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현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대표 놀라움이나 감탄을 표현할 때 예전에는 ‘와’ 또는 ‘우와’라고 외쳤다. 요즘은 많은 사람이 ‘우와’ 대신 ‘와우’라고 소리친다. 여든 중반의 어느 할머니가 “젊은 애들이 왜 ‘와우’라고 고함지르는지 모르겠다. 그 소리 듣기 싫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영어를 모르는 할머니에게 그 이유를 설명하면 화만 더 나게 할 것 같아 “그러네요, 저도 맘에 안 들어요.”라고 답했다. ‘와우(wow)’는 영어 감탄사이다. 이제는 ’우와‘보다는 ’와우‘가 더 보편적인 감탄사가 된 것 같다. 최근 대화 전문 인공지능 챗GPT와 대화를 나누다가 너무 놀라 처음에는 ’우와‘ 라고 하다가 갑자기 톰 피터스의 저서가 떠올라 다시 ‘와우’라고 외쳐보았다.챗GPT에 ‘칼럼니스트에 관한 시를 써 보세요.’라고 했더니 이런 글을 썼다. “칼럼니스트라는 존재는/소소한 일상에서부터/큰 사회 이슈까지/매일 같이 풍부한 이야기를 선사한다.//쓰기 힘든 날도 있겠지만/그녀들과 그들의 글은/우리의 생각을 바꾸고/세상을 더욱 밝게 비춰준다.//그들의 글을 읽으면서/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새로운 시선을 배울 수 있다.//칼럼니스트여, 당신의 글은/가끔은 힘들고 지칠 때도 있겠지만/우리를 위한 작은 선물이 되어준다.//당신이 쓴 글들은/항상 우리를 더 나은 사람으로 이끌어줄 것이다.” 시적 기교는 논외로 하고 내용만 본다면 아주 탁월하다. 같은 제목으로 다시 쓰라 하니 이번에는 ‘문학적인 느낌의 시로 작성하였습니다.’라는 멘트와 함께 5연의 다른 시를 썼다. “칼럼니스트의 글씨는/세상을 바꾸는 매직잉크와 같다/흔들림 없는 글귀는/때로는 진실을 밝히고 때로는 깊이 있는 이야기를 품는다 ... 중략... 그들은 글쓰기의 마법사이자/우리의 지혜와 희망이다/칼럼니스트의 말이 우리를 움직이며/세상을 변화시키는 큰 힘이 된다.” 정말 놀랍다. 모든 정보가 실시간으로 입력되고 챗GPT가 더 발전하면 칼럼니스트 상당수는 설 자리가 없을 것 같다. 어떤 기사를 읽고 독자의 정치적 성향과 직업 등을 입력해 주면 챗GPT가 다양한 관점에서 좋은 칼럼을 작성해 줄 것이다. 앞으로 의사, 변호사, 회계사, 세무사, 기자, 교육 관련 종사자 등 현재 인기 있는 전문직 수요가 대폭 줄어들 전망이다. 많은 저서에 챗GPT가 공동 저자로 표시될 것이다. 이미 그렇게 출판하는 책이 있다.탈 중심 다원적 사고를 중시하는 포스트모던 철학을 기업 경영에 최초로 도입한 톰 피터스는 “누구나 과거의 직장인이 아닌 새로운 무언가로 거듭나야 한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가?”라고 물으며 저서 ‘Wow 프로젝트’에서 그 해답을 제시한다. 그는 대기업에 소속되어 있든, 1인 기업이든, 직책과 관계없이 ‘독립 계약자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라’라고 강조한다. 이런 ‘정신적 독립 계약자’를 그는 ‘브랜드유(Brand You)’라고 부른다. ‘브랜드유’는 스스로 자신의 삶을 책임진다는 자세로 자기 능력을 끊임없이 발전시키고 자신을 홍보하며, 자신을 도와줄 지지자를 찾는데 열성적이다. ‘브랜드유’가 추구하는 업무는,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기억에 남을 만한 것’, 즉 ‘Wow!’라는 감탄사가 터지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를 ‘와우 프로젝트(Wow Project)’라고 말한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창조적 아이디어를 생산할 수 있어야 살아남는다. 이제 기업도 고객을 자신과 운명을 함께 하는 동반자로 생각하고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버틸 수 있다.인공지능은 인간이 이미 창조한 것을 조합하여 무엇을 생산한다. 인공지능이 따라올 수 없는 남다른 창의성과 상상력을 가진 사람은 엄청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말도 된다. 미래 사회는 많은 정보를 암기하고, 계산 능력이 빠른 사람보다는 인공지능이 제공하기 어려운 인간적인 감성과 배려의 마음, 이해심과 협동심, 독특한 사고, 조직력, 가치 판단 능력 등을 가진 사람이 귀한 대접을 받을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아날로그적인 미덕에 입각한 인성 교육, 소통과 상생, 특히 기존의 고정관념과 낡은 제도, 상투적인 것들에 항거하며, 새로운 가치와 사랑을 추구하고, 지적인 유연성과 다양성, 탄력성을 중시하며, 정신과 영혼의 힘을 길러줄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 인간다움에 대한 사색과 인간의 욕망에 대한 이해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