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대우
강원도 레고랜드 채무불이행 사태로 또 한 번 우리경제가 유동성 위기에 직면하는 것은 아닌지 시장의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이번에는 국내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 부실로 국내 채권시장과 기업어음 시장에서 자금경색 현상이 나타났다는 점에서 과거의 달러화 유동성 위기와는 차별적인 현상이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또 우리 정부는 물론 통화 및 금융 정책당국을 중심으로 50조 원 이상에 달하는 대규모 시장 안정화 정책을 통해 조기 진화에 나설 수 있어서 이 역시 다행이라고 할 수 있겠다.문제는 왜 늘 우리 경제는 대외적이든 대내적이든 어떤 형태의 유동성 충격에도 취약할까 하는 점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유동성이란 가계나 기업 및 정부 등 각 경제주체의 채무 충당 능력을 말한다. 유동성이 중요한 까닭은 각 경제주체 즉, 경제 전반의 소비와 투자 등 경제활동 수준이 보유 채무의 구성과 내용, 자산 유동성과 차입 가능성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즉 건전한 유동성 흐름이 지속적으로 유지될 경우 해당 경제는 견실한 성장이 보장되는 반면에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채무상환 불이행, 차입 가능성 악화, 기업 도산, 금융 기관 부실 등으로 이어져 경제 전반에 위기감이 고조되는 것이다.그런 의미에서 보면 이번 강원도 레고랜드 사태가 국내 유동성 문제의 단초를 제공한 것은 맞다. 하지만 유동성 위기론까지 번지고 있는 것은 이외에도 다양한 배경이 있어 보인다. 우선 국내외적으로 강도 높게 지속되고 있는 통화긴축 현상을 들 수 있다. 금리 인상기에는 누구나 유동성 구조가 약화될 수 밖에 없는데 그 중에서도 다중 또는 과다 채무 상태에 빠져 있는 가계나 부실기업 등의 경우에는 자산 부실화, 악화된 유동성 구조, 신용도 하락 등으로 차입 가능성이 악화되면서 유동성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다음으로는 상흔효과(scarring effect)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 1998년 IMF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에서 경험한 바와 같이 외환 유동성 부족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뼈저리게 경험한 바 있다. 지금은 외환 유동성 위기가 아니라는 점에서 다행스럽긴 하지만, 과거의 경험이 시장에 과도한 위기의식을 불러오고 있을 수도 있다는 점에도 주의할 필요가 있다.이와 관련해서 시장의 시스템 불신 역시 지금의 유동성 위기론의 배경이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강원도 레고랜드사태가 단순히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관련 부문으로 확산되면서 연쇄 채무불이행과 도산 리스크가 확대되고, 금융기관의 대출행태가 악화되는 등 유동성 공급이 대폭 축소될 것이라는 시장의 기대가 형성되면 유동성 공급의 핵심인 금융시스템 전체가 원활히 작동하지 않으면서 위기로 번질 수 있다는 점이다.이 과정에서 도덕적 해이는 시장의 시스템 불신을 가속화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리스크 회피 또는 불법 이익 편취 등을 위한 불법 거래, 의도적 채무불이행, 정상적인 금융거래의 의도적 거부 등과 같은 도덕적 해이는 한 번 발생하면 시스템 불신을 더 가속화시켜 유동성 위기를 현실화하는 방아쇠가 되는 것이다.금리인상 등 통화긴축이 지속되면서 국내 경제주체들이 유동성 문제에 봉착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고, 우리 정책당국도 취약계층 및 기업 등에 대해서는 다양한 안전핀을 마련해 왔다. 다만 이번 레고랜드사태에서 보다시피 과거나 지금이나 특정 부문에서 발생한 유동성 문제가 시스템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여전히 높다는 점은 우리 경제의 취약점 중 하나라는 것도 분명해졌다. 일각에서는 정책당국의 과도한 대응으로 물가 압력을 높일 수 있다고 하지만 시스템 위기를 방지하려면 모자란 것보다 과한 것이 좋다.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대우서충환 기자 seo@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