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아침에

설날 아침에/ 김종길매양 추위 속에/ 해는 가고 또 오는 거지만/ 새해는 그런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다/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쉬고/ 파릇한 미나리 싹이/ 봄날을 꿈꾸듯/ 새해는 참고 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 오늘 아침/ 따뜻한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세상은 험난하고 각박하다지만/ 그러나 세상은 살만한 곳// 한 살 나이를 더한 만큼/ 좀 더 착하고 슬기로울 것을 생각하라/ 아무리 매운 추위 속에/ 한 해가 가고/ 또 올지라도/ 어린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시집『성탄제』(삼애사, 1969)..................................................... 어린 시절 1년 365일 가운데 가장 기다려지는 날이 설날이었다. 그 기다림은 설렘을 동반한다. 추석과 비교하여 그 유익을 계량해 봐도 설이 더 실속이 있었다. 운이 좋으면 헐렁한 운동화 하나 얻어걸리는 횡재수준 설빔에다 정말로 웬 떡이냐며 따끈따끈한 가래떡이랑 강정 따위 평소 먹지 못했던 맛난 음식들, 그리고 무엇보다 후훗 세뱃돈, 연탄재 구멍에 꽂아 쏘아 올리는 화약놀이, 그 하루만큼은 하늘이 두 쪼가리 나도 행복해마지 않아야할 가족들의 표정 그리고 우리들의 환한 얼굴들. 이보다 더 즐거운 날이 어디 있으랴. “엄마, 몇 밤만 자면 설이고?” “딱, 한 밤 남았지!” 하루하루 손을 꼽고 툇마루의 기둥을 껴안고 빙글빙글 돌면서 기다렸던 설이었다. 섣달 그믐밤 어머니는 늘 그러셨다. 턱을 고이고 코딱지처럼 달라붙어 졸고 있는 내게 잠들면 눈썹이 센다고 했다가 종래엔 방으로 옮겨 이불을 덮어주시곤 했다. 설을 이틀 앞둔 어느 해, 자고 있는 나를 깨우지 않고 몰래 손바닥 뼘 벌려 잰 문수로 신발을 사들고 오신 엄마. 한 번도 내 손을 꼭 잡아준 적이 없던 아버지가 생애 처음 신게 될 끈 달린 운동화의 첫 끈을 묶어주셨던 그 설날은 지금도 생생하다. 날마다 맞이하는 무덤덤한 햇살이었지만 이날을 기해 일제히 새로운 빛을 발하는 것 같았다. 넉넉하지 않아도 넉넉했고 추워도 춥지 않았다. 미리 놋그릇을 말갛게 닦고, 수증기 가득한 방앗간 앞에서 떡살 담은 양은대야를 놓고 긴 줄을 설 때면 설렘은 최대치로 고조된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가래떡이 하루 지나 적당히 굳어지면 예쁜 타원형으로 썰리고, 마침내 볶은 쇠고기, 계란지단, 김 등속의 꾸미가 넉넉히 얹힌 떡국이 상 위로 올라와 한 그릇 뚝딱 해치우면 삶의 진정한 행복이란 이런 거로구나 속으로 생각하며 꺽 트림을 했다. 착시현상인줄 알지만 머리통이 굵어지고 어른이 되어서도 설날은 모든 걸 용서해주고 용서받고 그래도 될 것만 같았다. ‘한 살 나이를 더한 만큼’ ‘좀 더 착하고 슬기로울 것을 생각’한다. ‘아무리 매운 추위 속에 한 해가 가고’ 또 오는 것이지만 이 어찌 ‘세상은 살만한 곳’이 아닐까. ‘어린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희망이라는 이름의 해를 같은 방향으로 함께 바라보며 긍정의 지혜를 찾아낸다면, 잇몸을 뚫고 나오듯 오르는 새해의 광채를 선하고 슬기로운 눈으로 다시 본다면, 어느 지붕 아래인들 축복이 넘치지 않으랴. 만 11년 6개월 동안 변변찮은 글을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나는

나는/ 문숙가나의 어느 부족에선 사람이 죽으면/ 관 모양이 생전의 직업에 따라 다르다고 한다/ 어부였던 사람은 배나 물고기 모양/ 구두장이는 구두 모양의 관에 담긴다// 시인이란 이름으로 살고 있는 나는/ 시집이나 펜 모양의 관을 그려보지만/ 아니다 시로써 돈을 벌어보지도 못했고/ 흔한 문학상으로 명예를 얻어 보지도 못했으니/ 시인이라고 할 수도 없다/ 삼십 년을 주부로 살았으니/ 밥솥이나 냄비 모양을 생각해보지만/ 아니다 전업주부라 하기엔 시와 통정한 시간이 너무 길다/ 국적없는 집시처럼 바람에 이끌리며 산 것이다// 어느 한 곳에 내 전부를 던져본 적 없어/ 작가로서도 주부로서도 이념도 없고 신념도 없다/ (중략)/ 가나식이라면 나는 죽어서도 관 모양이 없을 것 같다- 계간⟪문학청춘⟫2017년 여름호..................................................... 가나에선 사람이 죽으면 천국으로 간다고 생각해 축제처럼 장례가 치러진다. 밴드와 가수의 신나는 음악에 맞춰 웃는 얼굴로 춤을 춘다. 이들은 관을 중히 여기는데 관 모양은 고인이 생전에 좋아했던 물건으로 하거나 종사했던 직업과 관련된 모양으로 제작한다고 한다. 탱크, 물고기, 젖소 같은 모양의 관에 시신을 안치시킨다. 고추농사를 짓던 사람이 죽으면 고추 모양 관을, 생전에 콜라를 엄청 좋아했다면 코카콜라 관을, 비행기 한번 타보는 게 소원이었던 사람이면 가나에어 비행기 관에 넣어 시신의 한을 풀어주기도 한다. 우연히 가나 장례 풍습을 듣고 시인의 습성이 발동하여 ‘나는’ 어떤 관에 담겨질까를 생각한다. 자신은 ‘시인이란 이름으로 살고 있는’ 사람이다. 먼저 내세울만한 신분이라 ‘시집이나 펜 모양의 관’을 떠올려보는데, ‘시로써 돈을 벌어보지도 못했고’ ‘흔한 문학상으로 명예를 얻어 보지도’ 못했음으로 당당히 시인이라 하기엔 어쩐지 멋쩍다. 그렇다면 다음은 30년차 전업주부겠는데 이 역시 큰 보람과 긍지를 갖고 임했던 역할이 아닌지라 마땅찮아 한다. 살면서 누구나 이런 ‘관’때문이 아니더라도 ‘나는 누구인가?’ ‘나의 정체성은 무엇인가?’라는 자문을 할 때가 있다. 대개는 자기 스스로를 뾰족한 재주 없고 내세울 것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래서 대부분의 집안에서 지방을 쓸 때 ‘학생부군’ 즉, ‘배우는 학생으로 일생을 살다 가신’이라고 적는 것이리라. 대다수 유생들은 과거시험에 합격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기 때문에 죽어서도 공부를 계속하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평생 벼슬 한번 못해본 백수건달이라도 ‘학생’으로 살고, 또 죽어서도 ‘학생’으로 살라니 축원이라면 축원이다. 어느 당파에 가담하지 않는 것 역시 다행한 일이다. 어느 한쪽에 휘둘리지도 발목 잡힐 것도 없으니 얼마나 자유로운가. 장담은 못하지만 살아가면서 무엇이 잘못이고 무엇이 우려되는지 정도는 구분하려고 노력했다. 기본 양심을 저버리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나는’ 무엇인가라는 성찰적 지점에 이르면 자괴감만 가득하다. 지난 12년 동안 이 지면을 통해 시를 빙자하여 수많은 이야기들을 쏟아냈지만 이젠 입도 닫고 창문도 닫아야할 때가 온 것 같다. 모자라고 내세울 것 없어 ‘가나식이라면 나는 죽어서도 관 모양이 없’을 테지만, 그럼에도 ‘學生’이란 간판은 따 놓은 당상이니 이 아니 기쁘지 아니할까.

양동시편2-뼉다귀집

양동시편2―뼉다귀집/ 김신용뼉다귀집을 아시는지요/ 지금은 헐리고 없어진 양동골목에 있었지요/ 구정물이 뚝뚝 듣는 주인 할머니는/ 새벽이면 남대문 시장바닥에서 주워온/ 돼지뼈를 고아서 술국밥으로 파는 술집이었지요/ (중략)/ 날품팔이지게꾼부랑자쪼록꾼뚜쟁이시라이꾼날라리똥치꼬지꾼/ 오로지 몸을 버려야 오늘을 살아남을 그런 사람들에게/ 몸 보하는 디는 요 궁물이 제일이랑께 하며/ 언제나 반겨 맞아주는 할머니를 보면요/ (중략)/ 뼉다귀 하나로 펄펄 끓는 국물 속에 얼마나/ 분신하고 싶었던지, 지금은 힐튼 호텔의 휘황한 불빛이/ 머큐롬처럼 쏟아져 내리고, 포크레인이 환부를 긁어내고/ 거기 균처럼 꿈틀거리던 사람들 뿔뿔이 흩어졌지만/ 그러나 사라지지 않은 어둠 속, 이 땅/ 어디엔가 반드시 살아있을 양동의/ 그 뼉다귀집을 아시는지요- 무크지 『현대시사상』 1집(1988).....................................................시인들의 전력만큼 ‘버라이어티’한 직업군이 또 있을까만 1988년 김신용 시인의 등장은 문단에서도 가히 충격적이었다. 열여섯 나이에 부랑을 시작하여 서울역 지하도와 대합실이 숙소이자 놀이터였던 그는 동냥은 물론 끼니를 해결하고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매혈과 각종 ‘치기’범죄도 불사해야 했다. 그러다보니 풀빵구리에 쥐 드나들 듯 감방과 양동을 오가면서 별을 5개나 달았다. 그러는 동안 장르불문 그가 감옥에서 읽어치운 엄청난 독서량은 놀라울 정도였고, 그 독서와 사유를 바탕으로 마흔넷에 ‘陽洞詩篇’을 발표하며 시단에 이름을 올렸다.이 시는 지금은 도려내진 서울의 환부 ‘양동’에서 화염처럼 살았던 지게꾼출신이 무림고수로의 등극을 예고하며 내뽑은 칼날 위 섬광 같은 작품이라 하겠다. ‘陽洞’은 경주 양동마을과 동네 이름은 같으나 그 속살은 천양지차이로 과거 서울역 앞 대우빌딩에 가려진 슬럼가를 말한다. 바깥에서 보면 치부이지만 도시의 부랑자, 똥치(창녀), 쪼록꾼(매혈자), 일용잡부, 마약중독자, 양아치 등 밑바닥 인생의 총집결지이며 본산이었다. ‘오로지 몸을 버려야 오늘을 살아남을 그런 사람들’ 하루하루가 고단한 인생들에게 뼈다귀 국물은 거의 유일한 보양식이다.시인은 그걸 안주삼아 작살주(막걸리에 소주를 탄 것) 몇 잔 들이키면 내장 곳곳이 가로등 켠 것처럼 환해지고 마침내 똥구멍 끝이 노글노글해지면 ‘씨부랑탕’ 욕이 나오고 노래가 나오고 그런 다음에 시가 나온다고 했다. 그렇게 시가 그에게로 가서 그를 살려냈다. 문학은 선택된 재능을 지녔거나 가방끈 긴 사람들의 전유물은 아니다. 돈과 출세를 위해서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할 것인가라는 자기 자신에 대한 진실한 물음만 있으면 누구라도 들이댈 수 있는 장르이다. 인간과 자연, 사물과 현상에 대한 끊임없는 회의와 성찰의 자세만 가진다면.‘톰 소여의 모험’의 마크 트웨인은 초등학교만 나왔고 헤밍웨이는 시골의 평범한 고등학교 출신이다. 도스토옙스키는 오랫동안 인생 밑바닥을 헤매고 다닌 알콜 중독자였다. 불우하고 험한 생을 살았던 시인은 말할 수 없이 많다. 다만 그들의 공통점은 세상을 흐물흐물 순응만하지 않고 뜨겁게 살았다는 점이다. 김신용 시인 역시 둘레의 삶을 뜨겁게 연민하고 처절하게 번민하였다. 그렇게 빚어진 시이기에 시인의 체험 공간을 한번 가보지 않고 ‘뼉다귀집’국물을 마셔보지 않아도 그 연민을 공감할 수 있는 것이리라.

자본론

자본론/ 백무산줄잡아 그의 재산이 5조원을 넘는단다/ 그 돈은 일년에 천만원 받는 노동자/ 50만년 치에 해당한다/ 한 인간이 한 세대에/ 50만년이라는 인간의 시간을 착취했다/ 50만년// 불과 1만년 전에 인간은 처음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5만년 전에 크로마뇽인은 돌과 동물의 뼈로/ 은신처를 짓기 시작했다/ (중략)// 우리들의 투쟁이 돈이 아니라 돈으로 왜곡된 시간이 아니라/ 인간의 시간을 인생의 세월을 되찾는다는 것을/ 틀림없이 확인해야 한다/ 자신의 인생과도 싸워야 한다- 시집 『인간의 시간』 (창비, 1996).......................................................이 시가 나올 무렵에 5조 원이 넘는 자산가라면 이건희 회장 정도일 것이다. 20여년이 지난 현재 병석에 있는 그의 재산은 보유주식 가치만으로 20조에 달한다. 지난 해 포보스의 발표에 근거한 것으로 이것도 전년에 비해 18% 줄어든 수치다. 이번에 작고한 신격호 롯데명예회장의 국내 개인재산이 1조 원 정도라고 하니 비교가 된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기본적으로 노동의 잉여가치 생산과 그것을 전유하는 자본가와의 갈등관계를 묘사하고 있다.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통렬하게 비판하면서 자본주의가 사람들에게 자유를 가져다주었지만, 그것이 가져온 다른 칼날을 주목하였다. 그는 자본가가 부를 가질수록 노동자는 더욱 가난해진다는 착취의 고리로 자본주의를 바라보면서 노동자들을 자극했다. 그는 궁극적으로 사유재산의 폐지와 같은 사회적 시스템을 통하여 인간 사이의 차별이 사라질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살고 있는 사람 가운데 이에 동의하는 사람은 없으리라.사유재산을 부정하고 폐기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내가 번만큼 내가 소유하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망이고, 사유재산의 인정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분배가 고르게 잘 되어야 경제가 성장한다는 사실도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큰 이견이 없다. 그런데 과거 성장 우선주의자들은 일단 성장을 위해서 국민들에게 인내를 요구했고 골고루 잘 살지 못하더라도 불가피한 일이라고 했다. 일단 파이부터 키워놓고 그 다음에 나누자는 것이다. 분배는 훗날 생각하자는 것인데 이것은 사실 자연스럽지도 않고 정의로운 생각도 아니다.‘미안하지만’ 당장은 불평등 양극화도 두고 보겠다는 뜻이다. 우선은 부를 부자들에게 몰아주어 그들이 투자를 하게끔 하고 고용을 창출케 하여 소득의 증대를 기대해보자는 논리다. 여기가 자칫 정경유착과 부정부패의 똬리를 틀기에 최적의 지점이 될 수 있음도 간과해서는 안 되겠다. 이게 과거 박정희 시대에서부터 보수정권이 줄기차게 주장해온 부국 경제논리다. 물론 김대중 정부이후 보수진보를 거치는 동안 분배 부분이 많이 개선되긴 했지만 아직도 미흡하고 재벌과 노동자의 차이는 ‘50만년’이다. 재벌기업은 사내 유보로 돈이 쌓이고 있다.이 거대자본을 상대로 투쟁하는 데는 한계가 있고 달리 맞설 수단도 없다. 유일한 방법으로 ‘우리들의 투쟁이 돈이 아니라 돈으로 왜곡된 시간이 아니라 인간의 시간을 인생의 세월을 되찾는다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투쟁은 되찾음이며 원래 모습으로의 되돌림이다. 자본에 의해 잃어버린 인간다운 삶을 위해 ‘자신의 인생과도 싸워야 한다’ 어쩌면 내가 시 따위를 만지작거리며 노는 이유도 그런 수단의 일부일지 모르겠다.

갈 곳이 없다더니

갈 곳이 없다더니/ 서정홍전라도 경상도 가리지 않고/ 공사장 일거리 찾아 돌아다닌 지 이십 년째라던 김씨/ 간암 진단 받자마자 다른 병까지 겹쳐/ 비싼 치료비로 집안 살림 거덜 나고/ 시내에서 산동네로 전세방에서 사글세방으로/ 사글세방에서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더니// 못 배우고 가난한 사람들은/ 아플 짬도 없이 바쁘게 살다가/ 아무도 모르게 죽어야 한다더니// 죽는다는 게,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고/ 사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라고/ 눈물 쏟아내던 김씨/ 하늘로 갔다//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더니- 시집 『58년 개띠』 (보리, 2003).................................................산골마을에서 농사지으며 살아가는 시인의 이웃 중에 이래 살다 세상을 떠난 ‘김씨’가 있었나보다. 우리 둘레에도 이처럼 ‘시내에서 산동네로 전세방에서 사글세방으로’ 내몰리며 전전긍긍 살아가는 사람들의 수가 적지 않다. ‘이부망천’이란 과장된 비유로 해당 지역 사람들을 화나게 하고 자존심을 짓밟은 얼빠진 정치인도 있었지만, 실제로 겪지 않고서는 그들의 심정을 어찌 알겠는가. 자고나면 밤새 집값이 일억 올랐네 이억 올랐네 그러면서도 성이 차지 않는 사람들이 ‘사글세방에서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사람들의 절박함을 알 턱이 없다.그들은 길거리에서 주워 모은 폐박스를 개근하면서 매일 휑하니 쳐다보는 저울의 눈금과 내 아파트 가격의 상승곡선이 무슨 상관이냐고 말한다. 서울에 사는 것도 다 능력이라며, 내 아파트 값 좀 오른다고 상대적 박탈감 어쩌고 배 아파들 말라고 한다. 작년 한해 서울의 새 아파트 실거래 가격이 평균 분양가 대비 50% 가까이 올랐다. 서울은 분양가 대비 실거래가가 평균 3억7천여만 원 올라 전국에서 가장 높은 상승치를 기록했고, 전국 평균으로는 입주 1년 미만 아파트 거래가격이 분양가 대비 6천8백만 원 상승했다.서울에서 아파트 한 채 분양 받으려고 기를 쓰는 이유다. 결국 일부 당첨자에게만 행운이 돌아가고 그 틈바구니에서 부동산중개업자만 이익을 챙겼을 테지만 정부도 속수무책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으리라. 물론 분양가 억제책으로 공급이 감소되면 실수요자들이 살고 싶어 하는 새 아파트의 가격은 더욱 오르고, 주변 아파트 시세까지 끌어올리는 악순환이 염려되기는 한다. 그래서 다른 규제책을 병행하는 것인데, 근본적으로 부동산 투기로 돈을 벌려는 오래된 탐욕의 싹을 자르지 않으면 실효성이 적거나 효과가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대통령이 신년사에서 밝힌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서 지지 않겠다’는 각오를 믿어주고 따르는 것도 중요하다. 수요자와 공급자 모두 조금씩 욕망을 줄인다면 수요공급의 불균형이란 말도 사실상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자연으로부터 선사받은 선물인 토지는 사적소유를 하여서는 안 된다는 개념의 토지공유제를 돌아보아야하지 않을까. 경북대 김윤상 석좌교수의 ‘地公’ 주의에 귀를 기울여봄직하다. 지공주의는 “극심한 가난이 존재하는 원인은 토지의 사유에 있다”는 헨리 조지의 확신을 받혀주는 이론이다.부동산 투기의 대표적인 주범이자 악의 축인 아파트 투기에 대한 고강도 대책은 불평등 구조가 해소되지 않는 한 비난할 수는 없다. 다주택 소유자에 대한 가차 없는 불로소득세를 징수해 도시와 농어촌 빈민들의 빈곤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분배의 정의를 말할 수 없지 않은가.

절반과 동반/신영복

절반과 동반/ 신영복피아노의 건반은 우리에게 반음의 의미를 가르칩니다/ 반은 절반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동반을 의미합니다// 모든 관계의 비결은 바로 이 반(半)과 반(伴)의 여백에 있습니다/ '절반의 비탄'은 '절반의 환희'와 같은 것이며/ '절반의 패배'는 '절반의 승리'와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절반의 경계에서 스스로를 절제할 수만 있다면/ 설령 그것이 환희와 비탄, 승리와 패배라는 대적(對敵)의 언어라 하더라도/ 얼마든지 동반의 자리를 얻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 신영복의 '처음처럼' (랜덤하우스, 2007).......................................욕파불능(欲罷不能)이란 말이 있다. 스승인 공자를 닮아가는 일을 멈추고자 하여도 차마 멈출 수 없다고 한 공자의 제자 안연의 말이다. 신영복 선생의 제자도 아니고 발 끄트머리도 닮지는 못했지만 선생을 흠모하는 마음만큼은 그와 같다. 선생께서 세상 떠나신 지도 4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선생은 가셨어도 삶에 대한 사색, 생명에 대한 외경, 함께 사는 삶, 성찰과 희망에 대한 여러 글들이 가슴 속에서 전율을 일으킬 때가 많다.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가는 끊임없는 시작"이라고 하셨건만 솔직히 그것을 실천하기는 어려웠다.선생께서 우리에게 들려준 일관된 주제가 바로 역경을 견디는 자세이다. '수많은 처음'이란 결국 끊임없는 성찰이며, 날마다 갱신하는 삶을 살아가자는 의미다. 소주 로그로 쓰이고 있는 '처음처럼'은 신영복 선생이 즐겨 쓰시던 문구와 글씨다. 당시 신제품 개발을 마치고 제품명을 고민할 즈음에 광고회사 '크로스포인트'의 손혜원 대표가 이 문구를 추천했던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인연은 손 대표가 민주당 홍보위원장을 맡으며 새 당명 '더불어민주당'까지 이어진다. 다 알다시피 이 '더불어'도 신영복 선생의 저서 '더불어 숲'에서 따온 것이다.이 '더불어'와 맥이 바로 통하는 글이 '절반(折半)과 동반(同伴)'이다.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것"이란 말도 같은 의미라 하겠다. 지난 '조국'집회 때도 이 말이 떠올랐다. 반(半)은 어떤 것의 절반을 의미하는 동시에 양쪽의 두 대상이 공존하며 함께 나아가는 동반의 의미가 있다. 피아노는 흰색 건반인 온음과 그 온음 사이 검은색 건반인 반음의 조화와 화음으로 연주되고 아름다운 음악은 그렇게 완성된다.'동반'의 의미에 주목하여, 절반이 승리하면 남은 절반은 패배할 수밖에 없는 대립과 갈등의 관계에서 벗어나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면서 더 나은 미래를 향해 함께 나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남아공의 흑백 대립을 두고 처음 한 말씀이지만 그것만을 뜻하지는 않았다. 계층 간, 남과 북, 정치집단 간 모든 갈등과 대립의 상황과 관련이 있다. 희망의 반대편에서 절망에 빠져있는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할 때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한쪽이 이기고 다른 한쪽이 지는 관계가 아니라 협력과 조화의 관계임을 말한다. 밤이 깊을수록 별이 더욱 빛난다는 사실은 힘겹게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위로이다. 몸이 차가울수록 정신은 더욱 맑아지고 길이 험할수록 함께 걸어갈 길벗이 더욱 그리워지는 법이라 했다. 진정한 연대의 의미도 그것에 있다.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 마주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곳을 함께 바라보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씀하셨다. 선생의 말씀들을 통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칼날 같은 우리의 관계를 되돌아보게 하여 동락의 경지로 나아가기를 희망한다.

탁본, 아프리카/문인수

‘수단의 슈바이처’라 불린 의사 출신, 고(故) 이태석 요한 신부의 삶을 다룬 장편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중략)/ 그는 다만 아프리카를 앓다가 갔다. 사랑은 그것이 사랑인 줄도 모르고 사랑하고 사랑한 일. 할 일이 엄청 많이도 남아 있었던 이, 그를 데려간 하느님의 뜻이 나로선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화면 속 벽안의 어느 노신부는 그것이 바로 하늘의 신비라고 말했다./ (중략) 깜깜한 극장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도 때마침 눈꼬리를 찍어내고 싶었다. 어, 손수건이 없었다. 낌새를 알아챈 네가, 너의 손길이 어둠속을 더듬어 내게 번진 물기를 꼭, 꼭, 눌러 닦아주었다. (하략) - 시집 『적막 소리』. (창비, 2012)........................................................정한용 시인의 이란 시가 있다. 역사책을 읽을 때 이름 다음에 괄호하고 생몰연도만 표기된 숫자 사이 ‘멸치꽁지’같은 이 ‘작은 파선’속에 한 인간의 생애가 고스란히 꼼짝없이 체포되어 요약된 것이 마땅하냐는 눈초리의 시다. 한 인간이 몸과 영혼으로 살아낸 생과 그 절절한 과정들을 저 파선 안에서 어찌 이해하고 전달받을 수 있을까. ‘~’ 속에 일괄 파묻히는 것에 대한 허망을 토로하지만, 그것도 교과서에 오를 만한 인물이면 모를까 티끌조차 남지 않는 대부분의 생은 어쩌란 말이냐.우리 현대사에 국한하더라도 영웅에 버금가는 헌신적인 삶을 살다간 의인은 적지 않았다. 그들조차도 대개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억에서 가물가물해져 까맣게 잊어버리고 만다. 하지만 10년 전 우리를 그토록 뜨겁게 하고 주체할 수 없는 감동의 눈물을 뿌리게 했던 이태석 신부의 파선(1962. 10. 17 ~ 2010. 1. 14)은 달랐고, 우리는 어김없이 매년 이맘때면 그리움으로 그를 소환한다. 그의 아프리카 ‘탁본’은 워낙 강렬하고 선명해서 사람들의 뇌리에서 쉬 지워지지 않고 숭고한 삶의 표상으로 그를 되새기기 때문이다.수단 사람들은 마을을 지켜야할 전사들이 우는 것을 수치로 여긴다. 그런데 이태석 신부의 선종 시 좀처럼 울지 않는 톤즈 사람들이 펑펑 눈물을 쏟으며 울었다. 그래서 영화의 제목이 되었다. 이 영화가 상영될 당시 신부님의 삶은 교회의 안팎으로 그 파장이 컸다. 당시 조계종 총무원장이신 자승 스님에 의해 불교의 총본산인 조계사에서도 영화가 상영되었다. “불교에서 지향하는 이타행(利他行)과 하화중생(下化衆生·아래로 중생을 제도한다)을 천주교 신부님께서 구현했습니다. 성불하십시오.” 영화가 끝난 뒤 스님의 말씀이었다.이렇듯 한 사람의 생애가 우리를 한없이 부끄럽게 했으며, 드디어는 눈물로 고해성사토록 했다. 신부님은 그들에겐 구세주요 예수의 다름 아니었다. "Everything is good." 이 한 마디를 마지막으로 남기고 떠난 신부님의 삶은 담양 성직자 묘역 묘비에도 새겨져 있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 지극히 작은 자, 한 사람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이토록 영혼의 큰 떨림을 주신 신부님의 삶과 업적은 당연히 수단의 교과서에 수록되었다. 선종 10주기를 맞아 고향 부산에 기념관이 개관되었고, ‘울지마 톤즈2’ 가 개봉되었다.‘슈크란 바바’는 수단어로 ‘하느님 감사합니다’란 뜻이다. 우리는 그의 삶과 죽음 속에 깃든 비의의 긴 파선(~) 가운데 얼마나 머물 수 있으며, ‘탁본’을 간직할 수 있을까.

이별의 방식/이금주

이별의 방식/ 이금주 한적한 지하철 안으로 들어섰네// 흑장미 꼭 다문 입술이 막 피어나는/ 나와 똑같은 코트를 입은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네/ 도플갱어를 보는 듯/ 여러 눈길들/ 우리를 번갈아 읽기 시작했네/ 민망한 분위기를 숨겨줄 쥐구멍은 없었네/ (중략)/ 늙은 고양이처럼 발톱을 숨기고/ 훔치듯 표정을 읽었네// 오래전 친구였네// 나비들은/ 물오른 우리의 향기에 취해/ 주위를 돌아다녔네/ 우월감에 젖어 깊이 스며들지 못하고/ 우리는 말을 잃었네/ 다시 이어지지 못했네// 끝내 서로를 놓쳐버렸네// 그렇게 또 한 사람이 떠나갔네// 오늘은 내가/ 내일은 차창에 비치는 또 다른 내가 ㅡ 계간 ‘문학청춘’ 2019 여름호.............................................‘흑장미 꼭 다문 입술이 막 피어나는’ 무늬의 코트를 잘 차려입고 지하철을 탔는데 자기와 똑 같은 옷을 입은 사람을 보았다? 이럴 때 여성들은 대개 기분이 별로다. 재빨리 그 자리를 피하려들거나 민망해서 상대의 시선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졸지에 몰개성으로 취급당한다든지 흔한 바겐세일에서 구입한 옷으로 비쳐질 수도 있어 기분이 영 찝찝한 것이다. 그러나 요즘 지하철엔 뒤뚱거리는 펭귄처럼 고만고만한 검정 패딩을 걸친 사람들로 빼곡하다. 민망할 일도 반가울 것도 없다. 어차피 서로를 놓치고 ‘또 한 사람이 떠나’가면 그만인 것을.유시민 이사장은 jtbc 신년대담 며칠 뒤 ‘알릴레오’에서 진중권 씨에 대해 “이별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최대한 존중하며 작별하는 게 좋겠다”고 밝혔다. 이어서 “어떤 때에는 판단이 일치했고 길을 함께 걸었던 사이지만 지금은 갈림길에서 나는 이쪽으로, 진 전 교수는 저쪽으로 가기로 작심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덧붙였다. 한때 두 사람은 정치적 지향이 같았고, 고 노회찬 의원과 더불어 팟캐스트를 함께한 적도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조국 사태 과정을 통해 현격한 견해 차이를 드러내면서 날선 공방을 벌이다가 감정싸움으로까지 비화했다.발단은 유 작가가 동양대 총장에게 전화한 것을 두고 진 교수가 “취재가 아니라 회유라고 봐야 한다”고 객관적 근거 없이 주장한데서 시작되었다. 정황상 그렇겠다는 것을 심증으로 굳힌 결과였을 터이지만, 유 작가는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러한 충돌은 진보진영 안에서도 흔히 보아왔던 터라 전혀 낯설지 않다. 진 교수의 리버럴함과 독자적 엘리티즘은 그동안 다른 진보인사와 빚은 여러 차례의 마찰로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자기 혼자만 양심적이고 결벽하다는 듯 다른 사람을 쉽게 단죄하고 매도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그는 정의와 무관하게 집단논리에 의해 지배받고 싶지 않은 사람임은 분명해 보인다. 자기 확신이 몹시 강해 사과나 유감표명도 그의 사전엔 없다. 이번 조국 사태에서 보여준 그의 논리대로라면 과거 ‘조영남 그림 대작’사건에서 그를 전폭적으로 옹호할 일은 아니지 않았을까. 그는 그때도 일반의 정서를 무식쟁이의 저급함으로 매도해버렸다. 미켈란젤로, 렘브란트 등 거장의 명작도 제자나 조수와 협업한 결과물이란 것을 관련 자료로 밝히려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렸다? 그것과 이것은 다르다? 유 작가는 그런 그에게 질린 듯했다. 유 작가는 성찰을 ‘이별의 방식’으로 권했지만 “내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나”라고 말하는 그에게서 그 조언은 실효성이 없어 보인다.

어떤 진보주의자의 하루 / 신동호

어떤 진보주의자의 하루/ 신동호오전 여덟 시쯤 나는 오락가락한다/ 20퍼센트 정도는 진보적이고 32퍼센트 정도는 보수적이다/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 막둥이를 보며 늘 고민이다/ 늘 고민인데 억지로 보내고 만다/ 정확히 오전 열 시 나는 진보적이다/ 보수 언론에 분노하고 아주 가끔 레닌을 떠올린다/ 점심을 먹을 무렵 나는 상당히 보수적이다/ 배고플 땐 순댓국이, 속 쓰릴 땐 콩나물해장국이 생각난다/ 주식 같은 건 해본 일 없으니 체제 반항적인 것도 같은데,/ 과태료나 세금이 밀리면 걱정이 앞서니 체제 순응적인 것도 같다/ 오후 두 시쯤 나는 또 오락가락한다. (하략)- 시집 『장촌냉면집 아저씨는 어디 갔을까?』(2014)................................................................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이후 기존 보수 정당에 대한 심판 여론이 확산되자 동시에 보수와 진보에 대한 개념 논의도 활발해졌다. 진보를 좌파로, 보수를 우파로 규정짓기도 하는데, 프랑스혁명 때 열렸던 국민의회에서 왼쪽은 왕정을 무너뜨리고 프랑스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려는 공화파가, 오른쪽엔 예전 왕정체제의 근간을 유지하려는 귀족 중심의 왕당파가 앉았던 데서 유래했다.보수주의자들은 자유시장의 원리에 맡기자고 한다. 개인 각자가 자유롭게 부를 얻고자 열심히 경쟁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불평등은 자연의 법칙이라는 생각이다. 오히려 욕구를 자극해 사회발전에 도움이 되고 국가도 함께 부유해진다는 논리로 자본주의의 근간이 됐다.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원칙적인 생각이라지만 시장경제에 마냥 맡겨둬 버리면 승자독식의 우려가 있고 실제 우리 사회 불평등 구조의 대부분은 그에 기인한 결과이다.역사에서도 대비되는 인물들이 있다. 포은 정몽주는 왕이 썩고 탐관오리가 판쳐도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보수적 입장인 반면에, 심상정 대표가 존경하는 역사 인물로 꼽은 삼봉 정도전은 왕이 썩고 탐관오리가 판치면 나라를 바꿔야 한다는 진보적 입장이었다. 전자는 나라가 우선이고 후자는 백성이 먼저다. 문 대통령의 과거 선거캠페인이 “사람이 먼저다”였다. 하지만 이제 보수와 진보를 무 자르듯 구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시대착오적이기도 하다. 결국 좋은 세상 만들어서 다 함께 잘 살자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는 뇌 자체가 다르다는 말도 있지만 공존할 수밖에 없다. 시에서처럼 어느 순간엔 진보적이었다가 또 어느 땐 보수적이 되기도 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고 오락가락 이다. 웬만큼 진보적이고 웬만큼 보수적일 뿐 진보적 가치를 배제하는 보수나, 보수적 가치를 깡그리 무시하는 진보는 곤란하다. 남북 화해, 복지 확대, 민주화 등의 기치가 우리 삶을 핍박할 리는 없지 않은가. 다양한 가치들을 조화롭게 잘 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건전한 보수와 진보가 공존해 서로 인정하고 보완하면서 견제와 균형을 이룰 때 국가는 발전하고 개인의 행복과 존엄도 실현된다. 삶의 기쁨과 행복을 위한 4가지 조건으로 ‘놀고 일하고 사랑하고 연대하는 것’을 꼽은 유시민 작가가 정의하는 진보도 타인의 고통과 기쁨에 공명하면서 함께 사회적 공동선을 이루어나갈 때, 가장 아름답고 품격 있는 인생이라고 했다. 그는 이러한 ‘연대’가 이루어내는 아름답고 유쾌한 변화를 ‘진보’로 보았다. 진중권 씨는 그 연대를 향해 “집단 속 승냥이, 뇌 없는 좀비”라고 독설을 퍼부은 것이다.

우리는 어디서나

우리는 어디서나 / 오규원우리는 어디서나 앉는다/ 앉으면 중심이 다시 잡힌다/ 우리는 어디서나 앉는다/ 일어서기 위해 앉는다/ 만나기 위해서도 앉고 협잡을 위해서도 앉고/ 의자 위에도 앉고 책상 옆에도 앉듯/ 역사의 밑바닥에도 앉는다/ 가볍게도 앉고 무겁게도 앉고/ 청탁불문 장소불문 우리는 어디서나 앉는다/ 밑을 보기 위해서도 앉고/ 바닥을 보기 위해서도 앉는다/ 바로 보기 위해 어깨를 낮추듯- 시집『가끔은 주목받는 생이고 싶다』(1987) ............................................... ‘한적한 오후다/ 불타는 오후다/ 더 잃을 것이 없는 오후다/ 나는 나무속에서 자 본다.’ 2007년 1월, 그러니까 타계하기 열흘 전 병문안 온 지인의 손바닥에 손가락으로 썼다는 그의 유작이다. 오규원의 시는 그렇듯 시가 문자로 드러낸 것 이상의 감동과 여운을 준다. ‘우리는 어디서나’를 읽으면서도 감춰진 시 너머의 의미를 찾는데 잠시 골똘해졌다. 의자에 머문 시인의 시선에서 ‘바로 보기 위해 어깨를 낮추듯’이란 지혜를 발견한다. 쉽게 읽히다가 ‘역사의 밑바닥에도 앉는다’는 대목에 탁 걸려 잠시 주춤하는데 역사를 바로보기 위해서는 어깨를 낮추고 얹힌 힘도 빼고 밑바닥도 챙겨보라는 의미로 수습한다. 의자에 앉듯 무게의 중심과 균형을 잡으라는 뜻이리라. 역사관 역시 삐딱하게 서거나 드러누워서 볼 게 아니라 차분히 앉아서 보라는 거다. 역사는 대체로 승자의 입장에서 진술되어지고 기록으로 남겨졌으며 이설 없이 교육현장에서도 통했다. 오백여 년 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한 것을 두고 우리는 그것을 신대륙의 발견이라고 배웠다. 그러나 토착 인디언의 입장에서 콜럼버스는 침략자의 첫발일 뿐이다. 갑자기 바다 위로 솟구친 땅도 아니고 사람이 전혀 살지 않는 무인 대륙도 아니었다. 서구 중심적 사고에 길들여진 역사 인식을 진작 바꿨어야 했다. 탈 서구적 시각인 인디오 시선으로 바라본 역사관도 균형 있게 함께 다뤄졌어야 했다. 과거 교육 현장에서 아프리카는 식인종이 득실거리고 북한 사람은 모두 흉하게 생겨서 뿔이라도 달린 양 교육을 받았다. 아니지 않는가. 모두 왜곡되고 편향된 서구중심의 세계관과 지나치게 기울어진 우측 이데올로기 탓이 아니었던가. 지금은 북한의 대규모 군사열병식을 생중계할 정도로 북한의 정보가 여과 없이 전해지는 세상이지만 과거엔 북에 대해 입만 뻥긋해도 신상이 위태로운 시절이 있었다. 시대가 변하고 국민의식이 그만큼 성숙해졌기 때문이리라. 국사교과서에 주체사상의 개념을 소개하고 김일성과 김정은의 사진을 실으면서 3대 세습 독재정치에 대한 비판도 함께 다루어졌다면 좌 편향된 역사 기술이라고 문제 삼을 수는 없다. 그보다는 해방공간에서의 균형을 잃은 역사해석을 포함해 무조건적인 친미사관이라든가 친일사관의 부활은 경계해야 할 일이다. 사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파적 이익에 맞춰 교과서를 개편하는 자체가 역사적 난센스다. 사안에 따라 쟁점이 있을 수 있고 다양한 해석과 평가가 따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사실을 왜곡하면서까지 정파의 입맛에 맞추어 의도를 관철시키려는 오류는 없어야겠다. 최근 언론보도나 방송의 토론 프로를 보면서도 같은 생각이 들었다. 특히 조국사태와 관련해서는 경마저널리즘의 전형을 보는 듯했다. 모두 차분하게 의자에 앉아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겨울사랑

겨울사랑 / 고정희그 한번의 따뜻한 감촉/ 단 한번의 묵묵한 이별이/ 몇 번의 겨울을 버티게 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벽이 허물어지고/ 활짝 활짝 문 열리던 밤의 모닥불 사이로/ 마음과 마음을 헤집고/ 푸르게 범람하던 치자꽃 향기/ 소백산 한쪽을 들어올린 포옹/ 혈관 속을 서서히 운행하던 별/ 그 한번의 그윽한 기쁨/ 단 한번의 이슥한 진실이/ 내 일생을 버티게 할지도 모릅니다- 시집『아름다운 사람 하나』(푸른숲,1990) ..................................................... 그 옛날 미팅 같은데서 어떤 계절을 좋아하냐는 식의 간지럽고 니글거리는 질문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유통되곤 했다. 지금도 순진하기 짝이 없는 심심한 학생들 사이엔 수줍게 그 같은 문답이 오가고 있다. 대꾸에 따라 혈액형 따위와 더불어 상대방의 성격을 대충 간본다든지, 자신과의 주파수를 맞춰보곤 했다. 그때 겨울이 좋다 하면 순결하고 이성적인 이미지가 덧씌워진 낭만파쯤으로 인식했다. 하지만 그 대답은 계절간의 장단점을 면밀히 비교하거나 계량에 의해서가 아니라 한두 가지 평범한 이유에 이끌려 즉흥적으로 내뱉는 경우가 많았다. 그저 느낌이 좋은 순백의 강하물 때문에, 혹은 긴 방학이 있어서, 성탄절과 송년의 해방공간이 주는 매력, 그리고 겨울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는 점 등이다. 일부 살이 푸짐한 사람들은 살을 가릴 수 있어 좋다고도 한다. 그렇지만 겨울의 가장 본질적이고 깊은 매력은 그 차가움으로 뜨겁게 사랑을 촉진시킨다는데 있다. 겨울은 온기가 짙게 감각되는 계절이다. 따뜻함이 좋고 찻잔을 감싼 손의 느낌이 좋고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그립다. 여름과는 달리 곁의 따스한 체온이 싫지 않고 옆에서 사람이 치대어도 성가시지 않으며 포옹도 자연스럽다. 그래서 차가울수록 사람이 좋아지는 계절이다. 문정희 시인의 ‘겨울사랑’도 ‘눈송이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 머뭇거리지 말고/ 서성대지 말고 숨기지 말고/ 그냥 네 하얀 생애 속에 뛰어들어 따스한 겨울이 되고 싶다’고 했다. 고양된 격정은 고정희의 ‘겨울사랑’과 다를 바 없다. 확실히 겨울은 그 ‘따뜻한 감촉’으로 인하여 커피의 맛은 더 깊어지고 라면과 김치찌개까지도 훨씬 맛있어진다. 음악은 더 짙은 감칠맛으로 전이되고 연인들의 주고받는 밀도 높은 언어는 온기를 머금고서 스며든다. 그리고 겨울밤은 사랑의 역사가 무르익기 딱 좋은 계절. 고슴도치의 겨울나기 방식으로 연인들은 가급적 밀착, 밀착 또 밀착이다. 드디어 ‘소백산 한쪽을 들어올린 포옹,’ 이 겨울은 연인들 사이의 거리를 물리적으로 좁혀준다. 하지만 사랑이 뜨거워지면 임계점에 부글부글 끓어올라 별사를 완성하기에도 마침맞은 계절 또한 겨울이다. 누구에겐들 이 겨울, 눈이 쌓이고 녹는 동안 더운 사랑과 아린 이별의 추억이 감긴 한 롤의 낡은 필름이 없으랴. ‘그 한 번의 그윽한 기쁨’ ‘단 한 번의 이슥한 진실이’ ‘일생을 버티게 할지도’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고정희 시인도 생을 떠받들 묵직하고 뜨거운 사랑 한 소절은 가졌나 보다. 못 잊을 사랑 하나 품고서 몇 번의 겨울을 버티었을까. 지상에 없는 그녀는 지금 ‘치자꽃 향기 푸르게 범람하는’ 어느 별에서 이 겨울과 입맞춤할는지. 또 남은 겨울을 버티고 새봄을 맞을지. 눈 내리지 않는 겨울에 겨울비만 추적거린다. 그 사이로 우수어린 눈빛 내 아직 살아갈 날들.

희망

희망 / 정해정 웃음 띤 그대 미소는/ 분노를 잠재우고/ 지구가 멈추지 않는 이유는/ 사랑하는 당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삶의 무게가/ 때론 버거울 때도/ 그 사람 얼굴을 떠올립니다// 경험에서 나오는 지혜는/ 슬기로움이 되어 어두운 터널을/ 만난다 해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밤하늘에 뜬 수많은 별/ 그 중 유일한 별 하나/ 그게 바로 당신이랍니다.- 시집 『날마다 좋은 날』 (노블타임즈, 2019)....................................................... 시인이 되기 전에 먼저 인간이 되어야한다는 말들을 한다. 시를 잘 쓰기보다는 사람 됨됨이가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또한 이 말에는 시적 성취가 인격의 성숙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함의도 지니고 있다. 시인에 앞서 그들도 생활인이며 남들이 겪는 삶의 희로애락을 모두 겪으면서 살아간다. 범박하기도 하고 때로는 낯간지러울 수도 있다. 당연히 잘못을 저지르기도 하고 허물도 없지 않으리라. 이때 시를 쓰는 사람으로서 보통 사람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잘못과 허물에 대한 성찰을 시적인 비망록으로 남기려는 성향이 있고 그 사유를 시라는 틀 안에 담아낸다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시는 자신의 상처와 허물조차도 진실하게 담아내는 치유의 그릇이며 희망의 도구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인간이 덜 여물었거나 설령 도덕적으로 사소한 흠결이 있다손 치더라도 시를 쓰지 못할 이유란 없다. 얼마나 진정성 있는 태도로 시를 대하느냐가 중요하며 진득한 삶의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사람냄새가 밴 시면 족하다. 기교만으로 쓰는 시는 잠시 독자를 현혹시킬 수 있어도 그것은 언어유희에 지나지 않으며 생명력이 짧다. 진실하고 진솔한 시만이 독자의 가슴에 오래도록 기억된다. 시가 우리의 삶에 밀착되지 않고 허황되거나 지나치게 추상적이면 독자는 물론이거니와 시인 스스로도 공허해지기 쉽다. 따라서 시 창작의 궁극적 의의는 자신을 포함해 세상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데 조금이라도 기여하는 것이다. “행복은 가까운 곳에 있다” 소박하고 평범한 진리를 담은 공자의 말씀이다. 어떤 일을 하든 그 일을 즐겁게 하는 사람이 능력자란 의미이기도 하다. 시를 놀이하듯 즐기는 사람은 이미 시를 통해 도달하고 성취한다. 시는 자신을 표현하는 하나의 도구요 방편이 될 수밖에 없다. 긍정적이고 낙관적이면 희망은 점점 자라게 되어있다. 그리고 희망은 희망을 갖는 사람에게만 존재한다. 희망이 있다고 믿는 사람의 품에서만 자란다. 시인에겐 ‘사랑하는 당신’이 희망의 절대적인 끄나풀이다. ‘수많은 별’ 중에서 ‘유일한 별’을 바라보는 시선을 거두지 않는 한 희망은 언제나 살아있는 것이다. 시적 성취에 이르기에는 부족할지 몰라도 그 믿음의 당신을 생각만 해도 기쁨이며 행복인 것이다.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김광석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내 텅빈 방문을 닫은 채로/ 아직도 남아 있는 너의 향기/ 내 텅빈 방안에 가득 한데// 이렇게 홀로 누워 천정을 보니/ 눈앞에 글썽이는 너의 모습/ 잊으려 돌아누운 내 눈가에/ 말없이 흐르는 이슬방울들// 지나간 시간은 추억 속에/ 묻히면 그만인 것을/ 나는 왜 이렇게 긴긴 밤을/ 또 잊지 못해 새울까// 창틈에 기다리던 새벽이 오면/ 어제보다 커진 내 방안에/ 하얗게 밝아온 유리창에/ 썼다 지운다 널 사랑해// 밤하늘에 빛나는 수많은 별들/ 저마다 아름답지만/ 내 맘속에 빛나는 별 하나/ 오직 너만 있을 뿐이야// 창틈에 기다리던 새벽이 오면/ 어제보다 커진 내 방안에/ 하얗게 밝아온 유리창에/ 썼다 지운다 널 사랑해.......................................................“광석이는 왜 그렇게 빨리 죽었다냐?” 에서 북한군 병사 송강호의 대사다. 1996년 1월6일 서른셋의 나이로 유서 한 장 남기지 않고 세상을 떠난 김광석의 죽음은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의문이다.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면서 가장 활발하게 음악 활동을 하던 시기였기에 더욱 미스터리다. 이 ‘시’는 그가 작사한 노랫말이다. 그의 노래는 대중적이고 일상적이지만 다른 대중가수와는 다른 면이 있다. 평론가를 포함한 문인들에게 문학과 가장 잘 어울리는 가수가 누구냐고 물었다. 이구동성으로 김광석을 꼽았다.그의 짧은 생애가 불꽃같은 삶을 살다간 어느 천재 요절시인과 닮았고, 맑고 서정적인 목소리가 시적이며, 아픔과 허무가 밴 노랫말과 가락들이 모두 문학적인 서정을 머금고 있다는 것이다. ‘서른 즈음에’는 음악평론가들이 뽑은 1990년대 이후 가장 아름다운 노랫말 1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서른 즈음에'는 30~40대 청춘들의 삶을 융숭 깊게 했으며,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는 황지우의 시 ‘늙어가는 아내에게’보다 더 구체적이고 직접적으로 생을 성찰케 하면서 그들을 위로했다.오래 전 한 주점에서 군에 입대하는 친구를 위한 젊은이들의 송별연이 벌어지고 있었다. 마침 주점의 스피커에선 청춘의 송가 ‘이등병의 편지’'가 흘러나왔고 잠시 가게 안이 조용했으며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이여~’란 대목에 이르자 무리 가운데 여자 하나가 훌쩍훌쩍하더니 기어이 모두가 엉엉 울어재끼는 광경을 본 일이 있다. 김광석의 노래는 그렇듯 사랑을 더 열렬하게 하고 이별을 더욱 애틋하게 하며 삶을 진지하게 만든다. 그의 노래는 정갈한 고독과 우수를 느끼게 하고 시적인 울림으로 공명한다.김광석을 죽은 뒤에도 오랫동안 기억하고 그의 노래를 사랑하는 이유다. 그가 살아있다면 올해 쉰일곱이다. 사후 24년이 흐른 지금껏 그의 노래는 끊임없이 리메이크되고 새롭게 조명되어 살아있는 웬만한 가수보다 활동 폭이 넓고 우리들 삶 속에 살아서 함께 호흡한다. 우리 대중문화에 김광석 현상으로 자리 잡은 그의 존재감은 특별하다. 그가 태어나고 떠난 달이 모두 1월이니만큼 매년 이맘때면 그를 추모하며 곳곳에서 김광석을 다시 부른다. 그의 고향인 대구 방천시장 옆 김광석길은 대구의 대표적인 관광명소가 된지 오래다. ‘아직도 남아 있는 너의 향기 내 텅빈 방안에 가득’하여 그 향수와 낭만을 찾아 10대에서 60대까지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그를 몰랐던 젊은이들도 그의 노래에 빠져들어 ‘하얗게 밝아온 유리창에 썼다 지운다 널 사랑해’ 따라 부른다.

줄탁

줄탁/ 이정록어미의 부리가/ 닿는 곳마다/ 별이 뜬다// 한 번에 깨지는/ 알 껍질이 있겠는가// 밤하늘엔 나를 꺼내려는 어미의/ 빗나간 부리질이 있다// 반짝, 먼 나라의 별빛이/ 젖은 내 눈을 친다- 시집『제비꽃 여인숙』(민음사, 2001) ................................................. ‘줄탁’은 본디 불가에서 나온 말로 ‘줄’은 닭이 알을 깔 때 병아리가 막 껍질을 깨고 밖으로 나오려고 안에서 쪼는 것을 말하며, ‘탁’은 같은 때에 어미 닭이 밖에서 껍질을 쪼아 깨뜨리는 것을 이른다. 생명기운의 우주적 순환과 탄생의 신비를 묘사하는 이 말은 세상에 첫발을 디딜 때 안팎의 관계가 이러해야 하듯이 깨침을 위한 단계에서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 이를 때 주로 쓴다. 요즘은 종교불문 기독교에서도 인간을 찾아오시는 하느님과 응답하는 인간이 만나는 지점을 두고 인용하며 정치권에서도 가끔 회자되곤 한다. 모든 일에는 순서와 시기와 최적의 방법이 있다. 그 시기를 놓치면 일이 성사되기 어려운 게 세상 이치다. 때를 놓치거나 너무 앞서게 되면 공연히 기운만 빼거나, 때로는 많은 희생이 따르고 자칫 비극적 상황으로 이어질 수도 있음을 우리는 역사적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참으로 세상살이에서 꼭 필요한 가르침이자 매력적인 이치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협업 관계에서 시그널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서로의 가치와 채널을 공유하고 경청하는 것도 중요하다. 새 역사를 쓰고 새 시대를 만들어가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타이밍이다. 추미애 법무장관이 취임사에서 ‘줄탁동기’를 인용했다. 이 말은 그동안 검찰개혁 추진과정에서 몇 번 언급된 바 있다. 오랜 기간 누적된 무소불위의 검찰 권력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과 분노가 치솟다가 노무현 대통령 서거를 계기로 응집된 목소리가 한꺼번에 표출되었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의 1호 공약이 되었고, 검찰개혁을 바라는 국민의 열망을 받들어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가 가동되면서 박영선 위원장이 맨 처음 ‘줄탁동기’를 언급하였다. 검찰과 사법 개혁은 정부와 국회의 노력에다 국민의 지지가 더해져야 완성된다며 국민적 지지를 강조한 것이다. 물론 검찰 스스로의 환골탈태가 더 중요했지만 지금껏 내부의 자정노력보다는 권력을 지키려고 안간 힘을 다하며 맞서는 검찰의 모습만을 보아왔기 때문에 절망적이었다. 이에 추미애 장관은 더 이상 조직 차원에서 기대할 것이 없다고 판단하여 검사 개개인의 의식변화를 주문했던 것이다. 그리고 공수처는 검찰만을 겨냥한 게 아니라 주요 고위 공직자를 망라하므로 약 80%의 국민이 지지하는 기관임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민주사회는 권력의 균형과 견제로 유지되어야 한다. 공수처는 권력기관 상호견제 시스템임으로 야당에서도 반대할 아무런 명분이 없는 기구이다. 개혁의 마지막 방점을 검찰개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무엇보다 국회개혁과 정당개혁 없이는 국민들이 바라는 개혁의 완수는 온전히 체감하기 힘들다. 정치 환경 변화는 결국 우리 삶의 근본적 변화를 가져오는 경제적 질서, 복지정책 방향 등을 결정짓는 구체적인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정당을 지지하고 어떤 의원을 뽑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지금이 ‘줄탁’의 적기이나 새 생명이 탄생하는 껍질은 한방에 와장창 깨어지지는 않는다. ‘빗나간 부리질’도 있을 것이다. 부디 마침맞은 줄탁으로 ‘반짝, 먼 나라의 별빛이 젖은 내 눈을 치’며 별이 뜨는 그날이 오길 소망한다.

간격

간격 / 안도현숲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을 때는 몰랐다/ 나무와 나무가 모여/ 어깨와 어깨를 대고/ 숲을 이루는 줄 알았다/ 나무와 나무 사이/ 넓거나 좁은 간격이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벌어질 대로 최대한 벌어진/ 한데 붙으면 도저히 안 되는/ 기어이 떨어져 서 있어야 하는/ 나무와 나무 사이/ 그 간격과 간격이 모여/ 울울창창 숲을 이룬다는 것을/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숲에 들어가 보고서야 알았다.- 시집『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창비, 2004)......................................................... 자연의 현상을 노래한 많은 시는 그 상징과 비유를 통해 인간의 삶을 대변한다. 이 시도 숲을 원경으로 바라보았을 때의 인식과 실제 숲 속에 들어가서 본 본디의 모습이 다른데서 얻은 깨달음으로 삶의 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멀리 떨어져 보았을 때는 나무들 간격의 빼곡한 밀착으로 숲을 이룬다고 믿었으나, 불 타버린 숲의 한가운데 들어서서 보았더니 ‘나무와 나무 사이 그 간격과 간격이 모여 울울창창 숲을 이룬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사람들 사이에서도 이러한 이치가 통하고 또 작동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숲은 사람들이 모여 이루는 공동체로, 나무와 나무는 공동체의 구성원인 개개인을 일컫는다. 이 나무들의 모습에서 인간사회의 바람직한 관계를 발견한다. ‘어깨와 어깨를 대고’있다는 것은 얼핏 간격 없이 붙어있기에 결속과 일사 분란함이 가능하고, 그것으로 울창한 숲을 이룬다고 생각했으나 사실은 그와 달랐다. 촘촘하지 않고 ‘넓거나 좁은’ 적절한 간격, ‘한데 붙으면 도저히 안 되는, 기어이 떨어져 서 있어야 하는’ 그 이유로 각각의 나무는 성장하고, 그 간격들이 모여 울창한 숲을 이룬다는 것을 알았다. 이는 우리들 삶의 모습에도 적용된다. 진정한 사랑이나 우정은 맹목적인 밀착(혹은 집착)이 아니라 한 발짝 떨어진 위치에서 바라보는 여유와 조화로서 완성되는 것이다. 나무들 사이의 적당한 간격처럼 사람들 사이에도 이만한 간격은 필요하고, 사람이 사람을 대할 때도 한발 떨어진 위치에서 관조할 수 있는 여유는 있어야한다는 의미이다. 그 간격으로 바람이 통하고 햇빛도 들며 조화의 아름다움도 유지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 자칫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고, 상처가 깊어지면 필경 사단이 나고 만다. 이런 간격의 소중함에 대한 잠언은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 중 ‘결혼에 관하여’에도 볼 수 있다. “너희는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마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하되 서로는 혼자 있게 하라. 마치 현악기의 줄들이 하나의 음악을 울릴지라도 줄은 서로 혼자이듯이 서로 가슴을 주라. 그러나 서로의 가슴속에 묶어 두지는 말라” “함께 서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은 서로 떨어져있고 참나무와 삼나무는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다” 그 적절함과 적당함이 대충 대강으로 들리기도 하겠다. 적당히 사랑해야 적당히 아플 수 있다는 말도 있다. 얼핏 인간적 순수성의 결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지혜롭지 못한 맹목의 사랑과 우정, 믿음과 밀착은 사달이 날 경우 그 폐해는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너무나 크다. 맹목으로 윗도리 아랫도리 홀딱 벗고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자, 어쩌면 심장을 잃어버릴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