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뻔뻔하게 살고 싶다

나도 뻔뻔하게 살고 싶다살다보면 생각지도 않았던 귀인을 만나기도 하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장자가 수레를 끌고 가다 수레바퀴 자국에 갇힌 붕어 우화가 그런 것이다. 강물을 끌어 오는 수고 보다 지금 당장 한 바가지의 물이 필요하다는 것 아닌가. 병상에서 10시간 이상을 꼼짝없이 누워 지내야 하는 처지에서도 신체의 생체 시계는 여전히 가동됐다. 참으로 참기 힘든 것은 소변 욕구였다. 아랫배는 탱탱하게 팽창되고 방광은 이미 용량을 초과한 지 오래다. 그러나 아무리 용을 써도 소변은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정신은 또렷해도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한 아랫도리는 내 몸이 아닌 듯 전혀 감각이 없었다. 실례하겠다며 내 배 위에 올라앉은 간호사는 능숙한 솜씨로 내 아랫배를 주무르면서 “편안히 계시면 됩니다” 하고 나를 안심시켰다. 한 참 있으니 그의 말처럼 편안해졌다. 세상에, 이렇게 시원하고 또 통쾌하기까지 하다니. 고마웠다. 보수를 받고 일하는 직업이라지만, 이렇게 누구의 불편함과 고통을 해결해서 편안하고 기분 좋게 만들어주니 직업 치고는 정말 좋은 직업 같다. 고마운 사람을 여러 번 만났지만 다시 잊지 못할 고마움이었다. 덕분에 배뇨의 황홀경에 빠진 상태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는 장면을 TV에서 봤다. 문 대통령은 의혹만으로 인재를 포기할 수는 없다며 가족들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조 후보자를 장관에 임명했다. 일전 불사의 결의를 만천하에 공표한 셈이다. 아니, 대통령님. 법 위반 사항은 형사법으로 해결해야 하고 그런 문제라면 장관 후보자로 추천할 때 죄다 걸렀을 것 아닙니까? 지금 국민들이 실정법 위반을 따지는 겁니까? 국무위원 후보자가 실정법 위반이면 이건 아예 후보 예비 ‘풀’에도 못 끼는 것 아닙니까? 도대체 청와대 인사 시스템은 뭐 하는 겁니까?조국 장관의 교수 시절, 청와대 민정수석시절 보수 진영이나 기성세대를 향해 날리던 예리한 어퍼컷들이 하나 둘 새겨졌다. 이제 그는 인사 청문 대상자의 비도덕성이나 위법으로 인한 사정당국의 혐의만으로도 사퇴했던 수많은 후보자들을 기억했어야 했다. 있는 집안 출신으로 서울대 법대 박사에 모교 교수라니, 학벌에다 부와 권력까지 모두 가진 사람이 자기 말처럼 진보적 사상을 갖고 있었으니 강남좌파 엘리트가 도덕성과 공정성으로 보수 우파 공격의 선봉에 섰던 것이다. 그랬던 그가 사실은 기득권을 향유했고 이용했음이 들통 난 것이다. 자녀 교육과 가정 관리에서 인간의 욕망을 억제하지 못한 속물이었는데 억지로 감춰온 위선의 민낯을 스스로 보여 준 것이다. 거기에다 재직했던 서울대에는 제자들의 비난에도 사표 대신 휴직계를 내는, 장관직 이후의 교수직까지 보장 받겠다는, 양 손에 떡을 움켜 쥔 그의 치졸한 욕심에 실망하는 국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건 마치 얼굴 예쁜 여자아이가 공부도 잘 하는데다 집안도 좋아 주위의 부러움을 사는 것과 같았다. 거기에다 마음씨까지 고왔으니 주위의 시샘을 넘어 또래의 우상이 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얼굴도 병원에서 뜯어고친 성형미인이었고 성적은 편법과 특혜로 만들어진 성과임이 들통 난 꼴이었다. 그런 조국 장관의 뻔뻔함은 보통 사람은 흉내낼 수 없을 정도의 맷집이다. 말로만 “성찰하겠다” “내 자신을 다시 돌아보겠다” “미안하다” 말고 그렇게 반성하면 내려와야지. 장관직을 끝내 버티는 고집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가. 자신만이 검찰 개혁을 완수할 수 있다는 권력욕을 사명감이라고? 국민에게 봉사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다. 권력을 잡고 검찰을 개혁하겠다는 오만함보다 목마른 붕어에게 한 바가지 물을 주는 조국이었으면 좋겠다. 시원하게 소변 한 번 보게 해 주는 그런 시원함을 말이다. 지금 국민들은 조국 장관이 청와대에 들어가기 전에 기득권을 향해 날카롭게 쏘아대던 자신의 트윗처럼 산뜻한 도덕적 처신을 기다린다. 나도 저렇게 뻔뻔하게 살고 싶다는 사람들이 늘어날 까 두렵다.

시간이 없었다고 말하지 마라

시간이 없었다고 말하지 마라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는 국회의 인사청문회 개최가 불투명하자 셀프 무제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그러나 준비 되지 않은 기자들은 의혹투성이 조 후보자에게 변명 기회만 준 꼴이 됐으니 결국은 조 후보자 페이스에 말려든 셈이다. 질문 내용이 대부분 그동안 언론보도를 통해 거론된 사실들을 확인하는 수준인데다 기자들의 반복적이고 줄기찬 부적격 자격 자질 공격은 노회한 법학자의 혓바닥에 한국 언론의 한심한 수준만 보여준 꼴이 됐다. 하긴 자료 요청 권한도 법적 수사권도 없는 기자의 한계야 있지만 그렇다고 기본 팩트조차 확인하지 않고 덤벼들어 “네 죄를 알렸다”는 원님 재판식으로는 후보자를 끌어내리기에 역부족이었다.여론이 아무리 나쁘고 국민 정서가 아무리 조국 반대라 하더라도 “이런 정도로, 이러고도 장관을 하겠다고 버티느냐”며 내미는 결정적 한 방이 끝내 터지지 않아 아쉬웠다. 11시간의 공세는 그나마 ‘진짜 청문회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얻은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준비 안 된 언론의 판정패였다.정치권에 시한폭탄이 던져졌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골자로 한 여야 4당 합의 선거제 개혁안이 지난달 29일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의결돼 패스트트랙 첫 관문을 넘어선 것이다.선거제 개혁안은 이제 법제사법위원회 체계·자구심사 90일과 본회의 부의, 상정을 거쳐 표결에 부쳐진다. 이론적으로는 오는 11월 27일 본회의 표결이 가능하다.선거법 개정 협상이 언제부터였나. 그때도 그랬다. 왜 충분히 논의도 하지 않고 이렇게 억지로 힘으로 밀어붙이려 하느냐며 동물국회를 만들었다. 그럼 그동안 논의하자고 할 때는 왜 하지 않고 계속 딴전만 피웠잖아. 그래놓고 지금에 와서 왜 갑자기 그러느냐고, 시간이 없다고 그런다.이대로가 좋다. 변화는 불편하다. 더구나 내 몫을 내놓는 변화라니, 막을 수 있는 데까지 거부하고 보는 거다. 그거 차지하려고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이걸 쉽게 내놓는다는 말인가. 지금 누가 득을 보고 법을 바꾸면 누가 손해보고 누가 이득을 보게 되나. 그걸 국민의 입장에서 헤아려야 한다. 더 많은 국민이 이득이 되는 쪽으로 법을 바꿔야 한다. 기득권이 붙잡고 내놓지 않으려는 것은 무엇인가. 국민의 이익인가, 그들만의 이익인가. 국민들은 제대로 알고나 있는가.선거법개정안이 통과되고 선거구가 개편되면 당장 지역구 국회의원 수가 줄어들게 된다. 그 때는 지역구에 따라 현역 의원들 간에도 공천 경쟁이 불가피해진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국회의원들의 그야말로 밥그릇 싸움에 지나지 않는다. 지역구 국회의원 숫자가 줄어들고 현역 의원들끼리 공천경쟁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국민들이 동정심을 갖고 지역구 의석수를 현재대로, 또는 늘려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그야말로 노숙자가 호화주택의 소득세를 걱정하는 꼴이나 진배없다.그들의 기득권 누리기에 당연하다거나 혹 동정심을 보인다면 또 다른 조국을 용인하는 것이다. 국민 누구나 국회의원 피선거권이 있고 선거에서 당선되면 맡는 것이지 특정인이 재선 삼선 하고 기득권을 갖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선거구에 따라 정정당당하게 경쟁하면 된다. 모두 당선되거나 모두가 국회의원이 될 수는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될 것이다.국회의원이 왜 필요하고 왜 국회의원을 뽑아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부터 해야 한다. 국회의원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자신들의 밥그릇을 챙기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는 것이다.곡절 끝에 조국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리게 됐다. 장관 후보자로 지명되고 한 달이 지났다. 그렇게 오래 준비했으니 하루지만 의혹을 말끔히 씻을 수 있는 한 방을 기대한다. 국회의원으로서 기자들과 다른 권한도 가졌으니 정말 장관감인지를 조국이 아닌 국민의 편에서 판정할 수 있게 해 줘야 한다.선거법 개정도 마찬가지다. 시간 없다고 말하지 마라. 선거법을 바꾸든 지키든 지금부터라도 충분한 논의하라는 거다. 국회의원들의 기득권 지키기가 아닌, 국민의 편에서, 국민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스스로 엄격해야 상대를 제압할 수 있다

스스로 엄격해야 상대를 제압할 수 있다핸들을 잡으면 인내심을 시험해야 할 때가 자주 있다. ‘저렇게 한가하게 운전할 거면 옆 차선으로 비켜주던지’ 하고 앞차에 책임을 전가하다가 이내 반성 모드로 바꾼다. 집에서 빈둥거리지 말고 5분만 일찍 나섰더라면 이렇게 초조하지 않을 텐데.차선을 바꾸다 시비가 붙어 길에서 난투극을 벌이거나, 난폭한 끼어들기를 따지다가 일방적으로 폭행을 당한 이야기들이 여기저기서 쏟아진다. 제주에서는 차선을 위험하게 변경했다고 따지는 운전자를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마구 폭행한 사건이 일어났다. 당신이 저런 경우를 당했다면 어떻게 대응을 했을지 상상해 보라. 그냥 당하고만 있을 것인가? TV를 보면서 나라면 무슨 사태로 발전했을지 예측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흥분했다.운전 중 상대와 시비가 생기는 것은 주로 차선변경이 원인이 되는 수가 많다. 방향지시등만 켜면 시비가 줄어들 텐데, 갑자기 끼어들어 불쾌감을 유발시키는가 하면 사고로 이어지는 아찔한 순간도 자주 마주친다. 보복운전은 명백한 범죄다. 대구에서 지난 한 해 동안 392건의 보복운전이 발생했다니, 사건화 되지 않아 통계에서 빠진 일상의 사소한 보복운전은 얼마나 많을 것인가,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인격수양이니 분노조절 장애니 한가하게 얘기할 계제가 아니다. 나부터 반성해야 하고 그와함께 도로 교통 환경도 고쳐져야 한다. 명색이 광역시라지만 도심을 벗어나면 2차선 도로의 한 쪽 차선은 아예 주차장이 된 지 오래다. 너무나 당연한 불법주차가 우리 운전수준을 넘어 국민 전체의 의식 수준을 보여준다고 말하면 지나친 비약일까.8월부터는 소화전 5m 이내나 횡단보도와 교차로, 버스정류소 부근에 차를 세우면 주차위반 과태료가 8만원으로 2배 올랐다. 하긴 이런 곳에 차를 세울 수 있다는 발상부터가 놀랍다. 저마다 이유가 있을 것이고 또 사정이 급박하니 세울 것이지만, 그렇게 긴급한 사정이 이렇게 많이 생긴다면 그건 정상적인 사회가 아닐 것이다. ‘나 혼자니까’ ‘잠시면 되니까’ 하면서 새우는 것이다. 놀라운 장면은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다.자율주행차가 도로를 점령하게 되면 이런 운전 매너 이야기들이 사라질까. 자동차가 없던 시절, 우리는 동방예의지국이었다. 우리가 다른 나라보다 국방력이 강하거나 경제력이 대단해서 주변국들로부터 존경과 대우를 받았던 것은 아니었다.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고 예의를 지키는 품위 있는 국민들이었기에 이웃 나라 국민들을 교육하고 감화시켰던 것이다.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에서 제외하면서 벌어진 한일간 무역전쟁이 확전일로에 있다. 해법도 난무하고 있다. 소재와 부품의 독립으로 극일을 강조하고 문재인 대통령은 평화경제를 이야기했다.처음엔 온 나라가 들고 일어나면서 반일운동이 거세게 일더니 반 아베 운동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극일운동으로 기세를 누그러뜨리면서도 일본 여행 안 가기와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은 식어들 줄 모른다. “일본이 우리 국민성을 너무 얕잡아 본 것이다.” “이참에 아주 본때를 보여 줘야 한다.”역사적으로 우리가 일본을 가르치고 깨우쳐 줬다. 근세 들어 일본이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우리를 앞질렀지만. 최근의 ‘일본 이기기’는 우리가 집단적으로 일본에 대해 콤플렉스를 갖고 있기 때문은 아닌지 자문해 본다.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 평화경제만으로도 우리는 일본을 이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단순히 국민총생산이나 경제지표 같은 수치로 일본을 따라잡는다거나 이긴다고 말하기 전에 우리는 과연 우리 앞의 문제들을 극복하고 극일이라는 목표를 달성해 낼 역량이 있는지 자문해 보는 것도 해롭지는 않을 것이다.그냥 우리가 일본을 이기려면 일본보다 강해져야 하고 스스로에게 더욱 엄격해야 상대를 제압할 수 있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서 질서를 지키는 것은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그런 사회적 합의를 무시하면서 발전하고 강해질 수는 없다. 개인이고 국가고 간에. 도로에서의 운전 에티켓도 그 중 하나다.

행동하는 지성은 진실을 말하는 용기

행동하는 지성은 진실을 말하는 용기나라 전체가 당장 일본과 전쟁이라도 치를 기세다. 100여년 전 구한말의 지식인들이 이랬을까. 나라 안팎을 살펴보면 참으로 암울한데 정치인들을 보면 도무지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비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우리는 우국충정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거푸 술잔을 비웠다. 이럴 때 조선의 선비 김굉필을 생각한다.대구 달성군 구지면 대니산 기슭의 도동서원은 김굉필의 정신을 지키고 있는 곳이다. 지난달 유네스코가 도동서원을 세계문화유산에 올렸다. 성리학의 시대적 가치를 잘 보존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은 것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성리학의 개념이 여건에 맞게 바뀌는 역사적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탁월한 가치가 인정된다고 했다.성리학, 지금 조선을 망하게 한 주범이라고도 하지만 세계사에서 500년 왕조도 그리 흔하지 않고 보면 그 긍정적 역할 또한 없지 않을 터다. 더구나 안팎으로 강대국의 침략 조짐이 상존하는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위상으로 보면 참으로 대견하기도 하다. 당파싸움으로 사화가 끊이지 않았으나 그 속에서 서로 견제하고 경쟁하면서 그 시대를 헤쳐 나왔다고 평가하는 역사가들도 있다.성종 연산군의 시대. 여전히 세조의 왕위찬탈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는 사림파들은 지배권력에 계속 잽을 날린다. 왕조의 정통성은 집권세력의 아킬레스였다. 왕자의 난과 계유정난이라는 왕위쟁탈전은 유교적 윤리에 정면으로 배치됐다. 사림파의 주장은 훈구파 중심의 국정운영에 대한 도전이었다.결정적 한 방은 김굉필의 스승 김종직의 조의제문이라는 사초였다. 사림파들은 그전에도 남효온의 육인전이나 단종의 생모인 현덕왕후의 소릉 복원 주장으로 훈구파의 예민한 반응을 불러 온 터였다. 세조의 왕권에 대한 정통성과 그로 인해 생겨난 공신들에 대한 존재명분에 흠집을 내려는 시도로 읽혔기 때문이었다.그 중심에 김굉필이라는 도학자가 있었다. 소학, 참으로 시대에 맞지 않는, 지금의 기준으로 이야기하면 그야말로 물정 모르는 꼰대의 원형이라고 할 것이다. 삼강오륜이 국가보안법보다 무서웠고 모든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능력과 역할이 남자에게 집중돼 있을 때였다. 그 시대에는 그 시대를 규정짓는 가치가 있었고 시대가 요구하는 세계관이 있었다.그런 세상에서 김굉필은 행동하는 지성이라 할 수 있었다. 그는 고작 50년을 살았다. 늦게 관료사회에 나갔다. 그리고 훨씬 긴 시간을 유배지에서 보냈고 그리고는 끝내 목이 달아났다. 그러나 그의 사상은 조선을 관통했다. 그 정신, 지도자라면 과연 그런 정신을 지녔어야 한다고 꼽을 수 있는 선비였다. 고작 정6품으로 있으면서 교육으로 세상을 바꾸려고 했다. 도덕이 지배하는 세상을 꿈꾸었다. 그리고 작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생각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음을 김굉필은 보여주었다.그는 특히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을 싫어했다. 공자도 ‘교언영색선의인 (巧言令色鮮矣仁)’이라 하지 않았던가. 듣기 좋은 말, 상대의 환심을 사려는 교묘한 아첨의 말과 비위를 맞추는 번지르르한 얼굴색을 한 사람치고 어질고 착한 사람이 드물다는 말이다. 늘 말을 조심하라고 했고 자신도 그렇게 말과 행동을 삼갔다. 선현의 가르침을 말 뿐이 아니라 실천했던 선비였다. 그러니 스승 김종직이 이조참판이라는 벼슬자리에 있음에도 임금에게 바른 말 하지 않는다고 비난을 할 수 있는 것도 그였다. 이미 성균관 유생 시절에도 임금에게 직접 장문의 상소를 올렸던 그였다. 말 보다는 행동으로 몸소 실천했던 그의 정신, 아닌 것은 아닌 것이라고 했던 김굉필의 정신은 도동서원에 그대로 담겨있다.나라 돌아가는 꼴이 장히 어지럽다. 어느 쪽이 진실하고 어느 쪽이 국민을 속이려 드는가. 지성인이라면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이런 날 김굉필을 생각하면서 도동서원을 찾는다. 유네스코에서 도동서원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정한 이유가 그 번듯한 외형에만 있지 않음을 본다. 행동하는 지성, 책임지는 지성.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김굉필의 정신이 도동서원 기왓장마다 서까래마다 박혀 있기에.

빨갱이에서 친일파로, 새로운 전선

빨갱이에서 친일파로, 새로운 전선 한국과 이웃나라 일본이 무역전을 벌이고 있다. 조국 민정수석이 연거푸 북을 두드려대며 독전에 앞장섰다. 무기고에서 동학 죽창이 나오고 서희와 이순신 장군도 불려 나왔다. 청와대가 정부를 젖히고 위험 부담을 떠안았다. 교수였던 그에게 국가 간 대결은, 그것도 상대가 일본일 때는 교과서처럼 나 자신부터 돌아보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것 같다. 아이가 밖에서 싸우고 들어오면 먼저 내 아이가 잘못한 것은 아닌지 살펴보고 꾸짖은 후에 상대 아이의 잘못을 따지라고 배웠는데. 정치가 국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쟁을 동원했던 사례는 세계사에서 차고 넘친다. 국내의 풀리지 않는 정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다. 국론을 통일하고 국민들을 하나로 묶어 국정을 이끌기 위해 전쟁이라는 도구를 동원한 것이다. 오백여 년 전 일본 전국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명나라를 치러 간다며 우리에게 길을 안내하라고 했다. 임진왜란이다. 도요토미가 번주들에게 더 이상 나눠줄 영지가 없어 조선 땅을 침범했다는 것은 다 아는 이야기다. 이번 한·일 간 무역 전쟁은 일본 아베 총리가 선제공격을 한 것이다. 아베 총리는 지금 평화헌법이라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가 원하는 선거에서의 승리를 위해, 국민들의 절대적 지지를 얻기 위해 새로운 카드가 필요했다. 그런데 마침 이웃 대한민국에서 일제강점기의 징용자들에 대한 배상 문제가 대법원 판결로 확정된 것이 빌미를 준 것이다.일본으로서는 1965년 한일회담에서 ‘완전하고 돌이킬 수 없는’ 합의를 했는데 다시 무슨 배상이냐며 받아들일 수 없다는 분위기다. 이에 대한민국 정부가 물러서지 않고 총력을 쏟아 붓고 있는 것이다. 그건 보상이었고 지금은 배상이라며, 이번만큼은 물러설 수 없다는 기세다. 상대가 일본인데 자기를 돌아볼 이유도 여유도 없다. 서로 장군과 멍군을 주고받는 장기판을 만들었다. 1970년대 유신시대. 눈만 뜨면 ‘때려잡자 김일성’ 하고 냅다 주먹을 내지르며 악을 쓰고 나서야 일과가 시작되던 때였다. 잠자리에 들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우리 군인들은 ‘때려잡자 김일성’을 외쳐대야 했다.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된 것도 그즈음 이었다. 1972년 7월4일 당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김영주 노동당 조직지도부장이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에 발표한 이 성명은 남북한 당국이 국토분단 이후 최초로 통일과 관련하여 합의 발표한 역사적인 공동성명이었다. 자주·평화·민족 대단결의 3대원칙을 천명한 공동성명은 잠시 국민들에게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나 통일에의 기대를 갖게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 의미는 남북한 실력자들이 자신들의 권력 강화에 이용하려는 정치적 의도였음이 남한의 10월유신(1972년10월17)과 북한의 사회주의헌법 채택(1972년12)이 극명하게 보여줬다. 6·25 남침을 경험한 우리 민족은 10월유신 이후에도 오랫동안 북한의 미사일과 핵 위협에 노출돼 있었다. 북한의 위협은 민족의 생존에 직접 영향을 미쳤고 모든 개념의 최상위에 전쟁의 공포가 자리했다. 정치가 군사독재 정권을 민주정권으로 바꾼 뒤에도 우리는 북의 남침 위협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지금 북의 핵 위협은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북한과의 대치 전선에서 동참하지 않으면 내부의 적으로 몰려 빨갱이가 되어야 했다. 다행히 문재인 정권 들어 북한으로부터의 위협은 표면적으로 사라지면서 대북전선이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다. 이 틈새를 일본이 비집고 들어온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던 사실이 됐다. 지금 청와대가 앞장서고 여당이 돌격부대가 되어 국민을 선동하는 전쟁이 다르지 않다. 전선이 북한에서 일본으로 이동한 것이다. 우리끼리 비판하고 내부총질하거나 백태클 하면 X맨이 된다. 이 전선에서 이탈하면 친일파가 된다. 그렇다면 일본과 한국의 정치권이 모두 지지세 결집과 선거에서의 승리를 위해 서로를 이용하고 있다는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있나.

혹시 내가 잘못 본 건 아닐까

혹시 내가 잘못 본 건 아닐까 매일 오후 2시면 아파트 뒤 공원을 산책하는 친구가 입에 거품을 물었다. 점심 식사를 한 뒤 느긋하게 차를 한 잔 하고는 공원을 산보하면서 하루 운동량을 채우는 그였다. 그가 최근 눈에 거슬리는 꼴을 발견한 것이다. 어느 날부터인가 산책을 나오면 공원 입구에서 담당인 듯한 환경미화원이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이었다. “일은 하지 않고 앉아 담배만 피우다니...” 구청에 전화해서 ‘당장 그 미화원을 목 잘라라’고 했다. 구청에서 알아보니 그는 매일 2시부터 근무였다. 미리 현장에 도착해서는 담배 한 대 피우고 일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매일 공원을 산책하던 친구는 공교롭게도 그 미화원이 업무에 들어가기 전에 준비동작을 보았던 것이다.맹자가 젊은 시절, 그러니까 스무 살 신혼 때 이야기다. 외출에서 돌아오니 아내가 거만하게 걸터앉아 자신을 빤히 치켜보고 있었다. ‘남편이 들어왔는데 어찌 저렇게 무례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맹자는 어머니에게 아내의 무례를 일러바치고는 당장 이혼하겠다고 말한다.“어떻게 알았느냐?” “직접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네가 무례한 것이지 네 아내가 무례한 것이 아니다.”맹자의 어머니는 예법을 들어 차근차근 설명했다. “장차 대문에 들어오려면 안에 누가 있나 물어야 하고, 마루에 올라서려면 반드시 먼저 소리를 내어 알리고, 방 안에 들어서면 시선을 반드시 아래로 두라고 하지 않았느냐. 이는 아직 준비가 안 된 사람을 가려주려는 것이다. 오늘 너는 여인네의 사사로운 곳으로 가면서 방에 들어설 때 소리를 내지도 않았고 걸터앉은 모습으로 사람을 쳐다보게 만들었다. 이는 너의 무례이니라. 네 아내의 무례가 아니다.”그래서 맹자는 감히 부인을 쫓아내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을 반성했다고 한시외전은 전한다. 맹자를 교육시키기 위해 베틀에서 짜던 베를 서슴없이 가위로 삭둑 자른 맹자의 어머니가 젊은 아들에게 예절 교육을 시킨 유명한 이야기다.내가 본 것이 사실일까. 사실이라면, 그것만이 전부일까. 길게 인용한 것은 오늘날 생겨나는 많은 시비의 출발은 자신을 돌아보지 않은데서 비롯된다는 뻔한 사실을 맹자의 얘기를 통해 강조하고 싶어서다. 또 아랫사람을 버릇없다 나무라기 전에, 세상 탓하기 전에 먼저 그런 핑계를 만들지 못하도록 나 자신이 몸가짐을 바르게 하라는 말이다.조선조 사림들의 피바람을 몰고 온 사화의 단초를 제공한 연산군의 생모 폐비 윤씨의 사건도 그렇다. 실록에 따르면 윤씨가 왕비로 간택되기까지 단아했고 검소했기에 왕비로 간택됐다는 것이다. 평소 허름한 옷을 입고 검소한 것을 숭상하며 일마다 정성과 조심성으로 대하였으니 큰일을 맡길 만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윤씨 자신은 “저는 본디 덕이 없으며 과부의 집에서 자라나 보고 들은 것이 없으므로 어른들이 선택하신 뜻을 저버리고 주상의 거룩하고 영명한 덕에 누를 끼칠까 두렵습니다” 하고 사양했다. 그래서 성종이 더욱 현숙하게 여겼다는 것이다. 그랬던 윤씨는 불과 3년만에 “폐비 윤씨는 성품이 본래 음험하고 행실에 패역함이 많았다. 전일 궁중에 있을 때 포학함이 날로 심하여 이미 삼전에게 공손하지 못했고 또 나에게도 행패를 부렸다”고 실록은 전한다. 왕의 여성 편력이 윤씨를 포학한 여성으로 만들었는지 원래 포학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온 나라를 피바다로 몰아 간 사건의 단초가 한 여성을 어떻게 보느냐에 달렸다는 역사적 사실에서 다시 한 번 냉정한 관찰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다.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송중기 송혜교 송송커플의 결혼식은 그러나 그 관심에 비하면 너무나 허무한 파경이었다. 당사자들에게 일생일대사를 넘어 세계적 한류 열풍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라는 면에서 ‘성격 차이’니 ‘다름을 극복하지 못했다’느니 하는 핑계는 언어유희 같다. 그들의 속사정을 일일이 알 수도 없고 또 알 필요도 없지만 주변에서 너무 자주 또 쉽게 듣게 되는 이혼 이야기 중 하나로 치부하기에는 파장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이경우의 따따부따] 다양성이야말로 ‘Colorful DAEGU’ 아닌가

대구시가 시청 신청사를 어디에 지을지를 올 연말까지 결정하겠다고 선포하고 조례까지 제정해서 추진하자 현재 청사가 위치한 중구청부터 반발한다. 왜 현 위치에서 증개축할지부터 검토하지 않고 옮기는 것을 전제하느냐고. 대구시는 10년 전부터 현 청사가 비좁고 여러 가지로 불편하니 도시 규모와 여건에 맞는 새 청사를 지어야 한다며 청사 신축기금을 비축해 왔다. 그 후보지 중 현 위치도 포함되는데 왜 지금에 와서 반대하는지 논리가 궁색하다.다른 지자체들도 비슷하다. 공론화위원회 구성이 편파적이라거나 결정권을 가진 시민참여단 규모가 250명으로는 부족하다는 등 저마다 내세우는 이유들은 다양하다. 사실 신청사를 새로 지어야 한다는 대명제는 이미 범시민적 공론이 된 지 오래다. 그곳이 어디인지를 터놓고 논의해보자는 대구시의 방안을 대놓고 반대 하는 것도 이상하다. 물론 자신들의 지역으로 시청사를 유치하고 싶은 마음이야 이해하지만 대구를 위해서는 정말 어느 곳이 좋은지 대승적 차원에서 판단하는 지혜가 아쉽다.‘Colorful DAEGU’는 2004년부터 사용해 온 대구의 도시 브랜드다. 그런데 이 ‘Colorful DAEGU’가 대구의 이미지를 제대로 나타내지 못한다는 시중의 여론이 꾸준히 제기돼 온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다양한 여러 의견들이 공존하는 것이야말로 ‘Colorful’하다고 할 만하지 않나. 대구시가 이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3년이나 걸려 검토를 했다. 용역을 맡기고 토론에 붙이고 전문가에게 물어보고 했더니 그래도 ‘Colorful DAEGU’를 그대로 쓰자는 의견이 더 많았다는 거다. 대신 심벌의 색깔 중 2개를 바꾸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랬더니 3억5천만원이나 들인 결론이 겨우 동그라미 두 개 바꾼 거냐고 비난을 퍼붓는다.시민들의 뜻을 물어보니 그래도 대구 브랜드로 ‘Colorful DAEGU’ 만한 것이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면 그것이 바로 성과다. 반드시 바꿔야 한다는 전제가 오히려 이상하다. 3년 걸려 얻은 결과니 큰 혼란 없이 색깔만 바꾸어 쓰는 것도 시민의 뜻이라면 굳이 우길 일도 아니다.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해야 하지만 민주적 방법으로 토론과 공론화 과정을 거쳐 시민 다수가 결정하면 그 과정을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Colorful DAEGU’의 이미지를 살리는 길 아니겠나.팔공산에 구름다리를 설치하는 문제를 놓고 대구시와 시민단체, 지역민 사이에서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대구시가 시민들의 뜻을 알아보겠다고 원탁회의를 열었다. 그런데 반대 측에서는 들러리 서기 싫다며 아예 참석조차 하지 않았다. 대신 공청회를 열어 팔공산 보전과 복원, 지속가능한 이용방안 등을 모색하자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원탁회의에서 찬성이 압도적으로 많이 나오자 대구시가 원탁회의를 통해 여론을 왜곡하고 있다고 반발했다.왜 시작도 하기 전에 그런 전제를 하는지, 지금 국회와 사정이 비슷하다. 공개된 시민원탁회의 장에서 반대하면 안 되나? 어떤 정책이나 사업이든 피해보는 사람이 생기고 반대하는 입장이 있을 수 있다. 모두가 찬성하는 그런 사업은 왕조시대나 독재정권 시절에나 가능했다. 더 많은 사람들의 공감대를 얻어서,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고 특별히 득 보는 집단이나 특정인이 없도록 공정하게 진행하면 될 것 아닌가. 팔공산에 구름다리를 설치하는 문제, 환경이냐 개발이냐는 그야말로 시간이 결정하게 될 논쟁 같다.어떤 사업이든 논란이 있기 마련이고 반대하는 상대를 완벽하게 설득시키는 것이 처음부터 불가능한 사업도 있을 수 있다. 여기에 권력이 정치의 옷을 입고 일방을 편들거나 전문가의 입을 빌려 진실의 기준을 만들려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찬성하고 옳다고 여긴다고 해서 그 결정이 무오류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토론을 하고 논쟁을 벌이는 것이다. 그래도 그 길만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다양성이야말로 ‘Colorful DAEGU’의 이미지다. 논란을 벌이고 있는 대구시의 많은 현안들이 토론과 설득을 통해 바람직한 해결 방안을 찾기를 기대한다.

[이경우의 따따부따] 지금이 참으로 평화로운 시대 맞나

“지금은 참으로 평화로운 세상이다.” 텔레비전을 보던 어머님 말씀이다. 느닷없이 그게 무슨 말씀이냐고 물었다. “그렇지 않으냐. 말로만 하고 그치지 않느냐.” 그러면서 6·25 전쟁 얘기를 꺼내는 것이다. 옛날이라지만 아직 당사자가 살아있는 현재의 이야기다.생각해보니 참으로 혼돈의 연속이었다. 진보와 보수는 일제하 임시정부에서도, 해방정국에서도 ‘이념 전쟁’을 그치지 않았다. 그 정점이 6·25였다. 북의 남침으로 발발한 전쟁은 민족끼리 총부리를 겨누어야 했고 무고한 생명이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억울하게 죽어갔다. 3년에 걸친 한국전쟁이 끝나도 이념 전쟁은 계속됐다. 돌이켜보면 서로 죽이고 죽는 생사를 건 싸움이 그칠 날이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젠 최루탄과 보도블럭 대신 말로 하는 전쟁이 대세가 됐으니, 평화시대가 온 것인가.약산 김원봉의 조선의용대가 광복군에 편입된 것이 민족의 독립운동 역량의 집결이라며 김원봉이 조국 광복에 공헌했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현충일 기념사가 다시 이념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문 대통령은 보수와 진보에서 평가가 대비되는 채명신 장군의 공적을 추켜세우고는 ‘이제 이념의 진보와 보수가 없다’고 선언했다. 그리고는 김원봉의 공적을 언급한 것이다.김원봉은 6·25때 월북해 김일성 정권에서 노동상을 지낸 인물이다. 비록 그의 조선의용대가 광복에 기여했다고 하더라도 6·25 전사자 유족들이, 천안함과 연평해전 사망자 유족들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현충일 추모 현장에서 김원봉을 불러내는 것은 참으로 부적절했다며 보수 세력들은 펄쩍 뛴다.문 대통령의 이런 역사적 사실 불러내기는 지난 3·1절 기념사에서 이미 경험했다. 문 대통령은 친일잔재 청산은 미뤄둔 숙제라면서 역사 바로 세우기를 강조했다. 문 대통령에게 ‘빨갱이’는 “우리가 하루빨리 청산해야 할 대표적인 친일잔재”였다. 일제가 독립운동가를 낙인찍는 말이었고 해방 후에는 친일청산을 가로막는 도구였다. 양민학살과 간첩조작, 민주화운동에서 국민을 적으로 모는 낙인으로 사용됐고 많은 사람들이 빨갱이로 낙인찍혀 희생됐다는 것이다. 그런 빨갱이가 색깔론으로 변형되어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 정치적 경쟁 세력을 공격하는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는 것이다.문 대통령이 과거청산을 국정의 제일과제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명쾌한 증거들이다. 경제문제, 북핵문제, 사회갈등 문제 등 지금의 국가적 문제들을 해결하기에 앞서 과거 청산부터 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문 대통령의 발언은 오히려 보수와 진보 간 이념 논쟁에 불을 지핀 것이고 내년 총선을 앞두고 보수와 진보를 편 가르기 할 소지가 충분하다. 그렇다면 대통령의 김원봉 소환은 “이제는 보수와 진보로 나누는 시대는 지났다”는 대통령의 의지와는 정 반대로 작동할 가능성이 더 크다.반정으로 권력을 잡은 훈구파 중심의 반정 세력에 포위된 중종은 마침 등장한 사림파의 신예 조광조에 마음이 쏠렸다. 왕의 신임을 업은 조광조는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훈구파를 몰아내고 국정을 혁신하려 한다.조광조는 반정 정국공신이 너무 많다며 공적을 새로 심사해 무자격자의 공훈을 박탈한다. 117명이나 되는 정국공신 중 76명의 공훈을 박탈하고 지급한 토지도 몰수한다.그러나 훈구파도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사림파가 설쳐대는 꼴을 못마땅해 하던 훈구세력들이었다. 젊은 친구들이 역심을 품었을 리 없다는 대신의 충고에도 중종은 귀 기울이지 않았다. 왕도 조광조의 개혁 드라이브에 조금씩 싫증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조광조는 귀양지에서 1달 만에 끝내 사약을 받는다. 36살 조광조만 죽은 것이 아니다. 그가 척결하려던 기득권이 다시 살아났고 혁신하려던 조선의 역사는 후퇴했다. 지금으로부터 500년 전, 중종 14년의 일이다.옛날에는 이념 전쟁에서 이기면 반대파를 합법적으로 때려죽이거나 사약을 내렸다. 그러니 ‘막말’이라며 상대와 말로만 정쟁을 벌이는 지금이야말로 참으로 평화시대를 맞은 것인가.

[이경우의 따따부따] 설사냐 싹쓸이냐

설사냐 싹쓸이냐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아쉬운 마음이 가셔지지 않았다. 그때 욕심을 냈더라면 결과가 달라졌을 것인데. 그랬다면 내가 호기롭게 앞장서서 식당에 들어갔을 테고 기분 좋게 국숫값을 계산하는 치기도 부렸을 것인데 하는 후회다. 마지막 판 국화 껍데기로 청단을 후려쳤다면 공산 광을 젖혀 판을 싹쓸이하고 게임도 끝낼 수 있었다. 그런데 내 딴에는 국화 쌍피를 기다린다는 욕심에서 손에 쥔 공산 쭉지로 공산 열을 때렸다. 청단을 포기하고 상대의 고도리를 막으려 했던 것이다. 그런데 하필 공산 광을 젖혀 설사를 해버린 것이다. 생각할수록 아쉬웠다.바둑에는 수순이라는 게 있어 어쩔 수 없이 두게 되는 정석이 있고 또 상대의 대응에 따라 다음 수를 생각하고 한 수 한 수를 두게 되는 골치 아픈 두뇌게임이지만 고스톱도 때에 따라서는 여간 잔머리를 굴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게임이다. 그런데 세상에 바둑이나 고스톱만 수순이 있는 것은 아니다. 정치판에도 우리네 인생살이에도 수순은 있기 마련인 것을.정치인으로 변신한 황교안 한국당 대표가 민생투어라면서 전국을 돌며 문재인 정권 심판론을 부르짖어 큰 성과를 거양한 모양새다. 문재인 정권의 경제 파탄과 외교 무대책 안보 불안감을 추궁하며 무능 무책임 무대책 정권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그 주장이 일부분 먹혀 들어간 것인지 여론조사에서 한국당 지지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보수층 결집을 주도했다고 정치평론가들은 침을 튀긴다.지난 2017년 대선 당시 한국당 지지율은 12%대를 넘지 못했다. 지난해 지방선거 후 일정부분 회복했다고는 하지만 민주당과 두 자릿수 차이를 보였던 한국당이었다. 전당대회를 계기로 일정부분 만회하더니 최근 황 대표의 장외투쟁으로 탄핵정국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다.공안검사 출신에 법무부장관과 국무총리에다 대통령직무대행까지 경험한 황교안 대표이지만 한 번도 선거를 해 본 적이 없다. 대권을 꿈꾸는 그로서는 당장 내년 4월 총선에서 어느 정도 대망의 밑그림을 보여 주어야 한다. 더구나 그는 현역이 아니어서 국회가 열리더라도 의회 내에서의 활약에는 일정부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로서는 지금 야전 경험을 통해 민심과 스킨십을 늘려가며 몸집을 불리고 정책과 전략도 수립할 필요가 절실하다.여기에다 정권보다 자신의 차기가 더욱 중요한 국회의원들이 국회를 뒤로 하고 장외투쟁에 투신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현재로서는 대체 불가능해 보이는 공천권을 가진 황 대표와 일체감을 보임으로서 내년 총선 공천경쟁에서 기득권을 확보하고 지역 선거운동도 할 겸 장외투쟁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이런 한국당의 보수세 결집에 내부의 불편한 시각도 있다. 아직 분명한 대안 정책도 없이 20세기식 색깔론으로 문재인 정권을 규탄만 한다고 중도보수층이 한국당에 표를 몰아 줄 것이라는 기대는 너무 이르다는 것이다. 보수의 결집만큼 상대적으로 민주당 지지세력의 결집도 커질 것이라는 불안감도 없지 않다. 구심력과 원심력이 작용과 반작용으로 작동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국회를 뒤로 하고 장외투쟁에 몰입한 손익계산서가 궁금한 이유다.정치적으로 이런 황 대표의 대권 놀음에 올라탄 국회의원 때문에 5월 국회도 빈손이었다. 국회가 문 닫고 있는 동안 국회에 계류된 법안을 빨리 해결해 달라는 국민들의 국회 항의 집회가 잇달고 있다. 강원도 고성 강릉의 산불 피해보상과 대책은 물론, 포항 지진 피해 보상을 위한 추경안 처리도 미뤄져 있다. 과거사 정리법 개정안을 처리해 6·25당시 민간인 희생자 유족들은 국회에서 울분을 터뜨리기도 했다.수많은 민생 관련 법안들이 산적해 있는데 정작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의 신분상 안위를 국민 생활이나 국가 이익보다 앞세우는 것으로 국민들에게 비쳐진다면 득보다 손실이 더 클 것이다. 내년 총선거에서 한국당이 과반을 넘어서고 원내 제일당이 될 것인지 아니면 참패할지는 국민이 판단할 것이다.싹쓸이와 설사는 한 장 차이다. 뒷장을 볼 수 없는 것은 선거에서나 화투판에서나 비슷하다.

[이경우의 따따부따]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지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지지난 9일의 문재인 대통령 취임 2주년 기념 대담은 문 대통령의 판정승으로 끝났다. 상대가 대통령이었다. 우리는 이런 각본 없는 대담에 익숙하지 않다. 그런데 상대인 대통령의 반응도 그렇고 대담 내용보다 대담자의 자세에 대한 비난이 일고 있는 것도 그 반증이다.시청자들에게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기자회견과 비교됐을 법하다. 평소 장관은 물론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조차 독대하기 어려웠던 박 전 대통령은 기자회견도 힘들었다. 탄핵되기 전인 2016년 1월 신년 기자회견은 당시 정연국 청와대대변인은 “사전 질문을 조율하지 않고 질문자도 미리 정하지 않았다”고 자랑했다. 그러나 질문자와 질문 내용이 사전에 흘러나오면서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비난을 피하지 못했다. 거기에다 내용면에서도 알맹이 없는 수준 이하였다는 혹독한 평가를 받았다.문 대통령은 취임하면서 소통을 강조했고 몇 차례 직접 대본 없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국민들이 받아들이는 체감온도는 논외로 치더라도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주려 노력했다. 이번 취임 2주년 회견을 어떤 모습으로 할 것인지 내부적으로 많은 논의를 거쳤을 것이다. 형식과 내용면에서 고심 끝에 나온 방안이 KBS기자와의 대담 형식이었다고 한다.문제는 대담자인 송현정 기자였다. 야당이 주장하는 ‘독재자’라는 평가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바로 들이대기도 했고 대통령의 답변 도중에 말을 끊기도 했다. 대통령 답변이 삼천포로 빠지면 표정을 일그러뜨리기도 했다. 그러자 청와대 청원게시판과 KBS 시청자게시판에는 송 기자의 공개 사과를 요구하는 청원이 현재진행형으로 잇따르고 KBS 시청료 거부운동으로 확산되기도 한다.문 대통령과 대담하는 송 기자는 내가 보기에도 어깨에 힘이 너무 들어갔다. 박근혜 전 대통령 당시의 기자회견에 대한 평가나 상대가 대통령인데 대한 국민적 감시를 너무 의식한 탓일 터다. 생글생글 웃으면서 긍정적인 이야기로 수위조절 했다면 대통령 페이스에 말려 아부한다고, 그게 무슨 대담이냐고 매도당할 테고 진작 그럴 줄 알았다는 돌팔매를 각오해야 했다. 그러니 어깨를 석고붕대로 고정하고 눈동자에도 힘을 주고 안면 근육은 강직도를 한껏 높였다. 그래야만 시청자들이 짜고 치는 고스톱이 아니라고 믿어 줄 것이라고 자기검열 했을 것이다.기자의 질문 자세를 두고 버릇이 없다거나 수준이 낮다거나 평가할 수는 있지만 기자는 인터뷰이에 대한 인격적 존경과 업무적 공정 사이에서 자신의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직업인이다. 그러니 기자에게 예의 없는 질문은 애초에 없다. 단지 뻔한 질문을, 답변을 얻어내지 못하는 줄 알면서도 질문을 위한 질문을 하거나, 상대의 인격을 무시하고 모욕을 주거나, 공개적으로 창피를 주기 위한 질문은 노 생큐다.국민들은 기자를 인터뷰이의 취향과 관심사에 추임새나 넣는 관제언론 시대의 리포터로 알고 있는 것일까. 그런 현상은 사회적 정치적으로 영향력이 큰 상대일수록 더욱 심할 수밖에 없다. 송 기자에 대한 비난도 어쩌면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의 대통령 심기를 지레 걱정하는 오버가 만들어낸 결과가 아닌지 의심된다.회견 이후 송 기자와 KBS에 대한 네티즌들의 빗발치는 항의에도 문 대통령은 전혀 불쾌해하지 않았다고 청와대 핵심관계자가 전했다. “오히려 더 공격적인 공방이 오갔어도 괜찮았겠다”는 문 대통령의 반응은 대담자인 송 기자나 KBS 방송국은 물론 대통령 지지층이나 일부 항의하는 국민들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권력자를 대하는 기자들의 인터뷰 준비와 대응 자세의 대전환을 요구한다.질문에 빠진 내용이 없을 수 없다. 대담에서는 경제 남북문제 국내정치 등 한 가지 주제만 하더라도 세미나를 열어 답을 찾아야 할 사안들도 있는데 모두가 만족할 답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어떤 형식이든 열린 자세의 대담은 자주 할수록 좋다. 그것이 답답할 수밖에 없는 국민에게는 소통의 방식으로 이해될 것이니까. 국민들은 그런 대담에서 대통령의 대답을, 그 행간까지 읽으면 될 일이다.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을 보아서야 되겠나.

[이경우의 따따부따] 먹고 살기 힘들어서

먹고 살기 힘들어서신호가 바뀌어 출발하려는데 맞은편에서 교통신호를 무시한 오토바이가 앞으로 휙 지나간다. 아찔하다. 욕 할 시간도 없다. 한 숨 고르고 억지로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얼마나 급했으면 저렇게 목숨을 초개같이 여길 수 있을까. 저 용감성은 그 배달음식을 기다리는 고객을 위해서일까, 아니면 한 번이라도 더 배달해서 일당을 올리려는 처절한 몸부림일까. 국민소득 3만불 시대가 무색하게 대구시내 한복판에서도 수시로 목도하는 삶의 현장에 나는 여전히 불편하다.부산의 한 시의원이 환경미화원 자격을 낮잡아 수준에 비해 급여가 너무 많다고 비난했다가 황급히 사과했다. 그는 환경미화원이 “대학을 졸업하거나 치열한 시험을 치르고 경쟁을 뚫고 들어오는 일은 과거에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전문지식이나 기술이 필요 없는 그야말로 단순 노동력만 필요로 하는 직종인 줄 알았는데 현실은 ‘신의 직장’이라는 것이다.그가 아는 청소원은 ‘열악한 급여를 받고 좋지 않은 환경 속에서 일하는 사회적 약자’였고 그러니 당연히 보수도 적어야 하는데 그가 알고 보니 자신들보다 많았다는 거다. 그가 구체적으로 들이댄 18년차 환경미화원의 연봉은 6500만원이었고 그것은 ‘자신들 시의원보다 100만원 더 많다’고 공개했다.미화원들이 점잖게 문제 삼지 않아서 그 정도에서 끝날 수 있었지 그야말로 레밍 발언보다 더 치졸하고 옹색하다. 왜 환경미화원은 시의원보다 월급을 더 많이 받으면 안 되는가? 대한민국에서 유독 부산시 시의원만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을 하고 많은 월급을 받아야 하는가? 지방자치가 부활하면서 시의원은 무보수 명예직으로 출발했던 기억을 그는 모르고 있다는 말인가. 참으로 시대착오적이고 퇴행적인 생각이며 전근대적 사상의 소유자라 하지 않을 수 없다.부산시청 노조원이 “30여 년을 길에서 평생 주6일 밤낮, 주말 없이 새벽 근무를 하는 환경미화원분들이 그렇게 세금을 축내는 이기적인 집단으로 보이시나”라는 비판과 함께 시의원을 향한 비난이 쏟아진 것은 예고된 수순이었다.정치인들의 이런 의식은 부산시의원에 국한된 문제가 아닌 데 있다. 대구에서도 직업여성을 향해 비인격적이고 가당찮은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구의원이 있었다. 그는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을 들어가며 성매매 여성에 대한 자활지원 조례 제정에 이의를 제기했다. 2000만원을 받고 다음에 다시 성매매를 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먹고 살기 위해 육체를 생업의 수단으로 삼는 인생을 향해 인격 비하성 발언을 했다는 점에서 비난을 사고도 남음이 있다. 여성단체가 항의를 하고 당에서도 당원의 품위 유지 의무와 여성 비하에 대해 징계했다.지방의원들의 역할과 보수 논란은 그보다 훨씬 중요한 일을 다루시는 국회의원의 활약을 보면 수긍이 가기도 한다. 지금 선거법 개정을 놓고 패스트 트랙 논란을 벌이는 정당 간 정쟁을 보노라면 정말 국민을 위한 국회의원인지, 자기들 밥그릇 지키기 투쟁인지 언뜻 판단이 서지 않는다. 연간 1억 원이 넘는 세비와 온갖 특별대우를 받으면서 말이다.우리나라 임금 근로자 2천여만 명 중 월 100만 원도 못 받는 사람이 10.2%나 됐고 100만원 이상 200만 원을 받는 근로자는 27.1%였다고 통계청이 최근 발표했다. 지난해 10월 기준 취업자의 산업 및 직업별 특성 보고서에서다.목숨을 걸고 교통신호를 위반해가며 심부름을 하는 퀵맨이나 새벽부터 거리 청소에 나서는 환경미화원보다 편하고 안전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월급을 받는 것이 당연시되는 사회 구조가 근대 사회에서 반드시 정상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런데도 편한 일을 하는 것이 돈도 많이 받고 사회적 존경과 보수까지 챙기는 직업이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언젠가 노점상을 단속하는 공무원에게 “당장 칼 들고 강도짓 하지 않고 살기 위한 몸부림”이라며 거칠게 항의하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우리 주위에 아직은 먹고 살기 위해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 있다.

[이경우의 따따부따] 홈런을 쳤더라도 겸손해야

문재인 대통령이 신임 장관을 임명한 뒤 “국민 모두에게 공정한 기회가 보장돼야 하며, 특권층끼리 결탁 담합 공생해 국민의 평범한 삶에 좌절과 상처를 주는 특권과 반칙의 시대를 반드시 끝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지당한 말씀이고 아주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그런데 문 대통령님, 장관 지명 같은 정치는 왜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인지 국민은 궁금합니다.”그래서 하는 말인데, 촛불이 이 정권을 세웠다고 촛불에 너무 기대지 마시라고 충고드리고 싶다. 왕조시대에도 그랬다. 백성은 바다와 같다. 바다는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배를 뒤집기도 한다고. 촛불이 이 정권을 세웠다지만 그전 정권을 뒤집어엎은 것도 역시 촛불 아닌가.우리가 배신감을 느끼는 것은 그만큼 기대하고 믿었던 데 대한 실망감이 더해진 때문일 것이다. 처음부터 그런 애정이나 나아가 존경심이 없었다면 섭섭하다거나 배신감 같은 것은 생겨나지도 않았을 테니까. 고위공직자나 정치 지도자를 대하는 국민 눈높이는 그런 국민적 기대치의 반영이다. 국민의 정서는 위법성과 시효를 따지는 형사재판과는 다르다.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의 기자 시절 글을 읽고는 그의 정의감과 역사의식에 경탄하기도 했다. 그랬던 그의 재개발지역 상가 매입 의혹은 사건이라고 부르기에 충분하다. 어찌 군색하게 마누라 핑계를 대며 궁지를 모면하려 했는지 창피하고 부끄럽다. 사퇴했지만 야당에서는 수사해야 한다고 날을 세운다. 그런 자리에 있으면서 그 순간을 피해가지 못한 것이 안타깝기도 하고 그런 기회를 노린 것 같아 괘씸하기도 하다. 지금까지 그가 청와대를 대변하던 모습과 오버랩 되면서 도덕적으로 지난 정권과는 다를 것이라 기대한 문재인 정권의 속살을 들여다 본 듯 내가 부끄럽다.비록 자진사퇴하긴 했지만 시세차익을 노려 갭 투자하고 고급아파트 분양권을 갖고 있던 최정호 전 국토부장관 후보자는 주택정책 주무부처 장관 후보자 지명을 수락한 자체가 뻔뻔하고 염치없었다. 임명을 철회했지만 아들의 호화 유학으로 구설수에 오른 조동호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도 국민 정서에는 맞지 않는다.임명된 장관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청문보고서도 채택되지 못한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장관은 신고한 재산에다가 자녀의 이중국적 문제 등으로 국민의 시선을 따가운 시선 속에서도 임명받았다.문제는 그런 사람들을 장관이나 헌재재판관 후보자로 추천하는 시스템에 있다. 그런 자리에 있으면서 낯 두껍게 이재에 귀를 열어놓는 지도자를 보는 국민들은 서글프다. 자신의 군색한 가정사나 비밀스런 프라이버시까지 까발려지면서도 추천한다고 덜렁 받아치는 모습이 더욱 실망스럽다. 나는 이런 결격사유가 있어 그런 자리에는 갈 수가 없다고 거절했어야 했다. 그런 염치를 아는 당당한 지도자는 없나.프로야구 경기에서 홈런을 친 타자가 1루로 전력질주 하지 않고 자신이 친 타구를 여유 있게 바라보면 상대팀의 견제는 물론이고 관중으로부터 야유를 받는다. 배트 플립을 하나의 세리머니쯤으로 여기기도 하지만 당하는 쪽에서는 여간 불쾌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타자들은 다음 타석에서 투수로부터 스트라이크 대신 머리나 엉덩이에 강속구를 얻어맞는 일이 드물지 않게 일어난다. 최근 미국 프로야구에서도 일어났던 일이다.아무리 경기라고는 하지만 상대를 생각해서 적당히 즐기라는 말이다. 지금은 은퇴했지만 이승엽 선수가 현역 시절 홈런을 치고도 상대를 자극하지 않는 선에서 세리머니를 하는 신사로 알려지면서 그의 인기 생명도 길었던 것으로 기억한다.좋은 일도 적당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인데 판사라고 주식 거래를 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정치인이나 국가지도자에게 재산까지 팔아 넣는 독립운동가가 되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그들에게 재산증식에 무신경하라는 말도 아니다. 어떻게 불렸든 차치하고 재산이 많더라도 겸손해야지, 권세까지 다 가지려 하면 욕심이 된다. 그러니 적당해야지, 국민 눈높이가 아니라 국민의 기대치를 의식해야 하는 것이 지도자의 자리다.

[이경우의 따따부따] 잠든 기억을 소환하는 봄

잠든 기억을 소환하는 봄1974년 4월3일, 유신 대통령 박정희는 긴급조치 제4호를 발동한다. 그리고 4월25일 당시 중앙정보부는 학생 데모의 배후에는 공산당의 조종이 있었다는 민청학련 사건을 발표한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다.중앙정보부는 1천24명의 위반자를 조사하였고, 비상군법회의 검찰부는 180명을 국가보안법과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기소했다. 인민혁명당계의 지하공산세력, 용공세력, 일부 반정부 세력과 결탁해 4월3일을 기하여 정부를 전복하고 공산정권 수립을 기도했다는 혐의였다.긴급조치 4호는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과 관련되는 단체를 조직하거나 이에 가입 또는 관여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지하며 정당한 이유 없이 출석·수업·시험을 거부하거나 학내외 집회·시위 등 개별적 집단행위를 금지하고 이 조치를 위반하거나 비방한 자에 대해서는 5년 이상의 징역에서 최고 사형까지 처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법이었다.이에 앞서 그해 1월8일, 당시 박 대통령은 유신헌법을 부정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지하는 긴급조치 1호를 발동한다. “불행하게도 국가적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아직까지 과대망상증에 사로잡혀 있는 일부 인사들과 불순분자들은 부질없는 선동과 악의적인 유언비어를 유포시키면서 사회혼란을 조장하며 헌정질서인 유신체제를 부정하고 이를 전복하려 들고 있다.” 1972년 10월 유신으로 시작된 유신 정국에 학생들의 반유신 저항 운동이 확산되면서 시작된 긴급조치 정국은 1979년 12월8일 긴급조치 9호가 발동될 때까지 2천159일간 긴급조치 시대가 됐다.긴급조치 4호 위반으로 구속된 180명은 비상군법회의에서 8명이 사형을, 민청학련 주모자급은 무기징역을, 그리고 나머지 피고인들은 최고 징역 20년에서 집행유예까지를 각각 선고받았다.1년 뒤인 1975년 4월8일 대법원은 피고인 36명의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대로 형이 확정됐다. 그리고 선고 바로 다음날인 4월9일에 사형수 8명에 대한 형이 집행되었다. 형량이 확정된 지 겨우 18시간 만이었다. 가족들이 위로 차 면회를 갔을 때는 이미 형이 집행된 뒤였다.서도원, 도예종, 송상진, 우홍선, 하재완, 김용원, 이수병, 여정남씨. 전격 처형된 8명은 모두가 대구 경북 출신이다.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의도된 표적이었던가. TK 지역이 보수 우파의 근거지가 된 한 이유라고 합리적 의심을 하게 된다.유신정권에 의한 대표적 용공조작 사건으로 꼽히는 이 사건에 대하여 2005년 12월 국가정보원 과거사진실규명위원회는 “민청학련사건은 학생들의 반정부 시위를 인민혁명 시도로 왜곡한 학생운동 탄압사건”이라고 발표하고 2009년 9월 사법부도 이 사건 관련자들에 대하여 “내란죄로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하였다. 또 2010년 10월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이 사건의 관련자와 가족 등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국가가 유신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오히려 가해자가 돼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며 국가가 520억여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리기도 하였다.그리고 2010년 12월16일 대법원은 긴급조치가 위헌이라고 판결하고 2013년 3월21일 헌법재판소도 위헌이라 결정한다. 그때까지 조용하던 헌법기관들이 서로 자기 일이라며 앞 다퉈 역사를 뒤집은 셈이다.모든 것이 하얀 눈 속에 덮여 있으면 세상이 조용하고 평화스럽다. 그러나 그렇게 영원히 겨울이 계속될 수는 없는 것이 자연의 섭리다. 봄이면 싹을 틔우는 라일락처럼 눈 속에서 언제까지나 묻혀 있을 수만은 없는 것이 인간사이기도 하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언 땅을 녹이고 새 생명을 살려내니 그것이 시인으로서는 참으로 견뎌내기 힘든 세상이라는 역설이다. 시인은 그래서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했다.김학의 사건, 장자연 사건, 제주 4·3사건, 세월호 사건, 사건, 사건들. 덮어도, 덮어 두어도 영원히 덮여 있을 수만은 없는 것이 우리의 기억이다. 4월이면 눈 속에서 싹을 틔우는 라일락처럼.올 봄 꽃샘추위가 유별나다. 환절기 감기몸살이 올 봄도 그냥 지나갈 것 같지 않다.

[이경우의 따따부따] 봄꿩이 스스로 제 명을 재촉하니

봄꿩이 스스로 제 명을 재촉하니비행기가 대구 공항 활주로에 착륙한 모양이다. 까꿍 까까꿍 까까꾸꿍... 여기저기서 참았던 재채기가 한꺼번에 터져 나온다. 너나없이 스마트폰을 열어 확인하고는 또 답장을 보낸다. 비행시간 동안 어떻게 참았는지, 갑갑함에 대해 복수라도 하듯 아주 중계방송을 하기도 한다.SNS는 시간과 장소를 구별하지 않고 공격해 온다. 조금만 틈을 보였다 하면 파고 들어오는 공격에 내가 몸을 피할 수밖에 도리가 없다. 그래도 한도가 있지. 참으로 집요하다. 내가 궁금해 하지도 않았고 묻지도 않았는데도 말이다. 그런데도 세상의 온갖 지혜와 정보와 지식으로 포장돼 쉴 새 없이 날아든다. 그런 공격자 중에는 자신이 트럼프 대통령급으로 착각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건강에 대한 조언, 유머를 빙자한 음담이나 살아가는 지혜라며 인터넷에 떠도는 이런저런 잡문들도 있다. 죄 없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석방하라는 주장이나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퍼주기 등 남의 이야기를 마구 퍼 나르기도 한다. 그런 이야기를 올려 내 무지를 깨우쳐 주겠다는 사람들의 열정과 동정심에 비하면 내 고마움의 표현은 아무래도 부족함을 인정한다. 그러면서 거기에 댓글로 화답하는 또 다른 부지런함에 내 무성의는 시기심으로 변명한다.그런가 하면 대화방에 자신의 사생활을 여지없이 까발리는 사람들도 있다. 어제 xx산을 올랐다. 아직 춥더라. 그러면서 사진과 함께 올라오기도 한다. 일찍 핀 들꽃 사진도 올린다. 동네 뒷골목의 식당 풍경도 올라온다. 식당의 식단도 사진으로 찍어서 올라온다. 그러면서 옆자리 누구와 같이 있다는 자랑까지 곁들인다. 입고 있는 새 옷도 자랑하고 레시피까지 설명하기도 한다.모든 관계들이 네트워크상에서 연결되는 디지털 세대들의 사회관계망 서비스를 이용한 상호 소통은 그들만의 세계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 모든 것을 공유하면서 확인하고 또 인정받으려 한다. 그런 픽미 세대에 소속되지 못하는 아날로그 세대들은 그 소외감을 의식적으로 부정하기 위해서 더 극성적으로 사회관계망 속으로 자신들을 밀어 넣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강남 룸살롱 버닝선 폭행 사건이 그야말로 일파만파 게이트로 커지고 있다. 그들만의 게임이요 놀이였던 일탈행위가 범죄로 드러나고 그 끝을 예측할 수 없게 만든 것은 그들끼리 나눈 대화방 속의 대화들이다. 사이버상 같은 공간에서 정보를 공유하고 같이 즐기며 희롱했던 세상이 부메랑이 되어 자신들을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만의 공간이었고 사생활의 일부였는데, 그것이 공개되고 보니 꼼짝할 수 없는 범죄의 증거가 됐다.세상 사람들이 알게 됐다. 그런 초호화 술판이 있고 거기엔 연예인이 등장하고 영화 장면 이상의 마약과 난잡한 게임들이 실화로 공연됐다는 것을. 그들의 거래엔 성상납이 있었고 거기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일탈 행위를 봐주는 경찰이 있다는 것도 밝혀졌다. 그들을 관리하는 연예기획사는 권력기관과 유착돼 음주운전 정도는 세상모르게 덮여 방송활동도 아무런 제재 없이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이다. 거기엔 물론 평소 향응과 골프를 통해 관리하는 식이었다. 그들이 특권처럼 누려왔던 자신들만의 놀이는 범죄였고 그 범죄의 뒤에는 또 다른 비리가 있어 가능했다.자신들만의 공간에서 그들만의 리그를 벌이면서 자랑하고 싶은 욕망은 억제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것이 화를 불러온 것이다. 바바리 맨은 실은 또 다른 관음증의 표현이라고도 한다. 그것이 범죄인 것을 몰랐다면 이번에 그 대가를 치르면서 깨달아야 할 것이다.그들이야 방송을 하차하고 연예 활동을 중단하면 그만이지만 세계 각국에 불같이 일고 있는 한류 열풍에 찬물을 끼얹을 까 두렵다. K팝을 따라 부르고 좋아하는 아이돌 스타의 브로마이드를 벽에 붙여놓고 우상처럼 숭배하는 세계 곳곳의 팬들의 실망은 또 어떡하나.봄 꿩이 춘정을 못이겨 스스로 운다. 실은 발정기의 장끼가 까투리를 부르는 소리지만 엉뚱하게도 사냥꾼을 불러 제 명을 스스로 재촉하는 것이다. 이 봄, 스스로 울어 명을 재촉하는 것이 봄꿩 뿐이 아닌 듯하다.

[이경우의 따따부따] 체험하고 감동하게 해주자

고급 외제차를 타고 온 젊은이가 기름값 몇백 원이 아까워 더 싼 주유소를 찾아다닌다는 이야기는 믿고 싶지도 않지만 사실이었다. 외제차 교통사고가 났는데, 사고 승용차는 처음 렌트한 사람으로부터 3차로 하루 13만 원을 주고 재임대해 빌려 타는 10대 무면허로 밝혀진 것이다. 그렇게 비용을 지불하고라도 외제차를 한 번 타보고 싶다는 욕망을 경제 논리나 상식적 인지력으로 이해할 수 있겠는가.경제는 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국민소득이 3만불을 넘어섰다지만 개인의 지갑에는 전혀 영향이 없다. 오히려 더욱 가난해지는 느낌이다. 이런 세상에서 사람들의 열패감은 더 이상 소유에 대한 욕심을 꺾어 버렸다. 대신 누리고 체험하는 현실형으로 바뀌어간다고 사회학자들은 설명한다.지인들과 팔공산 어느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는 인근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런데 그 커피숍이 그냥 커피숍과는 무엇인가 달랐다. 이런 산중에 이런 호화 대규모 커피숍이라니. 산중 커피숍이라고 생각했으나 도심에서 30분이면 닿는 곳이니 산속이라고 지레 선입견을 가질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소한 분위기에도 감동하고 작은 서비스 하나에도 흔쾌히 지감을 여는 소비 심리가 일상 곳곳에 자리잡아가고 있다.지난 가을 광주에서 손님이 왔을 때 시내에서 식사 후 대구 구경을 하고 싶다기에 팔공산으로 안내했던 적이 있었다. 가까운 곳에 팔공산이 있어 참으로 다행이라 생각하며 일행을 안내했다. 팔공산의 천년 고찰도 둘러봤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 대구 시가지도 내려다보았다. 마침 가을이라 단풍객들이 팔공산 일주도로를 메우고 있었다. 광주 무등산을 자랑하기에 대구 팔공산이 비록 도립공원이지만 지세와 풍광이나 역사, 문화재에서 광주에 뒤지지 않는다고 자랑했던 기억이 난다.이리 저리 구경하다가 어느 커피숍에서 길게 이야기를 나눌 수가 있었다. 그때 우리가 찾은 팔공산의 커피숍은 이미 많은 손님들이 들어서 자리가 모자랄 지경이었다. 그래, 디저트라도 호화롭게, 폼 한번 잡아보겠다는 사람들의 욕망을 구태여 나무랄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지난 12일 대구스타디움에 권영진 대구시장이 나타났다. 그날 대구스타디움에서는 대구FC와 중국 광저우 에버그란데의 축구경기가 있었고 광저우 팬 1천500명이 대구로 와서 응원전을 펼쳤다. 중국 관광객이 대구로 온 것은 단순히 축구 경기 응원 때문만은 아니었다. 대구시의 중국 현지 관광객 유치노력이 빛을 본 것이지만 무엇인가 보여주려는 노력이 단순히 대구 관광지 홍보보다 실질적인 결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이다.권 시장은 스탠드에서 일어서서 두 손을 번쩍 들고 관중석을 향해 인사했다. 권 시장의 축구경기장 방문은 중국에서 온 광저우 축구팬에 대한 자치단체장으로서의 손님맞이 예의였다. 중국 축구 응원단들은 대구에 머무는 동안 대구 평화시장에서 치맥을 즐기고 서문시장을 찾는 등 대구 관광도 했다. 광저우 축구팬들은 자기 팀 선수를 응원하러 바다 건너 이웃나라로 왔다가 상대팀 소속 자치단체장과 함께 경기를 관전하고 응원했다는 데서 작은 감동을 느꼈을 수도 있다. 닭똥집 구이에 생맥주 한 잔, 그것도 이국의 도시에서 맛보는 나름의 낭만이 될 것이다. 이런 진심이 감동으로 이어져 2020년 대구경북 관광의 해를 성공으로 이끄는 작은 밀알이 되길 바란다.민박체험, 1박하면서 농촌 구들방에서 겨울 구들방에서 몸을 녹이고 장작불 땐 온돌방, 불편한 화장실 체험, 그러나 방음, 대구의 한옥호텔, 그리고 산사에서의 체험. 누구나 상상하는 농촌 한옥체험, 그 이상의 것. 서비스다. 불편함을 서비스로 포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을 들이고 그들이 감동을 하도록 만드는 거다.이젠 웬만해서는 감동하지 않는 무딘 현대인에게 진심으로 서비스한다. 김치 한 가지, 된장찌개 하나라도 정성으로 올려 가슴을 움직이게 만들라는 말이다. 우리에게는 장가계나 천문산 유리잔도 같은 천연자원도 없고 산악 엘리베이터나 산악 케이블카 같은 대형 관광시설도 없다. 우리의 자원이라면 체험하게 하고 서비스로 승부하는 거다. 그 과정이 사람들을 감동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