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

해바라기 / 원무현아버지/ 뽕밭에 묻어야 했던 날/ 나와 어린 동생은 장맛비 속에/ 하염없이 고개를 꺾었지요// 바람 앞에 촛불처럼 겨우 붙어 있던 목/ 추스르신 어머니/ 아픈 목을 쓸어안으며/ 팍팍한 세상 잘 떠났지 뭐/ 죽은 사람은 죽은 것이고/ 산사람은 살아야지/ 팽! 코를 푸실 때/ 쪼개진 구름 사이에서/ 색종이 같은 햇살이 쏟아져 내렸지요/ 어머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얘들아 해바라기 같은 내 새끼들아/ 고개 빳빳이 세우고 저기/ 저기 해 좀 보아/ 아무리 보아도 어머니/ 어머니 눈엔 아버지 얼굴만 떠있었는데요- 시집 『홍어』 (한국문연, 2005).......................................................아마추어 시인의 시들이 실패하는 이유가 여럿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무언가를 자꾸 설명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나도 전에 그랬고 지금도 그 습성은 남아있다. 제 스스로 시의 설계도를 깔끔하게 그려낼 재간이 부족한 탓도 있겠고, 독자들의 감상수준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하여 납득과 공감을 얻으려다 도리어 난삽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반면에 ‘시적 장치’의 지나친 비약과 함축, 지적인 시에 대한 막연한 동경, 혹은 ‘시적 상상력’을 핑계로 문맥의 부정확을 방기하는 것 역시 초보 시에서 자주 보이는 결함들이다.시의 난해성 여부와 문학성과는 거리가 멀다. 대중성 획득을 위한답시고 억지 이미지를 덧씌우거나 낡고 다 아는 메시지를 에워싸는 상투적인 서술이 지적 받는 것이지, 쉽게 소통 되는 시가 문제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맥락도 없이 난해한 시는 지적인 시로 분칠한 것일 뿐 문학성과는 더더욱 거리가 멀다. ‘문학성’과 ‘대중성’을 한꺼번에 얻을 수 있다면 그야말로 바람직한 좋은 시의 형태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원무현의 시도 같은 미덕을 지니고 있다. 우선 그는 좋은 시인으로서의 자질과 기질을 지니고 있다. 그의 모든 감각기관과 세포가 일제히 시를 향해 열려있고, 오랫동안 ‘시적인’ 삶을 살아냈기 때문만은 아니다.시의 언어가 생리적으로 체험이나 사물의 구체를 겨냥하기 때문만도 아니다. 좋은 시인은 그의 내면의 상처를 복기, 분석하여 그것에 보편적 의미를 부여할 줄 아는 사람이다. 고만고만한 시인들의 대개는 자기의 감성적 상처를 지나치게 과장하거나 그것을 억지로 감춤으로써, 끝내 추상이나 힘겨운 감상의 망토를 벗지 못하는데 반해 원무현의 시에는 삶과 자신의 체중이 고스란히 실려 있다. 서정의 갈래는 각기 다르지만 함민복, 도종환, 유홍준, 문동만 등의 시가 그러한데 그리 읽혀지는 시인은 의외로 많지 않다. 그의 첫 시집 ‘홍어’에는 삭힌 홍어만큼이나 그 향취가 농후하고 불콰한 기색이 역력하다.‘해바라기’는 시인 자신의 상처와 회상에 머물지 않고 시를 읽는 사람에게도 똑같은 정서적 반응으로 자리하게 되는데, 사실은 시집 표제작인 ‘홍어’가 농도에 있어서는 더 짙은 편이다. 한 편의 시로 빙그레 미소를 머금거나 가슴이 따뜻해지고 머리가 맑아질 때가 있다. 흔치 않지만 눈물을 자아나게 하는 시도 있다. 웃음과 울음은 맥박수를 증가시키고 혈액순환을 돕고 산소의 호흡량을 증가시켜서 건강에 이롭다고 한다. 오히려 울음은 눈물을 통해 체내의 유해한 독소물질이 빠져나가기 때문에 웃음보다 더 유익하다고 한다. 그래서 예전엔 명절 다음날 영화관을 찾아 팽! 울음 코도 곧잘 풀었다.

피안 / 이승훈

피안/ 이승훈머리를 빡빡 깎고 싶은 밤이 있지 어제도 거실에서 술 마시다 말고 스님처럼 머리 빡빡 밀고 싶어 화장실 들어가 거울보고 그래 빙판을 머리에 얹고 다니는 거야 검은 머리칼이 아귀다 중얼대고 나왔지 어느 날 머리 빡빡 깎고 집에 오면 아내는 내가 이젠 완전히 미쳤다고 하겠지- 계간 《시작》 2009년 봄호...............................................강수연이 ‘아제아제 바라아제’에서 비구니 연기를 위해 머리칼을 싹둑 잘라내 화제가 된 게 꼭 30년 전이다. 당시엔 그 삭발로 인해 2년간 다른 작품을 출연하지 못할 정도로 여성배우에겐 큰 부담이었다. 이후 수많은 배우들이 머리를 밀었다. 배우들의 연기를 위한 삭발은 큰 주목을 받지 못할 만큼 예사로운 일이 되었다. 연기와 상관없이 연예인들 사이에선 헤어 패션의 하나로 자리 잡았고,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트렌드가 되었다. 탈모를 숨기기 위해서, 흰머리 염색이 성가셔서, 비듬이 많아서, 듬성듬성 난 머리카락이 흉해서 아예 밀어버리기도 한다.그날이 그날인 반복적이고 무료한 일상에서 뭔가 변화를 주기 위해 머리를 자르기도 한다. 별다른 까닭 없이도 머리를 빡빡 깎고 싶은 충동이 일 때가 있다. 자잘한 일상의 번뇌와 망상으로부터 벗어나고자 스님처럼 머리를 밀어버리고 싶은 순간도 있는 것이다. 문득 ‘검은 머리칼이 아귀다’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 세상에서 다른 삶을 다르게 살아보고 싶은 자아 충동인 것이다. 과거엔 여자들이 머리를 자르기만 해도 실연했냐는 소리를 들었다. 변화를 통한 새로운 삶의 깨달음이 피안으로 가는 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피안은 불교용어로 진리를 깨닫고 도달할 수 있는 이상적 경지를 말한다. 이승의 번뇌를 해탈하여 열반의 세계에 도달하는 경지를 이른다. 누군가에게도 그 삭발이 피안의 세계로 가는 길일까. 그러나 대개는 시간에 지남에 따라 자신도 변하지 않을뿐더러 세상도 바뀌지 않아 삶은 그대로일 가능성이 더 많다. ‘그래 빙판을 머리에 얹고 다니는 거야’ 결기를 다지며 머리를 깎아도 돌아오는 것은 세상의 빈정거림이다. 스님 될 것도 아니고 군대 갈 것도 아니면서 머리는 왜 미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아내조차 ‘이젠 완전히 미쳤다고’ 그런다.누구를 위한 삭발들인가. 세상을 구제하지도 못하고, 그 ‘빙판’위에서 스스로 영혼의 스케이팅을 즐길 것도 아니라면 도대체 머리카락을 갖고 왜 장난질을 치는지 모르겠다. 사람의 머리카락 수는 보통 10만개, 하루 빠지는 머리카락 수는 100가닥에 이른다고 한다. 아직은 심각하게 염려할 정도는 아닌데 나도 매일 바닥에 부려진 머리카락의 잔해를 닦아내는 게 일이다. 가만히 두어도 머리카락은 매일 사라진다. 머리카락은 외부의 충격과 태양 광선으로 부터 두피를 보호한다. 10만 개의 머리카락을 한데 묶으면 5톤 트럭도 끌 수 있다고 한다.머리카락은 대부분 문화권에서 생명의 분신이자 힘의 상징으로 여겼다. 성서에 나오는 삼손은 머리카락을 잘려 힘을 잃었으며, 로마 황제를 가리키는 단어 ‘카이사르’도 머리털이 긴 남자를 뜻한다. 뉴질랜드의 마오리족도 머리를 깎거나 깎인 사람은 한동안 일상생활을 못하게 했다. 우리나라는 터럭 한 올도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재산으로 여겨 빠진 머리칼도 따로 모아 두었다. 삭발하는 정치인 자신들이야 각별한 저항의 상징과 지지자들의 결집을 목적으로 미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들 평범한 시각으로는 ‘피안’은커녕 ‘쇼’ 이상의 의미를 보지 못하겠다.

9월 / 문인수

9월 / 문인수무슨 일인가, 대낮 한차례씩/ 폭염의 잔류부대가 마당에 집결하고 있다/ 며칠째, 어디론가 계속 철수하고 있다/ 그것이 차츰 소규모다/ 버려진 군용 텐트나 여자들같이/ 호박넝쿨의 저 찢어져 망한 이파리들/ 먼지 뒤집어쓴 채 너풀거리다/ 밤에 떠나는 기러기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몇몇 집들이 더 돌아와서/ 또, 한세상 창문이 여닫힌다.- 시집 『동강의 높은 새』 (세계사, 2000)..................................................9월도 중순을 지나면서 완연한 가을 기운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아직도 8월 더위의 잔류부대가 완전히 철수하지 않아 간헐적으로 30도를 웃도는 날들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차츰 소규모다’ 간간이 방안에서는 선풍기가 돌고 있지만 앞으로 에어컨을 가동할 일은 별로 없을 것 같다. 역시 추석 지나고 9월 중순쯤 되니 계절은 가을의 영역임을 분명히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그럼에도 어쩌면 매복중인 더위가 한두 차례 기습을 가해올 수 있겠고, 곳에 따라서는 ‘대낮 한차례씩 폭염의 잔류부대가 마당에 집결’해 있는 것을 볼지도 모르겠다.‘호박넝쿨의 저 찢어져 망한 이파리들’ 어쩌면 저 망한 이파리들은 수정받지 못한 호박꽃과 함께한 운명일 수도 있겠다. 호박꽃은 얼른 보면 비슷하게 생겼지만 자세히 보면 암꽃의 아래쪽엔 구슬만한 호박이 달려 있는 반면 수꽃은 그냥 꽃만 있다. 암꽃의 암술에 수꽃의 꽃가루가 벌 나비에 의하여 수분이 되어야만 호박으로 자란다. 역할을 다한 수꽃이나 수정을 못 받은 애기호박은 자라지 못하고 꽃과 함께 떨어진다. 그럴 수 있고 아닐 수도 있겠으나 ‘먼지 뒤집어쓴 채 너풀거리’는 후줄근한 신세들의 표정이다.한편 그늘진 곳 양치식물은 빳빳이 줄기를 세우고, 기러기들은 군사시설 철조망 위로 힘껏 날아오른다. ‘밤에 떠나는 기러기 소리’에 어린 갈대가 저절로 흔들린다. 그러나 폭염과 싸우고 고달픈 인생과도 싸웠던 ‘몇몇 집들이 더 돌아와서’ ‘또, 한세상 창문이 여닫힌다.’ 이렇게 시간은 흘러 다시 9월의 한복판 속으로 들어와 있다. 간이역 투명한 햇살을 받으며 ‘귀향 환영’ 현수막이 늦도록 내걸렸다. 그러나 내 고향 가는 길 저 멀리 새털구름 한 자락 덩그러니 걸려있을 뿐 어디에도 고향에 온 것을 반기는 현수막은 뵈지 않는다.문인수 시인의 고향인 성주 가는 길은 햇살의 농도와 상관없이 여전히 일상이 접혀있다. 황금빛 몸살을 앓는 고향 사람들은 지난 수년간 밤마다 한 곳에 집결해 내내 지난여름을 추억하듯 지글지글 끓었다. 코스모스는 살래살래 철없이 손짓하지만 어디로 가지 못하고 꼼짝없이 9월의 길목에 퍼질러 앉아있었던 것이다. 가을의 순한 햇살은 은총처럼 쏟아지는데 들판의 평화는 온전히 찾아온 것 같지 않다. 언제쯤이면 지난날들을 뿌듯하게 추억하며 들녘의 환한 웃음으로 되돌아올까. 지긋하게 노을을 바라보고 귀뚜라미 울음도 맑게 들을 수 있을까.닫힌 창문 다시 열고 약속이 소망으로 열매 맺는 고향땅을 볼 수 있으려나. 저 시리도록 푸른 하늘에 떠있는 양떼구름 한 틀 짊어지고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생기려나. 고향 땅 무흘 계곡은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의 학문을 이어받은 한강 정구 선생의 숨결이 고스란히 스며있는 곳이다. ‘선지후행, 경의협지’ 새삼 그의 깊은 학문과 애국애민의 정신을 기린다. 가을에 들어서서 몸을 더욱 덥게 하는 것은 세상의 기류다. 누구는 배코를 치고 또 누구는 밥을 굶는단다. 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가을의 삽상한 기운을 느끼기는 당분간 어려울 것 같다.

농무 / 신경림

농무(農舞)/ 신경림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 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쪼무래기들뿐/ 처녀애들은 기름집 담벽에 붙어 서서/ 철없이 킬킬대는구나/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 산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 두고/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나리를 불거나/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거나.- 계간『창작과 비평』 1971년 가을호.........................................................1956년 문학예술에 ‘갈대’를 발표하면서 시업의 길로 들어선 시인은 곧 낙향해 10년 넘도록 시를 쓰지 않았다. 1956년은 한국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침울하고 가난한 시기였다. 그의 낙향은 등단 무렵 유행한 모더니즘 정서와 자신의 시풍이 어울릴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나중에 술회하였다. 이후 농사와 날품팔이로 전전하던 그는 71년 '창작과 비평' 가을호에 ‘농무’ 등 5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시작을 재개했다. 10년 동안 만난 많은 사람을 위해 그들이 하고 싶어 하는 노래와 얘기를 대신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쓴 시편들이다.시에는 우리들 삶의 모습과 정서가 표현되어야 하고, 현실에 깊이 뿌리박고 있을 때 감동을 준다는 시론을 그는 줄곧 펴왔다. ‘농무’는 선생의 평소 시에 대한 태도가 고스란히 드러난 작품으로, 고단한 민중의 삶에서 시의 소재를 찾아내 농민의 애환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한국 현대시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처음엔 이문구 작가의 주선으로 한 ‘유령출판사’에서 3백부 자비로 출간되었던 이 시집이 2년 뒤 75년 ‘창비시선’ 1호로 간행되는데, 지금까지 75쇄는 찍었을 것이고 어림잡아 75만 부는 족히 팔려 나갔을 것으로 추정된다.하지만 살면서 시집을 한 번도 사본 일이 없거나 평소 시를 무슨 사교가 전파하는 전도 ‘찌라시’처럼 여기는 일반인들에게는 여전히 ‘낯선 시’일 수도 있겠다. 70년대의 급격한 산업화 과정 속에서 해체되어가는 농촌의 피폐한 현실을 생생하게 떠올려주는 시는 농민의 울분과 암담함이 역설적으로 표출되었다. 이렇듯 힘 있는 언어로 독자들을 감동시킨 시가 전에 또 있었던가. 당시 ‘비료 값도 안 나오는 농사’를 짓는 농민의 답답한 심정과 발버둥치는 모습이 오히려 ‘날라리를 불고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드는’ ‘신명’으로 변주된다.그들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거나 ‘서림이처럼 해해대’며 즐거운 듯하지만(꺽정과 서림은 홍명희의 '임꺽정'에 등장하는 인물로 서림은 나중 꺽정을 배신한다), 결국은 ‘산 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며 자신들의 삶을 자학하거나 체념하고 만다. 오늘날 농촌의 모습은 예전에 비해 사정이 많이 나아졌다지만 깊은 속을 들여다보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흘린 땀에 비해 그 대가는 알량하고 미래는 불안하기만 하다. 추수를 앞둔 들판에서 피를 뽑으며 주름웃음 짓는 늙은 농부의 모습이 TV에 비춰졌다고 신바람이라 생각지는 마시라.

해남에서 온 편지 / 이지엽

해남에서 온 편지/ 이지엽아홉배미 길 질컥질컥해서/ 오늘도 삭신 꾹꾹 쑤신다// 아가 서울 가는 인편에 쌀 쪼간 부친다 비민하것냐만 그래도 잘 챙겨묵거라 아이엠 에픈가 뭔가가 징허긴 징헌갑다 느그 오래비도 존화로만 기별 딸랑 하고 지난 설에도 안 와브럿다 애비가 알믄 배락을 칠 것인디 그 냥반 까무잡잡하던 낯짝도 인자는 가뭇가뭇하다 나도 얼릉 따라 나서야 것는디// (중략) 지랄 놈의 농사는 지먼 뭣 하냐 그래도 자석들한테 팥이랑 돈부, 깨, 콩, 고추 보내는 재미였는디 (중략)더 살기 팍팍해서 어째야 쓸란가 모르것다 너는 이 에미더러 보고 자퍼도 꾹 전디라고 했는디 달구똥마냥 니 생각 끈하다// 복사꽃 저리 환하게 핀 것이/ 혼자 볼랑께 영 아깝다야- 시조집 『해남에서 온 편지』(태학사, 2000)....................................................진한 남도사투리의 정서가 따로 해석이 없어도 통째로 스며든다. 시인이 이 시의 배경에 대해서도 언급한 바 있어 마저 소개한다. “내가 있는 학교의 제자 중에 수녀가 한 사람 있었다. 시를 쓰기 몇 해 전 남도 답사길에 학생 몇이랑 그 수녀의 고향집을 들르게 되었는데 노모 한 분만 집을 지키고 있었다. 생전에 남편이 꽃과 나무를 좋아해 집안은 물론 텃밭까지 꽃들이 혼자 보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흐드러져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엄니도 하늘로 간 ‘애비’를 따라나섰고, 고향집도 사라져버렸다고 한다.그리움은 보고픈 감정이 해결되지 않을 때의 묵힌 정서 상황이다. 사랑하는 사람 사이의 그리움이 별밭에 일렁이는 은하수라면 고향에 계시는 부모들의 대처로 나간 자식들에 대한 그리움은 차라리 겨울비탈에 선 애절한 나목이다. 부모둥지 떠난 자식들의 고향 찾는 횟수가 고작 일 년에 두어 번. 그조차 여의치 않을 수 있다. 너나없이 승용차가 있고 씽씽 고속열차가 달려도 사정은 별반 나아진 게 없다. 힘들게 고향을 찾아와서도 재깍 내뺄 궁리만 앞선다. 처음부터 복귀할 만반의 태세를 갖춘 듯하다. 그래야 잘나가는 자식의 유세처럼 보인다.우리 ‘엄니’들이 일찌감치 명절날 달력에 동그라미 치고 그리움을 예약하시는 마음에 비해 추석 한나절부터 서두르는 귀경행렬을 보면 도회 사는 자식들의 부모에 대한 그리움은 참 야속하고 사무적이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이 노모는 홀로지만 참으로 꿋꿋하다. 짐짓 자식들에게 유혹의 추파를 보내지만 쉽사리 먹혀들지 않으리란 것도 잘 안다. 수녀가 되어 종신서원 받은 딸자식과 엄마의 특수한 관계와 사정은 별개로 치고, 지금 우리가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이 부모의 그것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그 불균형은 장차에는 더욱 더 심화되리라.어머니 안 계시는 추석을 세 번째 지냈다. 남 보기엔 무심한척 해도 불쑥불쑥 치밀어 오르는 그리움은 어쩌지 못하겠다. 작은 아이와 둘이서 ‘오붓하게’ 차례를 지내고 한 상에서 음식을 먹고 술도 한잔 했지만 좀처럼 적막함은 사위어들지 않는다. 어머니 아버지와는 지방의 ‘신위’ 앞에 절을 올리는 게 고작이고 손녀 지혜와는 영상통화로 만족해야했다. 나도 어쩌다가 ‘노인 홀로 가구’가 되어있지만 우리 자식들이 부모를 받들어줄 것이란 기대는 거의 무망하다. 노후의 경제적 안정 못지않게 정서적 안정과 자립이 필요한 때다. 도리 없다, 저 달은 언제나 둥글고 환한 얼굴이지만 자식에 대한 기대는 팍팍 줄이고 그리움 또한 탈탈 털어내는 수밖에는.

추석 / 권선희

추석 / 권선희아고야, 무신 달이 저래 떴노/ 금마 맨키로 훤하이 쪼매 글네/ 야야, 지금은 어데 가가 산다 카드노/ 마눌 자슥 다 내뿔고 갔으이/ 고향 들바다 볼 낯빤디기나 있겠노 말이다/ 가가 말이다/ 본디 인간으로는 참말로 좋았다/ 막말로 소가지 빈 천사였다 아이가/ 그라믄 뭐 하겄노/ 그 노무 다방 가스나 하나 잘못 만나가 신세 조지 삐고/ 인자 돌아 올 길 마캐 일카삣다 아이가/ 우찌 사는지럴/ 대구빠리 눕힐 바닥은 있는지럴/ 내사 마 달이 저래 둥그스름 떠오르믄/ 희안하재, 금마가 아슴아슴 하데이/ 우짜든동 처묵고는 사이 읍는 기겠재?/ 글캤재?- 시집 『꽃마차는 울며 간다』 (애지, 2017)...................................................................추석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얼까? 고향, 가족친지, 둥근달, 송편, 황금들녘, 성묘, 차례, 한복, 선물 그리고 고된 노동, 처량함, 귀성길 정체, 용돈, 고스톱, 추석 특선영화... 요즘은 긴 연휴와 해외여행을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 가운데서도 환한 둥근 달은 고향과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총체적으로 대변한다. 고향을 떠나온 사람이나 사람을 떠나보내고 고향을 지키는 사람이나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의 초점이 둥근달로 모인다. 가만 달의 숨소리를 들으며 세상에 없는 사람을 떠올리기도 한다. 그것은 고향에 대한 설렘이고 고향땅 부모이며 지상에 부재한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다. 살아계신 고향의 부모로서는 달려올 자식들에 대한 기다림이리라. 시에서 ‘금마’는 경상도에서 3인칭 남성을 칭하는 대명사다. 비록 가족은 아닐지라도 화자에게는 피붙이나 다름없는 친숙했던 이웃인 것 같다. ‘본디 인간으로는 참말로 좋았’던 아이가 ‘그 노무 다방 가스나 하나 잘못 만나가 신세 조지 삐고’ ‘마눌 자슥 다 내뿔고 갔으이’ 고향 들여다볼 낯짝이나 있을까 연민한다. 그래도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처묵고는 사이’ 소식 없는 것이라 애써 위안한다. 이제 이 땅의 모든 순한 길은 그 고향을 향한 설렘과 그리움의 등불로 환해졌다. 지금은 비 내리고 우중충한 날씨지만 보름달을 볼 수 있으리라 전망한다. 양쪽 부모 다 계시고 고향의 정경이 고스란한 사람이 있는 반면에, 날갯죽지 다 찢겨나가고 고향 또한 낯선 객지가 되어버린 이도 있으리라. ‘금마’도 돌아올 길을 잃어버린 날개 잃은 천사일 것이다. 그러나 마음속 깊이 간직된 고향의 원형이야 달라지랴. 다만 부모가 아무도 안 계시거나 가고 싶어도 찾아갈 형편이 못 되는 이에겐 둥근달이 내내 심란해 보이기도 할 것이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송편 빚던 어린 시절의 고향이 지금은 너무 아스라이 있다. 어머니가 개시로 내 입에 가장 먼저 넣어주었던 그 송편 맛은 잊을 수 없다. 하늘보다 내 마음에 서둘러 먼저 뜬 둥근달이 그리운 얼굴들과 포개어진다. 차마 환하게 웃을 수 없는 이웃의 얼굴들과 고단한 현실로 작아지고 모난 마음의 한 구석도 본다. 저 달빛에 젖은 마음의 꽃가지가 휘면서 까닭 모를 눈물이 난다. 인간에 대한 예의와 절망을 떠올리며 부모님께 다 하지 못한 도리를 생각한다. 자식들에게 태만했던 지난날의 회한도 불쑥 치밀어 오른다. 거처를 옮기고 처음 맞는 명절이다. 혼자 조용히 보낼까했는데 ‘뜻밖’에 작은애가 올라온단다. 내 집에서는 평시에도 달이 훤히 잘 보이는 편이다. ‘아고야, 무신 달이 저래 떴노’ 나도 작은애에게 그렇게 말하고 싶다. 삭혀진 그리움도 소환하여 되살려볼 참이다.

추석 무렵 / 맹문재

추석 무렵/ 맹문재흙냄새 나는 사람들의 사투리가/ 열무맛처럼 담박했다/ 잘 익은 호박 빛깔을 내었고/ 벼 냄새처럼 새뜻했다/ 우시장에 모인 아버지들의 텁텁한 안부 인사 같았고/ 떡집 아주머니의 손길 같았다// 빨랫줄에 널린 빨래처럼 편안한 나의 사투리에도/ 혁대가 필요하지 않았다/ 호치키스로 철하지 않아도 되었고/ 인터넷 검색이 필요 없었다/ 월말 이자에 쫓기지 않았고/ 일기예보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흙냄새 나는 사람들의 사투리를 태운/ 시내버스 운전사의 어깨가 넉넉했다/ 구멍가게 할머니의 얼굴이 사과처럼 밝았고/ 우체국에서 나온 사람들이 여유롭게 햇살을 받았다/ 이발사의 가위질 소리가 숭늉처럼 구수했고/ 신문 대금 수금원의 눈빛이 착했다- 계간 《애지》 2006년 가을호....................................................고향은 이렇듯 ‘겁나게’ 편안하고 ‘억쑤로’ 푸짐해야 마땅하다. 고향으로 달음박질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이렇듯 무장해제를 당하기 위해서다. 말씀의 긴장이 필요치 않고 주머니가 좀 심심해도 상관이 없다. 혁대를 조일 이유도 서류를 매만질 필요도 없다. 일기가 어떻든 심히 염려할 바는 아니며, 인터넷이니 SNS 따위는 까맣게 잊어버려도 나쁘지 않겠다. 얼마간은 탱자탱자하며 대체로 ‘운짐’달 일이라고는 없다.추석 무렵의 고향은 지난 계절의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잘 익은 호박 빛깔을 내었으므로 벼 냄새처럼 새뜻했다’ 그러니 여기는 모두 황토빛깔의 동색이라 ‘이발사의 가위질 소리가 숭늉처럼 구수’하고, ‘신문 대금 수금원의 눈빛’마저 착할 수밖에 없겠다. 고향이 반도의 어디든 모두 느낄 수 있는 고향의 정취요 정서인 것이다. 설령 체감하기 쉽지 않더라도 예전의 풍경을 전하는 이 시처럼 그러면 그런 것이고 그리 믿으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하지만 이런 고향의 넉넉함과 안온함과 친근함도 하루 이틀 잠깐 머문다면 제대로 느끼기가 쉽지 않거니와 실효성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오가는 시간 빼고 뭐 빼면 남는 게 없다. 다행히 올해 추석은 주말에 물려 4일 연장 휴일이니 휴가로서는 적당한 수준이다. 실속 있게 휴가를 즐기려는 사람들은 여행가방을 미리 챙겨두었을 것이다. 이럴 때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내빼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은근히 얄밉기도 하다.‘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이런 말도 진짜로 입에서 송송 나올 것 같다. 오일장의 좌판도 전보다 물량이 훨씬 풍성해졌다. 올해는 지난해에 비해 추석물가도 저렴한 편이라고 한다. 알곡이 완전히 여물지는 않았지만 농심으로 들판은 출렁인다. 이럴 때 둥실 뜬 고향집 툇마루에 앉아 최소한 3분 이상은 달과 독대하면서 눈과 마음을 씻을 일이다. 떨어져 있던 온 가족이 어울려 맛난 음식 나눠먹으며 추억을 깔깔거려도 좋겠다.느슨했던 가족애를 확인하고 엄마 품 같은 고향의 정취를 빵빵하게 충전해갈 수 있다면 답답하게 꽉 뭉쳐진 세상사도 조금은 부들부들해지리라. 그런데 시내를 다녀보니 거슬리는 게 눈에 띈다. 내년엔 총선도 있고 하니 이것도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보면 그만인데, 난삽하게 내걸린 정치인들의 불법 추석인사 현수막. 사람들이 모두 구수해지고 착해져가는 마당에 민심인지감수성이 떨어진 그들만의 빳빳한 사심. 추석 풍경에 티가 아닐 수 없다.

푸아그라 / 이건청

푸아그라/ 이건청거위 양식 업자들은/ 거위 목에/ 음식물 다짐기의 길쭉한 대롱을 밀어 넣고/ 음식물을 욱여넣는다고 한다/ 거위 목을 한 손으로 틀어쥐고/ 다른 손으론 다짐기의 바퀴를 돌려/ 으깨진 먹이를/ 목으로 밀어 넣는다고 한다/ 거위 뱃속이 붉은 비명으로 차고/ 부풀어 오른 간이 뱃속을 채울 때까지/ 일심으로/ 으깨진 먹이를 욱여넣는다고 한다// 푸아그라/ 불란서 식 명품요리/ 거위 간으로 만든.— 《시와 표현》 2017년 11월호.........................................................‘거위의 꿈’은 날지 못하는 운명의 거위에게도 꿈이 있고 그 꿈을 향한 불굴의 의지를 역동적인 가사와 멜로디로 표현해 국민들의 사랑을 받은 노래다. “만신창이 됐지만 불가능을 가능으로 할 것”이란 각오를 밝힌 조국 법무부장관을 떠올리게 한다. ‘언젠가 난 그 벽을 넘고서 저 하늘을 높이 날을 수 있어요’ 그에게는 격려와 위로의 노래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우리 국민들 또한 결코 쉽진 않겠으나 그를 통해 난해한 희망의 끄나풀을 놓지 않으리라. 부디 불가능을 가능케 하여 검찰 사법개혁을 완수해주기 바란다.날개를 갖는 새 중에 닭이나 오리 거위들은 처음부터 날 수 있는 능력을 갖지 못해서가 아니라 단지 날 필요가 없어서 날지 않을 뿐이다. 보통의 가볍고 가느다란 다른 새들과는 달리 그들은 튼튼한 다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 튼실한 다리 때문에 하늘을 박차 오르기가 힘겨운 반면, 지상에서 먹이활동을 하는데 있어서는 유리했을 것이다. 그러나 땅위에서 달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은 하늘을 날 수 있는 능력을 포기한 대가이다.하지만 그로인해 인간에게 식용으로 사육을 당하는 불운을 겪는다. 더구나 거위는 고기뿐 아니라 푸아그라를 바치기 위해 소화능력 이상의 음식물 섭취를 강요받는다. 인간들이 저지르는 동물 학대, 그 탐욕과 잔인성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지난 한 달 동안 조국 후보자를 향해 퍼부었던 일부 야당과 언론의 무차별적인 폭정 또한 이와 다르지 않음을 느꼈다. 이 불행한 사태는 우리사회가 그동안 맹목적으로 쌓아올린 전도되고 비정상적인 가치관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정치 환경 속에서 별다른 저항 없이 수용되어온 의식의 소산은 아닐까.온갖 곳에서 오랜 기간의 적폐에 의한 결과일 수도 있겠다. 그 가운데 우리가 가장 먼저 부셔야할 벽이 정치의식의 벽이다. 정치하겠다고 스스로 나서는 사람치고 진정으로 선공후사 정신을 가진 사람은 드물다. 여전히 자신의 영달만 앞장세우는 사람들로 넘쳐나는 세상이다. 한국 정치의 불신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털기도 전에 툭 건드리기만 해도 풀풀 먼지가 날린다. 오래전 유행했던 일본어인 ‘민나 도로보데스(모두가 도둑놈들)’란 말을 떠올린다.모름지기 백성과 정치인 간의 신뢰가 정치의 근본이며, 그것 없이는 나라의 발전도 무망하다. 이번에 대통령이 가장 고심했던 것도 국민 분열에 대한 우려와 함께 그 부분이었으리라.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그 바탕 위에서 사회에 구석구석 존재하는 철옹성 같은 비정상의 벽들을 깨 부셔야겠다. 그러기 위한 가장 급선무가 권력기관 개혁일 것이다. 조국 장관이 ‘그 벽을 넘고서 저 하늘을 높이 날을 수 있도록’,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꿈은 우리 모두의 꿈이리라. 만신창이가 된 조국에게서 ‘푸아그라’만 빼먹고 내버리게 방치해서는 안 되겠다.

내부의 적 / 박지웅

내부의 적/ 박지웅나 오래전 희망에 등 돌렸네/ 그날 희망은 내 등에 비수를 꽂았네/ 그러나 그에겐 아무런 잘못이 없네/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비극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만이 지켜봐주었네/ 언젠가 내가 천천히 무대 끝에 섰을 때/ 그가 내밀던 따뜻한 거짓말이 없었다면/ (중략)/ 나 희망과 너무 가까웠네/ 죽일 수도 없었네, 희망은 그냥 사라지는 것/ 시체가 아니라 실체가 없었네/ 어리석고 친절했던 내 삶을 미워하지 않으리/ 그에겐 아무런 잘못이 없네/ 희망은 손뼉을 받으며 희망으로 돌아가네/ 나는 나에게서 사라지네- 시집『구름과 집 사이를 걸었다』 (문학동네, 2012)..............................................................온통 절망의 기운으로 휩싸인 틈새를 비집고 희망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면, 그것은 한 몸에서 싹튼 ‘내부의 적’이라 할 수도 있겠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때로는 그들의 ‘따뜻한 거짓말’이 위로가 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대립적 상황으로 맞서거나 양 극단에서 서로를 향해 손가락질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서로가 서로를 정말로 경멸하여 제거하려든다면, ‘등에 비수를 꽂’는다면 그 한 몸은 결국 공멸하고 말 것이다. 서로 등을 돌리거나 앞에서는 다투는 듯 보이더라도 뒤에서는 함께 손을 맞잡고 가야할 운명이다.절망의 토양에서 희망의 싹이 움트기도 하고 희망의 뿌리에서 절망의 종균이 자라기도 한다. 하지만 실체가 없기에 죽일 수는 없다. 어차피 ‘희망은 그냥 사라지는 것’이어서 ‘내부의 적’을 긍정한다. ‘희망은 손뼉을 받으며 희망으로 돌아’간다. 불안한 삶에서 희망은 고마운 배려임이 분명하지만, 그 희망이 우리에게 올 때의 얼굴은 다채롭다. 유효한 희망의 변별이 쉽지 않다. 희망도 거짓말을 하고 그 거짓에 현혹될 수도 있다. 그리고 희망이든 절망이든 스스로에게 중독되면 진짜로 희망은 없다. 반성하지 않는 희망을 받아들일 몸은 없는 것이다.청문회는 끝났고 대통령의 시간만 남았다. 이리저리 살펴야할 게 적지 않겠으나 바둑 격언에 ‘장고 끝에 악수’라는 말이 있듯이 오늘 아침을 넘기지 말았으면 좋겠다. 어느 경우라도 ‘조국 정국 2라운드’는 예고되어 있다. 이번 청문회에서 흥미로운 대목은 금태섭 의원이 ‘마지막 질의’에서 밝힌 소회였다. 그는 후보자의 딸이 서울대환경대학원 재학 중 장학금을 받고, 동양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는 어머니 밑에서 연구보조원으로 등록하고 보수를 받은 사실을 지적했다.등록금 때문에 휴학해야 하고, 학기 중에도 알바를 뛰어야 하는 젊은이들을 생각할 때 어쩔 수 없이 화가 났다고 했다. 설사 딸이 원했어도 부모가 재직하는 학교에서는 막았어야 온당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의 공정성에 대한 기대나 가치관에 큰 혼란을 줄 것 같아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진영 간의 대결이 된 현실, 정치적 득실 등 많은 고려사항이 있겠지만, 그 모든 것을 저울 한쪽에 올려놓고 봐도 젊은이들의 상처가 걸린 반대쪽으로 제 마음이 기울어지는 것을 어쩔 수 없다” 이러한 발언에 김종민 의원은 반발했다.“그걸 몰라서 얘기 안 한 게 아니다. 5%의 허물, 95%의 허위사실 가운데서 꼭 5%의 허물을 이야기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금 의원의 발언은 ‘내부 총질’이라는 비판과 ‘소신 발언’이라는 격려로 명백히 엇갈렸다. 설령 ‘내부의 적’이라 할지라도 그 적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 들이냐의 문제는 정부여당은 물론이거니와 우리의 정치발전과도 관련이 깊다 하겠다.

절명시(絶命詩) / 매천 황현

절명시(絶命詩)/ 매천 황현난리 속에 살다보니 백발이 성성하구나/ 그동안 몇 번이나 목숨을 끊으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제는 더 이상 어찌 할 수 없게 되었구나/ 가물거리는 촛불이 푸른 하늘을 비치는도다// (중략)// 새와 짐승이 슬피 울고 바다와 산도 낯을 찡그린다/ 무궁화 이 강산이 속절없이 망하였구나/ 가을 등잔불 밑에 책을 덮고 수천년 역사를 회고하니/ 참으로 지식인이 되어 한평생 굳게 살기 어렵구나// 일찍이 나라를 위해 한 일 조금도 없는 내가/ 다만 살신성인할 뿐이니 이것을 충(忠)이라 할 수 있는가/ 겨우 송나라의 윤곡처럼 자결할 뿐이다/ 송나라의 진동처럼 의병을 일으키지 못하는 것이 부끄럽도다.- 매천집(梅天集. 1911)에 수록된 한시 번역...........................................................................지난 주 목요일 8월 29일은 경술 국치일이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를 기억해내지 못했거나 알았더라도 그런가보다 하고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경술국치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자는 움직임이 오래전부터 있어왔고, 조례를 제정하여 조기를 게양하는 지자체도 없지 않으나 지금껏 뼈아픈 역사 성찰의 날을 국가적으로는 외면해왔다. 이날을 기념함은 단지 치욕을 들추어 되씹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근현대사를 바로 인식하고 역사 정의를 정립하여 민족 정기를 바로 세우고, 나아가 한일 양국의 발전적 미래를 위한 계기로 삼고자 함이다.한일병탄으로 시작된 피지배의 역사는 우리 현대사에 커다란 굴곡과 음영을 남겼다는 점에서 중요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이 역사적 통한의 날을 또렷이 기억함으로써 우리 민족을 핍박과 죽음으로 몰고 갔던 일본에 대하여 올바른 역사 성찰과 진정어린 사과를 요구하고 그들의 제국주의 망령이 되살아나지 못하도록 경계함과 동시에 내부적으로는 충분치 못했던 반민족 친일 잔재를 청산하고 아직도 어른거리는 그들 그림자를 말끔히 지워서 적폐세력의 발호를 막고자 함이다. 그래서 같은 오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기를 다지는 날로 삼아야겠다.더욱이 한일 양국 사이에 경술국치의 역사적 의미는 오늘날 고스란히 살아 있음을 목격하고 있지 않은가. 치욕스럽고 부끄러운 역사일지언정 사실대로 가르치고 배워 교훈을 삼는 것은 후손으로서 마땅한 도리이다. 민족적 아픔을 딛고 민족정체성 회복을 통하여 국력을 길러야 민족의 미래가 있는 것이다. 더불어 애국독립운동으로 목숨을 바치거나 희생하고도 그 명예를 찾지 못한 애국선열이 없는지 다시 한 번 지난날을 살펴봐야할 것이다. 제대로 조명되지 않은 채 묻히고 잃어버린 선열을 발굴하여 챙기고 의미를 되새기는 작업은 매우 중요하다.구한말의 황현은 시국의 혼란함을 개탄하여 벼슬을 포기하고 전라도 구례로 낙향 농촌에 은거하여 지내던 중 한일병탄 소식을 듣는다. 그는 이 국치를 통분하며 “나라가 선비를 양성한지 500년이나 되었지만 나라가 망하는 날 한명의 선비도 스스로 죽는 자가 없으니 슬프지 않은가”란 말과 함께 칠언절구 절명시 4편을 남기고서 더덕술에 다량의 아편을 타마시고 자결한다. 시를 통해 위기의 역사 속에서 역사를 이끄는 힘을 갖지 못한 지식인으로서의 고뇌와 처신의 어려움을 엿본다. 그는 역사정신의 표본이 된 평생의 기록 ‘매천야록’과 함께 후손들에게 교훈을 남긴다. 혜안도 없고 용기도 없으며 직분도 다하지 못하여 나라를 도탄에 빠트리고서도 염치 모르고 반성도 할 줄 모르는 지식인들을 꾸짖는 듯하다.

찰옥수수 / 김명인

찰옥수수/ 김명인평해 오일장 끄트머리/ 방금 집에서 쪄내온 듯 찰옥수수 몇 묶음/ 양은솥 뚜껑째 젖혀놓고/ 바싹 다가앉은/ 저 쭈그렁 노파 앞/ 둘러서서 입맛 흥정하는/ 처녀애들 날 종아리 눈부시다/ 가지런한 치열 네 자루가 삼천 원씩이라지만/ 할머니는 틀니조차 없어/ 예전 입맛만 계산하지/ 우수수 빠져나갈 상앗빛 속살일망정/ 지금은 꽉 차서 더 찰진/ 뽀얀 옥수수 시간들!- 시집 『파문』 (문학과지성사, 2005).............................................................포도 먹을 때의 느낌을 순하디순한 짐승의 눈망울을 씹는 느낌에 비유한 장옥관 시인의 시가 있었고, 이 시를 읽고 시조시인 이종문이 ‘도저히/ 포도를 이젠/ 모, 모/ 못 먹겠다/ 순하디순한 짐승의 눈망울을 씹으면서 혀로다 눈동자를 골라 내 뱉는 것 같아서’ 라면서 ‘시 한 편 읽은 뒤로’란 제목의 재미난 시를 다시 쓴 바 있다. 야채나 과일 따위의 먹는 음식에서 다른 사물을 연상하는 일은 흔히 있다. 그 사물은 대체로 신체의 특정 부위와 관련이 있다. 앵두 같은 입술이라든지 마늘 같은 코와 마찬가지로 잘 빠진 옥수수 ‘상아빛 속살’을 보고 치열 고른 건강 미인을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하긴 치아와 꼭 닮은 옥수수 알갱이에서 출발한 호기심과 연상의 연구 성과물인지는 모르지만 ‘인사돌’이란 잇몸 약의 주성분은 옥수수에서 추출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옥수수 속대를 푹 삶아서 그 삶은 물을 입안에 머금고 있다가 뱉어내기만 해도 치통으로 고생하는 일은 없다고 한다. 어린 시절 동네시장에서 한 젊은 외국인 여성이 가지를 사는 광경을 목격했다. 그때 지나가는 남정네 하나가 키득거리며 우리말로 했던 농담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다. 역시 그 무렵 할아버지 제삿날 꼬챙이에 끼워진 홍합 말린 합자를 두고 작은아버지와 고모부가 주고받았던 저질 야담도 또렷이 기억한다. 아버지의 "애들 앞에서 씰데없이..."란 핀잔까지.다만 울진 평해가 고향인 시인의 오일장 추억에서 추출한 이 시는 그 비유에 그치지 않고 들쑥날쑥 성근 이조차 간수하지 못하고 합죽한 ‘쭈그렁 노파’와 까르륵 웃어재낄 때면 상아빛 이빨 반짝이고 날 종아리 눈부신 ‘처녀애들’의 극명한 교차와 대비를 통해 잠시 생을 흥정하고 계산한다. 물론 할머니도 한때는 ‘뽀얀 옥수수 시간들’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삶이란 내내 그리 살 수는 없는 것. 잠시 ‘예전 입맛’을 계산하지만 그들이 얄밉지는 않다. 부러운 청춘들이다. 하지만 모락모락 김나는 찰옥수수의 건강한 치열 같은 그 빛나는 시간들이 마냥 이어질 수는 없으리라. 그들 또한 언젠가는 그 시간들이 뭉개져나갈 것이다.할머니는 ‘우수수 빠져나갈 상앗빛 속살일망정’ 건강하고 눈이 부실 때 ‘꽉 차서 더 찰진’ 시간을 마음껏 누리라는 무언의 덕담을 덤으로 얹어 찰옥수수를 건넨다. 어제 50년 지기인 옛 친구들 몇과 어울려 오랜만에 술추렴을 했다. 지금은 다들 건강 때문에 예전의 그 주량이 어림없는데다가 술맛도 예전 같지 않다. 만나서 4시간 남짓 시종일관 나누었던 잡담의 5할이 국내정치였고 나머지 5할이 건강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 중 상당부분을 치과 부문에 할애했다. 친구 가운데 ‘돌팔이’ 치과의사 하나가 포함되어서이기도 했지만, 다섯 명 전부 임플란트를 몇 대씩 했거나 부분틀니를 한 처지였기 때문이리라. ‘이빨 빠진 호랑이’들이 흘러간 ‘뽀얀 옥수수 시간들’을 잠시 회억하는 누추한 잔치였다.

이 바쁜데 웬 설사 / 김용택

이 바쁜데 웬 설사/ 김용택소낙비는 오지요/ 소는 뛰지요바작에 풀은 허물어지지요/ 설사는 났지요허리끈은 안 풀어지지요/ 들판에 사람들은 많지요- 시집『강 같은 세월』(창작과 비평사, 1995)....................................................살아가다보면 누구나 한두 번쯤 이런 긴박한 최악의 코너에 몰릴 때가 있다. 자신의 일이 아닐지라도 둘레에서 이 같은 상황을 목격할 경우도 있겠고. 실제로 이 시는 시인의 어머니가 저 광경을 목격하고선 아들에게 들려준 이야기를 시인 말마따나 고스란히 받아쓴 것이라고 한다. 어머니가 바쁜 농사철 논두렁에서 바라보니 어떤 사람이 깔짐 지게를 지고 소를 몰고 오는데 갑자기 똥이 마려운 폼이었단다. 소를 묶고 지게를 받쳐야 하는데, 지게를 받치자 깔짐이 넘어가버려 풀이 그만 허물어졌던 것이다.그때 소가 펄떡펄떡 뛰는 광경을 보았다. 깔짐은 넘어가지, 소는 뛰지, 받치기는 힘들지. 설사는 나오려고 하지, 보아하니 삼베옷 허리띠는 잘 풀어지지 않는 것 같고 들판엔 사람들도 많았단다. 고상한 표현의 ‘설상가상’정도가 아니다. 시인은 이 상황을 전해 듣고 그대로 베껴 썼다고 한다. 어쩌면 ‘소나기’부분은 각색일지도 모르겠다. 긴밀하게 이를 재구성 가공한 것이 더욱 구체성을 띄고 있다. 하지만 그냥 평범한 산문적 사고의 나열에 그쳤다면 시가 되진 못했으리라.‘소나기가 오는데다가 소도 뛰고 풀은 허물어졌다. 게다가 설사도 나고 허리끈도 안 풀어진다. 그리고 보는 사람도 많다.’ 정도가 되겠는데 재미와 감흥이 팍 떨어진다. 그렇다면 이 시에서 떠받혀주고 있는 부분은 반복해서 서술하고 있는 ‘지요’라는 나열적 질서가 되겠는데, 시적 운율을 느끼게 하여 시를 시답게 하고 있다. 이런 형식의 리듬은 사실 특별할 건 없고 우리의 일상에서 흔히 써먹는 말이다. ‘비는 오지요 갈 길은 멀지요 배는 고프지요...’ 따위의 익숙한 리듬이다.이 시는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으나 중학교 교과서에도 실렸었다. 이 정도면 요즘 아이들에게도 먹혀드는 개그 수준이 아닐까. 전유성은 시집을 즐겨 읽는 개그맨으로 알려져 있다. 아마 이런 시를 만나면 반색하며 소재로 써먹으려 할 것이고 그리해도 손색은 없겠다. 여섯 행에 불과한 이 짧은 시에서 어느 한 행이라도 빠져있다면 긴장감의 밀도가 떨어져 재미도 덜했을 것이다. 특히 ‘허리끈은 안 풀어지지요’란 대목이 누락된다면 아예 시의 꼬락서니가 안 되겠다. ‘바작’이란 낯선 농촌 물건도 살짝 시의 품격을 거들고 있다.바작은 지게에 짐을 싣기 좋도록 하기위해 대나 싸리로 걸어 접었다 폈다 할 수 있게 만든 조개모양의 물건이다. 아무튼 시가 재미나긴 한데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시에서 설사 만난 이는 저 극도의 난감한 상황을 어떻게 수습하였을까. 어떤 이유에서건 사람이 막다른 골목에 처하면 선택지가 없다. 극단적인 선택의 심리도 이와 비슷하다. 피하고 싶은데 피할 곳은 없고 모면하고 싶은데 극복은 안 된다.지금의 나라 꼬락서니도 그러하다. 국민들도 덩달아 누추하고 모멸적인 삶의 연속이다.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끝없는 논쟁은 이제 진영 싸움의 수준을 벗어났다. 양쪽 다 설사 만난 사람의 사생결단 싸움질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 상황을 피하려면 최소한 ‘허리끈’ 하나는 평소에 잘 관리되어야 하는데, 그 허리끈마저 지금은 요지부동이다.

구월이 오면 / 안도현

구월이 오면/ 안도현그대 구월이 오면/ 구월의 강가에 나가/ 강물이 여물어 가는 소리를 듣는지요/ 뒤따르는 강물이 앞서가는 강물에게/ 가만히 등을 토닥이며 밀어주면/ 앞서가는 강물이 알았다는 듯/ 한번 더 몸을 뒤척이며 물결로 출렁/ 걸음을 옮기는 것을 그때 강둑 위로/ 지아비가 끌고 지어미가 미는 손수레가/ 저무는 인간의 마음을 향해가는 것을// 그대 구월의 강가에서 생각하는지요/ 강물이 저희끼리만 속삭이며 바다로 가는 것이 아니라/ 젖은 손이 닿는 곳마다 골고루 숨결을 나누어주는 것을/ (중략)// 그대 사랑이란/ 어찌 우리 둘만의 사랑이겠는지요/ 그대가 바라보는 강물이/ 구월 들판을 금빛으로 만들고 가듯이/ 사람이 사는 마을에서 사람과 더불어 몸을 부비며/ 우리도 모르는 남에게 남겨줄 그 무엇이 되어야 하는 것을/ 구월이 오면/ 구월의 강가에 나가/ 우리가 따뜻한 피로 흐르는 강물이 되어/ 세상을 적셔야 하는 것을- 시집『그대에게 가고 싶다』(푸른숲, 1991)............................................구월입니다. 지난여름의 지긋지긋한 더위와 함께 넌더리나도록 여야정쟁을 보아왔던 사람에게도 어서 가을이 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계절의 변화에 시큰둥한 사람도 구월은 와서 강물이 여물어가는 소리를 듣습니다. 가을의 열매를 위해 그동안 꽃은 피었다 지고 여름의 뜨거운 햇볕과 무성한 녹음을 거쳤습니다. 아직은 푸릇푸릇한 꽃사과도 머지않아 단맛이 들면서 발갛게 익어갈 것이며 밤송이는 최선을 다해 속을 꽉 채울 것입니다.구월엔 ‘강물이 저희끼리만 속삭이며 바다로 가는 것이 아니라 젖은 손이 닿는 곳마다 골고루 숨결을 나누어 주는 것을’ 보고 깨우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하여 불신했던 날들의 반목을 머리 긁적이며 반성하는 날이 오길 기대하건만 현실은 그러하지 못합니다. 이제는 뜨거움만이 아니라 ‘우리가 따뜻한 피로 흐르는 강물이 되어 세상을 적셔야 하는 것을’ 깨달으며 다시 가슴에 새깁니다.어느 묘역 아래 너럭바위에 새겨진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는 비문학적인 구호가 문득 떠오릅니다. ‘뒤따르는 강물이 앞서가는 강물에게 가만히 등을 토닥이며 밀어주면 앞서가는 강물이 알았다는 듯, 한 번 더 몸을 뒤척이며 물결로 출렁 걸음을 옮기는’ 사람이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좋은 세상의 풍경입니다. 역사학자 토인비는 이기주의의 팽배가 인류의 위기를 초래하는 가장 심각한 요인으로 보았습니다.인류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극심한 이기주의 해소와 자기중심주의를 극복하는데 있다고 하였습니다. ‘사랑이란, 어찌 우리 둘만의 사랑이겠는지요.’ 저 구김살 없는 햇빛이, 저 짙어져가는 황금빛 들판이 어찌 우리 둘만을 위한 아낌없는 축복이겠는지요. ‘사람과 더불어 몸을 부비며 우리도 모르는 남에게 남겨줄 그 무엇이 되어야 하는 것을’ 널리 퍼트려야 우리의 미래가 보일 것입니다. 이 구월엔 우두망찰하지 않고 가을하늘과 저 들판과 강물을 향해 눈을 크게 열어야겠습니다. 산문적 일상을 살아가더라도 운문적 꿈은 잃지 않으며 포도송이처럼 탱글탱글한 사랑을 가슴마다 퍼 올려야겠습니다. 이 땅의 정치도 구월에는 좀 더 대국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씨팔! / 배한봉

씨팔!/ 배한봉수업 시간 담임선생님의 숙제 질문에 병채는/ 이라고 대답했다 하네/ 아이들은 책상을 두드리며 웃었으나/ / 병채는 다시 한 번 씩씩하게 답했다 하네/ 처녀인 담임선생님은 순간 몹시 당황했겠지/ 그러다 녀석의 공책을 보고는 배꼽을 잡았겠지/ 어제 초등학교 1학년 병채의 숙제는/ 봉숭아 씨방을 살펴보고 씨앗수를 알아가는 것/ 착실하게 자연공부를 하고/ 공책에 이라 적어간 답을 녀석은/ 자랑스럽게 큰 소리로 말한 것뿐이라 하네/ 세상의 물음에 나는 언제/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답을 외쳐본 적 있나/ 울퉁불퉁 비포장도로 같은/ 삶이 나를 보고 씨팔! 씨팔! 지나가네- 시집 『잠을 두드리는 물의 노래』 (문학의 전당, 2006)..................................................................‘우리 집엔 강아지가 3마리가 있어요.’와 ‘우리 집은 3층이에요.’라고 할 때의 수를 읽는 방법은 다르다. 각각 ‘세 마리’와 ‘삼층’이라고 해야 옳은데, 초등 1학년에겐 이 개념의 구분이 좀 어려울 수도 있겠다. 영어에서도 기수와 서수가 있듯이 우리도 수를 읽는 방법에 두 가지가 있다. 영어의 경우 기수는 기록을 나타낼 때 사용되고 서수는 순서를 표현할 때 사용된다. 말하자면 기수는 원투쓰리이고 서수는 first second third...로 나간다.하지만 우리는 영어와 달라 우리 사회통념상의 관행과 일정한 상황 원칙에 따라 사용된다. ‘떡집은 1층, 학원은 2층’처럼 차례와 번호를 나타내거나 길이 무게 등의 측정단위가 붙은 수는 ‘일 이 삼’으로 읽고, ‘인절미 5개 주세요.’와 같이 개수와 횟수를 나타낼 때는 ‘하나 둘 셋’으로 읽는다. 그런데 딱 부러진 원칙이 있는 것도 아니다. 시간을 읽을 때 ‘일곱 시 다섯 분’하면 틀린 표현이 되고 ‘일곱 시 오 분’ 해야 옳다. 시와 분초의 기준이 또 다르다.테이블 넘버를 적어놓은 식당에서 종업원이 유독 18번 테이블은 열여덟 번이라고 호명한다. 여기에 무슨 구멍이라도 있단 말인가. 이런 지경이니 초등 1학년 아이가 을 ‘씨팔’이라 읽었다 해서 그리 잘 못되고 우스운 일인가. 굳이 하자를 들먹이자면 저‘씨팔’을 그‘씨팔’로 듣고 상상하면서 키득거리는 무리들의 관념 아닌가. 처녀 담임선생이 순간 당황한 것도 사전에도 없는 발칙한 단어를 상상했던 탓이리라.시인도 재밌어하고 맞장구를 쳤기에 이런 시도 써진 것 아닌가. 요즘은 온갖 외래어와 축약어, 파생어와 은어들이 뒤섞여 현란하게 사용되고 있어 발음만 듣고는 그 말뜻을 바로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 과정의 오해와 진실 사이에서 웃지 못 할 해프닝도 비일비재하다. 79년도 직장 초년생 시절, 사무실에 막 여상을 나온 여직원이 한명 배속되었다. 반듯하기로 소문난 박 대리가 신문을 보다가 “아니 사람이 타고난 대로 살면 되지 꼭 ‘이쁜이 수술’까지 해야 돼?” “안 그래 미스 송? 미스 송은 예뻐서 이런 고민할 일은 없겠네!”당시 신문의 줄 광고를 보고 한 마디 한 것인데, 둘레 사람들은 모두 킥킥거렸고, 그 미스 송도 얼굴이 시뻘게졌다. 지금도 그 박 대리의 어안이 벙벙하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정치인의 흥망성쇠는 말 속에 있다는 말도 오래전부터 회자되어왔다. ‘말꼬리 자르기’는 뭐고 ‘말꼬리 물고 늘어지기‘는 또 무언가. 병채만이 ‘세상의 물음에’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답을 외칠’ 자격이 있고, 그걸 욕으로 알아듣는 자 모두 ‘씨팔! 씨팔!’소리를 들어도 싸다.

봉숭아꽃 / 민영

봉숭아꽃/ 민 영내 나이 오십이 되기까지/ 어머니는 내 새끼손가락에/ 봉숭아를 들여주셨다// 꽃보다 붉은 그 노을이/ 아들 몸에 지필지도 모르는/ 사악한 것을 물리쳐준다고/ 봉숭아물을 들여주셨다// 봉숭아야 봉숭아야,/ 장마 그치고 울타리 밑에/ 초롱불 밝힌 봉숭아야!// 무덤에 누워서도 자식 걱정에/ 마른 풀이 자라는/ 어머니는 지금 용인에 계시단다. - 시선집 『달밤』 (창비, 2004).....................................................오래전 TV퀴즈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는 한 젊은이가 부모님을 방청석에 모셔놓고 상금을 받으면 부모님 유럽여행 가는데 보태겠노라 호언까지 하고선 첫 단계 OX문제에서 그만 낙마하는 안타까운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임성훈 진행자가 몇 번이고 잘 생각해서 결정하라는데도 확신에 찬 표정으로 X를 눌렀다. 바로 그 문제의 문제는 ‘봉선화와 봉숭아는 같은 꽃인가?’하는 것이었는데 다른 꽃이라고 대답해버렸던 것이다.비슷한 경우로 반딧불과 개똥벌레, 미루나무와 사시나무도 마찬가진데 그런 문제 앞에서 어물어물할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보면 망신이라고 얼굴 붉힐 것까지는 없지 않은가. 그보다는 손톱에 봉숭아 물들여본 경험이 있는 젊은이가 얼마나 있을지가 더 궁금하다. 그 옛날 늦여름 살평상에서 흔히 보았던 봉숭아 물들이기에 얽힌 추억과 그리움을 지금 사람들이 느낄 수나 있을까. 나도 오십까지는 아니었어도 초등학생 시절 어머니가 봉숭아물을 들일 때 그 옆에 쪼그리고 있으면 새끼손가락에 물을 들여 주시곤 했다.예로부터 봉숭아 물들이기는 병마를 막기 위한 주술적 의미가 컸다고 한다. 여름철 손톱에 들인 봉숭아물이 첫눈 올 때까지 지워지지 않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속설쯤은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봉숭아물을 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내 손톱과 네 짓이긴 꽃잎이 서로 붉게 몸을 섞었다는 이유만으로 사랑이 돋아난다는 믿음을 이해할까. 봉숭아물은 매니큐어 같은 화려한 원색이 아니다. 손톱에 뜬 초승달과 은은하게 어우러져 애절한 그리움을 덧씌운다. 손끝마다 핏물이 베어 오래 지워지지 않을 그리움이 시인에겐 어머니였다.그러나 손끝이 닿지 않는 울밑에 선 그리움은 너무나 깊다. 봉숭아 물들이기를 여름방학 숙제로 내는 학교들이 있다고 들었다. 그래서인지 어제 전철 안에서 조잘거리는 한 무리의 어린 여학생들 손톱에는 모두 볼그족족 물이 들어있었다. 첫눈 올 때까지 봉숭아물이 남아 있기를 바라는 기다림과 아날로그적 그리움을 체험해보라는 의미였을까. 나도 얼마 전 ‘소녀상 안착식’때 ‘봉선화 박사’ 만당 이종갑 시인이 마련한 봉선화 물들이기 이벤트에서 엉겁결에 새끼손가락을 맡겼더니 지금은 제법 볼그족족한 손톱을 알아보는 사람도 있다.이종갑 시인은 봉선화 추출물을 소금에 접목시킨 기능성 소금인 ‘봉선화소금’을 제조 판매하는 ‘봉선화식품’의 대표이다. 이 대표는 봉선화가 심겨 있는 곳에 독사와 해충들이 접근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끼고 이를 신안천일염에 접목하면 건강한 소금이 되겠다는 확신을 가졌다. 그 자신 봉선화와 함께한 열정으로 말기 대장암을 극복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제 여름은 가고 추억은 잠들지만 그 추억은 다시 깨어날 것이다. 굳이 사랑이 아니더라도 붉게 물든 손톱을 보면 무언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