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축년에 다들 행복하소(牛)

손동섭농협손해보험 경북지역총국장흰 소는 여유와 평온을 상징한다고 하니 금년 한해는 코로나가 종식돼 여유와 평온이 함께하는 해가 되길 바래본다. 그런데 그 흰 소가 세월의 뭇매를 버티면서 회갑을 맞는다.새해 연휴에 시집간 큰딸이 환갑잔치를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오길래 요즘 환갑하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핀잔을 주면서도 어딘가 못내 아쉬움이 든다. 그렇다고 티를 내기도 쑥스럽다.환갑잔치, 칠순잔치보다 더 성대한 집안 잔치는 손주들 돌잔치가 차지한지 이미 오래. 코로나사태가 오기 전 주말 뷔폐식당들은 온통 아이들 돌잔치 행사로 시끌벅적했음을 기억한다.베이비붐세대의 한 축을 구성하고 있는 신축년 소띠들은 어느 해보다도 올해가 가장 감회가 새로울 것이다.회갑이라는 나이 듦에 쑥스러워 할 것이고 고령화시대에 초로(初老)의 첫 디딤에 쑥스럽겠다.시골 고등학교를 졸업해서인지 동창생들 중에 유독 공무원, 교사가 많았던 시절. 그 시절 어른들은 자식들이 사범대에 들어가길 많이 원했다. 배우지 못한 한을 풀기 위함이었겠고 무엇보다 안정된 직장이라 생각해서일 게다.그렇게 일명 정부미(?)라 일컬어지는 공직자 동창생 녀석들도 이젠 신축년 마지막 봉급쟁이가 돼 연금 받을 타령들이다. 일반미(?)들은 벌써 퇴직했건만!출산 붐을 타고 태어나서 경제성장 붐, 사교육 붐 등을 겪은 베이비붐 세대는 늘 우리나라 경제 및 사회현상의 중심에 섰다. 부모를 봉양하면서 자녀교육과 혼사를 도맡아하는 샌드위치 세대로서 평생을 앞만 보고 달려왔지만 은퇴 무렵 남겨진 거라고는 아파트 한 채가 전부인. 1955년부터 1963년 사이에 태어난 그들을 우리는 베이비붐 세대라 일컫는다. 그들은 한국 현대사의 격동을 온몸으로 겪은 역사의 증인들이다.이제 그들은 은퇴 이후의 삶을 고민해야할 때다. 은퇴 이후의 삶을 흔히 제2의 인생, 인생 2막이라고 한다. 이제까지의 삶과는 다른 삶이라는 의미다. 앞만 보고 내달리며 경쟁하기 보다는 천천히 주변을 살펴가며 상생하는 삶, 자기가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고, 또 무엇을 나누며 살아갈지 고민하는 삶이 필요하다.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생명표’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기대수명이 OECD회원국 가운데 5번째로 높은 83.3세로 장수국가에 속한다. 그러나 건강수명은 평균65세로 남녀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한다. 65세가 넘으면 한두 가지 질병을 겪으며 점차 약에 의존하게 되고, 활동반경도 줄어들다 죽기 전 10년 정도는 병원신세를 지게 된다. 그렇게 평균 20년은 크고 작은 질병에 시달리 게 된다는 것이다.그러나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120세 수명얘기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존스홉킵스의대 토마스하팅 교수는 지난 150년 동안 인간수명이 매년 한 달씩 증가 했으며, 노화전문연구소 등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짧게는 15년, 길게는 80년 사이에 120세 시대가 열린다는 것이다.빅데이타와 인공지능 기술이 수많은 돌연변이 암세포를 표적치료제로 매칭해 개인 맞춤형 암치료가 가능해짐에 따라 암 환자의 완치율 또한 증가해 현재 열 명 중 일곱 명의 환자가 5년 넘게 생존하며, 10년 이내 치매예방주사가 나올 것이라고 예상한다.이러한 장수시대가 과연 축복이기만 할까? 당장 은퇴 후 60년이나 남은 긴 기간을 대체 뭘 하면서 살아야 하나, 의식주를 유지할 재산은 있나, 아프면 누가 나를 부양해줄까 등 걱정부터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축복이어야 할 120세 시대가 재앙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인류 역사상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장수혁명시대가 이제 현실로 곧 다가오고 있다. 100세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노인 빈곤율이 OECD 바닥권인 현실에서 개인별로 대비하지 않으면 미래는 암담하다는 것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이젠 현실로 다가온 노령화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지를 깊이 고민해야 할 때다.‘전화기 충전은 잘하면서 내 삶은 충전하지 못하고 사네.’ 트롯신동 정동원의 여백 노래가사를 음미하며, 새해에는 모두가 흰 소의 기운을 듬뿍 받는 한해가 되기를!

중대재해법은 지나치다

오철환객원논설위원국회가 최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하 중대재해법)을 통과시켰다. 사람이 숨지거나 크게 다치는 산업재해가 발생한 경우 경영자 등 그 책임자(이하 사업주)에게 형사상 책임을 지우는 법이다. 사람이 죽거나 다치는 것을 막자는데 반대할 명분은 세상에 없다. 자기 사업장이나 협력업체에서 산재가 발생하기를 바라는 사업주는 아마 없을 것이다. 사업주의 도덕성이 탁월해서가 아니라 재해 발생이 영리추구라는 기업경영의 목적달성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산업현장을 방치해도 좋다는 뜻은 아니다. 근로자의 건강과 생명이 영리추구 과정에서 희생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중대재해법도 그런 취지다.산재 발생을 시장에 맡겨둘 경우, 재해를 무릅쓰고 열악한 환경에서 근로자를 혹사해서 얻는 이익증분이 재해 발생의 증가로 인한 손실증분과 일치하는 점에서 장기적으로 균형을 이룰 것이다. 현실적으로 산재 감소로 인한 이득이 산업안전에 쓰는 비용보다 큰 범위에서 유인이 발생한다. 산재의 비효용을 증가시켜주면 그 방지를 위한 지출을 늘리게 된다는 결론이다. 산재 발생 시 사업주에게도 페널티를 주는 중대재해법은 산재의 비효용을 높이는 입법적 시도다.중대재해법이 시행되면 확실히 산재가 줄 수 있다. 산재의 비효용이 엄청나게 커짐에 따라 그 예방을 위한 비용이 큰 폭으로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비용엔 근로시간 감소나 노동 강도 약화로 인한 생산력 감축과 기계화나 자동화를 통한 생력화 투자의 기회비용도 포함된다. 생산력 감축을 견뎌내지 못하거나 생력화 투자를 감당하지 못하는 기업은 퇴출될 것이다. 기업이 문을 닫고 근로자가 일자리를 잃는다. 실업이 증가하고 세금이 줄어드는 부작용이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 있다. 결과적으로 산업재해가 없어지긴 할 것이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꼴이지만.문제를 해결하는 현명한 방법은 사업주와 근로자가 윈·윈 하는 접점을 찾는 것이다. 상대방이 있는 문제의 경우, 항상 상대방의 입장에서 역지사지해보고 상생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게 기본이다. 사업주와 근로자가 함께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하는 시스템에서 어느 한쪽의 입장만 고려해 법을 제정하고 정책을 입안한다면 그것은 외눈박이 해결책이다. 중대재해법은 근로자의 입장만 반영한 절름발이 법이다. 사업주와 근로자가 합의한 해결방안을 찾는 것이 분배할 파이를 키우면서 상생하는 방법이다.중대재해법은 무과실에 대해 처벌하는 것으로 법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있다. 우리 민법은 ‘과실 책임의 원칙’을 채택하고 있다. 고의가 있거나 객관적 주의의무를 위반한 경우에 한해 그 책임을 묻는다. 세상이 복잡다기해지면서 일상 속에 위험이 상존함에 따라 가해자의 과실여부를 묻지 않고 책임을 지도록 하는 무과실책임주의가 각종 특별법에 의해 예외적으로 도입되고 있다. 무과실책임주의는 고의나 과실이 없어도 그 책임을 지우는 것이기 때문에 개인의 자유로운 생활을 제어하고 편안한 사회생활을 방해한다. 따라서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무과실책임을 인정함으로써 그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산업재해 분야에 무과실책임을 도입해야 할 당위성이 있다는 점은 인정된다. 그렇지만 산재보험을 활용하는 등 현 산재법 체계 내에서 국가가 확실히 책임지거나 법인격을 가진 기업이 일정부분 책임을 부담하는 정도에서 중심을 잡아야 한다. 무과실임에도 불구하고 사업주에게 형사상 처벌까지 부과하는 것은 지나치다. 피해자를 두텁게 보호하자는 선의가 아무리 가치 있다고 하더라도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의무를 다하고 있는 무과실의 사업주에게 징역이나 벌금을 부과하는 입법은 불합리하고 가혹하다. 헌법상 과잉금지의 원칙에도 어긋난다.사람이 죽거나 다쳤다고 과실이 없는 선량한 사업주를 처벌해야 정의롭고 공정하다면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중대재해법이 정당하다면 대형사고가 나서 인명피해가 발생할 때마다 대통령이나 지방자치단체장이 책임져야 마땅하다는 논리다. 자연재해에 대한 피해를 국가가 보상하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대통령에게 그 형사책임까지 물어 징역형이나 벌금형에 처하는 건 지나친 억지논리다. 그런 시각에서 본다면 산재를 당해 인명피해가 크다는 이유로 사업주를 처벌하는 입법은 성급하고 감정적이다. 선거를 앞두고 표 계산을 한 입법이라면 최악의 포퓰리즘이다.

즐겁게 살자, 고민하지 말고

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바닷물도 얼어붙었다. 소띠 해, 순하게 생긴 그의 코에도 얼음덩이가 달릴 만큼 엄청난 추위가 이어진다. 이른 아침, 따스하고 향긋한 커피가 생각났다. 드라이브스루로 커피 한 잔을 받았다. 뜨거운 음료를 한 모금씩 마셔가며 출근했다. 일과를 마치고 컵홀더에 꽂힌 커피가 눈에 들어와 목을 축이려 입에 댔다. 묵직한 것이 아직 많이 남은 것 같은데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뚜껑을 열어보니 세상에~! 거품까지 그대로 꽝꽝 얼어있는 것이 아닌가. 건물 바깥도 아니고 사람이 연방 드나드는 지하주차장, 그곳까지 냉동고 한파가 찾아든 모양이다. 이런 강추위를 뚫고서 아픈 몸으로 병원을 찾아오는 이들, 그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무덤덤하게 대한 그들에게 새삼 미안해진다.평소 말없이 진료 마치면 눈인사만 하고 나가곤 하던 환자 보호자가 오랜만에 밝은 얼굴로 인사를 건넨다. “요즘, 월요일이 기다려져요”라고. 코로나19로 재택근무를 하게 돼 신문을 읽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우연히 나의 글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지면을 펼치며 그 면이 나와서 칼럼이 나오는 요일도 알아차렸다며 새로운 발견인양 얼굴을 발그레 물들이며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책 한 권을 내밀었다. 몇 년 전 제목이 눈에 들어 살까 말까 고민하던 바로 그 책, ‘즐겁게 살자, 고민하지 말고’였다. 그녀도 지루하게 이어지는 코로나19로 집에만 머물며 아이들과 부대끼느라 얼마나 힘에 부쳤겠는가. 그러다 보니 그 책이 눈에 확 들어왔을 것 같다.누군들 고민하고 살고 싶겠는가. 즐겁게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언젠가는 사람은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손에 쥔 모든 것을 놓고 훌훌 떠나게 되지 않은가. 그러나 그때를 모르는 것이 바로 인간이니 누구든지 전전긍긍하지 말고 마음껏 즐겁게 살자고 전하는 세 자매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주인공들을 힘들게 한 것은 사랑이었고, 극복하게 하는 것 또한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었다. 언젠가 죽을 날을 위해 고민하지 않고 즐겁게 사는 것이 아니라, 그녀들은 지금 ‘내가 아닌 나’로 살게 되면 고민하고, 다른 누구도 아닌 ‘나’로서 살기 위해 분노한다. ‘나인 나’로 살 때가 가장 즐겁다. 그러기 위해 고민하고 언제나 자기 자신을 똑바로 직시하고 또 당당하게 마주한다.고민 없이 즐겁게 사는 방법, ‘나’를 인정하고 ‘나’로써 사는 것이라는 그녀들에게 한 수 배워본다. 고민이랑 훌훌 날려버리고 인생은 그냥, 즐겁게 사는 거야.새해 벽두 해외 뉴스를 장식한 것은 즐겁게 살아온 세계 최고령자의 이야기, 일본인 다나카 할머니가 118번째 생일을 맞았다는 뉴스였다. 후쿠오카시 노인요양시설에 거주하는 그 할머니는 1903년에 태어났고 재작년 3월에 116세 66일의 나이로 영국 기네스월드레코드 측으로부터 남녀 통틀어 생존한 세계 최고령자로 공인받았다. 일본 왕을 기준으로 한 시대 구분인 연호로 따지면 메이지(明治)부터 현재의 레이와(令和·나루히토 일왕의 연호)까지 5개 시대에 걸쳐 살고 있다. 장수비결을 묻는 말에 “맛있는 것을 먹고, 공부하는 것”이라고. 목표 수명은 120세라며 앞으로 최소한 2년은 더 살겠다는 의지를 밝혔다고 한다.평소 체조로 몸을 움직이거나 두 사람이 하는 게임 등으로 소일하는 할머니는 식욕도 왕성해 좋아하는 초콜릿과 콜라를 즐긴다. 손자인 다나카 에이지(61)씨는 교도통신에 “코로나19 때문에 매우 힘든 상황이지만 할머니께선 건강하시다. 매일 즐겁게 지내고 계셔 기쁘다”고 말했다. 후쿠오카의 농가에서 9명의 형제 중 7번째로 태어난 할머니는 19세 때에 결혼해 장남을 낳았다. 1937년 중일전쟁이 시작되면서 남편과 장남이 징집된 후로는 집안 살림을 도맡아 억척스럽게 살았다. 당시 상황에 대해 “남자 몸은 아니지만, 울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몸도 마음도 남자처럼 돼 방아를 찧고 떡메질을 하는 등 뭐든지 할 수 있게 됐다”라고 회상한 적이 있다. 1993년 90세가 된 남편과 사별 후 백내장(90세), 대장암(103세) 수술을 받았지만, 현재 지병은 없다고 한다. 올 5월로 예정된 후쿠오카 지역 성화 봉송 때 휠체어 타고 성화 봉송 주자로 할머니가 나설 예정이라는 보도도 있었다. 태어난 해인 1903년은 제1회 근대 올림픽이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1896년 불과 7년 뒤였고 도쿄에서 처음 올림픽이 개최된 1964년엔 그의 나이 61세였다. 장수에 대한 긍정적인 메시지를 세계인에게 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는 다나카 할머니의 성화 봉송을 추진하려는 눈치다. 할머니의 희망 여명이 성취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어떤 강추위가 몰아쳐도 저 멀리서 봄은 조금씩 다가오고 있을 것이다. 동지 지나면 하늘의 봄이 시작된다지 않은가. 그러니 하루하루 즐겁게 살자,

위엄과 기품, 고결한 정신을 갈망하며

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 신축년 첫날부터 사람들이 뜸한 산과 들, 강과 호수, 바다를 찾아다니며 매일 만 보 이상 걸었다. 철새의 자맥질, 고라니의 뜀박질, 홍시를 쪼아 먹는 동박새, 강변 왕버들, 절벽의 해송, 눈이 시리도록 파란 겨울 하늘과 조각구름 등 자연이 보여주는 경이로운 모습은 자주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모처럼 마주하는 한겨울의 칼바람도 싫지 않았다.겨울 산을 오르거나 빈 들녘을 걸을 때 늘 암송하는 시가 있다. 조정권의 ‘산정묘지’다. “겨울 산을 오르면서 나는 본다./가장 높은 것들은 추운 곳에서/얼음처럼 빛나고,/얼어붙은 폭포의 단호한 침묵./가장 높은 정신은/추운 곳에서 살아 움직이며/허옇게 얼어터진 계곡과 계곡 사이/ 바위와 바위의 결빙을 노래한다./간밤의 눈이 다 녹아버린 이른 아침,/산정은/얼음을 그대로 뒤집어쓴 채/빛을 받들고 있다./만일 내 영혼이 천상의 누각을 꿈꾸어 왔다면/나는 신이 거주하는 저 천상의 일각을 그리워하리./가장 높은 정신은 가장 추운 곳을 향하는 법. (산정묘지 1)” 조정권은 문예진흥원에서 오래 근무했다. 문학이 반독재 민주화 운동의 투쟁 수단이던 7, 80년대를 살면서 그는 ‘참여와 순수’, ‘진보와 보수’가 서로 대립하고 갈등하는 모습을 진저리나도록 봤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 두 집단을 다 지원해야 하는 일을 해야 했다. 민중문학이 위세를 떨치던 시절에는 저항이란 대의만 앞세우면 미학적 측면에서 부족함이 있어도 좋은 시로 인정받았다. 작품성과 미학적 성취가 돋보여도 현실 문제를 비켜 가면 일방적으로 매도당하기도 했다. 그는 두 집단의 대립과 갈등을 보며 이 둘의 단점을 극복하는 시를 쓰고 싶었다. “그는 순수와 민중시를 봉합하고, 그 둘을 합쳐서 승화시킨 ‘정반합’(正反合)의 변증법적 결과를 도모하고자 했다. 그것이 ‘산정묘지’ 연작이었다”라는 조용호의 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그는 전통 서정시에 기반하면서도 고고한 정신성을 지향하는 1990년대의 정신주의 시를 이끌었다.새해 벽두 산정묘지의 빛나는 시구들을 음미하며 간절히 기도한다. “끊임없이 편 가르기를 하며 어느 한쪽에 가담하라고 다그치는 오만과 독선에 가득 찬 진보와 부패와 타락, 분열로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보수, 두 집단 모두를 자극하여 새살이 돋아나게 해 줄 ‘산정묘지’ 같은 고결한 정신이 출현하게 해 주십시오. 유종호가 조정권의 시를 해설하며 언급한 ‘위엄과 기품’이 이 땅의 모든 분야에서 되살아나게 해 주소서. 생각이 조금 다르다고 삿대질하며 싸우지 말고,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며 내 것을 조금 양보하는 상호 존중과 배려의 마음을 주십시오. 젊은이들이 결혼해 아이를 낳고 싶은 세상을 만들어 주십시오. 아무 대책 없이 일자리를 잃는 일이 없게 해 주시고, 젊은이들이 차선의 일자리라도 구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생명의 존엄성을 절실히 깨닫게 해 주셔서 다시는 정인이와 같은 불행한 아이가 생겨나지 않게 해 주십시오. 모든 장애인이 건강한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사람 사는 기쁨과 행복을 누리게 해 주십시오. 외롭고 쓸쓸한 홀몸노인들에게 온정의 손길이 닿게 해 주십시오. 쓰레기통을 뒤지는 길고양이에게 먹이는 주지 않아도 가혹한 학대는 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모든 언론 매체들이 정치적 이슈나 사건 사고만 머리기사로 다루지 말고, 일주일에 한 번만이라도 아름답고 훈훈한 이야기,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기사를 톱으로 올릴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꿈꾸는 것이 허황한 공상이나 세상 물정 모르는 사치라고 조롱당하지 않고, 그 꿈의 실현이 가능하다는 믿음을 가지게 해 주십시오. 그 무엇보다도 예측 가능한 세상에서 살게 해 주십시오.”다시 길을 걷는다. 맑은 정신으로 산정묘지를 계속 읊조리며 나태한 정신을 지팡이로 후려쳐 본다. “그러나 한번 잠든 정신은/누군가 지팡이로 후려치지 않는 한/깊은 휴식에서 헤어나지 못하리./하나의 형상 역시/누군가 막대기로 후려치지 않는 한/다른 형상을 취하지 못하리./육신이란 누더기에 지나지 않는 것./헛된 휴식과 잠 속에서의 방황의 나날들,/나의 영혼이/이 침묵 속에서/손뼉 소리를 크게 내지 못한다면/어느 형상도 다시 꿈꾸지 않으리./지금은 결빙하는 계절, 밤이 되면/물과 물이 서로 끌어당기며/결빙의 노래를 내 발밑에서 들려주리. (산정묘지 1)

인사가 망사다

오철환객원논설위원흔히 인사가 만사라 한다. 인사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이다. 구성원이 몇 명 되지 않을 땐 유능한 리더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는 것이 가능하고 또 효율적이다. 그러나 한 사람이 통제 가능한 범위를 넘어서게 되면 그 목적 달성을 위해 전체 과업을 합리적으로 분할해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줄 수밖에 없다. 이는 위양한 하위목표를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유능한 인재를 찾아내어 그에게 일정한 범위에서 리더의 권한을 함께 넘겨줘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과업과 권한은 동전의 양면이다.조직은 권한위임 과정에서 형성되는 분임단위의 계층이다. 조직은 권한위임의 결과물이자 리더십의 도구인 셈이다. 리더십이 제대로 발휘되려면 조직이 잘 짜여있고 그에 맞는 인재가 적재적소에 배치돼야 한다. 적재적소 배치는 인사의 종점이라 할 만하다. 인사가 만사라고 표현할 만큼 중요하다는 말은 적재적소 배치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적재적소 배치는 성과와 능력 그리고 공정성에 의해 좌우된다. 성과는 경력으로 나타나고, 능력은 전문성으로 측정된다. 공정성은 사적인 감정이 배제된 불편부당한 리더십 하에서 바로 선다.인사에서 경력과 전문성이 무시되고 사적인 인연이나 호불호가 개입되면 적재적소 인사가 실현되기 어렵다. 인재가 조직의 적재적소에 배정되지 못하면 위임받은 조직의 과제를 수행할 수 없고, 그 목적 달성은 물 건너가고 만다. 인사를 잘 하면 만사가 문제없이 잘 돌아가지만 인사를 그르치면 만사가 망사가 된다. 각 조직에 속하는 직책의 직무를 분석해 그에 적합한 인재를 선발하고 필요로 하는 전문지식을 교육·훈련시켜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일은 인사관리의 모든 것이다.국가조직의 인사라고 별다를 건 없다. 그 사람이 거쳐 온 경력과 전문성을 분석해 성과와 능력을 객관적으로 판단한 다음 최종적으로 인사권자의 사적인 관계를 걷어내고 공정하고 사심 없는 인사를 하는 것이 기본적인 원칙이다. 직무가 요구하는 경력도 없고 전문지식도 증명할 수 없는 사람을, 단지 사적인 인연이 있거나 선거의 승리에 기여했다는 사실만으로, 개인적인 빚을 갚는다는 목적에서 인사를 감행하는 것은 공을 버리고 사를 취하는 어리석은 일이다.성인군자를 장관으로 발탁하라는 얘기가 아니고 완전무결한 사람을 국회의원 후보로 내보내라는 말이 아니다. 평균적인 도덕성을 갖춘 사람이라면 그래도 눈감아줄 수 있다. 사계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라면 경력이나 전문성을 문제 삼지 않을 터이다. 그 직책을 감당할 수 있는 자격 요건을 갖춘 인사라면 설사 인사권자의 선거캠프에 몸담았던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다지 시비를 걸지 않고 그냥 넘어갈 수 있다. 욕먹을 사람만 용케 골라내는 희한한 선구안에 혈압이 오를 뿐이다. 국민의 화를 돋우는 재주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다. 그저 보통만 해도 감지덕지할 텐데.최근 대통령과 집권여당의 지지율이 동반 하락하고 있는 상황은, 비록 다른 이유가 차고 넘치겠지만, 인사 실패에 대한 국민의 질타이기도 하다. 소득주도성장이나 원전폐기 등 정책실패도 유능한 인재를 적재적소에 쓰지 못한 탓이다. 검찰개혁은 검찰을 잘 아는 검사출신이 칼을 잡아도 될 동 말 동하다. 사법부 판사 출신에게 계속 그 임무를 맡기니 감정적으로나 업무적으로나 잘 풀릴 리 만무하다. 외교부, 국토교통부, 교육부 등도 마찬가지다. 비전문가 문외한이 수장을 맡는 것이 어느덧 일상이 됐다. 그런 부서가 잘 돌아간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자잘한 외교적 실수와 외교정책의 표류, 아파트 가격 폭등과 전월세 대란, 역대 급 청년실업, 교육정책 불신, 코로나 방역 실패 등도 다 마찬가지다. 사계 전문가나 베테랑을 인정하지 않으니 아마추어 수준을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실패는 예정된 결과일 뿐이다. 스스로 자기 눈을 찌른 격이다. 우여곡절 끝에 출범한 공수처도 역시 마찬가지다. 최고의 수사기관장에 수사경험이 없는 변호사를 선임했다. 마치 섶을 지고 불길로 들어가는 꼴이다. 이 정도면 정말 인사가 망사다. 이런 어설픈 정부를 믿고 의지하기엔 세상이 너무 급박하게 돌아간다. 복 받을 생각만 하고 있기엔 나라사정이 너무 어지럽다. 각자도생이 유일한 살길이다. 신발 끈을 고쳐 매고 마음을 다잡을 일이다.

2021, 다시 청년으로

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2021해가 떠올랐다. 연속되는 시간이지만, 늘 새로워지고자 하는 인간의 지혜로 적당하게 마디를 지어 또 다른 해가 떠오르기를 기다린다. 다시 새 마음으로.지난해 모두 힘들었지만, 버티어냈다, 그중에서도 무척이나 어려웠을 여행업계에서는 새해 일출을 보기 위한 여행객을 모집한 모양이다. 어둑새벽, 부푼 가슴으로 비행기 트랩에 올라 1월1일 아침 떠오르는 태양을 보기 위한 해맞이 행사를 하늘에서 했다니. 일출 보면서 새해 소원을 기원하고 상공을 맴돌며 각자 소망을 빌었으리라.올 한해 봄볕에 눈이 녹듯이 어려운 일들은 스르르 녹아 없어지고 그 자리에 새순이 돋아나듯이 다시 희망이 쑥쑥 자라나 커나가기를.입시 결과를 기다리는 아이는 새해 미성년에서 벗어난다고 좋아하며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새해맞이 카운트다운이다. 10-9-8-7-6-5-4-3-2-1 댕~~~! 제야의 종이 울리자 드디어 19세가 됐다며 주민등록증을 들고 뛰어나간다. 그것을 내보이며 그동안에 구매하지 못했던 금지 품목 구입이 가능한지 시험 삼아 해보겠다며 기대에 찬 얼굴로. 편의점에서 술의 향이 조금 나는 과일 주류를 구매하면서 신분증을 보자고 하면 자랑스레 보일 것이라면서 들고 나가더니, 보자는 이야기가 없다며 왠지 김이 빠지는 표정으로 들어왔다. 어릴 때에는 하나씩 들어가는 나이는 무엇인가 가능하다는 의미가 아니던가. 2021, 새로운 10년을 시작하는 올해에는 스물 남짓 청년의 마음으로 다시 건강하고 힘차게 걸어 나가야 하리라.몇 해 전, 21세에 백만장자가 된 소년의 인생 이야기가 화제가 됐다. 13세 때 스마트폰 앱을 만들었고 페이스북은 17세 소년인 그에게 인턴십을 제안했고 결국 페이스북 정직원으로 입사했다.그는 2008년 경제 위기 당시 어려워진 집안 형편에 보태기 위해 스마트폰 앱을 만들기 시작했다. 어려웠던 어린 시절이 오히려 그를 성장하게 만든 것이다. 소년은 아직도 꿈을 꾸는 듯한 표정으로 그의 인생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면서 인터뷰했다.그의 인생길은 남들처럼 전형적인 모습은 아니지만, 어려웠던 어린 시절과 특별한 커리어 덕분에 오히려 어린 나이에 여러 가지 배울 수 있었고 인터넷이라는 기회를 이용해 스스로 성공했다기보다는 그 환경의 특별함 때문에 지금의 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일러준다.하지만 그는 스스로 시작한 것과 조금의 운이 더해져 현재의 자신이 될 수 있었다고 강조하면서 그는 구글 영상을 보며 스스로 코딩하는 법을 배웠다. 이후 그를 이용해 자신의 앱을 만들기 시작했고 전략적으로 경제적 이익이 창출되도록 판매하기 시작했다. 마크 저커버그가 그에게 인턴십을 제안했을 당시 이미 마이클의 무료게임 어플은 애플 앱스토어 상위권에 랭크해 뒀다고 하지 않은가. 스타벅스나 핏빗 등의 어플보다도 더 높은 순위에 올려 뒀으니 얼마나 대단한가.그는 강조한다. “나의 성공을 위해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면 안 된다”라고. 비록 그는 기술 산업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사람에게 조언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자신의 길은 스스로 개척했다. “제가 배운 가장 큰 교훈은 자신의 성공을 위해 다른 사람에게 기대면 안 된다는 것이에요. 그게 누구든. 그 사람이 얼마나 친절하고 좋은 사람이든 ,나와 관계가 있든 없든 나의 성공을 위해 다른 사람에게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그 청년은 “21세인 저는 아직도 어린 면이 있죠. 어쩔 땐 친구들이랑 나가 놀면서 거하게 술에 취하고 싶기도 해요. 한 번쯤 무책임한 일도 저질러 보고 싶기도 하구요.”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약속은 늘 지켜지리니. 21세 청년이든 연세 지긋한 어르신이든 모든 이에게 계절은 어김없이 찾아오지 않던가. 추운 겨울이 지나고 나면 따스한 봄이 찾아오듯이. 신축년에는 소처럼 느릿느릿하지만 만 리를 가는 걸음으로 봄부터 겨울까지 하루하루 다 다른 날들은 느끼며 걸어가시길. 하루하루 바람이 다르고, 하루하루 잎과 가지가 다르며, 매 계절 피는 꽃들과 하늘의 청명함이, 강물 소리와 잎사귀가 부딪히는 소리가 다 다르니 생을 깊이 있게 느끼며 지날 수 있기를 바라본다.올 한 해에는 예전에 비슷하게 느꼈던 가을과 봄도 확연하게 차이를 실감하며 그 천양지차를 만끽하기를 소망한다. 계절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것, 그런 느낌을 가득 간직하며 하루를 즐기며 건강하게 지낼 수 있기를 소망한다. 날마다 새로워지고 또 하루를 온전히 느껴가며 끊임없이 배우고 앞을 향해 뚜벅뚜벅 나아가며 걸을 수 있기를, 우보만리(牛步萬里)

왜 현진건인가

오철환객원논설위원우리나라의 현대문학은 대체적으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에 발아됐다고 볼 수 있다. 1894년 갑오경장으로부터 1919년 3·1운동까지가 그 태동기라면 3·1운동 이후는 현대문학이 본격적으로 뿌리내린 시기라 할 수 있다. ‘창조’(1919)에서 출발해 ‘개벽’(1920), ‘폐허’(1920), ‘백조’(1921)를 거쳐 ‘조선문단’(1924)에 이르는 종합문예지의 출현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일제 식민지라는 불행한 역사가 우리 현대문학사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 시기이기도 하다.그 당시 조선의 엘리트 지식인들이 문학계로 많이 들어왔다. 성리학의 영향으로 인한 문존무비 풍조가 뿌리 깊은 데다 일제의 제도권으로 선뜻 들어가 그 뜻을 펼치기엔 대의명분이 부족했을 법하다. 한편으론 조선인으로서의 민족적 자존심이 작용했고, 다른 한편으론 나라 없는 백성이라는 한계를 문학으로 극복해보고자 하는 의도도 존재했을 것이다. 빼어난 시인들과 시대를 앞서 간 소설가들이 쏟아져 나온 시대적 배경을 곱씹어보노라면 가슴이 먹먹할 뿐이다.현대문학을 꽃 피운 뛰어난 문인들이 대부분 친일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그들의 주옥같은 작품들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매우 안타깝고 애석하다. 그 야욕이 대륙 침략에서 태평양전쟁으로 치닫자 일제는 영혼까지 끌어다 댔다. 내선일체라는 명분을 내걸고 조선에 황국신민화정책을 실시했다. 문학계에도 그 여파가 미쳤다. 감시와 검열을 통해 표현의 자유를 제약했고, 존경받는 유명 문인을 겁박해 일제를 찬양하고 징병을 고무하는 글을 쓰도록 강제했다. 희망을 잃었거나 심지가 굳세지 못한 수많은 문인들이 일제의 강압에 무릎을 꿇었다.그 일로 인해 문학사에서 빠질 수도 없고, 빠져서도 안 될 문인들과 그 작품들이 친일의 틀에 갇혀 빛을 보지 못 하고 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문인들이 암울한 역사에 치여 신음하고 있다. 문학작품이 문학성으로 평가받지 못하고 문학외적인 요인으로 인해 묻혀버리는 것은 암울한 역사보다 더 참담한 비극이다. 불굴의 애국심과 투철한 민족정신 그리고 대쪽 같은 지조를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제요건으로 본 모양이다. 심약한 천재나 성마른 현실주의자는 이름이 지워졌다. 영혼이 자유로운 문화예술인에게 고지식한 기준을 들이대는 것은 프로크루스테스와 다르지 않다.결국 앞서간 문인들을 현창하고 그 작품들을 조명하고자 한다면 적어도 애국의 벽을 넘을 필요가 있다. 일제 때 백화제방 활동한 문인들이라면 친일 스크린을 통과해야만 비로소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유명세를 탄 사람이 그 절망적 상황에서 일제에 협력하지 않고 버텨내기 힘들었을 법하다. 그러다 보니 반일성향이나 민족정신이 담긴 작품은 문학성은 다소 떨어지더라도 필요 이상 과대평가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일제치하에서 두드러진 창작활동을 한 문인 중에 친일과 무관한 사람은 손에 꼽힐 정도로 귀하다. 지난 역사가 제대로 정리되기 전이란 제약 하에 있는 현 시점에서 현창할 만한 문인이 이설 없이 존재한다면 그 희소성만큼이나 희귀한 가치를 지니는 셈이다. 빙허 현진건은 친일에 자유로운 몇 안 되는 문인이다. 동아일보 손기정 선수 일장기 말소사건에서 보듯 항일과 민족정신이 남다른 데다 역사성이나 작품성도 두루 갖추고 있는 점에서 현진건은 우선적으로 기억해야만 할 문인이다.현진건은 1900년 대구 계산동에서 출생하고 대구노동학교에서 수학했다. 1915년 고향 문우 이상화, 백기만, 이상백 등과 함께 대구에 기반을 둔 최초의 동인지 ‘거화’를 발행했다. 민족정신을 바탕으로 식민지의 참담한 사회상을 사실적으로 그려냄으로써 현대소설을 우리나라에 정착시키고 리얼리즘 문학을 완성했다. 체험의 프리즘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이 곧 소설이라는 사실을 보여준 현진건은 민족주의적 색채가 강한 리얼리즘 문학의 최고봉에 올랐다.빙허 현진건은 친일에서 자유롭고 문학성과 역사성도 함께 갖춘 데다 대구와의 친연성까지 갖추고 있다. 그런 점에서 현진건은 정부와 대구가 반드시 현창해야할 흔치 않은 위인이다. 현진건문학상의 확충, ‘현진건 거리’와 가칭 ‘운수 좋은 집’(현진건문학관) 조성 등과 같은 사업이 절실하다.

(송코영신)-송(送)코영(迎)신(新)

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2020년의 해가 저물어간다. 유난히 힘든 해였기에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정말이지 기나긴 터널 속을 걷기만 한 것 같다. 어두운 기억 속에서도 일전에 받은 디지털 연하장이 웃음을 준다. 2020년 0의 자리엔 마스크를 길이로 걸어 둬 ‘2/마스크/2/마스크’의 2020년을, 새해 2021이라는 숫자에서는 2021의 1의 숫자 대신에 백신 주사기를 넣어 번뜩이는 희망을 심어두지 않았겠는가. 손으로 한 자 한 자 정성들여 써서 보내는 손 편지만큼이나 의미 있는 연하장이라서 자꾸 열어보곤 한다. 아무런 근심 걱정도 없이 마주하고 웃으며 손 맞잡을 수 있는 날이 찾아온다면 그 얼마나 좋으랴.요즘엔 엽서나 연하장을 주고받는 사람이 거의 없다시피 하지만, 인터넷이 등장하기 전에는 새해만 다가오면 연하장을 준비해 어른들께 보내고 친구 지인들과 주고받았다. 한때는 미리 주문해 연하장을 돌리는 재미를 느끼며 한 해를 마무리하기도 했었다. 그런 연하장에 주로 등장하는 문구가 ‘근하신년’, ‘송구영신’이지 않던가. 한학을 오래 독학했던 지인은 송구영신이라는 글자가 나오면 유례를 읊곤 한다. 송구영신은 원래 송고영신(送故迎新)에서 유래된 말이라고 풀이했다. ‘송고영신’은 구관을 보내고 신관을 맞이한다는 뜻이라면서 여기서 말하는 구관은 옛 관리를, 신관은 새 관리를 가리킨다고 덧붙였다. 옛 관리를 보내고 새 관리를 맞이한다는 말이 이후에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한다는 뜻으로 널리 쓰이고 있는 것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새 달력을 받으면 그 앞 장에도 큼지막하게 근하신년이라고 적혀 있곤 했다. 떨리는 손으로 달력 첫 장을 넘기면서 한 해의 첫 달, 좋은 기운을 기대하며 새날을 맞이하기를 기원하기도 했다.올해에도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은혜를 입은 분께 정성 들여 연하장을 써본다. 근하신년(謹賀新年)이라고. 삼가 새해를 축하한다는 뜻이지 않은가. 겸손하고 조심하는 마음으로 정중하게. 새해를 축하한다는 의미를 담은 새해 인사를 마음을 담아 손으로 꾹꾹 눌러 써서 차곡차곡 책상머리에 둔다. 코로나로 인해 대면 업무가 안 되다 보니 택배니, 우편이니 등등의 배달로 과도한 업무로 허덕일 우편을 담당하는 분들의 노고를 생각하니 우체통에 넣기가 망설여져서. 아마도 올해엔 결국 넣지 못할 것만 같아 마음으로 보내야 할 것 같다.코로나로 힘들었던 올 한 해를 보내면서는 제발 코로나를 저 멀리 보내고 싶은 마음에 송구영신(送舊迎新) 대신에 송(送)코영(迎)신(新)으로 바꿔 인사하고 싶다는 환자도 있었다. 어른 이 팔순을 맞이하게 돼서 그냥 지나가기가 섭섭했다고 한다. 잠깐 집에 모셔 식사만 했는데 그만 온 식구가 코로나19에 차례로 감염 돼 병실 신세를 져야만 했다. 저녁 식탁에 앉아있었던 시간이 도대체 얼마나 됐다고 그새를 못 참고서 코로나란 그 사악한 녀석은 부모 자식의 정을 시샘하면서 가정의 평화를 깨뜨려버리는가. 어른에 대한 도리를 잠시 다한다는 것이 그만 연로하신 부모님께 고통을 안겨드린 결과가 됐다며 눈물 짓는 이를 보면서 마음이 아팠던 경자년(庚子年) 이었다. 지나간 시간은 아쉬움과 후회가 아니라 진정한 반성과 깨달음으로, 작고 소소한 일상에서도 거리 두기 꼭 하면서도 고마운 사람에게 보내는 감사와 사랑으로 맞는 마무리가 되면 좋으리라.어찌하든 거리 두기 마스크 쓰기 손 씻기 잘해 코로나19를 어서어서 쫓아 보내고 다가오는 신축년(辛丑年) 새해를 잘 맞이할 수 있기를, 그리해 건강한 모습으로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모두 송구영신, 아니 송(送)코영(迎)신(新)하기를, 세상의 모든 신께 두 손 모아 기원한다.밝아오는 새해에는 무엇보다 우리 삶이 좀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 더 많은 사람이 웃음 지을 수 있고, 서로를 향한 온정으로 따스함을 나누는 것이 허락되고, 서로를 인정하는 배려의 마음이 가득하기를 소망한다. 좀 어려운 일이 생기더라도 꿋꿋이 참아내고 인내하면서, 나와 남 모두에게 사랑으로 대하고, 또 언제나 희망을 품고서 소망을 이루기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노력할 수 있기를, 그리해 한 해를 잘 살아내고서 다시 끝마무리할 시점이 다가왔을 때 또다시 희망찬 새해를 준비하는 시간이 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잊지 못할 해가 넘어간다. 우리의 한 해, 지난한 시간을 굳건히 견딘 우리, 서로 위로를 건넬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본다. 한 해를 보내며, 또 새해를 맞으며 모두의 시간이 ‘행복’일 수 있기를. ​그대 걸어가는 길에 늘 희망과 보람이 가득하길.

성탄의 기쁨이 온 누리에 가득하려면

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고향 마을에는 조그마한 교회가 있었다. 인근 네 개 동네를 통틀어 하나밖에 없었다. 매일 새벽과 저녁에는 종탑에서 종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기독교 신자보다 불교 신자가 더 많았지만 아무도 교회 종소리를 시끄럽다고 말하지 않았다. 마을 뒷산에는 절도 있었다. 사람들은 교회의 종소리와 절의 범종 소리를 같이 들으며 살았다. 교회의 종소리는 카랑카랑한 고음이어서 힘차게 새날을 여는 아침에 어울렸다. 저음의 범종 소리는 평안한 휴식과 마음의 평화를 느끼게 해 주어 저녁 시간에 듣기 좋았다.마을 한 복판에 있는 교회는 문화 공간 역할도 했다. 여름 성경학교와 성탄절에는 동네 아이들 대부분이 교회에 갔다. 성경학교의 다양한 프로그램은 문화 충격이었다. 불교 신자 집 아이들도 그 시기에는 교회에 갔다. 아이들은 맨 마지막에 주는 간식을 기다리며 청년 선생님이 가르치는 대로 노래를 부르고 성경을 암송했다. 성탄절에는 어김없이 연극을 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나는 아기 예수 역을 맡았다. 동년배의 다른 아이들보다 키가 작아 그 역을 주었을 것이다. 고교 1학년 누나가 성모 마리아 역을 했다. 연극 도중 누나가 나를 꼭 껴안았을 때의 그 달콤한 로션 향기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야릇한 느낌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조숙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여성의 품을 처음 느꼈다고 말하고 싶다. 다른 장면은 생각나지 않는다.눈을 감으면 아련하게 떠 오른다. 성탄 전야 행사가 끝나면 청년들은 밤새 새벽송을 들었다. 신자들 집 앞에서 크리스마스 캐럴과 찬송가를 부르면 교인들은 정성껏 포장해 둔 과자와 다양한 선물을 주었다. 우리는 신이 나서 언 손은 입김으로 녹이고 시린 발을 동동 구르며 돌아다녔다. 눈이 듬뿍 내린 화이트 크리스마스에는 들판과 논두렁을 뛰어다니며 신나게 눈싸움을 했다. 외딴곳에 홀로 사는 노인의 집 앞에서는 목청 높여 노래를 부르고, 다른 집에서 받은 선물을 섬돌 위에 몰래 얹어 놓고 나왔다. 부자 장로님 댁에 이를 때면 모두 들뜨고 신이 났다. 장로님은 떡국을 끓여 우리를 배불리 먹였다. 새벽 6시쯤 새벽송이 끝나면 각자 집으로 돌아가 정오 무렵까지 자고 교회에 나와 과자를 나눠 먹으며 파티를 했다. 동네 악동들이 사월 초파일에는 절에 가서 스님이 주는 떡을 맛있게 먹곤 했다. 나와 비슷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훈훈한 인정이 넘치던 그 시절을 아직도 가슴 한쪽에 고이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몇십 년 사이 세상은 너무나 많이 변했다. 사회 전 분야가 그렇듯이 교회도 빈부 격차가 극심하다. 대도시 일부 교회는 엄청난 부를 주체할 수 없어 끊임없이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작은 개척 교회나 시골 교회는 견디기 힘든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 코로나19는 재정 상태가 좋지 않은 작은 교회를 거의 빈사 상태로 내몰고 있다. 여유 있는 대형 교회들이 어려운 교회를 좀 더 적극적으로 후원해 주면 좋겠다.예수님께서 지금 이 땅에 재림한다면 어떻게 할까를 생각해 본다. 코로나19로 고통받는 환자들과 그들을 돌보는 의료진을 먼저 위로하며 복을 줄 것이다. 그런 다음 사람들에게 간곡히 부탁할 것이다. “모이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 교회도 방역 당국의 지시를 철저하게 지키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엄격하게 실천하라”고 말할 것이다. 사람들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에 사는 헐벗고 굶주린 이웃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는 것이 곧 예수 당신을 접대하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할 것이다.(마태복음 25장). 부처님도 자신에게 보시하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 보시하면 그것이 곧 부처님 당신에게 보시하는 것과 같다고 하지 않았는가(방등경). 예수의 말씀이나 석가모니의 설법이 결국은 똑같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기쁜 성탄이다. 산타의 썰매가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고 구불구불한 길 위로 함박눈이 펄펄 내리는 외딴 마을을 떠 올려 본다. 한없이 평화롭고 고요한 풍경 속에 나지막하게 잠겨있는 시골 성당의 첨탑 위에는 아기별 하나가 사랑을 실천하러 온 예수님을 기다리며 반짝반짝 빛나고 있을 것이다. 코로나19와 굵직한 사건들에 파묻혀 세상의 관심 밖에서 외롭고 쓸쓸하게 이 겨울을 버티고 있는 사람들에게 성탄의 기쁨과 신의 은총이 가득하길 기원해 본다.

집합제한은 국가가 책임져야

오철환객원논설위원“코로나 전쟁에 왜 자영업자만 일방적 총알받이가 돼야 하나, 대출원리금과 임대료가 같이 멈춰야 한다”는 주장이 청와대 청원 사이트에 올라왔다. 이에 화답하듯 대통령이 “정부의 코로나19 방역 지침에 따라 영업이 제한 또는 금지되는 경우, 매출 급감에 임대료 부담까지 고스란히 짊어져야 하는 것이 과연 공정한 일인지에 대한 물음이 매우 뼈아프게 들린다”고 언급했다.이를 국회에서 이동주 의원이 이른바 ‘임대차멈춤법’으로 그 바통을 이어받았다. 임대차멈춤법은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안으로 상가에 집합금지가 있을 경우 건물주는 그 기간 동안 임대료를 받을 수 없고, 집합제한이 있을 경우 현 임대료의 절반까지만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초기에 착한 임대인 운동이 있었지만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수준이었고 임대인에 대한 세제혜택마저 실효성이 떨어져 시들해진 상태다.국민 청원과 대통령의 발언 그리고 임대료멈춤법의 입법 취지를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한다. 아마 이에 대해서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은 없을 듯하다. 하지만 그 해법에 대한 생각은 반드시 같지 않다. 임대료멈춤법은 임대인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임차인 편을 듦으로써 사회적 갈등을 부추길 우려가 다분하다. 임대인이 코로나 팬데믹의 원인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 수익자도 아닌데 부담을 강제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굳이 그 원인자를 찾는다면 중국정부이거나 코로나 바이러스의 상륙을 막지 못한 우리 정부일 것이고 억지춘향 격으로 그 수익자를 찾는다면 마스크업자이거나 배달업자일 것이다. 논란이 있겠지만 그 원인자에게 피해를 부담시키거나 그 수익자에게 상응하는 세금을 부과하는 방법이 임대료멈춤법보단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우리 헌법은 재산권을 두텁게 보호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재산권을 제도로서 보장할 뿐만 아니라 자유권적 기본권으로 보호하고 있다는 것이 통설이다. 따라서 공공복리 차원에서 입법에 의해 재산권을 침해한다고 하더라도 그 본질적 부분을 침해할 수 없는 한계가 존재하고, 비록 공용침해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정당한 보상을 실시해야 한다. 이 부분에 주목해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불똥도 공용침해와 손실보상의 법리로 풀어가는 것이 무난할 수 있다.작금의 팬데믹 상황에 대응해 국가가 공공복리 목적으로 집합금지나 집합제한을 했다면 공용침해가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집합금지나 집합제한으로 인해 상가를 임차해 장사를 하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가 입은 피해를 국가가 직접 보상하는 것이 맞는다. 손실보상의 법적 요건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공공필요 목적으로 공권력에 의한 적법한 재산권 침해가 존재하며, 그러한 침해가 특별한 희생에 해당하고, 손실보상을 실행할 관련 법규가 잘 정비돼 있다는 것이 그 논거다.코로나 바이러스의 전염을 차단하는 목적은 명확하게 공공필요에 해당하고, 집합금지와 집합제한은 행정명령이므로 공권력의 행사이다. 그로 인해 고객이 원천 차단돼 수익이 없어지거나 감소하는 것은 재산적 침해의 결과이다. 집합금지나 집합제한이란 행정명령은 실체적 절차적으로 적법하다고 할 수 있다. 또 이러한 공용침해는 일상적인 침해강도를 넘는 수인할 수 없는 특별한 희생이다. 마지막으로 공용침해로 인한 손실보상에 관한 법규의 존재가 현실적 실행가능성을 담보하고 있다.구체적인 각론에 들어가서도 기존의 제도와 시스템을 원용하면 전혀 문제가 없다. 손실액의 평가는 영업 손실액을 전문적으로 평가하는 감정평가사를 활용하는 방법이 있다. 비용을 절약하려 한다면 계산식을 활용한 모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집합금지로 인한 영업 손실 평가 모형과 집합제한으로 인한 영업 손실 평가 모형을 업종별로 각각 개발한다면 각 사례마다 침해기간과 같은 외생변수만 바꿔주는 것만으로 단기간에 효율적인 대량 평가가 가능할 것이다. 이는 정밀성과 개별성은 비록 떨어지겠지만 비전문가가 저비용으로 신속히 처리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제도와 시스템을 준비해 뒀다가 문제가 불거지면 즉시 대응해야 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사고나 재난이 발생하고 난 후, 중심을 잃고 우왕좌왕하다가 표피적 증상만 보고서 감정 과잉 상태에서 선의만 앞세운 땜질 처방만 내놔서는 판판이 낭패를 본다. 값싼 감상에 휘둘리는 아마추어 정부는 국민의 안전과 복지를 지켜낼 수 없다.

양의 기운이 가득하기를

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며칠 사이 날씨가 무척 추워졌다. 겨울 한파가 몰아치고 코로나19도 덩달아 기승을 부리고 있다. 날마다 일기예보에 귀를 기울인다. 드디어 동지가 다가왔다. 일 년 중 밤이 가장 길다는 동지섣달 긴긴밤이다. 낮은 가장 짧은 날로 고대인들은 동짓날을 태양이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는 날로 생각했다고 한다. 그들은 이날 축제를 벌여 태양신에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고 전해온다. 천문학적으로는 태양의 황경이 270도 위치에 있을 때가 바로 동지다. 동지에는 음기가 극성한 가운데 양기가 새로 생겨나는 때이므로 예전에는 이날을 작은설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음력으로 일 년의 시작으로 간주한 것이리라.온통 코로나19에 휘둘려 어렵게 견뎌내기, 극기 훈련하는 듯한 올해는 12월21일이 동짓날이다. 음기가 가장 세지는 날이라 이때엔 양기의 대표 곡식인 붉은 팥으로 죽을 쑤어 먹고 집안 곳곳에 뿌리거나 놔두는 풍습이 있다. 동짓날 팥죽은 음기를 누르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귀신이나 액운을 쫓는 데도 좋다고 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모두가 힘든 시간을 보낸 한 해인 만큼, 많은 이들이 동지 시간에 맞춰 팥죽을 쑤어서 뿌리거나 팥 시루떡을 집안 곳곳에 놓아두고서 액이 물러나기를 간절한 심정으로 기원하리라. 올해의 동지 시간은 저녁 7시2분이고 그 이후 해가 지고 나면 하늘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장관이 펼쳐질 것이라는 예보다. 목성과 토성이 가장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근거리에서 관찰할 수 있는 우주 쇼가 이어진다고 한다. 아무쪼록 무거웠던 마음을 털어버리고 동짓날 천체가 보여주는 멋진 쇼를 구경할 일이다.동짓날은 시기에 따라 나뉘게 된다. 음력 11월 초순에 동지가 오면 애동지, 중순에 오면 중동지, 하순에 오면 노동지라고 한다. 올해의 동지는 음력 11월7일이라 애동지다. 예부터 애동지 때는 팥이 들어간 떡을 해 먹었고 팥죽은 먹지 않았다고 한다. 애동지에 팥죽을 먹으면 아이들에게 해가 갈 수 있다고 하니 팥이 들어간 떡으로 액이 물러나기를 기대해본다.동지를 작은 설로 보는 이들 사이에 재미있는 말들이 오간다. ‘동지 전에 일 년 동안에 진 빚을 다 갚는 법이다’라고 하고 ‘동지 지나 열흘이면 해가 소 누울 자리만큼 길어진다’라고도 말한다. 이제부터는 낮이 길어지고 밤이 짧아진다는 의미이지 않겠는가.동지 준비 하러 죽집에 들렀다. 자주 가던 그 가게엔 사회적 거리 두기 때문인지 종업원은 배달 주문 들어온 죽을 포장하느라 정신이 없다. 한참을 기다리고 있으려니 하얀 지팡이를 이리저리 두들기는 한 신사가 가게 안으로 들어선다. 목에는 긴 줄로 만든 목걸이에 최신형 아이폰이 매달려 있고 한 손에는 동치미 팩이 들려있다. 팥죽을 담아 종이 가방을 건네주자 팔에 걸더니 ‘탁 탁 탁 탁’ 지팡이로 바닥을 가늠하며 익숙한 걸음으로 문을 나선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바라보니 횡단보도 점자 블록을 찾아서 서 있다가 신호등이 바뀌자 음성 안내에 따라 유유히 건너간다. 무심코 바라보는 내게 주인장이 한마디 건넨다. “동지 때면 저분은 꼭 이곳에 와요. 팥죽은 추억의 맛인가 봐요”라고. 그에게 추억은 무엇일까.이맘때면 이승을 떠난 어머니가 무척 그립다. 팥죽 끓일 준비로 새알심을 만들며 나누었던 정경이 떠오르곤 한다, 하얀 지팡이를 들고서 유유히 걸어가는 그분도 그런 어머니가 생각나서 들린 것일까. 이제는 동지가 되면 그의 뒷모습도 생각날 것 같다. 능숙하게 세상을 걸어가기를 바라는 심정이다.올해도 며칠 남지 않았다. 그간 하루하루를 어찌 견뎌냈는지 무엇을 이루면서 보냈는지. 오늘이 바로 양의 기운이 서서히 충만해 온다는 동지이지 않은가. 붉은색이 액운을 쫓는다고 하니 팥죽이든 팥떡이든 무엇이라도 먹어야겠다. 특별히 올해는 애동지라고 한다. 어린아이가 있는 집에서는 팥죽 대신 팥떡을 해 먹으면 좋지 않겠는가. 옛 풍습은 그렇지만, 팥죽이면 어떻고 팥떡이면 어떠하랴. 팥은 영양학적으로 볼 때도 훌륭한 건강 기능식품이 아니던가. 팥에는 우리의 건강을 지킬 수 있게 비타민B군이 풍부하게 함유돼 있어 탄수화물의 소화 흡수를 돕고 피로감을 개선한다. 사포닌과 콜린 함량도 많아 혈중 중성지방 조절과 체중 관리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기억력 감퇴도 예방해준다니 우리 건강도 지키고, 붉은 기운으로 코로나19라는 액을 멀리멀리 쫓아내기를 소망한다.올해의 동지만큼은 붉은 팥으로 만든 음식을 맛나게 먹으며, 마음의 눈으로 따뜻한 세상을 그려보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늘 양의 기운이 가득하기를.

인구감소에도 출구는 있다

오철환객원논설위원인구감소의 영향이 심각하다. 대학입시생이 50만 명 이하로 떨어져 정원미달 상황이 발생했다. 종족보존 본능은 인간에게도 당연히 존재한다. 그렇다고 동물처럼 번식이 곧 삶의 목적인 건 아니다. 인간은 이성을 가진 ‘생각하는 갈대’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험하고 사는 게 힘들면 자식 낳을 생각을 접는다. 사랑하는 자식을 고통스런 세상에 내보내기 싫은 까닭이다. 콘돔과 피임약이 즐비하고 여차하면 중절수술도 가능한 현실이 날개를 달아 준 셈이다. 그 대가는 외면하고 단지 섹스의 쾌락에만 중독된 우리들의 자화상이 부메랑이다.이런 환경에서 출생률을 제고하려면 삶을 즐겁고 행복하게 만들어줘야 한다. 편안한 현재와 장밋빛 미래가 가까이에서 어른거려야 행복한 삶을 희망하고 추구한다. 행복한 삶을 기대할 수 있어야 아이를 낳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법이다. 출생률 제고는 행복한 생활에서 파생되는 과실이다. 출생률 저하는 삶이 팍팍해 생활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증좌다. 청년실업이 만연한 상황에서 아이를 낳아달라고 독려하는 것은 난센스다.행복한 삶은 물질적 풍요와 정신적 만족이 뒷받침된 상태에서 기대가능하다. 물질적 풍요는 경제적 영역에서 욕망을 채워주는 수단으로 기능한다. 인간의 기본적 생존요건인 의식주도 경제력에 달려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재화는 행복의 충분조건은 아니겠지만 필요조건 정도는 된다. 정신적 만족은 문화예술 영역에서 행복으로 넘어가는 건널목이다. 문화예술은 감성에 작용해 사랑과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정신적 만족이 결여된 물질적 풍요는 불행을 키우는 온상일 뿐이다.물질적 풍요는 경제활동을 통해 달성되는 결과물이다. 경제활동의 과실을 개개인에게 나눠주는 도구가 일자리다. 우리는 일자리를 통해서 경제성장의 과실을 분배받고 물질적 욕망을 채우는 것이다. 일차적으로 경제를 살리는 일이 급하고 다음 단계로 다양한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일이 뒤따라야 한다. 경제는 기업이 주도한다. 공공부문은 기업이 이익을 내고 투자를 늘려갈 수 있도록 유익한 환경을 조성해주는 조력자일 뿐이다. 기업이 투자를 늘리고 성장하면 개인의 소득원인 새로운 일자리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난다.정신적 만족은 문화의 활성화를 통해 달성될 수 있다. 문화예술은 문화예술인의 창작활동에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운다. 문화예술의 육성은 문화예술인에 대한 지원이다. 문화예술이 공공재로서의 성격을 갖고 있으나 그 가격은 시장 메커니즘에 맡겨진 상황이다. 그러다보니 ‘무임승차’로 가격이 원가 이하로 떨어지고, 낮은 가격은 문화상품의 질을 더욱 떨어트린다. 질 낮은 문화상품은 다시 가격을 떨어트리는 악순환이 지속된다. 결국 문화예술 수준은 떨어지고 정신적 만족은 물 건너가고 만다.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선순환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외부의 자극이 필수적이다. 공공부문이 시장에 적극 개입해 공공재의 질을 높이고 공급량을 늘려 삶의 질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전철이나 버스 등 대중교통에 예산을 지원하는 것이 이유 있다고 한다면 문화예술에 예산을 지원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의미 있고 필요하다. 무임승차를 막을 수 없다면 공공부문이 차비를 대신 내줘야 한다. 가격을 낮춰 문화예술의 수혜범위를 확대하려고 한다면 적정가격과의 차액 분을 문화예술인에게 지급하는 것이 맞는다. 돌아가는 길 같지만 멀리 가는 길이다.문화예술인을 현창하는 사업도 좋은 방법이다. 이미 돌아가신 분들에게 돈을 써서 무엇하나고 불평할 수 있다. 유럽의 문화예술 선진국을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그 땅에 살다간 빼어난 문화예술인을 숭모하고 현창하는 문화적 배경이 그 땅을 위대하게 만들고, 그 땅에 살고 있고 또 앞으로 살아갈 사람들에게 자긍심을 주는 것이다. 자존감과 자부심은 삶의 원동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문화적 향기로 충만한 유럽이 비록 느리게 돌아가지만 앞서가는 이유이다.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조상 팔아 편하게 살아간다.인구감소란 위기를 극복하려면 경제의 성장 발전과 문화예술의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 양자는 서로 별개로 보이지만 상호 보완적으로 작용해 상생적인 외부경제를 일으킨다. 쉽지 않겠지만 위기가 닥쳤다고 움츠리고 있어서는 안 된다. 이럴 때일수록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을 잃지 말아야 한다. 위기를 타개하고 비약적인 발전을 향한 적극적인 정책을 공격적으로 펼쳐야 할 때다.

한 가지 소원

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눈발이 날린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새벽, 길을 나섰다. 어둑한 산길을 굽이굽이 돌아 가파른 오르막길을 달려 팔공산으로 향했다. 산 중턱을 지나니 벌써 귓속이 먹먹해 온다. 졸음을 쫓느라 차창을 열어보니 귓가에 닿는 공기가 바늘처럼 아프게 다가온다. 모처럼 휴일을 맞아 식구들이 다 모였다. 수험생을 둔 집이라면 종교에 상관없이 한 번쯤은 올랐을 법한 팔공산 갓바위, 그 부처님을 찾아 등산하기로 했다. 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주시는 갓바위 약사여래불이라고 하지 않던가. 한 방울씩 떨어지는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정성 들여 기도를 올리다 보면 평생 한 가지 소원은 꼭 이뤄질 것이리라.코로나19 환자가 1천명을 넘었다는 뉴스가 속보로 전해진다. 휴일이라 검사 건수가 적었을 터인데도 이런 수치라면 주중에는 더 치솟을 듯해 걱정이다. 산을 오르기 시작하니 숨은 벌써 가빠오는데 휴대폰에서는 쉴 새 없이 알림음이 울린다. 거리두기를 해달라는 안전문자들, 확진자 알림 문자, 확진 환자가 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는 감염관리실의 호출 카톡 창까지 여러 차례 진동이 울린다. 그때마다 확인하다 보니 걸음은 자꾸 늦어지고 숨은 더 답답해진다. 지역에서 발생하는 환자뿐 아니라 타지역의 환자들까지 먼 거리에서 병실을 찾아 구급차를 타고 이송돼 오게 된다니! 앞으로 이 일을 어쩌면 좋으랴 싶다.돌 전 영아부터 구십을 바라보는 어르신까지 증상이 적혀있는 이송소견서를 보면서 숨이 가빠온다. 이른 시간이라 오고 가는 사람들이 적어 그나마 다행이라 여기며 후들거리는 다리를 앞으로 옮기며 하루의 일정을 머릿속으로 짜나간다. 얼른 이런 재난 사태가 끝나서 마음 편하게 사람들과 만나고 웃고 떠들 수 있는 순간이 오기를 간절히 바래야지 않겠는가. 모두의 가슴속에 간절한 소망으로 간직돼 있을 공통의 소원을 수능일만 되면 조명되던 갓바위 약사여래불께 간절히 소망해야겠다.선본사 쪽으로 오르면 쉬운 길이라고 해 그쪽으로 후들거리는 다리를 옮겨본다. 가끔 울타리에 기대어 올라온 산들을 뒤돌아보니 가슴이 좀 트인다. 흐릿하던 날씨도 기분에 따라 바뀌었던가. 어느 순간 공기엔 차가움 대신 따스함이 느껴지고 송골송골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다. 등산화를 신고 양손에 스틱을 집고 장비를 갖추고 오르면서도 숨이 헐떡이는데 저만치서 하얀 고무신을 신은 할머니 한 분이 발랑발랑 소리가 날 정도로 가벼운 발걸음으로 내려오신다. 입은 바지는 몸빼처럼 얇아 보이는 것이고 위에는 그냥 스웨터 차림이시다. 히말라야 정상이라도 오를 듯이 단단히 무장한 차림새로 나선 내 모습이 갑자기 내려다보이며 얼굴이 화끈거린다. 가벼운 차림새의 연세 드신 할머님도 저렇게 가벼이 다녀오시는 길을 아직 젊다고 생각하는 이가 이렇게도 헐떡대다니. 무안한 마음을 달래며 질문을 건냈다. “갓 바위까지 아직 멀었습니까?” 여쭈니 할머님은 뒤로 돌아서서 손으로 가리키시며 낭랑한 목소리로 이야기하신다. “바로 저기야, 얼마 안 가면 바로 나와~!”라고.다시 힘을 내 무릎을 짚어가며 오르기 시작한다. 끝없이 계단이 이어진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심장이 두 방망이질하는 듯이 쿵쿵댄다. 그 소리가 귓전에까지 들려 올 것 같은 순간 염불 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려온다. 드디어 갓바위에 다가든 모양이다. 반야심경을 외고 있는 비구니 스님의 목청이 아침 공기를 가르며 가슴에 파고든다. 불교의 교리를 잘 알지 못하지만,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살생하지 않으며 매사에 집착을 버리면 복을 지으며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믿는 신께 복을 기원하고 갈구하기보다는 복은 스스로 짓는 만큼 이뤄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쁜 마음을 먹지 않고 좋지 않은 행동은 삼가고 더불어 살아가야 할 이웃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스스로 복을 짓는 것이 아니랴 싶다.한 걸음 한 걸음 뗄 때마다 가슴속에 묻어둔 소원을 되새긴다. 한 방울씩 떨어지는 낙숫물이 단단한 바위를 뚫듯이 저마다의 간절한 소원을 빌어보자. 그러면 박사모처럼 갓을 머리에 쓰고 계신 인자하신 모습의 관봉약사여래불은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시지 않으랴. 저마다의 가슴속의 소원을 되새기면서 남은 한 해도 무사히 마무리 할 수 있기를, 그리해 더 나은 새해를 맞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어떠한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약사여래불을 마음으로 불러대는 등산객들의 갈구가 갓바위 부처님께 닿아서 각자의 소원이 이뤄지기를, 온 나라에 평화와 안정이 깃들기를, 한 가지 소원이 꼭 이루어지기를.

수능 한국사 출제 방식 문제 있다

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 이사장 대학수학능력시험은 1994년에 도입됐고, 학생이 대학에 진학해서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이다. 수능시험은 고교에서 배우는 국수영, 사탐, 과탐의 과목별 교과 내용에 근거해 학생의 사고력과 학업 성취도를 동시에 측정한다. 수능시험은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는 자질과 지적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를 판단하는 적성검사의 성격도 가지고 있다. 각 과목을 1~9등급으로 나누고는 몇 개 영역 등급 합으로 수시모집 최저학력기준 충족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에 자격 검정의 성격도 가지고 있다. 정시모집에서는 과목에 따라 반영비율을 달리하거나 특정 과목에 가중 또는 감산점을 주고는 총점으로 학생을 선발하기 때문에 선발 고사의 기능도 가진다.현행 수능시험에서 국어 수학 사탐 과탐은 상대평가다. 상대평가에서는 문제의 난이도에 따라 유불리가 발생하지 않는다. 문제가 아무리 어려워도 상위 4% 안에 들면 1등급이고 11% 안에 들면 2등급이다. 상대평가에서는 원점수 100점 만점 기준으로 80점을 받아도 전체 응시자의 4% 안에만 들면 1등급을 받는다는 말이다. 반면 영어와 국사는 절대평가다. 이 경우 문제의 난이도는 초미의 관심사가 된다. 쉬우면 좋은 등급을 받을 수 있고, 어려우면 상대적으로는 우수한 점수를 받아도 등급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지난해 영어는 1등급(원점수 90점 이상)이 7.43%였으나, 올해는 문제가 쉬워 1등급 비율은 더 늘어날 것이다. 한국사도 절대평가이기 때문에 난이도에 따라 등급별 숫자는 달라진다. 영어는 수시 최저학력 기준 충족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뿐만 아니라, 정시에서도 많은 대학이 등급마다 차등을 두고 점수로 반영하기 때문에 수험생들이 경시할 수 없는 과목이다. 반면에 한국사에 대한 관심도는 현저하게 떨어진다. 한국사는 원점수 50점 만점에 40점 이상이면 1등급이다. 그다음부터는 5점 간격으로 등급이 달라진다. 대부분 대학에서 인문계는 3등급(30점), 자연계는 4등급(25점)을 받으면 손해가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다수 수험생은 한국사에 별로 관심이 없다.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올바른 역사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2017학년도 수능부터 한국사는 필수로 도입됐다. 그러나 해마다 최소한의 기본 요건도 갖추지 못한 문제 때문에 한국사 시험 무용론이 제기돼 왔다. 올해 몇몇 한국사 문제는 국사 공부를 전혀 하지 않고도 정답을 찾을 수 있었다. “이 같은 수능 문제는 담당 교사에게 허탈감을 주고, 교사의 존재 의미 자체를 폄훼한다”며 현장 교사들은 반발하고 있다. 교사들은 “이번에 논란이 된 한국사 일부 문항은 정규 교육을 전혀 받지 않아도 정답을 찾을 수 있는 문제여서 역사교육 강화 취지를 무색케 만들었다. 타당도와 변별력을 갖추지 못한 문항으로는 올바른 역사 교육은커녕 한국사 교육의 파행을 초래할 수 있다”라고 비판했다.올해 수능 한국사 시험은 거센 논란을 불러일으킨 홀수형 기준 20번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뗀석기’를 찾는 1번 문항도 코미디라고 말한다. 한국사를 전혀 공부하지 않아도 그림을 보고 ‘주먹도끼’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11번 문제도 ‘창의군의 영수 전봉준이 충청 감사에게 글을 올립니다’로 시작되는 지문을 주고는 옳은 설명을 고르라고 했다. 보기가 정말 코미디 수준이다. 베트남 전쟁, 안시성 전투, 한산도에서의 대승, 인천 상륙 작전 같은 보기와 함께 ‘우금치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다’는 보기를 제시했다. ‘일본군과의 전투’만 보면 답은 바로 찾을 수 있다. 전봉준 관련 지문을 읽으며 어떻게 함께 제시된 다른 보기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겠는가. 예로 든 이 세 문항은 모두 2점이 아니고 3점짜리 문제다. 시험을 치고 나온 어느 수험생의 말이 압권이다. “선생님, TV 코미디 프로가 없어진 이유를 아세요? 수능 한국사 문제가 사람들을 충분히 웃겨주기 때문에 폐지된 것입니다.” 수험생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는 것은 한국사 시험이 종이 낭비라는 뜻이다. 공부하지 않아도 기본 점수를 받을 수 있고, 절반만 맞아도 아무 불이익이 없는 과목은 학생들의 관심을 끌 수 없다. 한국사 시험 난도를 높이거나 정시에서 반영 비율을 좀 더 높여야 한다. 아니면 수능 응시 과목에서 과감히 빼는 것이 바람직하다. 교육 당국의 냉정한 성찰과 합리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시장에 맞서는 오만은 이제 그만

오철환객원논설위원가계부채가 경제의 뇌관으로 떠오르고 있다. 가계부채 급증은 크게 보아 부동산 정책 실패와 경기침체에 기인한다. 부동산 가격에 연동된 부동산 담보대출이 급증하고, 전세가에 연동된 전세보증대출이 폭증한 것이 그 한 축이라면, 소득주도성장의 실패와 노사갈등 일상화 및 정치적 갈등에 뿌리를 둔 일본과의 무역마찰 등으로 초래된 총체적 경제난국 상황에서, 설상가상 코로나 팬데믹이 뒤통수를 치는 바람에 소시민을 비롯한 취약계층의 생계형 대출이 급증한 것이 또 다른 한 축이다.가계부채 급증은 원리금 부담을 가중시키고, 원리금 부담 가중은 가처분 소득을 줄여 소비를 위축시킨다. 소비위축은 다시 소득을 줄여 채무부담을 높이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그 악순환의 끝은 파산이다. 한계상황에 처한 가계와 기업의 파산은 심각한 금융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초래한 복합불황이나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이 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같은 일이 결코 강 건너 불이 아니다. 손쓰기 힘든 상황이 오기 전에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대형사고는 갑자기 또는 우연히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그 이전에 여러 차례 경고성 징후와 좋지 않은 조짐을 보여준다. 그런 사소한 전조들을 방치하거나 간과하면 결국 큰 사고가 터지고 만다. 이를 통계적으로 정리한 것이 하인리히의 법칙이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속담이 있다. 계속 늦장을 부리면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하인리히의 법칙과 전래 속담은 타이밍의 중요성을 강조한 공통점이 있다. 일이 악화되기 전에 적확한 조치를 취해야만 낭패를 피할 수 있다.최근 은행 가계대출을 조이고 있는 걸 보면 정부도 나름 위기상황을 인지하는 듯하다. 허나 돈줄을 틀어막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언 발에 오줌 누는 꼴이다. 오줌 싼다고 고무줄로 고추를 싸매는 어리석음이다. 좀 더 근원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 언 발을 녹이려면 불을 피우는 것이 정석이고, 오줌을 싸지 않게 하려면 자기 전에 수분 섭취를 막는 것이 발본색원하는 방법이다. 병을 근본적으로 치료하는 원인요법이 아닌 그 증상만 다스리는 대증요법은 병을 더 키울 뿐이다.정부가 은행대출을 틀어막으면 제2금융권에 몰려가는 것은 당연지사다. 비은행권의 대출이 소액이다 보니 여러 곳에서 빚낼 수밖에 없고 금리가 더 높다 보니 원리금 부담이 더 커지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 막판엔 사채업자를 찾아 급전을 쓰게 마련이다. 가계부채를 줄이자는 선의가 오히려 취약계층을 막다른 길로 내몰고 있다. 세상에 빚내고 싶어 안달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몰리다 보니 부득이 빚을 내는 것이다. 그 어쩔 수 없는 상황을 개선시켜주는 것이 빚을 내지 않도록 하는 근원적인 처방이다.가계부채를 개선하고자 한다면 가계소득을 올려줘야 한다. 가계소득은 시장을 통해 얻어진다. 결국 가계부채를 줄이는 근본적인 방책은 시장을 활성화시키고 경제를 살리는 것이다. 정부가 기업 친화적이고 시장 친화적이어야 경제가 기를 편다. 경제성장은 기업이익을 증가시키고 투자를 활성화시키며 고용을 늘린다. 노동수요가 늘어나면 임금이 올라가는 것은 불문가지다. 경제 전반에 걸쳐 선순환이 일어나고 확대재생산으로 이어진다. 이는 경제의 원론이다. 정부도 이런 이치를 모를 리 없다. 그런데 왜 스테로이드 주사를 놓는 식으로 부작용이 뻔한 대증요법을 쓰는 걸까. 정치권의 성급한 요구에 호응해야 하는 사정이 그 원인일 것이다. 고위직으로 갈수록 임기가 짧고 정치바람을 타는 반면 근원적 처방은 그 효과가 더디고 인내와 고통을 수반한다. 그러다 보니 즉효가 나는 대증요법을 선호하는 모양이다.부동산정책도 예외가 아니다. 당장 돈을 틀어막는 대증요법이 먼저 나오는 경향이 있다. 더디고 힘들지만 공급을 늘리는 것이 맞는다. 수요는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사항이고 불특정 다수로 분산돼 있어 그 조정이 어렵다. 부동산정책은 공급에 방점을 둬야 한다는 뜻이다. 부동산수급은 이동성이 떨어진다. 따라서 수요가 몰리는 지역에 공급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수요가 서울에 몰리는데 대구에 집을 지어봐야 말짱 황이다. 강남에 수요가 몰리면 강남에 충분한 물량을 공급하는 것이 요체다. 강남 부동산의 물량이 늘어나 그 효용이 떨어지면 수요도 줄어들고 가격도 떨어지게 마련이다. 답은 현장에 있고 의외로 단순하다. 시장에 맞서는 오만은 이제 그만 접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