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소설 ‘동물농장’을 다시 읽나

왜 소설 ‘동물농장’을 다시 읽나박운석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동물들이 드디어 혁명을 일으켰다. 인간 농장주인으로부터 가혹하게 노동력을 착취당하던 동물들이었다. 마침내 동물들은 인간 주인을 몰아내고 자기들이 직접 농장을 경영하기 시작했다. 동물들은 혁명을 이끈 ‘나폴레옹’과 ‘스노볼’이라는 돼지 두 마리를 지도자로 삼았다. 이들은 혁명 후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는 등의 7계명을 헛간 벽에 적어두고 초심을 다졌다. 일요일마다 회의하는 것도 빠트리지 않았다. 하지만 갈수록 돼지집단 내부의 권력투쟁과 부정부패라는 권력의 달콤함에 빠져들고 만다. 이들 특권층 돼지들은 ‘어떤 동물도 술을 마셔서는 안된다’는 계명을 무시하고 술을 마시고, 자녀들을 위해 전용 고급 교실을 짓는 등 자신들이 혁명의 구실로 삼았던 ‘적폐’들을 그대로 재현했다. 그러고서는 다른 동물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떤 동물도 저항하지도, 비판하지도 못했다. 시간이 갈수록 동물들은 폭력과 노동착취, 복종에 익숙해지고 무기력해져만 갔다. 다른 생각을 가진 동물은 무조건 적으로 몰려 숙청되기 때문이었다. 조지오웰이 1945년 발표한 소설 ‘동물농장’의 일부 내용이다. 동물농장은 러시아 혁명 이후 ‘프롤레타리아 유토피아’를 내건 공산주의 독재가 타락해 가는 과정을 풍자한 소설이다. 발표된 지 70년이 넘은 이 소설을 다시 읽으며 섬뜩함을 느낀다. 그 당시 소설 속의 상황과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너무나 똑같기 때문이다. 당혹스러웠다. 발표된 지 70년이 넘은 이 소설의 내용이 왜 하필 현재 한국의 상황과 똑같은지. 그렇다면 소설 동물농장이 주는 교훈은 당시나 현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먼저 소수 엘리트 권력층의 부패는 그들만의 책임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소설 동물농장에서 지배층인 돼지가 가장 먼저 챙겼던 특권은 사과를 슬쩍 가져가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일반 대중인 다른 동물들이 이들의 이율배반적인 행위를 감시하고 제지했더라면 돼지들의 지도자 나폴레옹이 독재자로 변해가는 걸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배당하는 동물들은 그러지를 못했다. 그들의 무지와 무기력이 결국은 권력의 타락을 불러온 것이었다. 권력을 잡은 머리 좋은 돼지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진실을 철저하게 억압했다. 이들 사회의 이상이 집약된 율법인 7계명을 먼저 무시하고 모른 체하는 뻔뻔함도 나타났다. 심지어 애초의 동물 7계명이 조작되고 부정되어도 어느 누구도 이를 비판하거나 저항하지 못했다. 특정 계층은 대중을 기만하면서 거짓과 조작이 진실을 덮었다. 그 속에서 동물들은 굴종과 복종에 익숙해져 갔고 무기력해져만 갔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동물은 무조건 적으로 모는 이분법적 논리에 의해 숙청되거나 즉석에서 처형됐다. 급기야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는 계명은 어느새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는 내용으로 바뀐다. 평등은 말뿐이었고 철저히 계급사회로 이뤄진 독재체제로 변해버린 것이다. 소설 동물농장에서 일어난 에피소드들은 과거 러시아혁명에 관한 우화이다. 그러나 당시와 똑같은 사건들이 현재의 사회, 현재의 정치에서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실제 AFP통신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2017년 초, 빅 브라더가 당원의 모든 것을 감시하는 전체주의 국가를 그린 조지 오웰의 또 다른 소설 ‘1984’의 판매가 무려 95배나 폭증했다고 보도했다. 영국에서도 이 소설의 판매가 165% 늘어났다. 이같은 오웰의 소설 재출간 붐은 현재 사회가 ‘1984년의 동물농장’이어서가 아닐까.한국은 어떤가. 정권은 바뀌고 있지만 부정부패와 부조리, 편법은 여전하다. 동물농장을 읽고 좌절하는 건 그래서다. 과연 누가 “한국은 그렇지 않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더 슬픈 건 ‘동물농장’은 1945년에도 있었고 지금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미래세계에서도 있을 것이다. 소설에서 풍자하는 우화는 세계 곳곳의 삶의 모습을 담은 현재의 축소판이다. 소설 속 지도자 돼지 나폴레옹은 여전히 죽지 않았다. 그럴싸한 논리에 현혹된 대중들이 경계를 늦추는 순간 보란 듯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소설 동물농장을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다.

자영업자,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다

자영업자,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다박운석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 몰락, 벼랑 끝, 빈사 상태, 한숨…요즘 자영업을 다룬 언론사 기사 제목에 포함된 단어들이다. 각종 정치적 이슈로 우리 사회가 보수, 진보라는 진영으로 나뉘어 서로 물고 뜯고 싸우는 동안 자영업 대란, 자영업의 몰락이 현실로 다가왔다는 말이다.이같은 현상은 통계청 자료를 통해서도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8월말 통계청이 발표한 ‘전국가구 가계소득 증감률 추이’에 따르면 국내 가계사업소득이 전년 동기 대비 3분기 연속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가계사업소득은 개인이 계속적으로 사업을 해 얻은 순수익 중 가계에 들어온 금액을 말한다. 가계사업소득이 줄었다는 것은 자영업자들의 수익이 줄어들었다는 뜻이다. 구체적으로는 올해 2분기 국내 가계사업소득은 전년도 같은 기간에 비해 1.8% 감소했다. 지난해 4분기 3.4%, 올해 1분기 1.4%의 감소율을 보인 이후 3분기 연속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이는 일자리를 잃은 빈곤층이 급증하면서 근로소득마저 계속 내리막길을 걸은 결과이기도 하다. 소득 하위 20%(1분위)에서 근로자가구비중은 지난해 2분기 43.1%에서 올해 2분기에는 29.8%로 대폭 내려앉았다. 현재 소득을 기준으로 최하위층 가구의 70%가 자영업자 또는 무직자 가구이고, 근로자 가구는 불과 30%라는 말이다. 최저임금 인상 등의 영향으로 폐업한 자영업자들이 늘어나면서 특히 하위계층이 일자리를 잃은 결과다.특이한 것은 하위계층의 사업소득은 늘어나고 상위계층의 사업소득은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올해 2분기 소득 하위 20%(1분위)의 사업소득은 전년 동기 대비 15.8% 증가했다. 2분위(하위 21~40%), 3분위(소득 41~60%)의 사업소득도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0.1%, 4.1% 증가했다. 반면 4분위(상위 20~40%)는 16.6% 감소했고 5분위(상위 20%)에서도 0.5% 감소했다.이를 두고 청와대의 통계해석이 구설에 올랐다. 1~3분위 사업소득이 증가한 것을 두고 올해 2분기 전체적인 소득 수준이 상당한 개선이 있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호승 청와대 경제수석은 지난달 통계청의 발표이후 “작년 1~2분기에 비해 올해 1~2분기가 전체적으로 나아졌다”고 말했다. 과연 그럴까? 전문가들은 어쩔 수 없이 폐업한 자영업자들이 빈곤층으로 추락하면서 생기는 현상으로 본다. 자영업자들의 실질 소득이 증가한 것이 아니라 4분위에 있던 자영업자 소득이 줄어들면서 3분위로 내려앉고 3분위는 2분위로 떨어지면서 하위계층의 사업소득이 늘어나는 기현상을 보였다는 것이다.문제는 ‘더불어 잘사는 경제’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자영업자들은 희망을 잃었다는 것이다. 최저임금을 올리면 자연적으로 분배와 성장이 이뤄지고 일자리도 늘어날 것이라는 정책과는 정반대의 결과다.일부에선 자영업자가 너무 많아서 생기는 문제라고 이야기한다. 맞는 말이다. 작년 기준 자영업자 수는 568만명으로 폐업률(창업자 대비 폐업 비율)이 72.2%에 이를 만큼 자영업으로 뛰어드는 사람들도 많다. 그렇다고 이들의 몰락을 사회구조적인 문제는 제켜두고 개인 탓으로만 보는 것도 맞지 않다. 실제 50대 이후엔 재취업의 기회가 너무 제한적이고 20~30대들은 취업문턱을 넘어서기가 어렵다. 이런 노동시장의 문제가 이들을 자영업이란 불구덩이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결국은 좋은 일자리를 늘리는 게 자영업의 몰락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아쉽게도 이때까지 자영업자들을 위한 정부정책은 카드수수료 인하와 소상공인 경영자금 지원이었다. 청년일자리를 늘리기 위한 각종 인센티브도 소규모 자영업자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중소기업 일자리 확대를 위해 쓴 그 많은 예산에도 효과는 미미하다. 당장의 실적보고용 정책이나 일시적인 자금지원 정책은 이들의 몰락을 잠시 늦추는 언 발에 오줌 누기일 뿐이다.빚을 내서 겨우 사업을 유지하는 자영업자들은 폐업조차 맘대로 못한다.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임금은 조금 적더라도 재취업이나 업종변경을 할 수 있도록 길을찾아 주는 근본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오죽하면 자영업자들이 정치에 나서겠다고 선언하겠는가.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직장내 괴롭힘 방지법배병일영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7월16일부터 직장내 괴롭힘, 이른바 직장내 갑질이 법적으로 금지되었다. 종전까지는 직장내 갑질은 법적으로 규제할 수도 있었지만 대부분 도덕적으로 직장 윤리 문제로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회가 발달함에 따라 직장내 갑질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어 있었다.심지어 모 기업주의 회사내 엽기적 갑질과 공기업내의 갑질, 여러 병원내의 태움이라는 갑질 등이 해당 직원의 극단적 선택으로 비화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제20대 국회에서 12건의 법률 개정안이 발의되었고, 법안을 발의한지 6개월만에 괴롭힘 금지법이 입법되었다. 개정된 근로기준법에서는 제76조의 2의 규정을 신설하여 사용자 또는 근로자는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직장내 괴롭힘을 금지하고 있다.또한 근로기준법 제76조의 3의 규정을 신설하여 직장내 괴롭힘을 확인한 사용자는 조치의무를 규정하고 있고, 만약 조치를 하지 않는 경우 사용자는 형사적 책임을 부담하지는 않지만, 제109조에서 괴롭힘 발생사실을 신고한 근로자나 피해근로자에게 불리한 처우를 하게 되면 형사처벌(3년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하도록 하고 있다.상시 10인이상의 근로자가 있는 사업장은 직장내 괴롭힘의 예방 및 발생시 조치 등에 관한 사항을 취업규칙으로 작성하여 노동부장관에게 신고하여야 하고, 이를 어길 경우에는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하도록 하였지만, 교용노동부는 시정기간을 두었다. 갑질금지 규정은 개정 근로기준법 부칙에서 괴롭힘이 7월16일 이후에 발생한 경우에만 적용하도록 하여 미투와 같이 과거사에 대해서는 적용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그러나 갑질금지법은 6개월만에 졸속으로 입법하다가 보니 여러 가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먼저 괴롭힘의 개념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폭행이나 협박과 같이 형사적 처벌의 대상이 되는 행위 뿐 아니라 성희롱 등에 의한 행위도 괴롭힘의 대상이 될 수 있고, 이 경우에는 형사처벌이나 징계의 대상이 될 수 있다.잡일을 시키거나 업무를 부여하지 않고 왕따를 시키는 것, 음주·흡연·회식을 강요하는 것, SNS 갑질, 뒷담화 등도 괴롭힘으로 볼 수 있다. 이외에도 얼마든지 많은 행태가 있을 것이지만, 괴롭힘의 개념이 불확실하다는 점은 문제가 많다. 둘째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서라는 요건의 입증도 문제될 수 있다. 피해자는 괴롭힘을 당했다고 주장할 것이고, 이에 대해서 가해자측은 업무상 적정범위내의 행위를 했다고 주장할 것이지만, 그 입증이 만만치 않다. 피해자측으로서는 몇 가지 사실을 근거로 괴롭힘을 당했다고 손쉽게 주장할 수 있다. 가해자측으로서도 이에 대한 반박이나 탄핵을 하기 위해서는 온갖 증거를 제출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직원과의 면담이나 대화한 기록을 상세하게 남기거나, 동료들에 대해 주관식으로 기술하는 다면평가를 의무화해 평소 자료를 남기는 등의 방안이 강구되어야 한다. 후자는 자칫 괴롭힘의 증거로도 될 수 있다.세째 사용자로서의 오너가 가해할 경우에는 직장내에서 징계권자를 징계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점도 문제이다. 네째 가해자에 대한 처벌규정이 없고, 괴롭힘을 단지 직장내 징계사항으로 방치했다는 점도 문제이다. 마지막으로 공무원의 경우는 제외되어 있는 점이 아쉽고, 국가공무원법, 지방공무원법, 교육공무원법을 개정하여야 할 것이다. 어떤 행위가 사회적인 도덕규범으로 규율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는 경우에는 부득이 법률로서 규제할 수 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행위를 법적으로 규율하기 위해서는 그저 사회문제화된다고 해서 바로 법률로서 제한을 해서는 안된다.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라는 법언이 있듯이, 어떤 행위가 법규범화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때에 법규범으로 규율하여야 할 것이다. 갑질 괴롭힘은 형사적으로 처벌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새로운 법을 만들어서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갑질 신고에 대하여 불리한 처우를 한 행위에 대하여 처벌하도록 한 것이라는 점에서 다소 아쉬움이 있는 입법이다.

‘어그로’(aggro)를 끄는 사회

‘어그로’(aggro)를 끄는 사회박운석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원래 게임용어에서 유래된 인터넷 은어 중에 ‘어그로(aggro)를 끈다’는 말이 있다. 눈길을 끌 만한 부정적인 글이나 사진, 동영상 등을 내세워 관심을 모으는 것을 뜻한다. 영어 단어 aggravation에서 왔다고 알려져 있다. 엔씨소프트문화재단에서 펴낸 ‘게임사전’에 따르면 상대방을 도발하는 행위, 약오르게 하는 것 등의 뜻을 가졌다. 흔히 특별한 이유 없이 시비를 걸며 기분 나쁘게 도발하는 것을 ‘어그로를 끈다’고 표현한다.원래 게임에서 쓰이는 ‘어그로’라는 말은 부정적인 게 아니었다. 다수의 플레이어가 함께 참여하는 역할 게임인 다중접속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MMORPG)에서 유래했다. 이 게임에 나오는 몬스터는 자신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되는 상대 캐릭터를 골라 집중 공격을 한다. 그러다가 또 다른 캐릭터가 갑자기 그를 공격하면서 성가시게 하면 몬스터는 공격방향을 그 캐릭터로 바꾸게 된다.만약 몬스터의 공격이 우리 팀의 주력선수에게 향하면 전력에 큰 손실이 생길 수 있다. 팀이 위기에 처한 이 때, 이렇다 할 공격 능력이 없으면서도 적을 도발하는 역할을 떠맡아 공격을 자신에게 집중시키는 희생전략이 ‘어그로’이다. 결국 ‘어그로를 끈다’는 것은 팀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희생이다. 이런 게임용어가 인터넷을 통해 번지면서 현실세계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도발하는 행동을 통해 관심을 끄는 것으로 의미가 변했다. 인터넷에 의도적으로 악의적인 내용의 글을 올려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는 행위를 ‘어그로를 끈다’고 한다.부정적인 이슈로 관심을 끌어 모은다는 의미에서 어그로는 ‘관종’과 별다를 바 없다. 관종이란 관심을 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지나치게 높은 병적인 상태에 있는 ‘관심병 종자’를 줄인 말이다. 허세를 떨거나 선동적이고 자극적인 게시물로 관심을 끌려는 사람들을 ‘관종’이라고 부른다.하긴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이 돈이 되는 세상이다. 요즘 한창 인기를 끌고있는 유투브 등의 플랫폼에서는 구독자와 조회수가 수익과 직결된다. 이들은 구독자를 늘리기 위한 혐오 콘텐츠의 생산과 유통, 재생산을 반복하고 있다. 혐오가 ‘관종의 시대’에 가장 핫한 콘텐츠가 된 것이다.EBS 방송의 지식채널e라는 프로그램을 보다가 놀란 적이 있다. 국내에서 연간 수입 톱9인 ‘1인 크리에이터’들의 수익이 최대 31억6천만 원, 최소가 6억1천만 원이라고 했다. 크리에이터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닐 테지만 많은 수가 혐오콘텐츠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건 사실이다. 크리에이터들은 조회수 어그로를 끄는 것으로 수익을 창출하기 때문이다. 조회수를 높이기 위해 갈수록 자극적인 내용으로 콘텐츠를 만들려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유투버들이 혐오성 콘텐츠로 돈벌이를 하고 있다면 정치인들은 막말과 망언 등 어그로성 콘텐츠를 확대재생산해 정치적 존재감을 과시하려는 경향이 있다. 게임에서는 이렇다 할 공격기술이 없으면서도 어그로를 끄는 것처럼 정치권에선 논리도, 설득력도 없지만 부정적인 이슈를 내세워 관심을 끌려고 한다.정치인은 예외 없이 어그로이고 관종인 듯 하다. 유권자들의 관심은 자신들의 정치생명과 직결된다고 믿는다. 때문에 관심만 끌 수 있다면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는다. 나아가 일부러 욕을 먹는 행동이나 막말도 서슴없이 해댄다. ‘악플’ 일지언정 ‘무플’보다 낫다고 보는 그들이다.가히 어그로의 세상, 관종들의 세상이다. 유투버들은 대중들의 관심을 끌만한 자극적인 콘텐츠로 조회수를 늘리고 광고를 끌어들여 경제적 이득을 취한다. 튀기 위해서 어그로를 끄는 행동이나 말을 주저하지 않는다.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대중들의 관심을 끌어들여 돈을 버는 게 아니라 표를 얻고자 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요즘 사회가 온통 진흙탕이다. 이 진흙탕 속에서도 어그로를 끄는 관종들의 관심은 하나다. 유명해지면 그만이다. 그러기 위해서 혐오와 막말과 흑백논리와 차별을 부추기고 추종자들의 관심을 극단으로 몰아간다. 혹시 우리는, 이들의 어그로에 나도 모르게 끌려들어가고 있는 건 아닌가 심각하게 생각해 볼 때다.

2030, 그들의 마음 누가 다스려주나

2030, 그들의 마음 누가 다스려주나박운석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며칠 전 통계청이 발표한 7월 고용동향을 보면 만 15~29세 청년실업률은 9.8%를 기록했다. 역대 7월 수치로는 1999년 7월(11.5%)이후 20년 만에 최고치다. 대략 청년 10명 중 1명은 통계상으로 실업자다. 하지만 취업준비생들이 체감하는 실업률과는 아무래도 차이가 난다. 실업률은 경제활동인구에서 실업자의 비율을 따지기 때문이다. 육아나 가사, 심신장애, 취업준비자, 진학준비, 군인, 군입대 대기 등에 해당하는 비경제활동인구는 실업자로 분류하지 않는다. 비경제활동인구를 포함하면 청년의 실업률은 통계청이 발표한 수치보다 2배 차이가 난다. 실제 이들 청년층의 체감실업률(확장실업률)은 23.8%로 전년 동월대비 1.1%포인트나 상승했다. 2015년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높아 말 그대로 ‘청년고용 빙하기’가 이어지고 있다. 이 수치대로라면 청년층 4명 중 1명은 사실상 실업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높아지는 취업 문턱 때문에 아예 구직활동 자체를 포기하는 청년들도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구직활동 없이 시간만 보내고 있다는 구직포기 청년이 21.6%로, 1년 전보다 2.1%포인트 올랐다. 반면 구직활동을 하는 비율은 13%로 2.4%포인트가 줄었다. 더 큰 문제는 청년고용을 유지시키고 있는 통계마저도 예산으로 겨우 버티고 있다는 점이다. 청년추가고용장려금이 대표적이다. 재작년 48억 원짜리 시범사업으로 시작한 이 제도의 올해 예산은 1조 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자금사정이 여의치않은 중소기업들은 이 제도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아 지원금이 끊기면 대규모 실업사태가 생길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정부의 ‘직접 일자리사업’도 효과없이 재정 낭비를 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행정안전부가 주관하는 ‘지역공동체일자리’사업 참가자들의 이후 1년간 취업 유지율은 7.8%. 이 사업에 참가한 100명 중 8명만 사업 참가 뒤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했다는 것은 대부분 재정지원이 끊어지면 다시 실업자가 된다는 말이다. 단순 아르바이트 수준의 업무만 시키다보니 세금으로 만드는 ‘알바천국’이라는 자조섞인 말들도 나온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를 보면 20대 우울증 환자가 2014년 4만9848명에서 지난해 9만8434명으로 최근 5년간 배 가까이 늘어났다. 20대 불안장애 환자도 2014년 3만7100명에서 지난해 6만8751명으로 배 가까이 많아졌다. 특히 지난해 20대 우울증 환자는 전년 대비 29%, 불안장애 환자는 20% 늘어났다. 최근 두 질병 모두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긴 하지만 요즘 청년들의 박탈감과 상실감은 심각하다.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청년 실업률, 끝이 안보이는 경기 침체도 앞으로 이들이 안고 나가야 할 여건이다. 야속하게도 상황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기업들은 신규 채용을 줄이고 있고 취직하기 어려운 청년들은 아르바이트 자리라도 구하려고 해보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다. 최저임금 쇼크에 자영업자들마저 직원을 줄이고 있으니 청년들의 고통만 심해졌다. 밤새워 가며 공부하고 준비하고, 최선을 다해 노력도 해보고, 열정을 쏟아부어 봐도 현실의 어려움을 헤쳐 나갈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필기시험 한번 거치지 않고 외고와 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을 들어간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딸에 대한 ‘불공정 의혹’에 청년들의 마음은 온통 상처투성이다. 그 과정에 외고 2년생이 2주간의 인턴생활로 대한병리학회지 논문의 제1저자가 되고, 두 번씩이나 낙제를 해도 장학금을 몰아주고… 이들은 지금 분노한다. 공정한 경쟁과 그에 상응하는 정당한 결과가 상식이 되는 사회를 꿈꾸며 촛불을 들었던 청년들이 화가 나있다. 특히 정의와 공정을 그토록 강조하던 그가 공정함에는 묵묵부답인채 법적으로 하자가 없지않느냐는 말로만 대응하고 있는 선택적 정의에 분노하고 있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믿음, 이 믿음이 무너진 청년들이 화가 나있다. 손쉽게 스펙을 쌓고, 그 스펙을 이용해 대학을 가고, 장학금을 받는 ‘그들만의 리그’에 끼지 못하는 청년들이 분노하고 있다. 서울대교수도 아니고, 고위공직자도 아니면서, 재산도 75억을 모으지 못한 이 땅의 보통의 부모들 역시 단단히 화가 나있다.

내가 차별하지 않을 가능성은 없다

내가 차별하지 않을 가능성은 없다박운석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봐야 할 책이 있으면 즉각 사야 하는 급한 성격 탓에 집에는 아직 읽지 않은 책이 몇 권 있다. 당장 책 한권 내리 읽을 것 같던 마음가짐도 주문한 책이 도착할 때쯤이면 의욕이 반감해버린 뒤여서 시간이 날 때 읽어 보자라며 미뤄두기 때문이다. 이런 개인적인 약점을 커버해주는 것이 전자책(eBook)이다. 배송을 기다릴 필요 없이 클릭 한번으로 바로 읽어볼 수 있어서다.종이책에 대한 향수가 한번씩 일어나는 건 전자책의 단점이다. 책을 넘길 때의 감촉과 첫 장을 넘길 때의 종이 냄새는 그리움이다. 두툼한 책을 들고 손으로 느끼는 느낌은 전자책으로서는 알 수 없는 묘한 느낌이다. 그래도 전차잭 시장은 매년 20~30%대씩 급성장하고 있다.‘선량한 차별주의자’(김지혜 저, 창비)를 전자책으로 구매했다. 이 책을 봐야지 마음먹었을 때 바로 클릭해서 볼 수 있다는 점, 가격이 저렴하다는 점, 언제 어디서나 편하게 읽을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전자책의 장점을 생각하며 가볍게 구입한 이 책은 한 장 한 장 읽으면서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내가 차별하지 않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라니….“내가 원래 결정장애가 심해서…”“요즘 얼굴이 너무 타서 동남아 사람 같아”“여자들이 원래 수학에 좀 약하지 않나?”흔히들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말들이다. 이런 말이 아무렇지 않다면 당신도 ‘선량한 차별주의자’일 수 있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스스로가 선량한 시민일 뿐 차별을 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위의 세 문장은 모두 차별의 표현을 담은 말들이다. 특히 결정장애라는 말은 장애를 부족함과 열등함의 뜻으로 사용하는 대표적인 사례중의 하나이다.또 다른 예를 보자.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가르는 기준은 뭔가? 실제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하는 일에 큰 차이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단순한 구분일 뿐이다. 심지어는 비정규직인 직원이 정규직 직원보다 능력이 뛰어난 경우도 많다. 하지만 어쨌든 비정규직을 따로 뽑고 정규직 전환 단계에서는 무기계약직이란 신분을 달아준다. 어떻게 보면 일반적인 사회의 모습이니까, 다른 곳에서도 다 똑같으니까 차별이라고 인식하지 못한다. 너무나 당연한 일인 듯 문제라고 생각하지도 못한다.이처럼 평범한 생활을 이어가는 우리 모두는 사실은 차별주의자일 수 있다. 우리 사회의 차별에 대한 인식은 10~20년 전에 비하면 놀랄 만큼 높아졌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평등을 지향하고 차별에 반대한다. 실제로 대부분의 선량한 시민들은 차별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하지 않고, 평등이라는 원칙을 도덕적으로 옳고 정의로운 것이라고 받아들인다. 다만 차별이 보이지 않을 때가 많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선량한 시민일 뿐 차별을 하지 않는다고 믿는 선량한 차별주의자들을 곳곳에서 만난다.차별을 인식하지 못하는 현상은 이 사회에 너무나 넓게 퍼져있다. 서양인과 결혼하면 글로벌 가족이고 동양인과 결혼하면 다문화 가족이 된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다문화라는 말 자체가 차별의 용어가 되어 버렸다.얼마전 디즈니의 ‘인어공주’ 실사판 주인공에 할리 베일리가 낙점된 이후 ‘흑인 인어공주’라며 인종차별 논란이 일었다. 인어공주 원작이 덴마크 동화라는 점을 근거로 흑인 주인공에 반대하는 일부 여론에 디즈니 측은 “덴마크 ‘사람’이 흑인일 수 있으니까 덴마크 ‘인어’도 흑인일 수 있다”며 “흑인인 덴마크 사람과 인어가 ‘유전적으로’ 빨간 머리를 갖는 것도 가능하다”고 반박했다.때로 아주 작은 차별은 무시해도 되나? 흑인 인어공주처럼 다수가 이야기하면 합리적인 차등이라고 이야기해도 되나? 가끔 차별에 대한 문제제기나 시정조치를 역차별이라고 공격하지는 않나? “이런 말은 하는 사람들은 심각한 혐오주의자나 차별주의자가 아니다. 바로 나, 당신, 우리일 수 있다. 평범한 우리 모두가 선량한 차별주의자일 수 있다” 저자의 말이다.마지막 문장은 우리의 삶을 뒤돌아보게 할 만큼 섬뜩하게 한다.

그릇 헤아리기

그릇 헤아리기 배병일영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백세인생 이라는 노래가사가 한 때 유행한 적이 있다. 가사 내용을 들어보면, 이미 부모님을 여읜 분들이야 그 애잔한 마음이 가눌 수 없을 것이고, 특히 아직 부모님이 구존하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말미암아 직접 모시지 못하고 있는 중년의 자식들은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기에 바쁜 가사이다. 요즘 가요의 신곡은 주로 젊은이들이 공감을 해야만 히트를 칠 수 있지만, 중노년은 아직도 6070이나 7080노래에 머물고 있는 등 인기가요의 장르 자체가 아예 달라서 신곡의 인기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그래서 백세인생 노래가 한때 히트를 쳤지만, 젊은이의 뒷받침이 없어서 롱런은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부모에 대한 애정이 효라고 하여 옛날부터 하나의 사회적 윤리규범이 되어 효도라고 일컬어져 왔지만, 지금에 와서는 여러 가지 사회적 문화적 변형으로 인하여 그 의미가 많이 퇴색되었다. 특히 고령인구의 급속한 증가로 인하여 종전에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던 100세 이상 생존하시는 분도 많아지고 있다. 내 주위에도 육순·칠순자식이 팔순·구순부모를 모시는 경우가 많다. 노부보다는 노모가 휠씬 부양하기가 편하다고 하지만, 세상일이 그렇게 마음대로 쉽게 되는 것은 아니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너무 오래 살아서 자식에게 부담을 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미안함과 너무 오래 살아서 혹시나 질병 등으로 거동을 못하게 되어 자식 등 남에게 부담이나 추한 모습을 보이기 되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이 함께 있는 것 같다. 어쨌든 지금 우리나라는 노인이 노인을 보살피는 노노캐어가 큰 문제이다. 지난번 대선 때도 문재인대통령이 치매는 국가의 책임이라는 공약으로 조금 재미를 보았다고 할 정도로 치매는 고령화사회에서 심각한 사회적 문제이다. 사실 그냥 목숨만 부지하는 인생보다는 건강하게 정신이 맑게 사는 인생이야말로 올바른 고령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건강하게 정신이 맑다는 것은 혼자서 움직이면서 치매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치매를 노망이라고 할 때는 질병으로 보지 않았지만, 치매는 사람으로 하여금 사람답게 살 수 없도록 하는 질병임에 틀림없다. 모일간지에 매주 게재된 김형석교수의 100세일기가 인기다. 몇 달전 교수님의 선배 이야기를 빌려서 치매 부인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 내용인즉, 아내가 치매를 앓았는데 워낙 성격이 착했기 때문인지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쪽 옷장의 옷들을 저쪽 옷장으로 옮겨 놓았다가는 다시 순서를 바꾸어 제자리로 돌려놓는 일을 종일 계속하곤 했다는 것이다.구순을 넘긴 노모께서도 몇 년 전까지는 농사일을 하는 등 본업에 충실하였지만, 그만 고관절골절로 인하여 거동이 부자연스럽게 되면서 집안에만 머물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당신이 원하는 바를 하지 못하게 됨으로써 육체적 정신적 고통도 함께 온 것 같고, 그 후부터 이상한 언행을 보이기 시작했다. 노모는 저녁마다 부엌에 들어가서 그릇을 헤아리고 있었고, 장롱을 뒤져 수의를 찾았고, 그리고 아침마다 그릇과 수저가 없어졌다고 하고 수의가 없어졌다고 하였다. 처음에는 무슨 연유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해 하다가 어느 순간에 치매라는 것을 알았을 때, 자식으로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치매는 언행이 서툴고 정신이 흐린 것이라는 것만으로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 후회스러웠다. 특히 장롱이나 찬장 등 무엇을 뒤지거나 옷이나 그릇 등 무엇을 헤아리는 것이 초기 치매라는 것을 일찍 알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지금도 그 역정을 받아주기보다는 차가운 반응을 먼저 보이는 등 자식된 도리를 다하지 못하고 있다. 그저 불효를 나도 모르게 하고 있으니, 참으로 망측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불효 언행을 미루어 볼 때, 조선시대와 우리세대 이전에 효도를 직접 행하신 선현들이나 선배들은 효라고 하는 것을 정말로 몸에 베여 있었구나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이고. 이렇게 하다가 나도 치매에 걸려서 그릇을 헤아리게 되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되면 나는 어떻게 하지’하는 생각이 떠오르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이종 간 융합을 보고 배워라

이종 간 융합을 보고 배워라박운석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조용한 곳에서 휴가를 보내다보니 좋은 점이 많다. 시간이 나면 책이나 좀 읽어보자고 가볍게 생각하고 가지고 온 책을 내리 두 권을 읽었다. 그 중의 하나가 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가 지은 ‘열두 발자국’이다. 이 책은 지난 10년간 저자의 강연 중에서 가장 많은 호응을 받았던 12개의 강연을 선별해 이야기하듯 풀어낸 책이다. 대구시가 지난 2016년부터 추진해온 독서 캠페인인 ‘2019 대구 올해의 책’에 선정되기도 했다. 1천600여 명의 시민이 투표에 참여해 선정한 만큼 이미 독자들의 관심을 얻은 책이었다.이 책은 마치 현장에서 강연을 듣는 듯 일상과 관련된 뇌과학을 쉽게 설명을 해 흥미로웠다. 그 중에서도 가장 재미있게 읽은 부분이 ‘창의적인 사람들의 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를 다룬 부분이었다. 천장이 높아야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온다는 제목에 이끌려 집중해서 보게 된 부분이기도 했다.미국인 바이러스 학자 조너스 소크는 소아마비 백신을 만든 연구자다. 초기에 연구 성과가 없던 그는 답답한 마음에 이탈리아의 한 수도원으로 들어간다. 13세기에 세워진 수도원 성당 안에서 어느 날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된 그는 바로 미국으로 돌아가 백신 개발에 성공하게 된다. 그 후 그는 백신 제작 과정을 무료로 공개해 지구상에서 소아마비 환자를 사라지게 하는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캘리포니아 주정부는 소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소크생물학연구소를 설립하고 당대 최고의 건축가인 루이스 칸에게 설계를 맡겼다. 소크는 그에게 “내 아이디어는 천장이 높은 수도원 성당에서 얻었다. 천장이 높아 사고공간이 한없이 넓어진 느낌이었다. 연구소의 모든 공간의 높이가 높았으면 좋겠다”라고 부탁했다. 높은 천장 덕인지 이후 이 연구소에서 지난 50년간 12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배출되었고 높은 천장과 창의력의 상관관계를 증명하는 연구자들의 실험도 잇따랐다. 그 결과도 흥미롭다. 집중력이 필요한 단순 문제를 풀 때는 천장높이가 낮은 2.4m였을 때 가장 높은 성과를 얻었다. 반면 창의적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는 천장의 높이가 가장 높았던 3.3m에서 가장 좋은 성과를 얻었다.이 실험이후 과학자들은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뇌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공간이 뇌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고 그걸 바탕으로 건축물을 설계했다. 정재승 교수는 책에서 이 연구결과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메시지는 뭔지 반문한다. 그는 신경과학과 건축학, 두 분야의 만남에 주목했다. 언뜻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두 분야의 만남이 창의적인 생각을 이끌어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그는 결국 혁신의 실마리는 가끔 완전히 다른 각도에서 봄으로써 이루어진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어 했다. 또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많이 주워 담기 위해서는 도서, 여행 뿐 아니라 사람들과의 만남이 중요하다고도 했다. 경계를 넘나들면서 타 분야 전문가와 소통하고 협력하는 능력을 키우는데 최고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융합하는 능력은 인공지능 기술이 아무리 진화해도 따라올 수 없는 인간의 고유 영역이라고 했겠나 싶다.몇 년 전부터 융합(convergence)이라는 단어가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이슈로 자리잡았다. 대학에도 융합이라는 용어가 들어간 학과가 등장하고 정부부처나 각종 연구기관들에서도 융합 연구과제들을 잇따라 발표하고 있다.전 세계가 융합이라는 경주에 뛰어들어 무한경쟁 중이다. 융합은 학문 뿐 아니라 산업분야에서도 활발하다. 특히 일본과의 무역분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소재부품 장비산업 등 원천기술 확보 및 대외의존도가 높은 분야에서도 융합은 필수적으로 보인다.하지만 무엇보다 융합이 시급한 분야가 정치일 듯하다. 어차피 신경과학과 건축학의 만남처럼 혁신은 한 영역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 융합은 혼자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융합은 둘이서 함께 뛰는 이인삼각 경주와 같다. 이인삼각 경주는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기대면서 호흡을 잘 맞춰야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 어깨동무를 한 정치권이 서로의 의견을 잘 녹여내고 융합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다를 뿐 틀린 건 아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빌 게이츠,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 야구왕 베이브 루스, 나폴레옹, 레오나르도 다빈치, 노벨상 2회 수상자 큐리 부인,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의 캐릭터 네드 플랜더스, 기타의 신으로 불리는 지미 헨드릭스.이들 10명의 공통점은 뭘까? 왼손잡이라는 사실이다. 2013년8월 타임지가 꼽은 역사적으로 유명한 왼손잡이 ‘톱10’이 이들이다. 타임지 뿐만 아니라 해마다 8월이 되면 각종 매체에서는 왼손잡이에 관한 내용들로 넘쳐난다. 8월13일이 ‘세계 왼손잡이의 날’이기 때문이다. 이 날은 왼손에 대한 편견을 없애기 위한 활동의 하나로 ‘왼손잡이 협회’(Left-Handers Club)가 1976년 제정한 이후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우리나라도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왼손잡이는 힘없는 소수자였다. 오른손잡이들이 보기에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차별과 편견이 있었다. 왼손잡이 자녀에겐 왼손을 묶어놓고 사용하지 못하게 하면서까지 오른손잡이로 바꾸려 하기도 했다. 심지어는 왼손으로 숟가락을 들기라도 하면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군”이라며 측은해하기도 했다.어쨌든 왼손잡이의 날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그동안 왼손잡이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있었다는 증거가 된다. 일단 ‘왼’이라는 말부터 부정적이다. ‘왼’의 원형은 ‘외다’로 사전적으로 ‘그르다’의 옛말이다. 반면 ‘오른’은 ‘옳다’라는 말에서 나왔다. 오른쪽을 바른쪽이라고도 하는 이유다. 왼손잡이에 대한 불편한 시선은 우리나라에 국한된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영어에서도 오른쪽을 뜻하는 'right'는 옳은, 정당한, 곧은 등의 의미를 가진다. 반면 왼쪽인 'left'는 쓸모없다는 뜻의 ‘lyft’에서 파생한 말이다.그러나 내가 오른손을 쓴다고 해서 왼손을 쓰는 사람을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또 대다수가 오른손잡이라고 해서 무조건 ‘왼손잡이는 나쁘다, 그러니 오른손을 써야한다’고 강요할 수도 없는 법이다. 세계 왼손잡이의 날을 제정한 숨은 뜻도 같으리라 짐작해본다. 왼손잡이가 세계 10%의 마이너리티라고 해서, 90%의 오른손잡이가 보기에 익숙하지 않다고 해서 틀린 것은 아니다. 나에게는 오른손이 익숙하고 다른 사람은 왼손이 익숙할 뿐이다.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 요즘 이 둘을 너무 혼동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다른 것을 잘못된 것이라고, 틀린 것이라고 몰아세우는 경향을 너무 자주 봐서일 게다. ‘나와는 생각이 다른 너는 틀렸다’라고 단정적으로 취급해버려서다. 무서운 세상이다.다름을 틀림으로 보는 경우는 요즘 사회 곳곳에서 볼 수 있다. 특히 정치판이 더 그렇다. 호불호가 워낙 뚜렷하다 보니 아주 쉽게 나와는 다른 의견을 틀린 것이라 간주해버린다. 문제는 그 판단도 자의적으로 내리고 또 적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 생각 혹은 판단과 같지 않으면 틀린 것이라 단정해버린다.더 큰 문제는 이게 심해지면서 상대에 대한 혐오로 이어지고 철저하게 배척하게 된다는 점이다. 현재 대한민국 정치권의 현주소다. 틀리다고 생각하면 애초에 이해할 대상 자체가 될 수 없지만 다르다고 생각하면 이해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게 된다. 서로 헐뜯고 싸우게 되는 것은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비록 정치권뿐만은 아니다. 온 사회가 마치 분노조절장애라도 생긴 듯 서로 으르릉댄다.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해야 비로소 어울림이 생긴다는 걸 왜 모를까. 오른손잡이가 오른손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듯 왼손잡이라서 왼손만 쓰는 것도 아니다. 전설의 왼손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도 코드를 잡는 오른손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다. 전쟁터에선 오른손에 들고 있는 칼뿐만 아니라 왼손에 들고 있는 방패도 중요한 법이다.똑같은 목표를 두고 방법론이 다르다고 해서 ‘난 맞고 넌 틀렸다’고 몰아세우는 건 서로에게 상처만 줄 뿐이다. 더군다나 적 앞에서는 말이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지금은 일본과 경제전쟁 중이다. “왼손을 써야 이긴다”, “틀렸다 오른손을 써야 이긴다” 하는 싸움에 힘을 뺄 수는 없다. 항일(抗日)이든, 반일(反日)이든, 극일(克日)이든 방법이 다름을 인정하고 양손을 함께 써야 이길 수 있다.

‘복세편살’에 대한 유감

‘복세편살’에 대한 유감박운석패밀리협동조합 이사장‘복세편살’이라는 신조어를 보고 쓴웃음을 지은 적이 있다. 불교용어 같기도 하고 깊은 뜻이 담긴 사자성어 같기도 한 이 말은 그냥 ‘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는 뜻이다. 요즘 트렌드를 한마디로 집약한 말이라서 보는 순간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언어는 문화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한다. 이 중에서도 신조어는 사회현상을 반영한 거울이다. 특히 불안한 사회상을 풍자적으로 표현한 신조어를 보면 현재 한국사회에서 불거지는 갈등이 뭔지, 사람들이 어디에 관심을 두고 있는지 금방 알 수 있게 된다.‘복세편살’은 편안함을 추구하는 트렌드를 반영한 말이다. 큰 목적을 이루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삶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즐겁게 살겠다는 의미다. 긴장의 연속인 일상에서 벗어나 조금이라도 더 편안하게 있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뜻이다. 이들의 특징은 남의 시선보다 내가 편한 것을 선호한다. 집에서는 가장 편한 옷차림으로 좋은 음식을 먹으며 모든 것을 해결한다.요즘 신조어로는 홈루덴스족이다. 홈루덴스(Home Ludens)는 놀이하는 인간이라는 뜻의 ‘호모 루덴스’에서 따온 말로 ‘집에서 노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을 뜻한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집돌이, 집순이로 좋지않게 치부되던 현상이었다. 이젠 집 밖으로 꼭 나서야만 의미있는 삶이라는 태도에서 벗어나 가장 편한 곳인 집에서 나만의 소소한 즐거움을 누리겠다는 생각이 드러난 현상이다. 이들은 꼭 거창한 것에서 의미를 찾기보다 일상 삶 속에서 자신만의 소소한 만족을 얻는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한다. 어른용 색칠공부라고 하는 컬러링북이나 프랑스자수를 하며 소소한 행복을 찾고 와인 냉장고나 커피머신 같은 중소형 디저트 가전이 인기를 끄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이들을 겨냥한 가정간편식도 인기다. 삼복더위에 인기있는 보양식인 삼계탕도 간편식으로 포장되어 집에서도 간단한 방법으로 조리해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각종 원데이클래스가 유행인 것도 홈루덴스족의 복세편살을 반영하고 있다. 원데이클래스는 자기가 원하는 분야의 내용을 하루 만에 직접 체험하면서 배우고 결과물까지 만들어내는 것이어서 인기다. 내용도 마카롱 만들기에서부터 메이크업, 핸드드립 커피 만들기, 요리까지 다양하다.하지만 홈루덴스족은 새로운 사람들과의 불필요한 관계 맺기를 꺼려한다. 이른바 관태기(관계+권태기)다. 이들은 대인관계에 미련이 없다보니 실속 없는 오프라인 모임에도 거의 참석을 하지 않는 편이다. 관계에도 가성비를 따진다. 관계를 유지하는데 투자하는 비용과 수고 대비 관계로부터 얻는 만족도가 크지 않다고 판단해 버린다.직장 내에서는 ‘자발적 아웃사이더’가 늘어나고 있다. 자발적 아웃사이더는 동료, 선후배와 어울리지않고 혼자 움직이기를 더 좋아하는 이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구인구직 플랫폼인 사람인에서 직장인 42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가 흥미롭다. 이들 중 10명 중 5명 꼴로 자신을 자발적 아웃사이더라고 답을 한 것이다. 또 10명 중 8명은 ‘자발적 아웃사이더 문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답했다. 인간관계에서 피로감을 느끼는 이른바 관태기(관계+권태기)를 겪는 직장인들이 많다는 뜻이다.하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아이러니다. 관태기에 빠져있는 사람일수록 SNS에서 관계맺기에 집중한다. 현실세계에서는 관계맺기를 거부하면서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온라인상에 올리며 인정받고 싶어 한다. 카페인(카카오톡+페이스북+인스타그램) 중독에서 헤어나질 못한다.온라인에서의 관계맺기가 긍정적인 부분도 있지만 최근 들어서는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너무 쉽게 단절시켜버리는 부작용도 많다. 소통을 생명으로 하는 도구가 사람 사이의 관계를 끊어버리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뭐, 복세편살 아닌가. 그렇지만 복잡하지 않게, 간편하게 해보자라고 생각할수록 머릿속은 더 복잡해진다. 뉴스를 보고 있자니 화병이 생길 것 같고 얽히고설킨 사회문제는 생각하기에도 벅차다. 복세편살을 되뇌다가 문득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복잡한 세상 정신 바짝 차리고 생각하며 살아야 할 경우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해야 할까? 일본과 극한대립 중인 지금이 그럴 때다.

동조압력

박운석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점심으로 짜장면이 먹고 싶어 중국집을 찾았다. 그런데 짬뽕 맛집인지 줄을 선 대부분의 사람들이 짬뽕을 주문한다. 짜장면을 먹으려고 중국집을 찾아왔다가 슬그머니 짬뽕을 주문하게 된다.이처럼 대부분 사람들은 주변의 생각에 쉽게 이끌려가게 된다. 이것을 동조압력이라고 한다. 동조압력은 다수 의견에 따르도록 암묵적으로 강제하는 사회적 압력이다. 타인이나 집단의 의견을 자발적으로 따라서 하는 행위를 동조라고 한다면 동조압력은 소수의견을 가진 사람에게 은연중에 다수 의견에 맞추는 것을 강제하는 것을 가리킨다.이런 현상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유행에 뒤처질까 싶어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는 것도 여기에 속한다. 지난 겨울 대유행이었던 롱패딩이 그렇다. 음식점을 선택하는 기준도 이젠 맛이 아니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누군가 추천하는 맛집에 아무 생각없이 찾아가게 되는 것도 은근하게 작용하는 동조압력 때문이다.긍정적으로 보면 동조압력은 유행이나 베스트셀러가 탄생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집단으로부터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압력에 굴복하여 추종하는 것이기에 부작용 또한 만만찮다. 대표적으로 소수의견이 묻혀버린다는 것이다.현실 속에서 이런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는 곳이 여론에 민감한 정치와 언론이다. 특정한 사회적 현상이나 사안에 대해 나의 의견에 공감하지 않으면 사이비로 몰아가는 경우가 그렇다. 너무나 쉽게 사이비 보수로, 사이비 진보로 몰아가는 것을 수없이 봐오고 있지 않은가.인터넷 공간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회적 이슈에 대해 사람들이 하나의 경향성을 띠게 되면 이는 곧 대부분의 의견이 되고, 나아가서 진실이 되고, 그러면 그것에 쉽게 공감하고 동조해버리는 우리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잘못 판단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한다. 여론조사를 맹목적으로 따르게 되는 것도 다수의 의견을 우선시하기 때문이다. 나아가서는 소수의견을 피력하는 사람들을 차별하게 되고 때로는 그들의 생각을 바꾸도록 암묵적으로 강요하게 되는 것이다.다수의 의견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그걸 알면서도 집단주의 사회에서 모두가 ‘예스’라고 할 때 ‘노’라고 말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세상을 바꾸는 힘은 동조압력을 극복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다수의 선택, 다수의 방향을 따르지 않는 소수자가 사회를 변화시기고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최근 일본이 한국에 대해 일방적 수출규제를 감행했다. 그 이후 일본은 자신들의 셈법에 따라 한국에 대한 강경발언의 수위를 갈수록 높이고 있다. 일본의 속셈은 뻔히 보인다. 갈등을 유발시켜 평화헌법을 개정하고, 군대를 부활시켜 무장이 가능한 2차 세계대전 이전의 일본으로 돌아가려는 것이다. 동북아 강국으로 떠오르는 한국을 사전에 견제하려는 것이다. 더 크게 보면 미국과 함께 친중, 친북으로 돌아선 한국을 견제하려는 것이다. 이처럼 일본의 의도를 철저하게 분석할 필요는 있다. 그래야 거기에 따른 대응을 제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응하는 방법은 철저하게 국익이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아쉽게도 지금은 감정적인 방법보다 이성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의견이 줄어들고 있다. 국익을 앞세운 현실주의로 대응해야 한다는 소수의견들이 묻혀가고 있다. 집단의 압력이 너무 강해서다. 일본은 한국을 자극하며 일부러 감정적인 대응을 유발하는 듯하다. 갈수록 이성적인 대응을 이야기하는 소수의견을 내는 사람들이 설 자리가 없어지고 있다. 집단의 압력에서 벗어나서 나의 의견을 말할 용기를 내지 못하게 된다.더군다나 지금 청와대와 여권은 일본과의 경제전쟁에서 이겨야한다며 여론몰이에 나섰다. 지지율에서도 일정부분 성과를 보이면서 더더욱 냉정하게 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은 사라지고 있다. 자칫 ‘나는 극일, 너는 친일’이라는 프레임에 걸려들면 헤어날 방법이 없어서다.걸어오는 싸움에는 이겨야 한다.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래도 누군가는 지속적으로 ‘노’라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비록 소수일지라도 나와는 다른 의견이 있음을 알고, 그 의견조차 존중해 줄 수 있어야 다수인 나의 선택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잊혀진 이상화 생가

잊혀진 이상화 생가박운석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1926년 개벽지에 발표한 이상화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첫 연 첫 행이다. 일제에 대한 저항의식을 노래한 이 시를 꺼내든 건 예전의 기억이 새삼 떠올라서다.몇 년 전, 대구의 문화예술관련 기관에서 근무할 때다. 근대 문화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대구의 옛 골목에 숨어있는 이야기를 이상화고택 앞에서 거리연극 이벤트로 재현하는 기획을 한 적이 있었다. ‘옛 골목은 살아있다’는 타이틀로 진행한 문화도시운동이었다. 근대골목이 대구의 새로운 관광코스로 막 떠오르던 시기였다.서상돈 선생과 이상화를 주인공으로 해 대구에서 일어난 국채보상운동과 3.1만세운동을 연극에 담았다. 매주 현장에서 이 연극을 지켜보면서도 당시에는 필자도 이상화고택이 생가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고택에서 북쪽으로 500m 떨어진 서성로에 시인의 생가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부끄럽지만 안타까운 사실이었다.아마 지금도 마찬가지일거라고 추측해본다. 올해도 여전히 ‘옛 골목은 살아있다’라는 타이틀로 대구의 연극인들을 모셔 당시의 사실을 재현한 연극을 하고 있다. 6월말 전반기 공연을 마치고 7월~8월 혹한기를 지나면 9월부터 다시 상화고택 앞에서 행사가 이어질 예정이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대부분의 관객들은 이상화 고택을 여전히 생가로 알고 있을 터다. 고택 앞에는 생가에 관한 어떠한 안내조차 없는 상태이다 보니 그럴 만도 하겠다.이상화 생가는 서문로 2가 11번지다. 흔히 북성로 돼지국밥 골목으로 알려진 길에서 다시 좁은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야 볼 수 있다. 이곳은 상화가 태어나서부터 32세 때까지(1900~1932) 살았던 본가였다. 시인은 당시 거처하던 사랑채를 ‘담교장’이라 이름 짓고 항일인사와 전국 문인들의 출입처로 삼았다. 그 후 가세가 기울어 생가를 처분하고 몇차례 이사를 했다가 현재의 고택에서 생의 마지막 4년(1939~1943년)을 보냈다.당시 약 400여평에 달하던 시인의 생가(서문로 2가 11번지)는 현재 4곳으로 분할되어 있다. 따라서 11-1번지 대문에 붙어있던 ‘이상화 생가터’라는 안내판은 애초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다행히도 이 같은 사실은 지난해 이곳에 한옥카페를 연 한 시민에 의해 바로잡혔다. 사람들이 한옥카페를 찾아 모여들면서 자연스럽게 시인에 대해 관심을 가진 그는 생가터 안내판이 잘못된 것을 알고는 대구시에 지속적으로 민원을 제기한 끝에 바로잡았다. 그렇지만 대구시의 각종 홍보물에는 아직 11-1번지만을 생가로 표기하고 있다. 대구 ‘근대로의 여행’ 관광홍보물에도 제대로 알리지 않고 있다.당시 생가 마당을 지키며 소년 이상화에게 시심을 심어준 라일락 고목(수령 200년 추정)에 반해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는 한옥카페 대표는 이제 상화를 연구하는 향토사학자가 되었다. 시인의 삶을 지켜본 라일락 고목을 ‘이상화 나무’로 이름 짓고 ‘담교장’이라는 당호(집이나 건물의 이름)도 재현해 달아두었다. 상화에 관한 각종 문헌과 기록물을 모으고 조사하는 게 일과가 됐다.상화고택에 가려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생가는 대구 중구 근대골목 투어인 ‘근대로(路)의 여행’ 1코스에 포함되어 있다. 이인성고택과 이병철고택~삼성상회 옛터~우현서루 옛터~달성토성을 잇는 코스다. 근대골목 투어와는 별도로 이곳의 이상화 나무와 가까운 계산성당 내에 이인성 나무, 경상감영공원 옆 종로초등학교에 있는 최제우 나무를 연계한 ‘노거수 관광’ 스토리를 엮어내도 괜찮을 듯하다.무엇보다 이곳은 대구를 대표하는 시인의 젊음과 수많은 일화를 간직한 곳이고 시심을 가다듬은 생생한 역사의 현장이다. 대구의 근대문학 태동길이라 이름 지어도 손색없는 스토리를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고택의 그늘에 가려 잊혀져만 가는 이상화 생가가 안타깝다. 고택 앞에는 생가에 대한 안내를, 생가 앞에는 고택에 관한 안내를 해야 하는 게 당연하다. 가능하면 역사적 고증을 거쳐 당시 항일인사들과 문인들의 모임장소였던 ‘담교장’까지도 복원해 역사교육의 장으로, 대구 근대문학 관광콘텐츠로 잘 활용했으면 한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 했다’라니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 했다’라니박운석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틈 날 때마다 집에 있는 책장을 쓱 훑어보는 것이다. 몇 년 전 읽었던 책을 보면 새삼 반갑고, 빠르게 책장을 넘기다가 밑줄이 그어진 페이지에서 멈추고 다시 읽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때론 다음에 읽어야지 하면서 꽂아둔 책을 꺼내드는 기대감도 크다. 그러다가 며칠 전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 했다’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책이 눈에 확 들어왔다. 읽지 않은 책이었다. 묘하게 나의 이야기일 것만 같은 제목에 이끌려 책을 꺼내들었다.내 인생을 살기 위해 더 이상 열심히 살지 않기로 한 저자의 결심을 담은 책이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이제라도 남의 인생이 아닌 나의 인생을 살기로 했다는 이 책은 출간 6개월 만에 14쇄를 찍을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베스트셀러였다.세상 참 많이 변했다. 이젠 가치관까지도 변하고 있나 보다.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난 뒤에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진인사 대천명’을 좌우명으로 삼고 살아온 세대의 입장에서 보면 기가 막힐 노릇이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 했다라니?‘복세편살’(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의 줄임말)이라는 신조어가 유행인 것도 똑같은 맥락에서 생겨난 가치관이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삶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즐겁게 살겠다는 요즘 2030세대를 대표하는 말이다.한 종합광고회사가 인스타그램과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라온 게시물 168억 건의 키워드를 분석한 결과가 흥미롭다. 이들의 소비 트렌드는 격식 있는 불편한 제품보다 철저하게 나를 편하게 해주는 제품에 지갑을 여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었다. 하이힐이나 핸드백 대신 운동화, 에코백을 언급하는 횟수가 급격하게 늘어났다고 했다. 이밖에도 양손이 자유로워 편한 백팩이나 끈 없이 편하게 신는 슬립온, ‘문센룩’(백화점 문화센터 갈 때 부담 없이 입는 옷) 등도 SNS에서 주목받았다.간단한 차림으로 먹기 편한 가정간편식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진 것도 복세편살 트렌드의 결과다. 청소 대행 서비스나 세탁 배달, 강아지 산책 대행 서비스가 등장한 것도 마찬가지다.출판시장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른 에세이 종류들을 봐도 이 같은 트렌드는 짐작할 수 있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 ‘오늘은 이만 좀 쉴게요’, ‘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렇지 않구나’ 등의 에세이가 유행하는 것도 비슷한 현상이다.‘대충 살자’는 생각은 요즘 20~30대에서는 유머로 활용될 정도로 유행이다. ‘대충 살자, 걷기 귀찮아서 미끄러져 내려가는 북극곰처럼’ 등의 수많은 ‘짤(영상)’이 떠도는 것도 이 말의 묘한 매력 때문이다. 이들은 경쟁하려 하지 말고, 너무 열심히 살지도 말고 적당하게, 대충 사는 게 더 낫다고 입을 모은다.그래도 이 같은 트렌드를 보는 마음 한 구석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젊음, 열정, 패기로 대변되는 청춘들이 아닌가. 치열함은 어디로 가버린 걸까.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 했다’는 책이 품고 있는 속뜻은 아무 생각 없이 아등바등 견디며 살지 않겠다는 말일 것이라고 짐작해본다. 젊은 세대들이 이야기하는 ‘대충 살자’는 것도 회피하자는 뜻은 아닐 테다. 목표 달성을 위해 남들과 비교하며 사는 대신 나만의 속도로 과정을 즐기며 살자는 또 다른 방향 제시가 아닐까. 저자도 현명한 포기가 필요할 때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 했다라고 말하라 했다.다만 이런 풍조가 확산되는 걸 보는 마음은 편하지 않다. 우리 사회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된 결과인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열심히 살아봤자 뭐하나 라는 자조적인 분위기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대학생활 내내 취업준비에 매달렸지만 청년 실업은 갈수록 치솟기만 하고, 학연이나 지연 등 인맥을 통한 채용비리가 아직까지 뉴스를 채우고 있지 않은가. 나름 열심히 살아보지만 타고난 금수저와는 근본적으로 다름을 알아갈 뿐인데….이들에게 열심히,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만이 정당한 보상을 받는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싶다. 진인사대천명을 말하는 필자는 그들에게 혹시 ‘꼰대’가 아닐까?

사라지는 말 “밥 한번 하자”

사라지는 말 “밥 한번 하자”박운석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2020, 119, 1899…난수표 같은 이 숫자들은 기업체에서 만든 새로운 회식문화 캠페인이다. 2차 없이 20시까지(2020), 한 장소에서 1차만 9시까지(119), 회식은 1차만 8시에서 9시에 끝내자(1899)는 의미다.주 52시간 근무제 도입과 미투 영향으로 저녁 회식이 줄어드는 현상을 대변하는 말들이지만 최근 ‘제2윤창호법’이 시행되면서 음주 문화가 대폭 바뀌고 있다. 음주단속기준을 강화한 개정 도로교통법인 ‘제2윤창호법’은 음주운전자에 대한 면허정지 기준을 혈중 알코올농도 0.05%에서 0.03%로, 면허취소 기준을 0.10%에서 0.08%로 강화했다.혈중 알코올농도 0.03%는 소주 한 잔을 마신 후 1시간가량 지났을 때 측정되는 수치다. 소주 한 잔만 마시고 운전대를 잡아도 단속될 가능성이 높아지자 직장인들 사이에서 회식을 자제하거나 10시 이전에 귀가하려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숙취로도 단속될 가능성이 높아 아침 출근길 걱정에 평일 술자리 자체를 피하려는 움직임까지 있다. 심지어 대리운전 피크시간대가 1시간 가량 앞당겨지고 출근시간대 대리운전도 조만간 도입될 것으로 보인다.제2윤창호법이 음주 풍속도를 급속도로 바꾸긴 했지만 그전부터 음주 문화는 여러 분야에서 조금씩 바뀌어왔다.취하기 위해 마시는 술에서 즐겁게 마시자는 술로 바뀌고 있는 게 대세이다. 대표적인 변화가 음식과 곁들여 마시는 맥주문화다. 주52시간 근무제 도입으로 단체회식이 줄면서 부어라마셔라 하는 분위기가 사라진 대신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먹으며 한두잔의 맥주를 곁들이는 쪽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병맥주를 판매하는 카페가 늘어나고 있는 것도 새로운 변화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수제맥주도 병에 담은 제품이 늘어나면서 커피와 빵 위주였던 카페에 조금씩 병맥주가 들어가고 있다. 다른 일행들은 커피를 마시더라도 나는 내가 좋아하는 맥주를 마시겠다는 트렌드를 반영한 풍경이다.낮맥(낮에 마시는 맥주)도 흔한 풍경이 됐다. 저녁 회식이 사라진 게 원인으로 취하기 위해서라기보다 회식 기분을 내는 것이 주목적이다. 최근 취업포털사이트인 잡코리아가 직장인 23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가 흥미롭다. 직장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회식 유형을 묻는 설문에 58.7%가 ‘점심시간에 하는 맛집 탐방’이라고 답한 것이다. 제일 좋아할 것 같은 회식형태인 문화회식(공연 등을 관람하는 형태)은 36.5%로 그 다음을 차지했다.혼술(혼자 마시는 술)과 홈술(집에서 마시는 술)도 주류소비의 대세로 자리잡았다. 1~2인 가구가 전체의 50%를 넘어서면서 혼자서 또는 가족과 가볍게 맥주 한잔을 하는 이들을 겨냥한 미니맥주냉장고가 시판되고 수제맥주를 캔에 담아 배달해주는 서비스까지 등장했다.이 같은 사회분위기 탓에 자영업자들은 매출에 직격탄을 맞고 있다. 김영란법(부패방지법)으로 한차례 타격을 입었던 외식업은 이번 제2윤창호법으로 더 깊은 불황 속으로 빠져들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이미 호프 혹은 치킨집 등 2차로 주로 찾는 자영업소엔 손님들의 발길이 확 줄었다고 아우성이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종업원들의 근무시간을 줄였던 자영업자들은 이제 마감시간까지 앞당길 조짐을 보이고 있다.음주문화의 변화로 외식업계가 헤쳐 나가야 할 파도가 너무 거세다. 김영란법의 거센 물살을 막 건넜고 최저임금 인상이라는 파도도 힘겹게 건너고 있는 터에 뒤이어 닥칠 엄청난 쓰나미를 걱정해야 하는 형국이다.주당들 입장에선 아쉬운 점이 더 많다. 업무 마감시간이 가까워지면 서로 눈짓으로도 통했던 퇴근길 소주 한 잔도 이제는 사라지고 있다. 서로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며 정을 나누던 낭만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에겐 아련한 기억의 한 장면일 수밖에 없다.반주문화가 사라지는 것은 더 서운하다. 통상적인 인사로 건넸던 ‘언제 밥 한번 하자’는 말은 식사 하면서 술 한 잔 하자는 말이었다. 이제는 제2윤창호법 시행으로 잔뜩 움츠린 주당들에게서 이런 인사말을 듣는 것도 어렵게 됐다. 무엇보다 내 의지에 따라 음주를 줄이는 게 아니라 이 사회가 반강제로 술자리를 줄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개운치 않다.

수제맥주 활성화, 양조장 유치부터

지난 6월 중순. 대구 수성못 상화동산엔 많은 사람들이 수제맥주를 즐기기 위해 모여들었다. ‘대구 수제맥주 페스티벌 2019’ 현장이었다. 3일간 열린 이 행사에는 특히 외국인들이 많이 눈에 뜨였다. 이곳저곳 돗자리를 깔고 앉은 가족들의 모습도 보였다.이번 행사에서 크게 달라진 점은 축제를 즐기는 시민들의 모습이었다. 맥주가 메인 주제였지만 행사장 어디서건 흥청망청, 부어라마셔라 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마시고 싶은 맥주 한두잔과 간단한 안주를 앞에 두고 분위기를 즐기는 모습이었다.하지만 한편으론 씁쓸함을 지울 수 없었다. 대구에서 열리는 수제맥주 페스티벌에 참여한 대구지역 양조장은 세 곳 중 한 곳뿐이었다. 같은 기간 부산에서 열린 ‘2019 부산 수제맥주 페스티벌’엔 부산지역 양조장 8곳이 모두 참여했다. 기분이 착잡해진 건 양조장 숫자였다. 현재 부산에는 광안리와 기장, 송정 등지에 8개의 수제맥주 양조장이 들어서 있다. 이제 겨우 3곳을 채운 대구와는 비교가 안된다.부산시도 양조장 체험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벡스코에서 2년째 부산수제맥주페스티벌을 개최해 오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그 결과 수제맥주의 도시라는 명성을 얻었고 전국의 수제맥주 매니아들은 부산에서 브루어리 투어를 계획할 정도가 됐다.다행인지 대구에서도 관련 산업 활성화를 위한 움직임이 구체화되고 있다. 수제맥주산업 활성화 협의체가 7월 중으로 출범할 계획이다. 업계와 학계, 관련 기관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어 정책 제안 등에서 활약이 기대된다.다른 도시에 비해 뒤처진 대구의 수제맥주 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선 지방자치단체의 제도적 뒷받침은 필수다. 전국에서 수제맥주 도시 대구를 찾으려면 많은 양조장이 들어서는 게 먼저다. 이 말은 곧 지자체에서 양조장 유치에 최우선으로 나서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먼저 현행법상으로 양조장 설립은 복잡하면서도 어렵고 시간상으로도 6개월 정도 걸리는 만큼 행정절차를 간소화시키는 등의 지원이 필요하다. 여기에다가 양조장은 장치산업이라는 점을 감안해 설비 중 일정부분을 지원하는 방법이면 전국의 양조장이나 양조장 설립을 계획하고 있는 사람들의 구미를 확 당길 수 있겠다.이미 몇몇 지자체에서는 지역이름을 딴 맥주의 상품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개발지원에 나섰다. 부산 북구의 경우 구포지역이 과거 밀 집산지였다는 역사적 특성을 부각시키며 ‘구포 맥주’ 상품화를 고민하고 있다. 부산 북구는 양조장유치 간담회까지 열 정도로 적극적이다. 경북의 몇몇 기초자치단체에서도 수제맥주 양조장 유치 혹은 설립에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도시재생 차원에서 수제맥주 특화거리를 조성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국내의 한 경제일간지가 소개한 적이 있는 미국 뉴욕주 미들타운에 있는 이퀼리브리엄 양조장이 좋은 예다. 육류포장업체가 문을 닫은 후 버려져 도시의 골칫덩이였던 이곳은 양조장이 들어선 이후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양조장 문이 열리기 전인 아침부터 100여 명이 줄을 선다고 한다.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맥주를 마셔보기 위해서다. 하루 수백 명씩 관광객들이 찾아오고 주변의 식당에도 손님들이 들어차기 시작하면서 이젠 양조산업이 지역의 대표산업으로 대접받고 있다. 이같은 성과에 힘입어 뉴욕주에만 400여개의 양조장이 버려진 공장 등지에 들어서 이곳들을 새롭게 변모시키고 있다.대구가 맥주도시로 불려지기 위해서는 최소한 10개 이상의 소규모 양조장이 들어서야 한다. 특화거리에 들어선 이들 양조장에서 대구 지역명을 딴 제품을 출시하고 또 지역특성과 잘 결합한 한정판 맥주를 만들어 내면 전국에서 이 맥주 맛을 보기위해 모여들 것이다. 이렇게 되면 미국 이퀼리브리엄 양조장처럼 수제맥주 산업이 지역경제 활성화를 이끄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미국의 현재 수제맥주 시장은 전체 맥주시장의 약 13%를 차지할 정도로 큰 편이다. 우리나라는 이제 겨우 1% 턱밑까지 왔다. 성장가능성이 그만큼 크다. 얼마전 주세법 개정안이 발표되면서 수제맥주 산업 활성화 가능성이 더 커졌다. 때맞춰 대구 수제맥주산업 활성화를 위한 협의체도 활동을 시작한다. 협의체에서 수제맥주 양조장 유치에 좋은 제안들이 쏟아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