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의 못다 이룬 은행원 꿈.. 더 노력해 이뤘다

어릴적부터 함께 웃고 다투며 경쟁하던 두 살 터울의 언니가 있습니다.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언니와 저는 같은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바로 은행원이라는 직업을 갖는 것이었습니다.집 근처 은행을 엄마와 다니면서 막연히 은행에서 일하는 언니들의 모습이 멋져 보였습니다. 언니가 먼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경북여상에 진학했고, 학교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학교 분위기와 무학년제 동아리, 대회반, 프로모미 활동 등에 대해 알게 됐습니다.이로 인해 저 역시도 특성화고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목표 없이 대학에 진학하는 것보다는 취업을 준비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지원해주는 경북여상 입학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해 입학을 하게 됐습니다.언니를 본보기로 삼아 학교에서 많은 경험을 쌓고자 노력했습니다.언니는 은행원이라는 최종 목표를 향해 열심히 노력했으나 대구은행 마지막 면접에서 불합격해 좌절하기도 했습니다. 언니 모습을 보면서 은행원의 꿈을 꼭 이뤄야겠다고 다짐했고 더 노력했습니다. 이러한 노력으로 ‘우리은행 합격’이라는 성과를 얻었습니다.고교 3년 동안 실장을 맡으면서 30명의 반 친구들을 이끌어 리더십을 길렀고, 프로모미 동아리 차장, 중국 고구려 문화탐방, 상업경진대회 금융실무부분 수상 등 학교생활에 적극 참여했습니다.또 그날 배운 수업 내용을 항상 복습하면서 진짜 ‘나’의 것으로 습득하고, 오래 기억하기 위해 노력하며 내신을 유지하도록 기본 수칙을 세웠습니다.취업을 준비하면서 자기소개서는 항상 미리 쓰고 학교에서는 여러 명의 취업담당 선생님께 부족한 부분에 도움을 청했습니다. 자기소개서를 쓰는 과정은 생각보다 더 힘이 들었지만, 선생님들 도움으로 수없이 고쳐가면서 점차 완성되어가는 자기소개서를 보며 뿌듯했습니다.후배들도 혼자 끝내려고 하기보다 자신만의 이야기로 자신이 쓰되, 선생님의 도움을 받고 그 후 면접에 조금 더 중점을 두고 준비했으면 좋겠습니다.또 취업반에서 매일 연습하는 면접노트를 들고 다니면서 틈틈이 외웠고 밝은 미소는 큰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웃는 모습이 자연스러워 질 수 있도록 거울을 보며 항상 연습 했습니다.그 결과 면접장에서 다른 지원자보다 편하게 웃을 수 있었고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고 실수를 해도 주눅 들지 않고, 계속 밝은 모습을 보여 최종면접에 붙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요즘 취업이 어려워 걱정도 많겠지만 후배들이 취업을 겁내기보다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어떤 일이든 적극 참여했으면 좋겠습니다.직장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책임감을 가고 적극 일하는 모습이라는 것을 몸소 느끼고 있습니다. 어디서든 자연스럽게 웃을 수 있도록 미소 짓는 연습을 했으면 좋겠습니다.1학년 때까지만 해도 선배들의 취업후기를 보면서 ‘나도 저런 날이 올까’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기회가 왔듯 오늘부터라도 자신의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준비해 취업에 한 발짝 더 다가가는 후배들이 됐으면 좋겠습니다.우리은행 입사경북여상 졸업윤은하 윤정혜 기자 yun@idaegu.com

간절히 원한다면 끝까지 도전하라..KT&G

중2 때까지 특별한 목표 없이 시간을 보내며 살았다. 목표가 없으니 공부에 흥미도 없었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학생답지 못한 행동도 했고, 좋지 못한 환경을 접하게 돼 비행 청소년이라는 소리까지 듣게 됐다.지금 생각해보면 인생에서 지우고 싶은 후회스러운 일이지만 그때는 ‘큰 잘못을 하고 있다’는 것도 몰랐다.그렇게 시간을 낭비하던 중 아버지께서 편찮으시게 됐고, 집은 여러 어려움에 처하게 됐다.아버지가 하시던 사업을 이어받으면 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에 노력하지 않았다. 아버지 사업을 이어받더라도 유지하고 발전시키려면 남다른 노력을 해야 한다는 사실도 그때는 몰랐다.어려움에 처하자 늘 편한 길만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됐고, 아프신 아버지를 대신해 집에 도움이 되고자 특성화고 졸업 후 취업을 결심했다.중학교 때 성적으로 당시 갈 수 있는 고등학교는 없었다. 그때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다.중3 담임 선생님은 지금부터도 늦지 않았으니 최선을 다해 내신 성적 향상을 위해 노력한다면 경상공고에 진학할 수 있다고 용기를 주셨고, 처음으로 시험공부도 했다.책상에 앉아 책을 보고 있는 자체가 어렵고 성적을 향상 시킬 수 있을까하는 불안감이 컸지만 그동안 놀았으니 열심히 해야겠다는 각오로 밥 먹는 시간 외에는 책 앞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려고 노력했다.종이와 글자로만 보이던 게 차차 내용도 보이기 시작했고, 공부의 재미라는 것도 알아가게 되면서 성적도 올랐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만족할 만한 성적이 아닐지는 몰라도 내게는 놀라운 변화였고 발전이었다.그렇게 경상공고에 입학했고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KT&G 회사를 알게 됐다. 그 후 기능생이 돼 안전하게 지역 중견기업에 들어갈 것인지, 아니면 어려운 길이지만 선배들처럼 kt&g에 도전할지 2개월 동안 고민 했다.도전하기로 마음먹고 인생 첫 목표를 kt&g 입사로 삼았다. 목표 달성을 위해 학교생활, 학업성적, 자격증 취득 등 계획을 세워 준비하기 시작했다.1학년 때부터 학급 반장을 하며 리더십을 키웠고, 3학년 때는 전교회장을 맡았다. 학업성적을 상위권으로 유지하면서 자격증도 취득했다.자격증 취득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노력했고 선배와 선생님 도움으로 2학년 때 승강기기능사, 3학년 때전기기능사를 취득했다.하지만 kt&g 입사에는 턱없이 부족한 스펙이었다. 포기하지 않고 목표를 향한 의지를 굽히지 않았고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다. 부족한 스펙이었지만 목표로 했던 kt&g입사를 위해 부족한 점을 면접으로 대신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준비했고 합격했다.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진심으로 원하는 일이라면 가능성이 작더라도 뒷걸음치지 말고 도전해라. 노력이 헛되지 않을 것이며 좋은 성과를 이뤄 낼 수 있을 것이다'고.결과를 얻기까지 힘들 때 옆에 있어 준 친구, 가족들이 큰 힘이 됐고 목표를 세울 수 있도록 도와주신 방과후부 이시중·남창희 선생님과 항상 격려와 지도를 해주신 여러 선생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뤄내지 못했을 것이라 여겨진다.중학교 때와 다른 인생을 살 수 있게 도와주신 경상공고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드린다.kt&g 합격경상공고 졸업생이효준윤정혜 기자 yun@idaegu.com

특성화고 학생의 해군 부사관 도전기

어릴 적 ‘넌 커서 무엇이 되고 싶니’ 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들으며 자라왔습니다. 여러 가지 직업들이 떠올랐지만, 진로에 대해 뚜렷한 확신이 없었던 시기여서 부모님이 원하시는 직업을 우선 대답하곤 했습니다.그동안은 별다른 고민 없이 초·중학교를 진학했고 적당히 공부하며 다녔지만, 고등학교 진학 시기가 다가오면서 첫 선택의 시기가 왔습니다.이 선택에 따라 제가 살아가는 방향이 완전 달라질거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깊은 고민을 했고 친구들과도 얘기를 나누었고 선생님과도 상의 했습니다.부모님은 다수가 진학하는 인문계에 간 후 대학을 가라고 하셨지만, 무조건 부모님 말씀을 듣지는 않았습니다. 진로에 관심이 생기고 걱정을 하다 보니 여러 가지 정보가 새롭게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학교를 알아 보던 중 특성화고 설명회에서 다양한 진로 가능성을 듣게 되면서 특성화고에 매력을 느꼈습니다.특성화고에서 적성을 찾아 취업을 빠르게 해서 자리를 잡거나 또는 취업 후 3년 경력이 있으면 대학교 입학도 쉽고 등록금도 지원받아 다닐 수 있는 제도가 있다고 해 특성화고 전형으로 대학을 가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그래서 무언가 만지고 조립하는데 흥미를 느끼는 적성을 고려해 상업계나 가사 계열 고등학교보다는 공업계 고등학교가 적성이 맞다고 생각하고 조일고등학교 전자기계과로 진학했습니다.입학 후 학교생활을 중학교때까지 선생님들이나 부모님께서 시키는 것만 했다면 고등학교생활을 시작하며 스스로 여러 동아리 활동과 자격증 취득 등을 위해 노력했습니다.그리고 취업할 때 중요한 자격증을 따기 위해 실습수업에 참여했고, 밀링기능사 자격증을 딸 수 있었습니다. 이 자격증을 통해 중소기업에 입사했습니다.취업하고 열심히 배워 실습해 왔던 과정들이 실제 현장에서 활용되는 실무를 경험했습니다.회사에 적응하고 안정감을 가져가던 중 공군 부사관인 누나에게 해군부사관 입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현재 상황에 만족하던 저는 ‘왜 다시 도전해야 하는가’에 잠시 고민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누나와 부사관 업무와 생활에 대해 많이 이야기를 나누며 적성에 맞을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그리고 많은 경험은 제 삶에 중요한 밑거름이 될 거라는 생각과 누나의 도움이 있다면 충분히 도전할 만하다 생각해 부사관 임관을 위해 체력단련과 공부를 다시 하게 됐고 올해 해군 부사관 임관했습니다.현재 해군부사관으로 생활은 회사와 다른 분위기지만 적응하며 배워 나가고 있습니다. 힘들 때도 있지만 해군 부사관인 나의 모습을 상상하며 자부심을 느끼며 어려움을 헤쳐 나가고 있습니다.목표를 세우고 성취하는 과정에서 사회 초년생에서 사회 일원으로 조금씩 성장해나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현재 저는 미래를 위해 열심히 달려가고 있고, 또 목표를 세워 쉼 없이 성장하며 부모님과 가족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자랑스러운 사회인이 되겠다는 다짐을 합니다.학교에 공군부사관 학과도 생겨 저처럼 부사관의 길을 걷고 싶은 많은 후배들이 양성될 수 있어 많은 자부심이 생겼습니다. 학교 선생님의 도움과 스스로 노력한다면 누구나 부사관 임관이라는 목표에 달성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부사관의 길도 충분히 좋은 진로 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해군부사관 임관조일고등학교 졸업노태윤 윤정혜 기자 yun@idaegu.com

도전 끝 결실.. 생각 바꾸니 공부도 즐거워.. 경북생활과학고 학생 호주 디플로마 과정 합격

항상 해외에서 일하고 싶었고 도전을 좋아하는 나는 첫 취업을 호주에서 하는 것으로 결정했고 현재 호주서 일하고 있다. 이 꿈을 이루기 위해서 열심히 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1학년 1학기 때까지 기숙사와 학교를 아무 생각 없이 다녔다. 학교에서 해야 할 공부에 최선을 다했지만 꿈은 잊고 살았다.고등학교 1학년 2학기, 미래를 계획해야 했다. ‘해외 글로벌 인턴십 디플로마 교육과정’에 도전했다.한국어 면접 준비는 물론 영어 면접 준비도 해야 했다. 어려움이 있었지만 성적이 괜찮아 다소 쉽게 ‘해외 글로벌 인턴십 디플로마 교육과정’에 합격을 했다.합격의 기쁨도 잠시. 방과 후 해야 하는 영어 수업이나 많은 과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과제 하나하나를 끝내기에 급급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도전을 하며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회의감이 들었다.오랜 자아 성찰 후 ‘도전 끝에 얻는 것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생각을 바꾼 이후 힘들게 생각했던 과제들이 모두 즐겁게 느껴졌다. 영어 실력도 이때부터 많이 늘었다.교육과정 중 호주 원어민 선생님 수업이 있다. 공부해온 영어를 사용할 수 있다는 마음에 신나서 선생님과 온종일 붙어있으며 영어로 대화했다. 실무적인 영어, 말하기 듣기 실력이 향상된다는 사실에 자신감이 많이 붙었다.모든 과제와 수업을 받으며 한 해가 지난 뒤에는 편히 쉴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질 줄 알았다. 하지만 먼저 파견 갔던 선배들의 피드백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더 많은 공부를 해야 했다. 아침에 일어나 원어민 선생님과 전화했고 방과 후에도 수업을 했다. 영어 공부에 흥미가 생겨 새벽까지 공부하기도 했다. 이렇게 2년 동안 공부한 후 호주로 떠났다.호주에서 삶은 새롭게 시작됐다. 어디서든 한국어가 아닌 영어가 들렸으며 이 모든 게 즐거웠다. 호주에 와서도 1개월 동안 어학공부를 했다. 공부하면서 호주에 적응했고, 어느새 취업이 눈앞에 다가왔다.선생님께서 많은 업체를 소개해주셨지만, 모두 한인 업체였다.한인업체에 취업할 것이라면 굳이 호주까지 올 이유가 없었다. 이 생각으로 선생님의 소개를 거절했다. 기다리고 기다린 끝에 ‘SHOKUNIN’이라는 작지만 영어를 사용할 수 있는 업체를 소개받았다.업장은 생각보다 현실적이었다. 조리 기본적인 것부터 기술적인 부분까지 경력자들보다 부족했던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혼났다. 너무 힘든 나머지 눈물이 멈추는 날이 없었다. 이것은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는 경험이 되었다.힘들었지만 작은 업체에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작은 것 하나하나 배워나갔다. 어떤 방식으로 일을 해야 고용주나 고용자들에게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이 될 수 있는지를 몸소 느끼고 있다.‘해외 인턴십 글로벌 디플로마 교육과정’을 선택하고 얻은 것이 정말 많다. 힘든 일도 많았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다. 하지만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가지니 정말 다 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을 내가 선택 한 것이라 오히려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이젠 내 꿈을 이루기 위해 도전하여 많은 경험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호주 인턴십 디플로마 과정경북생활과학고등학교류민지윤정혜 기자 yun@idaegu.com

은행원 목표 두고 경북여상 입학.. 금융 자격증 취득 노력끝에 성공

소선여중 재학 당시 확실한 목표가 없어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 학생이었습니다. 제대로 된 목표 없이 남들처럼 인문계에 진학하게 된다면 공부와 더욱 멀어질 것 같았습니다.중학교 3학년 때, 특성화 고등학교와 인문계 고등학교를 두고 고민했습니다. 남들과 똑같이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해 성적에 맞춰 대학을 가고 또 취업을 걱정해야 하는 막연한 현실을 생각하며 특성화 고등학교 진학을 결심했습니다.특성화 고등학교 진학을 결심한 후 어떤 학교에 가는 것이 좋을까하고 고민하던 중 여러 학교의 입시설명회를 들었습니다. 딱히 저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학교는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경북여상 재학 중인 선배와 면담을 통해 관심을 가지게 됐고 특히 학생 중심 활동이 이뤄진다는 점에 매력을 느꼈습니다.그 후 경북여상 입시설명회를 통해 입학을 결정을 짓고 ‘은행원’이라는 꿈을 가지고 경북여상에 진학하게 됐습니다.경북여상에 진학해 1학년 때는 자격증 취득을 위해 방과후 친구들과 스터디를 만들어 사무처리, 회계, 금융 관련 자격증 취득 준비를 했으며 총 9개의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었습니다.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방황했던 중학교 시절과 달리 많은 선생님께서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으시고 선생님들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내신관리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또 친구들도 처음 접하고 배우는 과목인 만큼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한다는 점이 저에게는 큰 자신감이 됐습니다.예절캠프, 리더십캠프, 금융캠프 등 다양한 캠프에 참여해 은행원 체험과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2학년 때는 학급실장, 프로모미, 상업경진대회 취업설계포트폴리오, 프레젠테이션 대회, 회계 경진대회 등 각종 교내외 대회와 캠프에 참여해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습니다.누구보다 교내외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제가 맡은 역할에 책임감을 기를 수 있었습니다. 취업설계포트폴리오 종목 발표 연습을 준비하면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할 때 떨리는 목소리와 불안한 시선처리 때문에 발표를 듣는 사람마저 불안하게 만들었습니다.하지만 꾸준한 발표 연습과 친구들과 선생님들의 피드백을 들으며 저의 단점이 점차 개선되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그 결과 전국대회 출전 기회도 얻게 되고 값진 수상을 할 수 있었습니다.그리고 본격적으로 취업반에 들어가 NCS공부, 직장예절, 자기소개서 작성 등 선생님들의 관심 속에 자발적으로 공부하면서 성공적인 취업을 위해 착실히 준비한 결과 우리은행 입행이라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3학년 때는 취업박람회나 채용설명회를 다니며 금융권 취업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되었습니다. 3월과 6월 두 번의 우리은행 현장면접을 하면서 확실하게 우리은행 입행을 꿈꾸게 됐습니다. 우리은행 서류 전형부터 최종면접까지 처음 경험해보는 것이어서 중간에 힘들고 포기하고 싶었지만 ‘무엇이든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 도전해보자’고 생각하며 최선을 다해 노력한 것 같습니다.지금 생각해보면 경북여상 진학을 한 것이 인생의 전환점이 된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열정적인 선생님과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경북여상으로 진학해 자신의 꿈을 펼치고 실현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우리은행 입사경북여상 3학년김온유윤정혜 기자 yun@idaegu.com

방과후 자기계발... 삼성전자 입사 원동력

벌써 4년 전 입니다.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중학교 담임 선생님과 상담하면서 친구들과 달리 조금 빨리 사회를 접하기 위해 취업을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습니다.친하게 지냈던 선배들을 보면서 어린 나이였지만 진로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할 기회를 갖을 수 있어 큰 갈등없이 특성화고를 선택했습니다.포항여자전자고등학교 영상그래픽과 입학 후 처음 한 두 달은 낯선 전문교과 내용과 익숙하지 않은 수업방법에 적응하느라 조금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분야를 학습할 수 있다는 것이 즐거웠고, 또 졸업 후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해 3년 동안 열심히 생활했습니다.대학 진학 준비를 하는 인문계고와 달리 방과 후 자기계발 시간이 충분해 동아리 활동을 하며 교내외 행사에 참여하면서 봉사정신과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울 수 있었고, 학급 실장을 하면서 리더로서 역할을 배우고 학교 행사 계획과 준비 과정을 통해 친구들과 추억도 많이 쌓을 수 있었습니다.이렇게 학교에서의 활동에 적극 참여했기에 생활기록부에 다양한 활동을 기록할 수 있었으며 수업 시간 집중하고 꾸준히 전공 과제를 해내겠다는 저와의 약속도 실천해 성적도 상위권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사회생활을 시작할 때 무엇보다 기본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출결이나 복장 등 간단하지만 쉽게 놓칠 수 있는 부분들에 신경쓰며 학교에 다녔습니다. 작지만 꾸준한 생활 습관들이 제가 삼성에 합격할 수 있는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합니다.무엇보다 삼성 입사의 가장 큰 이유는 준비 과정에서 선생님들의 도움이라 생각합니다. 자기소개서를 작성할 때는 담임 선생님께서 고쳐야 할 부분, 강조해야 할 부분을 확인해 주셨으며, UK 테스트 등 전체적으로 준비할 사항들을 알려주셨습니다.면접 준비 과정에서는 취업 담당선생님께서 유의사항과 함께 하루 몇 시간씩 실제 모의 면접으로 도와주셨습니다. 선생님들과 함께 일주일 동안 준비를 하면서 조언해 주신 부족한 점을 고치기 위해 매일 밤, 집에서 영상을 찍으며 표정과 자세, 시선 등을 고쳐 나갔습니다.면접 준비 과정에서 삼성전자에 관한 것이라면 작은 기사까지도 찾아봤으며 사업분야, 핵심 가치 등 관련 자료들을 정리하며 연구했습니다.함께 하고 싶은 회사에 대해 알아가는 것 역시 중요한 면접 준비과정이었습니다. 회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 사원들이 어떤 마음가짐을 갖는지, 어떤 사회봉사를 했고 타 회사와 다른 특징 등 많은 것을 조사하면서 입사하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간절해 졌고 목표도 확고해졌습니다.합격됐다는 연락을 받은 후 너무 기뻐 눈물이 났습니다. 3년 동안 시간들, 많은 고민을 하며 제 자신을 키우고자 노력했던 시간들이 한 번에 보상 받는 느낌이었습니다. 부모님과 친구들도 축하 해줬습니다. 특히 부모님의 자랑이 된 것이 뿌듯했고 기뻤습니다.근무하면서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합격했던 날의 감동을 기억하며 힘든 순간을 극복해 낼 것입니다. 고등학교 3년 동안 방과 후 자기계발을 하며 성장시켜 나갔듯 삼성에서도 근무 후 시간을 활용해 회사에서 필요한 사람이자 제게 주어진 환경과 시간을 즐기는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후배들한테 해주고 싶은 말은 열심히 노력하면 어떠한 형태로든 보상이 따라올 거라는 말입니다. 학교 생활을 하면서 선택해야 하는 매 순간 졸업 후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최선을 다하길 바랍니다.가장 중요한 것은 긍정적인 마음인 것 같습니다. 당장 결과가 보이지 않더라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을 들인다면 여유를 갖게 되고 무슨 일이든 더 오래 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삼성전자 입사포항여자전자고 졸업김나림 윤정혜 기자 yun@idaegu.com

팔전구기로 성공..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 게 취업 성공 비결

7살부터 고등학교 진학 전까지 9년간 태권도 선수로 활동했다. 운동을 하면서 은행원이라는 직업에 관심을 갖고 꿈을 꾸게 된 것은 중학교 3학년 때 대구보건고등학교 입시 설명회에서 취업 설명을 들으면서다.전문 교과를 일찍 배우게 돼 사회인으로 사회생활을 하기에 부족함이 없고, 고졸 학생들을 위한 공무원 및, 공기업, 은행, 대기업, 중소기업 등에서 고졸(특별)전형이 있어 취업에 유리하다는 것과 취업 후 대학 진학을 하는데 혜택이 있다는 것을 알고 망설임 없이 지원 했다.그러나 막상 고등학교에 입학한 해는 ‘운동을 계속할까’ 하는 생각으로 많이 흔들리기도, 불안하기도 해서 처음 목적과 달리 취업을 위해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은 채 시간이 흘러가게 됐다.하지만 1학년 2학기 때부터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아 목표를 위해 계획을 체계적으로 세워 학과 공부 및 자격증 취득, NCS시험 준비, 면접 준비 등을 했고, 특히 취업준비반에서 스터디 그룹을 통해 공부한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은행에 먼저 입사한 선배님이 멘토로 도움을 줘서 은행 시험 준비에 필요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3학년이 됐고 인문계 진학 친구들은 수능 공부에 정신이 없었지만 나는 은행원 꿈이 있었기 때문에 취업 준비에 더욱 노력했다.막상 취업지원서를 넣고 현실을 마주하니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점과 부족한 점이 많아 여러 번 은행 취업문에 도전했지만 실패했다.실망감은 컸지만 최선을 다해 더욱 노력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마음 먹고 어릴 때부터 운동을 하면서 길러온 끈기로 다시 한 번 해보자는 생각으로 부족한 부분을 확인하고 더욱 노력했다.몇 번의 실패가 계속됐지만 그때마다 나를 믿고 응원해 주신 부모님과 선생님, 친구들의 따뜻한 마음이 고마워 또 다시 마음을 바로잡고 KEB하나은행에 도전을 하기로 했다.KEB하나은행을 준비하면서는 많은 부담과 간절함이 있었으며, 2차 면접을 거치고 마지막 전형을 앞두고 있을 때는 ‘이렇게 간절했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합격하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KEB하나은행의 신입 행원으로 지금은 회사생활을 하고 있는데 내가 받은 많은 도움과 고마움을 근무하면서 고객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손님의 기쁨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그리고 다시 시작이라는 생각으로 회사 발전을 위해 업무 관련 전문 지식을 습득해 고객들에게 최상의 서비스로 할 수 있도록 힘 쏟을 것이다.취업을 위해 여러가지 경험을 한 선배 입장에서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자신이 입사하고 싶은 회사를 한 곳만 정하기보다는 분야를 정확히 정하고 목표를 위해 계획을 세워 철저히 준비하라고 조언하고 싶다.선생님과 상담을 통해 많은 정보와 노하우를 얻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취업이 잘 안된다고 쉽게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목표를 향해 갔으면 좋겠다. 후배들이 취업 관련해 고민이 있거나 궁금한 점이 있을 때 찾아온다면 자세한 경험담을 들려주며 조언과 도움을 주고 싶다.모든 결과에는 과정이 존재하는데 결과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결과를 얻기 위해 ‘이렇게 힘이 드는 거구나’라고 생각하며 바로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후배들이 성실하게노력하고 그 대가로 좋은 결과가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KEB하나은행 입사대구보건고 2019년 2월 졸업전민지 윤정혜 기자 yun@idaegu.com

더 높은 목표의식은 내 성장의 발판…경북공고 재학생 실리콘밸리 탐방

비즈쿨 활동의 첫 시작은 창업동아리 ‘CM'이었다. 선생님과 선배들의 권유로 시작한 창업동아리는 나에게 여러 대외활동을 할 수 있는 발판이 됐다.3년 동안 해야 할 동아리활동이라면 주도적으로 이끌어야 겠다는 생각에 회장까지 하게 됐고, 이는 학업에도 열정을 갖게 했다.그 결과 고등학교 3년 동안 과 1등이라는 좋은 성적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특성화고등학교에 대해 좋지만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셨던 부모님께서 나를 더 믿어주고 응원해주는 계기가 됐다.3년 동안 참가했던 대외 활동 중 가장 큰 대회는 창업진흥원에서 주최한 ‘창업영재 새싹기업 대회’였다. 1차 서류 심사를 통과한 120명이 3번의 연수 캠프를 통해 평가 받는 방식으로 진행됐다.그 중 상위 10%만이 마지막 연수인 미국 실리콘밸리 기술 연수를 갈 수 있었다. 이전에는 지역 대회만 참가했었는데 전국 단위 대회는 처음이라 상당히 떨렸다. 대회서 만난 전국의 각기 다른 지역에서 온 학생들은 내가 준비해왔던 단계보다 훨씬 앞서 나가있는 경우가 많았다. 체계나 기술적인 면에서도 뛰어난 학생들에게 기죽은 채로 나머지 캠프를 보내게 된다면 이후에도 제자리걸음만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래서 팀원과 매 캠프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우리는 배워가고 경험을 얻어가려고 온 거니까 기죽지 말고 아쉬워하지 말자’며 다짐하곤 했다.두 번째 캠프는 여름방학이 끝나자마자 진행됐기 때문에 방학 동안 거의 매일 학교에 나와 선생님들과 아이디어 제품에 대한 3D프린트 모형을 만들며 준비했다. 이후 100만원을 지원 받아 모형을 바탕으로 전문 업체를 통해 시제품까지 제작 할 수 있었다.창업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이전까지는 아이디어에 대해 설계하고 마케팅 방안까지만 계획했는데 아이디어를 제품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기뻤고 새로웠다.반년 넘게 준비했던 아이디어였기에 심사위원들에게 지금까지의 과정과 결과물을 발표하는 마지막 평가까지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기죽지 말자’는 마음가짐으로 떳떳할 수 있을 만큼 준비한 결과 1등을 해 미국 실리콘 밸리로 연수를 가게됐다.구글, 애플, 테슬라와 같은 실리콘밸리의 주요 기업들을 탐방하고 기업의 성장 과정을 들을 수 있었다. 스탠포드 대학교 학생들과 샌프란시스코 주립대학교에 있는 한국 학생들을 만나 학생 창업을 위한 제도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었다.또 미국에서 창업 활동을 하고 있는 YIBI 학생을 만나 서로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기회도 가졌다.여러 활동 중 마지막 날 진행 된 이번 대회 최종 과제인 영어 발표가 가장 뜻깊은 시간이었다. 미국에서 창업, 비즈쿨 관련 최고의 전문 지식을 쌓고 계신 분들에게 아이디어를 평가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믿기지 않는다.이런 활동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외국은 나와는 먼 이야기로 생각했다.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많은 기회와 경험들이 열려 있었다. 대회를 통해 가장 크게 배워 간 것은 ‘더 높이 목표를 정해야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앞으로 남은 학창생활 반년 동안 동아리 후배들이 여러 대외 활동을 더 높은 목표의식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임하게 도와주고 싶다.미국 실리콘밸리 연수경북공고 신소재섬유화학과 3학년김유나윤정혜 기자 yun@idaegu.com

금융권의 명인이 되겠다.. 명인정보고 졸업생의 우리은행 입사기

하루에 버스가 3번 들어오는 수륜이라는 시골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진학을 고민했을때 담임선생님은 쌍둥이인 저와 여동생에게 명인정보고등학교를 권하셨다.기숙사 생활을 해야 다닐 수 있는 학교여서 고민이 됐지만 중학교 선배가 학교에 진학한 뒤 공기업에 합격했으니, ‘너도 명인에 가서 선배들처럼 명인(名人)이 되어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용기를 갖고 선택했다.돌이켜 보면 쌍둥이라서 처음부터 선생님들께 주목받았던 것 같다.‘한 반에 25명, 세 학급인 작은 학교지만 해마다 두세명씩 금융권이나 공기업에 합격했으니, 이젠 너희 차례다’는 선생님들의 관심이 처음엔 부담스러웠다.하지만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차세대 리더반에서 어떤 자격증을 취득해야 하는지 지도받았고, 공채반 선배를 따라다니며 봉사활동에도 참여했다. 선배들과 함께 시작된 1학년 생활이 낯설지 않고 친숙했던 것은 학교 모든 행사에 함께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나눔 동아리 봉사활동으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실천들은 나를 겸손하게 만들었다. 또 기숙사 생활을 하며 배려하고 협동하는 마음이 길러진 것도 소위 말하는 인성 스펙을 쌓는 데 도움이 됐다.1학년 때 학급반장, 2학년 때 전교부회장, 3학년 때 전교회장을 맡으며 자신감을 얻었고 리더십을 기를 수 있게 됐다. 또 성주 청소년 운영위원 활동을 하며 크고 작은 청소년 문제에 관심을 갖는 학생으로 성장한 것도 공기업에 입사한 선배들의 뒤를 따라 갈 수 있었던 덕분이었다.명인에는 열정적인 취업 지도 선생님들이 계신다. 방학 때는 학교에서 취업 역량캠프를 하며 기숙사에서 생활했다. 집밥처럼 따스한 밥을 해주시는 엄마 같은 선생님과 밤낮, 주말에도 공채반 학생들과 24시간 밀착 지도하시는 3학년 담임선생님의 가르침은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다시 눈물을 훔치고 마음을 다잡는 채찍과 당근이 돼 주셨다. 그 안에서 나는 3학년이 되기 직전부터 본격적으로 밀착 집중교육을 받았다.2018년 1월부터 두 달간 하나은행 동계인턴 실습을 시작으로 고졸인재 잡콘서트에서 우리은행 현장 면접에 통과하면서 구체적으로 은행권 취업을 목표로 전진하며 노력했다.우리은행 서류접수를 시작하고 학교와 20여분 떨어진 우리은행 지점에서 일주일간 실습을 하며 꿈에 다가갈 수 있었다. 무더운 여름방학 실습은 힘들기도 했지만 실제로 은행원의 모습을 관찰하며 전문적인 은행원을 동경했고 고객을 대응하는 노하우를 얻고, 실제로 고객님들께 플로어 마케팅을 실습하며 면접에 대비했다.PT발표면접과 세일즈 면접을 대비하기 위해 매일 친구들에게 물건 하나씩을 세일즈하고 뉴스를 검색하며 이슈를 살피고 의견을 정리해 발표해보기, 목소리를 녹음해 다시 들어보기, 유튜브를 통해 우리은행에 대해 알아보기 등 입행을 위한 준비는 해도 해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점차 우리은행에 대 가장 잘 알고 있는 지원자라는 자신감이 생겼다.일요일에 담임선생님과 면접 질문을 점검했는데 잊을 수 없던 것은 올해 졸업한 선배들이 함께 모의면접을 해준 것이다. 입행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선배가 현장에서 벌어질 수 있는 상황면접을 해줬고 얼마 전 우리학교 최초로 남학생으로 공기업에 입사한 선배도 3시간이나 걸리는 버스를 타고 와 최종면접 경험담을 들려준 게 용기와 힘이 됐다.고마운 사람들의 응원으로 최종 마무리한 결과 실무진 면접에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최종면접을 준비하며 ‘후회하면 떨어지고 후련하면 합격이다’는 선생님의 격려를 잊지 않고 후련하게 할 말 다해 임원면접을 마치고 결과 기다렸다.조바심으로 추석연휴가 지났고 드디어 발표일, 최종합격의 소식은 지금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정통은행 입행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된다는 게 너무 기쁘다.모두가 하나 돼 새로운 은행을 만들자는 ‘Woori All Together, All New Woori’의 슬로건을 실천하는 은행원이 돼 나도 후배들을 지속적으로 응원하고 꿈을 심어주는 명인의 선배가 되겠다며 다짐하고 11월 초 연수를 받았다. 은행원으로서 기본 자질과 역량 교육을 받은 후 대구 평리지점으로 발령받았다. 2018년 12월 21일 첫 출근을 시작으로 새내기은행원 생활이 시작됐다. 명인에 다녔으니 금융권의 명인(名人)이 될 것이라고 다짐하며 오늘도 화이팅!명인정보고 졸업우리은행 입사강민지윤정혜 기자 yun@idaegu.com

특성화전형 목표 준비 공무원에 당당히 합격

중학교 3학년때 진로를 고민하면서 저는 당연히 인문계 고등학교를 진학하게 되리라 생각했습니다.그래서 마이스터고등학교 입학 신청일이 지나가고 특성화고 특별전형이 시작되도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지냈습니다. 하지만 특성화고 일반전형 원서접수 마감 하루 전 특성화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것도 지금 상황에선 충분히 가능성 있는 선택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대학을 졸업해도 취업하기가 매우 힘들어지고 어중간한 지방 대학교에 진학하는 것보다는 특성화 고등학교에 진학해 ‘특성화고 전형을 노려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그렇게 상업계 고등학교와 공업계 고등학교를 두고 고민을 하다 무언가를 만지고 조립하는 데 재미를 느끼는 저의 적성을 고려해 공업계 고등학교가 좋은 선택일 것 같아 경주의 신라공업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특성화 전형’을 염두에 두고 입학한 만큼 체계적인 교육을 받기 위해 공개채용 대비반에 들어가 오전 8시부터 밤 10시까지 학교에서 공부를 했습니다.공채반에서 공부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오후 6시까지 정규수업을 마치고 친구들이 통학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것이었습니다.그렇게 고3이 되었습니다. 각종 공채나 취업 공고가 많았고 좋은 회사를 간 선배들도 많이 있어서 ‘저렇게 많은 회사 중 내가 다닐 회사 하나 없겠어’라는 생각으로 취업을 준비했었습니다.그러다 최종면접에서 떨어지고 나니 엄청난 허탈감이 들었습니다. 학기 초 교장 선생님의 추천을 받아 원서를 제출해 두었던 공무원이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다시 마음을 붙잡고 공부를 시작하게 됐습니다.기계일반, 기계설계, 물리 3개 과목 중 전공인 기계일반과 기계설계는 1학년 때부터 준비해 물리에 비해 쉽게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기계설계는 공부하면 할수록 외워야 할 공식도 많고 내용도 복잡해서 기계일반와 비교해 조금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물리는 학교에서 배운 내용보다 어려운 내용이 많았습니다.그렇게 하루 하루 열심히 준비했고 시험 날짜가 다가와 경북 안동에서 공무원 시험을 보게 되었습니다. 시험장에는 같은 기계계열의 친구들이 많았습니다.평소 시험 칠 때 별로 긴장하지 않는 성격이라 시험지를 받기 전까지 기다리는 동안 창밖을 보며 잠시 딴 생각도 했습니다.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시험이 끝난 후 무난하게 시험을 친 것 같아 좋지도 싫지도 않았습니다. 시험장을 나와 보니 잘 쳐서 기뻐하는 사람, 못 쳐서 우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오히려 덤덤하게 나왔습니다. 그렇게 합격자 발표를 기다렸고 결국 필기시험에 합격했다는 공고문을 보게 되었습니다.그 후 안동에 있는 경북도청에 가서 개별면접과 집단면접까지 보게 됐고 최종적으로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게 되었습니다.2018년 12월 공무원임용식에 참석한 후 올해 1월3일 처음 출근해 현재까지 열심히 근무중입니다.신라공고 졸업경북도청 공무원 합격이채형 윤정혜 기자 yun@idaegu.com

취업현장서 커가는 실력 배움의 끈 놓지 않을 것

저는 경북 포항에 위치한 경북간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북기능인재양성학교사업 선도기업인 진병원에 취업했습니다.병원에서 OR(수술실)이란 부서에 근무하고 있습니다.취업한 곳은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2학년 때 실습을 했던 곳입니다. 그래서 환경도 익숙해 취업에 대한 걱정과 압박감은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하지만 한편으론 영어 실력이 부족해서 일을 할 때 의사선생님들과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하는 걱정도 있었습니다.한달 간 이뤄지는 취업 전 학습형 현장 실습에서 최대한 많은 전문용어를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실습에 임했습니다. 걱정과 달리 선생님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많은 것들을 알려줬습니다.처음에는 많은 말들이 이해가 잘 됮 않았지만 선생님들이 계속 알려주시고 많은 관심을 가져주신 덕분에 차츰차츰 많은 것을 알고 현재는 일에 관해 선생님들과도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실습한지 일주일 후부터 선생님들이 ‘경험을 많이 하면 좋다’며 오전에는 같이 환자의 상처 드레싱을 하러 가자고 했습니다.선생님들이 드레싱 하는 방법부터 차트 정리 및 오염의 개념, 환자들 재활 운동 등을 알려주셨습니다.그 후 아침마다 환자들의 수술 후 상태 관찰 및 드레싱을 보조하게 됐습니다. 아침에 드레싱이 끝나면 수술실로 가서 수술 준비를 합니다.처음에는 물줄 연결하는 법부터 환자 이름과 차트 입력 법부터 배웠고 이후에는 수술에 필요한 기구 및 도구준비, 글러브 착용 방법, 수술가운 입는 방법 등 수술실에 필요한 점을 익혔습니다.한 달간 학습형 현장실습이 끝나고 정식 취업이 됐을 때 처음으로 수술 가운을 입고 수술실에 들어갔습니다.처음이라서 미흡한 점이 많았지만 원장님은 제 속도에 맞춰 천천히 알려주셔서 첫 수술업무 보조를 무사히 마쳤습니다.수술이 끝난 뒤에도 수술 기구 전달 법, 흡입줄(석션줄) 교체 법 등을 배워나갔습니다.학교에서 배우는 것보다 더 어렵고 무엇보다 영어로 배우기 때문에 많은 어려움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잘 다니고 있는 것 같습니다.일하면서 대학에 진학할 친구 이야기를 들으면 부럽기도 하지만 취업만의 장점도 있는 것 같습니다.대학에 진학한 친구들보다 먼저 경제활동을 할 수 있고 무엇보다 재직자전형이라는 것이 있어 선취업 후진학이라는 제도를 통해 배움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그리고 일을 하면서 대학에서 배울 내용을 현장에서 듣고 배우고 현장의 실력을 키울 수 있어 좋은 것 같습니다.물론 일을 하면서 힘든 일도 있지만 여러 경험을 통해 성장하고 있는 제 자신을 보고 있으면 내심 뿌듯한 마음도 듭니다.3년간 수술실에서 수술업무 보조에 대한 일을 열심히 배워 이 후 간호대학에 진학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제가 어떻게 성장해 나갈지 기대가 됩니다.경북간호고등학교진병원 입사서경재윤정혜 기자 yun@idaegu.com

‘은행원 꿈’ 이룬 비결? 현재의 안정감 버려야

중학교 3학년 때 특성화고 오리엔테이션에서 은행원이라는 꿈을 갖고 대구여상에 입학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이 있었습니다.고민을 확신으로 바꾼 건 1학년 담임선생님의 말씀 때문입니다. ‘같은 출발 선상에 있으니 하면 된다’는 이 한마디를 듣고 ‘해보자’라는 확신이 생겼습니다.첫 시험에서 한자리 등수를 받고 ‘하면 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첫 목표를 3년 내내 한자리 등수 유지로 잡았습니다.그 후 꾸준히 공부해 성적도 오르고 상위권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과 친구 추천으로 노력 부문 모범학생상도 받았고 3년간 방송부로도 활동했습니다.선후배 간 관계를 배우고 아침방송과 졸업식, 체육대회 등 학교행사를 진행하며 소속감도 가졌습니다.2학년 때는 동아리, 봉사활동, 대회, 활동 등 시간이 부족할 만큼 열심히 보냈습니다. 중구 청소년운영위원회로 활동하며 지역발전을 위한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또 전국 상업경진대회 경제 골든벨을 준비하며 지역대회 은상, 본선 동상을 수상할 수 있었습니다.드디어 취업을 결정하는 3학년이 됐습니다. 제일 먼저 원서가 들어온 은행에 지원했지만, 면접에서 탈락했습니다.그후 면접 경험을 쌓기 위해 지원했던 기업에 최종합격이 되면서 졸업 전 학급에서 가장 먼저 취업을 나가게 됐습니다. 취업한 기업도 한미 계열사 제이브이엠이라는 중견기업으로 좋은 회사였지만 원하던 방향이 아니어서 처음에는 방황도 했습니다.어린 나이에 입사해서인지 저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걱정도 많았습니다. 이 시선을 신뢰로 바꾸기 위해 카탈로그와 홈페이지를 보며 제품군을 외웠고 그래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직접 생산라인에 내려가 장비를 작동하며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은행원 꿈에 대한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회사에 적응하고 안정감이 커갈수록 도전이 겁 났지만 친구 조언에 용기를 얻었습니다.시작을 망설이는 저에게 친구가 책 한 권을 선물했고 책에는 이런 문구가 나옵니다. 꿈을 가로막는 것은 시련이 아니라 안정이다.이 말을 보며 안정감으로 꿈에 대한 도전을 망설이는 제가 부끄러워졌습니다. 그렇게 회사 3년 차에 은행원 꿈에 다시 도전을 시작했습니다.펀드 투자 권유 대행인 자격증에 2개월 만에 합격했습니다. 2018년 상반기 산업은행에서 서류합격을 하게 됐고 필기합격을 위해 하루 2~3시간 잠을 자며 준비했습니다. 꿈에 다가가고 있다는 것에 설레어 피곤함도 잊었습니다.필기 합격 후 면접에서는 탈락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직전 회사 면접을 끝으로 4년 만에 본 면접이 부족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합격해도 만족스럽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다시 방향을 잡고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어떤 은행원으로 성장하고 싶은지, 어떤 은행에 가야 할지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펀드 자격증을 취득했기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했고 많은 상품에 적용하고 금융을 폭넓게 이해할 수 있는 자산관리 관련 자격증에도 도전했습니다.그 결과 2018년도 하반기 동안 재무설계사, 자산관리사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경제 전반으로 지식을 쌓고 NCS 책을 20권 넘게 풀며 노력했습니다.올해 상반기에는 면접 스터디를 구해 스터디하며 저의 장단점을 분석하고 기본기를 쌓았습니다. 이러한 노력이 모여 상반기 산업은행에 지원해 최종합격이라는 목표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생각과 다른 회사에서 방황도 했지만 돌이켜보면 그 모든 과정이 꿈을 이루기 위한 걸음이라 생각합니다. 취업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12월 입행 때까지 무엇을 할지 현재도 꾸준히 고민하고 실행하고 있습니다. 산업은행 입행 후 그 안에서 또 다른 목표를 세우고 저의 자리에서 꾸준히 성장해 나갈 것입니다. 국책은행 행원으로 기업과 국민경제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달려가겠습니다.대구여상 졸업KEB산업은행 입사곽기순윤정혜 기자 yun@idaegu.com

꾸준히 노력하는 ‘촌놈’ 게으른 천재를 이긴다

실력이란 꾸준한 노력의 또 다른 이름이라 생각합니다. 노력을 이기는 천재는 없습니다. 평범하지만 꾸준히 실행하는 사람이 게으른 천재를 이길 수 있다는 믿음으로 달려 왔습니다.저는 전교생 50여 명인 작은 시골 중학교를 졸업한 촌놈입니다. 3학년이 겨우 15명 정도 되는 소규모 학교에서 꼴찌를 도맡아 할 정도로 성적도 낮았습니다.어릴 적부터 물건을 분해하고 조립하는 것을 좋아해 하루종일 주변 물건을 부수고 조립하고 뜯으며 혼자만의 즐거움에 빠져 지냈습니다.중학교 3학년이 되어 처음으로 진로라는 선택 앞에서 제가 자신 있는 길을 가고자 특성화고를 지원 했습니다. 하고 싶은 것을 한다는 생각으로 서울의 마이스터고 컴퓨터 엔지니어과를 선택했지만 면접에서 떨어졌습니다.처음으로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 속에 경북인터넷고등학교 금융회계학과에 입학했습니다. 결정의 문턱에서 위안이 됐던 것은 선배들의 성공 취업 현수막과 홍보 팜플릿이었습니다.입학 후 처음 접하는 회계실무와 금융실무는 어렵게만 느껴졌습니다. 첫 시험에서 중간 정도 성적을 받았고 꼴찌만 하던 저에게 이 성적은 자신감의 출발점이 됐습니다.아직까지 한번도 성공을 품어보지 않았고, 목표라는 깃발은 인생의 지도에 펄럭인 적이 없었습니다.성공은 무엇을 이룬 것이 아니라 목표를 향해 끝없이 나아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어느 글에서 읽은 글귀 중 ‘우리의 잠재력은 쓰여 지기 위해 아우성치고 있다. 우리 중 완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모두 부족하기에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는 글이 큰 울림이 되었습니다.꼴찌 탈출이 아니라 하고싶은 것을 해보고 싶어 의욕이 생기기 시작했고, 야간에 진행하는 공채반에 들어 영어, 한국사, 회계 등을 공부습니다. 회계 과목에 관심이 있었는데 선생님도 회계반을 권유하셨습니다.회계원리에 대한 기초지식이 없는 저에게는 어렵게만 다가 왔지만 선생님께서는 포기하지 말고 천천히 해보자며 격려와 공부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말씀대로 천천히 배웠지만 첫 자격증 시험에 불합격한 뒤 ‘합격하고 말겠다’는 오기가 생기고 스스로 하고 싶은 의욕도 용솟음쳤습니다.교과서와 자격증 공부를 하면서 모르는 것은 자율시간 선생님께 여쭤보는 방식으로 공부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성적도 올랐습니다. 첫 자격증인 전산회계 2급 취득 후 신바람이 나 재미를 느끼며 도전이 하나의 즐거움이 됐습니다.끝없는 자기 도전의 회초리는 도전할수록 더 강해졌습니다. 전산세무, ERP, 재경관리사, 신용분석사 등 17개 자격증을 취득 했습니다.도전하기 위해서는 체력이 바탕이 돼야 하기에 매일 1시간씩 사이클 운동으로 체력을 키웠고 방학에는 버킷리스트에 있던 ‘국토종주’에 도전장을 내고 하루에 100km라는 거리를 달리며 끝없는 도전의 결기를 세우며 영주~부산을 5일에 걸쳐 완주했습니다.이런 저의 모습을 지켜보시던 진로선생님께서 우리은행 지원을 권유 하셨습니다. ‘할 수 있을까’ ‘경쟁이 될까’라는 생각을 했으나 선생님은 면접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과정을 보고 체험하자며 용기를 북돋아주셨습니다.PT면접과 세일즈 면접 대비는 학교서 진행하던 ‘거꾸로 학교’ 즉 학생이 교사가 되고 주민이 학생이 되는 수업으로 했습니다.주민들에게 전공을 설명하며 발표하는 스킬 등을 배워 면접에 대비한 결과 1차 면접을 통과했지만 최종 면접에서 불합격을 받았습니다.불합격 후 대학 진학과 취업에서 고민하던 중 진로선생님은 마지막 관문에서 불합격이 아쉽다며 KEB하나은행 지원을 추천했습니다.서류합격 후 매일 5~6시간씩 필기시험 공부를 했습니다. 시험당일 긴장하는 마음으로 고사장에 입실해 문제를 풀었고 인성검사에서는 솔직하게 답변했습니다.결국 합격 메일을 받았고 선생님과 면접연습에 돌입했습니다. 자기소개부터 다양한 면접내용 문항을 만들고 세일즈면접 등을 준비하며 불합격의 경험을 바탕으로 더욱 단단히 무장하였습니다.필기시험과 임원진 면접 준비는 힘들었지만 옆을 지켜주시던 선생님과 부모님, 응원한 친구들이 있어 포기하지 않고 달릴 수 있었으며, 끝내 최종합격의 기쁨도 맛볼 수 있었습니다.도전할 때 더 강해지는 자신을 발견한 것이 가장 큰 성공이라 생각합니다.앞으로 어떤 난관이 있어도 그 고통이 저를 키우는 멘토라 생각하며 금융인으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합니다. KEB하나은행 안동지점 근무경북인터넷고등학교 김승길윤정혜 기자 yun@idaegu.com

대기업 안정된 삶 목표 후회없이 과정에 온힘

중학교 2학년까지 운동만 하던 시절 내신성적은 300명 중 200등 정도였다. 그러던 중 아버지 추천을 받아 경북기계공업고등학교를 알게 됐다.계획 없이 인문계고를 가는 것보다 선취업 후진학 제도로 꿈을 실현하고자 경북기계공고 지원을 결심했다.하지만 2학년까지 성적이 너무 부실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때부터 공부에 전념했다. 그 결과 중학교 3학년 1학기 90등까지 끌어올려 기계과에 합격했다.입학 후 처음에는 낯선 환경에 적응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1학년이 가장 중요하다는 선생님들의 조언을 받아 대기업 입사 후 안정된 삶을 살아보자는 꿈을 설정하고 교과성적은 물론 다양한 학교활동에 노력했다.1학년 과정은 계열별로 보통교과 수업과 12개의 순환 전공기초실습이 있다. 1학기 처음 중간고사 준비 당시에는 다시는 그렇게 공부를 못 할 정도로 열심히 했다.실습이나 체육, 정규수업 이외 방과후수업까지 소화하면 오후 8시 넘어 마치는 학교에서 집중하는 것은 힘들었지만 수업시간에 졸거나 장난치지 않고 선생님 말씀 하나하나에 집중하고 필기하는 데 박차를 가했다.집에서는 그날 배운 것을 복습하고 시험기간에는 오전 5~6시에 일어나 예습을 했다.특히 역사나 과학, 사회 같은 과목은 내용이 이어지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내용의 주제만 적어두고 스토리를 만들어 외우는 방식으로 공부했다. 그 덕분에 1학년 마치기 전 평균 98점을 유지했다.하지만 순환 실습이 문제였다. 처음 보는 공작기계들의 조작과 가공은 힘들었고 1학기 전공실습은 반 7등이라는 만족하지 못하는 성적을 받았다.2학기가 시작되고 ‘전공실습 1등’ 목표를 세웠다.선반과 밀링이라는 공작기계를 사용할 당시 어떤 방법으로 가공할지 몰라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실습수업 전날 잠자기 전 머릿속으로 가공과정을 반복하거나 실습 담당 선생님께 모르는 점을 질문하며 노력했다.그 결과 2학기가 끝날 시점에는 가공기술이 무척 늘어났다는 지도 선생님의 말씀을 들었고 수행평가도 우수한 결과를 만들었다.목표를 잡고 노력하면 좋아지는 것을 깨닫게 됐고 추진력과 열정을 한 번 더 확인할 수 있었다.교과 활동뿐 아니라 도서부, 선생님 도우미, English Contest 참여, 다독상 등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각종 대회나 동아리에도 적극 참여했다.봉사활동도 했다. 시작 당시는 단지 성적을 위해 시작했지만 벽화그리기 봉사, 연탄 나눔 봉사, 무료 배식 급식 등을 하면서 생각은 달라졌다.무료 배식 급식 중 한 할머니께서 ‘참 고맙다’며 등을 토닥토닥 해주실 때 ‘내가 하는 작은 행동이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줄 수도 있구나’를 느꼈고 마음까지 따뜻해져 타인을 배려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열심히 학교생활을 하다 보니 현대자동차 추천대상자가 돼 있었다.친구들에 비해 면접이 약해 1분 자기소개나 생각하지 못한 질문을 받으면 나도 모르게 면접관의 눈을 피하거나 말을 더듬고, 목소리가 작아졌다.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늘 친구들과 모의면접을 했고 일찍 마쳐도 끝까지 남아서 연습에 연습을 반복했다.1분 자기소개는 선생님께 첨삭을 받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어머니 앞에서도 연습을 했다. 그 결과 친구들이나 선생님도 면접을 잘한다는 말씀을 해주셨다.회사 사정으로 필기시험과 면접 일정이 늦춰졌다. 한 달 동안 나는 HMAT관련 도서로 부족하거나 약한 부분을 집중 공부했고, 현대자동차 회사 사이트와 뉴스를 보며 내용을 수집하는 등 꾸준히 노력했다.추천공문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당당히 학교장 추천을 받을 수 있었다.입사 지원서를 보며 콩닥거리는 마음을 주저 앉히고 ‘나를 보면 떠오르는게 무엇일까’를 친구나 부모님께 물어 나를 나타내는 3가지로 지원서를 작성했다.지원서를 제출하기 전 1주일이라는 시간동안 내용 첨삭을 받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지원서 내용을 생각하며 원하는 내용의 지원서를 쓰게 되었다.시험은 현대자동차 인적성 검사로 이뤄졌다. 적성검사는 NCS 문제와 소수의 영어문제다.열심히 풀었던 HMAT가 크게 빛을 발하진 않았지만 도움은 됐다고 생각하고 시간 안에 끝까지 풀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모르거나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게 있다면 먼저 넘어가고 쉽고 풀 수 있는 것을 먼저 해결했다.시험을 치고 일주일 뒤 면접을 위해 준비했다. 학교에서 초빙한 외부 전문가 코칭을 받고, 합격한 선배들의 멘토링을 받으며 조금씩 나의 정체가 드러나고 취약부분을 보완하기 시작했다.최종면접 날, 덤덤하게 현대자동차 울산 공장에 들어갔다. 긴장감과 설렘이 동시에 나왔고 다른 학교 친구들과 인사를 하며 긴장을 조금씩 풀어갔다. 면접실에 들어가 웃으면서 크게 인사했다. 면접을 마치고 난 뒤 아쉬움이 없진 않았지만 최선을 다한 것에 만족했다. 그 결과 꿈에 그리던 현대자동차에 당당히 합격할 수 있었다.앞으로 남은 과제를 성실히 수행하고 집합 및 온라인 교육을 통해 직무를 이해하고, 배워서 현대자동차의 신입직원으로 부족함이 없도록 노력할 예정이다.입사 후 기능이 뛰어난 인재가 되기 위해 노력할 뿐만 아니라 타인을 배려하는 좋은 사람이 되도록 할 것이다. 또한 학교 후배와 친구들 중 현대자동차뿐만 아니라 다른 회사 입사가 목표인 후배와 친구를 위해서 서슴없이 도와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현대자동차 입사경북기계공업고등학교정밀기계과 2학년 김선규윤정혜 기자 yun@idaegu.com

공기업 목표 잇단 실패 계속된 노력 끝내 성공

취업을 위해 경북여자상업고등학교에 진학한 것은 그동안의 선택 중 최고였고, 국민연금공단 취업은 선택에 대한 최고의 결과라고 자부한다.중학교 시절 목표나 꿈도 없이 세월만 보냈다. 사람 앞에 서면 목소리는 한없이 작아지고 얼굴은 빨갛게 물들고 시선을 피하는 소심한 성격의 여학생이었다.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대학을 나와도 취업하기 어렵고, 세월만 낭비하는 것 같아 특성화고등학교에 진학했다.고등학교 1학년 때는 취업 의지는 있었으나 갈피를 잡지 못해 내신 성적 관리에만 급급했다. 그러다 뒤늦게 자격증 필요성을 깨닫아 사무자동화 관련 ITQ한글, 엑셀, 파워포인트, MS-word 등 4개와 전산회계 2급을 취득했다.2학년 진급 후 본격적인 취업 준비를 위해 노력했다.자격증 일정에 따라 계획을 세웠고, 이를 이루기 위해 쉬는시간, 점심시간, 하교 후에도 틈틈이 공부해 전산 세무 2급, ERP 회계, 인사, 생산, 물류 2급 등 총 16개의 자격증을 취득했다.또 선생님 도움을 받아 상업경진대회 등 각종 대회에 출전해 크고 작은 수상과 함께 회계 지식, 팀원과의 협동 등 많은 경험을 쌓았다. 자격증 및 대회 출전을 준비하는 기간에도 내신 관리에도 노력해 상위 10% 이내의 성적을 유지할 수 있었다.국민연금공단에 최종 합격하기까지 한국토지주택공사, 한국도로공사, 한국전력공사 등 10여개가 넘는 곳에 지원해 서류나 필기, 면접, 최종면접 등에서 탈락의 실패를 맛보았다.최종 문턱에 달았을 때 겪게 된 탈락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친구들의 취업을 보면서 ‘역량과 맞지 않게 너무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고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하지만 ‘공기업 취업’ 목표를 버릴 수 없어 이를 악물고 NCS 및 면접 준비를 통해 마침내 국민연금공단에 최종합격이라는 영광을 얻었다.국민연금공단 사원이 되기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상업경진대회 출전과 취업준비반이다.2학년 때 대구 상업고 학생들이 출전하는 상업경진대회 ERP 부문에 참가했다. 당시 자격증이 별로 없어서 의기소침 했지만 은상을 수상한 뒤, 자신감이 생겼다. 전국대회를 준비하면서 ERP 자격증에 도전했고, 그 결과 동상 수상, ERP 자격증 회계, 생산, 물류, 인사 4개 부문을 모두 취득할 수 있었다. 이 후 자신감을 갖고 취업 준비를 하면서 탈락과 같은 실패에도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계속 도전 끝에 취업 성공을 맛볼 수 있었다.학교의 취업준비반에 들어가 NCS직업기초능력평가와 직장예절, 자기소개서 작성, 모의 면접 등을 통해 취업 준비를 할 수 있었다.처음 자기소개서를 접했을 때 두서없이 글자 채우기에만 급급했다. 하지만 취업준비반에서 친구들과 서로 작성한 것을 피드백하고 선생님께 첨삭을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글을 쓸 수 있었다.공기업 취업에서는 필기시험에 합격해야만 면접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취업준비반을 통해 NCS 문제집을 풀면서 정해진 시간 내 신속·정확하게 문제를 푸는 방법을 익혀나갔다. 학교에서 제공하는 문제집을 풀면서 감을 익혔고 6개월 이후 실력이 향상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취업 마지막 관문인 면접에서도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자연스러운 표정 짓기, 떨지 않고 말하기 등 여러 상황에서 어떻게 답변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배웠다.함께 취업을 준비하던 친구도 토론면접 등을 같이 하며 도움을 줬다.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말하는 것이 긴장되고 임기응변이 부족했지만 평소 배웠던 직장예절과 모의 면접으로 차분하게 면접에 임할 수 있었다.국민연금공단에 근무하면서도 취업준비반을 통해 배웠던 직장예절인 기본적인 신입사원의 자세와 예의 등은 실제 회사생활에서 큰 도움이 됐다. 그 중 중요한 것은 밝게 웃으며인사하고 예의 바른 것이다. 신입사원이기에 업무가 미숙할 수 있으나, 밝고 예의 바르게 행동하는 것이 가장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는 방법인 것 같다. 내신 관리, 자격증 취득, 대회 출전, 취업준비반 등을 통해 공기업 취업을 이뤘듯 여러 이유로 취업에 대해 고민하는 분들에게 ‘노력으로 못 이루는 것은 없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말씀드리며 응원하고 싶다.경북여자상업고등학교 졸업국민연금공단 취업남예은윤정혜 기자 yun@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