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어이빨을 삼킨 물고기/ 신영애

~엄마의 성을 알아가는 딸의 이야기~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 나는 이중성을 벗어버렸다. 선정적인 아크릴 네온에 혹해서 ‘사탕창고’라는 카페를 선택했다. 원초적이고 솔직한 삶이 그 카페에 있다. 나는 교사를 사직하고 카페로 출근했다. 선생질을 때려치우고 술집에 나간다는 소문이 고향에서 들려왔다. 신경 쓰지 않았다. 모범적인 가면을 벗고 발가벗은 삶을 살 계획이다. 나는 시골 읍내의 시장 통에서 한복을 하는 어머니와 단둘이 살았다. 나이에 비해 되바라진 모범생이었다. 겉으론 반듯해 보였지만 속으론 나쁜 일탈을 꿈꾸었다. 일곱 살 때, 불공을 드리러 가는 어머니를 따라 절에 갔다. 그날 밤 어머니가 주지스님의 방에서 나오는 걸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조신한 행실을 강조한 어머니는 한 달에 두 번 꼴로 절에 갔다. 열두 살 사월초파일 때, 어머니와 친구 한 분이 연등작업을 거들기 위해 절로 갔다. 동갑내기 민호와 나도 의무감에 함께 어머니를 따라갔다. 나는 한밤 중에 민호의 바지를 내리고 그의 성기를 농락했다. 그날은 마음속의 일탈을 실행에 옮긴 기념비적인 날이었다. 대학에 들어가면서 독립하였지만 진정한 자유를 얻진 못했다. 너무 튀는 언행으로 교우관계가 건조했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나를 먼 거리에 놓아두고자 애를 썼다. 교대 졸업과 함께 첫 발령을 받았다. 초등학교에서도 냉소적 자세를 이어갔다. 그러던 중에 모든 생활을 정리하고 절에 들어간다는 어머니의 연락이 왔다. 방학을 맞아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그 절로 갔다. 어머니는 불공에 몰입하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 불공이 끝나기를 기다리다 깜박 졸았다. 주지스님을 닮은 남자와 어머니의 손을 잡고 놀이공원에 간 꿈을 꾸었다. 청룡열차를 타고 비명을 질렀다. 어머니가 어깨를 잡는 바람에 잠에서 깨어났다. 주지스님을 뵈었다. 병이 위중한 상태였다. 한밤 중에 천둥번개가 치고 소나기가 억수같이 내렸다. 소나기는 죽음의 사자처럼 영혼을 뒤흔들었다. 어머니와 주지스님은 거짓말처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운명하였다. 어머니의 유골을 뿌리고 돌아오는 길에 비로소 어머니의 죽음을 실감했다. 슬픔과 절망감이 몰려왔다. 어느새 어머니를 이해하게 되었다. 고향친구 민호가 카페로 와인상자를 배달한다. 큰 키에 탄탄한 체격이 매력적이다. 그의 땀 냄새가 유혹적이다.…스님과 어머니의 사랑은 지나가는 일회적인 한때의 불장난이라기 보단 진정으로 연모하는 감정으로 보인다. 비록 성직자로서 계율을 어긴 면이 있지만 스님에게 돌을 던질만한 계제는 없다. 스님은 변함없는 애정을 간직한 채 열반에 든다. 평생 한 남자만 섬긴 어머니는 순결하고 조신한 여인이다. 한 날 한시에 죽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어머니 모습은 단지 쾌락만 좇은 여인이 아님을 시사한다.스님과 어머니의 밀애를 목격한 일은 여린 소녀가 감당하기엔 다소 무리였다. 그때 받은 충격 때문인지 남을 믿지 못하게 된다. 소시오패스 성향의 이중인격자가 아닌지 의심되기도 한다. 꿈에서 본 아버지의 모습으로 판단해서 주인공의 아버지는 스님이다. 현실적 정황으로도 그렇다. 영악한 주인공이 성인이 될 때까지 그런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을 리 없다. 아버지에 대한 증오가 사무쳤다 하더라도 마지막 가는 스님에 대한 태도가 너무 냉담하다. 생선 장수인 민호 어머니가 절에 가기 전에 몸에서 비린내를 없애려고 무진 애를 쓰는 모습이 또 다른 상상을 이끌어낸다. 아버지에 대한 주인공의 무관심과 증오가 이해되는 부분이다. 민호를 소환해낸 일은 숙제로 남겨둔다. 오철환(문인)

반복/ 신평

이제 막 날개 짓 하려는 아들에게/ 넥타이 매는 법을 가르쳐 준다/ 그 옛날 아버지가 텁텁한 냄새의 입김으로/ 나에게 가르쳐 주었던 똑같은 방법/ 아버지와 달리 몇 번이나 실패를 거듭한다// 구부려 올려다보는 아들의 어깨 너머/ 그가 겪어나갈 신산의 세월이 겹겹이 둘러섰다//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 훨씬 더/ 세상은 차갑고 무섭단다// 내 힘 한 점 소용없을 때까지/ 네 기력을 돋울 군불이 되고 싶건만// 이미 달빛이 된 아버지/ 나도 곧 달빛으로 오른다/ 아들은 그 아들에게 넥타이 매는 법 가르치며/ 그 옛날 자신의 숨결과 닿았던 내 숨결을 기억하리/ 생의 반복은/ 엄숙하고 슬픈 되새김이다「대구문협대표작선집Ⅱ」 (대구문인협회, 2013)딸 키우는 재미가 아기자기하고 좋다. 그러나 아버지에겐 아들 키우는 즐거움도 전혀 없진 않다. 목욕탕의 등 밀기가 그것이다. 이는 딸 가진 아버지가 부러워하는 것 가운데 하나로 흔히 꼽히곤 한다. 물론 공짜로 거기까지 가는 건 결코 아니다. 팔에 힘이 제법 붙는 날까지 부지런히 씻기고 닦아줘야 한다. 몰캉몰캉한 젖살이 빠지고 팔뚝이 제법 탱글탱글해지면 상큼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등의 때가 밀리는 순간 그동안 보살펴 준 수고가 봄눈 녹듯 스르르 녹아내린다. 아들딸에게 필요한 거의 모든 서비스를 엄마가 독점하기 때문에 아버지가 필요한 경우는 드물다. 그렇지만 넥타이 매는법은 아버지의 전매특허다. 사회로 첫발을 내디디려는 아들에게 아버지가 소환된다. 아들을 졸졸 따라다니던 엄마가 갑자기 당황해하며 남편을 찾고 아들이 굵은 목소리로 아버지에게 긴급구조를 요청한다. 새 양복을 차려입고 넥타이를 든 아들이 아버지 앞에 불쑥 다가선다. 별 것 아닌데 괜스레 기분이 좋다. 아들의 등밀이 서비스를 처음 받은 때처럼 마음이 달뜬다. 시인이 첫 출근하던 날, 그 아버지가 넥타이 매는법을 가르쳐주었다. 방향이 좌우로 바뀌는 지라 헷갈릴 만도 했지만 능숙하게 가르쳐줬던 기억이 생생하다. 막상 넥타이를 아들의 목에 걸고 보니 매일 매다시피 한 것이지만 한번 만에 매어지지 않는다. 자기 목에 매어 본 후 다시 아들 목에 건다. 가르쳐주는 아버지가 헷갈리니 배우는 아들도 헷갈린다. 구경하는 엄마는 한심하다며 핀잔을 준다. 그렇지만 아버지도 웃고 아들도 웃는다.앞으로 닥쳐올 험난한 세파가 아들의 어깨 너머로 넘실거린다. 극복해야 할 도전이 산 넘어 산이고 겪어야 할 시련이 가혹하고 매서우리라. 거친 바다로 항해를 내보내는 부모마음은 안쓰럽다. 교과서에서 익힌 대로 했다가 낭패 볼 일도 있으리라. 세상은 학교에서 배운 것과 많이 다르단다. 비록 세상사가 한심하고 추악하게 보이더라도 결코 실망하거나 얕잡아 봐선 안 된다. 엎어지고 자빠지더라도 좌절하지 말아야 한다. 희망을 잃지 않고 꾸준히 정진하다 보면 험한 세상이 어느덧 살맛나는 세상으로 다가온단다.부모는 아들딸의 성공적인 삶을 위해 온몸을 다 바치는 법이다. 부모는 아들딸을 위해 항상 군불 땔 준비가 되어있다. 아들이 혼자 힘으로 험한 세상 잘 헤쳐 나갈 때까지 아버지는 온힘을 다해 뒷바라지 할 터다. 아버지의 힘이 필요하면 언제든 긴급구조를 요청해도 좋다. 아버지는 비록 세상을 떠나가지만 텁텁한 숨결을 통해 그 아들에게 넥타이 매는법을 물려준다. 인연으로 맺어지는 생의 전승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엄숙한 반복은 벗어날 수 없는 윤회의 슬픈 고리다. 오철환(문인)

책 정리를 하다가/ 윤일현

누렇게 뜬 시집에서 나온/ 빛바랜 흑백 명함판 사진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어지러워 서가에 몸을 기댄다.// 질풍노도의 시대를/ 좌충우돌하며 돌아다녔건만./ 세월은 모든 것을 탈색하여/ 내 젊은 날들 결국은/ 5x7cm의 작은 평면 속/ 흑과 백, 명과 암으로 정리되는구나.// 세상의 모든 색채 흑백 속에 가둘 수 있지만/ 그 색채들 또한 흑백에서 갈라져 나옴을./ 밝음 끝에는 어둠이 찾아오고/ 어둠 다하면 새 빛이 돋아남을,/ 명과 백, 암과 흑만으로는/ 혁명도 사랑도 형상을 가질 수 없고/ 흑과 백, 명과 암은 서로 기대고 있음을,/ 그때는 알려고 하지 않았다.// 흑백의 풍경 밖으로 나와 보니// 지나온 길 아직 먼지 자욱하고/ 가야할 길 안개 속에 아득하다/ 강산이 몇 번 바뀌었건만/ 이루지 못한 꿈과 사랑/ 여전히 그대로 부여잡고 있는/ 앙상한 내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새벽별 하나 가슴에 안겨주고/ 가장 따뜻한 시로 나를 덮어준 후/ 그 시집 다시 서가에 고이 꽂아주며/ 불쑥 찾아온 현기증을 다스린다. 「시와반시」 (2015년 겨울)책은 애물단지이거나 잘해야 계륵 정도다. 공간만 차지 할 뿐 활용성이 떨어진다. 인터넷 검색이 강력하고 e북 시장까지 활성화되는 상황에서 책은 밉상이다. 그 와중에 눈까지 침침해지면 책은 좌불안석이다. 집값이라도 들썩거리는 날엔 책이 설 자리는 더욱 좁다. 여유 공간을 만들어보려고 집안을 둘러본다. 방을 가득 메운 책들이 눈을 내리깐다. 보관할 책과 버릴 책을 분류해본다. 벌써부터 생각해온 일이지만 차일피일 미루다가 큰마음 먹고 일을 벌인다. 한쪽으로 완전 기운 책은 생각처럼 많지 않다. 살 땐 나름대로 살만해서 구입한 터라 막상 버리려고 하면 나중에 볼 것 같기도 하고 아깝기도 하여 망설여진다. 버리기로 마음먹어도 조금 아쉬운 마음에 책장을 들춰본다. 선 채로 읽다가 그 내용에 빨려 들어가 급기야 마음을 바꾸기도 한다. 좋은 책이 책장에 꽂혀있는 줄도 모르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책갈피에서 뜻밖의 물건이 발굴되기도 한다. 사진이나 단풍잎이 숨어있는 경우가 더러 있다. 가끔 빳빳한 지폐도 나온다. 고액권이었을 지폐가 이젠 화폐수집용으로 밖에 쓰임새가 없지만 마음은 즐겁다. 사진은 추억이다. 빛바랜 흑백사진을 든 시인은 그 시절로 돌아간다. 살짝 어지럽다. 잔잔한 미소가 번진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용케 견뎌낸 그녀석이 흑백 명함판에 갇혀 결연한 얼굴로 두 주먹을 불끈 쥔다. 복잡한 사연들이 흑백으로 녹아있다는 사실이 새롭다. 흑 속엔 모든 색이 들어있고, 백 속엔 모든 빛이 모여 있다. 어둠이 다하면 밝음이 오고 밝음이 다하면 어둠이 온다. 흑과 백은 서로 의지하는 관계일 뿐더러 그 근본이 서로 닿아있다. 흑만으로 표현되지 않고 백만으로 표현되지 않는다. 흑과 백이 상호 조율하고 협조해야만 사물과 사연이 담기고 정리되는 사실을 흑백사진이 생생히 증언한다. 흑백논리는 금물이라는 것을 새로이 깨친다. 그땐 오직 한쪽만 본 고집스런 외눈박이였다. 부끄러운 기억이다. 흑백 세상에서 컬러풀 세상으로 귀환한다. 지난날은 먼지 앉은 책처럼 뿌옇고 누런데 가야할 길은 안개 속이다. 욕망을 내려놓을 만큼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움켜쥐고 있는 앙상한 모습이 안쓰럽다.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흑백사진을 시집에 살짝 재워 서가에 꽂는다. 어지러운 세상이 다시 깨어난다. 현기증은 타임머신 멀미다. 오철환(문인)

그리운 우물/ 이연주

~우물가의 추억은 풋사랑일 뿐~…두섭은 노모를 모시고 사는 노총각이다. 근오는 한 마을에 사는 부랄 친구로 두섭과 형제처럼 지낸다. 그 역시 노총각. 시골 촌구석으로 시집올 여자가 없다. 그나마 근오는 전문대학까지 나온 까닭에 중학교를 중퇴한 두섭보단 조금 낫다. 노모를 모시고 촌에서 살아야 하는 조건 때문에 번번이 혼사가 깨졌다. 근오는 지난해부터 대학동기와 사귀고 있었지만 두섭은 최근에야 그 사실을 알았다. 섭섭한 감정을 넘어 배신감마저 들었다. 친형제보다 더 막역하게 지내온 사이에 그 엄청난 비밀을 장기간 숨겼다는 사실에 격노했다. 두섭이 근오에게 그 일을 캐물었을 때, 근오의 눈빛이 평소와 달리 깊고 진지했다. 근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두섭은 더 이상 그 일을 추궁하거나 원망하지 않았다. 그 후, 근오는 가끔 두섭에게 그 여자에 대한 근황을 들려주었다. 그러던 차에 두섭도 고모에게서 중신이 들어왔다. 애 둘 있는 이혼녀로 어릴 적 우물가에서 보고 가슴에 담아뒀던 여자다. 전학 가는 바람에 잊고 지냈던 풋사랑이다. 굳이 말하자면 첫사랑일지도 모른다. 노모와 고모는 두 사람의 혼사를 성사시키고자 과할 정도로 그를 들볶아댔다. 그러나 두섭은 그녀와의 만남마저 완강하게 거부했다. 그 와중에 두섭은 근오가 사귀던 그 여자와 결혼한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질투와 섭섭함으로 감정이 축축하게 달아올랐다. 그래도 결혼을 축하해 줄 생각에 술을 사들고 근오네 집으로 갔다. 본의 아니게 근오와 약혼자의 대화를 엿듣는다. 무식한 친구와 만나지 말라는 약혼자의 말에 그의 절친 근오는 놀랍게도 순순히 맞장구친다. 두섭이 장가든다는 소문 때문에 옹고집 근오 모친이 결혼 후 자식 분가를 전격적으로 허락해줌으로써 그들 결혼이 성사된 충격적인 내용도 알게 된다. 경황없는 가운데 두섭은 황급히 집으로 돌아와서 그 편지를 또 꺼내 읽는다. 벌써 몇 번째 읽어 보는지 모른다. 맞선 보자는 그 여인의 편지다. 한 달 후 이민 간다며 부디 좋은 여자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미라는 내용이다.…농촌총각에게 시집갈 처녀가 거의 없는 현실이 처연하다. 짝짓기는 본능이다. 이 본능 앞에 죽마고우도 헌신짝이다. 이 엄청난 희생은 차치하고 농사엔 돈과 시간과 땀이 들어간다. 그에 비한다면 그 대가는 초라하다. 인간생존에 불가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농산물의 상대가격은 분노할 수준이다. 상대적 희소성이 낮은 점도 장애요인이지만 꼭 먹고 살아야 하는 생존필수품이라는 점이 역설적으로 더 큰 문제다. 저렴한 가격으로 먹거리를 공급해야 하는 필연적 논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감정적 불만과 본능적 울분은 해소할 길이 없다.맺어질 수 없는 사정을 미리 알고 있는 그에게 노모와 고모의 과도한 설득과 압박은 갈등을 최고조로 끌고 간다. 그의 집 우물을 좋아했던 첫사랑을 다시 만난 때는 그 우물을 시멘트로 덮고 난 후다. 우물 뚜껑을 깨부수려고 해머를 내리치는 모습은 그래서 절절하고 애처롭다. 해머 자루가 부서진 장면이 안타깝게 다가온다. 우물은 첫사랑의 추억이다. 어릴 때 길렀던 고양이가 쥐약을 먹고 떠나갔다. 친하게 지내던 앞집 고양이마저 쥐 맛을 본 후, 부랄 친구가 그랬듯이, 그를 등졌다. 고양이는 우정의 상징이다.문학이 어휘를 갈고닦는 언어예술이라면 이연주는 그에 부응하는 흔치 않는 작가다. 낯선 우리말을 풀어내는 화려한 필담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리운 우물’을 독파하려면 필히 우리말사전을 옆에 펴둬야 할 터이다. 오철환(문인)

살겠다는 소리/ 엄정화

박자가 기막히다/ 보내온 녹음 파일// 서울 촌놈 들으라고/ 물소리 풀벌레 소리// 묘하게/ 끼어든 맹꽁이/ 마디마디 절절한「정음과 작약 창간호」(2017, 그루)엄정화 시인은 서울 출생으로 2017년 ‘한국동서문학’ 신인상 시조 당선으로 등단했다. 그의 작품은 모던하다. 사물이나 세계에 대한 접근방식이 이채롭고, 남다른 사유의 깊이로 말미암아 철학적이다. 인간의 내면을 향한 혹은 삶을 향한 이러한 예리한 시선은 개성적인 시의 모습으로 형상화돼 존재론적 성찰에까지 이른다. 시의 소재도 일반적이지 않다. 뜻밖의 대상을 포착해 체현하는 일에 능숙하다. 그 결과물은 늘 우리의 삶과 깊이 접맥돼 있다.우리는 날마다 숨 쉬며 살아간다. 말할 수 없는 이의 크신 손길을 통해 여전히 숨결이 허락됐기에 생명을 유지하고 있고, 일상생활을 영위한다. 날마다 거리에는 어디론가 바삐 달려가는 차들로 붐빈다. 일하지 않으면 먹지 못하므로 열심히 생업에 종사한다. 살겠다는 소리, 살겠다는 몸짓, 발걸음, 손놀림들이다. 이 땅에 발 딛고 사는 복을 받았으니 부지런히 살아가야 마땅하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어려운 일들이 산 첩첩 물 첩첩이다. 비단 사람뿐이랴. 꽃과 풀과 나무, 여러 곤충과 새, 동물들도 저마다 살기 위해 가진 힘을 다한다. 이따금 소리를 내기도 하고 몸을 흔들어대기도 한다.‘살겠다는 소리’는 그러한 생각을 담은 시편이다. 요즘은 휴대전화기로 온갖 자료를 쉽사리 주고받을 수 있다. 그만큼 편리해진 세상이다. 화자의 지인이 보내온 녹음 파일은 박자가 기막히다. 듣기 좋다는 뜻일 것이다. 서울 사람 들으라고 보내온 파일에는 물소리와 풀벌레 소리가 섞여 있다. 그런데 그것만이 아니다. 다른 소리도 들린다. 맹꽁이 울음이다.맹꽁이는 양서류로 개구리목 맹꽁잇과에 속한 한 종인데 몸길이는 40㎜ 내외다. 뚱뚱하고 머리는 작으며 황색 바탕에 청색 또는 흑색의 무늬가 있다. 비가 오거나 날이 흐릴 때면 울음주머니를 가지고 있어서 요란하게 운다. 그 맹꽁이가 묘하게 끼어든 것이다. 그런데 맹꽁이 울음을 두고 화자는 마디마디 절절하다고 말하고 있다. 삶은 절박하고 절절한 것이라는 뜻으로도 읽을 수 있겠다. 간절함의 결핍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만큼 절절한 맹꽁이 울음을 통해 우리는 무언가를 깨달아야 한다. 물소리를 더욱 가까이 해야 하고, 풀벌레가 우는 들길이나 숲길을 걷는 여유로운 시간을 더 많이 가져야 한다. 며칠 전 늦은 저녁 무렵 교회당이 보이는 언덕바지 숲에서 매미울음과 함께 개구리 합창소리가 들렸다. 도심지에서 들려오는 개구리 울음소리는 오랫동안 마음을 울렸다.약삭빠른 데라고는 전혀 없어 하는 짓이나 말이 답답한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이 맹꽁이인데 앞으로는 이 말을 그런 뜻으로 써서는 안되겠다. 쟁기발개구리, 라고도 부르는 맹꽁이는 멸종위기 야생생물이다. 사라지지 않도록 잘 보살펴야 마땅한데 사람을 두고 그렇게 부르는 것은 온당치 않겠다. 지구촌에 있는 모든 생물뿐만 아니라 무생물까지도 소중한 존재다. 흙이나 돌과 바위가 생물이 아니라고 말할 수가 없다. 그들은 모두 미생물을 품고 있고 생명의 토대가 아닌가?단시조 ‘살겠다는 소리’는 확대해서 생각하면 환경 문제도 내포돼 있다. 간절함과 더불어 살기 위해 이렇듯 갖은 정성을 다 쏟는다면 삶의 질은 분명히 달라질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살겠다는 소리’를 다시금 조용히 읊조려본다. 이정환(시조 시인)

마이다스의 손/ 이상규

손녀 윤이의 웃음소리는/ 마이다스의 손이다/ 추석에 대구를 다녀가면서/ 떨궈놓은 웃음소리/ 베란다 창가에 자글거리며 내려앉는다// 온통 황금빛으로/ 쏟아져 나오는 웃음소리는/ 창문과/ 발을 담근 물과 / 불어오는 바람과/ 하늘의 별까지// 손녀 윤이는/ 키들거리는 웃음소리로/ 추석 무렵의 수성못 들안길과 그의 침실과/ 갖고 놀던 장난감 자동차와// 아내의 얼굴과/ 아침 배달 조간신문과/ 멍멍이와 침대와 소파와/ 훈민정음 해례본과/ 여진족이 쓰던 문자와/ 그리고 손녀가 머물던 빈자리까지/ 일상의 기쁨이 환하게 퍼진다「수성문학」 (수성문인협회, 2020)마이다스는 만지는 모든 것을 황금으로 바꾸는 신화 속의 왕이다. 마이다스는 미다스의 영어식 표현이다. 최근 모든 고유명사는 그 지방에서 불리는 대로 불러주고 있다. 미다스는 기원전 8세기 무렵 소아시아 프리기아의 왕이다. 알렉산더대왕이 칼로 잘랐다는 ‘고르디우스의 매듭’, 그 일화로 유명세를 얻은 고르디우스 왕의 아들이다.탐욕스런 미다스 왕은 디오니소스에게 손을 대면 황금이 되는 신통력을 달라고 간청했다. 디오니소스는 그 소원을 들어주었다. 미다스는 주위 물건을 닥치는 대로 황금으로 만들었다. 만지기만 하면 황금이 되니 좋기도 했지만 문제도 심각했다. 닿기만 하면 황금으로 변하니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다. 자기 딸도 황금조각상으로 변했다. 미다스는 디오니소스에게 다시 원래대로 되돌려달라고 간청했다. 원래대로 돌려주었다고도 하고 그대로 살다 죽었다고도 한다. 인간의 탐욕을 경계한 신화로 보이지만 이재에 능한 사람을 칭찬하는 말로 전화됐다.시인은 손녀 웃음소리가 미다스의 손이다. 손녀 웃음소리에 주위의 모든 것들이 몽땅 황금으로 변한다. 황금은 재화나 재물이 아니라 즐거움과 행복의 메타포다. 손녀 웃음은 삼라만상에 생기를 불어넣고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에 사랑과 즐거움을 준다. 그 웃음의 여운마저 마법을 부린다. 창문과 침대, 소파와 장난감에서 손녀의 웃음자락이 묻어난다. 물과 바람과 별까지 미소 짓는다. 손녀와 걷는 길은 축복이다. 들안길을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활기차고, 상화공원 시비에 새겨진 ‘나의 침실로’도 반갑다. 조간신문에 좋은 소식이 실려 온다. 훈민정음해례본과 여진문자도 새삼스럽다. 일상이 흥미롭고 재미있다. 아내도 넌지시 웃고 있다. 손녀 웃음소리가 부린 마법이다.귀여운 손녀만큼 사랑스러운 건 없다. 아들 딸 낳고 살았지만 사랑스러운 줄 몰랐는데 손녀를 얻고 보니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 없다. 먹고살기 바빠서, 아들 딸 재롱을 제대로 못 보고 살았다. 누구든 손녀를 볼 즈음이면 삶의 힘겨움에서 조금 빗겨나 여유를 갖는다. 그때 찾아오는 손녀의 재롱은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인생의 즐거움이다. 흔히 인생삼락이라고 하면 공자를 생각하지만 실상 사람마다 그 내용은 각기 다를 것이다. 첫째 자식 키우는 즐거움, 둘째 배우는 즐거움, 셋째 일하는 즐거움을 인생삼락으로 꼽는다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터이다. 시인은 손녀바보다.세상에 공짜는 없다. 자식 키우는 즐거움을 맛보기 위해서 적잖은 진통과 희생이 따른다. 대가를 치르지 않고는 인생삼락 어느 것도 즐거움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인생삼락을 무엇으로 채워 넣는다 하더라도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결혼하지 않고 애도 낳지 않는 최근 풍조는 극단적 이기심의 발로다. 그런 젊은이들에게 감히 이 시를 한번 읽어보라고 권한다. 오철환(문인)

가장 안쪽/ 김영순

잠시 잠깐 뻐꾸기 울음이 그친 사이/ 삼백 평 과수원에 삼천 평 노을이 왔다/ 넘치는 감귤꽃 향기 더는 감당 못하겠다// 이렇게 내가 나를 이기지 못하는 시간/ 하루 일상 시시콜콜 어머니 전화가 온다/ 말끝에 작별인사를 유언이듯 하신다// 어제는 방석 안에 오늘은 속곳 속에/ 당신의 장례비를 꽁꽁 숨겨 두었단다/ 치매기 살짝 스며든,/ 세상의 가장 안쪽시조선집, 「그런 봄이 뭐라고」 (고요아침, 2019)김영순 시인은 제주 출신으로 2013년 ‘영주신춘문예’와 ‘시조시학’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조집 「꽃과 장물아비」와 「그런 봄이 뭐라고」가 있다.‘가장 안쪽’에는 근원적인 슬픔이 배어 있다. 첫수에서 잠시 잠깐 뻐꾸기 울음이 그친 사이에 삼백 평 과수원에 삼천 평 노을이 왔다, 라고 노래하고 있는데 삼백 평을 삼천 평으로 부풀리고 있는 대목에서 시인의 남다른 스케일과 기발함을 엿본다. 더구나 넘치는 감귤꽃 향기 더는 감당 못하겠다, 하는 내적 파장조차 이채롭다. 이렇게 내가 나를 이기지 못하는 시간에 하루 일상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전하는 어머니의 전화를 받는다. 말끝에 작별인사를 유언이듯 하시는데 들어보니, 어제는 방석 안에 오늘은 속곳 속에 당신의 장례비를 꽁꽁 숨겨 두었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사연을 화자는 단 두 줄로 끝맺는다. 치매기 살짝 스며든 세상의 가장 안쪽이라고. 그런 안타까움을 세상의 가장 안쪽, 이라는 절묘한 구절로 육화해 독자의 심금을 울리며 긴 여운을 남긴다.그는 다른 작품 ‘꽃과 장물아비’에서 봄이면 따라비오름 초여름엔 사려니숲 유채꽃 종낭꽃 찾아 벌통도 따라 간다, 라고 독자의 시선을 끌면서 이사에 이골 난 차를 끌고 가는 유목의 피임을 환기한다. 그리고는 곧장 나더러 장물아비라고, 미필적 고의라고 하며 반문한다. 이 표현은 다소 도발적이다. 나는 단지 벌통을 꽃 곁에 놓았을 뿐 꽃 속의 꿀을 훔친 것은 저들의 짓이 분명하다, 라고 항변하고 있는 것도 그렇다. 끝 수 벌의 몸을 통과해야 꽃물이 꿀이 되듯 내 가슴을 관통한 저 못된 그리움아, 라는 대목에서 이 시가 연시임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리고 그 사랑은 좌판도 흥정도 없이 야매로 팔고 가는 것이라고 끝맺고 있다.단시조 ‘감귤 따기’도 특색이 있다. 삼한사온 어디 가고 한 보름째 궂은 날씨임에도 모처럼 모처럼만에 사다리 타고 올라가서 하늘에 가위를 대고 노을을 따 내리고 있다고 노래한다. 모처럼, 을 두 번 되풀이한 점이 좋다. 짧은 시에 탄력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의 화자는 정작 가지에 달린 감귤은 따지 않고 더 높은 곳에 있는 하늘 한 모서리에 가위를 갖다 대고 노을을 따 내린다고 한다. 이 시조의 매력은 여기에 있다. 가지의 감귤은 현실이고 하늘의 노을은 이상이 아닐까? 감귤을 수확하면 먹거리가 되고 팔아서 이득을 얻는다. 하늘의 노을은 마음으로는 따 내릴 수 있지만 실현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상상으로는 얼마든지 가능하기에 닿을 길 없는 이상향에 대한 이러한 꿈꾸기는 우리의 삶이 결코 물질적인 데만 있지 않다는 사실을 잘 말해준다.우리는 흔하거나 일반화된 서정의 문맥을 보면 곧 고개를 돌리게 된다. 김영순 시인은 시조문단의 또 다른 목소리의 한 주인공이다. 그의 개성은 그 누구와도 다른 차별성을 확연히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자신의 특장을 잘 살려 나가는 시업의 길에 매진해 일가를 이뤘으면 한다.이 땅에 발 딛고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자신만의 가장 안쪽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그 가장 안쪽을 얼마나 잘 보듬고 가꾸어가는가에 따라 우리 인생의 결은 퍽이나 달라질 것이다. 이정환(시조 시인)

노아의 방주/ 박희섭

~종말의 순간에 필요한 것~…며칠째 비다. 비디오를 반납하라는 문자가 들어온다. 비디오대여점 여직원과 사귀고 있다. 그녀는 애인에게 차인 상처가 있는 스물다섯 살 예쁘장한 아가씨다. 오전엔 유치원 보모, 오후엔 비디오대여점 알바를 하는 성실한 처녀다. 스포츠센터에서 운동을 한 후 들를 터이다. 헬스클럽 회원권은 선물 받은 것이다. 거울에 몸을 비춰본다. 큰 키에 적당한 근육, 날씬한 허리와 탄력 있는 하체가 볼 만하다. 남자들이 부러운 듯 힐끔거린다. 운동을 마치고 지하상가에 있는 비디오대여점으로 간다. 그녀는 스토커 이야기를 하며 그의 눈치를 살핀다. 질투를 유발하여 그의 결단을 기다리는 것인지 모른다. 모른 척 넘어간다. 굳이 상처를 만드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한숨을 쉬는 그녀에게 쓸쓸함이 비친다. 그는 종말을 다룬 영화를 집중적으로 봤다. 그녀가 저녁에 만나자고 했지만 다른 선약이 있어 부득이 거절한다. 장마가 계속 되었다. 스포츠센터에서 운동을 마치고 사흘 만에 비디오대여점으로 갔다. 그녀는 없고 주인아저씨가 가게를 봤다. 그녀가 납치되었다고 한다. 그 스토커가 용의자로 꼽혔다. 그는 모텔에서 마흔여섯의 유부녀와 사랑을 나눈다. 그녀는 남편이 눈치 챈 것 같다며 당분간 그만 만나잔다. 그 대신 그녀 친구를 소개해 줄 테니 사귀어보라고 한다. 그녀 친구와 벌써 몇 달 전부터 관계하고 있는 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미안하다며 수표를 주고 간다. 사고로 사망한 어머니가 남긴 은행잔고가 없어지기 직전에 세상을 떠날 계획이다. 수표는 목숨을 연장시켜 줄 것 같다. 그는 노아의 방주를 본다. 여러 종류의 짐승들을 한 쌍씩 싣는다. 혼자인 그는 방주를 탈 자격이 없다. 잠자리를 했던 여자들이 남편들과 방주를 타고 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방주를 바라보고 있을 때 비디오대여점 그녀가 어깨를 흔든다.…그는 내일이 없는 청년이다.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가 자살하고 어머니 혼자 그를 어렵게 키웠다. 어머니마저 사고로 사망하였다. 어머니가 남긴 은행잔고로 근근이 살고 있다. 은행잔고도 보험금일 가능성이 크고 어머니의 죽음마저 보험금을 타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는지 모른다. 세상은 여전히 돌아앉아있다. 취업문을 수도 없이 두드렸지만 그 문턱은 너무 높았다. 돈을 아끼기 위해 쪽방과 고시원을 전전했지만 은행잔고는 자꾸 줄어들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은행잔고가 다하면 떠나는 길밖에 없다. 죽는 것도 쉽지 않다. 고통 없이 편안하게 죽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결심을 굳히고 나자 마음이 한결 가볍다. 더 이상 구질구질하게 살기 싫다. 임대아파트에 입주하고 여름 더위를 피해 수영장도 나갔다. 수영장에서 돈 많은 고위공무원 부인을 만났다. 고급헬스장 회원권도 받고 용돈벌이도 한다. 그녀의 친구도 몰래 만나 관계를 가졌다. 무료한 시간을 때우기 위해 영화에 빠졌다. 지구의 종말이나 인류의 멸종을 다룬 영화를 섭렵했다. 거의 나흘마다 비디오대여점에 갔다. 거기서 여직원과 눈이 맞았다. 가끔 만나 욕망을 채웠다. 그녀의 삶에 더 깊이 들어가고 싶진 않다. 은행잔고가 3분의 1로 떨어졌다. 은행잔고에 매인 인생이 그 이상 생각할 수 없다. 그런데 그녀가 실종되자 마음이 울적하다. 마음이 어수선한 중에 끔을 꿨다. 심판의 날이 오고 노아의 방주에 여러 종류의 짐승을 한 쌍씩 싣는다. 짝이 있는 사람만 탈 자격이 있다. 그 때 비디오대여점 그녀가 나타난다. 삶을 포기한 그에게 사랑이 찾아온 걸까. 사랑이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어 주길 소망한다. 오철환(문인)

징검다리/ 이승은

우리 다시 놓인다면/ 여울목 가장자리// 철없는 물살들을 곁눈질로 흘려보내며// 사무친 속앓이 같은 것/ 영영 모를 몸짓이게// 차고 희게 써 내리는/ 맹목의 속달편지// 뉘라서 숨 가쁘게 달려 나와 읽어줄까// 뭇별도 더는 못 가고/ 귀를 죄다 적시도록// 비껴간 세월의 더께/ 청태로나 받아 안고// 먼 골짝 급물살에 등이 휘어질 때까지// 버텨 갈 목숨인 것을/ 우리 다시 놓인다면, 시조집, 「환한 적막」 (동학사, 2007)이승은 시인은 서울 출생으로 1979년 ‘문공부·kbs 주최 전국민족시백일장’ 장원으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얼음동백」, 「넬라판티지아」, 「꽃밥」, 「어머니, 윤정란」과 시조선집 「술패랭이꽃」 등이 있다. 특히 지난해 펴낸 「어머니, 윤정란」은 시력 40년을 넘어선 시인의 역량이 총 결집된 시조집으로서 어머니에 대한 헌사이자 사모곡이다. 그의 능숙한 말 부림과 남다른 언어 감각에 진정성을 더한 밀도 높은 시조집으로 일평생 오직 한 길을 묵묵히 걸었기에 얻을 수 있는 주옥편이다.‘징검다리’는 수미쌍관법을 원용하고 있다. 흔한 기법일지라도 이 시조에서는 아주 적절하게 활용돼 작품의 완성도를 높인다. 우리 다시 놓인다면 여울목 가장자리 철없는 물살들을 곁눈질로 흘려보내며 사무친 속앓이 같은 것 영영 모를 몸짓이게, 라는 대목에서 보듯 서정의 결이 곱다. 화자의 귀엣말을 귀담아 들으며 눈으로 따라가다 보면 마음이 서나서나 평화로워지는 것을 느낀다. 이런 것이 곧 문학 치료, 시 치료가 아닌가 싶다. 차고 희게 써 내리는 맹목의 속달편지 뉘라서 숨 가쁘게 달려 나와 읽어줄까, 뭇별도 더는 못 가고 귀를 죄다 적시도록, 이라는 둘째 수도 첫수와 마찬가지로 미완성 문장이다. 셋째 수도 마찬가지다. 비껴간 세월의 더께 청태로나 받아 안고 먼 골짝 급물살에 등이 휘어질 때까지 버텨 갈 목숨인 것을, 우리 다시 놓인다면, 까지 읽노라면 인생은 무엇이며 우리가 꾸는 꿈은 또한 무엇이며 영원무궁한 세계는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징검다리’에서 철없는 물살들, 맹목의 속달편지, 먼 골짝 급물살과 같은 개성적인 구절이 군데군데 적절히 놓여 이 시편의 밀도를 높이고 있는 것도 감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포인트다.그는 또 단시조 ‘굴절’에서 섬세한 관찰이 가져온 인생 담론을 작품 속에 녹이고 있다. 일찍이 이호우는 ‘午’라는 작품에서 과학 용어로 쓰이는 팽창이라는 시어를 적절하게 쓴 일이 있다. ‘굴절’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살면서 적지 않은 굴절을 겪는다. 흔히 과학실에서 빛의 꺾임을 실험할 때 물이 담긴 수조에 쇠막대기 같은 것을 세우는데 이 작품에서는 발목이 등장하고 있다. 인상적이다. 물에 잠기는 순간 발목이 꺾인다는 진술은 일견 평범한 듯해 보이지만 보기에 그럴 뿐이지 다친 곳은 없다는데, 라는 중장이 뒷받침되면서 뭔가 놀라운 결말에 이르리라는 예측을 하게 된다. 그래서 결구인 종장에서 근황이 어떻습니까, 아직 물속입니까, 라는 연속된 질문 앞에 잠시 어리둥절해지다가 어떤 깨달음 같은 것을 얻게 된다.이승은 시인은 등단 이후 40여 년을 하루같이 시조 창작의 길을 열정적으로 걸어왔다. 자신의 전 생애를 바쳐 한 길을 걷는다는 것은 어떤 확고한 소명의식 없인 불가능한 일이다.굴절이 많은 삶, 굴곡진 길일지라도 끝까지 버텨 갈 존귀한 목숨이기에 우리는 서로서로에게 징검돌로 놓이기를 마다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이정환(시조 시인)

내려야 할 역을 지나쳐 버렸다/ 박복조

딸이 겹겹이 둘러준 목도리가/ 깊은 졸음으로 빠져들게 한 KTX/ ‘밀양’ 소리 듣고 엉겁결 내렸을 때/ 나는 어둠에 부려졌고/ 어둠의 끄트머리에 섰다// 박차고 달리는 열차와 우듬지만 바라보고 달리던/ 내가 서로 휘어져 있다// 다시 구름다리 오르내려/ 막차표에 찍힌 “오승”이라는/ 시퍼런 낙인,/ 다시 거슬러 오르는 물고기 한 마리 떨고 있다// 달리는 세월에 얹혀/ 자주 내려야 할 역을 놓치고/ 빈 레일 위를 연어가 되어 돌아 선다// 막차 맨 뒷자리에도/ 불빛은 따스한 것/ 거슬러 오르는 비늘이 어둠에 환하다‘대구문협대표작선집’ (대구문협, 2013)버스와 기차를 탈 때 그 느낌이 조금 다르다. 장거리 버스는 보통 승객이 함께 내린다. 혹시 자고 있으면 기사가 깨워서 내려준다. 그렇기 때문에 버스의 경우 차를 놓칠까봐 출발 전엔 조금 불안하지만 일단 발판 위에 발을 올려놓는 순간 마음이 푸근하다. 마치 목적지에 도착한 기분이 든다. 추락 위험을 뺀다면 비행기도 비슷하다.반면 기차의 경우 좌석에 앉아도 일말의 불안감이 똬리를 튼다. 기차는 한 궤도로 전진할 뿐 후진하지 않는다. 혹시 내려야 할 역에 내리지 못하고 지나쳐 버리지 않을까 걱정이다. 승객들의 목적지가 제각기 다르며 정거장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기차에선 안내방송만 할 뿐 목적지에 내리도록 보장해주진 않는다. 졸거나 다른 생각에 골몰하다가 목적지에 못 내리기 쉽다. 목적지를 지나친다해도 다음 정거장에 내려서 역방향 기차를 환승하고 돌아오면 된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래도 웬일인지 작은 두려움이 가시지 않는다. 각 정거장 간 거리가 제법 멀고 역방향 기차로 환승해서 돌아오는 일이 성가시고 시간도 꽤 많이 소요된다. “오승(誤乘)”, “잘못 탔다”는 시퍼런 도장도 불쾌하다. 급박한 약속은 치명적이다. 이렇게 따져보면 기차의 모호한 불안감이 그저 무단히 이유 없거나 허황된 상상은 아니다.상상 속의 불안은 가끔 현실로 다가온다. 상상의 강도가 높거나 불안감에 깊이 휩싸일수록 마음이 약해지고 잠재능력이 저하된다. 겹겹이 둘러맨 목도리에 담긴 딸의 따스한 사랑이 머리로 전해져 정신을 빼앗은 데다 고속열차의 잔잔한 흔들림이 기분 좋은 시너지를 일으켰다. 시인은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잠시 눈을 감았다. 늘 우려하던 불안이 현실로 나타났다. 그나마 종착역까지 가지 않고 다음 정거장에 내렸다. 낯선 어둠이 시인을 맞는다. 앞만 보고 달리던 기차와 꼭대기만 보고 올라가던 시인이 엇갈린다. 역무실에서 “오승”이란 시퍼런 확인을 받으면 추가요금을 면제받는다. 그렇지만 유쾌한 기분은 아니다. 역방향 막차를 타고 돌아오는 기분은 묘하다. 어둠이 내린 철길을 따라 연어처럼 거슬러 올라간다. 돈을 더 쓴 것도 아니고 다시 목적지로 갈 뿐인데 울적한 기분에 젖는 건 웬일일까. 비단 시간이 아까운 때문만은 아니다. 예상했던 일이 벌어진 것인데 마음이 착 가라앉는다. 정신이 외려 영롱하다.지난 세월이 철길을 따라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무관심이나 과욕으로 목적지를 지나쳐서 소중한 인생을 허비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돌아본다. 가까운 곳에 있는 걸 보지 못하고 쓸데없이 멀리 갔다가 돌아오고 있지 않은지 모른다.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게 있다. 비록 목적지를 지나치긴 했지만 소중한 깨달음을 얻는다. 그 깨달음 속에서 마음은 더 성숙해지는 법이다. 막차 맨 뒷자리지만 따스하고 환하다. 오철환(문인)

기수역으로/ 박미출

간다,/ 세상사 모든 짐 짊어지고/ 가본 적 없고 닿을 기약 없는/ 일천 삼 백리 낙동강 먼 길,/ 가야만 한다.// 비린내 진동하는/ 살 맛 없는 땅,/ 속이고 당하는 비겁하고 싱거운 사회,/ 끌고 밀며/ 가야만 한다.// 을숙도/ 갈 숲 지나, 노적봉 백사장 넘어서/ 바람처럼 장군처럼/ 바다로, 바다로/ 세상을 절이러 가야만 한다.※기수역(汽水域) : 강물이 바다로 들어가 바닷물과 서로 섞이는 곳「부산시인」 (부산시협, 2018 봄)싱겁고 비린내가 진동한다. 싱거운 세상은 비리와 부패로 썩어 간다. 비린내 나는 세상이 코를 틀어막는다. 맛없고 냄새나는 세상을 살아가는 시인은 역겹고 숨쉬기조차 힘겹다. 살기 위해선 뭔가 획기적인 자구책이 필요하다. 낙동강 강둑에 서서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을 바라본다. 바람을 타고 을숙도 갈대밭에 찾아온 철새들이 짐을 풀고 다음 여정을 준비한다. 긴 여로에 필요한 에너지를 충전하고 있다. 바람 앞에 등불 같은 조국을 지키기 위해 밤잠을 설치던 이순신 장군의 얼이 노적봉 백사장에 어린다. 어지러운 세상사에 치여 멍든 마음을 흐르는 강물에 실어 보낸다. 시심이 불꽃처럼 머리를 친다. 비리와 부패로 가득 찬 세속의 짐을 강물에 실어 바다로 보내는 거다. 짠 바닷물은 싱거운 세상사에 간을 맞추고 소금은 비린내를 말끔히 제거하리라. 그야말로 일거양득이다. 낙동강은 1천300리 대장정을 간다. 강물은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기대와 열망을 싣고 두려움을 간직한 채 먼 길을 떠난다. 비록 가본 적도 없는 초행길이지만 믿음을 갖고 용기를 내어 첫발을 내딛는다. 미지의 세계를 향해 위험한 모험을 감행한다. 정의롭고 행복한 세상을 향한 간절한 소망이 진정으로 가슴에 와 닿는다. 싱거운 강물엔 바다의 소금이 특효약이다. 비겁한 세상엔 세찬 파도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가 필요하다. 무거운 짐을 싣고 먼 길을 떠나기가 겁나지만 바다로 가는 길이 세상을 구원하는 방법이다. 바다로 가야만 하는 존재론적 당위성과 시인의 천부적 의무감이 갈 길을 재촉한다. 이순신 장군이 왜군을 물리친 노적봉을 휘돌아 가다보면 무심한 강물인들 어찌 감읍하지 않으리. 멀리서 온 을숙도 손님을 만나면 아무리 밋밋한 민물이라 하더라도 바람처럼 당당하게, 철새처럼 호기롭게, 어찌 힘차게 나아가지 않으리. 풍진 세상을 정화하고자 하는 시심이 세상사 티끌을 강물에 안고 마침내 드넓은 바다에 이른다. 때 묻었던 시(詩)가 파도에 씻긴 하얀 얼굴로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말간 목소리로 희망을 노래한다.부패한 세상사를 온몸으로 아파하며 해결책을 찾아 몸부림치는 절절한 모습이 눈에 선하다. 수렁으로 빠져드는 삶 앞에서 도리가 없다는 이유로 마냥 보고만 있을 수 없다. 세상사 모든 추악한 짐을 지고 강물로 뛰어든 올곧은 용기와 정의롭고 행복한 세상을 향한 열정이 뜨겁게 전해온다. 시인이 꿈꾸는 정의롭고 행복한 세상이 꿈으로만 남아있기엔 함께하는 감동이 너무 진하다. 혼자 꾸는 꿈은 그냥 꿈으로 남지만 모두 함께 꾸는 꿈은 실현되는 법이다. 비록 꿈으로만 그친다 하더라도 희망을 갖고 쉼 없이 가야 한다. 내일 세상의 종말이 온다 하더라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다는 자세로 매진할 따름이다. 멀고 험한 여정을 마다하지 않은 낙동강처럼, 바다에 닿아 영원히 썩지 않는 몸으로 새로이 태어난 강물처럼,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기수역을 향해 달려간다. 반드시 정의롭고 행복한 세상이 열릴지니. 오철환(문인)

돌담장/ 황만성

커다란 돌은 밟고/ 조그만 돌을 이고// 돌 가운데 버티고서/ 돌담장이 되고만 나// 사는 건/ 보이지 않는/ 돌덩이와의 마주침// 부대끼면 안아주고/ 간간이 업어도 주면// 등지고 앉았어도/ 느끼는 너의 체온// 그렇게/ 나를 주면서/ 돌담장이 되고만 나// 보잘 것 없었지만/ 너를 맞아 둘이 되고// 어설픈 꿈도 꾸며/ 돌담장 된 나를 본다// 세상은/ 돌들이 만나/ 담장 쌓는 곳이다시조집, 「세상은 돌들이 만나」(작가, 2019) 황만성 시인은 경북 포항 출신으로 2015년 시조시학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세상은 돌들이 만나」가 있다. 첫 시조집의 표사에서 이숙경 시인은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살아가다 그 치열함에 지쳤을 때 사람들은 가끔 자연의 위안을 받으러 찾아가는 것이 일반적인 삶의 모습인데 황만성 시인은 이와는 반대로 자연에서 살며 시의 텃밭에 삶을 일구고 시의 집으로 거둬들이는 사람이다. 그가 마침내 가야할 산이었던 가야산 자락에서 봄에는 뻐꾸기 울음을 허공에 매어놓고 여름에는 바랭이와 싸워가며 삶의 당위성을 깨닫는다. 가을이면 바람이 내려와 이르는 소리를 듣고 겨울에는 물동이에서 튕겨 나온 얼음가시를 볼 수 있는 일에서 보듯 그의 말과 글은 모두 가야산을 매개로 이루어진 소통의 산물이다. 삶을 시지프스에게 내린 형벌로 생각하지 않고 조그만 돌을 이고 사는 삶, 돌들이 만나 담장 짓는 이야기로 생각하는 시인의 긍정은 결국 내 안의 나를 만나 둥글둥글 초 두루미가 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시를 생산하게 만들었다”라고 말했다. 또한 김양희 시인은 “돌이 사람이고 사람이 돌이다. 돌 속에 사람이 살고 사람 속에서 돌이 사는 걸 이미 알아버린 시인은 돌로 노래한다. 돌의 노래는 부드러운 리듬이며, 아름다운 선율이다. 시인의 손에서 돌이 위치를 바꾸거나 자리를 이동하며 뛰어논다. 어떤 돌을 만지든 손에는 돌의 세포가 떨어지고 세포가 번식하면 글을 만든다. 돌가루가 시조로 태어났다. 가루는 시인의 본성이다. 그 결정체가 「세상은 돌들이 만나」이다”라고 평했다. ‘돌담장’은 읽을수록 맛이 난다. 자연스럽게 전개돼 읽는 이로 하여금 시속으로 푹 빠져 들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시인은 번잡한 도회지를 떠나 가야산 자락에 둥지를 틀면서 새로운 청록파를 개척 중이다. 흙과 더불어 온몸으로 살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커다란 돌은 밟고 조그만 돌을 이고 돌 가운데 버티고서 돌담장이 되고만 나라는 표현에서 나와 돌담장의 합일을 읽는다. 그런 뒤 사는 것은 보이지 않는 돌덩이와의 마주침임을 제시한다. 부대끼면 안아주고 간간이 업어도 주면 등지고 앉았어도 너의 체온을 느낀다. 보잘 것 없었지만 너를 맞아 둘이 되고 어설픈 꿈도 꾸며 돌담장 된 나를 보면서 종국에 이르러 세상은 돌들이 만나 담장 쌓는 곳임을 깨닫는다. 그는 또 ‘도읍지’라는 시조에서 철든 남자는 가슴으로 꿈꾼다고 노래한다. 또한 하늘 아래 서 있든 땅위에 누워 있든 어쨌든 그 꿈을 키우려고 하루해를 지운다고 본다. 그러다가 남자는 자신만의 도읍지를 꿈꾼다, 라고 내심을 드러낸다. 배포가 큰 서슴없는 발언이다. 눈높이나 뼘에 맞춰 작고 낮든 크고 넓든 가슴에 하늘땅 담아 별빛 가득 안는 꿈이라는 결구에서 그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시인은 여러 해 전 그만의 도읍지를 열고 스스로를 시를 쓰는 농부 즉 시농이라고 부르면서 농장을 돌보고 시의 텃밭을 일구는 일에 땀을 흘리고 있다. 더불어 시조 창작을 통해 도읍지에 의미를 더하고 있다. 돌담장이 한 가정의 든든한 울타리가 돼 그만의 도읍지에서 영원복락을 꿈꿀 수 있다면 이보다 더한 행복이 또 어디 있으랴. 이정환(시조 시인)

편자 발굽 아래에서/ 엄창석

~개발과 보존의 틈새에 낀 인생~…나는 ‘D시 뉴타운 심포지엄’에서 건축물에도 시간이 흐르게 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그때 중절모를 쓴 영감과 만났다. 그는 고서점을 하는 사람으로 D시에서 고서점을 했던 친척 아저씨를 잘 알고 있었다. 고서점이란 직업 탓인지 건축물에 대한 철학이 비슷했다. 그 한 달 뒤 뉴타운 예정지를 살펴보러 D시에 왔다가 서점 영감을 다시 만났다. 서점은 거의 중고서점 수준이었다. 서점 영감과 나의 연결고리인 친척 아저씨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동서대로를 내는 과정에서 D시와 투쟁한 내용은 일치했지만 그 연도가 십 수 년이나 차이가 났다.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함께 먹었다. 자연스레 친척 아저씨의 투쟁이 화제가 되었다. 곁에서 밥을 먹던 청년 하나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친척 아저씨가 시와 투쟁하는 척 하면서 뒷돈을 챙겼다고 이죽거렸다. 알박기라는 거였다. 나는 기이한 혼란에 빠졌다. 찜찜한 기분에 뉴타운 예정지를 둘러보지 않고 다음 출장지인 밀양으로 갔다. 밀양에서 머무르는 기간 내내 친척 아저씨를 둘러싼 의혹 때문에 혼란스러웠다.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강한 호기심에 이끌려 D시에서 내렸다. 서점 영감을 뉴타운 예정지로 불러내었다. 서점 영감보다 더 나이 든 노인이 그 인근에서 구두수선가게를 하고 있었다. 구두수선가게 주인은 친척 아저씨를 잘 안다면서 자질구레한 일화를 늘어놓았다. 옥상에서 고서를 장벽처럼 쌓아놓고 투쟁했다는 사실만 일치할 뿐 뒷얘기는 서로 달랐다. 편자에 끼인 것처럼 고서점이 함석판 담에 둘러싸여 모두 서점이 없어진 줄 알았다고 했다. 도로포장공사가 끝나고도 도로 복판에 말발굽 모양으로 담이 세워져 있고 그 안에 고서점이 그대로 있었다는 애기였다. 집이 철거된 공사장 담장 안을 둘러보았다. 담장 끝에 반양옥 한 채가 남아 있었다. 그 집은 편자 모양의 담장에 밟힌 형상이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갈색 잠바를 입은 남자가 그 집 대문을 열고 나왔다.…낡은 집들을 깡그리 헐고 최신학문을 반영한 마스터플랜을 마련해서 그에 따라 토지의 고밀도 최유효이용을 도모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 과정에서 때와 곳을 막론하고 토착원주민과의 갈등이 생긴다. 사람이 살다보면 땅에 대한 사적인 감정이나 사사로운 애정이 없을 수 없다. 일괄적인 개발이 진행되면 자질구레한 사연을 무시하고 불도저식으로 일사불란하게 밀어붙인다. 조폭이나 불량배들이 동원되기도 하고 검은 거래가 개입되기도 한다. 말 그대로 복마전이다. 충돌과 비극이 수시로 불거진다. 그런 사건이 소설이나 영화로 드라마틱하게 가공되기도 한다. 여론은 주로 약자 편에 서지만 각 개인은 개발을 선호하는 편이다.통상 개발정보가 새어나가 땅 투기가 인다. 알박기도 성행한다. 개발과정에 대항해 여론을 등에 업고 끝까지 버팀으로써 땅값이나 뒷돈을 최대한 챙기는 수법이 이른바 알박기다. 동정여론에 밀려 사업이 지체되는 상황으로 발전되기 전에 사업자가 알박기 투기꾼과 뒷거래하는 관행이 일반적이다. 잘 되면 한 방이 크긴 하나 웬만한 강심장 배짱이 아니고는 성공하기 힘들다. 친척 아저씨를 잘 안다는 사람들마다 그 투쟁 내용은 유사하지만 시기나 각론이 조금씩 다르다. 처음 도로 편입 땐 순수한 의도였지만 차츰 알박기에 맛을 들여 메뚜기처럼 사업지마다 들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친척 아저씨가 알박기 상습범으로 전락한 것을 암시한다. 집이 압축된 시간, 기억과 상상을 담고 있다면 개발도 좋지만 보존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오철환(문인)

촉수어 고백/ 양시연  

촉수어, 촉수어란 그 말 처음 듣는 순간/ 인터넷 검색 창을 두들겨도 소용없고/ 퇴근길 발길들마저 고기 떼로 보이네// 손으로 보고 듣고, 손으로 말을 하는/ 막냇동생 그 또래 손말 하는 농맹인 현 씨/ 삼십년 농인이었는데 이제는 눈조차 멀어// 그래, 이쯤은 돼야 사랑이라 할 수 있겠네/ 눈멀기 전 눈 맞췄던 그 이름 뱉지 못해/ 가슴 속 사라진 사랑 가슴에 붙여 사네// 누군들 이름 하나 숨겨놓지 않았을까/ 마침내 내 손바닥에 그려내는 첫사랑/ 오늘은 찬찬히 꺼내 촉수어로 고백하네「정음시조2」 (작가, 2020)양시연 시인은 제주 출신으로 2019년 ‘문학청춘’ 신인상 시조 당선으로 등단했다. 여성상담 일을 하면서 무엇인가 자꾸 말하려는 이를 만났는데 도저히 그 말과 몸짓을 알아듣지를 못해 수어(手語) 공부를 하면서 손말의 뜻을 알아낸 경험을 가진 시인이다. 특히 그는 작품에서 수어를 손말, 이라고 처음으로 썼다. 굉장히 정감이 가는 새롭게 창조된 어휘다. 그래서 스스로 손말을 두고 하늘의 언어, 라고 명명했다.‘촉수어 고백’은 최근 정음시조문학상 운영위원회에서 발간한 「정음시조2」에 수록된 작품이다. 수어에서 발전한 말이 촉수어다. 그래서 화자는 촉수어란 그 말을 처음 듣는 순간 인터넷 검색 창을 두들겨도 소용없고 퇴근길 발길들마저 고기 떼로 보일 정도였다고 노래한다. 동음이어를 연상케 하기 때문에 퇴근길 발길들이 고기 떼로 보일만하다.손으로 보고 듣고, 손으로 말을 하는 막냇동생 그 또래쯤 되는 손말 하는 농맹인 현씨는 삼십년 농인이었는데 이제는 눈조차 멀어버렸다. 삼십년 동안 말을 못하면서 살아온 것도 힘들었는데 눈마저 보이지 않으니 얼마나 답답한 일일까? 그래서 그래 이쯤은 돼야 사랑이라 할 수 있겠다고 말하면서 눈이 멀기 전 눈 맞췄던 그 이름을 뱉지 못해서 가슴 속 사라진 사랑을 가슴에 붙이고 사는 것이라고 노래한다. 농맹인 현씨가 눈으로 본 모든 것을 이젠 볼 수 없지만 또렷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얼마나 다시 보고 싶은 정경일까? 그 애타는 마음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일이다. 삼중고의 삶이 시작됐기 때문이다.화자는 더 나아가서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이 이름 하나 가슴속에 숨겨놓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마침내 손바닥에 그려내는 첫사랑을 찬찬히 꺼내 촉수어로 고백한다. 그렇듯 촉수어는 고기 떼를 연상케 하지만 물론 고기는 아니다. 안타깝지만 손으로 내 뜻을 표현하면서 손으로 끊임없이 접촉하는 중에 의사소통을 이루는 길이다.‘촉수어 고백’에는 따뜻한 인간애가 전편에 잘 녹아 있다. 시대를 받아들이는 감각이 돋보인다. 글을 쓰는 일은 늘 독자를 전제로 한다. 자신이 쓴 글을 먼저 자신이 감동해야 마땅하다. 그때 지면으로 활자화해도 좋을 것이다. 일반인들은 쉽지만 의미 있는 시를 선호한다. 국민 애송시 윤동주의 ‘서시’가 그 표본이 될 것이다. 어려우면서 의미 있는 시보다 훨씬 좋기 때문이다. 쉽긴 하지만 별다른 감흥이 없거나 새로운 느낌을 전혀 주지 못한다면 실패한 시다.‘촉수어 고백’은 좋은 시다. 한 번 읽고 나서 돌아서서 다시 읽고 싶은 마음이 든다. 연행 사이 감정의 결을 따라 음미하노라면 행복감을 느낀다. 마음에 다함없는 잔물결을 일으킨다. 촉수어가 좋고 촉수어 고백, 이라는 말이 무장 좋다. 사람을 지극정성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오롯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정환(시조 시인)

사랑의 되뇌임/ 엘리자베스 배닛 브라우닝

사랑한다고 말해주세요, 한 번 더, 다시 한 번 더, 거듭거듭 말해주세요/ 사랑한다고 자꾸 말하면/ 남에겐 뻐꾸기 울음처럼 들리겠지만/ 잊지 마세요/ 뻐꾸기 울음소리 없이는 결코/ 상큼한 봄이 연초록 빛 치장을 하고/ 산이나 들에, 산골짝과 숲에 찾아오지 않아요./ 사랑하는 이여, 당신의 그 마음을 확인할 수 없는 사랑의 고통 때문에/ 칠흑 속에서 만나서/ 안달 난 영혼의 목소리로 외쳐봅니다./ "사랑한다고 다시 한 번 말해주세요"하고 소리쳐봅니다/ 온갖 별들이/ 온 하늘을 제각기 수놓는다 해도/ 너무 많다고/ 두려워할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온갖 꽃들이/ 저마다 연중 내내 꽃피운다 해도/ 너무 많다고/ 두려워할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라고 말해주세요/ 그 달콤한 말을 거듭거듭 말해주세요/ 또한 잊지 마세요/ 말없이 영혼까지 사랑한다는 것을「엘리자베스 브라우닝의 사랑시」 (지식을만드는지식, 2011)사랑의 감정을 처음부터 아는 사람은 없다. 사랑이 지나간 다음이라고 해 딱히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알 듯 모를 듯 알쏭달쏭 하지만 결국 모르는 것이 사랑이다. 그런 점에서 사랑은 우주다. 장님이 코끼리를 더듬어 봐야 그 실체를 알기 힘든 것처럼 인간은 몸부림을 쳐봐야 광대무변한 우주의 실체를 명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하물며 사랑 앞에 눈멀고 귀먹은 연인들에게야 더 말해 무엇 하랴. 수천 년 동안 나름대로 진솔한 마음으로 자기가 겪은 사랑을 노래해 왔지만 그 본질을 다 밝혀내지 못했다. 다들 자기가 본 것만 각자 느낀 대로 풀어냈다. 지금도 자기 식으로 자기만의 노래를 부르고 있을 뿐이다. 앞으로도 이러한 주관적인 사랑의 노래는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사랑은 애매모호하다. 사랑은 변덕스럽다. 자신의 마음도 스스로 제대로 확인할 수 없다. 갈대와 같이 수시로 변하는 마음은 종잡을 수조차 없다. 자신의 마음이 마음대로 통제되지 않는 것을 어찌하랴. 그러나 그것도 잠시일 뿐, 사랑의 도화선에 불이 붙으면 훨훨 타오르는 건 시간문제다. 자신의 마음이 불붙기 시작하면 상대방의 마음을 들어다 보려고 애를 쓰게 마련이다. 자신의 마음도 알기 힘든데 남의 마음을 어떻게 알겠는가. 가끔 그 징표를 얼핏 엿보기도 하고 그 느낌이 가슴에 와 닿기도 한다. 그렇지만 보고 느낀 그것이 자신을 향한 사랑인지 확신할 순 없다. 시시각각 서로의 마음이 변한다. 그 마음의 실체를 알 방법은 없고 이런저런 징후로 짐작만 무성하다.사랑은 인간이 예방할 수도 없고 치유할 수도 없는 신비한 열병이다. 사랑은 조물주가 인간을 위해 준비한 회심의 비기다. 사랑에 빠져들면 이성은 얼어붙는다. 길을 잃고 미로를 헤매다가 스스로 마음의 사슬을 묶고 기꺼이 노예가 된다. 고통을 선뜻 받아들인다. 불안함과 초조함으로 입술이 바짝 마르고 속까지 타들어가 숯덩이가 된다. 갈대처럼 흔들리는 마음을 느끼곤 불안·초조해한다. 그대만은 대쪽 같을 것이라고 거듭거듭 골 백번 다짐해 보지만 바람만 언뜻 불어도 자기 믿음마저 갈대마냥 눕고 만다. 시시각각 수시로 사랑을 확인해보고 싶다. 그래서 눈빛이 마주 칠 때마다 거듭거듭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다. 아무리 많이, 아무리 자주, 사랑을 속삭여줘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 사랑이란 말을 듣지 않으면 이내 곧 불안하다. 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는 시인에겐 사랑의 고백과 끝없는 확인이 묘약이다. 오철환(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