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판왕’ 부동산대책은 무엇을 잡았나

‘끝판왕’ 부동산대책은 무엇을 잡았나이부형현대경제연구원 이사 지난해 9월13일 정부는 지속적인 규제에도 불구하고 뛰는 집값이 잡히지 않자 부동산 대책의 ‘끝판왕’이라 불릴 만큼 강력한 규제책을 발표했다. 9·13 부동산 대책이라 불리는 이 정책에는 다주택자에 대한 중과세, 대출규제, 3기 신도시 등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와 같은 이른바 대출과 세금 및 공급이라는 부동산 관련 3종 세트가 망라되어 있다. 즉 투기적인 수요는 최대한 누르고 실수요 충족을 위한 공급은 늘려 부동산시장을 안정화하겠다는 것이다.그러다 보니 대책 발표 당시만 해도 부동산시장 전반이 하향 안정화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다. 이런 기대감이 반영된 탓인지 실제로 지난 1년간 서울과 지방의 아파트 매매가격은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까지만 보면 정부의 대책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것 같았고, 앞으로도 안정화되어 곧 합리적인 수준에서 누구나 살 집을 얻을 수 있겠다는 또 다른 희망도 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부동산시장이 완전히 망가져 경제에 큰 부담을 주지 않을 정도의 선에서 말이다.하지만 실상은 정책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서울 부동산 가격은 최근 다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고, 민간택지 내 분양가 상한제 시행에 앞서 공급 부족 현상이 심화될 것이라는 기대에 신축은 물론 입지와 가격 등 경쟁력을 갖춘 오래된 주택도 신고가를 경신하고 있다.이에 반해 지방은 소수 광역시를 제외하고는 가격 하락에 신규 공급물량도 많아 그야말로 암흑기를 보내고 있다.특히 가격하락에도 수혜자는 그다지 많지 않고, 오히려 시장 불안에 전세 자금을 떼이는 사례가 발생하는 등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무엇보다 부동산시장의 침체가 지방 경기 악화의 도화선이 될 가능성이 크게 높아졌고, 우리나라 전체 경기 회복에도 큰 짐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투기와 집값은 끝까지 잡겠다는 각오로 대책을 마련했다는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과연 누구를 위해 또 무엇을 잡았는지 궁금하는 게 세평이다. 더군다나 현 정부 출범 이래 본 대책까지 17개월 동안 두달에 한 번꼴로 부동산 대책이 발표되었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더 그렇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부동산 대책이라고 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지만 돌이켜 보면 애당초 대책의 방향성이 시장의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부동산시장도 기본적으로는 주택이라는 상품 자체의 특성은 물론 수요와 공급이라는 상식에 가까운 이론을 바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이는 최근 국내 부동산시장에서 벌어지는 현상만 보더라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전반적인 수요는 잡았을지 모르나 특정 지역이나 주택이 아니면 거래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시장과 혹시라도 거래가 성사되면 가격 불안을 부추기는 시장, 공급은 확대하려는 데 수요 분산의 진전 가능성 예측이 어려운 시장, 한쪽에서는 공급이 넘쳐나는데 다른 한쪽은 공급이 부족한 시장 등이다. 물론 부동산이라는 재화가 가지는 특성상 수급조절이 단기간에 전국적으로 이루어지기는 어렵다. 또 일부 투기적 성향을 지닌 수요자와 공급자의 도덕적 해이가 부동산시장의 불안을 더 조장하기도 한다. 이런 점을 고려하더라도 지금의 부동산시장은 매우 기형적이다.부동산시장은 단순히 주택이라는 상품 자체만 공급하고 소비하는 시장이 아니다. 짧게는 현재 수요자와 길게는 그 자녀들의 삶을 좌우할 수도 있는 여건을 공급하고 소비하는 시장이기도 하다. 꾸준히 주택을 공급해도 수요가 집중되어 가격이 널뛰기하는 곳을 살펴보면 생업 영위, 교육, 치안, 문화생활 등 정주에 필요한 요건을 두루 잘 갖춘 곳이거나, 앞으로 그렇게 될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부동산시장의 안정을 위해서는 이러한 특성들이 잘 반영된 수급조절대책이 중장기적으로 일관성있게 지속되어야 한다. 케인즈의 비판처럼 아무리 이론이 필요없다 하더라도 잘 알지도 못하는 흘러간 3류 글쟁이의 말만 듣고 정책 의사결정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에게도 노변정담(爐邊情談)이 필요하다

우리에게도 노변정담(爐邊情談)이 필요하다이부형현대경제연구원 이사 앤 리차드는 대공황이 한창이던 1933년 미국 텍사스에서 태어나, 제45대 텍사스 주지사를 지낸 유명 여류 정치인이다. 그녀가 정치인으로 될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는 1988년 아틀란타주에서 있었던 민주당대회 기조연설이 엄청난 호응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연설에는 많은 내용이 담겨져 있지만, 아직도 회자되는 것은 바로 다음과 같은 메시지다.“저는 우리의 젊은이들이 대공황과 세계대전을 피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정말이지 너무도 다행스럽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젊은이들이 제가 알았던 지도자들을 만나지 못했다는 사실은 너무도 안타깝습니다. 어려운 상황이 닥쳤을 때 우리에게 희생이 필요하며, 이러한 어려움은 한동안 지속될 것이라고 우리에게 말해준 지도자들 말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다르고, 또는 고립되어 있거나, 아니면 특별한 관심사가 있어서 힘들다고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하나로 뭉치게 했고, 국가적 사명감을 부여해 주었습니다.”어린 시절 라디오를 통해 당대의 지도자를 접하며 자란 그녀가 이렇게 말한 이는 프랭클린 루즈벨트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그는 미국의 제32대 대통령으로 미국 역사상 유일무이한 4선 대통령이다. 고비 때마다 ‘노변정담(fireside chats)’이라 불리는 대국민 담화로 대공황을 극복하고, 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이 승리할 수 있도록 죽는 날까지 자국민들에게 국가적 사명감을 불러일으키도록 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그렇다면 도대체 루즈벨트 대통령의 노변정담이 무엇이길래 이토록 큰 영향력을 발휘했을까?루즈벨트 대통령의 라디오 대국민 담화는 취임 직후인 1933년 3월12일 ‘은행위기에 대해’라는 13분짜리 연설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하지만, 정작 노변정담이라 칭해진 것은 이것부터가 아니라 ‘유럽전쟁에 대해’라는 2번째 담화부터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평소 참모들과 벽난로를 에워싸고 대통령 담화문을 만들고 암기한다는 것에서 영감을 얻은 CBS 방송 경영진이 2번째 담화 직전에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노변정담이라 칭한 것이 유래가 된 것이다.노변정담은 당시 미국의 명운을 좌우할 대내외 정책과 법안 등에 대한 설명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이것만으로 국민 통합이 이루어지고 정책 추동력이 생겨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다음과 같은 2가지 특징이 노변정담에 없었다면, 아마도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는커녕 당시 상황을 더 혼란스럽게 했을지도 모른다.첫번째는 노변정담이 마치 친구를 대하는 듯한 진심 어린 말투와 염려스러운 어감으로 국민에게 다가가 큰 위로와 희망을 안겨주었다는 점이다. 1차 담화문에서 잘 알 수 있듯이 ‘내 친구들(My Friends)’로 시작되어, “이것은 나의 문제 이상으로 당신들의 문제입니다. 일치단결한다면 잘 해결될 수밖에 없습니다”와 같이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함과 동시에 1, 2인칭을 써서 친근하게 매듭지어진 것처럼 말이다.두번째는, 노변정담이 주요 정책이나 법안을 이해하기 쉽도록 간단명료하게 전달하고, 이를 통해 국민들이 수많은 소문과 억측에 편승하지 않도록 예방했다는 점이다. 이는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2월23일의 ‘전쟁의 경과에 대해’라는 담화를 발표하기 전 국민에게 세계지도를 준비하라고 요구한 데서 잘 알 수 있다. 미국이 전쟁에서 승리하여 세계 민주주의를 지키고, 지속 번영하기 위해서는 도대체 어디서 전쟁을 하고 있는지, 지금 어떤 상황인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등 국민이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취지였다.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노변정담이다. 우리 모두 삶이 점점 더 팍팍해지고 있지는 않은지, 분열로 치닫는 사회를 보면서 위기의 한복판에서 각자도생에 빠져 외롭고 힘든 나머지 위로과 격려가 필요한 것은 아닌지 걱정되기 때문이다. 과거 미국인들이 누렸던 것처럼 이번 추석에는 ‘내 친구들’로 시작되는 노변정담이 꼭 듣고 싶다고 한다면 너무 큰 바람일까.

새로운 질병과 백년대계

새로운 질병과 백년대계이부형현대경제연구원 이사이제 11년만 지나면 케인즈가 ‘새로운 질병’이라며 기술적 실업 이야기를 꺼내든지 딱 100년이 된다. 1930년에 케인즈가 ‘우리 손자들의 경제적 가능성’에서 기술적 실업이란 노동 절약형 기술의 발전이 가져온 실업을 말한다. 새삼스럽게 100년이 다 되어가는 이야기를 꺼낸 것은 지난 몇 년간 한창이던 어떤 논란이 어느덧 사라져 버려 국가 백년대계인 인적자본에 대한 대안을 찾고자 하는 노력이 보이지 않아서다.이는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고용시장의 변화에 관한 것이다. 얼마 전 우리는 4차 산업혁명으로 머지않아 국내 노동자의 70%가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며, 스마트기계가 종업원보다 많은 회사가 절반을 넘게 되면서 실업이 급증하리라는 등 전형적인 기술적 실업에 의한 일자리 위기설을 자주 접했다. 하지만, 최근 이런 위기설은 자취를 감췄다.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역사적으로 극단적인 경제 위기 상황이 아니라면 대규모 실업이 발생한 적이 없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기보다는 이제 4차 산업혁명에 뒤처져서는 국가의 명운이 없다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 잡았기 때문인 것 같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 과정에서 중요한 두 가지를 놓치고 있는 것 같다.우선 만약에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그 와중에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노동생산성의 극적인 향상으로 노동 절약 정도가 아니 노동 대체 정도가 상상보다 훨씬 빨라진다면 일자리 위기설은 언제든 실현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예를 들어, 우리는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농촌의 과잉 노동력이 도시 혹은 공장 노동자로, 기술적 실업 상태에 있는 자들이 서비스 일자리로 빠르게 편입되면서 과도한 실업을 회피한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만약 이런 일이 없었다고 가정해보라. 산업혁명에 따르는 기계화로 실업과 저임금 하의 생활고를 겪던 노동자가 러다이트운동(Luddite Movement)이라 불리는 기계파괴운동을 벌이고, 정부가 이를 강압적으로 진압하는 등 19세기 초반 영국이 보여줬던 극심한 사회적 혼란 이상을 겪어야 했을지 모를 일이다.다음으로 이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4차 산업혁명의 성공뿐 아니라 이를 통한 국가경쟁력 확보 차원에서도 인적자본의 육성과 활용이 매우 중요한데 이러한 논의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토지나 원재료와 같은 자원, 장치와 설비 등의 자본, 표준화된 노동력을 경쟁기반으로 삼아왔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 시대는 AI(인공지능)나 로봇, 정보, 데이터 등이 중요한 경쟁기반이고, 기업가정신은 물론이고 데이터와 정보를 활용한 문제해결 능력을 보유한 인재들이 경쟁기반이 된다. 기술적 실업 회피를 위해서도 이제 과거와 같은 표준화된 노동력을 양성하기 위한 시스템과는 아쉽게도 작별을 고해야만 한다.아마도 이 두 가지 과제를 풀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우리는 ICT 최강국 중 하나지만, 기업에서 일하는 ICT 인재 중 고도한 지식과 기능을 보유한 관련 인재는 30% 정도에 불과하다. 이는 일본과 중국에도 뒤지는 수준이고, 심지어 미국은 말할 것도 없다. 더군다나 OECD 상위권을 차지하는 인재투자국임에도 불구하고, 인재의 수준을 높일 수 있는 교육시스템의 질이나 수학 및 과학 교육의 질 등은 상위권에 있지도 않다. 그러다 보니 두뇌유출 정도도 높은 나라로 평가되어 인재활용에서도 주요국과 비교하면 경쟁력이 뒤진다.물론 이러한 문제점들이 다 해소된다고 해도 기술적 실업을 완전히 피해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실업급여처럼 실업자를 위한 소득보호를 제공하는 것과 같은 소극적인 노동시장정책과 더불어 실업자의 재취업 등을 위한 다양한 적극적인 노동시장정책의 도입에도 힘써야 한다. 우리의 교육시스템이 개인의 고용가능성을 높여줄 수 있어야 함은 기본이다.케인즈가 말했듯이 우리의 손자들이 새로운 질병에 감염되지 않고, 백년대계로 살아갈 수 있도록 바야흐로 지혜를 모을 때다.

통계는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통계는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이부형현대경제연구원 이사인류가 망망대해를 자유롭게 항해하면서 미지의 세계를 발견하고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게 해 준 나침반을 두고 프랑스의 세계적인 대문호 빅토르 위고는 ‘배의 영혼’이라고까지 칭송했다고 한다. 이는 15세기 이후 프랑스가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건설하여 막대한 부를 쌓음으로써 당시의 다른 유럽국가처럼 제국의 반열에 오르는 데 나침반이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통계를 두고서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자 앞으로 어디로 가야만 하는지를 보여주는 나침반과도 같다고 한다. 과거의 나침반이 그랬듯이 오늘날 통계도 국가의 명운을 좌우할 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그래서인지 OECD에서도 데이터와 이를 토대로 한 정책결정 즉, 증거기반 정책결정(Evidence-Based policy Making)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신뢰할 만한 기본 데이터를 모으고 생성하여, 표준화 등을 통해 실질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증거로 데이터를 변환함으로써 정책결정 과정에서 참여자가 이해하기 쉽고, 신뢰할 수 있으며, 시의적절한 증거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또 이를 공유함과 동시에 관련 이해관계자의 참여를 통해 증거를 확산시키는 것도 필요하다고 한다. 다시 말하자면 정책 의사결정은 신뢰 가능한 데이터와 통계 및 이것들이 보여주는 객관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이것이 사회 전반에 공유되어 사실 왜곡이 일어나지 않도록 함으로써 국가나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틀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그런데 최근 고용이나 소득 관련 통계를 둘러싼 논란을 보노라면 국내 주요 정책 의사결정들이 이와는 사뭇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것이 아닌지 염려스럽다. 정책 의사결정 과정에서 통계가 보여주는 신뢰할 만한 증거에 대한 믿음보다는 어느 한쪽의 편협한 해석이나, 아예 특정 의지를 관철하고자 하는 심리가 더 크게 작용하는 것이 아닐까는 우려가 크다는 말이다.예로 고용 관련 논란은 한쪽에서는 신규 취업자 수가 거의 30만 명에 달하고 고용률도 역대 최고수준으로 고용 호조세가 이어지고 있다면서, 4%에 근접한 높은 실업률은 고령화나 고용 환경 개선에 따르는 고용시장 내 노동인구 유입 등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다른 한쪽에서는 제조업이나 자영업이 몰려있는 도소매업, 그리고 40대 연령층의 일자리가 급감하는 등 우리 경제의 중추를 이루고 있는 부문의 고용 환경이 좀처럼 나아지고 있지 않다고 비판한다. 물론 양쪽의 주장 모두 관련 통계가 잘 보여주고 있기는 하다.소득분배 관련 논란은 또 어떤가. 한편에서는 5개로 나눈 모든 소득계층의 소득이 증가해 소득개선을 위한 정책효과가 역대 최고수준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관련 통계에 비춰 볼 때 정책효과에 대한 평가를 제외하면 맞는 말이다. 그런데 또 다른 한편은 분기별 최고와 최저 소득계층 간 격차 또한 역대 최대치로 벌어져 소득 양극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한다. 물론, 이 또한 관련 통계가 잘 보여주고 있는 사실이다.나침반이 늘 남과 북을 가리키듯 신뢰할 수 있는 통계가 보여주는 현상에도 늘 명과 암이 존재하고, 두 가지 현상이 모두 진실이다. 그래서 이를 두고 논의할 때는 어느 쪽이 더 옳은지를 판별해서 그렇지 않은 쪽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이 두 가지 진실을 정책 의사결정 과정에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가 핵심이어야 하는 것이다.예를 들어 고용이나 소득분배 통계에서 밝은 쪽만 본다면 더 나은 정책 의사결정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고, 어두운 쪽은 그대로 방치되거나 더 어두워질 수 있다. 반대로 어두운 쪽에만 집중한다면 그나마 밝은 쪽도 유지하기 어렵게 된다.통계학자 발터 크래머의 말처럼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려는 목적으로 통계를 들먹인다’면 앞으로 우리는 전혀 의도치 않은 불행한 미래를 맞이해야 할 것이다.

일본은 그렇게 밀려났다

일본은 그렇게 밀려났다이부형현대경제연구원 이사 1%대 성장이 지척이다. 다름 아닌 올해 우리 경제성장률 얘기다. 지난 주말 발표된 한 외신의 자료에 따르면 국내외 42개 기관의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 평균치는 2.0%이지만, 그중에 11개 기관이 1%대 성장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 경제가 1%대 성장에 그친다면 이는 1970년대의 오일쇼크, 1990년대 후반의 동아시아 통화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세계적인 충격을 제외하고는 아마도 처음 겪는 일이 될 것이다.더군다나 요 며칠 사이에는 여기저기에서 특단의 대책이 없다면 당장 올해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1%대 성장이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언제 해결될지 모를 미중 무역분쟁과 일본의 수출규제는 물론이고 최근 거론되고 있는 미국의 경기침체 가능성에 이르기까지 많은 대외 악재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큰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이 와중에 내수 경기 회복마저 지연된다면, 2020년대 중반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무색하리만큼 훨씬 빠른 속도로 우리 경제는 1%대 성장시대를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그러다 보니 시장에서 느끼는 두려움 또한 그만큼 클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생각과는 별개로 정작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시 말하자면, 1%대 성장시대란 과연 어떤 상태이고, 우리 모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염려하고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과는 다르고 앞으로 우리가 겪게 될 상황과는 많은 차이가 있겠지만, 지난 30년간 겨우 1%대 성장에 그친 일본을 보면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이다.일본 경제가 1989년 말부터 시작된 부동산 버블의 붕괴로 장기불황에 빠졌고, 지금도 완연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아는 사실이다. 또, 버블붕괴의 심각성을 인지 못 해 단기 대증요법을 반복함으로써 100조 엔 이상의 천문학적인 재정 투입에도 불구하고 빚만 늘린 채 더 깊은 경기침체의 나락으로 빠졌다는 사실도 잘 알려져 있다. 국가 전체로 보면 망하지 않은 것이 놀랍고, 아직도 빚을 내서 국가를 운영할 수 있으니 그 또한 천만 다행한 일이라 하겠다.하지만, 국민 개개인의 삶은 또 다른 이야기다. 몇 가지만 예를 들어보자. 199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2만 명 내외 수준이었던 자살자 수가 1990년대 후반 들어 3만 명 수준으로 급증했고, 2000년대 초반에는 홈리스 수도 2만5천 명을 넘어 생활고가 매우 심해졌다. 빈부격차가 심화되어 격차사회라는 신조어가 나오고, 니트족(청년무업자)이나 은둔형 외톨이처럼 청년층의 실업과 사회적 고립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다. 일자리 부족 등에 따르는 소득 감소로 결혼을 늦추거나 아예 포기하는 사람이 느니 저출산 현상이 두드러지게 되었음은 당연하다. 고령층과 중년층을 중심으로 한 고독사가 급증한 것도 장기불황과 전혀 무관하지 않은 현상이다. 장기불황은 일본 국민 개개인의 삶을 매우 피폐화하였고, 누구나가 중산층이라는 1억 총중류사회를 실현하려던 일본의 꿈도 그렇게 사라졌다.에즈라 보겔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Japan as No.1’이라 칭송하며 본받으라던 일본의 산업과 기업의 경쟁력도 마찬가지다. 세계 최고라는 자만에 빠져 시장에서 원하는 혁신을 도외시하면서, 외부와 단절된 채 갈라파고스식 경영을 추구하던 일본의 대표 기업들과 주력산업들은 경쟁자들의 추격에 못 이겨 구조조정을 피할 수 없었다. 일본은 그렇게 밀려난 것이다.간단하게나마 이렇게 보니 참으로 두렵다. 지금 우리가 처한 모든 조건은 과거 일본과는 크게 다르다. 또, 우리 경제가 1%대의 저성장시대에 진입하더라도 꼭 일본처럼 될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하지만, 장기에 걸쳐서는 전혀 상상하지 못한 현실과 마주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거울나라 앨리스에 나오는 붉은 여왕의 말처럼 지금이라도 죽으라고 뛰어야 한다.

새로운 100년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

새로운 100년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이부형현대경제연구원 이사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그의 시 ‘불과 얼음’에서 ‘누군가는 세상은 불에 싸여 종말을 고할 것이라고 하고, 다른 누군가는 얼음에 싸여 끝날 것이라고 한다’고 썼다. 이 시구는 종종 타오르는 거대한 불꽃과 같이 인간의 헛되고 과도한 욕망과 열정은 두 말할 것 없고, 얼음과 같이 차가운 인간의 증오심과 냉담함 및 잔인함도 세상을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고 갈 수 있다는 경고의 의미로 차용된다.그런데 최근 미중 간 경제전쟁이 확전 일로를 걷는 것을 보니, 프로스트의 경고가 이 두 국가 탓으로 현실화될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커진다. 이번 달 초 미국의 중국에 대한 4차 추가관세조치로 다시 불붙은 양국 간 경제전쟁은 미국산 농산물 수입중단과 위안화 평가절하라는 중국의 맞대응을 불러왔고, 이에 대해 미국은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고 무역회담을 연기함으로써 전면전으로 치닫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그 탓에 안전자산으로 잘 알려진 달러화와 엔화의 가치는 급등한 반면 원화를 비롯한 개도국 통화의 가치는 급락을 유발했다. 소위 공포지수라 불리는 VIX 지수(volatility Index)가 급등하면서 투자자들의 심리도 매우 불안정해지고 있다. VIX 지수는 S&P 500 지수옵션의 향후 30일 간의 변동성에 대한 시장기대를 나타내는 지표로 낮을수록 시장 안정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달까지만 해도 10%대 초반 수준에서 유지되던 이 지수가 10%대 후반까지 급등하면서, 세계 경제의 리스크가 급격히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물론 지금까지 나타난 현상을 두고 프로스트의 경고가 현실화되었다고는 할 수 없다. 다만, 미국의 중국에 대한 환율조작국 지정 후 조치가 지금과 같이 강경 일변도로만 간다면 그럴 가능성은 커진다.우선, 이번 조치로 인해 2017년에 3% 정도에 불과했던 미국의 대중 평균 관세율은 2년도 채 안되어 27%를 상회할 전망이다. 또, 중국이 개도국으로서 WTO 최혜국 대우를 받지 못하게 되면 평균관세율은 무려 38% 정도까지 뛰게 된다. 미국에 연간 약 2조 달러의 부가가치를 수출하는 중국의 입장에서는 큰 부담일 수 밖에 없고, 중국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도 막대한 경제적 부담을 안아야 함은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GDP의 약 0.5%에 해당하는 부가가치를 중국을 통해 미국으로 간접 수출하는 실정이다.그렇다고 미국이 무조건 유리하지만은 않다. 예를 들어, 대공황 초기인 1930년에 미국은 약 2만여 개에 달하는 수입품에 평균 59%, 최고 400%의 관세를 부과하도록 한 스무트-홀리 관세법을 통과시켜,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 일자리를 보전함으로써 대공황으로부터 빨리 탈출하려 했다. 하지만, 그런 기대와는 반대로 대공황은 더 심각한 수준으로 내달았다. 이번 조치도 마찬가지다. 미국도 최악의 경우에는 약 1% 포인트 정도의 GDP 손실을 감수해야만 한다. 그래서 그런지 무리하다 싶을 정도로 미국 FRB가 금리인하 압박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닌가는 생각도 든다. IMF가 미국의 중국에 대한 환율조작국 지정도 근거가 박약하다는 평가처럼 날로 높아지는 세계적인 비판도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그야말로 전쟁이라 불릴 만큼 심각해지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빨리 해소되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오래 갈 것 같다. 그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마도 가장 큰 것은 미국과 중국의 생각이 매우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한 번 미국을 위대한 국가로’라는 슬로건에 담겨 있는 패권국으로서의 욕망과 열정의 불꽃을 영원히 간직하고자 하는 미국과 ‘자력갱생’을 외치며 세상 모든 것의 중심인 ‘중화(中華)’를 재현하고자 하는 중국의 생각은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조정될 수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만약, 빠른 시일 내에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를 한다면 이는 마치 폭풍우 속을 걸으면서 옷자락 하나 젖지 않길 바라는 것과 같다. 어쩌면 지금의 미국과 중국은 중세말기에 영국과 프랑스가 그랬던 것처럼 이제 막 ‘100년 전쟁’을 시작한 지도 모른다.

영원한 아군은 어디에도 없다!

제1차 세계대전의 총성이 멈춘 뒤 독일 총리 베트만홀베크는 ‘아, 일이 이렇게 될 줄 진작 알았더라면’이라고 후회했다고 한다.비교적 온건한 정치인으로 알려진 그로서는 아마 독일이 오스트리아와 세르비아 간 전쟁을 부추긴 것이 유럽은 물론 세계적인 참혹한 전쟁으로까지 비화할 줄 몰랐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전후 배상금 지불을 위해 엄청난 양의 마르크화를 찍어내 상상을 초월하는 인플레와 대규모 실업으로 자국 경제를 절망의 나락에 빠지게 할 줄도 몰랐을 것이다.다른 이유도 있었을 것 같다.영국이 우방국까지는 아니어도 중립을 지킬 줄만 알았지 러시아와 더불어 프랑스 측에 서서 싸울지 몰랐었고, 미국이 적으로 참전할 줄도 몰랐었으며, 패배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특히 영국이 적이 되어 나타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기 싫었을 것이다.그런데 지금 과거 독일이 경험한 것과 같은 유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 참 안타깝고 염려스럽다.다름 아닌 최근 급변하고 있는 일본과 미국의 우리나라에 대한 외교적 경제적 행보가 그렇다는 얘기다.우선, 일본 아베 내각의 태도다.지금까지 양국은 과거사나 영토 문제 등 많은 갈등을 안고 있었으나, 정경분리원칙에 따라 경제만큼은 상호 호혜적인 입장을 견지해왔다.하지만 우리 대법원의 신일본제철에 대한 한국인 강제징용배상 판결 후부터는 이러한 태도가 완연히 바꼈다.지난달부터 시작된 특정품목에 대한 수출 규제에 이어 지난 주말 아예 우리나라를 화이트리스트(안보상 수출심사 우대국)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한 것이다.물론 이 정도까지의 경제 보복 조치는 이미 일본정부도 밝힌 바 있고, 우리도 그렇게 하리라고 예상했던 바다.그래서인지 국내 금융시장은 비교적 안정적이었고 산업계 또한 체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 같아 다소 마음이 놓인다.반면에 미국의 태도 변화는 우리를 더 당황스럽게 한다.미국은 한미일 동맹 측면에서 볼 때 이번 분쟁의 직접적인 이해당사자로서 적극적으로 개입하거나 중재하는 것이 누가 보더라도 바람직해 보인다.하지만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우리나라에 대해 WTO 농업 분야 개도국 혜택을 스스로 포기할지 미국의 일방적인 개도국 대우 중단 조치를 당할지 양자택일하라고 압박에 나선 것이다.우리가 만약 이 혜택을 포기한다면 농산물 관세 인하는 물론이고 농업보조금 감축, 운송및 물류 보조금의 즉시 철폐를 통해 농업 부문 경쟁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가뜩이나 미국이나 호주 등 농업선진국에 비해 열악한 상태에 있는 농업은 그 기반마저크게 흔들릴 수 있다.여기에 더해 비농산물도 관세 인하를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오는 10월 말까지 약 3개월동안 미국과 협상의 여지가 남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잠재적인 리스크도 만만치 않은게 바로 중국이다.당장 지난 사드 사태 때의 경험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중국을 우리의 우방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하지만 경제로 넘어가면 문제는 사뭇 달라진다.예를 들어, 한국의 대중국 수출의존도는 25%를, 무역수지는 550억 달러를 훨씬 넘는다.이 사실만 보더라도 중국의 변심이 얼마나 큰 악영향을 미칠 것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앞으로도 우리는 중국과 더 긴밀한 관계를 이어가야 한다는 말이다.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다.지금껏 우리의 우방이라 믿었던 미국과 일본도 태도를 바꾸는 데 중국이 변심하지 않으리란 보장은 더욱 어렵기 때문이다.이렇게 보면 일본의 태도에 화가 나고, 미국의 변심에는 섭섭하고, 중국은 믿을 수 없다는것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또, 당장에는 그런 마음이 빨리 치유되면 좋겠다.하지만, 편협한 애국심과 폐쇄적인 국수주의를 이용하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오히려 지금은 영원한 아군도 영원한 적군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 두 번 다시 이런 일을경험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스피노자의 말처럼 현재가 과거와 다르기를 바란다면 과거를 공부해야 하는 것이다.

암호화폐 ‘더 큰 놈이 온다’

암호화폐 ‘더 큰 놈이 온다’이부형현대경제연구원 이사동트기 직전이 가장 어둡다고 했다. 지난 6월18일 페이스북이 암호화폐 리브라(Libra) 발행 계획을 전격 발표함으로써 세계 디지털 화폐시장은 한치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큰 불확실성에 휩싸이게 되었다. 미국 상원 은행위원회의 공청회와 IMF의 강한 우려 표시는 물론 일본 오사카에 모인 G7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장 회의에서도 최고 수준의 규제도입 필요성에 대해 합의하는 등 리브라 발행이 좌초될 가능성이 커졌다.이들은 페이스북의 리브라 발행 계획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 그 이유는 세계 각국이 페이스북의 리브라 발행과 이용을 인정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살펴보면 짐작할 수 있다.우선, 발행만 된다면 리브라는 전 세계 금융 소비자들을 충분히 열광의 도가니 속으로 몰아갈 수 있다. 리브라를 이용한 결제, 환전, 송금 등의 금융서비스를 언제 어디서든 싸고 빠르고 편하게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금융인프라가 여의치 않은 개발도상국들의 소비자들은 스마트폰만 있으면 금융서비스로에 대한 접근성을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높일 수 있다. 페이스북 이용자 수가 27억 명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AI(인공지능)라는 신기술의 등장과 함께 일어날 엄청난 대규모 혁신을 전세계 인구의 1/3 이상이 향유할 수 있는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브라는 우려할 만한 다양한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문제는 운용 주체에 대한 신용의 문제를 꼽을 수 있다. 페이스북은 이미 이용자 정보 유출 사건으로 큰 곤혹을 치르고 있으며, 이용자 취향에 맞춘 편협한 정보 제공 등을 통해 선거처럼 정치적으로도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근간을 훼손할 수도 있는 빅브라더이다.또 페이스북이 마스터 카드, 비자 등 100개의 세계적 기업을 유치해 ‘리브라협회’를 만들어 리브라의 독립성과 운용 안정성을 보장한다고는 하나 관련 기술개발 등 주요 업무가 집중될 것이 뻔한 이상 신용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도 없다.또 다른 하나는 리브라라는 통화 자체의 안정성에도 언제든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당연히 여기에는 각종 사기나 자금세탁, 테러자금화 등과 같은 당장의 우려도 포함되어 있다.특히 리브라가 통화로서의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달러나 유로, 단기국채 등과 연동되는 이른바 바스켓 형태로 운영되더라도 금융쇼크나 환율변동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아무리 리브라 발행액에 준하는 (지급)준비금을 쌓아 둔다손 치더라도 바스켓을 이루는 각종 통화나 채권의 가격이 변동하는 이상 리브라 가치도 움직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리브라라는 암호화폐 운용을 위해 개발된 기술들이 100% 안전하다는 보장도 없다.리브라가 전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된다면 국제금융시스템에도 상당한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우선 독점문제다. 페이스북의 이용자 수를 생각해보면 이를 알 수 있다. 이들 중 다수가 리브라를 이용한다면 아마도 예금이나 대출처럼 전통 금융서비스 시장에서의 기존 은행 퇴출은 불가피할 것이고, 최악의 상황에는 단 1개의 은행만 남을 수도 있다.이와 함께 전통적인 금융정책 기능이 훼손될 수도 있다. 신용이 낮은 통화 대신 리브라가 사용되면 금리나 통화유통량 조정 등 해당국의 금융정책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자국통화가 더 이상 사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신용도가 높은 나라도 상황은 같다. 이자가 붙지 않는 리브라의 영향력이 커진다면 정책당국의 금리조정은 의미가 없다. 또, 리브라 준비금 조정을 위한 채권의 대량 매입 또는 매도는 급격한 금리 변동을 가져와 금융시스템의 불안정을 야기할 수도 있다.이렇게 따지고 보면 많은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아마도 리브라와 같은 암호화폐가 발행되기에는 아직 시기상조인 것 같다. 하지만, 이번에는 우리가 일찍이 잘 알고 있는 비트코인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더 큰 놈이 올 것은 분명하다. “우리가 아니라도 결국 누군가는 발행할 것이다.”는 페이스북 경영자의 말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말이다.

이제는 디테일에 주목할 때

이제는 디테일에 주목할 때이부형현대경제연구원 이사모두의 예상과 같이 이변은 없었다. 지난주 치러진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아베정권이 승리한 얘기다. 아베정권으로서는 웃음이 멈추지 않겠지만, 우리로서는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다. 다가올 일본의 추가적 경제보복 조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당장 일본정부의 우리나라에 대한 화이트리스트(안보상 수출심사 우대국) 제외 조치가 걱정이다. 한 번 실행되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단기간 철회가 어렵기 때문에 산업 전반에 걸쳐 장기간 소재부품 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또 지난 IMF 위기 때처럼 일본계 자금 이탈을 시작해 우리 기업 등에 대한 대출을 연장해 주지 않거나, 신규 대출을 제한하는 등 금융 부문에서의 보복 조치 실행 가능성도 있다. 규모는 작다고들 하나 만약 실행된다면 그 파급효과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기우이긴 하나 한미일 삼각동맹의 불안을 조장해 외교와 안보 및 국방 환경을 흔들어 우리의 대외 신뢰도 손상과 함께 간접적인 경제적 피해를 조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그래서 우리 정부도 총체적인 대응책을 내놓고 있긴 하다. 미국에 대한 중재 요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이해를 얻기 위한 노력은 물론 소재부품의 국산화 지원 강화, 금융시장 모니터링 강화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정부가 내놓은 대책들을 살펴보면 부분적으로는 타당해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서 걱정이 앞서는 것이 사실이다. 이른바 합성의 오류를 범할 우려가 있다는 것인데, 그 중에서도 산업 측면에서의 대응책은 특히 염려스럽다.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국산화만이 이번과 같은 사태의 재발을 방지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지나친 가정이긴 하지만 모든 것을 완전 국산화해서 100% 수입대체 가능하다면, 나아가 그 상태가 영원히 유지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그렇게 할 수도 없거니와 지금의 자유무역질서 하에서는 거의 망상에 가깝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 반도체를 독점 공급한다고 생각해보자. 각국이 시장 과점만 해도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데 어떤 식으로든 보복해 올 것이 뻔하다. 이번 일을 계기로 이른 시일 내에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단, 그것은 우리 현실과 나아가야 할 방향에 맞춰 글로벌 공급망에 대한 인식과 전략을 전환해 가는 과정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완제품이든 소재부품이든 국산화 노력은 그러한 큰 전략 틀 속에서 중요한 한 부분으로 다루어져야 할 문제이지, 처음에야 좋겠지만 우리 산업이 고립되어 경쟁력을 잃어가는 일본형 갈라파고스화가 목적이 아니다.이와 관련해 또 다른 사례를 들자면 국내 소재부품산업이 발전하지 못한 이유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협력이 안되어서 이고, 그 원인이 대체로 대기업에 있다는 생각이다. 중소기업이 어렵사리 소재부품을 개발해도 국내 대기업이 사 주지 않거나, 상품화 과정에서 도와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과만 놓고 보면 이러한 사례는 상당히 많을 것이다. 하지만, 궁극적인 원인은 다른 곳에 있을 수도 있다. 국내 중소기업들이 사활을 걸고 개발한 기술이나 소재부품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시장이 있었더라면 과연 어땠을까? 또, 여기에 활발히 투자하는 모험자본이 충실했더라면 어땠을까? 굳이 국내 대기업이 아니라 해외시장과 연계될 수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물론, 대기업들도 이 모든 문제가 자신들만의 효율성과 성과만을 쫓아 쉬운 길을 선택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 아니냐는 비난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앞선 질문들처럼 진작에 우리 중소기업들의 어려움을 덜어줄 수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여전히 남는다.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는 우리의 약점이 무엇인지 명백히 깨달았다. 하지만, 드러난 약점 뒤에 숨어 있는 많은 문제에는 관심이 덜해 보인다. 정책 대안도 뭔가 부족한 느낌이다. 이제는 숨어 있는 문제들을 찾고 좀 더 체계적으로 대처해야 할 때다. 신도 악마도 디테일의 뒤에 숨어 있다.

청년의 미래, 우리의 미래

청년의 미래, 우리의 미래이부형현대경제연구원 이사미중 무역전쟁에 이어 한일관계 경색에 이르기까지 우리 경제를 위협하는 대외 악재가 끊임없이 터지고 있다. 그러는 사이 국내 경제 이슈는 최근 결정된 최저임금을 제외하고는 일일이 미디어를 챙겨보지 않으면 찾아보기 힘들다. 그 중에서도 특히 청년 문제에 대한 이슈들은 거의 자취를 감추다시피 한 것 같다. 15~29세에 해당하는 청년 실업률이 10%대를 넘나들고, 구직활동을 장기간 쉬거나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직장을 찾는 청년들까지 포함한 확장실업률이 사상 최고수준으로 나타났는데도 말이다.늦은 감이 없지는 않지만 이제서야 일자리를 필두로 청년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누구나가 다 아는 것 처럼 청년이 국가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몇 가지 질문에 대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 가운데 저출산 문제의 본질적인 해결책은 무엇인가? 향후 고령화 진전에 따른 사회적 비용은 누가 지불하나? 자본은 과연 부족한 노동력을 완전 대체할 수 있나? 수출지향형(외수 주도) 성장의 한계를 극복할 대안은 무엇인가? 등의 질문들은 당면해 있는 문제의 해결책을 요구하는 것일 뿐 아니라 우리의 미래를 좌우할만한 결정적인 집단 의사결정의 방향을 따지는 것들이다.질문에 대한 답의 근본적인 해결책 중 하나는 작금의 우리 청년들이 가진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청년들이 처한 문제는 그야말로 복잡다난하기 짝이 없다. 어려서부터 치열한 입시경쟁을 뚫고 진학해도 기약도 없는 취업준비가 기다리고 있다. 취업 후에는 언제 일자리를 잃을지 늘 불안하고, 학자금 대출 상환에도 시달려야 한다. 집값을 비롯한 높은 생활물가는 이제 겨우 사회인이 된 청년들의 두 어깨를 짓누른다. 이쯤 되면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노후준비도 모두 사치로 여겨져 포기하거나 기약도 없이 미루고자 하는 청년들이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이른바 비자발적인 ‘N포 세대’가 작금의 우리 청년들을 단적으로 묘사하는 대명사가 된 이유다.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도 많은 청년들이 결혼을 희망하고 있어서, 적절한 정책대응이 이루어진다면 암울해 보이는 우리의 미래를 좀 더 밝게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보인다는 점이다. 한 국책연구원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비록 샘플 수가 3천명 정도에 불과하지만, 미혼 청년들 중 약 80%가 적절한 상대가 있고 취업이나 집 마련 등 경제적인 여건이 허락한다면 결혼하고 싶다는 것이다. 물론 세부적인 조건에는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이제라도 우리 청년들 앞에 놓여진 조건들을 바꿔나갈 필요가 있다. 청년들이 적절한 교육과정을 마치고 원한다면 능력과 적성에 맞는 좋은 일자리를 얻어 안정적인 생활 기반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결혼과 출산, 육아에 필요한 직간접 비용을 최대한 낮출 수 있도록 사회적 배려도 넓혀야 한다. 남녀 모두 결혼과 출산, 육아 등으로 차별받지 않도록 최대한의 배려가 필요하다. 더는 우리 청년들이 결혼과 출산, 육아 등이 큰 기회비용으로 생각하지 않도록 말이다.우리 청년들은 20대 국회 시작 첫날에 ‘청년은 청소년과 장년 사이에 끼어 있는 낀 세대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중요 자원으로서 보호육성하고 성장시켜야 합니다’라며 발의된 청년기본법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이후 많은 관련법안들이 발의된 것도 알 것이다. 그런데 이들 법안들이 지금은 관심도 못 받고 잠자고 있다고 한다. 청년의 범주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특정 연령층에 대한 혜택이 타 계층에 대한 역차별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등의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 이대로라면 20대 국회의원 임기 만료와 동시에 자동 폐기될 수 밖에 없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이제 우리 청년들은 사회적 관심마저도 포기해야 할 위기다. 비록 제한된 논의로 이상향만 제시했지만, 멀어져 가는 사회적 관심을 이제는 우리 청년들에게 돌려줘야 할 때다.

관리되지 않는 평화와 번영의 위태로움

관리되지 않는 평화와 번영의 위태로움이부형현대경제연구원 이사반항의 아이콘 제임스 딘이 주연한 ‘이유 없는 반항(1955년)’은 당시 경제 발전이 가속화되면서 물질만능주의에 빠져있던 보수화된 기성세대에 반발해 저항적인 문화와 기행을 추구했던 미국의 젊은 세대를 그린 영화다. 이 영화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제임스 딘의 우수에 찬 반항아적 모습과 행동들을 먼저 떠올리겠지만, 주인공과 대척점에 있는 자를 죽음으로 몰고 감으로써 영화 속 갈등을 최고조로 끌어올린 절벽에서의 자동차 경주 장면이 백미 중 백미다.영화 속 이 게임은 당시 10대들이 스릴 즉, 짜릿한 긴장감을 즐기기 위해 만든 것으로 치킨게임이라 불린다. 보통은 두 폭주족이 도로 중앙선에 자동차 왼쪽 바퀴를 걸치고 서로 마주 보며 전속력으로 달리는 게임으로 먼저 핸들을 돌리는 쪽이 치킨 즉 겁쟁이로 조롱을 받는다. 물론 어느 한쪽도 피하지 않으면 충돌해 둘 다 사망에 이르는 아주 위험한 게임이다. 영화에서는 누가 더 절벽 근처까지 전속력으로 달리는지를 다툰 것인데 불행히도 주인공만 살아남았다. 다만, 살아남은 주인공도 치킨이라는 오명을 쓰진 않았을 뿐 남은 인생이 평탄치 않음을 영화는 보여 준다.최근 한일관계 양상은 마치 누구에게도 이익을 주지 못하는 치킨게임을 치르는 듯하다. 이는 현재의 한일관계는 매우 복잡해 한쪽이 일방적으로 유리한 처지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당장에 교착상태에 있는 북핵문제만 보더라도 양국 간 협력이 절실한 상황이다. 일본도 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북핵문제 해결 과정에서 어떤 식으로든 공헌할 필요가 있고, 이를 지렛대로 한국의 지원을 끌어내야 할 필요가 있다. 일본의 과거사 인식이 지금 그대로라면 어렵다.경제적으로는 정치나 외교, 군사 측면에서보다 상호의존 관계가 더 깊다. 한국은 일본에 상품 교역으로 연간 약 250억 달러 정도의 흑자를 안겨준다. 이 가운데 70% 이상이 부품소재다.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부품소재를 수입하지 못하면 최종재의 생산과 수출에 차질이 생기지만, 일본 기업들도 그만큼의 수익성 악화를 감내해야 한다. 좀 더 시야를 넓혀 양국 간 갈등이 지속할 경우 글로벌 분업구조에도 문제를 발생시켜, 세계로부터 비난받을 여지도 충분하다.인적교류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양국 간 여행객 수를 보더라도 한국을 방문하는 일본인이 한 해 약 300만 명, 일본을 찾는 한국인은 750만 명으로 1천만 명에 달한다. 이들이 양국의 내수 경제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고, 양국 관계에 안전핀이 되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더군다나 최근 양국 간 갈등에 대해 양국 국민 중 서로 이해되지 못한는 반응도 들린다. 특히 양국의 언론들을 보면 자국 정부에게 대화를 통한 이성적인 문제 해결을 촉구하고 있을 뿐 아니라 기업이 정치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는 비판적인 논조도 보도되고 있다. 즉, 이번 갈등은 양쪽 모두에게 명분도 실리도 없는 한낱 닭싸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그렇다면 일본은 이러한 사실들을 몰라서 비이성적이라는 비판을 들으면서까지 경제보복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을까? 또, 사드사태로 중국으로부터 경제적 보복을 당한 경험이 있는 우리 정부는 과연 일본이 이렇게 나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일까? 표면상으로는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집행에 불만을 품은 일본 정부가 수출 규제라는 경제보복으로 맞선다는 비판은 당연하다. 더군다나 과거사를 부정 또는 왜곡하거나, 그 책임으로부터 일탈하려는 일본의 위정자들이 비판받는 것 또한 당연하다. 하지만, 리스크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우리 정부도 이번 사태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관리되지 않는 현재의 평화와 번영은 사상누각에 불과해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우리 정부의 리스크 관리 능력이야말로 과거와 미래를 볼 수 있는 고대 마법사의 수정공(crystal ball)이다.

화폐애(貨幣愛)를 위한 변명

화폐애(貨幣愛)를 위한 변명이부형현대경제연구원 이사흔히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또는 불안이 커질수록 금이나 국채, 부동산, 달러화 등 소위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성향이 높아지게 되고, 이것이 불황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또는 불안은 단순히 경기뿐 아니라 극단적으로는 전쟁과 같이 기업경영이나 개인 생활의 안정성을 저해하는 경제사회 전반의 변화를 말한다. 만약 이러한 변화가 있거나 발생 가능성이 커지게 되면 기업이나 개인은 화폐를 비롯한 안전자산을 축적하고자 하는 현상, 이른바 화폐애가 강해지게 된다. 이는 소위 안전자산이란 국가가 지급을 보증하는 국채처럼 채무불이행 위험이 거의 제로에 가깝고, 시장가격의 변동으로부터 어느 정도 위험을 회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이 강해진다면 시중에 풀려있는 자금이 소비와 투자로 연결되지 않아 경제 전반의 수요 부족과 이로 인한 불황을 불러오게 되는 것이다.우리 경제도 기업과 가계의 강한 화폐애로 경기 회복이 지연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으며 대표적인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현상이 강해지고 있다. 국제 금값은 2013년 이래 최고 수준인 온스 당 1,400달러대를 기록 중이고, 원화 대비 달러화와 엔화 강세 현상도 이어지고 있다. 국채 수요 또한 증가하면서 금리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음은 물론이다. 국내 부동산 가격도 마찬가지로 정부의 강력한 수요억제책에도 불구하고 역대 최고 수준에서 큰 변동 없이 오히려 재상승 우려가 커지고 있다.그러다 보니 소위 시중 부동자금이라 불리는 좀 더 나은 투자처를 찾지 못해 대기 중인 자금 규모도 엄청나다.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올해 3월말 현재 현금통화나 요구불예금, 수시입출금이 가능한 저축성 예금 등 우리 기업과 가계 등이 보유하고 있는 비교적 단기간 내 유동화가 가능한 자금이 약 1천조원에 이른다는 것이다. 특히, 이처럼 많은 자금이 시중에 풀려있음에도 불구하고 안전자산에만 자금이 쏠리거나 단지 고여있기만 해서는 경기 회복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경기 부진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부동산 시장으로 대규모 자금이 유입된다면 그야말로 경제버블만 키울 것이고, 금리를 낮춰 투자와 소비 등 경기를 진작시키려는 금융당국의 정책효과도 크게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이처럼 강한 가계와 기업의 화폐애에 대해 마냥 비난만 할 수 있을까? 우선, 가계 부문을 살펴보자. 쌓여가는 부채, 불안한 일자리로 인한 생애소득 감소 가능성 확대, 인플레이션 등과 같이 가계를 위협하는 요인들이 점점 커지고 있는 데 반해, 자녀 양육과 노후 비용 등 필요 자금은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게 실상이다. 여기에 혹시나 생길지도 모를 질병이나 상해에도 대응해야 한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여 가계가 소비 의사결정을 하는 것은 매우 당연할 뿐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볼 때 합리적이기도 하다. 다가올 큰비를 피하고자 조그마한 우산이라도 준비하려는 가계에 이기적이라고 비난할 수는 없는 일이다.과도한 사내유보금을 가지고 있다고 비판받는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국내외 경제 여건이어려운 상황에서 경쟁 환경마저 크게 변화하고 있는 지금, 언제 닥쳐올지 모를 위기에도 대응해야 하는 기업들에 사내유보금은 그야말로 최후의 보루다. 물론, 사내유보금이 정상적인 기업 활동을 위한 투자가 아니라 부동산 투기나 어디에 쓰일 지모를 현금성 자산으로 축적된다면 문제다. 또, 이렇게 행동하는 기업도 아예 없지는 않다. 하지만 과연 이런 도덕적 해이에 빠진 기업들이 얼마나 될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문제다. 더군다나, 사내유보금의 많고 적음으로 기업들의 도덕적 해이를 판단해서도 안 될 일이다.작금의 경제 여건이 어려운 것은 누구나가 알고 있다. 또, 그 원인 중 하나가 경제주체들의 강한 화폐애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점도 사실인 듯하다. 이런 현상이 죄악시되어 오로지 단죄에만 정책 초점이 맞춰져서는 안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강한 화폐애를 개선하려는 목적이다.

유베날리스의 빵과 서커스

원형경기장 콜로세움, 전차경주장 히포드롬, 대목욕탕 등은 한때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에 이르기까지 이탈리아반도를 넘어 대제국을 형성했던 로마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들이다. 지금은 이탈리아를 먹여 살리는 대표적인 관광자원이지만, 로마제국을 멸망에 이르도록 한 원인으로 지목되는 퇴폐와 향락의 문화유산으로도 알려져 있다. 고대 로마의 풍자시인 유베날리스는 ‘우리 백성들은 투표권을 상실한 이래 국정에 관한 관심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예전에는 정치와 군사 모두에서 권위의 원천이었던 백성이 지금은 오로지 두 가지만을 열정적으로 쫓고 있다. 빵과 서커스를 말이다’라고 당시를 비판했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서커스가 바로 퇴폐와 향락의 문화유산을 만든 것이다. 그렇다고 이것만 가지고 로마제국이 멸망했다고 한다면 너무도 허무한 일이다. 아마도 이와 맞물려 다른 무엇인가가 로마제국 멸망의 실마리를 제공했을 것이다.로마가 대제국으로 성장한 데에는 포도주와 올리브유를 팔아 부를 축적한 중소농민들의 역할이 컸다. 자비로 무장이 가능했던 이들은 로마군의 중핵이었고, 소비자로서 로마경제의 활성화와 더불어 납세자로서 로마재정을 윤택하게 했다. 하지만, 이들은 오랜 기간에 걸친 크고 작은 전쟁으로 황폐해진 토지와 광활한 식민지로부터 유입되는 값싼 농작물 등으로 인한 상품가격 폭락이라는 이중고 때문에 소작농으로 전락하는 등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반면에 전쟁을 통해 획득하거나, 쇠락한 중소농민들이 내놓은 토지를 터무니없는 가격에 매수하여 대토지를 소유하게 된 귀족이나 기사들은 엄청난 부를 쌓았다. 이로 인한 빈부격차의 확대와 극심한 사회적 혼란은 이런 부작용을 예상치 못한 로마가 제국으로 커나가는 과정에서 겪은 성장통일 수도 있다. 문제는 성장통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쇠락한 중소농민들의 생활보장을 위한 막대한 재정지출은 경제력 쇠퇴를 불러왔고, 충성심 강하던 중소농민들을 대신해 싸워줄 직업 용병들로 채워진 군대는 군사력이 약화되어 종국에는 로마제국을 멸망의 길로 몰아넣은 것이다.이탈리아의 작은 도시국가 중 하나였던 로마가 제국으로 성장한 것도, 멸망하게 된 것도 지금의 중산층에 해당하는 중소농민들의 성장과 붕괴가 방아쇠가 된 것이다. 유베날리스의 풍자는 바로 이러한 문제를 꼬집었다. 유베날리스의 빵은 멸망의 길을 걷고 있던 로마제국의 위정자들이 빈부격차 심화로 인한 사회적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실시한 곡물의 무상급식을 말하고, 서커스는 로마시민들의 눈을 퇴폐적인 오락으로 돌려 실정을 속이려는 로마제국 위정자들의 정치적 수단을 대변한다.작금의 우리나라도 국가 경제의 허리 역할을 하는 중산층이 붕괴되고 있어 우려되기는 마찬가지다. 최근 국내에서 발표된 연구 결과들을 종합해 보면 저소득층 가구와 고소득층 가구는 시간의 경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동일한 소득층에 머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고, 중위소득 가구의 경우에는 고소득층으로의 상향이동보다 하향이동 가능성이 더 큰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즉, 계층사다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소득계층의 고착화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이 중산층 붕괴와 양극화 현상의 원인으로 작용해, 우리 경제사회의 활력과 지속 가능성을 크게 훼손한다는 것이다.이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여전히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 것 같다. 갈수록 강화되고 있는 저소득층이나 소외계층에 대한 복지 또는 시혜적 차원의 정책적 배려는 꼭 필요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중산층 확대에 분명한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련 정책들만 강조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제는 교육의 대물림 현상을 완화할 수 있도록 노동환경 변화에 걸맞은 교육의 질적 변화를 꾀한다든가, 우리 사회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충분할 정도의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한다든가, 공정하고 효율적인 노동시장 형성을 위한 노력 등이 조속히 병행되어야 할 시기다. 그렇지 않다면 유베날리스의 풍자는 언제고 다시 회자될 것이다.

집단사고의 부작용

가톨릭교회의 성인추대 심사에는 후보자가 성인으로 추대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집요하게 지적하기 위한 직책이 있다. 이 직책을 수행하는 담당자의 성격이 인간의 악덕을 신에게 이르는 악마와 같다고 하여 ‘악마의 대변인’이라 부른다. 생전에 아무리 성스러운 인물로 평가받더라도 성인으로 추대받기 전까지는 인간이고, 인간인 이상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더군다나 성인 또는 복자의 증거가 되는 기적도 의도된 것일 수도 있다. 성인 후보자까지 이를 정도면 어느 정도 팬덤현상을 경험했을 터이고, 이 과정에서 후보자의 치적이 과대평가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후보자들은 악마의 대변인이 내 던지는 이러한 합리적인 의심을 모두 극복해야 진정한 성인 또는 복자로서의 영예로움을 얻을 수 있었고, 이를 통해 가톨릭교회는 의사소통 과정에서 왜곡과 실패 가능성을 낮춰 대내외적인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하지만 지난 수년간의 국내 경제정책 의사결정 과정을 보면 도대체 그 많던 악마의 대변인은 어딜 갔는지 찾아볼 수가 없다. 모두가 찬성할 때 의도적으로 반대의 견해를 취해 선의의 비판자 역할을 함으로써 토론을 활성화하거나 다른 대안이 있는지를 모색하게끔 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주체들이 사라진 것이다. 대신에 결정된 내부 의사에 대한 합리화에 급급하거나,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낙관론을 펼치거나, 매우 강한 도덕적 신념 등에 사로잡혀 외부의 다른 의견들을 무시하거나 그런 의견을 가진 자들을 배척하려는 집단사고가 이루어지고 있지는 않은지 의심스러울 정도다.미국의 심리학자 어빙 제니스는 조직의 운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함에 있어 책임 있는 의사결정 집단이 오만과 편견에 빠져 크게 잘못된 결정을 함으로써 조직을 위기로 몰아넣는 경향을 집단사고라 정의했다. 일본의 진주만공격 가능성에 대한 과소평가, 중국의 한국전쟁 참전 가능성에 대한 안일한 검토, 워터게이트사건 등이 그런 예이다. 물론, 이러한 사례들은 극히 예외적인 것들로 발생 가능성이 매우 낮을 뿐 아니라 우리 경제나 사회가 이런 사례와 유사한 경험을 할 만한 지경에 도달했다는 것은 아니다.다만 전혀 표준적이지 않아 보이는 상황에 관한 판단 또는 정책 의사결정들이야말로 대부분은 조직에 있어서 결정적인 상황이라는 것이 문제다. 경제 정책도 마찬가지다.최근 회자되는 공직사회의 복지부동설은 집단사고의 부작용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 아닌가 우려가 앞선다. 바이오산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키우고자 하는데 기업 현장에서 느끼는 규제 환경은 여전히 과거의 모습 그대로 이고, 숙박이나 교통 등의 분야에서 전지구적으로 퍼지고 있는 공유경제는 사회적 갈등으로 더 이상의 발전이 없다. 시장에서는 갈등이 해소되어 사업화까지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자니 불쑥 예상치도 못한 정책들이 거론되었다가 돌연 사라지니 놀란 가슴 쓸어내리기 일쑤다.일각에서는 경기회복과 기업 사기진작을 위한 공직자들의 기업 현장 방문도 색안경을 끼고 본다. 심지어 사안에 따라서는 차마 믿기 어려우나 조직 차원에서 책임질 일(집단사고로 인한 실패)도 공직자 개개인의 탓으로 돌려지는 것 같은 안타까운 일도 있다고 한다.이런 현상이 지속된다면 어떤 공직자가 책임감을 가지고 합리적인 정책들을 입안할 수 있을 것이며, 입안된 정책들은 또 어떻게 실현해 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나아가 얼마나 많은 유능한 인재가 신념을 가지고 공직사회의 문을 두드릴 것이며, 정부는 또 어떻게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가진 사람도 많다. 공직사회의 위기란 말은 예전부터 있었지만, 요즘은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영국의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는 ‘좋은 환경보다는 가혹한 환경이 문명을 낳고 인류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라고 했다. 물론 정부나 정책당국 등 공직사회의 입장에서는 외부의 강렬한 비판이 너무 가혹하게 느껴질 수 있고, 이런 외부의 비판자들이 강력한 포식자인 메기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이 있어 건강하고 경쟁력 있는 조직 집단이 유지될 수 있다는 것도 명심해야 한다.

지금은 적극적인 재정의 역할이 필요한 때

지금은 적극적인 재정의 역할이 필요한 때 경기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요즘 이에 대응하기 위한 정부의 추경안을 두고 재정 건전성 논란이 거세다. 고령화 저출산 대응은 물론 통일비용에 이르기까지 앞으로 써야 할 곳은 많은데 잠재성장률 둔화로 쓸 만큼의 수입이 줄어들 것이니 최대한 아껴 써야 한다는 측과 건전성의 기준이 뭐냐며 경기 하방 압력이 상당 기간 해소되기 어려우므로 적극적인 재정지출을 통한 안정적인 경기 운영이 필요하다는 측이 힘을 겨루고 있는 모양새다.이 논란의 전자는 재정 위기나 고인플레에 대한 우려로 정부는 늘 균형재정을 염두에 두고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기존 주류 경제학자들의 논리이고, 후자는 좀 과장하자면 인플레를 유발하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재정적자를 용인해도 된다고 주장하면서 최근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현대화폐이론(MMT)의 논리에 근접해 있다는 느낌이 든다. 특히, 현대화폐이론은 인플레 증후가 나타나더라도 재정지출을 억제하거나 증세로 충분히 조정할 수 있다는 것으로 최근 불붙고 있는 국내의 증세 논의는 기존 주류 경제학자들의 논리에 대한 대응으로도 보인다.과연 어느 쪽 주장이 더 타당할까? 실제로는 양측 모두 일리 있는 주장이어서 어느 한쪽 손을 들어주기가 어렵다고 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답이 되겠지만, 현재의 국내 경제 여건을 고려한다면 후자에 좀 더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물론, 현대화폐이론을 주장하는 학자들이 지적한 바와 같이 국가채무 비중이 GDP의 230%를 훌쩍 넘음에도 불구하고 재정 위기는커녕 인플레 기미조차도 없는 일본을 보고 배우라는 지적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고도성장에 취해 ‘1억 총중류사회’라는 이상향을 설정하여 무리한 복지정책을 추진하고, 버블붕괴의 심각성을 감지하지 못 해 우왕좌왕하다 산더미같은 빚만 남긴 채 ‘잃어버린 20년’이란 오명을 뒤집어쓴 일본을 따라 해서는 절대 안 될 일이다.다만, 대내외 악재로 역성장과 더불어 기업과 가계의 심리가 악화 일로에 있는 지금 경기 회복을 위한 정책 대응 강화에 앞서 재정 건전성 또는 균형재정 달성 여부를 따지는 것은 본말전도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만약 우리나라의 재정 여력에 대한 못 미더운 시선 즉, 이른바 합리적이지 않은 의심 때문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OECD 국가들의 국가부채가 GDP의 110% 수준을 상회하는 것과는 달리 우리는 아직 40%에 못 미치는 수준으로 재정 여력이 여의치 않다고는 단정할 수 없다. 더군다나 충분한 외환보유고가 있어 달러표시 채무의 상환에도 큰 문제가 없어 보일 뿐 아니라 대외 신뢰도도 높아 단기적인 재정지출 확대 또는 재정수지 악화가 대외 리스크를 갑자기 상승시킬 위험도 매우 낮다. 원화표시 채무에 대한 상환 요구 또한 통화발행권을 가진 우리 정부가 얼마든지 대응할 수 있는 문제다.고인플레 유발 가능성 때문이라는 것은 기우이다. 지금 우리 경제는 전반적인 수요압력 저하로 웬만한 재정지출 규모로는 고인플레를 유발할 가능성이 매우 낮아 보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각종 경기대책에도 불구하고 지난 수개월 간 0%대를 유지하고 있는 국내 소비자물가 수준이 미니추경을 한다고 해서 갑작스럽게 상승하여 고물가 현상으로 나타나기는 어려워 보인다.그래서 지금은 오히려 경기 버팀목으로서의 적극적인 재정의 역할이 강조되어야 할 시기로 보는 것이 좀 더 현명한 판단이다. 나아가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오히려 적극적인 재정지출을 통해 저성장을 탈피하고, 잠재성장력을 높여 중장기적으로 재정 건전성을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을 강화하는 편이 유리할 수도 있다. 다만 어떤 곳에 쓰든 상관없이 무작정 지금 당장 적극적으로 재정지출 규모를 확대하라는 것은 아니다. 만약,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가 그저 단순한 ‘돈 풀기’로 인식된다면, 그 효과는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오히려 부작용만 가져올 수 있다. 아마도 현대화폐이론을 이단의 학설이라고 비판하는 주류 경제학자들이 진정으로 걱정하는 것은 바로 이런 점일 것이다. 정책 당국은 좀 더 영리해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