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삼우기업 김준현 대표

▲ 대구시 달성군 논공공단에 위치한 삼우기업 본사 전경. 이 기업은 복합재료 전문기업이다.
▲ 대구시 달성군 논공공단에 위치한 삼우기업 본사 전경. 이 기업은 복합재료 전문기업이다.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무너지는 경제와 더불어 무너졌던 그 시대 아버지들의 어깨. ‘IMF’와 ‘아버지’라는 말은 묘한 연상작용을 일으킨다. 처절하게 아픈 시대상황 속에서 더욱 아름답게 부각되는 가족애. 역설과도 같다.
외환위기는 청년의 아버지를 힘들게 했다. 어렵게 일궈온 회사의 경영난이 가중될 때 아버지는 아들에게 ‘구조요청’을 했다. “회사에 와서 나를 좀 도와줄 수 없겠느냐”고.
IMF 환란과 아버지의 요청. 이 두 가지는 국책연구기관에서 공부에 힘을 쏟던 20대 청년을 사업가의 길로 이끌었다.
아버지가 설립한 기업은 1997년 한국경제의 근간을 뒤흔든 IMF 외환위기 전까지만 해도 자동차부품 제조업체로 튼실한 기반을 잡고 있었다. 1979년 LG화학의 계열사인 럭키화이버글라스의 유리섬유 스크랩을 활용해 유리섬유 매트를 만들게 된 것은 그 시작점이었다. 이후 자동차 소음을 줄이는 소재인 ‘흡음재’ 등을 생산하는 차부품 제조업체로 지역은 물론 전국적으로 명성을 쌓기 시작했다.
88서울올림픽 특수로 호황이었던 1988년. 품질에 관한 한 까다롭기로 유명한 일본의 도요타자동차에도 헤드라이닝 원재료를 납품해 제품의 질을 일본시장에 알렸다.
승승장구할 것만 같던 부친의 기업도 한국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준 IMF를 비켜가지는 못했다. 대기업, 중견ㆍ중소기업 가릴 것 없이 외환위기 여파로 몸살을 앓던 1998년, 아버지는 청년에게 회사를 위해 일해 달라고 했다.
그때 그는 대전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서 응용물리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중. 당시 청년은 인공위성 우리별2호에 들어가는 렌즈를 개발하는 연구작업에 한창이었다. 흥미가 있는 일이었고 자신감도 충만했다. 그런데 갑자기 회사 경영이라니…. 그것도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던 자동차부품 제조업이라니….
갈등은 시작됐다. 결론은 ‘IMF로 무너져가는 아버지의 어깨를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해 4월 짐을 챙겨 대구로 내려왔다. 그의 나이 29세, 아버지의 회사 삼우기업의 품질관리팀 주임으로 입사했다. 작은 것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밑바닥’에서 시작한 청년은 입사 당시 100억원 가량이었던 회사 매출을 지난해 1천억원대로 신장시켰다.

◆현장부터 익힌 2세 경영인

김준현(44) 삼우기업 대표. 그는 2세 경영인이다. 외환위기로 우리나라 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지던 1998년 4월 부친의 권유로 입사했다. 12년간 주임과 대리, 계장 등을 맡으며 현장업무를 두루 익힌 그는 지난 2010년 CEO(최고경영자)에 올랐다.
대구지역 젊은 CEO의 경영 가치관은 어떤 것일까. 삼우기업과 그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지난달 31일 대구시 달성군 논공공단에 자리한 삼우기업 본사를 찾았다.
“2010년 41세라는 젊은 나이에 대표라는 무거운 자리를 맡아 부담되기도 했지만, 2세 경영인이라는 점이 오히려 유리했던 측면도 있었습니다. 물론 크고 작은 어려움은 말로 할 수 없겠지만 경영 노하우를 축적하신 아버지께서 든든한 버팀목이 돼 주시고, 아낌없는 조언을 해주시는 등 멘토 역할을 해주셨습니다”
김 대표가 지금까지 회사 경영에 참여해 오면서 느낀 소회다. 그는 “부친 때부터 다져진 노하우 덕분에 삼우는 그동안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뤘다”며 “특히 사업규모 확장과 질적 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했다”고 했다.
김 대표는 “삼우는 산업용 섬유ㆍ복합재료 전문업체인데 산업용 섬유가 자동차, 우주선 등의 첨단부품과 결합되면 엄청난 시너지효과를 발휘하게 된다”며 “산업용 섬유에 대한 투자와 R&D(연구개발)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섬유, 나로호와 만나다

삼우기업은 산업용 섬유에 대한 지속적 투자와 연구개발에 힘을 쏟아왔다. 이같은 노력과 땀은 올해 초 결실을 보았고, 삼우기업은 전국적 유명세를 탔다.
올해 1월 한국 첫 우주발사체인 나로호 2단 로켓에 장착한 고압가스 저장용기(자세제어용 탱크)를 공급, 대구의 섬유기술을 널리 알린 것.
김 대표는 “삼우기업의 계열사인 이노컴이 고강도 슈퍼섬유로 만든 섬유강화복합재료(FRCM)를 개발해 나로호 부품 제작에 참여해 왔는데, 나로호 발사가 성공적으로 이뤄지면서 그 결실을 맺게 됐다”며 “굵기 약 0.5mm의 원사 형태의 FRCM을 촘촘히 감아 제작한 이 부품은 나로호가 2단 분리될 때 목표지점까지 날아가도록 돕는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현재 삼우기업은 산업용 복합 섬유제품의 국산화를 위한 기술개발과 더불어 해외시장을 노크하고 있다. 특히 해외시장 진출은 김 대표의 오랜 숙원이기도 하다. 해외법인으로 이미 중국 북경과 상해 등에 2개의 제조공장을 두고 있다. 특히 올해는 슬로바키아에 현지법인을 설립하는 등 유럽시장 진출에도 힘을 쏟고 있다.
김 대표는 “유럽시장 진출을 위해 독일 프랑크푸르트 전시회, 슈투트가르트 유럽 자동차부품 엑스포 등 해외 행사에 지속적으로 참가해 외국 정부와 기업들을 상대로 전략적인 마케팅 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아실현적 가치경영이 꿈”

삼우기업의 이같은 공격적 마케팅과 연구개발 투자는 신성장동력 확보와 함께 급속한 매출신장을 불러왔다. 2011년 804억원, 지난해 1천30억원을 기록했으며, 올해는 1천200여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오는 2015년에는 1천500억원을 달성하는 게 목표다.
삼우기업의 고속성장 배경에는 ‘기술자립화’ 경영이 밑거름으로 작용했다. 이 회사는 지속적인 연구개발 투자로 기술적 수준을 한 단계 높인 첨단 부품소재 개발에 성공, 선진국 독점시장의 벽을 허무는 데 성공했다. 대표적 제품이 자동차용 흡음ㆍ단열재와 풍력블레이드용(풍력발전기 날개) 강화직물 등이다.
자동차용 흡음ㆍ단열재는 자동차 엔진 룸 내부 및 자동차 배기 시스템에 장착돼 차량주행 중 발생하는 소음을 저감시켜 주며 차량의 내구성을 높여주는 섬유제품이다. 삼우기업은 이 제품을 자체개발해 독점 공급하고 있다.
풍력블레이드용 강화직물은 고기능성 섬유를 활용한 제품이다. 삼우기업은 2009년 신재생에너지 기술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다축비굴곡 강화섬유직조기술개발’을 추진, 국내 최초로 독일 국제인증기관인 GL(Germanischer Lloyd)로부터 인증을 받아 선진국이 기술이전을 꺼리는 첨단산업 부품소재의 국산화를 실현했다.
김 대표의 최근 화두는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철학자인 매슬로우의 ‘욕구5단계’다. 그는 “생리적 욕구와 안전 욕구 등 하위욕구만으로는 자아실현을 이룰 수 없다. 기업경영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데, 절대빈곤의 시대가 지난 지금, 물질적 만족만으로는 진정 가치 있는 기업경영을 했었노라고 단언할 수 없다. 이익창출뿐만 아니라 직원 복지와 사회공헌 등에 눈을 돌려 ‘자아실현적 가치경영’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남승렬 기자 pdnamsy@idaegu.com

▲ 2세 경영인인 김준현 삼우기업 대표의 최근 화두는 ‘자아실현적 가치경영’이다. 이를 통해 사회공헌 활동에 적극 나선다는 것이 그의 계획이다. 김 대표가 자신의 사무실에서 기업인의 길로 들어선 배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진홍 기자
▲ 2세 경영인인 김준현 삼우기업 대표의 최근 화두는 ‘자아실현적 가치경영’이다. 이를 통해 사회공헌 활동에 적극 나선다는 것이 그의 계획이다. 김 대표가 자신의 사무실에서 기업인의 길로 들어선 배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진홍 기자

작지만 강한 삼우기업은?

‘작지만 강한 기업’으로 통한다. 1970년 설립돼 섬유기계 제조에 주력하던 업체 ‘삼우공업사’가 모태다. 이후 1979년 업종 전환을 통해 자동차부품 업체로 거듭났다.
계열사를 포함해 총 580여명의 직원을 뒀으며 지난해 매출 1천억원대를 돌파했다.
이같은 성과 등으로 대구시 '스타기업'에 선정된 우수업체다. 엔진 부문의 흡ㆍ차음 단열재를 주로 생산하는 이 기업은 4개 계열사와 중국과 슬로바키아 등에 해외법인을 보유하고 있다.
삼우기업은 산업용 섬유를 활용한 과감한 R&D(연구개발) 투자로 다양한 아이템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특히 올해 1월 이 업체가 개발한 고압가스 저장용기가 나로호에 장착돼 우주로 비상,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남승렬 기자 pdnamsy@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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