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팔용
경주는 과거가 살아 숨 쉬는 타임캡슐이다.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가 태어난 나정, 왕국의 종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포석정, 포도송이처럼 즐비한 남산의 불교 유적들. 발길 닿는 곳마다 신비한 전설, 눈길 돌리는 곳마다 역사 유적이다. 해가 서편으로 떨어지고 주위가 어스름에 젖어들 때면, 또 다른 경주가 모습을 드러낸다. 말 그대로 ‘신라의 달밤’이다. 안압지를 중심으로 천마총이 있는 대릉원까지 1㎞가 조금 넘는 코스. ‘신라의 달밤’을 느끼기에 가장 적합한 곳으로 꼽힌다. 불을 밝힌 안압지와 월성, 계림, 첨성대 등이 한 곳에 모두 모였기 때문이다. 특히 안압지는 경주 야경의 백미다. 3개의 전각 아래서 위를 향해 쏘아 올린 조명. 빛을 한껏 머금은 연못 속 황금색 기와지붕에선 고대 왕가의 위엄보단 비현실적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그래서 누군가는 “안압지의 전각들은 한낮엔 호숫가에 ‘서’있다가, 밤만 되면 호수 위에 ‘떠’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작가는 경주를 자주 찾는다. 아늑하고도 몽환적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저녁 시간을 주로 이용한다. 그럴 때면 항상 빼놓지 않고 들르는 곳이 안압지다. 그림을 마주한다. 코발트색 하늘 장막 앞으로 전각들이 두둥실 떠 있다. 저 화려한 불빛에 이끌려 산책로를 걷다 보면, 가수 현인의 노랫말처럼 대궐 뒤 숲 속에서 사랑을 맺던 궁녀들을 만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아~신라의 밤이여…’ 김도훈 기자 hoon@idaegu.com ▨작가약력 서양화가/개인전 6회/1994년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 2009년 대한민국정수미술대전 우수상 외/미국 LA, 중국 천진 등 국내외 단체전 다수출품/현 전업작가, 한국미협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