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사람의 침대/ 이도원

~기러기아빠의 사랑과 연민~…집을 구하러 갔다가 중개사였던 아내와 만났다. 아내의 컨설팅을 받아 아파트 평수를 늘리고 결혼을 했다. 아내는 책만 봐온 나와는 달랐다. 돈을 잘 벌었다. 추구하는 세계가 서로 달랐다. 아내는 책 읽는 남편을 싫어했고 사서라는 직업을 부끄러워했다. 마침내 아내는 두 아들과 함께 미국으로 떠났다. 돈을 보내라고 할 때만 연락해왔다./ 공원에서 비명소리를 들었다. 어떤 사내가 여자를 폭행했다. 사내가 간 후 여자에게 가봤다. 여자는 괜찮았다. 그 여자가 내 뒤를 따라왔다. 자세히 보니 도서관에서 책을 가장 많이 빌려가는 여자였다. 여자는 조수석에 올라탔다. 돈을 요구했다. 나는 화가 나서 여자를 내려놓았다./ 그 여자가 자료실에서 책을 괴고 잠을 잤다. 여자를 깨웠다. 여자는 책을 빼와 대출신청하면서 퇴근 후에 만나자고 했다. 대답을 않자 일방적으로 기다리겠단다. 만나는 동안 여자는 돈을 요구했다. 읽은 책 이야기를 해주면 돈을 주겠다고 했더니, ‘조르바’와 ‘월든’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최근 여자는 죽음에 관한 책들을 많이 빌려갔다./ 나는 대출카드에 적힌 주소로 찾아갔다. 재개발지역이었다. 여자의 집은 골목 안쪽에 있었다. 여자를 만나 책을 내밀었다. 여자는 책을 받아 말없이 집으로 들어갔다. 나는 바로 골목을 빠져나왔다./ 여자가 이불 속으로 들어왔다. 우리 집으로 가든가 모텔로 가자고 권유했다. 여자는 돈만 요구했다. 잠이 들었다가 일어나보니 여자는 다른 방에 있었다. 남편이 침대에 누워있었다. 기가 막혔다. 나는 급히 집을 빠져나왔다./ 그들의 얼굴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덫에 빠진 신세 같았다. 병든 남편을 보살피는 아내를 덮친 파렴치범으로 몰려 돈을 갈취당할 수도 있다. 정리를 해야 할 것 같다. 여자의 집을 찾아갔다. 작은방으로 들어갔다. 여자가 옷을 벗었다. 나는 뺨을 후려쳤다. 여자가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야릇한 정이 느껴졌다. 방문을 빠져나오는 순간 큰방에서 남편이 잠시 보자고 말했다. 못들은 척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몸은 이미 남편 앞에 있었다. 장정일의 시 ‘지하인간’이 머리맡에 붙어있었다. 사내는 담배를 부탁했다. 담배와 라이터를 넘겨줬다. 둘이서 말없이 담배를 피웠다./ 나는 여자의 집에 가지 않았고 여자도 도서관에 오지 않았다. 그들의 안부가 궁금했다. 호기심을 떨치지 못하고 여자의 집으로 갔다. 불에 타서 집이 내려앉아있었다. 전소된 자리에서 부부의 시신이 나왔다고 한다. 문득 담배와 라이터가 떠올랐다.…나는 배금주의자 아내와 두 아들에게 버림받은 외로운 기러기다. 우연히 생계형 매춘으로 병든 남편을 돌보는 여자를 만난다. 왠지 모르게 그 여자에게 관심이 가고 결국 엮이고 만다. 난생처음 그녀에게서 사랑과 연민을 느낀다. 병상에 누워 책을 읽는 남편과 몸을 팔아 근근이 생계를 꾸려가는 여자가 미국으로 떠난 아내와 아들보다 훨씬 더 정이 간다. 무능한 지식인 사내와 돈 버는데 젬병인 나는 같은 족속으로 물신주의의 상징적 공간인 재개발현장에서 담배를 피면서 교감을 나눈다. 본능적으로 서로를 알아본다. 아내와 여자는 비슷해 보이면서 확연히 다르다. 담배와 라이터는 생과 사의 상징물로 기능한다. 사내는 엄혹한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금싸라기 땅 위에서 결국 죽음을 선택한다. 연민과 허무감이 비정한 세상과 대비돼 가슴을 엔다.오철환(문인)

어떤 명함/ 정희경

달리는 오토바이가 명함을 휙휙 던진다//비스듬히 내리는 때 이른 진눈깨비//급전이 필요하십니까 즉시 대출 싼 이자//불 꺼진 치킨집 앞 수북한 고지서처럼//폐업 처분 가격 인하 가속력 칼금처럼//가장의 낡은 구두에 추적이는 누런 낙엽「해바라기를 두고 내렸다」(책만드는집, 2020)정희경 시인은 대구 출생으로 2010년 서정과 현실 신인상 시조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지슬리’, ‘빛들의 저녁시간’, ‘해바라기를 두고 내렸다’ 등과 시조평론집 ‘시조, 소통과 공존을 위하여’ 등이 있다. 치열한 시 정신으로 창작을 하면서 날카로운 평필로 좋은 시조 알리기에 매진 중이다. 이렇게 시조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자 하는 노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세상은 급변하고 있고, 예기치 못한 일들이 파도가 몰려오듯이 들이닥치고 있다. 이러한 때에 시조가 할 수 있는 일을 궁구해야 한다. 시조로 시대를 견인해야 한다. 인간성 상실의 시대에 정신의 위의를 세우는데 시조만한 문학 갈래가 없기 때문이다.‘어떤 명함’은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는 작품이다. 달리는 오토바이가 명함을 휙휙 던지는 장면을 비근하게 본다. 얼마나 효력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러한 일을 하는 이들이 많다. 비스듬히 내리는 때 이른 진눈깨비가 흩날리고 있는 날이기에 을씨년스럽다. 명함은 목청껏 소리 높여 말하고 있다. 급전이 필요하십니까, 라고 물으면서 즉시 대출이고 아주 싼 이자이니 갖다 쓰라고 한다. 흡사 불 꺼진 치킨집 앞 수북한 고지서처럼, 폐업 처분 가격 인하 가속력 칼금처럼 명함은 곳곳에 날아가 박힌다. 화자는 그 장면을 바라보면서 가장의 낡은 구두에 추적이는 누런 낙엽이라고 의미 부여를 한다. 명함을 부지런히 뿌리며 달려가는 그 사람도 한 가정의 가장일 것이다. 그는 낡은 구두를 신었고, 삶에 늘 쫓기며 산다. 그런 구두에 추적이는 누런 낙엽과도 같은 것이 명함이다. 명함은 분명히 그 사람에게는 목숨 줄과도 같은 것이건만….시인의 이러한 현실 직시는 소중하다. 이렇듯 시조가 시대 상황, 시대정신을 부지런히 받아들이고 그것을 육화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 이 일은 시조를 쓰는 시인에게 주어진 책무이기 때문이다. 자연을 예찬하고 내면세계를 탐구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당대의 아픔을 형상화하는 일에 결코 소홀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그런 뜻에서 ‘어떤 명함’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또 다른 작품 ‘박태기나무’를 보자. 곡진한 아픔이 배어 있다. 울 할매 어제 흘린 밥풀때기 몇 조각이 꽃대 따윈 필요 없어 나무 몸에 붙어 핀다, 라고 진술하고 있다. 그래서 아범아 밥이 참 곱제 식기 전에 마이 무라, 라고 말한다. 모두가 밥심으로 살았는데 살아서 견뎠는데 어무이 이제 이게 어무이 밥줄이라요, 라고 하면서 자식이 애를 태운다. 어머니가 링거 줄을 자꾸 뜯어버리기 때문이다. 요양병원 98호에서의 일이다. 사실 수십 년 전만해도 쌀밥이 귀했다. 보리밥이라도 실컷 먹어 봤으면 하던 시대가 1960년대였다. 홈런타자였던 김봉연 선수가 어떻게 홈런왕을 차지하게 되었는가 하고 아나운서가 물었을 때 밥의 힘이었다고 대답했던 것을 또렷이 기억한다. 그때 명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매는 밥을 제대로 드시지를 못한다. 해서 링거에 의지하고 있다. 그게 밥줄이나 마찬가지다.위기의 시대라고 말하지만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늘 위태로운 일들이 있었다. 자존을 견지하며, 좋은 시조로 세상을 밝혀나가는 일에 전념한다면 우리 사회가 더욱 윤택해지리라 믿는다.이정환(시조 시인)

트루먼 쇼/ 김태완

촬영용 조명등 전시한 가게 돌아/ 가죽벨트, 지갑, 구두 잔뜩 달린/ 크리스마스트리 지난다/ 아침산책 나온 아줌마들이 목에 $120 $250 $300 태그 단/ 푸들 치와와 스패니얼 종 끌고서/ 신상 얘기 늘어놓는다/ 그 옆으로 거대한 타란툴라 독거미가 날 잡수셔 하듯/ 파충류 숍 윈도우 두드린다// 그는 오늘도 CCTV 경비원에게 인사하고/ 변함없이 출근길에 오른다/ 꽃 같은 아내는 반드시 꿀 바른 마늘빵/ 바나나젤리 핑크소다로 아침상 차렸다/ 매일 광고판이 바뀌는 버스 안/ 10분마다 한 번씩 물약 꺼내 마시는 할머니/ 백미러로 힐긋힐긋 쳐다보는 운전기사와 눈이 마주친다/ 버스에서 만나는 두 여학생 중 하나는/ 어김없이 포장된 닭고기 꼬치 들고 있거나/ 광고로 도배된 무료신문 보고 있다// 그는 검은 턱시도, 나비넥타이에다/ 허연 배때기를 드러낸 채/ 북극 펭귄마냥 겅중겅중 앙가발이 걸음으로/ 짜잔, 사무실 문을 연다/ 입구 쪽 경리담당 미스 김의 컴퓨터 위/ 빙설 같은 신상 핸드백 놓여있다/ 벽에는 취급주의, 맥 빠진 시청률 같은 매출 그래프/ 산더미 같은 서류가 시스템 에어컨 따라/ 턱턱 숨을 몰아쉰다/ 내 방으로 좀 오시오/ 잔뜩 찌푸린 부장의 까톡이 도착한다// 거름과 지렁이, 낙엽냄새 시큼한 방으로 들어서자/ 그는 망설임 없이 흰 팬티 쫄쫄이타이즈로 갈아입고/ 꽉 죄는 펭귄마스크 덮어쓴다/ 그 위에 턱시도 다시 걸친다/ 당신은 그저 그런 펭귄이야/ 부장이 다짜고짜 동네 불량배 다루듯 팔 비틀고/ 회계보고서가 왜 이 따위야/ 매출 증대 방안 내놓으란 말이야/ 발로 배때기 퍽퍽 질러대더니/ 번쩍 들어 휴지통 모서리에 매다 꽂는다/ 헤드락으로 으깨진 얼굴에 피가 찐득/ 시큰한 임플란트가 허공에 날아간다/ 부장 방을 나온 그는 쩔뚝쩔뚝/ 약솜 틀어막은 코가 어느새 이마에 가있다/ 턱시도 겨드랑이가 다 뜯겼다// 오후에 사장이 다시 부른다/ 문을 여니 철창 링이 보이고/ 입이 찢어져 귀에 걸린 비서가 대들 듯 주먹 내보인다/ 오색괴수 차림의 사장이 호루라기 불며 들어온다/ 순간 오금이 저린다/ 우리는 울트라 펭귄을 원해!/ 대뜸 으름장부터 놓는다/ 엎치락뒤치락 사장 다리 낚아챈 그/ 숨 멎을 듯 공포의 코브라트위스트/ 비틀고 누르며 간지럼 태운다/ 살점 찢는 익살이 잔인하다/ 으 악 우 하 하 히 ㅋ…/ 철창 밖으로 내동댕이치자/ 오색사장 망가진 신음/ 사방팔방 마천루에 메아리친다/ 갑자기 불이 나가고/ 타닥타닥 소리를 내는 전기장치/ 급하게 뛰는 구둣발 소리 요란하다// 때마침 서류가 무너져 화들짝 잠이 깬다/ 에어컨 바람이 목덜미를 훑고 지나자/ 그제야 허둥지둥 새로 쓴 보고서 챙겨/ 사무실을 나선다/ 끙, 허연 배때기에 힘주고 나비넥타이 고쳐 맨다/ 문득 양복 겨드랑이가 다 뜯겨있다「세르반테스의 기막힌 연서」 (서고, 2021)‘트루먼 쇼’는 시청자들이 세트장의 통제된 삶을 지켜보는 영화다. 몰래카메라의 확장 버전이다. 연출을 알지 못하다가 진실을 알아가면서 느끼는 허탈감이 우리 삶의 본질을 되돌아보게 한다. 프라이버시를 엿보는 일에 시청자들은 열광한다. 자유와 프라이버시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의 모순과 부조리가 우리의 부끄러운 민낯이다. 우리의 삶이나 운명도 어떤 절대자의 각본이라는 의심이 든다. 그렇다고 실망하거나 포기할 수 없다. 불굴의 도전정신과 자유로운 탐구심으로 그 틀을 깨야만 진실한 삶이 펼쳐진다.오철환(문인)

별/ 박곤걸

보현산 천문대에 가서/ 딸기처럼 빨간 별 한 봉지 싸서 돌아와/ 아내 하나 나 하나 꿀맛으로 나누어 먹었다// 별이 싹트지 않은 불임의 도시는 캄캄한 얼굴을 하고/ 우리 내외는 조그맣게 웃고/ 밤새 꿈을 하나 낳고/ 별 밭이 어디 있는지 그 마을 딸기 밭을 찾아갔다// 아무도 없는 세월 저 켠에 시퍼런 솔잎 사이로/ 빛깔도 맛깔도 딸기같이 잘 익은 별 밭을 찾아가/ 매운 눈물 너머 목숨 데불고 살아온/ 누군가의 꿈도 사랑도 그토록 반짝이고 있는 것을/ 비로소 눈을 뜨고 읽었다「하늘 말귀에 눈을 열고」 (문예운동, 2002)시란 과연 무엇일까. 그 답이 궁해진다. 흔히 시는 자연이나 인생에 대한 생각이나 느낌을 함축적이고 운율적인 언어로 표현하는 글이라고 한다. 그렇게 교과서적으로 설명해봐야 아리송하긴 매일반이다. 시의 모양이나 빛깔이 다양하고 다채롭기 때문이기도 하고 산문적인 글들을 행이나 연만 나눠 놓은, 시아닌 시가 횡행하는 현실 때문이기도 하다. 시로 통하는 문이 너무 많이 열려 있어 시인 아닌 시인이 넘쳐나는 상황이 시의 정체성을 더욱 알 수 없게 만들고 있다.시는 배를 채워주지도 못하고 돈을 벌어주지도 못하며 권력을 가져다주지도 못한다. 시를 쓰고자 하는 사람은 있지만 전업이나 밥벌이 수단으로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액세서리 정도로 구색을 갖춰보자는 것이 대부분이다. 아직도 시인이란 직업이 있느냐고 한다고 해서 그리 섭섭해 할 수 없는 것이 작금의 사정이다. 시는 인간 영혼의 소리이고 시인은 그것을 은유의 언어로 표현해내는 예술가이다.시 ‘별’은 밤하늘의 별을 보고 일어나는 마음의 움직임을 잘 표현해낸 아름다운 글로 시의 전범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혼란한 시기에 시 ‘별’은 시다운 시의 모범을 보여준 셈이다. 시인은 자연에 따스한 눈길을 보내는 한편 긍정의 마음으로 인생을 관조한다. 현실적인 고난에 굴하지 않고 미래의 꿈을 실현시키고자 시도한다. 현실과 이상의 균형상태를 지향하는 정서는 열린 마음으로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꾀하고자 하는 마음의 표출이다. 덤덤한 듯 치밀하고, 현실적인 듯 몽환적이다.보현산 천문대의 밤하늘엔 딸기 같은 별들이 놀랍도록 총총하다. 누군가 새카만 도화지에 반짝이는 영혼을 빈틈없이 그려 넣은 듯하다. 그것은 그야말로 혼자 보기 아까운 낭만이다. 도회지의 밤하늘은 별들도 살기 힘든 황량한 공간이다. 저 하늘의 별을 한 봉지쯤 따서 사랑하는 아내에게 가져다주고 싶다. 아내와 함께 보는 별은 더욱 화사한 모습으로 뽐낼 것이다. 아내 입에 하나 넣어주고 내 입에 하나 넣으면 꿀처럼 달콤하리라. ‘별이 싹트지 않은 불임의 도시에서’ 달콤한 별을 먹으면 꿈과 낭만을 잉태할 터다. 별 밭을 찾아내어 꿈을 심고, 딸기밭을 찾아내어 사랑을 심을 터다.별들은 예나 지금이나 세월을 잊은 채 한결같은 마음으로 자리를 지킨다. 솔잎 사이로 보이는 별이 반짝반짝 빛난다. 빨간 별이 별 밭에서 잘 익은 딸기같이 탐스럽고, 빛깔 좋은 딸기가 딸기밭에서 반짝이는 별같이 익어간다. 험한 세상을 사느라고 매운 눈물을 흘리며 억척스럽게 살아온 아내는 밤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곱고 아름답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을 바라보노라면 우리들의 꿈이 살아있는 걸 비로소 느끼고 우리들의 사랑이 반짝이는 걸 또한 깨닫는다.오철환(문인)

드라이플라워/ 박성민

여기서 살아나간 향기는 없었다/말라붙은 웃음만 빛깔로 남은 병실/눈뜬 채 잠이 든 그녀/눈꺼풀 떠는 창문//옆으로 돌아누워 거울을 마주 보면/텅 빈 뼛속에서 한 묶음 새가 운다/허공에 부리를 묻는다/물 한 모금 없는 새장//안개가 무성하던 계절은 멈춰 섰다/한 알의 하루를 삼키는 저물녘엔/온몸이 바스라진다/잇몸으로 뜨는 달「어쩌자고 그대는 먼 곳에 떠 있는가」 (시인동네, 2020)박성민 시인은 전남 목포 출생으로 2009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쌍봉낙타의 꿈’, ‘숲을 金으로 읽다’, ‘어쩌자고 그대는 먼 곳에 떠 있는가’등이 있다. 또 다른 목소리의 발현에 전념하고 있는 시인이다. 자아와 세계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일에 매진함으로써 인생의 의미를 심화시키고, 미학적 자질을 견인해 문학적 성취에 이르고자 전력투구 중이다.‘드라이플라워’도 그 연장선상에서 읽을 수 있다. 여기서 살아나간 향기는 없었다, 라는 첫 대목이 명치끝을 저리게 한다. 향기는 한 생명이다. 오래도록 이 땅을 밟고 살아가야할 소중한 목숨이다. 그렇지만 시의 화자는 살아나간 이가 없었다고 단호하게 천명한다. 이것은 곧 드라이플라워의 이미지다. 말라붙은 웃음만 빛깔로 남은 병실에서 눈뜬 채 잠이 든 그녀가 있고 그 순간 창문은 눈꺼풀을 떤다. 창문은 그녀에게는 희망이기 때문에 그녀와 함께 움직이는 존재가 되고 있다. 그렇기에 눈꺼풀이 떤다고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자아와 세계가 한 호흡을 이루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옆으로 돌아누워 거울을 마주 보면 텅 빈 뼛속에서 한 묶음 새가 울고 있다는 표현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텅 빈 뼛속에서라는 구절을 통해 그녀가 지금 얼마나 병약한가를 여실히 엿볼 수 있다. 그래서 허공에 부리를 묻는다고 했을 것이다. 물 한 모금 없는 새장이기에. 안개가 무성하던 계절은 멈춰 섰고, 한 알의 하루를 삼키는 저물녘에는 온몸이 바스라진다. 하여 참으로 기막힌 표현인 달이 잇몸으로 뜬다, 라는 결구에 이르지 않았을까 생각된다.그는 ‘숲을 金으로 읽다’에서 자연의 비의 앞에 선 한 자아의 심경을 진솔하게 진술하고 있다. 난시의 가을인가, 도리마을 은행 숲에 버려진 잎들끼리 껴안고 뒹구는 땅 눈부신 폐허의 풍경이 금빛으로 타오른다, 라고 시적 정황을 적실하게 형상화한다. 폐허이지만 폐허의 풍경은 금빛이고 그것은 타오르는 금빛이어서 바라보는 이로 하여금 눈부시게 한다. 너 떠나자 가을이다, 어깨를 움츠린 가을이라는 둘째 수 초장은 의미심장하다. 너는 누구인가 쉽게 물을 수가 없다. 다만 네가 떠나고 나자 가을은 찾아왔고, 그로 말미암아 가을은 어깨를 움츠리고 있다. 그리고 우듬지까지 밀어올린 눈물의 뿌리들이 써놓고 부치지 못한 편지처럼 쌓여가는 것을 바라보면서 깊은 생각에 잠긴다. 하여 화자는 보풀 이는 너의 손등을 가만히 만져본다. 끝으로 추워지는 영혼마다 어깨들 감싸주듯 맨살이 맨살을 더듬는 은행 숲이 빛나는 것을 바라보면서 숲을 금(金)으로 읽을 수밖에 없는 정황을 환기시키고 있다. 숲이라는 글자 모양에서 금을 읽어낸 혜안은 시인으로 하여금 부단히 시를 쓰게 하는 영감이자 동력이라는 생각이 든다.앞서 언급한 것처럼 자아와 세계를 민감하게 읽고 받아들이는 예지가 시인에게 있기 때문에 미적 자질을 육화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터다. 이러한 일은 시인에게 주어진 몫이자 행운이다. 시인이 왜 쓰는 자로 살아가고 있는지 ‘드라이플라워’나 ‘숲을 金으로 읽다’를 통해 우리는 여실히 느끼게 된다. 그것으로 족한 일이다. 이정환(시조 시인)

부스/ 김동혁

~겨울이 오면 봄 또한 멀지 않으리~… 나는 주유소 유리부스에서 근무한다. 늦은 시간에 차 한 대가 셀프세차장에 들어온다. 여자운전자가 쓰레기통에 흰 봉지를 버리곤 사라졌다. 쓰레기통에서 강아지 한 마리가 나왔다. 동정심 따윈 없었지만 강아지를 부스로 데려왔다. 낡은 포터가 들어왔다. 음식물 찌꺼기를 수거해 가는 꿀꿀이 차다. 꿀꿀이아저씨와 그의 벙어리아들이 타고 있다. 아저씨는 그 아들을 마구 거칠게 다룬다. 강아지를 달라고 해서 아들에게 강아지를 줬다. 새벽 두 시경 어머니 전화가 왔으나 받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 기일을 잊고 있었다. 아버지는 고향에서 괜찮은 주유소를 했다. 그 덕에 대학원까지 돈 걱정 없이 마쳤다. 나는 대학에서 시간강사를 했고 아내는 빚을 내어 영어교습소를 차렸다. 아내는 영혼까지 끌어와 학원 사업에 올인 했다. 어느 순간 빚은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내는 둘째를 낳고나서 홀연히 사라졌다. 재산을 정리하고도 그 빚을 청산하지 못하자 아버지는 명줄을 놓았다. 어머니는 아직 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눈이 내렸다. 염화칼슘을 뿌렸다. 새벽 네다섯 시쯤, 주유소 이층에 세든 보도방 승합차가 들어왔다. 토사물을 털어내는 일로 다투었다. 일용잡부들을 태운 승합차가 올 시간이 됐다. 폭설 탓인지 승합차는 오지 않았다. 나는 아내가 남긴 사채에 시달렸다. 사채는 갚아도 줄지 않았다. 주유소 일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들이 돈을 받으러 주유소로 찾아왔다. 열흘 후에 갚겠다고 했지만 허사였다. 집에까지 찾아와 애들을 데려갈 듯 협박하곤 돌아갔다. 분노와 두려움에 휩싸여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소장도 사채업자의 전화를 받은 모양이다. 소장은 내게 야간근무를 권했다. 월급은 많았지만 어린 두 딸을 두고 야간에 집을 비우는 것이 문제였다. 작은 아이가 근무 중에 없어진 적도 있었다. 다행히 놀이터에서 찾긴 했지만 여간 놀라지 않았다. 소장이 가불을 해주어 밀린 사채이자를 해결했다. 다시 눈이 내렸다. 염화칼슘이 떨어져 삽으로 눈을 치웠다. 눈 더미가 많이 생겼다. 퇴근할 땐 맑은 하늘이 보였다. 거리엔 출근하는 사람들로 북적였고 도로엔 차들로 가득 찼다. 세상이 생기를 되찾았다. 폭설이 내린지 며칠 지났다. 꿀꿀이아저씨가 왔다. 아들이 강아지와 함께 포터를 몰고 사라졌다고 한다. 혹시 보거든 연락해 달란다. 사실, 그 아들이 포터를 타고 주유소에 왔었다. 조수석엔 강아지가 타고 있었다. 그는 기름을 넣고 셀프세차를 했다. 세차장 바닥까지 깨끗이 씻었다. 그는 편안하고 예의바른 모습으로 떠났다. 돌아오지 않을 것이고 찾지도 못할 것이다. 새벽 4시, 늦음과 이름의 경계가 없는 시간, 주유소는 조용했다.…빚으로 심신이 만신창이가 됐다. 아내는 어린 두 딸을 두고 가출했다. 야간알바를 하면서 근근이 연명한다. 사채업자가 돈을 받기위해 딸을 두고 협박까지 한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살기가 죽기보다 힘들지만 두 딸을 지켜내야 한다. 고난에 굴하지 않고 견뎌내야 산다. 엔코 된 차를 밀어주고 난 다음 고마워하는 마음을 느끼면서 인간에 대한 신뢰를 조금 회복한다. 아버지와 함께 막장인생을 살던 벙어리아들이 강아지와 함께 새 출발을 시도하는 모습을 보고 희망을 본다. 얼어붙은 세상도 해가 뜨면 생기를 되찾는다. 엄동설한이지만 봄은 온다. 새벽 4시, 곧 해가 뜬다. 용기를 내야지.오철환 (문인)

잔도(棧道)/ 김덕남

한 발은 이승에서 또 한 발은 저승에서/하루치 목숨 늘여 밑줄 치는 붉은 이름/수천 길 낭떠러지에 선반 하나 매단다//길은 늘 양지보다 음지가 길었었지/흡반처럼 달라붙는 어둔 길 지워보려/허공에 발을 딛는다, 먹구름을 밀어가며//메아리 돌아와도 풍문은 흩어질까/웅웅 우는 산을 돌아 무릎 꿇는 외진 밤/산짐승 울음 보탠다, 돌아갈 날 있을까「거울 속 남자」 (책만드는집, 2020)김덕남 시인은 경남 경주 출생으로 2011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젖꽃판’, ‘변산바람꽃’, ‘거울 속 남자’와 현대시조100인선 ‘봄 탓이로다’가 있다. 오랜 공직 생활을 마감하고 애오라지 시조 창작에만 열정을 쏟고 있어 그 과실이 풍성하다. 얼마나 치열하게 시조와 쟁투를 벌이고 있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잔도’는 특이한 제목인데 시의 소재로 삼을 만하다. 잔도는 험한 벼랑에 선반처럼 달아맨 길로 중국 삼국시대 전쟁 이동 통로로 시작됐고, 잔도를 낼 때는 사형수를 일부 투입해 완공 후 형을 감해 주었다고 한다.한 발은 이승에서 또 한 발은 저승에서 하루치 목숨 늘여 밑줄 치는 붉은 이름으로 수천 길 낭떠러지에 선반을 하나 매단다, 라고 노래하고 있는 데서 보듯 인생길은 그리 순탄치만 않음을 상기시킨다. 산다고 사는 것이 아닌 듯한 요즘에는 더욱 그러하다. 두 발 중에 언제 한 발이 더 무겁게 저승 쪽으로 디디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실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위태롭기 그지없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을 다잡으며 더욱 삶의 고삐를 옥죄어 잡고 앞을 보고 나아가야만 한다. 시의 화자가 길은 늘 양지보다 음지가 길었음을 기억하며 흡반처럼 달라붙는 어둔 길 지워보려고 허공에 발을 딛기까지 하고, 먹구름을 밀어가며 헤쳐가기도 한다. 그러면서 메아리 돌아와도 풍문은 흩어질까, 라고 반문하다가 웅웅 우는 산을 돌아 무릎 꿇는 외진 밤에 산짐승 울음을 보태면서 돌아갈 날에 대한 희망을 떠올리고 있다. 삶에 대한 이러한 진중한 탐색과 사유는 소중하다. 주어진 나날을 더욱 값지고 유익하게 보내고자 하는 의지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그는 ‘작약 앞에서’라는 시조에서 열정의 불꽃을 한껏 터뜨리고 있다. 코끝을 스치는 듯 양 볼에 스미는 듯 당신의 한숨처럼 가슴에 물이 들어서 한 종지 고명을 얹어 꽃망울이 피는 것을 바라보면서 설렌다. 그 마음은 이슬을 톡톡 튕겨 향낭을 터뜨리다 눈길 한 번 삐끗 놓쳐 사랑까지 놓쳐버려 오월의 손톱 속으로 초승달은 지는데, 까지 이르면서 감정의 고조는 극대화된다. 그런 후 바람에 먹을 갈면 속마음 전해질까, 라면서 지워진 길은 멀고 생이별은 더욱 멀어 한 천년 꽃잎이 이마 위에 뚝 뚝 지는 것을 애절하게 바라본다. 아주 오래 전 최정산 정상을 오른 적이 있었는데 별안간 눈앞에 장관이 펼쳐졌다. 산정의 널따란 평원 위에 수만 송이의 작약 꽃이 만개해 눈을 부시게 했던 것이다. 천상의 모습이었다. 군락의 아름다움은 말로 다 이를 수 없었다. 일찍이 작약의 아름다움을 그만큼 실감실정으로 가슴에 품어 본 적이 없었다. 지금도 그 생생한 장면이 뇌리에 박혀 있다.‘잔도’는 삶에 대한 의지를 다져주는 시편이다. 더 힘차게 살아가야 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한다. ‘작약 앞에서’는 더욱 멋지게 애틋하게 이름답게 사는 것이 인생이라고 일러주는 듯하다. 눈길 한 번 삐끗 놓쳐 사랑까지 놓쳐버려서는 아니 되리라. 지워진 길은 멀고 생이별은 더욱 멀지라도 끝까지 오롯이 자신을 지켜야 할 터다. 오늘 하루 진실로 그렇게 살 일이다.이정환(시조 시인)

죽은 시인의 사회1/ 하종오

용정에서 취재하러 남한에 온/ 조선족 난민의 후손 윤동주 시인이/ 말이 통하지 않아 어찌할 바를 모르는/ 나를 데리고 예멘 청년들을 만났다/ 나는 도저히 알아듣지 못하는 아랍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윤동주 시인을 보면서/ 시를 잘 쓰면 절로 아랍어가 터득되나보다 했다/ 윤동주 시인은 대화내용을/ 바로바로 나에게 통역하였다/ 난민 신청했다가 인도적 체류 허가받은 예멘 청년들 중에는/ 시를 습작하는 시인지망생 하산 씨가 있어/ 시인인 우리를 알아본다고 했다/ 예멘 청년 하산 씨는 시골에서 태어나 자라 도시에서 공부했으며/ 어릴 적부터 시인이 되기를 꿈꾸었노라고 말했다고 했다/ 그런 말을 들은 내가/ 윤동주 시인도 마당에 자두나무가 있고/ 울 밖에는 살구나무가 많고 쪽문을 나가면 우물이 있고/ 대문을 나서면 텃밭이 있는 집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어릴 적부터 시인이 되기를 꿈꿨다고/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예멘 청년 하산 씨가 인도적 체류 허가받은 지금 처지로는/ 시를 습작하기에 난망해 보여/ 요즘은 무슨 꿈을 꾸느냐고/ 윤동주 시인에게 물어봐 달라고 부탁했다/ 윤동주 시인이 내 질문을 전했는지/ 혹은 전하지 않고 다른 질문을 했는지 몰라도/ 몇 마디 중얼거리는데도/ 낯빛이 빛나 보이는 예멘 청년 하산 씨와/ 윤동주 시인이 환하게 웃으면서 악수를 해서/ 나도 따라서 환하게 웃으면서 악수를 했다/ 윤동주 시인은 용정으로 돌아가지 않고/ 남한에 머물면서 예멘 청년들과 자주 만나겠다면서/ 시인지망생 예멘 청년 하산 씨가 한 대답을 나에게 들려주었다/ 한국어를 배우고 싶다./ 한국어로 시를 쓰고 싶다./ 난민이 된 예멘 인들에 대해서 한국어로 시를 쓰고 싶다./ 예멘에서 벌어지고 있는 내전은 보통 예멘 사람들이 벌인 전쟁이 아니라는 걸 보통 한국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 한국어를 가르쳐 달라, 고…「대륜문학17」 (대륜문학회, 2020)알카에다와 IS 등 이슬람원리주의자들이 예멘 정부를 공격했다. 그 후 남예멘분리주의자와 사우디아라비아가 개입하게 되고 예멘 내전은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됐다. 수만 명의 민간인이 사망했고 대규모 난민이 발생했다. 우리나라에도 2018년 500여 명의 예멘 난민이 제주도에 들어왔다. 제주도는 관광객 유치를 위해 무비자제도를 실시하고 있는 관계로 누구나 자유로운 입국이 가능한 탓이다.우리나라가 난민을 받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새삼 이 사건이 여론의 조명을 받은 것은 갑자기 많은 난민이 몰려온 데다 이질적인 문화를 가진 무슬림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인종차별을 극복하고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배타적 순혈주의와 일자리 부족, 범죄 발생가능성 등을 들어 예멘 난민을 받지 말아야 한다는 여론이 우세하다. 내국인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는 현실에서 오지랖 넓은 짓을 하지 말자는 의미로 비친다.시인은 난민의 후손으로 빼어난 시를 쓴 윤동주 시인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다. 기발한 발상이다. 난민을 보담아 준 덕분에 윤동주 시인이 존재할 수 있었듯이 예멘 난민을 포용해 준다면 예멘 난민의 이야기를 한국어로 쓴 위대한 시인이 탄생할 수 있다. 미국이 유대인을 관용한 덕택에 아인슈타인을 얻었고, 다양한 이민을 지속적으로 허용한 덕분에 스티브잡스, 타이거우즈, 오바마 등을 낳은 이야기가 행간에 숨어있다. 이해득실을 떠나 인도주의 관점이 시인에겐 자연스럽다. 오철환(문인)

은유의 꽃/ 이진흥

(1)// 한밤중 머언 하늘 끝에서/ 우주의 비밀처럼 빛나는/ 별이 떨어질 때// 가장 신비한 모습으로 피어나서/ 아름다운 소멸을/ 배웅한다// 스스로의 무게로/ 가지를 떠난 열매가/ 한없는 어둠 속으로 떨어질 때// 가슴을 도려내어/ 완성의 형식을/ 부여한다// 눈부신 빛의 뒤에 숨어서/ 온갖 빛나는 것들을 드러내는/ 어둠처럼// 끊임없이 떨어지는 것들 속에서/ 하강의 질서를 다스리는 것은/ 꽃이여 너의 눈짓이다// (2)// 정확히 초점을 맞추고/ 셔터를 누르고 나면/ 잡힌 것은 애매한 그림자다// 돌아서면/ 아린 몸짓으로 다가오다가/ 손을 주면 이내 사라지고// 잡는 방법을 전혀 포기할 때/ 남몰래 내안에/ 깃을 치는// 너는 한 오리 율동이다/ 내 어린 시혼의/ 현을 튕기는// (3)// 너는/ 우주가 하나로 집중할 때/ 비로소 열리는 눈이다// 보석처럼 맑은 고독의 사슬로/ 일체의 빛을 묶어/ 흔드는 손이다// 온 생을 한 가닥 활줄에 걸어/ 죽음을 겨냥하는 사수의/ 엄격한 포우즈// 중심을 깨뜨리는/ 모순의 얼굴이다// 날카로운 혼란의 춤, 꽃이여「대구문협대표작선집1」 (대구문인협회, 2013)시는 인생의 실체다. 인생은 사물과의 관계 속에서 시현되지만, 사물은 진정한 본모습을 쉽게 나타내지 않는다. 인간의 삶은 사람마다 백인백색이고, 눈에 비치는 사물의 모습도 가상이거나 허상이다. 정체성이 다른 고유한 프리즘을 통해 보는 사물은 더더욱 본질이 가려진다. 그렇지만 개인의 경험과 정서가 역사적 환경과 동떨어져 존재하지 않는 까닭에 인간의 삶 속엔 어느 정도 보편성이 녹아있다. 보편적인 시각 속에서 독자적인 정서를 찾아내는 일은 난해한 시에 용이하게 접근하는 한 방편이다.시인은 인생을 표현하는 예술가이다. 보이는 대로의 모습은 본모습이 아닌 허상일 수 있다. 나타난 현상을 보고 날카로운 심미안으로 숨겨진 본질을 투시해야 하는 시인은 그래서 현상학자여야 한다. 시 ‘은유의 꽃’은 시제가 보여주듯 꽃을 시적 대상으로 끌어왔다. 시인의 주장대로 꽃을 어떤 사물보다도 우월한 ‘시적 대상성’을 가진 존재로 보기 때문일 것이다. 그 논거의 옳고 그름을 떠나 꽃이 시의 소재로 가장 많이 다뤄져 온 사실만 봐도 꽃이 가진 우월한 ‘시적 대상성’을 감히 부인하진 못하리라.꽃은 다른 도구성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 목적이다. 꽃은 다른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아름답기 때문에 그 모습 자체가 실체다. 꽃의 현상은 미적 대상으로 본질인 셈이다. 시는 대상과 본체를 연결하는 고리로 기능한다. 시인이 꽃을 미적 대상으로 선호하는 것은 자연스런 귀결이다. 시 ‘은유의 꽃’도 이러한 꽃의 ‘시적 대상성’과 ‘대자(對自)·즉자(卽自)의 종합’을 잘 보여준다.어둠은 원초의 상태이고 별은 스스로 목적이다. 소멸이 아름답고 배웅할 만한 것은 어쩌면 역설이다. 열매는 스스로 떨어짐으로서 목적이 완성된다. 별이 소멸하고 열매가 떨어지는 모습이 아름다운 것은 모순이지만 본질이기도 하다. 의도하는 일이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나타난다. 초점을 맞추면 그림자만 남는다. 다가가면 사라지고 포기하면 얻어진다. 현상은 내재하는 율동이고 우주의 눈이며 빛의 손이다. 또한 죽음을 겨냥하는 숨 막히는 사수의 몸짓이다. 꽃은 부조리의 얼굴이고 날카로운 혼란의 춤이다. 꽃의 은유는 그 자체 지향점이지만 소멸하는 실체다. 오철환(문인)

돌이킬 수 없는 사랑과 헤어날 수 없는 마음에 관하여/권영오

지난밤 까먹은 귤껍질이 말랐다//다 못 먹고 놓아둔 귤은 물렀다//향기와 냄새의 접점, 마름과 무름의 경계「좋은시조」 (2017, 겨울호)권영오 시인은 경북 봉화 출생으로 2005년 열린시학 신인상 시조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귀항’과 ‘철학하는 개’가 있다.시조가 지나치게 단정하거나 단아하면 곧 싫증이 날 수 있다. 자연을 찬미하는 일도 시의 한 몫이 되겠지만, 거기에다가 서정일변도로 기울어져 있기만 하면 갑갑함을 떨칠 수가 없게 된다. 시조문단의 원로인 장순하 선생은 일찍이 탈주정을 주창한 바 있다. 서정성에만 함몰돼 있는 시조문단에 대한 일침이었다. 그 후로 창작의 지형은 많이 바뀌었다. 새로운 역량 있는 신인들이 다수 배출됐기 때문이다. 권영오는 등단 이후부터 탈주정의 세계를 천착하는 일에 매진해온 시인이다. 특히 그의 단시조 작품들은 주목을 요한다. 큰소리로 세상을 향해 꾸짖듯이 일갈을 한다. 웬만한 시조를 보고도 성에 차지 않는 성미다. 내 시조는 이렇다. 나는 시조를 이런 방향으로 쓴다는 듯이 몸으로 부딪치는 시를 쓰기 위해 힘쓴다. 절박한 인생담론을 시 속에 녹이기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는 점에서 신뢰가 간다.‘돌이킬 수 없는 사랑과 헤어날 수 없는 마음에 관하여’는 단시조이면서 제목이 꽤나 길다. 다분히 의도적이다. 사랑과 마음에 대한 진지한 탐색인데 지난밤 까먹은 귤껍질이 마른 것을 유심히 보면서 다 못 먹고 놓아둔 귤은 물러있는 것을 살핀다. 그러면서 화자는 돌이킬 수 없는 사랑과 헤어날 수 없는 마음에 관해 사유한다. 대체 그것은 내 인생에서 어떤 것이었나 하고 성찰하면서 향기와 냄새의 접점과 마름과 무름의 경계를 생각한다. 미묘하고 미세하다. 충분히 새로운 목소리의 발현이다.그는 시조의 미래를 걱정하면서 작품에서 제목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다른 이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참신한 긴 제목으로 단시조의 한 전범을 보여주고 있다. 흔히 서정성에 경도되다가 보면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회고조나 추억담을 시화하는 일이 잦다. 물론 이러한 작법도 시에서 필요하다. 하지만 이것은 자칫 퇴행성으로 비쳐져서 결코 미래지향적이지 못하다. 치열한 시대정신과 정신의 위의를 세울 충일한 내면의식의 발현을 통해 새로운 길은 열릴 것이다.다음 두 편의 단시조에서도 그 점을 읽을 수 있다.한때는 사나이였을 남자 두엇 누워 있다/탈진한 인생처럼 편안한 꽃밭 위에/그 곁에 구두를 벗고 나도 놓고 싶어라소주병을 깨듯이 먼 수평에 금이 가고/갈라진 가슴마다 비바람이 새는 동안/사는 거/죽는다는 거/별거는 아니다만 앞은 ‘동대구역’이고 뒤는 ‘부산역’이다. 한때는 사나이였을 남자 두엇이 누워 있는 모습에서 이 시대의 한 단면을 읽는다. 사나이라면 끝까지 사나이여야 마땅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탈진한 인생처럼 편안한 꽃밭 위에, 그 곁에 구두를 벗고 나도 놓고 싶어 하는 화자의 심경에 공감이 간다. 그리고 ‘부산역’에서는 소주병을 깨듯이 먼 수평에 금이 가고 갈라진 가슴마다 비바람이 새는 동안 삶과 죽음이 별것 아닌 것을 자각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역은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다. 우리는 어쩌면 한 역에서 다른 역으로 끊임없이 이동하다가 생의 종착지에 이르게 되는 지도 모른다.돌이킬 수 없는 사랑과 헤어날 수 없는 마음을 그대로 부둥켜안고….이정환(시조 시인)

달팽이를 옮기는 방법/ 허성환

~사라진 남편 찾기~… 남편이 사라졌다.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보니 거실에서 벨 소리가 났다. 충전 중이다. 남편은 게임회사 동료다. 공부를 잘해 좋은 대학을 나왔지만 융통성 없는 엄친아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스타일도 아니고 집밖으로 싸돌아다니는 버릇도 없다. 남편의 행동반경은 제한적이고 예측가능하다. 단서를 찾아보고자 노트북을 살펴봤다. 가수 이적의 ‘다행이다’ 노래가 재생되고 있었다. 보컬학원에 몰래 다니다 들킨 적이 있다. 내 생일 날 불러주려고 했다나. 결혼 후 애기를 가졌으나 2번 연달아 유산됐다. 그런 후 우리는 웃음을 잃었다. ‘다행이다’를 불러주는 깜짝이벤트로 위로하겠다는 계획이었단다. 인터넷 구매목록을 점검해보니 침낭과 등산 가방이 나왔다. 다른 등산장비가 없는 터에 등산을 간 것 같진 않다. 회사로 전화를 해보니 연차휴가를 냈다고 한다. 회사 동료가 또 맨홀에 빠진 게 아니냐고 했다. 전에 맨홀에 빠진 일을 가지고 빈정거리는 듯하다. 또 맨홀에 빠질 가능성은 충분하다. 집밖으로 나가 인근 맨홀을 점검해봤다. 뚜껑이 열린 곳에선 남편 이름을 불러보기도 했다. 주차장에 차가 서있다. 내비 목록을 체크해봤다. 산부인과를 함께 간 흔적이 남아있을 뿐이다. 우리 부부는 작년 가을에 결혼했다. 고지식하긴 했지만 집안일 분담을 잘 했고 융통성이 없긴 했지만 말을 잘 들었다. 유산을 겪으면서 우울 모드가 됐다. 그 와중에 남편이 사라졌다. 한 시간 이상 찾아 헤매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소파에 앉아 곰곰이 생각해봤다. 남편은 심부름 가는 일 외에는 거의 집밖에 나가지 않았다. 다른 동선은 생각할 수 없다. 언젠가 도매가로 할인 중인 청과물을 사오라고 했더니 농산물도매시장까지 갔다 온 적이 있긴 하다. 최근 남편에게 명령한 게 있는지 기억을 더듬어봤다. 화이트보드를 살펴봤다. 그 귀퉁이에 결혼기념일이 적혀있었다. ‘9월 27일 결혼기념일’ 남편은 공교롭게도 결혼기념일 전날 사라졌다. 케이크와 연관이 있을 것 같아 제과점으로 가봤다. 허탕을 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깜짝이벤트가 효과적이라는 남편 말이 떠올랐다. 깜짝이벤트를 준비하러 갔을 수 있다. 무료한 차에 TV를 틀었다. 채널을 이리저리 돌렸다. 채널은 수도 없이 많았지만 볼만 한 게 없었다. 할 수 없이 뉴스전문방송을 봤다. 명품가방을 사기위해 백화점 명품관 입구에 늘어선 사람들 모습이 보였다. 가격인상이 예정된 지라 텐트를 치고 밤을 새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그 앞줄에 서 있던 남편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아내가 갖고 싶어 한다며 명품가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는 남편의 알고리즘을 알아챘다. 난생 처음 애교를 떤다는 게 명령어 입력 오류를 유발한 것이다. ‘제과점에 케이크가 없으면 백화점 가봥.’ 남편은 명품가방을 사서 돌아왔다. 보컬학원 등록 5개월 후 ‘다행이다’ 노래도 불러주었다.…굼뜨고 눈치 없는 남편은 엉뚱한 실수도 하지만 성실하게 짝꿍 아내를 위해 적응하려고 노력한다. 그런 꾸밈없는 풋풋한 모습이 진정성 있게 가슴에 와 닿는다. 자신의 약점을 극복해가는 과정이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 가운데 사랑이 익어간다. 세상에 완벽한 인간은 없다. 부족한 부분을 탓하고 불평하기 전에 서로 보완하고 의지하면서 살아갈 필요가 있다. 진실한 사랑이 중심을 잡고 있는 한, 넘어져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는 복원력이 항상 내재하는 법이다.오철환(문인)

그 저녁에/ 이경임

거기, 너 앉아서 하염없는 노을이다/떠나는 사람 향해 무릎 꿇던 간곡함이/이 저녁/미동도 없는 어둠으로 스며든다//거기, 너 앉아서 하염없는 어둠이다/꽃망울 터지는 소리 아프게 들으며/저만치/멀어져가는 숨결을 짐작한다//거기, 너 앉아서 하염없는 슬픔이다/목젖을 짓누르는 눈물이 시가 되는/이 슬픔/견뎌보기에 참 괜찮은 저녁이다「한국동서문학」 (2016, 가을호)이경임 시인은 대구 출생으로 2005년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프리지아 칸타타’가 있다.시인은 타고나야 한다는 말이 있지만, 부단한 관심과 열정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렇지만 타고 난데다가 줄기찬 노력이 가미되면 보다 빛나는 길을 걸을 수 있기에 천부적이라면 금상첨화임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시인은 남달리 예민하기에 불행하기가 쉽다. 세계의 모든 문제에 대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차라리 둔하면 행복할 수 있다. 감각의 촉수가 워낙 예리한 까닭에 불행을 자초할 때가 잦으니 시인은 숙명적으로 아무나 걸을 수 없는 길이다.이경임은 타고난 시인이다. 한평생 언어와 끊임없는 쟁투를 벌일 운명이기에 여태까지 글을 쓰고 있다. 시조로 자아와 세계를 탐색하고 이미지화한다. 새로운 목소리의 발현을 위해 경주중이다. ‘그 저녁에’도 그런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첫마디부터 예사롭지가 않다. 거기, 너 앉아서 하염없는 노을이다. 대체 거기는 어디며, 너는 또 누구인가? 하염없는 노을인 너의 실체는? 끝맺는 데가 없이 아득하게 혹은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멍한 상태가 하염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하염없음은 떠나는 사람 향해 무릎 꿇던 간곡함이 이 저녁 미동도 없는 어둠으로 스며드는 정황일 수가 있겠다. 이제는 노을을 지나 거기, 너 앉아서 하염없는 어둠이다, 라고 나직이 읊조린다. 그 순간 꽃망울 터지는 소리 아프게 들으며 저만치 멀어져가는 숨결을 짐작하고 있다. 여기서 꽃망울 터지는 소리는 겨울철에는 눈꽃이 내려 쌓이는 느낌으로 와 닿는다. 끝으로 거기, 너 앉아서 하염없는 슬픔이다, 라면서 목젖을 짓누르는 눈물이 시가 되는 이 슬픔 견뎌보기에 참 괜찮은 저녁이다, 라고 노래한다. 노을과 어둠과 슬픔이 저녁의 분위기와 어우러지면서 화자가 겪고 있는 정황을 두고 그래도 견디기에 참 괜찮은 저녁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안도감을 느낀다. 어떤 정치인은 한동안 저녁이 있는 삶을 주창한 바 있었지만, 사실 우리가 꽤 괜찮은 저녁을 날마다 맞이할 수 있다면 그것은 결코 적지 않은 행복일 터다. 각 수 첫머리에서 계속 거기, 너 앉아서, 를 반복함으로써 독자의 시선을 붙잡아두고 있는 점을 눈여겨볼 일이다. 치밀한 직조다. 시를 이끌고 가는 동력이기도 하다.그는 또 ‘동피랑’에서 시선을 확대하고 있다. 바람 부는 날이거든 동피랑에 서 보라, 면서 떠나온 고요만큼 눈부신 저 햇살들 한 땀씩 노을을 짓던 옥양목의 하늘을 펼쳐 보인다. 또한 지난 밤 휘몰아친 풍랑은 지쳐 눕고 비탈진 골목마다 그대가 돌아오는 환한 빛 만져보고 싶은 서성거림 보이는지, 라면서 그리운 그대를 불러낸다. 화자는 지상에 오지 않을 별들이 잠에 드는 동피랑 초저녁이 왈칵 서러워진다, 라면서 그리움의 대상으로서 언덕을 시 속에 배치한다. 그곳은 언젠가 돌아가야 할 사람들의 저 언덕이다. 언덕은 무덤일 수도 있지만, 여러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잔치를 열거나 먼 곳을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을 기댈 언덕이기도 하리라.오늘도 참 괜찮은 저녁을 맞게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이정환(시조 시인)

원죄/ 최규목

1// 손을 뻗쳤다/ 평균대 선수처럼 다리도 뻗쳤다/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한 손은 몸 가지를 잡았다/ 떨리는 손끝으로 파아란 알이 닿았다/ 아래를 내려 보았다/ 초동이 상의를 벗어, 펼치고 있었다/ 알을 던지자 아련히 현기증이 났다// 하늘을 보았다/ 하늘은 나무 위에서도 높기만 했다/ 배고픈 유년/ 불을 지피고 알을 삶았다/ 하나, 둘 껍질을 벗겨 허기진 배를 채웠다/ 먼저 먹은 아이는 먹지 못하는 아이를 쳐다보았다/ 응고된 피, 영글지 못한 껍질 속의 눈동자가/ 아이들의 심장을 멈추게 하고/ 가을, 어느 날/ 새떼는 남으로 날아갔다/ 식솔도 없이/ 처연히// 2// 상념이 흩어진 간이역/ 강 켠에서 인 찬바람이/ 온기로 익어가는 자락에/ 왜가리, 백로 떼가 평화롭다// 마흔의 가슴을 지배해온/ 억압의 근원이/ 저 새떼로 인한 것이라면/ 원죄에서부터 쌓인 내 죄의 질량이 얼마일까/ 골고다의 그와/ 안면 못하는 누이의 사함으로 대신할 수 있을까/ 이제, 노을이 지기 전/ 내 의식의 강 위에/ 부표로 뜬 죄의 뗏목을 사르면서 살 수 있을지「대구문협대표작선집1」 (대구문인협회, 2013)어린 시절의 기억이 평생 동안 가는 수가 있다. 대부분의 경험은 세월과 함께 점차적으로 망각의 늪으로 빠져드는 것이 정상적이다. 지난 일이 평생에 걸쳐 오랜 기간 뇌리에 남아있다는 사실은 그 의미가 남다른 까닭일 것이다. 어떤 것은 기분 좋은 추억으로 삶의 이정표가 되기도 하지만 어떤 것은 부끄러운 기억으로 그 생각이 날 적마다 자기의 머리통을 쥐어박고 싶을 것이다. 드물긴 하지만 충격적인 사건으로 인해 죽을 때까지 트라우마로 남아 마음의 짐이 되는 경우도 있다.1960년대까지만 해도 먹을 것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시절이었다. 마을의 또래들끼리 무리를 지어 산과 들로 돌아다니면서 배를 채울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찾아먹는 일이 일상사였고 어쩌면 일종의 놀이였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가리지 않고 그 관심사는 식용여부였다. 아무리 예쁘고 귀여워도 먹지 못하는 것은 관심 밖이었다. 뱀이나 개구리를 잡아 즉석에서 모닥불로 구워먹기도 했다. 초가지붕 밑에 있던 참새 둥지에 손을 집어넣어 참새와 알을 채취해 구워먹거나 삶아 먹었다. 한밤중에 플래시를 비추면 참새가 눈이 부셔 꼼짝 못하는 약점을 이용한 사냥법이다. 그 뿐만 아니라 참꽃이나 감꽃, 아카시아 꽃도 간식거리였다.시인은 철새 알을 채취해 삶아먹은 기억을 잊지 못한다. 어느 정도 부화해 눈동자와 핏줄이 생성된 알을 삶아먹다가 심장이 철렁했던 사연이다. 어느 가을날, 어미 새가 식솔도 없이 남쪽으로 쓸쓸히 날아가는 모습을 봤다. 새알을 삶아먹은 일이 죄스럽다. 처연한 마음을 달랠 길 없어 고개를 숙여야 했다. 그 잊고 싶은 기억이 이젠 마음 속 깊이 죄책감으로 똬리를 틀고 앉았다.차가운 강바람이 봄의 품에 따스하게 안겨올 즈음, 간이역에 왜가리 떼, 백로 떼가 평화롭게 유유자적하고 있다. 불혹의 나이가 돼도 새를 마주하면 어린 시절의 죄책감이 가시지 않는다. 살아서 팔딱거리던 생명을 삶아버린 죄악이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이브의 원죄와 오버랩 되곤 한다. 마음이 무겁다. 사는 동안 죄의 사함을 받을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이승을 떠나기 전에 원죄를 씻고 싶다. 시는 원죄를 씻는 고해성사이다. 오철환(문인)

사회적 사막-기 소르망의 social desert/ 이근호

어떤 풍경도 없는 모래바람 속에서 눈을 뜬다/ 몇몇은 영영 눈을 뜨지 못한 아침/ 나무와 건물들이 눈만 빼죽이 내밀고/ 터번을 쓰고 안대를 가린 가로등들은/ 혈관이 늘어나도록 링거를 꽂았고/ 모든 길들은 인공호흡기에 매달려 있다// 감각이 사라지자/ 감각의 대상마저 사라진/ 메마른 은유의 숲에서/ 술잔을 깨뜨려 폭죽을 만들던/ 상처받은 오관 위로 차가운 별이 떨어진다// 초고속열차의 속도와/ 승천하는 공룡의 비늘에서/ 대저택의 견고한 높이를 지키는 렌즈에서/ 선크림을 잔뜩 바른 차량의 행렬에서/ 형형색색의 모래는 쏟아져 내린다// 권력의 검은 풍선들이/ 프로포폴로 잠든 정부의 커튼에 묶인 사이/ 누군가는 고층 집무실 금빛 창밖으로 뛰어내리고/ 누군가는 강물 위로 전 생애를 던지지만/ 무심한 강물 대신 젖은 모래가 그들을 받아준다// 세상은 귀한 말씀의 썰물과 밀물로/ 바위가 부서져 모래가 되었고/ 광화문 세종로 커다란 허파 위로/ 삼각파도에 떠밀린 모래가 모여 섬이 되었다// 크고 낯선 조화의 사막 속으로/ 어린 영혼들이 떠오르는 바다/ 이 땅의 4월은 흐드러지게 진달래가 피는데/ 함성 가득한 거리에 서면/ 성벽으로 막아선 진입차량의 완강한 매연 사이로/ 한쪽은 열대사막/ 다른 쪽은 한랭사막// 낙타들이 줄지어 죽어가는 사막의 밤/ 호스피스 엄마는 밤새 죽음의 그림자를 지키고/ 호스피스 누나는 지난 밤 쓰러지는 술병을 지키다/ 마른기침을 하며 돌아가는 새벽// 거대한 자연은 경외하지만/ 거대한 인공은 소외의 그림자만 길게 늘이는/ 피가 돌지 않는 미세혈관들/ 노란 점퍼를 입은 입이 큰 펌프들이/ 쉴 새 없이 생명수를 뿜어 올리지만/ 바닥이 타 오그라진 수로// 사막에 오면 모두 낙타가 되어야 하고/ 낙타의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 신기루의 나무들은/ 낙타의 높이에 소금방울 반짝이는 잎을 매달고/ 낙타가 우뚝 멈춰 선 곳에서/ 수맥은 딸랑거리는 방울뱀 머리를 내민다// 끝없는 모랫길을 떠나려면/ 착한 이웃을 만나 무리를 지어야 한다// 빌딩도 탱크도 은행도/ 사랑 앞에서는 사라지는 사막/ 사막에 오면 모두 사막이 되어/ 사라진 사막의 풍경을 함께 되살려야 한다「대륜문학」 (대륜문학회, 2020)프랑스의 문명비평가 기 소르망은 복지 사각지대를 사회적 사막(Social Desert)이라고 표현했다. 복지 사각지대는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현대의 고도자본주의 시스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거나 불운하게 소외돼 버린 발전과 성장의 어두운 그림자다. 메마른 사막에 오아시스가 존재하듯이 복지 사각지대에도 따뜻한 시선과 어둠을 밝혀줄 등불이 필요하다. 소외된 사람들에게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용기와 기회를 제공하는 일은 동정과 자선이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를 건전하게 유지하는 방부제이자 모두 살아남기 위한 자기혁신이기도 하다.고속성장에 편승해 성공한 자들이 여가를 즐기는 사이, 권력을 쥔 자들이 향락에 젖어 잠든 사이, 누군가는 고통스럽게 생을 마감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피가 돌지 않은 사회는 동맥경화에 걸린 몸과 다르지 않다. 맑은 영혼은 공정하지 못하고 정의롭지 못한 기울어진 사회에 개혁과 혁신의 기운을 불어넣는다. 눈높이에서 막힌 곳을 사랑으로 뚫고 함께 가야 한다. 사랑 앞에선 사막도 사라진다. 옥토로 바뀐 사막을 보고 싶다. 오철환(문인)

치주염/표문순

나의 입속에는/바람이 살고 있네//한 마디 발설치 않은/바람이 깊이 박혀//뜨겁고 시린 감정을 잇몸 속에 키웠는지//의사는 내 입속에서/바람을 캐고 있네//“아, 더 크게 아”/묵혀온 연정들을 찔러보며//1년 반 족히 걸려도 쉽지는 않을 거라네「한국동서문학」 (2020, 여름호)표문순 시인은 경기도 파주 출생으로 2014년 시조시학 신인상 시조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공복의 구성’이 있다.이는 오복 중의 하나다. 태어날 때부터 이와 잇몸이 튼튼한 사람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후천적인 요인이 더 클 수 있다.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의 과다 섭취와 관리 미비로 말미암아 이가 약해지는 경우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거개가 이가 탈이 난다. 염증은 생체 조직이 손상을 입었을 때 체내에서 일어나는 방어적 반응인데 외상이나 화상, 세균 침입 따위로 몸의 한 부위에 충혈, 부종, 발열, 통증을 일으키는 증상이다. 특히 치아는 아주 민감해 잇몸에 염증이 생기면 일상이 흐트러질 수 있다. 정기적인 검진과 치료가 불가피하다. 겉 사람은 날로 후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치주염’에서 시의 화자는 솔직담백하게 나의 입속에는 바람이 살고 있네, 라고 말한다. 한 마디 발설치 않은 바람이 깊이 박혀 뜨겁고 시린 감정을 잇몸 속에 키워온 것도. 그러면서 의사는 내 입속에서 바람을 캐고 있네, 라고 아픔을 은유하고 있다. 치과에 가서 입을 크게 벌리지 않으면 치료가 불가능하기에 아, 더 크게 아하면서 화자는 묵혀온 연정들을 찔러본다고 생각한다. 의사는 1년 반 족히 걸려도 쉽지는 않을 거라네, 라고 일러주면서 사는 일이 결코 간단치 않음을 떠올리게 한다.네, 라는 운율 종결어미를 세 번 사용하면서 은연중 가락을 살리고 있는 점과 진솔한 표현들이 정감이 간다. 입속에서 바람을 캐는 일을 겪는 일은 언제나 두려운 일이다. 깊이 박힌 바람을 뽑아내는 일은 힘들지만 반드시 행해야 한다. ‘치주염’을 읽으면서 우리는 심신 속의 염증을 걷어내는 일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다.그는 단시조 ‘퇴행성 베란다’에서 미묘한 장면을 제시하고 있다. 화자의 시선이 섬세하다. 걸음을 사랑했던 어머니께 어느 날 창문이 찾아온 것이다. 사랑했던, 이라는 시어에서 이미 지금은 사랑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하게 된다. 노환으로 말미암아 힘차게 걸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조금씩 물러나 앉은 무릎과 문의 경계 앞에서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어찌할 것인가? 이미 베란다 바깥과 안이 서로를 비틀고 있지 않는가? 몸이 불편한 어머니로서는 불가항력이다. 어머니에게는 베란다가 퇴행성 베란다일 수밖에 없다. 탄탈로스의 형벌처럼 눈앞에 넘실거리는 물을 한 모금 들이켜 보려고 하면 뒤로 확 물러나버리고 마니 뾰족한 도리가 없는 것이다. 정말 걸음은 우리가 사랑할 만하지 않는가? 제 발로 세상 온 천지를 돌아다닐 수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한 날이다. 제 힘으로 이동이 불가능하게 되면 그 뒤로부터 불편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그로 인해 가족이나 다른 사람에게도 적잖은 폐를 끼치게 된다. 사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닐 수 있다.‘치주염’과 ‘퇴행성 베란다’를 읽으며 건강에 대해 생각해본다. 열심히 운동하고 밝게 사는 젊은이나 한창 일할 중년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는 일이 이따금 일어난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몸과 마음을 혹사하지 않도록 쉬엄쉬엄 쉬어 가면서 즐겁게 일할 일이다. 그리고 자주 웃을 일이다. 이정환(시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