에 매달려 있었다.” 코맥 매카시의 소설 ‘로드(THE ROAD)'에 나오는 두 장면이다. 매카시는 미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로 윌리엄 포크너, 허먼 멜빌,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계승한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소설 ‘로드’는 자연재해, 핵전쟁, 9·11 테러 같은 대재앙 이후의 메마른 잿더미의 세계가 보여주는 음울하고도 암울한 모습을 기묘하게 묘사하고 있다. 비평가들은 ‘로드’만큼 멸망의 날을 강렬하고 절망적으로 표현하면서도 기이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작품은 없다고 말한다. 이 소설은 지옥으로 가는 여정을 담은 또 다른 단테의 ‘신곡’이라고도 말한다. 작가가 그리고 있는 대재앙 이후의 세계는 가슴을 쥐어짜는 슬픔이 가득하고 사람의 피를 얼어붙게 만든다. 그는 희망이 솟아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불태워버린다. 이 소설을 읽으며 독자는 자신과 자신의 자녀들이 겪을지도 모를 미래에 대해 절망적인 탐색을 하면서 묵시록적 두려움과 섬뜩함을 느끼게 된다. 이 책의 이야기는 독자로 하여금 해묵은 질문을 다시 하게 한다. “이 우울하고 음산한 세상에서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지금 지구 상에서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자연재해와 인공적 재앙, 전염병은 우리를 극도로 불안하게 한다. 호주 산불, 전 지구적인 온난화와 해수면 상승, 아프리카 메뚜기 떼의 습격, 중국 후베이성 우한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창궐 등은 매카시가 소설 ‘로드’에서 묘사하고 있는 그 절망적인 장면들을 어쩌면 우리 생애에 경험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백혈병을 앓는 딸의 부모가 후베이성을 봉쇄하는 다리로 와서 딸만이라도 나가게 해 달라고 절규하는 사진, 시신을 넣을 자루가 부족하다는 보도 등은 소설에서 묘사하고 있는 비극적인 상황이 실제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매카시는 소설 ‘로드’에서 독자로 하여금 극도의 공포심을 느끼게 만들면서 빛이 사라지며 죽어가는 세계를 충격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우리는 이 소설을 읽으며 인간의 잘못된 생각과 의식, 행동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재앙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전 세계에 만연해 있는 극우와 극좌의 대립, 우한 폐렴 초기 단계의 언론 통제와 진실 은폐, 권력을 잡기 위해 미래 세대를 희생시키는 포퓰리즘 등도 자연재해 이상의 대재앙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도 과거의 많은 생물종과 마찬가지로 진화의 정점에서 스스로 자초한 대재앙으로 멸종할 수밖에 없는가? 그렇다면 모든 것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가는 데까지 갈 수밖에 없는가?”같은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빈부격차, 극단적인 이념 대결, 핵무장을 포함한 군비 경쟁 등으로 항상 위험을 등에 지고 있는 오늘의 세계가 판단을 잘못할 때는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소설 ‘로드’에 나오는 아버지와 아들 두 등장인물은 인류 전체를 대변한다. 두 인물은 선과 악의 개념조차 사라진 황폐하고 황량한 세계를 떠돈다. 그러나 자연이 인간의 파괴로부터 피난처를 마련해 줄 수 있다는 희망조차 제거된 상황에서도 아버지와 아들은 ‘사랑’이라는 형식을 통해 구원을 제시한다. 그렇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사랑의 마음’이다. 재앙의 현장에 뛰어든 각국 의료진, 자국민을 데려오기 위해 자원해서 비행기에 탑승한 승무원 같은 사람들의 고귀한 희생정신과 사랑의 마음에서 우리는 희망을 발견한다. 용기 있는 사람들의 숭고한 인류애가 인류 구원의 등대라는 사실을 새삼 절감하는 요즘이다.

세상읽기…생문은 항상 눈앞에 존재한다

생문은 항상 눈앞에 존재한다오철환객원논설위원 삼국지연의는 오랜 세월동안 손꼽히는 스테디셀러다. 이를 텍스트로 한 영화나 드라마는 차고 넘친다. 연의의 인기는 좀처럼 숙질 것 같진 않다. 약 1,800년 전, 대략 백 년 동안의 중국 고대사를 토대로 약 500년 전에 정리 된 소설에 지나지 않지만, 연의엔 믿을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캐릭터와 현실에서 일어날 법한 거의 대부분의 인생사가 녹아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보통사람으로 불편 없이 살아가기 위해선 연의에 나오는 일화나 고사성어 정도는 통달해야 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까닭에 설득력 있게 논리를 전개하고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한 방편으로 연의를 인용하는 것이 생뚱맞은 선택은 아닐 것이다.유비가 터를 잡지 못하고 유표에게 의탁하여 형주의 신야성에 있을 때, 원소를 격퇴한 조조가 부하장수 조인에게 정예병 일만 명을 주어 신야성을 치게 한다. 조인은 신야성 앞에서 팔문금쇄진을 펼치고 유비를 압박하였다. 팔문금쇄진은 전설적인 난공불락의 진법이다. 유비는 팔문금쇄진을 몰라 당황할밖에 없다. 다행히 유비는 군사 ‘서서’의 계책을 받아들여 팔문금쇄진을 깨뜨리고 조인의 공격을 물리친다. 난공불락이라던 팔문금쇄진도 사는 길이 있다. 생문으로 들고 경문으로 나며 중앙의 공략보다는 진형을 어그러뜨려 혼란을 일으키는 전술이 요체다. 팔문금쇄진에도 생문이 있듯이 유비에게도 ‘서서’라는 생문이 있었다. 유비의 위대함은 난관에 맞닥뜨렸을 때 생문을 알아보는 안목에 있다.동오의 손권이 형주를 지키던 관우의 목을 잘라 조조에게 보낸다. 유비는 관우의 복수를 하고자 대군을 이끌고 동오를 공격하나 효정전투에서 대패하여 도주한다. 육손은 유비를 뒤쫓다가 제갈량의 팔진도에 걸려든다. 팔진도에도 생문은 있다. 진중에서 방황하던 오군에게 제갈량의 장인인 황승언이 나타나 사는 길로 안내한다. 황승언은 비록 제갈량의 장인이지만 위기에 빠진 동오군의 생명을 구해야 한다는 인도주의 정신에서 사위를 배반하고 육손과 동오군을 살려준다. 제갈량의 팔진도에도 생문이 있고, 위기에 처한 육손에게도 생문이라 할 황승언이 존재한다. 생문을 보고 기꺼이 따르는 육손의 지혜가 돋보인다.생문은 반드시 살아나온 경우에만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유비는 제갈량의 반대를 무릅쓰고 관우의 복수를 명분으로 동오를 공격한다. 연의의 3대 대전의 하나로 불리는 이릉대전이 그것이다. 유비는 초장의 작은 전투에서 연전연승하지만 효정산에서 결정적으로 대패한다. 유비는 천하통일의 대업을 완수하지 못하고 백제성에서 사망했다. 유비는 이릉대전의 무모함을 진언한 제갈량이란 생문을 보지 못하고 사문으로 들어가 죽었다. 화공 가능성을 이유로 산중의 나무 아래 진을 쳐서는 안 된다는 책사의 진언이 있었으나 유비는 듣지 않고 고집을 부렸다. 비록 보지 못할 뿐이지만 실패한 경우에도 생문은 항상 주위에 있다. 유비 사후, 제갈량은 여섯 차례 북벌을 단행한다. 그 중 첫 번째 북벌이 가장 아쉽고 안타깝다. 마속이 산 위에 진을 치지 않고 왕평의 말대로 길목에 진을 쳤다면 가정전투에서 대승하고 그 여세를 몰아 낙양을 정벌했을 가능성이 크다. 왕평이란 생문이 엄연히 눈앞에 있었지만 마속은 결코 보지 못했다. 이릉대전의 패배와 북벌의 실패는 촉한을 멸망으로 이끈 사문이다. 생문은 항상 코앞에서 손짓하지만 아둔한 리더는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사문으로 들어가는 법이다.연의의 교훈에도 불구하고 우리 역사에서도 생문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신라 하대의 혼란기에 최치원의 시무책이란 개혁적인 생문이 나오고, 최치원과 최승우 그리고 최언위 등 6두품 인재들이 생문으로 인도하려하지만 리더의 무능으로 사문으로 들고 만다. 고려 말엽이나 조선 말엽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왕의 주변에 생문으로 인도할 개혁적 인재들이 손을 내밀지만 기득권에 취해 사는 길을 외면한다. 생문을 도외시한 나라는 모두 역사의 장에서 사라졌다.지금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나라는 내우외환으로 전례 없는 위기를 맞고 있다. 정치권은 보수와 진보로 갈려 사사건건 딴지를 걸고 싸운다. 법과 원칙은 없고 편법과 변칙만 난무한다. 대화와 타협은 사라지고 비난과 고집만 횡행한다. 국민은 없고 패거리와 진영만 판친다. 사문 주위는 시끌벅적하고 생문 주변은 썰렁하다. 전형적 망조다. 그래도 아직은 늦지 않다. 사문으로 들기 전에 생문을 찾아야 한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할 뿐 생문은 여전히 눈앞에 있다. 예전에도 항상 그러했듯이. 살 길은 총선에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우한 폐렴)에 대처하는 법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우한 폐렴)에 대처하는 법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 설이 지나니 나뭇가지 끝에 봄물이 묻어날 것만 같다. 대지엔 따스한 기운이 감돌고 있는데 들려오는 소식은 우리를 얼어붙게 한다. 중국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이 무서운 기세로 퍼지고 있다.학교에 간 막내가 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2주 이내 중국을 다녀왔던 사람은 병원에서 무증상이라는 확인을 해 보고 와야 한다는 것이 아닌가. 친구들도 의심의 눈초리로 보고 있어서 학교에 있기가 곤란하다고 하였다. 연초에 상해 공항을 경유하여 싱가포르를 다녀온 것뿐이었는데, 공포를 해소하기 위해 병원에 오라고 하여 진찰을 하고 발열 체크를 하여 상태를 확인한 후에 돌려보내며 웃음이 났다.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아이들도 어른도 모두 다 중국에서 발생한 우한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너도, 나도 빠져들어 가게 되어 버린걸.“신종 코로나는 악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주 자국을 방문한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을 만난 자리에서 한 말이다. 그러면서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인 ‘우한 폐렴’과의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고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이 전 세계를 공포에 빠져들게 한다. 우리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모든 사람이 전염병을 막는데 투사가 되어 잘 막아나가야 할 때이다.코로나바이러스는 일반적으로 가벼운 감기 증상을 일으키던 병원성이 약한 바이러스로 사망률도 낮았다. 감기 환자들에게 흔히 발견되던 것이었으니까. 대신 이것은 변이도 잘 되어 새로운 환경에서 잘 적응해서 살아남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그런 변이형으로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전염력과 사망률이 높은 편이다. 초기에 중증 폐렴으로 이행하고 악화가 급속하게 빨라져서 사망하게 된다.바이러스의 잠복기는 대개 2~3일에서 2주 정도다. 이때는 대부분 증상과 감염성이 드물다. 그러다가 증식기에 접어들면 분비물은 역가가 높아져 감염성을 띠고 차츰 증상이 발현한다. 열이 나고 인후두통이 있고 몸이 나른해진다. 증상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 무증상 감염 가능성도 있다는 보고도 있어 사람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잠복기 감염이나 무증상자의 감염 가능성에 대해서는 조심해야 할 대목이다. 듣던 중 다행인 것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진단이 빨라진다는 소식이다. 6시간이면 판정 가능하다고 하니 얼마나 다행인가. 사뭇 기대된다.우리나라에서도 3차 감염자의 보고가 되어 걱정스럽지만, 우리가 일반적인 건강 수칙을 철저히 지킨다면 그래도 지역사회 감염은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지 않겠는가. 누군가가 예방법을 기억하기 좋게 만들어 보내주었다. 항상 기억하라는 뜻으로.Remember W-U-H-A-N( 우한을 기억하자)W-wash hands (손을 잘 씻는다)U-use mask properly (마스크를 바르게 착용한다)H-have temperature checked regularly ( 체온을 정기적으로 자주 체크한다)A-avoid large crowds ( 사람이 많이 모인 곳에는 가지 않는다)N-never touch your face with unclean hands( 깨끗하지 않은 손으로 얼굴을 만지지 말 것)가장 효율적이며 가장 좋은 방법은 열나는 사람, 호흡기 증상이 있는 사람과 밀접한 접촉을 피하고 사람 많이 모인 곳에는 되도록 가지 않고 무조건 손을 깨끗이 흐르는 물에 비누로 30초 이상 잘 씻는 것이다. 마스크를 꼭 쓰는 것이 좋다. 마스크 착용 시 주의할 점은 얼굴에 잘 밀착해서 사용해야 한다. 일반 마스크는 쓰지 않는 것보단 낫지만 보건용 마스크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식약처 허가받은 보건용 마스크 등급으로는 KF80: 입자성 유해물질(황사 미세먼지)로부터 호흡기를 보호한다. 평균 0.6um 입자 80% 이상 차단/KF94, KF99 : 입자성 유해물질과 감염원으로부터 호흡기 보호한다. 그러므로 마스크는 가능하면 KF94/ 99 필터가 장착된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을 권한다. 기침할 때에는 휴지를 대거나 소매 안쪽에 하고 기침 시 침이나 가래가 튀었을 경우를 대비해서 기침 후 반드시 손을 꼼꼼하게 씻어야 한다. 그래야 나의 위생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건강도 지켜서 우리 사회의 전염병에 대한 전파를 조금이나마 예방할 수 있다.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에 대해서 무조건 불안해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차분하게 감염병의 발생 추이를 잘 지켜보면서 나의 정신 건강과 면역체계를 위해 노력하면서 차분하게 대응해 나갈 필요가 있다. 기본에 충실하면 언젠가는 바이러스가 사멸하고 우리가 승리하여 활개 치며 살아갈 날, 본립도생(本立道生), 살길이 생기지 않겠는가.

공산주의는 시대착오적이다

공산주의는 시대착오적이다오철환객원논설위원 ‘로빈 후드’는 인기 캐릭터다. 사회부조리가 만연한 사회에 콜라 같은 시원한 직설법을 들이대는 까닭이다. ‘로빈 후드’는 영화로 여러 번 만들어졌고 그때마다 호의적 반응을 이끌어냈다. ‘뻔한 이야기’에 대해 무엇 때문에 사람들은 번번이 관심을 보이는 것일까. 탐관오리나 부자들을 무단히 죽이거나 혼내주고 그 재물을 강탈하여 가난한 사람들에게, 착하거나 말거나 전혀 따지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나누어주는 착한 이야기(?)에 모두 거부감 없이 박수를 보낸다. 대리만족일 수 있다. 돈을 벌기 위해 힘들게 일하는 상황에서 가진 자들의 재물을 빼앗아 서민들에게 거저 나누어주는 ‘로빈 후드’를 싫어할 이유가 없긴 하다. 그래서인지 ‘로빈 후드’는 비단 영국만의 고유한 캐릭터는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일지매가 있고 홍길동이 있다. 고위관료의 집을 털어 ‘물방울 다이야’를 훔친 도둑도, 단지 부잣집만 털었다는 이유만으로, 대도라 불리며 국민적 인기를 누렸다.‘로빈 후드 신드롬’은 의외로 그 뿌리가 멀고 깊다. ‘로빈 후드’의 기원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면 원시공산사회와 만난다. 원시사회는 혈연을 기반으로 토지 등의 기본적 천연자원을 공유하고 먹거리를 같이 나누어 먹으며 빈부격차나 타고난 지위 또는 권위적 지배가 존재하지 않는 평등한 사회였다. 능력 있는 일원은 사냥을 잘하고 다른 씨족의 재물을 많이 빼앗아 왔지만 무능하거나 병약한 탓으로 놀고먹는 구성원도 많았다. 하지만 씨족 내 분배는 무차별적으로 공평했다. 핏줄로 맺어진 운명공동체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씨족구성원의 연대는 본능이었고, 비록 씨족구성원에 한정되긴 했지만, 이타주의가 공동선이었다. 연대감과 이타주의에 터 잡은 질서는 원시공산사회를 지탱한 기둥이었다.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원시공산사회를 치밀하게 재가공하여 현학적으로 리메이크하였다. 소련과 동유럽국가들은 공산주의를 현실에 적용해보았으나 하이에크의 ‘치명적 자만’ 등으로 인해 모두 실패하였다. 그 과정을 생생하게 지켜본 사람들이 지금 다시 공산주의 깃발을 들고 추종자를 모으고 있는 우리 현실은 정말 이해할 수 없다. 그 깃발 아래 모인 많은 사람들이 철 지난 이념과 빛바랜 철학을 실천하고자 기를 쓰는 상황은 거의 불가사의다.연대성과 이타주의가 적용될 수 없고 협동과 분업으로 짜여있는 거대한 글로벌 사회에서 씨족사회에서나 가능했던 폐기된 이념을 이 땅에서 다시 실험하려는 정치적 시도는 매우 위험하다. ‘함께 잘사는 사회’를 향한 선의는 비록 인정하지만 기본가정과 환경이 맞지 않아 폭망한 실험을 왜 다시 꺼집어 낸 것인지 모를 일이다. 이는 기름을 지고 불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진배없다. 선의라 하여 정의를 담보해주지도 않고 악한 결과를 사면해주지도 못한다. 포퓰리즘으로 인한 일시적 지지여론이 폭망 정책을 정당화시켜주지도 못할 뿐더러 그 역사적 책임을 면탈시켜주지도 않는다. 사심 없고 대의에 충실하다고 하더라도 나라와 국민의 명운을 고려한다면 주류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시장시스템보다 정부시스템이 더 많은 정보를 포괄할 수 있다는 치명적 자만은 ‘빅 데이터’와 AI 및 IoT 등을 장착한 제4차 산업혁명시대에도 말 그대로 오만일 뿐이다.오랜 세월 원시사회에서 생활해 온 인간은 본능적으로 공산주의와 친숙한 셈이다. 지금까지도 우리는 가족이란 공산사회에 몸담고 있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소비하는 사회’, ‘함께 잘사는 정의사회’ 등의 이상향에 혹하는 지식인이 아직도 주위에 많은 이유다. 수많은 불특정 다수인과 협동·분업으로 연결된 거대한 지구촌에서 씨족사회에서나 가능했던 공산주의를 현실에서 구현하고자 악을 쓰는 무리가 준동하고 있다. 우리사회에 구름 잡는 정책을 실험 중이다. 이러한 책동을 막지 못한다면 폭망의 나락으로 추락할 뿐이다. 그 돌파구를 찾는 일이 화급하다.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선거를 통한 심판이다. 이번 선거로 민심이 무엇인지 확실히 보여주어야 한다.과학의 힘으로 치명적 오만을 극복해서 완벽한 계획과 효율적 통제가 가능하게 된다하더라도 공산주의는 여전히 시대착오적이다. 공산주의는 그 시스템의 성격상 현실 정치에선 전체주의로 흐르기 마련이다. 1인 1표로 평등한 주권을 행사하는 민주주의와 이른바 ‘빅 브라더’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전체주의는 결코 양립할 수 없다. 민주주의와 전체주의는 논리적 모순이다. 민주주의가 옳다면 공산주의는 자동적으로 버리는 카드가 된다.

그래도 밭은 갈아야 한다

그래도 밭은 갈아야 한다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프랑스의 계몽 사상가 볼테르는 1775년 2만여 명이 사망한 리스본 대지진을 보고 유명한 소설 ‘캉디드’ 집필을 결심했다고 한다. 신이 이 세상을 창조했다면 세계는 아름답고 조화로워야 하며, 예고 없는 재난도 없어야 한다. 그러나 참혹한 지진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그 아수라장의 와중에서도 교회는 종교 재판을 통해 사람을 화형에 처하는 악행을 저질렀다. “만일 이러한 세상이 선하고 자비로우신 신의 섭리에 의해서 만들어진 최선의 세상이라면, 도대체 무자비한 신이 만든 세상이란 어떻게 생겨먹은 세상일 것인가”라고 볼테르는 절규했다. 그는 이 소설을 통해 당시의 모순된 사회와 정치, 부패한 성직자들, 대중의 어리석음 등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종교와 정치의 공리공론 때문에 신음하는 일반인들의 분노를 표현하며 평생을 인간의 편협성과 광신에 맞서 싸웠다.소설 속 주인공 캉디드는 걱정 없이 살던 성에서 난데없이 쫓겨나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갖가지 최악의 상황과 수많은 재난, 부조리를 경험한다. 소설 속 대사는 오늘의 시점에서도 우리에게 생생한 현실로 다가온다. 그는 등장인물로 하여금 “신이 이 세상을 무슨 목적으로 만들었을까요?”라고 질문하고는 “우리의 화를 돋우기 위해서죠”라고 답하게 한다. “선생, 당신은 물론 자연적인 면이나 도덕적인 면에 있어 이 세상이 최선이며 다른 세상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시죠?”라는 질문을 던져 놓고는 “아니.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자기 위치를 모르고 책임도 모르며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항상 무리한 언쟁만 일삼고 있습니다.”라고 답하기도 한다.볼테르가 ‘캉디드’에서 표현한 내용 중 상당 부분은 오늘 우리 사회에서 그대로 재현되는 느낌을 받는다. 극단적인 진보와 보수는 종교재판과 화형을 일삼던 시대의 타락한 성직자와 폭도들 같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자기 성찰과 반성이 없기 때문에 잘못된 신념을 종교의 교리처럼 신봉한다. 그들은 파당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반대편 사람들에게는 종교재판과 화형, 인신 번제에 가까운 방법까지도 적용하고 싶어 한다. 이런 곳에서는 건강한 논리와 비판적 이성은 설 자리가 없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양식과 상식을 가진 사람들이 이런 사람들에 의해 무시되거나 침묵을 강요당하고 있다. 여기에는 건강한 담론과 토론도 없다. 지금 우리 사회는 빨간 사과를 두고 내가 지지하는 편의 누군가가 검은색이라고 선창하면 나머지 사람들은 불문곡직하고 검다고 말한다. 그 안에서 바른말을 하면 집단 린치나 따돌림을 받아 그 무리들 속에 계속해서 머무를 수가 없다. 어디엔가 속해 같은 구호를 외쳐야 불안하지 않는 무비판적인 사람들이 광장과 거리를 점령하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젯거리다. 이들보다 더 나쁘고 악랄한 사람은 누구인가. 잘못인 줄 알면서도 같은 패거리의 기득권과 이익을 지키기 위해 입을 다물고 있거나, 대중들을 선동하여 잘못된 구호를 계속 외치도록 부추기는 사람들이다.어지러운 시국과 관계없이 국민은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고달프다. 볼테르는 소설에서 검둥이 해적들한테 일백 번 겁탈당하는 것, 엉덩이 한쪽이 잘리는 것, 화형식에서 죽도록 매 맞은 다음 교수형 당하는 것, 교수형 당한 후 다시 해부당하는 것, 갤리선에서 노를 젓는 것 등 우리가 지금까지 겪은 일들 중에 가장 나쁜 것은 무엇인가를 묻고는 “추론은 그만두고 일합시다. 일하는 것만이 삶을 견딜만하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인 것 같습니다.”라고 말한다. 인간은 걱정 속에서 허우적거리거나, 권태에 빠질 수밖에 없도록 생겨먹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볼테르는 일은 권태, 방탕, 궁핍이라는 3대 악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준다고 말한다. 그는 “그래도 우리는 밭을 갈아야 한다.”는 말로 소설을 끝맺고 있다.설 연휴가 시작된다. 낙관과 비관이 극단적으로 공존하는 이 혼란의 시대에 말없이 일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마음의 위안과 따뜻한 인정을 듬뿍 느끼는 시간을 가시길 기원한다.

자국제일주의의 역설

자국제일주의의 역설오철환 객원논설위원 인간은 이기적 존재다. 자신의 이익총화를 최대로 하고자 머리를 굴린다. 상대방을 얼루기도 하고 속이기도 한다. 이해관계와 갈등의 조정을 통해 서로의 이기심을 충족시키고자 시도한다. 그 과정에서 서로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쓰게 마련이다. 속내를 먼저 드러내는 쪽이 불리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억지로 속내를 강제하지는 않는다. 숨은 의도를 까발려봐야 신뢰만 깨질 뿐이다. 타인의 속내는 추정이고 추론이다. 속내를 드러내는 경우는 그게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이거나 ‘인내 부족’일 가능성이 크다. 때론 말이 속내를 숨기기 위한 가면으로 기능한다. 그 말 뒤에 어떤 의도가 숨어있던 드러난 부분만 인정하고 책임진다. 드러나지 않으면 그만이다. 내심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이기심의 자연스런 발로다. 추한 부분은 덮어두는 것이 현명하다. 비밀스런 공간을 남겨두는 것이 아름답다. 홀랑 까발리지 않는 것이 이기심을 충족시키는 길이다. ‘까놓고 해보자’거나 ‘빨가벗자’는 말은 상대방 속내를 몰라 답답하다는 뜻이다. 유치하거나 성마른 성격 탓이다. 내심을 굳이 표현해야 한다면 타이밍을 봐야 한다. 물론 마지막까지 버티는 전략이 바람직할 터다. 자기의 이익극대화를 이마에 붙이고 거래하고자 흥정하는 사람은 덜 떨어진 바보다. 이기심을 본능으로 받아들이더라도 상호 양보하는 전략이 파이 총량과 서로의 몫을 키우는 윈윈전략이다. 이기심 논리는 그 범위를 국가로 확장해도 국가 최소 구성원이 인간이기 때문에 크게 다르지 않다. 자국제일주의 기치를 명시적으로 내걸고 자국의 최대이익을 추구한다고 큰소리치는 지도자는 철부지라는 결론이다. 대놓고 자국 이익만 추구하는 보호무역은 무역장벽을 높이는 유인으로 작용하여 종국적으로 자국 이익을 향상시키지 못한다. 명시적 자국제일주의는 부메랑이다. 자유무역이 모든 나라의 이득을 극대화한다는 사실은 이제 더 이상 새롭지 않다. 제국주의와 같은 패권주의 정책은 파국을 초래한다는 점을 값비싼 경험으로 체득하였다. 협력과 교류가 파이를 키우고, 자유와 경쟁이 각자의 몫을 늘인다. 언뜻 보아 손해 보는 일처럼 보이는 것들이 세계경제의 성장과 발전을 이끌어 궁극적으로 자국제일주의를 충족시켜준다. 패러독스라 일컫기도 이젠 고루하다. 인간이 이기적이라는 명제가 참이라면 자국제일주의는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국제일주의를 무슨 고유한 특허인양 목소리를 높이는 작금의 작태를 보노라면, 아무리 유행이라지만, 기가 차서 말문이 막힌다. 중국의 시진핑은 ‘분발작위’를 내세워 ‘대국굴기’하자고 한다. 덩샤오핑 이래로 ‘도광양회’ 전략을 채택해왔으나 개혁·개방 정책의 조그만 성공에 힘입어 자신감을 얻었던 모양인지 만천하에 그 본색을 드러내었다. 종래의 내실 전략을 버리고 확장 전략으로 변경하였다. 도광양회는 ‘힘을 기를 때까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실력을 쌓는다.’는 전략이다. ‘도광(韬光)’은 ‘빛을 감춘다.’는 뜻이고, ‘양회(养晦)’는 ‘어둠 속에서 때를 기다린다.’는 의미다. ‘분발작위 대국굴기’는 ‘때가 되었으니 정체를 드러내고 크게 일어난다.’는 말이다. 분발작위(奮發作爲)는 ‘떨쳐 일어나 할 일을 한다.’란 뜻이고, 대국굴기(大國崛起)는 ‘대국이 일어난다.’란 의미다. 국제사회에서 숨거나 양보하지 않고 당당하게 할 말을 하겠다는 것으로 자국제일주의에 다름 아니다. 미국의 트럼프는 자타가 공인하는 자국제일주의의 대표 격이다. 트럼프는 어린애처럼 오직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며 우방을 겁박하고 있다. 돌고 돌아서 새끼가 새끼를 치는, 어마어마한 우회적 간접 이득은 못 보는 것인지, 일부러 안보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생각할 여지도 없이 단순명쾌한 점이 장점이라면 할 말은 없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대외적으로 자국의 국익을 최우선시하는 태도로 일관해온 러시아의 차르, 푸틴도 대국주의를 앞세운 겉똑똑이다. 평화헌법을 고쳐 전쟁 수행이 가능한 강력한 국가를 만들려고 이웃나라들을 불편하게 하는 일본의 군국주의자, 아베도 자국제일주의의 노예이긴 마찬가지다. 영국의 강경우파 존슨은 자국만 살자고 브렉시트를 밀어붙이고 있다. 그게 이득이 될 지는 부정적이다. 필리핀의 못 말리는 럭비공, 두테르테도 무늬만 자국제일주의다. 모두 대세를 거스른 반동으로 평가될 가능성이 크다. 철 지난 종족주의나 국가주의 함정에 빠진 철부지일 뿐 세련된 지도자라 하기엔 유치찬란하다. 하긴 뭐가 뭔지 모르고 봉 노릇하는 사람보다야 낫긴 하다.

삶의 승자와 패자

삶의 승자와 패자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며칠 있으면 설이다. 해가 바뀌고 부산하게 지내느라 아직 연하장도 미처 보내지 못한 이도 있다. 숙제를 덜 한 학생처럼 찜찜한 마음이었는데 다시 음력으로 새해가 시작된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새해 소망을 다시 천천히 되새겨 적어본다. 올 한해엔 오기(五棄)로 살아가리라. 이를 악물고 힘내자는 오기가 아니라 행복한 삶을 위한 다섯가지만이라도 버리고 살아보리라 마음을 먹어 본다. 그중에 첫째는 바로 ‘욕심’ 버리기다. 너무 욕심을 내어 내가 갖고 싶은 걸 갖고자 하다 보면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지 못하고 불만이 쌓이지 않겠는가. 그러니 나는 남이 가지지 못하는 것을 가졌다고 생각하며 가진 것에 감사하고 살아보리라. 두 번째는 ‘고집’ 버리기, 내가 틀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다른 이 의견도 정답이 될 수 있다고 인정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고집부리지 않고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고 수용하려 노력하다 보면 고집을 버리고 오히려 배움을 얻을 수 있지 않겠는가. 셋째로는 ‘미루기’를 버리는 일이다. 오늘 할 일, 지금 할 일을 바로 해야 현재를 살아가지 않겠는가. 그러니 해야 할 때 바로 해버리는 것이 어쩌면 삶을 여유 있게 일을 즐기며 할 수 있는 방책이 아닐까. 컨디션이 좋을 때 최대한 시간을 잘 활용하고 그러다 보면 할 수 있는 한 빨리 일을 완료하지 않겠는가. 네 번째로는 ‘화’ 버리기이다. 분노하고 원망하며 화를 내다보면 결국 그것이 우리의 내면을 잠식할 뿐이다. 무엇이 나를 화나게 하는지 명심하면서 스스로 자신을 다스리다 보면 내게 잘못한 사람들과도 평화롭게 지낼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게 화를 줄이려 노력하는 것이 나의 고통을 줄이는 최선책일 것일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나’를 버리기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요행을 바라는 마음이나 상대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나면 진정한 마음의 평화를 얻어 행복에 이르지 않으랴 싶다. 언젠가 여행지에서 받은 기념 책자 속 글귀가 힘든 마음에 늘 큰 희망을 선사한다.‘승자는 당신 같은 사람입니다. 승자는 모험 할 기회를 잡습니다. 다른 모든 사람처럼 실패를 두려워하지만 두려움이 자신을 통제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승자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삶이 험난할 때, 그들은 상황이 나아질 때까지 버티며 견딥니다. 승자는 유연하게 대처합니다. 그들은 하나 이상의 방법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다른 방법을 시도할 용의가 있지요. 승자는 자신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그들은 자신의 장점을 더 많이 만들면서 자신의 약점을 존중합니다. 승자는 넘어지지만, 그 자리에 엎드려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입니다. 승자는 모든 면에서 선한 면을 보는 긍정적인 사상가들입니다. 일상적인 것에서, 그들은 특별함을 만들어 냅니다. 승자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이 선택한 길을 믿습니다. 심지어 다른 사람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조차 볼 수 없을 때도 말입니다. 승자는 인내심이 강합니다. 그들은 목표란 것이 그것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노력만큼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압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 줍니다. 승자는 당신 같은 사람들입니다.’ 인생에는 승자와 패자가 있다고 하지 않은가. 그 구별은 간단할 수도 있다. 승자는 인생의 전체를 보면서 살지만, 패자는 인생의 한 부분만을 보면서 산다던가. 승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성공까지 바라보지만 패자는 눈에 보이는 것만 보고 또 승자는 다른 사람에게 베풀면서 성공을 꿈꾸지만, 패자는 자신의 배만 불리려 성공을 기다린다고 하지 않은가.디아스 포라 유대 경전에 ‘승자는 땀을 믿고 패자는 요행을 믿는다. 승자는 일곱 번 쓰러져도 여덟 번째 일어서고 패자는 일곱 번을 낱낱이 후회한다.’고 적혀 있다고 한다. 그러니 한 해를 보내는 끝자락에서 한 해를 멋지게 성공의 깃발을 든 승자도 많이 있을 것이리라. 하지만 열심히 살아가려고 노력했지만, 별로 거둔 것이 없는 아쉬운 한 해를 보내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지난 시간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다가오는 음력 새해에는 멋진 성공을 이루어가는 승자가 되고자 꿈꾸기를. 승자는 넘어진 뒤 일어나서 앞을 보고 나아가려고 자세를 취하고, 패자는 넘어진 뒤 일어나서 뒤를 보며 후회한다고 하지 않던가. 다시 맞는 새해엔 여유를 가지고 하루는 25시간 이상이라 생각하면서 부지런히 일하고 만족한 얼굴로 달콤한 휴식을 취해보면 좋지 않겠는가. 아무리 빨리 날아가는 시간이라도 꼭 붙잡아 함께 달리면서 내가 하는 일의 과정을 즐기다 보면 순간마다 성취의 기쁨을 만끽하지 않으랴. 동녘 하늘을 물들이며 설렘으로 다가드는 새벽빛처럼, 온몸 가득 밝고 희망찬 기운으로 한 해를 모두 다시 힘차게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학생은 선거판 졸이 아니다

지난 13일 국회 본회의에서 검·경 수사권 조정 관련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이 통과됐다. 이로써 패스트트랙 법안이 모두 처리됐다. 108석의 국회의원을 보유한 제1야당의 극렬한 반대 속에서도 한건도 누락되지 않은 채 모두 통과된 점이 신기하다. 국회의원 정수의 절반도 안 되는 129석의 여당은 거대한 제1야당의 죽기살기식 저항을 뚫고 목표를 100% 달성한 셈이다.반면 제1야당은불법적인 몸싸움까지 불사하며 막아보았지만 빈손이다. 일견 여당의 완승처럼 보이지만 아직 게임은 끝나지 않았다. 그 과정과 성과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 남아있기 때문이다.정치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와 의견을 가진 사람들 간의 갈등을 대화와 타협을 통해 풀어가는 과정이다. 정치의 장을 ‘모여서 의논하는’ 곳 즉 의회라 칭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그런 뜻에서 보면 의논도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여 통과시킨 법은 국민이 합의한, 민주적 의미의 법이라 할 수 없다. 비록 다수결이 갈등의 최종해결수단으로 기능하긴 하지만 소수의 의견이 존중될 때 비로소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된다. 결론을 빨리 내는 것보다 제대로 된 성과를 도출하는 과정이 요체다. 정치판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실력으로 상대방을 제압하는 전쟁터나 야바위판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독단적으로 밀어붙여 정치 실종 사태를 만든 여당이 승리했다고 평가할 수 없는 이유다.개정된 선거법 중 준연동형비례대표제에 가려 제대로 거론조차 되지 않은 선거연령 만 18세 인하안은 재개정이 필요하다. 만 18세는 우리 학제로 고3이다. 초·중등학생은 생활권이 가정과 학교에 국한되는 비사회인이다. 학생은 성숙한 사회인을 교육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비록 아는 것이 많다고 하더라도 사회적 문제에 대한 판단을 제대로 할 만큼 사회물정에 밝지 않다. 그런 까닭에 학생은 국가와 사회의 특별한 보살핌을 받고 있다.이런 학생들에게 정치적 판단을 요구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일부 교육청이 계획하고 있는 모의선거교육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선거는 교육을 해야 할 만큼 고도의 전문성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장선거를 통해 익숙한 일이다.그런데도 모의선거교육을 하겠다는 의도는 불순하다. 불법으로 선거에 개입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학생을 득표수단으로 이용하고 학교를 정치판으로 만드는 일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다른 선진국과 비교해 만 18세 선거연령이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는 주장이 있다. 그런 주장을 하기 전에 학제를 바꾸는 선행조치를 했어야 했다. 현 6·3·3·4 학제를 5·3·3·4 학제로 변경한 연후에 선거연령을 1년 인하하는 것이 순리다. 조숙한 학생이 많아진 상황에서 초등교육기간을 1년 단축해도 큰 무리가 없다.학제개편이란 선행조건은 건너뛰고 선거연령 인하만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벼락치기로 밀어붙인 일은 여당의 정파적 의도라 보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을 도외시한 표 욕심이 교육현장을 갈라놓고 있다.극심한 혼란이 불을 보듯 뻔하다. 이상적인 생각과 진보적인 사고를 하는 학생들이 많을 것이란 가설이 선거연령 인하의 추진 배경이겠지만 학부모 영향하의 학생들이 실제로 그럴 것인지는 미지수다. 학연에 좌우될 개연성이 높아 그 지역 소재 고교 출신 후보자에게 유리한 조건만 만들어 준다. 고교생은 대개 인근 지역에 사는 유권자이기 때문이다. 공정하지 못한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선거연령 인하 논란을 고령자의 선거권과 연계하여 언급하는 사람이 있다. 정신이 성치 않거나 기능이 떨어진 고령자도 선거권이 주어지는 판에 만 18세는 당연히 선거권을 줘야 한다는 논리다. 이는 기본가정을 이탈한 궤변이다. 일인일표주의를 오해한 소이다.인간 능력의 정량적 평가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그 차선책으로 채택한 것이 일인일표주의일진대 고령자의 능력만을 문제 삼는 것은 명백한 오류다. 인간능력의 정량적 평가가 가능하여 각 개인의 가중치를 계산해낼 수 있다면 그 가중치가 곧 투표 가중치로 적합할 것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일인일표제가 그나마 고육지책이다.교문 앞이 명함 돌리는 필수 코스가 되고 학교 교정이 선거유세장이 되는 불행한 사태를 막아야 한다. 학부모보다 더 연로한 후보자가 교문 앞에 돗자리를 깔고 등·하교하는 어린 학생들에게 절을 하는 광경이 눈에 선하다.선거는 고교를 졸업하고 사회인이 된 후에 해도 늦지 않다. 중요한 것은 연령이 아니라 고교 졸업이란 사건이다. 학생을 선거판 졸로 봐선 안 된다. 유권자의 심판이 두렵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