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육체적으로 힘들거나 복잡한 문제 때문에 고민에 빠질 때 흔히 ‘스트레스 받는다’라는 말을 쓴다.사전적 의미로 적응하기 어려운 환경이나 조건에 처할 때 느끼는 심리적, 신체적 긴장 상태를 말하는 ‘스트레스’는 그 자체도 문제점이 많지만, 파급되는 여파 또한 심각하다.스트레스를 지속적으로 받게 되면 체내의 면역기능이 저하되면서 바이러스나 박테리아 등의 감염에 취약해지고, 암을 일으키는 변이세포들을 효과적으로 제거하지 못해 암이 발생하는 단초가 된다.최근에는 스트레스를 지속적으로 받으면 치매의 진행도 빨라진다고 보고되고 있으니 만병의 근원이라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닌 듯 보인다. 인체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스테로이드 호르몬, 엔돌핀, 카테콜아민 등이 분비되고, 이들 호르몬의 적절한 활성화는 하모니처럼 면역체계의 핵심인 T, B 임파구를 정상적으로 기능하게 한다.그렇지만 인체가 적당한 스트레스를 이겨낼 수 있다고 해도, 현대 사회처럼 스트레스의 요인이 많은 상황에서 지속적으로 스트레스에 직면한다면 수용할 수 있는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한계에 도달한 정신적 피로는 호르몬 분비의 부조화를 일으키고, 이에 따른 면역시스템의 붕괴로 감염과 암 발생에 취약하게 되는 것이다.그렇다면 스트레스는 어떤 상황일 때 많이 발생하는 것일까? 엘리베이터 고장으로 계단을 걸어 올라가면서 짜증이 나는 것처럼, 우리가 흔히 말하는 스트레스 상황이 모두 면역체계를 교란시키는 것일까?스트레스는 자기가 어찌할 수 없는 상황 즉 자기 주도권이 없는 수동적인 상황에서 많이 발생하는 것이지, 문제가 생겨 바쁘고 힘이 들어도 해결할 방법이 있다면 스트레스를 별로 받지 않는다고 한다.부연하자면 불쾌한 경험이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상황이 발생해도 어떻게 하지 못하는 무기력이 스트레스를 받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너무 일이 많아 여유가 없는 생활이 계속된다면 몸은 피곤할지 몰라도 스트레스는 덜 받는데 반해, 일을 하고 싶어도 일감이 없어 못하는 경우에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일반적으로 배우자나 가까운 가족의 죽음, 이혼이나 별거, 가족이나 친지와의 감정적 갈등을 겪는 사람들, 감정표현을 너무 억제하는 사람, 과도한 욕구를 해소하지 못하는 사람, 우울한 사람, 완벽주의자 등이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는다고 보고되고 있다.필자도 개인적으로 생각해보아도 지금처럼 수술에 밀려서 끼니를 못 챙기고 바빠서 정신이 없을 때보다, 처음 병원을 개원하고 환자가 없을 때 스트레스를 더 받지 않았나 싶다.스트레스로 인한 문제의 외연을 확대해 사회 쪽으로 돌려보면 많은 것들이 설명된다.자식들에게 모든 것을 희생하는 통에 준비도 제대로 못한 채 노후를 맞았지만 언제부턴가 부모를 제대로 모시지 않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 세태 때문에 낙동강 오리알처럼 되어버린 노년세대. 직장을 나오고 아직 부양할 가족의 무게에 다시 자영업을 시작했지만 디플레이션의 덫에 걸린 경제와 이로 인한 경기 침체로 폐업의 위기에 몰린 중년가장.직장에 취직했지만 회사가 불안하거나 안정적인 직장이라 해도 경쟁과 과도한 업무에 노출된 젊은이들. 스팩을 쌓고 공부를 해도 좁은 취업의 문을 열지 못하고 급기야는 포기해버리는 청년들.입시공부에 찌들어 올바른 청소년기를 보내지 못하는 아이들.이런 상황에서 전 국민들이 받는 스트레스의 양은 어마어마할 것이고, 이것이 바로 자살률 세계1위라는 오명을 우리에게 안겨주지 않았나 싶다.묻지마 폭력이 난무하고, 조그만 자극에도 폭발해 버리고, 타인을 관용할 생각이 없는 지금 우리의 모습은 국가전체가 스트레스에 찌든 위험한 상황이 아닐까 걱정스럽기만 하다.손창용대구시의사회 부회장부강외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