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의 역겨움 논쟁, 이젠 역겹다

박운석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정치권에 난데없는 ‘역겨움’ 논쟁이 일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일반인들이 텔레비전을 틀어 놓고 추미애 장관 모습을 보면 너무너무 역겨워하는 게 일반적 현상”이라고 하자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이 맞받아쳤다. “국민의힘의 연이은 ‘막말 대잔치’를 TV 속에서 보시는 것이 국민 여러분께는 더 역겨울 것”이라고 한 것이다.막말이야 정치권에서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다만, 갈수록 수위가 높아지고 험악해지고 있어 보기에도 안쓰러울 정도다. “고삐 풀린 미친 말”에 “고삐 풀린 미친 막말”로 대응하고 “지라시 만들 때 버릇”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쯤이면 이런 ‘막말 대잔치’를 봐야만 하는 국민들의 역겨움이 더하지 않겠는가. 역겨운 논쟁에 품격은 실종되고 말았다. 말의 수준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사기’의 저자인 사마천은 말에는 네 가지 종류가 있다고 했다. 모언(貌言)과 지언(至言), 고언(苦言), 감언(甘言)이다. ‘모언’은 화려한 반면 실속이 없는 말인 반면 ‘지언’은 속이 꽉 찬 진실된 말이다. ‘고언’은 듣기에는 거북한 직언이지만 약이 되는 말을 의미하며 ‘감언’은 듣기에는 편하지만 그 말을 듣는 사람을 끝내 병들게 하는 말이라고 했다.지금 감언보다 더 심각한 말들이 넘쳐나고 있다. 심지어는 절대로 해서는 안될 말까지 스스럼없이 하는 바람에 화를 자초하고 있는 실정이다.중국 당나라 시대 때 풍도라는 재상이 있었다. 정치적 혼란기인 당나라 말부터 다섯 왕조 동안 여덟 개의 성을 가진 11명의 임금을 섬기며 벼슬을 할 정도로 처세의 달인이었다. 그의 처세관은 다음의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요, 혀는 몸을 베는 칼이로다.’ 입이 화근이니 말을 아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그는 덧붙인다.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감추면, 가는 곳마다 몸이 편안하리라.’‘혀 아래 도끼 들었다’는 속담과 뜻이 통한다. 내가 휘두르는 혀 아래의 도끼는 결국은 나에게로 향한다. 말의 품격 저자 이기주는 그의 책에서 ‘말은 나름의 귀소본능을 지닌다’고 했다. 언어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태어난 곳으로 되돌아가려는 무의식적인 본능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그의 말이다. “사람의 입에서 태어난 말은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냥 흩어지지 않는다. 돌고 돌아 어느새 말을 내뱉은 사람의 귀와 몸으로 다시 스며든다.” 새겨 보면 무서운 말이다.막말을 막말로 맞받아치다보니 수위는 갈수록 높아만 간다. 미국 오바마 전 대통령 부인 ‘미셸 오바마(Michelle Obama)’가 2016년 9월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한 말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당시 공화당 후보였던 트럼프(현 미국대통령)가 자신들을 무지막지하게 공격하자 했던 말이다. “그들은 저급하게 가도, 우리는 품위 있게 갑시다(When they go low, We go high).”저급한 말에 대응해서 품위 있게 간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막말을 주고받는 것은 결국 똑같은 말그릇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말그릇의 저자 김윤나는 “당신의 말에 당신의 그릇이 보인다”고 했다. 그는 “사람들은 저마다 말을 담는 그릇을 하나씩 지니고 살아간다. 그런데 그 말그릇의 상태에 따라 말의 수준과 관계의 깊이가 천차만별로 달라진다”고 한다. ‘말솜씨’에만 집중하는 사람들은 이목을 끌기 위한 말하기를 사용하지만, ‘말그릇이 단단한 사람들’은 소통하는 말하기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막말을 하는 것도 그렇고 막말로 대응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소통은 아예 염두에 두지 않겠다는 뜻 아닌가.콘서트장의 음악이나 농악의 꽹과리, 북소리는 엄청난 고음이다. 그럼에도 귀를 타고 들어온 소리는 온 몸으로 스며든다. 소리의 파장이 온 몸을 두드려도 즐겁다. 그렇지만 소음은 다르다. 높지는 않더라도 귀를 후벼 파는 불편함만 있을 뿐이다. 정치인들이야 때론 의도적으로 막말을 내뱉기는 하지만 나의 말이 국민들의 귀를 아프게 한다는 사실은 왜 외면하나.말은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오지만 천 사람의 귀로 들어간다고 했다. 서로를 향해 “막말이 역겹다”고만 외쳐댈 뿐 천 명, 만 명 국민들의 역겨움은 왜 살피지 않는가.

좋은 것이 좋다고?

천영애시인 진실스러움이라는 말이 있다. 얼핏 들으면 진실과 비슷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진실이 아닌데 진실처럼 느껴지는 말이다. 일종의 거짓된 말과 행위를 가리킨다.사회가 점점 복잡해지는 것처럼 말도 점점 복잡해져서 얼핏 들으면 진실인지 거짓인지 헷갈리는 말들이 많다. 거기에다 명료하게 진실과 거짓을 분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의 성향 덕분에 이 진실스러움은 진실의 가면을 쓰고 있을 때가 대부분이다.우리는 자라면서 논리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를 하는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논리적이고 비판적인 성향의 사람들은 따지기를 좋아한다는 억울한 소리를 들어야 했다. 명확하게 의사를 밝히지 않고 에둘러서 발언하는 외교적 언사처럼 두리뭉실한 말을 선호하는 사람이 많다. 모든 일상생활에서 자기 의사를 따박따박 밝히는 것은, 앞에서 ‘따박따박’이라는 말을 쓴 것처럼 대부분 부정적으로 읽힌다. 당돌하다라거나, 되바라졌다라는 말로 이런 성향의 사람들을 표현하는데 세상 모든 사람이 모두 두리뭉실한 말만 한다면 정확한 대화조차도 불가능해진다. 해석의 여지가 많기 때문에 각자 자기 입맛에 맞게 해석할 것이고, 따라서 그 말을 두고 설왕설래 또 다른 말들이 생겨나기 때문이다.나는 이 진실스러움의 가면을 쓰고 있는 몇몇 사람들을 알고 있는데 이들의 특징은 말이나 글의 논리성이 결여돼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기 생각대로 말을 하지만 그 말을 뒷받침할 정확한 사실보다는 자기 생각을 주장만 하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나 그들이 타인에 대해 좋지 않은 말을 할 때는 그 폐해가 심각하다. 사실확인이나 논리도 없이 그냥 자기 주장을 늘어놓는데 역시 논리적이고 비판적인 사유가 부족한 사람들은 그 말을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그리스의 소피스트들은 거리에서 현학적인 말로 연설을 하며 대중들을 속였다. 그들의 현란한 말재주에 대중들은 속기 마련이고, 그들이 사회를 혼란으로 몰아가기도 했다. 소피스트들의 현학적인 말을 궤변이라고 하는데, 궤변이란 상대편을 혼란스럽게 하거나 감정을 격앙시켜 거짓을 참인 것처럼 몰아가는 것을 말하며 이런 자들을 궤변론자라고 하기도 한다. 이들의 특징은 자기가 목표로 하는 지점이 반드시 있다는 것이다. 요즘 애들 말로 하면 ‘답정너’이다. 이미 답을 정해놓고 말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말이 귀에 들어올리도 없으며, 자기와 다른 생각도 전혀 받아 들이지 않는다.우리 사회에는 이런 궤변론자들이 의외로 많으며, 귀 막고 눈 막은 답정너들도 많다. 쇠귀에 경 읽기인 셈이다.그런데 이런 자들이 불화를 일으키면 대부분의 사람은 좋은 것이 좋다고 입조차 막으려 한다. 좋은 것이 좋다고? 좋은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 옳은 것이 좋은 것이다. 평소에 좋은 것이 좋다는 식으로 공자 행세를 하는 사람들은 타인의 피해에 대해서는 너그러운 태도를 취하지만 자신이 피해자가 되면 더 날카로운 날을 세운다. 그때는 좋은 것이 좋은 것이 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왜 타인의 피해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가? 분쟁을 싫어하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 탓이다. 분쟁을 피하는 사람은 잠깐은 너그러운 태도로 존중을 받을 수 있지만 그 태도가 지속되면 아무도 그 사람을 신뢰하지 않게 된다. 그 사람에게서 나올 답은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그런데 평소에 옳은 것이 좋은 것이라는 태도를 가지는 사람은 위급한 일이 생기면 찾는 사람이 많아진다. 옳은 답을 구하려 하기 때문이다.우리 사회에 궤변론자들이 많은 것은 이 좋은 것이 좋다는 태도가 한 몫을 한다고 생각한다. 논리적이고 비판적인 태도로 크고 작은 일에 잘잘못을 가린다면 궤변론자들이 대중을 현혹할 일은 줄어든다. 물론 하나하나 전부 옳고 그름을 가리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꼭 가려야 하는 일조차 좋은 것이 좋다고 넘어가면 그 일은 언젠가는 반드시 썩은 무덤이 돼 스스로를 무너지게 할 것이다.

필터 버블 터트리는 백신도 급하다

박운석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필요한 물건이 있어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봤다. 몇몇 제품의 사양과 가격만 확인하는 수준이었다. 당혹감은 그 이후였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사용할 때마다 그 물건을 판매하는 광고 혹은 인터넷사이트가 표시되는데 정도가 지나칠 정도다.인공지능이 개인의 검색기록과 정보를 수집한 후 데이터화해서 보여주는 추천 알고리즘이라지만 께름칙한 건 어쩔 수 없다. 누군가가 나를 엿보고 있다는 황당함이다. 개인적인 취향까지 어떻게 그렇게 추려낼 수 있는지 놀랍기도 하다. 최근에 나타난 새로운 현상은 아니지만 찜찜한 구석이 남는다.누군가가 나를 들여다보고 있다는 느낌은 나의 SNS 활동이 인공지능에 의해 일일이 기록되고 있다는 뜻이다. 쿠팡에서 검색 한번 해본 물건의 홍보 게시물이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을 활성화시키면 제일 먼저 눈에 띄게 된다. 페이스북도 이전에 ‘좋아요’를 눌렀던 걸 바탕으로 내가 좋아요를 누를 만한 것들을 미리 걸러서 보여준다. 유튜브는 한번 시청했던 영상과 비슷한 내용의 영상을 추천해 먼저 보여준다. 이런 친절함에 추천 영상을 보지 않을 재간이 없다. 세심하게 개인의 취향을 알아내어 보고 싶어 하는 영상으로 채워버리니 좋은 말로 맞춤 정보이지 실은 정보의 편식을 부추기는 것이다.얼핏 보면 편리할 것만 같은 이런 알고리즘은 자세히 알고 보면 섬뜩할 정도로 무섭다. 나의 일상생활이 인터넷 공간 안에서 일일이 필터링되면서 조종당하고 있어서다. 좋아요 몇 번과 검색 몇 번, 클릭 몇 번이 다른 세계로부터 차단된 공간에 나를 가둬버리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정작 나는 그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는 게 더 무시무시하다.처음부터 자신이 받아들이기에 불편할 것 같은 정보나 뉴스는 아예 선택되지 않고 외면된다. 자기가 늘 보던 것과 비슷한 내용들만 추천해 준다. 결국 정보의 왜곡 혹은 편향성이 나타나면서 궁극적으로는 이른바 가짜 뉴스에 속을 가능성도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다.이렇게 나에게 딱 맞게 걸러진 정보를 제공해주는 게 과연 좋기만 한 걸까. 미국의 정치 참여 시민단체 ‘무브온’의 이사장인 엘리 프레이저(Eli Pariser)는 그의 책 ‘생각 조종자들’에서 이를 필터 버블(Filter Bubble)로 설명했다. SNS에서 맞춤형 정보를 제공하면서 이용자들이 여과된(filtering) 정보로 인해 자기만의 공간인 비눗방울(Bubble)에 갇혀 편향된 사고를 하게 되는 현상이다.엘리 프레이저가 필터 버블을 주창한 건 2011년이었지만 그동안 정보를 거르는 기술도 더욱 정교해졌다. 지금은 SNS 이용자들이 단순히 필터 버블에 갇히는 걸 넘어 생각까지 조종당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일단 필터 버블에 갇히게 되면 평소 자기가 자주 보던 뉴스나 정보만 얻게 된다. 자기의 생각은 신념이 돼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생각은 점차 외면하게 된다.더구나 정보를 필터링하는 알고리즘에 정치적 논리가 개입되면 정보의 편식은 갈수록 커진다는 게 엘리 프레이저의 경고였다. 그의 걱정은 현실화되고 있다. 요즘 폭발 직전에 있는 사회 갈등, 대립도 걸러진 한쪽의 정보만 받아들이다 보니 생긴 가치관의 왜곡이기 때문이다.필터 버블은 결국엔 다양한 관점을 방해한다. 때론 다른 의견을 접할 수 있는 기회조차 원천차단 해 ‘확증 편향’으로 발전시키게 된다. 지금 우리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마주치는 한국 사회의 안타까운 현실 아닌가.민주주의는 다양한 의견이 토론을 거쳐 하나로 통일되어 가는 과정이다. 그런데, 이런 확증 편향을 굳히게 하는 필터 버블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걸 넘어서서 생각마저 편향되게 만들어 사회 분열로 이어지게 한다. 때론 누가 봐도 명확한 진실에 대해서도 사회 전체가 합의하지 못하고 외면하게 만든다.그러면 어떻게 우리를 가두고 있는 버블을 터트리고 밖으로 뛰쳐나올 수 있을까. 나와 다른 견해에 의도적으로라도 귀를 기울이는 수밖에 없다. 어쩌면 필터 버블을 터트리는 백신, 확증 편향에서 빠져나오는 백신을 찾는 게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해내는 것만큼 중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더 큰 파국이 오기 전에 말이다.

‘대구사람’ 전태일

김상진수성구립용학도서관 관장 ‘대구사람’ 전태일이 이제야 대구에서 되살아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서울을 비롯한 전국적으로 인정받은 대구사람이 이때까지 대구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것이다. 전태일은 1948년 대구에서 태어나 어린 여공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몸부림치다가 1970년 11월13일 서울 평화시장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라”라고 외친 뒤 자신을 불사른 노동운동가다. 늦었지만 대구에서 그가 살았던 옛집을 사들여 ‘전태일 기념관’을 조성하는 초석이 마련됐으며, 문화예술계에서도 전태일을 조명하는 책과 작품을 내놓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럽다. 대구의 자존심이 살아있는 증거이기 때문이다.전태일 열사 50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12일, 대구시 중구 남산동의 한 옛집에 ‘전태일’이란 이름이 새겨진 문패를 다는 행사가 열렸다. 이 집은 전태일의 가족들이 1963년부터 1년 정도 셋방 2칸을 얻어 살았던 집이다. 현재 명덕초등학교 강당 자리에 있었던 야간학교인 청옥고등공민학교를 다녔던 그 시절을 두고, 그는 자신의 일기에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라고 회고하기도 했다. 이날 행사는 사단법인 ‘전태일의 친구들’이 2년간 시민들을 상대로 십시일반 모금운동을 벌여 남산동 옛집을 샀다고 알리기 위해 마련됐다.대구시민들이 의기투합해 지난해 창립된 전태일의 친구들은 남산동 옛집 매입자금 5억 원을 모으기 위해 꾸준하게 노력했다. 지난해 일차적으로 1억3천만 원을 모금해 계약금을 치렀고, 코로나19 사태로 사정이 어려워진 올해도 중도금 1억 원을 지급한 뒤 50주기를 앞두고 매입을 마쳤다. 그 과정에서 미술가와 음악가들은 기부 전시회와 콘서트를 마련했으며, 지금도 기념관 건립비용을 모금하고 있다. 전태일의 친구들은 지난 13일 경북대 글로벌프라자에서 50주기를 기념하기 위해 ‘지금 여기 전태일’이란 주제로 학술대회를 열기도 했다.전태일 열사를 조명하는 책의 출간도 올해 이어졌다. 전국 12개 출판사가 그를 조명하는 ‘전태일 열사 50주기 공동출판 프로젝트- 너는 나다’가 그것이다. 대구지역 출판사 한티재는 ‘태일과 함께 그늘을 걷다’를 펴냈다. 저자는 전태일이 살았던 시대와 현재의 노동현장과 사회의 뒷면을 들추면서 인간다운 삶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대구의 치과의사 송필경은 휴머니스트로서의 그를 재조명한 ‘왜 전태일인가’를 출간했다. 지난 9월에는 대구 출신 인권변호사 조영래가 쓴 ‘전태일 평전’ 개정판이 나왔다. 앞서 지난해 가을에는 대구문화재단이 ‘대구에서 전태일을 기억하기- 전태일로 본 대구 정체성’을 펴내기도 했다.예술계의 움직임도 있다. 극단 초이스시어터가 24일부터 27일까지 대명공연거리 아트벙커에서 연극 ‘만나지 못한 친구’를 공연하고 있다. 이 작품은 전태일과 그의 삶을 처음 조명한 ‘전태일 평전’을 쓴 대구 출신 인권변호사 조영래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미 고인이 됐으며, 실제 만난 적이 없는 두 사람이 만났다면 어땠을까 하는 설정에서 제작된 작품이다.대구와 달리, 서울을 비롯해 전국적으로는 ‘대구사람’ 전태일을 일찌감치 제대로 평가했다. 서울에서는 1981년 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가 발족된 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란 호칭을 부여하면서 청계천에 기념관과 동상을 만들어 그를 기리고 있다. 올해 들어서도 정부는 노동계 최초로 무궁화훈장을 추서했다. 무궁화훈장은 국민복지 향상과 국가 발전에 기여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국민훈장 1등급이다. 또 서울 도봉구는 도로명주소위원회를 열어 그가 살았던 옛 판자촌 집터 인근의 도로 이름을 앞으로 5년간 ‘전태일로(路)’로 부르기로 했다.대구는 인물 평가에 인색하기 짝이 없는 도시로 알려져 있다. 수십 년 동안 대구에서 생활하면서 지역사회에 동참했던 한 교수의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역대학에서 정년퇴직을 해도 자신이 대구사람이 아니라, 외지인으로 취급된다는 언급이 바로 그것이다. 몹시 서운했을 것이 분명하다. 대구의 발전을 가로막는 지역 특유의 폐쇄성이 그대로 드러난 사례다. 다른 지역에서는 자그마한 연고만 있어도 자기 지역의 사람이라며 끌어안고 지역발전의 동력으로 삼아 힘을 모으고 있다. 현명한 판단이다.하물며 대구에서 태어나고 대구에서 생활한 전태일을 이제야 대구사람으로 취급하려는 대구의 풍토가 그나마 다행스러우면서도 안타깝다. 그것도 지방자치단체는 외면한 채 시민들이 주도하는 전태일 50주기에 우리는 무엇을 느껴야 할까. 삼성그룹의 발상지가 대구이고,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이건희 회장의 출생지가 대구라면서 짝사랑을 퍼붓던 것과는 사뭇 다른 태도다. 전태일이 사회적·경제적 약자라서 그런지 의문이 생긴다.

어느 낚시꾼의 허튼 소리

김시욱에녹 원장가을로 접어들면서 지역 저수지마다 낚시꾼들로 가득하다. 깊은 밤, 나가고 들어오는 차들로 주변 사람들은 쉬이 잠을 이루기가 힘들다. 형형색색의 케미컬라이트는 불꽃놀이에 버금갈 정도로 화려하다. 봄과 가을철이 월척을 잡기에 최적이라는 꾼들의 말은 일견 수긍할만하다. 붕어들은 산란철 알자리를 찾기 위해, 겨울철 동면에 앞서 영양보충을 위해 저수지 언저리로 회유한다는 사실이다. 모든 동물은 동면의 습성을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어느 학자의 말을 빌자면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일몰시간이 지나고 저수지엔 어느새 긴장감이 배어난다. 이른 저녁을 먹은 낚시꾼들은 혹여 대물의 입질을 놓칠세라 찌에 끼운 케미컬라이트를 노려본다. 침묵과 정숙을 요하던 저수지에 상향등을 켠 차 한 대가 진입한다. 아마도 초행길에 대물이 나온다는 ‘카더라’ 통신을 믿고 온 외지인인 모양이다. 낮은 소리의 한탄과 짜증이 나오더니 성질 급한 누군가가 차를 향해 욕설을 한바탕 내지른다. 적을 향해 주어진 상황 속 은폐와 엄폐의 모든 전략을 구사하며 숨소리마저 죽여 온 낚시꾼들에게 그는 또 다른 ‘적폐’이자 제거의 대상인가 보다.현재진행형으로 나타나는 우리 정치현실 역시 낚시꾼들의 ‘놀이’와 비견될 것 같다. 붕어와 낚시꾼의 보이지 않는 머리싸움, 본능에서 흘러나오는 먹이취식과 그것을 노리는 포획자의 전략, 전술은 온전히 정치에서 묻어나고 있다. 기원전 1100년 전후, 주나라 강태공의 유명한 일화처럼 이미 낚시는 정치를 위한 기본 처세술인지도 모른다. 펴진 바늘로 위수 강가에서 낚시를 하던 강태공과 주나라 문왕의 대화는 시대적 상황과 정치의 근본을 일깨워 주고 있다. 강태공은 낚시와 정치의 연관성을 다음과 같이 세 가지의 이치로 말한다. 첫째, 미끼를 이용해 고기를 낚는데 이는 곧 녹봉을 주어 인재를 취하는 것과 이치가 같다. 둘째, 좋은 미끼를 이용해 큰 물고기를 낚을 수 있는 법인데 이는 인재에게 많은 녹을 주면 줄수록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는 충성스런 신하가 나오는 이치와 같다. 셋째, 물고기는 종류에 따라 요리법이 다르듯 인재의 성품과 됨됨이에 따라 벼슬을 달리 맡기는 이치와 같다.비록 시대가 바뀌어 가시화와 더없이 빨라진 IT와 AI의 최첨단 사회가 진행되고 있지만 인간의 본성에서 출발된 정치는 아직도 아날로그가 유효하다. 펴진 바늘로 10년간 때를 기다린 강태공을 ‘사이비’ 낚시꾼이라 부른들 누가 탓할 수 있을까만 백성을 위한 진정한 인재 발굴과 나라의 부강을 도모했다는 점은 더 큰 의미의 낚시꾼이 아니었던가.최근 언론을 통해 터져 나오는 정책들은 ‘성급함과 오만’의 실책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집권 여당의 아전인수식 당헌 개정과 서울, 부산시장 후보 추천, 호텔인수를 통한 전세난 극복, 국책사업으로 결정된 김해공항 확장의 백지화 등은 스스로 정책의 실패를 인정하는 방증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대표로 있던 2015년 만든 당헌 96조 2항은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으로 그 직위를 상실하여 재·보궐선거를 실시하게 된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아니한다’라고 명문화된 것으로 선진 정당정치를 표방하며 당시 새누리당을 공격한 근거였다. 후보자 무추천은 ‘국민에 대한 책임 방기’라는 그럴듯한 말을 앞세워 개정안에 ‘단, 전당원 투표로 달리 정할 수 있다’는 단서를 삽입하는 꼼수는 국민을 무시한 오만이 아닐 수 없다. 오죽하면 ‘더불어치매당’이란 말이 나올까 싶다. 끊임없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과의 대립구도는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유고된 상황이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게 한다. 연일 발표되는 부동산 억제 정책은 역으로 수도권을 비롯한 대도시 주요지역의 집값 상승을 불러오고 있다. 전세난의 해결책으로 호텔 개조의 전세 확대라는 여당 대표의 말에 실소를 금하지 않을 수 없다. 마치 정부와 여당이 코로나 19의 경기침체를 틈타 숙박업장을 개설하고 있는 것 같다. 인재 등용과 배치를 강조한 강태공의 말이 여실히 증명되는 현 상황임에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아집과 오만에 빠져 있는 까닭이다.큰 붕어일수록 미세한 깜빡임으로 예신을 보낸다. 때가 이르면 천천히 치솟는 찌 올림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긴장하라, 그것이 정치의 대상이자 낚시의 주인공인 국민이다.

근거 있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박운석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콩코드(Concorde)’ 비운의 여객기이다. 영국과 프랑스의 합작품인 콩코드는 평균 속도가 마하 1.7로 일반 여객기보다 두 배 가량 빨랐다. 세련된 디자인으로 이목이 집중됐지만 높은 생산비와 소음에 연료 소모량도 많았다. 탑승 비용이 커지면서 실용성과 경제성에서 비효율적인 면이 두드러졌다. 하지만 영국과 프랑스는 사업 타당성이 없다는 판단에도 콩코드기를 포기할 수 없었다. 오랜 기간 동안의 투자비용이 아까워서이기도 했지만 실패를 인정할 수 없었던 양국 정부의 자존심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2000년 폭발 사고로 탑승객 전원이 사망한 이후인 2003년 운항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손실이 커질 것을 알면서도 투자한 비용이 아까워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현상을 ‘콩코드 오류(Concorde Fallacy)’라고 한다. 경제학에선 매몰비용의 오류라고도 하는데 잘못된 결정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더욱 깊이 개입해 가는 의사결정 과정을 말한다.이처럼 콩코드 오류는 투자금액이 많을수록 더 쉽게 발생한다. 한때 카메라 필름의 대명사였던 코닥이 대표적이다. 코닥은 과거의 노력과 명성, 그간의 투자비가 아까워 디지털카메라로의 변화를 거부했다. 코닥은 결국 시장에서 외면당할 수밖에 없었다. 때론 발 빠른 포기가 성공할 수 있는 지름길임을 대규모 프로젝트 책임자들은 모른다.비슷한 의미로 ‘더닝 크루거 효과(Dunning Kruger effect)’라는 게 있다. 흔히 능력이 없는 사람은 잘못된 결정을 내릴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로 인해 부정적인 결과가 나오더라도 능력 부족으로 자신의 실수를 알지 못하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1999년 코넬대학교 데이비드 더닝과 저스틴 크루거 교수가 내놓은 이론이다.둘은 45명의 학부생들에게 20가지의 논리적 사고시험을 치르게 하고 자신의 예상 성적 순위를 제출하도록 했다. 결과는 성적이 낮은 학생은 예상 순위를 높게 생각했고 성적이 좋은 학생은 오히려 스스로를 낮게 평가했다. 능력이 없는 사람이 자신의 실력을 더 높게 평가한 것이다.이들은 실험을 통해 능력이 없는 사람은 다음과 같은 특성을 보인다는 가설을 세웠다. 첫째, 자신의 능력을 매우 높게 평가한다. 둘째,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셋째, 자신의 능력 부족으로 생긴 곤경한 상황을 알지 못한다. 넷째, 훈련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키운 후에야 이전의 능력 부족을 알아차리고 인정한다.실력이 모자라는 사람들은 자신의 부족함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실제보다 훨씬 더 뛰어난 능력을 가졌다고 믿는다. 이 믿음은 우월감으로 이어진다. 더닝 크루거 효과는 진정한 능력자는 자신의 부족함을 알기 때문에 자신의 능력을 상대적으로 과소평가한다는 것까지 포함하고 있다.빈 수레가 요란하다고 했다.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무능한지조차도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의 뛰어난 능력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법이다. 얕은 지식을 믿고 섣부른 판단을 할 가능성까지 염두에 둔다면 무서운 현상이다.몇 해 전부터 ‘근자감’이라는 말이 많이 쓰이고 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을 줄여 이르는 말이다. 근자감의 특징은 자신이 허세를 부리고 있다는 것조차 모른다는 점에서 더닝 크루거 효과와 비슷하다.요즘 우리 사회에 더닝 크루거 효과를 보여주는 사례들이 넘쳐나고 있다. 정치인들과 일부 임명직 공무원들이 특히 그렇다. 이들을 보면 어떻게 자신의 능력 이상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는지 의심스럽다. 자신의 능력을 넘어서는 직무는 국민들에게 심각한 고통을 줄 수밖에 없다.주관적인 판단에 앞서 객관적인 평가를 듣고 고쳐 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노력을 통해 무능은 극복할 수 있다. 다만, 자신이 무능한지 조차 모를 경우엔 답이 없다. 책 한권만 읽은 사람들이 근자감을 바탕으로 전문가인양 설쳐대니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찰스 다윈은 “무지가 지식보다 더 큰 확신을 갖게 한다”고 했다. 근거 없는 우월감, 자신감에 무리한 정책을 남발하는 누군가는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미국 선거가 준 교훈

오용수한일문화관광연구소 대표바이든은 승리했고 트럼프는 실패했다. 사실상 트럼프가 자멸했다고 하는 편이 맞다. 선진 사회일수록 예측 가능한 것을 좋아하고 편 가르기를 싫어한다. 트럼프는 돌발이 많고 어디로 튈지 몰라 불안했다. 하지만 자신의 신념과 철학을 강력하게 실행하는 추진력은 뛰어났다. 또 내나라, 내편에 도움이 되면 대 환영, 아니면 내치는 이분법을 좋아했다. 아무튼 내편만 똘똘 뭉치면 이긴다는 계산을 했지만 뜻대로 되질 않았다. 한편 바이든은 강한 이미지는 심어주지 못했어도 예측 가능하고 모두를 아우를 수 있으리라는 안정감이 돋보였다. 바로 여기가 승부처였다.우리도 예측 가능하고 함께 가길 좋아한다. 역대 대통령들도 취임사에서 반드시 통합과 비전을 제시했다. 그런데 요즘 편 가르기는 트럼프 못지않다. 중국과 일본을 대함이 뚜렷하게 차이가 난다. 국내서도 적폐청산의 선봉에 서 칭찬을 받던 검사가 내편에게 칼을 겨누자 순식간에 팽 당했다. 개인도 10년 정도는 내다보고 계획을 세우는데, 나랏일이야 더할 나위가 없다. 집값이 오르지 않는다고 해도 젊은이들은 영끌(영혼까지 끌어낸) 대출로 집사기에 혈안이다. 세입자가 안심하고 살 수 있도록 임대차 3법을 개정했지만, 아예 전세가 사라지고 있다. 마치 운전면허시험의 돌발 테스트처럼 조마조마하다.우리 국민은 믿음만 주면 잘 따른다. IMF 외환위기 때 국민들이 금반지, 금비녀를 갖고 달려 나와 극복한 일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또 태안 기름 유출 사고로 생긴 바닷가 검은 기름때를 국민들이 겨울 바닷바람에도 손을 호호 불며 닦았다. 그러나 한번 틀리고 두번 속으면 그때부터는 달라진다. 콩으로 메주를 쑤어도 믿지 않는다. 그렇다고 기회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내편이라도 잘못한 일은 진심어린 사과와 함께 바로 잡고, 정책과 제도도 예측 가능하게 고치면 된다.관광산업도 마찬가지다. 방역과 여행을 이분법으로 나누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일관성은 있어야 한다. 특정지역이 집중적으로 감염되면 이동을 자제하거나 막아야한다. 코로나19 확산 초기 중국으로부터 유입은 막지 못하고, 대구로의 출장이나 방문은 기피했다. 대구도 집단감염에 놀라 방역에 집중한 결과, 전국에서 가장 안전한 지역이 됐다. 이 와중에 공연, 축제, 여행은 거의 중단됐고 관련 업종 사람들은 큰 고통을 받았다. 이제 정부도 항공, 여행, 숙박 할인 행사를 다시 재개했다. 때마침 코로나 백신도 개발됐다는 소식이다. 그간 못한 일과 여행도 마스크 등 방역을 철저히 하며 해보자. 대구도 위드 코로나, 위드 일상을 선포했다.관광도 예측 가능하고 상호 호혜가 돼야 한다. 훌쩍 떠나기도 하지만, 해외여행은 대체로 2~3개월 전에 계획한다. 요즘 항공노선이 열리고, 상호 2주간 격리를 면제하는 트레블 버블이 이뤄져도 해외여행은 내년부터 본격화 될 듯하다. 그러나 위기에 몰린 항공사들은 일본과 중국에 속속 취항하고 있다. 그러나 이전처럼 우리 비행기만 일방적으로 일본의 구석구석까지 취항하면, 항공은 일시적으로 살아날지 몰라도 관광은 적자를 피할 수 없다. 따라서 노선을 재개하는 지금부터 상호 균형을 이뤄야 한다. 우리 비행기와 일본 비행기가 수도권 공항과 지방공항을 서로 교차 취항토록 조정하자. 양국 항공과 관광이 함께 발전하도록 설득하되, 일본이 응하지 않으면 우리도 취항을 기다려야 한다. 아쉬운 건 양쪽 모두다.중국이 한국에서 입국하는 자는 탑승 전 48시간 내 발행된 코로나19 음성 확인서를 두 장 제출해야 하고, 한국은 중국인을 입국 후 14일간 격리하고 그 기간 중 유전자 증폭(PCR) 검사를 받도록 한다. 한국인은 검사비 약 40만 원을 자기가 부담하고, 중국인은 무료로 우리가 해준다. 이 또한 상호 호혜가 필요하다. 중국이 일방적으로 방역을 강화하면 우리도 이전 일본에 한 것처럼 맞대응해야 한다. 어차피 14일격리가 있는 한 중국인 방한 여행은 어렵다.관광도 항공도 내편만 유리한 일방적인 것은 오래가지 못한다. 예측가능하고 균형있게 해야 지속가능하다. 이제 우리 국민이 해외도 가고, 외국관광객도 우리 지역을 찾게 되고, 국내여행도 더 활발해질 것이다. 코로나를 이겨내고 관광 위민, 관광 보국에 박차를 가하자.

대구 수제맥주산업화 협업이 답이다

박운석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 지난 2월 말쯤이었을 게다.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되면서 경제활동이 거의 마비되다시피 했을 때였다. 강제로 주어진 집콕 생활에 조금 지쳐갈 무렵, 블로그 활동을 재개했다. 목표는 매일 하나의 게시 글을 올려 100일 동안 100개의 게시물을 올리는 것이었다. 주제는 평소 관심을 갖고 있던 맥주시음 후기였다. 맥주 후기를 쓴다는 건 100일 동안 다른 맥주를 마셔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결국은 하루를 빼먹고 99개의 후기를 등록했다. 물론 99종류 이상의 맥주를 마셨다.세계 각국의 다양한 맥주를 마시다보니 자연스럽게 한국의 맥주, 대구·경북 지역의 맥주산업에도 관심을 가지게 됐다. 국내에도 소규모양조장이 곳곳에 들어서면서 지역마다 특색이 있으면서도 맛과 향이 뛰어난 수제맥주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중이다. 출시되자마자 판매가 완료되기도 하고 맥주의 본고장 독일로 수출까지 하고 있는 걸 보면 우리나라 맥주 양조 수준도 만만치 않다 할 만하다.대구의 수제맥주 산업화에 참고할 만한 몇몇 좋은 사례들도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다른 산업과의 콜라보레이션이다. 콜라보레이션은 공동작업을 말한다. 협업이다. 맥주에서 콜라보레이션은 각기 다른 양조장에 속한 양조사들이 공동작업을 통해 새로운 맥주를 만들어내는 것을 말한다. 가끔 유명 연예인들과 콜라보하기도 하고, 유명카페의 커피를 넣은 맥주를 만들어내는 콜라보를 하기도 한다.맥주업계에서 협업은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생소한 풍경은 아니다. 외국의 사례로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가 양조장끼리 혹은 맥주와 다른 산업과의 콜라보레이션이 가장 활발한 도시이다.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2013년 최고의 크래프트 맥주 여행지인 샌디에이고는 330만 명의 카운티 인구에 130개의 양조장이 있는 맥주 도시이다. 특히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익숙한 양조장들이 많다. 대형마트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맥주들을 생산하는 스톤 브루잉, 밸러스트 포인트, 벨칭 비버 브루어리와 에일 스미스, 칼 슈트라우스 브루잉 컴퍼니 등이 모두 샌디에이고에 있다.이 지역 양조장들인 에일스미스와 피자포트는 협업으로 ‘로지컬 초이스’라는 알콜도수 높은 맥주를 만들었다. 벨칭비버의 ‘스워브 시티 IPA’는 미국 유명 록밴드인 데프톤즈(Deftones)와 협업한 맥주이다. 국내 대형마트에도 보이는 ‘팬텀 브라이드 IPA’ 역시 테프톤즈의 보컬 치노 모레노와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탄생했다. 이 맥주는 출시하자마자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왔다.양조장과 커피업계의 협업으로 탄생한 맥주도 있다. 코로나도 브루잉은 이 지역의 ‘버드락 커피 로스터스’에서 볶아낸 커피를 양조 과정에서 넣어 ‘어얼리 버드 콜드 브루 밀크 스타우트(Early Bird Cold brew Milk Stout)’라는 맥주를 생산해냈다. 잘 볶은 커피 향이 가득한 흑맥주다. 아침식사와 함께 마시라는 안내처럼 맥주라기보다 커피라는 느낌이 더 강하다.양조장 에일 스미스는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간판타자였던 토니 그윈을 기리는 맥주 ‘샌디에고 페일에일 3할9푼4리’를 만들었다. 3할9푼4리는 토니 그윈이 1994년 달성한 타율이다.우리나라에도 수입됐던 이들 맥주 모두 소비자들이 흥미를 가질만한 이야기들을 품고 있다. 맥주와 록밴드, 맥주와 지역 커피업체, 맥주와 지역 연고의 야구스타를 엮어낸 것이 놀랍다. 대구도 가능한 이야기다. 대구지역 커피 프랜차이즈가 전국적으로 확산돼 있고 대구 출신 야구스타도 즐비하지 않은가.다행히 대구도 수제맥주산업활성화를 위해 애쓰고 있는 중이다. 지난해 7월 수제맥주산업발전협의회를 창립한 이후 올해는 대구의 양조장 두곳에서 대구를 대표하는 수제맥주 3종을 개발해 출시를 앞두고 있다. 또 수제맥주 인구의 저변확대를 위해 홈브루잉 아카데미를 개설하기도 했다.그러나 수제맥주산업 활성화를 위한 선결과제는 양조장 숫자이다. 현재 대구의 2개 양조장으로 산업화를 일궈낸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최소한 10여 개 정도의 수제맥주 양조장이 들어서야 양조장끼리의 협업은 물론이고 맥주와 커피, 맥주와 야구를 융합하는 그림이 나올 수 있어서다.

대구 제대로 알기

김상진수성구립용학도서관 관장 “지방공무원 채용시험 과목에 지역학이 포함돼야 합니다.”지난 토요일 수성구립 용학도서관이 올 한 해 ‘대구 제대로 알기’란 주제로 진행한 국비 공모사업 ‘길 위의 인문학’을 마무리하는 후속모임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다. 지방자치단체 소속 공무원으로 근무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관문인 ‘공시’에 해당 지역에 대한 지식을 확인할 수 있는 과목이 들어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역주민 입장에서는 당연히 요구할 만한 이야기다. 특히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가 30년 가까이 전국 17개 시·도 중에서 꼴찌를 유지하고 있는 대구의 시민으로서는 마땅한 주문이다.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정보통신기술(ICT) 덕분에 이뤄진 세계화시대에 지역의 가치는 더욱 커지고 있다. 글로벌시장에서 벌어지는 경쟁도 국가 단위가 아니라, 도시 단위로 바뀐 지 오래다. 그리고 세계적인 경쟁력이 있고, 부가가치가 높은 상품은 문화콘텐츠란 인식이 일반화된 문화의 시대를 맞았다. 문화콘텐츠가 아니라면 스토리텔링을 통해 해당 도시의 문화적 배경이라도 담아야 상품을 세계시장에 내놓을 수 있다. 지역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상품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는 세상이 된 것이다. 시민들이 지역을 공부하지 않을 수 없는 배경이 바로 이 대목이다.필자는 지난 2007년 영국에 출장을 갔다가 그 즈음 주영한국대사관에 신설된 한국문화원 관계자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 관계자에게 런던에서 먹히는 한국의 문화콘텐츠가 무엇인지 물어봤다. 당시 국내에서는 대형 창작뮤지컬 ‘명성황후’의 미국 뉴욕과 영국 런던 진출을 포함해 100만 관객 달성을 자축하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었기 때문에 해외시장의 반응이 궁금했다. 그러나 런던에서의 성과는 기대 이하였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반면에 한국적 리듬으로 무장한 ‘난타’와 동양무예 퍼포먼스인 ‘점프’가 큰 호응을 얻었다고 했다. 서양의 무대공연 장르인 뮤지컬보다 동양적인 매력을 발산한 넌버벌 퍼포먼스가 유럽인의 눈길을 끌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컸다.우리는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지구촌에서 실시간으로 소통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미디어로 확실하게 자리를 잡은 시대에 살고 있다. 베를린필과 런던필의 공연실황을 큰 어려움 없이 스마트폰으로 집에서 즐기는 세상이다. 정보통신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다른 곳에서 성공한 콘텐츠를 가져다 쓰는 방식은 이제 통하지 않게 됐다. 글로벌시장을 두드리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경쟁력을 갖추려면 우리 지역을 더 공부해야 하고, 지역에 몰입하지 않고서는 해답을 얻기 어렵게 됐다.오죽하면 지역학이 공무원시험 과목에 들어가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겠는가. 지역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은 자신이 근무하고자 하는 지역에 대한 관심을 점검하는 척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급여를 받는 지역에 대한 최소한의 자세를 요구하는 시민의 목소리다. 이처럼 공무원에 대한 기대가 큰 것은 침체된 경제상황 때문에 민간영역에서 기대할 것이 별로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기업과 자영업자들이 쳐다보는 것은 궁극적으로 관급사업 뿐이라는 것이 시중의 여론이다. 시장에 수혈될 돈줄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쥐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기에 공무원의 역할이 중요한 시점이다.이날 ‘대구의 미래를 묻다’란 주제로 진행된 후속모임에서 거론된 다른 이야기도 적지 않았다. 서울 지향적인 현실에서 탈피해 열등의식을 벗어던지고 자긍심을 갖는 시민이 되자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왔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지역을 제대로 공부함으로써 긍정적인 측면을 발굴하려는 시민 모두의 노력이 요구된다는 주문이 이어졌다. 또한 권력 지향적인 대구시민의 자세를 지적하는 언급도 있었다. 이와 관련해 유권자로서의 권리를 포기한 채 기득권에 기대려는 성향이 지적되기도 했다.두 시간 정도 진행되는 동안 이야기는 자연스레 미래를 여는 교육으로 모아졌다. 자녀가 공부를 잘하면 이과에서 의사, 문과에서 판검사를 만들려는 학부모의 욕심은 역시 권력 지향적이란 분석이 나왔다. 이보다는 똑똑한 청년들이 과학과 문화 영역을 공부해 세계인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기여하도록 이끌어야겠다는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대구의 젊은이가 포함된 BTS와 ‘미스터 트롯’의 열풍을 언급하면서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좋아하는 분야를 선택하도록 지원하는 것이 지금보다 나은 대구의 미래를 여는 첩경이란 의견도 모았다. 참석자들은 마지막으로 ‘미래는 준비된 자의 것이다’란 금언과 함께, 우리 지역의 자산과 우리의 삶으로 미래를 개척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숙주역할에 지친 국민들, 그들도 기생충이 되고 싶다.

김시욱에녹 원장흔히들 사용하는 인터넷 검색엔진에 기생충을 쳐본다. 영화 ‘기생충’과 관련된 단어가 10위권 이상을 모두 차지하고 있다. 짜파구리 조리법도 동시적으로 뜨는걸 보면 아카데미상 4관왕의 위력은 어마어마한 듯하다. 반지하의 찌든 삶에서 상류층의 삶을 누리고자한 한 가정의 비극적 결말은 아카데미상을 수상하면서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 내외와의 짜파구리 파티로 피날레를 장식한다. 혐오와 경멸의 대상인 기생충이 대한민국을 전세계에 알렸다는 점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이후, ‘조국흑서’의 공동저자인 서민 단국대 의대 기생충 박사의 비유는 더더욱 흥미롭다. 문재인 대통령을 ‘편충’에 비유하고 조국 전 법무부장관을 ‘말라리아’로 비유하고 있음은 현재 대한민국이 기생충의 나라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어떤 생물체가 다른 종의 생물체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형태는 ‘공생’과 ‘기생’의 두 가지로 나뉜다. 서로 다른 두 종이 관계 속에서 양쪽 모두 이득을 얻는 것을 공생이라 한다면 기생은 한 쪽만이 일방적으로 이익을 얻는 경우를 일컫는다. 이익 없이 손해만 보는 생물체를 숙주로 해서 최소한 일생의 어느 시기는 기생생활을 해야만 기생충이라 부를 수 있다. 성충이 기생하는 숙주를 ‘종’숙주, 유충이 기생하는 숙주를 ‘중간’숙주라 부르는 말에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기생충의 삶은 자손 번식이 전부인 삶이라 해도 과하지 않다. 숙주를 통해 주거지와 영양분을 공급 받기에 오직 자신과 자손의 번식에만 몰두한다. 전문가에 따르면 기생충의 일종인 ‘회충’은 한번에 20여만 개의 알을 낳는다고 한다. 스스로 영양분을 만들지 못하는 생명체가 이렇듯 많은 알을 낳는 이유는 무엇일까? 언젠가 쓰러질 숙주에 대한 불확실성과 불안정한 기생의 삶에 대한 대비책은 아닐까 싶다. 대부분의 기생충들이 숙주에 대한 지나친 공격 없이 일생을 살아가는 이유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는 전문가의 말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엄마찬스’와 ‘아빠찬스’라는 말이 낯설지 않은 현실에서 새삼 기생충의 삶이 오버랩된다. 본능적 삶을 사는 기생충조차 후대를 위한 번식력이 그러할진대 지적능력을 바탕으로 환경을 이용할 줄 아는 인간에겐 인지상정이 아니겠는가? 자유 경쟁의 자본주의의 병폐가 아니라 당원이 되고자 위험을 감수하는 공산주의의 현실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1세대의 권력 잡기와 자리보전은 2세대와 그 이후 세대의 번성과 안정을 보장하는 것은 어느 정치체제에서도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것은 인간이기에 갖는 본성적 생존욕구이며 번식을 통한 자기 영속성의 또 다른 모습이다.최근 21대 국회 첫 국정감사를 통해 나경원 전 국회의원의 엄마찬스가 도마에 올랐다. 조국·정경심 부부의 부모찬스와 추미애 장관의 엄마찬스로 청년층 지지율 하락을 겪고 있는 여당으로선 당연한 수순의 역공일 수밖에 없다. 흔히 ‘물타기 전략’으로 부르는 이러한 반격은 지지층을 더욱 견고하게 결집시키고 상대 세력에 대한 흠집 내기를 통해 프레임전을 형성해 나가고자 하는 의도임에 분명하다. 미루어 짐작컨대 나경원 의원을 비롯한 국민의 힘의 입장에선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대방 국회의원들이 밉겠지만 한편으론 서로가 찬스를 쓰고 있는 입장이라 ‘보여주기식 제스추어’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2020년이 얼마 남지 않은 대한민국의 현실은 기생충과 숙주의 관계 설정을 정의해 온 한 해인 것 같다. 늘 ‘국민이 최우선’이라고 소리 높여 온 정치권은 여야를 막론하고 기생충의 삶과 다르지 않아 보이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국민의 공익을 위한다며 펼친 정책들이 어느새 정치 권력자들의 이익으로 돌아가는 현실에서 그들이 의도하든 아니든 기생충과 다름없는 삶을 살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전문가의 말을 인용하면, 기생충은 자신의 영양 공급원이자 생존의 터전인 숙주에 정착하기 위해 면역세포와 치열한 싸움을 한다고 한다. 싸움을 통해 두 세력의 타협이 이루어지고 기생충은 숙주를 괴롭히거나 크나큰 해를 입히지 않고 숙주 또한 면역을 억제 하는 기현상을 보인다 한다. 이는 곧 국민과 정치권력과의 관계와 유사하다. 국민을 숙주로 한 정치권은 연일 ‘국민을 위한’ 정책으로 환심을 사고자 하지만 정작 그들은 자신의 생존과 가족의 안위가 우선이다. 여야는 서로가 ‘적폐와 신적폐’ 세력으로 규정하고 숙주인 국민을 차지하려고 피가 터지는 싸움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프레임 전쟁과 코로나 19의 고통 속에서 국민은 어느새 죽어가고 있다.자신과 가족을 우선시 하는 위정자라 하더라도 ‘기생충도 숙주를 죽이지 않는다’란 말을 명심해야 하는 이유다.

내로남불, 명분도 실리도 놓칠 수 있다

박운석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자칫 사자성어인 줄 착각하는 말이 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내로남불’이다. 언제부터 이 말이 이렇게 흔하게 들을 수 있는 말이 됐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너무 자주 뉴스에 등장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인사청문회 때마다, 정치 현안마다 단골로 나오는 말이기도 하거니와 요즘은 사회 지도급 인사들의 언행 불일치가 너무 흔하다보니 최고의 유행어가 돼버렸다.이달 들어서 다시 ‘내로남불’이 회자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내년 4월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민주당 소속 후보를 사실상 공천하기로 확정한 이후다.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등 중대한 잘못으로 직위를 상실해 재보궐 선거를 하는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는다’는 당헌을 고쳐가면서 까지다. 5년전 당시 새정치민주연합(현 민주당) 문재인 대표는 새누리당(현 국민의 힘) 소속 군수의 당선무효형 선고로 치러진 경남 고성군수 재선거에서 새누리당이 책임지려면 후보를 내지 말아야한다고 주장했었다.뉴스의 초점은 민주당 당헌 개정 찬반투표에서 86.6%가 찬성했으니 서울과 부산시장 후보를 낸다느니, 전체 당원 3분의 1 미만이 참여해 당헌상 유효 투표율에 미치지 못한 것 아니냐는 투표 효력 논란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보다 더 중요한 걸 간과하고 있는 듯하다. 내로남불에 대한 무감각이다. 초기 내로남불 사례가 나올 땐 너나 할 것 없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분개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사례에 이젠 “이번에도 역시” 하고 만다.이런 내로남불은 ‘행위자-관찰자 편향’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남이 할 때는 비난하던 행위를 자신이 할 때는 합리화하는 이중잣대라는 점에서 비슷하다. 똑같은 상황에서 자신이 한 행동(행위자의 입장)과 다른 사람이 한 행동(관찰자의 입장)을 평가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에게 유리한 잣대를 사용한다. 때론 상대에 대해선 더 엄격한 도덕적 기준을 들이대고 나에 대해선 너그러운 잣대를 대기도 한다.황색 신호일 때 네거리를 통과하는 운전자를 보면 바로 ‘준법정신이 없는 사람’으로 치부해버린다. 하지만 자신이 그럴 경우엔 ‘급정거할 경우 사고우려가 있어 통과해야만 하는 불가피한 상황’으로 인식한다. 내가 하는 행위와 다른 사람이 하는 행위에 대한 잣대가 달라지는 것이다.문제는 이런 ‘행위자-관찰자 편향’이 갈수록 극심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나와 우리 편만 로맨스라는 내로남불의 프레임에 갇혀 빠져나오지를 못하고 있다. 나와 내 편은 언제나 옳고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반면 너와 네 편은 늘 틀렸고 불륜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독선과 오만이다. 심지어 내가 옳다며 정당한 이유를 대며 이야기해오던 행위마저도 상대가 하면 절대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 돼버린다. 이중의 잣대다.‘행위자-관찰자 편향’이 고착화되면서 갈등은 커질 수밖에 없다. 나아가 상대가 무엇을 하든 믿을 수 없는 불신사회로 변하게 된다. 더 큰 문제는 내로남불에 무덤덤해지면서 도덕불감증마저 도진다는 사실이다.원칙적인 말이긴 하지만 내로남불이라는 ‘행위자-관찰자 편향’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역지사지다. 상대방의 관점에서 모든 일을 바라보는 것이다. 관찰자인 내가 한순간에 행위자가 될 수 있고 또 행위자였던 내가 어느 순간 관찰자가 될 수 있어서다. 정권이 바뀌면서 행위자와 관찰자가 바뀐 경우를 수도 없이 봐오고 있지 않은가.다시 현재의 정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정치는 명분과 실리를 놓고 다투는 싸움이다. 하나의 현안에 대해 명분과 실리 모두 챙기는 경우는 없다. 이번엔 명분을 선택했으면 다른 사안에 대해선 실리를 택하는 게 정치다. 다만, 대의명분을 선택했는데 나중에 실리가 따라오는 경우는 더러 있다. 그래도 눈앞의 실리 때문에 명분을 완전히 버리는 것은 매우 드문 경우다.내년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당헌을 바꿔가면서까지 후보를 내겠다는 민주당은 명분과 실리 중 무엇을 얻으려 하는 것일까. 아니면 둘 다 챙기려는 것일까. 둘 다 잃으려는 건 아닐 테니 말이다.

어떤 구도자

박헌경변호사단풍이 절정에 이르고 있다. 예년 같으면 버스를 대절해 단풍 구경을 가려는 행락객들로 인해 고속도로 휴게소가 버스와 사람들로 발디딜 곳없이 붐빌 것인데 올해는 코로나 사태로 인해 예년 같지 않게 조용하다. 대신 가까운 팔공산을 찾아 깊어가는 가을을 느끼려는 자가용 행렬은 길게 늘어서 있다. 단풍이 절정에 이르러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면 단풍잎은 낙엽이 돼 길에 뒹굴 것이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 그래서 가을이면 우리는 더욱 옷깃을 여미게 되고 인생이 무엇인가 자연 앞에 스스로 겸손해진다.그를 처음 만난 것도 단풍이 이렇게 절정에 이른 깊어가는 가을날이었다. 15년전 합천 해인사 가는 길에 있는 작은 찻집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찻집을 그의 부인이 운영하고 있었다. 그는 머리를 자르지 않고 어깨까지 머리카락을 드리우고 있었다. 입가에 항상 미소를 머금고 울림이 좋은 목소리를 가진 그와 마주앉아 차를 마시며 긴 시간 담소를 나눴다. 주로 종교와 철학, 역사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지나온 삶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 받은 것 같다. 그의 깊이 있는 안목과 고뇌를 읽을 수 있어서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나이도 나와 갑장이라 더 가까워질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소탈하고 기분좋은 분위기를 가진 그를 만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인지라 그 뒤로 몇 번 더 해인사 그 찻집을 찾아 그를 만났다. 그는 수염을 깎지 않고 길렀고 허름한 옷에 고무신을 신고 다녔으며 걸을 때는 나무로 만든 큰 지팡이를 짚고 다녔다. 그런데 어느날 그가 지리산 청학동으로 도를 닦으러 입산해 들어가버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청학동으로 떠나기 전에 그의 부인에게 무릎을 꿇고 삼배 절을 올리고는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그로부터 5년 후 청학동을 나와 경북 영주에서 오래된 촌집을 무상으로 임차해 개조해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를 만나러 영주에 몇 번 다녀왔다. 머리는 여전히 치렁치렁 기르고 있었지만 그의 몸가짐과 목소리는 더 큰 울림이 있었고 얼굴은 맑았다. 기분좋고 소탈한 웃음소리도 여전했다. 채식을 주로 하는 그와 나물반찬 밥상을 마주 하고 앉았더니 열어놓은 장짓문 밖으로 향기로운 솔바람이 불어오고 뻐꾸기 울음소리가 참으로 평화스러웠다. 속세를 떠난다는 것은 마음으로부터 속세의 집착을 버려야 하는 것인가 보다.영주에서 1년여를 지냈던가? 그는 다시 지리산으로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의 소식을 오랫동안 듣지 못하다가 최근에 그가 진주 인근 산에서 해탈선원을 지어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주말을 맞아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친구와 둘이서 승용차를 운전해 그를 만나러 해탈선원으로 달렸다. 합천을 거쳐 진주를 지나 산청 가까운 산에 자리잡은 해탈선원을 찾았다. 시골길과 산길을 달려서 한참 들어간 곳에 해탈선원 수덕사가 있었다. 시간을 수십년 거꾸로 되돌려놓은 듯한 수덕사에 도착하니 돌계단에 빗방울이 무수히 떨어지고 뒷산에는 우연이 가득했다.절이라고 하지만 오래된 시골집을 개조해 부처님을 모시고 있었다. 우리가 들어서자 그는 합장하며 함박웃음으로 기쁘게 맞아주었다. 황토흙집에 한지를 발라놓은 방에서 그는 차를 우려 우리에게 대접했다. 10년만에 다시 만난 그는 그토록 치렁치렁 길렀던 머리카락을 자르고 머리를 깎아 스님이 돼 있었다. 모든 것이 단촐하고 검소했다. 너무나 검소해서 역시 불법을 배우고 수도하는 구도자의 모습은 이런 것이어야 하는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비는 창밖에서 계속 내리고 그가 따라주는 차에는 그의 인간적인 향기가 스며있는 것 같다.현대의 종교인은 너무 세속화되고 물질적으로 풍족해졌다.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비구는 누더기 옷을 기워입고 식사는 탁발을 해서 얻어먹으면서 살아야 한다고 하셨다. 그것이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청정비구의 모습일 터이다. 비단으로 만든 가사장삼과 제의를 거치고 거룩하게 떠받들어지는 것이 종교인의 참모습은 아닐 것이다.비가 내리는데도 그는 절 입구까지 내려와 돌아가는 우리를 향해 허리를 굽혀 합장을 한다. 웬지 모르게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은 나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조만간 다시 한번 찾아갈 것을 기약하며 아쉬움을 남기고 대구로 돌아왔다.

부끄러움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이달 7일부터 시작한 21대 국회 첫 국정감사가 26일 끝났다. 문재인 정권 중간평가라는 의미는 결국, 역시나 여야의 정쟁의 장으로 번지면서 빛이 바랬다. 국감 기간 동안 정책 대안 마련은커녕 호통과 막말로 정치 공방만 벌였다. 그 공방 속에 라임·옵티머스 사태와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등 국민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민감한 사안은 묻혀버렸다.이번 국감으로 문뜩 떠오른 한자어가 있다. 견강부회(牽强附會)와 후안무치(厚顔無恥)이다.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억지로 끌어붙여 자기 주장의 조건에 맞도록 함을 비유하는 한자어가 견강부회이다. 후안무치는 낯이 두꺼워 부끄러움이 없다라는 뜻으로 뻔뻔스러워 부끄러워 할 줄 모르는 것은 말한다.똑같은 이슈를 두고, 똑같은 국감증인의 말을 두고 여야가 자기들 입장에 맞게 견강부회하고 있다. 그럴 정도로 부끄러움 없이 뻔뻔하다보니 갈수록 얼굴은 두꺼워지고 있다. 국회 상임위원장과 상임위원이 감사 도중에 주먹다짐 일보직전까지 가는 일까지 벌어졌다. 고성에 삿대질은 물론이고 의사봉까지 내동댕이치기까지 했다. 그러고 나서도 서로 사과하기는커녕 유감표명도 없었다. 낯 두꺼운 일은 그들이 했는데 왜 보고 있는 국민들이 부끄러워해야 하는지.맹자는 인간의 본성을 네가지 마음씨로 설명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인 측은지심(惻隱之心), 부끄러워하는 마음인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할 줄 아는 마음인 사양지심(辭讓之心),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인 시비지심(是非之心)이다. 이 중 수오지심은 자신이 착하지 않음을 부끄러워하고 남이 착하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이다.사실 인간이 짐승과 구분되는 점 중 하나가 부끄러워하는 마음이다. 부끄러움은 사람만이 가진 감정이다. 남우세스러운 일을 저지르고 나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걸 국회가 나서서 보여줘서 안타까울 뿐이다. 욕설에 막말에 후안무치한건 그들인데 왜 보고 있는 국민들이 부끄러워해야 하나.얼마 전에 나온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지’(이주연 저)라는 책에선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인 염치가 결정적인 순간마다 사회와 공동체가 최악으로 치닫지 않도록 지켜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사회를 지탱해온 염치마저 없어진 듯하다. 경제적으로는 갈수록 살만한 세상이 돼가고 있지만 부끄러움을 모르는 몰염치한 사람들은 오히려 늘어나고 있어서일 게다.‘염치 불구하고’라고 흔히 쓰는 말은 ‘염치 불고(不顧)하고’의 잘못된 표현이다. 불고(不顧)는 돌아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즉, 염치를 돌아보지 않는다는 건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말이다. 돌아보면 염치 불고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이젠 뉴스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공식처럼 사용하는 말이 있다. 주로 권력을 가진 자들이 염치 불고하고 하는 말이다. 먼저 어떤 의혹이 제기되면 “가짜 뉴스”라고 주장한다. 의혹이 수사 과정에서 드러나면 “재판에서 밝히겠다”고 하고, 법원 판결이 난 후에는 “대법원의 판단을 구하겠다”고 한다. 대법원의 판단 후에도 할 말은 있다. “역사가 증명할 것”이라고 한다.하긴 염치없는 정도를 넘어 후안무치한 이들에게 맹자의 수오지심을 이야기해봤자 쇠귀에 경 읽기이다. 벼룩도 낯짝이 있고 빈대도 콧등이 있고 미꾸라지도 백통이 있다고 했다. 아주 작은 벼룩에게도 양심은 있다는데 부끄러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 너무 많다. 대부분 지도층 인사들이다. 이들에게 더욱 요구되는 게 염치고 부끄러움이다. 그런데 후안무치한 이들을 보고 부끄러워하는 건 오히려 일반 국민들이다. 이젠 국민들도 부끄러움에 대해 갈수록 무감각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마음 한 구석 수오지심은 붙들고 있어야 건강한 사회다.욕망을 주체할 수 없는 사람일수록 부끄러움을 모른다. 권력, 재물, 명예에 대한 집착이 강해질수록 수오지심은 없어진다. 이들에게 맹자의 말을 들려주고 싶다. 무수오지심 비인야(無羞惡之心 非人也). 자신의 착하지 않고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갈수록 낯짝 두꺼워지고 있는, 지도층이라고 폼 잡는 그들에게 물어본다. 너는 사람인가. 그러면서 돌아본다. 나는 어떤가.박운석(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

‘코로나 일상’ 속의 독서문화운동

김상진수성구립용학도서관 관장‘코로나 이후는 없다. 코로나와 함께 사는 시대를 준비하라.’카이스트 미래전략연구센터가 최근 발간한 ‘카이스트 미래전략 2021’을 홍보하는 문구다. 다르게 표현하면 ‘포스트(post) 코로나는 없다. 위드(with) 코로나 시대를 준비하라’다. 다음해의 경영전략을 소개하는 이 책은 매년 시리즈로 간행되고 있다. 올해는 ‘위드 코로나 : 달라진 세상, 새로운 기회’란 부제를 달고 있으며, 지난해 발간된 ‘카이스트 미래전략 2020’의 부제는 ‘기술과 인간의 만남’이었다. 부제만 살펴봐도 코로나19가 세상을 바꾼 것을 알 수 있다.지난해 12월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19 사태가 벌써 11개월째로 접어들면서 ‘위드 코로나 시대’란 말은 일상화됐다. 이 말은 코로나19를 예방하면서 일상생활을 해야 하는 시기를 뜻한다. 국립국어원은 이를 대체할 우리말로 ‘코로나 일상’을 선정하기도 했다. 코로나 일상에서는 감염병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가운데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비대면 상황이 요구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인류는 이때껏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많은 변화를 경험했다.모든 시민을 대상으로 지식정보를 제공하는 공공도서관도 예외가 아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인근 지역에서 발생하면 문을 닫았다가 상황이 호전되면 문을 열기를 반복했다. 문을 열 때는 방역을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준수해야 했다. 문을 닫은 채 비대면 상황을 유지해야 할 때도 시민들의 일상을 위해 온라인 소통에 집중했다. 오프라인으로 진행되던 강연은 영상 콘텐츠로 제작돼 유튜브와 밴드 등 온라인 매체를 통해 시민들에게 제공됐다. 강연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줌(zoom) 등 쌍방향 소통이 가능한 화상회의 시스템도 활용됐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는 생각할 수도 없었던 변화가 수개월 만에 일어났다.지난 16일부터 18일까지 3일간의 공식일정을 마친 ‘2020 대구수성 한국지역도서전’도 마찬가지다. 당초에는 지난 5월 수성못 상화동산에서 열리는 대면 전시회로 기획됐으나, 대구를 중심으로 코로나19 사태가 확산되면서 행사 일정이 10월로 연기됐다. 그 뒤 상황이 호전되면서 대면 및 비대면 행사를 병행하는 것으로 계획이 바뀌었으나, 수도권을 중심으로 코로나19 사태가 재확산되는 바람에 비대면 행사로 궤도가 전면 수정됐다. 모든 프로그램은 영상 콘텐츠로 제작돼 온라인 플랫폼과 유튜브에 탑재됐다. 개막행사와 지역출판 심포지엄, 도서관을 찾은 지역 저자 등은 유튜브 라이브로 실시간 생중계됐다.코로나 일상 속의 대구수성 한국지역도서전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위드 코로나 시대, 책축제 및 독서문화축제의 뉴노멀을 제시하기로 한 것이다. 사흘간의 이벤트가 아니라 내년도 한국지역도서전까지, 구체적으로 말하면 강원도 춘천에서 열릴 2021 한국지역도서전까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1년간 지역도서전을 유지한다. 공식일정 이외에 기념도서와 자료집은 물론, 백서까지 온라인 플랫폼에 탑재한다. 메인 화면도 일부 바뀐다. 앞으로는 지속 가능한 독서문화운동을 위한 플랫폼으로 개편될 예정이다.이는 단순히 오프라인으로 진행되던 지역도서전을 온라인에 옮겨둔 정도가 아니었다. 오프라인 행사로 진행됐을 경우 사흘간의 전시와 체험 등으로 대구수성 한국지역도서전은 막을 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온라인 플랫폼을 구성함으로써 각종 프로그램은 영상 콘텐츠로 영원히 기록되게 됐다. 특히 대구의 문화 정체성을 밝힌 ‘대구, 출판문화의 거점’이란 제목의 수성특별전I과 함께, 활 든 선비로 콘셉트를 잡은 계동 전경창 선생의 선비정신을 다룬 수성특별전II ‘수성, 대구 유학의 뿌리’는 불의에 저항하는 대구정신을 조명하는 영상 콘텐츠로 활용도를 높이게 됐다.비대면 접속의 활성화로 ‘디지털 대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이 가속화되고 있다. 디지털 대전환은 디지털 기술을 사회 전반에 적용함으로써 전통적인 사회구조를 혁신시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 컴퓨팅,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솔루션 등 정보통신기술(ICT)을 플랫폼으로 구축해 전통적인 운영방식과 서비스 등을 혁신하는 것을 의미한다. 성공적인 디지털 대전환을 통해 4차 산업혁명이 실현된다. 요즘 코로나19 사태로 인류가 느끼는 변화는 디지털 대전환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이제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코로나 일상을 맞이하고 있다. 코로나 탓만 할 것이 아니라, 기존 생각의 틀을 완전히 바꿈으로써 변화된 세상에 적응해야 한다. 디지털 대전환을 대하는 자세도 마찬가지다. 아날로그 세대는 디지털 대전환을 단순히 도구의 변환으로만 생각하지만, 그 정도가 아니다. 삶의 방식이 바뀐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시대의 광대놀음, 누구를 위한 가면인가?

김시욱에녹 원장정상과 비정상의 차이는 무엇인가? 우리는 늘 정상인이라는 자의식 속에서 세상을 보려한다. 그 세상은 늘 온전한 듯 보이지만 비리와 권모술수 그리고 권력의 역겨움으로 가득 차있다. 정돈된 정장차림으로 정의와 국민을 앞세우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그들의 모습은 ‘아귀’와 다름없다. 국민의 혈세가 자신의 것인 양 탐욕으로 가득한 그들은 앞 다퉈 자신의 입지와 영달을 꿈꾸며 가지려 한다. ‘테스형’을 목놓아 불렀던 어느 예인의 말처럼, 국민을 위한 진정한 권력자는 이 땅에 없었는지 모른다.이런 답답함 속에서 하회탈춤의 이매(바보)가 절실히 필요하다. 비정상인이 바라보는 세상이 오히려 더 솔직한 현실이 되는 까닭에 서민을 위한 광대가 기다려지는 이유이다. 권력과 금전의 상층부에서 부녀를 희롱하는 중과 선비와 양반을 풍자하며 서민의 카타르시스를 불러올 그 누군가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것이 시대를 내려온 광대놀음의 뜻이었고 서민의 풍요와 안위를 걱정한 각 지역의 민속놀음이었다. ‘테스형’으로 대변되는 예인의 노랫말과 일성이 대다수 국민의 카다르시스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진영논리에 매몰돼 아전인수식 해석으로 목소리를 높이던 그들은 누구였던가. 현실감각이 떨어진 체 권위와 ‘보여주기’에 익숙한 바보 아닌 바보들이 위정자가 아니었던가.현직 법무부 장관인 추미애씨가 두 번째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정계와 재계의 광풍으로 번질 라임 옵티머스 사태에 대한 철저한 수사가 그 명분이다. 단초가 된 것이 일반적으로 첩보 수준인 스모킹 건이 아니라 라임 전 회장 김봉현의 옥중서신이라는 점이 이채롭다.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의 금품수수 의혹으로 시작된 라임사건이 이제 여야의 생사가 걸린 문제로 공방을 주고받고 있다. 진실은 분명코 어디엔가 자리하고 있겠지만 구속된 피고인의 ‘말’에 좌지우지되는 대한민국 법치의 현실이 안타깝다. 실체적 진실의 발견과 정의 구현이라는 크나큰 명분을 앞세운 ‘내 편 살고 네 편은 죽어야 한다.’는 진영논리가 될까 두렵다.언론보도에 따르면 추 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의 수사 지휘 및 감독권을 박탈한 사건은 총 5가지다. 라임 관련 1건, 윤 총장 가족 관련 3건, 윤 총장 측근으로 꼽혔던 윤대진 사법연수원 부원장의 친형 관련 1건이 그것이다. 추 장관은 검찰 출신 변호사가 구속 피고인에게 ‘윤 총장에게 힘을 실어주려면 청와대 행정관으로는 부족하고 수석 정도는 잡아야 한다. 총장에게 보고해 보석으로 재판을 받게 해주겠다며 회유·협박했다는 의혹, 검찰총장이 수사팀 검사 선정에 직접 관여하고 검사장 출신 유력 야권 정치인에 대한 구체적 비위 사실을 직접 보고받고도 여권 인사와는 달리 제대로 된 수사가 진행되지 않았고 보고가 누락되는 등 사건을 제대로 지휘하지 않았다는 의혹’ 등을 이유로 들었다. 또 현직 검사들의 향응 접대 및 금품 로비 의혹도 구체적 제보를 받고도 관련 보고나 수사가 일절 누락됐다고 주장했다.보도된 내용대로 행간을 읽어 보면 참으로 재미난 사실을 알 수 있다. 라임 옵티머스 전 회장 김봉현은 초기 법정 진술에서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에게 금품을 제공했다고 증언했다. 그것이 도화선이 돼 여권 실세와 청와대로 불똥이 튀려하자 김봉현의 ‘옥중서신’이 등장한다. 그 내용은 검사의 회유와 유흥접대, 그리고 검찰총장이 배경으로 있는 시나리오가 중심이었다. 옥중서신의 내용과 일맥상통하는 흐름이다. 이후, 야권 유력인사들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여권은 역공을 시작한다.이젠 정치권 전체의 블랙홀이 되면서 이전투구의 양상을 띠고 있다. 이와 동시에 추 장관은 수사 지휘서를 통해 마치 수사결과를 발표하듯 사실관계를 기정사실화하고 김봉현 전 회장의 주장을 있는 그대로 인용했다. 수사과정에 있는 범죄사실을 구체적이고 피의사실을 확정하듯 쓰는 것은 분명 바람직하지 않다. 전직 판사 출신인 추미애 장관이 모르지 않을 것임에도 ‘일부 사실로 확인됐다’고 적은 이유는 무엇인가. 라임 사태를 조사해 오던 검사와 조사관 모두가 일순간에 교체됐다. 검찰개혁과 공수처 설치라는 큰 틀에서 만들어지는 춤사위라면 순수한 의도로 볼 수 없다. 개혁은 정의와 공정을 위한 수단이 돼야 하며, 정의와 공정은 정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 전체를 위한 것이 돼야 하기에 그러하다.이미 광대놀음은 시작됐다. 한바탕 웃음으로 어우러지는 춤사위이길 간절히 소망하며 아집과 편견 속에 만들어지는 가면 속 놀음은 결코 국민을 감동시킬 수 없음을 명심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