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석 기상청장
‘그해 겨울 추위는 땅속 깊이 박혔고 공기 속에서 차가운 칼날이 번뜩였다. 성첩 위 총안(銃眼) 앞에서 가리개 없는 군졸들이 눈비에 젖었다. 군졸들의 손가락 마디가 떨어져 나갔고, 손가락이 제대로 붙어 있는 자들도 언 손이 오그라져서 창을 쥐지 못했다.’소설 ‘남한산성’에서 묘사한 병자호란 당시 한파의 모습이다. 동명의 영화에서는 추위가 주인공인 듯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사람들의 입김과 부르튼 입술, 눈과 비가 내려 질퍽해진 전장과 가마니를 뒤집어쓰고도 추위에 떠는 병사들의 모습들로 관객들마저도 손끝이 아려올 것 같은 미쟝센을 그려냈다.남한산성이 있는 경기도 광주는 12~1월이면 최저기온이 영하 8℃까지 내려가고 최고기온도 3℃밖에 되지 않는다. 병자호란이 발발한 1636년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고 하니 한파가 없었다면, 혹은 한파 대비가 잘됐더라면 전혀 다른 역사가 기록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한파(寒波)는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차가운 공기가 파동과 같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현상이다. 우리나라 겨울철 날씨를 나타내는 말로 ‘3한(寒)4온(溫)’이라는 말에서도 파동의 성질을 갖고 한·온을 반복하는 특징을 알 수 있다.겨울철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치는 차가운 시베리아고기압은 거센 바람과 함께 한파를 몰고 온다. 한파는 동절기 시설물 파손, 수도 계량기 동파, 미끄럼 사고 등 많은 안전사고를 초래할 수 있다. 또한 건조한 겨울 날씨는 산불 등 화재 발생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기상청은 한파에 의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한파특보를 운영하고 있다. 전날보다 기온이 크게 떨어져 갑자기 찾아온 추위에 대비가 필요할 때나, 매우 낮은 기온이 지속되거나 중대한 피해가 예상될 때 사전 대비할 수 있도록 특보 발령과 함께 기상정보를 제공 중이다. 추위 정도에 따라 ‘주의보’와 ‘경보’로 구분하고,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운영한다.한파 발생 시 행동요령으로 일반 가정에서는 야외활동은 되도록 자제하고, 부득이 외출을 하는 경우에는 내복, 목도리, 모자, 장갑 등으로 노출 부분의 보온에 유의해야 한다. 또한 당뇨환자, 만성폐질환자 등은 미리 독감 예방접종을 해야 한다. 심한 한기, 기억상실, 방향감각 상실, 불분명한 발음, 심한 피로 등을 느낄 때는 저체온 증세를 의심하고 바로 병원으로 가야 하고, 동상에 걸렸을 때는 해당 부위를 비비거나 갑자기 불에 쬐어서는 안 되며, 따뜻한 물로 세척 후에 보온을 유지한 채로 즉시 병원으로 가야 한다.자동차 운전을 위한 준비 사항으로는 도로 결빙에 대비해 스노체인, 염화칼슘, 삽 등 월동용품을 미리 구비하고, 부동액, 축전지, 윤활유 등 자동차 상태를 사전에 점검한다. 운전 전에는 앞 유리의 성에를 완전히 제거하고, 운전 중에는 평소보다 저속 운전하고 차간 거리를 충분히 확보해 사고를 예방하며, 미끄러운 길이나 빙판길, 커브길 등에서는 되도록 가속과 멈춤을 하지 말고, 속도를 미리 줄이도록 한다.농·어촌에서는 비닐하우스 등 동해 피해 방지를 위해 난방, 온실커튼, 축열 주머니 등 미리 동해 방지 조치를 취한다. 축사 등은 쌓인 눈에 의한 붕괴 등에 대비해 보수·보강하고, 샛바람 방지를 위한 보온덮개와 난방기 등을 준비한다. 양식장은 사육지 면적의 1% 이상을 별도 확보해 월동장을 설치하고, 방풍망 등으로 보온 조치한다. 장기 한파 피해가 예상될 때에는 양식어류는 조기 출하해 피해를 예방한다.한파는 매년 찾아오는 기상현상으로만 인식되다가 지난 2018년 태풍, 집중호우 등과 같이 국민생활에 중대한 피해를 주는 자연재해로 법제화됐다. 이는 당해 사상 최악의 폭염과 열대야 현상이 지속되자, 폭염을 비롯해 한파 등 일정 수준 이상의 기온 변화에 대한 위기의식이 자리잡음에 따른 것이다. 이를 통해 사회적으로 한파 피해에 대한 보다 체계적인 지원과 예방이 가능하게 됐다.기상청은 누리집(www.kma.go.kr)을 통해 겨울철 체감온도, 동파가능지수를 제공하고 있다. 이를 적극 활용해 최신 기상정보를 확인하고, 상황에 맞는 한파 대응요령과 생활수칙을 철저히 지킨다면 국민 모두가 안전한 겨울나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박광석 기상청장서충환 기자 seo@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