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말했다, 플라토닉 러브라고/그는 말했다, 플라스틱 얘기냐고//가없는 플라토닉이/낯선 플라스틱이라니!//플라토닉/플라스틱/플라스틱/플라토닉//토닉과 스틱 사이 찬바람 들이닥쳐//영원한/사랑의 거리/연무 속에/휩싸였다「서서 천년을 흐를지라도」(이정환시조전집, 2024, 만인사) 모든 연인이 몸을 뛰어넘어 사랑한다고들 하지만, 플라토닉을 언급할 때 생기는 어쩔 수 없는 묘한 뻘쭘함, 아마 시 속의 그는 일부러 못 알아들은 척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살짝 부정하고 싶은 마음을 담은 플라토닉 플라스틱 언어유희가 입속에서 맴돈다. 육체가 사랑의 전부는 아니지만, 매우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그러나 여기서 플라토닉을 대놓고 거부한다면 닥쳐올 풍파가 염려된다. 그래서 그는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다. 하여 애매해진 분위기를 누구도 쉽사리 풀지 못하고, 연무 속에 갇히고 만다. 짧은 글을 읽었지만, 머리에 남은 장면은 시트콤 한 편의 길이다. 압축과 서사, 노련한 글쓰기에 유희를 얹은 결과다. 이상은 이선민 평론가의 분석이다.이정환시조전집 「서서 천년을 흐를지라도」는 2024년 봄, 만인사에서 나왔다. 무려 1152쪽이나 되는 방대한 책이다. 1019편이 수록되어 있다. 1978년 등단 이후 쓴 작품을 총망라했다. 열두 권의 시조집 ‘아침 반감, 서서 천년을 흐를지라도, 불의 흔적, 물소리를 꺾어 그대에게 바치다, 가구가 운다 나무가 운다, 원에 관하여, 분홍 물갈퀴, 비가 디르사에게, 별안간, 휘영청, 오백년 입맞춤, 코브라’와 동시조집 두 권 ‘어쩌면 저기 저 나무에만 둥지를 틀었을까, 일락일락 라일락’까지 모두 열네 권이다. 전집을 대하는 이들이 마치 장강이 흐르는 듯한 도저한 기운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 싶다.읽는 이를 동화시킨다는 목적 외에 이정환의 시는 그 어떤 것도 공유하지 않는다. 어조부터 단어, 전개 방식이 모든 시마다 고유하다. 이는 ‘톱클래스’에서 방점을 찍는다. 자신의 볼카운트와 승부한다는 투수. 자신의 아름다움과 승부한다는 여인. 자신의 미친 언어와 승부한다는 시인. ‘톱클래스’는 재미있고 재치있고 읽기 쉬우며 보기에도 흥미로운 그런 시다. 그러나 문장 구조를 반복해 발음을 활용한 ‘플라토닉 플라스틱’과는 또 다른 형태의 재치다. 말장난과 시 그 사이 어딘가에서 노는 글들은 참 접하기 편하다. 이정환은 이런 글을 시조의 형식에서도 충분히 제공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 통해 예술성과 상품성을 모두 휘어잡은 시조의 가능성을 환히 비춘다. 이 글 역시 이선민의 명쾌한 논지다.애오라지 한 가지 일에 일평생 전력투구한 끝에 출간된 방대한 시조전집 ‘서서 천년을 흐를지라도’는 이제 세상 모든 이의 것이 되었다. 하늘에 무한 감사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