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는 R&D로 지역 섬유산업 불황 정면돌파”

차순자 보광직물 대표가 “끊임없는 연구개발을 통해 섬유산업의 새로운 미래를 열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김진홍 기자 “섬유산업이 어렵다고 다들 이야기 하는데 그렇지는 않습니다. 연구개발에 더욱 힘을 쏟아 대구 섬유의 경쟁력을 한층 더 올리겠습니다”테이블에 겹겹이 쌓인 원단, 쉼없이 울리는 전화, 부산하게 움직이는 직원들의 발길…그의 집무실은 여느 업체의 ‘사장실’과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살아움직이는 생동성 이랄까. ‘일하는 CEO’(최고경영자)의 면모는 그의 목소리는 물론 사무실 곳곳에 녹아있었다.대구 서대구산업단지에 위치한 보광직물 차순자(59) 대표. 최근 찾은 그의 집무실은 연말을 맞아 한창 바쁜 시간이었다. 차 대표는 “납품 일정을 맞추느라 직원들 모두 눈코뜰새 없이 바쁘다”고 말하며 이야기를 꺼냈다.원단설계에서 제직까지 모든 면제품을 생산하는 보광직물은 병원복, 침구류 등을 주력으로 생산하는 업체다. 직접 제직, 가공한 뒤 봉제해 자체 브랜드로 파는 직물회사다. 1978년 창사 이후 매출은 2012년 220억원, 올해 250억원으로 크게 늘어났다. 불황 속 섬유업체가 달성했다고는 믿기 어려운 대단한 성과다.해외진출에도 공을 들인 끝에 미국과 인도네시아 등지로 수출문을 여는 데도 성공했다. 최근에는 미군에 군 메트리스 제품을 제공하는 계약도 성사돼 납품을 눈앞에 두고 있다.보광직물의 주력 품목인 병원용 리넨 제품은 국내 대학병원에 공급되고 있다. 차 대표는 “서울대병원 등 대부분의 국내 대학병원이 우리 회사가 만든 유니폼과 침구류 등을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의사복, 간호사복, 산모복 외에도 운동복, 캐디복, 작업복 등 다양한 제품을 생산한다. ◆성공한 여성기업인이 되기까지 차 대표의 성공스토리 첫 시작은 197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은 성공한 여성기업인이지만 시작은 미약했다. 초등학생 시절 어머니를 여의고 고등학교 때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 어린 나이에 가장의 역할을 맡아야 했다. 어려운 형편에 대학진학은 꿈도 꾸지 못했다.1974년 고교 졸업과 동시에 외삼촌이 운영하는 직물업체에 경리직원으로 들어간 게 섬유와의 첫 인연이었다. 4년 뒤 독립해 대구 서문시장에 ‘민영상사’라는 직물가게를 열었다. 창업자금은 혼수비용이었다. 차 대표는 “퇴근 후 자루에 넣은 돈을 세는 재미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했다”며 “그 땀의 대가로 점포 수도 10곳으로 늘어나게 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그의 열정을 시샘한 것일까. 그에게도 시련이 닥쳐왔다. 친구의 부탁으로 수표 28억원을 빌려준 것이 잘못돼 결국 부도를 맞았다. 손실액만 200억원이 넘었다. 섬유와 함께 운영했던 주유소사업도 접어야 했다.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지인의 도움으로 4억원을 마련한 뒤, 2003년 보광직물로 업체명을 바꾸고 새롭게 도전했다. 2010년에는 석탑산업훈장을 받은 등 재기에 성공했다. 2011년에는 계명대 경영학과 야간 과정에 입학해 늦깎이 대학생이 됐다차 대표는 “직원들과 함께 땀 흘린 결과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며 “시련의 시간을 극복하고 나니 앞으로 어떠한 어려움도 헤쳐나갈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성공의 비결, 쉼없는 R&D 중국의 저가 공세로 대구지역 섬유 기업들의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보광직물이 연매출 200억원 이상을 올릴 수 있는 비결은 뭘까. 차 대표는 “끊임없는 R&D(연구개발) 덕분”이라고 했다.실제 보광직물은 최근 몇해 R&D 과제를 계속해서 따내면서 연구개발 역량을 키웠다. ‘슈퍼융합사업’에서 ‘항공기 및 해양 화물 컨테이너 개발 과제’ 주관기업으로 선정, 2년간 약 16억원의 예산을 받아 개발을 진행 중이다.또 경북지역 특화사업으로 시니어복 개발에 뛰어들어 3억원 가량 예산을 지원 받았다. 특히 2009년 설치한 부설 연구소는 보광직물의 R&D 성과를 뒷받침했다.차 대표는 “최근 거래처인 군과 기관, 병원 등에서 새로운 기술을 적용한 제품 개발을 요구하고 있다”며 “이같은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연구개발에 쉼없이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차 대표는 R&D 만큼 중요한 것이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연구인력도 중요하지만 생산할 사람도 있어야 한다”며 “우리 직원들의 평균연령이 55세인데, 마음놓고 일할 수 있는 사내 분위기를 만드는데 힘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남승렬 기자 pdnamsy@idaegu.com

공격적 투자 ‘화학섬유 방사유제’ 선두주자 우뚝

윤진필 (주)동양정밀 대표이사는 끊임없는 기술개발 노력으로 화학섬유용 방사유제의 국산화에 성공했다. 동양정밀의 화학섬유용 방사유제는 세계 최고 수준의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중소기업은 현실에 안주하며 방어만 할 경우 번번이 실패합니다. 공격적인 투자와 기술개발이 있을 때에만 중견기업으로 도약할 기회가 찾아옵니다.”(주)동양정밀 윤진필(65) 대표이사의 경영철학이자 방침이다.경산시 진량읍 진량일반산업단지 내에 위치한 (주)동양정밀은 연간 500만 달러의 외화절약에 앞장서고 있는 화학섬유 방사유제업계의 선두주자로 손꼽힌다. 이 회사는 세계로, 미래로의 도약을 위한 첨단기술과 서비스로 고객만족의 가치를 창조하는 기업으로 우뚝 서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윤 대표는 지난 1995년 섬유용 계면활성제 전문 제조업체를 설립해 20여년간의 끊임없는 기술개발 노력에 힘입어 화학섬유용 방사유제 개발에 성공했다. 특히 근로자 및 사업주가 합심해 무재해 운동을 전개한 결과, 1999년부터 2012년까지 13년간 무재해 목표 10배를 달성해 주목을 받고 있다.또 지난해 고용노동부의 위험요인자기관리 사업에 참여해 지난 3월 위험평가 우수사업장으로 선정됐으며 ISO 9001 품질인증 획득과 ISO 14001환경인증 획득 등 명실상부한 환경친화적 기업으로 국내외에서 브랜드를 인정받고 있다.윤 대표는 작지만 강한 기업의 CEO로서 근로자가 편리하고 안전한 작업장, 일하고 싶은 쾌척한 환경의 작업장, 청결하고 아름다운 작업장 만들기에 앞장서고 있다. ◆화학섬유용 방사유제 선두주자 “일본과 독일에서 전량 수입하고 있던 화학섬유 방사유제의 국산화를 위해 끈질긴 연구를 거듭한 결과, 신제품 개발에 성공해 연간 500만 달러 이상의 외화절약 효과를 거두고 있습니다”윤 대표는 “종전 우리나라 화학섬유회사는 모두 일본, 독일에서 화학섬유 방사유제를 전량 수입했다”며 “이처럼 화학섬유 방사유제 제품개발 성공으로 일본, 독일과 경쟁하고 국내 화학섬유업계의 국제경쟁력 향상에 이바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국내 최초로 화학섬유 방사유제의 개발에 성공하면서 풍부한 경험과 노하우 및 기술축적을 활용해 중소기업에서는 적용하기 어려웠던 기술개발 기간을 크게 단축시켰다는 것이다.동양정밀은 현재 웅진케미칼, TK케미칼, (주)효성, 대한합성, (주)도래이첨단소재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굵직굵직한 대기업들과 거래하고 있다. 특히 미국, 중국, 이란, 페루 등 6개국에 연간 500만 달러 이상을 수출하고 있는 유망 중소기업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섬유용 계면활성제 제조업체로 지난 1995년 설립한 이후 윤 대표의 연구개발에 대한 남다른 열정으로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화학섬유 방사유제의 국산화 성공 및 신제품 개발 등 국책사업에서 뛰어난 기술력으로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윤 대표는 “기업의 이윤 11%를 연구소에 투자하고 나머지 이익금은 인건비, 운영비를 제외하고는 모두 기업에 재투자하고 있다”며 “작지만 강한 기업으로 안전한 작업장, 일하고 싶은 쾌적한 환경, 정돈된 작업장 조성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전했다.그는 지난 1995년 유망중소기업 선정을 시작으로 중소기업 대상, 무재해 1∼10배 기록 한국산업안전공단 표창을 수상했다. 또한 중소기업중앙회 경영부문 우수 CEO 표창, 산재예방 노동부장관 표창, 대통령 표창 등 30여회의 표창과 지난 3월 대구ㆍ경북 1호 위험성평가 우수사업장으로 선정돼 산재예방 유공 석탑산업훈장을 수상하는 등 지역 산업발전에 앞장서고 있다. ◆최고의 제품으로 수출길 연다 “세계 최고의 화학섬유용 방사유제를 생산하던 일본 죽본(다께모도), 솔본(마쪄모도) 제품을 뛰어넘어 세계 최고의 화학섬유용 방사유제 생산에 성공했다고 자부합니다. 앞으로 일본, 독일은 물론 전 세계를 대상으로 수출길을 뚫어나갈 계획입니다”윤 대표는 수출 시장 확대를 자신했다. 현재 동양정밀에서 생산하고 있는 화학섬유용 방사유제가 일본, 독일 제품보다 훨씬 뛰어나기 때문이다.동양정밀 부설 기술연구소에는 8명의 연구원이 신제품 개발에 매달리고 있다.동양정밀의 화학섬유용 방사유제는 기능뿐만 아니라 공장별 원사제조 공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각종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으며 단일 공장마다 다른 유제의 응용물성을 포괄할 수 있는 성능을 갖춘 첨단형 방사유제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방사유제 분야는 섬유소재, 형태, 용도 등에 따라 특성이 점차 복잡하고 다단계 처리에 의해 공정이 복잡하게 전개되는 경향을 보이면서 통합형 방사유제를 개발해 모든 불편을 해소시키는데에도 성공했다.동양정밀의 방사유제는 지난 1998년 한국품질재단 ISO 9001 인증획득을 비롯해 1999년 중소기업청 기술경쟁력 우수기업 지정 등 수십개의 품질인정과 우수기업 선정으로 이어졌다.높은 기술력과 제품의 우수성으로 웅진케미칼, TK케미칼, (주)효성, 대한합성, (주)도래이첨단소재 등 대기업 화학섬유회사는 물론 전국의 화학섬유업체와 거래하고 있다. 미국, 중국, 이란, 페루 등 6개국에 연간 500억 달러 이상을 수출하고 있으며, 전 세계를 겨냥한 수출을 추진하면서 지난해부터 상담이 이어지고 있다.동양정밀은 경산시로부터 지난 10월 이달의 기업으로도 선정됐다.윤 대표는 대구상고, 영남이공대학 화공환경과, 경일대 공업화학과, 중국 요녕성 중의연구원 침구학과(박사), 대구가톨릭대 대학원 경제통상비즈니스학과, 대구한의대 한방산업대학원 한약재약리과(석사)를 졸업했다. 경산산업단지관리공단 제6대 이사장에 이어 지난 3월부터 제7대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경북도 프라이드기업 지정 CEO협회 회장, 경일대 산학발전전문위원, 경북도 투자유치협의위원, 경일대 제36대 총동창회장, 경북도 프라이드상품 선정위원, 경산시장학회 이사 등 다양한 지역사회 활동을 벌이고 있다.남동해 기자 namdh@idaegu.com

열처리산업 선구자…매출 400억 월드스타기업 꿈꾼다

영풍열처리 직원이 플로그를 이용한 최신 기계로 부품이 제작되는 과정을 살펴보고 있다. 1988년은 서울 잠실에서 86아시안게임에 이어 88서울올림픽이 열렸던 해다.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경제성장의 정점에서, 올림픽은 한국이라는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리는 기회이기도 했다.권숙철 (주)영풍열처리 대표이사는 “우리나라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것은 88년도라고 할 수 있다”며 “그전까지는 (대부분이) 못살고 어려웠다”고 기억했다. 현재 지역뿌리기술 전문기업이자 연매출 170억여원에 달하는 (주)영풍열처리 역시 시작은 소소했다.1987년 북구 노원동에서 영업을 시작했다. 자본금은 집세와 저축을 합친 450여만원. 대구지역 공단을 드나드는 차량은 지금의 1/4에 불과했다. 처음부터 많은 자본을 가지고 시작하는 기업은 거의 없었다. 영업도 자전거로 뛰는 시절이었다.그는 “설립 첫해는 직원이라야 1~2명이었다. 몇 년 후부터 오토바이를 타고 영업을 했다”며 “어려웠지만, 그런 경험이 살면서 많은 도움이 됐다”고 덧붙였다.뚝심 덕분일까. 그는 IMF 때 기업이 줄도산하는 와중에도 꿋꿋이 기업을 키웠다. 리먼사태로 빚어진 글로벌 경제위기를 넘겼고 몇 년간 이어진 경제불황에도 살아남았다. 현재 (주)영풍열처리는 직원 수 120여명에 달하는 대구시 스타기업이다. 권 대표는 수천 배의 매출 증가를 이룬 영풍의 저력을 ‘성실과 혁신’이라고 했다. ◆맨손으로 부딪혀 지역뿌리산업 일구다. 권숙철 영풍열처리 대표는 ‘성실과 혁신’이라는 신조를 설명하며 “한 분야에서 선도회사가 되려면 먼저 성실이라는 기본을 갖추고 끊임없이 혁신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열처리산업은 3D업종이라는 인식이 많아요. 실제로 힘든 과정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천직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했죠”권숙철 대표는 경북 영주 출신이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고교 졸업 후 서울에서 첫 직장을 얻었다. 금속(열처리) 분야였다.기술 경험을 쌓은 그는 29살에 다시 대구로 내려왔다. 연고는 없었지만 고향에서 가까운 곳에서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사업을 하면서 공부도 계속했다. 대학원을 졸업하기까지 6년 반이 걸렸다.그는 “학부 과정이 특히 힘들었다. 어려움을 어떻게 견뎠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주경야독에 중독인 것처럼 지냈다”며 “젊었기 때문에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고, 맞다고 생각하면 달렸던 것”이라고 말했다.대구 지리에 어둡다는 점도 애로사항 중 하나였다. 거래처를 트고 터를 잡는 데만 7~8년이 걸렸다. 권 대표는 “열처리산업은 소위 ‘대장간’이라는 인식과 달리 장치산업에 가깝다”며 “새로운 장비를 들이고 일정 규모를 갖추고 나니 10년이 흘러 있었다”고 말했다.자리를 잡고 나서는 매출 성적이 고민거리가 됐다. 열처리 특성상 많은 물건을 한꺼번에 처리하기 어렵기 때문에 수요를 끌어올리기 쉽지 않았던 것이다.2003년, 그는 자동차 부품 사업으로 방향을 틀었다. 부품을 찍는 금형에서 부품 사업 자체로 영역을 넓힌 것이다. 언뜻 연관성이 없을 것 같지만, 오토미션(자동변속기)을 비롯해 차량 내 구동되는 부품은 대부분 열처리 과정을 거친다. 열처리를 한 쇠는 더 질겨지면서 쉽게 깨지지도, 찌그러지지도 않기 때문이다.그의 결단은 영풍을 결정적으로 궤도 위에 올려놨다. 부품 사업에 뛰어든 영풍은 2003년부터 SQ 인증ㆍTS 16949ㆍISO 9001-2000 인증ㆍ이노비즈 인증 등 잇달아 기술혁신에 성공하며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그는 “당시 부품 사업을 하는 열처리 업체도 우리 말고도 많았다”며 “새로운 시도에 대해 누구나 우려를 한다. 우리는 그저 자동차 부품에 대해 완벽한 품질을 만들어내겠다는 각오로 임했고, 여전히 자부심을 지켜나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기본과 혁신을 추구한다. 영풍의 특허는 현재까지 3건. 피트로 타입 냉각장치 개선, 가열실과 냉각실을 분리한 설비 배치와 함께 가장 주요한 것이 작년 획득한 고주파 가열 플러그 퀜칭 기술이다.이는 집탄열처리와 고주파가열 플러그 퀜칭 기술이 결합된 것이다.통상 쇠 제품을 아무런 처리 없이 가열하면 원래 모습을 유지하지 못한다. 이때 고주파 가열 플러그 퀜칭기술을 이용하면 플러그로 형상을 유지한 채 냉각시킬 수 있어 찌그러짐을 방지할 수 있고, 원하는 치수로 맞출 수 있다.우리나라 6단 변속기에 처음 적용됐으며, 정밀성을 추구한 영풍의 특허다.권 대표는 “중요한 것은 기본과 혁신이다. 먼저 기본을 갖추고, 끊임없이 혁신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이렇듯 그가 새로운 기술에 매진하는 이유는 ‘5년 뒤의 영풍’을 위해서다. 권 대표는 “20여년간 공장을 운영하면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은 차세대 기술이었다”며 “어떻게든 당장은 먹고살 수 있다. 중요한 건 그다음이다. 5년 뒤, 10년 뒤에 무엇을 해야 기업이 살아남을지는 모든 경영진의 가장 큰 화두일 것”이라고 말했다.‘혁신’이라는 신조에 걸맞게 꾸준한 R&D 연구, 특허 획득과 함께 10년 전부터 매년 회사 내에서 혁신활동도 하고 있다. 1주일에 한 차례 외부 강사를 초청해 테마에 따라 현장관리 교육방식, 회사관리 등 관리자나 직원의 자기개발을 돕고 있다는 것. 그는 이 같은 ‘자기개발’이 새로운 아이디어로 이어지고, 결국 회사 톱니에 기름칠을 하는 새로운 원동력이 된다고 설명했다.권 대표는 “현장감, 혁신성을 살리기 위해 월요일마다 조기 출근해 직원들과 현장에서 토론한다”며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면 또 현장에 적용한다”고 말했다.생산라인에 POP(Point of Production, 생산시점관리)와 바코드 기능을 적용한 시스템을 만든 것도 이러한 현장 아이디어 중 하나다. 이 시스템 덕분에 사무실에서도 생산공정을 확인하고 미리 위험 사항을 판단할 수 있게 됐다.그는 “처음에는 직원들이 잘 적응을 못했다. 의무적으로 밀어붙이는 통에 그만두는 직원도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적응했다”며 “이 같은 혁신활동이 업계에서 우리 회사를 선도회사라고 부르는 이유 중 하나다”고 말했다. ◆5년 뒤의 영풍은 그렇다면 권 대표의 5년 뒤, 10년 뒤 청사진은 어떤 모습일까.그는 “일차적으로는 매출 400억원대를 달성해 월드스타기업에 진입하는 것이 목표”라며 “자동차 부품 사업 외에 다른 업종을 추가하고 싶다”고 덧붙였다.혈기 넘치던 시절에는 ‘오직 1등’을 추구했지만, 지금은 더 넓은 시각에서 회사를 알차게 성장시키는 것이 포부라고. 현재 단품조립을 중심으로 외주작업이 많지만, 훗날 해외법인을 세우고 글로벌 회사로 키우겠다는 꿈도 가지고 있다.그는 “자동변속기 쪽 제품이 주력이다 보니 우리나라에서만 쓰이는 게 아니라 외국에서도 수요가 항상 있다”며 “차별화를 위한 특허 출원과 기술개발에도 힘쓰고 있다”고 덧붙였다.신속성을 키우기 위해 현풍 테크노폴리스 일대에 제2공장도 신축 중이다. 제2공장은 1만5천여㎡로 내년 3월께 완공되면 현재 6천600여㎡에 달하는 달서구 본사와 함께 단숨에 3배 규모로 늘게 된다.권 대표는 “공장을 신축하면 창원ㆍ경남 쪽으로 영업망 규모도 더 키울 수 있을 것”이라며 “양적인 성장과 함께 직원 복지를 한 단계 끌어올려 질적인 성장도 함께 추구하겠다”고 밝혔다.정혜윤 기자 hyeyoon@idaegu.com

대구 토종기업 자부심…최고 품질 전자제품 만든다

이완수 보국전자 대표이사가 27일 “향토기업의 역할을 다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을 주고 싶다”는 뜻을 피력하고 있다. 김진홍 기자 solmin@idaegu.com 전기매트가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기온이 떨어지고 찬바람이 쌩쌩 부는 최근 전열제품은 애인보다 더 따뜻한 온기를 주는 겨울철 필수품. 특히 최근엔 경제불황과 고유가로 전기요금을 아끼려는 서민들이 늘어나면서 전기장판이나 전기요, 전기매트 등의 수요도 점차 늘고 있다. 이같은 전열제품 분야에서 국내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업체가 대구에 있다. (주)보국전자. 가정용 전열기기와 소형 가전제품을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대구지역 중견업체다.27일 찾은 성서공단 보국전자 본사(대구 달서구 대천동) 공장은 전기요 등을 점검하는 직원들의 움직임으로 부산했다.동종업계에서 국내 최반열에 수준에 오른 보국전자의 성공 스토리는 무엇일까. 이날 만난 이완수(46) 보국전자 대표이사의 말에서 그 성공 스토리가 물씬 묻어났다. 인터뷰를 통해 이 대표는 ‘대구 토종기업’으로서의 자부심을 재차 강조했다.“사업 확장 등의 이유가 있더라도 대구를 떠난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한 적이 없습니다. 대구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이랄까요.(웃음) 설사 사업 확장을 하더라도 대구 근교 쪽으로 할 계획입니다. 저를 비롯해 임직원들도 전부 대구사람입니다” ◆토종브랜드로 승부 걸다 보국전자를 설립할 당시 이 대표의 나이는 32살. 한국경제가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라는 어두운 터널을 힘겹게 통과하던 시절인 1999년이었다.경영학을 전공한 이 젊은 CEO(최고 경영자)는 ‘대구를 대표할 수 있는 토종 브랜드를 발굴하겠다’는 한 가지 생각으로 사업에 뛰어들었다.1990년대 후반은 국내 가전제품 시장의 경쟁력이 약했던 시절이었다. 당시는 테팔과 필립스 등 글로벌 가전제품 브랜드가 국내 시장을 지배했다. 이 대표는 오기가 생겼다. ‘국내 브랜드가 해외 브랜드와 경쟁할 수 있는 국내 가전제품 시장의 라인업을 새롭게 그려보자’라는 오기. ‘대구 토종 브랜드로 승부를 걸어보자’. 오기는 다짐이 됐다.그가 가장 먼저 한 것은 유통구조의 변환. 기존의 전통적인 경로를 통한 제한적인 유통 방식으로는 1990년대 후반부터 빠르게 변화하는 유통환경의 변화를 따라 갈 수 없기에 당시 막 생겨나기 시작한 이마트, 홈플러스 등 직접 유통채널과 직거래를 시작한 것.보국전자는 이를 통해 시장 트렌드를 직접 읽으면서 단순 제조업의 한계를 벗어나 제조, 연구개발, 마케팅, 디자인까지 겸비한 소형가전 전문브랜드로서의 기반을 갖추게 됐다. 또 할인점, 백화점, 양판점, 재래유통, 온라인쇼핑몰 등 각각의 시장 특성에 따른 상품 개발로 ‘보국’ 브랜드의 전문성을 확장시켰다.이 대표는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국내 소형가전제품 브랜드가 잘 없고 경쟁력 역시 미약할 때라 연구개발을 통한 제품 개발과 브랜드 인지도 향상에 힘을 쏟던 시기였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젊은 보국…따뜻한 기업으로” 전문 유통점과의 직거래를 통한 소비자의 트렌드를 분석은 곧바로 차별성을 띈 제품 개발로 이어졌다.차별화된 디자인 개발을 위해 이 업체는 외부 직원 영입과 자체 연구소를 통한 R&D(연구개발)에 힘을 쏟았다. 최근에는 다양한 정부기술 과제개발과 국내외 R&D 업체와의 공동 기술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또 선진화된 기술의 상용화를 통해 매년 다수의 신제품을 개발해 현재 200여건 이상의 지적재산권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디자인 개발과 인재교육에 순이익의 10% 이상을 매년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있다.이같은 투자와 노력은 빛을 발했다. 수출유망 중소기업 지정(2002), 전기제품안전관련 지식경제부 장관상 수상(2008), 대구시 스타기업 선정(2010), 우리지역 일하기 좋은 기업 선정(2011), 디자인진흥원 GOOD 디자인상 수상(2007ㆍ2009ㆍ2011)의 성과를 이룬 것이다.최근에는 환경가전에 눈을 돌리고 있다. 2008년부터 이미 환경가전 사업부문에 집중 투자해 공기청정기, 제습기, 가습기, 온수매트와 같은 신규제품 개발에 나서고 있다. 이러한 제품들의 기술력과 디자인을 인정 받아 삼성전자 등 대기업과의 ODM(Original Developmentㆍ제조자 개발생산)을 통해 안정적 재무구조를 갖췄다.보국전자의 환경가전은 현재 러시아와 유럽, 대만, 미주 등으로의 수출이 활발히 진행 중이다. 이를 통해 올해 목표치를 웃도는 450억원 이상의 매출을 달성했다.이 대표는 “‘젊은 보국전자’를 모토로 내년에도 자사 브랜드의 인지도를 높이고 해외 수출 역량 강화에 온 힘을 쏟아 대구 향토기업으로서의 제 몫을 다하고 싶다”며 “특히 겨울철 필수품인 전기장판과 같이 대구시민들에게 따뜻한 온기를 주는 기업으로 거듭 나겠다”고 말했다.남승렬 기자 pdnamsy@idaegu.com 지역 향토기업 보국전자는? 보국전자는 국내 소형가전제품 시장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업체로 손꼽힌다. 사진은 보국전자 현장직원이 에어워셔 제품에 대한 최종 외관검사와 포장공정을 하고 있는 모습(왼쪽)과 전기요의 전열 접속기를 부착하는 작업 모습. 대구에 기반한 향토기업으로 전국 2천여개의 매장에 150여 품목을 제조, 납품하고 있는 기업이다. 가정용 전열기기와 소형가전을 전문적으로 생산해온 기업으로 주력 품목은 전기요, 전기매트, 전기장판. 최근에는 환경가전, 소형가전, 헬스케어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국내 동종업체로는 부산의 ‘쿠쿠’, 경기도의 ‘한일’, 인천의 ‘웅진’ 등이 있으나, 국내 가전 브랜드 중 대구의 보국전자가 가장 탁월한 시장 침투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0년 대구시 스타기업 인증을 통해 대구지역을 대표함과 동시에 제조와 유통을 겸비한 대표 브랜드로써 명성을 얻고 있다. 특히 지난 10월 대구시 중소기업대상에서 최우수기업으로 선정됐으며 올해부터 제습기와 같은 환경가전제품의 생산라인 확대로 러시아ㆍ스위스 등 수출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또 매년 순이익의 10% 이상을 R&D(연구개발)에 투자해 기술력과 디자인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설립연도는 1999년, 직원 수는 100여명으로 대표적 강소기업으로 꼽힌다.남승렬 기자 pdnamsy@idaegu.com

사출·금형 엔지니어링 중견기업, 연 매출 1천억 ‘정조준’

김천시 개령면에 있는 (주)미래는 앞선 기술경쟁력과 사업 다각화, 과감한 투자에 힘입어 2015년 1천억원, 2016년 2천억원의 매출을 자신하고 있다. (주)미래 곽청열 대표이사가 영세기업으로 시작해 14년여만에 중견기업으로 성장시킨 비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중소기업은 현실에 안주하며 방어만 할 경우 번번이 실패합니다. 공격적인 투자만이 중견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옵니다”직원 1명뿐인 영세기업으로 시작해 14년여만에 매출 1천억원을 눈앞에 둔 중견기업으로 성장시킨 40대 기업인이 있다. 김천시 개령면에 있는 (주)미래 곽청열(47) 대표이사가 그 주인공이다.곽 대표는 사출, 금형 엔지니어에서 글로벌시대 세계 경제흐름과 기업전망, 신성장 가능품목을 꿰뚫어 보며 과감한 투자로 근로자 280명의 중견기업으로 급성장시켰다.(주)미래의 사업 분야는 프린터 부품(토너 카트리지 부품), 커넥터(자동차 전장 부품), 2차 전지(전기자동차 부품), 라이팅(자동차 RCL/LPL) 등이다. 2차 전지 사업은 고유가로 인한 시장 확대로 연간 300억원 매출, 커넥터 사업은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꾸준한 수요가 발생해 연간 300억원 매출, 라이팅 사업은 현대기아차의 꾸준한 시장 확대로 지속적 매출이 증가해 연간 400억원 매출 등 오는 2015년까지 매출 1천억원, 2016년부터 2천억원의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명실상부한 중견기업 (주)미래의 급성장은 곽 대표의 26년간 기술축적으로 기술 우위를 확보하고 있는데다 다량의 사출 성형기는 물론 소형에서 중대형 사출기 보유로 정밀 금형 유지보수 능력 등을 고루 갖추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또 3차원 공구 현미경으로 정밀 제품 측정이 가능하고 숙련된 사출 금형 기술자 확보는 물론 금형, 사출, 조립의 일관된 업무 진행과 해외 현지법인 진출로 해외 생산 가능, 장기근속자 비중이 높아 기술 전수가 용이한 것도 회사의 성장을 이끌었다.곽 대표는 지난 1999년 플라스틱 성형 전자부품 제조회사를 설립, 2002년 법인 전환과 함께 김천시 남면 공장으로 이전한 후 2009년 김천시 개령면 양천리 공장으로 이전해 부지 1만6천여㎡에 연건평 1만1천여㎡ 규모로 공장을 신축했으며 추가로 올해 4천여㎡의 부지를 확보해 공장을 증축 및 증설했다.주요 보유설비로는 사출기 93대(50t-700t), 조립라인 12라인, 금형설비 10대와 시험 장비를 보유하고 있으며 삼성토탈(주) 등 3개 업체로부터 원료를 매입해 자동차 부품과 2차 전지 등을 생산하고 있다.생산된 제품은 현대자동차 1차 협력업체인 타이코(TYCO), 현대IHL, 현대모비스, 아트라스BX 등에 납품하고 있으며 우수한 기술력에 의한 고품질로 호평을 받고 있다.또 신성장 산업인 2차 전지사업을 선점하는 등 자동차 부품의 지속적인 수요 증가와 더불어 기업의 발전을 기해 오는 2015년 기업공개를 계획하고 있다.올해 초 사업장을 증설, 직원을 170명에서 280명으로 늘리고 지역 고용창출과 경제 활성화에 한몫을 하고 있다. 내년 초까지 400명으로 증원하는 계획도 세우고 있다.(주)미래는 지난 2005년 설립한 중국현지법인에서 프린터 부품을 생산, 삼성전자로 납품하고 있는데 직원 수만 500명에 이른다. 이 회사는 지난 2011년까지 직원 120여명이 프린트 부품을 생산했지만 삼성전자가 지난해 3월 국내생산을 종료하고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함에 따라 자동차 부품 분야로의 비중을 확대, 120여명의 직원 모두를 자동차 부품 생산 현장에 투입했다.자동차 부품 분야의 사업 초기에는 다소 부족한 기술력으로 인해 80억원 이상이 투입된 업종전환에서 30억~40억원의 손실이 발생하는 등 중소기업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손실이었지만 직원들이 솔선해 상여금 등을 반납하고 회사 살리기에 나섰다. 곽 대표는 이 같은 직원들의 애사심에 놀라움과 감사한 마음을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올 한해 동안 130억원을 투자한데다 내년에는 구미공장에 100억원, 설립 중인 옥천공장(자동차 헤드 커브)에 200억원을 투자할 예정인 이 회사는 지난해 매출액이 400여억원에 그쳤지만 2016년에는 매출 2천억원을 자신하고 있다.(주)미래의 과감한 투자는 축적된 기술 노하우를 통한 사업의 다각화로 자동차 핵심 전장 부품인 커넥터 생산, 2차 전지 시장 배터리 셀 사출 신규 진입으로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했기 때문이다.또 중대형 사출기 보유로 고객의 다양한 수요에 부응하고 업무 진행의 일관성은 물론 신사업의 조기 안정을 통한 매출의 극대화로 지속적 성장 토대를 마련하고, 중견기업으로의 안정적인 진입(기업 공개)과 급변하는 글로벌 사업 환경에 대처하며 다국적 기업 거래와 미래 핵심역량을 높이기 위해서다.회사 위치가 김천혁신도시와 인접한데다 경부고속도로 동김천 나들목 개통으로 접근성이 좋아 물류비용이 크게 절감되고, 대구 및 경주 소재 거래처 납품시간 단축은 물론 김천, 구미, 선산 중간지점에 위치해 있어 15분내 이내 거리로 인원 수급이 좋은 장점이 있다. 신속한 품질 대응은 물론 관리비 감소로 원가 절감과 탄력근무제도 도입이 가능해 글로벌 인재 육성과 김천시의 적극적인 행정지원도 받을 수 있다.내년 초에는 직원 150명을 증원해 지역의 우수한 젊은 인재 육성과 지역 산학 협력을 강화하고 지역협력업체 거래 활성화로 협력업체 고용증가는 물론 지방세수 확보에도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엔지니어 출신의 성공기 충북 괴산군이 고향인 곽 대표는 사출, 금형 엔지니어 출신으로 경기도 안산에서 동종 업계에 근무하다가 지난 1992년 김천의 한 프린트 부품 생산공장 대표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총괄과장으로 부임했다. 당시 28세. 수년 뒤 그는 자신의 회사 설립을 위해 전 재산 2천만원을 투자, 김천시 신음동에 공장을 임대해 사출기 3대를 구입하고 직원 1명과 함께 프린트 부품 생산을 시작했다.회사 사정이 조금씩 나아지자 김천시 남면 혁신도시 3천여평의 부지를 매입해 공장을 신축했고 구미에도 4천900여㎡ 부지에 공장을 신축했다. 또한 중국에 현지법인을 설립해 가동하면서 2009년에는 김천시 개령면에 1만9천여㎡의 부지로 확장 이전, 현재에 이르고 있다.프린트기 부품만 생산하던 곽 대표는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2010년부터는 전장부품인 커넥터를 비롯한 자동차 부품으로의 비중을 과감하게 늘려나갔다.현재는 주 납품처가 된 타이코가 물량폭주로 인해 거래처를 찾던 중 곽 대표에게 자동차 부품 생산을 제의했으며, 이에 80억원을 투자해 생산설비를 갖추고 타이코 측의 적극적인 기술지원도 받았다. 곽 대표의 자동차부품 신화는 이렇게 시작됐다. 2011년에는 전기자동차 베터리 셀 사업을, 지난해부터는 자동차 라이팅 사업부문도 시작했다.(주)미래의 핵심 경쟁력은 자동차 핵심전장부품 커넥터 생산과 2차 전지 시장 베터리 셀 사출 신규 진입으로 차별화된 경쟁력 확보, 프라즈마 진공 융착 기술과 노하우 축적에 있다.만약 자동차부품 생산에 도전하지 않았다면 구미 삼성전자의 중국 이전으로 (주)미래는 큰 위기를 맞았을 것이다.실제로 김천지역에 프린트기 부품을 납품하던 10여개 업체가 현재 문을 닫았거나 규모를 줄여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곽 대표는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진입할 수 있는 정부 정책과 여건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또한 “중소기업도 대기업과 거래하다가 중도포기하거나 눈치만 보며 투자를 꺼리고 있다”며 “공격적인 투자만이 중견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곽 대표는 (주)미래의 지속성장 전략으로 첫째 글로벌 경영 가속화를 위해 해외 지원체제 구축, 고객사와 해외 동반 진출, 글로벌 인재 육성, 해외공장의 현지화, 둘째 지속적 신사업 진출을 위해 시장조사 및 M&A로 부족역량 강화, 연구개발 역량 강화, 경영컨설팅 강화 셋째, 고객감동 실현을 위해 지속적 품질개선, 고객 불량 제로 실현, 고객의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 넷째 인재 중시를 위해 근로자 복지증진, 지속적 교육으로 핵심인재 육성, 탄력 근무제도 도입, 가족친화 기업 정착을 꼽았다.안희용 기자 ahyon@idaegu.com

과학 싫어했던 경제학도, 엔지니어링 회사를 키우다

아진엑스텍에서는 고속정밀기계에 쓰이는 전자제어칩 등 개발한다. 연구실에서 직원들이 부품을 살펴보고 있다. 엄창현 기자 taejueum@idaegu.com 현재 아진엑스텍은 기계의 고속정밀제어에 필요한 전자제어칩을 개발하고 있다. 전자제어칩 시장은 전 세계에서 3개국, 7~8개 회사가 참여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아진엑스텍이 유일하다. 전자제어칩 시장이 다변화되면서 매출은 설립 초기 8천300만원에서 현재 200억원으로 수직상승했으며, 최근 코넥스 1호 기업으로도 상장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그는 “주변의 많은 공학도가 내가 한 일을 보고 놀라워 한다”며 “돌이켜보면 무모할 정도의 열정과 패기가 있었다. 내가 경영학도가 아니라 공학도였다면, 그들처럼 내가 해낸 일에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 예상했다면 차마 시도하지 못했을 무모함이었다”고 말했다. 야심차게 시작했지만, 예상대로 창업 초기 엔지니어링은 그의 발목을 잡았다. 김 대표는 “보통 설립 초반에는 회사 대표가 거의 모든 일을 다 처리하게 마련인데 (내 경우는) 엔지니어링도 포함됐다”며 “직접 엔지니어링을 할 수는 없어도 개념을 알고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결국 새벽시간 컴퓨터 학원을 등록해 C언어부터 아트워크까지 엔지니어링에 필요한 기초를 배웠다. 그는 “나중에는 내가 1부터 10까지 맡아야 한다는 생각이 틀린 걸 알게 됐지만 이 기간 배운 것들이 엔지니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풀어놨다. 왜 개발비가 많이 드는지, 왜 (기획 때와 달리) 성능에 차이가 생기는지, 개발 날짜가 늦어지는지 등에 대한 고충을 이해하게 됐다고. 그는 “특히 엔지니어에겐 소비자의 기호와 달리 자신이 개발하고 싶은 것 위주로 생각하는 소위 자아도취적인 면이 있는데, 바로 이런 부분이 없으면 매일 밤늦게까지 연구하는 자발적인 성취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을 이해하게 됐다”고 웃었다. 전문기술에 대한 이해와 함께 자금 조달도 고민거리였다. 김 대표는 “당시 벤처기업은 자본금이 떨어지는 순간 끝나는 거였다”며 고개를 내둘렀다. 기술개발은 직원에게 맡기고 자금을 모으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녔다. 낡은 구두로 문턱을 넘나드는 일에도 부끄러움은 없었다고 했다. 기술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 번은 기술신용보증기금에서 보증을 받아야 했는데, 자격 요건 부분을 조절하려고 한 관계자를 25번 찾아갔더니 나중엔 저를 보고 도망가는 해프닝도 있었죠” 노력을 거듭한 끝에 국책사업도 많이 따냈다. 공업기술개발 관련 국책사업은 통상 대기업이 수행하는데, 설립 당시 직원 5명인 상황으로 연구개발비 프러포즈를 성공한 것이다. 국책사업을 성공적으로 끝내면서 개발 과정은 조금씩 순조로워졌다. 김 대표는 “자금조달이나 시장조사는 내 역할이었다. 엔지니어링을 이해하면서 내가 직원을 위해 뭘 할 수 있는지, 뭘 보완해야 하는지 알게 됐다”며 “공학이 기초과학과 일반산업을 연결해주듯 비즈니스를 기반으로 경영학과 기초과학을 조화시킨 셈이다”고 덧붙였다. ◆월드클래스 300 목표 당초 아진엑스텍은 천안 일대로 이전하려 했지만, 2000년께 소프트웨어 기반 환경 조성을 위해 지역 기업인을 스카우트한 대구시의 요청을 받아들여 성서산업단지에 자리 잡았다. 그는 “지금은 그 결정에 만족하고 있다”며 “성서단지는 저렴한 임대료 외에도 디지털 집적화 환경이 가장 매력적인 점이다”고 말했다. 아진엑스텍이 개발하는 전자제어칩은 관련 정보와 트렌드를 공유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컴퓨터칩에는 크게 연산을 담당하는 CPU, 저장을 담당하는 메모리, 그리고 특수분야에 적용되는 ASIC 3종류가 있다. ASIC는 다시 동영상 중심의 멀티미디어, 통신, 제어칩으로 나뉘는데, 아진엑스텍의 주력은 이 제어칩이다. 제어칩은 반도체장비를 중심으로 탱크나 항공기, 의료기기 등 고속정밀한 움직임이 요구되는 기계에 쓰인다. 기계, 전자공학, 통신, 소프트웨어, 수학 등 모든 분야가 필요하며 장비에 대한 현장ㆍ개발경험도 필요해 직접 개발하는 회사가 드문 블루오션이다. 김 대표는 “제어칩은 디스플레이부터 스마트폰, 카메라 검사장비, 바이오장비 등 현재 46개 시장이 있다”며 “앞으로의 로봇시대와, 아직 개방되지 않은 솔라셀 시장을 고려하면 더욱 수요가 많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근 그의 업무는 더욱 많아졌다. 아진엑스텍이 코넥스에 상장되는 등 활발한 행보를 하는 가운데 코넥스협의회장직도 맡았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7월 코넥스 1호 상장기업 21곳 가운데 19곳이 수도권 기업이었다”며 “지역기업들은 앞서 시장 흐름을 분석하고 다양한 정보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 함께 성장하는 SW기반을 위해 찾아가는 서비스(설명회)를 할 생각이다”고 기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의 목표는 우선적으로 외국산 제어칩이 70% 가까이 되는 국내시장 비중을 늘리는 것이다. 3년 내 평균 매출액 500억원 수준인 월드클래스 300 진입하는 것도 목표 중 하나다. 그는 “다가올 로봇시대에 전문 부품기업으로 발돋움하겠다”며 “외형보다 메카트로닉스를 전문으로 하는 강소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집중하고, 회사와 직원이 함께 공유하는 기업이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정혜윤 기자 hyeyoon@idaegu.com

매출 10억에서 600억으로…실력있는 ‘을’의 반란

유지인트 내부 전경. 유지인트는 수치제어(NC) 공작기계인 머시닝센터를 개발ㆍ양산하고 있다. 농경시대 수탈에서부터 21세기 대기업의 횡포까지, 소위 ‘갑질’의 형태는 다양했지만 ‘을보다 높은 갑’이라는 구조만은 변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최근 남양유업에서부터 CU편의점 등 대기업의 불미스러운 갑질이 매스컴에 공론화되면서 우리 사회는 갑을논쟁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관례적으로 받아들여졌던 갑을구조가 ‘논쟁거리’가 된 것이다. 심지어 판세를 뒤집는 구조도 나타났다. 갑보다 높은 변종, ‘실력있는 을’의 존재 때문이다. 실력 있는 을은 갑들의 러브콜을 고른다. 기술력과 자체 브랜드를 바탕으로 소신있게 판단을 밀고 나간다. 대기업이 제시하는 상생의 길을 걷기 전에 스스로 상생의 길을 트고, 또 다른 을에게 모델이 되기도 한다. 희귀한 변종은 우리 사회를 건전하게 만드는 백신에 다름아니다. 이 가운데 공작기계기업인 유지인트도 포함돼 있다. 매출 10억원으로 출발해 600억원 규모로 성장하는 동안 한번도 자체 브랜드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대기업에 납품하는 하청으로 출발했음에도 기술에 대한 자부심은 놓지 않았다. 유지인트는 현재 독자 브랜드(UT series)로 미국과 브라질, 중국 등 해외에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이현우 유지인트 회장은 “지금까지가 준비기간이었고, 이제 본궤도라고 생각한다”며 “2022년까지 매출 5천억원, 머시닝센터 분야 세계 3위의 기업으로 도약하겠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위’로 올라가고 싶었던 청년 5일 성서4차단지에 있는 유지인트 본사에서 만난 이현우 회장이 중소기업의 홀로서기에 필요한 조건을 꼽고 있다. 그는 “중소기업 스스로 자산과 기술력을 길러야 한다”며 무채경영을 강조했다. 유지인트를 번듯한 기업으로 키운 이현우 회장은 “그러나 설립 초기에는 거의 도박과도 같았다”고 회고했다. 유지인트의 전신인 다사기계를 설립하기 위해 그 당시 탐나는 기업 1순위였던 대우중공업을 박차고 나왔던 것. “대우에서 글로벌 인재경영 전략을 펼치면서 젊은 인재를 많이 모집했어요. 주위를 둘러보니까 나보다 똑똑한 사람이 너무 많더라고. 문득 ‘이런 조직에서 내 미래는 어떻게 될까’하는 생각이 들었죠” 유 회장은 “특출난 재주가 없는 이상 꿈을 이루려면 조직생활이 아니라 다른 길을 선택해야 한다고 판단했다”며 “그래도 워낙 (직장이) 아까우니까 주변에선 미쳤냐는 소리도 많이 했다”고 웃었다. 뜻을 꺾지 않은 그는 결국 1987년 대우에 퇴직서를 내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어떤 아이템을 가지고 성공할 수 있을지 시험하는 동안 ‘공작기계’에 주목했다. 자동차 부품 등 부품 하나만 전용으로 다루는 전용기계였다. 그는 “아파트 전월세에 퇴직금까지 모아 회사를 차렸다”며 “돌이켜보면 참 무모했었지만, 내 상황이 넉넉했으면 과연 그렇게 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그렇게 설립한 ‘다사기계’에서는 자동차 라인전용기계를 개발해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 해외공장에 납품했다. 주변의 우려와 달리 운영은 순조롭게 풀려나갔다. IMF 위기에 대우가 워크아웃 당했지만 뚝심으로 버텼다. 힘든 시기임에도 새로운 제품에 대한 개발 의지는 더욱 뜨거워졌다. 그는 “93년 즈음부터 연구개발의 필요성이 느껴졌다. 특성화제품인 전용기계보다 일반 소비자들도 활용할 수 있는 머시닝센터에 대한 수요가 더 많을 것이라고 예상해 연구개발실을 따로 차렸다”며 “IMF 때도 머시닝센터 개발과 함께 더 나은 기업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고 말했다. 머시닝센터는 공작물을 한번 설치하면 각 공정에 필요한 공구를 자동으로 바꿔가면서 가공하는 수치제어(NC) 공작기계로, 당시 일본에서 세계시장의 80% 가까이 석권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를 필두로 전 직원이 머시닝센터에 ‘올인’했다. 일본에 대응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자는 목표를 세웠다. 기계 옆에 자리 잡고 밤샘도 마다하지 않았다. 첫 머시닝센터 개발에 10개월이 걸렸다. ATC(자동공구교환장치), 스핀들 등 핵심 부품도 차례로 개발에 들어갔다. 희망은 끊임없이 회사를 키웠다. 2001년 성서 2차단지 임대공장 150여평, 2002년 성서 3차 단지 공장 750여평, 2004년 다시 성서1차단지에 600여평의 새 공장을 세우면서 규모도 지속적으로 늘었다. 2002년 APC 타입 머시닝센터의 양산에 들어가면서 2004년에는 두번째 신규법인인 이노메카텍을 설립했다. ◆“실력으로 승부하겠다” 신규법인을 세운 것은 그때까지 거래하던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에 더해 현대위아의 거래를 새로 맡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실력있는 을이 된 셈이다. 서로 다른 원청 주문을 받지 않는 관례상 새 법인을 만들었지만 2008년 두산인프라코어와 결별하게 되면서 이같은 투톱 체제는 사라지게 된다. 결별의 가장 큰 이유는 생산방식의 갈등이었다. 이 회장은 “당시 대우종합기계를 두산에서 합병하면서 기존 오디엠 방식을 오이엠 방식으로 바꿔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고 설명했다. 오디엠(ODM)은 개발력을 갖춘 제조업체가 판매망을 갖춘 유통업체에 상품을 제공하는 생산방식이고 오이엠(OEM)은 원청의 주문대로 제작만 하는 주문자 상표부착방식을 일컫는다. 오이엠 방식에서는 개발자가 끼어들 여지가 없어 자체 기술력을 기르기 어렵다. 그는 “한때 대우에서 근무하기도 해서 친정 같은 마음이었고 주문량도 상당했기 때문에 수익 면에서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며 “하지만 오디엠 방식을 포기할 수 없었다. 현재까지도 오디엠 방식을 고집하는 것은 이 업계에서 우리뿐”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그는 두산 납품비중이 높았던 다사기계를 이노메카텍과 병합해 유지인트로 다시 출발했다. 2006년 성서4차 단지에 현재의 공장을 세우고, 2007년 중국 산동성에 중국 법인을 세우면서 세계 진출의 발판도 닦았다. 제2의 성장기에 접어든 것이다. 이 회장은 “2009년 독자브랜드 개발에 성공하면서 생산량 확보에도 힘썼다”고 말했다. 아이폰 붐이 일던 때 애플에 납품할 수 있었던 것도 생산량 확보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는 “애플은 월 생산량이 최소 400대가량 되야 발주하는데 국내에서 이 정도 규모가 가능한 것이 우리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차세대 기술 개발 추진 중소기업으로서 홀로서기에 성공한 그는 무엇보다 ‘무채 경영’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2008년 두산과 결별 시 가장 크게 느낀 것이 어음할인 등의 부채가 없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만약 그 당시 부채가 있었다면 운영자로서 수익을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 뒤로 빚 없는 무채 경영을 하자는 것이 신조가 됐다”며 “이는 경영뿐 아니라 자신감에서도 홀로서기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원청ㆍ하청 구조가 상생을 이루기는 사실상 어렵지만, 그것이 가능케 하려면 스스로 자산과 기술력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은 자체 브랜드를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며 “차세대 기술로 의치 관련 의료기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언듯 접점이 없을 것 같은 분야지만, 공작기계를 응용하면 기공소가 아니라 치과에서도 곧바로 의치를 가공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기술개발과 함께 생산공장도 더 넓힐 예정이다. 유지인트는 테크노폴리스 5만여㎡ 부지에 생산공장을 세우기 위해 5천만달러를 유치했다. 내년 10월 준공되면 월 600대까지 생산규모가 늘어 머시닝센터 세계 3위까지 도약할 수 있게 된다. 그는 “중국 쪽에서도 저가형 시장을 공략해나갈 예정이다”며 “앞으로 우리 회사의 에너지원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젊은 에너지를 쏟아내고 있는 유지인트는 모토도 ‘젊은 기업’이다. 직원 평균나이는 30대 초반. 아파트 자금 지원, 자녀 학자금 전액 지원 등 알찬 복지혜택으로 초창기 멤버의 기술경영력을 유지하고, 젊은 인재들에게 문을 활짝 연 것이 성장세를 뒷받침했다. 그는 “무엇보다 젊은 인력이 소속감을 느끼고 미래에 대한 비전을 함께 꿈꿀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뭔가 이룰 수 있는 회사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머시닝센터를 잘 승화시켜 직원들이 우리 회사에 젊음을 바친 것을 후회하지 않도록, 자부심을 갖게 하는 것이 목표다”고 포부를 밝혔다. 정혜윤 기자 hyeyoon@idaegu.com

청년 연구원, IMF 딛고 40대 CEO로 거듭나다

대구시 달성군 논공공단에 위치한 삼우기업 본사 전경. 이 기업은 복합재료 전문기업이다.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무너지는 경제와 더불어 무너졌던 그 시대 아버지들의 어깨. ‘IMF’와 ‘아버지’라는 말은 묘한 연상작용을 일으킨다. 처절하게 아픈 시대상황 속에서 더욱 아름답게 부각되는 가족애. 역설과도 같다.외환위기는 청년의 아버지를 힘들게 했다. 어렵게 일궈온 회사의 경영난이 가중될 때 아버지는 아들에게 ‘구조요청’을 했다. “회사에 와서 나를 좀 도와줄 수 없겠느냐”고.IMF 환란과 아버지의 요청. 이 두 가지는 국책연구기관에서 공부에 힘을 쏟던 20대 청년을 사업가의 길로 이끌었다.아버지가 설립한 기업은 1997년 한국경제의 근간을 뒤흔든 IMF 외환위기 전까지만 해도 자동차부품 제조업체로 튼실한 기반을 잡고 있었다. 1979년 LG화학의 계열사인 럭키화이버글라스의 유리섬유 스크랩을 활용해 유리섬유 매트를 만들게 된 것은 그 시작점이었다. 이후 자동차 소음을 줄이는 소재인 ‘흡음재’ 등을 생산하는 차부품 제조업체로 지역은 물론 전국적으로 명성을 쌓기 시작했다.88서울올림픽 특수로 호황이었던 1988년. 품질에 관한 한 까다롭기로 유명한 일본의 도요타자동차에도 헤드라이닝 원재료를 납품해 제품의 질을 일본시장에 알렸다.승승장구할 것만 같던 부친의 기업도 한국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준 IMF를 비켜가지는 못했다. 대기업, 중견ㆍ중소기업 가릴 것 없이 외환위기 여파로 몸살을 앓던 1998년, 아버지는 청년에게 회사를 위해 일해 달라고 했다.그때 그는 대전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서 응용물리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중. 당시 청년은 인공위성 우리별2호에 들어가는 렌즈를 개발하는 연구작업에 한창이었다. 흥미가 있는 일이었고 자신감도 충만했다. 그런데 갑자기 회사 경영이라니…. 그것도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던 자동차부품 제조업이라니….갈등은 시작됐다. 결론은 ‘IMF로 무너져가는 아버지의 어깨를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해 4월 짐을 챙겨 대구로 내려왔다. 그의 나이 29세, 아버지의 회사 삼우기업의 품질관리팀 주임으로 입사했다. 작은 것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밑바닥’에서 시작한 청년은 입사 당시 100억원 가량이었던 회사 매출을 지난해 1천억원대로 신장시켰다.◆현장부터 익힌 2세 경영인 김준현(44) 삼우기업 대표. 그는 2세 경영인이다. 외환위기로 우리나라 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지던 1998년 4월 부친의 권유로 입사했다. 12년간 주임과 대리, 계장 등을 맡으며 현장업무를 두루 익힌 그는 지난 2010년 CEO(최고경영자)에 올랐다. 대구지역 젊은 CEO의 경영 가치관은 어떤 것일까. 삼우기업과 그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지난달 31일 대구시 달성군 논공공단에 자리한 삼우기업 본사를 찾았다. “2010년 41세라는 젊은 나이에 대표라는 무거운 자리를 맡아 부담되기도 했지만, 2세 경영인이라는 점이 오히려 유리했던 측면도 있었습니다. 물론 크고 작은 어려움은 말로 할 수 없겠지만 경영 노하우를 축적하신 아버지께서 든든한 버팀목이 돼 주시고, 아낌없는 조언을 해주시는 등 멘토 역할을 해주셨습니다” 김 대표가 지금까지 회사 경영에 참여해 오면서 느낀 소회다. 그는 “부친 때부터 다져진 노하우 덕분에 삼우는 그동안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뤘다”며 “특히 사업규모 확장과 질적 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했다”고 했다. 김 대표는 “삼우는 산업용 섬유ㆍ복합재료 전문업체인데 산업용 섬유가 자동차, 우주선 등의 첨단부품과 결합되면 엄청난 시너지효과를 발휘하게 된다”며 “산업용 섬유에 대한 투자와 R&D(연구개발)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섬유, 나로호와 만나다 삼우기업은 산업용 섬유에 대한 지속적 투자와 연구개발에 힘을 쏟아왔다. 이같은 노력과 땀은 올해 초 결실을 보았고, 삼우기업은 전국적 유명세를 탔다. 올해 1월 한국 첫 우주발사체인 나로호 2단 로켓에 장착한 고압가스 저장용기(자세제어용 탱크)를 공급, 대구의 섬유기술을 널리 알린 것. 김 대표는 “삼우기업의 계열사인 이노컴이 고강도 슈퍼섬유로 만든 섬유강화복합재료(FRCM)를 개발해 나로호 부품 제작에 참여해 왔는데, 나로호 발사가 성공적으로 이뤄지면서 그 결실을 맺게 됐다”며 “굵기 약 0.5mm의 원사 형태의 FRCM을 촘촘히 감아 제작한 이 부품은 나로호가 2단 분리될 때 목표지점까지 날아가도록 돕는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현재 삼우기업은 산업용 복합 섬유제품의 국산화를 위한 기술개발과 더불어 해외시장을 노크하고 있다. 특히 해외시장 진출은 김 대표의 오랜 숙원이기도 하다. 해외법인으로 이미 중국 북경과 상해 등에 2개의 제조공장을 두고 있다. 특히 올해는 슬로바키아에 현지법인을 설립하는 등 유럽시장 진출에도 힘을 쏟고 있다. 김 대표는 “유럽시장 진출을 위해 독일 프랑크푸르트 전시회, 슈투트가르트 유럽 자동차부품 엑스포 등 해외 행사에 지속적으로 참가해 외국 정부와 기업들을 상대로 전략적인 마케팅 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아실현적 가치경영이 꿈” 삼우기업의 이같은 공격적 마케팅과 연구개발 투자는 신성장동력 확보와 함께 급속한 매출신장을 불러왔다. 2011년 804억원, 지난해 1천30억원을 기록했으며, 올해는 1천200여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오는 2015년에는 1천500억원을 달성하는 게 목표다. 삼우기업의 고속성장 배경에는 ‘기술자립화’ 경영이 밑거름으로 작용했다. 이 회사는 지속적인 연구개발 투자로 기술적 수준을 한 단계 높인 첨단 부품소재 개발에 성공, 선진국 독점시장의 벽을 허무는 데 성공했다. 대표적 제품이 자동차용 흡음ㆍ단열재와 풍력블레이드용(풍력발전기 날개) 강화직물 등이다. 자동차용 흡음ㆍ단열재는 자동차 엔진 룸 내부 및 자동차 배기 시스템에 장착돼 차량주행 중 발생하는 소음을 저감시켜 주며 차량의 내구성을 높여주는 섬유제품이다. 삼우기업은 이 제품을 자체개발해 독점 공급하고 있다. 풍력블레이드용 강화직물은 고기능성 섬유를 활용한 제품이다. 삼우기업은 2009년 신재생에너지 기술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다축비굴곡 강화섬유직조기술개발’을 추진, 국내 최초로 독일 국제인증기관인 GL(Germanischer Lloyd)로부터 인증을 받아 선진국이 기술이전을 꺼리는 첨단산업 부품소재의 국산화를 실현했다. 김 대표의 최근 화두는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철학자인 매슬로우의 ‘욕구5단계’다. 그는 “생리적 욕구와 안전 욕구 등 하위욕구만으로는 자아실현을 이룰 수 없다. 기업경영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데, 절대빈곤의 시대가 지난 지금, 물질적 만족만으로는 진정 가치 있는 기업경영을 했었노라고 단언할 수 없다. 이익창출뿐만 아니라 직원 복지와 사회공헌 등에 눈을 돌려 ‘자아실현적 가치경영’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남승렬 기자 pdnamsy@idaegu.com 2세 경영인인 김준현 삼우기업 대표의 최근 화두는 ‘자아실현적 가치경영’이다. 이를 통해 사회공헌 활동에 적극 나선다는 것이 그의 계획이다. 김 대표가 자신의 사무실에서 기업인의 길로 들어선 배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진홍 기자 작지만 강한 삼우기업은? ‘작지만 강한 기업’으로 통한다. 1970년 설립돼 섬유기계 제조에 주력하던 업체 ‘삼우공업사’가 모태다. 이후 1979년 업종 전환을 통해 자동차부품 업체로 거듭났다.계열사를 포함해 총 580여명의 직원을 뒀으며 지난해 매출 1천억원대를 돌파했다.이같은 성과 등으로 대구시 '스타기업'에 선정된 우수업체다. 엔진 부문의 흡ㆍ차음 단열재를 주로 생산하는 이 기업은 4개 계열사와 중국과 슬로바키아 등에 해외법인을 보유하고 있다.삼우기업은 산업용 섬유를 활용한 과감한 R&D(연구개발) 투자로 다양한 아이템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특히 올해 1월 이 업체가 개발한 고압가스 저장용기가 나로호에 장착돼 우주로 비상,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남승렬 기자 pdnamsy@idaegu.com

남다른 열정으로 횡단보도 교통사고 ‘제로’에 도전한다

김덕수 대표가 지난 10일부터 나흘간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디자인코리아 2013’에 참가해 관람객에게 ‘횡단보도 조명표지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횡단보도 교통사고 제로(zero)에 도전장을 던진 업체가 있다.신개념의 교통표지판을 개발한 한국신호공사가 그 주인공이다. 영남 유일의 도로ㆍ교통시설물 제조 및 설치업체다.이 업체 김덕수(57) 대표는 인간의 행복을 추구하는 친환경기업으로, 다년간의 현장경험을 교통시설물 및 고효율 LED 교통표지판 기술개발에 나서고 있다.특히 신기술 개발을 통해 OECD 국가 중 횡단보도 교통사고율 1위라는 오명에서 벗어나 횡단보도 사고 제로에 도전하는 인간존중, 시민의 안전을 생각하는 기업으로 새로운 교통표지판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한국신호공사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교통안전 관련 글로벌 전문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 매년 매출액의 일정 부분을 연구개발(R&D)에 투자하고 있다.그 결과, 미끄럼방지 특허, 신호등 철주 관련 특허 등 기술특허 12건, 디자인등록 5건 등을 보유하고 있으며 관련 제품에 대한 추가 특허도 여러 건이 출원 중이다. 한국신호공사의 핵심작인 ‘횡단보도 조명표지판’의 경우 기술특허 2건과 디자인등록 2건에 이어 관련 특허 2건을 추가로 출원한 기술집약 상품이다.김덕수 대표는 김천시 탁구협회장을 맡는 등 다양한 지역사회 봉사활동과 불우이웃 돕기 등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데에도 남다른 열정을 보이고 있다.◆‘횡단보도 조명표지판’ 한국신호공사가 개발한 ‘횡단보도 조명표지판’은 지난 9월 한국디자인진흥원에서 산업통상자원부 주관으로 열린 ‘2013년 대한민국 우수디자인(GD)상품 공모전’에서 대상인 산업통상자원부장관상을 수상했다.횡단보도 조명표지판은 지난 10일부터 나흘간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진행된 ‘디자인코리아 2013’에 주요 품목으로 전시돼 관람객들로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특히 이 제품은 한국관에 전시된 제품 가운데 대기업의 주요 전자제품들을 제치고 강운태 광주시장을 비롯한 많은 관람객의 인기를 독차지하면서 앞으로 다른 지역에서 계획된 많은 전시회에 출품 요청도 받았다.무엇보다 국내외에서 출품된 유수의 대기업 제품 2만여점을 제치고 당당히 대상을 수상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부여되면서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지금까지의 전례로 볼 때 이러한 전시회에서는 기술력과 경쟁력이 뛰어난 대기업군에서 독식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인적자원이 부족한 지방의 작은 기업이 수상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국신호공사의 기술력은 더욱 주목받고 있다.횡단보도 조명표지판은 일출, 일몰시간에 맞춰 자동으로 표지판과 투광등이 점등해 횡단보도 전체를 일정한 조도로 투시하며, 교차로 가로등이 없는 횡단보도에 설치해 효과를 극대화했다. 이에 따라 사고 위험이 큰 야간 보행자들의 안전을 지켜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더 안전한 횡단보도 만들기 이 표지판은 시도ㆍ국도ㆍ지방도에 횡단보도 보행자가 있지만 어두워 사고시 식별이 불가능한 곳, 도로 어린이 보호구역 교차로, 가로등이 없거나 인명과 횡단보도 사고가 잦은 곳, 방범활동 및 지시표시가 필요한 곳에 설치할 경우 사고의 시시비비를 가려줄 수 있다. 야간운전시 200m 전방에서 횡단보도 및 표지판 식별이 가능하고 눈부심이 없어 운전자의 시야를 자극하지 않으며, 반영구적인 수명을 자랑한다.특히, LED투광등은 LED열을 방출하는 특수열전도 플라스틱 제품을 세계 최초로 도입해 경량화와 생산성을 극대화했으며, 지역 최초로 A/C구동 방식을 채택해 효율을 극대화했다. 기존 나트륨 투광등과 비교해 80% 이상의 전력 절감 효과를 거둘 수 있다.또한 최적화된 배광설계로 디자인한 광학기술을 적용해 역삼각형 투시력으로 반사광을 제거, 운전자의 시야를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전방 200m에서도 횡단보도 지점이라는 것을 식별할 수 있게 한다. 이뿐만 아니라 눈ㆍ비ㆍ안개 같은 악천후에서도 식별이 탁월해 운전자들과 보행자들의 안전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한국신호공사의 횡단보도 조명표지판이 기존 제품과 차별화되는 것은 부착된 카메라의 48시간 풀 저장에 있다. 교통사고 발생시 지금까지 흔히 목격됐던 운전자간 다툼의 소지를 없애는 것은 물론 교통사고 조사 경찰관들의 업무를 가볍게 해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 카메라는 도로영상을 상시 저장하며 교통상황을 재생하고 기타 다양한 정보 수집은 물론 방범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농촌지역에서 흔히 발생하는 각종 범죄 해결에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수도 있다.4년여에 걸쳐 3억여원을 투자해 개발한 이 제품이 대기업을 제치고 대상을 수상할 수 있었던 배경은 뛰어난 디자인과 함께 이러한 기능으로 인해 장애인과 어린이, 노약자 등의 사회적 약자를 배려한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교통신호기와의 특별한 인연 김 대표는 지난 1995년 고향인 김천에 한국신호공사를 설립했다. 평화동에 사무실과 작업장을 임대해 사용하다가 2000년 인근 부지를 매입, 사옥과 공장을 설립하면서 본격적인 교통관련 제품 개발에 나섰다.어릴 적부터 손재주가 뛰어나 비행기를 만들 정도의 훌륭한 엔지니어가 되겠다는 등 칭찬을 한몸에 받고 자랐다.군 복무를 마치고 기술연마를 위해 무작정 상경한 그는 동아제약에 입사, 영업부에 근무하면서 서울시 종로구 세운상가를 담당했다. 당시 김 대표는 세운상가를 하루 몇 번씩 오가며 많은 공구상들의 각종 각종 기계, 설비 제조기술을 눈여겨보며 자신의 회사 설립을 꿈꿨다. 타고난 입담과 사교력으로 2년 만에 큰 인맥을 형성하자, 컴퓨터 제조회사인 한국퍼스컴에 영업부장으로 전격 스카우트됐다.각종 컴퓨터 관련 자동제어기를 생산하던 이 회사에서 교통신호기를 생산하기 시작하자 2~3년 동안 교통신호기 개발에 매달렸다. 마침내 교통신호기 개발에 성공하면서 세운상가에서 그의 이름 석자를 널리 알렸다.김 대표는 28세의 젊은 나이에 그동안 모은 수백만원으로 세운상가에서 제일컴퓨터 엔지니어 회사를 설립, 직원 3명과 함께 본격적인 교통신호기 개발 및 생산에 뛰어들었다. 고향인 김천을 비롯한 경북지역은 물론 전국적으로 판로를 개척해 교통신호기 제조, 신화에 도전했다.김 대표는 자사의 제품이 전국적으로 알려진 후 경북지역은 물론 영남지역에 교통신호기 생산업체가 단 한 곳도 없음에 따라 고향인 김천에서의 창업을 결심하게 됐다. ◆한국신호공사의 성공신화 김 대표는 교통신호등과 도로표지판, 도로표지병(도로반사채)을 생산해 설치하는 회사를 설립해 전문회사로 발전시켜나갔다. 그동안 축적한 기술과 경험을 바탕으로 유연한 기업운영과 조직혁신을 통해 역량을 축적하며 사세를 확장시켜 나갔다.김 대표는 지속적인 기술혁신으로 지난 2007년 중소기업청에 각종 교통시설물 직접생산업 인정업체로 등록됐고, 에너지관리공단으로부터 에너지 절약형으로 성능을 인정받으면서 조달청에 납품, 전국 자치단체에 공급하기 시작했다. 이에 힘입어 시대 변화에 대응해 개발한 신기술을 바탕으로 불황 속에서도 품질경영 체계를 수립하고 숙련된 기술인력 확보를 통해 공격적인 경영을 펼쳤다.한국신호공사의 성공신화가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은 2008년 교통표지판 철주 개발과 초절전형 LED 교통신호등을 개발해 각각 특허를 획득하면서부터다. 폭풍 등 악천후로 철주가 부러지면서 대형사로고 이어지는 사례가 잦자 피해 예방을 위해 산학협력을 통해 2년여에 걸친 연구 끝에 부러지지 않는 철주 개발에 성공한 것이다. 또 기존에 설치된 교통신호등에 비해 에너지를 70% 이상 절약할 수 있는 LED 신호등 개발로 자치단체의 예산을 절감하는데 앞장섰다.이 밖에도 끊임없는 기술개발을 통해 도로변에 설치되는 펜스에 대해서도 지역 특성에 걸맞은 디자인 펜스를 고안해 의장등록을 했다. 어린이 보호구역과 인적이 드물고 차량통행이 적어 방심으로 인한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농촌지역 횡단보도에 적합한 횡단보도 신호조명등도 개발해 특허를 출원했다.우리나라의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점진적으로 감소하는 데는 김 대표와 직원 12명의 노력도 한 부분을 차지해왔다고 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안희용 기자 ahyon@idaegu.com “횡단보도 사고 OECD 1위 사명감으로 제품 개발 나서” 김덕수 한국신호공사 대표 횡단보도 교통사고 제로에 도전하며 새로운 교통표지판 문화를 만들어가는 한국신호공사 김덕수 대표. 교통안전 관련 글로벌 전문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 끊임없는 연구개발(R&D)에 나서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살인이나 강도, 성범죄 등이 발생하면 전국이 떠들썩합니다. 그러나 교통사고는 이보다 발생 건수가 수십 배에 이르고 있지만 큰 주목을 받지 못하는 현실을 답답하게 생각해 교통사고를 조금이라도 줄여 사회적 낭비를 줄여야겠다는 사명감으로 제품 개발에 나서고 있습니다”김 대표는 “적지않은 기간 교통안전 관련 업계에 종사하면서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횡단보도 교통사고가 OECD 국가 중 1위라는 사실 앞에서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며 “이는 끊임없이 연구개발에 나서고 있는 이유”라고 밝혔다.중소기업 활성화 방안과 관련, “작은 기업이 독자적인 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우리나라 여건상 어려움이 너무 많다”며 연구개발과제, 특허지원, 팸플릿 제작, 국내외 전시 지원 등의 제도가 활성화돼 있지만 소기업에서 이러한 지원을 받기에는 어려움이 많다고 설명했다.김 대표는 “우수한 기술과 높은 경쟁력의 제품을 개발하더라도 중소기업이 겪는 공통된 현상인 대중화에 많은 어려움이 뒤따른다”며 “중소기업의 우수한 제품에 대해서는 상용화할 수 있도록 정부와 지자체의 적극적인 지원과 협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안희용 기자 ahyon@idaegu.com

100% 천연소재 감미료 ‘스테비아’로 뜨는 강소기업

김경재 대표이사가 이끄는 (주)대평은 지난 1993년 천연감미료인 스테비오사이드 제조업체로 출발해 세계 초일류 천연소재 전문 생산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주)대평은 지난 1993년 천연감미료인 스테미오사이드 제조업체로 출발해 지속적인 경영혁신과 연구개발을 통해 세계 최대의 스테비아(Steviaㆍ대체감미료) 제품 생산기업으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이 회사 김경재 대표이사는 지난 1995년 상주시 함창읍 오동리 함창농공단지에 터를 잡았다. 1997년 경상북도 세계 일류중소기업으로 선정됐으며 2008년에는 무역의 날 기념 500만불 수출탑을 수상하고, 2012년에는 스테비올배당체 세계 일류상품으로 지정되는 등 급성장하고 있다.세계적인 중소기업으로 인간과 기술, 자연의 조화를 최우선 과제로 미래를 향해 힘찬 발돋움을 하고 있는 이 회사는 식품첨가물과 화장품 원료, 원료의약품을 생산해 세계시장을 선점해 나가고 있다. ◆세계 초일류 천연소재 전문 생산기업 “단맛은 있으나 칼로리는 없고 인체에 무해한 천연감미료 생산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데 착안해 100% 천연소재의 스테비아 천연감미료를 생산하게 됐습니다”김 대표는 국화과 다년생 초본인 스테비아에서 추출하고 정제해 생산되는 스테비오사이드와 생명공학 기술을 활용한 효소처리스테비아 및 고순도 감초정제품 등 고객의 요구에 부합되는 각종 식품첨가물을 생산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또한, 일반 소비자용 제품인 설탕 대용 천연감미료를 자사 브랜드인 ‘스위피아’로 시판하고 있다.김 대표는 행복과 건강을 무엇보다 소중히 생각한다.우리 주변에서 그동안 사용됐던 인공감미료인 둘친, 싸이클라메이트 등은 독성이 있고 발암 가능성이 있어서 사용이 금지됐고, 사카린은 발암의 가능성으로 제한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아스파탐은 온도가 높아지면 단맛이 줄어드는 단점이 있다. 페닐알라닌대사에 문제가 있는 사람은 사용을 제한해야 하는 문제점 등을 해결한 천연감미료가 바로 스테비올배당체이다. 이렇게 생산된 식품첨가물은 롯데칠성음료, 서울우유, 남양유업, 롯데제과 등 국내를 대표하는 26개 업체에 공급되고 있다.유용성 감초 추출물을 비롯해 AMG, DPG, SG 등의 감초 염형 제품들과 소자추출물 등의 천연식물 추출물도 생산하고 있다. 감초추출물은 항염증, 항산화, 미백 등의 효과가 탁월해 로션, 스킨, 마사지크림, 염조제 등의 원료로 사용되며, 천연 식물 추출물은 항알러지, 항염제로 사용되고 있으며, LG생명과학 등 다양한 화장품 제조회사로 판매되고 있다.고도의 천연추출물 정제기술을 바탕으로 2003년 6월 원료의약품 GBMP허가를 취득한 원료의약품 분야에서도 세계적으로 그 기술을 인정받고 있다. 원료의약품은 동아제약, 대웅제약, 보령제약 등 국내외 유수의 의학품 제조업체의 사랑을 한껏 받고 있다.더불어 B2B 분야에 국한돼온 사업 영역을 B2C 분야로 확대하기 위해 가정용 천연 감미료를 개발했으며, 2005년 자사 브랜드인 ‘참감미’ 시리즈를 출시했다. 현재 이마트 및 백화점에서 판매 중이며 2009년 브랜드를 ‘스위피아’로 바꿔 B2C 사업 강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끊임없는 연구ㆍ개발 대평은 고부가가치 사업에 역점을 둠으로써 점차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현 시장에 최고의 품질, 최고의 기술, 완벽한 고객만족을 실현하고자 한다.대평이 세계적인 우수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천연물신소재개발연구소를 통한 끊임없는 연구개발의 결과이다.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신소재 개발만이 세계시장에서 살아남고 더 나아가 세계를 석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절실히 느낀 김 대표는 1999년 보존료 관련 개발과 설탕대체 감미료 개발, 화장품 원료 소재 개발, 메이저 제약 업계와 연계한 원료 의약품 개발, 생명공학 기술을 이용한 소재 개발, 스테비아 재배 및 육종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연구를 목표로 한국스테비아연구소를 설립했다.스테비올배당체에 대한 전 임직원들의 사랑과 열정의 집합체인 이 연구소를 통해 스테비오사이드 품질개선 및 정제, 당 전이기술 등을 한 차원 높이는 계기를 마련했다.감초 유래의 천연감미료인 글리시리진산을 분리, 정제, 제품화에 성공해 기존 일본에서 수입하던 고순도의 글리시리진산의 국산화에도 기여하게 된 것이다. 이후 연구소는 개발 영역을 모든 천연물로 확대하기 위해 2001년 ‘천연물신소재개발연구소’로 이름을 바꿨으며, 다양한 천연 추출물들의 제품화에 성공했다. ◆역경을 넘어 성공으로 대평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공하기까지의 과정이 그리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1996년 봄, 당시 공장을 확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갑자기 언론에서 스테비오사이드를 독극물 취급해 제품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확산되자 매출이 급감했다. 회사에 큰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공장을 지어놓자마자 이런 일이 터져 어려운 상황이 5~6개월 동안 지속된다면 자칫 사업을 포기해야 할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대평이 독극물을 만들었다’고 세상 사람들이 잘못 생각하는 게 너무 싫기도 했다.이에 김 대표는 주류회사, 스테비아 업계와 공동으로 안전성에 대한 각종 자료를 수집해 국회를 상대로 안전성을 설명하고 방송사를 통해 오해와 진실을 밝힘으로써 시장은 점차 안정을 되찾았다.대평이 천연물을 이용한 식품첨가물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현장경험과 기술력을 쌓은 김 대표의 남다른 열정과 이것을 실천하려는 직원들 노력의 산물이다. 또한, 기술력만이 최고의 경쟁력이라는 신념 아래 우수한 연구인력 양성과 과감한 시설투자 등 모든 역량을 집중시킨 결과이기도 하다.이 회사의 제품들이 경쟁력을 가진 이유는 천연물질의 원료를 공급하는 회사로서 원료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철저히 직접 산지에서 확인하고 선별하는 과정을 거쳐 이를 바탕으로 한 축적된 기술력, 해외 영업망을 통한 신속한 정보수집 등을 들 수 있다.김 대표의 소통 경영도 빠트릴 수 없다. 그는 “일하기 좋은 일터의 핵심은 최근 경영의 핵심가치로 지목되는 소통, 자부심, 재미 등 3가지가 꼽힌다고 한다. 그 중 소통을 으뜸으로 생각하고 있다. 소통은 직원 간에 믿음과 존중, 공정성을 통해 형성되는 것으로 조직 내 갈등을 극복하고 조직의 공동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열정과 노력, 협력을 이끌어내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대평의 현재 매출액은 250억원이고, 임직원 수는 73명이다. 사훈은 ‘인화’이고 기술혁신, 책임완수, 복리증진을 경영이념으로 하고 있다.◆기업이윤의 사회환원과 새로운 도약 대평의 상주 사랑은 남다르다. 대부분의 기업이 성장 도중 수도권 등 다른 지역으로의 이전을 시도하는 것과는 달리 이 회사는 상주를 기업의 연고로 생각하고 있다. 특히 기업 성장과 더불어 지역 발전에도 기여하고자 한다.김 대표는 “상주 지역의 대학 연구기관과의 컨소시엄 구성을 통해 천연물과 생명공학을 접목시켜 세계 일류 제품을 개발하고 인류 건강과 행복에 기여하며 수출 한국, 상주경제 활성화에 일조하도록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그는 “기업은 기업 이윤에만 급급해서는 안 된다. 대평은 인류의 건강과 행복 증진에 최우선 목표를 두고 있다”고 덧붙였다. 직원에 대한 무한한 사랑뿐 아니라 기업의 가치를 인류를 위한 기업으로 표현한 것이다.이 회사 임직원들은 식품, 화장품, 제약 분야에 걸쳐 천연첨가물 종합메이커로서 국민의 건강과 행복한 삶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이에 발맞춰 김 대표는 꾸준한 성장과 세계시장으로의 도약을 위해 끊임없는 연구개발, 투자를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스테비올배당체 사업 이외에 신소재, 신사업 개발을 통해 세계 초일류 천연물 소재 전문 생산을 목표로 매진한다는 생각이다.김 대표는 “최근 당뇨 예방 및 다이어트를 위한 스테비아 천연감미료 제품을 출시하는 등의 신사업 개척에도 매진하고 있다”며 “어려움 속에서도 회사 발전을 위해 노력해준 모든 임직원과 협력사, 거래업체 등에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자연과 기술의 조화를 통해 인간의 행복과 건강에 기여하는 세계 초일류 종합 바이오기업, 고객만족의 기업이 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김일기 기자 kimik@idaegu.com

“우리는 유기농 밀가루·튀김가루·스프만 만듭니다”

김제구 (주)뜨레봄 대표이사. ‘내 가족 누가 먹어도 안전한 먹을거리’를 기업이념으로 한 그는 철저하게 선별된 유기농, 친환경 먹을거리 생산으로 국내뿐 아니라 세계시장에 도전하고 있다. “이제는 웰다이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각종 질병으로 고통 속에 죽어가는 것보다 웰빙을 기본으로 생활하면서 편안한 죽음을 맞는 것이 진정한 인간의 행복입니다”김제구 대표의 기업이념은 ‘친환경’이다. 각종 환경오염과 잘못된 식습관, 이윤만을 추구하는 기업들의 불량식품 유통 등의 보도를 접하면서 누가 먹어도 안전한 먹을거리를 생각해왔다.뜨레봄은 유기농을 기본으로 한 친환경식품 생산업체로 일반가정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밀가루, 튀김가루, 카레, 설탕, 스프, 믹스 등을 만들어낸다.뜨레봄의 제품은 까다롭기로 이름난 영국 QAIC HACCP 국제인증과 ISO 9001 국제품질인증, ISO 14001 국제환경경영시스템 인증 등을 획득했다. 철저하게 엄선된 식재료를 납품받아 친환경 제품만을 생산하고 있는 결과다.김 대표는 고향이 영주이기도 하지만 비옥한 토양과 농사에 알맞은 기후조건을 갖춘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사용한다는 그의 철학이 영주공장을 계획하고 준공하기에 이르렀다.김 대표는 영주공장 준공에 또 다른 의미를 뒀다.“액상라인이 추가 준공되는 2016년이면 뜨레봄은 연매출 800억원의 종합식품회사로 성장할 것입니다”김 대표는 “뜨레봄을 안전한 먹을거리의 대한민국 대표 브랜드로 성장시킨 뒤 식품에 대한 규제가 까다로운 세계시장에도 도전할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김주은 기자 juwuery@idaegu.com

대구 ‘월드스타기업’ 3D 로봇 프린터 시장 노린다

대구 달서구 대천동 성서 4차 산업단지에 있는 (주)맥스로텍 내부 전경. 미래 제조업의 핵심으로 3D 프린터 산업이 주목받고 있다.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도 우주 환경 속에서 직접 거대구조물을 만들 수 있도록 3D로봇 프린터를 쏘아 올린다고 지난달 발표했다.과학발전을 한 세대 앞당기는 새로운 기술. 3D 프린터 산업이 주목받는 만큼 관련 기술과 업체도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3D로봇 프린터와 접목시킬 수 있는 이송기술을 보유한 (주)맥스로텍도 그 중 하나다.김인환 맥스로텍 대표이사는 “아직 개발해야 할 과제가 많이 남았지만, 필요한 기술이 보완된다면 3D 프린터 기술은 3차 산업혁명을 불러올 기술로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며 “맥스로텍이 보유한 기술과 유사한 부분이 있어 3년 전부터 관심을 두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도전, 그리고 도전 맥스로텍의 전신은 아진기계공업이다. 지난 1995년 설립돼 공작기계사업으로 시작했다.김인환 대표가 아진기계공업의 재무경영인을 맡은 것은 지난 2003년. 그의 성실함을 알아본 아진기계공업의 당시 대표이사가 전문경영인(CEO) 제안을 한 것이다.김 대표는 “어릴 때부터 한결같이 기업인의 꿈을 꿨고,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회사를 차렸다”고 말했다. 부족한 경험과 작은 회사 규모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전공(공학)을 살려 전기제어 분야에 회사를 차린 그는 이후 13년간 탄탄히 기반을 쌓아올렸다.당시 거래관계였던 아진기계공업으로부터 CEO 제안을 받은 그는 정든 회사를 직원들에게 맡기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재무경영인 취임 후 직접 일본으로 건너가 ‘무선 갠트리로봇’ 기술을 도입했다. 무선 갠트리로봇은 당시 국내에 없던 자동이송로봇 기술로, 이후 아진기계공업은 갠트리로봇의 부품과 기술을 국산화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게 된다.김 대표는 “당시 국내 자동화산업은 유럽기업들이 독점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상황이었다”며 “공학도이기에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은 분야였고, 국산화를 통해 충분히 경쟁력을 갖춘 회사를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고 설명했다.2005년, 김 대표는 아진기계공업을 인수해 현 ‘맥스로텍’으로 이름을 바꾸고, 맥스로텍은 유럽의 자동화 회사와 어깨를 견줄 수준까지 성장했다. 도전은 그 뒤로도 멈추지 않았다. 지난 2008년에는 공작기계사업과 자동화시스템 사업을 운영하면서 축적하게 된 엔지니어링 기술로 새롭게 도약점을 만들었다. 자동차 엔진 핵심부품에 대한 엔지니어링 기술을 토대로 국내 중소기업 사상 최초로 엔진실린더블록 임가공 사업을 시작했다.기술 개발은 계속됐고, 맥스로텍은 현재 로봇기술과 IT 기술을 융합한 신개념의 차세대 공작기계인 PKM(Parallel Kinematics Machine)을 개발해 시장에 론칭한 상태다. ◆기술로 승부한다 맥스로텍의 핵심 기술은 산업용 로봇 분야에 걸쳐 있다. 지난 2003년 국내 최초로 무선 갠트리로봇시스템(Wireless Gantry Robot system)을 도입해 국내외 자동차 회사와 기계장비 회사 등에 시스템을 공급하고 있다.갠트리로봇은 자동화시스템의 핵심으로, 맥스로텍은 이를 토대로 3D로봇 프린터에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김 대표는 “3D로봇 프린터와 관련한 주요 특허 기간이 내년 2월에 만료된다”며 “맥스로텍의 보유기술이 3D로봇 프린터와 접목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덕분에 맥스로텍의 주가는 지난달 말 150% 이상 껑충 뛰어오른 뒤 상한가를 유지하고 있다.맥스로텍의 기술은 대부분 김 대표의 관찰력과 발 빠른 도전이 일궈낸 작품이다.갠트리로봇의 경우 유선ㆍ무선 갠트리로봇으로 분류되는데 국내에서는 맥스로텍이 유일하게, 전 세계적으로는 일본 회사와 함께 단 두 곳만이 생산하고 있다. 3년 전부터 3D로봇 프린터 기술에 관심을 둔 것처럼, 갠트리로봇 역시 김 대표의 통찰력이 빛을 발한 셈이다.김 대표는 “맥스로텍이 보유한 로봇기술은 융ㆍ복합을 통해 보다 나은 형태의 기술 개발로 연결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장점이다”며 “우리는 결국 기술로 승부를 해야 하는 회사다. 앞으로 로봇기술과 IT기술의 융복합화와 같은 다양한 기술의 응용, 접목을 통한 신기술 개발에 계속 박차를 가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벤처연합회장직을 맡다 지난 2004년 (사)대구경북첨단벤처기업연합회가 출범하면서 초기 벤처기업인으로 활동한 김 대표는 현재 연합회장직도 겸하고 있다. 벤처기업 간 노하우 공유, 대정부 정책 건의 등으로 전국을 오가며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그는 “지역의 첫 벤처 혁신형 협회로 맏이 역할을 해야 한다는 책임과 부담감이 있지만, 회원사의 고용창출 부분과 상호교류 증진 면에서 조금씩 성과가 나고 있다”며 “기본적으로 조직간 갈등을 해소하고 공동의 목표를 설정한다는 점이 회사 운영과 같아 (맥스로텍) 운영 경험이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그는 대구·경북지역의 벤처회사 실태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비췄다.연합회에 따르면 대구·경북의 벤처기업 수는 대구 1천557곳, 경북 1천369곳으로 3천곳에 육박한다. 이는 서울과 수도권을 제외하면 10%가량의 비율로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다. 전통적으로 기계부품, 자동차 관련 장비 등을 중심으로 첨단업종이라 할 수 있는 반도체 장비업체가 전체 기업의 50%를 차지하고 있으며, IT(s/w), 섬유, 바이오, 의료, 로봇 벤처기업도 점진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김 대표는 “단순논리로 비약할 수는 없지만, 양적 성장이 있어야 질적 성장도 있을 수 있다고 본다”며 “많은 벤처기업이 나와야 양질의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기업이 나올 확률도 높아지기 때문에 이러한 관점에서 긍정적”이라고 설명했다. “지역 벤처인에게 조언해달라”는 주문에 그는 적극적인 활동력을 꼽았다. 그는 “아무리 좋은 기술도 고객이 선택하지 않으면 필요가 없게 된다. 기술 개발 이전에 충분한 시장조사가 선행되야 하고, 능력 있는 마케팅 인력이 필요하다”며 “전문가나 선배기업인에게 조언을 구하는 데 망설이지 말아달라”고 강조했다. ◆창의적인 혁명 임기 후의 일을 묻자 곧바로 맥스로텍의 이야기가 나왔다. 그는 “맥스로텍을 글로벌 수준의 경쟁력을 가진 회사로 성장시키고 싶다”며 기업인로써의 포부를 밝혔다. 20년 이상 기업인으로 지내오면서 어려운 고비는 없었을까. 김 대표는 “2009년 엔진실린더블록 사업을 진행하면서 상대 회사가 생산을 멈추는 바람에 직원 급여조차 고민스러울 때가 있었다”고 전했다.당시 러시아 회사와 계약을 체결하고 회사 매출액에 이르는 규모의 설비투자를 했지만, 해당 회사가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되면서 제품 생산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맥스로텍도 어쩔 수 없이 생산라인 가동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김 대표는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뒤라 생산이 중단됐을 때 정말 아찔했다”며 “다행히 국내 완성차 업체와 계약하고 1년 후부터 라인을 재가동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그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직원들과 함께 밤낮으로 노력한 덕분에 단 한 명의 해고도, 단 하루의 급여 체불도 없었다”며 “결국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경영자와 직원이 한마음으로 단결한 덕분이다”고 웃었다. 이러한 노력은 맥스로텍을 4배 이상 꽉 찬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김 대표가 인수한 2005년 매출액 92억원, 사원수 25명이었던 맥스로텍은 2012년 매출액 409억원, 사원수 112명으로 각각 445%, 448% 성장했다. 올해 대구경제를 이끌 월드스타기업으로도 선정됐다.김 대표는 “맥스로텍의 사명은 창의적인 혁명(Creative Evolution)이다. 작은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이 창조하고 진화해 나가기를 원한다”며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의 회사의 발전과정 역시 회사가 연관 산업분야에서 혁신을 계속 추구해온 결과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정혜윤 기자 hyeyoon@idaegu.com

일찌감치 친환경에 눈뜬 기업인, 녹색경영 선도한다

환경이 곧 경제가 되는 시대가 됐다. 세계적으로 환경규제가 확대되면서 기업 제품에도 ‘친환경’이라는 수식어가 붙기 시작했다. ‘환경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소극적인 의미지만 ‘친환경’이란 말이 사용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문경지역 중소기업인 (주)대경산업이 제품에 일찌감치 ‘친환경’의 개념을 담아내기 시작한 건 그래서 더욱 의미심장하다.대경산업은 문경시 마성면 마성산업단지에 있는 상•하수도관 전문 생산업체다. 대경산업은 제품의 생산과 수송, 유통, 사용, 폐기 등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최소화하고 소비자에게 정확한 배출량을 제공하는 녹색경영을 실천했을 뿐 아니라 다양한 오염물질로 인한 자연환경 파괴라는 현실을 감안한 제품개발로 업계에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작은 중소기업이 문경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는 무엇보다 기술개발과 끊임없는 자기혁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올해로 창립 14년을 맞는 대경산업은 최고의 파이프 기술력과 현장 노하우를 두루 갖춘 기업으로 성장했다. ◆지경부, ‘부품소재 신뢰성 인증’기업 대경산업은 최초의 영•호남 합작회사로 설립됐다. 당시 오•폐수시설 시공사인 경남환경을 운영하던 임성문 대표와 전남 순천에서 폴리에틸렌 하수관을 생산하던 스트롱케미칼의 김종원 대표가 각각 10억원씩을 투자했다.이들이 세운 합작회사는 1999년 9월부터 문경시 마성논공단지 8천700여㎡ 부지에서 폴리에틸렌 하수관을 생산하기 시작했다.하지만 기존 파이프 업계 사이에서 신생 기업이 자리를 잡기는 쉽지만은 않았다. 단순파이프 생산에 머물렀던 대경산업은 한동안 적자경영에 시달렸다. 결국 2002년 창업 당시 판매를 맡고 있던 임성문 대표가 전면에 나섰다.주변에서 더 이상 새로운 투자가치가 없지 않으냐는 우려의 시선을 보냈다. 회사를 인수한 임 대표는 먼저 직원들을 불러모았다. 그는 상황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고 회사를 함께 살리자고 설득했다. 뜻밖에 직원들은 흔쾌히 임 대표에게 믿음을 실어줬다. 자진해서 임금의 10%를 삭감하기로 한 것. 하지만 임 대표의 주문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직원들에게 적어도 한 달에 한가지 씩은 신기술에 대한 아이디어를 생각해오라고 요구했다. 매달 공모를 통해 특허로 연결되는 아이디어를 낸 직원들에게는 특별승진을 시키거나 스톡옵션을 주기로 했다. 돌파구를 ‘기술력’에서 찾은 것이다.그는 외부 연구기관과의 협력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등 어려운 상황에서도 총매출의 5%를 연구개발에 사용하며 ‘자체 기술력 확보’에 사활을 걸었다.그리고 이런 노력들은 대경산업을 배반하지 않았다. 회사는 지난 2000년 하수도관 연결 때 이음매 부분에서 물이 새거나 충격에 약한 점을 보완한 반영구적 폴리에틸렌 다중벽 구조관을 개발하면서 대경산업의 매출은 급신장했다. 또 2002년에는 관과 관 사이를 연결하는 소켓에 해당하는 PE다층형 SF(Socket Flange)하수관을 개발, 국내는 물론 네팔과 베트남 등 동남아 시장까지 폭을 넓혔다.대경산업이 2013년 현재 보유하고 있는 산업재산권은 발명특허 14건(등록 13건, 출원 1건), 실용신안 9건(등록 8건, 출원 1건), 디자인 6건, 상표서비스 2건을 합해 모두 31건이다.연매출액은 39억원이고, 종업원은 22명이다. 임 대표는 “창조, 도전, 협동의 세 가지를 대경산업의 지표로 정했다”며 “새로운 기술의 전환이 경영의 핵심이며 중소기업이 생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은 뛰어난 기술력” 이라고 말했다.대경산업이 생산한 파이프는 지난 2008년 지식경제부로부터 매설 후 내구성 유지기간이 ‘50년 보장’이라는 ‘부품소재 신뢰성 인증서’를 획득했다. 2008년에는 대구•경북에서 유일하게 조달청에서 수여하는 ‘조달물품 품질향상 우수기업 표창’의 영광을 안았다. ◆자연•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가치 창조 (주)대경산업은 문경시 마성면 마성산업단지에 있는 상•하수도관 전문 생산업체다. 올해로 창립 14주년을 맞은 이 업체는 일찌감치 ‘친환경’의 개념을 담아 최고의 기술력과 현장 노하우를 두루 갖춘 기업으로 성장했다. 사진은 공장 전경(위)과 내부 설비 모습. “환경보전은 인간이 추구해야 할 가장 소중한 일입니다. 특히 21세기는 깨끗하고 잘 보전된 자연환경이 경쟁력입니다” 대경산업 임성문 대표(회장)의 기업이념은 ‘자연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가치창조’다. 그는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이 우리 것이 아니라 후손들에게 잠시 빌려쓰고 있는 것” 이라고 했다. 쉽게 생각할 수 없는 상•하수도관에 자연친화적 생각이 반영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그가 지난 1999년 설립한 대경산업은 상•하수도관을 생산하는 업체다. 이곳에서 만들어지는 상•하수도관은 안전하면서도 견고하다. 대경산업이 만든 구조형 폴리에틸렌 파이프는 지난 2008년 지식경제부로부터 업계 최초로 ‘50년 이상’이라는 부품소재 인증서를 획득했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상•하수도관은 수돗물과 오•폐수를 실어나르고 대지, 도로, 논, 밭, 임야, 대기 등으로부터 비점 오염원의 유입과 유출을 막는다. 무엇보다 이 제품에는 “인간 생활에 꼭 필요한 물을 아끼고 보존한다”는 생각이 담겨 있다.일찌감치 자연을 생각하며 자연친화적 제품을 만들어온 임 대표의 생각이 또 다른 경쟁력을 만들어낸 셈이다.하지만 대경산업이 문경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성장한 배경에는 무엇보다 끊임없는 기술개발과 자기혁신을 빼놓을 수 없다. 임대표는 창조정신, 도전, 협동이라는 대경산업의 3대 기업지표를 소개했다.대경산업은 최근 네팔과 베트남 등 동남 아시아로 경제교류를 확대하며 각종 관련부품 수출과 기술이전을 추진하고 있다.임성문 대표는 “3세대 상•하수도관 개발 등에 도전할 계획”이라며 “부피가 큰 하수관 파이프를 줄여 현지에서 맞춤형 설비를 하는 방식으로 국내뿐 아니라 세계시장에도 도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화학을 사랑한 공학도, 제2의 유일한 박사를 꿈꾸다

대구 서구 비산동 염색공단 내에 위치한 명지특수가공 회사의 김이진 대표이사는 이력이 독특하다. 회사의 간부로의 삶을 포기하고 기업가의 길로 들어섰다. 2005년 당시 사양사업으로 치부됐던 섬유사업이었다. 대다수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그는 “섬유는 첨단고부가가치 사업이다. 계속 발전할 것”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엄창현 기자 taejueum@idaegu.com 3ㆍ1운동 소식을 듣고 미국 현지에서 필라델피아 독립 선언에 참여한 고(故) 유일한 박사. 그는 이때부터 민족을 위한 사업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1925년까지 50만 달러의 돈을 번 뒤 이듬해 귀국해 제약회사 유한양행을 설립했다. 당시 주식의 30%를 사원들에게 나누어 주고 종업원 지주제와 전문 경영인 도입 등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기업 문화를 만들어 냈다. 1965년에는 사비를 털어 여러 장학 사업과 사회 복지 사업에도 앞장섰다. 1971년 7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면서 장남에게 재산을 물려 주지 않고 모든 재산을 공익 기업에 기부했다. 고 유일한 박사의 자서전을 읽고 기업가의 꿈을 꾼 청년이 있다. 한때는 직장인이었고 대학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다. 하지만 기업이윤의 사회환원과 사회봉사 정신을 실천하는 참 기업인이 되겠다는 꿈을 포기할 수 없었다. 이에 자신의 전공이던 섬유를 발판삼아 기업가의 길로 뛰어들었다. 그는 섬유류 가공 전문업체 (주)명지특수가공의 김이진 대표이사다. ◆기업인이 되기까지 김 대표이사(57)는 어려서부터 유달리 화학을 좋아했다. 그래서 영남대 공대 화학공학과에 입학했다. 졸업 후에는 섬유회사에 취직했다. 기업가의 꿈은 가지고 있었지만 결혼과 자본부족 등의 이유로 섣불리 사업에 뛰어들지 못한 것. 하지만 미래를 위해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에 공학박사 학위까지 따냈다. 더 이상 꿈을 미룰 수 없다고 판단, 2005년 대구 서구 이현동에 명지특수가공을 설립했다.사업을 시작하기 전에는 대학교에서 강의하기도 했다. 대학에서 교편을 잡은 이유를 묻자 “인재양성을 위해서”라는 답이 돌아왔다.그는 “많은 이공계 고급 인력들이 기업은 안정적이지 못하고 원하는 연구를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인식이 있어 기업보다 대학에 가려는 경향이 있다”며 “때문에 R&D(연구개발) 예산의 대부분이 연구기관이나 대학으로 가고 있어 그 성과가 기업으로 제대로 이전되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을 많은 학생에게 알려 그들이 기업에 취직하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그의 마음이 학생들에게 통한 탓인가. 현재 회사에는 그의 제자들이 대다수 근무하고 있다. ◆섬유산업, 그 장밋빛 희망을 믿다 장래가 촉망받는 회사의 간부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기업가의 길로 들어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그것도 섬유사업이 사양사업으로 치부됐던 2005년에 말이다.물론 기업인이 되는 것이 오랜 꿈이었기도 했지만 섬유산업의 장밋빛 희망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섬유는 첨단고부가가치 사업이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섬유관련 사업은 계속 발전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 섬유산업은 60년대와 70년대 우리나라 경제발전을 이끈 핵심기간산업이며 지역의 뿌리 깊은 연고산업이다.90년대 후반 중국 등 후발개도국의 저가공세와 IMF로 위기에 빠지기도 했으나 신제품개발, 품질개선 등 끊임없이 경쟁력 강화에 몰입한 결과 최근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지역 섬유수출은 2007년부터 본격적인 증가세로 전환했으며 세계 금융위기로 인한 특수상황인 2009년을 제외하면 매년 2자리의 수출증가율을 기록하고 있다. ◆많은 기술보유가 살길이다 제품이 생산되는 명지특수가공 회사 설비 모습. ‘최고의 섬유기술을 보유하는 것’. 김 대표이사가 가장 중요시하는 경영철학이다. 그는 “기업을 이끄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남들이 따라올 수 없는 회사만의 기술을 보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기술도입과 자체 R&D를 통해 기술력과 브랜드를 핵심경쟁 분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초반에는 자본과 기술, 연구인력이 모두 부족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시련의 시간도 많았다.하지만 R&D 분야에 대한 투자만큼은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군납용 원단과 산자용 소재(현대자동차 시트커버)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 군납용 원단은 대한방직과 함께 3년에 걸쳐 탄생시켰다. 이와함께 ‘의(義)’도 중요시 하고 있다.그는 “신의, 대의, 정의 등 의(義)라는 단어를 참 좋아한다”며 “아무리 많은 경쟁상대가 있어도 의로 뭉친 경험과 기술, 좋은 인간성을 가진 직원들과 함께라면 불가능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고 말했다. ◆나이지리아로 떠나다 올 10월 그는 나이지리아 방문을 앞두고 있다. 이번이 세번째 방문이다. 올 6월에는 해군참모 총장의 초청으로, 8월에는 대통령 초청으로 나이지리아를 방문했다. 이는 그가 개발한 군납용 원단을 수출하기로 했기 때문. 그가 수출시장으로 아프리카를 택한 데는 이유가 있다. 아프리카는 아직 경쟁이 치열하지 않아 가격을 시장이 아닌 기업이 결정할 수 있다. 소비자에게 좋은 일은 아니지만 투자자에겐 좋은 시장이란 얘기다.그는 “특히 나이지리아는 2000년 400달러에 불과했던 1인당 국민소득(GDP)이 지난해 1천600달러까지 증가했다”며 “수출시장으로 최적이라는 판단 아래 막무가내로 나이지리아 비행기를 탔다”고 말했다.그의 생각은 적중했다. 군납용 원단을 나이지리아 해군본부에 선보인 결과 큰 만족도를 보였다. 우선 1년에 12만벌을 수출하기로 계약했다. 돈으로 환산하면 100억원 정도다. 그는 “점차 범위를 넓혀 해군복과 공군복 등을 제작해 수출할 계획이다”며 “나이지리아는 인구의 40%가 14세 이하인 만큼 향후 시장성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게다가 김 대표이사는 대학에서 강의했던 경험을 살려 분기별로 나이지리아에서 군복을 제작하는 근로자들에게 직접 섬유관련 강의를 펼치기로 했다. 명지특수가공은 나이지리아뿐만 아니라 미국, 이집트 등에도 폴리에스텔감량물 등을 수출하고 있다. ◆지역기업 육성에 힘써야 마지막으로 대구 경제정책에 대한 바람도 언급했다. 김 대표이사는 “지역기업을 육성하는 데 힘을 더 쏟았으면 좋겠다”며 “기술력을 갖춘 중소기업을 지역의 대표적인 강소기업으로 육성했으면 한다”고 말했다.또 “지역 기업들이 인천공항까지 이동하는데 소요되는 여객과 물류비용 부담이 크다. 대구시에서 앞장서 남부권 신공항 건설에 역량을 집중했으면 한다”며 “놀고 있는 땅을 대기업에게 무상으로 제공하는 등의 방법으로 대기업을 지역에 유치해 지역경제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덧붙했다. “고 유일한 박사처럼 회사를 최고의 기업으로 키워내 언젠가는 회사를 직원들에게 물려주고 평범한 일반인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이 꿈에 하늘도 동참해 주었습니다. 저에겐 기업을 물려줄 아들이 없거든요. 하하.” 이혜림 기자 lhl@idaegu.com 명지 특수가공은? (주)명지특수가공은 2005년 설립된 섬유류 가공 전문 업체로, 지역에서는 중견기업에 속한다. 섬유가공사업부와 염색가공사업부 및 무역부, R&D사업부로 구성돼 있다. 특히 R&D사업부는 차세대 산자용 염색기술 및 의약품용 원단 염색가공 기술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명지특수가공의 기술력은 대한방직, 도레이, 새한 등 국내 유수의 섬유 대기업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대한방직과 함께 각종 군납용 원단을 공동 개발했으며 차세대 산자용 소재 개발 및 가공 기술확보에 힘쓰고 있다. 지난 4월에는 40억원을 투자해 설비를 최신형으로 교체하는 등 설비투자에도 아끼지 않고 있다.

자원 재활용 분야 독점적 기술 보유…친환경 경영 본보기

한동R&C 천기화 회장은 60여개의 발명 특허를 갖고 있거나 특허 절차를 밟고 있는 친환경 발명 기업인이다. 특히 그가 개발한 ‘상온 재생아스콘(리바콘)’은 독보적인 기술력을 자랑한다. 이 회사는 2년간의 독자적인 연구 끝에 지난 2008년 리바콘 ‘R3버전’을 개발, 탄소배출이 없는 상품성을 인정받아 국가인증을 획득했다 글로벌 선진기업의 중점 화두는 단연 ‘친환경 경영’의 실천과 활성화다.최근 천연자원 부족이나 생태계 파괴, 기후온난화 현상 등이 심화됨에 따라 이에 대한 일반 국민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또 전 세계적으로 환경관련 규제가 가시화됨에 따라 국내외 많은 기업들이 친환경 경영전략을 펼치고 있다.친환경 경영이란 기업의 비전에서부터 출발해 제품의 기획과 설계는 물론, 생산과 소비자에 이르는 모든 경영 프로세스에 ‘친환경’ 개념을 도입하는 것이다. 단순히 소비자에게 좋은 제품을 제공한다는 의미를 넘어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자 명성의 기준이며,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조건이 됐다.글로벌 선진기업들은 이미 지난 1990년대부터 온실가스 배출 감축, 에너지 절감 및 신재생 에너지 활용, 포장재 및 폐기물 재활용 등 친환경 프로그램을 추진하며 실질적인 자원 절약은 물론 환경 문제에 적극 동참하여 선도적 기업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대형 유통마트의 ‘비닐 쇼핑백 없는 점포’, 커피전문점의 ‘텀블러 사용’,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의 ‘그린 리모델링’ 등은 이미 널리 알려진 친환경 활동이다.미국의 베트라조사는 깨진 유리병을 활용해 대리석보다 튼튼한 싱크대 상판을 만들고, 스위스의 프라이탁 형제는 트럭 방수포를 이용한 세계 베스트셀러가 된 가방을 만들어 현재는 연매출 500억원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로 우뚝 섰다. 고장난 폐비행기로 3천만원이 넘는 명품 책상을 만들어내는 미국의 모토아트사의 아이디어도 기발하다. 결국 친환경 경영은 자원 재활용에서부터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우리나라는 어떨까.재활용량 달성 위주의 양적 목표에 치우치다 보니 고부가가치 재활용품 생산, 재활용 기술개발 등 질적 목표는 소홀히 해 외국처럼 높은 이익을 내는 재활용기업은 찾아보기 힘들다. 기술력을 갖추고 이에 걸맞는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많은 시간과 연구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포항지역 향토기업인 ‘한동R&C’는 자원 재활용 분야에 많은 시간과 연구비를 투자해 독보적인 기술력을 갖추고 이 분야 최강 기업으로 우뚝 섰다.이 회사 천기화(49) 회장은 60여개의 발명 특허를 갖고 있거나 특허 절차를 밟고 있는 ‘친환경 발명 기업인’으로 통한다.특히 그가 개발한 ‘상온 재생아스콘(리바콘)’은 가히 독보적이다.리바콘은 건설폐기물로 버려지는 폐아스콘에 약품과 시멘트를 섞어 만든 재활용 도로포장재다. 막대한 원료(석유)가 투입되는 아스콘 대체품으로 평가받고 있다.지난 1990년대 말 한 업체가 개발을 시도했으나 번번히 실패했다. 이후 한동R&C가 2년간의 독자적인 연구 끝에 지난 2008년 리바콘 ‘R3버전’을 개발, 탄소배출이 없는 상품성을 인정받아 국가인증을 획득했다. 현재까지 전국 지자체에 50만t가량을 납품했다. 단가가 일반 아스콘의 70% 수준에 불과해 160억원 가량의 예산을 절감했다. 지자체의 예산을 절감했다는 것은 그만큼 시민들이 낼 세금 부담을 덜어줬다는 얘기다.한동R&C의 리바콘은 품질 및 가격 면에서 인정을 받아 국가 경쟁력도 높였다.천기화 회장은 지난 2011년 ‘제12회 중소기업 기술혁신대전’에서 대통령 표창에 이어 지난해 10월에는 대한민국 저탄소녹색성장박람회에서 기술혁신 유공자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재생아스팔트 기술력으로 일본,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등 해외 건설시장에도 진출한 천 회장은 독특한 아이디어로 상품화한 LED가로등, 지열,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분야로 사업영역을 넓히고 있다.특허출원한 소주 냉각기, 우유병 세척기, 레이저빔이 장착된 골프버클 시판에도 주력하고 있다.이 회사의 지난해 매출액은 200억원 가량으로 매년 20% 이상 안정적인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이른 시일내 코스닥에 상장해 포항을 대표하는 벤처기업으로 키우는 것이 천 회장의 바람이다.천기화 회장은 “리바콘은 건설폐기물의 재활용과 무가열 상온포장, 100% 순환골재 활용 등에서 친환경 도로 포장재로 각광받고 있다”면서 “친환경기술을 적용해 깨끗하고 푸른 환경을 만드는데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 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