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질주와 인성교육

욕망의 질주와 인성교육한병선교육평론가·문학박사과거 농경사회에서는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스스로 해결했다. 이 같은 단순성은 생활의 단순성으로 이어졌다. 오직 필요만이 생산을 이끌어내는 주요 동인이 되었다.하지만 사회는 산업화와 함께 완전히 다른 패러다임으로 바뀌었다. 곳곳의 공장들은 무서운 속도로 상품들을 쏟아내고 그렇게 만들어진 상품들은 그럴듯한 포장을 거쳐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이른바 자본주의로 대변되는 대량소비의 시대가 된 것이다.이런 환경변화는 단순히 우리 삶의 외형만을 바꾼 것은 아니다. 가치관은 물론 사물을 보는 눈까지 변화시켰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내면의 정신적인 가치보다 물질적인 가치를 더 중시하는 사회를 만들었다.자본주의에서는 생산과 소비가 분리되고 시장에서는 모든 것이 상품이 된다. 이런 특성 상, 욕망하는 대상은 곧바로 소비로 연결되는 특징을 갖는다. 소비력에 따라 철저히 사람들의 위계까지 결정되기도 한다.페미니스트 리타 펠스키에 의하면, 오늘날 소비주의 문화는 도덕적, 종교적 권위를 무시한 채 소비자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키도록 조장한다. 남녀 간의 내밀한 관계, 혹은 가정 내의 가부장적 가족구조까지도 파괴시킨다고 말한다. 사실 교육도 예외는 아니다. 현대교육에서 교육은 소비재가 된지 이미 오래다.교육소비, 수요자 교육, 교육소비자. 교육소비 비율, 교육소비 욕구 등의 용어들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이를 용어를 키워드로 하는 논문들도 나온다. 물론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교육과 소비의 문제는 교육내용에 대한 본질적인 부분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교육이 이루어지는 과정, 혹은 수단적인 교육에 무게를 둔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이런 경향성이 현실적으로 교육의 본질과 완전히 유리된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여가생활도 소비와 밀접한 관련성을 갖는다. 흔히 '3S산업'으로 일컫는 관광산업은 대표적인 경우다. '태양(sun)', '바다(sea)'와 함께 '성(sex)'까지도 상품으로 소비한다. 성을 매개로 인간의 몸조차도 화폐경제의 수단으로 전락시킨다. 이뿐만이 아니다. 교육의 상품화, 몸의 상품화, 전통과 역사의 상품화 등 수없이 많다. 이런 변화는 일상의 삶에서 물질의 풍요로움을 삶의 풍요로움으로 치환하려는 시도로 나타난다.'풍요로운 사회(abundant society)'에서 인간관계는 과거와 달리 타자와의 관계가 아닌, 사물과의 관계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다. 이러한 상황은 더 새로운 상품에 의해 자극을 받으며 유행으로 번져간다. 사람들은 다시 유행을 따라 더욱 사물 의존적인 존재가 된다. 이는 상품의 유용성이 아닌, 유행 혹은 이미지에 의해 구매하게 되는 현대인들의 속성을 잘 나타내주는 현상이다.오늘날의 소비 형태는 사회·문화적인 현상으로 나타난다. 일상에서 나타나는 소비는 필요에 의한 것이 아닌 유도된 소비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도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까. 수단적, 소비적인 교육의 한계를 넘어야 한다. 소비지향적인 방향으로 갈수록, 비인간적, 비인성적으로 갈수록 인성교육은 더욱 중요성을 갖는다는 의미다.이런 점에서 갈수록 인성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인성보다는 수단적 요소들을 강조함에 따라 나타난 자연스러운 결과다. 꽃의 향기가 백리를 간다면 사람의 향기는 천리를 가도록 해야 한다. 문제는 인성교육의 당위성이 아닌 교육목표와 방향성이다. 현재 이루어지는 인성교육의 내용이 사회 전반의 변화와는 유리된 과거 회귀의 모습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다. 여기서 인성교육이 중요하다는 의미는 우리사회의 가부장적 질서나 삼강오륜식의 질서를 강화시켜야 한다는 것이 결코 아니다.

장단(長短)인가, 동조(同調)인가

장단(長短)인가, 동조(同調)인가한병선교육평론가·문학박사의견에 ‘장단(長短)’을 맞춘다는 의미와 ‘동조(同調)’한다는 뜻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종종 같은 뜻으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다른 경우도 많다.현실 속에서 이런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는 곳이 정치판이다. 특정한 정치적 사안에서 상대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으면 사이비 보수니, 사이비 진보로 몰아가는 경우가 많다. 장단을 맞출 것인지, 동조할 것인지를 구분하지 못한 결과다.춘추시대 제나라의 안영은 왕에게 간언하는 재상이었다. 한 신하를 본 왕이 안영에게 물었다. “저 사람은 어떤 사람 같은가?” 안영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 사람은 전하의 의견에 장단을 맞추지 않고 단순히 동조할 뿐입니다.”왕이 궁금해서 재차 물었다. “장단을 맞추는 것과 동조하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 안영이 다시 대답했다. “장단을 맞추는 것은 조화를 뜻하는 것으로 서로 다른 것들이 모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비유컨대, 맛 좋은 음식의 국물과 같은 것이지요. 다양한 여러 재료들을 넣어 지나치거나 모자람 없는 맛을 내는 것입니다.”왕이 왜 그런지를 다시 물었다. 안영은 이어 답했다. “사람들의 관계도 이와 같습니다. 전하가 긍정하는 것 속에 부정할 것이 있다면, 그것을 가려 전하의 긍정을 완전한 것이 되게 해야 합니다. 반대로 전하가 부정하는 것 속에 긍정할 것이 있다면, 그것을 가려내서 전하를 구하는 것이 바로 조화, 즉 장단입니다. 그러나 저 사람은 전하가 긍정하는 것을 긍정하고 부정하는 것을 부정하니, 동조하는 것이지 조화는 아닙니다.”장단은 자신의 생각을 기반으로 조화를 이루기 위한 것인 반면, 동조는 생각 없이 상대에게 무조건 찬성하는 것을 말한다. 장단을 잘 맞춘다고 해서 자신의 의견이나 주장을 포기해야하는 것은 아니다. 장단을 잘 맞춘다는 것은 긍정적, 발전적 조화를 도모한다는 의미다.장단과 동조가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은 정치판이다. 정치판에서 어리석은 사람은 동조하는 사람만을 선호한다. 자신의 생각에 무조건 찬성하는, 자신의 행동을 무조건 칭찬하는 사람만을 곁에 두려고 한다. 그것이 모두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하지만 그런 상황이 지속되면 고인 강물이 썩는 것처럼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능력을 상실할 뿐이다. “군자(君子)는 조화롭게 어울리지만 반드시 갈기를 요구하지 않고, 소인(小人)은 반드시 갈기를 요구하지만 조화롭게 어울리지는 못한다”는 공자의 비판도 이런 이유다.장단과 동조가 만들어내는 결과의 차이도 크다. 현실에서 장단이 조화(harmony)라고 한다면, 동조는 보통 야합(politicking) 형태로 나타난다. 예컨대 여야의 장단이 잘 맞으면 민생을 위한 좋은 법이 만들어지지만, 동조하면 민생이 아닌 자신들만을 위한 법이 되고 만다. 하루만 국회의원을 지내도 평생 연금을 받는 법안, 매년 여야가 동조해서 올리는 세비인상안, 국회의원의 특권을 폐지하겠다고 말하면서도 동조해서 상정하지 않은 사례들은 대표적인 야합의 경우다.한 마디만 더 거들어보자. 총선에 출마하려는 후보들이 줄줄이 나서고 있다. 각자 저마다 지금까지의 정치적 행보를 자랑한다. 하지만 이들의 정치적 활동을 보면 진정 장단을 맞추어 왔는지, 동조를 위한 동조만을 거듭해왔는지 한 눈에 알 수 있다. 소인인지, 군자인지를 쉽게 구별할 수 있다는 것. 동조는 부화뇌동에 가깝다.부화뇌동이 정치적 압력으로 작용할 정도가 되면 그것은 사회적으로도 문제가 된다. 개인 간에도 마찬가지다. 장단인지 동조인지는 조금만 이야기를 나눠보면 단박에 알 수 있다. 아는 것이 없는 침묵인지, 알면서도 조화를 위한 절제된 침묵인지를 알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한국의 현실이 될 일본 노후자금 3억 파문

한국의 현실이 될 일본 노후자금 3억 원 파문박상준언론인·유원대 새로운 시니어문화연구소장 늘 돈에는 초연한듯 좋아하는 일만 하며 사는 40대 남자에게 누군가 훈수를 뒀다. “이젠 자네도 이제 돈 벌어서 노후대책을 해야 되지 않나”, “그래? 자네는 계속 돈을 벌며 노후를 대비하게. 나는 일을 하면서 노년을 맞을 테니. 내 노후 대책은 돈이 아니라 일이야.” 올 해 칠순을 맞은 개그맨 전유성이 마흔 살에 했던 스탠드업 코미디 ‘위기의 남자’ 한 장면이다.전유성처럼 돈은 크게 못 벌어도 재밌는 일에 파묻혀 인생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면 나름 성공한 인생이라 하겠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에서 그게 가당키나 한가. 물론 노후에도 일하는 사람은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소가 2년전 6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 결과, 30.9%가 일을 하고 있었다. 용돈(11.5%)을 벌거나 건강 유지(6%)를 위한 이유도 있지만 대부분 먹고살기 위해서(73%)였다. 우리사회도 노후빈곤의 재앙이 다가오고 있다.노인인구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많은 일본에선 가난한 노인을 의미하는 하류 노인 문제가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됐다. 일본은 65살 이상이 28%에 달하는 ‘초고령 사회’다. 그런데 이런 일본에서 노후를 위해선 2억 원이 넘는 돈을 저축해야 한다는 내용의 정부 보고서가 최근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는 자민당 간사장 시절이던 지난 2004년 연금 제도를 개혁하면서 ‘100년 안심’을 구호로 내걸었다. 전 국민이 평생 걱정없이 살 수 있는 연금 제도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정부의 연금 정책 실패를 국민에게 떠넘기고 있다.요즘 같은 ‘100세 시대’에는 인생후반이 더 중요하지만 안정된 삶을 기대하기엔 너무 많은 리스크가 기다리고 있다. 생각보다 오래 살고, 생각만큼 생활비는 줄지 않으며, 자녀문제라는 악재와 부동산에만 쏠린 자산 그리고 무서운 인플레이션이 노후생활을 옥죄고 있다.그래서 일본도 ‘노후자금’은 늘 관심사다. 국민연금으로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최근 마이니치 신문 설문 조사에서 “공적 연금이 노후 생활에 의지가 되느냐”는 질문에 57%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일본 금융청 보고서를 인용한 언론보도를 보면 ‘노후 준비에 충분한 자산’에 대한 질문에 50대는 3천424만 엔, 60대 이상은 3천553만 엔이라고 답했다. 일본 정부가 추산한 2억 원보다 1억 원 이상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하지만 실제 보유한 자산은 50대는 1천132만 엔, 60대이상은 1천830만 엔 뿐 이었다. 지금 추세로 보면 ‘단카이(團塊) 주니어 세대’(1971~1974년 출생)가 받을 연금은 현재 월 평균 19만 엔(205만원)보다 훨씬 적은 15만 엔(163만원)으로 줄어든다. 가진 돈과 필요한 돈의 괴리가 크지만 정부는 ‘100년 안심’을 선언한지 20년도 안 돼 국민스스로 노후자금을 마련하라고 하니 여론이 악화된 것이다.하지만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 우리의 현실이다. 국민연금 적립금은 666조4천억 원(지난 2월 기준)에 달하지만 국민연금의 미래는 결코 밝지 않다. 정부는 이 돈이 오는 2057년 고갈될 것으로 전망했다. 불확실한 경제상황과 저출산·고령화 때문이다. 그렇다고 연금 지급을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난해 국민연금 수익률은 올해 7개 주요 글로벌 연기금중 바닥권(5.51%)이었다. 수익률이 1%p 떨어지면 기금 고갈이 6년 정도 앞당겨진다. 문재인 정부에서 스튜어트십 코드 적용 등 국민연금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다보니 이런 일이 생겼다. 국민연금 조기고갈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자 문 대통령은 작년 8월 ‘국민연금’ 지급은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고 밝혔다. 그 말을 믿기엔 국민연금의 미래는 너무나 불투명하다. 차라리 아베총리처럼 욕을 얻어 먹더라도 국민 각자가 노후자금을 비축하라고 하는 것이 더 현실적인 대안 일듯 싶다.

말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자

말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자 김혜란방송인·강사 때때로 노랫말이 삶을 다스리는 한 줄 법문이 된다. ‘우리는 말 안 하고 살 수가 없나. 날으는 솔개처럼….’ 요즘 하루에도 수십 번씩 중얼거리는 노랫말이다. 새 소재 노래를 많이 만든 이태원의 노래 ‘솔개’의 첫 부분이다. 공식적으로 말로 먹고사는 방송쟁이가 말 안 하고 살 수는 없는데 자꾸 그러고 싶어진다.날이면 날마다 쏟아지는 사회 뉴스들은 갈수록 충격적이다. 찌르고 다치고 피 흘리고 죽고. 하긴, 대한민국 국민은 이중삼중으로 전쟁터에 서 있다. 정치인들이 쏟아내는 말들이 독하다 못해 아주 그냥 사악하다. 말을 무기 삼아 전쟁을 벌이니 전쟁터다. 총알 한 방 맞으면 돌려주는 건 두 방 세 방이고, 총알이 대포가 되고 미사일로 주고받는다.무슨 전쟁이, 쏘는 당사자들은 멀쩡한데, 착하게 지켜보고만 있는 국민들이 다치고 픽픽 쓰러진다. 보기만 해도 상처가 너무 크다. 혹시 이게 꿈인가 싶어 TV와 각종 미디어를 하루 이틀 끄고 덮었다가 다시 보기도 한다. 웬걸, 상황이 더 심해져 있다. 세간에 최고의 전쟁드라마라고 하는 ‘왕좌의 게임’이 이런 전쟁을 보여 줄까. 드라마인 ‘왕좌의 게임’은 잔인하지만 잠시 머리를 떨구고 성찰이라도 하게 한다. 지금 정치인들이 벌이는 말 전쟁은 아무것도 남는 게 없을 것이 뻔하다.‘서당개 3년’이 아니라도 이 나라 정치판 몇 달만 지켜봐도 알 수 있다. 정치인들이 전쟁 중 한결같이 앞세우는 주어, ‘국민’들은 이제 정치인들의 말싸움을 강제로 끝내거나 아니면 그들을 사라지게 해줄 ‘어벤져스’를 찾아야 할 상황이다. 말 전쟁의 포화 속으로 끌어들인 당사자들에게 복수하고 싶어진 것이 아니다. 너무도 심각한 현실, 당장 코앞에 국민의 생사가 걸린 일들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대한민국 국민에게 영화는 있어도 현실에서 싸워 줄 어벤져스는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또 국민이 피 흘린 채로 답을 찾아야 한다.지난 초파일에 부처님 전에 촛불을 켜다가 묘안이 떠올랐다. 정치인들을 묵언수행 시키자. 또 종교 타령 나오면 묵상이나 말없이 기도하기도 있다. 국민청원 넣고 안되면 촛불 들면 되지. 안될까. 될 수 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안되는 건 없다고 했다. ‘삼육구’ 놀이만 안 하면 된다. 한국영화 ‘달마야 놀자’에서 한 스님의 길고 긴 묵언수행을 깬 것은 삼육구 놀이였으니까. ‘삼육구’ 이 말, 하지 말 걸 그랬나. 자꾸 생각날 것 같다. 살짝 정신줄이 놓인다. 정치인들의 말 전쟁이 국민 한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증거다.우리 삶은 말로 이루어진다. ‘인간은 언어적 동물’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우리는 말을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동물인 것은 맞다. 문제는 국민을 앞세워 자신들만을 위해 말로 전쟁을 벌이는 이익집단이 도를 넘으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적당히 하고 그치면 될 것을 멈추지 못한다. 한쪽이 딱 한 번만 양보하면 될 것인데 그걸 못한다. 차라리 어떤 철학자의 말처럼 결핍 때문이라거나, 진리를 탐색하기 위해서라면 국민이 통 크게 안아줄 수도 있다. 답 없는 말만 골라서 쏘고 있으니 풀리지도 않고, 부상자만 속출하고 자칫 전사자도 나올 것 같다. 그걸 지켜보는 국민은 울고 싶고 아프다. 유탄에 맞아 피 흘리고 있다.때로 말을 멈추는 일이 우리 모두를 살리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말을 멈출 수 있는 자, 그런 정치인을 다음 선거에서 뽑으면 된다. 아니, 뽑겠다고 선언하자. 국민들은 그들처럼 많이 말하지 말고 결정적인 한마디만 하자. 말은 많이 하면 할수록 실수가 잦다. 많이 할수록 쓸 말이 없다.다시 노랫말을 되뇌어 본다. ‘우리는 말 안 하고 살 수가 없나. 날으는 솔개처럼….’ 언제까지 이 노랫말을 진리로 들어가는 문, 법문 삼아 살아야 할까.

너무 평범해서 더 새로운

한병선 교육평론가“인생에서 성공하려면 끈기를 죽마고우로, 경험을 현명한 조언자로, 신중을 형님으로, 희망을 수호신으로 삼으라.” 이 말은 발명왕 에디슨이 한 말이다. 인생에서 성공을 꿈꾸지 않는 사람은 없다.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모든 인간은 자신만의 꿈이 있다. 하지만 꿈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많은 어려움과 난관을 거쳐야 비로소 이루어진다. 인과응보의 법칙이다.에디슨의 경우를 보자. 그가 발명왕이 되기까지는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와 어려움을 겪었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웃을 일이지만 그가 창고에서 알을 품고 있었던 모습을 상상해보라. 알을 품고 있으면 병아리가 부화할 것이란 사실보다 그것을 직접 실행에 옮겼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의 호기심이 그가 발명왕이 된 원동력이었고 말하지만 적어도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렇게 될 것이라는 확신과 희망을 수호신으로 삼았다는 점에서다. 에디슨이 스스로 말했듯이 끈기를 죽마고우로 삼으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셈이다.경험을 현명한 조언자로 삼는 것도 중요하다. 경험은 시간을 통해 얻어지는 산지식이다. 하지만 젊은 사람들은 경험이 부족하다. 사회의 초년생들은 물론 학생들은 말할 것도 없다. 경험이 적은 경우에는 간접경험이 중요하다. 경험해보지 않은 세계는 미지의 세계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말이 왜 나왔겠는가. 우리는 세상의 모든 것을 직접경험으로 얻을 수는 없다. 이것이 바로 공부의 중요성이다. 공부를 통해 앞으로 마주하게 될 모든 것들에 대해 미리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직접경험이든 간접경험이든 모든 경험은 삶의 이정표 역할을 한다. 우리는 길을 잃지 않기 위해 GPS를 활용한다. 인생에서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앞으로 나아가는 등대나 GPS와 같은 길잡이가 필요하다. 길잡이들은 우리가 행하는 모든 과정에서 발행할 수밖에 없는 많은 시행착오를 줄여준다. 때론 길을 잃을 수도 있지만 다시 가야할 길로 안내하는 것은 경험이라는 이정표다.신중함을 형님으로, 희망을 수호신으로 삼으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매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을 견지하면서 신중하게 판단하는 능력도 중요하다. 기성세대들이 말하는 엄숙주의나 규범주의를 강조하는 말이 아니다. 나 자신에 대한 신중함이다. 나의 현재가 미래에 어떤 모습으로 펼쳐질지를 생각해보는 것도 신중함이다. 진로문제를 고민하는 것도 신중을 기하는 모습이다. 생각 없이 친구 따라 강남 가는 것은 분명 신중하지 못한 처사다. 친구는 성공적인 길이 될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맞지 않는 길일 수도 있다.희망을 수호신으로 삼으라고 했다. 요즈음 학생들에게 희망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희망이 없다고 답하는 경우를 흔히 본다. 어느 곳에 있든 현실과 상황이 어떻든 희망을 잃어서는 안 된다. 비록 피로사회 속에 살고 있지만 희망은 우리를 살아 숨 쉬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야 한다. 과거 수없이 많은 위인들이 칠흑같이 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끝까지 붙들고 있었던 것은 바로 희망의 끈이었다.잘 알 듯, 지하 600m 탄광에 69일 동안이나 매몰되어 있던 33명의 칠레 광부들이 마지막까지 놓지 않고 있었던 것도 언젠가는 구조될 것이라는 희망이었다. 17일간이나 물에 잠긴 동굴 깊은 곳에 갇혀있던 태국 유소년 축구선수들의 사례는 어떤가. 이들의 생존을 누구도 장담하기 어려웠지만 끝내 기적적으로 생환하지 않았던가. 발명왕 에디슨이 말하는 삶의 조건은 그리 어렵고 거창한 것이 아니다. 끈기, 경험, 신중, 희망이라는 너무도 평범한 고전적인 덕목이다. 모든 가치가 전광석화처럼 빠르게 변화는 요즈음 세상, ‘희망부재’ 사회로 말할 수 있는 환경, 그래서 더욱 새겨볼 만한 가치다.

회의문화개선

최익성경영학 박사·플랜비디자인 대표회의문화개선필자는 회의문화혁신과 관련한 일을 하고 있다. 기업 조직에 들어가서 회의를 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참으로 답답하기 그지없는 경우가 많다. 훌륭한 기업들의 탁월한 능력을 가진 인재들을 무기력하고, 무능력하고, 일에 대한 동기가 없는 살람으로 만드는 곳이 회의장이다.조직에서 회의는 모든 일이 시작되고, 진행되고, 종결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도구이다. 회의가 현명하지 못하여 그들의 일이 현명하지 못하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가치가 높지 않을 수 밖에 없다. 현명한 회의를 위해서는 문화가 중요하다.이스라엘은 극대화된 효율을 추구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학교에서나 집에서 또는 군대에서도 자기 생각을 분명하게 주장하는 것을 올바른 가치 기준이라고 배운다.우리나라의 신입사원이 상사의 눈치를 살필 때, 그들은 서슴없이 “당신이 나에게 지시를 내리는 이유를 대라”고 따져 물을 만큼 당당하다.우리에게는 이런 문화가 있을까? 필자는 신입사원 시절을 기획팀에서 보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장 주관 회의에 참석하는 일이 많았다. 회의는 조용했고, 진지했으며, 엄숙하기까지 했다.특히 회의가 시작되기 전의 그 긴장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회의를 시작하지도 않았는데도 가슴은 서늘하였고, 온 신경은 팽팽하게 조여오는 듯했다.대부분의 회의는 사장님이 입장해 시작되고, 발표하고, 혼내고, 지시하는 것으로 끝났다. 신입사원이었기 때문에 그랬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런 회의를 왜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회의를 참관해보면 참 엄숙하다. 왠지 여기서 말 한마디 잘못하면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이 가득했다. 한마디 말에도 치밀하게 준비하여 말하고, 정리하여 말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한 다음에 말해야 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힘든 것은 용기를 내야 이런 각본을 실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회의는 하나의 목적지로 나아가기 위해 논의하는 건설적 커뮤니케이션 과정이다. 그러나 회의는 우리가 달성하고자 하는 것들을 끊임없이 방해하고, 사람들의 가장 나쁜 인격적인 속성을 드러내는 아주 특별한 형태의 커뮤니케이션 과정인 경우도 많다.필자는 회의 중 훌륭한 생각들이 짓밟히고 이기심이 넘쳐흐르고 시간이 낭비되는 것을 자주 보았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라지만 회의실에서 다른 사람의 말을 끊는 사람들은 대부분 상사이다. 이들은 고집이 세고 때로는 독단적이며 심지어 독설가인 경우도 많다. 그들의 부하 직원은 고집이 센 그를 절대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며 결코 대립하려고 하지 않는다.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경험과 정보의 틀 안에서 사고할 수밖에 없다. 선택적으로 지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재해석한다. 시대와 환경이 변하고 있는 현실에서 과거의 성공과 실패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신의 방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기까지 한다. 이런 사람들이 주도하는 회의가 잦아지면 구성원들은 더욱 자신의 의견을 말하려고 하지 않는다. 의견을 내더라도 상사가 생각하는 틀에 맞춰서 제시하므로 결국 다양한 의견은 마음속 깊이 감춰진다.문화와 리더십을 먼저 바꿔야 한다. 거듭하여 말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분위기에 대한 책임은 리더에게 있다. 어떤 회의가 결론도 없고, 의견 교환도 없고, 참가자도 주관자(의장)도 모두 만족스럽지 않게 끝난다면 그것은 분위기 연출자로서 리더의 책임이 가장 크다.용기를 내지 않아도 자유롭게 자기 생각을 표현하고 서로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문화를 구축하기 위해 리더가 해야 할 일이 많다. 좋은 회의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분위기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부터 스스로 질문해보기 바란다.

행복 추구 생존권의 문제이다

성낙수시인행복 추구 생존권의 문제이다유치원에서 어린이들에게 우리나라 하늘을 그리라 하면 어떠한 색깔로 아이들이 그릴지 뻔하다. 잿빛을 넘어 검게 그려 놓을 것이다.이제 하늘은 파란다는 고정 관념이 완전히 무너진 것이다. 나아가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금수강산도 이제 무슨 말로 써야 할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엄청난 미세 먼지를 보고 "다 마셔 버리고 싶다."는 대통령의 말에 공감이 간다. 미세 먼지의 문제는 숨을 쉬지 않아야만 다 해결되는 것이 우리가 처해 있는 위급한 상황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 오직 바람을 기다리고 있으니 문제인 것이다.미세 먼지가 없는 청정 지역의 삶은 행복 추구 생존권의 문제인 것이다.들끓는 냄비는 얼마 안 가 조용해질 것인데 미세먼지는 냄비여서는 안 된다. 계속해 초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내려졌지만 미세먼지 오염이 낮아질 리 없다.공기정화기가 없어서 못 팔고 있다니 전자제품을 생산하고 있는 회사는 몰래 웃고 있을 것이다. 앞으로 불어올 센 바람을 기대할 뿐, 효과적인 대책이 없다는 것이 문제고 실질적 법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하는데 법을 만든다고 해결될 것 같지 않다. 미세 먼지보다 앞이 보이지 않는 정부의 빈손 대책이 더 큰 문제이다.대기오염의 실태는 흡연의 피해보다 더 심각하다고 한다. 형식이 아닌 실질적인 미세 먼지 저감 정책을 펼쳐 나가야 한다. 정책을 펼칠 마땅한 사람이 대통령 가까이에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먼 곳에도 없으니 심각한 것이다.과거만을 탓해서는 현재의 발전은 기대할 수가 없다. 3만 불 시대가 도래했다고 한다. 쌍수 들어 반길 일이다. 그런데 맑은 하늘 아래 2만 불 시대가 미세 먼지 속의 3만 불보다 미래를 보아 더 좋다고들 대부분 사람들이 원할 것이다.이렇게 미세 먼지 문제는 심각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인 것이다. 자연만 기대살 수 없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우선적으로 해나가야 한다.막판에는 각 지역에 태화강 백리 대숲 길 조성 같은 거대한 숲 살리기도 꼭 필요한 것이다. 전국적인 숲 살리기는 미세 먼지 저감의 기본일 것이다. 노후차 문제와 화력발전소 문제, 공장의 매연 등은 없애야 할 시급한 것이다. 역사 이래 미세 먼지 최악의 봄이다.특히 자라고 있는 아이들이 걱정인데 해결책은 바람뿐인 것이 문제다. 초미세 먼지의 최대 원흉은 중국인 것이다. 중국은 동부에서 석유를 정제하고 나온 찌꺼기 가루(petcoke )연소로 중국 동부 연안에서 시멘트 생산, 알루미늄 생산을 위해 이루어지고 그 연기는 고스란히 우리나라로 온다. 이것이 초미세 먼지의 반 이상 영향을 주고 있다.얻는 것만큼 잃는 것이 당연한 것인가 보다. 수많은 공장과 화력발전소를 다 없애야만 남은 반은 해결이 될 것이니 미세 먼지 해결은 불가능한 것이다. 여기에 국외에서 들어오는 것이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세 먼지 저감 비상조치 같은 대책과 반성으로 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를 내리다 효과가 없으니까 이제는 재난 수준으로 법제화하겠다고 한다. 조기사망이 심각하기에 법제화가 화급하다고 하는데 법으로 해결되지 않아 걱정이다. 해결책으로 물 많이 마시라 해서 물로 배를 채우고 있지만, 효과는 미미한 것이다.국내외적으로 복합적인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 미세먼지 저감은 법제화로 해결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도 그냥 가만히 있을 수 없을 것이니 제대로 된 과학적인 대책이 필요하다.이런 상황에 정책 입안자들은 캐나다에서 배워 와야 할 것이다. 그래 왔듯이 문제가 있을 때 야단법석이다가 시간 지나가면 또 조용하게 될 것은 뻔하다. 냄비처럼.

스타트업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

재물과 복을 상징하는 기해년이 밝았지만, ‘먹고사는 문제’의 시름은 더욱 깊어졌다. 지난 10년간 세계경제를 받치던 양적완화(경기침체로 낮은 금리에도 시중에 돈이 돌지 않을 때, 중앙은행이 시장에 돈을 공급하는 정책)가 마침표를 찍자, 경기하락세가 더욱 뚜렷해 졌다. 저성장, 저소비가 뉴노멀(New Normalㆍ새로운 기준)이 된 것이다. 그동안 우리나라 일자리 효자산업으로 불렸던 철강, 자동차, 석유화학을 비롯해 반도체 마저 장기호황에 마침표를 찍었다는 것이 업계의 분위기다. 그나마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국민께 드리는 새해 인사말’에서 “가용한 모든 정책수단을 활용해 각 경제 주체들의 희망을 갖고 소비하고 투자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언급한 것이 다행스럽다. 수치상으로만 보면 지난해 국내 일자리는 31만개 늘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일자리 수는 총 2천316만개로 1년전 보다 1.4%가 증가했다. 하지만 우리가 ‘질 좋은 일자리’라고 하는 ‘대기업’과 ‘제조업’ 일자리는 오히려 감소했다. 대기업의 일자리는 구조조정 등의 이유로 2천개가 줄었으며,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51만개(18.8%)로 가장 많았고, 도매 및 소매업 44만개(16.2%), 건설업 32만개(11.8%)의 순이었다. 세계경제포럼(WEF)은 오는 2020년까지 지구촌의 일자리 710만개가 사라진다고 밝혔다. 지난 2016년도 초등학교 입학한 학생의 절반 이상이 현재 존재하지 않은 직업을 가진다는 말이다. 그야말로 일자리 빅뱅의 서막이 오른 것이다. 일자리 빅뱅은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을 타고 이제 거스르기 힘든 파고가 됐다. 해외여행을 다녀온 여행객이라면 세계인의 삶 속에 뿌리내린 우버(차량공유), 에어비앤비(숙박공유), 알리페이(전자결제) 등에 놀라곤 한다. 특히 알리페이는 월 5억 명이 사용하면서 발생되는 소비패턴 분석은 바로 빅데이터화 되어 다양한 산업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는 지금 ‘산업간의 충돌’이 더욱 가속화 되고 있다. 택시업계와 카풀(승차공유)업체 간의 대립, 기존 거대은행과 신생 인터넷 전문은행간의 경쟁이 뜨겁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혹하다. 제너럴모터스(GM)는 지난 2016년 미국 차량공유 스타트업 ‘리프트’ 주식 10%를 5억 달러에 매입한 반면, 지난해 군산공장 폐쇄를 운운하며 산업은행으로부터 7억5천만 달러를 약속 받은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아시아 최고 시가총액 기업은 삼성전자였다. 하지만 ‘2019 세계 기업 시가총액 TOP 10’에 아시아 기업은 텐센트(6위, 449조 원)와 알리바바(7위, 417조 원)가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세계경제의 혁신성장이라고 유니콘 기업(비상장 스타트업으로 가치가 10억 달러(1조2천 억원)이상인 기업)도 총 326개 중 미국이 151개, 중국이 83개, 인도 14개인 반면 한국은 5개에 불과하다. 지난해 고용노동부는 ‘4차산업혁명에 따른 인력수요전망’을 발표했다. 2030년 직업별로 총 172만명의 고용변화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전쟁 이후 우리나라는 자동차, 조선, 반도체 등을 통해 눈부신 성장을 이뤄냈다. 하지만 이제 장치산업시대에서 정보관계 시대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이제 새롭게 생겨나는 일자리의 대부분은 기존기업이 아닌 스타트업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 우리는 역사의 변곡점에서 무엇이 세상을 주도 했는지 잘안다. 청동기에서 철기시대로, 농업화시대에서 산업화시대로, 오프라인 중심에서 온라인 중심으로, PC시대에서 스마트폰 시대로 세상은 변화하고 있다.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세상은 스타트업을 통해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내고 있음을 응답하고 있다. 이제는 정부가 응답할 때다. 안창호 한국교통대 창업중점 교수

규제완화가 곧 일자리 창출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영미 영미야~!”가 광고에 실릴 정도로 국민을 열광하게 한 컬링선수들의 열정과 경기 모습의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태극전사 축구선수들의 월드컵 패배에 여러 가지 반론들이 많다. 승패의 결정은 선수들의 기초와 응용능력이 전력이고 이를 뒷받침하는 코치, 감독들의 전략이 승리를 결정한다. 마찬가지로 4차산업도 다양한 S/W기반 기술들인 플랫폼 기획이 절반이고 나머지가 컴퓨터 언어 응용기술이며 적용분야에 따른 서비스 환경이 이를 뒷받침하게 된다. 인공지능(AI)이론과 빅데이터 분석기술, 클라우드 환경조성, 블록체인, 핀테크 활용 서비스 등이 어울려져야 융합 활용 기술이 구축된다. 반면 정부와 지자체는 조기교육도 아닌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는 4차산업에 대한 기술에 얼마나 관심과 역량강화를 준비하고 있는지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월드컵 경기도 문화적 축제 행사로서 전 세계인들이 축구라는 구기 종목에 밤잠을 설치며 응원을 하지만 경기의 승부에만 관심을 두고 세계 문화 축제 행사엔 관심 없는 것이 슬픈 현실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멕시코전 관람과 응원, 라커룸을 방문해 선수들을 격려한 것은 국민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4차산업의 기술교육과 실전에도 정부 및 지자체 지도자의 관심과 미래를 준비하고자 하는 것 또한 신선한 충격을 주었으면 한다. 4차산업에 대한 기술, 서비스, 제품 등을 기획하거나 개발이 필요하지만 기초적인 교육과 융합 활용기술 등 역량강화가 필요한데 수도권 중심의 인적자원개발과 대도시 중심의 직업능력개발들이 이뤄지고 있기에 고령화로 더욱 경제가 어려워지고 있는 중소 지방도시는 4차산업에 대한 꿈도 꾸기 어려운 중소기업 환경이 매우 안타깝다. 얼마 전 국내외 IT 스타트업 기업들이 투자까지 받고 사업을 하다가 폐업을 하거나 과징금을 물게 됐다는 기사를 읽고 덜컥 겁이 났다. 중소기업을 육성하고 청년실업을 줄이자는 정책으로 스타트업들과 중소기업들이 글로벌 진출 사업 아이템 로드맵을 작성하면서 과연 DMZ 철조망 같은 정부의 규제나 규정 등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고 풀어야 할지도 큰 고민거리가 될 것이다. 규제나 규정 등은 국가의 이익을 도모하고 대외적인 경쟁으로부터 자국의 보호를 위한 내용으로는 알고 있지만 국내 중소기업의 발목을 잡는 부분은 각 부처에서 중소기업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신속하게 정리해 주고 풀어야 발전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제 새로운 의회에 의원들이 구성되었고 지자체 단체장들도 혁신적인 민의 당선자들에게 기대한다. 과연 청장년들의 일자리를 만들고 창출하는 것이 어디를 노크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시길 바란다. 그동안 취업의 일자리에 대한 공부도 많이 했고 예산도 많이 활용했으며 앞으로도 많이 할 것으로 알고 있다. 기업에 대한 규제와 규정을 책상에서 컴퓨터와 공부하는 것보다 직접 발로 뛰며 청취하고 연결된 고리를 풀어주고 해결해준다면 일자리가 창출되고 사람이 부족해질 것이다. 각 부처나 지자체별로 애로사항과 규제내용을 제출해 달라고 양식들을 보내주곤 한다. 열심히 작성해서 제출하면 돌아오는 결과는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되고 하는 답변들뿐이다. 중소기업 통합서비스는 안 되는 것일까? 여기에 통합된 예산과 사람들이 필요할 것이다. 지자체의 각 과에서 한 명씩 기업에 대한 경험을 갖고 있는 분들이 다양한 애로와 문제점 등을 청취하고 발굴해서 대 정부 부처에 대한 의견도 제시하고 해결하는 모습들 이것이 앞으로 지자체 의원들과 단체장들이 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한다. 중소기업들의 목소리를 전혀 청취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새롭게 출발한 개혁적인 선출직인 만큼 행사에만 전념하기보다 지역 경제를 책임지고 있는 중소기업에 좀 더 많은 관심과 육성책을 기획해 주시길 바란다.유지대씨디에스 대표

사회복지시설 공공성 확보 ‘어떻게’

최근 사회복지계를 달군 사안은 ‘광주광역시 사회복지시설 감사조례’이다. 광주광역시의회는 2018년 3월12일에 이 조례를 통과시켰다. 이에 광주광역시사회복지협의회를 비롯하여 복지계 협회들로 구성된 ‘광주시사회복지시설 감사조례 폐지 비상대책위’는 이에 반대하며 시장에게 재의를 요구하고, 윤장현 시장은 3월29일에 시의회에 재의 요구서를 보냈다. 조례에 대한 논란은 사회복지시설의 공공성을 어떻게 키울 것인지에 대한 성찰의 계기이다. 감사 조례는 ‘사회복지시설의 공공성과 운영의 투명성을 제고하고, 사회복지를 필요로 하는 사람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하여 사회복지시설에 대한 감사를 제도화하고자 함’을 목적으로 한다. 감사 조례의 제정을 반대하는 대책위도 사회복지시설의 공공성 강화와 투명성 제고는 꼭 필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대책위는 이 조례가 ‘밀실ㆍ악법’이라고 규정한다. 사회복지시설에 대한 강제임에도 공청회는 물론이고 당사자인 사회복지시설 대표들과 최소한의 논의도 없이 소수 사람에 의해 제정되었다고 비판한다. 사회복지시설은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을 비롯한 각종 법령에 따라 십수 가지에 달하는 감사, 현지조사, 지도ㆍ감독, 모니터링 등을 받고, ‘광주광역시 자체 감사규칙’에 따라 감사를 받는데 새 조례가 필요한지를 묻는다. 새 조례를 만들면 중복감사로 행정낭비, 예산낭비만 생길 것이라고 우려한다. 사회복지분야에 대한 일반 감사를 하다 심각한 문제가 발견되면 감사위원회에 의한 특별감사를 하는데, 이 조례는 매년 감사위원회에서 사회복지분야에 대한 감사계획을 세우도록 하여 더 많은 불법행위가 일어난 분야에 비교해 형평에 맞지 않고 차별 행위라는 주장이다. 또한, 공무원뿐만 아니라 시민감사관, 민간전문가, 인권옴부즈맨, 소수의 특정단체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비영리 법인단체 등이 사회복지시설을 감사하는 것은 감사의 독립성이 훼손되어 객관성과 공정성이 상실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감사 조례의 제정 여부를 떠나 사회복지시설에 대한 지도ㆍ감독 등은 더 전문화되어야 한다. 올해 국가 예산의 34%, 광주광역시 예산의 37%가 복지 영역에 쓰인다. 광주광역시는 2,000여 개 사회복지시설에 연간 9천억 원 가량을 쓴다. 시민 세금이 공적으로 투명하게 쓰이는지에 대한 감사는 더욱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사회복지시설의 공공성 제고를 위해 더욱 절실한 것은 복지공무원의 적정한 배치와 전문성 증진이다. 광주광역시 복지건강국, 여성가족청소년정책관 등에 근무하는 사회복지직은 소수에 불과하다. 예산의 37%를 쓰는데 사회복지직은 전체 공무원의 2%에도 미치지 못한다. 복지 부서는 한직으로 인식되어 근속 기간은 6개월 혹은 1년에 그쳐 담당공무원이 전문성을 키우기 어렵다. 복지전문가를 더 많이 배치하고 근속기간을 늘려 사회복지시설에 대한 지원과 함께 지도ㆍ감독을 체계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모든 사회복지시설은 회계정보를 국가정보시스템에 탑재한다. 따라서 국가정보시스템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면 회계부정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일정 규모 이상 사업비를 지출한 사회복지시설에 대해 회계사의 감사를 시 예산으로 처리하면 투명성을 크게 높일 수 있다. 감사에 시민감사관, 민간전문가 등의 참여는 좀 더 논의하고 인권옴부즈맨 등의 참여는 당분간 관련 조례를 통해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현재도 ‘광주광역시 인권보장 및 증진에 관한 조례’에 의해 시의 보조금을 지원받는 복지시설은 인권침해나 차별행위가 있다고 믿을 만한 상당한 근거가 있을 때 옴부즈맨이 직권으로 상담, 조사, 개선 권고를 할 수 있다. 이 조례를 잘 활용하면 인권에 기반을 둔 사회복지를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복지시설 감사조례에 대한 찬반을 넘어 사회복지의 공공성과 전문성 강화를 위해 시급히 해야 할 일에 대한 성찰과 논의는 계속되어야 한다. 전체적으로 사회복지사법의 이행을 통해 사회복지시설에 대한 지원을 늘리면서 공공성과 투명성을 높이는 방안을 균형 있게 모색해야 한다.

학교폭력, 기계적 대처 안된다

세상일이란 게 그렇다. 불미스러운 일, 일어나지 말아야 할 사고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노력해도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학교폭력도 그렇다. 노력한다고 학교폭력이 발생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학교폭력의 발생이 당연한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다.중요한 것은 학교폭력이 발생했을 때의 대처방식이다. 교사들이 어떻게 대처하고 지도했느냐에 따라 사건의 후유증이 최소화될 수도, 극대화될 수도 있다. 예컨대 이런 경우다. 학교에서 우발적으로 경미한 폭력이 발생했다. 담임교사는 아무런 중재노력도 없이 기계적으로 학교폭력대책위원회에 넘겨버리고 만다. 사건에 휘말려 좋을 것이 없다는 심리적 기제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제대로 된 교육적 대처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실 학교폭력은 우발적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교사가 적극적으로 역할을 한다면 의외로 쉽게 해결되기도 한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모두 동문수학하는 관계라는 점에서 조금씩 양보할 수 있는 여지가 존재한다. 이런 여지를 화해와 해결의 기회로 삼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교사의 역량이다. 기계적으로 대처하면 교사는 빠져나가서 좋지만 관련 부서로 넘어가면서 상황은 복잡해진다. 교사들은 학생들을 선도해야 할 책무가 있다. 처벌보다 선도가 교육의 본질이고 교사의 본분이다. 경미한 욕설이나 단순 충돌마저, 학생이나 학부모간 대화와 중재노력 없이 모두 학교폭력대책위원회에 회부하게 되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게 만든다. 더 정확히 말하면, 단순히 기계적인 처리에 따라 발생하는 후유증이 더 커진다. 실제로 담임의 중재에 의해 합의된 경미한 사안조차도 학교폭력대책위원회에 회부할 경우, 교육적 차원의 해결은 오간데 없고 끝없는 갈등 속으로 빠져드는 경우가 많다.학교폭력을 연구하는 서비니 만벨(Cervini Manvell)에 의하면, 학교는 ‘공동의 이익을 위해 작용하는 각 부분의 독특한 결합체’다. 이런 속에서 “자신이 싫어하는 행동을 다른 사람에게 행해서는 안 된다”는 가장 기본적인 황금률이 지켜지지 않으면 학교폭력이 발생한다고 말한다. 특히 학교에서 폭력이 발생했을 때 무관용 원칙으로 대응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고 지적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의 책 ‘학교폭력의 연속체(The Violence Continuum)’에 의하면, 교사들의 성의 없는 대처는 학생들이 처한 개별적인 환경과 맥락에 대한 고려를 어렵게 한다는 점, 문제 학생들의 지도를 포기하게 한다는 점, 가해자와 피해자간의 중재를 어렵게 한다는 점, 무리한 처벌이 될 수 있다는 점, 예컨대 위험한 물건을 휘두른 초등학생이나 애정표현을 한 유치원생에게 정학처분과 같은 어리석은 지도가 이루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우려한다. 학교폭력예방과 대책 및 처리는 처벌보다 선도가 더 바람직하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앞서 지적했듯이, 중요한 것은 이에 대처하는 교사들의 태도다. 부동이거나 기계적인 대처로는 학교폭력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서비니 만벨 역시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에게 교육력이 발휘되어야 하는 교사의 역량을 학교폭력 해결의 중요한 열쇠로 본다. 교사의 적극적인 중재노력 없이 기계적으로 해결하려는 요즘의 학교분위기와 교사들의 태도는 문제다. 경찰이나 변호사 등 외부 전문가들에게 학교폭력 문제를 완전히 넘겨야 한다는 일부의 주장도 마찬가지다. 학교폭력의 1차적인 해결자는 교사들이 주역이 되어야 한다.한병선교육평론가·문학박사

위기관리 패러다임의 변화 간절

위험사회로부터 안전사회로의 전환은 우리 사회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그런데 정부 혼자만의 힘으로 안전사회를 만드는 것이 가능한가? 사실상 정부뿐만 아니라 시민사회, 기업 등 안전과 직접적 관련이 있는 사회 구성요소들이 함께 협력하고 노력해도 안전사회를 만드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동안 안전사회를 만들려면 지방정부, 시민사회, 기업 등이 함께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음에도 우리 사회는 아직도 중앙정부 중심의 안전관리 방식을 고수해오고 있다. 심지어 대부분 지방정부조차도 다양한 시민단체와 기업들과 더불어 안전사회를 만들려는 형식적 노력조차 기울이지 못하고 있다.인공지능시대라고 일컬을 정도로 첨단 과학기술과 경제 수준이 발전해 왔음에도 우리는 더 안전한 사회에서 살고 있다고 자신하지 못한다. 오히려 현대사회는 과거와 비교해볼 때, 더 많은 다양한 위험이 일상생활에 만연된 현상을 겪고 있다. 특히, 대형 재난사고의 빈번한 발생으로 말미암아 국민은 국가위기관리 능력이 있기는 한 것인지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는 상황이다.과거의 무분별한 개발과 함께 각종 기간시설이 급속도로 건설되는 과정에서 웬만한 부실공사와 사소한(?) 사고는 개발이라는 핑계로 감추어졌고,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에 대한 정당한 요구를 좌익 활동이나 빨갱이라는 이름으로 몰아붙이던 시절도 있었다. 그렇게 한 결과가 바로 1990년대 이후 지금까지 빈번하게 발생해온 수많은 대형 사고들이다. 여기에 더해 원자력 사고, 컴퓨터 범죄, 사이버 테러리즘, 환경오염, 의약품 사고 논쟁 등 과거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위험들이 과학의 발달과 함께 널리 퍼지고 있다. 사회적 위기라는 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그 위험이 사회에 있는 경우다. 둘째는 위험이 사회적으로 손실 가능한 피해를 주는 경우다. 두 번째의 경우는 위기의 원천이 무엇인지 규명을 해야만 논의가 가능하다. 따라서 우리는 사회적 위기는 위험의 발생 원천이 사회에 있는 경우를 말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사회적 위기관리라 함은 사회 구조 자체에 위기관리시스템이 내장되어 안전을 확보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사회의 특정한 조직이나 기관이 위기관리를 전담하는 방식이 아니라 사회의 모든 구성요소들, 예를 들면, 가정, 기업, 정부, 공장, 시장 등 사회를 구성하는 각각의 구성요소 자체에 위기관리 시스템이 내장되어 있는 것이다.현대사회에서 재난의 예방, 대비, 대응, 복구를 위해서는 재난 및 안전과 관련된 모든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이 상호 협력을 통해 자원과 정보의 흐름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필요한 곳에 배치할 수 있도록 종합적ㆍ체계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거버넌스 방식의 확대가 필요하다. 거버넌스는 여러 수준의 정부(지방, 지역, 국가), 시민단체, 민간 부문 등의 다양한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구성된 네트워크 식 국정관리체계다. 이러한 네트워크 식 국정관리체계는 전통적인 관료제와는 다르게 개별적인 단일한 프로젝트 또는 개별적인 문제를 다루기 위한 다양한 집단들 사이의 연계 유형을 말한다. 따라서 거버넌스는 전통적 정부관료제의 수직적 정책 방식에서 벗어나 민간과의 수평적 협력을 이루어내는 협치다. 특히, 재난관리 현장에서는 정부를 비롯한 공공부문의 조직보다 현지의 시민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으나, 대부분 현장에서는 이들의 활동이 위축되고 있기에 더욱더 위기관리에서의 거버넌스가 절실히 요구된다. 위기관리 거버넌스는 지역사회 주민이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고자 주민, NGO, 지방정부, 기업, 언론 등 다양한 행위주체가 협력 네트워크를 구성하여 위기관리 정책을 결정, 집행, 평가해 나가는 체계라고 말할 수 있다. 이제는 과거와 다른 새로운 위기관리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루어야 한다. 안전사회를 만들기 위해 지방정부, 시민단체, 기업, 언론, 공공기관들이 평등한 관계 속에서 참여하는 새로운 틀, 즉 거버넌스를 통한 위기관리가 이루어져야 한다.이재은충북대학교국가위기관리연구소장

어떻게 몰입을 만들어낼 것인가

최근에 코칭을 시작한 대기업 10년차 K과장은 “매일 열심히 살고 있는데 별 성과도 없고 인정도 못 받는 것 같다.”라고 하면서 필자를 찾아왔다. 열심히 하는 것과 몰입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끊임없는 학습, 인내, 근면을 미덕으로 생각했다. 많은 조직들은 ‘오래 일하는 것이 잘하는 것’이라는 투입량 중심 사고에 빠져있다.이러한 사고는 새로운 일을 통해 가치를 창출하기 어려워지자 오래 그리고 많이 일함으로써 저조한 성과를 무마하려는 방어적인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면서 조직은 워킹 하드보다는 워킹 스마트를 강조하고 있다. 효율적이며, 합리적으로 일하고 더 많은 성과를 창출할 것으로 요구하고 있다. 성과를 넘어 가치를 만들어내야 한다.그래서 K과장에게 “최근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하여 수행한 일이 무엇인가요?”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돌아오는 답변은 주말에 하는 취미 생활에 대한 이야기였다. 회사에서 최근 3개월 사이 몰입했던 일이 무엇인가라고 물었더니 그런 적 없다고 한다. 실제 2012년 컨설팅 회사인 타워스왓슨의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직장인들 중 몰입 수준이 높은 사람은 전체의 17%에 불과했다. 즉 10명 중 8명은 일에 충분히 몰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평균은 35%이다. 상대적으로도 매우 낮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직원 몰입도가 기업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많은 연구는 직원 몰입도가 높을수록 이직률과 결근율이 낮고 생산성과 수익성은 높이는 것으로 나왔다.몰입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대상에 깊이 파고 들거나 빠짐’이다. 몰입은 어떻게 하면 만들어질 수 있을까? 사자에게 쫓기는 얼룩말은 살아남기 위해서 최고의 몰입을 하며 달린다. 그렇다 몰입은 위기 상황에서 나온다. 그런데 이는 수동적 몰입이라고 할 수 있다. 수동적 몰입은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몰입이다. 조직에서는 버티기 식의 몰입의 형태가 나타나기도 한다. 이는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만 만연하게 만든다. 자발적 몰입이 일어나게 해야 한다. 자발적 몰입을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일의 의미와 가치’를 찾게 해줘야 한다. 사람이 어떤 일과 학습에 몰입하면 뇌에서는 도파민이 분비된다고 한다. 도파민은 신경전달물질의 하나로, 쾌락과 행복감,몰입 및 의욕과 관련된 감정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적절한 양의 도파민은 에너지와 의욕이 충만하게 해주고 이를 통해 몰입효과의 극대화가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연구결과이다.과거보다 업무의 분화가 심화되고 조직의 복잡성이 높아지면서 구성원들이 일의 맥락을 파악하는 것이 어려워지고 있다. 특히 경영환경의 변화가 빨라지면서 과거 관행에 의존한 업무 수행으로는 성공할 가능성이 낮아지고 심지어 일의 내용이 환경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해 구성원들이 특정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다시 말해 성취감 등 일이 주는 고차원적인 의미 이전에 일의 이유조차 납득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그러나 의미가 없다면 몰입도 없다. 의미를 발견함으로써 몰입을 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첫째, 업무의 범위를 조정하는 것으로 자신의 권한 내에서 새로운 과업에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열어준다. 둘째, 동료와 고객와의 관계를 재구축하는 것이다. 유투브에서 2014년 8월 현재 1400만 조회수에 근접한 ‘Pink Glove Dance’라는 동영상은 청소부뿐만 아니라 모든 근로자들이 공통의 비전을 품은 팀의 일원을 강조하고 있다. 이렇게 동료에 대한 인식을 재구축함에 따라 자신의 일에 대한 가치도 다시금 바라 볼 수 있는 것이다. 셋째, 자신의 일 자체를 긍정적으로 재정의하는 것이다. NASA의 경비원들은 자신의 하는 일이 단순히 국가 중요 시설을 보호하는 것을 넘어 ‘달나라로 가는 꿈을 실현하는 사람들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의미발견을 하는 하루가 되길 바란다.최익성플랜비디자인대표경영학 박사

인구절벽과 지방소멸 대책 세워야

인구절벽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매년 새로 태어나는 아동이 줄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1955년에 태어난 아동은 84만 명이었지만, 2000년에는 60만 명으로 줄었고, 2015년에는 42만 명으로 60년 만에 반 토막이 났다. 30년을 한 세대로 계산할 때 두 세대 만에 출생아가 반으로 줄었다. 이러한 추세라면 2075년에 출생아는 21만 명으로 줄어들 수도 있다. 인구학자들은 지구 상에서 가장 먼저 소멸할 우려가 있는 국가로 대한민국을 꼽는다. 이러한 예측은 통계에 근거한다. 20∼39세 여성인구를 65세 이상 고령인구로 나누어서 1.0 미만으로 떨어지면 인구학적인 쇠퇴 위험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보는데 한국은 2016년에 1.0 미만으로 떨어졌다. 지수가 0.5 미만으로 소멸위험에 있는 시ㆍ군은 전국적으로 2014년에 79개에서, 2016년에 84개로 늘어났다. 228개 시ㆍ군 중에서 36.9%가 소멸위험지역이다. 전국 3천483개 읍ㆍ면ㆍ동 중 2천242개(64.4%)가 1.0을 밑돌았고 소멸위험 직전까지 떨어진 0.5 미만인 곳은 1천383개(39.7%)로 나타났다. 대한민국의 4할은 향후 30년 안에 소멸할 위기에 처했다는 뜻이다.전국에서 인구소멸이 가장 우려되는 지역은 경북 의성군과 전남 고흥군이고, 다음은 경북 군위군, 청송군, 영양군, 영덕군, 경남 남해군, 합천군, 산청군, 전남 신안군 등이다. 가장 심각한 의성군 신평면은 인구 811명 중 65세 이상 노인이 447명이고 젊은 여성은 21명으로 위험지수는 0.047이다. 서울과 수도권을 제외한 우리나라 대부분은 인구절벽의 위기에 놓였고, 84개 시ㆍ군과 1천383개 읍ㆍ면ㆍ동은 30년 뒤에 소멸할 위기에 빠졌다. 미국이나 유럽도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구가 감소하는데, 왜 ‘지방소멸’은 일본과 한국에서 더 심각한가? 한국보다 먼저 저출산과 초고령화를 경험한 일본은 도쿄 한곳으로 인구가 집중하는 ‘극점사회’이기 때문이다. 극점사회에서는 젊은 사람을 저임금으로 쉽게 쓰고 버릴 수 있기에 청년들은 결혼하기 어렵고 결혼하더라도 출산을 포기하는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지방은 공동화되고 도쿄는 ‘불임 사회’로 바뀐다. 2012년 일본 평균 출산율은 1.41이지만 도쿄는 1.09이었다. 한국도 수도권에 전체 인구의 절반이 살기에 ‘지방소멸’은 빠르게 진행될 것이다. 인구집중을 줄이고자 행정수도를 세종시로 옮기고 지역에 혁신도시를 만들었지만 이것만으로 부족하다. 인구절벽을 막으려면 아이를 낳고 기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젊은이가 괜찮은 일자리를 찾고 연애도 하며 결혼하여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자녀를 낳는 것은 부모가 할 일이지만, 키우는 것은 사회가 함께해야 한다. 지방소멸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젊은 여성이 살고 싶어하는 지역을 만드는 것이다.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농어촌에 있는 작은 학교를 살려서 학생이 맘 편하게 학교에 다닐 수 있는 교육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초등학교가 사라지면 젊은 층은 더 이상 살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 주민은 사라진다. 귀농ㆍ귀촌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젊은이가 돌아오지 않는 지역은 지속 가능성이 떨어진다. 지방소멸을 막으려면 행정구역의 개편도 적극 시도해야 한다. 읍ㆍ면ㆍ동 중에서 면 인구는 급격히 줄고 읍 인구는 상대적으로 덜 감소하며 동 인구는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주로 농촌지역으로 구성된 군을 인접한 도시와 묶어서 행정구역을 개편하면 지방소멸을 완화할 수 있다. 전남 광산군이 광주로 편입되어 광산구가 된 후에 주민이 늘어났듯이, 무안군, 신안군, 영암군은 목포시로 합치고, 보성군, 고흥군은 순천시로 통합하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 행정구역을 개편하기 전이라도 각종 공공시설과 주민편익시설을 생활권역별로 개발하여 정주 여건을 키워야 한다. 인구절벽과 지방소멸의 대책을 세우기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한다. 내일이면 늦다.이용교광주대 교수·복지평론가

21세기 시대정신

21세기의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하자. 인문정신이다. 인문정신만이 가공할 미래사회를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잘 알듯, 인문정신은 인간의 삶을 인간답게 만드는 정신이다.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 문명은 어떻게 진화될 것인지, 그것이 인간의 삶에 어떻게 이용이 되어야 하는지를 포괄하는 것이다.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하는 알파고(Alfa Go)가 나왔고 인간의 감정을 그대로 재현할 수 있는 로봇이 등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어떻게 통제하고 인간의 이기로 활용할 것이냐의 문제는 모두 인문정신의 문제로 귀결된다.인문하면 문ㆍ사ㆍ철, 즉 문학, 사학, 철학 정도로 국한 시키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인문은 이런 범위를 훨씬 뛰어넘는다. 삶 전체를 광범위하게 포괄하는 것이 인문의 범위다. 인문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전반을 넘나든다. 경우에 따라서는 인간의 의지에 의해 규정되거나 만들어지는 모든 유형, 무형의 산물을 칭하기도 한다. 인문은 영성까지도 포함한다. 영성은 가장 엄격한 정통 기독교 이론에서부터 가장 괴기한 뉴에이지 이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교육에서도 인문적 범위는 인성교육으로까지 확대된다. 인문을 단순히 문ㆍ사ㆍ철에 국한하여 생각하는 것은 오히려 인문정신을 훼손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런 사고는 실용적인 측면에서 취업이 잘되느냐, 혹은 당장 현실적으로 생산적인 소득과 관련지은 편의적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알렉 로스의 『미래산업보고서』에 의하면, 21세기는 급변의 시대다. 앞서 지적했듯이, 가장 큰 변화 중의 하나는 로봇이 온다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노령화에 따른 노동력 부족을 메우기 위해 로봇이 일상화되기 시작했다. 1970년대 자동차와 1980년대의 전자제품을 만들어냈듯 사람과 로봇이 한가족이 되는 가족로봇을 만들어내고 있는 상황이다.이런 추세로 간다면 1960년대~1970년대에 만화에나 등장했던 로봇은 2020년대에는 현실화될 것이다. 도요타는 만화 <젯슨 가족>에 등장하는 로봇 유모인 ‘로지’를 본떠 간호로봇 로비나(Robina)를 제작하고 있다. 로비나는 가족의 일원으로 세계적으로 점점 늘어나는 노인인구를 돌보게 될 것이다. 로비나의 남자 형제인 ‘휴머노이드’는 다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가사 로봇으로 주방 일을 하고 악기를 연주하기까지 한다.혼다가 제작한 ‘아시모’ 역시 신장 120센티미터 정도로 우주 비행사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인간의 감정, 동작, 대화를 모두 소화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을 정도로 정교한 로봇이다. 음성명령에 따라 행동하고 악수하며 질문을 받고 사람을 보면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할 정도다. 이렇듯 디지털 화폐, 경제의 코드화, 이에 따른 코드의 무기화 등 미래의 삶은 예측을 불허할 정도로 빠르게 변화할 것이다.우리는 이런 문제를 단순히 편리함이라는 분위기 속에서 지내는 것이 옳은 일일까. 아무리 기계문명이 발달하고 세상이 편리하게 변한다고 해도 그것을 이용하는 것은 인간이다. 이런 급격한 변화 속에서 인간본위의 인문정신이 바탕에 깔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상누각과 다름없다.기계문명이 발달한 만큼 사람 냄새가 풍기지 않는 쪽으로만 간다면 미래학자들이 지적하듯 그것은 재앙을 불러올 뿐이다.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시간은 과거의 그 어느 시간보다 빠르게 우리의 삶을 지배할 것이다. 알렉 로스의 말처럼 미래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고도화될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이런 상황 속에서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나게 될지 정확하게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인간에 의해 통제되지 않는 고도화는 재앙이 될 수 있음을 함의한다.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인문정신이 필요한 이유다.한병선교육평론가·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