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람 눈보라에 제일 먼저 닿는/탑신//제일 밑바닥에 남아 사람 만드는/초석//온몸이/모서리가 된/둥근 이름/어머니「세상의 모든 딸들」(2023, 서울셀렉션) 김일연 시인의 시조에는 어머니가 자주 등장한다. ‘어머니’를 비롯해 ‘딸’, ‘별’, ‘수묵’, ‘극락강’, ‘만추’, ‘잿등’, ‘잠옷’, ‘관음 어머니’, ‘국숫집에서’, ‘꽁치 한 마리’, ‘헛꽃’, ‘향수’ 등이다. 어머니를 그리는 마음이 지극하다. 누구의 어머니인들 그렇지 않겠는가?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성인에 가깝다. 그래서 ‘어머니’는 간절하게 노래하고 있다. 비바람 눈보라에 제일 먼저 닿는 탑신이 바로 어머니라고. 백번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당신의 목숨이라도 내놓을 수 있다. 그렇기에 비바람 눈보라를 온몸으로 맞서 막아낸다. 조금의 두려움도 없이 그 일을 감당해낸다.시의 화자는 또 다시 뜨겁게 은유한다. 제일 밑바닥에 남아 사람 만드는 초석이 바로 어머니라고. 제일 밑바닥은 가장 큰 무게를 감당해야 하는 지점이다. 어머니는 기꺼이 그 자리를 지킨다. 받치다가 숨이 끊어질지언정 초석이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머니는 온몸이 모서리가 된 것이다. 그렇지만 어머니는 둥근 이름을 가진 분이다. 한없이 인자한 어머니, 그 어머니를 한 편의 단시조로 함축하여 이렇게 애절한 사모곡을 썼다. 어머니에게 바칠 수 있는 최상의 헌시다.김일연 시인은 ‘별’이라는 시조에서 가족사를 잔잔하게 그리고 있다. 정겹기 이를 데 없는 한 폭의 수채화 같다. 연필을 깎아주시던 아버지가 계셨다. 밤늦도록 군복을 다리던 어머니가 계시고 마당엔 흑연빛 어둠을 벼리는 별이 내렸다. 총알 스치는 소리가 꼭 저렇다 하셨다. 물뱀이 연못에 들어 소스라치는 고요 단정한 필통 속처럼 누운 가족이 있었다. 이렇게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연필과 아버지, 군복 다리던 어머니, 마당의 별, 총알 스치는 소리, 연못의 물뱀, 단정한 필통 가족과 같은 생생한 이미지들이 연첩되면서 마음을 울컥하게 한다. 평화롭고 따사로운 가족애로 말미암아 그리움이 북받쳐 오른다.시를 쓰는 그 누구인들 그렇지 않으랴마는 김일연 시인의 간절함은 특별하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작품을 늘 간절함, 이라는 정서를 동반하여 형상화하고 있다. 단시조 ‘오동도 동백꽃’이 그것을 잘 말해준다. 어제는 하늘 끝까지 갔다가 되돌아오고 오늘은 바다 끝까지 갔다가 되돌아와요. 붉은 꽃 더 붉게 지면 당신을 잊을까요. 용창선 시인은 한 사람을 잊는데 한 평생이 걸린다고 노래했는데, 김일연 시인은 한 천년이 걸려도 당신, 이라는 존재를 잊지 못할 듯하다. 사랑은 몹시도 깊고 아득한 것이기에,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길이 없기에…….이정환(시조 시인) 김광재 기자 kjk@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