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유지인트 이현우 회장

▲ 유지인트 내부 전경. 유지인트는 수치제어(NC) 공작기계인 머시닝센터를 개발ㆍ양산하고 있다.
▲ 유지인트 내부 전경. 유지인트는 수치제어(NC) 공작기계인 머시닝센터를 개발ㆍ양산하고 있다.


농경시대 수탈에서부터 21세기 대기업의 횡포까지, 소위 ‘갑질’의 형태는 다양했지만 ‘을보다 높은 갑’이라는 구조만은 변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최근 남양유업에서부터 CU편의점 등 대기업의 불미스러운 갑질이 매스컴에 공론화되면서 우리 사회는 갑을논쟁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관례적으로 받아들여졌던 갑을구조가 ‘논쟁거리’가 된 것이다. 심지어 판세를 뒤집는 구조도 나타났다. 갑보다 높은 변종, ‘실력있는 을’의 존재 때문이다.
실력 있는 을은 갑들의 러브콜을 고른다. 기술력과 자체 브랜드를 바탕으로 소신있게 판단을 밀고 나간다. 대기업이 제시하는 상생의 길을 걷기 전에 스스로 상생의 길을 트고, 또 다른 을에게 모델이 되기도 한다. 희귀한 변종은 우리 사회를 건전하게 만드는 백신에 다름아니다.
이 가운데 공작기계기업인 유지인트도 포함돼 있다. 매출 10억원으로 출발해 600억원 규모로 성장하는 동안 한번도 자체 브랜드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대기업에 납품하는 하청으로 출발했음에도 기술에 대한 자부심은 놓지 않았다. 유지인트는 현재 독자 브랜드(UT series)로 미국과 브라질, 중국 등 해외에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이현우 유지인트 회장은 “지금까지가 준비기간이었고, 이제 본궤도라고 생각한다”며 “2022년까지 매출 5천억원, 머시닝센터 분야 세계 3위의 기업으로 도약하겠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위’로 올라가고 싶었던 청년

▲ 5일 성서4차단지에 있는 유지인트 본사에서 만난 이현우 회장이 중소기업의 홀로서기에 필요한 조건을 꼽고 있다. 그는 “중소기업 스스로 자산과 기술력을 길러야 한다”며 무채경영을 강조했다.
▲ 5일 성서4차단지에 있는 유지인트 본사에서 만난 이현우 회장이 중소기업의 홀로서기에 필요한 조건을 꼽고 있다. 그는 “중소기업 스스로 자산과 기술력을 길러야 한다”며 무채경영을 강조했다.

유지인트를 번듯한 기업으로 키운 이현우 회장은 “그러나 설립 초기에는 거의 도박과도 같았다”고 회고했다. 유지인트의 전신인 다사기계를 설립하기 위해 그 당시 탐나는 기업 1순위였던 대우중공업을 박차고 나왔던 것.
“대우에서 글로벌 인재경영 전략을 펼치면서 젊은 인재를 많이 모집했어요. 주위를 둘러보니까 나보다 똑똑한 사람이 너무 많더라고. 문득 ‘이런 조직에서 내 미래는 어떻게 될까’하는 생각이 들었죠”
유 회장은 “특출난 재주가 없는 이상 꿈을 이루려면 조직생활이 아니라 다른 길을 선택해야 한다고 판단했다”며 “그래도 워낙 (직장이) 아까우니까 주변에선 미쳤냐는 소리도 많이 했다”고 웃었다. 뜻을 꺾지 않은 그는 결국 1987년 대우에 퇴직서를 내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어떤 아이템을 가지고 성공할 수 있을지 시험하는 동안 ‘공작기계’에 주목했다. 자동차 부품 등 부품 하나만 전용으로 다루는 전용기계였다.
그는 “아파트 전월세에 퇴직금까지 모아 회사를 차렸다”며 “돌이켜보면 참 무모했었지만, 내 상황이 넉넉했으면 과연 그렇게 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그렇게 설립한 ‘다사기계’에서는 자동차 라인전용기계를 개발해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 해외공장에 납품했다. 주변의 우려와 달리 운영은 순조롭게 풀려나갔다. IMF 위기에 대우가 워크아웃 당했지만 뚝심으로 버텼다. 힘든 시기임에도 새로운 제품에 대한 개발 의지는 더욱 뜨거워졌다.
그는 “93년 즈음부터 연구개발의 필요성이 느껴졌다. 특성화제품인 전용기계보다 일반 소비자들도 활용할 수 있는 머시닝센터에 대한 수요가 더 많을 것이라고 예상해 연구개발실을 따로 차렸다”며 “IMF 때도 머시닝센터 개발과 함께 더 나은 기업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고 말했다.
머시닝센터는 공작물을 한번 설치하면 각 공정에 필요한 공구를 자동으로 바꿔가면서 가공하는 수치제어(NC) 공작기계로, 당시 일본에서 세계시장의 80% 가까이 석권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를 필두로 전 직원이 머시닝센터에 ‘올인’했다. 일본에 대응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자는 목표를 세웠다. 기계 옆에 자리 잡고 밤샘도 마다하지 않았다. 첫 머시닝센터 개발에 10개월이 걸렸다. ATC(자동공구교환장치), 스핀들 등 핵심 부품도 차례로 개발에 들어갔다.
희망은 끊임없이 회사를 키웠다. 2001년 성서 2차단지 임대공장 150여평, 2002년 성서 3차 단지 공장 750여평, 2004년 다시 성서1차단지에 600여평의 새 공장을 세우면서 규모도 지속적으로 늘었다. 2002년 APC 타입 머시닝센터의 양산에 들어가면서 2004년에는 두번째 신규법인인 이노메카텍을 설립했다.

◆“실력으로 승부하겠다”

신규법인을 세운 것은 그때까지 거래하던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에 더해 현대위아의 거래를 새로 맡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실력있는 을이 된 셈이다. 서로 다른 원청 주문을 받지 않는 관례상 새 법인을 만들었지만 2008년 두산인프라코어와 결별하게 되면서 이같은 투톱 체제는 사라지게 된다.
결별의 가장 큰 이유는 생산방식의 갈등이었다. 이 회장은 “당시 대우종합기계를 두산에서 합병하면서 기존 오디엠 방식을 오이엠 방식으로 바꿔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고 설명했다. 오디엠(ODM)은 개발력을 갖춘 제조업체가 판매망을 갖춘 유통업체에 상품을 제공하는 생산방식이고 오이엠(OEM)은 원청의 주문대로 제작만 하는 주문자 상표부착방식을 일컫는다. 오이엠 방식에서는 개발자가 끼어들 여지가 없어 자체 기술력을 기르기 어렵다.
그는 “한때 대우에서 근무하기도 해서 친정 같은 마음이었고 주문량도 상당했기 때문에 수익 면에서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며 “하지만 오디엠 방식을 포기할 수 없었다. 현재까지도 오디엠 방식을 고집하는 것은 이 업계에서 우리뿐”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그는 두산 납품비중이 높았던 다사기계를 이노메카텍과 병합해 유지인트로 다시 출발했다. 2006년 성서4차 단지에 현재의 공장을 세우고, 2007년 중국 산동성에 중국 법인을 세우면서 세계 진출의 발판도 닦았다. 제2의 성장기에 접어든 것이다.
이 회장은 “2009년 독자브랜드 개발에 성공하면서 생산량 확보에도 힘썼다”고 말했다. 아이폰 붐이 일던 때 애플에 납품할 수 있었던 것도 생산량 확보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는 “애플은 월 생산량이 최소 400대가량 되야 발주하는데 국내에서 이 정도 규모가 가능한 것이 우리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차세대 기술 개발 추진

중소기업으로서 홀로서기에 성공한 그는 무엇보다 ‘무채 경영’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2008년 두산과 결별 시 가장 크게 느낀 것이 어음할인 등의 부채가 없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만약 그 당시 부채가 있었다면 운영자로서 수익을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 뒤로 빚 없는 무채 경영을 하자는 것이 신조가 됐다”며 “이는 경영뿐 아니라 자신감에서도 홀로서기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원청ㆍ하청 구조가 상생을 이루기는 사실상 어렵지만, 그것이 가능케 하려면 스스로 자산과 기술력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은 자체 브랜드를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며 “차세대 기술로 의치 관련 의료기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언듯 접점이 없을 것 같은 분야지만, 공작기계를 응용하면 기공소가 아니라 치과에서도 곧바로 의치를 가공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기술개발과 함께 생산공장도 더 넓힐 예정이다. 유지인트는 테크노폴리스 5만여㎡ 부지에 생산공장을 세우기 위해 5천만달러를 유치했다. 내년 10월 준공되면 월 600대까지 생산규모가 늘어 머시닝센터 세계 3위까지 도약할 수 있게 된다. 그는 “중국 쪽에서도 저가형 시장을 공략해나갈 예정이다”며 “앞으로 우리 회사의 에너지원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젊은 에너지를 쏟아내고 있는 유지인트는 모토도 ‘젊은 기업’이다. 직원 평균나이는 30대 초반. 아파트 자금 지원, 자녀 학자금 전액 지원 등 알찬 복지혜택으로 초창기 멤버의 기술경영력을 유지하고, 젊은 인재들에게 문을 활짝 연 것이 성장세를 뒷받침했다.
그는 “무엇보다 젊은 인력이 소속감을 느끼고 미래에 대한 비전을 함께 꿈꿀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뭔가 이룰 수 있는 회사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머시닝센터를 잘 승화시켜 직원들이 우리 회사에 젊음을 바친 것을 후회하지 않도록, 자부심을 갖게 하는 것이 목표다”고 포부를 밝혔다.
정혜윤 기자 hyeyoon@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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