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최옥영

화려한 것을 자랑하며/ 짝을 구하는 공작같이/ 존경과 논리의 이념으로 치장해서 유혹한다// 짝짓기를 마친 공작은/ 순진한 눈망울의 낙타가 되어/ 거친 광야의 땅으로 간다/ 사막에서는 신과 빛조차 악마와 같다// 깃털이 자라 노쇠한 바다가 되지만/ 고난의 여정에서 깨달은 지혜로/ 허물을 벗어던지고 뱀이 된다/ 뱀의 지혜는 깊이와 넓이도 한이 없지만/ 추악함에도 끝이 없다// 자신을 돌보지 않는 사람에게/ 지혜는 애써 외면해야 하는 가시이다/ 지혜롭기 어려운 까닭은/ 순간에 반짝이는 빛이기 때문이다// 벗겨진 허물에 따라/ 개나 원숭이가 되기도 하고/ 사람이 되기도 한다// 사람이 뭐라 해도/ 자연은 사람을 개처럼 끌고 간다/ 야생의 늑대는 자연의 고삐를 자르고/ 자유롭게 산책하길 원하지만/ 달을 보고 짖어대는 소리는 쓸쓸하여라// 푸쉬킨의 시어에 매료된 때가 좋았을까/ 아름다운 문장들은 상투를 틀고/ 진부해져 버렸다/ 삶은 단 한 번도 나를 속인 적 없고/ 항상 내가 스스로 속여 왔다// 그렇구나/ 내 고꾸라진 지팡이에/ 늦더라도 꽃이 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구나/ 언제나 욕심 부리는 것이/ 인생이로구나「추억의 풀무질」 (그루, 2020)인생을 제대로 정리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인생의 모습은 사람마다 다르고 때에 따라 변한다. 인생을 폭넓게 조망하고 생애를 두루 살펴보는 지혜로운 성찰이 필요한 이유다. 충분한 경험과 탁월한 통찰력이 그 전제다. 자칫하면 ‘장님 코끼리 만지기’가 되기 십상이다. 경험은 오랜 세월 성실히 살아가는 가운데 차곡차곡 쌓여지고 통찰력은 타고난 능력과 끊임없는 절차탁마 끝에 비로소 얻어진다. 연륜이 실린 현명한 인생론은 그 결실이다. 보편적 공감을 불러일으키게 되면 인구에 회자될 뿐 아니라 생명 또한 길다.다른 성인도 마찬가지겠지만 공자의 삶은 그 자체 인생론이다. 학문에 뜻을 둔 15세는 지학(志學), 인생 목표를 세운 30세는 이립(而立),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40세는 불혹(不惑), 하늘의 뜻을 안 50세는 지천명(知天命), 남의 말을 잘 듣고 받아들인 60세는 이순(耳順),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해도 법도를 넘어서거나 어긋나지 않은 70세는 종심(從心). 나이에 따른 공자의 변화 표징은 인생의 이정표로 보통명사화 됐다. 그런 경지에 도달하긴 어렵지만 육십갑자를 한 바퀴 돌고 나면 인생에 대한 감회 정도는 누구에게나 나름대로 있을 터다.짝을 구하기 전 화려한 날개를 펼치는 공작, 짝짓기를 마치고 짐을 가득 실은 채 거친 광야를 가는 순진한 낙타, 허물을 벗어던진 뱀 등은 나이에 따라 변화하는 인간의 모습이다. 다양한 동물의 행태에서 찾아낸 은유는 절묘하다. 허물을 벗은 후의 모습이 각기 달라진다는 생각은 현실적이고 교훈적이다. 사람이 될 수도 있지만 개나 원숭이, 늑대도 될 수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는 아프게 가슴에 와 닿는다. 허물을 벗은 후에 천명을 깨친 사람으로 남고 싶다. 그리고 하고 싶은 걸 다 하면서 살아도 도리를 넘어서거나 어긋나지 않는 삶을 바란다면 지나친 욕심일까.푸시킨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를 되뇐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참고 견디면 좋은 날이 오리니. 정작 삶은 속인 적 없는데 스스로를 속인 건 자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목에 꽃 피우고 싶은 마음은 과욕이 아니라고 믿고 싶다.오철환 (문인)

봄의 말/노중석

한 아름 꽃을 안고 등걸마다 다가서서/마을 구석구석 향기를 끼얹는데/아무도 낯익은 얼굴 알아보지 못한다「시조의 봄여름가을겨울 이야기」(이미지북, 2018)노중석 시인은 경남 창녕 출생으로 198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비사벌 시초’, ‘하늘다람쥐’, ‘꿈틀대는 적막’ 등이 있다. 그의 작품 세계를 두고 이종문 시인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노중석 시인의 시조가 지닌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잘 다듬어진 정갈하고도 세련된 언어다. 작품 전체가 미리 계획된 설계도에 따라 제대로 지어진 건축물처럼 탄탄한 느낌을 줄 뿐만 아니라, 단시조 형태의 극도로 짧은 서정시에다 중후한 주제를 역동적으로 담아내기도 한다.적절한 해석이다. 한 문장으로 완성된 ‘봄의 말’이 그것을 잘 증명해 보인다. 한 아름 꽃을 안고 등걸마다 다가서서 마을 구석구석 향기를 끼얹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도 낯익은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다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 봄은 분명코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들려주고 있다. 그 증거로 한 아름 꽃을 안고 마을 구석구석을 찾아가서 향기를 끼얹는데도 그 낯익은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니 봄으로서는 기가 막힐 일이다. 무엇이 바빠서인지 도통 모를 일이라고 봄은 혼자서 생각하고 있을 법도 하다. 이것은 또한 넓게 볼 때 자연의 말이라고도 봐도 될 것이다. 자연과 더불어 살지 않으면 사람다운 삶이 아니라는 뜻이 내포돼 있는 셈이다.그는 또 ‘직지천의 봄’에서 서경과 서정의 행복한 교직을 보여준다. 솔방울 줍던 아이와 꽃씨를 따던 아이가 아스라이 멀어져간 텅 빈 동구 밖에 직지천 지즐대는 물소리가 옛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을 본다. 그리고 새날이 너무 밝아 눈이 부셔 눈 못 뜨는 꽃사태 진 산과 들은 날아오를 것만 같은데 두둥실 내 마음이 먼저 하늘 높이 떠오르는 것을 느낀다. 오솔길 하나씩 끌고 산모롱이 돌고 돌아 직지사 암자들이 둥지 튼 황악산 자락을 걸으며 오늘도 여전히 솔바람 소리가 떠날 줄을 모른다, 라고 말하면서 봄의 정경을 통해 마음속의 갖가지 심상을 짚어나가고 있다.단시조 한 편을 더 보겠다. ‘폭포’다.사는 일/벼랑이란들/어찌 다 피해 가랴//깊은 소/곤두박혀/우레 소릴 낼지라도//빛 부신/무지개 한 채/덩그렇게 놓는다진실로 사는 일은 벼랑의 연속이다. 피해 갈 수가 없다. 그래서 때로 깊은 소에 곤두박혀서 우레 소리를 내기도 한다. 하지만 폭포 즉 열정적인 어떤 한 사람의 삶은 빛 부신 무지개 한 채로 놓인다. 그러니까 신산을 넘어 광영의 순간을 맞기도 한다는 사실을 ‘폭포’는 명징하게 형상화해 보인다.바야흐로 활짝 피어난 봄꽃들이 무수히 지면서 봄은 더욱 깊어졌다. 더없이 좋은 봄날이다. 봄의 말에 더욱 귀를 기울일 일이다. 그것은 곧 우리 삶을 윤택케 하는 길이 되기 때문이다. 봄날에 봄을 떠나 살 수 없으니 봄을 온몸으로 보듬어 안고 마음껏 즐길 일이다. 어떤 이는 봄꽃을 많이 바라보라고 했더니 질릴 지경이다, 라는 말을 들려줬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여유를 가지고 봄날에 피는 꽃과 마음을 나누면서 자신 앞에 놓인 미쁜 길을 부지런히 걸어가야 할 것이다.이정환(시조 시인)

네버랜드는 있다/ 김경원

~ 네버랜드 가는 길 ~…브로커는 전화로 고객과 만날 곳을 알려준다. 지정한 곳에서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돈을 받는다. 잠수교가 보인다. 교각 밑에 미스터리한 남자가 산다는 소문이 있다. 화가인지, 고등실업자인지 알 수 없다./ 나는 어릴 때부터 네버랜드를 꿈꿨다. 그런 인연 때문인지 주간엔 백화점과 복지관에서 동화구연을 한다. 백화점 문화센터로 갔다. 이번 주엔 ‘성냥팔이 소녀’를 구연한다. 성냥이 사라진 시대에 맞지 않긴 하다./ 나는 성냥을 팔 듯 몸을 판다. 대학 시절 선배에게서 브로커 전화번호를 받았다. 낮에 동화를 구연한 날엔 매춘이 비루하게 느껴진다. 편의점에 들어갔다가 한 남자와 부딪힌다. 핸드백이 쏟아진다. 콘돔이 선명하다. ‘너 창녀지’, ‘나랑 자고 싶지’라고 남자가 말한다. 기분이 기묘하다./ 구연동화를 마치고 와 잠에 빠져든다. 꿈자리가 어지럽다. 나는 가계부를 쓰듯이 남자탐색기를 쓴다. 제일 기분 나쁜 남자는 숫총각이다. 그의 기억 속에 남는 것이 싫다./ 복지관 구연동화는 정이 더 간다. 복지관 아이들 집에는 제대로 된 명작동화전집이 없을 것이다. 읽을 책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어린 시절이 그립다. ‘걸리버 여행기’와 같은 동화가 꿈과 희망을 주었다./ 잡화점에 들어가 손가락 인형을 산다. 된장녀지만 명품을 애용한다. 타로점을 보러 들어간다. 재물 운은 없고 애정 운은 좋단다. 편의점에서 부딪쳤던 남자가 골목으로 사라지는 걸 보았다./ 구연동화 중에 콜이 떴다. 방안에 다른 여자가 와 있다. 1대 2. 돈을 두 배로 주겠단다. 꽃가루를 나르는 나비와 잎을 갉아먹는 애벌레가 생각난다. 뱀파이어에게 피를 빨리고 숨을 몰아쉰다. 모텔 문을 나서자 문득 그 남자의 얼굴이 떠오른다./ 휴가철이라 거리가 한적하다. 전봇대 밑에 한 남자가 쓰러져 있다. 그 남자다. 그를 집으로 데리고 와서 응급처치를 했다. 그는 결혼하자는 말도 했다. 왠지 싫지 않다. 콜이 왔으나 아프다며 거절했다. 문화센터 일을 마치고 돌아오니 그 남자는 가고 없다./ 침대에 그의 체취가 느껴진다. 연락처를 묻지 않은 것이 후회된다. 그 남자가 잘 가던 술집으로 갔다. 구석자리에 혼자 있었다. 피를 팔았다며 술을 사겠다고 한다. 콜이 떴지만 폰을 껐다. 술을 양껏 마시고 모텔로 갔다. 그 남자와 체온을 교환하고 간만에 따뜻한 잠을 잤다./ 콜이 와서 일을 나갔다. 늘 있던 모텔 앞 사과 파는 여자가 보이지 않는다. 그를 찾아 돌아다녔다. 교각 아래를 살펴본다. 강변을 걷다가 그를 만났다. 그를 미행한 끝에 거처를 알아냈다. 그와 함께 네버랜드로 갈 것이다.…누구에게나 꿈꾸는 세계, 네버랜드가 마음속에 존재한다. 험한 세상에서 먹고사는 일에 얽매이다보면 정신 줄을 놓고 허급지급 살기 일쑤다. 현실이 아무리 엄혹하고 비참하다고 하더라도 꿈과 희망을 잃지 않는다면 네버랜드의 문은 항상 열려 있다. 사람은 혼자서 살 수 없는 불완전한 동물이다. 네버랜드에 함께 갈 꿈을 공유하는 짝꿍을 찾을 필요가 있다. 돈과 권세와 명예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마음이 통하는 사람이 짝꿍이고 네버랜드 입장권이다. 돈 없는 매혈 남자와 비천한 매춘 여자라 하더라도 서로의 마음만 돈독히 먹으면 환상의 파트너가 될 수 있다. 진심이 통하는 연인이 손을 굳게 맞잡으면 꿈은 이뤄진다. 네버랜드는 그들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오철환(문인)

나는 새똥이다/배우식

숲속 새가 새똥으로/내 머리에 낙인찍는다.//나는 문득 새똥이 되고,/나무 밑에 가만 눕는다.//솔뿌리,/내 몸 속으로/쭉쭉 뻗어 나간다.//저 나무 가지 끝에/정성 가득 올려놓고,//무성하게 자라나는/큰 소나무 바라본다.//그 옆의/굴참나무도,/작은 나도 더덩실.「오늘의시조」 (2021, 제15호)배우식 시인은 충남 천안 출생으로 200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인삼반가사유상’ 등이 있다.‘나는 새똥이다’는 제목부터 강렬한 인상을 준다. 거침없는 비유다. 길을 가다가 보면 더러 발 앞이나 드물게는 머리 위에 새똥이 떨어질 때가 있다. 그럴 때 마냥 기분이 좋지 않다고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이 때로 행운을 가져온다는 속설도 있으니까. 그런데 ‘나는 새똥이다’에서 시의 화자는 숲속 새가 새똥으로 자신의 머리에 낙인을 찍는다, 라고 말하고 있다. 낙인은 기본 의미로는 불에 달궈 찍는 쇠붙이로 만든 도장이다. 즉 불도장 혹은 화인이다. 다른 뜻으로는 씻기 어려운 부끄럽고 욕된 평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그 순간 나는 문득 새똥이 된다. 그래서 나무 밑에 가만 눕는다. 자신이 새똥이 되자 그런 후발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해 솔뿌리가 내 몸 속으로 쭉쭉 뻗어 나간다, 라는 진술이 가능했을 것이다. 생명의 기운이 도래한 것이다. 화자는 저 나무 가지 끝에 정성 가득 올려놓고, 무성하게 자라나는 큰 소나무를 바라본다. 결구에서 그 옆의 굴참나무도 작은 나도 더덩실, 이라고 끝맺고 있는 것을 보니 길을 가다가 낙인 같은 새똥을 맞은 화자는 바로 그 순간 자신이 새똥인 것을 자각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제목도 ‘나는 새똥이다’이지 않는가? 이 시조를 끝까지 읽고 나면 낙인은 도리어 긍정적인 작용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새똥이 된 화자가 더덩실 춤을 추는 장면을 연출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 시조는 쉬이 예상치 못할 방향으로 상상력이 작동돼 새로운 의미망을 축조한다.또 한 편을 더 보겠다. ‘후회’다. 내 입속엔 수 천의 말들이 뛰노는 목장이 있다고 한다. 대단한 상상이다. 놀랍다. 당신을 좋아할 때도 겉으로는 짐짓 아닌 척이라고 해놓고 발이 큰 말들을 풀어 맑게 핀 그녀를 마구 밟는다고 한다. 쉽게 읽히지는 않지만 이러한 이미지를 직조하고 있는 의도는 충분히 짐작이 간다. 둘째 수에서는 당신이 떠나간 자리에 옹달샘이 생겨난다고 진술한다. 이 또한 예견치 못할 표현이다. 옹달샘은 그 이름만으로도 물맛이 달 것이라고 여겨지지만 화자에게는 그렇지 못하다. 그 물을 떠 마실 때마다 회한이 나를 찢는다, 라는 진술에서 이미 떠나간 당신이 자신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격정적으로 토로한다. 그래서 나의 밤은 슬픔으로 무성하고 화살 같은 별이 날아온다. 날아와서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힌다. ‘후회’를 두고 이와 같은 시를 쓸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골똘히 해본다.요즘 모두가 더욱 분주복잡하게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여러 날을 곰곰이 되뇌다가 만들어낸 말이 있다. 일하면서 멈춘다.멈추면서 일한다. 언뜻 보면 비문인 듯해도 그렇지 않다. 바삐 일하다가도 잠시 멈추고, 한참 쉬다가도 다시 일하자는 뜻이 담겨 있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온 세상 사람들에게 크게 외치고 싶다. 여러분, 아무리 바쁘더라도 이따금 시를 찾아 읽으세요!특히 배우식 시인의 시조를!이정환(시조 시인)

처방전/ 김숙이

날마다 바둑 두며/ 늦게 들어오는 우리 집 그이/ 그만둘 수 없냐고 물었을 때/ 생각해 보자고 하였고/ 달포 지나서 나온 답은 “그것은 인생이라”는 것이었다// 이웃 할머니에게 하소연하였더니/ 돌담장 옆에/ “고븐 꽃을 심어라”는 말씀// 황매화 작약 덩굴장미/ 채송화 분꽃 가꾸노라니/ 철 따라 피는 환한 빛깔이/ 미소를 갖게 한다// 흙 묻은 손으로 거름 만지던 나날/ 모두가 편안해졌다/ ‘세상의 모든 것은 다 한때가 있나니’,/ 오늘의 고달픔이 내일의 밑거름이 된다는 걸 알았다// 할머니는 명의다「일일문학」 (일일문학회, 2020)바둑은 오래된 두뇌게임이다. 요임금이 망나니 아들의 수련을 위해 만들었다는 설이 있다. 사마천의 사기의 기록으로 미뤄봐도 바둑의 역사는 삼천 년은 족히 된다고 봐야 한다. 유구한 세월 동안 사랑받아온 만큼 바둑에 한번 맛 들이면 헤어나기 힘들다. 백제 개로왕은 고구려 첩자 도림과 바둑에 빠져 나라를 위기에 몰아넣었다고 한다. 바둑 두는 걸 구경하다가 도끼자루 썩는 줄도 몰랐다는 설화도 있다. 바둑의 중독성을 시사한다. 바둑이 컴퓨터게임에 밀려 그 맥마저 끊어질 위기에 처해 있는 현실은 세월의 무상함을 잘 보여준다.남편은 바둑에 빠져 집안일은 뒷전이다. 허구한 날 늦다. 바둑 대강 두고 일찍 귀가해서 남들처럼 알콩달콩 재미나게 살아보자고 사정한다. 그 정도에서 해결된다면 바둑 둔다고 할 수도 없다. 바둑 속에 인생이 있다며 눈을 치뜬다. 바둑의 오묘한 뜻을 모른다고 무식을 나무라거나 힐난하기까지 한다. 다른 곳에 미친 것보다 그래도 나은 편이라 자위한다. 하긴 주색잡기나 노름에 빠져 가산을 탕진하는 것 보다야 조금 낫긴 하다. 바둑에게 빼앗긴 남편을 찾아오긴 힘들다.인생의 쓴맛 단맛을 다 본 이웃 할머니가 꽃밭을 한번 가꿔보라고 권한다. 꽃씨를 심고 꽃나무를 모종한다. 연초록 떡잎이 꼬물꼬물 두 눈을 뜨고 꽃나무 줄기에서 새잎이 살포시 웃는다. 정성껏 물을 주고 마음을 준다.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란다. 채송화와 분꽃이 피고, 매화와 작약 그리고 장미꽃이 꽃망울을 터트린다. 철마다 예쁜 꽃들이 만발하고 저마다 독특한 향기를 앞 다퉈 뿜어낸다. 흙과 거름이 손에 묻지만 얼굴엔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바둑에 빠진 남편을 잊고 꽃을 가꾸는 마음은 넉넉하고 편안하다.바둑에 빠져 정신없던 남편도 어느 순간 본 정신이 돌아온다. 화단에서 피어난 아름다운 꽃들이 남편의 눈을 유혹한 듯하다. 마침내 남편의 관심과 애정이 집으로 향한다. 남편은 이젠 땡돌이다. 가정에 평화가 깃든다. 세상의 모든 일에 다 때가 있다. 믿음을 갖고 가꾸다보면 어느덧 때가 찾아오고 마침내 그 뜻이 이뤄지나니. 고달픈 현실이 행복한 내일의 밑거름이 되는 법이다. 심각한 병증의 처방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존재한다. 꽃을 심어보라는 말씀은 적확한 처방이다. ‘할머니는 명의다.’행복은 남의 손에 달려있지 않고 내 손 안에 있다. 남편의 눈과 귀와 발길을 강요하고 집착과 애정을 빼앗아 올 순 없다. 스스로 아름다운 매력을 가꾸고 유인을 마련하는 노력 속에서 사랑이 꽃 피고 행복이 시현된다. 불행도 행복도 다 내 탓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화단을 조성하고 꽃을 가꾸는 것은 화사한 행복을 꽃피우는 명의의 처방전이다.오철환(문인)

달빛/ 김영화

달빛은 속세를 향해 고개를 쳐들고/ 보랏빛 꽃잎을 흔들며 미소 짓네/ 아직도 꺼지지 않는 창가의 불빛은/ 육신의 고달픈 색깔로 다가온다/ 영혼마저 숨죽인 고요한 TV는/ 새들의 둥지 되어 천상 이루고/ 물총새 우는 소리 비정한 삶의 몸부림/ 지어서 날갯짓 깊어만 간다/ 찬이슬 맞으며 비틀거리는 취객/ 세파의 고달픔을 담금질하고/ 아직도 먼동은 트지 않는데/ 낙엽 쓰는 소리에 밤을 깨운다「꽃잎에 띄운 편지」 (한강, 2011)태양은 뜨겁고 강렬하며 그 빛 또한 칼로 찌를 듯이 밝다. 그에 비해 달은 차갑고 은은하며 그 빛 또한 처녀의 눈망울 마냥 수줍고 몽롱하다. 태양은 스스로 빛을 발하고 달은 그 빛을 받아 단순히 반사할 뿐이라는 과학적 사실에 기인하는 당연한 현상이다. 하지만 인간이 느끼는 감정은 미묘해 칼로 자르듯이 과학으로 설명하기 힘들다. 태양은 대명천지에 모조리 까발리는 지라 속마음을 털어놓거나 낭만을 즐기기엔 부담스럽다. 그렇지만 달은 차분하고 조용한 지라 부끄러운 고백이라도 들어줄 듯 하고 연인을 은밀히 만나도 눈감아 줄 듯 보인다.외로울 때나 괴로울 때나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줄곧 생각나는 사람은 폭포 같고 팔뚝 굵은 아버지가 아니라 깊은 우물 같고 목이 가냘픈 어머니다. 고달픈 삶의 애환을 속속들이 잘 아는 쪽은 눈부시게 밝은 햇빛이 아니라 게슴츠레하고 푸르스름한 달빛이다. 눈 작고 귀 얇은 사람일지라도 달빛 아래에선 평소 숨기거나 감춰뒀던 속마음마저 드러내곤 한다. 달빛이 요요한 날이면 탐나던 보검을 훔치기 위해 담을 넘고 연모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해 창밖에서 세레나데를 부른다. 종족과 신분을 초월한 금지된 사랑이라도 은밀한 달빛을 받으면 달콤한 황홀경에 빠져든다. 달빛은 넌지시 웃음 지며 침묵할 지니.악성 베토벤도 평범한 속인과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애절한 사랑을 달빛에 담아 황홀한 선율에 실어 놓았다. ‘월광 소나타’가 그것이다. 신분의 장벽에 가로막힌 사랑을 달빛의 힘으로 무너트려보려고 절절하게 건반을 두드렸다. 그 노래가 그 연인의 마음에까지 닿지 못했지만 수많은 연인들의 설레는 마음을 대변해줬다. 월광곡은 지금도 사랑을 담은 달의 정령으로서 신비로운 마법을 펼치고 있다. 장가간 첫날밤에 달 보고 울었던 갑돌이의 사연도 달빛의 신비로움을 보여주는 또 다른 월광곡이라 해도 무방할 듯하다.달빛이 지상에 내려와 세상을 축복한다. 꽃잎에 미소 짓는 달빛이 호젓하다. 밤늦도록 잠들지 못하는 고달픈 영혼을 위해 은은한 노래를 부른다. 오순도순 화목하게 모여앉아 텔레비전을 보는 가족은 그나마 달빛이 꿈꾸던 천상의 둥지이다. 물고기를 잡아 처자식을 먹여 살려야 하는 물총새는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물총새 우는 소리는 고된 삶을 향한 함성이고 그 날개 짓은 비정한 삶의 몸부림에 다름 아니다.달빛은 세상을 부드럽게 위무한다. 찬 이슬 맞으며 비틀거리는 취객에게 다가가서 편히 쉴 곳으로 조용히 인도한다. 세상이 험하고 고달프지만 부딪히고 견디다 보면 또 이력이 나기 마련이다. 태양이 떠오르면 집을 박차고 나가 세파에 맞서 투쟁할 터, 달빛은 다만 힐링의 기운을 북돋워 줄 뿐이다. 아직 먼동도 트지 않았지만 낙엽 쓰는 소리가 잠을 깨운다. 달빛은 내일을 기약하며 눈길을 거둔다.오철환(문인)

열망/배경희

어두운 계단에서 봄을 열망한 우리는/좋아하는 소설을 바꾸어 간직한 채/꽃집을 바라보면서 다른 길로 향했다//길 가다 유리에 비친 여자를 바라보며/혼자 남은 시간들이 뛰어든 검은 물속/저녁은 두려운 삶을 남기고 서 있다//과거의 문장을 쓰다 남은 오늘 밤들/허구도 아름다워 재잘대던 그녀 모습/바람에 당신의 소문이 어렵게 들려오고//소설에 대한 열정도 마른 꽃 부서지듯/닭 공장에 늙어버린 당신의 꽃의 시간/문장에 눈물이 고여 물고기가 헤엄친다「공정한시인의사회」(2020, 07) 배경희 시인은 충북 청원 출생으로 201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흰색의 배후’가 있다.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화법으로 사물과 세상 그리고 자아를 투영하고 이미지화하는 시 세계를 추구한다.‘열망’을 보자. 전체적으로 소설과 관련지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어두운 계단에서 봄을 열망한 우리는 좋아하는 소설을 바꾸어 간직한 채 꽃집을 바라보면서 다른 길로 향했다, 라고 시작한다. 이 장면은 눈에 잘 그려진다. 길 가다 유리에 비친 여자를 바라보며 혼자 남은 시간들이 뛰어든 검은 물속을 살핀다. 그곳에 저녁은 두려운 삶을 남기고 서 있는 것을 본다. 그리고 뒤이어서 과거의 문장을 쓰다 남은 오늘 밤들이라는 구절과 함께 허구도 아름다워 재잘대던 그녀 모습을 기억한다. 그 순간 바람에 당신의 소문이 어렵게 들려오고 있다. 넷째 수는 소설에 대한 열정도 마른 꽃 부서지듯 닭 공장에 늙어버린 당신의 꽃의 시간, 이라는 미묘한 이미지를 직조하다가 문장에 눈물이 고여 물고기가 헤엄친다, 라고 끝맺는다. 얼마나 많은 눈물이 문장에 고여야지 물고기가 그 속에 잠겨 헤엄을 칠까? 시인의 남다른 상상력에서 이러한 개성적인 작품이 생산됐을 것이다.그는 또 ‘가볍다는 것은’에서 참나무에 불붙이고 불길을 쳐다보다가 타버린 흰 재들이 사방으로 날아가는 것을 예의주시하면서 나무도 새의 깃털처럼 가볍고 또 가벼운 것을 깨닫는다. 그러면서 오래 전에 가벼움은 깃털이라고 단정한 적이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이어서 무겁다 가볍다는 것은 마음의 차이일까, 라고 혼잣말을 하면서 살아온 생의 시간이 같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진정 무엇이 무거운가, 무엇이 가벼운가. 가볍고 무거운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생각하면서 결국은 마음의 문제가 아닐까 여기고 있다. 실로 한없이 가벼운 것도 그지없이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고, 몹시 무거운 것도 한없이 가벼운 것으로 생각될 때도 있으니 모든 것은 정말 마음의 문제일 듯하다.그런 점에서 ‘검은색 소파’를 읽는 일이 의미 있을 듯해서 아래에 옮겨본다.덜 깬 듯 누워있는 검은색 소파 위에//젖은 몸을 눕힌다 엉덩이의 몽상이듯/헛잠에 여러 생각이 중심을 잃고 헤맨다//아직도 서성이는 또 다른 바깥에서/부정의 시간들이 어둠에 휘어진 채//공중에 뿌리 내리고 헛뿌리로 살고 있다//이력서, 컵라면, 깡소주로 이어온 삶들//썩지 않은 꿈에서 썩은 꿈을 꾸려고//소파가 구덩이를 판다 검을수록 차분했다소파가 구덩이를 판다 검을수록 차분했다, 라는 결구가 인상적이다. 이 역시 무거운 것과 가벼운 것에 대한 궁구가 아닐까? ‘열망’도 그러할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열정을 가질 때 폭발적인 동력을 얻게 된다. 그 힘은 자신뿐만 아니라 사회를 견인하는 에너지로 바뀔 수 있다. ‘열망’을 여러 번 되풀이해서 읽는 중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이정환(시조시인)

연륜/ 김금철

~ 첫 단추를 잘 꿰어야 ~…만난 지 30년 만에 아내와 이혼했다. 결혼이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는 인생의 전환점이지만 이혼 또한 일상적인 생활을 획기적으로 바꿔놓는 전기다. 이혼 선고를 받고 법원 문을 나서는 순간 법적 효력이 현실이 되고 부부는 남남이 된다. 떠나는 아내를 보고 있자니 한 바탕 꿈을 꾼 듯하다./ 자취를 하던 대학시절 역시 자취를 하던 아내를 만나 동거를 했다. 동거 여섯 달 만에 애가 들어서서 아내와 결혼을 했다. 첫딸을 낳았다. 군대를 갖다오지 않아 고민하던 차에 자식 둘을 가지면 군 면제가 된다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을 믿고 또 딸을 낳았다. 그러나 그 말은 사실과 달랐다. 대학원에 등록해 군 입대를 연기해두고 서울에서 사업을 하는 형의 일을 도왔다. 주말부부가 된 셈이다. 집에 들렀더니 4살 난 큰딸이 서울 가지 말라고 매달렸다. 아빠가 서울로 가고나면 엄마가 한밤중에 시장을 자주 간다는 것. 조금 미심쩍긴 했지만 어린아이의 응석 정도로 받아들였다./ 형님 사업을 본격적으로 돕고자 서울로 이사를 했다. 딸은 엄마가 밤에 몰래 나간다는 말을 더 이상 하지 않았다. 군 입대는 피할 수 없는 숙제였다. 차일피일 연기한 끝에 스물여덟에야 군에 입대했다. 두 번째 휴가를 나왔을 때였다. 8살 난 큰딸이 엄마가 한밤중에 집을 자주 비운다고 고변했다. 한 집에 세 들어 사는 70대 중반의 할머니에게 사실 확인을 해봤다. 그런 말하면 천벌 받는다고 펄쩍 뛰었다. 휴가 끝나기 하루 전, 마당에서 40대 초반의 주인아저씨를 만났다. 긴히 할 얘기가 있다고 하여 응접실로 들어갔다. 아내가 밤마다 밖에 나가서 사내를 물고 들어온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충격적인 말이었다. 직접 본 것도 아니고 두 사람의 말이 엇갈리니 좋은 쪽을 믿고 싶었다. 착잡한 마음으로 귀대했다./ 그 후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세월이 약이지만 치유할 수 없는 후유증도 존재한다. 아내를 만난 지 30년 만에 마침내 이혼을 결행했다. 지금쯤 한 집에 살던 70대 중반의 할머니는 돌아가셨을 것이고, 40대 초반의 주인아저씨는 60대가 되었을 것이다. 그 주인아저씨가 지금 나이였다면 아내의 불륜을 바로 일러바쳤을까. 아마도 70대 중반의 할머니처럼 말했을 지도 모른다.…세상에 확실한 건 거의 없다. 특히나 남녀관계는 영원한 미스터리다. 남녀는 끝없는 밀당을 거쳐 헤어지기도 하고 만남을 이어가기도 한다. 밀당을 통한 이성 탐색은 우수한 유전자를 2세에게 물려주려는 본능이고 약육강식의 투쟁에서 살아남을 강한 배우자를 고르는 작업이다.결혼해 부부가 됐다고 이성 탐색이 끝나는 건 아니다. 결혼은 치열한 배우자 쟁탈전의 법적 타협일 뿐이고 유전자 보존에 대한 본능적 욕망을 마무리하는 근원적 처방은 아니다. 수컷은 가능한 한 씨를 많이 뿌려 그중에 최선의 후세를 얻는다는 전략이고 암컷은 가능한 한 사전에 우성을 가려내 불필요한 출산을 막는다는 전략이다. 이는 신체구조와 회임기간 및 산고에 기인하는 불가피한 선택이다.사랑은 인간에게 준 신의 선물이다. 잠재적 생산가능기간(4~5년)에만 지속되는 시한부 감정이다. 일부일처제는 신이 예정한 제도가 아닐 수 있다. 신은 사랑의 유효기간 동안만 일부일처를 기획한지 모른다. 세상이 워낙 급속히 바뀌다보니 기존 삶이 뿌리 채 흔들리는 것 같아 불안하다. 결혼제도의 균열도 그중 하나다. 그냥 다 비우고 살까보다.오철환(문인)

가버나움/공화순

내가 태어난 죄를 누구에게 물을까/자인은 태어났고 집안은 가난했다//세상이 너무 좆같아요/열두 살의 법정 고백//제 살을 파먹고 자란 새빨간 본능에/체면은 도망가고 식욕이 자라났다//부모를 고소합니다/왜냐구? 날 낳았으니까//생명은 커갈수록 맨발에 힘을 주고/말마다 벌린 입들이 길거리를 헤맨다//자꾸만 화가 납니다/자꾸 배가 고파서「시마」(2019, 창간호)공화순 시인은 경기도 화성 출생으로 2016년 시조문학으로 등단했다. 수필집 ‘지금도, 나는 흔들리고 있다’와 시조집 ‘모퉁이에서 놓친 분홍’이 있다. 그는 일상 속에서 삶의 이치를 깨닫고 존재론적 은유를 펼친다. 들뜨지 않는 잔잔한 목소리로 주제에 집중한다.누구든지 한두 번쯤 내가 왜 태어났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봤을 것이다. 영화 ‘가버나움’의 주인공 소년 자인도 마찬가지다. 가버나움은 이스라엘의 갈릴리 바닷가에 있는 마을 이름이지만, 무질서하게 쌓인 물건을 뜻한다고 한다. 이 영화는 레바논에 만연한 빈곤으로 인해 갈 곳이 없는 아이들에 대한 현실을 이야기한다.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부모님을 고소하고 싶어요, 라는 말은 출생의 기록조차 없이 살아온 열두 살짜리 자인의 말이다.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시조 ‘가버나움’은 내가 태어난 죄를 누구에게 물을까, 하고 묻는다. 자인은 태어났고 집안은 가난했기에 세상이 너무 좆같아요, 라면서 열두 살 먹은 자인은 법정에서 고백한다. 그는 제 살을 파먹고 자란 새빨간 본능으로 말미암아 체면은 도망가고 식욕이 자라났다. 그래서 부모를 고소합니다, 라고 소리친다. 까닭은 단 하나다. 자신을 낳았기 때문이다. 셋째 수에서 화자는 생명은 커갈수록 맨발에 힘을 주고 말마다 벌린 입들이 길거리를 헤맨다, 라고 진술한 후 자꾸만 화가 납니다, 자꾸 배가 고파서라고 끝맺고 있다. 영화의 주인공 자인은 여동생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게 되고 법정에 서게 된다.자식을 낳는다는 것은 먼저 인간이 된 후에야 할 수 있는 일이어야 함을 이 영화는 잘 말하고 있다. 육체적 쾌락이나 즐기다가 아이를 책임지지 않는 것은 인간이 해야 할 일이 아닌 것이다. 이 세상 모든 자녀들은 자존감을 가지고 성장할 권한이 있다. 인간의 존엄성은 그 어떤 경우에도 함부로 훼손당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스스로 선택해 태어날 수는 없지만 출생하는 순간부터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된 것이다. 시조 ‘가버나움’은 영화를 통해 떠올린 생각들을 세 수로 노래하면서 사람답게 살 권리를 오래도록 되새기게 한다.그는 또 ‘일상의 실금’에서 삶의 불안을 표출한다. 해가 지날수록 몸에도 속도가 붙어 불안한 마음으로 달아난 시간을 쫓다가 한순간 놓친 자리에 귀 한 쪽이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 또한 날마다 똑같은 표정으로 찾아오는 일상들을 떠올리면서 한눈을 파는 사이에 마음이 삐끗하기도 한다. 거스름 떼어내려다 실금이 가는 오후의 일이다. 이러한 섬세한 감각은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오늘이라는 일상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생각을 담는 데까지 벋는다. 우리가 잘못하는 일 중의 하나가 어제와 다름없이 오늘을 살고 있는 것이다. 어제와는 조금이라도 다른 오늘을 살기 위해 힘쓰는 중에 이 시편을 썼을 것이다.‘일상의 실금과 더불어 시조 ‘가버나움’을 다시 읽으며 영화 ‘가버나움’의 줄거리를 생각한다. 지구촌 어느 곳에서든지 모든 어린이들이 부모와 사회로부터 사랑을 받으며 맑고 밝게 자랐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이정환(시조 시인)

하얀 목련화/ 김평

새하얀 소복단장하고/ 어머님 젖가슴 같은/ 몽실몽실/ 하얀 목련 꽃봉오리/ 코로나19로/ 봄을 잊은 그대에게/ 봄노래 부른다// 긴 목에 매달린/ 고귀한 얼굴/ 옹그리고 있다가/ 봄 햇살 간질이매/ 방긋방긋 웃으며/ 임 오실 날만 기다린다// 한 번 떠난 그 임은/ 되돌아 올 줄도 모르는데/ 임 그리던 하얀 목련은/ 지난밤 봄비에 젖다// 바람 잡고 낙화되어 맨땅에 나뒹굴다가/ 임 소식 물어보며/ 흐드러진 꽃핀 시절/ 못 잊어 그리워한다// 하얀 목련화야!/ 꽃이 진다고 바람을 탓할쏘냐?/ 서러워 마라// 계절의 섭리 따라 봄이 가고 여름이 오면/ 무성한 녹음이 우거져/ 새가 울 것이며/ 또 여름이 가고/ 겨울이 오면/ 열매 맺는 날도 예비되어 있도다「이후문학」 (이후문학회, 2020)목련은 이른 봄에 피는 아름다운 꽃이다. 매서운 추위를 견뎌내고 피는 굳센 생명력이 기특하기도 하려니와 화려한 하얀 꽃잎은 눈부시다 못해 숨이 막힌다. 그렇다고 방자하거나 교만하지 않다. 자줏빛 자목련도 화사하긴 하지만 하얀 백목련에 비할 바 아니다. 순결하고 고고한 기품은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도 울고 갈 정도다. 잎이 나기 전에 화려하게 꽃이 만개하는 까닭에 그 시각적인 대비효과로 인해 새하얀 꽃잎이 두드러지게 눈에 띈다. 맑고 향긋한 향기가 은은히 번지면 봄의 천사로서 더할 나위 없다.호사다마라고 목련에게도 마가 끼어들게 마련이다. 목련의 천적은 봄바람과 봄비다. 봄비에 봄바람이 곁들이는 날엔 목련은 초상을 치른다. 꽃잎이 크고 날렵한 만큼 비바람에 견딜 재간이 없다. 찬란한 꽃은 혹독한 시련에 대한 보상이고 결실이건만 그저 장난삼아 슬렁슬렁 일렁이는 꽃샘바람에 나가떨어지고 부슬부슬 내리는 봄비에 스멀스멀 스러진다. 떨어진 목련 꽃잎을 지켜보노라면 새삼 아름다움의 무상함을 절감한다. 바닥에 추적추적 들러붙은 꽃잎엔 눈을 씻고 봐도 고상한 자태의 그림자마저 찾을 수 없다.하얀 목련이 찾아왔나 싶더니 아니나 다를까 꽃샘바람과 봄비가 고운 꽃잎을 순식간에 절단내버렸다. 불청객은 목련꽃 피는 날을 잘도 알아낸다. 하얀 화려함이 눈부신 탓이라면 그 누구를 원망할까. 백악기로부터 지금까지, 그토록 기나긴 세월동안 진화한 결과라 하기엔 목련화의 운명은 너무 덧없고 허무하다. 아쉬운 것만큼 더 귀하고 아름다운 건지 알 수 없긴 하다.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꽃샘바람과 봄비의 시샘이 원망스럽다.근 일 년 이상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모두 피로감에 지쳐있다. 주눅 들고 우울한 기분으로 봄이 봄 같지 않다. 화사한 꽃으로 나마 시퍼렇게 멍든 가슴을 달래보고자 했더니 그나마도 도루묵이 됐다. 봄비 내린 거리엔 흰 눈 내린 듯 목련 꽃잎이 널브러져 있다. 마스크를 한 연인이 봄비 속을 거닐며 슬픈 추억을 삼킨다. ‘하얀 목련’이란 노래가 절로 흥얼거려진다. “그대 떠난 봄처럼 다시 목련은 피어나고 아픈 가슴 빈자리엔 하얀 목련이 진다.”가곡 ‘목련화’와 조지훈 시인의 ‘낙화’가 뒤섞여 입가에 맴돈다. “하얀 목련화야, 꽃이 진다고 바람을 탓할 소냐.” 자연의 섭리에 따라 봄이 또 돌아오면 목련꽃을 다시 만날 터이니 너무 안타까워 할 일은 아니다. 다만 흘러가는 세월 속에 돌아올 봄이 몇 번이나 남아있을 런지 그것이 서럽다.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오철환(문인)

달/ 석정호

저게 뭘까/ 언제부터 저곳에 스크래치 손톱자국/ 아하, 누가 나를 그려놓았네// 네가 앉은 쪽으로 돌아간 고개/ 너의 웃음에 열린 귓바퀴/ 네가 오는 길목에 기대선 그림자/ 몰랐네/ 먼 개울의 나뭇잎 하나/ 이토록 달려온 줄을/ 장렬히 스러질 어느 날이라 해도/ 지금 두근대는 이 발길에서/ 돌아서지 않겠네// 보이나요/ 내가 던져놓은 너의 창공에/ 유유히 떠가는/ 실눈「대륜문학」 (대륜문학회, 2021)해와 달 그리고 별의 존재감은 거의 절대적이다. 하늘에서 빛을 발산하는 까닭에 그 누구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신성체이다. 높은 하늘에서 강렬하게 빛나는 해는 두려움의 대상이고, 해가 없는 밤에 은은히 빛나는 달은 해가 없어서 오히려 빛나는 존재이다. 먼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은 살아있는 듯 보이는 무수한 생명체이다. 달과 별은 빛이 부드러워서 맨눈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이 해와 다르다. 그런 이유로 달과 별은 우리 삶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지도 모른다.해에 관한 신화나 전설이 있긴 하지만 달과 별에 얽힌 이야기만큼 다양하고 많진 않다. 나안 관찰의 가능 여부가 그 차이를 만들었을 것이다. 나안 관찰은 호기심을 유발하고 창의적인 상상력을 자극한다. 정보의 대부분은 눈을 통해 들어온다. 그런 면에서 가시 면적이 넓은 달이 훨씬 풍요롭다. 별은 기껏해야 위치 확인에서 움직임 포착이 고작이다. 인종과 지역을 초월하여 달에 대한 이야기와 풍속은 차고 넘친다. 미술과 음악 그리고 문학 등 예술 전반에 걸쳐 큰 영향을 끼친 것도 달이다. 달을 노래한 시가 넘쳐 나는 것도 우연이라 할 수 없다.달은 스토리텔링의 보고라 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달 속에서 이태백이 놀던 계수나무와 토끼를 보기도 하고, 항아가 변한 두꺼비를 찾아내기도 한다. 보는 것은 비슷해도 이야기는 사람마다 다르다. 이야기는 인간의 근원적인 본능이다.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짐과 동시에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욕구를 아울러 가진다. 여기서 이야기를 창조해낼 수 있는 토양이 조성된다. 시인이 등장한 일은 당연한 귀결이다.낮에 분주하게 쫓아다니다가 밤엔 한숨 돌리며 달을 바라다보는 여유를 가진다. 둥근달은 그리운 얼굴을 비춰주는 만능 거울이다. 정겨운 어머니 얼굴을 보여주기도 하고, 보고 싶은 연인의 모습을 비춰주기도 한다. 달은 보는 사람에 맞춰 필요한 것으로 변신하는 마법사이다. 애주가에겐 이태백의 술 항아리로 변신할 것이고, 배고픈 사람에겐 한 조각의 빵으로 변할 것이다. 돈이 궁한 서머싯 몸의 경우라면 달이 금화로 보였음직하다.시인의 달은 자화상이다. 달에 난 스크래치는 지난 삶의 실책이나 과오를 보여주는 흔적이다. 그리운 사람 쪽으로 돌아간 고개도 예사롭지 않다. 그대 모습을 놓치지 않으려고 눈망울을 굴리고 그대 웃음소리라도 들어보려고 귀를 쫑긋 세운다. 그대 오는 길목에 기다리기 일쑤다. 하늘에 떠있는 달은 그대를 그리는 내 모습이다. 어디에 있어도 유유히 떠다니며 그대를 지켜볼 터다. 그대 목소리 어느 것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자 귀를 기울이고, 그대 모습 한 순간이라도 놓치지 않고자 실눈을 뜬다.개울에 떨어진 나뭇잎처럼 하잘 것 없는 존재이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왔다. 언제 생을 마감하더라도 후회 없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부지런히 앞으로 걸어갈 따름이다.오철환(문인)

코로나 백신/이승현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의 바람이 매몰차다/집마다 문을 걸고 놀란 눈을 뜨고 있다/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아귀힘에 맥 놓았다//거센 소용돌이에도 숨구멍은 있게 마련/그 숨구멍 속에다 내 숨소리를 얹혀/휘돌이 맥을 잡는다, 주리를 잡아 튼다//내가 잡은 아귀힘으로 혼돈을 잠재우고/광픙에 휘날리던 꽃들이 활짝 웃는 날/한 바퀴 돌아온 달도 만월로 떠서 비추리「오늘의 시조」 (2021, 제15호)이승현 시인은 충남 공주 출생으로 2003년 유심 신인상 시조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빛, 소리 그리고’, ‘사색의 수레바퀴’ 등이 있다.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하고 진솔한 눈길로 말미암아 그의 시편은 잔잔한 감동을 안긴다. 어떻게 살아야 올곧은 길인지 나직이 일러주곤 한다. 이 점은 타고난 품성에 기인하기도 하겠지만, 부단한 담금질과 절차탁마가 뒷받침 됐기에 가능한 일일 터다. 시조문단에서 그는 시조문학의 발전을 위해 앞장서서 일하면서 열정적으로 창작의 길을 걷고 있는 시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코로나 백신’은 팬데믹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작품을 통해 잘 말하고 있다.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바람이 매몰차서 집마다 문을 걸고 놀란 눈을 뜨고 있다. 이것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아귀힘에 맥을 놔버린 사태다. 그러나 화자는 거센 소용돌이에도 숨구멍은 있게 마련이라면서 그 숨구멍 속에다 내 숨소리를 얹어서 휘돌이 맥을 잡고 주리를 잡아 틀고 있다. 바이러스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방식이다. 그리해 마침내 내가 잡은 아귀힘으로 혼돈을 잠재우고 광풍에 휘날리던 꽃들이 활짝 웃는 날을 맞을 것이라는 강렬한 열망을 보인다. 그 어떤 힘으로도 굽힐 수 없는 강인한 의지의 발현이다. 그때쯤이면 한 바퀴 돌아온 달도 만월로 떠서 비출 것이라는 희망의 전언을 들려준다. 그야말로 시조로 쓴 ‘코로나 백신’이다. 의료계에서 개발한 약만 백신이 아니라는 것을 자각케 한다. 이러한 시각은 자연으로부터 온 상상력 덕분이다. 모든 문제는 결국 자연에서 찾아야 하고, 자연의 힘이 질병을 치유케 하리라는 점을 ‘코로나 백신’은 환기시켜주고 있다. 셋째 수에 전면 배치된 꽃과 만월이 그 핵심 이미지다. 우리 시조가 여기까지 왔다.또 다른 생명사랑을 용해한 ‘유기견 분양소’에서 시든 꽃들이 서로 껴안고 숨 쉬는 곳이자 구름도 발소리 죽여 빗물 떨구며 가는 곳이면서 슬퍼진 검은 눈동자 촉촉하게 젖는 곳이라고 유기견 분양소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곳은 젖은 땅에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곳이고, 한 줌 햇살이라도 얼비치면 축복인 곳이면서 버려진 인정을 부르며 목쉰 울음 우는 곳이기도 하다. 여기까지는 6행이 모두 ‘곳’으로 각운 처리되고 있다. 의도적이다. 애절한 상황을 도드라지게 하고자 하는 시적 장치인 셈이다. 아리고 서글펐던 정은 멀리 떠났지만 새롭게 찾아온 인정과 따뜻한 눈망울에 결국은 우화의 껍질을 벗고 천지가 개벽하는 곳, 이라고 끝으로 곳을 한 번 더 끝자리에 놓고 있다. 일찍이 고려시대 문인 이규보는 ‘슬견설’을 말한 바 있다. 무릇 피와 기운이 있는 것은 사람으로부터 소·말·돼지·양·벌레·개미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살기를 원하고 죽기를 싫어한다. 그런즉 개와 이의 죽음은 같은 것이다. 이와 같은 이규보의 ‘슬견설’은 생명에 대한 편견이나 차이를 두지 않음에 대한 확고한 견해다. 사물을 그 대상이 갖고 있는 외향이 아닌 본질에 의미를 두고 있는 태도다.시조를 통해 코로나 백신을 맞고, 유기견 분양소를 살피며 이 좋은 봄날 자신을 더욱 애지중지 여길 일이다. 또한 이웃을 자주 돌아보며 생명 사랑을 실천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이정환(시조 시인)

이중 과녁/ 박희채

~ 엇갈린 사랑의 끝 ~…승희는 가위눌리던 중 휴대폰 벨소리에 잠을 깼다. 대학 제자이자 일곱 살 연하의 애인 우태였다. 작년 봄 전시회 준비로 바쁠 때 그녀의 일을 돕게 되면서 가까워졌다. 집을 옮기고 전화번호를 바꾸면서 그 사실을 알려주지 않은 것을 원망했다. 자신을 정리하고자 하는 낌새를 눈치 채고 힘들어했다. 그녀는 매정하게 폰을 끊어버렸다. 우태를 유혹한 건 그녀였다. 그녀는 삼십대 후반이긴 했지만 괜찮은 미모와 빵빵한 재력에다 미대 교수라는 지위까지 갖추고 있었다. 어떤 남자라도 유혹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그녀는 구속받지 않고 즐기는 타입이었다. 우태도 그냥 스쳐가는 소모품 정도였다. /그녀도 마흔에 가까워지자 믿음직한 남자를 만나 정착하고 싶었다. 그때쯤 그 남자를 만났다. 멀쩡한 집을 두고 갑자기 그 남자가 사는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그 남자의 집에서 불빛이 새어 나왔다. 폰을 들고 전화를 했다. 잘못 걸었다는 말과 함께 전화가 끊겼다. 가슴이 아파왔다. 한 달쯤 전 그 남자를 만났다. 비 오는 날 그 남자의 차를 들이받았다. 그녀는 별로 다친 곳이 없었으나 그 남자는 팔과 다리를 다쳤다. 큰 부상을 입고도 상대방을 배려하고 의연하게 뒤처리하는 모습에 반하고 말았다./ 그 남자가 입원해있는 보름 동안 승희는 수시로 들러 정성을 다했다. 퇴원하던 날 그 남자는 자신의 마음을 고백했다. 아내가 있기 때문에 사귈 수 없다는 것. 아내는 친정아버지 간병을 위해 지방에 내려가 있었고, 아내가 걱정할까봐 사고 난 얘기를 하지 않아서 문병을 못 왔다는 것. 그 남자는 생명의 은인인 아내를 결코 버릴 수 없다는 것. 그녀는 원하는 것을 반드시 손에 넣고 싶었다./ 이사 온 후 며칠 동안 그 남자의 동정을 살폈다. 음악학원을 하는 그 남자는 오전 8시에 집을 나섰다. 그녀는 경비실 옆에서 택시를 기다리는 척 했다. 그 남자가 그녀를 보고 차를 세웠다. 미소를 지으며 여기엔 웬일이냐며 물었다. 그녀는 이 근처에 산다고 대답했다. 조수석에서 그 남자의 아내가 눈을 치켜뜨곤 빨리 가자고 채근했다. 그 남자는 말을 하려다가 말고 가던 길을 갔다. 가슴이 답답했다. 여태까지 남자의 여자관계에 신경 써 본 적이 없었지만 이번은 달랐다. 어떻게든 그 남자를 독차지하고 싶었다. 그 남자의 아내가 장애물이었다./ 승희는 40대 중반 아줌마로 변장하고 변두리 다방에서 그 사내를 만났다. 표적을 말해주고 사례금 절반을 선금으로 주고 열흘 후 일이 끝나면 나머지 절반을 주기로 약속했다. 그동안 그녀는 프랑스 미술학회 세미나에 갔다 왔다. 그 열흘 후, 그녀는 전처럼 변장을 하고 약속장소에 나갔다. 그 사내는 완벽하게 처리했다고 했다. 잔금을 건넸다. 그 사내는 표적의 남편에게 들켜 그 남자도 함께 없앴다고 덧붙였다. 승희는 망연자실했다. 다방을 나와 차를 탄 사내는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그 남자를 말끔히 처리했으니 약속한 돈을 달라고 요구했다.…사랑을 쟁취하고자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세태를 고발한다. 사랑은 두 사람의 쌍방향 교감이다. 어느 일방이 동의하지 않으면 결코 성립되지 않는다. 이 점을 이해하고 임해야 상호 낭패를 막을 수 있다. 그가 없는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극단적인 생각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고 만다. 사랑의 열병은 찾아오기 마련이지만 비극적 결말을 피하려면 그 전에 올바른 마음가짐을 준비해둬야 한다. 연적을 교차 살해하는 이야기는 픽션일 뿐이지만 섬뜩하다. 오철환(문인)

바람개비/이정선

바람은 바람이라/바람은 꿈의 통로//바람이 바람 불러/돌아가는 바람개비//돌아라.바람개비야/뱅글뱅글 돌아라.//바람은 바람이라/바람은 하늘 바람//소년원 높은 담 밑/화단에 선 바람개비//너와 나/소망 담아서/쉬지 않고 돌아라.​「매미가 고장 났다고?」 (2019, 푸른책들 앤솔러지)이정선 시인은 충남 논산에서 태어났으며, 2004년 ‘한울문학’에 수필이 당선되고 2020년 ‘푸른 동시놀이터’에 동시조가 추천완료 돼 등단했다.‘바람개비’에는 애잔한 아픔이 묻어난다. 바람은 바람이라 바람은 꿈의 통로라고 하다가 바람이 바람 불러 돌아가는 바람개비에 눈길을 준다. 그런 후 역동적 움직임을 요청한다. 돌아라 바람개비야 뱅글뱅글 돌아라, 라고. 연이어 바람은 바람이라 바람은 하늘 바람이라면서 별안간 소년원 높은 담 밑 화단에 선 바람개비라는 특별한 장소를 제시한다. 그러고 보니 ‘바람개비’가 선 곳은 아무나 쉬이 접근할 수 없는 공간인 소년원 높은 담 밑이다. 그래서 화자는 너와 나 소망 담아서 쉬지 않고 돌아라, 라고 읊조린다. 이처럼 ‘바람개비’는 희망을 노래하고 있는 이채로운 작품이다.또 한 편을 보자. ‘축구공’이다. 학교 운동장에서 일어난 일을 주의 깊게 관찰한 끝에 쓴 시다. 전개 과정이 자연스럽다. 소나기 쏟아지자 비어버린 운동장에 홀로 남은 축구공이 등장한다. 골대 옆에 기대 선 축구공이다. 연방 발로 걷어차이기만 하기에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축구공에게는 기쁨과 보람이 되기도 한다. 그런 축구공이 모처럼 저 혼자 등목을 한다. 빗줄기로 두둑두둑 안마까지도 하는 호사를 누린다. 갑자기 내리고 있는 소나기 덕분이다. 소나기가 그치면 꽁꽁 숨은 아이들이 와, 하고 뛰쳐나오길 기다리는 축구공이기에 저 혼자 달랑 남아도 전혀 외롭지가 않다. 그런 시각으로 축구공과 아이들의 관계를 정답게 노래하고 있다.단시조 ‘걸어가는 나무’는 숲 속 오솔길 새소리 드맑은 날 ​말없이 걷는데 바람이 말 걸어요, 라고 하면서 한 그루 걸어가는 나무에게 바람이 말 거는 정경을 제시한다. 이렇듯 종장에서 반전이 일어나고 있다. 숲속이기에 그 속을 걸어가고 있는 나도 한 그루 걸어가는 나무라는 인식을 하고 있는 점이다. 그렇기에 바람이 말을 걸었고, 시의 화자는 무언가 대답을 했을 것이다. 이렇듯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정서적인 안정을 찾게 되고, 헤아릴 길 없는 행복을 맛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시편은 소박하지만 소중하다.동시조는 무척이나 까탈스러운 문학의 한 갈래다. 동심을 잘 녹여야하는 동시에 시조형식을 잘 준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동시의 덕목 중에 앞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단순미 속의 깊이다. 단순하되 깊이를 함유해야 한다. 그 다음으로 동심의 눈높이다. 요즘 아이들의 생활과 생각과 고민거리가 담겨야 한다. 어른의 회고나 추억거리가 동시의 소재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작품들은 지금의 아이들에게 크게 환영받지 못한다. 공감을 얻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정선 시인의 동시조는 오늘의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잘 맞다. 그들의 삶과 관련성이 깊어서 공감을 자아낸다.사소한 일상에서 포착할 수 있는 의미나 이미지를 놓치지 않고 잡아채어 한 편의 시로 직조할 때 새로운 동시가 탄생한다. 자주 꽃핀 건 자주감자 파보나 마나 자주감자 하얀 꽃핀 건 하얀 감자 파보나 마나 하얀 감자, 라는 권태응의 ‘감자꽃’이 그것을 잘 증명한다.이정환(시조 시인)

섬/ 장하빈

섬은 그리움// 사람들은 바다에 배를 띄우고/ 섬과 섬 사이 다리를 놓았다// 그러자/ 섬이 사라졌다/ 세상의 모든 그리움이 사라졌다「신의 잠꼬대」 (시와반시, 2021)우리는 손안의 스마트폰으로 세상과 소통하며 바쁜 세상을 살아간다. 두세 줄의 댓글로 서로의 뜻을 교환하고 이모티콘으로 서로의 감정을 표현한다. 잠언시는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딱 맞는 시다. 잠언은 바늘로 찌르듯이 예리한 말을 뜻한다. 보통 가르치고 훈계하는 짧은 경구다. 잠언시는 명상과 성찰을 통해 경계와 교훈을 주는, 말 그대로 잠언 형식의 시다. 짧지만 촌철살인의 날카로움이 있고 잠언이지만 절제미가 압권이다. 시 ‘섬’은 대표적인 잠언시라 할만하다.섬은 중국어로 ‘다오’, 일본어로 ‘시마’, 영어로 ‘아일랜드’다. 이들 가운데 바다에 홀로 떠있는 섬의 모습과 이미지를 가장 잘 나타내는 언어는 아무래도 우리말 ‘섬’이 최고인 것 같다. 우리가 쓰는 말이라 편드는 것이 아니다. 섬이란 말 속에 섬의 모든 것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고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 아무리 살펴봐도 섬 이상의 표현을 찾기 힘들다. 섬은 소리와 모양까지 섬을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섬 그 자체가 잠언시라면 과장일까.파도가 쉼 없이 밀려와서 옆구리를 때린다. 바다 한가운데 지워질 듯 떠있는 섬은 그런 일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호젓한 모습으로 유유자적한다. 거센 바람이 심술 사납게 불어와 한순간에 날려버릴 듯이 위협하지만, 섬은 세파를 이겨내며 살아가는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꿋꿋이 서있다. 끝없이 출렁대는 물결 따라, 사정없이 불어오는 바람 따라 이리저리 날려가거나 떠내려갈 듯도 하건만, 굳건히 제자리를 지키는 불굴의 의지와 용기가 갸륵하고 기특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다에 잠길 듯 떠있는 섬을 보노라면 부질없는 근심이 앞설 뿐만 아니라 보호해주고 싶은 본능마저 꿈틀거린다. 섬은 어린 아들딸처럼 살갑게 가슴에 안겨온다. 단지 감성적인 사람의 낭만적 유희로 돌리기엔 섬에 대한 느낌은 폭넓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섬이 외롭고 고독한 우리네 인생을 닮은 까닭일 수 있다. 사정이 그렇고 보면 문득 자신의 자화상을 보는 것처럼 섬은 야릇한 측은지심을 불러일으킨다.섬은 외로움의 상징이다. 외로움은 다시 그리움을 낳는다. 섬은 그리움이다. 섬에서 태초의 모습을 찾아내고 고향의 풋풋한 냄새를 맡는다. 그런 까닭에서인지 섬을 보면 무언가가 그리워진다. 생명을 잉태한 아득한 시절을 떠올리며 그동안 잊고 살았던 근원을 생각해본다. 많은 사람이 섬을 찾아다니며 안정과 평온을 얻는 것은 그러한 사정과 닿아있다고 볼 수 있다. 뭉게구름 한 조각이 한가로이 떠가는 가운데 옥빛 바다가 섬을 살포시 품고 있는 풍경이 눈에 선하다. 문득 그리움이 밀려온다.섬과 섬을 다리로 이어놓으면 섬은 섬이 아니다. 섬과 섬을 다리로 연결해놓으면 섬 본래의 의미와 느낌을 상실한다. 다리로 붙들어 맨 섬은 이미 섬이 아니다. 섬이 사라지면 그리움도 사라진다. 그리움이 없는 섬은 아름다움도 사라진다. 자연은 자연으로 둘 때 비로소 위대하다. 시인이 섬을 찾는 것은 섬의 원초적 매력과 이끌림에 취한 때문일 것이다. 자기만의 섬을 은밀히 간직하고 싶은 것은 섬의 본질에서 유래하는 자연스런 욕망이다.오철환(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